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 둥지
새들도 둥지가 있는데 황차 사랑하는 신혼부부야 첫날이불을 펼 자그마한 집이라도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그러나 성호와 정희의 현실은 그렇지 못했다. 시내에 엉덩이를 들여놓을 손바닥만한 집마저 없었다.
핍박에 의해 량산에 오른다고 그들은 태평거촌에 있는 부모의 집에서 밀월을 보내야만 했다.
개학하자 정희는 태평거촌에 있는 시부모의 집으로 부터 10여리 떨어진 천수해중학교로 통근해야 했다. 눈풍설이 미친듯이 이는 날에도 아녀자의 몸으로 자전거를 타고 통근하기는 그리 쉬운 일이 아니였다.
자전거를 타고 힘겹게 퇴근한 정희는 구들에 맥없이 물앉아 성호를 쳐다보며 조용히 물었다.
“친정집에 가서 있으면 어떨가요?”
성호는 눈이 데꾼해졌다.
“내 처가살이를 하란 말이요?”
“그럼 난 출근하지 말고 태평거촌에서 당신만 쳐다보고 살란 말인가요?”
성호는 한숨을 후~ 내쉬였다.
“천수해에 세집을 잡으면 어떻소?”
정희는 한참 궁리하더니 간신히 입을 열었다.
“좋아요. 허나 세집도 어디 그리 쉽게 찾을 수 있겠어요?”
정희는 성호의 가래짝 같은 손을 잡고 정답게 입을 열었다.
“세집 찾기 전에 친정집에 가 있으면 어때요? 녜? 친정집으로부터 천수해까진 포장도론데다 눈이 내리면 도로공사에서 말끔히 치니까. 자전거를 타고 통근하기 더 편리할 것 같아요. 여기 태평거촌으로부터 천수해까진 흙길인데다가 눈이 내리면 치지 않아 다니기 힘들어요. 이제 봄부터 비가 내리면 자전거를 어떻게 타요? 매일 왕복 20여리를 아녀자 몸으로 통근하는게 불쌍하지 않아요?”
“어찌 처가살일 해?”
“자리 보고 다리를 펴라고 가시집에 놀러 간 셈 치세요.”
성호는 뒤더수기를 긁적거렸다.
“가시아버지 눈치 보인단 말이요. 원래 농민 아들이라고 우리 결혼 반대하지 않았소?”
“또, 또.”
정희는 길다란 손으로 성호의 입을 막았다.
“이젠 그런 말 하지 마. 결혼 전에 한 말 계속 외우는 건 좀 그렇죠.”
“에헴.”
성호는 주먹으로 입을 막으면서 헛기침을 했다.
정희는 신랑의 두 손을 꼭 잡았다.
“눈을 질끈 감고 우리 집에 가 한동안 있으면서 세집을 찾아보자요.’
성호는 묵묵부답했다.
집 안에는 납덩이 같은 침묵이 흘렀다.
한참 후 성호는 무겁게 입을 열었다.
“코구멍만한 세집으로 저 큰 이불장이랑 어떻게 끌고 다니겠소?”
“여기 잠시 두면 되죠.”
“이러면 어떻소?”
성호는 무슨 생각이 들었던지 “제나 본가집에 가서 출근하오.” 하고 말했다.
“동문?”
“여기서 소와 돼지를 치면서 경제토대를 닦아야겠소.”
정희는 어처구니 없어 앵두입을 함박만큼 짝 벌렸다.
“이제 결혼한지 며칠이라고 생리별하겠어요? 저 보고 싶지 않겠나요?”
“그립긴 하겠지. 별 수 있소? 일요일이면 우리 집에서 만나면 되지.”
“일주일에 하루 부부로 되려는 건가요?”
“일주일에 한번씩 만나도 리별의 아픔과 상봉의 기쁨을 맛볼 수 있는게 얼마나 좋소?”
“쳇, 어처구니 없어서, 원.”
정희는 파랗게 질린 얼굴을 징그리면서 곱게 흘겨보았다.
그러나 성호는 개의치 않고 중얼거렸다.
“어쩌다 만나면 사랑도 더 열렬할 거야. 그리운 정은 진한 사랑으로 승화하고.”
“하루라도 떨어지기 싫은데요. 쉽지 않을 걸.”
