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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장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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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하소설 울고 웃는 고향(104)
2018년 06월 02일 10시 18분  조회:1752  추천:0  작성자: 김장혁

 
 
             5. 삼십육계 줄행랑이 제일

      가을의 쪽빛하늘은 맑고 푸르고 높았다. 산과 들의 곡식밭은 누렇게 번져가고 있었다. 하늘에는 강남으로 날아가려는 새끼제비들이 날개를 굳히느라고 나는 연습을 하고 있었다.
덕돌은 성욱과 함께 삽을 둘러메고 쥐 굴을 파러 태평강을 넘어 제방둑 옆의 콩밭으로 갔다.
“야, 쥐 굴!”
덕돌이 소리치자 성욱은 삽으로 그 쥐 굴을 파기 시작했다. 한자 깊이도 파지 않았는데 다 퍼진 노란 콩알이 나왔다.
“야, 쥐 콩!”
덕돌은 희구해 쥐 콩을 손으로 마구 파냈다. 그때 놀란 쥐 한 마리가 쥐 굴에서 나와 구덩이 밖으로 뛰어나갔다.
“요놈 쥐새끼! 죽어 봐!”
성욱은 마른 콩 숲속으로 뛰어 들어가는 쥐를 따라가면서 삽날로 탁탁 때려 끝내 잡아치웠다.
“덕돌아! 큰누나 왔다. 어서 집으로 돌아가자!”
그때 저쪽에서 덕돌의 막내누나 성숙의 부름소리가 들려왔다.
“응? 큰누나 왔다고?”
“응- 빨리 가자.”
“큰 매형이 또 사탕이랑 과자랑 가져왔데-?”
“응!”
덕돌은 쥐 굴에서 난 젖은 콩을 성욱에게 다 주고 성숙을 따라 부랴부랴 집으로 달려갔다.
그는 무슨 생각이 났던지 돌아섰다.
“성욱아, 우리 집에 놀러 오너라. 내 사탕이랑 과자랑 줄게.”
“응, 고맙다!”
그들은 서로 손을 저으면서 헤어졌다.
경학의 아들 성욱은 덕돌의 9촌 조카인데 둘은 각별히 친한 짜개바지친구였다. 덕돌은 이전에 털모자도 없이 귀를 얼굴 때 성욱이 자기 쓰던 털모자를 씌워주던 일을 잊지 않았다. 그리하여 덕돌은 동갑조카라고 성욱과 사탕 한 알이라도 나눠 먹곤 했다.
덕돌이 주먹을 쥐고 집으로 뛰어오니 마당에서 큰누나 춘자가 어린애를 안고 반겨 맞았다.
“우리 하나 밖에 없는 남동생이 왔구나.”
“큰누나!”
덕돌은 한달음에 애를 안은 큰누나의 품에 안겼다.
춘자는 덕돌과 애를 한품에 안고 기뻐 어쩔 줄 몰랐다.
“덕돌아, 네 조카 성춘이야.”
그제야 덕돌은 큰누나의 품에서 머리를 들고 어린애를 빤히 들여다보았다. 성춘은 어머니 품에 안겨 손가락을 입에 넣고 빨면서 하얀 두 다리를 바둑 거리었다.
“성춘아, 얘 생일이 언제요?”
덕돌은 외조카 성춘의 젖살이 포동포동 오른 볼을 손가락으로 매만지면서 물었다.
그러자 춘자는 덕돌에게 애를 안겨주었다.
“옳지. 외삼촌이 안아봐야지. 얘는 70년도 11월 11일이 생일이다.”
덕돌이 입이 함박만 해 성춘을 안고 싱글벙글하며 횡설수설했다.
“그 놈이 생일이 특별한 게 큰 노릇을 하겠다. 어쩜 몽땅 1자냐? 네 가지가 몽땅 1등을 할 팔자로구나.”
명옥이 집에서 나오면서 황급히 소리쳤다.
“애를 떨어뜨리겠다. 꼭 안아라.”
“예.”
"이젠 그만 안아보고 큰누나한테 줘라."
"예."
마을에서는 모두들 나이는 어려도 속에 영감이 들어앉았는지 옛말을 잘 하는 덕돌을 보고 “속에 영감이 들어찬 쪽똘영감”이라고들 했다.
덕돌은 성춘을 품에 꼭 안고 흔들면서 귀여워 어쩔 줄 몰라 했다. 그는 아쉬운대로 성춘을 큰누나한테 넘겨주었다.
전 해 겨울에 엄마가 기차를 타고 교하에 가서 성춘을 낳는 것을 받아내고 뒤 바라지를 했다. 둬달 후에 엄마가 집으로 돌아와 큰매형 등에 업혀 강을 건너 큰딸 집으로 간 얘기로, 갓난 애기 얘기를 하는 것을 들었기에 덕돌은 큰누나네 아들을 낳았다는 것을 진작 알고 있었다. 하지만 정작 처음 보니 매형과 누나를 고루고루 닮아 새하얀 살색에 곱게 생긴 조카 성춘이 얼마나 귀엽고 고운지 몰라 어쩔 줄 몰라 했다.
“우리 하나 밖에 없는 처남이 왔구나.”
이때 동수가 나와 덕돌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면서 입에 사탕 알을 넣어 주었다.
“야, 이 놈아, 돌이 둘인 거 뭐야? 허허허.”
“호돌매돌.”
춘자가 한마디 끼어들며 웃었다.
동수는 덕돌의 손을 끌고 들어가더니 “봐라, 셋째매형도 왔다.”라고 하면서 윗방에 앉아 있는 한 청년을 가리켰다.
“셋째매형?”
“응. 그래. 셋째매형이야.”
덕돌이 보니 작달막한 셋째매형은 철색얼굴에 웃음을 지으면서 사과 한 알을 들고 일어나 다가왔다.
“자요. 사과 드세요.”
(셋째매형도 남대치구나.)
춘자는 “에이고, 열네 살 밖에 안 되는 애하고 무슨 존대를 쓰오? 편안히 이래라 저래라 하오.”라고 했다.
“하나 밖에 없는 처남인데요.”
이때 상순이 집에 들어섰다.
동준은 동서 동수를 보고 “절을 해도 돼요?” 하고 물었다.
“글케 하게.”
허나 상순은 손사래를 흔들었다.
“아니, 절은 뒀다 천천히 하오.”
그 말에 동준은 손으로 뒷덜미를 긁적거렸다.
상순은 상좌에 앉더니 덕돌을 보고 “너 과수원에 가서 셋째누나를 데려오렴.”라고 했다.
“예.”
덕돌은 큰누나가 주는 사탕과 과자를 호주머니에 넣고 칼산과 패용천산 사이에 있는 대대 과수원으로 달려갔다.
