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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장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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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하소설 울고 웃는 고향(116)
2018년 08월 14일 12시 44분  조회:1340  추천:0  작성자: 김장혁




                    

       2. 백프로선생  로맨스

따르릉 따르릉

교정의 종소리가 정답게 울렸다.

해가 어슬어슬 넘어가는데 학생들은 수양버드나무 가지가 휘늘어진 교정에서 뛰놀다가 교실로 와 하고 뛰어 들어갔다.

덕돌은 당직을 서게 돼 교정을 휘 한 바퀴 돌면서 자세히 살폈다.

그런데 3층 교실에 웬 남학생이 창문에 거마리처럼 매달려 안을 들여다보며 손을 휘두르는 것이 아니겠는가.

“야, 창문에 매달려 뭐 하니? 그러다가 떨어지면 어쩌니? 어서 내려라!”

덕돌이 다가가면서 소리쳤다.

그런데 그 애는 창문에 매달려 교실에 뭔가 뿌리고 있었다. 교실 안에서는 여학생들의 비명소리가 들렸다.

“저 새끼, 모래를 뿌린다!”

교실 안에서 여학생들이 떠들어댔다.

“얘, 떨어지겠다. 어서 내리지 못하겠니?”

그런데 그 애가 덕돌을 내려다보며 욕설을 퍼부었다.

“에이, 씹할, 백프로 같은 게. 별 일을 다 삐친다.”

“야, 내리지 못하겠니?”

“제 무슨 우리 담임인가? 뭐나 다 삐치면서. 개 불알 같은 게!”

그 욕지거리에 덕돌은 울컥 치미는 분을 억지로 삼키었다.

“야, 선생과 무슨 말버릇이냐? 창문에서 내려 교실에 들어가라. 떨어지면 상하겠다.”

덕돌은 그래도 그 애가 유리창문에서 내리지 않자 교수청사로 들어가 3층 교실로 올라갔다.

“야, 떨어지겠다. 창문에서 천천히 내려서 들어오라.”

덕돌은 그 애가 떨어질 까봐 온화하게 말하며 손짓했다.

그때 그 애가 교실 안으로 뚝 뛰어내리며 “에이 씨, 백프로 같은 게 삐치기는?”라고 욕했다.

덕돌은 자습하던 숱한 학생들 앞인지라 “뭐라니? 너 여기 나오너라.”라고 한마디 하며 복도로 나갔다.

“쾅!” 
그 애가 문을 박차고 씽 뛰어나오더니 덕돌에게 헤딩을 들이댔다.

누가 학생이 교원에게 덤벼들려니 했겠는가?

덕돌은 반사적으로 피하면서 팔꿈치를 들이댔다. 그 애는 팔굽에 맞아 두 손으로 눈 통을 싸쥐고 쓰러져 땔, 땔 굴렀다.

“너 감히 선생한테 손을 대겠니?”

덕돌이 을러메는 소리에 교실 문들이 벌컥 벌컥 열리며 교원들이 머리를 내밀었다.

“김 선생, 어째 학생한테 손을 대오?”

덕돌이 머리를 들어보니 황승연 교장이었다.

“황 교장, 얘가 내게 먼저 손을 댔습니다.”

덕돌의 변명에 황 교장은 노발대발 하면서 을러멨다.

“그래도 교원은 참아야 하지. 학생과 싸우면 되오? 양?!”

황승연은 우멍한 눈으로 덕돌을 쏘아보았다.

덕돌은 억울해 참을 수 없어 대꾸했다.

“선생님, 제가 때린 게 아닙니다. 얘가 헤딩을 들이대다가 내 팔꿈치에 맞았습니다.”

황 교장은 고래고래 고함쳤다.

“계속 대답질 하겠니? 싸움에 이골이 튼 네가 팔꿈치를 들이대지 않으면 맞을 수 있니? 교원이면 참아야 되지. 학생들의 자존심을 상하게 하지 말아야 한다는 걸 몰라?! 대학졸업생이라는 게 교육심리학을 밑구멍으로 배웠니?”

“얘가 내 별명을 불렀는데 왜 나만 욕합니까? 학생이 교원의 별명을 불러도 됩니까? 교원은 그래 자존심도 없는 무골충이 돼야 합니까?”

     “얘, 상하지 않았니? 어디 보자. 눈을 상하지 않았는지? 이게. 피 못이 됐구나.”
      승연은 면상이 장마당이 된 학생애를 데리고 아래층으로 내려가면서 두덜거렸다.

“개 꼬리를 3년 파묻어도 썩지 않는다더니. 아직도 주먹을 휘둘러? 어디 혼나 봐라.”

황 교장이 덕돌을 욕하자 그 애는 우쭐해  을러멨다.
“교육국에 있는 큰아버지한테 다 말하겠다. 씨베.”

덕돌은 숱한 사생들 앞인지라 창피하기도 하고 분하기도 하고 억울하기도 했다.

그는 학교 대문 어귀에 있는 당직실에 돌아와 맥없이 드러누웠다. 9평도 되나마나한 손바닥만한 당직실이자 그의 숙사였다. 그는 

사회에 첫발을 들여놓자마자 억울한 모자를 쓰게 됐다.

(어쩜 원수는 외나무다리에서 만난다더니 황승연 선생이 교장을 하는 진수해중학교에 오게 됐을까? 황 선생은 고중 1학년이나 겨우 졸업한 학력에 ‘문화대혁명’ 때 진수해 시내 반란파 두목 황종연의 2인자 아닌가? 그런데도 처분 받지 않고 어떻게 진수해중학교 교장으로 됐을까?)

사실, 황승연은 시골 함흥중학교에서도 학력이 낮은데다가 “문화대혁명”시기 반란파 두목이었기에 정치 세파에 밀려 교정을 떠났다. 그런데 그는 미꾸라지처럼 진수해공사 기업소에 기어들어가 일하면서 공장 당지부 서기에게 코밑치성을 잘한 덕에 당내에 기어들기까지 했던 것이다. 그 후 뇌물 작전을 펼쳐 진수해중학교에 되 기어들어와 교무처 주임을 하다가 나중에 무슨 도깨비 변신술을 썼는지 교장으로까지 승급됐다.

(진수해중학교에 사람이 없긴 없다. 정치를 한다하는 숱한 공농병 학원들도 황승연 앞에서는 비실비실 뒤로 물러서지 않는가? 진짜 ‘문무가 겸비’한 교장이니까! 위에 알락거리고 아래로는 교장 권세와 주먹을 휘두르는 판에 누가 감히 그와 엇서겠는가!)

덕돌은 한숨을 후- 내쉬었다.

“황 선생한테 잘 못 걸렸어. 어떻게 하면 이번 고비를 넘을까? 그래도 사제 간인데 내가 황교장 선생을 존중하면 웃는 낯에 차마 침이야 뱉겠는가!”

덕돌이 중얼거리다가 당직실을 나섰다.

하늘에는 별들이 총총하고 보름달이 유난히도 밝아 교정 안에 은빛달빛이 대낮처럼 쫙 깔려 있었다.

덕돌은 달빛이 깔린 교정이 쓸쓸하게만 느껴졌다.

학생들은 저녁 보도를 다 받고 하학해 삼삼오오 교실에서 나와 대문 어귀로 꾸역꾸역 밀려나왔다.

“백프로!”

“백프로!”

애들이 덕돌의 별명을 불렀다.

덕돌은 백프로란 별명도 별나게 가지지 않았다. 덕돌은 정치시간마다 애들의 숙제를 일일이 검사했다.

어느 하루, 3개 반의 학생들이 몽땅 숙제를 했다.

너무나 기쁜 나머지 덕돌은 웃으면서 “야, 난 오늘 정말 기쁩니다.”라고 했다.

초중 1학년 학생들은 코를 풀럭거리며 “어째 기쁩니까?”라고 물었다.

덕돌은 “오늘 내가 맡은 3개 반의 학생들이 숙제를 백프로 다 했습니다.”라고 했다.

그러자 학생들 속에서 “어우, 저게 백프로야, 백프로!”라고 했다.

그 후부터 학생들은 뒤에서 가만가만 덕돌을 보면 “백프로!”하고 별명을 불렀다. 어떤 여학생들은 덕돌의 웃음 띤 얼굴을 보고 인상이 백프로라고 하기도 했다.

덕돌은 애들이 별명을 부르자 괘씸했지만 또 사달을 칠까봐 못 들은척하고 교실 쪽으로 가서 교실마다 돌아다니면서 문을 제대로 잠갔는가 검사했다.

