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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장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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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실화소설 38선에서 싸우던 나날에(4)
2018년 11월 22일 12시 16분  조회:1409  추천:0  작성자: 김장혁









                                   대적정치공세

      아군이 지키는 어음산과 500고지, 백운산으로부터 한강 동안에 이르기까지 뻗은 산과 산골짜기에는 백설이 새하얗게 뒤덮였다. 새하얀 어음산은 그 꼭대기가 흰 구름 속에 잠겨 있어 먼 곳에서 보면 산꼭대기와 구름을 분간하기조차 힘들었다.
       어둠이 깃든 뒤 은빛 달빛이 깔린 산마루는 참말로 장관을 이루었다.
      1953년 양력설을 전후하여 리해식이 소속한 중국인민지원군 60군 181사는 전례없는 대적정치공세를 발동하였다.
일찍 국내 해방전쟁시기 181사단은  태원전역에서 정치공세로 6,730여명의 적을 포로했거나 쟁취하였으며 사천 북부에서도 토비숙청할 때에도 2정치공세로 5, 500여명의 토비들을 포로했거나 쟁취하여 상급의 칭찬을 받은 적이 있었다.
아군의 승리는 아군의 작전에 의거할뿐만아니라 적군에 대한 와해공작에도 의거해야 한다는 모택동 주석의 빛나는 사상과 대적정치공세에 대한 지시에 근거하여 사단에서는 정치부 범극양 주임의 령솔하에 두차레 회의를 열고 사단 정면의 리승만 괴뢰군 제3사단의 정치사상정황을 참답게 분석한 다음 전연진지의 보병과 포병에 배합하여 새 해에 대적정치공세를 벌리기로 결정하였다.
전 사단에서는 리해식을 비롯한 19명 조선족번역원을 뽑아 각 퇀의 전연진지에 보냈다. 그때 리해식은 사단 비서과로부터 다시 대적공작과에 돌아가 사업하였다.
그 외에 조선인민군에서 1년 남짓이 대적정치공세방송을 한 적이 있는 리정숙과 안옥순을 비롯한 6명의 방송원(아나운서)이 사단 대적공작과에 와서 방송을 하게 되였다.
그때 사단 오른쪽에 위치한 상감령에서는 적아쌍방이 한창 판가리싸움을 벌리고 있었다. 그때 해식 등은 적아 사이의 거리가 백메터로부터 천여메터 밖에 안되는 유리한 환경을 리용해 대적정치공세를 발동하였다.
대적공작과에서는 지휘소의 통일적인 지휘 아래 방송소를 꾸리고 만화를 그리였으며 구호판을 만들었고 삐라를 등사하였다. 그리고 적들에게 보낼 “선물주머니”에 사탕, 과자, 담배, 술, 마른 낙지, 일용품, 삐라와 “안전통행증”을 나눠 넣는 일을 해나갔다.
초연이 자욱한 싸움터에서 하루의 전투가 끝나 밤의 정적이 내리드리우면 포화에 그은 진지에도 무거운 정적이 깃들기 시작한다.
적병들은 아군의 저격탄에 맞을가봐 온 하루종일 가슴을 조이면서 알음장같이 차가운 전호바닥에 웅크리고 앉아 있다가 차디찬 또치카 안으로 기여들어가 얼음덩이처럼 차고 굳은 주먹밥을 긁어먹는다. 그들에게는 진지의 정적이 새로운 비애와 공포의 시작으로 되는 것이였다. 이럴 때면 헤여진지 오랜 친지들을 더욱 그리게 된다.
적병들의 이런 심리상태를 꿰뚫어보고 있는 아군 제1선진지의 대적공작조는 대를 놓칠세라 대적정치공세방송을 시작하군 하였다. 민족감정이 짙은 조선인민군 녀방송원의 맑고 부드러운 목소리가 적진상공의 정적을 헤가르며 산간에 메아리쳤다.
 
“괴뢰군 병사들, 그대들은 엄동설한의 고지 우에서 얼마나 고생하고 있습니까? 우리는 그대들이 미제 침략자들과 그자들의 꼭두각시질하는 허수아비 괴뢰대통령 리승만역도에게 강제로 끌려나와 언제 죽음이 차례질지도 모르는 몸서리치는 위험 속에서 등 시리고 손 시린 고용병의 설음을 겪고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대들이 우리 방송에 귀를 기울이는 이 시각 저 하늘의 밝은 달을 우러러 가슴에 손을 얹고 깊이 생각해보십시오. 그대들은 도대체 누굴 위해 미제 놈들의 대포밥이 돼야 합니까? 그대들이 굶주림과 추위에 시달리고 있는 이 시각, 그대들의 부모처자들이 어떻게 살고 있는지 알고 있습니까? 그들도 미제 식민지 리승만괴뢰정부의 시달림 속에서 그대들과 마찬가지로 무서운 인생고를 치르고 있습니다…”
 