상순은 셋째 사위감을 마주 앉아 엄숙하게 물었다.
“이름을 뭐라고 부르오?”
“고동준이라고 불러요.”
“고씨라? 무슨 고씨요?”
상순과 동준은 딱딱하게 일문일답을 했다.
“제주 고씨입니다.”
“그럼 남조선 제주도가 고향이오?”
“아닌데요. 우리 고씨는 본이 제주지만 후에 탐라에서 대륙에 들어와 경상도에서 살았어요.”
상순은 한숨을 후 내쉬었다.
“경상도에서 여기까지 입북하느라고 고생이 얼마나 많았겠소? 다 일본 놈들 때문이었지.”
상순은 담배쌈지를 꺼내 담배를 말아 한 대 붙이더니 물었다.
“길림에서 중등전문학교를 나와 소학교 교원을 한다지?”
“예.”
“내 하나 궁금한 게 있소. 지금 모 주석께서는 ‘이계급투쟁위강(以阶级斗争为纲),강거목장(纲举目张)이라고 했는데 무슨 뜻인지 설명해주겠소?”
그것은 사위 감의 지식을 시험 치는 대목이나 다름없었다.
동수는 별로 생각도 하지 않고 술술 대답했다.
“그 뜻은 이런 거 같아요. ‘계급투쟁을 기본 고리로 하여야 합니다. 기본 고리를 틀어쥐면 모든 것이 다 풀립니다.'”
“무엇 때문에 ‘강거목장’이라고 했소?”
“예. 말씀 드리면요. 고기그물이 있잖아요. 예서도 투망이라고 하지요?”
“그래 투망이지.”
“투망에서 끈은 고리와 같은 거죠. 투망이 아무리 커도 끈을 잡아당기면 그물이 끌려 모아지면서 고기를 잡을 수 있는 것이지요. 그러니깐. 계급투쟁을 기본 고리로 틀어쥐면 모든 일이 술술 다 풀린다는 뜻이지요.”
“오, 그래서 계급투쟁을 기본 고리로 틀어쥐라는 말이구먼.”
상순은 동준의 그럴 듯한 대답에 머리를 끄덕이었다.
뒤이어 그는 동준의 집안 형편을 두루 물어보았다. 교하에서 소학교 교원을 하는 동준은 고씨네 일곱 형제 가운데서 둘째였다. 로임을 타는 교원이기에 귀여운 딸 홍자를 고생시킬 것 같지 않았다.
이때 홍자가 누런 사과를 듬뿍 담은 하얀 버들광주리를 이고 집안에 들어섰다.
동준은 나가 홍자의 머리 위에서 사과광주리를 받아 내리워 주었다.
그 모습을 보고 명옥은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사실 상순과 명옥은 이전에도 서뿔리 홍자의 결혼을 결정하지 않았다. 이전에도 동네에서 숱한 중매군들이 문턱이 다슬게 찾아왔지만 다 거절했다. 그들은 애지중지하며 키운 딸을, 죽다가 살아난 셋째딸을 아무데나 줬다가 고생시킬까봐 마음고생을 시키지 않을 사위 감을 고르고 또 골랐던 것이다. 병진이 동불사의 고모사촌동생을 소개했을 때에도 술주정뱅이 병진을 닮아 주정뱅이라는 것을 알고 거절했다. 윗집 아낙네가 로투구의 자기 5촌 조카를 소개했을 때에도 키가 작은데다가 농사를 짓는 고생할 자리라고 대답하지 않았던 것이다.
상순은 고방에 들어가 머리 수건으로 얼굴의 땀을 훔치는 홍자를 따라 들어가 의향을 물었다.
“저 동수가 마음에 드느냐?”
“예. 교원질을 하니까. 농사지을 고생은 하지 않을 거 같습니다. 말수가 적고 마음이 좋아 보입니다. 나를 마음고생을 시키지 않을 거 같습디다.”
“그래. 네가 그간 춘자네 집으로 가서 여러 번 만나보고 지내봤다니 믿겠다.”
상순은 고방에 들어온 아내와 큰딸 춘자를 보고 의향을 물었다.
“헌데 말이 적고 눈에 독이 좀 있는 거 같아. 어떠냐?”
춘자는 자기 견해를 제대로 말해주었다.
“말수가 적어서 속을 알기 힘듭니다. 허나 이제껏 2년 동안 지내보니 마음이 어진 편입디다.”
그러자 명옥은 상순이 너무 꼬치꼬치 캐묻는다고 여겼다.
“에이고, 춘자가 한 학교에서 지내보고 소개했는데 틀림 있겠소. 절을 받기요.”
그리하여 상순과 명옥은 정중하게 고동준을 셋째사위로 맞아들이기로 하고 절을 받았다.
동준은 “감사해요. 홍자를 데려다 마음고생을 시키지 않고 행복하게 살겠습니다.”라고 하면서 꾸벅 절을 올리었다.
상순과 명옥은 친척들을 불러다 약혼술상을 차렸다.
둘째사위 영만과 큰사위 동수는 술친구였다. 그날도 그들은 새 동서를 맞은 기쁨에 겨워 술을 취토록 마셨다. 허나 말수 적은 동준은 첫걸음인지라 눈을 내리깔고 술을 덜 마셨다.
덕돌은 사탕과자를 내다가 성욱과 동린과 함께 나눠 맛있게 먹었다…
음력 정월 초아흐레에 홍자는 동준한테 시집가게 됐다.
동준은 잔치 전 일주일 전에 가시집에 와서 홍자와 함께 있었다.
잔치 날 새벽 3시 반이 되자 성급한 상순은 기차시간이 늦을 까봐 신랑의 큰상을 차려놓으라고 재촉이 성화같았다.
명옥은 “기차가 8시 반에야 떠나는데 무슨 재촉을 그렇게 합니까?”라고 했다.
허나 상순의 성깔을 아는 명옥은 은숙이랑 춘자랑 데리고 윗방에 큰상을 차렸다. 그리하여 동준은 새벽 4시도 되지 않아 큰상을 받았다. 전기도 오지 않아 초불을 밝히고 진짜 전쟁을 치르는 격이었다.
상빈으로 동준의 삼촌이 왔는데 술을 한 잔도 입에 대지 않았다. 상순이 술을 마시지 않는 위인이라는 것을 알았는지 사돈영감도 술을 별로 마시지 않았다.
이쪽에서 상빈으로 상순이 직접 덕돌을 데리고 갔다.
상순은 제일 귀엽게 기른 셋째딸 홍자가 어떤 곳에 시집가는가를 직접 자기 눈으로 그 미지의 땅을 밟아보고 와야 시름을 놓을 것 같았던 것이다.
