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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장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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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실화소설 38선에서 싸우던 나날에(9)
2018년 12월 19일 18시 53분  조회:1079  추천:0  작성자: 김장혁






                         

                                                               판문점에서의 문화향연
지원군정정담판대표단 정치부 선전과 문화조리원으로 있은 리해식은 정전담판 기간에 국내에서 온 여러 예술단체를 조직하여 중조대표단과 중립국대표단에 가서 공연시켰고 조선 개성의 명승고적을 참관시켰다. 그는 또 조선측대표단 구락부와 함께 체스꼬슬로벤스꼬와 뽈스까대표단의 일상문화생활을 배치하고 황야에서의 적막감을 풀어주고 문화생활을 풍부히 하려고 늘 한주일에 한번씩 “국제사교무만회”를 조직하였다.
한번 사교무만회를 조직하자면 쉽지 않았다. 악대만 있어선 안되였다. 녀성이 적은 담판대표단에서 춤짝이 있어야 춤을 출 수 있었다. 그리하여 리해식은 량미간을 찌프리다가 외지에서 온 문예단체 녀성들을 데려오고 그래도 모자라니 심지어 녀성들이 좀 있는 정전대표단 기요처, 통신처와 병원 등 단위에까지 가서 예쁘고 문화수양이 있는 녀성 군관과 간부들을 데려왔다.
사교무대청 네벽에는 중국, 조선, 체스꼬슬로벤스꼬, 뽈스까 등 네개 나라 국기를 가득 세워놓았고 사교무대청에는 오색령롱한 불빛이 반짝였다. 사교무청 둘레에 놓은 책상에는 포도주, 맥주, 사이다 등을 줄느런히 갖춰놓았다. 진짜 “국제사교무만회” 같은 분위기가 났다.
사교무만회가 시작되기 전에 지원군 정치부 주임 두평 장군과 황하 대표가 약속한대로 앞당겨 사교무대청에 들어섰다.
리해식 등 사업일군들이 마주 나가 인사했다.
“수장동지, 안녕하십니까?”
“동무들, 수고합니다.”
황하 대표와 두평 장군은 그들의 손을 뜨겁게 잡아주었다.
우리 나라 수장들을 비롯한 4개 나라 대표단 수장들이 뽈스까원무곡의 아름다운 선률에 맞춰 예쁜 중조녀성동지들과 손잡고 사교무를 추며 즐겁게 빙글빙글 돌아갔다.
사교무만회에 참가한 중국 남자들은 악대를 내놓고 리해식 등 사업일군 몇사람 밖에 없었다. 외국 대표단에는 녀성사업일군도 있었다.
“안녕하세요? 춤을 추자요.”
“감사합니다. 함께 춥시다.”
뽈스까대표단의 마흔살 푼한 교제과장은 리해식한테 다가와 서투른 한어로 춤을 추자고 한 손을 앞으로 벌려보였다.
리해식은 주저없이 그녀의 허리와 손을 잡고 왈쯔곡에 맞춰 춤추며 돌아갔다.
오색령롱한 색전등이 반짝이는 사교무대청에서 그들은 아름다운 선률에 맞춰 쌍쌍이 돌아가는 춤군들의 물결을 따라 몇바퀴나 빙글빙글 돌아갔다.
사교무대청에는 중국과 조선, 체스꼬슬로벤스꼬, 뽈스까 4개 나라 군인들 사이 친선의 정이 흘러넘쳤다.
중화인민공화국 창립 5주년이 되는 1954년 10월 1일, 고려왕궁 옛터 개성시 만월대 푸른 하늘에는 오성붉은기가 훨훨 휘날리고 만월대 둘레에는 여러가지 색기들이 꽉 들어섰다. 정문 층계에는 빨간 네모기둥으로 루각을 세웠는데 어찌나 현란한지 사람들의 눈길을 끌었다.
리해식 등은 원래 색기를 꽂은 곳에 이전에는 대형행사 때마다 커다란 “평화흰비둘기”기발을 꽂아놓았댔다.
그런데 하룡 원수가 중국인민 제3기 조선위문단을 거느리고 왔다가 만월대위문대회 회장에 몽땅 흰비둘기기발을 꽂은 것을 보고 “전쟁의 불길이 금방 멎자 동무들 여기는 태평성대로구만!” 하고 비평하였다.
그뒤부터 리해식 등은 만월대고 어데고 평화를 상징하는 “흰비둘기”기발을 꽂지 않고 국경절날에도 몽땅 색기를 꽂았던 것이다.
국경절날 오전 만월대 넓은 광장에서 체육운동회와 문예만회가 성대히 거행되였다.
천여명 운동원과 장병들이 참가한 운동회개막식에 조선인민군 리상조 중장, 중국인민지원군 정국옥 장군 등 두 나라 수장들이 주석대에 올랐다.
달리기, 투탄, 사격 등 항목으로 벌어진 이번 국경절 5돐 경축 체육운동대회는 지원군대표단의 규모가 제일 큰 체육운동대회였다. 또한 조선에서 가진 제일 마지막 체육운동대회였다.
그날 밤 경치가 수려한 송악산 아래에서 또 중국, 조선, 체스꼬슬로벤스꼬, 뽈스까 수장들이 참가한 4개국 사교무만회를 성대히 열었다.
리해식은 개성에서 사업하는 기간에 조국에서 온 여러 참관단을 안내해 판문점과 래봉장, 개성의 명승고적과 경치가 수려한 풍경구를 참관시켰다.
1954년 늦가을, 리해식은 중국작가협회 고옥보 등20여명 작가들로 구성된 중국작가대표단을 안내해 박연폭포를 유람하였다.
그들이 차를 타고 개성시에서 동북쪽으로 12킬로메터 쯤 달려갔을 때였다. 늦가을이여서 온 산과 들판은 울긋불긋한 단풍으로 타는듯이 빨갛게 물들어 그야말로 장관을 이루었다.