아군 방송에 적병들의 반향을 수집하려고 어음산 서쪽 산비탈에 설치한 아군 방송소에서는 방송이 시작되면 첫날에 조선족번역원 1명과 패장 1명, 전사 2명으로 무어진 도청소조를 적진 가까이에 파견하였다. 그들의 모험적인 행동이 일단 발견되면 위험하기에 전연진지의 총포가 몽땅 동원되여 그들을 보호할 대책을 미리 세워놓았다.
그들은 흰 위장복을 입고 사전에 정찰해놓은 로선을 따라 한자 두께나 되는 적설을 헤치며 적진에서 20메터 떨어진 곳에까지 기여들어갔다. 마침 대낮처럼 밝은 달빛 아래 적병사들의 일거일동이 빤히 들여다보였다.
아군 진지의 방송이 시작된지 얼마 안돼 몇몇 적병이 또치까에서 기여나와서 방송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그중 한 적병은 아예 털모자를 벗어들고 목을 빼들고 듣고 있었다. 도청조의 전우들은 놈들의 코밑에서 적병들의 대화를 엿들었다.
한 적병이 중얼거렸다.
“허, 저 치들 말에 일리 있잖아?”
그러자 한 적병이 받았다.
“글쎄, 똑마치 우리한테 왔다 간 거처럼 말하잖아.”
이때 웬 검은 그림자가 또치까에서 언뜰하더니 게사니처럼 웩웩거렸다.
“이 맹추 같은 것들, 게서 뭣들 해? 중공군의 깜장콩알 얻어먹자고 그래?”
말투를 들어보니 군관인 듯하였다.
적병들은 찍소리 못하고 또치까 안으로 기여들어갔다.
군관인 듯한 그 검은 그림자는 스적스적 보초선으로 발길을 옮겼다.
이윽고 보초선에서 욕질하는 소리가 들러왔다. 보초병이 아군 방송에 귀를 기울이다가 그 군관이 온 것도 모른 모양이였다. …
밤이 깊었건만 아군 진지에서 울리는 녀방송원의 청아한 목소리는 백설이 망망한 뭇산의 협곡에서 메아리쳤다. 지심을 울리는 대포소리를 대체한 그 방송소리는 적병들의 가슴을 울려주었다.
 
“괴뢰군 장병들이여, 우리는 이 기회를 빌어 우리 중국인민지원군과 조선인민군의 포로정책과 의거하는 자에 대한 정책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우리 중국인민지원군과 조선인민군은 모든 포로에 대하여, 그리고 무기를 놓고 의거하는 사람에 대해서는 그가 군관이든 병사이든, 그의 정치적 신앙이 어떻든지를 막론하고 모두 그의 생명안전을 담보해주며 절대 죽이지 않고 인격을 모욕하지 않으며 개인 재물을 빼앗지 않습니다. 이밖에 또 부상당했거나 앓는 사람에 대해서는 치료해주며 집에 돌아가겠다는 사람에게는 로비를 주어 돌려보냅니다. …”
 
뒤이어 적 장관들의 기만적인 선전목적을 까밝히고나서 중국인민지원군과 조선인민군의 전쟁포로관리소의 실제정형을 소개하였다.
아군 사단 정면에 대치하고 있는 괴뢰군 제3사단에는 북조선 함경도 지역에서 남조선으로 타향살이를 하러 갔다가 강제징병된 강제병도 일부 있었다. 그런데 이른바 “백골부대”라는 뜻으로 관병들의 철갑모자의 오른쪽과 왼쪽 팔소매에 해골표식이 박혀 있었다. 이 사단의 18련대는 당시 리승만군대의 3개 “정예련대” 가운데의 한 련대인 “백호련대”였다. “천하무적”이라고 자처하는 이 사단은 조선전쟁 최초에 남진하는 조선인민군에 의해 5,900여명이나 소멸되였는데 2개 련대가 몽땅 녹아났던 것이다. 그후 1951년 현리전투에서 우리 중국인민지원군의 포위전에 걸려 반수 이상의 사상자를 냈다. 그해 11월에 “김일성고지”전투에서 또 조선인민군에게 얻어맞아 4,200여명이나 섬멸당하고 사단 참모장 이하 수많은 장관과 병사들이 포로당하였다. 우에서 말한 몇차례 전투에서 포로된 이 사단의 적잖은 장관들과 병사들은 아군의 포로관대정책에 의해 석방되여 남조선으로 돌아갔다. 그러므로 이 사단의 인원들이 끊임없이 바뀌였지만 적잖은 장관과 병사들은 아군의 포로정책에 대해 료해하고 있었다.
리해식은 어느날 아군에 의거해 넘어온 괴뢰군 23련대의 리연모라는 병사와 담화를 나누었다.
아군 방송, 특히는 포로정책에 대한 아군의 선전에 그쪽에서 어떤 반향이 있는가는 물음에 그는 이렇게 대답하였다.
“우린 장관님들의 방송을 듣고 처음엔 믿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한 로병사가 후방에서 중공군에게 포로당했다가 놓여나온 사람을 직접 만나봤다고 하면서 북쪽에선 방송에서 말한 거처럼 포로를 죽이지도 않고 잘 먹인다고 하잖겠습니까. 그러자 우리는 포로병도 저렇게 잘 대해준다니 주동적으로 의거해 넘어간다면 더 좋은 대우를 받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죠. 직접 의거하지 못하는 날엔 아예 포로나 되는게 맞다고 생각했지요. 어느때 어떻게 죽겠는지 모를 세월에 목숨이나 건지는게 상수지요.”
리연모는 아군 방송을 듣고 의거할 용단을 내린 6명 적병 가운데 한 사람이였다. 그는 아군이 방송한 포로정책과 의거방법을 거의 한줄도 틀리지 않게 조목마다 줄줄 외웠다.
아군 방송소에서는 또 북에 고향을 두고 남조선에 나간 적병들이 많은 정황에 근거해 그들이 즐겨 듣고 또 그들의 고향생각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노래들을 방송하였다. 례컨대 그때 적후에서 애창된 “대동강의 달밤”, “북녘의 나그네”, “락화류수” 같은 류행가와  “양산도”, “아리랑” 등 타령들을 자주 방송하였다.
이런 노래들은 적군의 병사들과 하층군관들의 환영을 받았으며 그들의 호감을 샀다. 때로는 이런 노래가 방송되면 맞은켠 산의 적병들도 따라 노래불렀다. 심지어 노래가 끝나자 제18련대 적병들이 노래를 잘한다고 소리치고 박수치면서 “재청!”, “재청!” 하고 웨쳤다. 녀방송원(아나운서)이 다시한번 노래하자 적진에서는 또다시 요란한 박수갈채가 터져나왔다.
어느날 깊은 밤이였다. 맞은켠 산의 적병들이 아군과 주동적으로 말을 걸고 아군의 녀방송원(어나운서)더러 “울며 헤여진 부산항”이라는 노래를 불러달라고 요청하였다.
녀방송원 리정숙은 쓸쓸하고 애절한 목소리로 노래를 불렀다.
 
