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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장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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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하소설 진달래 소야곡(19)
2018년 07월 07일 12시 36분  조회:1564  추천:0  작성자: 김장혁






                       36. 국장의 사위
대지를 휩쓸던 무더위가 서서히 물러가고 선들선들 가을바람이 불어왔다. 지구촌  명화가는 벌써 산기슭으로부터 올라가면서 누렇게 산수화를 그리기 시작했다. 천지꽃산 중턱 바위틈에서 진달래가 새해 봄에 연분홍꽃을 피울 것을 기약하며 도라지춤을 추고 있었으며 울긋불긋 단풍이 물들기 시작했다. 참말로 한폭의 멋진 가을의 산수화를 방불케 했다.
종수는 황금물결이 출렁이는 전야를 둘러보자 아직도 농민 아들답게 가슴이 부풀어올랐다. 그는시원한 가을 공기를 한 가슴 가득히 한껏 들이켰다.
“아, 올해도 만풍년이 들었구나.”
그는 일요일이 돌아오자 농촌에 내려가 낫을 들고 가을걷이를 하고 싶었다. 이전에 그는 가을만 되면 고향에 돌아가 부모를 도와 가을걷이를 하는데 습관되였다. 그러나 국장의 사위로 된 덕분에 운명을 탈바꿈해 낫을 들잖게 됐고 신문사 기자로 됐다.
중학교 때부터 글짓기를 잘한 그의 리상은 신문사 기자로 되는 것이였다. 그는 기자 꿈을 실현하려고 졸업 전야에 친척의 소개로 한족처녀 류려평과 눈을 질끈 감고  번개식 결혼을 했다. 국장 자리를 지키는 가시아버지 덕분에 그는 자그마한 신문사 기자로 됐을 뿐만 아니라 부모와 동생들까지 줄줄이 시내에 호적을 붙였다. 그리하여 세세대대 농촌에서 땅을 파던 부모형제의 팔자를 고쳐주었다.
한참 궁리하던 그의 머리에는 성호가 피뜩 떠올랐다.
(성호네 집이야 말로 개혁개방 시기 신형농촌 만원호야. 신문에 내자.)
그는 성호를 불쌍한 놈이라고 여겼다.
(어쩜 대학을 졸업하고 소궁둥이를 친단 말인가? 아무리 경제시대에 돈이 중하다고 해도 그렇지. 정치경제학을  밑구멍으로 배웠어? 못난 놈! 이게 언제라고 아직도 소농경제사상에 물젖어? 에이, 말도 안돼!)
종수는 성호를 시내에 데려오고 싶었다. 의리심도 강하고 소박한 성호를 가까이 두고 서로 도우면서 살고 싶었다.
그가 낫을 쥐고 자전거에 오르려 할 때다.
“어디로 가오?”
언제 왔는지 뒤에서 가시어머니가 표독스런 눈길로 쏘아보며 두덜거렸다. 
“쉬는 날에나 좀 집일을 했으면 얼마나 좋겠소? 빨래를 하고 집을 좀 거두오.”
종수는 자전거를 멈춰 세우면서 얼굴에 언짢은 기색을 띄였다.
“빨래야 세탁기에 처넣으면 되는데 뭘 자꾸 그럽니까?”
“어쩜 색시를 생각할줄 모르오? 가마목 소금도 줴놓아야 짜다고 빨래가 제절로 세탁기에 달아들어가오?.”
그때 안해 류려평이 딸애를 안고 나오면서 우방을 눈치질하면서 말렸다.
“엄마, 그만해요.”
그녀는 남편을 보고 “어서 가봐요.”라고 했다.
“뉘 덕에 기자로 됐는가? 부모형제들까지 다 시내에 들여오고서도. 쳇, 기자라는게  아직도 낫을 들고 돌아다녀?”
“대학교 동창네 벼가을도 도와주고 취재도 하려고 그럽니다.”
가시어머니가 또 뭐라고 잔소리를 하려고 하자 종수는 자전거에 올라 뒤도 돌아보지 않고 씽 달아났다.
“에이, 스트레스야.”
종수는 자전거를 타고 곧추 성호네 고향으로 달려갔다. 그는 가시집 신세를 좀 졌다고 해서 가시어머니가 항상 잔소리하는 것이 딱 질색이였다.
자전거를 타고 천수해를 지나다가 장마당에 가서 돼지고기 서너근 사 자전거 뒤에 달았다.
그가 사람들과 물어 처음 천지꽃산 기슭에 자리잡은 태평거촌에 이르러 보니 형편없는 시골마을이였다.
늙은 비술나무 아래 모여앉아 한담을 하는 로인들과 물어 겨우 성호네 집으로 찾아갔다.
성호네 초가집은 마을 제일 앞줄에 있었다. 돌로 쌓아올린 토성 밖에 실실이 늘어진 비술나무 가지들이 선들선들 불어오는 가을바람에 흐느적이며 춤을 추고며 반갑게 마중했다.
초가집 지붕에는 얼기설기 뻗친 박넝쿨에 드문드문 둥그런 박이 달려 있었고 빨간 고추도 널려 있었다. 마당에는 숱한 소들이 한창 여물을 먹고 새김질하고 있었고 닭들이 오구구 모여들어 먹이를 쪼아먹고 있었다. 진짜 한폭의 시골 산수화를 방불케 했다.
때마침 집 안에서 영옥이 구정물함지를 들고 나왔다.
“성호 어머니 아닙둥? 안녕하십니까?”
“양, 누구요?”
“성호 대학교때 동창생 박종수입니다. 성호 어데 갔습둥?”
영옥은 함지를 내려놓고 “오, 반갑소. 성호는 저기 우사에 있소.” 하고 천지꽃산 골짜기 어귀를 가리켰다.
종수는 자전거 짐받이에서 돼지고기를 풀어 성호 어머니에게 드렸다.
“가을에 반찬이나 합소.”
“아니, 이럴 변이라구. 쯧쯧쯧.”
종수는 기뻐하는 영옥의 주름진 얼굴을 뒤로 하고 자전거에 몸을 싣고 천지꽃산을 바라고 페달을 힘차게 굴렀다.
그가 높다란 돌토성을 두른 널다란 우사칸 대문어귀에 이르자 사냥개들이 왕왕왕 짖으면서 뛰쳐나왔다.
“지개! 이 놈 개새끼들이!”
때마침 성호가 소똥을 치다가 쫓아나와서 위기를 모면했다. 사냥개들은 성호한테 달려가 앞발로 매달리면서 꼬리를 흔들었다.
“아니, 기자가 어떻게 돼 소똥냄새 나는 시골로 다 왔어?!”
성호는 대문 어귀를 내다보다가 저으기 놀라했다.
“몇해만이냐?! 정말 반갑다!”
종수는 소똥이 발려서 움츠려뜨리는 성호의 손을 마구 잡아 흔들었다.
그는 우사칸에 차고 넘치는 30여마리 소를 보고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야, 넌 이젠 한뉘 살 돈을 다 마련했구나. 난 한달에 74원 밖에 받지 못하는데.”
성호는 뒤더수기를 긁적거렸다.
“건 수학적계산에 불과해. 손에 돈을 쥐여야 돈이야.”
그는 종수 자전거 짐받이에 달아맨 낫을 보면서 물었다.
“무슨 바람이 불어 소똥냄새 나는 시골에 왔니?”
종수는 한숨을 후~ 내쉬더니 툭 털어놓고 말했다.
“쉬는 날에 너네 집 가을을 도와줄 겸 취재도 할가 해 왔다.”
성호는 떽 했다.
“그만 둬! 소문난 잔치 먹을 알이 없다고. 절대 신문에 내지 말라. 어쩌다 만났는데 가을은 무슨 놈의 가을이야. 산에 가서 놀자. 우리 집 가을걷이는 몽땅 삯을 줬다.”
그는 천지꽃산 앞의 누런 논밭을 가리켰다.