박연폭포는 조선 3대 폭포의 하나이고 송도 3대 유람명승지 가운데 하나였다. 그들이 탄 차가 폭포 가까이에 이르자 폭포 량옆의 절벽에 옛날 유람인들이 한자로 새긴 제사와 이름이 확 안겨왔다.
차에서 내려 폭포 아래에 가서 머리를 들어보니 새하얀 폭포수가 30메터 남짓한 높은 절벽에서 쏴- 하고 굉장한 소리를 울리며 날아내려 쏟아졌다. 진짜 “은하수가 구천에서 내리는듯”하였고 눈사태가 무너져내리는 상 싶었다.
고옥보 등 작가들은 혀를 끌끌 차며 연신 감탄을 금치 못하였다.
폭포가 쏟아져떨어지는 곳에는 40평방메터가량 될 못이 누워 있었다. 못의 물은  맑기로 물 밑바닥이 다 들여다보였다. 이 못을 옛사람들은 “고모못”이라고 불렀다. “고모못”의 서쪽에는 큰 바위돌이 물 속에 누워 있었다. 그 웃대가리가 수면 우에 드러나 있었다. 사람들은 이 바위를 룡암석이라고 하였다.
룡암석 우에는 중국 당조의 저명한 시인 리백의 시 “려산폭포”의 두 시구가 새겨져 있었다.
 
    3천자를 내리쏟아지는 폭포수
    은하수가 구중천에서 쏟아지는듯하도다
 
룡암석에 새긴 이 두 시구는 송도의 이름난 기생 황진희의 필적이라고 한다. 그 한자체는 어찌나 필치가 힘있고 섬세한지 룡이 꿈틀거리는듯하고 봉황이 춤추며 하늘로 오른상 싶이 폭포와 조화되여 기세가 하늘을 찌를듯하고 매우 아름다웠다.
그 시구의 오른쪽 아래에 리백의 시구와 황진희의 글씨를 칭송한 칠언절구가 새겨져 있었다.
 
    려산의 진면모는 그림에도 없거니
    예로부터 유람객이 몇이나 다녀갔더뇨?
    여기 리백의 시 황진희의 글재주만이
    세상에 짝 없는 절승경개라 하노라
 
박연폭포의 장관을 두고 이름난 기생 황진희가 이런 시구를 남겼다.
 
    옥 같은 폭포수 은하수런가
    우뢰 같은 폭포 단풍숲 속에 가로 누웠구나
    유람인들 려산폭포에 가지랑 말으시고
    천마산의 박연폭포 구경함이 나으리오
 
리해식은 장관을 이룬 박연폭포를 배경으로 유명한 작가 고옥보와 함께 룡암석 앞에 나란히 앉아서 기념 사진을 찍었다.
그들은 폭포 옆의 산기슭을 따라 빨간 단풍나무숲을 헤치면서 폭포 꼭대기 옆으로 올라갔다. 폭포꼭대기 수면에는 커다란 바위돌이 있었다. 사람들은 그 바위돌을 “섬바위”라고 불렀다.
당지 민간전설에 의하면, 박연폭포라는 이름은 이 바위돌에 깃든 이야기에서 생긴 것이라고 하였다.
멀고먼 옛날 어느날 달밤에 피리를 잘 부는 박진사라는 선비가 혼자 달빛을 밟으면서 이 폭포로 왔다. 그는 휘영청 밝은 달빛 아래에서 폭포의 아름다운 경치에 도취되여 이 섬바위 우에 앉아 흥겹게 피리를 불렀다.
그의 맑고도 귀맛을 돋구는 피리소리는 룡궁의 한 예쁜 룡녀의 마음을 흔들어놓았다. 하여 그 룡녀가 못 속에서 걸어나와 박진사에게 사랑을 고백하였다. 뒤이어 두 사람은 백년가약을 맺고 못 속에 들어갔다.
후에 박진사의 어머니는 폭포에 와서 아들을 찾아헤매다가 아들을 찾지 못하게 되자 절망한 나머지 폭포 아래 못 속에 몸을 던졌다.
하여 후세사람들은 이 폭포를 박연폭포라고 이름을 지어 불렀고 폭포 아래 못을 고모못이라고 불렀다. 박진사가 앉아 피리를 불던 물 속의 바위는 섬바위라고 불렀다고 한다.







 
 6 비무장지대에서의 대적투쟁
 
                특수한 투쟁환경
봄, 정전 후 두번째로 맞는 봄이 왔다. 화염에 그은 조선반도에 비단결마냥 부드러운 봄바람이 산들산들 불어오고 산에는 빨간 진달래와 철죽꽃, 모란꽃이 활짝 피여 그윽한 향기를 풍기였다. 원래 한족속인 진달래와 철죽꽃, 모란꽃이 서로 반기여 웃음꽃을 피우며 한들한들 춤 추고 있었다.
리해식은 산의 청신한 아침 공기를 한 가슴 후련히 들이켜고나서 38선 산에 핀 진꽃을 구경하면서 겹겹이 둘러선 산등성이를 둘러보았다.
1954년 말에 개성 중조정전대표단을 철수하자 리해식은 개성을 떠나 회창에 있는 지원군총부 정치부 대적공작부에 전근되여 사업하다가 상감령지구 40킬로메터 구간 38선을 지키는 모 군단 대적공작처에 전근돼 사업하였다.
리해식은 처음으로 38선을 가까이에서 돌아보게 되였다.
38선에는 산발을 따라 철조망이 멀리 뻗어갔고 남북으로 2킬로메터 되는 비군사지대에는 남북의 군대가 없었다. 그러나 철갑모를 쓴 쌍방의 민경들이 손을 잡고 서로 철조망을 사이 두고 오가면서 순라하고 있었다. 그 철조망 사이는 손을 내밀어도 서로 잡을 수 있을만했다. 어떤 곳에는 두겹으로 철조망을 늘였고 그 중간에 난 한메터 되는 오솔길로 쌍방 민경이 다 순라하면서 다녔다. 하여 적아 쌍방의 민경이 팔과 팔을 스치면서 지나갈 때도 있었다.
산발과 들판을 다라 뻗어나간 철조망과 분계선패말을 보자 리해식은 도리머리를 절레절레 저었다.