울며 헤여진 부산항 돌아볼제
련락선 란간머리 흘러드는 달빛
리별만은 어렵더라 리별만은 슬프더라
더구나 정들인 사람들끼리…
 
1절이 끝나자 맞은켠 산의 적병들이 울음섞인 목소리로 2절을 받았다.
 
달빛아래 허허바다 파도만 치고
부산항 간 곳 없는 수평천리길
리별만은 무정터라 리별만은 야속터라
더구나 정들인 사람들끼리…
 
고성기를 통하여 울려나가는 방송원(아나운서)의 노래소리와 적병들의 웅글진 남저음의 육성이 합창되여 울려퍼지는 이 노래소리, 그 노래소리는 일제의 식민지통치하에 울면서 지게 지고 쪽박 차고 고향을 떠나 북쪽으로는 압록강과 두만강을 건느고 동쪽과 남쪽으로는 바다와 현해탄을 건너 일본 땅으로 향하던 우리 민족의 수난의 력사에 대한 애잡짤한 회억을 불러일으켰고 한피줄을 타고 난 겨레들이 총부리를 맞대고 싸울 것이 아니라 독립자유의 새 나라를 건설하여야 하며 쓰라린 지난날의 그 피눈물의 력사가 되풀이되지 않게 해야 한다는 생각을 불러일으켰다.
후에 의거해온 한 병사의 말에 의하면, 괴뢰군 23련대 9중대의 19살난 병사 신정빈은 아군이 방송한 “사향가”를 듣고 친인들이 생각나서 통곡치면서 “집에 가겠다! 이 쓸쓸한 고산에서 미국 놈들의 대포밥이 되지 않겠다.”라고 하였다고 한다.
이밖에 아군은 방송을 통해 적군관들의 폭행과 탐오사건의 내막을 폭로하였다. 이런 자료들은 모두 적의 포로병과 의거자들에게서 조사해 얻은 것이였다. 아군이 이름까지 찍어 탐오사실을 까밝히자 한 하층군관은 적군관들이 이전처럼 병사들과 우쭐거리지 못하였고 병사들을 모아놓고 화식비를 떼먹은 걸 잘 못했다고 승인하였고 그후엔 다신 떼먹지 못하였다.
아군은 그 하층군관이 병사들의 수당금을 떼먹은 사실을 모르고 방송하지 못하였다.  그 하층군관은 수당금을 떼먹은 사실은 병사들도 모르기에 숨기고 승인하지 않았다.
여하튼 적 군관들은 아군 방송을 대단히 두려워했다. 그러나 적병들에게는 아군의 방송은 “벗”으로 되였다. 의거해온 적병들의 말에 의하면, 그들은 고지에서 하루 저녁이라도 방송을 듣지 못하면 무엇을 잃어버리기나 한 것처럼 허전하였다. 아군 방송에서 적병들의 고통스런 생활을 말할 때면 “우리 졸병들이 이렇게 추운 눈 속에 묻혀 고생하는 거 저 방송이나 알아주지 누가 알아줘?” 하고 장탄식하였다. “고향”이나 “부모처자”라는 말만 나오면 전호를 파던 공병삽을 팽개치고 제자리에 털썩, 털썩 들어앉아 눈물을 머금고 방송에 귀기울였다고 하였다.
리해식 등 아군 대적공작과의 전우들도 직접 그런 광경을 목격할 수 있었다. 아군의 방송이 시작되기만 하면 적진에서 들려오던 , 밤도와 방어시설을 만드느라고 공병삽이 자갈돌에 부딪치는 소리, 나무를 켜는 톱질소리, 도끼로 나무를 찍는 소리가 가뭇없이 그치고 반디불 같은 불빛이 반짝반짝이였다. 적병들이 담배를 꼬나물고 깊은 상념에 잠긴 채 아군 방송을 듣고 있는 것이 분명하였다.
아군에 의거해온 괴뢰군 22련대 1대대 1중대 하사 오기술은 이렇게 말하였다.
“군관들은 사람을 관리할 수 있지만 우리 귀는 관리할 수 없었지요. 군관들은 당신들의 방송을 듣지 말라고 했지요. 뭐 중공군의 방송은 독이 있어 누가 들으면 누가 얼리운다나요. 그러나 우리 병사들은 그들의 기만과 공갈을 듣지 않고 일하는 척하면서 귀로는 당신들의 방송을 들었지요.’
그의 말에 의하면, 적병들은 아군이 보낸 선물에서 먹는 것외에 중조 두 나라 군대에서 찍어보낸 “안전통행증”을 제일 좋아하였다고 한다. 이런 “안전통행증”은 어떤 것은 대포로 쏘아보낸 것이고 어떤 것은 “선물주머니”에 넣어 전연진지의 철조망에 걸어놓았는데 적병들이 벗겨간 것이였다.
적병들은 “안전통행증”을 줏기만 하면 군관들의 눈을 피해 가만히 치워두었다. 어떤 병사들은 일부러 “안정통행증”을 쭉 찢어 두 쪼각을 내서 군관이 보는데서 몸에 건사하였다.
군관이 물으면 “담배종이로 쓰려고 그래요.”라고 변명하였다.
그러나 “안전통행증”은 담배종이로 쓴 것이 아니라 적병들의 “호신부”, “구명부”로 되였다.
의거해온 오기술도 가만히 “안전통행증”을 한장 주어두었다가 의거해올 때 썼던 것이다.
적 장관들은 아군 방송에서 울리는 진리의 목소리를 두려워했다. 그들은 병사들이 중공군의 선전에 넘어갈가봐 맹렬한 화력으로 아군 방송을 대처해나섰다. 그 놈들은 먼저 기관총으로 우박이 쏟아지듯 몰사격을 가하고는 뒤이어 여러가지 포를 마구 쏘아댔다.
그러나 아군 방송은 그 자들의 포사격이 심하면 심할수록 끊은 적이 한번도 없다. 오히려 고성기의 최대공률을 풀어 우렁찬 목소리로 놈들과 맞섰다.
 