교연실의 조장으로 사업하는 경산선생과 남철수를 비롯한 로교원들은 덕돌을 보고 애들이 놀리면 꾹 참고 못 들은 척 하면 제일이라고 했다. 애들도 교원이 애나 하는 걸 보면 더 놀린다는 것이었다. 덕돌도 청년교원의 자존심을 다 버리고 아Q처럼 꿈 참고 못 들은 척 해보았다. 밸은 났지만 효과는 아주 좋았다. 애들이 더 놀리지 않는 것이었다.

이튿날 야단났다.

덕돌에게 덤벼들어 헤딩을 하다가 스스로 덕돌의 팔꿈치를 들이받은 애의 삼촌 둘에 사촌형까지 셋이나 찾아왔다.

덕돌은 시간을 보러 가다가 운동장에서 그들과 딱 마주쳤다.

“김 선생, 좀 보기요.”

덕돌은 주춤 멈춰 서며 학생들이 교실에 다 들어가고 텅텅 빈 운동장을 둘러보며 물었다.

“누굽니까? 강의시간이 늦어서 오래 말할 시간이 없습니다.”

“양, 오래 말할 필요 없소.”

그중 나이 서른 푼할 사내가 무릎을 꿇고 앉으면서 “여기 오오. 우리 앉아 얘기하기요”라고 했다.

덕돌은 별 생각이 없이 그 사내의 오른쪽에 앉으면서 자기를 쏘아보는 나머지 두 사람을 피뜩 쳐다보았다. 눈길이 그리 곱지 않았다. 아니, 살기등등했다.

(혹시 어제 애 때문에 온 게 아닐까?)

“난 수풀 림 자에 호랑이 호, 림호라고 하오. 사람들은 나를 수풀 속에서 뛰어나온 범이라고 하오.”

쪼그리고 앉은 사내가 말을 꺼냈다.

“김 선생, 주먹이 그리 세오?”

“무슨 말입니까?”

“야, 이 새끼야!”

고함소리와 함께 그 사내는 팔 굽으로 덕돌의 면상을 들이박았다.

덕돌은 뒤로 누우며 팔굽을 피하며 발길로 그자의 면상을 걷어찼다. 그자는 뜻밖의 날랜 반격에 면상을 채워 쓰러졌다. 덕돌의 교수안도 운동장에 날려났다.

“싸우러 왔어?”

덕돌은 뒤로 곤두박질쳐 벌떡 일어나며 싸울 태세를 갖췄다.

“이 개새끼야! 어째 우리 조카를 쳤니?!”

“죽어봐라!”

한사람은 시퍼런 칼을 빼들고 하나는 잔등에서 방치를 꺼내들고 동시에 덮쳐들었다. 덕돌이 날래게 허공잡이로 그자들의 어깨를 걷어차며 날아 넘어 갔다. 허나 칼에 종아리를 긁혔다.

셋이 호랑이들처럼 으르렁거리며 덮쳐들자 덕돌은 다리야 날 살려라 달아났다. 그자들은 덕돌을 쫓아 학교 숙사에까지 뛰어갔다.

덕돌은 숙사 식당에 뛰어 들어가 부엌에서 시퍼런 칼과 불갈고리를 들고 뛰어나왔다.

“우리 조카를 때렸으니 죽어도 말하지 마라!”

그때 칼을 쥔 자가 덮쳐들며 칼을 휘둘렀다. 방망이도 날아들었다.

덕돌은 불갈고리로 날아드는 칼을 걷어내며 와닥닥 그 자들의 사이로 빠져나가 달아났다. 덕돌이 교정이어서 창피해 달아나자 셋은 겁을 먹은 것으로 오해하고 바싹 뒤쫓았다. 허나 그들 셋이 달리는 속도가 달라졌다. 칼을 쥔 자가 제일 먼저 쫓아오는 것을 보고 덕돌은 홱 돌아서서 날아드는 비수를 불갈고리로 막고 칼등으로 허벅다리를 쳤다.

“앗!”

비명소리와 함께 그자가 비수를 떨어뜨리며 허벅다리를 붙잡고 푹 꼬꾸라졌다. 칼등으로 쳤기에 다행이었다.

그때 뒤따라온 자가 방망이로 덕돌의 머리를 내리쳤다. 덕돌이 급히 머리를 옆으로 피했지만 어깨를 탁 맞고 비칠거렸다. 덕돌은 쓰러지면서 그자의 재차 날아드는 방망이를 쳐냈다. 뒤이어 곤두박질쳐 일어나 어깨를 붙잡고 절뚝거리며 달아났다.

방망이를 휘두르던 자가 방망이를 버리고 쓰러진 자의 비수를 주어 들었다. 그자는 이를 악물고 덕돌을 뒤쫓았다. 림호도 헐떡거리며 뒤쫓아 갔다.

덕돌은 자기 학교 마당이어서 숱한 학생들과 교원들이 볼 까봐 학교 토성을 뛰어 넘어 달아났다. 둘은 비수와 방망이를 주어들고 뒤따라 토성에 기어올랐다. 그때 덕돌은 토성 넘어 딱 붙어 서 있다가 무쇠주먹을 휘둘러 토성을 붙잡은 손을 내리 쳤다.

“아가! 이 새끼, 돌로 친다!”

무쇠주먹에 맞은 손이 어찌나 아팠으면 돌로 쳤나 했겠는가! 허나 그자들은 죽기내기로 키 넘는 토성을 기어 넘어왔다. 그들의 몸이 평형을 잡기도 전에 덕돌은 발길을 날려 아랫배를 걷어찼다. 림호가 비수를 휘두르며 덮쳐들자 덕돌은 훌쩍 날아 림호의 숫구멍 위로 날아지나가면서 비수를 걷어찼다.

쉬-툭, 부르르.

비수가 채워 백양나무에 박혀 무서운 비명을 지르며 부르르 떨렸다.

다른 자가 덮쳐드는 것을 덕돌이 씽 몸을 날려 맞받아 나가면서 아랫배를 걷어찼다.

“휙” “휙” 소리와 함께 덕돌은 개구리가 물에 뛰어드는 동작으로 토성을 훌쩍 날아 넘어갔다 되 날아 넘어왔다.

그자들이 토성을 기어 넘어가자 덕돌이 로지심처럼 꿋꿋이 냉소하며 서 있었다.

그 자들은 눈이 뒤집혀질 지경으로 놀랐다.

“네깐 놈들과 상대 해 교원의 명예를 더럽히기는 싫다. 어서 꺼져. 반주검이 되기 전에.”

림호는 겁을 집어 먹고 칼에 찍힌 동생을 업고 학교마당에서 비실비실 사라졌다.

그제야 덕돌은 칼에 찍힌 종아리와 방망이에 맞은 어깨가 아파 상을 찡그렸다.

“잘한다, 잘해! 교원이라는 게 시간은 보지 않고 교정에서 학부모들과 싸워?”

덕돌이 돌아보니 황승연 교장이 우멍눈을 부라리며 다가왔다.

“중학교 때부터 주먹질 하던 개 버릇을 개를 떼 주겠니?”

덕돌은 참다못해 한마디 했다.

“교원은 그래 정당방위도 하지 못합니까?”

“정당방위? 불갈고리를 휘두르고서도 정당방위를 했어? 학부모를 쳐? 완전히 형사범죄자야.”

“내 먼저 칼에 찔렸는데도 정당방위를 하지 못합니까?”

“교원 형상을 다 팔아먹었다. 잘 검토할 준비를 해.”

“뭘 잘 못했다고 이럽니까?”

이때 경산 선생이 다가와 덕돌을 말렸다.

“숱한 사생들이 보는데 싸워서야 되니? 교장을 존중해야지. 뭐야?”

황승연은 우쭐해 을러멨다.

“보자, 보자 하니까. 덜 돼 먹은 놈 새끼군, 중학교 때도 나를 존중하지도 않더니. 흥, 어디 그래 봐라. 이번 일은 절대 용서할 수 없어. 학생을 때리고 학부모까지 칼과 불갈고리로 치다니. 흥!”

뒤이어 그는 머리를 돌려 경산을 흘겨보며 호통을 쳤다.

“교연실 조장이 뭐 합니까? 잘 교육하오.”

경산 선생은 “알았소. 내 책임질 테니 이 일은 조용히 해결하는 게 어떻소?”라고 하며 덕돌의 피 묻은 바지를 걷고 종아리 상처를 손수건으로 닦아주고 싸매주었다.

“얼른 병원에 가 처치해라.”

그는 덕돌을 얼려 병원에 보내고 대신 덕돌이 맡은 반에 들어가 대과교수를 해주었다.

덕돌이 공사병원에서 처치를 다 하고 학교로 돌아오는데 경산선생이 헐금씨금 달려 왔다.