“어쩜 조상들이 살아온 조선 땅이 이렇게 두 토막 났어?”
그렇다, 저 유유히 흐르는 대동강과 한강 강물은 서으로 흐르고 흘러 서해에 가서 서로 부둥켜안고 흐느끼며 통곡치고 있지 않는가! 언제 가면 38선이 조선민족의 념원을 안고 무너지겠는가!  
전쟁의 불길은 꺼졌지만 38선 비무장지대의 특수한 환경에서의 투쟁은 멎은 적이 없었다.
리해식 소속 군단이 지키는 상감령, 구소운 진지인 391고지를 포함한 김화, 평강, 철원 방선의 삼각지대에는 상감령 뒤쪽의 오성산, 서쪽의 평강, 철원이 있었다. 이 곳은 군사요새여서 전쟁년대에 적아 쌍방이 대가를 아끼지 않고 쟁탈한 곳이였다. 일찍 미군은 시종 이 지구를 점령하지 못해 “철삼각”이라고 불렀다. 때문에 정전 후에도 적들은 정전협정을 뒤전에 두고 전신무장한 특무들을 늘 이 곳 비무장지대에 파견하여 사단을 일으켰고 아군의 민경을 기습하군 하였다.
한번은 괴뢰군 한개 소대가 가만히 군사분계선을 넘어와 철원 이북지구 5호교 동쪽에 있는 아군 민경부대를 기습하였다. 아군 전사들은 세배나 되는 적들에게 맹렬한 사격을 가해 적들을 몽땅 분계선 남쪽에로 몰아냈다.
적들은 정전협정을 어기고 수시로 각종 정찰기를 우리 상감령지구에 보내 저공비행하면서 정찰하고 기관총소사를 하였다.
이런 첨예하고 복잡한 투쟁환경에 비추어 각 전연 사단과 퇀에서는 1953년 11월부터 정찰대와 민경대를 합하여 두개 민경중대를 내오고 륜번으로 보초서게 하였다. 후에 각 보병퇀에서는 전투경험이 있고 날랜 전사들을 뽑아 계속 민경력량을 보충하였다. 하여 1956년 봄에는 지원군사령부의 명령에 따라 우리 군단 전연사단에 민경대를 내왔는데 서너개 중대가 되였다. 사단 정찰과장이 민경대대 대대장을 겸임하고 사단 대적공작과 과장이 정치위원을 겸임하였다.
비무장재대를 관찰하고 통제하기 위해 군사분계선 가까이에 있는 상감령, 391고지, 석광산, 상가단동 동쪽의 무명고지 등 열몇개 중점진지와 고지에 민경관찰소를 세웠고 매개 관찰소마다 드러난 민경관찰소와 은페관찰소를 세웠다. 관찰소마다 지형특점에 근거해 관찰구역내 지형, 지물, 심지어 일초일목까지 몽땅 번호를 달아놓고 원거리 망원경과 포대경 등 관찰도구로 남쪽의 적정을 밤낮으로 관찰하였다.
어느날 이른 아침에 상감령관찰소의 민경전사가 포대경으로 분계선 부근 우리측 구역내 풀밭을 관찰하다가 풀밭이 한줄로 우묵하게 헤친 자리가 난 것을 발견하였다.
“저기는 우리 민경들이 밤중에 매복해 있지 않은 곳이요. 풀밭에 헤친 흔적이 있는 걸 보면 밤중에 적특무가 저기에 들어온 것 같소.”
그 관찰소 민경책임자는 민경들을 령솔해 허리를 굽히고 총가목을 틀어쥐고 그 곳 풀밭에 살금살금 다가가 수색하였다. 과연 적특무 한 놈이 풀 속에 파묻고 숨어 있었다. 우리 민경들은 당장에서 그 놈을 체포하였다.
이런 사건은 비일비재였다.
포화가 울부짖던 전쟁터가 비무장지대로 된 후 상감령에는 몇해 되여도 풀 한대 자라나지 않았다. 세월이 류숴처럼 흘러감에 따라 이 곳에는 천천히 잡초가 키를 넘게 자라고 인가가 없는 들판으로 되여갔다.
리해식은 어느 한번 상감령고지에 올라가 흙 한줌을 움켜쥐여 보았다. 절반은 벌겋게 녹이 쓴 탄알깍지나 파편부스러기였다. 움푹한 포탄구뎅이에 고인 물이나 돌짬에서 흘러나오는 물은 몽땅 벌거스름한 녹이 쓴 물이였다.
이 곳 민경들은 오래동안 이런 물을 마시고 이런 물로 지은 벌건 밥을 먹었다. 쇠물맛이 좀 났지만 별일은 없었다.
비무장지대 산마루에는 포탄과 폭탄에 맞아 끊어진 나무와 삭정이가 아주 흔했다.
한번은 군단 대적공작과의 조명석과 강남필이 산 아래에 내려가 과동할 나무를 줏다가 전쟁년대에 묻어놓은 반땅크(반탱크)지뢰를 밟았다.
꽝!
요란한 굉음과 함께 두 동지는 장렬히 희생되였다.
잡초가 우거지자 비무장지대에서는 야생동물들이 나타나 번식하기 시작하였다.
한번은 우리측 민경들이 상감령 서쪽 금곡리 일대에서 송아지만큼 큰 메돼지가 풀밭에 나타난 것을 발견하였다. 우리측 민경들은 정전협정을 지켜 메돼지한테 총을 쏘지 않고 놔두었다.
그 메돼지는 땅을 뚜지면서 분계선 남쪽으로 건너갔다.
땅, 땅, 땅.
야무진 총소리가 울렸다.
아군 민경 한개 소조가 총소리 난 맞은켠에 가서 숨어 동정을 살폈다.
괴뢰군 민경군관이 부스럭부스럭 풀밭으로 다가오더니 민경병사들에게 물었다.
“웬 일이야? 엉?!”
괴뢰군 민경병사는 목구멍으로 기여드는 소리로 대답하였다.
“메돼지한테 총 쐈는데요. 놓쳐버렸어요.”