정희는 함박눈이 펑펑 쏟아지는 창문 밖을 내다보면서 한숨을 호~ 내쉬였다.
“눈이 내리면 뻐스가 통하지 않겠는데.”
“하느님이 우릴 도울 거야.”
정희는 얼굴이 새파랗게 질리면서 머리를 숙였다. 그녀는 성호는 고집이 웬간하지 않아 벽이라도 마구 차고 나갈 성질이라는 것을 알고도 남음이 있었다.
성호는 정희에게는 속에 걸리는 것이 많았다. 남들처럼 사돈보기를 해주었는가, 결혼기념품으로 금반지라도 사줬는가. 아무 것도 해준 것이 없지 않는가. 그러나 가시집에서는 정희가 무남독녀라고 옷장으로, 이불장으로, 례단까지 푸짐히 갖춰 보냈다. 더군다나 하나 밖에 없는 사위라고 자전거까지 사주었다. 결혼식날에 온 마을 사람들은 성호네 집에 모여 구경하고 색시가 예뻐서 술맛이 좋다고들 했다.
시내에 가서 복장점과 양고기뀀집을 차린 순희와 철주 부부는 음력설을 쇠려고 고향에 돌아왔다. 그녀는 성호가 자동차에 색시를 싣고 와서 내리는 것을 구경하면서 “질투”의 눈길까지 보냈다.
성호는 정희가 결혼식 이튿날에 젖값을 두고 벌어진 일을 잊을 수 없었다.
정희가 웃방에서 화장을 하고 있을 때 어머니가 들어와 보따리에서 옷감을 두개 꺼내 정희한테 주면서 “본가집 어머니 젖값으로 가져가오.”라고 했다.
그때 다섯째 은자가 문을 뚝 떼고 들어오더니 주책없이 끼여들었다.
“엄마, 성호 가시어머니한테 옷감 한벌 더 보냅소. 올케 숱한 례단을 가지고 왔는데 젖값을 고걸 보내 됩둥?”
원래 그런 일은 어머니가 결정하면 그대로 하는 것이 옳았다. 또 만약 토론이 필요하다고 해도 새 색시가 없을 때 조용히 토론하는 것이 옳았다.
그런데 영옥은 딸이 주책없이 끼어드는 바람에 색시를 념두에 두지 못하고 핀잔을 주었다.
“젖값은 내가 결정할 일이지. 네가 왜 끼여드니? 저게면 됐다.”
왜 그랬을가?
무남독녀 교수네 귀한 딸을 데려왔으면 고까짓 젖값으로 옷 한벌을 더 줘보내면 뭐라는가? 기어이 자기 소견대로 옷감 두개를 주고 말았다.
정희는 그 자리에서 얼굴이 새파랗게 질렸다.
은자가 주책없이 끼어드는 바람에 은자는 인심을 냈지만 시어머니 영옥은 미움개를 사게 되지 않았는가.
집안이 화목하려면 제일간 고부 사이가 화목해야 했다. 그런데 이 일로 해 고부 사이가 벌어질가봐 저으기 근심됐다.
비록 정희는 속에 꼭 넣고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았다. 하지만 성호는 새파랗게 질린 얼굴에서 그녀의 얼굴에서 모든 속마음을 읽을 수 있었다.
그는 미안해 될수 있는 한 처가살이를 하지 않으려고 했다. 더는 정희의 걀죽한 얼굴이 새파랗게 질리는 일을 하고 싶지 않았다.
그는 결혼 첫날밤에 정희의 걀죽한 얼굴에 흐르는 눈물을 보고 마음이 아팠다.
복잡한 결혼행사를 마치고 밤중이 되여서야 그들은 첫날이불을 편 조용한 웃방에 단둘이 마주 앉을 수 있었다.
“곤하구만, 우리 잘가?”
정희는 머리를 끄덕이면서 성호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성호는 희미한 전등불빛 아래 꽃너울을 쓴 정희가 그렇게 예쁠 수 없었다. 그는 저도 몰래 다가앉으면서 정희를 꽉 끌어안았다.
“너울을 벗겨주세요.”
“그래.”
성호는 정희의 머리 우에 10여시간이나 얹혀 있은 꽃노을을 벗겨 벽 옷 걸이에 걸어놓았다.