“황승연이 널 교원대회에서 비판하겠다고 하더라. 그러지 말고 술과 통졸임 같은 걸 사가지고 승연을 찾아가 비판대회를 열지 말라고 통사정을 들이대라. 명색이 너의 스승이 아니고 뭐야? 웃는 얼굴에 침을 뱉겠니?”

허나 덕돌은 듣지 않았다.

“난 잘못한 게 없습니다. 황승연 교장께 코밑치성을 한다고 저를 봐줄 거 같습니까? 중학교 때부터 얼마나 수모를 당했다고 그럽니까?”

경산 선생은 덕돌의 손을 꼭 잡고 타일렀다.

“낮은 문턱일수록 머리를 숙여야 한다. 그러잖으면 낮은 문턱에 머리가 터진다.”

선생이 어찌나 간곡히 타이르는지 덕돌은 마지 못해 수긍하지 않으면 안됐다.
"점심에 그럼 찾아가 보겠습니다.”

허나 점심에 덕돌이 사탕과 과자, 술과 통졸임을 한 꾸럭 사들고 황승연 교장네 집으로 찾아갔다.

문을 두드리고 들어서자 황승연 교장은 손에 든 꾸럭을 보더니 훌 일어나 바깥으로 나가버렸다.

“보기도 싫어.”

그러나 덕돌은 내심하게 황승연 아내한테 그 꾸럭을 내려놓고 나왔다.

(웃는 낯에 침이야 뱉지 않겠지?)

덕돌은 한숨을 후 내쉬었다.

오후 2시가 되자 교연실의 스피카에서 전체 교원회의를 한다고 통지했다.

덕돌은 교원들과 함께 회의실에 갔다.

교원들이 다 회의실에 들어온 후 황승연 교장이 앞에 나가더니 다음과 같이 고래고래 고함쳤다.

“오늘 교원회의에서 교원 덕돌이 학생 박송호와 학부모 박림호 등 4명을 때린 착오를 비판하겠습니다.”

깜짝 놀란 교원들의 눈길이 덕돌에게 쏠렸다.

“우선 덕돌 선생으로부터 검사하겠습니다.”

덕돌도 뜻밖의 비판대회에 적이 놀랐다. 허나 그는 인차 진정하고 교원들 앞에 나가 서서 이른바 검토를 시작했다.

“저는 우선 사건진상부터 말하겠습니다.”

덕돌이 전날 저녁과 오전에 있은 일을 죽 이야기고 나서 이렇게 말했다.

“저는 박송호 학생이 불시에 헤딩하자 황급히 피하면서 몸부림쳤습니다. 그런데 송호가 스스로 저의 팔꿈치를 헤딩해 낯을 상했습니다. 저는 송호가 숱한 학생들 앞에서 내 별명을 부르고 결코 때린 적이 없습니다. 저는 당직으로서 책임을 다 했을 뿐입니다. 오히려 송호 학생이 3층 교실에서 떨어질 까봐 내리라고 조용히 타일렀습니다. 그래 3층 유리창문에 매달려 자습하는 여학생들에게 모래를 들이뿌리는 학생을 제지시킨 것이 잘못입니까? 전 정말 억울합니다. 저를 무슨 리유로 비판까지 합니까?”

그러자 교원들은 수군수군 했다.

“박송호란 애는 원래 애군이오. 맞아 싸오.”

“여자애들에게 모래를 치는 거 제지했는데 무슨 잘못이오?”

“어떻게 학생이 선생을 헤딩하오?”

“헤딩하다가 자기 힘에 김 선생의 팔꿈치를 들이받아 상한 게 누구 탓이오?”

그러자 황승연은 앞에 나가 교탁을 탕탕 두드렸다.

“분명 덕돌이 학생을 때린 걸 내 눈으로 봤습니다. 우리 학교 교원들의 명예를 다 더럽혔습니다. 숱한 사생들이 보는데 오전에 학부모 셋이나 때렸습니다.”

그 말에 청년 교원들 속에서 이런 말도 오갔다.

“‘문화대혁명’후 첫 패 대학생이 뭐 어떻고 어떻다더니 그저 그렇구먼.”

“본과생이면 뭘 대단하오? 주먹이나 휘두르는 깡패지.”

“그래도 우리 빈농의 재교육을 제대로 받은 공농병 학원이 사상이 제일이지.”

일부 공농병학원 출신 교원들은 평소에도 덕돌을 질투하더니 잘코사니야 하고 헐뜯어댔다.

그러자 황승연은 우쭐해 떠들어댔다.

“박림호라는 학부모는 머리를 채워 뇌진탕이 올 지경이고 박영호라는 학부모는 불갈고리에 맞아 다리를 절게 됐습니다. 박송호 학생의 사촌형 박용호는 토성을 넘어 달아나다가 덕돌이 돌로 쳐놓은 게 손가락뼈가 다 끊어져 병신이 됐습니다. 그래 교원으로서 할 짓을 했습니까? 덕돌은 교원이 아니라 깡패입니다. 중학교 때부터 무서운 싸움꿈입니다. 우리 진수해에서 덕돌이네 굴 뱀이라면 누가 모릅니까? 세살짜리 애들도 굴 뱀이 온다고 하면 울음을 딱 그칠 지경입니다.”

그때 덕돌이 황승연과 따지고 들었다.

“황 교장, 그래 교원은 학생과 학부모에게 들이대고 맞아대야 됩니까? ‘백프로’라고 별명을 부르면서 놀려대도 못 들은 척 하면서 아Q처럼 자기를 위안해야 합니까? 교원은 칼과 몽둥이를 휘두르는 학부모에게 찔리어 죽어도 정당방위를 하지 못합니까? 셋이 때리러 왔다가 피해 달아나면서 내 정당방위에 상한 게 누구 탓입니까? 학교에서 학생들에게 예절교육을 하지 않고 모욕당한 교원을 비판하는 것이 맞습니까? ‘문화대혁명’이 끝난지 몇 해인데 아직도 잘못이 없는 교원을 비판, 투쟁하겠습니까?”

황승연은 이를 악물며 덕돌을 쏘아보며 호통쳤다.

“이걸 보시오. 얼마나 완고한가? 자기 잘못을 검사하기는커녕 대드는 걸 보시오. 교원은 학생들에게 이신작칙의 모범을 보여야 해. 어떤 일이 있더라도 학생의 자존심을 상하게 해서는 안 되며 더욱이 손을 대서는 절대 안 돼!”

덕돌은 코웃음쳤다.

“황 교장, 그런 말을 하기 부끄럽지 않습니까?”

덕돌은 교원들을 향해 허리 굽혀 경례를 했다.

“제가 무례하게 중학교 스승의 잘못을 까밝히는 걸 양해해 주십시오. 황 선생은 함흥중학교에서 학생을 때린 적이 없습니까? 황 선생님은 저의 담임교원을 하면서 제가 종소리를 듣지 못하고 늦어 들어왔다고 저를 때려 코피를 흘리게 하지 않았습니까? 그러고서도 성차지 않아 저의 학습위원자격마저 취소하지 않았습니까? 선생님은 그렇게 학생의 자존심을 여지없이 짓밟고서도 오늘 저에게 이런 요구를 강요할 자격이 있습니까?”

“이걸 봐라! 넌 교원자격도 없다. 없어! 오늘 이게 널 비판하는 회의지 나를 비판하는 회의가 아니야. 이 깡패 같은 새끼야, 네가 우리 학교에 발을 붙이나 두고 보자!”

황승연은 분을 참지 못해 씩씩거리며 주먹을 으스러지게 쥐고 부르르 떨며 우멍눈으로 덕돌을 쏘아보았다. 숱한 교원들 앞이 아니면 당장 칠상이다.

남철수 선생도 떠들어댔다.

“이제 학교에 온지 몇 달 밖에 안 되는 신입교원을 비판하는 건 맞지 않소. 교육해야지 쩍 하면 사람을 비판하는 건 타당하지 않소. 교원은 그래 칼에 찍혀 죽어야 하오. 반항도 하지 못하고 정당방위도 하지 못한다는 게 세상에 어디 도리 있소?”

황승연은 회의를 계속 해 나가다나면 덕돌에게 망신당할 까봐 황급히 폐회를 선포했다.

“오늘 회의는 끝났습니다. 덕돌에게 자기 잘못을 뉘우칠 사상준비를 시킨 후 다시 비판대회를 열도록 하겠습니다. 한번 열어 안 되면 두 번, 두 번 안 되면 열 번, 저 덕돌이 사상개조를 제대로 할 때까지 비판대회를 열겠습니다.”