“괴로군 장관들, 이런 헛수작을 걷어치우라. 너희들이 포탄 한발을 더 갈길수록 너희들 집에서 그만큼 세금을 더 물고 월가의 전쟁무기장사군들의 배를 불린다는 걸 왜 아직도 모르는가?”
 
“겨레의 량심 있는 조선 사람들이라면 미제 침략자들을 위해 아까운 목숨을 바치지 말라.’
 
때를 같이하여 아군 진지의 화력도 “발언”하기 시작하여 놈들의 화력점을 벙어리로 만들군 하였다.
아군 방송소는 웃층이 두터운 갱도 안에 설치돼 있기에 어진간한 비행기 폭격에도 무너질 위험이 없었다. 포사격 따위는 대수롭지도 않았다. 적들은 갱도 안의 방송소를 어쩌는 수 없게 되자 갱도 밖 높은 바위 틈사리나 키 높은 소나무 우둠지에 걸어놓은 고성기나팔을 묘준하여 포사격하였다. 그리하여 고성기나팔이 “부상”당하지 않으면 “희생”되군 하면 방송을 더 할 수 없게 되였다.
어느날 낮방송을 하는데 적들의 포탄이 아군 방송소가 설치돼 있는 갱도 어귀에서 연해연방 터졌다. 그 바람에 갱도 안의 고성기 공작등이 마구 흔들거렸다. 이때 전연진지 패에서 방송소리가 끊어졌다고 전화보고가 들어왔다.
보고를 받자 리해식은 즉시 포탄이 마구 작렬하는 갱도 바깥으로 뛰쳐나갔다. 방송선을 따라 가며 살펴보아도 끊어지지 않았다. 고성기나팔이 장치돼 있는 바위돌 앞에까지 뛰여갔을 때 고성기 나팔이 포탄파편에 맞아 볼품없이 오그라든 것을 발견하였다. 고성기나팔 중간의 발성기마저 꾸불어들지 않았겠는가.
해식은 인차 비발치는 포탄을 무릅쓰고 새 나팔을 가져다 바위틈사리에 잘 장치해놓고 소나무가지를 꺾어다가 잘 위장해놓았다. 그러자 아군의 방송은 또 적진 상공에서 울려퍼졌다.
아군의 새 해 대적정치공세는 적군 심리작전부의 간담을 서늘케 하였다. 그 놈들은 대만특무기관에서 한패의 국민당 특무들을 매수하여 아군처럼 방송소를 세워놓고 한어방송을 하기 시작하였다. 아군 전연진지의 전사들은 그 방송을 듣고 분개해 펄펄 뛰였다.
“개놈들, 백주에 무슨 놈의 새빨간 거짓말만 지껄여대는 거야.”
“어르신님들이 너희들 발언권을 박탈하는 걸 봐라!”
장병들은 중기관총과 여러가지 포로써 그들의 방송에 대답해나섰다. 방송은 포격에 “벙어리”로 돼버렸다. 며칠 후에도 그 방송은 울리지 않고 영영 “벙어리”로 돼버렸다.
후에 의거해온 적병들에게서 그 내막을 알게 되였다. 원래 방송소에 왔던 심리작전과의 몇몇 대만특무들은 고지의 괴뢰군 군관한테 줄욕을 먹었다.
“네놈들이 중공군의 포격을 불러왔어!”
결국 아군의 포화에 더 얻어맞기 싫어하는 군관들에게 방송하러 온 특무들은 쫓기워났던 것이다.
불비가 쏟아지는 조선 전쟁터에서 아군 대적정치공작과에서는 적들에게 선물을 보내주면서 새로운 “사탕폭탄” 대적정치공세를 진행하였다.
섣달 그믐날 밤이였다. 대적정치공작과의 포치에 따라 정찰경험이 풍부한 퇀 정찰대 부패장 손라자는 몇몇 전사들을 령솔하여 흰 위장복을 입고 12개 선물주머니를 메고 적의 네갈래 봉쇄선을 감쪽같이 넘어 적진에서 20여메터 떨어진 철조망에 걸어놓고 안전히 돌아왔다.
설날 아침에 아군은 방송을 통해 13개 곳에 280여개 선물을 보낸 것을 적병들에게 통지한 후 연막탄을 쏘아 군관들 몰래 선물주머니를 가져가게 하였다.
어느날, 리해식은 아주 가까운 적진에 대고 “여보시오, 우리 보낸 선물 받았습니까?” 하고 소리쳤다.
그러자 한 적병이 “벌써 가져다 먹은지 오랜데요. 지원군 동무들 고맙습니다요.” 하고 대답하고는 손으로 입을 가리키며 먹는 시늉까지 하였다.
