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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장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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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카테고리 : 소설

대하소설 진달래 소야곡(5)
2017년 12월 11일 16시 27분  조회:1209  추천:1  작성자: 김장혁



                  8. 꺽다리와 난쟁이
성호는 마음 같아서는 승호의 더러운 몰골을 만천하에 밝혀놓고 싶었다. 하지만 승호를 해치기는 싶지 않았다. 또 홍희한테 너무 큰 충격을 줄가봐 그만두었다.
성호는 충동을 가까스로 억누르며 부랴부랴 집으로 향했다.
농민의 자식이라 호주머니를 이리저리 다 들춰보아도 동전 몇잎 밖에 없었다. 단돈 30전만 있으면 금의환향하는 신사처럼 좋은 뻐스에 앉아 20리 떨어진 천수해까지 가고 거기서 한 18리만 걸으면 집에 도착할 수 있었다. 그러나 단돈 30전도 없어 맨 주먹을 불끈 쥐고 달리면서 풍설이 이는 귀향길에 올랐다.
(돈이 없는데 신체단련도 하고 좀 좋아.)
성호는 아Q처럼 스스로 좋게 위안하면서 행인이 없는 구간에서는 닫다가도 행인이 나타나면 걸으면서 길을 다그쳤다.
천수해에 이르러 시장기가 났다. 그는 호주머니를 들춰 빡빡 긁어모은 돈 15전을 들고 식품상점 문을 밀고 들어가 닭똥과자 반근을 샀다. 그는 길에 나서자 닭똥과자를 쥐여 입에 넣고 우두둑우두둑 씹으며 시장기를 말리면서 집으로 달려갔다.
정이 들대로 든 막내누나가 해산했는데 성호는 손에 쥔 것이 없어 아무 것도 들고 가지 못하는 자기가 너무나도 안쓰러웠다.
사실 성호는 막내누나와 성질은 서로 잘 맞지 않았지만 함께 자라다나니 정이 아주 깊었다. 막내누나 성숙은 키가 1메터 50좌우 밖에 안되는데다 성질이 좀 팩하고 뭐나 하나면 하나, 둘이면 둘, 딱딱 따져가면서 사는 "깍쟁이"였다. 허나 어찌나 총명한지 성호가 자랄 때 작은 가정선생님이나 다름없었고 인생의 도리도 많이 일깨워주었다.
성호는 눈보라가 휘몰아치는 날에도 여섯 누나 가운데서 막내누나의 은정 그리고 과거사에 추억의 돛배를 저어갔다.
그는 작달막한 막내누나 성숙이 키가 훤칠한 명선 같은 꺽다리에게 시집갈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둘째매형 경만의 큰매형이 성숙한테 한 마을에 있는 명선을 소개했다. 어떻게 보면 짝이 기울었다. 명선의 부모는 키 큰 며느리를 삼자고 첫날 한복이고 뭐고 장래 며느리의 옷감은 다 제일 키 큰 녀성의걸로 재여 마련해두었던  것이다. 헌데 사돈보기때 명선이 데리고 온 성숙을 보고 도리머리를 홰홰 돌릴 지경이였다. 명선도 작달막한 성숙을 데리고 마을이고 시내고 다닐 때면 손을 쥐고 나란히 걷기는커녕 항상 따로 걸었다. 키가 너무 유표하게 차나서 함께 걷기 창피해서였다. 더구나 시누이들은 올케 체격이 마음에 들지 않아 시큰둥한 표정을 지었다. 나중에는 오빠를 보고 그만두라고 권고했다. 하긴 명선은 큰녀동생이부모의 허락도 없이 한동네 식지가 끊어진 자기 친구와 좋아한다고 죽여버리겠다고 온 동네를 쫓아다녔다고 한다. 단 손가락 하나가 사고로 끊어졌다고 온 동네가 떠나갈 듯이 야단쳤던 것이다. 그런 오빠가 글쎄 자기보다 거의 한자나 더 작은 처녀를 데리고 왔으니 말이다. 시누이들은 입귀를 비쭉거리면서 작달막한 올케를 흘겨보았다. 결혼식날에 성호는 상빈으로 막내누나가 시집가는 경박호 부근 막내 매형의 마을에 가보았다.
그가 바깥에서 서성거리면서 볼라니 시누이들은 마을 사람들 속에 서서 올케를 여겨보더니 상을 찡그리면서 돌아서서 흉을 보았다.
"에이고, 작달막한 올케를 삼을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어."
"글쎄 말이야. 그럴 줄 알았더라면 아까운 천표 없애면서 옷감을 큰 걸 사지나 않았을 걸 그랬어. 쯧쯧쯧."
남이 흉을 봐도 모르겠다. 시누이들은 형님의 흉을 보다가 상빈으로 온 성호를 보고 혀를 홀랑 내밀면서 뒤로 물러섰다.
"어쩜 조렇게 작달막한 올케한테 저렇게 칠칠한 남동생 있어?"
성호는 그런 사돈처녀들이 미워 욱 치미는 밸 같으면 한대 갈겨주고 싶었다. 허나 막내누나와 매형을 봐서 용케도 참고 술을 취토록 마시고 왝왝 토하기까지 했다.
그러나 성숙을 지내보면서 어찌나 똑똑하고 참돌처럼 꽁꽁 여물고 농사나 살림살이나 예산있게 잘했는지 시누이 셋은 모두 혀를 끌끌 찰 지경이였다.