그들은 새까만 밤에 첫날 마차에 첫날이불이랑 실어가지고 진수해를 바라고 떠났다. 그런데 반란파 두목 종연이 뜻밖에도 마차를 몰고 짐을 실으러 오지 않았겠는가.
(진짜 이게 해 서산에서 뜨지 않았는가.)
상순은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종연도 당지부 서기인 상순에게 잘 보이지 못하고는 입당은 고사하고 이 마을에서 발을 붙이기 어렵다는 혁명의 도리에 눈이 트기 시작했던 것이다.
상순은 셋째 딸과 함께 기차를 타고 일곱 시간 남짓이 지루하게 달려서야 교하에 이르렀다.
저 멀리 탄광의 버럭산에서 불이 활활 타오르면서 연기가 뭉게뭉게 피어올랐다. 내자산 탄광이 마을에서 한 3리 밖에 되지 않아 땔나무근심은 하지 않아도 될 것 같았다.
사돈집이 있는 마을에 가보니 집집마다 벽 밑에 기름이 번지르르한 피장 같은 석탄을 쌓아놓고 때고 있었다.
덕돌은 또 상빈으로 가서 상다리 부러질 지경으로 차려놓은 상빈 상을 받고 배가 세간나게 먹어댔다.
둘째누나 은숙의 결혼에 상빈으로 갔을 때와는 달리 열네 살이나 됐기에 배를 슬슬 만지면서 “야, 잘 먹었다.”고 하지는 않고 좀 체면을 차리었다.
상순은 춘자네 집에 며칠 있으면서 건두부 채에 돼지고기를 실컷 먹을 수 있었다. 두루 마을 형편을 알아보니 밭도 많고 남새를 가꾸므로 살기도 함흥대대보다 나을 것 같았다.
함흥대대에서 아무리 한평생 대대로 고생해도 죽물이나 겨우 먹었다.  땔나무도 없어 항상 담배뿌리와 강냉이뿌리를 파다가 때면서 기아에 허덕이지 않았던가!
어느 해인가 한번은 집에서 어쩌다 음역설을 만나 돼지고기 두 근을 사다 장국을 끓여놓았다. 애들은 숟가락으로 국 사발을 살살 저으면서 돼지고기를 찾느라고 여념이 없었다.
그런데 성숙이가 불시에 “와-” 하고 울음보를 터뜨렸다.
“어째 그러니?”
성숙은 눈물을 닦으면서 “내 돼지고기 은자 국사발에 들어갔소?”라고 했다.
“어쩌다가 그렇게 됐니?”
명옥이 물으니 성숙은 울면서 말했다.
“내 국 사발하고 은자 국 사발을 나란히 놓아놔서 내 숟가락으로 장국을 젖다가 아까워 먹지도 않던 돼지고기점이 은자 사발에 들어갔소.”
      명옥은 은자의 국 사발에서 성숙이 가리키는 돼지고기 점을 숟가락으로 퍼서 주었다.
그런데 성숙이 씹어보니 장덩이었다. 참 울다가 웃을 일이었다.
    상순은 황화전자 큰딸네 집에 와 있으면서 두루 살펴보니 땔나무근심도 없지 쌀도 배급을 주지 논도 잘 다루면 잘 먹고 살 것 같았다. 이곳 한족들은 원래 논농사를 지을 줄 몰라 씨를 뿌려 거두는 것만큼 거둬다 먹고 위주로 채소를 가꾸고 있었다.
“여기 와서 논물기술원으로 살면 어떨까? 그까짓 함흥대대에서 문화대혁명의 시련을 받을 게 뭔가? 에라, 삼식육계에 줄행랑이 제일이야. 교하로 훌쩍 이사해 버리자.”
상순은 며칠 심사숙고한 끝에 춘자와 말해 보았다.
그러자 춘자는 남편과 토론하고 본가집을 황하전자대대 2대 논물기술원으로 받게 주선했다. 그때 내자산공사 농업보급소에 배치된 동수의 말을 대대에서 인차 들어주었다. 황차 상순은 벼농사 기술원이라는데야. 대대 당지부 서기에 치보 주임도 해본 경력까지 있어 공사에서마저 훌륭한 농촌 간부를 얻었다고 환영하는 눈치였다.
홍자도 부모를 떠나 먼 타향에 시집왔는데 자기를 금지옥엽처럼 아끼던 친정 부모가 옆에 오면 좋다고 기뻐 어쩔줄 몰랐다.
상순은 “문화대혁명” 정치가 백열화된 함흥대대를 떠나 조용한 한족 곳에 와서 쌀 근심, 땔나무 근심을 하지 않으면서 살고 싶었다.
게다가 상순이 대대에 돌아오니 반란파들이 그의 둘째딸 은숙이 조선 회룡에 가서 있은 일로, 진달래 큰어머니 문제 등을 꼬챙이에 꿰들고 조선특무라는지, 고모 6촌 동생 이병수와 용천의 남조선 특무사건을 꼬챙이에 꿰들고 남조선 특무라고 떠들어대는 것이었다.
(에라, 모르겠다. 이 더러운 대대를 떠나고 말자.)
집에 돌아온 후 상순은 이계삼을 찾아가 볼까 하다가 그만두었다. 찾아가 보아야 현실을 도피하려고 한다면서 반대할 것은 빤한 일이었다. 그리하여 먼저 허영주를 찾아가 교하에 이사해 갈 의향을 말했다.
그러자 허영주는 눈이 똥그래 상순을 뚫어지게 보다가 펄쩍 뛰었다.
“아니, 무슨 말이오? 우린 김 서기를 믿고 이 마을로 내려왔소. 숱한 노간부들을 버리고 어디로 간단 말이오? 함흥대대를 뭐로 만들 예산이오?”
“문화대혁명 바람에 어디 살겠습니까? 우리 조손 3대가 쪽박을 차고 이 마을에 와서 황무지를 개간하고 한평생 고생했지만 오히려 투쟁 받아야 했습니다. 종연이랑 이마에 피도 마르지 않은 반란파들이 우리 당지부 머리 위에 올라 앉아 똥을 쌀 지경입니다. 보기만 해도 눈에 불이 나서 어디 살겠습니까? 안쪽에는 땅이 많아 농사를 짓기 좋고 마을 옆에 탄광이 있어서 땔나무근심도 없어 살기 좋을 거 같습디다.”
“꼼꼼히 잘 생각해보오. 당을 믿어야 하오. 우리 당은 꼭 정확한 길로 나갈 것이오. 우리는 초인간적인 인내력으로 이번 ‘문화대혁명’의 시련을 이겨나가야 하오.”