그때 첫날색시 대반을 섰던 막내누나 성숙이 노크하고 들어왔다.
“성호, 각시 저고리 고름을 풀어줘라.”
성호는 씨무룩이 웃었고 정희는 부끄러워 머리를 숙였다.
막내누나가 나가자 성호는 시키는 서방질을 해나갔다. 그가 넉가래 같은 손으로 정희의 저고리 옷고름을 더듬어 풀어 스르르 당겼다. 그러자 정희는 걀죽한 얼굴에 눈물을 주르르 흘렸다.
“지금 왜 우오?”
정희는 도리머리를 살래살래 저었다.
“후회되오?”
정희는 저고리 팔소매를 잡아당겨 팔을 빼면서 성호의 귀에 대고 조용히 속삭였다.
“너무 행복해서요. 이젠 끝내 당신 색시로 됐구만요. 널 끝내 내 신랑으로 만들었어.”
“영원히 후회하지 않지?”
“후회란 말 이젠 다시 하지 마세요. 너무너무 행복해요.”
정희는 성호의 품에 얼굴을 묻으면서 속삭였다.
“사랑해, 내 신랑 성호!”
“사랑하오, 정희.”
성호는 그녀를 누구한테 빼앗기기라도 할가봐 두려운듯이 꼭 껴안고 놓지 않았다. 정희는 분명 흐느끼면서 온몸을 떨고 있었다…
성호는 사랑스런 정희의 걀죽한 얼굴에 다신 눈물을 흘리게 하고 싶지 않았다. 그런데 어찌 결혼하자마자 가시집에 기여든단 말인가.
그는 가시집에서 사준 자전거를 타기도 미안했다.
(당당한 사내가 가시집 신세에 자전거를 타?)
정희는 성호의 그런 속내를 꿰뚫어보고 “개학 첫날에 지각하겠어요. 저를 천수해까지 자전거로 실어다주겠어요?”라고 했다.
성호는 눈이 내리는 바깥을 내다보면서 한숨을 후~ 내쉬였다. 뻐스를 기다려서는 근본 시간이 안됐다.
성호는 용빼는 수가 없어 자전거에 색시를 태우고 시내로 달려갔다. 눈길이여서 속도를 죽였지만 반시간 푼히 달려 시내 중학교 대문 앞에 이르렀다.
“오늘 실어왔으면 다야. 본가집에 가서 있소.”
“잠간만!”
정희는 자전거를 타고 돌아가려는 성호를 보고 한쪽 골목으로 데리고 가서 나직이 말했다.
“시내에 일을 보러 오면 들러요. 그래 가시집에 놀러 오지도 않겠어요? 친정부모한테도 인사하면 좋지 않아요? 이모부가 송파 무리를 감시하라는 일 그만두면 어때요? 괜히 앞뒤집에서 사는 우리까지 보복당하겠어요.”
정희의 얼굴이 새파랗게 질리고 있지 않겠는가.
“공안국에 갈 거 같지도 못한데 괜히 삐치지 말아요. 승호 아버지 뒤처리를 하지 않으리라고 그래요?”
그러나 성호는 굳은 표정을 지었다.
“아니요. 송파네 깡패무리를 제거하지 않고는 승호와 은영, 아니, 숱한 사람들이 편안히 살 수 없소.”
성호의 성질을 아는지라 정희는 화제를 돌렸다.
“가시집에 살기 싫으면 세집이나 찾아봐요. 송파네를 감시하는 일은 아빠 보고 도와달라고 할게요.”
“가시아버지?”
정희는 머리를 끄덕였다.
“아버진 공학원 교수이기에 최첨단기술로 송파를 감시할 수 있어요.”
성호는 뜻밖의 말에 놀랐다.
“눈길에 조심해 다녀가요.”
성호는 생글방글 웃음 지으며 손을 흔드는 색시를 뒤에 두고 눈풍설을 맞받아 힘겹게 페달을 밟았다.
성호는 가시집에 있기보다 세집을 잡으면 정희도 편리하고 고향의 부모를 자주 들여다볼 수 있어 좋을 것 같았다.
며칠 후 그는 천수해 시내에 내려와서 세집 같은 집이 있기만 하면 무작정 문을 두드리고 들어가 세집을 주지 않겠는가고 물었다. 그렇게 반나절이나 돌아다녀도 세집을 찾기란 참 힘들었다.
