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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장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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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하소설 울고 웃는 고향(118)
2018년 08월 18일 11시 03분  조회:1496  추천:1  작성자: 김장혁







                 6. 토지

      햇볕이 쨍쨍 내리쬐던 무더운 여름의 열기가 휩쓸고 지나간 대지에는 선들선들 가을바람이 불어오더니 대지에 누런 칠을 해놓고 서서히 뒤로 물러났다. 벌써 낙엽이 우수수 지고 앙상한 나무 가지들이 초겨울 바람에 몸부림치고 있었다.
개혁개방하고 토지도급제를 실시해 좋은 세월을 만나 농민들은 자기 밭에 마음껏 농사를 짓고 돼지랑 오리랑 닭이랑 개랑 마음대로 치면서 부유하게 잘 살아야 했다. 그러나 세월이 청산유수와 같아 상순은 이미 칠순고개를 넘은 허리가 구부정한 고희의 연령이 됐다.
덕돌은 머리 허연 아버지가 농사를 짓는 모습을 차마 볼 수 없었다. 부모의 칠갑생일을 쇠드린 후 시내 자기 집에 모셔가겠다고 했다.
허나 상순은 도리머리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아니야, 내 아직 손에 풀이 있을 때 농사를 지어 자손에게 입쌀이라도 가져다 줘야지.”
갓 시내에 들어간 아들과 며느리가 “올해 아버지 칠갑생일에는 꼭 환갑상을 차려 드리겠습니다.”라고 하자
상순은 눈을 지그시 감고 한참 생각하더니 천천히 한마디 했다.
“칠갑생일을 쇠지 않겠다.”
“무엇 때문입니까? 환갑 때에도 상을 받지 않겠다고 해서 차려드리지 못했는데 칠갑에는 꼭 상을 받아야 합니다.”
그러나 상순은 극구 반대했다.
“우리 집안에서는 옛날부터 환갑을 쇠지 않았다. 난 생활이 가난해 아버지 환갑도 쇠 드리지 못했다. 금방 광복이 나서 환갑상을 차려드리자고 했다. 허나 아버지는 할아버지도 환갑상을 받지 않았다면서 환갑상을 받는 돈이면 몇 달 먹을 쌀을 사겠다고 했다. 그래서 우리 집안에서는 대대로 환갑상을 받지 않았다.”
덕돌은 명숙을 한쪽에 데리고 가서 뭐라고 토론하더니 아버지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아 간청했다.
“옛날 증조할아버지와 할아버지 때는 생활이 가난해 환갑을 쇠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아들 며느리 로임을 타는데 환갑상을 차려드려도 살 근심이 없습니다."
그래도 상순은 도리머리를 흔들었다.
“어찌 아버지께 환갑상도 차려 드리지 못했는데 내가 환갑상을 받겠느냐? 절대 받지 않겠다.”
허나 덕돌도 물러서지 않았다.
“옛날은 옛날이고 이제부터 우리 집안에서 환갑을 쇠면 됩니다. 부모님께 환갑을 쇠 드리지 못하면 자식들이 한뉘 후회하게 됩니다. 아들며느리, 딸과 사위들이 차려드리는 환갑상을 뒤늦게라도 받으십시오.”
그리하여 상순은 부득불 환갑상을 받게 됐다.
상순은 며느리가 손수 지은 회색 옷을 입고 회색 모자를 쓰고 척 앉고 그 옆에 딸들이 지어준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명옥이 나란히 앉았다. 그 옆에 화룡에서 온 명옥의 오빠 근형의 노친과 마을 집안 집 하청 등이 나란히 앉았다. 병풍도 없어 맨 벽에 커다란 꽃보를 둘렀다. 아들딸과 며느리와 사위들이 정성을 다해 차린 환갑상을 마주해 앉은 상순과 명옥은 반가운 표정보다도 옛날 자기들을 낳아준 아버지와 어머니 생각에 코마루가 시큼해났다.
아들과 며느리가 절을 곱게 하고 술잔을 올렸다.
“나도! 나도!”
세 살 밖에 안 되는 손자 운선이 아장아장 걸어 나오면서 술잔을 고사리 손에 쥐고 나섰다. 덕돌이 운선의 술잔에 술을 부어주자 명숙이 운선의 손에 잡은 접시위에 술잔을 담아 주었다.
“어서 할아버지, 할머니께 드려라.”
“내 절로. 저 절로.”
운선은 술잔을 담은 접시를 들고 할아버지와 할머니 앞으로 아장아장 다가갔다.
상순과 명순은 너무 반가와 “에이고, 고맙다. 우리 손자.”라고 하며 술잔을 받아 마셨다.
운선은 옆에 앉은 외할아버지한테도 술잔을 올렸다.
“어쩜 네 살 밖에 안 되는 애가 술잔을 다 올려. 쯧쯧쯧.”
친척들은 혀를 끌끌 찼다.
종호는 반가와 외손자가 올리는 술잔을 들어 마시었다.
뒤이어 운선은 집에서 부모들이 배워 준대로 엎드려 절을 꼽싹 하였다.
운선이 엎드려 머리를 조아리며 절을 하는데 고추가 다 들여다보여 어른들이 뒤에서 “허허허” 웃었다.
친척들은 어린 손자 운선의 양반 같은 인사를 보고 혀를 끌끌 찼다.
뒤이어 은숙과 경만이, 홍자와 동준이, 은자, 성숙과 광선이 이런 순서로 딸과 사위가 큰절을 올렸다.
뒤이어 외손자와 외손녀들의 순서였다. 한마을의 외손녀들인 혜옥과 주옥, 옥희에 뒤이어 교하에서 온 외손녀 연희와 외손자 은봉, 한 마을의 외손자 철호, 경박호에서 온 외손자들인 영남과 영춘이 이런 순서로 죽 절을 올렸다. 맏딸 춘자네는 아쉽게도 남편이 앓아서 부조를 하고 오지 못했다. 상순의 큰누나 맏아들 근덕(봉순) 부부, 명옥의 남동생들인 근룡과 근삼 부부가 차례로 절을 했다. 뒤이어 조카 순애네 부부와 외조카들인 광석의 해진과 삼진 부부 등이 죽 내리 절을 올렸다.
점심에 시작한 환갑상(기실 칠갑상)은 저녁까지 물리지 않고 술을 마시고 부었다.
그날 오랜만에 상순은 또 유일한 주제가 호미가를 불렀다.


동산천리 돋으신 해는
점심때가 되어 온다
에라 에라 에라 호미야
호미 호미를 메고 가자

알뜰하게 가꾸어라
땀에서 나오는 곡식이다
에라 에라 에라 호미야
호미 호미를 메고 가자

덕돌은 아버지가 흥겹게 노래를 부르고 어머니가 덩실덩실 춤을 추는 감격적인 장면을 보고 일어나 어깨춤을 추며 녹음기를 가지고 일일이 녹음해 두었다.
명옥은 일년 사시절 열두달 노래를 단숨에 죽 내리 불렀다. 덕돌과 명숙, 그리고 성숙은 흥겨워 연신 부모의 노래에 맞춰 춤을 추었다.
가정오락은 밤이 깊어가는 줄도 모르고 계속 됐다…
부모에게 환갑상을 차려 드린 후에도 덕돌은 어쩐지 효성을 다하지 못한 감을 느꼈다.
(환갑상을 차려드려서야 어찌 자기를 낳아주고 길러준 부모, 자기에게 모든 것을 다 준 부모에게 효성을 다 했다고 할 수 있으랴. 칠순이 된 부모는 하나라도 맥이 있을 때 농사를 지어 아들며느리에게 입쌀 한 마대라도 가져다주려고 아직도 곡식밭에 얽매여 있지 않는가? 어머니는 눈 풍설이 이는 날에 고추와 물고기를 이고 다니면서 팔아 번 돈으로 재봉침과 첫날 비단이불 세채까지 해주고서도 지금도 자녀들에게 하나라도 보태주려고 애를 쓰고 있다. 허나 대학까지 졸업한 나는 부모에게 해드린 것이 무엇인가?)
덕돌은 생각할수록 마음이 아팠다.
(옛날에 부모들은 아침밥을 드시고 나면 저녁에 솥에 얹을 쌀을 근심하면서도 할아버지와 할머니를 모시고 여동생까지 시집보내지 않았는가? 그때에 비하면 우린 먹을 근심은 없지 않는가? 살기 어렵더라도 부모를 모셔가야 한다. 후회를 남기지 말고 부모에게 효성을 다 해보자.)
덕돌은 아내와 토론하고 손님들이 다 돌아가기를 기다려 부모에게 정식으로 시내로 모셔가겠다는 의향을 말씀드렸다.
그러자 상순은 한숨을 후 내쉬면서 밭고랑 같은 얼굴에 근심어린 표정을 지었다.
“얘야, 모셔가겠다고 하니 고맙긴 하다. 허나 아직 우린 농사를 지을 수 있다. 시내에 가서 아무 일도 하지 않고 어떻게 사니?"
덕돌은 한사코 고집했다.
“아버지, 한뉘 농사를 지으면서 자식들을 키우느라고 고생했는데 이젠 그만 두고 아들며느리 집에 가서 편안히 계십시오. 우리에게도 효성을 할 기회를 주십시오.”
그러나 명옥도 도리머리를 흔들었다.
“얘야, 시내에 가서 손발을 싸매고 있으면 속이 타서 어떻게 사니? 우린 땅을 떨어져서 살지 못한다. 밭에 나가 허비며 일하고 나면 하루가 어떻게 가는 줄도 모르고 좋다.”
속으로 그 말에 도리가 좀 있다고 생각했지만 덕돌은 아들의 체모를 세우고 불효자로 되지 않으려고 한사코 모셔가겠다고 했다.
“잘 고려해보십시오. 불시에 가자고 하면 잘 납득이 되지 않겠지만 한데 가시는 건 도리에 맞는 것 같습니다.”