영주는 절절한 눈길로 상순을 바라보며 두 손을 꼭 잡아 흔들었다. 상순은 머리를 숙이고 우사 회의실을 나섰다. 그는 먹장구름이 뒤덮인 채 개일 줄 모르는 하늘을, 애꿎은 함박눈만 펑펑 내리쏟아붓는 하늘을 쳐다보더니 한숨을 후 내쉬었다.
이계삼과 허영주 그리고 허백호까지 나서서 현실을 도피하는 것은 당과 인민을 책임지지 않는 행위라고 비평하면서 말렸다. 하지만 벽이라도 차고 나가는 상순의 성질을 막을 수는 없었다. 노 간부들은 자기가 살자고 쌀 걱정을 하지 않으려고 이사 가는 상순을 더 막을 수도 없어 그만 물러서고 말았다.
상순의 둘째딸 은숙도 갓난 계옥을 업고 와서 울면서 말리었다.
“아버지, 우리를 버리고 가지 마십시오. 안쪽에 간다고 쌀이 하늘에서 떨어지겠습니까? 온 집 식구들이 한족 곳에 가서 무슨 고생을 하자고 그럽니까?”
“썩 꺼져라! 남이 이사 가는데 고양이 방정을 떨겠니?”
은숙은 울면서 집으로 돌아갔다. 아버지 성격을 아는 그녀도 어쩌는 수 없었다. 그녀는 맏딸 계옥을 업고 겨울 하늘을 우러러 보며 섭섭해 눈물을 지었다.
청청 하늘이어, 어이하여 아버지는 이 딸의 일편단심 효성을 몰라주는 걸까?
              
                    6. 정든 고향을 떠나


     천지꽃산에는 잔설이 듬성듬성 널려있었다. 만주 땅에서는 아직도 꽃샘추위가 꽤나 맵짰다. 얼굴을 스치는 바람은 아직도 사람들을 괴롭혔다.
상순은 삽을 메고 명옥은 제물을 담은 함지를 이고 천지꽃산 중턱의 쓸쓸한 할아버지 병완의 무덤으로 다가갔다. 그 뒤에 어린 덕돌이 따라 올라갔다.
상순은 산소 앞에 이르자 명옥과 덕돌과 나란히 서서 두발을 모으고 똑바로 섰다.
“할아버지와 할머니, 이 불효한 손자를 용서하옵소서. 혹시 이 손자를 현실을 도피하는 연약무능한 놈이라고 욕할 수도 있으리다. 허나 할아버지와 아버지께서 고향을 떠나 쪽박을 차고 두만강을 건너와서 개척한 우리 함흥대대는 반 우파투쟁에 뒤이어 ‘문화대혁명’ 바람까지 불어와 이젠 사람이 살 곳이 못됩니다. 반란파들이 이른바 혁명을 한답시고 사람이 사람을 잡아먹는 마귀굴로 돼 버렸습니다. 차라리 일본 놈들이나 국민당 놈들이라면 모조리 죽여 버리면 그만이 아닙니까? 허나 반란파들은 위로부터 혁명적인 홍위병이라고 지지를 받기에 그렇게 할 수도 없습니다. 우리는 대갈통부터 발끝까지 무장한 일본 놈들을 몰아내고 국민당들을 때려 부셨고 세계 최강이라고 자부하는 미군까지 조선에서 몰아내지 않았습니까? 허나 새로 생긴 반란파들은 어찌는 수가 없습니다. 속담에 똥이 무서워 피합니까? 더러워서 피한다고 했습니다. 제가 이사는 가지만 조부모님과 부모의 산소를 꼭꼭 찾아 뵙고 모실 것입니다.”
말을 마치자 상순은 가지고 간 삽으로 산소에 흙을 푹푹 퍼 올렸다.
이쪽에서 명옥은 제사상을 차려놓았다.
뒤이어 상순과 명옥은 덕돌과 함께 절을 꾸벅꾸벅 아홉 번이나 올렸다.
뒤이어 상순과 명옥은 제주를 부어 올리고 절을 하였다.
“조부모님들, 이 불효한 손자를 널리 양해하시고 편안히 계십시오. 이 마을을 떠나는 게 영영 떠나는 게 아닙니다. 제 마음은 항상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계시는 우리 마을에 두고 갑니다. 편안히 계십시오.”
상순은 작별의 절을 또 아홉 번이나 하고나서 눈물을 훔치면서 산 아래로 내려갔다.
태평강을 건너 계수동 산정으로 올라가 부모의 산소도 찾아보았다.
그는 어머니와 아버지 산소에 다가가자 넓적 엎드려 산소를 부둥켜안고 대성통곡했다.
“아버지, 어머니! 이 불효자를 욕하십시오. 부모 생전에 맛있는 음식을 제대로 대접하지 못하고 3년 재해 때 따뜻한 밥 한 끼 제대로 잡숫지 못하고 돌아간 아버지께 정말 미안합니다. 죄송합니다. 제가 반란파들을 보기 싫어 떠나는 거지. 아버지, 어머니를 영 버리고 떠나가는 게 아닙니다. 용서하십시오, 이 불효자를.”
덕돌은 부모가 눈물을 훔치자 뜨거운 눈물을 주먹으로 닦았다.
상순은 심란한 나머지 계속 중얼거렸다.
“삼십육계에 줄행랑이 제일이라고 여기서 반란파들에게 투쟁받고 살게 있습니까? 부러지면 부러졌지 후려들 순 없습니다. 사람이 빚을 지고 살아도 어찌 시비 지고 삽니까?”
상순과 명옥은 손수 제주를 부어 올리고 덕돌과 함께 절을 아홉 번이나 했다. 뒤이어 상순은 덕돌을 보고 제주를 부어 산소에 올리고 절을 올리게 했다.
작별제사를 마치자 상순은 한참 비틀거리면서 산기슭으로 내려가다가 부모의 산소를 되돌아보았다.
잔설이 뒤덮인 민둥산의 흔들리는 마른 풀대 숲속에 누워 있는 부모의 산소가 쓸쓸하기 그지없었다.
이튿날 동녘이 희붐히 밝아오자 상순과 명옥은 은자를 데리고 먼저 마을을 떠났다. 그런데 어떻게 소문을 들었는지 마을 동구 밖에까지 상순을 바래러 나온 마을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그 속에는 이계삼과 허영주 그리고 허백호와 박영발도 있었다. 박윤희는 저쪽 늙은 비술나무 아래에서 눈 굽을 찍었다.
전날 그녀는 상순을 찾아와 눈물이 글썽해 하소연하며 사정했다.
“김서기를 믿고 이 산골에 왔는데요. 이렇게 우리를 버리고 가면 어떻게 해요? 이제라도 말머리를 돌리세요.”
그때 상순은 그저 한숨만 후 내쉬었다.
“절대 그대들을 버리고 가는 것이 아니요. 이 마을이 이젠 살기 더러워서 시원히 바람을 쏘이러 가는 것이오.”