성숙은 또 효성이 지극해서 시집 큰아버지 앞으로 양아들로 들어간 남편과 함께 큰집 시부모를 효성을 다해 모시였다. 그러나 친시부모들은 자기들한테 효성을 하지 않는다고 쩍하면 트집을 잡고 심술을 부릴가 했다. 게다가 첫 애를 글쎄 현병원에 가서 낳다가 의료일군들이 산대에서 애를 떨어뜨려 그만 잃고 말았다. 그때 애를 잃었다고 성질이 괴벽한 시아버지는 쌍욕을 퍼지르면서 맏며느리를 욕했다. 심지어 자기 마음에 들지 않는 며느리를 삼았기에 손자를 보기도 전에 잃었다고 투정을 부렸다. 애를 잃은 어머니 심정은 오죽했으랴. 그런데 시아버지는 성숙의 아픈 상처에 소금을 뿌렸다.
성숙은 시부모를 넷이나 모셔야 했기에 여간 힘들지 않았다. 설상가상으로 한 마을에서 사는 시누이 셋이 가세해 흉을 보는 판에 정말 시집살이가 쉽지 않았다. 그런데 둘째며느리를 삼아봐야 맏며느리 무던한 것을 안다는 말이 맞았다. 둘째며느리는 키는 성숙과는 달리 체격은 멀쑥하게 생겼지만 어찌나 욕심이 과하고 자기 것만 자기 것이라고 어찌나 깍쟁이질을 하는지 시부모는 둘째며느리에게서 밥 한숟가락도 얻어먹기 힘들었다.
그제야 시부모는 “둘째며느리를 삼아봐야 맏며느리 무던한 걸 안다더니, 참.”라고  하면서 뒤늦게야 맏며느리한테 마음을 좀 돌리려고 했다.
허나 가슴에 못이 박힌 성숙은 시부모와 시누이를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녀성들이란 워낙 마음을 한번 꼭 닫으면 열기 힘들었고 앵돌아서면 돌려세우기  힘들었다.
(첫 애를 잃고 두번째 애를 봤으니 누난 얼마나 기뻐할가?)
성호는 막내누나 못지 않게 기뻐 어깨춤을 덩실덩실 출 지경으로 걸음도 경쾌해졌다. 한 3시간 급행진해서야 집에 도착했다.
막내매형 명선은 부엌에서 불을 때다가 엉거주춤 일어났다.
"매형, 뭘 보았소?"
성호의 말에 명선은 싱글벙글 웃으면서 "아들을 보았소."라고 대답했다.
"축하하오. 누나 제 노릇을 했소."
성호는 이젠 막내누나가 아들을 보았으니 시집에서도 할 말이 있고 허리를 펴고 살 수  있게 돼 기뻤던 것이다. 그는 구들에 누워 있는 막내누나와 귀여운 갓난 조카의 발가우리한 얼굴을 들여다보았다.
"이름을 뭐라고 지었소?"
성숙은 애기에게 젖을 먹이면서 "매형과 물어보렴."라고 했다.
명선은 시무룩이 웃으면서 "남자애를 낳은 걸 경축한다는 의미로 경남이라고 짓지 뭐." 하고 나직이 말했다.
"경남이, 참 좋은 이름이요."
성호는 외조카를 안아보고 싶었지만 바깥에서 금방 들어와 몸이 차가워 그만두었다.
명선은 부엌에 들어앉아 그 큰 팔간집이 후끈후끈하게 석탄을 자꾸 퍼넣으면서 불을 땠다.
성호는 아직 장가도 들지 못한 총각이기에 모성애가 뭔지 잘 모르고 있었다. 첫애를 잃고 두번째애로 아들을 낳은 성숙의 심정이야 얼마나 기쁘겠는가. 성숙은 이젠 아들을 낳았기에 시부모 앞에 떳떳이 나설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다.
성호는 막내누나를 보고 물었다.
“어째 이모네 집에 있으면서 애를 낳을게지. 이모는 병원의 의사지. 얼마나 편리하오. 이런 시골에 왔다가 또 첫애처럼 일이라도 생겼더라면 어쩌오?”
성숙은 눈물을 주르르 흘렸다.
“말도 말라. 난 그래도 엄마 집이 좋다. 엄마가 조산사가 돼서 경남을 받아냈다.”
명선은 부엌에서 아궁이에 석탄을 다 떠넣고 허리를 펴면서 말했다.
“눈치 보여서 이모네 집에 어디 있겠소.”
“건 무슨 말이요?”
명선은 계속 말했다.
“이모가 뭐라는지 아오? 옛날에 우리 집에 본가집 손님들이 어찌나 많이 찾아왔는지 우리 시어머니 이랬소. ‘앞문으로 금방 사돈이 갔는데 뒤문으로 또 다른 사돈이 들어오오.’ 이러지 않겠소. 그 말이 무슨 뜻이요? 우리 갔다고 귀찮아서 하는 말이지. 이모부는 걸레를 쥐고 다니면서 내 구들을 밟은 자리를 싹싺 닦는단 말이요. 이모부 쌀쌀한 표정만 봐도 어디 하루라도 더 있겠습데?”
“그만하라니깐.”
성숙은 신랑을 말렸다.
“그래도 이모네 신세에 병원에서 산전검사를 하고 보름이나 숱한 식구들이 들어 있지 않았소?”
영옥도 한마디 했다.
“녀동생이 어디 쫓는 걸 떠나왔소? 우리 스스로 떠나왔지. 저래서 옛날부터 고생을 죽게 한 사람 허물이 난다는 말이 있소.”
그제야 이모의 허물소리 끝났다.
성숙은 눈보라가 윙윙 휘몰아치는 엄둥설한에 천수해로부터 태평거촌에까지 무릎까지 풍풍 빠지는 18리 눈길을 만삭이 된 배를 부둥켜안고 걸어왔다고 한다. 한 10분에 한번씩 아파나는 산전통증으로 해 아래 모진 배를 부둥켜 안고 길가의 나무가지를 붙잡고 기대서서 이를 옥물고 아픔을 참아야 했다. 그녀는 이를 악물고 무릎까지 빠지는 눈길을 한 걸음, 한 걸음 걸었다. 너무 아파 입술을 깨물고 눈물을 흘리면서도 길에서 애를 낳을가봐 빨리 걸음을 옮기느라고 잔등에 식은 땀을 줄줄  흘리면서 애썼다.