“흥, 밥통 같은 녀석!”
적민경 군관은 욕지거리하더니 가버렸다.
우리측 민경들은 총알에 맞은 그 메돼지는 이쪽 풀밭에 와서 피를 흘리면서 축 늘어져 가느다란 숨이 붙어 있는 것을 발견하였다.
날이 어두워지자 남쪽의 몇몇 민경들이 와서 가만히 그 메돼지를 메가려고 하였다. 그런데 300킬로그람은 실히 될 엄청 큰 메돼지를 어떻게 메간단 말인가?
이튿날 우리 측 민경들이 죽은 메돼지를 여겨보니 발쪽은 소발쪽 같이 컸고 잔등에 풀까지 자라나지 않았겠는가.
후에 아군 민경들은 마차 한대를 가져다가 겨우 민경대대부에 실어왔다. 그 메돼지를 잡아서 우리 전 련 민경들이 몇끼니 잘 먹었다고 하였다.
 
보이지 않는 전선

38선의 철조망을 상이에 두고 보이지 않는 전선에서 적들은 암투를 끊임없이 벌렸다.
적들은 우리 군 방어구역 정면에만 하여도 지면특무파견소 3개, 특무파견관찰소 5개나 세웠으며 서울과 일본의 오끼나와, 중국의 대만으로부터 미베와 리승만괴뢰군, 장개석국민당 특무기관에서 훈련해낸 특무들을 끌어다가 우리 군 방어구역에 잠입시켜 정보를 수집하군 하였다.
1954년 5월의 어느날, 391고지 관찰소에서는 망원경으로 맞은켠 비무장지대 남쪽으로 적들의 찌프 한대가 달려오는 것을 발견하였다.
찌프에서 내린 적 서너 놈이 이쪽을 망원경으로 살피더니 손질하면서 뭐라고 지껄여댔다. 뒤이어 두 놈을 남겨두고 찌프는 천천히 되돌아가는 것이였다.
“저 놈들이 오늘 밤에 건너오려는게 분명하오.’
로민경 왕길청이 곁에 서 있는 두 전사에게 망원경을 넘겨주면서 보라고 하고는 인차 대화기로 상급에 보고하였다.
뒤이어 그는 명령에 따라 두 전사를 데리고 391고지 기슭의 지정된 지점으로 떠났다.
해는 붉게 타는듯한 저녁노을 속으로 내리면서 몇가닥의 마지막빛을 뿌리였다. 땅거미가 꼴깍 넘어가는 해를 바래면서 어둑어둑 지기 시작하였다.
적들이 찌프를 타고 와서 두 놈을 남겨 놓은 맞은 켠에는 잡초가 우거지고 땅크가 지나간 길이 우불꾸불 뻗어나갔다.
왕길청은 두 전사를 돌아보면서 “여기 호형으로 매복하기요.”라고 낮게 말하였다.
그리하여 왕길청이 정면에 매복하고 두 전사는 앞으로 해서 량옆에 매복했다.
숨막힐듯한 침묵 속에서 하늘에 아기별이 하나 둘 뜨기 시작하였다. 때는 봄이라지만 밤이 깊어가니 오싹오싹 추워났다.
이때 그들은 자기들이 지금 매복한 곳은 바로 전투영웅 구소운동지가 장렬히 희생된 곳이라는 것을 알고도 남음이 있었다.
왕길청은 머리를 돌려 어둠 속에 소소리 높이 솟아 있는 구소운렬사의 기념비를 우러러보았다.
(구소운렬사는 이글거리는 불에 타 죽으면서도 견지했다. 요까짓 추위가 다 뭔가? 꼭 견지해 특무놈들을 붙잡아야지.)
왕길청과 두 전사는 이를 악물고 풀밭에 엎드려 예지로 반짝이는 눈으로 앞을 살폈다.
시간은 일초, 일초 흘렀다. 적정변화는 없었지만 그들 셋은 꼼짝하지 않고 열시간이나 엎드려 있었다.
갑자기 맞은켠에서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찬찬히 여겨보니 검은 두 그림자가 이쪽으로 허리를 굽히고 슬금슬금 다가왔다.
(음, 이놈들 끝내 오는구나.)
왕길청은 량쪽 련락바줄을 당겨 두 전사에게 주의하라는 신호를 보냈다. 이때 다가오던 두 그림자는 왕길청과 한 3메터 떨어진 곳에 와서 주춤 멈춰섰다.
왕길청과 두 검은 그림자 사이에는 풀무지가 있었다. 두 특무놈은 풀무지 곁에 서서 손시늉질하면서 뭐라고 쑤군덕거렸다. 왕길청은 적들이 매복권에 들어온 뒤 손쓰려고 기다렸다.
그러나 적들은 반시간이 넘도록 까딱하지 않고 있었다.
날이 거의 밝아오자 두 특무는 몸을 돌려 풀무지를 떠나려고 하였다.
“꼼짝 말엇!”
왕길청은 번개같이 뛰여나가 독수리가 병아리 덮치듯 한 놈의 목덜미를 잡아누른 동시에 권총을 꺼내 다른 특무를 겨눴다. 두 전사가 덮쳐나와 두 특무의 허리춤에서 권총을 빼냈다. 적특무들은 돌연습격에 부들부들 떨면서 두 손을 천천히 들었다.
왕길청과 한 전사가 두 특무놈의 두 팔을 바줄로 꽁꽁 묶은 다음 앞에 세우고 압송하였다. 뒤에서 다른 전사가 경계하면서 따라왔다.
그들이 민경중대부로 돌아왔을 때는 동녘하늘이 희붐히 밝아오기 시작하였다.
한단천 강물은 군사분계선을 가로 질러 쏴쏴 쏜살같이 흘렀다. 적 특무들은 한단천의 쏴쏴 높은 물소리를 빌어 항상 물곬을 따라 북으로 기여들군 하였다.
어느날, 신입민경 장진국은 두 로전사와 함께 한단천 강변 풀숲에 매복하여 강변을 주시하였다.