“그게 무슨 말씀인가요?”
윤희는 명옥의 눈치를 핼금 보면서 물었다. 그 한마디 말에 실오리만한 미련을 거머잡을 수 있었다.
“다시 돌아오지요? 예?”
그 말에 상순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박윤희는 야속한 마음으로 자리를 떠났다.
이날 상순의 동생 금옥이네도 이사를 떠났다. 금옥은 오빠가 없는 이 마을에 있을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숱한 한족들까지 나와 그들 오누이네를 바랬다.
흥수는 헤벌쭉거리면서 달려 나와 머리에 서리가 내리기 시작한 상순의 두 손을 잡았다.
“상순이, 이제껏 너무 한 거 같아 미안하이.”
상순은 아주 넓은 마음으로 흥수를 포옹했다.
“우리 대대를 맡기고 가오. 우리 마을을 잘 건설하오.”
상순은 흥수가 야속할 때 많았다. 항미원조 전쟁 때 두번이나 흥수를 구해주지  않았는가. 압록강반에서 미제 공중날강도가 날아올 때 뻔히 서서 적기를 구경하는 걸 상순이 달려가 안아 엎디게 하고 자기 몸으로 덮지 않았더라면 팔만 상했겠는가. 남조선 지역에 군복을 운송할 때 야산에서 육박전을 할 때도 흑인 놈한테 찔릴 번하는 흥수를 상순이 공병삽을 휘둘러 흑인놈을 찍어죽이고 구하지 않았던가. 그때 상순은  흑인놈한테 왼팔을 날창에 찔리지 않았던가. 상순이 아니었더라면 흥수 오늘까지 살아 있겠는가!
그런데도 배은망덕하고 권세욕에 눈이 어두워 항상 상순을 헐뜯지 않았는가.
그러나 상순은 드넓은 품으로 전우를 양해해왔다.
종연은 입이 함박만 해 반란파들 속에 서서 상순을 손가락질 하면서 뭐라고 중얼거리었다. 상순이 가게 돼 서기 자리가 비지 않겠는가. 탈권할 좋은 기회였다.
비록 탯줄을 묻은 고향은 아니지만 상순은 거의 반평생 건설하느라고 애써 온 두 번째 고향 함흥촌을 정작 떠나자고 하니 코마루가 시큼해났다. 그는 눈물을 보이지 않으려고 모지름을 썼다.
허나 그는 이계삼과 허영주와 작별의 악수를 나누면서 끝내 눈물을 흘리고 말았다.
“이서기, 허현장, 편안히 있으십시오.”
허영주는 상순의 손을 잡고 놓지 않으면서 늙은 비술나무 밑의 한쪽으로 가서 신신당부했다.
“교하에 가서는 한쪽 눈만 뜨고 한쪽 눈을 감고 세상 시비를 작작 하게나.”
허나 상순은 머리를 들어 하늘의 먹장구름을 쳐다보더니 또 그 말이었다.
“허현장, 사람이 빚을 지고 살아도 어찌 시비 지고 살겠습니까? 난 인생좌우명을 버리고는 살지 못합니다.”
허영주가 한숨을 쉬는데 그때 이계삼도 다가왔다. 그는 고목 주위를 둘러보더니 숱한 사원들이 먼발치에 서서 이쪽을 보는 것을 보고 간단히 작별인사를 했다.
“김 서기, 교하라고 반란 파들이 없겠소? 한족 곳에 갔다가 맞갖지 않으면 우리 마을에 돌아오오.”
그 말에 상순은 정중하게 말했다.
“반란파들이 살판 치는 이 마을이 이젠 보기도 싫습니다. 편안히 계십시오.”
지춘실은 비술나무 밑으로 다가오면서 흥수의 눈치를 할금할금 훔쳐보더니 상순에게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지새금과 순애는 눈물이 글썽해 상순에게 다가왔다.
순애는 상순의 두 손을 잡고 “삼촌, 삼촌이 가면 우린 누구를 믿고 삽니까? 삼촌이 옆에 있으면서 이영도 이어주고 집도 손질해주더니 이렇게 훌쩍 떠나가면 어쩝니까?”라고 애원했다.
“올해는 이미 이영을 이어놓았으니 괜찮다. 명년에 부모 산소를 보러 올 때 이영을 손질할 테니 근심하지 말라.”
성욱과 동림은 달려와서 아버지와 어머니 옆에 서 있는 덕돌을 불렀다.
“이사 가니?”
성욱이 묻자 덕돌은 울먹울먹해 겨우 말했다.
“나는 아이 간다. 여기서 놀다가 이제 밭갈이랑 할 때 오라더라.”
그러자 동림은 손벽까지 치면서 좋아했다.
덕돌은 성욱과 동림의 손을 잡아 흔들었다.
동림은 덕돌의 손을 잡아 끌었다.
“가자, 오늘 패랑산에 올라가지 않겠니?”
“며칠 후에 올라가자. 내 우리 아버지와 엄마 이사 가는데 바래야지.”
"아싸, 우리도 안쪽으로 이사간다고 하더라.”
동림은 이사가기 싫은지 입에 따 발을 걸 지경으로 뽀족해졌다.
“뭐라고?”
놀란 것은 성욱이었다.
“동림이네까지 이사가면 나는 누구와 놀겠니?”
“나와 함께 놀면 되지.”
그때 병진이네 맏아들 철주가 달려왔다.
“누가 너하고 논다더니?”
성욱은 앵돌아졌다.
덕돌이랑 성욱이랑 손버릇이 나쁜 철주와 놀기 싫어했다. 어려서는 쩍하면 다른 애들의 놀이감 권총이랑 훔치더니 크면서 남의 해바라기랑 훔쳐 까 먹군 했던 것이다.
저쪽 종연이네 집 부근에서 방순희랑 정인옥이랑 월선이랑 이쪽의 덕돌이랑 보고 있었다.
상순은 마을의 숱한 사람들의 환송을 받으면서 마을 동구 밖으로 떠나갔다. 그는 머리를 들어 자기가 한뉘 평생 분투해온 마을과 패용천산과 칼산, 그리고 조상의 산소가 모셔진 천지꽃산과 계수동 산정을 바라보며 눈물을 훔쳤다.
그는 조상들의 산소 그리고 함흥촌과 조개덕 마을 사람들을 향해 돌아가며 꾸벅꾸벅 절을 올렸다.
그는 눈물을 훔치더니 비틀거리며 진수해를 바라고 떠나갔다.
저쪽 어데선가 한 여인의 쓸슬한 노래소리가 간간히 들리었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오
아리랑 고개를 넘어간다
나를 버리고 가시는 님은
십리도 못 가서 발병 난다
...