상순과 명옥은 한참 궁리하더니 “우리도 잘 생각해보고 가겠다.”라고 하면서 며느리 명숙의 눈치를 살피는 것이었다.
눈치 빠른 명숙은 제꺽 “부모님, 오세요. 따뜻한 장국에 이밥이라도 드리면서라도 잘 모시겠습니다.”라고 했다.
허나 말이 쉽지 부모를 모시는 일이 그리 쉬운가?
덕돌은 집에 갔다가 일주일 후에 쉬는 일요일에 다시 부모를 찾아갔다.
허나 상순은 엄숙하고 냉정한 표정을 지었다.
“얘야, 너희들 둘의 월급을 가지고 우리 늙은이 둘에 애까지 다섯이 살만 하냐? 너넨 엉덩이를 들여놓을 집도 없이 세집에서 살림살이를 하면서 우리를 데려다 어떻게 한집에서 산다고 그러니?”
그 말에 덕돌은 머리를 숙였다.
사실 덕돌은 신물이 나게 세집살림을 했다. 명숙이가 다닌 위생학교 앞에 뉘 네 허덕칸에 구들을 놓은 9평방미터도 되나 마나한 세집에서 살았다. 그런데 수돗물도 없어 그 추운 겨울에도 뒤문을 열고 주인집에 들어가 명숙이 날마다 물을 길어 와야 했다. 뒷문이 누게 차고 얼어붙어 잘 닫을 수 없어 종이함을 뜯어다 세워 놓았지만 의연히 겉바람이 들어와 집안의 물독이 떵떵 얼어붙을 지경이었다. 그리하여 덕돌과 명숙은 석탄을 사다 불을 죽으라고 때였다. 그러니 구들은 따갑고 겉바람은 의연히 있어 말이 아니었다.
네살 밖에 안 되는 운선은 자기 살 도리를 하느라고 머리를 썼다.
“아버지, 그쪽 문 쪽이 추워서 감기에 걸리겠습니다. 나와 자리를 바꿀까?”
“저애가 구들이 따가워 저러는 모양이구나.”
덕돌은 인차 “그러자.” 하고 운선과 자리를 바꿔 누웠다.
그런데 운선은 한참 누워보니 겉바람이 있어 이마까지 시려나 인차 “아버지, 아버지, 그쪽이 따가워 어떻게 쉬겠습니까? 내 거기 누울까?”라고 했다.
“추운 모양이구나. 바꿔 눕자.”
어린애도 자기를 따라 세집에서 추운 고생을 하는 처자가 불쌍했다.
밤이 깊어도 덕돌은 바깥에서 불어치는 눈보라 소리를 들으면서 잠이 오지 않았다. 그는 옆에 누운 처자의 얼굴을 살살 만지면서 속으로 피눈물을 흘렸다.
“언제 집 고생을 하지 않을까?”
덕돌은 이를 악물고 꼭 자기 집을 장만하려고 마음먹었다.
후에 그들은 단위로부터 교외에 있는 집도 집이라고 나가 들었다. 단위에서 농업기지의 소와 말을 기르던 우사 자리에 손바닥만한 구들을 놓은 두간짜리 집이었다. 하지만 그래도 자기 집이라고 있게 돼 기뻤다.
허나 출퇴근이 문제였다. 여름에 소낙비가 내리거나 겨울에 눈이 오면 자전거를 타고 5킬로미터나 떨어진 교외에서 출퇴근하기란 조련치 않은 일이었다. 시내 큰길의 눈은 쳤지만 교외 큰 길의 눈은 치지 않았다. 그리하여 큰 눈만 오면 버스도 미끄러워 오르막길을 톺아 오르지 못해 통하지 않았다. 자전거도 방아 호박처럼 오목하게 파인 자동차 바퀴자국을 따라 타야 했다. 그러다가 맞은편이나 뒤에서 차가 달려오면 급히 자전거에서 내려 밀고 길옆으로 피해야 했다. 어떤 때에는 날이 갈수록 자동차바퀴자국이고 큰길 전체가 얼면서 빤질빤질한 얼음판이 돼서 명숙은 자전거를 타고 가다가 몇 번이고 차에 치일 번했다.
그리하여 그들은 병원 유치원에 다니던 운선을 떼서 눈물을 머금고 교외 농촌 유치원에 보내지 않으면 안됐다. 농촌 유치원에서 속산반을 꾸렸는데 운선은 머리가 총명해서 주산을 놓으면서 계산공부를 하더니 나중에는 주산을 치지 않고서도 손가락을 꼽았다 폈다 하면서도 세자리 수 20~30개씩 합해냈다.
“야, 우리 아들 정말 장하다!”
덕돌과 명숙은 운선을 껴안고 기뻐 어쩔 줄 몰라 했다.
자기를 따라 그렇게 고생하는 처자가 불쌍해 덕돌은 자기 무능력함에 속이 아팠다.
상순은 아들과 며느리가 그렇게 고생스레 살아나가는 것을 알고도 남음이 있었다.
그리하여 그는 시내에 한데 가는 것을 소홀히 결정할 수 없었던 것이다.
“시내에서는 남새고 뭐고 지어 쓰레기를 버려도 다 돈이 든다던데 잘 고려해보아라. 살기 어려우면 가정이 화목하지 못하고 우리도 며느리 눈치를 보면서 살자면 여기 있기보다 더 불편하다.”
그때 명옥은 속심의 말을 이렇게 했다.
“시내 어느 교외에라도 밭이 있는 마을에 가서 남새농사를 지으면서 살면 좋겠는데. 너희들 집과 가까이에 집을 잡으면 자주 귀여운 손자도 안아보면 좋겠는데.”
덕돌은 생각지도 않은 그 말에 한참 궁리하다가 “그런 자리는 아직 없습니다. 한뉘 농사를 지었는데 아직도 그렇게 밭에서 헤매고 싶습니까?”라고 물었다.
그러자 상순은 머리를 끄덕였다.
“그래, 한뉘 농사를 지으면서 살았기에 불시에 밭을 떠나서 살기 어렵다. 자기 손으로 심은 가지나 오이를 똑 뜯어 된장에 찍어 먹으면 좀 좋니?"
부모의 말씀에 도리가 있다고 생각했다.
“교외에 밭이 있는 집을 파는 게 없는가 알아봅지요.”
상순은 담배를 굵직하게 말아 피우면서 속심의 말을 털어놓았다.
“정작 떠나자니 밭이 아깝구나.”
“밭이 얼마라고 그럽니까?”
“논 3짐 9푼에 한전 2짐 1푼, 모두 6짐이다.”
“고까지 거 가지고 그럽니까? 교외에 가서 그만한 밭을 얻어 놓겠습니다.”
허나 상순은 아주 아쉬워했다.
“저 소서구 밭은 다른 밭이다. 저 밭에는 너의 증조할아버지대부터 우리 집안 식구들이 대대로 피땀을 몰 부어 일군 밭이다. 저 밭의 어느 밭고랑엔들 우리 발자국이 찍혀 있지 않은 게 있겠느냐?”
그 말에 덕돌도 머리를 숙이었다. 아버지 그 깊은 마음, 토지에 대한 깊은 애정을 알지 못한 자기를 속으로 통탄했다.
이때 문이 벌컥 열리더니 뜻밖에도 해월이 들어섰다.
“아이고, 대학생이 왔구먼.”
해월은 해시시 웃으면서 “어째 그 예쁜 새 각시는 데리고 오지 않았소?” 하고 물었다.
덕돌은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그러자 해월은 횡설수설 허튼 소리를 쳤다.
“각시를 너무 똑똑한 거 얻어도 부모를 모시기는 틀립네. 보오. 머리 시허연 시부모를 여기 두고 시내에서 혼자 잘 살자는 거. 쯧쯧쯧."
“얘, 무슨 험한 말을 해?”
덕돌은 아니꼬운 눈길로 해월을 흘겨보았다.
해월은 정규상 교수의 치료를 받은 후 정신이 많이 나아졌다. 허나 아직도 주책없이 말할 때도 있었다.
“덕돌, 봐라, 내하고 결혼했더라면 네 부모를 포대기에 싸 업고 다닐 지경이었겠는데. 후회되지?”
덕돌은 그 말에 어이없어 입을 하 벌리고 말았다.
허나 해월은 계속 앙탈을 부렸다.
“어째, 대학생이 되더니 나를 깔보니?”
“…”
덕돌과 상순은 정신병자의 말이라고 탄해듣지도 않고 그저 듣는 척 했다.
“덕돌아, 내 정신병을 앓았다고 업신여기겠니? 농민과부라고 웃지 말라. 너네 부자간이 정교수한테 소개해 치료해서 이젠 완전히 정신병이 나았다.”
덕돌이 머리를 들어 해월을 바라보았다. 해월은 진지한 표정을 지은 철색얼굴에 눈물을 주르르 흘리는 것이었다.
“나도 악몽에서 깨나고 보니 세상이 어지러워 못 살겠다. 고통스럽다. 이 세상이 저주롭기만 하다. 어쩜 우리 부모는 정신 나간 딸을 지주네 늙다리 아들놈에게 깔리게 놔뒀단 말이냐? 시집보낸 것도 아니고. 우리 아버지 썩어져 싸다. 절대 아까와 하지 않아. 절대 네 아버지 우리 아버지를 총살 받게 했다고 원수로 여기지 않아. 제 딸을 짓밟게 놔둔 아빠나 엄마나 몽땅 총살해도 싸다. 짐승보다도 못한 것들이야. 엉, 엉, 엉~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원통해 분통이 터진단 말이야. 엉~ 엉~ 엉~”
덕돌은 해월이 불쌍해났다.
“얘, 지나간 일은 몽땅 잊어라. 넌 이제야 30대 초반인데 새 출발을 해라.”
“새 출발?”
“그래. 인생은 마라톤과 같아. 스타트에선 발목을 풀쳤지만 이제부터라도 정신을 차리고 새 출발을 해라.”