그러자 덕돌은 황승연을 거들떠도 보지 않으며 회의실에서 나가면서 말했다.

“백번이라도 여십시오. 난 끝까지 시비를 따질 것입니다.”

그날 회의는 그렇게 끝나버렸다.

경산 선생과 남철수 선생은 저녁에 당직실로  찾아와 덕돌을 타일렀다.

“그저 검사나 하고 지나가면 그만일 걸. 왜 긁어서 부스럼을 만드오? 큰 일 쳤소. 이제 저 황승연은 저를 놔둘 거 같지 않소. 이 일을 어쩌오?”

남철수 선생의 말에 덕돌은 하루 강아지 범을 무서운 줄 모른다고 굽어들지 않았다.

“제가 무슨 잘 못이 있어서 검사를 해야 한단 말입니까?”

경산선생은 그저 한숨만 후 내쉬다가 이렇게 말했다.

“덕돌이 술이랑 사가도 황승연이 저러오.”

“뭐라오?”

남철수는 저으기 놀라했다.

“얻어먹고서도 저런단 말이오? 이제 회의만 해보오. 가만 놔두지 않겠소.”

그러나 교활한 황승연은 다시는 비판대회를 열지 않았다. 괘씸한 생각 같아서는 백번도 비판대회를 열고 싶었지만 회의를 열었다가 덕돌에게서 무슨 반격을 당할지 몰랐기 때문이었다. 더욱이 숱한 교원들이 덕돌을 비판하는 것을 반대하는데다가 지어 교원들의 불만을 야기시킬 까봐 겁났던 것이다.

대신 혹독한 처벌을 감행했다.

그 이튿날부터 덕돌이 “착오를 지고서도 고치려고 하지 않고 태도가 나쁘다”는 이유로 교단에 오르지 못하며 반성하라고 했다. 그리고 “덕돌을 막후에서 조종한” 경산 선생은 농촌의 함흥중학교에 전근시키며 남철수선생도 교단에 오르지 못하며 총무처에 전근시킨다고 처분을 내렸다.

덕돌은 원래 문학창작에 뜻을 두었기에 교단에 오르지 못한다는 처분을 받은 것쯤은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그러나 그는 자기를 타이르다가 누명을 쓰고 처분 받은 경산 선생과 남철수 선생에게 미안했다.

농촌학교로 떠나가면서 경산 선생은 덕돌을 조용히 불렀다. 덕돌은 경산선생과 함께 이불 짐을 실은 소 수레를 몰고 시골 고향으로 내려갔다.

덕돌은 “선생님, 미안합니다. 저 때문에 이런 일이 생겨서.”라고 하며 머리를 숙였다.

경산 선생은 덕돌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걸으면서 조용히 말했다.

“괜찮다. 네 탓이 아니다. 다 황승연 때문이야. 시내 학교면 별거냐? 농촌 고향마을 학교에 가도 마음이 편해 좋다. 어디 황승연의 밑에서 교원질을 하겠니? 넌 신문사에 간 성환이랑과 연줄을 놔서 신문사로 가라. 고중 때 뜻대로 글이나 써라. 진수해학교에 있으면서 정신타격을 받을 게 있니?”

“알았습니다. 저는 아예 교원을 하지 말까고도 생각합니다. 제가 한 달만 대련에 가서 물고기를 사다가 장사하면 교원 일년 로임보다도 더 벌 수도 있습니다. 교원을 그만두고 장사나 하면서 살까 합니다.”

경산 선생은 주춤 멈춰서며 덕돌을 굳은 얼굴로 바라보았다.

“무슨 소리냐? 우린 이런 일을 당할수록 넘어진 곳에서 일어나야 한다. 네가 교원을 그만두고 장사나 해봐라. 황승연이 얼마나 좋아하겠니? 우린 시련을 이겨내고 황승연을 이겨야 한다. 알만하니?”

덕돌은 도리머리를 흔들었다.

“어찌 세상에 얽매여 산단 말입니까?”

“그렇다고 황승연 때문에 전도를 망치겠니? 꼭 황승연이 보라는 듯이 뜻을 펴야 한다. 알만하니?”

덕돌은 땅이 꺼지게 한숨을 후 내쉬었다.

머리를 들어 산을 바라보니 하늘이 꺼져 내린 듯이 눈앞이 온통 암흑천지로 변하고 있었다. 검퍼런 하늘에서 당장 우레 울고 번개 치면서 광풍폭우가 몰아치면서 소낙비가 억수로 쏟아질 것만 같았다.
 
             3. 설중매화

땡볕이 쨍쨍 내리 쬐는 무더운 여름에 덕돌은 2킬로미터나 되게 길고 가파른 고개를 자전거를 타고 한 번도 내리지 않고 올라갔다. 자전거를 밀고 가던 행인들은 모두 덕돌을 쳐다보며 혀를 끌끌 찼다.
“야, 그 청년이 맥이 좋긴 좋다.”

“이 오르막을 어떻게 자전거를 타고 올라가오?”
“글쎄 말이오.”

덕돌은 악을 딱 쓰고 오르막을 올라갔다. 령 마루에 오르자 진수해가 내려다보이며 눈앞이 캄캄해났다.

이때 남포소리가 꽈르릉 꽝꽝 울렸다. 순간 길 옆에 소소리 높이 치 솟은 쌍둥이 산 절벽에서 바위돌들이 와그르르 무너져 내려왔다.

자전거에서 내려 땀을 들이며 그 무너진 돌산을 바라보는 순간 자기 신세가 어쩜 저 돌산과 비슷한 감이 들어 즉흥시를 중얼중얼 읊었다.

 

             외로운 산아

 

         자욱한 안개 속에 잠겼나

          잡초 속에 우뚝 솟은 외로운 산

          흐리터분한 하늘아래 진창 속에 빠졌나

         천길만길 소소리 높은 칼산

 

        흐느끼며 서러움을 토하는구나

        후둑 후둑 떨어지는 빗물에 눈물에

 

       오, 모난 돌에 정이 온다더니

       이 내 머리 몸 마음을

       남포질로 폭파하고 정으로 깨버려

      볼 품 없이 돼 버렸구나

      푸른 이끼 낀 청청 바위 외로운 산

 

      어찌 하얀 광목을 쓰고

      더러운 뜨물에 뛰어들랴?

   
       차라리 침묵 지키며
       바위돌처럼  굳어지리라

      저 외로운 산으로

      차라리 꽈르릉 꽝꽝

      화산으로 폭발하리라

 

      개학날에 덕돌은 애들을 데리고 영화관에 가서 개학식에 참가했다. 그런데 숙사라고 당직실에 돌아와 보니 이불과 책궤가 없어지지 않았겠는가.

“웬 일이야?”

구질구질 내리는 비를 무릅쓰고 여기 저기 두리번거리며 살펴보다가 덕돌은 자기 눈을 의심했다. 글쎄 학교 변소 옆의 쓰레기 무지 옆에 이불과 책궤가 비를 맞고 있지 않겠는가.

“누가 이랬어?”

순간 덕돌은 코마루가 시큼해나며 서러움이 울컥 치솟아 올랐다.

“뭘 보고 이 학교에 와서 이런 모욕을 다 당해? 아무리 집 없는 독신교원이라고 해도 이렇게까지 할 수 있단 말인가?”

화난 덕돌은 비를 무릅쓰고 책궤 위에 이불을 얹어 둘러메고 당직실로 돌아왔다.

그때 뒤에서 벼락 치듯 한 고함소리-

“야, 누가 네 이불 짐을 당직실에 가져가라고 비준했냐?!”

돌아보니 황승연이었다.

덕돌은 성이 꼭뚜까지 치미는 것을 가까스로 참으며 거들떠보지도 않고 당직실에 이불 짐을 메고 들어갔다.

황승연은 뒤따라 들어오면서 고래고래 고함쳤다.

“이게 당직실이지 숙사인가?”

덕돌은 이불 짐을 구들에 놓은 후 돌아서서 황승연을 똑바로 쳐다보면서 물었다.

“그래 우리 독신교원들은 어디에 들랍니까? 학교 숙사를 두고 독신교원들을 들지도 못하게 하면서 당직실에도 들지 못하게 합니까?”

“시내에 나가 세집에 들어라. 우리 학교는 너 같은 외톨이를 거두는 민정소가 아니야.”

“그래서 내 이불을 비 오는 날에 변소 옆에 내던졌습니까? 당신도 인간입니까?”

“우리 학교에서 썩 꺼져라. 보기도 싫다.”

“정말 한 하늘을 쓰고 살지 못하겠습니까?”

“무슨 말이냐?”