상순은 그 귀에 익은 목소리 주인이 누구인가를 알고도 남음이 있었다. 저쪽 늙은 비술나무 아래에서 지춘실이 하얀 머리수건을 벗어 두 손으로 맞잡고 석별의 정을 담아 쓸쓸히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속이 강철 같은 상순도 그 장면을 보자 코마루가 시큼해났다…
봄 제비들이 지저귀면서 어둠이 엷게 색바래져가는 하늘에서 날아다녔다. 그날은 유난히도 맵짠 칼바람이 세차게 불어쳤다.
덕돌은 부모와 넷째누나가 마을에서 저 멀리 흑점으로 아물거리다가 굽인 돌이를 돌 때까지 배웅했다.
“덕돌아, 오늘 안쪽으로 가기 전에 군사훈련을 하지 않겠니?”
동림이 물어보자 덕돌은 주먹으로 눈물을 쓱 닦으면서 머리를 끄덕였다.
“온 마을의 홍소병하구 홍위병들을 몽땅 집합시켜라!”
성욱은 “동림아, 너네는 어디로 이사가니?” 하고 물었다.
“흑룡강성 상지라는 곳으로 간다.”
동림은 씩씩거렸다.
“이씨, 쌀고생 하지 말자고 안쪽으로 간다더라.”
덕돌은 동림을 보고 말했다.
“우리 아버지는 투쟁대회 싫어서 이사한다더라. 이씨, 나는 가기 싫어 죽겠다.”
그러자 성욱은 불쑥 뜻밖의 소리를 쳤다.
“작은 아즈바이, 커라배(할아버지)는 서기를 내놓기 싫어하더니 덕돌인 활동참 단장을 내놓기 싫어하는구나. 정말 웃긴다, 웃겨. 흥!”
덕돌은 희죽이 웃으며 성욱을 바라보았다.
“이 놈아, 내 이사 가면 단장을 하려무나. 잔말 말고 오늘까지 이 단장 아즈바이 말을 들어라! 빨리 애들을 불러오라.”
“알았다. 아즈바이께 잘 보여야 단장이나 하겠는지.”
이윽고 애들이 몽땅 조개덕 마을 복판에 자리 잡은 창고마당에 모였다. 희붐히 밝아오는 마당에 모인 애들 속에는 덕돌보다 두, 세 살 이상 되는 초중 졸업반의 애들도 있었다. 애들은 낙제를 자꾸 하여 초중 1학년을 다니는 덕돌과 한 학년을 다니는 애들도 있었고 어떤 애들은 덕돌보다 두 학년이나 세 학년 이상 되다나니 덕돌보다 키가 머리 하나는 더 커도 단장이라고 죄꼬만 조왕들이 영도를 받아야 했다.
덕돌은 제법 나무권총을 허리에 차고 애들앞에 서서 목청을 가다듬어 구령을 불렀다.
“3열 횡대로 줄을 섯!”
그러자 애들은 즉시 3열 횡대로 줄을 섰다. 허나 어떤 애들은 이전처럼 말을 잘 듣지 않았다.
키 큰 동철은 저쪽으로 서서 굿을 보고 서 있었다.
그는 철주와 수군거리기까지 했다.
“저 덕돌은 이사 간더던데 아직도 우리 단장 한다니?”
동철의 말에 철주가 맞장구를 치면서 줄도 바로 서지 않았다.
“글쎄 말이야. 자네 아버지는 금방 갔다. 그런데 자는 어째 가지 않니?”
그때 덕돌이 소리쳤다.
“난 가지 않는다! 줄이나 바로 서라!”
그러자 애들은 쑤군거렸다.
“옳다! 가지 마라! 네가 가면 우리 활동참이 재미없다.”
“옳다! 누가 우리에게 재미나는 옛말을 해주겠니?”
“누가 우리를 데리고 패용천산에 가서 전투놀음을 놀겠니?”
“가지 말라!”
애들이 소리치자 덕돌은 코마루가 시큼해났다.
“그래, 난 이사 가지 않는다! 근심하지 말라! 오늘 군사훈련을 하는 게 어때?”
“와!”
애들은 좋아 야단쳤다. 허나 철주랑 성욱이랑 그리 좋아하지 않았다. 성욱은 덕돌이 가야 단장을 하겠는데 가지 않겠다고 하니 앵돌아졌다.
덕돌은 떠들어대는 애들을 향해 소리쳤다.
“이제부터 내 구령대로 해라!”
“차렷!”
애들은 제법 구령대로 두 발뒤꿈치를 척 모아붙이면서 똑바로 섰다.
“쉬엇!”
“차렷!”
“좌로 돌앗!”
애들은 제법 구령대로 좌로 척 돌아섰다.
“뛰엇!”
애들은 덕돌의 구령에 따라 발을 척척 맞춰 마을 밖으로 달려 나갔다.
애들은 패랑산을 바라고 닫다가도 덕돌이 나무권총을 휘두르며 “엎드려!” 하고 외치면 길 양옆에 두 줄로 쭉 엎드렸다. 머리는 길을 향해 줄느런히 엎드렸다.
하긴 겨우내 눈이 오는 날을 내놓고 거의 날마다 애들은 이른 아침에 일어나 덕돌의 지휘에 따라 군사 연습을 했기에 구령만 내리면 아주 멋지고 일치하게 엎드리고 기고 달리었다.
그뿐이 아니다. 애들은 어느 새 패랑산에서도 제일 가파로운 남쪽 기슭에 이르렀다.
마을로부터 약 한 키로미터나 달려온 애들이 쉴 새도 없이 덕돌은 허리에 찼던 권총을 빼내 휘둘렀다.
“돌격!”
“싸(杀)!”
애들은 소리치면서 경사도가 60도도 넘는 가파론 절벽을 톺아 오르기 시작했다. 덕돌은 한참 톺아 오르다가 내려다보았다.
눈뿌리가 아찔 해났다. 그의 앞에서 9촌 조카 후남이가 제일 가파론 절벽 돌틈을 잡으면서 올라가는 것이 보였다. 창선은 항상 그랬듯이 제일 마지막에서 기어오르고 있었다. 막내외동아들인 창선은 항상 겁을 먹고 절벽으로 기어오르기 싫어했다. 허나 그 애도 덕돌의 명령도 명령이었지만 활동참 기율을 어길 수 없어 마지못해 기어오르고 있었다. 덕돌이네 아랫집 정규상네 둘째딸 순임도 후남의 뒤를 따라 절벽을 톺아오르고 있었다. 죄꼬만 덕돌은 몇몇 꺽다리들의 뒤를 따라 빠른 축에 들어 절벽 위로 톺아 올랐다.