그러나 해월은 도리머리를 흔들었다.
“그런 듣기 좋은 소리는 하지 말라. 넨들 늙다리지주아들놈에게 짓밟힐대로 짓밟힌 나 같은 년을 색시로 데려가겠니? 처녀 때 지주 아들놈의 아들까지 낳은 개 쌍년을?”
해월은 훌쩍 일어나면서 “미안하다. 또 주책없는 소리를 해서. 난 충국의 새끼를 남에게 주고 이 더러운 세상을 영영 떠나 버리겠다.”라고 했다.
상순은 일어나 따라 나가면서 해월을 불러 세웠다.
“얘, 짧은 생각은 절대 하지 말라. 네 엄마는 자식이라고는 너 밖에 없잖니? 네까지 어떻다고 하면 어떻게 살겠니?”
허나 해월은 냉소했다.
“쳇, 덕돌이 아빠와 해서 낳은 아들 을준이 있지 않습니까?”
덕돌은 바깥에 따라나가 해월을 보고 “그래 어찌 할 예산이냐?” 하고 물었다.
해월은 생글방글 웃으면서 말했다.
“이 더러운 속세를 벗어나 저 머나먼 관내로 가서 절당에 들어가야지. 중들이 사는 세상이야 말로 색깔도 없고 탐욕도 없고 평화로운 세상일 거야. 호호호. 얼마나 좋아? 까까머리를 하고 끓여놓은 죽물을 마시면서 경이나 읽고. 둥둥둥. 북쳐라.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해월은 합장하며 상순과 덕돌에게 허리 굽혀 인사하고는 큰길에 나가더니 바람결처럼 함흥촌 쪽으로 사라져갔다.
상순은 한숨을 땅이 꺼지게 내쉬었다. 흥수로 인해 새파란 나이에 인간대접을 받지 못한 해월의 앞날이 근심스럽기만 했다.
덕돌은 몇달 동안 돌아다니다가 사촌처남 종수에게서 교외 실현촌에 밭 4짐이나 있는 집을 팔려고 한다는 말을 듣고 아버지를 데리고 가서 사기로 했다. 상순도 아들에게 효성을 할 기회를 주지 않으면 장차 후회하게 만들까봐 속에 썩 내키지 않으면서도 이사해 갔던 것이다. 그것은 새로운 생활에 대한 실험이기도 했다.
그런데 조개덕에서 말썽이 생겼다.
“여기서 농사를 짓지 않고 시내로 이사해 가면서 어떻게 우리 촌 밭을 계속 가지오?”
흥수네 형제들은 원래 흥수 일로 해 상순에게 원한이 있는데다가 이번에 보복할 아주 좋은 기회라고 앙심을 먹었다.
상순한테 앙심을 먹은 병진도 떠들어댔다.
“실현 촌에서 밭을 가졌으면 여기 밭을 내놔야지. 앞뒤치기를 할 예산이요?”
“양심이 있소?”
설상가상으로 지주 장학산의 딸 장미란과 지학사의 아들 지괴호마저 한바지를 입고 뛰쳐나와 춤췄다.
“아무리 공산당원이라고 두 곳에서 밭을 가지면 되는가? 우리 지주들을 타도하더니 당원들이 새 지주로 되려는 게 아니고 뭔가?"
상순은 촌에서 회의를 열고 후계자로 배양한 신입당원 숭길에게 당지부 서기를 넘겨주고 자기 입장을 분명히 했다.
“내 완전히 이사 가는가 하지 말라. 아들이 모셔가겠다고 해서 집을 팔고 교외에 가서 잠시 심심풀이로 남새농사를 지어보려는 것뿐이다. 나는 한뉘 이 곳에서 농사를 짓던 사람이다. 저기 소서구 밭이랑 우리 증조할아버지 때부터 황무지를 개간해 일군 밭이다. 내 결코 저 밭을 던지고 갈 사람이 아니다. 올해는 사위한테 밭을 붙이게 하고 사위 집에 있으면서 함께 농사를 지을 예산이다. 난 죽어도 함흥촌의 귀신이 될 것이고 저 뒤 산에 묻혀 우리 마을을 살펴보고 이 땅을 지킬 것이다. 이제 누가 감히 내 밭을 가지고 말하면 용서하지 않을 테다.”
그러자 지주들은 겁을 집어 먹고 입을 딱 다물고 찍 소리도 하지 못했다. 허나 병진과 지춘실은 뒤에서 계속 여론조성을 했다.
허나 상순의 후임 촌서기 숭길이 “상순 일가는 함흥촌에 한 공훈이 아주 크다”고 말하면서 말리였다.
상순의 둘째사위 경만은 눈을 부라리면서 누가 감히 가시아버지네 밭을 나눠가지겠다고 하면 가만 놔두지 않겠다고 을러멨다. 더구나 잠시 체면을 봐서 한마디 말도 하지 않지만 동네 사람들의 동향을 슬슬 살피며 무슨 궁리를 하는지 모를 덕돌이 더욱 무서웠다. 그래서 두부 콩물처럼 부글부글 끓어 번지던 여론은 죽 내려가 버렸다.
한뉘 한평생 토지에 얽매여 사는 농민들의 토지에 대한 욕심은 형언하기 어려웠다. 상순이 이사 간다고 하자 일부 사원들은 리대득실에 눈이 어두워 그 기회에 상순 일가의 몇 푼 안 되는 토지라도 빼앗아 나눠가지고 싶었던 것이다. 그러나 한 동안 서로 눈치를 보면서 상순의 토지에 대한 말은 입 밖에 감히 내지 못했다.
상순은 농사가 바쁜 계절마다 사위 집 위방에 있으면서 사위를 도와 농사를 지었다. 둘째사위 경만은 우사간에서 넘어지는 바람에 무릎을 다쳐 다리를 절었다.
상순은 불쌍한 사위를 대신해 밭갈이를 하고 벼 모를 수레에 실어 나르고 가을을 하고 탈곡까지 해주었다.
그러자 첫해에는 누구도 감히 상순이네 밭을 넘보지 못했다.
이듬해 봄에 상순이 자식들을 도우려고 교외 실현촌에서 남새를 심고 함흥촌에 가서 벼농사를 지으며 분망히 보냈다. 덕돌과 명숙은 일요일이면 돼지고기를 사 들고 운선을 자전거에 싣고 교외로 나가 부모 네를 도와 남새밭 기음을 매고 고추랑 가지랑 뜯어 주었다.
운선은 집에서는 돼지고기 한 점도 먹지 못했다. 실현촌 할아버지네 집으로 가면 돼지고기를 먹을 수 있어 늘 할아버지 집으로 가자고 떼를 썼다.
그리하여 운선은 자전거에 앉아 할아버지네 집으로 갈 때면 흥이 났다.
그 애는 울퉁불퉁한 길로 달리는 아버지나 어머니 자전거에 앉아 자기절로 노래를 지어 콧노래를 흥얼흥얼 불렀다.

실현촌엔 울퉁불퉁한 오르막도 많고
돌멩이도 많고 많다야
할아버지네 집에 가면 돼지고기랑 먹을 수 있어
일요일마다 할아버지네 집에 가면 참말 좋다야

조꼬만 애의 노래소리를 듣고 덕돌과 명숙은 자전거를 타면서 웃음보를 터뜨렸다.
운선도 아버지 어머니를 따라 밭에 나가 키를 넘는 큰 가지 사이로 아장아장 다니면서 애고사리 손으로 길쭉길쭉한 가지를 뜯어 비닐 주머니에 걷어 넣었다.
덕돌은 이른 아침이면 출근하기 전에 자전거에 가지를 가득 실어 장마당에 가져다 어머니가 팔게 했다. 어떤 때에는 전날 저녁에 자전거로 남새주머니 서너개를 실어다 자기 집에 두었다가 어머니가 오기를 기다려 장마당에 실어다 주군 했다.
소낙비가 억수로 퍼부어 혼자 실현촌의 가파른 오르막길을 올라가지 못해 명숙이까지 비옷을 쓰고 달려와 자전거를 밀어 주군 할 때도 있었다.
명숙은 병원에서 밤 직일을 서고서도 곤해 눈을 집어 뜯으면서도 찹쌀을 가지고 가서 시부모가 잡수라고 시루에 찹쌀을 얹어 끓여 퍼내 떡메로 찰떡을 떵떵 쳤다.
실현촌의 아낙네들이나 동네 어른들은 “어쩜 시내 각시 저렇게 효성이 지극하고 부지런하오?”라고 혀를 끌끌 찼다.
그런데 어려운 살림을 사는 아들과 며느리를 하나라도 도우려고 남새농사를 짓느라고 애를 쓰던 그만 불행하게도 중풍에 걸릴줄을 누가 알았겠는가.
덕돌은 이상해 했다.
(아버진 혈압이 낮은데 어떻게 중풍에 걸렸을까?)
덕돌은 썩 후에야 중풍은 혈압이 낮아도 걸린다는 것을 뒤늦게나마 알게 됐다. 그는 자기가 의학상식이 모자란 것을 못내 통탄했다. 아버지는 혈압이 낮은데 전록환이란 사슴피로 만든 약을 잡수면 혈압이 올라가 중풍을 맞게 된다고 전록환을 잡숫지 말라고 말린 것을 후회하고 또 했다.
전날에 상순은 남새밭에 물을 대려고 물도랑 둑을 손질했다. 부지런히 삽질을 하다가 별스레 손이 부들부들 떨리면서 삽질이 온전히 되지 않았다. 그리하여 쉬면서 담배를 말아 피우려고 해도 손이 떨려 좀처럼 말기 힘들었다. 그때 원래 좀 더 쉬였으면 모르겠는데 물도랑의 물이 새는 것을 보고 가만 둘 수 없어 계속 삽질해 흙을 둑에 파 올려 새는 물을 막았다.