“저 걸 봐라. 숱한 한족농민들이 우리 논밭에서 가을을 하고 있잖니?”
“진짜 개혁개방 초기 신형 만원호야.”
“에이, 자식!”
그들은 웃고 떠들면서 우사로 들어갔다. 숱한 개들이 성호네를 따라 우르르  뛰여들어갔다.
“다빈치야, 게르만아! 나가 승냥이 오지 않는가 살펴라!”
다빈치라고 불리는 송아지만큼 큰 시꺼먼 사냥개와 게르만이란 호랑이 같은 누런 사냥개가 숱한 개들을 데리고 바깥에 나갔다.
“아니, 여기 승냥이 있니?”
종수는 꽤나 섬찍해났다.
“있구말구. 전번엔 호랑이까지 글쎄 토성을 날아넘어와 송아지를 물어가려고 하지 않았겠느냐?”
“엉?”
“게르만과 다빈치 련합진공을 받고 도망쳤어.”
“저 사냥개를 게르만이라니? 혹시 독일 사냥개냐?”
“그래, 독일 특종사냥견이야. 다빈치는 프랑스 특종사냥견인데 대단히 사나워.”
종수는 머리를 끄덕였다.
“자식, 든든한 경호원들을 뒀구나.”
성호는 희죽이 웃으며 종수를 돌아봤다.
“호랑이 자기 흉을 하면 온다고 호랑이 말을 작작 해라.”
종수가 우사 당직실을 둘러보니 벽에 사냥총이 걸려 있었다.
“널 붙들고 앉아 있으면 어쩌냐? 내 온바에 뭔가 해야지.”
종수가 고집하는 바람에 성호는 당직실 벽에서 채찍을 벗겨 들었다.
“형은 국장 사위로 되더니 팔자를 고쳤구만. 가시집에서 사준 벽돌집에 들어 살지,  기자로 됐지.”
“야, 야, 말도 말라. 너처럼 자기 능력으로 사는게 제일 편안해.”
“왜?”
종수는 성호의 어깨를 툭툭 쳤다.
“우린 다 농부의 아들이 아니고 뭐냐?”
“그런 소릴 작작 해라.”
성호는 우사칸으로 나가면서 성을 발칵 냈다.
“사실 아니냐?”
“농부의 아들이 어떻단 말이야? 난 ‘농부의 아들’이란 신분에 맞서 싸우는 투사로 되겠어.”
“농부의 아들이 섧지.”
종수도 설음을 쏟아냈다.
“팔자를 고치자고 한족 국장 집 사위로 됐지. 그런데 가시집 신세를 너무 져도 좋찮아.”
성호는 소채찍을 들고 소무리 쪽으로 가면서 머리를 끄덕였다.
종수는 계속 하소연했다.
“가시엄마 하루 건너 찾아와서 잔소리를 한다. 이젠 잔소리 딱 진절머리난다.”
성호는 종수의 고충을 짐작할 수 있었다.
“난 고향 우사에서 소나 개와 함께 뒹굴면 뒹굴었지 가시집엔 가지 않아.”
종수는 넉두리를 해댔다.
“집이 따로 있어도 쓸데 없어. 가시집과 불과 5분거리니까. 엄마랑 동생들이랑 모두 30평방메터 박에 안되는 우리 집에서 함께 사는데 말이야. 가시엄만 쩍 하면 찾아와서 우리 살림살이를 현지지도한단 말이야. 우리 엄마랑 바늘방석에 앉은 것처럼 쩔쩔 맨다. 가시엄마는 딸한테 사준 비좁은 집에 숱한 사돈들까지 덮씌워 사는 걸 눈꼴 사나워 해. 이젠 가시엄마 온다하면 머리카락이 곤두설 지경이야. 안사돈이 온다하면 녀동생들은 슬슬 피해 바깥으로 나가버려. 남동생 만수는 어떤 땐 괘씸해 주먹으로 벽을 꽝꽝 친다. 후- 스트레스야, 스트레스.”
성호는 충고를 아끼지 않았다.
“꾹 참고 살아야지.”
“참고 견디다는게 하루가 삼추 같아.”
성호가 대문을 열자 소들과 개들은 좋다고 바깥으로 뛰여나갔다. 성호는 채찍을 재치있게 반공중에 한고패 휘둘러 갈겼다.
쨩! 쨩!
채찍소리에 소들은 겁을 집어먹고 앞으로 네굽을 안고 뛰여나갔다. 다빈치와 게르만을 우두머리로 한 사냥개들은 옥수수밭으로 뛰여가는 소들을 쫓아가 물 상하며 왕왕왕 짖어댔다.
성호와 종수는 옥수수밭에 뛰여들어 옥수수이파리를 먹는 소들을 몰아냈다.
(소궁둥이를 치기 쉽잖구나.)
천지꽃산 기슭으로 가자 소들은 누렇게 번져가는 가을풀을 뜯어먹으면서 애를 덜 먹였다.
숨을 돌리자 종수는 성호한테 다가갔다.
“얘, 대학을 졸업하고 이게 뭐냐? 소치기도 계속 할 일이 아니야.”
“무슨 소리야?”
성호는 무연한 벌판을 내려다보면서 가을의 시원한 산공기를 한 가슴 가득 한껏 들이켰다.
“이제 젖소를 사서 우유를 시내에 가져다 팔 예산이다.”
“야, 야, 싹 그만둬!”
종수는 손사래를 쳤다.
“이만하면 됐다. 싹 팔아가지고 시내에 벽돌집을 한채 사라. 우리 시내에서 함께 살자.”
“제 손가락을 빨아먹고 살겠니?”
“가시아버지한테 널 취직시켜달라고 말할게.”
“싹 그만둬. 내 가시아버지 연줄을 달아보겠다는 것도 말렸다.”
성호는 산기슭으로부터 동서로 가로 왔다갔다하면서 풀을 뜯어먹으며 산중턱에까지 올라온 소떼를 내려다보며 코노래를 불렀다.
종수는 현실에 만족하는 성호를 두고 도리머리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성호는 종수의 속을 꿰뚤어나 본듯이 제 생각을 털어놓았다.
“이모부와 말하면 파출소 민경쯤은 할 수 있을거 같애.”
“좀 좋아서?”
성호는 도리머리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어쩐지 농민의 아들이 돼 그런지 시내 매끄러운 소시민들과 섞여서 살기 싫어.”
성호는 종수를 돌아보면서 의미심장한 말을 했다.
“난 남들이 다 동쪽으로 갈 때 홀로 서쪽으로 갈테야.”
“쳇, 최서해가 이 시골에 재생했는가?”
종수는 그 말뜻을 오래도록 음미해보더니 도리머리를 흔들었다.
“시내 사람들이라고 다 매끄러운 건 아니야. 시내 사람들이 싫다고 교수네 규수마저 이런 소똥 구린내 나는 우사칸에 데려다 살 생각이냐?”
“정희 오자고 하겠느냐? 지금 딸애를 데리고 가시집에 얹혀 산다.”
종수는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새파란 나이에 오래 갈라져 사는 건 도리 아니야.”
“애까지 낳은 정희가 어쩔라구?”
(건 몰라.)
종수는 목구멍까지 올라온 말을 꿀꺽 삼키고 말았다.
그는 속으로 죄책감을 느꼈다. 몇해 전에 자기가 승호와 은영의 일을 삐라로 찍어 온 시내에 널어놓은 일이 항상 마음에 걸렸다. 그 삐라사건만 없어도 성호는 수사대대에 무난히 들어갔을 것이 아닌가.
성호는 종수가 보도기률을 어길 수 없어 신문에는 내지 못하고 삐라를 찍어 널어났으리라는 것을 짐작했다. 은영과 승호의 은사를 공개한 건 타당하지 않지만 깡패들의 죄악을 폭로한 것이 씨원해 짐짓 모르는 척했다.
종수는 농민의 아들이기에 소박한 일면이 있었지만 입이 가볍고 속에 섬찍한 뭔가도 있었다.