반시간도 안돼 애들은 몇십미터나 되는 가파로운 패랑산 절벽을 톺아 올라 정상에 올랐다.
애들은 패용천산 꼭대기에서 땀을 들이며 시원한 산 공기를 한 가슴 가득히 들이켜면서 웃고 떠들었다.
그때 저 동녘에서 붉은 해가 불덩이처럼 구름을 가르고 불끈 떠올랐다. 고기비늘 같은 먹장구름이 점차 발갛게 타오르다가 금빛으로 물들어져갔다.
덕돌은 금빛으로 물들어가는 산꼭대기에 돌로 조각한 글처럼 새긴 “모주석 만세!”란 글을 보면서 흥얼거렸다.
“금빛태양이 대지를 비추니 모주석 만세 금빛구호 더욱 빛나는구나!”
순임이랑 후남이랑 산꼭대기가 떠나가게 박수를 쳤다.
“쟤는 작문을 잘하지 않고 뭐야!”
“옳다. 그래서 말도 아주 멋지게 하지 않고 뭐니.”
이때 동철이 코를 풀적 거리면서 다가왔다.
“덕돌아, 이사 가기 전에 옛말을 좀 더 해 달라.”
그 말에 애들이 떠들까봐 덕돌은 손사래를 쳤다.
“누가 내 이사 간다더니? 안 간다, 안가!”
그러자 순임은 박수를 치면서 쌍까풀눈을 곱게 흘겼다.
“그러지 않고. 네가 가면 누구한테서 옛말을 듣겠니? 빨리 하나 해라.”
애들은 예전처럼 산이 떠나갈 듯이 박수를 치면서 덕돌을 바라보았다.
“그럼 하지.”
애들은 덕돌을 둘러싸고 모여 앉았다.
덕돌은 금방 절벽을 오르느라고 땀을 흘린 애들이 감기에 걸릴까봐 “에헴, 에헴.” 하고 마른기침을 하더니 짧은 옛말을 시작했다.
“호랑이가 담배를 피우던 옛날이었다.”
“야, 야. 호랑이가 어떻게 담배를 피우니? 순 거짓말이다, 거짓말.”
철주가 떠들어대자 꺽다리 애들은 손으로 철주의 머리를 눌러놓으며 말렸다.
“작작 떠들어라. 옛말이 다 그렇지. 뭐. 덕돌아, 계속 해라.”
애들은 코를 풀적거리며 숨을 죽이고 귀를 강구고 덕돌의 옛말을 들었다.
“수말이 새끼를 낳았다는 멀고 먼 옛날에 어떤 마을에 개코라는 애가 있었지.”
“히히히.”
애들은 코를 싸쥐고 웃었다.
“개코다, 개코.”
덕돌은 웃는 순임이랑 순희랑 보면서 뒤를 이었다.
“개코네 아버지는 사방 십리에 이름을 날린 사냥꾼이지. 그런데 하루는 산에 가서 범을 잡다가 나무 위에 올라갔지. 그런데 그만 날랜 범이 나무가지 위에까지 씽 날아올라왔지."
"저걸 어쩌니?"
"그래서 아버진 범한테 물려 죽었단 말이야.”
“저런! 그래 어쨌니?”
덕돌은 턱을 고이고 다가드는 성욱이랑 돌아보며 계속 이야기했다.
“그래서 개코는 원수를 갚으려고 어머니한테서 활쏘기를 배웠지. 활을 잘 쏘면 멀리서도 범을 잡을 수 있어 물리어 죽을 위험이 적지. 그런데 어머니는 물동이 물에 바가지를 얹어 이고 개 코를 보고 바가지 쪽지를 활로 쏘라고 했지. 개 코는 어머니를 쏠까봐 겁이 나서 손이 떨렸지만 잘 조준해 물 동이 우에서 바가지 쪽지를 면바로 쏘아 떨구었단다.”
“야, 명사수구나.”
“그래. 개코 어머니는 개 코에게 활과 칠성비수를 주면서 아버지 원수를 갚으러 가도 된다고 했지. 그래서 개코는 범과 승냥이들이 득실거리는 머나먼 산으로 갔지. 처음 원시림 속에 간 개 코는 날이 어두워지자 으르렁거리는 범과 이리들을 보고 겁이 나 나무 밑에 눈을 감고 있었지. 그때 마을로 갔던 범들이 돼지랑 오리랑 물고 산으로 돌아오고 있었지. 제일 큰 아버지 범은 냄새를 ‘흡, 흡.’ 맡더니 나무 밑에 두 팔로 눈을 가리고 있는 개 코를 발견하고 새끼와 조카 범들을 보고 ‘저 개 코를 물어오라! 내 양치질이나 해야 하겠다.’라고 명령했단다. 그러자 새끼 범들은 달려와 개코를 물려고 했지. 그때 개코는 활을 꺼내 달려드는 범을 쏘았지. 백발백중인 개코의 화살에 숱한 범이 쓰러졌지. 그런데 한 놈이 쓰러지면 또 다른 범이 달려들었지. 개코는 용감히 싸우다가 나중에 화살이 다 떨어졌지.
"저런!"
"그래서 개코는 끝내 어미 범 앞에 물려 갔지.
어미 범은 개 코를 제꺽 입에 넣더니 통째로 꿀꺽 넘겼지. 개코는 어미 범의 새까만 배때 안에서 칠성 검으로 밸을 싹싹 베고 간에도 칼을 대 도려내기 시작했단다.“
“하하하. 거 재미있구나.”
숨이 한줌만 해서 귀담다 듣던 애들은 웃고 떠들기 시작했다.
“조용해!”
제일 머리 큰 순춘이 소리쳐 제지시켰다.
덕돌은 계속했다.
“어미 범은 배 아파 땔, 땔 굴다가 ‘이 놈 새끼들이, 나에게 독이 묻은 개 코를 물어다 줬다.’라고 하더니 돌아가면서 새끼들을 물어 죽였지. 그때 개 코는 어미 범의 배를 쓱 가르고 세상 밖으로 살짝 나왔지.”
“허허허. 정말 개코 같다야.”
“깔깔깔.”
애들은 재미있다고 배를 끌어안고 웃어댔다.
덕돌은 애들을 돌아보면서 물었다.
“내가 말하지 않아도 개코가 어떻게 된 건 알만하지?”
동림이 제꺽 대답했다.
“그거야 이전 옛말 끝처럼 ‘숱한 범을 잡아 아버지 원수를 갚고 범을 팔아 어머니를 모시고 잘 살았다.’ 이렇겠지 뭐?”
성욱이 동림의 얼굴을 가리키면서 끼어들었다.
“그래도 조선지도 머리 좋단 말이야!”
덕돌은 엉덩이를 털며 일어났다.
“이젠 땀도 들였으니 내려가자!”