덕돌은 밸을 눅잦히며 조용히 말했다.

“선생님, 제가 덕을 쌓지 못해 과거에 선생님을 제대로 존경하지 못한 건 잘 못입니다. 이제부터라도 저는 황 선생님을, 아니, 황교장 선생님을 스승으로 모시고 참된 교원으로 되려고 애를 쓰고 있습니다.”

허나 황승연은 한숨을 후- 내쉬더니 도리머리를 흔들었다.

“진심이냐? 너 아비와 물어봐라. 너 아비가 우리 형님을 감옥에 처넣고 나를 함흥중학교에서 쫓아냈다. 반란파라고. 그런데 지금 나를 보고 옛 제자로 받아 들여 달라고?”

황승연은 목구멍까지 올라온 이 말을 삼켜버리고 “흥!” 하고 콧방귀만 뀌더니 문을 쾅 박차고 나가버렸다.

덕돌은 어쩜 저런 원수 교장을 다 만났나 생각하니 속이 타 한숨이 연기로 돼 꾸역꾸역 뿜겨져나갔다.

“황 교장은 어쩔 수 없구나. 진짜 악연이라도 저런 놈의 악연은 어디에 있어?”

개학에 담임교원을 시키자 덕돌은 황 교장이 자기를 그래도 신임해 시켰나 여겼다. 허나 남철수 선생이 다른 교원들에게서 들었는데 황 교장은 사업부담을 꽉 안겨 덕돌을 혼내자고 담임을 시켰다는 것이었다.

그 말을 듣고 누가 안착하고 이 학교에서 교단에 오르려고 하겠는가?

허나 덕돌은 마음속으로 “문화대혁명” 후 첫 패 대학졸업생의 본때를 보여주려고 담임을 맡아 나섰다. 숱한 학부모들이 자기를 믿고 귀여운 자식들을 보냈는데 학생들을 책임져야 했다.

덕돌은 학교 운동대회를 계기로 해 식전이면 애들을 데리고 달리기연습을 했다. 하학하면 애들을 데리고 진수해 다리목까지 달아갔다가 달려 왔다. 처음에는 애들이 달리기를 싫어했지만 차차 달리니 신체도 좋아지고 공부도 잘돼 좋아했다.

운동대회 전날에 불미스러운 일이 벌어졌다.

업간체조시간에 선화가 노란 등산복을 입고 나갔다고 황교장이 숱한 애들 앞에서 야단쳤다.

“이게 누구네 반 애냐? 또 덕돌이네 반 애구나.”

그는 다짜고짜로 선화의 등산복을 벗겨내고 나팔바지 가랭이를 가위로 쭉쭉 째버렸다.

“학교 규정을 몰라? 학생들은 남색교복 외에 다른 색깔 옷을 입지 못해!”

선화는 두 손으로 눈물을 훔치며 집으로 쫓기어 갔다.

너덜거리는 바지를 춰 입고 집으로 울며 쫓기어 가는 선화를 보고 덕돌은 마음이 아팠다.

그는 업간체조가 끝난 후 교장실에 찾아가 황승연과 따지고 들었다.
“여학생이 고운 노란 옷을 입었는데 무슨 죄가 있습니까? 왜 바지까지 째서 쫓아 보냅니까?” 

황승연은 삶은 소 대가리 웃다가 꾸러미 터질 소리를 쳤다.

“원래 담임부터 사상이 틀려먹었구먼. 학생들이 노란 등산복을 입고 학교를 다니면 안되오. 애들이 벌써 멋을 따기 시작하면 양해난 암고양이처럼 아르릉거리며 연애하기 시작하오. 아주 위험한 신호요. 사상까지 변질한단 말이야.”

“그래 학생들은 고운 노란 등산복이랑 입지 못한단 말입니까!”

“노란 등산복 위에 남색 옷이거나 검정 옷을 껴입어야 해.”

“학생들이라고 고운 옷을 입지 못하고 미운 옷을 입으라는 게 도리에 맞습니까? 학생들도 자기 개성에 맞는 미감에 따라 아름다운 옷을 입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너 지금 누굴 훈계하느냐?! 이제 그 여학생이 한번만 더 노란 등산복을 입고 학교에 오면 업간체조시간에 전교 사생 앞에서 비판하고 퇴학시키겠어!”
"쳇! 두번째 문화대혁명을 하려는구만."
"뭐라고? 어찌고 어째?"
황승연은 이를 악물고 주먹을 쳐들었다.

덕돌은 무지막지하고 야만적인 독재자와 더 할 말이 없어 교장실에서 나왔다. 뒤에서 황승연은 덕돌을 잡아먹을 상하면서 눈깔을 데굴거렸다.

한창 아름다움을 추구할 어린 여학생들의 노란 등산복을 벗겨내고 가위로 바지를 째 버리는 것은 얼마나 무지막지한 건달행위인가. 고운 옷을 입기 좋아하는 여린 여학생들을 보고 강박적으로 남색 옷을 입거나 노란 등산복 위에 까만 옷을 껴입으라는 것은 얼마나 야만적인 독재자인가? 학생들로 하여금 자기 개성에 맞는 미감에 따라 아름다운 옷을 입고 개성적인 아름다움을 추구할 수 있게 해야 하지 않는가?

덕돌은 생각할수록 황승연이 이해되지 않았다.

“어쩜 저렇게 무지할까? 나를 보고 학생들의 자존심을 여지없이 짓밟는다고 하더니 자기는? 어린 선화의 마음에 얼마나 깊은 상처를 주었는가? 대학 문도 못 나온 무지, 정말 사생들을 해치는구나.”

이튿날 선화는 교실에 나타나지 않았다. 조바심이 난 덕돌은 선화 네 집으로 찾아가려고 학교 대문을 나섰다.

“선생님!”

귀에 익은 선화의 목소리였다.

머리를 돌려 보니 학교 대문 저쪽 골목에 선화가 서 있었다. 다가가면서 보니 남색학생복을 입은 선화의 어깨에는 책가방도 보이지 않았다. 그렇게 활발하고 예쁘게 생글방글 웃던 얼굴에는 검은 그림자가 어려 있었다. 덕돌은 그런 선화를 보고 마음이 아팠다.

“어째 교실에 들어가지 않고 여기 서있니? 가자.”

덕돌이 손을 잡아끌면서 말하자 선화는 머리를 숙인 채 뜻밖에 “선생님, 전 학교를 그만 둘까 합니다.”라고 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뭐라고? 그게 무슨 소리냐?”

(학교에서 어떻게 애들을 들볶았으면 퇴학까지 하겠다고 하겠는가? 다 황승연의 죄악이야.)

“넌 공부를 잘해 이담 여류작가로 돼야 한다.”

덕돌은 착잡한 생각에 잠긴 채 놀라움을 감추지 못해 목소리마저 떨렸다.

허나 선화는 검은 그림자가 흘러가는 얼굴을 폭 숙이더니 가녀린 어깨를 들먹이기 시작했다.

“선생님, 미안합니다. 선생님의 기대대로 하지 못할 거 같습니다. 고운 옷도 입지 못하게 하는 이 학교를 다니기 정말 싫습니다. 공부도 하기 싫고 글쓰기도 싫습니다. 어머니가 하는 말이 글을 써서 성공하기 아주 힘들다고 합디다. 저는 학교를 그만두고 문화소에 다니면서 노래공부나 해 가수로 되렵니다.”

“뭐라고 가수?”

순간 덕돌은 굳어졌던 얼굴이 점차 풀리었다.

“그래, 가수도 좋지. 허나 가수로 되려면 문화지식도 배워야 한다.”

한식경이나 되는 덕돌의 따뜻한 사랑이 담긴 말에 감화된 선화는 학교를 그만두려는 생각을 잠시 접고 집에 돌아가 책가방을 메고 교실에 들어섰다.

그날부터 하학하면 덕돌은 선화를 문화소에 보내 성악공부를 시켰다.

일요일에 덕돌은 선화를 데리고 가무단의 송선 선생을 찾아갔다.

송선은 호리호리하고 훤칠해 물 찬 제비 같은 선화의 체격과 예쁘고 외씨같이 걀쭉한 얼굴을 보고 아주 흡족해 했다.

그녀는 덕돌을 한쪽 구석에 데리고 가서 조용히 말했다.

“무용을 배워줄만한 애요. 허나 성악을 한다면서 무용을 배워 뭘 하오?”

덕돌은 비난사정을 했다.

“무용과 음악이 뭐 그리 계선이 큽니까? 선화가 무용도 배워 장차 진짜 종합예술능력을 갖춘 가수로 됐으면 좋겠습니다.”