그는 절벽 위로 스적스적 올라가는 성호를 따라가면서 화제를 돌렸다.
“야, 은영이 어데 갔는지 궁금하지?”
성호는 버럭 화를 냈다.
“은영이 말을 다시 하지도 말라!”
“아니, 왜 이래?”
성호는 채찍을 휘둘러 쨩 내리후려치고나서 중얼거렸다.
“난 은영을 사랑하지도 않았어. 황차 이젠 가정도 있는데 걔를 다 언제 생각할새 있니?”
기실 성호는 첫사랑 순희보다 은영을 더 사랑했다. 그런데 한마디 말도 하지 않고 이 세상에서 사라진 것이 안타까왔다. 그는 은영이 결코 정신병에  걸리지 않았다고 생각했다. 속으로는 은영의 행방을 알고 싶었지만 종수 앞에서 그런 내색을 내지 않았다.
갑자기 서북쪽 하늘로부터 먹장구름이 뭉쳤다 흐트러졌다 하면서 이쪽으로 덮쳐왔다.
쨩! 쨩!
성호는 종수한테 비닐박막을 뿌려주고는 황급히 채찍을 휙휙 휘둘러 소들을 산 아래로 몰고 내려갔다.
먹장구름 속에서 불뱀이 몇가닥 혀를 번쩍 날름거렸다. 불뱀은 천지꽃산 꼭대기를 휘감아 내동댕이쳤다.
우르릉 꽝! 꽝!
천지를 뒤흔드는 우뢰소리가 울리더니 열콩알만큼한 비방울들이 바위와 절벽에 후둑후둑 떨어졌다.
다빈치와 게르만은 소떼를 산 아래 몰아내려갔다.
소떼를 따라 산 아래로 내리닫던 성호는 그만 소똥을 밟고 썩박나무 넘어가듯 엉덩방아를 찧었다. 오만상을 찡그리면서 일어난 성호의 엉덩이에는 누런 소똥이 한벌 척 들어가붙었다. 그래도 성호는 개의치 않았다.
종수는 따라내려가면서 도리머리를 흔들었다. 그도 농촌태생이지만 성호가 이런 시골에서 소궁둥이를 치는 것이 리해되지 않았다.
성호는 창창 쏟아지는 소낙비에 물병아리 돼가지고 간신히 소떼를 우사에 몰아넣고 대문을 채워버렸다.
그는 사양실에 들어와 옷을 벗어 꽉꽉 비틀어 짜면서 오히려 종수를 근심했다.
“얘, 집에 다 갔구나. 래일 제때에 출근하지 못해 어쩌겠니?”
“괜찮아.”
그들 둘은 젖은 옷을 맞쥐고 비틀어 짜서 널어놓고 우사의 커다란 솥에 끓여놓은 시라지국에 옥수수밥을 대충 먹었다.
그들이 한창 이야기할 때였다. 바깥이 훤하게 개이는 것이 아니겠는가.
“야, 날이 개였을 때 시내에 돌아가라.”
종수는 도리머리를 흔들었다.
“자꾸 축객령을 내리지 말라. 오늘 온 밤 인생담이나 나누자.”
성호는 후~ 한숨을 몰아쉬었다.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우사에 나가더니 소깔을 날라다준다, 개와 돼지한테 먹이를 준다 하면서 바삐 돌아쳤다. 종수도 뒤따라 나가 팬티 바람에 성호를 거들어주었다.
“기자선생 오늘 로동개조를 톡톡이 하는구나.”
“그런 소릴 하지 마. 내 뿌리도 농촌에 있잖니.”
“허허허.”
성호는 어쩐지 종수나 범송은 흙냄새 나서 시내에서 자라 매끄러운 승호보다 마음이 통하는데가 있었다.
종수는 성호를 도와 온종일 그 넓은 우사  밑바닥에 널린 소똥을 다 쳐내고서야 저녁 밥상에 마주 앉았다.
불시에 바깥이 어두워지더니 또 대줄기 같은 비줄기가 좔좔 쏟아졌다. 초가을비가 장마철 비처럼 대지에 억수로 쏟아부었다.
이윽고 대지가 어둠의 장막 속에 서서히 휩싸여버렸다. 번개가 번쩍 하면서 시꺼먼 우사칸으로 날아들어왔다가 그들이 두려운듯 되달아나갔다.
꽈르릉!
무서운 천둥소리가 하늘땅을 진감했다.
금방 밥술을 놓았을 때다.
바깥에서 개 짖는 소리가 왕왕왕 다급하게 들렸다.
따웅-
“이크, 또 호랑이가 왔구나!”
성호는 벽에  걸어둔 사냥총을 벗겨 들고 당직실 구들에서 뛰여나갔다.
참말 무시무시한 광경이였다.
종수는 당직실 구석에 놔뒀던 낫을 주어들고 따라나섰다.
“나오지 말라.”
“아니, 혼자 어떻게 호랑이와 싸워?”
“위험해! 나오지 말래두.”
성호는 궁둥이로 문을 들이밀어 닫아버렸다.
종수는 문꼬리를 쥐고 바깥을 내다보았다.
우사 토성 안에 시퍼런 불찌가 왔다갔다 했다. 호랑이가 뛰어들어 송아지를 물고 토성 밖으로 나가려고 날뛰었다. 다빈치와 게르만이 왕왕 짖어대며 악착스레 덤벼들었다. 호랑이가 토성을 훌쩍 뛰여넘으려는 순간 다빈치가 호랑이 뒤다리를 물었다. 게르만도 꼬리를 덥석 물어당겼다.
“따웅!”
호랑이는 송아지를 떨구면서 홱 돌아서며 다빈치에게 덮쳐들었다. 다빈치와 게르만은 잽싸게 몸을 피했다.
“저 놈 호랑이새끼! 내 어떻게 키운 송아지라고!”
성호는 당직실 문을 살며시 열고 나가더니 공중에 대고 엄포를 놓았다.
땅!
호랑이는 물었던 송아지를 떨구더니 몸을 날려 토성을 훌쩍 뛰여 넘어갔다. 성호는 도망치는 호랑이 쪽에 대고 또 총을 쏘았다.
땅!
장개골안 중턱에서 시퍼런 불찌가 오락가락 하다가 뚝 멈춰섰다. 뒤따라오는  사냥군이 없자 호랑이는 아마 토성 안에 버리고 달아난 송아지가 아까워 서성거리고 있는 것 같았다.
성호는 사냥총을 들고 억수로 쏟아지는 가을비를 흠씬 맞으며 땅바닥에 쓰러진 송아지한테 달려갔다.
“아이고, 죽었구나!”
성호는 진창에 풀썩 물앉아 송아지를 붙안고 야단쳤다. 호랑이는 송아지 목주래를  물어 끊었던 것이다. 끊어진 목에서 뻘 건 피가 흘러 진창에 고인 비물에 쭉 퍼져나갔다.
다빈치와 게르만은 왕왕왕 하고 애처롭게 짖어댔다. 자기들이 잘 보호하지 못해 죄송스러운듯이 짖고 또 짖어댔다.
“사냥개 몇마리로는 호랑이를 말리지 못해.”
종수는 량미간을 찌프리더니 좋은 꾀를 내놓았다.
“성호야, 암소만 우사에 가두고 수소를 토성 안에 풀어놔라. 호랑이도 황소를  두려워 해.”
성호는 사냥총을 짚고 간신히 일어났다.
“그 말이 옳아. 새 해엔 토성도 높여야겠어.”
종수는 대문을 잘 채웠는가 돌아보는 성호 뒤를 따라 다니면서 또 한마디 충고했다.
“성호야, 소사양을 아버지한테 넘겨주고 시내에 집을 잡고 살면 어때?”
“말도 안돼. 아버진 근본 내 소사양하는 걸 도와주지 않아.”
성호는 당직실에 들어가 사냥총을 벽에 걸어두었다.
종수는 도리머리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왜 도와주지 않는다니?”