한 무명고지에서 포로된 한 적병은 선물주머니 5개를 가져다가 군관 몰래 동료들이 똑같이 나눠먹었다고 하였다. 그리고 과장랑 먹으면서 지원군이 우리를 후하게 대하는 걸 보면 포로돼도 절대 죽이지 않는다는 말이 정말인 거 같다고 뒤공론하였다. 그 포로병은 포로됐을 때 아군이 보낸 손거울과 세수비누을 휴대하고 있었다.
한번은 적병이 과자를 먹을 때였다.
적군관이 보고 “그 과자엔 독이 있어.”라고 하였다.
그러자 적병은 과자를 더 크게 떼먹으면서 “독이 있다고? 그럼 독살돼 보죠.”라고 하면서 뻐기였다.
적군관은 억이 막혀 성이 상투 밑까지 치밀어 얼음판에 넘어간 황소처럼 눈알을 희번쩍거렸다. 그러나 뭐라고 할 말이 없어 다른 적병의 손에서 술병을 빼앗아 꿀떡꿀떡 마셨다. 드디여 그 군관은 “중국인민지원군 드림”이란 글씨가 박힌 권연을 꺼내 붙여물고 연기를 길게 빨았다가 후- 내뿜었다.
“이건 진짜 천금 주고도 사기 힘든 중국 담배야!”
군관이 떠나간 후 술병을 빼앗긴 적병은 두덜거렸다.
“제길, 재수 없어! 이담부턴 선물주머니 얻거들랑 그 자리에서 다 먹어치워야지. 쳇!”
다른 한 적병이 쐐기를 쳤다.
“장관들 말대로 중공군이 운수선이 끊어져 급양이 딸린다면 우리한테까지 이 많은 선물 보낼 수 있겠노? 꼭 물자가 풍족할 거 아뇨? 장관들 말 믿지 못하겠어.”
아군의 대적정치공세에 의해 적지 않은 적병들이 이렇게 의논하고 의거해오기까지 했다.
걀죽하게 생긴 20살 밖에 안된 방송원(아나운서) 리정숙 처녀는 기침을 콜록콜록 깇으면서도 련 며칠동안이나 방송을 견지하였다.
수척해진 그의 얼굴을 보고 리해식은 “좀 쉬오.”라고 권고하였다.
리정숙은 수척해진 얼굴에 가벼운 웃음을 생글 지으면서 “괜찮아요. 아무 일도 없어요.”라고 하였따.
“그러다간 큰 병이나 나겠소.”
“고마와요. 전 방송을 계속 할 수 있는데요.”
아무리 권고해도 그녀는 들을 념을 하지 않았다.
안옥순은 얼굴이 동그스름하게 생긴 18세 밖에 안되는 처녀애였다. 그는 당지 학교에서 우리 지원군 부대에 와서 지원군 군복을 입은 고중졸업생이였다.
어떤 때 안옥순은 련 몇시간씩 목청을 돋궈 방송하느라고 입술이 마르고 목이 다 쉬였다.
해식은 “목이 다 쉬였구만. 좀 쉬오.”라고 권고하였다.
안옥순은 방실 웃으면서 마이크 앞에서 일어섰다.
“예, 참 미안해요. 방송이 똑똑하지 못했겠네요.”
그녀는 꽃처럼 부드럽게 말하더니 포탄상자 우의 고뿌를 들고 갱도 저쪽으로 사뿐사뿐 걸어가 갱도 돌틈에서 떨어지는 물을 고뿌에 받아 마시는 것이였다.
뒤이어 이쪽에 돌아오더니 “이젠 괜찮을 거예요.” 하고 다시 마이크 앞에 다시 앉아 계속 방송하였다.
목소리는 좀 나아졌지만 목이 오죽 아팠으면 침을 겨우 넘기겠는가.
얼굴이나 말씨는 꽃처럼 부드러웠지만 속은 강하길 그지없는 두 처녀 전우에게 못내 감탄이 갔다.
심룡섭은 방송선이 끊어지기만 하면 씽씽 날아와 작렬하는 포탄을 무릅쓰고 절룩거리는 다리를 끌고 갱도 밖 산정에 올라가서 방송선을 이어놓았다. 어떤 때에는 적들의 폭격에 확성기 나팔이 굴러떨어져 마사질가봐 비발치는 탄우를 무릅쓰고 방송이 끝날 때까지 두팔로 확성기나팔을 붙안고 있군 하였다.
양력설을 전후하여 19일 동안 사단 대적정치공작과의 19명 조선족전사들은 조선인민군에서 파견돼온 6명의 녀방송원(아나운서)들과 함께 리승만 괴뢰군에 도합 133시간에 달하는 109차 방송선전을 진행하였고 적전연진지에까지 접근해 268차 대적함화를 진행하였다.
지금 돌이켜보면 그 나날들은 실로 가슴이 벅차고 아짜아짜한 추억을 불러일이킨다.
 