송선은 흔쾌히 대답했다.

“정 그렇다면 무용을 배워주지.”

그녀는 애티를 벗고 숙성한 덕돌을 훑어보며 조용히 물었다.

“영자는 소식이 있소?”

“없습니다. 저는 영자를 잊었습니다. 매정한 처녀애지. 어쩜 소식 한마디조차 알리지 않는단 말입니까?”

순간 덕돌은 코마루가 시큼해났다. 허나 선화가 한쪽에 앉아 있어 더 말할수 없었고 눈물을 보일 수 없었다.

며칠 후 학교 운동대회 때 선화는 전교 사생들 앞에서 마이크를 잡고 아주 청아하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노래를 간드러지게 불렀다. 덕돌은 흐뭇한 눈길로 김선화를 보면서 장차 유명한 여가수를 방불히 보는 상 싶어 흐뭇했다.

평시에 군사훈련처럼 장거리달리기를 한 덕돌의 학생들은 100미터 달리기로부터 모든 항목에서 거의 우승을 따내 경쟁자들을 뒤로 멀리 떨어뜨려 놓았다.

헌데 씨름시합에서 문제가 생겼다.

해동촌에서 왔다는 동철이란 애는 2년이나 낙제했는데 덕돌의 학급의 김수일 보다 머리 하나는 더 컸다. 힘도 어찌나 센지 어지간한 애들은 아예 허리를 꽉 끌어안아 당겨 꺾으면서 재껴 버리곤 했다.

수일은 아예 기권하려고 했다.

그러자 덕돌은 감독처럼 수일을 교실에 데리고 가서 먼저 용기를 북돋아주었다.

“씨름이나 싸움이나 덩치 따위에 있는 게 아니다. 뭐나 정신이 관건이다. 신심을 가지고 나서라.”

“그 큰 애를 어떻게 이긴다고 그럽니까?”

덕돌은 그 애를 이길 씨름 몇 개 동작을 배워주었다.

그제야 수일은 다시 씨름판으로 돌아갔다.

수일은 결승전에서 끝내 해동촌의 동철과 맞붙게 됐다.

동철은 샷바를 잡을 때부터 어린 수일을 업신여기며 고의로 허리를 꽉 끌어 당겨 품안에 걷어 넣었다. 수일은 머리도 들지 못하고 눌리어 숨도 쉬기 어려웠다.

그런데 저게 뭐야?

시작 호각을 불자마자 수일이 성난 뜨개소처럼 동철을 머리로 콱 떠밀며 손으로 허벅다리를 탁 쳐 콱 당겼다.

동철은 덩치나 컸지 힘도 써보지 못하고 모래에 엉덩방아를 찧고 말았다. 동철은 입을 허 벌리고 물앉아 수일을 쏘아봤다. 너무나도 억울해 도리머리를 흔들었다.

3판 2승의 두번째 판이 시작됐다. 동철은 또 안손을 맞을까봐 이번에는 수일을 꽉 껴안지 못하고 두 손으로 수일의 허벅다리를 밀며 경계하며 일어났다. 이젠 됐다 싶어 동철은 또다시 수일을 마구 떠밀며 이리저리 밀었다 당겼다 하며 태를 치려고 서둘렀다. 동철이 또 떠밀며 다리마저 들어올 때었다. 수일은 두 손으로 다리를 꽉 잡아당기다가 오른손을 사타구니 밑에 넣어 동철을 허공 쳐들었다. 동철은 겁기를 띄우며 수일의 어깨 위에서 허공 돌다가 썩박나무처럼 처박혔다.

“야, 수일이 이겼다!”

선화랑 지송남이랑 두 손을 쳐들고 퐁퐁 뛰며 환성을 질렀다.

덕돌은 씨름판으로 달려 들어가 수일을 껴안았다.

“우리 수일이 1등이다! 일등!”

덕돌은 수일을 건뜻 들어 목마를 태우고 씨름판을 한바퀴 돌았다.

그때 웬 청년이 씨름판에 뛰어들어 덕돌과 수일을 쏘아보았다.

“선생, 너덜거리지 마오! 한판 붙어 보기요.”

덕돌이 보니 그 청년은 눈에 독기가 어려 있었다.

“여긴 학교 학생들의 씨름판이지 사회 청년들의 씨름판이 아니오.”

그 청년은 샷바를 쥐고 씨름판을 에돌면서 덕돌을 노려보는 것이었다.

“어째? 겁나오?!”

덕돌은 냉소하며 수일을 목에서 내려놓았다. 사생들은 구경거리가 생길 거 같아 눈을 크게 뜨고 그 청년과 덕돌을 번갈아보았다. 선화랑 송남이랑 마음을 졸이며 근심했다.

허나 덕돌은 거들떠도 보지 않고 “자넨 누구요?”라고 물었다.

“동철의 삼촌 철석이오.”

덕돌은 머리를 끄덕였다. 허나 대답은 왕청 같았다.

“난 씨름 할 줄 모르오. 황차 내보다 어린 사람들과 놀지도 않소.”

“어째 겁나오?”

약을 올리고 있었다.

그때 수일이 말렸다.
“선생님, 하지 마십시오. 저 사람은 진수해에서도 이름난 씨름꾼입니다. 황소를 몇 번 탔답디다.”

      덕돌은 철석과 한번 붙어보기 싶어졌다. 허나 학교 마당에서 붙기는 또 말썽을 일으킬까 봐 눈치 보였다.

“후에 조용할 때 보기요.”

“오늘 한판 붙어 보기요.”

허나 덕돌은 희죽이 웃으면서 나직이 말했다.

“난 이날 이때까지 진수해에 철석이란 씨름꾼이 있다는 말은 들어 본적도 없소. 후에 보기요.”

동철도 삼촌을 말렸다.

“삼촌, 저 선생은 진수해에서 굴뱀으로 이름났습니다.”

“난 씨름판 싸움판 다 돌아다녀도 덕돌이라는 이름을 들어본 적도 없다.”

“아마 저 선생이 대학을 간 후여서 삼촌이 듣지 못했을 게요.”

동철은 덕돌과 수일을 흘겨보며 철석을 잡아끌며 씨름판을 떠났다. 체육교원들도 다른 학년의 씨름을 시작해야 하기에 철석을 말려 보냈다.

그때 황교장이 덕돌의 눈치를 흘끔흘끔 살피면서 슬그머니 미꾸라지처럼 사생들 속에서 빠져나가 동철과 철석이 가버린 쪽으로 사라졌다.

덕돌이네 반에서 운동성적은 거의 모든 항목의 우승을 따낼 지경이었다. 하지만 우승월계관은 차례지지 않았다. 이유는 황승연 교장 말에 있었다.

“덕돌이네 반에서는 한 학생이 3개 항목 이상 경기에 참가하지 못한다는 경기 규정을 어겼다.”

덕돌은 황승연에게 무함당해 우승월계관은 타지 못해 억울했다. 체육위원인 지송남이랑 중대장인 수일이랑 보기 미안했고 황승연이 괘씸하기 짝이 없었다.

(진짜 악연이구나. 아무리 은사님이라고 존중하고 잘 받들려고 했지만 소용없구나. 다른 방도가 있어야지.)

덕돌은 이런 생각을 굴리는데 생각지 않은 동철이 해동마을의 숱한 애들과 무리를 지어 다니면서 하학해 집으로 돌아가는 수일을 막아 자꾸 싸움을 걸고 물매를 안기곤 했다.

덕돌은 주먹을 으스러지게 틀어쥐었다. 허나 동철도 학생인지라 주먹을 휘두를 수 없어 조용히 동철이네 담임을 찾아가 정황을 말하고 애들이 더 싸우지 말게 말리게 했다.

허나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애들은 담임교원 앞에서는 다시 때리지 않겠다고 했다. 하지만 하학하고 돌아갈 때면 해동다리를 막지 않으면 철교를 막고 홀로 집으로 돌아가는 수일을 때리곤 했다. 독불장군이라고 수일은 송남을 내놓고 마을 친구가 별로 없어 늘 얻어맞아 얼굴에 흉터가 생긴 채 학교를 다녔다.

덕돌은 어쩌는 수 없어 하학하면 수일을 집에 데려다 주곤 했다. 덕돌이 뉘엿뉘엿 지는 해를 바라보며 수일을 데리고 철교를 지날 때였다.

“백프로 왔다!”

덕돌을 본 해동마을의 애들은 겁을 집어 먹고 버들방천으로 뛰어 들어가 자취를 감추어버렸다.

덕돌은 한 보름 동안 수일과 여학생들을 집에 데려다 주었다.

덕돌이 당직을 서던 어느 날이었다.