성호는 당직실에서 나가 가을비를 맞으면서 죽은 송아지를 안아다 사양실에 들여왔다.
그는 부엌에 걸어놓은 커다란 솥의 물에 피물이 묻은 손을 씻으면서 고충을 털어놓았다.
“아버진 자손들을 무척 사랑하지. 그런데 소사양만은 돕지 않아.”
성호는 한숨을 후~ 내쉬더니 뒤말을 이었다.
“아버진 내가 대학에 가니까 얼마나 기뻐했는지 몰라. 그런데 금의환향은커녕 귀행하자 너무나도 실망했지. 그래서 소사양하는 걸 도우면 시내에 돌아가지 않을가봐  돕지 않아.”
종수는 머리를 끄덕였다.
이윽고 그는 무릎을 탁 쳤다. 
“얘, 부근의 농민들을 고용해 소사양을 하면 어떻니?”
성호는 대야에 물을 퍼놓고 죽은 송아지를 씻다가 종수한테 머리를 돌렸다.
“좋은 생각이구나.”
그날 종수는 당직실에서 성호와 함께 밤이 깊어가도록 자지 못했다. 혹시 호랑이 다시 뛰어들가봐서다.
이튿날 종수는 성호가 준 송아지고기를 차마 받지 못했다.
“얘, 이 소고긴 목에 걸려.”
“별 소릴 다 한다. 가지고 가라.”
종수는 사양하다 못해 받아 가지고 자전거를 타고 가려고 했다. 그런데 질척질척한 진창길을 한발작도 움직이기 힘들었다.
“걸어가야겠어.”
“자전거는 어쩌니? 내 소수레에 실어다줄가.”
“그만둬. 우사를 비우면 호랑이라도 오면 어쩌니? 후에 자전거 가지러 올게.”
종수는 바지가랭이를 걷더니 신을 벗어쥐고 맨발바람으로 길을 떠나려고 했다.
“얘, 비닐박막을 가지고 가라.”
성호는 우사칸에 들어가더니 비닐박막을 들고 나왔다.
“이 소고기도 가지고 가라. 네 가시엄마를 가져다주렴.”
성호가 기어이 손에 쥐어주는 바람에 종수는 마지못해 소고기를 들고 몸을 돌려 시골 진창길을 저벅저벅 걸어갔다.
“얘, 절대 날 신문에 내지 말라.”
“알았어.”
성호는 멀어져가는 종수의 뒤잔등을 바라보면서 한숨을 후~ 내쉬였다.
종수는 진창길을 밟으면서 마을 앞에 이르자 초가 팔간집을 들여다보았다.
때마침 성호 아버지가 낫을 들고 나왔다.
“성호 아버지, 이걸 받읍소.”
상진은 비닐주머니를 받아들고 물었다.
“이건 웬 소고기요?”
“갈 길이 바빠서 들고 가지 못하겠습구마. 잡숩소.”
상진은 소고기를 들고 보더니 실망한 눈길로 종수를 바라보았다.
“소 죽었소?”
“예. 어제 호랑이 뛰어들었습구마.”
상진은 장개골안 쪽을 바라보면서 한숨을 땅이 꺼지게 내쉬였다.
“목에 걸려서 먹을 거 같지 못하우.”
상진은 소고기를 종수에게 되밀어주었다.
“안녕히 계십시오.”
종수는 별 수 없이 소고기를 들고 질척한 진창길로 저벅저벅 걸어나갔다.
상진은 장개골안 우사 쪽을 돌아보면서 도리머리를 흔들었다.
 
 
 
 
 
                      37. 소장사군
천지꽃산에는 울긋불긋 단풍숲이 푸르청청한 소나무숲과 어울려 조화를 이루고  들에는 황금나락이 가을바람에 설레며 춤을 추고 있었다. 해맑은 가을 하늘에 꽃구름들이 양떼처럼 서서히 흐르고 천지꽃산 칼날 같은 벼랑 사이로 산새들이  풍작을 노래하며 재잘재잘 지저귀고 있었다.
일요일에 정희가 한나를 데리고 시골 우사에 찾아왔다.
철주는 우사를 지나가면서 빈정거렸다.
“함박꽃이 둼무지에 꽂혔구만.”
정희는 못들은척하면서 우사에 들어섰다. 그녀를 조롱이나 하는듯이 구린내가 물씬 풍겼다. 그녀는 황급히 코를 싸쥐고 오만상을 찡그렸다.
“에이, 구린내야!”
“아빠!”
한나는 두 팔을 쫙 벌리고 성호한테 달려갔다.
성호는 한나를 와락 끌어안고 뽁뽁 뽀뽀를 해주었다.
“아빠 보고 싶더냐?”
한나는 성호의 품에 안겨 종달새처럼 종알거렸다.
“예, 아빠, 이젠 시내 가서 어머니랑 함께 살자요.”
성호는 한나를 와락 끌어안고 정희를 흘끔 건너다보았다.
“귀여운 우리 공주님, 거짓말을 하지 않지?”
한나는 머리를 까땍거렸다.
“어머니 시켰지?”
“예, 어머닌 아빠를 보면 ‘시내에 가서 어머니랑 함께 살자’고 말하라 했습니다. 밤이면 무섭습니다. 아빠 있으면 무섭지 않아 얼마나 좋겠어요?”
“그래?”
“6.1절에 다른 애들은 다 엄마, 아빠 량손을 쥐고 공원에 가서 노는데요. 난 아빠 없어 부럽습니다.”
“그 말도 엄마 시켰지?”
“예, 엄마도 아빠가 보고 싶다고 했습니다.”
“아빠 돈 많이 벌어가지고 한나랑 엄마랑 함께 살자.”
성호가 정희를 뒤돌아보니 돌아서서 어깨를 가늘게 들먹이고 있었다.
“정희, 그간 애를 데리고 고생했소. 내라고 시내에서 살면 좋은줄 몰라 이러겠소?  나도 칠정육욕이 있는 사내요. 왜 처자가 보고 싶지 않겠소? 그러나 저 서른마리도 넘는 소들을 누가 돌보겠소?”
정희는 돌아서서 손수 건으로 뜨거운 눈물을 훔쳤다.
“시아버님이 좀 도와주면 얼마나 좋겠어요?”
성호는 손사래를 쳤다.
“그런 말 절대 하지 마오.”
“?”
정희는 어글어글한 외까풀눈이 데꾼해졌다. 걀죽한 얼굴에 의아한 표정이 사품쳐 흘렀다.
“아버진 내가 소궁둥이를 치는 걸 반대하니까.”
성호는 제꺽 화제를 돌렸다.
“한나를 키우느라고 고생했소.”
성호는 정희와 한나를 한품에 와락 끌어안았다.
“이젠 다 때려치우고 시내로 가서 함께 삽시다. 예?”
성호는 정희와 한나를 끌어안았던 팔을 스르르 풀었다.
“어찌 중도 랑패를 보겠소? 이제 소장사를 해서 돈을 많이 벌면 시내에 덩실한 벽돌집을 사놓고 잘 살아보기요.”
“저 소30마리도 넘는데요. 저만하면 안돼요?”
정희는 우사칸 당직실을 거두면서 물었다.
“난 원대한 꿈이 있소.”
“무슨 꿈? 사람 욕심이 어디 끝이 있어요?”
성호는 목구멍까지 올라온 말을 꿀꺽 삼켜버렸다.
우사 사양실에는 무거운 침묵이 흘렀다.
성호는 채찍을 들더니 우사 대문을 활짝 열어제끼고 소떼를 몰고  방목하러 떠났다.
성호는 시원한 산공기를 마시면서 다빈치와 게르만을 앞세우고 소떼를 몰고 천지꽃산 기슭에 오르면서 새로운 꿈을 무르익히고 있었다.
(그래, 종수의 말이 맞아. 마을에서 끌끌한 장년을 고용해 소사양을 하게 하고 난    시내에 진출해야지.)
당면계획도 세웠다.