“와, 좋다!”
기실 덕돌은 힘이 약하기에 옛말이나 공부를 잘하는 우세를 빌어 애들을 자기 주위에 모으려고 애썼다. 그는 애들에게 할 옛말을 준비하려고 엄마 아니면 아버지 지어 6촌형님 철봉과 동생 송희에게서 옛말을 해달라고 졸라대 숱한 옛말을 들어두었던 것이다. 어떤 날에는 애들이 너무 옛말을 더 해달라고 졸라대 며칠 들어둔 옛말이 바닥이 날 지경이었다. 그리하여 즉흥으로 숱해 전하거나 꾸며내서 되는대로 옛말을 해주었다.
“사냥꾼이 범 한 마리를 잡은 게 배를 짜개니 배안에 새끼 범이 있지 않겠니? 그래서 그 새끼 배를 짜개니 또 배 안에 또 새끼 있더란다. 그래서 그 새끼 배를 짜개니 또 범이 있더란다. 그래 범 한 마리를 잡아서 숱한 범을 얻어가지고 수레에 실어다 집으로 와서 잘 살았단다.”
그 허황한 말도 애들은 딱 곧이듣고 “참 신기한 범도 다 있다.”라고 하면서 도리머리를 흔들었다.
어떤 때에는 그럴듯한 옛말도 해주었다.
“옛날이 지주 한 놈이 어찌나 지독하게 머슴들을 부리는지 머슴들은 복수하려고 들었지. 그래서 남자 머슴과 여자 머슴은 각기 아주 고운 앵무새로 변했지. 그들은 지주네 소 뿌리에 앉아 지주를 욕해댔지.
‘욕심쟁이 지주놈 얼마나 사는가 보자.’
그 말을 들은 지주는 독이 나서 방치를 들고 슬금슬금 다가와 소 뿔 위에 앉은 앵무새를 딱 쳤지. 앵무새들은 날아나고 대신 지주네 소가 대가리를 맞고 즉살했단다.
“하하하.”
“이번에는 앵무새가 지주 놈의 번대머리 위에 올라 앉아 놀려댔지. 그러자 지주는 방치로 자기 대가리를 딱딱 쳤단다. 딱 소리와 함께 지주는 대가리 터져 죽었단다.”
“호호호.”
애들은 재미있다고 배를 끌어안고 웃어댔다.
순임이랑 패용천산 뒤쪽으로 내려가면서 “아침에 이렇게 신체단련을 하니 영 좋다. 그런데 집에 가서 아침을 많이 먹어 대사다.”라고 했다.
후남은 “너네는 그래도 공호 돼서 괜찮다. 우린 죽물도 배불리 먹기 힘들다.”라고 두덜거렸다.
순희는 덕돌을 뒤따라 산을 내려가면서 “덕돌아, 가지 마라. 네가 가면 우리 활동참은 망태기 된다.”라고 말리었다.
허나 덕돌은 보름달 같이 고운 순희의 얼굴을 돌아보면서 “우리 아버진 쌀 고생을 너무 해서 교하로 이사 간다더라.”라고 했다.
그러자 순희는 주위에 애들이 없는 것을 보고 한마디 했다.
“한족 곳에 가서 뭘 하니? 아무리 쌀 고생을 해도 그렇지. 교하가 그리 좋데?”
“나도 모르겠다. 아버지 가자고 집까지 다 팔아먹었는데 어쩌겠니? 차차 가야지.”
허나 순희는 계속 말렸다.
“넌 우리 학년에서 제일 먼저 홍위병에 들어가지고 가면 어쩌니? 교하에는 홍위병 조직이 있다니?”
허나 덕돌은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온 세상이 홍위병 세상인데 교하 한족학교라고 홍위병이 없겠니? 난 배고파 여기서 못 살겠다.”
순희가 또 뭐라고 말하려는데 저쪽에서 철주와 동철이 뛰어 내려오는 것이 보여 그만두었다.
애들이 패용천산에서 내려와 줄을 서서 마을에 들어설 때었다.
성수랑 학수랑 한창 겨우내 덕돌이 애들을 이끌어 주어 모아놓았던 돼지 똥을 수레에 실어다 모상 판에 내고 있었다.
그들은 덕돌이랑 보고 엄지를 내둘렀다.
“저 덕돌을 보오. 김서기를 닮아서 애들을 데리고 군사훈련을 하고 돌아오는 거 보오.”
이남이 하는 말에 활동참 보도원인 수봉은 “이 돼지 똥도 덕돌이 애들을 데리고 온 겨울 주어 모아놓은 게오.”라고 칭찬했다.
이남을 비롯한 사원들은 모두 혀를 끌끌 찼다.
“저 애들이 해마다 돼지 똥 열 수레씩이나 주어서 모상 판에 잘 쓰오.”라고 했다.
그 칭찬하는 소리를 듣고 겨우내 손을 얼면서 고생해 돼지 똥을 주었지만 속으로 긍지감을 느꼈다.
사실 애들은 덕돌이 활동참 단장이 된 후 보도원 수봉과 토론하고 학습소조를 내와 방학숙제를 한다, 돼지 똥을 한 대야씩 주어오라, 패용천산 절벽을 오르라 하니 처음에는 추운데 헛고생을 한다고 두덜거렸다. 허나 이 때에야 덕돌의 말을 듣고 군사훈련을 하고 공부를 하면서 날마다 조개덕 생산대를 위해 좋은 일을 한 것이 옳았다는 것을 깊이 느끼게 됐다.
덕돌은 끝내 떠나가는 날이 돌아왔다.
그는 막내누나 성숙과 함께 십여일 둘째누나네 딸 계옥이랑 업고 놀다가 집에서 애지중지 키우던 토끼 두 마리를 바구니에 담아들고 마을을 떠나게 됐다. 부모들은 교하에 가서 사돈집을 빌어든 후 들어오라고 편지가 왔던 것이다.
그 소문을 듣고 송아지친구 성욱이랑 동림이랑 뛰어왔다.
“너 정말 가니?”
덕돌은 토끼를 담은 바구니를 막내누나에게 주고 성욱과 동림의 두 손을 잡고 흔들뿐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늙은 비술나무 밑 저쪽에서 미선과 순희가 눈물이 그렁그렁해 덕돌을 볼뿐 다가오지 못했다. 덕돌은 순희 쪽에 대고 손을 저었다. 허나 순희는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우고 저쪽으로 달아났다.
덕돌은 고향 마을을 떠나면서 눈물을 줄줄 흘리면서 되지 않는 발걸음을 겨우 무겁게 한 발자국 한발자국 떼었다.
눈물을 휘 뿌리며 정든 고향을 떠나는 그의 심정 오죽하랴.
아, 고향이란 무엇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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