“23년 전에 나도 당장 낳을 성호를 배 속에 넣고 천수해에 가서 옥수수쌀을 사 이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날 저녁에 성호를 낳았지 뭐야. 어미 이를 악물고 걸어온 그 길로 어쩜 막내딸이 또 만삭이 된 애를 품고 걸어와서 그날로 애를 낳는단 말이냐? 어미 고생을 네가 또 이어할줄 누가 알았겠느냐?”
성숙은 바로 엄마가 옥수수쌀을 이고 만삭이 된 배를 부둥켜안고 힘들게 걷던 그 길로 그것도 무릎까지 펑펑 빠지는 눈길을 걸어 본가에 와서 경남을 낳았던 것이다.
성호는 힘겹게 자기를 낳은 엄마와 경남을 낳은 막내누나로 해 마음이 아팠다. 길에서 마구 양수가 터져서 하마트면 눈길에서 애를 낳을번했다고 한다. 다행히 엄마와 명선이 누나를 부축해 집으로 와서 세시간도 지나지 않아 경남을 무사히 낳았다고 한다.
“에이고, 그래도 우리 경남이 길에서 나오지 않고 엄마 집에 와서 나와줘서 고맙다.”
성숙은 경남의 발가우리한 얼굴을 매만지다가 뽀뽀까지 해주었다.
그녀는 어려서부터 가난한 집에서 자라서 시집가서도 평소에 뭐나 많이 아껴 먹고 아껴 썼다. 사실 성숙의 시집 식구들은 전라도에서 들어온 후대였다. 그들은 늘 함경도 사람들을 “함경도 도둑놈들”이라고 욕했으며 며느리 성숙이 좀 뭐나 아끼는 것 같아 함경도 도둑놈들의 후대여서 어쩌고저쩌고 하지 않으면 “함경도 깍쟁이”라고 했다.
성숙은 시집 식구들이 빗대고 욕할 때면 속으로 “전라도 깍쟁이”라고 맞받아치면서  “검정개 돼지 흉을 한다.”고 두덜거렸다.
원래 상진은 딸을 줄 때면 특별히 랭정히 고려한 후 대답하군 했다. 둘째딸 춘자를 숱한 대학생들이 따라다녔지만 춘자가 딱 마음에 들어 하는 홍수를 데려오자 이것저것 물어보고서야 대답했었다.
셋째딸 은숙의 약혼 때는 한 마을의 경만이 아버지 없이 자란데다가 성질이 더럽다고 딸을 고생시킬가봐 인차 승낙하지 않았다. 경만은 시원히 “딸을 주겠다.”고 대답하지 않는 가시아버지가 야속했다. 술을 마시면 쩍 하면 가시아버지와 “내야 애비 없이 자라 덜 된 놈인게 무슨.” 라고 하면서 걸고들어 주정을 부리군 했다.
넷째딸 봉금의 혼약은 대학을 졸업한 둘째 딸과 사위가 소개한 사위감인데다 송준은  중등학교를 졸업한데다 말수가 적고 마음이 착해보여서 대답했다.
다섯째딸 은자의 신랑감은 뒤집에서 소개한 혼처였는데 아래마을 허씨네 맏아들  학철이였다. 학철은 키는 작달막한데다가 어쩐지 말소리가 모기소리 만해 사내 같지 않은 것이 흠이였다. 하지만 인사성이 아주 밝았다. 영옥이 하도 인물보다 마음씨 착한게 좋다고 해서 혼사가 겨우 성사됐다.
여섯째딸 성숙의 신랑감을 처음 보자마자 상진은 인물체격이 남자답게 훤칠한 명선을 일등사위감이라면서 대답했던 것이다. 사실 명선은 훤칠한 체격값을 해 힘꼴을 쓰는데다 농사일에 미립이 텄고 손재간이 이만저만이 아니였다. 그는 목수재간이 있는데다 야장도 잘해 집을 짓고 탈곡기를 만들어 동네방네 재간둥이로 소문났다. 그런데 명선의 조상들이 전라도 출신이라는 것을 뒤늦게나마 알게 되자 상진은 지어 혼사를 그만 둘가고 하기까지 했다.
영옥은 막내딸의 일이 근심돼 사돈보기를 한후 신랑을 따라 시집마을에 갔다온 딸한테 집이 비였을 때 조용히 물어보았다.
“신랑이 손을 줴주더니?”
“엄만 별 걸 다 묻습둥?”
“글쎄 대답이나 해라.”
“줴줍데.”
“그래? 안아주데?”
“음~”
성숙은 부끄러워 목 안으로 기여드는 목소리로 가늘게 외마디로 대답하면서 머리를 끄덕였다.
“집에서 신랑하구 잤니?”
“아니, 시누이들과 함께 잤소. 엄만 별 걸 다 묻소.”
성숙은 왼손으로 얼굴을 가리며 바깥으로 나가려고 했다.
영옥은 엉거주춤 일어나 딸의 손을 잡았다.
“얘, 신랑이 널 고와하는지 알자고 그래.”
“고와하오. 발해왕터에 가서 련애했습꾸마. 날 꼭 끌어안고 키는 작아도 똑똑해보인다면서 사랑한다고 합더구마.”
영옥은 한숨을 후~ 내쉬었다.
“그럼 됐다. 아버지와 엄마를 봐라. 짝이 기우니까 틀렸더라. 너 애비 공안국장이느라고 날 못생겼다고 사랑하지 않고 동네 녀편네들 뒤꽁무니를 쫓아다니면서  나를 얼마나 못살게 굴었는지 아니? 난 네 신랑감이 키도 구척이지 짝이 기운다고 말릴가 했어. 너 애비처럼 각시를 못살게 굴가봐 근심돼.”