(이제 황소를 처리해 내몽골에 가서 젖소를 사다가 우유를 팔아 돈을 벌어야지. 여기선 젖소 한마리에 2천원, 황소 두세배값이야. 진짜 집 한채 값이잖는가.)
정희는 여느 때처럼 시부모의 빨래도 해주고 집도 거둬주었다. 어떤 때는 시어머니를 도와 자류지 감자를 파왔고 가지를 뜯어다가 썰어 마당에 비닐박막을 펴놓고 널어 말리웠다.
정희가 고방에 들어가보니 일하고 벗어놓은 헌 옷들이 여기저기 널려 있었다. 그녀는 구석구석 살피면서 어지러운 옷견지를 들춰 대야에 담아 이고 한나를 데리고 태평강에 나갔다.
높고 푸른 하늘아래 태평강물은 어찌나 맑은지 푸른 하늘과 하얀 목화송이 같은 구름이 둥둥 떠 흘렀다. 맑은 강물이 핥으며 흐르는 조약돌 사이에서 지느러미를 하느적거리는 모래무치랑 붕어랑 환히 들여다보였다.
빨래터에는 순희가 빨래를 하고 있었다. 그녀는 그저 눈인사나 하며 계속 방치질했다.
정희는 대야의 빨래를 맑은 강물에 훌 쏟아불궈놓았다. 드디여 비누를 먹여 빨래돌 우에 놓고 방치로 팔이 시리게 투닥투닥 두드리기 시작했다.
일밭으로 나가던 마을 사람들은 빨래를 하는 정희를 보고 혀를 끌끌 찼다.
“정말 시내 색시 같잖소.”
“얼마나 부지런한 색시요.”
동불사댁의 말에 세린하댁도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글쎄 말이요. 일요일에 시집에 오기만 하면 저렇게 부지런히 일한단 말이요.”
순희는 정희와 나란히 앉아 빨래를 하면서 정희 처지가 가엾어 한숨을 후- 내쉬였다.
(성호도 한심하지. 어쩜 시내 색시를 데려다가 저렇게 고생시켜?)
순희는 정희 처지가 남의 처지 같지 않았다. 그녀는 착잡한 생각을 빨래와 함께 강물에 훌훌 휑구어버리며 허구픈 웃음을 지었다.
정희는 상을 찡그리면서 때물이 줄줄 흐르는 빨래를 쭉쭉 짜서 대야에 담았다. 시내에서는 활활 주어버릴 헌 옷들이였다. 그러나 시부모는 일할 때 입겠다고 버리지 않았다.
온 오전 빨래를 한 그녀는 팔을 쉬울 새도 없이 시어머니를 따라 밭에 가서 고추도 따고 옥수수도 땄다. 고추대만큼도 안되는 한나는 빨간 고추 다닥다닥 달린 고추대 사이로 다니면서 빨간 고추를 따서 어머니 바구니에 담았다.
“한나, 넌 그저 놀아.”
“나도 고추 딸래.”
“아니야, 고추 매워서 손으로 눈이랑 만지면 아려.”
정희는 한나의 손을 쥐고 개울가에 가서 말끔히 씻어주었다.
한나는 계속 고추를 따겠다고 발을 동동 구르며 떼를 썼다.
“넌 여기서 놀아.”
“아니야, 고추 딸래.”
정희는 한나를 달랬다.
“말 잘 들으면 저녁에 할머니네 떡을 쳐준다.”
영옥이 맞장구를 쳤다.
“그래, 우리 손녀 말 잘 듣지? 찰떡 쳐줄게.”
“야, 좋아라. 떡이 냠냠 맛있다. 오래오래 맛있다.”
고추를 다 따자 정희는 시어머니를 따라 마늘밭에 가서 마늘도 쑥쑥 뽑았다. 이윽고 그녀는 자전거에 마늘을 실어 들였다. 그녀는 손이 쉴 새없이 시어머니한테서 배우면서 마늘양태를 따 처마 밑에 걸어놓았다.
(시내 색시 어쩜 농촌 아낙네들처럼 일을 저렇게 잘할가?)
영옥은 원래 시내 처녀를 막내며느리로 삼고 싶지 않았다. 로동이 사랑이라고 차차 지내면서 보니 정희는 여느 시내 색시들처럼 매끄럽지 않고 부지런하고 마음씨도 곱다는 것을 느끼기 시작했다.
영옥은 쌀독에서 바가지로 찹쌀을 퍼서 쌀함박에 씼어  시루가마에 얹었고 돼지고기를 씻어 가마에 넣었다. 농촌에는 석탄도 없어 땔나무로 불을 때야 했다. 정희는 먼지  풀풀 이는 땔나무를 무릎에 대고 뚝뚝 끊어 부엌 아궁이에 쑤셔 넣고 불을 지폈다.
한참 후 가마에서 쌕김이 쌕- 뿜겨나왔다.
시어머니가 벽에 기대놓았던 떡돌을 번져놓자 정희는 떡똘을 싹싹 씻어냈다. 영옥이 김이 문문 나는 떡쌀을 퍼다 떡돌에 쏟아놓았다. 정희는 떡메를 싹싹 씻어 들고 손수 찰떡을 쿵쿵 쳤다.
“야 –호- 맛있겠다.”
한나는 떡을 치는 어머니를 응원이나 하듯이 박수까지 쳐대며 환성을 질렀다.
해질 녘에야 시아버지가 일밭에서 돌아왔다.
정희는 찰떡을 베 사발에 담다가 일어나면서 인사했다.
“아버님, 돌아오셨습니까? 로년에 얼마나 힘들겠습니까?”
“괜찮소.”
정희는 시어머니를 도와 저녁상을 차렸다. 밥상에는 무룩이 담은 떡사발과 돼지고기장국이 올랐다.
저녁에 성호도 태평강을 건너 집에 들어섰다.
“냠냠 맛있다. 오래오래 맛잇다.”
한나는 노래나 부르는듯이 흥얼거리며 떡과 돼지고기를 맛나게 먹었다.
한나는 할머니네 집에 오기를 좋아했다. 할머니네 집에 오면 집에서도 먹지 못하던 떡도 먹고 돼지고기도 먹을 수 있었기 때문이였다. 하긴 정희는 본가집에서는 돈이 아까와 돼지고기를 별로 사먹지도 않았지만 시집에 올 때면 꼭꼭 사왔다.  영옥도 일이 바빠서 평소에는 떡을 쳐먹을 새도 없었지만 며느리와 손녀가 오기만 하면 떡쌀을 퍼내군 했다.
저녁상을 물리자 상진은 성호를 마주보면서 무겁게 입을 열었다.
“얘, 언제까지 농촌에서 소궁둥이 치겠느냐?”
정희는 말수 적은 시아버지가 엄숙하게 묻는 말씀에 동감이 갔다.
“글쎄 말입니다. 제 생각엔 소를 팔아버리고 시내에 집을 잡고 부모를 모시고 사는게 옳다고 봅니다. 부모님들께서도 이젠 년세가 들어 어떻게 계속 힘겹게 농사를 지으면서 사시겠습니까?”
성호는 머리를 숙이고 한참 궁리하더니 천천히 머리를 들었다.
“내라고 농촌에서 살고 싶어 이러오?”
“그럼 왜?”
상진은 들을수록 화났다. 그는 꾹 참으면서 천천히 성호의 뒤말을  기다렸다.
“돈 벌어 시내 가서 좀 더 환하게 살자고 그럽구마.”
“어서 소를 팔아가지고 시내로 가라. 대학을 졸업하고 어찌 돈에 눈이 어두워 소궁둥이를 친단 말이냐?”
성호는 마을 사람들의 조롱도 비난도 다 개의치 않았다. 그러나 페부를 찌르는 아버지 충고는 심사숙고해야 했다.
상진은 답답해 땅이 꺼지게 한숨을 후~ 내쉬였다.
그때 웃마을 큰형님 백호가 찾아왔다. 그는 맏이였지만 아들이 없는 큰집에 앞을 서서 큰집 부모를 모셨다.