성호는 집 한칸도 없는 고통을 통절히 느꼈다. 새도 둥지가 있는데 황차 만물의 령장이란 사람이, 그것도 80년대 초 대학졸업생이 첫날이불을 펼만한 손바닥만한 집도 없으니 말이다. 딱 마치 허허벌판에 허망 나앉은 신세 같았다. 아니, 집구걸을 다니는 거지 같은 감까지 들었다. 이젠 남의 집 문을 두드리고 세집을 주지 않겠는가고 묻기도 용기가 나지 않았다.
(그래도 세집을 얻어야지.)
성호는 골목을 두루 살피면서 돌아다니다가 뉘네 원집 앞에 지은 낮다란 창고가 별로 세집 같아보였다.
(그래, 구들만 있으면 요만한 창고에서라도 살 수 있지.)
성호는 일루의 희망을 품고 원집의 문을 똑똑똑 두드렸다.
“계십니까?”
그는 문을 여는 사람을 보지도 않고 “세집을 주지 않겠습니까?” 하고 물었다.
“어마나!’
그제야 머리를 든 성호도 놀랐다. 선녀음식점의 주인 선화가 아니겠는가.
“어서 들어오세요.”
성호는 창피해 머리가 화끈 달아올랐다.
“아니, 아니, 잘못 봤구먼.”
성호는 세집을 구하려 온 말을 하지도 못하고 황급히 몸을 돌려 도망쳤다.
그러나 선화는 끌신을 짝짝 끌고 뒤따라 나왔다.
“성호, 결혼했나 보지? 세집 얻으러 다니는 걸 보니.”
“아니야, 친구가 얻어달라고 해서. 그래.”
“그래? 오빠, 잠간!”
“?”
성호가 주춤 멈춰서자 뒤따라온 선화는 성호의 팔소매를 잡아당겼다.
“온바하고 이 집 보고 가오.”
그녀는 성호의 비길데 없는 심정은 모르고 집문을 열어보였다.
“오빠, 이걸 보오. 이 집은 내 시집가면 아빠가 세간내려던 집이요. 지금 비였으니까. 어떤 친구인지 세를 주지.”
성호가 들여다보니 10평방메터도 되나마나 한 창고 같은 집에 구들을 놓고 반질반질한 쇠가마까지 두개 걸어놓았었다. 그만한 집이면 세간살이는 넉근히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나 성호는 자존심이 상해 선화네 집 마당에 와서 세집살이를 할 수는 없었다.
“감사하오. 친구하고 말해보고 다시 찾아오든지. 만약 소식이 없으면 그만 둔 걸로 아오.”
“알았어요. 신문에까지 난 정의용사, 식당에 좀 자주 와요.”
“그래오.”
성호는 날 살려라고 황급히 위축감과 창피함이 휘몰아치는 그 자리에서 간신히 발뺌을 했다. 다른 골목에 굽어들어 한숨을 후~ 내쉬였다. 순간 잔등에 식은땀이 후줄근히 내뱄다.
(아, 제 집이 없이 세집살이 한다는 건 정말 피눈물 나는 일이구나. 창피해 어디 시내에서 살겠니?)
성호는 세집이고 뭐고 그만두고 자전거를 타고 시내에서 달아나고 말았다. 쏜살같이 달리는 자전거 뒤로 비운의 눈발이 흩날렸다. 아니, 돈 없고 집도 없는 성호의 쓸쓸한 마음이 갈기갈기 찢어져 하얗게 흩날리고 있었다.
집에 돌아와 성호는 텅텅 빈 웃방에 들누워 천정을 쳐다보았다.
(세집살이는 피눈물 나는 하루살이야. 한 2~3천원이면 덩그런 집 한채를 사서 보란듯이 살겠는데.)
그는 더는 정희에게 실망을 안겨주고 싶지 않았다.
순간 일전에 정희가 하던 말소리가 귀전을 아프게 때렸다.
“일요일 쯤엔 세집에라도 들어 살자요. 신혼부부가 어떻게 항상 갈라 살겠어요?”
31. 장사군
성호는 함박눈이 펑펑 쏟아지는 고향 산천을 둘러보면서 꿈과 현실의 지나친 불균형에서 받은 스트레스를 떨쳐버리려고 모지름을 썼다.