                          정신화력망   


        박달나무가 얼어터지고 승냥이들이 눈물을 똑똑 떨굴 한겨울 엄동설한이다. 눈보라가 윙윙 휘몰아치는 고산준령의 적진 앞에는 여러가지 색갈로 그린 만화와 표어패쪽이 박혀 있었다.
      금방 갱도에서 나온 적병들은 그것들을 보고 주춤 멈춰섰다. 그들은 갱도 어귀에서 제일 가까운 만화를 찬찬히 뜯어보는 것이였다.
통졸임을 왼손에 들고 오른손으로 술병을 꺼꾸로 쳐들고 꿀꺽꿀꺽 마셔대는 군관, 그 아래에서 쭈그리고 앉아 주먹밥을 먹고 있는 적병들…
“허허, 심통하게도 그렸군 그래. 저 치들이 주먹밥 먹는 우릴 본 거 아뇨?”
“그러게 말이야.”
그들이 빠드득빠드득 눈밟는 소리를 내면서 눈깔린 교통호를 걷는데 교통호와 철조망, 어데라없이 숱한 만화와 표어판이 눈에 죽 박혀 있는 것이 보였다.
거기에는 조선어로 이런 구호들이 씌여 있었다.
“돈 있는 집 새끼들은 군대노릇을 하지 않고 가난한 집 자식들만 군대 되여 죽고 말게 됐다!”
“여기에는 안전한 곳이 없다!”
“당신은 살고 싶은가? 돌격할 때에는 뒤에 서고 달아날 때에는 앞장서라!”
“투항해야 안전하다.”
“우리는 포로를 너그럽게 대한다!”
적병들은 그것들을 하나라도 놓칠세라 다 읽어보았다. 추위 때문인지 적병들은 옷깃을 여미고 몸을 옹송그리고 앞으로 터벅터벅 걸어나갔다. 어떤 자들은 지뢰나 본듯이 그 패말을 보고 뒤걸음치더니 동굴 속으로 되들어갔다.
사단 대적공작과에서 해제낀 사업이 위력을 떨치기 시작하였던 것이다.
조선족번역원들은 지원군 전사들에게 대적함화와 일상용어에 관계되는 간단한 조선말을 몇마디씩 배워주었다. 실로 봄날에 구으는 눈덩이가 커지듯이 날에 날마다 더 많은 장병들이 간단한 조선말과 대적공작지식을 알게 되였다. 하여 아군은 “정신화력망”의 위력을 남김없이 발휘하여 작은 대가를 내고 전투의 승리를 취득할 수 있었다.
해가 추위에 오스스 떨며 지는 무렵, 한개 반 가량 되는 적병들이 한줄로 서서 전연진지 서쪽 골짜기를 오락가락하였다. 그 놈들은 그 골짜기 허리에 동굴까지 파놓고 오고 갈 때 들려 몸을 녹이고는 새벽에야 돌아가군 하는 것이였다. 이렇게 련 며칠 규칙적으로 왔다갔다 하군 하였다.
리해식 소속 모 퇀에서는 한 정찰참모를 시켜 퇀 정찰패의 제3반 정찰병들을 이끌고 그 곳에 가서 “혀”룰 잡아오게 하였다.
정찰병들은 흰 위장복을 입고 어둠을 타서 아군 전연진지 전우들의 엄호 밑에 무릎까지 푹푹 빠지는 눈덮인 산 아래를 따라 적진을 향해 더듬어나갔다.
그들이 적전연진지와 가까운 절벽 밑에 이르렀을 때 계획대로 아군의 포가 불을 토하였다. 포탄이 적진에서 작렬하는 틈을 타서 정찰병들은 바위를 타고 절벽에 올라 철조망을 번개같이 날아넘었다. 포화가 멎자마자 그들은 혀를 잡을 동굴 가까이까지 접근해갔다.
그들이 보초놈과 서너메터 떨어진 곳에 이르렀을 때였다. 보초 서던 세놈이 그들을 발견하고 황급히 총을 쏘았다. 이어 수류탄 하나가 나라와 폭발하였다. 다행히 정찰병들이 눈 우에 납짝 엎드렸기에 상하지 않았다.
“사격!”
정찰참모의 명령에 따라 정찰병들은 일제히 사격하였다. 그 세 놈은 허리 잘리운 나무통처럼 나가 뻐들어졌다.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보초를 서던 한 놈이 동굴 쪽으로 달아나면서 고함쳤다.
“중공군이 왔다!”
정찰병들은 그 놈을 쫓아가 동굴 어귀를 봉쇄하였다.
독 안에 든 쥐가 된 적들은 동굴 안에서 법석 고아댔다.
적 분대장은 전화기를 돌려대더니 송수화기에 대고 상전에게 보고하느라고 게사니처럼 꿰꿱거렸다.
“전화선을 끊어버렷!”
정찰참모의 명령.
두 정찰병이 동굴 밖으로 나온 전화선을 비수로 몇토막 냈다.
몇몇 장찰병들이 원 계획대로 동굴 안의 적들에게 조선말로 고함쳤다.
“총을 놓으면 살려준다!”
“우리 지원군은 포로를 너그럽게 대한다!”
“무기를 놓고 손드록 나오라! 살려준다!”
함화소리는 무형의 정신화력이 돼 적들의 간담을 서늘케 하였다. 적들이 두 손으로 총을 받쳐들고 눈덮인 동굴 어귀에 나타났다. 맨 마지막에는 적 분대장이 전화통을 두 손으로 머리 위에 쳐든 채 나왔다.
정찰병들이 덮쳐나가 무기를 해제하고 포로를 세여보니 모두 여섯이였다.
정찰병들은 아군 진지에 돌아가는 신호탄을 쏘았다.
그들은 로획한 여섯자루의 자동보총과 전화기 한대를 나눠 메고 포로를 압송하여 귀로에 올랐다.
쿵, 쿵쿵!
정찰병들의 앞길을 차단하려고 적들이 대포를 쏘았다.
그러나 그때는 우리 슬기롭고 영용무쌍한 정찰병들이 아군 진지의 전호 속으로 돌아온 뒤였다.
어느날 밤, 이 퇀 5련 2패에서는 불시에 적들의 한개 소대 진지를 습격하였다.