“성호야, 아버지 말씀이 옳다. 이젠 시내로 가라. 공안국이거나 광고회사 같은데 들어가면 얼마나 좋겠니?”
성호는 정희의 눈치를 흘끔 살폈다. 외씨 같은 얼굴이 새파래지려니 했는데 다행히 무표정했다.
백호는 성호를 타일렀다.
“넌 막내니까. 부모 근심은 하지 말라. 내 옆에서 부모를 모시면 돼.”
성호는 도리머리를 흔들었다.
“아니요. 현시대에 딱 맏아들이 부모를 모셔야 한다는 도린 없소. 막내도 부모  자식이 아니요? 어느 자식이 모시기 편리하면 어느 자식이 모시는게 옳소. 형님과 아주머니는 큰아버지와 큰어머니를 모시느라고 얼마나 고생했소. 내한테도 부모께 효성을 드릴 기회를 좀 주오.”
성호는 정희의 눈치를 흘끔흘끔 살피면서 뒤말을 이었다.
“큰형님도 이젠 예순이 다 된 로인이요. 이젠 아들며느리 신세에 사는 신세에 어떻게 부모를 모신다고 그러오? 둘째형님은 조선에 가고 없지. 누나넨 출가집  외인이라고 어쩌겠소? 누나네도 다 시집부모를 모시고 있잖소? 이제 소장사를 해서  돈을 많이 벌면 부모를 얼마든지 잘 모실 수 있소.”
“그만둬라. 우린 시내에 가서 살지 않겠다. 농촌이 편안해 좋다.”
상진이 허리를 펴면서 손사래를 쳤다.
“우리 근심은 하지도 말라. 네가 대학을 졸업하고 소궁둥이를 치지 않는 걸 봤으면 얼마나 좋겠느냐?”
이때 은숙이 옥희를 업고 혜옥과 주옥까지 데리고 들어섰다.
“아버지 말씀이 옳다.”
그녀는 잔등에서 옥희를 내리워 한나와 놀게 하고 뒤말을 이었다.
“대학을 졸업하고 이게 뭐냐? 어서 시내에 가서 환한 일자리를 찾아라. 괜히 올케까지 고생시키지 말구.”
“알았소. 알아서 한다니까.”
성호는 형님과 누나 말을 고맙게 받아들였다. 그러나 얼굴이 파랗게 질려가는 정희의 걀죽한 얼굴을 곁눈질해보고 누나 말을 중동무이했다.
은숙은 그래도 계속 충고했다.
“큰오빠하구 우리 부모 곁에 있으니깐. 부모 근심하지 말고 시내로 가라. 황차 넌 막내니까. 부모를 모시지 않는다고 말할 사람도 없어.”
백호도 맞장구를 쳤다.
“그래. 한집에 있으면서 모신다고 해서 효성을 다 하는게 아니야. 네가 대학을 졸업하고 소를 치면서 사는 건 부모에겐 최대의 불효야. 부모들은 자식들이 잘 되는 걸 보면 행복해.”
“그래. 형님과 누나 말을 들어라. 우린 아직 자기절로 밥벌이는 할 수 있다. 내 손에 풀이 있을 때 너네 먹을 쌀까지 대줄 수 있다.”
엄마도 한마디 했다.
“우린 네가 잘 되는 걸 보면 세상 좋겠다.”
성호는 무겁게 입을 열었다.
“알았습니다.”
백호는 성호가 시내에 갈 의향이 있다는 것을 보아내고 내심으로 기뻐했다.
어둠이 깃들자 성호는 한나를 업고 정희와 함께 은빛달빛을 밟으면서 태평강 징검다리를  건너 우사로 돌아왔다.
창문으로 서글픈 달빛이 비껴드는 우사 사양실에 누운 정희는 쓸쓸하기만 했다.
골안에서 어둠의 적막을 깨우면서 드문드문 승냥이의 울부짖음소리가 들려왔다. 울 안에서 사냥개들이 무섭게 울부짖었다.
성호는 자리를 차고 벌떡 일어나더니 벽에서 사냥총을 벗겨들고 나갔다.
“조심하세요.”
“걱정 마오.”
정희는 조마조마해 창문으로 바깥을 내다보았다. 산기슭 어둠 속에서 시뻘건  불찌가 왔다갔다 달아다니는 것이 보였다. 이따금 승냥이의 울부짖음소리가 몸서리치게 들려왔다.
그녀는 달빛에 비낀 남편, 사냥총을 들고 나가는 남편의 뒤모습을 보고 한나를 꼭 끌어안고 뜨거운 눈물을 주르르 흘렸다…
며칠 후 성호는 마을에서 소사양을 할 농민일군을 물색했다. 그런데 시내 보통로동자들의 로임보다도 더 주겠다고 해도 조선족농민들은 왼눈으로 보지도 았았다.
늙은 비술나무 아래에서 마을 령감들은 의론이 분분하였다.
동불사 령감은 “누가 성호네 머슴살이를 하겠는가?”고 뒤에서 쑤근거렸다.
세린하 령감도 맞장구를 쳤다.
“누군 바보요?”
나중에 이 고장에서 유명한 제지주네 아들 제경국이 나섰다. 돈이 있으면 귀신마저 매돌을 돌리게 부린다고 지주 아들마저 자존심을 버리고 소사양원으로 들어오려고 찾아왔다.
성호는 제경국을 쓰기 좀 주저했다. 혹시 아버지가 촌당지부 서기를 할 때 항상 자기 애비를 투쟁했다고 경국이 암암리에 보복할가봐 섬찍하였다.
“경국을 써도 괜찮아. 내 옆에서 도와줄게.”
뜻밖에 아버지 나설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성호는 아버지와 경국한테 소사양을 맡긴 후 소를 팔아 손잡이뜨르로 벽돌을 울 안에 실어들였다.
“얘, 당장 마당에서 탈곡해야겠는데 벽돌을 실어들여 뭘 하겠느냐?”
상진은 성호가 무슨 궁리를 하는지 답답했다.
성호는 벽돌장을 훌훌 부리워 놓으면서 빙그레 웃었다.
“새 해 봄이면 알 수 있을 겁니다.”
성호는 통통통 손잡이뜨락또르를 몰고 벽돌공장으로 달려갔다.
그때 내몽골에서 집안집 팔촌형 광호가 놀러 왔다. 광호는 원래 태평거촌에서 살다가 쌀고생에 견디기 어려워 10여년 전에 내몽골에 이사갔던 것이다.
그는 성호네 산골짜기 어귀에 있는 널직한 우사를 두루 돌아보더니 머리를 끄덕였다.
“우사를 잘 지었구나. 여기다 우리 내몽골 소를 사다가 길렀으면 돈을 벌거 같다.”
성호는 오랜만에 만난 광호를 보고 헛일 삼아 물었다.
“내몽골에서 황소 한마리에 얼마나 하오?”
“지금 한 4, 5백원 해.”
“오~”
“진짜 내몽골에 가서 소장사라도 할 예산이냐?”
순간 아버지 말씀이 떠올랐다.
“장사군은 애비도 속인다. 장사를 하려면 누구도 믿어선 안된다.”
성호는 광호를 어색하게 바라보면서 말끝을 얼버무렸다.
 “아니, 그저 물어보는 거요.”
그러나 광호는 짐작이 가는데가 있어 중얼거렸다.
“내몽골이 멀어서 여기까지 소를 가져오는게 문제야. 몇달 동안 몰고 올 수도 없지.”
성호는 속궁리가 따로 있었다. 그는 광호를 집에 청해 술을 마시면서 내몽골 형편을 자세히 알아보았다.
광호는 내몽골 초원에 진달래꽃을 심어 꽃피우고 싶다고 하면서 성호와 함께 고향의 천지꽃산에 올라가 진달래 몇그루 뿌리채로 파가지고 내몽골로 돌아갔다.
며칠 후 성호는 소를 더 팔아가지고 소장사를 하려고 내몽골로 떠났다. 그는 혹시나 해서 각반을 친 장단지 안쪽에 비수까지 감췄다.