풀숲에는 귀뚜라미들이 찌르륵찌르륵하고 땀내를 맡은 모기들이 앵앵 날아다니는 소리가 들릴뿐 아무런 동정이 없었다.
밤 10시가 넘었을 때다. 갑자기 짐승의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그런데 장진국은 어쩐지 짐승의 울음소리 같지 않은 느낌이 들었다.
(경각성을 높여야지.)
또 반시간이 지났다. 갑자기 그와 그리 멀지 않은 앞에서 꿩 한마리가 놀라 푸드득 날아났다.
(오, 짐승이 꿩을 놀래웠으면 꼭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날텐데. 부스럭거리지 않는 걸 보면 꼭 무슨 놈의 조화가 있어.)
그는 두 눈을 똑바로 뜨고 주위 동정을 살폈다.
몇분이 지난 뒤 과연 바스락바스락 소리가 들렸다. 뒤이어 수상한 검은 그림자가 강가를 따라 이쪽으로 움직이고 있는 것이 보였다.
장진국은 긴장해나 어쩌면 좋을지 몰라 숨소리마저 거칠어졌다. 그는 인차 매복조 조장에게 적정을 발견했다고 찍찍 쥐소리를 냈다.
검은 그림자는 이쪽으로 느릿느릿 다가오다가 문뜩 멈춰서더니 이쪽 동정을 살피느라고 두리번거렸다.
장진국은 참을 수 없어 그 놈을 덮치려고 들었다. 그때 그의 속내를 짐작이나 한듯이 조장에게서 적이 매복권에 들어설 때까지 꾹 참으라는 신호를 보내왔다. 그제야 장진국은 한숨을 후 내쉬고 꾹 참고 적의 동정을 살폈다.
검은 그림자는 두리번거리면서 이쪽으로 점점 다가왔다. 10메터, 5메터, 3메터… 장진국은 까딱하지 않았다. 그 그림자는 그를 발견하지 못하고 그의 옆으로 해 걸어지나갔다. 그 그림자가 자기 뒤로 한 7, 8메터 지나간 뒤에야 장진국은 천천히 일어나 총을 빼들고 검은 그림자를 따라갔다. 그가 그 자를 따라 10여메터나 뒤를 밟았는데도 그 자는 발견하지 못하고 계속 앞으로 걸어나갔다. 이젠 포위권 복판에까지 들어섰다.
딱! 딱!
장진국은 특무를 붙잡자는 신호를 보냈다.
“꼼짝 말엇!”
조장과 다른 로민경이 특무놈의 앞에 불쑥 나타나 총을 겨눴다.
장진국은 뛰여나가 총을 그 특무의 뒽통수에 겨누었다. 그 특무놈은 어두운 풀숲에서 뛰쳐나온 맹호 같은 지원군 세 민경, 자기에게 겨눠진 시꺼먼 총부리를 보고 깜짝 놀랐다. 그 놈은 온몸을 부들부들 떨면서 천천히 두 손을 쳐들었다. 그 놈은 어찌나 놀랐는지 이발마저 덜덜 맛쪼았고 바지에 오줌까지 셀셀 쏘았다.
장진국은 그 놈의 허리춤에서 권총과 비수를 뽑아냈고 두 로민경은 그 놈의 두 팔을 뒤로 비틀어 노끈으로 꽁꽁 묶었다. 그들은 밤도와 그 특무놈을 압송해가지고 민경중대부로 돌아왔다.
중대부에서 심문해보니 그 놈은 대만에서 파견한 국민당 특무였다.
상감령 서쪽의 수동은 분계선과 가까운 개활지대였다. 우리 한개 민경분대의 작은 관측소가 여기 있었다.
서늘한 가을바람이 선들선들 부는 가을밤에 신기암 등 민경들은 모두 매복하러 나가고 주둔지에는 한 사람도 남지 않았다.
이날 밤 두 특무놈은 우리 민경들이 매복하러 나가고 주둔지에 사람이 적은 틈을 타서 민경을 붙잡아가려고 기여들었다.
그런데 그 특무놈들은 주둔지에 이상하게 사람이 하나도 없자 제 방귀에 놀라 주춤 멈춰서고 말았다.
“중공군이 우리 속을 뒤집어본게야.”
“옳아, 빨리 뻗자구!”
그 놈들은 황망히 관측소에서 뛰여나와 한 200메터 떨어진 풀숲에 가서 납작 엎드렸다.
동녘하늘이 희붐히 밝아오는데도 두 특무는 감히 분계선을 넘지 못하고 계속 엎드려 날이 어둡기를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이때 매복하러 나갔던 민경들이 돌아왔다. 그들은 나무를 팬다, 밥을 짓는다 하면서 분주의 돌아쳤다.
신기암은 낫과 바줄을 찾아들고 이영으로 쓸 풀을 베러 면바로 특무들이 엎딘 풀숲으로 스적스적 걸어갔다.
그는 한창 풀을 베다가 땀을 닦으려고 허리를 펴는 순간, 한 20메터 떨어진 풀숲에 철갑모자가 눈에 띄였다.
그가 가까이 다가가다가 풀숲 속의 철갑모자 밑에서 한쌍의 까만 눈깔이 떼룩떼룩 구으는 것을 발견하였다.
(특무놈이구나!)
신기암은 성난 사자처럼 낫을 휘두르면서 덮쳐들었다. 그러자 두 특무놈은 불쑥 일어나 권투자세를 취했다. 부대축구선수 출신인 신기암은 발길로 나먹은 특무의 아래배를 탁 걷어찼다. 그 놈은 뒤로 벌렁 엉덩방아를 찧었다.
“이 놈들! 꼼짝 말엇! 네깐 놈들은 내 적수도 안돼! 여긴 몽땅 우리 사람들이야. 누구든 까딱하면 낫으로 모가지를 벨테야!’
신기암은 서투른 조선말로 호랑이처럼 으르렁거렸다.