2패 패장은 4반과 5반을 데리고 산을 뛰쳐나온 맹호마냥 적진의 왼쪽 뒤로 전호에 뛰여들어 적의 지휘소 쪽으로 쳐들어갔다. 4반 1조 전사들은 정면으로 적진의 제일 높은 곳을 점령하여 적들의 소대와 분대 진지를 이은 전호 교차점을 차단해버렸다.
4반의 2조와 3조에서는 번개같이 적진 옆 유리한 지형을 점령하여 적들의 퇴로를 막아버리고 증원하러 오게 되는 적들을 막을 태세를 갖췄다.
뒤이어 5반 반장이 2조와 3조 전사들을 령솔해 오른쪽에서 적 지휘소 또치까에 다가들었다.
그때 적 소대장이 한창 전화를 거는 것이 등불빛에 보였다.
“한 동무 엄호하고 또치까 량쪽을 포위하라!”
4반의 한개 소조도 정면으로 몰사격을 가하면서 조선말로 고함쳤다.
“너희들은 몽땅 포위됐다! 투항하라!”
“총을 놓으면 살려준다!”
“우린 포로를 너그럽게 대한다!”
그 조선말함화소리는 포위당한 적들의 가슴을 비수마냥 파고들었다.
적들은 아우성쳤다.
“총 쏘지 마쇼-”
“제발 살려주쇼-”
뒤이어 무기를 놓은 적들이 하나, 둘 두 손을 쳐들고 나왔다.
세여보니 적 소대장까지 도합 15명이나 되였다.
다른 또치까의 22명 적들은 아주 교활하게 놀았다.
“손들엇!”
지원군 전사들이 고함쳤다.
그러자 적들은 “투항하겠습니다. 제발 살려주십시오.”라고 하였다.
그런데 두 손을 들고 나오는 적들은 보이지 않았다.
“손들고 나왓!”
“예, 예.”
몇놈이 또치까에서 나오는 것이 어슴푸레 보였다.
“손들엇!”
“넷!”
“손벽을 쳐라.”
혹시 손에 총을 쥐였을가봐서였다.
“네,네.”
쨕, 쨕, 쨕!
손벽 치는 소리가 들렸다.
그런데 한 놈이 손에 권총을 쥐고 다른 손으로 자기 뺨을 치는 것을 발견하였다.
“총을 놧!”
그러자 그 놈은 권총을 휘둘러 아군 전사를 쏘았다.
땅!
지원군 전사는 몸을 옆으로 숙이면서 그 놈에게 명중탄을 안겼다.
땅!
그 놈은 거짓 투항하고 발악하다가 격살당하였다.
거짓 투항한 나머지 22명 놈들은 또치까 안에서 최후발악을 하다가 모두 영용한 지원군 전사들에게 격살되였다.
전사들은 뒈진 적들의 주검 우에 우리 대적공작과에서 조선어로 쓴 삐라를 뿌려놓고 떠났다. 그 삐라에는 이런 조선글들이 박혀 있었다.
“산꼭대기는 네놈들의 무덤이다!”
“투항하지 않으면 이런 끝장을 보게 될 것이다!”
“봐라! 이것이 바로 미제와 리승만 괴뢰군 위해 목숨 판 끝장이다!”
그번 습격전에서는 선후하여 5분 동안에 적 한개 소대 병력을 없애치웠다. 이것은 실로 군사타격과 “정신화력망”의 위력을 남김없이 발휘하여 적들의 사기를 꺾어놓은 승리였다.
한번은 이런 일도 다 있었다. 적 군관 한 놈과 병사 몇놈이 또치까에 갇히워 총을 쏴대면서 발악하였다.
“투항하면 살려준다!”
“무기를 놓고 나왓!”
아군 전사들의 조선말고함소리가 적 또치까를 뒤흔들었다.
그러나 또치까 안의 적들은 계속 불질하였다. 이때 위리 한 대적공작골간이 또치까 총구멍으로 권연 두통을 뿌려넣었다. 쌔까만 밤이여서 똑똑히 볼 수 없어 적들은 아마 신식수류탄이 날아들어왔는가고 했던지 몽땅 피해 한쪽 켠에 엎드렸다. 그런데 한참 있어도 폭발하지 않았다.
한 적병이 손으로 더듬어보았다.
“권연이야!”
“뭐라고?”
“중국권연 두통이야!”
적들은 또치까 안에서 우야 소리치며 모여들어 너도 나도 담배를 나눠 피웠다.
“투항하면 살려준다!”
“투항하지 않으면 쏴죽일테다!”
적병들과 군관은 담배를 붙여물고 풀썩풀썩 피우면서 또치까 안에서 두 손을 들고 나왔다.
어떤 때에는 적병이 시체 속에 죽은 것처럼 누워 있다가 도망치려고 하였다. 그럴 때면 우리 전사들은 호주머니에서 사탕을 꺼내 죽은 상을 하고 누워 있는 적병의 입 안에 밀어넣었다. 달디단 사탕을 입에 물자 그 적병은 령단묘약이나 먹은듯이 부시시 털고 일어나 쑥쓰러워하면서 두 손을 머리 우로 쳐들었다.
한 적병은 두 다리에 관통상을 입어 포로됐기에 데리고 올 방법이 없었다. 그러자 전사들은 그 포로에게 사탕과 담배를 호주머니에 넣어주었다.
“안됐습니다. 할 수 없구려. 바쁜대로 제 진지에까지 기여갈만 하면 기여가시오.”
뒤이어 전사들은 붕대를 꺼내 피 흐르는 두 다리의 상처를 동여매주고 솜바지가랭이를 잘 내려주었다. 그러고도 그 포로가 얼가봐 적병의 군용탄자를 주어다 펴고 그 우에 눕히고 머리에는 비 옷을 가리워 눈보라를 막아주었다.
그 장면을 목격하고 부상당한 다른 포로병들은 길 수만 있으면 다 우리 전사들을 따라 기여 아군 진지에로 넘어왔다.
아군 전사들을 따라 길 수 없는 포로병, 다리를 상한 그 포로와 다른 포로들은 두 볼을 적시는 눈물을 팔소매로 쓱 문지르고 물기어린 감격된 눈길로 어둠 속에서 사라져가는 지원군 전사들의 뒤그림자를 바래면서 감탄하였다.