이튿날 아침에 밭으로 나가려고 일어나려고 하니 왼쪽으로 비실비실 넘어가면서 걸음이 온전히 되지 않았다.
명옥은 황급히 한 2리 떨어진 시내에 가서 덕돌을 불러 왔다. 덕돌이 와서 아버지를 보니 완전히 걷지 못했다.
덕돌은 바삐 삼륜차에 아버지를 싣고 집에 돌아와 병원 내과에서 일하는 명숙에게 보였다.
명숙은 내과 간호사로 오래 일했기에 어진간한 의사와 마찬가지였다. 그는 인차 풍이 왔다면서 중풍을 맞은 시아버지를 보고 집에서 움직이지 말고 기다리라고 했다.
한참 후 그녀는 병원에 가서 의사와 토론하고 여러가지 약을 섞어 넣은 점적주사를 가지고 와서 상순의 팔에 놓아주었다.
흘러 떨어지는 링겔 방울을 올려다보면서 상순은 아들에게 “난 옛날 아버지 앓아도 이런 링겔을 한대도 맞혀보지 못했다. 지금 생각하면 마음이 아프다.”라고 했다.
며칠 동안 며느리의 살뜰한 치료를 받고 상순은 일어나 바깥출입을 할 수 있게 됐다.
“야, 이젠 일없으니 집으로 가 남새밭에 물을 대야겠소.”
시아버지 말에 명숙은 말렸다.
“아버님, 가지 마십시오. 잘 치료하지 않아 재차 풍이 오면 정말 일어도 나지 못하게 됩니다.”
“다 나았는데 뭘 치료한다고 그러오? 가겠소.”
덕돌도 막아 나섰다.
“아버지, 남새 밭 물은 잘 볼 테니 근심하지 말고 계속 치료 받으시오.”
그런데도 상순은 고집을 쓰고 집으로 돌아갔다. 벽이라도 차고 마구 나가는 상순의 고집을 누가 말리겠는가!
상순은 돌아가 이틀도 안 돼 재차 풍이 와서 사지를 완전히 놀리지 못하게 됐다. 다행히 며느리가 시름을 놓지 못해 신랑을 딸려 보내 시아버지를 일을 하지 못하게 말리라고 하고 저녁이면 주사를 놓아주러 다녔기에 제때에 발견해 목숨만은 구해냈다.
덕돌과 명숙은 그날 저녁으로 아버지를 삼륜차에 실어 시내 병원으로 모시고 가서 명숙이네 과에 입원시켰다.
덕돌과 명숙은 윤번으로 아버지를 살뜰히 간호했다. 덕돌은 단위의 글을 쓸 걸 병원에 가지고 가서 쓰면서 아버지 대소변을 받아내고 세수를 시켜 주었다.
명숙은 대야에 따뜻한 물을 퍼다 시아버지 얼굴과 발을 깨끗이 씻어주고 발톱까지 똑똑 깎아드렸다.
한 병실에 입원한 환자들은 모두 명숙을 효성이 지극한 며느리라고 혀를 끌끌 찼다.
저 멀리 교하에서 맏딸 춘자와 셋째사위 동준이 병문안을 하러 달려왔다.
춘자는 울면서 늘그막에 일을 하다가 중풍에까지 걸린 아버지 손을 만지었다.
상순이 중풍을 맞아 병원에 입원했는데 사지를 까딱 움직이지 못한다는 소문이 함흥 촌에 퍼지자 또다시 상순 네 토지문제가 터졌다.
상순이 없는 사이에 감옥에 갔다 온 병진의 아들 철주가 촌민소조 조장을 맡았다. 그는 생산 대 원 대장 허동원과 상순의 토지를 촌민들에게 나눠줘야 한다고 제기했다. 그때 허동원은 덕돌과 돌을 제방 둑으로 메 올리다가 허리를 상한 일이 있어 속으로는 앙심을 먹고 상순의 토지를 빼앗고 싶었지만 겉으로는 그런 내색을 내지 못했다. 상순의 둘째사위 경만과 은숙의 눈치가 보였지만 그보다도 그 뒤에 호랑이 같은 덕돌이 무서웠다.
촌민소조의 일부 사람들이 목숨과 같은 토지를 빼앗으려고 한다는 말을 들은 후 상순은 병상에 누워 눈물을 주르르 흘렸다.
아버지가 낙루하는 모습을 본 덕돌은 가슴을 칼로 한 오리 한 오리 찢어내는 것 같아 당장 뛰어가 철주와 동원의 멱살을 틀어쥐고 치고 싶었다.
하지만 금방 가도 문화소로부터 신문사로 전근해 갔기에 몸을 뺄 수 없었다.
덕돌은 병상에 누운 아버지의 허연 수염을 깎아드리면서 위안의 말씀을 해드렸다.
“아버지, 근심하지 마십시오. 누가 감히 아버지 밭을 뺏는다고? 이제 내가 쉬는 날에 가서 해결할 터이니 근심하지 말고 병이나 잘 치료해 빨리 일어납소. 가을에는 고향 마을에 가서 과수원에 주렁주렁 달린 사과배랑 구경합시다.”
그 말을 듣고 상순은 눈을 스르르 감았다. 그의 눈확에서 눈물이 솟아올라 밭고랑 같은 주름살이 진 얼굴에 주르르 흘러내려갔다.
덕돌은 아버지의 인생좌우명을 알고도 남음이 있었다. "사람이 빚을 지고는 살아도 시비에 지고는 못 산다." 이 시각 아버지는 뻔한 시비에 질 수 없었다. 그러나 중풍에 걸려 마을에 가서 시비를 밝히지 못하는 것이 한이었다. 아버지의 마음을 읽대로 읽은 조왕돌의 격분에 넘치는 뜨거운 눈물이 아버지의 주릅잡힌 얼굴에 방울방울 떨어졌다.
그는 속으로 번개 불처럼 복잡한 생각이 번쩍이고 있었다.
“현 공안국 국장벼슬도 다 초개같이 여기고 내팽개친 후 함흥촌 백성들을 잘 살게 하려고 한평생 애쓴 아버지 밭을 빼앗아? 배은망덕한 사람들, 량심이 있는가? 내 기필코 용서하지 않을 테다!”
그는 현 정부로 찾아갔다. 원래는 이계삼 부서기나 허영주 부현장을 찾아 가려고 했지만 그만 두었다. 그들은 이미 현 지도자 자리를 내놓았지만 덕돌이 찾아가면 상순의 토지문제를 해결해주려고 힘써줄 것이었다. 허나 덕돌은 요만한 일로 해 노간부들을 찾아가 폐를 끼치고 싶지 않았다. 그리하여 먼저 현 토지국에 가서 국가 토지정책을 알아보았다.
그때 그를 맞아준 토지국 국장은 문화대혁명 시기에 반혁명으로 억울하게 몰리어 감옥에 들어갔던 한영수였다. 한영수는 한창 민정국 국장 김진욱과 문화대혁명 때 사형장에 끌려 나가 총살 맞다가 살아남아 돌아온 얘기를 하다가 덕돌을 접대했다.
덕돌은 자기 고향 마을의 일부 농민들이 아버지 토지를 빼앗으려고 하는 정황을 죽 이야기했다.
한영수 국장은 토지정책 자료를 꺼내 보이었다.
“호적이 어데 있으면 어데서 밭을 줘야 하오. 늙고 노동력을 상실했다고 함흥촌 개척자나 다름없는 동무의 아버지에게 토지를 주지 않는 것은 국가 토지정책을 위반한 행위요.”
그 자리에 있던 민정국 국장 김진욱도 한마디 했다.
“함흥촌에서 정말 한심하구먼. 어떻게 촌 당지부 노서기가 중풍에 걸렸는데 보조해주기는커녕 밭마저 빼앗아내려고 한단 말이오?”
그는 뒷말을 이었다.
“진수해 공사 민정소에 말해서 동무 아버지에게 병을 치료하라고 치료비를 얼마간 내주라고 하겠소.”
“감사합니다.”
한영수 국장은 과단하게 태도표시를 했다.
“먼저 촌에 가서 국가 토지정책을 말하고 상순 노서기의 밭을 빼앗으려는 무지막지한 행위를 제지시키오. 만약 동무가 말해서 안 되면 내 진수해공사 토지관리소에 말해 해결해 주겠소.”
“감사합니다.”
두 분에게 인사하고 토지국에서 나온 덕돌은 온 몸에 힘이 솟구치는 감이 들었다. 당과 정부에서는 올바른 토지정책을 제정해놓았고 한뉘 공산당을 따라 혁명해온 그의 아버지를 잊지 않고 있었다.
그는 단위에 일이 많아 먼저 고향 마을에 갈 수 없었다. 하여 집에 돌아오자마자 먼저 전체 촌민들에게 알리는 편지를 써서 띄웠다.

존경하는 고향 마을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지척에 있어도 사업이 바빠 무례하게 편지를 먼저 띄우는 것을 널리 양해하십시오.
듣는 말에 의하면 일부 촌민들이 언감 우리 아버지의 토지를 날강도처럼 빼앗으려고 한다는데 당장 날강도 행위를 그만둘 것을 미리 경고합니다.
현 토지국에 가서 알아본데 의하면, 국가 토지정책에는“어느 곳에 호적이 있으면 어느 곳에서 토지를 나눠줘야 한다.”라고 명확히 규정해 놓았습니다.
누가 감히 국가 토지 정책을 어기고 우리 아버지와 어머니 토지를 빼앗아간단 말입니까? 도리에 맞지 않는 날강도 행위를 멈추십시오.