부모와 정희가 아무리 말려도 벽이라도 차고 나갈 성호의 앞길을 막을 수 없었다. 성호는 광호를 따라가지 않고 혼자 소장사길을 개척하고 싶었다.
성호는 렬차를 타고 밤낮을 달려 내몽골 어느 자그마한 진에 이르렀다.
(혹시 여기에도 젖소가 있잖을가?)
그는 령감에 따라 무작정 생소한 역에서 내렸다.
해는 져서 어둑어둑한데 성호는 시내를 두루 살피다가 역에서 그리 멀지 않은 자그마한 려관에 잠자리를 잡았다.
그는 려관 한족주인 조발귀와 물었다.
“여기 초원이 멉니까?”
“멀잖소. 시내를 벗어나면 사처에 초원이요. 어디서 왔는지 초원구경을 왔소?”
“예. 우리 장춘에선 초원을 볼래야 볼 수 없습니다.”
“에이, 하필이면 늦가을에 왔소? 초원을 구경하려면 봄이나 여름에 와야지.”
성호는 그쯤 묻고나서 자기 방으로 들어갔다.
그는 침대에 누워 깍지손을 걸어 베고 천정을 쳐다보면서 한참 속궁리를 굴렸다.  그는 한참 후에야 려관방 문을 제대로 걸었는가 확인하고나서야 새우잠을 청했다.
이튿날 이른 아침에 성호는 려관방을 나섰다.
뚱뚱한 중년사나이 조발귀는 되창문으로 성호를 흘끔 내다보면서 물었다.
“초원구경 가오?”
“아니, 아침 먹고 돌아오겠습니다.”
“오, 그래?”
조발귀는 인심을 쓰려고 했다.
“우리 집에서 아침식사를 하오.”
“감사합니다. 시내구경도 할 겸 나가 먹겠습니다.”
성호는 뚱뚱한 주인의 얼굴에 어째 살기가 서린감을 느껴 인차 자리를 뜨고 싶었다.
그는 려관방을 나서자 마차를 세 내가지고 교외로 쏜살같이 달려나갔다.
“어디로 가려오?”
“어디라 없이 초원 목장이면 됩니다. 목장 구경하러 왔습니다.”
“쨔!”
마차 주인은 연신 말채찍을 쨩쨩 날렸다.
“이런 말은 여기서 얼마나 합니까?”
성호는 마차 주인에게 넌지시 말값을 물어보았다.
“오~ 한 1천 5백원쯤 하오.”
“오-”
성호는 저도 몰래 감탄이 나갔다.
고향에서는 이런 말이면 3천원이나 4천원은 했다. 심지어 좋은 말 한필이면 만원씩 하는 어지간한 자동차와도 바꾼다는 말이 돌 정도였다.
마차를 타고 얼마나 달렸을가. 이윽고 누렇게 번져간 무연한 초원이 펼쳐졌다. 초원에는 양떼가 꽃구름송이들처럼 흐르고 말타고 양떼를 모는 운두라바한의 름름한 모습도 보였다.
성호는 양떼에 관심이 전혀 없었다.
“소나 말을 사양을 하는 목장은 없습니까?”
“뭐, 소 사려고 그러오?”
“아니, 난 양띠여서 양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왜?’
마차 주인은 마차를 몰면서 이상하다는 눈길을 보냈다.
“양을 잡는 걸 련상하면 불쌍해서 보기조차 안쓰럽습니다.”
“진짜 양처럼 착한 사람이구만.”
마차 주인은 채찍을 날래게 후려쳤다.
쨩! 쨩!
또 한식경이나 달리자 무연한 누런 초원에 하얀 목화송이 같은 양떼에 이어 젖소떼와 말떼가 나타났다. 사납게 달리는 말떼는 똑마치 노호하며 덮쳐오는 황하의 물결처럼 감때사나왔다.
“됐습니다. 수고했습니다.”
성호는 용돈을 넣은 호주머니에서 돈을 꺼내 마차세를 주었다.
“혹시 돌아갈 때 마차가 필요하지 않겠는지? 련계하게나.”
마차 주인은 전화번호까지 적어주었다.
“예. 알았습니다.”
마차가 떠나가자 성호는 말을 타고 말떼와 젖소떼를 모는 운두라바한한테 다가갔다. 항아리 같은 젖통을 디룽디룽 단 채 풀을 뜯어먹는 젖소떼 속에는 황소도 수태 섞여 유유히 흘러가고 있었다.
말을 탄 운두라바한은 낯선 성호의 아래우를 유심히 훑어보았다.
“여보시오. 젖소를 팔지 않겠습니까?”
그제야 운두라바한은 바위돌처럼 굳어졌던 얼굴 근육을 느슨히 풀면서 말에서 훌쩍 뛰여내렸다.
“몇마리나 사겠소?”
“값을 보고 흥정합시다.”
운두라바한은 초원의 바람에 꺼슬꺼슬한 낯에 활기를 띄였다.
“한마리에 한 천원이야 받아야지.”
“아니, 왜 그리 비싸오? 한 7백원이면 사겠는데.”
운두라바한은 성호를 힐끔 곁눈질하였다.
(세상 물정은 좀 아는군.)
그는 먼 초원의 하늘을 쳐다보면서 입을 뗐다.
“몇마리 사겠소?”
“한 세마리.”
그들은 한어로 통화했다.
“8백원에 사가오.”
한마리에 2천원에 판다면 운비와 로비를 떼고도 한 천원은 떨어질 것 같았다. 그래도 속내와는 달리 값을 깎아내렸다.
“7백원에 파오.”
“고까짓 세마리를 사면서 남의 소값을 자꾸 깎겠소? 어떻게 키운 소라고 그러오?”
성호는 기어이 고집했다.
“7백원에 팔면 소와 말도 더 사겠소.”
운두라바한은 반색하면서도 성호을 믿지 않았다.
“어디서 왔는지 모르겠소만 소와 말을 어떻게 가져가려고 그러오?”
“장춘 교외에 있소. 기차에 부치면 얼마든지 가져갈 수 있소.”
“그래?’
운두라바한은 성호를 믿기 시작했다.
“말과 황소는 몇마리 사겠소?”
성호는 한술 더 떴다.
“소와 말을 기차역까지 실어다줄 수 있소?”
“내겐 자동차 없소. 하필 차에 실을 필요있소? 소와 말을 기차역까지 몰고 가면 되겠는데.”
성호는 머리를 끄덕였다.
그는 운두라바한과 흥정해 황소 20마리, 젖소 3마리 말 2필을 사기로 했다.
“이제 역에 가서 운비를  알아보고 오겠소.”
“실언하지 마오.”
성호가 머리를 돌려 떠나려고 할 때였다.
“가만!”
운두라바한이 불러세웠다.
“역까진 한 150리나 되오. 내 아들과 함께 말을 타고 가오.”
“난 말을 탈줄 모르오.”
“내 아들이 탄 말에 앉아 가오.”
운두라바한은 옆구리에서 소뿔로 만든 나팔을 꺼내들더니 “뚜-” 하고 길게 불었다.
저쪽 누런 초원에서 웬 청년이 말을 타고 뽀얀 먼지를 일구면서 쏜살같이 달려왔다.
이윽고 성호는 운두라바한의 아들과 함께 말을 타고 쏜살같이 역으로 달려갔다.
그가 운두라바한의 아들과 함께 말을 타고 초원으로 돌아왔을 때는 점심때 거의 되였다. 그는 돌아올 때에는 말을 손수 타고 운두라바한을 뒤에 태우웠다. 말타기를 미리 익혀두는 것도 좋을 것 같았다.
“점심이나 먹고 소를 몰고 가오.”
운두라바한은 사람좋게 웃으면서 성호를 몽골포로 인도했다.
성호가 둘러보니 진짜 고향에서는 볼 수 없는 풍경이였다. 젖내가 진한 몽골포 안에 항아리에 하얀 우유가 불렁불렁 끓고 있었다.