웬 일일가?
갑자기 그의 눈 앞에 결혼 때 찾아왔던 20여명 조카들 가운데서 둘째누님네 맏아들 정춘의 하얀 우유빛얼굴이 떠올랐다.
“자식, 이젠 열일곱살. 전 시에서 4등으로 고중에 입학했다면서. 성과 시 3호학생! 얼마나 우수한 조카인가. 정일도 이젠 초중 2학년생이라지. 이젠 다 컸구나.”
키가 훤칠한 정춘은 중학교 때부터 달래기를 아주 잘했다. 긴 다리로 성큼성큼 어찌나 가볍게 달리는지 전문 륙상선수를 방불케 했다.
순간 성호는 길림에 있는 둘째누나 춘자와 매형 홍수, 정춘과 정일, 넷째누나 봉금과 송준, 영희와 근봉이 보고 싶었다.
순간 그의 눈 앞에는 문뜩 초생달이 걸린 밤에 정춘을 앞세우고 아래집 영화를 만나보던 일도 떠올랐다.
그때 성호는 영화의 남동생 송철한테 권투를 배워주었다.
영화는 어글어글한 눈을 치켜뜨고 말렸다.
“오빠, 싸움질해 머리 아픈데요. 권투까지 배워주면 매일 싸움질하라고?”
그러나 성호는 고집을 부렸다.
“부모도 없이 불쌍하게 자라는 송철이 업신여김을 당하게 말아야지.”
“맞아요. 내 주먹이 세면 정춘이랑 맞아대면 말려줅게요.”
송철은 어깨 으쓱해 했다.
성호는 자기 안속이 따로 있었다.
(송철한테 권투를 배워주는 척하면서 영화를 만나볼 수 있어 일거량득이 아닌가.)
영화도 성호의 말에 일리 있어보였는지 더 말리지 않았다.
춘자와 홍수는 대학때 동창생이였다. 그들은 부모한테 빚을 지우지 않으려고 결혼잔치 큰상도 받지 않았다. 사람이 평생 첫돌생일상으로부터 결혼잔치 큰상, 회갑상까지 큰상을 모두 3개 받는다고 한다. 그런데 그들은 부모형제가 그렇게 받으라는 결혼잔치 큰상도 기어이 받지 않고 그저 결혼술상으로 대체했다. 춘자는 항상 막내동생인 성호의 학습을 지도해주었고 인생의 앞길을 밝혀주었다. 어떻게 보면 춘자는 성호의 앞길을 비춰주는 등대와도 같았고 파도가 세찬 망망한 인생의 바다를 헤가르며 나가는 성호의 키잡이나 다름없었다. 춘자는 막내동생이 영화를 좋아하는 것 같은 눈치를 채자 말렸다.
“대학졸업생이 어찌 고중생 민영교원과 련애해? 장차 시내호구로 올리기도 힘들고 전도를 그르치게 돼.”
누나의 랭정한 말에 성호도 랭정히 고려하게 됐다. 이제껏 둘째누나의 말이라면 죽으라는 말 내놓고는 다 들어온 그였다.
춘자와 홍수는 북대황에 가서 대학교실습을 마치고 길림지구 한 자그마한 진의 농업보급소에 배치받았다. 춘자는 낮에는 남편과 한 책상에 마주 앉아 일하고 밤이면 임신한 몸으로 습한 사무실에서 새우잠을 자야 했다. 심지어 밥을 지을 부엌이 없어 직원들의 식당에 가서 근근득식하면서 살았다. 11월이면 당장 첫애를 낳게 돼 그들은 할 수 없이 39원을 주고 7평방메터 밖에 안되는 세집을 맡고 나갔다. 11월 11일에 그 비좁은 세집에서 본가집 어머니 영옥이 와서 조산부로 돼 손수 정춘을 받아냈다.
춘자는 낳은지 11달 밖에 안되는 정춘을 시집에 보내 시어머니를 보고 봐달라고 했다. 그런데 시어머니는 몇달이 안돼 애를 못 보겠다고 했다. 홍수는 난지 10달만에 아버지를 여의였다. 홍수는 크면서 다른 애들은 다 아버지 있는데 왜 자기는 아버지가 없는가고 하는가 했다. 심지어 어머니를 보고 돈 200원을 주고 아버지를 사달라고 떼를 쓰면서 울었다고 한다. 그런데 정춘이 밥을 먹을 때나 잘 때나 아버지 사진을 안고 울어서 불쌍해 못 보겠다고 했다.