다음 저의 아버지와 어머니는 조선에서 정든 고향을 떠나 7세에 소서구에 와서 증조할아버지와 할아버지, 부모들과 함께 황무지를 일궈 밭을 만들었습니다. 고향 마을 사원들이 쌀 고생을 덜 하게 하려고 당신들의 부모들을 이끌어 멍지뫼산 앞의 부르하통하 강을 막고 산종 논밭을 만들었고 이펑거 습지를 채워 넣고 논밭을 풀었으며 장개골 안에 옥답을 일궜습니다. 저 소서구나 장개골 안, 산종, 우리 함흥촌의 어느 밭고랑에 우리 아버지와 어머니의 발자국이 찍혀있지 않은 것이 있습니까? 어느 밭에 우리 아버지 땀방울이 배지 않은 밭이 있겠습니까? 누가 과수원과 양봉장, 인삼장을 꾸렸고 벽돌공장을 차렸습니까? 당신들이 들어 살고 있는 벽돌집은 누가 벽돌공장을 차려 벽돌을 구워 지은 것입니까? 양심적으로 생각하리라 믿습니다. 우리 아버지는 범바위골에 가서 감자농사를 지어 감자 한 알이라도 더 사원들에게 나눠주느라고 애썼습니다.
어디 이뿐입니까? 고향 마을의 땅을 보호하기 위해 십대 어린 시절부터 항일유격대에 쌀을 메다주고 일제 놈들과 싸웠고 우리 마을 백성들의 생명과 재산을 국민당 토비들의 철 발굽 아래에서 보호하려고 삼도만 토비를 숙청하고 국민당 반동파 잔여세력을 숙청했습니다. 우리 마을 인민들을 배불리 먹고 잘 살게 하려고 호조조, 인민공사의 생산대대를 꾸려왔습니다. 당신들을 배불리 먹게 하려고 애써온 우리 아버지에게 차려진 밭도 한고랑 주지 않는 것이 도리에나 양심에나 맞습니까? 우리 아버지 밭을 빼앗자는 것은 우리 마을 건설에 한생을 다 바친 우리 아버지를 쌀도 없이 굶어 세상 뜨라는 거나 뭐가 다를 바 있습니까?
나는 우리 고향 마을의 양심적인 백성들은 앓아 눈 우리 아버지 밭을 빼앗아가지 않으리라고 굳게 믿겠습니다.
허나 만약 누가 계속 지엄한 국가 토지법을 어기고 우리 아버지 토지를 빼앗으려는 날강도행위를 고집스레 감행한다면 하늘땅이 용서하지 않을 것입니다. 하늘땅이 매돌 질을 해 육 밥을 만들 것입니다.
희망하건대 우리 아버지 토지에 대한 헛된 욕심을 버리고 명지한 처사를 하시기를 바랍니다. 이제 며칠 후면 이 덕돌과 만날 날이 있을 것입니다. 그때 이 덕돌이 무정하다고 나무라지 말기를 바랍니다.
고향의 못난 아들 덕돌 올림

덕돌은 또 편지를 따로 써서 아버지 토지를 기어이 빼앗아내려는 철주와 허동원, 장미란, 지괴호 등 몇몇 시비 없는 무지막지한 자들에게도 보냈다. 다만 사원들에게 보낸 편지와는 달리 공포하리만큼 “목숨을 내걸고 우리 아버지 토지를 빼앗아봐라.”, “대가리가 성해 있겠으면 작작 떠들어라!”, “돌을 들어 제 발등을 까지 말라.” “대가리 목 위에 붙어 있는 게 원수냐?” 등등 위협적인 말을 딱딱 박아 넣었다.
또 아버지 양성 하에 입당하고 아버지 후임으로 촌 당지부 서기로 된 숭길 등에게는 토지를 빼앗아내려는 이전의 지주 아들딸들과 감옥에 갔다가 와서 공산당에 앙심을 먹은 자들의 날강도행위를 제지시켜달라고 부탁했다.
편지가 날아간 후 과연 고향 마을에서 돌풍을 일으켰다.
너무나도 국법을 인용해가면서 설득력 있게 도리를 따지었는지 대부분 사람들은 함흥 촌 건설과 고향 마을 사람들을 위해 한생을 다 바친 상순의 토지를 빼앗는 것은 잘못이라면서 토지를 줘야 한다고 했다.
또 무시무시하고 날이 선뜩선뜩하게 선 위협과 공갈을 섞어가면서 보낸 공포의 편지를 받은 지괴호나 장미란은 입에 빗장을 질렀다. 허나 전임 생산대 대장 허동원과 현임 촌민소조 조장 이철주는 지주 아들딸과는 달리 두려운 것이 없다는듯 계속 상순의 토지를 사원들에게 나눠 줘야 한다고 앞에서는 감히 말하지 못하고 가만가만 뒷공론을 했다.
덕돌은 둘째누나 은숙과 매형 경만에게서 그 말을 들은 후 휴식하는 날에 고향 마을로 자전거를 타고 올라갔다.
그는 마을에 들어서자 매형네 집에 들지도 않고 다짜고짜 철주를 찾아갔다.
문을 뚝 떼고 들어서자 철주는 한창 부엌아궁이에 불을 때고 있고 여편네는 쌀을 일어 가마에 얹고 있었다.
“형님이 왔소?”
철주는 덕돌을 보자 때 아닌 시퍼런 대낮에 덮쳐드는 호랑이를 본 듯이 질겁했다.
“이 새끼야, 누가 감히 우리 부모 땅을 빼앗니? 네 놈 새끼냐?”
“아, 형님, 그래 노동력을 다 잃은 그 집 아바이 농사도 짓지 못하는데 밭을 해 뭘 하오?”
철주는 겁이 나 손으로 낯을 막고 풍무 쪽으로 몸을 기울이면서 주둥이만은 살아서 게속 너펄거렸다.
“뭐라고? 아직도 주둥이질이냐?”
덕돌은 다짜고짜로 철주의 멱살을 틀어쥐어 흔들면서 버럭 고함쳤다.
“네가 감히 국가토지정책을 어기고 땅을 빼앗으려고 미쳐 날뛰겠느냐? 어째 우리 아버지가 일신을 쓰지 못한다고 업신여기니?! 우리 아버지 일군 밭이 얼마인데 네가 타고장에서 굴러 온 놈이 감히 뺏어? 네 아비 감옥에 간 게 우리 아버지 탓이냐? 탈곡장 낟가리에 불을 지른 네 아비 탓이지. 악감 먹고 감히 우리 아버지 밭을 빼앗아?!”
철주는 쇠 집게 같은 덕돌의 손에 멱살이 꽉 조여져 숨도 겨우 쌕쌕 쉬면서 낯이 거멓게 질려갔다.
이때 마을 사람들이 모여왔다. 그 속에는 병진도 있었다.
덕돌은 숱한 사람들 앞에서 먼저 편지내용처럼 도리를 따졌다.
마을 사람들은 모두들 덕돌의 말에 머리를 끄덕였다.
“김 서기한테 밭을 줘야 하오. 뺏는 건 도리 없소.”
숭길도 팔을 걷고 나서서 구들에 올라와 말했다.
“모두들 모인바 하고는 촌민회의라고 열기오.”
덕돌은 숱한 사람들 앞에서 손을 더럽히지 않으려고 철주의 멱살을 놓았다.
허춘은 돌아다니면서 마을 사람들을 불러 왔다.
박숭길은 서기 각도로 나서 촌민회의를 사회했다.
“여러분, 김 서기 밭을 줘야 하오. 우리 마을을 건설한 공적을 봐서라도 새해에 밭을 더 줘야 하오. 노동력이 없다고 주지 않아서야 되오? 국가 토지정책에도 어디에 호구 있으면 어디에서 밭을 줘야 한다고 규정해놓았소. 모두들 어떻소? 동의하오?”
“동의하오!”
사원들은 모두 동의했다.
명옥의 양아들 이수봉은 두 손을 들어 찬성했다.
허나 덕돌이 여겨보니 철주는 부엌에 불을 때면서 뭐라고 계속 볼 멘 소리를 했다.
허동원은 역은 사람이어서 덕돌의 시뻘건 눈길이 곱지 않은 것을 보고 자리에서 먼저 허리를 붙들고 상이 일그러뜨리더니 우쭐 일어났다.
“아이고, 허리 아파 죽겠소. 김 대장에게 밭을 주는데 나는 두 손을 들어 찬동하오. 김 대장이 일궈놓은 밭이 얼마라고 그러오?”
덕돌은 한숨을 땅이 꺼지게 쉬면서 허동원의 입에서 눈을 돌려 촌민들을 둘러보았다.
어떤 촌민들은 모두 “상순 서기에게 밭을 줘야 하오. 새해에 더 줘도 의견이 없소.”라고 했다.
덕돌은 우쭐 일어나 마을 사람들에게 태산이 무너지듯이 넙적 엎드려 절을 올렸다.
“고맙습니다. 우리 고향 마을 분들이 그래도 우리 아버지를 잊지 않아 감사합니다. 저의 증조부 대부터 할아버지, 아버지가 이 소서구에 와서 황무지를 일구느라고 얼마나 고생했습니까? 앓아누운 우리 아버지를 문안하고 동정할 대신 밭을 뺏는단 말입니까? 저 철주의 날강도 행위를 제지해주어 고맙습니다. 그래도 우리 마을에는 아직도 정의가 살아 있고 양심이 살아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지춘실이 허연 머리를 쓰다듬으면서 뭐라고 중얼거리었지만 덕돌은 개의치 않았다.
그날 덕돌은 자전거를 타고 진수해에 내려가 술과 돼지고기, 건 두부, 부추, 물고기를 한 꾸러미를 사왔다. 그는 둘째누나를 보고 채를 볶게 해 아버지 어머니가 살던 집에서 큰 잔치를 차리고 마을 분들을 청해 술을 대접했다.
이수봉과 숭길을 비롯한 고향 마을 사람들은 다 와서 덕돌과 함께 실컷 술을 마시면서 웃고 떠들었다. 허나 철주만은 오지 않았다.
마을 사람들은 밤중까지 술을 마시고 웃고 떠들면서 얘기를 나누다가 다 헤어져 갔다. 덕돌은 그들을 일일이 바래주고 나서 달빛이 깔린 고향 마을을 둘러보았다.