성숙은 물끄러미 어머니를 들여다보다가 겨우 입을 뗐다.
“근심하지 맙소. 명선은 날 진짜 좋아합구마.”
“그럼 얼마나 좋겠느냐?”
기실 성숙은 신랑감이 도문에서 자기와 함께 걷지 않고 자꾸 길 건너쪽에서 따로 걷는 것을 눈치챘다. 분명 자기가 키 작다고 함께 걷기를 싫어한다는 것을 짐작했다.
그후 영옥은 남편을 보고 이렇게 말했다.
“사돈보기도 하고 성숙이 시집 마을까지 갔다 왔는데 놔두오. 전라도면 어떻고 사람에 달렸지. 굳은 땅에 물이 고인다고 깍쟁이시집에 가면 더 잘 살 수도 있소.”
상순은 마지못해 막내딸을 명선에게 준 거나 다름없었다. 그런데 듣던 말과는 달리 명선은 부지런하고 마음씨 순박하고 착하기로 한량없었다.
이때 명선은 화로에 자기가 잡아 말리어온 장어를 빠지직빠지직 구워 올려왔다.
상진과 성호는 명선과 함께 술상에 마주 앉아 술잔을 나누었다. 술상에는 명선이 고향에서 가져다 화로불에 빠지직빠지직 구운 장어와 소고기가 올라 군침이 돌게 했다.
온 집 안에는 기쁨의 금물결이 출렁거렸다.
이전에 성호가 대학을 다닐 때 여름방학에 놀러 가면 성숙은 가마니를 짜서 판  돈으로 새 옷을 사 입혔다.
“우리 대학생 막내오라비가 옷도 멋지게 입고 다녀야지. 옷이라도 헐게 입으면 처녀들이 오라비한테 시집오려고 하겠니?”
성호가 집으로 돌아올 때는 꼭 돈을 손에 쥐여주면서 학교 가서 배고플 때 사 먹고 싶은 걸 사 먹으라고 했다. 어느 누나나 다 성호한테는 그랬다. 성호는 누나들의 그 은정이 눈물겹게 고마웠다.
명선은 자기 집에 온 성호를 데리고 자전거를 타고 경박호 구경을 시켰다.
처음 거울같이 맑은 경박호를 바라보는 순간 성호는 흑룡강성에 이같이 아름다운 호수가 있을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더욱이 용암이 굳어버린 암석낭떠러지에 눈사태가 무너지는듯 쏟아지는 폭포수와 유구한 력사가 누워 있는 발해왕국터를 돌아보면서 감탄을 련발했다.
산천경개가 아름다운 경박호 부근 넓은 벌을 바라보면서 성호는 이 다음 대학을 졸업하면 이런 곳에 와서 교편을 잡을가고도 푸르른 꿈을 꾸기도 했다.
아들을 보고 기뻐하는 매형과 마찬가지로 성호는 외조카 경남을 보고 얼마나 귀여웠는지 모른다.
영옥은 명선이 바깥으로 나간 틈을 타서 성숙에게 물었다.
“저런 꺽다리 신랑이 작달막한 막내딸에게 차례질줄은 몰랐지. 야, 신랑 퇴를 냈다, 퇴를 냈어.”
그러자 성숙은 경남에게 젖을 먹이면서 부은 얼굴에 희죽이 웃음을 지었다.
“저 신랑 결혼 전에 그게 말을 잘 듣지 못하는 모병이 있었소. 그런 모병이 없었더라면 어찌 나한테 장가 갔겠소.”
“그래?”
영옥은 입을 딱 벌렸다. 영옥은 문쪽을 힐끔 돌아보면서 목소리를 낮춰 물었다.
“그래 지금은 일없니?”
“일이 있으면 애를 낳았겠소?”
영옥은 한숨을 후 내쉬였다.
“그럼 됐어. 이후에 신랑 보신을 잘 시켜라. 인삼을 넣고 닭곰도 해 대접해라. 그리고 남편의 양기를 죽이는 말을 절대 한마디도 하지 말라.”
성숙은 부끄러움을 좀 타면서도 고개를 끄덕였다.
문소리 덜컥 나면서 명선이 집 안에 들어섰다.
초가집에는 또 웃음소리 울려퍼졌다. 아니, 이런 경사가 또 어디 있겠는가. 온 집 안은 갓난 경남을 가운데 눕혀놓고 둘러 앉아 웃으며 밤이 깊어가도록 덕담을 늘여놓았다.
 
                         9. 청춘 로맨스
이튿날 아침에 영옥이 한창 아침상을 차릴 때였다.
마을에 있는 셋째딸 은숙이 들어섰다.
“우스운 일이 터졌소!”
“?”
모두들 궁금해 구들로 올라오는 은숙을 쳐다보았다.
은숙은 구들에 풍덩 들어앉으면서 말했다.
“순희가 글쎄 철주와 결혼한다오!”
“뭐라구?”
모두 자기 귀를 의심했다.
“아니, 북경에 가서 공부한다더니 철주한테 시집가?”
제일 놀란 것은 성호였다.
그때 한 마을의 미옥이 애를 안고 문을 뚝 떼고 들어왔다.
“어마니, 우리 대학생신랑이 왔구나.”
“이건 또 무슨 소리야!”
영옥은 장국을 푸던 바가지를 솥안에 퉁 떨어뜨렸다. 국물이 사처로 튕겼다. 그 바람에 부엌에서 아궁이에 석탄을 떠넣던 명선이 손을 다 뎄다.
미옥은 미친듯이 웃어대면서 지껄여댔다.
“아니, 신랑, 뭐 해? 네 애를 받아안지 않고.”
그녀는 갓난애를 창호한테 마구 떠밀어주었다.
성호는 미옥한테 되밀어주었다.
“야, 너 무슨 미친 소릴 치니?”
“호호호. 얘, 우리 둘이 만든 앤데. 모르는 척하겠니?”