설상가상 둘째 정일이 생겨서 춘자는 정일을 업고 정춘을 안고 소학교로 출근하지 않으면 안되였다. 본가집에서 한 마을에 이사해온 후 영옥이 애들을 봐주어서 한 1년은 무사히 보냈다.
정춘은 어릴 때부터 아주 참했다. 항상 할머니네 집에 갈 때면 꼭 기차표를 손에 쥐고야 렬차에 올랐다. 후에 커서도 절대 도적렬차를 타지 않은 참하고 성실한 애였다.
초중을 다닐 때 농촌의 한 동창생 부모가 좋은 종자를 사기 힘들어하자 현 종자공사에 다니는 아버지한테 부탁해 해결해주었다. 가을에 대풍작을 거둔 동창생의 아버지는 산에서 손수 캔 신선한 버섯을 아들한테 보내왔다…
성호의 마음은 어느덧 누나와 조카들이 있는 송화강변에 날아갔다.
순간 그의 머리 속에는 정춘을 시켜 영화를 불러내 초생달이 뜬 송화강변에 가서 빨래를 하며 이야기를 주고 받던 일이 삼삼히 떠올랐다.
“쳇!’
순간 성호는 모기에게 종아리를 물리면서도 영화 옆에 앉아 있던 자기 모습을 떠올리면서 허구픈 웃음을 지었다.
“송화강, 송화호! 물고기도 많았지.”
그는 정춘과 송철을 데리고 물고기를 잡던 일로, 영화가 끓인 물고기 된장국을 후후 불면서 맛있게 먹던 일도 떠올랐다.
“지금쯤은 송화강과 송화호가 떵떵 얼었겠지.”
순간 그는 무릎을 탁 쳤다.
“그래, 지금 한창 겨울 물고기잡이철이야.’
성호는 수많은 아이디어가 꼬리를 물고 떠올랐다.
(송화호에 가서 물고기를 고향에 가져다 팔면 어떨가? 만약 장사가 잘 되면 세집 값이라도 장만할 수 있잖겠는가? 시내에 집을 한채 척 사놓고 정희를 데리고 보모를 모시고 남들이 보란듯이 알콩달콩 살아야지! 그래, 경제시대에는 돈이 살림살이 토대야.)
성호는 물고기장사를 할 일념에 가슴이 한껏 부풀어올랐다.
그는 집으로 돌아와 아버지와 부림소를 팔자는 말을 해야겠는데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부림소는 농사군의 목숨과 같았기 때문이였다.
그는 먼저 태평거촌에 있는 상점으로 가서 물고기 있는가 살펴보았다. 상점 매대에는 고마이로 보이는 물고기가 몇개 있긴 했다. 그러나 어찌나 들여온지 오랜지 절고 부스러져 물고기 원 모습조차 찾아볼 수 없었다.
그런 물고기 부스러기를 둬개 사왔다.
어머니가 정성스레 기름에 볶아 담아 밥상에 올렸지만 죽은지 오랜 물고기 부스러기가 어찌나 짠지 소금덩이를 씹는 것만 같아 고기맛이 나지 않았다.
(송화호 생신한 물고기를 고향 사람들한테 가져다 팔면 좀 좋겠는가. 음력설과 보름에 잘 팔릴 거야.)
성호는 큰 마음을 먹고 물고기장사를 할 생각을 털어놓았다.
“물고기장사라도 해서 집을 사야지. 어떻게 세집살이를 하겠습니까? 아버지, 소를 팔깁소.”
상진은 대뜸 화를 냈다.
“야, 부림소를 팔고 새 해 농사를 어떻게 짓니?”
영옥도 말렸다.
“야, 그만 둬라. 옛날 아버지 장사해서 쫄딱 망했다.”
상진도 사정했다.
“넌 대학을 나왔으니 배운 지식으로 살 궁리를 해라. 장사라는게 어디 그리 쉬운 일이냐?”
영옥은 더 한심한 말을 했다.