풀숲에 뻐드러져 아래배를 싸쥔 나먹은 특무놈은 부들부들 떨었고 젊은 놈은 쳐들었던 주먹을 내리웠다. 신기암은 나먹은 특무의 두 팔을 비틀어 풀을 묶으려고 가지고 간 바줄로 꽁꽁 묶었다. 뒤이어 얼이 빠져 못박힌듯 떡 서 있던 젊은 놈의 팔도 뒤로 비틀어 한데 꿍꿍 묶었다.
“걸엇!”
신기암은 낫을 쳐들고 그 두 놈을 앞세우고 한 20메터 나가서 관측소의 동지들을 불렀다.
“어이, 특무놈들을 붙잡았소.”
나무를 패던 민경들이 우르르 달려와 함께 두 특무놈을 민경중대부로 압송하였다.
1957년 6월의 시루가마 속처럼 무더운 어느날 밤이였다.
대만 국민당특무 세 놈이 철원 이북지구에서 분계선을 넘어 비무장지대 우리측 통제구역으로 기여들었다. 그 놈들은 비무장지대를 벗어나 아군 제1선부대쪽에까지 들어갔다가 밤 0시 쯤에 아군 제1선부대 보초병에게 발각되였다.
땅, 땅, 땅!
아군 보초병들이 사격하였다.
세 특무놈은 황망히 비무장지대 나무숲 속에 들어가 숨었다. 아군 제1선부대에서는 비무장지대에 천라지망을 친 한편 인차 비무장지대 우리측 관측소 민경들에게도 통지했다.
민경 부패장 구양신복은 한개 민경소조를 보내 수색하게 하고 자기는 조선인민군 민경대에 통지하러 떠났다.
그가 돌아올 때는 이미 아침해살이 나무숲을 비추었다. 그는 지꿎게 내리는 비를 무릅쓰고 우항리를 지나가다 질척질척한 진흙바닥에 박힌 의심스런 발자욱을 발견하고 추격하였다.
그가 나무가 꽉 들어선 수림을 질러나가 우항리 서남쪽의 개울가에 이르렀을 때였다. 개울가 개흙바닥에 어지러운 발자욱이 다닥다닥 찍혀있지 않겠는가.
(안돼. 여기 서 있다간 습격받을 수도 있어.)
그는 인차 개울가에서 물러나 높은 곳에 올라가 납짝 엎뎌 살폈다.
이때 뒤에서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났다. 그가 몸을 낮추면서 뒤돌아보니 자기가 파견한 민경소조가 다가오지 않겠는가.
“어떻게 돼 왔소?”
“두 사람의 발자욱을 따라 추격중입니다.”
“음, 좋소. 계속 발자욱을 살피오.”
“옛.”
그들은 흩어져 질척질척한 풀숲을 살폈다.
“보십시오. 여기에 발자욱이 또 있습니다.”
부패장 구양신복이 전사가 가리키는 땅바닥을 살펴보니 과연 북으로 향한 발자욱이 있었다. 발자욱의 진흙이 스르르 내려앉는 것을 보아 금방 난 발자욱 같았다.
“이 발자욱을 따라 수색하기오.’
“예.”
갑자기 개울가 수림 속에서 야무진 총소리가 울렸다.
“엎드렷!”
땅! 땅!
구양신복은 총소리 난 곳에 총 두방을 쏘았다.
그러나 수림에서는 아무런 반격도 하지 않았다.
구양신복은 두 민경을 제자리에서 엎드려 계속 살피게 하고 한 민경을 거느리고 수림을 수색했다. 수림 속에 웬 사람이 쓰러져 있었다. 오른쪽 태양혈에 권총 탄알구멍이 펑 뚫려 피가 쿨쿨 솟구치고 있지 않겠는가.
그 자는 뻘건 눈은 펀히 뜬 채로 있었다.
“뛸데 없자 자살한 거요.”
구양신복은 그 놈의 호주머니를 들췄다. 호주머니에는 위조한 중공 당원 당증과 군사칭호 등이 있었다. 특무놈들은 모두 세 놈이 왔는데 죽은 이 놈은 국민당 상위군관 특무조장 설총이였다. 설총은 아군 모 전연사 정치부 선전과 부과장으로 가장해 잠입하려고 들었던 것이다.
“나머지 두 놈은 어디로 도망쳤을가?”
구양신복은 한 전사를 보내 중대부에 보고하는 한편 계속 민경들을 령솔해 발자욱을 따라 수색해나갔다. 다른 수색조도 와서 함께 군사분계선에서 100메터 떨어진 수림에까지 수색했다. 그런데 두 발자욱이 수림 부근에서 없어졌다.
“꼭 이 수림 속에 있소. 남쪽으로부터 북쪽으로 수색하기요.”
구양신복은 민경들을 령솔해 풀숲을 헤치면서 수림 속을 샅샅이 훑으면서 나갔다. 그런데 뒤에서 한 민경이 돌멩이를 디뎌 넘어졌다.
쿵!
이때 그들의 10여메터 앞에서 두 놈이 놀라 후닥닥 뛰여 일어났다. 한 놈은 서쪽으로 달아나고 한 놈은 남쪽으로 달아났다.
“투항하면 살려준다!’
구양신복은 성난 사자처럼 호통치며 서쪽으로 달아나는 특무놈을 추격했다.
특무놈은 선불맞은 노루처럼 기를 쓰고 달아났다. 구양신복 등 민경들은 추격하다가 사격하였다. 로련한 특무는 빽빽한 나무와 돌무지를 요리조리 에돌면서 총탄을 피해 도망쳤다.
민경들은 지형에 익숙한지라 특무놈의 오른쪽을 질러나가면서 추격했다. 뒤를 힐끔 돌아다보던 특무는 구양신복에게 총질했다. 그런데 총알이 떨어졌다.
구양신복은 총알을 이리저리 피하면서 맞사격을 하며300여메터나 추격했다. 질척질척한 진흙 때문에 뛰기 힘들자 신짝을 벗어던지고 추격했다. 질겁한 특무는 황망히 뛰다가 발을 헛딛고 풀쳐 쿵 넘어졌다. 구양신복은 제꺽 탄창을 바꿔넣고 그 놈의 뒤에 대고 총 두방을 쏘았다.
땅, 땅.