덩실한 벽돌집들 속에 게딱지같은 몇몇 초가집들이 거무칙칙하게 보이는 고향 마을, 아버지와 어머니가 살던 초가집을 돌아보는 덕돌의 마음은 비길 데 없이 쓸쓸하고 아팠다.
“아버지는 고향 마을의 숱한 사원들에게 벽돌집을 지어주었다. 하지만 대공 무사한 아버지는 이 마을 떠나는 날까지 이런 초가집에서 살아오지 않았던가? 그런데 우리 아버지에게 먹을 쌀을 줄망정 밭마저 빼앗으려고? 어찌 하여 우리 고향 마을의 인심이 이렇게까지 각박해졌단 말인가?”
덕돌은 땅이 꺼지게 한숨을 후 내쉬었다.
달빛이 깔린 벌거숭이 뒷산과 천지꽃산 중턱을 바라보면서 증조할어바지와 할아버지한테 머리 숙여졌다.
일본 놈들과 국민당 반동파, 지주세력들의 철 발굽 아래에서 지켜낸 토지를, 그것도 자기 아버지에게 차려진 토지, 마땅히 가져야 할 토지를 지키기도 이렇게 힘 든 걸 생각하니 너무나도 가소롭고도 억울해났다. 덕돌은 너무나도 한심한 일을 당하고 나니 마음이 비길 데 없이 허탈하고 쓸쓸해나는 것을 어찌할 수 없었다.




                    7. 사랑의 여운

문화관에 전근돼 일할 때 덕돌은 공연재료를 쓰기도 하고 직접 무대에 올라가 희극배우로 활약하기도 했다.
훈훈한 봄바람이 산들산들 불어오는 어느 봄날이었다.
덕돌이 소품 극본을 쓰는데 똑똑똑 노크소리가 들리었다.
“들어오십시오.”
덕돌이 컴퓨터 건판에서 손을 떼면서 보니 문을 조용히 떼고 들어온 사람은 뜻밖에도 봉선이 아니겠는가.
“아니, 오랜 만이오.”
순간 덕돌은 혈액순환이 빨라지는 감이 났다.
허나 옆에 동료들이 있었으므로 봉선을 데리고 복도에 나갔다.
“어떻게 돼 내 문화관에 있는 거 알았소?”
봉선은 쌍까풀 눈을 곱게 흘기었다.
“극장 무대에 올라 꽤나 웃기데.”
덕돌은 원래 무슨 미련을 남기지 않으려고 “당장 공연하러 가야 하오. 무슨 일인지 어서 말하오.”라고 축객 령을 내리려고 했다. 허나 사람의 감정은 이상한 괴물이었다. 금방 먹은 마음을 돌려세우게 했다.
“우리 조용한 차집에 가서 차나 마실까?”
“일이 바쁘지 않아요?”
“괜찮소.”
덕돌은 봉선을 데리고 부근의 조용한 차집으로 들어갔다.
희미한 불빛아래 오랜만에 봉선을 마주하고 찻잔을 드니 감회가 깊었다. 별스럽게 가슴이 설레었다.
봉선은 호두알을 까서 덕돌의 앞에 놓으면서 물었다.
“대학생처녀한테 장가들었겠지?”
덕돌은 냉소했다.
“남의 색시를 헐뜯지 마오. 너무나 예쁘고 효성이 지극한 현처양모요. 아들까지 낳아주고.”
“지금 저를 약을 올려주는가요?”
핼끔 가로보는 봉선의 눈길을 보고 덕돌은 허구픈 웃음을 지었다.
“내 색시가 예쁜 데 왜 이러오?”
봉선은 덕돌의 가슴을 탕탕 치면서 울었다.
“너 아니? 그간 너를 얼마나 그렸는지? 어떻게 한 입으로 다 말하겠느냐? 상사병에 걸려 시달린 거, 내 앞에서 색시 자랑을 늘여놔?”
그제야 덕돌은 봉선의 마음을 읽고 한숨을 후 내쉬었다.
그도 알았다. 사실 봉선은 그날 달밤에 오빠한테 붙잡혀 자전거에 실려 끌려갔지만 그 후에도 덕돌에 대한 사랑의 미련을 버리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나 덕돌은 그날 달밤에 봉선을 데리고 부르하통하 강둑으로 가다가 봉선의 오빠한테 수모를 당한 후 생각을 바꿨던 것이다. 봉선은 예쁘고 수양이 있고 늙은 부모의 슬하에서 자라 부모를 잘 모실 것 같았다. 하지만 한살 이상인데다가 대학시험을 3년이나 쳤지만 번마다 낙방한 고중졸업생에 불과했다.
(아무렴 70년대 말 대학생이 한 살 이상인 고중 졸업생 처녀를 사랑해?)
그는 그날 그때부터 다시는 봉선을 찾아가지 않았다.
그러나 봉선은 덕돌의 고모사촌누나인 아랫집 해옥을 찾아가 덕돌과 약혼하게 해달라고 했다.
그때 해옥은 봉선이 덕돌의 상대가 되지 않는다고 여겼다.
(우리 외삼촌의 하나 밖에 없는 아들 덕돌이 무슨 고중 졸업생과 약혼하겠는가?)
하여 해옥은 봉선이 마음을 돌리게 하려고 수를 썼다.
“저는 몰라도 덕돌은 애 때부터 한다하는 싸움꾼이요. 게다가 부모를 모셔야 하는데 제 어떻게 시집가서 고생한다고 그러오?”
허나 봉선은 해옥의 손을 꼭 잡고 엉엉 대성통곡 쳤다.
“싸움꾼이라도 좋아요. 얼마나 사내대장부 같아요? 덕돌에게 시집가면 난 시부모를 잘 모실래요.”
해옥은 봉선이 불쌍해 덕돌을 설득시켜 볼까도 생각했다. 허나 덕돌은 놀러 오지도 않는데 어떻게 억지로 붙여놓는단 말인가?
“덕돌은 이미 다른 대학생여자와 사귀고 있소. 전번에 보니 예술학원에 다니는 영자라는 가수처녀를 사귀는 거 같았소. 공연표도 가지고 와서 덕돌과 함께 보았소.”
“거짓말 하지 마세요. 그는 나를 두고 다른 처녀를 사귈 남자가 아닌데요. 그가 나를 얼마나 사랑했다고. 어허허, 헉, 헉.”
해옥은 나중에 이런 말로 봉선의 마음을 돌려세우려고 했다.
“내 도문에 있는 우리 시집조카한테 소개해 줄게. 덕돌보다 더 멋지고 잘 생겼소.”
“그만 둬요. 그만 둬.”
봉선은 눈물을 훔치며 일어서 비칠거리며 집으로 돌아갔다. 그 후 봉선은 다시는 해옥이네 집으로 놀러 가지 않았던 것이다. 덕돌과 자기를 떼놓으려는 해옥이 괘씸했다.
봉선은 여기까지 말하고 나서 눈물을 훔치며 머리를 들어 덕돌을 바라보았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내 마음을 아는가?”는 말을 하는 것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덕돌은 한숨을 후 내쉬었다.
“이젠 다 잊소. 난 이미 결혼해 아들까지 본 애 아버지요. 저도 시집을 갔겠지?”
“픽, 내 그래 서른이 넘도록 시집도 가지 않았겠어요? 동무보다 훨씬 낫은 신랑을 얻었다고.”
봉선은 적이 덕돌 앞에서 가련하게 나온 거 같았던지 신랑 자랑을 늘여놓기 시작했다.
“우리 신랑은 나보다 두 살 이상인데 ‘문화대혁명’후 첫 패 대학 졸업생이오. 졸업한 후에 중학교 단위 서기 사업을 하다가 지금 정부 기관의 처장으로 일하오. 키도 동무보다 더 크고 호리호리하게 생겼어요. 그런데 시집이 아주 멀리 있어요. 통화에 있는데 장백산을 넘어 가야 한단 말이오.”
덕돌은 찻잔을 들어 쭉 마시고나서 천천히 말했다.
“좋은 신랑한테 시집갔다니 시름 놓았소. 원래 사랑은 인연과 궁합이 따로 있는 법이오. 인연이 아니고 궁합이 맞지 못하면 원래 어울릴 수 없으니까. 그래서 아마 저네 오빠와 우리 아재가 우리 둘을 떼놓느라고 그렇게 애를 쓴 모양이오.”
봉선은 쌍까풀눈을 곱게 흘기었다.
“픽, 그것도 말이라고 해요? 전 어쩐지 살기는 지금 신랑과 살지만 마음은 그래도 항상 덕돌이란 사람한테 가 있단 말이오. 어떤 때는 신랑과 그걸 하면서도 눈을 지긋이 감고 덕돌과 산다고 생각하고 그럴 때도 있단 말이오. 꿈에도 자주 떠오르고. 그래서 오늘도 찾아 온 거요.”
처녀 때와은 달리 봉선은 아주 담대해졌다.
“동상이몽을 작작 꾸고 가정에 충실하오. 이젠 애 어미겠지?”
“하긴 그렇지요. 아들의 어머니로 됐지만 아직도 처녀 때 생각이 그대로 있는 걸요. 오늘 이렇게 시원히 말하고 나니 속이 시원해요.”
“우린 모든 미련을 끊어버리고 각자 자기 가정에 충성하기요.”
덕돌은 차를 다 마시자 일어나려고 서둘렀다.
그러자 봉선은 덕돌을 꽉 끌어안더니 똑바로 마주 보았다.
“나를 마지막으로 소원 성취해 주겠어요?”
“이제 와서 뭘?”
“키스를 한번만 열렬하게 해줄 수 없나요?”
봉선은 눈을 살풋이 감고 하얀 복숭아 얼굴을 내밀었다.
허나 덕돌은 차집 미닫이를 쭈르륵 밀고 훌쩍 나가버렸다. 카운터에 가서 결산을 마치자 뒤도 돌아보지 않고 가버렸다.