“정말 인정미 찰찰 넘치는 군대야, 국방군 같으면 누가 관계하겠노? 정 메고 가기 싫으면 깜장콩알 한알 먹이면 다지.”
“글케 하면서도 고생시키지 안을락꼬 그러는기여 하고 떠벌이지 않았노? 쳇!”
어느날 밤, 전연진지의 한 소분대에서는 패장 상국의와 반장 전홍인이 지휘밑에 괴뢰군 제3사 23련대 9중대의 한개 분대가 지키는 진지를 돌연습격하라는 명령을 받았다.
맵짠 밤바람이 가슴 속에까지 엄습하는 엄동설한에 전사들은 무릅까지 푹푹 빠지는 눈을 밟으면서 네시간이나 힘겹게 행군해서야 적진의 옆을 에돌아 밤중에 적진 뒤쪽 벼랑 밑에 이르렀다.
흰 위장복을 입은 돌격조와 수색조의 전사들이 패장 상국의의 명령에 따라 목마를 타는 방법으로 금방 절벽 우에 하나하나 올라갔을 때였다.
“누구얏?”
“구령!”
적 보초놈에게 발각되였다.
반장 전홍인이 어느새 수류탄을 날렸다.
꽝!
수류탄 폭발소리와 함께 그 보초놈은 쓰러졌다.
아군 전사들을 발견한 오른쪽 또치까 안의 적들이 이쪽에 대고 불질하였다.
어둠 속에서 사격하는 불빛이 번쩍번쩍 이쪽으로 비껴왔다.
“앗!’
전사 뢰귀청이 비칠거리더니 오른쪽가슴을 손으로 눌렀다. 옆에 선 전사가 그를 부축하였다.
뢰귀청은 자기를 부축하는 전사의 팔을 쳐버리면서 고함쳤다.
“나는 일없소. 적들을 빨리 족치오.”
뢰귀청은 상처에서 오는 모진 진통을 이를 악물고 참으면서 기관단총으로 놈들에게 뚜루룩뚜루룩 맹렬히 사격하였다.
적들의 화력이 대뜸 그에게로 돌려졌다. 뢰귀청은 적들의 화력을 끌어오고 장렬히 희생되였다.
그 틈을 타서 반장 전홍인과 다른 전사는 번개같이 덮쳐가 적 또치까 꼭대기에 올라갔다. 적들이 총구멍으로 요란스레 총질하였다. 전홍인 반장과 다른 전사는 수류탄을 세개나 또치까 구멍으로 뿌려넣었다.
꽝! 꽝꽝!
수류탄폭발소리와 함께 총질하던 몇놈이 뻐드러지고 또치까는 잠잠해졌다.
전홍인 반장과 그 전사는 또치까 출입구 어귀에 다가들어 안에 대고 서투른 조선말로 땅방울같이 을러멨다.
“투항하면 살려준다!’
“우린 포로를 너그럽게 대한다!”
“빨리 나왓!”
그 소리를 듣고 어둑시그레한 또치까 안에서 한 적병이 엉금엉금 기여나와 두 손을 천천히 들었다.
전홍인 반장은 미리 갖고 온 사탕을 호주머니에서 한줌 꺼내 그 적병의 쳐든 손을 내리워 쥐여주었다. 그러면서 조선말로 이렇게 한마디 한마디 어루쓸어댔다.
“우리 지원군은 포로를 너그럽게 대하오. 당신의 생명안전을 담보하오.”
이때 패장 상국의가 거느린 몇몇 전사들도 벼랑 우에 올라와 그 또치까를 에둘러쌌다.
독 안에 든 쥐로 된 적들은 우리 전사들이 하는 말을 들었고 너그러운 태도도 보았다. 이때 포로된 적병이 반장 전홍인이 준 사탕을 쥔 손을 흔들면서 또치까 안에 대고 소리쳤다. 그러나 우리 지원군 전사들은 무슨 말인지 다 알아들을 수 없었다. 다만 “지원군은 너그럽다…”는 한마디 말만 알아들었을뿐이다.
좀 지나자 또치까 안의 적병들이 하나 둘 두 손을 쳐들고 느릿느릿 걸어나왔다. 아군 전사들은 포로들에게 다가가 사탕과 압축과자를 한줌씩 쥐여주었다.
땅! 땅땅!
정면으로 쳐들어가던 수색조는 다른 또치까 놈들의 저격을 받고 있었다. 한 전사가 어깨에 총탄을 맞고 비칠거렸다. 전사들은 또치까 문어귀에 나타난 적을 겨누고 맹렬히 사격하였다. 그 적병이 꺼꾸러졌다.
“투항하면 살려준다!”
“빨리 나왓!”
좀 지나 적병 3명이 총을 놓고 두 손을 쳐들고 나왔다.
적 한개 분대가 몽땅 살상되거나 포로되였다.
전투는 승리적으로 끝났다.
그런데 날이 밝기 전에 부상병을 데리고 8명 전사가 포로 8명을 압송해서 적 봉쇄구역을 벗어나 아군 진지로 돌아갈 길이 막연하였다.
설상가상으로 눈덮인 지형이 눈 설고 눈덮인 산발 여기저기에 지뢰가 매설돼 있어 한발자욱도 내딛기 힘들었다. 게다가 적들의 포화가 심해 길이 막힐 위험이 무시로 있었다.
아군 전사들이 서성거릴 때 포로들이 길잡이를 서겠다고 손시늉을 하면서 나섰다. 포로들은 자기들을 너그럽게 대해주는 지원군에 감화됐던 것이다.
포로들은 아군 전사들의 앞에 서서 눈덮인 산발을 이리 돌고 저리 돌아 지뢰구역을 안전하게 벗어나게 길잡이를 하였다. 그리하여 아군 전사들은 포로들이 헤쳐나가는 눈길을 따라 첩첩한 화력봉쇄선을 뚫고 나와 아군 진지에로 돌아왔다.
상급에서는 이 반에 영예롭게 집체2등공을 기입해주었다.
       그 후 아군 진지에는 아군의 “정신화력망”에 감화된 괴뢰군 8명 포로가 아군 한개 반 전사들의 길잡이를 해준 이야기가 널리 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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