“안녕하세요?”
성호가 돌아보니 문께로 이쁜 몽골처녀가 생글방글 웃음꽃을 피우며 들어섰다.
운두라바한이 소개했다.
“우란호트대학을 다니는 딸 쑤싼나요. 쑤싼나라는 몽골말은 중국어로는 목란꽃이라는 뜻이오.”
그는 쑤싼나한테 돌아섰다.
“얘, 장백산 기슭에서 온 조선족청년이야.”
“리성호라고 부르오.”
“예- 전 조선족청년을 아주 좋아해요. 언제 장백산을 구경했으면 좋겠는데요.”
성호가 손을 내밀었다.
“기회가 있으면 우리 고장에 오면 장백산구경을 시켜주지.”
그녀는 성호의 손을 잡고 생글 웃었다.
 “예~ 많이 도와주세요.”
 그녀는 따뜻한 쑤유차를 손수 호로박에 부어 성호한테 드렸다.
“우리 쑤유차는 몸에 좋아요. 자, 어서 마셔요.”
그녀는 노래를 부르듯이 종알거렸다.
“우리 고장에 여름에 오면요. 푸르른 초원에 매가 날아예고 양떼와 소떼, 말떼가 구름송이처럼 흘러 진짜 장관이죠.”
“난 소를 사려고 왔소.”
성호의 말에 쑤싼나는 혀를 한발이나 내둘렀다.
“아니, 소를 사려고 여기까지 왔단 말인가요?”
성호는 대답 대신 머리를 끄덕였다.
운두라바한의 아내는 그새 나무대로 우유를 절러덩절러덩 젓더니 작은 대야에 하얀 우유를 퍼왔다. 밥상에는 삶은 양고기와 소고기가 무두룩이 쌓여 있었다.
“자, 드오. 초원이라 장춘 시내와는 비길 수 없이 밥상이 스산하오.”
운두라바한은 호로박으로 자기 술잔에 술을 권했다.
“먼 길을 가야기에 술은 그만두기요.”
“한잔이야 들어야 하지.”
성호는 호의를 거절할 수 없어 한잔 들고 양고기와 밥을 게 걸스레 입에 퍼넣었다.
점심숟가락을 놓기 바쁘게 성호는 허리춤에 띠였던 돈따발을 꺼내 1만 3천원을 세여 운두라바한의 손에 건네주었다.
운두라바한은 식지에 침을 퉤퉤 뱉어서 두툼한 돈을 세면서 헤벌쭉거렸다.
“하하하. 오늘 하늘에서 귀인이 나타나서 앉은 자리에서 만원 돈을 벌었군.”
성호는 바깥에 나가 자기가 산 소와 말의 귀에 집게로 구멍을 내 표적을 냈다.
그의 깐깐한 솜씨에 운두라바한은 못내 놀랐다.
“테무치야, 저 소와 말을 역까지 몰아다줘라.”
“예.”
성호는 아주 순조롭게 소와 말을 사가지고 귀로에 올랐다.
운두라바한 운두라바한은 말을 타고 한 십여리까지 따라오면서 바래였다.
“이 후에 소와 말을 사러 또 오오.”
“이번에 잘 되면 자주 오겠습니다.”
그들은 오랜 친구처럼 서로 포옹하고나서 헤여졌다.
성호가 운두라바한의 아들과 함께 가을 모래바람이 휘몰아 불어치는 누런 초원을 벗어나 어둑어둑한 황혼무렵에야 교외에서 그리 멀지 않은 산기슭 굽인돌이길에 들어섰다.
그때였다.
난데없는 괴한들이 말을 타고 쏜살같이 덮쳐왔다.
“서라! 소와 말을 두고 가면 살려준다.”
성호는 품 속에서 비수를 뽑아들 새도 없었다.
쨩!
채찍소리와 함께 비수를 뽑으려던 성호의 손이 길다란 채찍에 휘감겼다. 성호는 채찍에 휘감긴 손을 홱 나꿔챘다. 채찍질한 놈이나 성호나 다 말잔등에서 퉁 떨어졌다.
쨩!
다른 놈이 채찍을 휘둘렀다.
순간 성호는 몸을 움츠리면서 날아드는 채찍을 피했다. 그는 팔을 뻗쳐 날아드는 채찍꼬리를 잡아챘다. 평소에 7절채찍과 3절곤봉을 휘두른 덕을 톡톡히 보았다. 테무치도 강도들한테 채찍을 날렸다.
쨩!
두번째 놈은 성호와 주인집 아들의 련합진공에 저만치 도망쳤다.
쨩! 쨩! 쨩!
채찍이 련속 날아와 성호의 면상과 손목을 후려갈겼다.
어찌나 날랜 채찍질인지 성호는 미처 피할새도 없었다.
테무치는 상서롭지 못한 것을 보고 말머리를 돌려 도망치는 것이 아니겠는가!
쨩!
채찍이 날아가 테무치의 머리를 후려갈겼다.
“앗!”
모자가 땅바닥에 떨어졌다. 테무치는 그제야 정신이 펄쩍 들었다. 그는 몸을 날려 오른쪽 말배에 딱 들어붙더니 먼지를 새뽀얗게 일구면서 허겁지겁 도망쳐버렸다.
말을 탄 놈들과 싸워본 적이 없어 불리했다. 성호는 더 싸우지도 못하고 대뜸 말잔등에 뛰여올라 도망쳤다.
휙-
갑자기 뒤에서 올가미가 날아와 성호의 목을 걸었다.
진짜 이런 올가미에 당해본 적이 없었다. 성호는 올가미에 걸려 말잔등에서 퉁 떨어졌다. 강도들은 말 뒤에 성호를 달아매 줄줄 끌고 달려갔다.
성호는 왼손으로 목에 걸린 올가미를 틀어쥐고 오른손으로 각반에 감춘 비수를 뽑으려고 했지만 헛수고였다.
“개자식! 죽어봐!”
저쪽에 쓰러졌던 두 놈도 일어나 말을 타고 따라오더니 성호에게 겨끔내기로 채찍을 안겼다.
강도들은 성호를 산기슭의 말라죽은 고목에 묶어놓았다.
성호는 조여드는 목을 추슬리며 한어로 겨우 한마디 흘렸다.
“아이고, 여기서 죽으면 집에 있는 로모는 어찐단 말인가?”
강도들은 몽골말로 뭐라고 저희들끼리 지껄였다. 그중 한 놈이 성호의 목에 건 올가미는 풀어주고 두 팔을 뒤로 해 꽁꽁 묶어놓았다.
성호가 채찍을 나꿔채는 바람에 말에서 떨어졌던 놈이 다가왔다. 그 놈은  돌부리에 찔려 상처자국이 난 낯을 매만지면서 꽥꽥 소리 질렀다.
“저 놈을 살려주면 우리 잡혀. 아예 화근을 없애버리자.”
다른 두 놈은 소와 말을 몰고 가면서 한어로 빈정거렸다.
“우리 손을 더럽힐 필요없어. 승냥이 물어가지 않으리.”
“허허허. 말과 소를 몰아가면 됐지. 살인죄까지 질 필요없지.”
“하하하.”
그 놈들이 떠나가는 뒤에는 공포의 어둠이 점점 두텁게 깔리고 있었다. 어디라 없이 빈 공간이 없이 살기가 차넘쳤다.
어디선가 굶주린 이리떼들의 무서운 울부짖음소리가 울려왔다. 그 공포의 울부짖음소리가 성호의 황홀한 꿈을 산산히 까부시고 있었다.
어둠과 공포가 몰려오는 살벌한 초원의 고목에 묶인 성호한테 절망의 올가미가  몰려와 꽉 옥죄고 있었다.
성호가 절망의 심연에서 헤여나올 수 있을가?
죽음의 공포가 살벌하는 허허벌판은 아무 대답도 없다. 멍든 하늘은 저승사자마냥 랭소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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