일어나서 또 뛰던 그 놈은 질겁해 비칠거렸다.
구양신복은 한 10메터 가까이까지 쫓아가 서투른 조선말로 꽥 고함쳤다.
“손들엇!”
특무놈이 알아듣지 못하자 이번엔 한어로 호통쳤다.
“무기를 놧!”
그제야 특무놈은 알아듣고 권총을 질척질척한 진흙탕에 뚝 떨어뜨렸다.
민경 량패호가 뛰쳐나가 특무의 권총을 주어들었다.
“걸엇!”
그들 둘이 특무를 북으로 압송하려고 총신으로 뒤잔등을 떠밀었다.
그런데 그 놈은 떡 버티고 서서 자꾸 분계선 남쪽을 건너다보면서 좀처럼 걸을 념을 하지 않았다.
분명 동료들이 군사분계선을 넘어와서 민경들을 습격하고 자기를 데려갔으면 하는 것이 틀림없었다.
물론 잡초가 우거지고 나무들이 꽉 박아서서 적측에서는 그들을 똑똑히 볼 수 없었다. 그러나 오래 있을 곳은 아니였다.
“빨리 걸엇!’
그들은 특무를 압송해가지고 재빨리 군사분계선과 멀리 떠나갔다. 그제야 느릿느릿 걷던 특무놈은 구원탈출을 바라던 꿈을 버리고 걸음을 재우쳤다.
남쪽으로 달아난 특무놈은 군사분계선을 넘어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
붙잡힌 대만 국민당특무 이름은 주두운으로서 주지라는 가명을 썼다. 이 자는 중국 운남성 사람인데 국민당군 중위군관이였고 남쪽으로 달아난 놈은 소위군관이였다.
민경대대 주둔지에서 심문할 때 주지는 솔직하게 탄백하였다.
“우리 대만 특무 26명은 1956년 10월에 대만 국민당군에서 뽑혀 미군 오끼나와 군사기지에 가서 미군과 장개석특무기관의 전문훈련을 넉달동안 받은 후 이 곳에 파견되였습니다.”
“임무는 무엇인가?”
주우둔은 심문하는 민경을 감히 쳐다보지도 못하고 두 손을 마주 비비며 공손히 탄백하였다.
“우린 두번째로 분계선을 넘어왔습니다. 이번 임무는 지원군의 신식 복장과 견장, 령장 견본을 얻어가는 것입니다.’
1957년 7월의 어느날 밤이였다.
민경반장 장송주는 밤 11시 반 쯤 되자 민경 호원우, 류기귀와 함께 신호용 자갈돌을 호주머니에 넣고 창창 대살처럼 쏟아지는 소낙비를 무릅쓰고 매복구역으로 떠났다. 이런 궂은 날씨일수록 특무들이 넘어올 가능성이 더 컸기 때문에 그들은 경각성을 더 높여 수색하며 나아갔다.
그들이 매복구역까지는 아직 절반 밖에 가지 못했을 때였다.
한 50메터 앞엥서 갑자기 무엇이 진창에 빠지는 것 같은 소리 났다.
그들은 납작 엎드렸다.
장송주는 뒤에 신호용자갈을 두개 뿌렸다. 그러자 그들 셋은 인차 삼각형대형을 지어 매복해 총가목을 잡고 포복전진했다.
목표까지 대여섯메터 떨어진 풀숲에 기여갔을 때였다. 비옷을 쓴 웬 놈이 풀숲에 쭈크리고 앉아 비를 막으며 쉬고 있었다. 장송주는 자갈 하나 뿌려 까딱 움직이지 말라고 암시했다. 뒤이어 그는 혼자 량손에 권총과 보총을 쥐고 살금살금 기여나갔다. 한 2메터 가까이에까지 기여갔는데도 그 놈은 그를 발견하지 못했다.
“손들엇!”
장송주는 벌떡 일어나 덮쳐나가며 고함쳤다.
총부리를 본 그 놈은 벌떡 일어나면서 손을 휙 저었다. 무슨 빛이 번쩍하지 않겠는가.
(전기칼!)
장송주는 인차 그 놈의 뒤덜미를 탁 쳤다. 그 놈은 손에 쥔 권총을 풀숲에 떨구며 꺼꾸러졌다. 그 놈의 손을 더듬어보니 전기칼은 없고 대신 손목에 야광시계가 빛뿌렸다. 야광시계를 전기칼로 오해했던 것이다.
이때 뒤에 있던 호원우와 류기괴가 덮쳐와 번뜩이는 총창으로 그 놈을 겨눴다.
장송주는 민경관측소에 신호탄을 쏘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2개 조의 민경들이 뛰여왔다. 그들은 특무를 압송해가지고 밤도와 민경대대부로 돌아왔다.
민경대대부에서 심문한 결과 그 놈은 대만 국민당특무 진문병이였다. 그 특무와 함께 국민당특무 세 놈이 건너왔던 것이다. 그런데 소낙비가 억수로 쏟아져 앞을 가리기 힘든데다가 길이 질고 미끄럽다고 대만 국민당 소좌군관 특무책임자는 비무장지대에 들어온 후 흩어져 행동하자고 해 특무 넷이 다 흩어졌다고 했다.
38선에서 특무잡이투쟁에서 우리 민경들은 피의 대가도 치렀다.
8월의 어느날 밤, 상감령 부근 민경관측소 민경 양경영과 엽세택 등은 금곡리 일대에 가서 매복조를 교대하려고 떠났다.
그들이 금곡리 소무명고지 한 산골짜기로 내려갈 때였다.
땅, 땅!
밤정적을 깨뜨리는 야무진 총소리와 함께 제일 앞에서 걷던 엽세택이 “특무!” 하고 쿵 넘어갔다.
양경영과 다른 민경은 기민하게 몸에 걸쳤던 솜외투를 벗어 허연 안이 겉으로 나오게 번져 풀숲에 덮어놓고 량옆으로 흩어져 매복했다.
땅! 땅! 땅!
적 특무들은 흰 외투에 대고 총 몇방씩 갈겼다.
양경영과 민경은 사격불빛이 번쩍거리는데다 대고 련발사격했다.