덕돌이 교정을 돌아보는데 키가 구척이나 되는 낯선 한족청년들 셋이 사냥총과 새총을 들고 들어와 나무에 앉은 새를 “땅!” “땅!” 쏘는 것이었다. 지어 교정의 애나무들을 마구 끊는 것이었다.

(아니, 저 나무들은 우리 사생들이 어떻게 날라다 심은 거라고 꺾어? 열댓 살 나는 애들을 데리고 시내에서 15 리나 떨어진 눈 덮인 대포산에 가서 끌고 밀고 해 가져다 심은 건데.)

덕돌은 마음이 아파 사회 불량배들에게 다가가 처음에는 내심하게 부드러운 말로 말렸다.

“학생들이 저녁에 공부를 하는데 학교 마당에서 총을 쏘면서 새를 잡아선 안 돼. 어서 교정에서 나가라!”

“뭐라고?”

“당신 누구야?”

“당직교원이다. 어서 나가라. 나무를 꺾어선 안 돼.”

그 불량배들은 교정에 숱한 교원들이 있는지라 눈치를 흘금거리며 못이기는 척 하며 교정을 나갔다.

덕돌이 깊이 잠든 한 밤중에 바깥이 소란스러워졌다.

“나오라!”

잘라당!

유리창문이 박살나 당직실 안에 유리 쪼각이 날려 들어왔다. 만순은 겁나 침대 밑에 숨고 덕돌은 바깥으로 눈을 비비며 문을 박차고 떠드는 불량배들한테 나갔다. 분명 낮에 왔던 불량배들이었다.

달빛에 서슬 푸른 빛이 번쩍했다. 칼이었다. 덕돌은 문 뒤에 슬쩍 물러섰다. 뒤에 섰던 다른 불량배의 두 번째로 칼이 날아들 때 덕돌은 미처 반응을 하지 못했다. 칼이 덕돌의 목을 겨누고 쉭 날아 내려왔다.

그 찰나 뒤에 있던 교원 차영천이 칼을 휘두르는 불량배의 손목을 딱 틀어쥐고 칼을 빼앗아냈다.

“죽여라!”

바깥에서 불량배 셋이 몽둥이와 칼을 휘두르며 고래고래 고함쳤다.

그때 숱한 교원들이 달려왔다. 남철수 교원이 파출소에 알리자 새 불량배들은 교정에서 도망쳐버렸다.

그날 저녁에 장기를 놀러 왔던 차영천이 아니었더라면 덕돌은 교정의 나무를 지키려다가 목숨을 잃었을 것이다. 다행히 불량배들이 휘두른 칼이 배 가죽을 가르고 지나갔던 것이다.

원수는 외나무다리에서 만난다고 전날에 칼을 휘두르던 한 불량배가 이튿날 오후에 아무 일도 없는 듯이 또 교정에 나타나 사냥총으로 새를 잡고 있었다.

그때 덕돌이 뛰어나가 잡으려고 하자 교연실 주임 남철수가 말렸다.

“안 되오. 당신이 가면 달아나오. 먼저 내 가서 사냥총을 뺏으면 그때 달려와서 붙잡소.”

말을 마치자 남철수는 슬금슬금 그 자의 곁으로 다가가 와닥닥 달려들어 사냥총을 꽉 잡았다. 그때 덕돌이 덮쳐나가 그 불량배를 붙잡았다. 교원들은 인차 부근의 파출소에 알려 불량배를 붙잡아 가게 했다.

허나 사흘도 지나지 않아 그 불량배가 또 교정에 나타나 애를 먹였다. 원래 한족민경이 그 불량배를 처리도 하지 않고 놔버렸던 것이다.

남철수와 덕돌은 진수해 공안국에 가서 김창남 국장과 진수해진 진장 이인학, 진수해 파출소 허영호 소장을 찾아가 반영했다.

이인학 진장은 그 자리로 파출소에 전화를 걸어 그 한족민경에게 호통치며 훈계했다.
“오늘내로 그 불량배를 잡아 처리해. 안 그럼 경찰복을 벗을 줄 아오.”

       덕돌에게 칼을 휘둘러 찌른 그 불량배들은 경찰들에게 다시 붙잡혀 법에 의해 처리됐다. 덕돌과 차영천, 남철수 교원은 용감히 불량배들과 싸운 “정의용사”로 교육계통에서 표창받았다.

눈보라가 휘몰아치는 겨울에는 큰 일이었다.

덕돌은 기말시험을 맞으면서 애들에게 하루 복습내용을 그어주고 암송하는 족족 집으로 보냈다. 차디찬 빛을 뿌리는 겨울 해가 서산으로 그물그물 넘어가면서 창문을 꿰뚫고 교실 안에 석조를 가늘게 비치었다.

학생들은 기말복습답안을 암송하느라고 머리를 싸쥐고 중이 경을 읽듯이 중얼중얼 했다.

애들이 다 암송하기를 기다리려 교탁 앞에서 검사하고 돌려보내노라면 흔히 토끼꼬리만한 겨울 해가 진 뒤였다. 그런데도 해동촌의 애들은 아직도 철교가 아니면 해동다리를 막고 수일을 때릴 기회를 노리었다.

눈보라 치는 날에도 덕돌은 어두운 밤에 집으로 돌아가기 겁이 나 하는 수일이랑 해금이랑 데리고 해동다리 아니면 철교를 건너 집으로 데려다 주었다. 덕돌이 나타나기만 하면 해동마을의 애들은 흩어져 집으로 달아났다.

눈보라가 윙윙 휘몰아치는 저쪽에 게딱지 같은 초가집들의 희미한 전등불이 보였다.

“선생님, 이젠 돌아가십시오. 마을에 다 왔습니다.”

수일이 손을 잡고 사정했지만 덕돌은 시름이 놓이지 않았다.

“안 돼. 일이 나면 어쩌니?”

이때 해금과 분옥도 말리었다.

“선생님, 우리 아버지랑 집 앞에서 기다릴 겁니다. 근심하지 말고 돌아가십시오.”

그제야 덕돌은 그 자리에 멈춰 섰다.

“그래, 내 여기 서서 너희들이 집에까지 가는 걸 지킬 테야. 해동마을 애들이 마을 어귀에 숨어 있으면 어쩌겠니? 어서 달려 집으로 달려가라! 집에 무사히 다 갔으면 소리쳐라!”

“예, 선생님 감사합니다.”

애들 셋은 허리 굽혀 인사하고 눈보라 속으로 달려갔다. 학생들이 달려가는 발자국소리가 점점 낮아지고 그들 셋의 모습이 아물거리다가 눈보라 속에 사라져갔다.

덕돌은 눈보라 속에 흑점으로 돼 사라지는 애들을 보며 혹시 무슨 일이 있는가 계속 서서 어둑어둑한 마을 저쪽에서 눈을 떼지 않고 귀를 도사렸다. 눈보라가 휘몰아치는 윙윙 소리 밖에 들리지 않았다.

이때 애들의 목소리가 윙윙 휘몰아치는 눈보라 속에 들려왔다.

“선생님, 돌아가십시오!”

“우린 무사히 집으로 돌아 왔습니다!”

"양, 내일 다시 만나기오. 복습을 잘 하오."

“선생님, 감사합니다!”

그 마지막 외침소리 속에는 어른들의 목소리도 있었다.

밤하늘에는 사생들의 정어린 외침소리가 오래도록 메아리쳤다.

그제야 덕돌은 시름을 놓고 한숨을 후 내쉬며 시내 쪽으로 발목까지 풍풍 빠지는 눈길을 터벅터벅 발걸음을 옮겼다.

숙사라고 싸늘한 당직실로 돌아와 물을 먹으려고 보니 물독이 떵떵 얼어붙어 있지 않겠는가.

중천정을 얹지도 않고 대신 신문종이를 천정에 대충 붙여놓은 당직실은 겉바람이 세어서 개를 달 지경이었다. 소대가리도 얼어 터질 엄동설한에 바깥에서는 눈보라가 쌩쌩 휘몰아쳐 모래알 같은 눈가루가 성에장이 두툼하게 낀 유리창문을 때렸다.

덕돌은 허구픈 웃음을 웃고 나서 비닐바가지를 쥐고 주먹으로 살얼음을 툭툭 쳐 까고 얼음 쪼각이 둥둥 뜬 찬 물을 퍼서 꿀꺽꿀꺽 마셨다.