성호는 억이 막혀 애를 마구 미옥에게 떠밀어주면서 야단쳤다.
“얘, 미친 소릴 작작 쳐라. 내 언제 너와 련애나 했니?”
상진은 무서운 눈길로 미옥과 성호를 번갈아 쏘아보았다.
“저 애는 어떻게 된 거냐?”
성호는 “저 정신환자 말을 다 믿습니까?” 하고 말하며 미옥을 쏘아보았다.
“나가라! 정신병자 같은게, 어데서 만든 애를 가지고 생사람을 잡니?!”
허나 미옥은 애를 구들에 활 놓으면서 미친 소리를 계속했다.
“얘, 울어도 이 집에서 울고 죽어도 이 집에서 죽어야 팔자를 고친다. 이 집이 초가집이라도 대학생네 집이야. 이 집에 와야 너도 내 첫사랑 성호처럼 대학에도 가구 잘 살지.”
미옥은 애를 안고 성호 옆에 와서 다가앉으면서 미친듯이 웃어댔다.
“넌 대학생 성호네 아들이 돼야 잘 살 수 있어. 호호호.”
그제야 상진은 굳었던 주름 잡힌 얼굴을 느슨히 풀었다. 그는 진작 정신이 나간 미옥이 시내 거지한테 당했다는 소문을 들은 적이 있었다. 허나 애를 안고 뛰여들어와 성호 애라고 하자 처음에는 오해하면서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명선은 처음에는 어찌된 영문인지 몰라 눈이 데꾼했다가 부엌에서 국물을 털며 구들에 올라왔다. 놀란 경남과 미옥의 애가 자지러지게 울어댔다.
정신 나간 미옥은 아예 애를 안고 구들에 퍼더버리고 앉아 갈 념을 하지 않았다.
“아무리 인심이 각박하기로 이 집에 온 손님한테 밥도 주지 않겠소. 흥!”
미옥은 밥상에 차려놓은 밥을 푹 떠서 먹다가 한술 푹 떠서 흘겨보는 창호의 입에 가져갔다.
“얘, 이러지 말고 조용히 밥이나 먹어라!”
미옥은 희쭉 웃었다.
“그럼 그렇겠지. 아무리 아들이 흔한 집이라고 해도 그렇지. 막내며느리 손자를 안고 왔는데 푸대접을 해서야 쓰오?”
그는 구들에 누워 있는 성숙을 보고 빈정거렸다.
“어머, 언니 언제 왔소? 우리 산모들이 아침을 먼저 먹기요. 자, 일어나오. 내 무슨 이 집에서 밥을 주지 않으면 먹을 곳이 없을 것 같소? 오늘 순희하구 철주 결혼한다오. 그 집에 가면 잔치 떡을 배터지게 먹을 수 있지. 씨, 아침은 여기서 먹고 점심엔 거기 가야겠어.”
성호는 미옥이 또 정신병이 발작한다고 여겼다. 그러나 철주와 순희가 결혼한다는 것은 믿었다. 진짜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미옥은 계속 늘여놓았다.
“순희, 그년 쌍통했어. 씨,”
그녀는 성호를 힐끔 쳐다보더니 중얼거렸다.
“이전에 내 성호와 좋아하니까. 얼마나 질투했다고 그래. 제 되오? 끝내 똥푸개 철주한테 시집갔지. 뭐? 북경에 가서 공부를 한다더니 결국엔 이 마을에 돌아와 똥푸개 같은 철주한테 시집 가면서. 흥! 바보라도 그런 바보년이 어디 있어. 내 걔만 공부는 못해도 내 노릇은 착실히 했어. 이렇게 대학생과 좋아해서 떡돌 같은 아들을 보았지. 제 되오? 똥푸개 철주야 이런 농촌에서 똥이나 펐지. 내야 이제 대학생 신랑을 따라 시내에 가서 기와집에서 호광하면서 살게 됐어. 호호호.”
그녀는 남들이 어떻게 생각하건 말건 계속 웃겼다.
“시아버지, 안 그래요? 옛날부터 시앙버지 사랑은 며느리라는데 그저 쳐다보기만 하면 어떻게 해요?”
상진과 영옥은 그저 웃어댔다.
국이 다 끓자 모두들 아침밥상에 마주 앉아 숟가락을 들었다.
미옥은 성숙의 옆에 있는 애를 들여다보더니 히쭉 웃었다.
“에이고, 귀해라. 가만, 얘가 우리 애하고 어떻게 되지.”
그는 성호를 뒤돌아보더니 또 지껼여댔다.
“얘들 고모사촌간이구나. 그래. 이 세상에서 잘 살자면 김서기네 손자로 태여난게 옳지. 김서기네 외손자나 사돈에 팔촌의 손자로라도 다 호광할수 있단 말이야.”
미옥은 혼자 계속 중얼거리며 미친 소리를 쳤다.
“성호야, 너 대학생이느라고 너무 우쭐거리지 말라. 너 때문에 내 정신나갔지 뭐야? 씨.”
“뭐라고?”
성호는 밥을 먹다가 미옥을 건너다보았다.
“정말 한심하구나. 널 좋아한 적도 없다, 없어!”
상진은 미옥을 마구 쫓아냈다.
 “생사람을 작작 잡아라. 가라, 가!”
미옥은 쫓겨나가면서도 계속 지껄였다.
“그 잘난 밥이 아까우면 말게지. 쫓긴 왜 쫗아? 미옥이 너네 집에서 밥을 얻어먹지 못하면 먹을데 없을 것 같아? 씨, 순희네 집에 가서 잔치떡이나 먹자.”
성호는 “순희 북경에 갔다더니 어째 불시에 철주와 결혼한다오?” 하고 물었다.
그러자 영옥은 도리머리를 홰홰 가로저었다.