“앗!’
적 특무의 비명소리가 들렸다.
콩볶듯하는 총소리를 듣고 민경관측소의 한 부패장은 민경들을 데리고 뛰여왔다. 그들이 보니 민경 엽세택은 이미 피못 속에서 숨을 거두었고 양경영과 민경은 특무를 수색하고 있었다.
부패장은 민경들을 령솔해 날이 밝을 때까지 수림과 풀숲을 샅샅이 수색하였다. 한 교통호를 수색하다가 특무놈이 쭈그리고 앉아 왼손으로 바지우에까지 피가 즐벅한 허벅다리를 누르고 오른손에 권총을 쥐고 두리번거리는 것을 발견하였다.
“무기를 놧!’
그래도 특무놈은 무기를 놓지 않았다. 그러자 부패장은 그 놈에게 총 몇발 쏘며 뛰여가 그 놈의 손에서 권총을 빼앗아냈다.
사실 이날 대만 국민당 “국방부” 제2청 특무 왕인강(가명)과 만발생 두 놈이 지원군 군관으로 가장해가지고 분계선을 넘어 기여들었다. 금방 총에 맞은 이 놈은 엽세택에게 사격한 후 양경영 등이 쏜 총에 맞아 다리를 상해 도망하지 못했고 다른 특무놈은 북쪽으로 도망해 잠입했다.
적측 어떤 특무들은 아주 로련하였다.
1956년 8월 어느날 밤, 철원 철도를 따라 웬 놈이 38선을 넘어왔다.
웡, 웡, 웡.
민경부대의 사냥개가 짖어댔다.
민경들이 개를 따라 가보니 분계선 이쪽 200메터 되는 강가에서 헌 옷 우에 고무바지를 입은 웬 꺽다리가 강을 건느려고 꾸물거리고 있었다.
“꼼짝 말엇!’
그 놈은 흠칫 놀라더니 민경들을 보자 아닌 보살을 떨었다.
“헤헤, 난 리승만괴뢰군 군관인데 이북에 의거하러 왔습니다.”
희죽벌죽 웃으며 아주 능숙한 한어로 지껄이지 않겠는가.
“좋소. 우릴 따라 가기요.”
“예, 예.”
그 자는 도강하려고 입던 고무바지를 벗어버리고 권총마저 꺼내 민경에게 주고는 민경을 따라 공손히 걸었다.
민경중대부에서 리해식은 그 자를 심문하였다.
“의거하러 온 걸 환영하오. 괴뢰군 어느 련대에 있었소?”
“예, 괴뢰군 X 군단 X 사단 X련대에서 대대장질 했지요.”
“그럼 그 사단의 리모 사단장을 잘 알겠구만.”
“예, 예,잘 알고말고요.”
그자는 아주 침착하게 대답하였다.
“그럼 사단장이 뭘 즐기는지 잘 알겠구만.’
“건, 접촉이 별로 없다나니깐, 잘 모르는데요.”
무릎 우에 놓은 그자의 손가락이 바르르 떨렸다. 리해식은 짚이는데가 있었다.
“그럼 그 련대 김학길 련대장은 잘 알겠지?”
“예, 당상급인데유. 잘 알아요.”
“그는 장기를 잘 두지?”
“예, 평소에 저와 장기를 잘 두는데요.”
“닥쳣! 그 련대에는 근본 김학길 련대장이라고 없어. 허튼 수작 말고 빨리 탄백햇!”
그자는 꼬리가 드러나고 말았다.
리해식은 오래동안 괴뢰군 포로와 의거해온 괴뢰군 장병들을 심문해왔기에 괴뢰군의 력사, 군정소질, 정치사상, 관병관계, 군영생활 등과 우리 군 맞은켠 괴뢰군 사단, 련대 군관들의 이름, 출생지, 애호, 가정정황까지 손금 보듯 환히 알고 있었다.
그자는 리해식에게 잘 못 걸린줄 알고 혀를 홀랑 내밀며 뒤더수기를 긁적거리더니 탄백하기 시작하였다.
올해 53세인 이 특무는 김영송이라고 불렀는데 류관민이란 한족이름을 썼다. 그는 한어, 일어까지 정통한 특수훈련을 받은 직업특무로서 일제와 미제, 리승만 괴뢰군 고급특무기관에서 20여년 동안이나 간첩활동을 해왔다. 그는 선후하여 9차나 분계선을 넘어 비무장지대에서 제일 가까운 복계역에 기여들어 항상 기차를 타고 조선 평양과 함흥 등지에까지 잠입하여 조선 북반부의 정치, 군사, 경제 등 정보를 훔쳐간 적이 있었다. 이번에도 강을 거너 북에 깊숙이 잠입하려다가 발각되자 거짓으로 의거하러 온 척했다가 꼬리를 밟혔던 것이다.
어떤 특무들은 당원증이나 공무원증 같은 것을 휴대하고 지원군으로 가장해 들어왔다가 번번히 그물에 걸렸다. 당시 지원군 당원들은 근본 당원증이란 것을 휴대하고 다니지 않았다. 비무장지대에서는 계속 이전 지원군 흉장을 달았지만 후방 제1선 부대에서는 새 군사칭호에 따라 몽땅 흉장을 달지 않고 새 군복을 입었다. 그런데 지원군으로 가장한 특무놈들은 흉장을 단 이전의 지원군 군복을 입었으니 나포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들의 위조한 공작증은 더구나 어처구니없었다. 그때 지원군 사단에는 정치처가 없고 정치부가 있었다. 그런데 특무들의 위조한 공작증에는 사단 정치처 부처장이란 글자가 박혀 있었으니 말이다.
적들은 38선 우리측 비무장지대에 기여들어 정전협정에 어긋나는 도발사건 2, 323차나 저질렀고 59명이나 되는 특무들이 우리측 민경들에게 나포되였다. 그중에는 대만 국민당특무 10명이나 있었다. 그리고 우리측 민경들은 의심한 자 17명을 나포하고 총과 무전기, 사진기 등 수많은 특무도구를 로획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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