너무 추워서 덕돌은 언 손을 호호 불면서 풍설이 무섭게 이는 바깥에 나가 교실 뒤 눈 속에 파묻힌 싸리를 주어다가 아궁이에 쑤셔 넣고 석탄불을 일구어 죽으라고 땠다. 순간 구들 이 곳 저 곳에서 연기가 나고 가마 안에서 뜬 김이 쌕 뿜겨져 나오면서 매캐한 냄새가 목안을 찔렀고 뜬 김이 꽉 차 어디가 어딘지 분간하기 힘들었다. 부득불 문에 바오라기를 끼워 문틈을 내 군내와 뜬 김이 빠지게 문을 끌어매지 않으면 안 됐다. 그는 주린 배를 달래면서 씻은 찹쌀을 대야에 담아 물을 부은 가마 안에 넣었다. 한참 후에 물이 끓으면서 달랑달랑 소리를 내며 끓었다. 감자장도 끓일 데도 없고 그런 겨를도 없어 장에 마늘을 찍어 먹을 때가 많았다. 어떤 때에는 담임교원을 하느라고 눈 코 뜰 새 없이 돌아치다나니 미처 밥도 하지 못해 보온병의 뜨거운 물을 쏟아 놓고 숟가락으로 묵은 언 밥을 꾹꾹 찍어 녹여 대충 먹곤 했다. 그러니 위가 성하겠는가. 영양 결핍으로 해 늘 해나른하고 피곤하고 머리가 흐리터분했다.

저녁이라고 대충 간장 물에 마늘을 찍어 햄을 하면서 먹고 나서 이튿날 먹을 밥을 지을 쌀을 미리 씻어 놓았다.

그제야 한숨을 후 내쉬면서 덕돌은 이불을 들쓰고 겉바람이 세서 가죽 털모자까지 쓰고 소설책을 들었다. 아무리 고독하고 적막하고 쓸쓸해도 책만 들면 위안되고 소설 속의 이야기와 정서에 따라 마음을 움직이면서 온정을 찾곤 했다. 어떤 때에는 책을 보다가 너무 곤해 잠을 자려고 해도 연기를 먹고 죽을 것 같아 잘 수 없었다. 그리하여 덕돌은 궁리 끝에 문에 바를 끼워놓고 문틈을 낸 후 바줄로 문고리를 걸어 맸다. 잠든 후 군내를 먹지도 않고 문도 더 열리지 않아 좋을 것 같았다.

학교 탁아소에서 자는 미숙이란 처녀교원은 두 번이나 군내를 먹고 약혼한 철수에게 업히어 병원에 입원해 치료를 받은 적이 있었다. 그리하여 덕돌은 밤중까지 책을 보다가도 술을 둬 냥 쪽 마시고 다리를 옹송그린 채 새우잠을 자곤 했다. 후에 만순이 당직실에 들어와 함께 동무해 있을 때에는 항상 너무 추워 한 이불에 들어 서로 잔등을 대고 이불 두 채를 한데 겹쳐 덮고 잤다.

독신교원들이 이렇게 고생해도 교장 황승연은 근본 관심하기는커녕 교원숙사를 두고서도 독신교원들을 다 쫓아냈다. 대신 이른바 학교 명예를 지키는 축구선수 학생들을 넣어 길렀다.

만순과 덕돌이 학교에 돈을 내고 보이라 실의 석탄을 실어다 때겠다고 하자 황교장은 총무과에 시켜 독신청년교원들의 그 얇은 로임 봉투에서 석탄 6톤 값이나 잘라냈다. 온 동삼 9평방도 되나마나한 당직실에 석탄을 그렇게 땔 수 없을 것은 불 보듯 환한 일이었다. 아침에는 근본 불을 땔 새 없어 저녁에만 땐 형편이었다. 아무리 추워 불을 많이 때도 풍무 없는 아궁이에 한 달에 한톤 반씩이나 때였을까? 그것도 겨울방학에는 한 달 반이나 집에 가 있었는데.

아무리 홀로 사는 독신교원들이라고 업신여겨도 분수 있어야지.  

문이 벌어진 당직실에 불을 때니 그래도 벽에 번들번들 얼었던 얼음이 뜬 김에 이슬이 맺히더니 드디어 물방울이 줄줄 흘러내리기 시작하고 창문에 얼어붙었던 성에장도 녹아 암흑천지인 바깥이 내다보였다. 그래도 집에 화기가 도니 천정의 쥐들도 좋다고 바스락거리며 뛰놀았다. 숙사보다도 교무실이거나 교실에 나가면 따뜻해 아주 좋았다. 정말 물독이 떵떵 어는 숙사에 돌아오면 추워서 으쓱 같았다.

“엄동설한 냉혹한 환경에서 몇 해나 견뎌 낼까?”

덕돌은 허구픈 냉소를 지었다.

“그대여, 생활이 그대를 아무리 어렵게 굴고 버리더라도 그대는 노여워하지 말고 참고 견디시라. 꼭 이겨내시리라.”

덕돌은 스스로 이렇게 마음을 다지면서 이불을 쿡 들쓰고 윙윙 휘몰아치는 바깥 눈보라의 아처런 울음소리를 들으며 아름다운 미래를 꿈꾸면서 소르르 잠이 들었다.

덕돌과 더불어 군내를 먹고 추운 고생을 하며 희노애락을 함께 한 쥐들이 당직실 천정에서 찍찍 소리 내며 비명을 질렀다. 그들이야 말로 황승연 교장보다 군내 나고 그은 천정 밑의 손바닥만한 당직실에서 외롭게 고생하는 덕돌과 만순과 동고동락하면서 동정해 우는 것이 아니겠는가!

불을 때 집안이 따뜻해지고 군내가 나지 않는 날에는 쥐들도 좋다고 천정에서 뛰놀았고 군내 나고 추우면 쥐들은 천정에서 찍찍거리며 비명을 질렀다. 이젠 덕돌은 쥐의 비명소리를 들으면 벌떡 일어나 코를 벌름거리며 “흡흡” 하고 면내 나지 않나 냄새를 맡아보고 문을 열어 군내를 빼곤 했다.

덕돌은 천정을 쳐다보면서 어처구니없어 중얼거렸다.

“에이, 너네도 이 집 천정에 잘못 들었다. 나와 함께 이런 내군 고생을 할 게 뭐니? 나는 학교에 얽매인 몸이지만 너넨 군내 없는 집에 자유롭게 이사할 수 있잖느냐?”

순간 덕돌은 쥐들이 불쌍해 엉거주춤 일어나 천정종이를 칼로 손바닥만큼 도리어냈다.

“뭐 하려고 그래?”

덕돌은 전기밥가마에서 밥과 돼지고기 점을 종지에 담아 천정에 올려놓으면서 중얼거렸다.

“쥐들도 양력설을 쇠게 해야지.”

그제야 만순은 “허허허.” 하고 너털웃음을 치더니

“그래, 황승연을 줄 고기는 없어도 우리와 희노애락을 함께 하는 쥐를 주는 게 낫지.” 하고 덧붙였다.

덕돌은 속이 답답해 물고기 장사를 해 번 돈으로 싼 녹음기를 틀어놓았다.

바깥에서는 눈보라가 휘몰아쳤지만 오두막 같은 당직실에서는 세계 명곡이 격정 넘치게 메아리쳤다. 특히 주현미나 김용임 등 한국 여가수들의 정서적인 노래 소리는 그의 스트레스를 해소해주고 정서를 조절해주었을 뿐만 아니라 최대의 정신위안을 해주었다. 음악을 듣노라면 모든 스트레스가 해소돼가고 그 시각만큼은 모든 고민과 불안을 다 잊고 아름다운 선율에 매혹돼 흥얼거리곤 했다. 천정에서 쥐들도 좋다고 찍찍 거리면서 돼지고기를 먹으면서 사교무를 추는지 바스락거리면서 야단 쳤다.

이튿날 아침 바깥에 나와 눈보라가 아우성치며 불어치는 주위를 둘러보던 그는 자기 눈을 의심하며 놀랐다.

흰 용이 꿈틀거리는 듯이 휘몰아치는 눈보라는 흰 룡이 꿈틀거리듯이 학교 운동장을 핥으면서 꿈틀거렸다. 하얀 눈 덮인 대지는 마치 흰 상복을 입은듯한데 눈보라가 무섭게 아우성치며 휘몰아치는 속에 앙상한 나무들이 눈송이들을 떠이고 몸부림치지 않겠는가. 그런데 그 눈송이들을 떠인 나무들이 마치 엄동설한에도 끄떡하지 않는 매화 같지 않겠는가!

      아, 너무 혹독하고 처절한 엄동설한이여, 빼앗긴 들에도 새  봄은 오려는가? 언제면 혹한 속에서도 매화가 오동통 소담한 흰 꽃을 피우는 사랑의 새 봄이 오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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