뒤에서 봉선은 덕돌을 매정한 놈이라고 한참 욕하고 눈물을 훔치며 적막한 차집을 비칠거리며 나섰다.
어느 날 가도에 내려가 소품공연을 지도하러 갔을 때다.
놀랍게도 가도 판사 처 복도에서 중학교 때 첫사랑 은숙과 딱 마주 쳤다.
순간 덕돌은 깜짝 놀라 걸음을 주춤 멈췄다.
“아니, 네가 어떻게?”
덕돌은 너무 꿈밖이어서 어망 간에 야, 자가 나갔다.
허나 다른 사람들 앞인지라 제꺽 말투를 바꿨다.
“저기 가기요.”
뒤따라오는 은숙은 여전히 그렇게 예뻤다.
덕돌은 문 밖에 나가 판사처 울안에서 물었다.
“어떻게 돼 여기 왔니?”
그러자 은숙은 외까풀 눈을 생글거리면서 “어째, 이 시내에서 너만 살라는 도리는 없지 않니?”라고 했다.
“이 시내에서 사니?”
“아니야. 심양에 있어.”
“그래? 언제 여기 왔어?”
“이제 막 오는 길이야. 차에서 내리자마자 널 찾아 문화관에 갔다가 또 신문사로 쫓아갔다가 여기 쫓아왔어.”
“그래?”
“일 바쁘니?”
“좀 기다려. 내 좀 소품 공연 지도하고.”
덕돌은 은숙을 데리고 부근의 자그마한 려관에 자리 잡아주었다.
은숙은 눈을 살풋이 내리뜨며 애교를 부렸다.
“먼 길에 온 나를 고독하게 이런 여관에 두고 가버리는 거냐?”
덕돌은 “한 시간 후면 올게.”라고 하며 손을 저어보이며 나갔다.
그는 여관에 꽃 같은 은숙을 감춰 두고 가도 판사처에 가서 무슨 정신으로 소품공연을 지도했는지 몰랐다.
여관에 돌아오자 은숙은 입이 뾰로통해 가슴마저 흔들며 서적을 썼다.
“난 밤차를 타고 와서 아침에야 역에 내렸다. 배 고프다야.”
덕돌은 웃음을 지으면서 “그래, 맛있는 거 사줄게.”라고 했다.
덕돌은 은숙을 데리고 가면서 본지 20년 만에 30대 된 그녀가 아직도 중학교 시절의 첫사랑처럼 예쁜데 놀랐다. 나란히 걸으면서 풍만한 젖가슴을 훔쳐보니 꽤나 탐났다.
“에잇, 사내는 다 승냥이야.”
어망결에 이렇게 씨부리다가 “뭐라고?” 하는 은숙의 물음에 제 정신이 드는 것 같았다.
“아, 아니야, 아니.”
“사내들이 승냥인걸 누가 몰라?”
덕돌과 은숙은 유리창문이 환한 해물관에 가서 환한 유리창문 옆 자리에 앉았다. 해물로 뜨끈뜨끈한 장국을 끓여 후후 불며 마시면서 빨간 포도술 잔을 쟁강 맞부딪쳤다.
그들은 조개 살을 이쑤시개로 뽁뽁 뽑아 먹으면서 웃음꽃을 피웠다.
“어떻게 돼 여기까지 왔니?”
“널 보고 싶어 왔다. 그래 재미나게 사니?”
“그럼, 아들도 보고.”
“부모는 모두 편안히 계시니?”
“그래. 아버지가 풍을 맞았지만 며느리가 좋다는 약은 다 사다드리고 링겔주사랑 자주 놔줘서 인젠 바깥출입을 한다.”
“그래? 지금 어디 계시냐?”
“그렇게 가지 말라고 했는데도 고향 마을에 돌아가셨다. 둘째누나와 매형이 없으면 진짜 고향에 늙으신 부모님들을 보낼 엄두도 내지 못하지.”
“그랬구나. 농사꾼들은 시내에 와서 못 살아. 땅을 떠나면 곡식의 뿌리를 빼 시멘트바닥에 옮겨 놓은 거 같아. 오래 살지 못해. 농촌에서 밭의 곡식이 자라나는 것도 보면 농사군의 가슴은 설레고 혈액순환이 빨라지면서 좋은 거여. 밭에서 새 해 풍작의 희망의 꿈을 꾸면서 사는 게 농사꾼이지.”
은숙의 놀라운 말에 덕돌은 적이 놀랐다.
“그럼 너도 심양시내 아니고 농촌에서 농사를 짓니?”
“그래. 대흥진은 심양시 교외에 있어. 거기 시집갔어. 나도 시골 농민 딸이지만 난 이젠 그놈의 농사 신물이 나.”
“신랑은?”
덕돌의 물음에 은숙은 침울해 있더니 한참 후에야 입을 뗐다.
“신랑 좋으면 네 생각을 덜 했을 거야. 여기도 왔을까?”
은숙은 하소연하듯 했다.
“너도 알겠지만 난 시골 고향 마을 마개동으로부터 두만강변에 자리 잡은 도문시 량수진으로 이사 갔댔어. 넌 대학에 갔지. 난 농촌의 농포로 돼버려 감히 너를 찾아가지 못했지. 너무 나도 내 모습이 초라했지 뭐야?”
그녀는 덕돌의 눈치를 흘끔 살피며 물었다.
“네 진심으로 대답해라. 그때 내가 널 찾아가 너와 한사코 살겠다고 떼질 쓰면 네가 날 받아주었겠어?”
허나 덕돌이 잠잠히 앉아 있자 은숙은 포도술 잔을 들어 덕돌의 앞에 내밀었다.
“자, 마시자. 지나간 말을 물어 뭘 하겠니? 오늘 너와 만나 맛 나는 해물에 포도술 잔을 들 수 있는 것만 해도 아주 기쁘다.”
덕돌은 은숙에게 살아온 얘기를 물었다.
        "그래, 첫날 밤에랑 재미있게 살았겠지?"
        은숙은 "별 거 다 묻는다." 하고 별 눈을 곱게 흘기었다.
그러나 이윽고 옛말이나 하는 듯이 살아온 얘기를 술술 했다.
“심양시라고 하니 좋아라고 난 시집갔댔어. 농사군 치면 우리 신랑 잘 생겼어. 우리 집 오빠 학권처럼 키도 크고 눈이 부리부리한 게 남자 같았어. 헌데 뭐야 맏며느리로 시집갔는데 어쩐지 첫날밤에 네 생각이 나 신랑이 달려들자 눈물을 흘리면서 거부감이 나더라. 신랑인데도 첫날밤에 강간하러 드는 승냥이 같더라. 마구 발버둥질 치면서 밀어냈지. 어쨌는지 아니?”
그녀는 조갯살을 이수씨개로 뽁 뽁 뽑아 먹으면서 주위를 두리번거리고 나서 외까풀 눈을 상글거리며 목소리를 낮춰 물었다.
"첫날 밤에 퍽 행복했지?”
"흥! 행복이 다 뭐냐? 엉망이지."
은숙은 능청스러운 웃음을 지었다.
"넌 첫날 밤에 재미 좋았겠지? 나이 어린 예쁜 색시를 죽여 줬겠다." 
“정말. 첫날 밤에 술을 가득 마셨지. 온 하루 가시집에 갔다가 진수해로부터 걸어서 고향 마을에 간데다가 숱한 친척과 친구들한테 술대접을 하고 곤해서 그러네 했다.”
그제야 믿어지는지 은숙은 머리를 끄덕였다.
"네 첫날밤 궁금한데.”
“정말?”
“응, 그래. 정말.”
은숙은  도리머리를 흔들었다.
“정말 엉망. 내 어찌나 발광했는지 몰라. 신랑을 구들에서 발로 차서 바닥에 다 떨어지게 했다. 신랑은 달려들다 못해 한 번도 하지 못하고 나를 욕하고 때리기까지 했다. 그런데 벌써 창문이 희붐히 밝아오지 않겠니? 그래 신랑은 이불을 안고 쏘파에 가서 들 누워 잠들어버리더구나. 나도 새벽에야 곤해 잠들어버렸어.”
은숙은 재미나는 이야기나 하는 듯이 뒷말을 이었다.
“신랑이 또 깨나서 달려들었지만 해가 궁둥이를 비추고 아침이어서 시집 일가 어른들께 인사해야 하는 판에. 내가 또 발길로 차 버리겠는데. 호호호. 지금 생각해 봐도 우스워. 호호호호.”
“그래 애는 몇을 낳았어?”
덕돌의 물음에 은숙은 해물 국을 떠서 후루룩 마시고나서 “아들 하나 딸 하나 낳았어.”라고 대답했다.
덕돌은 웃으면서 “헌데 어떻게 애는 나보다 더 많이 낳았니?” 하고 웃었다.
“미운대로 어떻게 하겠니? 내가 방비하다가 잠들어버린 후이면 신랑이란 놈이 도적질해 가지는 걸. 속담에 사람 열이 도적 하나를 지키지 못한다고 하지 않았니? 낸들 무슨 수가 있어. 시시탐탐 내 몸만 노리는 데야. 호호호.”
덕돌은 어릴 때 온순하고 내성적인 것 같던 은숙이가 완전히 다르게 시원시원하게 번졌구나 생각했다.
덕돌은 은숙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이런 말을 꺼냈다.
“야, 은숙아, 네 손 한번 쥐어 보지도 못하고 애들에게 얼마나 놀림을 당했는지 아니?”
“그럼 지금이라도 실컷 쥐어보렴.”
은숙은 손을 내밀면서 중얼거렸다.
“네 때문에 머리를 들고 학교를 다니지 못했다.”
덕돌은 정말 은숙의 새하얗고 보들보들한 손을 꼭 쥐고 매만지면서 물었다.
“편지를 왜 엄마한테 보이고 황승연에게 가져다 바쳤니?”