“순희 전번에 북경에서 돌아와 철주하구 사돈보기를 했다.”
성호는 숟가락을 달랑 내려놓았다.
“맨 미친 년들이구나.”
그는 밥맛이 없어 바깥으로 나왔다.
눈보라가 룡트림을 하면서 언 땅을 훑어가고 있었다. 모래알 같은 눈가루가 휘몰아치는 바람에 여기기 흩날리다가도 바람을 따라 종달음질쳐갔다.
순희가 철주와 결혼한다는 건 성호에게는 너무나도 큰 충격이였다. 속이 비길 데 없었다.
(순희가 이럴 수가?)
성호는 모든 것을 믿고 싶지 않았다.
착잡한 의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떠올랐다. 철주는 어릴 때도 과수원에 가서 배를 훔쳐 셔츠안에 넣어가지고 와서 순희를 여러번 준 적이 있다. 물고기를 잡아서도 초롱채로 들어다주기도 했다.
성호는 도리머리를 흔들면서 한 집 건너 순희네 집을 내려다보았다. 첫사랑 순희를 철주한테 빼앗긴 감이 스물스물 기기들었다.
(진짜 함박꽃이 둼 무지에가 꽂힌 격이야.)
그때 순희네 집 굴뚝에서 삼단 같은 연기가 무럭무럭 솟아올랐다.
그는 저도 몰래 스적스적 눈을 밟으면서 순희네 집 쪽으로 발길을 옮겼다. 자기 눈으로 확인하고 싶었던 것이다.
순희네 집과 성호네 집 앞에 건조실이 있었다. 숱한 암탉들이 수탉 한마리 주위에서 북데기 속의 낟알을 쪼아먹느라고 구구거렸다. 수탉은 북데기 속의 낟알을 뚝뚝 쪼아 골라내놓고 뭐라고 구구거리며 암탉들에게 먹이고 있었다.
(말 못하는 닭들의 사랑은 얼마나 간단해. 수탉이 구구구 하면 암탉이 따라다니면서 먹으며 재미있게 살거든. 허나 인간 세상의 사랑은 왜 이다지도 복잡해?)
성호는 속이 부글부글 괴여번지는 것을 어쩔 수 없었다. 똑똑한 순희가 리해되지 않았다.
(바보 같은 게.)
성호는 건조실 마당에서 서성거리면서 막연한 생각에 갈마들어 몸부림쳤다.
철주는 성호보다 키도 더 큰데다가 진짜 이름처럼 실팍한 쇠기둥같이 생겨 싸우면 항상 성호를 이겼다. 진짜 사이 좋지 않은 라이벌이였다. 게다가 철주는 총명해서 공부도 아주 잘했다. 특히 그는 태평거촌 동구에 있는 한족마을 쪽에서 자라나서 한어를 아주 잘했다. 그리하여 담임교원은 철주한테 체육위원까지 시켰다. 허나 성호는 수학은 잘했지만 한어는 철주의 발뒤꿈치도 따라가지 못했다. 그래도 수학경색대회에서 몇번 우승을 한 덕에 성호는 수학교원인 담임교원의 신임을 받아 학습위원을 했다.
안도저수지를 수축하는 바람에 순희는 그 골안의 이주민들과 함께 태평거촌에 이사해왔다. 철주와 성호는 서로 순희에게 잘 보이려고 하면서 경쟁과 갈등은 더 심해졌다. 철주는 과수원에 가서 배를 훔쳐다준다, 반디를 들고 강물에 가서 모래무치랑 잡아다준다 하면서 순희를 얼리려고 했다.
허나 머리 뜨거워난 철주는 잘못을 저질렀다. 남의 집 해바라기를 훔치고 감자를 파다 순희에게 주다가 들통이 났다. 바늘도적이 소 도적이 된다고 철주는 나중에 진짜 남의 개까지 훔쳤다가 파출소에 잡혀가기도 했다.
(도적놈한테 시집가? 흥!)
“성호!”
성호가 머리를 들어보니 기다리는 순희는 집에서 나오지 않고 보기도 싫은 월순이 이쪽으로 빠드득빠드득 눈을 밟으며 다가왔다.
눈덮인 북데기 속에서 낟알을 쪼아먹던 닭들이 독살스런 월순을 두려운 듯이 달아났다.
“때마침 잘 왔구나. 한가지 부탁하자.”
“뭘?”
성호는 자리를 뜨려다가 주춤 멈춰서면서 심드렁한 표정을 지었다.
“오늘 내 작은고모 결혼하는데 저녁에 와서 좀 오락 사회를 맡아주렴.”
월순의 말에 성호는 어처구니없어 피씩 웃었다.
“얘, 내가 왜? 싱겁게. 사람을 뭘로 보고 이러니?”
월순은 퉁방울 같은 눈을 번쩍 무섭게 뜨더니 성호를 쏘아보며 두툼한 입술을 열었다.
“얘, 대학생이라고 봐주니까. 고까짓 주례도 서지 못하겠니?”
성호는 도리머리를 흔들었다.
“얘, 내 어디 주례를 설 기분이 있니?”
그때 갑자기 문이 발칵 열리면서 실내복바람의 순희가 나오더니 “월순아, 그만둬라! 집에 들어오지 못하겐?” 하고 눈을 흘겼다.
성호는 머리를 숙이면서 순희의 눈길을 피했다.
월순은 뭐라고 욕하려다가 순희가 다가와서 잡아끄는 바람에 그만두고 집 쪽으로 가면서 두덜거렸다.
“순희야, 내 좀 보자.”
“?”
순희는 월순을 놓고 돌아서더니 의아한 눈길을 보냈다.
“얘, 시집 가는 날에 그런 애들과 말도 하지 말라. 괜히 괄시를 당하겠어.”
월순은 성호를 힐끔 되돌아보더니 문을 쾅 닫고 들어가버렸다.
“무슨 일이야? 추워 죽겠어.”