“장사를 해서 내남이 다 돈을 벌 수 있으면 다 부자로 됐지.”
상진은 “금의환향한다더니. 쯧쯧쯧, 어쩜 아버지를 초과하지 못하느냐?” 하고 여간 안타까워 하지 않았다.
성호는 아버지 고민을 짐작할 수 있었다.
“아버지, 내라고 대학졸업장을 그저 버리겠습니까? 장사를 해서 살림집이나 갖춰놓고 아무 사업이라도 할 작정입니다.”
“피는 못 속여. 어쩜 딱 날 떼닮았니?”
아버지가 아무리 말려도 성호는 자기 꿈을 접을 수 없었다.
“아버지, 근심하지 맙소. 개혁개방세월에 그까짓 대학졸업장에 매달려 산다는 건 낡은 고정관념입구마. 장사 해서 경제토대를 닦으면 장차 월급쟁이들보다 부모를 더 잘 모시고 행복하게 살 수 있습구마.”
그는 부모가 말리는 것도 무릅쓰고 사랑방에 들어가더니 마대 둬개를 가방에 넣어가지고 길림으로 떠났다. 호주머니에는 “정의용사” 상금 100여원 밖에 없었다.
상진은 속으로 은근히 자기 능력으로 앞길을 개척하려는 막내아들을 장하게 생각하였다.
만약 그가 천룡해 국장과 한마디만 사정하면 성호가 공안국 수사대원으로 들어가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닐 수도 있었다. 그러나 지청구를 들이대지 않는 막내아들이 장했다.
한편 성호는 둘째누나네 집에 들리지 않고 곧추 송화호로 달려갔다. 대학교를 졸업하고 물고기장사를 하러 왔다고 하면 누나나 매형이 기필코 동의할리 만무했다. 또 영화와 더 걸버무리지 않으려는 다짐도 했다.
그는 해지기 전에 곧추 송화호에 달려갔다.
과연 바다와도 같이 넓은 송화호에는 물고기장사군들이 여러가지 물고기를 팔고 있었다. 성호는 언 련어 한근에 30전씩 250근 사서 두 마대에 꼴똑 담았다. 그는 아주 로련한 솜씨로 삯짐군에게 삯을 6원 주고 당나귀차에 물고기를 실어 길림역에 와서 고향에 부치기까지 했다.
그가 이튿날 아침에 고향 역에서 내려 화물처로 가 보니 글쎄 물고기 두마대가 벌써 화물처에 와 있었다.
(살았다.)
성호는 곤기를 잊고 종주먹을 쥐고 반달음쳐 집으로 돌아왔다. 그는 아침 숟가락을 놓기 바쁘게 외양간에 나가 소를 풀어 수레에 메웠다.
“야, 어디로 가니? 소를 팔아선 절대 안돼!’
상진은 근심이 태산 같았다.
“근심맙소. 길림에서 사온 물고기를 실으러 갑구마.”
“뭐라고? 벌써 물고기를 사왔다고?”
상진은 도리머리를 홰홰 저었다.
영옥은 뒤따라나와 눈깔린 땅바닥에 풀썩 물앉아버렸다.
“아이구, 저 자식, 딱 애비를 닮았구나. 또 고생문이 열렸구나. 에이구, 저 놈을 어쩌니?”
점심 쯤에 성호는 소수레에 물고기 두 마대를 싣고 들어섰다.
온 아침 욕하던 상진과 영옥은 마대아구리를 열고 생신한 물고기를 들여다보고선 입을 딱 벌렸다. 순간 늙은 량주의 주름 진 얼굴에 만면춘풍이 흘러넘치고 할미꽃이 필 지경이다.
“야, 물고기 먹음직하구나. 한근에 얼마에 샀어?”
“어데서 사왔어?”
성호는 물고기마대를 훌 들어 집 안으로 들여가면서 동문서답했다.
“한근에 1원 35전씩 팝소.”
“애비한테도 비밀이냐?”
성호는 제법 물고기장사 티를 냈다.
“장사는 애비도 속인다고 귀띔해주지 않았습니까? 허허허.”
상진은 머리를 끄덕였다.
“그래, 장사를 하자면 그래야지. 넌 나보다 훨씬 나아. 난 남을 너무 믿고 장사를 하다가 쫄딱 망했어.”