은숙은 손을 맡긴 채 두덜거렸다.
“열대여섯 밖에 안 되는 소녀가 그런 편지를 받고 겁나지 않았겠니? 그 일로 내가 제대로 공부하지 못해 대학에도 가지 못했다. 다 네 탓이다.”
은숙은 손을 훌 빼갔다.
“편지 쓴 건 내 탓이라고 치고. 함께 공부를 잘해 대학 가자 한게 무슨 죄냐? 그때 너무 놀림을 당해 학교에도 가지 못했다. 온순한 여자애 같던 난 싸움꾼으로 돼버렸다.”
“호호호호. 그 일 때문에 네가 사내로 됐지. 옛날 같으면 어디 남자 같았니? 코를 풀럭거리면서 공부나 잘 하는 계집애 같았지.”
은숙의 그 유머에 덕돌은 웃고 말았다.
덕돌은 은숙의 우유빛 얼굴을 들여다보면서 능청스레 은숙의 보들보들한 손을 잡아끌었다.
"이전에 그렇게 안아보고 싶던 널 한번 안아보자.” 

“우-메, 딱 사춘기 소년 같다. 얘, 딱 한 번만이다. 더 하면 안 돼.”
“그래.”
이윽고 은숙은 몸을 뺐다.
 “내일 딸이 온다. 한번 보겠니?” 

“그래?”
덕돌은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외할머니 한돌 제사여서 오라고 했다. 난 널 보려고 살짝 먼저 빠져오고.”
덕돌은 일어나면서 중얼거렸다.
“그 노친이 내 편지를 황승연에게 가져다 바칠 건 뭐야? 안 그랬으면 은숙이 내 색시 됐겠는지 어떻게 알아?”
은숙은 말귀를 알아듣고 도도거렸다.
“쳇, 대학생이노라고 날 데려가겠어?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어. 생각 있어? 나그네는 한국에 간지 몇 해나 돼. 근본 나한테 관심이 없어. 그러니까 네 생각이 더 난다. 네 색시 됐더라면 네 부모 잘 모셨을 거야.”
덕돌은 결산하고 해물관을 나서면서 한숨을 후 내쉴 뿐이었다.
그날 은숙을 데리고 서시장에 갔다가 놀랍게도 조영희를 만나지 않았겠는가?
“아니, 어떻게 돼 여기 있어? 도문에 시집갔다더니?”
영희는 옆에 선 은숙을 바라보며 천을 가위로 쭉 끊어 손님에게 주고 돈을 받아 세면서 반기었다.
“정말 오랜만이구먼. 색시오?”
덕돌은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몰라 서성거릴 뿐이었다.
그러자 은숙이 저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내 동창생이요.”
여인들의 눈은 아주 민감했다.
“그저 관계 같지 않구먼.”
“시샘이 나오?”
덕돌은 옆에 손님이 없자 목소리를 낮춰 능청스레 말했다.
“첫사랑이오.”
그러자 조영희는 저쪽에 서서 이쪽을 돌아보는 은숙을 핼금 보더니 소리를 죽여 빈정거렸다.
“나만 낫소?”
“에끼, 무슨 소리?”
조영희는 천 필을 둘둘 말아 놓으면서 종알거렸다.
“기자로 됐다면서? 뜻을 이뤄 좋겠소.”
뒤이어 조영희는 눈을 곱게 흘기며 비쭉거렸다.
“어떠오? 지금 색시 퍽 어리고 예쁘다면서? 색시로는 어려서 좋을지 모르지만 부모를 모시기는 나보다 못할 거야. 전번에 조개덕에 갔다가 보았소. 저네 아버지와 어머니가 우리가 담배조리를 하던 창고에서 살더구먼. 저네 영감도 후회할 거요. 나를 며느리로 삼았더라면 시내 벽돌집에 모시고 청보자기에 싸서 이고 다닐 지경이었겠는데.”
덕돌은 영희의 그런 꼬집는 말을 더 듣기 싫었다.
저쪽에서 은숙이도 기다리고 있어 덕돌은 자리를 떴다.
“잘 있소.”
“잘 사오. 허나, … 오, 됐소, 됐어. 가보오.”
영희는 무슨 말을 하려다가 그만 두고 혀끝을 흐리었다.
그날 저녁, 덕돌은 퇴근하자 은숙을 데리고 극장에 가서 문예공연을 구경시켰다.
한참 구경하다가 덕돌은 프로안내를 듣고 깜짝 놀랐다.
“아래에 저명한 향항 인기가수 송영자녀사의 노래를 감상하시겠습니다.”
집중된 동그란 조명을 한 몸에 받으면서 한복을 입고 사뿐사뿐 무대로 나오는 여가수는 조영자가 아니겠는가!
“아니, 저게 영자 아니야? 뭐 향항가수? 그럼 향항에 갔단 말인가?”
“뭐? 아는 사이오?”
“어, 아, 아니오. 인기 있는 여가수지.”
덕돌은 속으로 자기에게 왔다는 말도 하지 않은 조영자가 얄미웠다.
극장에는 영자의 “사랑의 미로”라는 한국 노래 소리가 격조 높이 울렸다.
옆에서 은숙은 머리카락이 덕돌의 귀를 간지를 지경으로 얼굴을 가까이 하고 나직이 말했다.
“저 가수 확실히 노래 잘 불러.”
“음. 그래.”
덕돌은 머리를 끄덕이면서도 머리가 착잡하기로 그지없었다. 거의 잊어버렸던 또 하나의 추억 속의 사랑상처가 눈앞에 나타나 노래를 부르고 있었던 것이다.
그는 어떻게 그날 저녁 공연을 보았는지 몰랐다. 옆에 은숙을 두고 무대에 올라가 영자를 찾을 수도 없었다.
이튿날 오전에 단위에 갔다가 덕돌은 승용차를 몰고 가무단에 가서 영자를 찾았다. 허나 영자는 금방 공항으로 나갔다고 한 처녀 가수가 알려 주었다.
시계를 보니 오래지 않아 은숙의 딸이 기차역에 도착할 시간이 됐다. 허나 덕돌은 승용차를 몰고 공항으로 쏜살 같이 달려갔다.
공항 대합실을 올리 뛰고 내리 뛰며 인파속을 서캐 훑듯 했으나 영자의 그림자도 보이지 않았다.
한창 개찰구로 나가는 사람들 쪽으로 뛰어가 보아도 영자는 보이지 않았다.
(야, 어쩜 지척까지 왔다가 찾지도 않아? 얼마나 그렸다고?)
덕돌은 영자가 원망스러웠다. 혹시 대학을 졸업한 후 내가 어디로 갔는가를 모를 수도 있지 않는가? 또 피뜩 왔다가 공연에 참가했을 수도 있어 못 찾아왔겠지? 이러루하게 자기를 위안하면서도 혹시나 해 인파 속을 헤맸다. 허나 끝내 영자를 찾지 못했다.
그때 비행기가 공항 상공으로 이륙하는 아츠런 소리가 들렸다. 덕돌은 공항 대합실에서 뛰어나와 꽃구름이 둥실 뜬 푸른 하늘로 솟아오르는 은백색의 비행기를 넋을 잃고 쳐다보며 중얼거렸다.
“잘 가라! 향항에서라도 잘 살아라! 나도 너를 깡그리 잊을게.”
덕돌은 손목시계를 들여다보았다.
“아차!”
덕돌은 승용차를 몰고 황급히 은숙이 든 호텔로 쏜살같이 달려갔다.
그는 애타게 자기를 기다리던 은숙을 싣고 함께 역에 달려갔다.
덕돌은 자기 눈을 의심할 정도로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플래토홈에서 나온 열 서너 살 돼 보이는 은숙의 딸 선희는 딱 어렸을 때 은숙의 모양을 빼닮았던 것이다.
(아, 저 애가 내 첫사랑 은숙이 아닌가?)
덕돌은 선희가 너무 사랑스러워 덥석 끌어안고 뽀뽀를 해주었다.
선희는 너무 과격하게 열정적인 덕돌을 밀어내며 은숙에게 물었다.
“어머니, 이분은 누구신가요?”
“내 늘 외우던 덕돌 아저씨다.”
“오, 그래요?”
외까풀 눈을 살풋이 내리뜨며 상글 웃는 선희는 정말 예뻤다. 심지어 이상하게도 덕돌의 첫사랑 은숙을 연상시키지 않겠는가.
덕돌은 이상하리만치 착각인가고 자꾸 선희를 쳐다보았다.
“왜 자꾸 쳐다봐요?”
“정말 어린 시절 너 어머니를 똑 떼 닮았구나.”
“당연하죠.”
덕돌은 이제야 첫사랑을 되찾은 거 같아 은숙과 선희를 사진을 찍어 두었다.
은숙의 어릴 때 사진과 선희의 사진을 놓고 보아도 누가 은숙이고 누가 선희인지 구분하기조차 어려웠다.
며칠 후 덕돌은 아쉬운 대로 은숙과 선희 모녀간을 심양으로 돌려보냈다. 은숙은 눈물을 흘렸고 선희는 옆에 나란히 앉아 어머니 얼굴의 눈물을 닦아주다가도 덕돌에게 손을 저었다. 무정한 열차는 덕돌과 은숙의 애끓는 석별의 정을 차단하며 사정없이 떠나갔다.
덕돌은 은숙의 모녀를 보내고 승용차에 몸을 싣자 홀가분한 감이 났다.
아무리 어째도 유치한 첫사랑 은숙이나 짝사랑 영희나 봉선이나 그리고 사랑했던 영자는 추억의 돛배에 실린 사랑의 흉터일 뿐이었다. 그녀들은 덕돌의 마음 속에서 운선의 어머니, 조강지처 명숙과 비할 바 되지도 못했다.
(어느 놈이 조강지처를 버리고 잘 된다더니?)
덕돌은 마음을 정리하자 착잡하던 머리가 한결 개운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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