성호는 순희의 헝클어진 머리카락 밑에 팅팅 붓긴 까만 포도알눈을 보면서 간신히 입을 뗐다.
“너 미쳤니? 뭘 보고 철주한테 시집가니?”
“어째 심술나? 남이야 철주한테 시집가든 말든 잔치날에 웬 반간이냐? 데려가라고 할 땐 데려가지 않더니, 철주한테 시집가니 어째 아깝니?”
놀랍게도 순희는 깨고소해하는 표정이였다.
(바로 내게 보복하려고? 이런 묘한 기분 보여주자는 거야?)
성호는 기분이 정말 엉망이였다.
“북경에서 살게지. 이런 농촌에 돌아와 뭘 하니?”
“난 네가 보라고 철주와 결혼해서 이 마을에서 돼지 치고 개를 가득 치면서 백년을 살테야.”
“흥! 호박을 쓰고 돼지굴로 들어간다.”
“너 정말 재수 없이 논다. 남의 결혼식날에 고양이 방정을 떨겠니?”
순희는 주위를 둘러보더니 머리를 돌렸다.
“한가지만 명확히 알려주마. 철주는 내 첫사랑이야. 그가 따준 배가 내 배 속에 아직도 남아 있어. 난 그때부터 철주를 사랑했다. 난 너처럼 첫사랑을 헌신짝 버리 듯하지 않아.”
성호는 더 할 말이 없었다.
“저녁에 오락판 주례를 서주겠니? 마지막 부탁이야.”
순희의 눈에 핑그르르 돌아가는 눈물을 보고 성호는 마지못해 기여들어가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러마. 너와 철주 결혼을 축하한다.”
순희는 두손으로 얼굴을 가리더니 뒤도 돌아보지 않고 집으로 뛰여갔다.
성호는 우두커니 서서 집 안으로 들어가버리는 순희 뒤잔등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문이 벌컥 열리더니 시뿌연 김 속으로 순희가 사라져버렸다.
성호는 집에 돌아와 심란해 위방에 들어가 훌러덩 들어 누었다. 착잡한 생각이 머리를 칭칭 휘감고 끝없이 괴롭혔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가.
바깥에서 북소리와 징소리가 요란하게 울렸다. 그 요란한 소리는 각일각 가까이 다가왔다.
(제길할, 무슨 일이야?)
성호는 호기심에 문을 열고 내다보았다.
(저게 뭐야?)
글쎄 아래 마을 한족들이 북을 두드리고 징을 치면서 순희네 집 쪽으로부터 건조실을 건너 성호네 집 쪽으로 올라오고 있지 않겠는가. 그 한가운데 백마를 탄 철주가 옛날 원님처럼 거만하게 다가오고 그 뒤에 꽃가마가 다가왔다.
성호는 바깥으로 나가려고 하다가 문고리를 놓고 벽에 기대섰다.
(진짜 갑돌이와 갑순이 이야기를 만드는구나.)
그는 자기 첫사랑 순희가 꽃가마를 타고 도둑놈 같은 라이벌 철주한테 시집가는  꼴을 차마 더 보기 힘들어 눈을 꼭 감고 벽에 기대 서 있었다. 그런데 웬 일일가. 북소리와 징소리가 멀어져 가지 않고 딱 성호네 집 앞에서 더 요란해지는 것 같았다.
성호가 이상해 창문으로 바깥을 내다보았다.
(아니, 저게 웬 일인가?)
철주가 백마에서 내리더니 꽃가마 앞으로 다가가 꽃가마 문을 열고 순희를 안아 내려 업고 덜썩덜썩 어깨춤을 추며 야단쳤다. 눈보라 윙윙 휘몰아치는 맵짠 엄동설한에도 철주는 첫날한복을 입은 순희를 안고 한바퀴 휘 돌리더니 업고 어깨춤을 덩실덩실 추었다.
이때라고 북소리 둥둥, 징소리 쟁쟁, 새납소리 한바탕 요란하게 울렸다.
“저것들이 짜고들어 우리 집 앞에서 시위하는 거야.”
성호는 중얼거리면서 창문에서 떨어져 구들에 훌렁 물앉았다. 마음이 아파 참 더 눈 뜨고 볼 수 없었다.
(복수하려고? 아침에 어글어글한 눈에 고인 눈물은 뭘 설명할가? 아무리 괘씸해도 우리 집 문 앞에까지 와서 성질을 건드릴 건 뭔가?)
성호는 와닥닥 일어나 앉았다.
이때 미닫이가 쭉 열리더니 엄마 들어왔다.
“에이고, 넌 언제 제 노릇을 하겠니? 대학생처녀면 어떻고 저 순희 따를 때 약혼했더라면 얼마나 좋았겠니? 철주 좋은 노릇 하지 않았니?”
“엄마, 근심하지 맙소.”
성호는 귀밑머리가 희슥희슥한 어머니를 위안했다.
“내 꼭 순희보다 더 예쁜 며느리를 데려올게.”
성호는 구들에 들어 누우면서 눈을 딱 감았다.
정지에서 막내누나 성숙도 한마디 했다.
“엄마, 성호 순희와 연분이 없어 그런 거요. 대학생인 성호 이제 영화배우 같은 시내 대학생처녀를 데려오지 않는가 보라니깐.”
“글쎄 말이야.”
그때에야 바깥에서 북소리와 징소리가 멀어져갔다. 영옥은 탄자를 아들의 몸에 덮어주고 정지로 나갔다.
“더러운 놈들, 고의로 우리 집  앞에 와서 떠들긴?”