성호가 물고기를 사왔단 소문이 한 집 건너 온 동네에 소문이 자자하게 퍼졌다. 마을사람들이 삼삼오오 몰려왔다. 그들은 생신하고 먹음직한 물고기를 보자 너도나도 몇개씩 사갔다.
사흘도 안돼 두 마대 물고기를 다 판 후 어머니가 돈을 세여 보니 250원이나 벌었다.
장사에 재미를 붙인 성호는 아버지와 사정해 부림소까지 800원에 팔아가지고 대련으로 가서 청어랑 홍어랑 낙지랑 새우랑 사다가 팔았다.
철주는 고향에 놀러 왔다가 저울과 물고기를 자전거에 싣고 시골마을을 누비면서 물고기를 사라고 소리치며 돌아다니는 성호를 보고 뒤에서 빈정거렸다.
“대학을 밑구멍으로 다녔어? 물고기장사를 하다니?”
성호는 철주와 말다툼할 새도 없었다. 그는 고향에서 20여리 떨어진 골안까지 자전거를 타고 물고기를 팔러 돌아다녔다. 눈길이 막히면 자전거를 밀고 다니면서도 끝내 한수레나 되는 물고기를 다 팔았다. 보름이 지나 그는 아버지한테 부림소를 살 돈을 주고서도 천여원을 벌었다.
목돈을 손에 거머쥐자 성호는 생각이 달라졌다.
(이젠 고향 사람들은 설과 보름도 쇴고 3.8절마저 쇴지. 이제 물고기를 사와도 금방 사먹었기에 더 사려고 하지도 않을 거야.)
사실 고향 마을 사람들뿐만아니라 거의 모든 농촌사람들은 한해에 설 같은 명절에 돼지고기나 물고기를 몇근 사먹으면 만족이였다.
(봄에 언 물고기가 녹아서 차에 부치기도 힘들어. 장사를 바꿔보자.)
우둔한 놈이 범을 잡는다고 그는 암송아지를 사서 소새끼낳이를 하는 것이 어떨가고 궁리했다.
(그래, 암송아지를 사서 한 1년 키우면 해마다 새끼를 낳을 것이 아닌가? 그 다음해부턴 새끼가 또 새끼를 낳을 거야. 그럼 몇해 후에는 소 몇마리 되겠는가? 둥글소 한마리에 한 800원부터 천원 좌우 하니까. 한 열마리 팔면 만원을 쥐게 된다. )
성호는 벌떡 일어나 두주먹까지 불끈 쥐고 미친듯이 고함쳤다.
“만원호! 난 부자로 될 거야!”
그의 눈앞에는 찬란한 미래가 주마등처럼 떠올랐다.
덩실한 고래등 같은 벽돌기와집을 시내에 척 사놓는다. 부모를 모시고 효성을 다한다. 사랑하는 색시와 함께 애를 낳아 기르면서 알콩달콩 행복하게 산다. 희망이 눈 앞에 한들한들 춤추며 떠오른다.
심지어 그는 세집살이에 새파랗게 질렸던 정희의 걀죽한 얼굴에 행복의 금물결이 이는 환한 모습을 방불히 보는 것만 같았다.
상진과 영옥은 웃방에서 나는 고함소리에 미닫이를 열고 들여다보았다.
“이제 소장사를 해서 갑부로 될 예산입구마.”
“뭐라고? 대학을 졸업하고 소장사를 한다고?!”
영옥은 맥이 풀려 구들에 물앉아버렸다.
“이젠 네가 뭘 사오든지 팔아주지 않겠다.”
상진은 미닫이를 쿵 닫아버리면서 혼자말로 두덜거렸다.
“에이, 하뉘 소궁둥이나 칠 놈! 대학을 밑구멍으로 다녔어?”
그러나 성호는 기어이 자기 푸른 꿈을 향해 달려갔다.
고향의 천지꽃산의 잔설은 발버둥질치다가 끝내 녹고야 말았다. 겨우내 모진 풍설에도 끄떡하지 않고 엄동설한의 동장군을 이겨낸 진달래꽃이 만발했다. 천지쫓산은 마치 한송이 커다란 진달래 꽃송이 같았다. 꾀꼴새들이 지종지종 노래를 부르며 푸르른 창공을 훨훨 날아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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