성호는 어릴 때 키가 자기보다 한 뼘은 더 큰 철주와 맞붙으면 씨름을 해도 안되고 싸워도 안 됐다. 게다가 철주는 한족마을의 애들과 친해 쩍하면 한족애들을 데리고 와서 성호를 때리고 괴롭혔다. 그런데 후에 성호가 길림으로 가서 몇해 동안 누나네 집에 있으면서 초중공부를 하며 시내 애들에게서 무술을 배운 다음부터는 상황이 달라졌다. 고중에 다닐 때 고향에 돌아오면서 성호와 철주가 한번 붙은 적이 있었다. 철주는 근본 상대가 아니였다.
처음에는 씨름을 붙었다.
철주는 키 크고 힘이 센걸 믿고 대판 성호의 허리를 꽉 끌어안고 떠밀기를 했다. 그때 성호는 철주의 힘을 리용해 옆으로 슬쩍 피하면서 꿇어앉아 왼 손으로 철주의 오른다리를 번쩍 들어 어깨우로 떠 넘기었다. 철주는 자기 힘에 앞으로 머리를 처박으면서 꼬꾸라졌다.
열이 오른 철주는 “고새끼, 미꾸라지처럼 잘 빠지는구나.” 하고 손바닥에 침을 뱉고 덤벼들었다.
두번째 판에 철주는 태산이 정수리를 누르는 기세로 덮쳐들어 오른팔로 성호의 목을 껴안고 꽉 내리눌렀다. 성호는 머리가 거의 모래바닥에 닿을 지경이였다. 그 아슬아슬한 찰나에 성호는 목을 철주의 겨드랑이 밑에 바싹 밀어넣어 쳐들며 오른 손을 철주의 사타구니에 찔러 넣고 XX을 꽉 움켜쥐여 비틀었다.
“앗!”
철주가 그게 아파 성호의 목을 껴안은 팔을 놓아버렸다.
그때 성호가 오른 팔을 철주의 사타구니에 넣어들면서 허리를 쭉 폈다. 그 큰 철주를 번쩍 들어 거꾸로 처박아놓았다.
“어이쿠!”
철주는 높이 떠들려 버둥거리며 강산구경을 하다가 모래바닥에 처박혔다.
성이 날대로 난 철주는 주먹을 쳐들고 씽 덤벼들어 성호의 얼굴을 쥐여박았다. 성호가 옆으로 쓱 피하면서 날아드는 주먹을 덥썩 잡아 비틀어 당기면서 아래 종아리를 탁 걷어찼다. 철주는 이번에도 자기 힘에 저쪽에 가서 나동그라졌다.
마을 사람들이 우르르 모여 그들 둘은 뜯어 말렸다.
성호는 어릴 때처럼 뛰쳐나가 뚜들겨 패놓을 수도  없었다.
(난 대학생이야.)
토끼꼬리만한 겨울해가 지고 있었다. 몇가닥의 차디찬 해빛이 저녁노을 속에서 마을을 비췄다.
정지 문소리가 삐꺼덕 났다.
“성호, 우리 집에 와서 잔치 술이나 마셔라!”
성호가 미닫이를 열고 내다 보고 자기 눈을 의심할 지경이였다.
범이 자기 흉을 하면 온다더니 생각 밖으로 왼쪽 가슴에 꽃을 단 철주가 찾아오지 않았겠는가.
성호는 벌떡 일어나 나가면서 철주의 손을 잡아주고 나서 “결혼을 축하한다. 잘 살아라.”라고 덕담을 해주었다.
“고맙다.”
철주도 반갑게 인사를 받았다.
“이전에 어려서 우린 라이벌이였지. 허나 이젠 우리 갈 길은 서로 갈라졌잖았구 뭐니? ”
“그래, 필경 우린 한 고향 마을에서 자란 짜개바지친구니까.”
철주는 사람좋게 성호를 잡아끌면서 “가자, 우리 집에 가서 마을 친구들과 함께 술이나 마시자. 그리고 저녁에 잔치오락을 좀 재미나게 조직해달라.” 라고 했다.
성호는 연신 “그래, 그러자. 근심하지 말아라.” 하고 바삐 신을 찾아 꿰고 따라 나섰다.
성호는 고향 마을 친구들과 함께 술을 취토록 마셨다.
철주와 순희의 부탁대로 그는 오락판 사회를 맡았다. 미닫이가 열리더니 순희가 위방에서 나왔다. 꽃너울을 쓰고 한복을 곱게 차려 입은 순희, 머리를 다소곳이 숙이며 오락 판에 사뿐사뿐 나서는 순희가 그렇게 예쁠 수가 없었다.
성호는 속이 미어지는 것 같았다. 생각 같아선 마구 손을 잡고 자기 집으로 끌고 달아가고 싶었다. 성호의 눈길을 받는 순간 순희의 어글어글한 눈이 유난히 이상한 빛을 발산하고 있는 것만 같았다.
성호는 그날 밤 착잡한 마음을 정리하면서 무슨 정신에 오락을 사회했는지 몰랐다.
그는 자기 차례에 “갑돌이와 갑순이”이란 노래를 부르려다가 그만두었다. 그는 코로 흥얼거리면서 두 팔을 활짝 벌리고 너울너울 춤을 추었다. 순희가 행복할 것을 축원하는 간절하고 깨끗한 마음을 담아 서정적으로 춤을 추었다. 꿇어앉아 순희와 철주를 향해 두팔을 벌리고 가슴을 내밀며 두 팔을 내뻗었다가도 무술동작을 곁들어 벌떡 뛰여 일어나 백조가 맑은 호수에서 두발로 모둠다리로 옆으로 가는 시늉을 내기도 하고 학이 나래치는듯이 두 팔을 너울거리기도 하고 어깨춤을 덩실덩실 추기도 했다.
오락이 끝나자 순희는 꽃노을을 쓴채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성호의 술잔에 술을 찰찰 넘치게 따랐다. 그런데 그녀가 하얀 장갑을 낀 손에 잡힌 술병끝이 술잔을 도도도 두드리는 것이 눈에 보일 지경이였다.
성호는 술잔을 받아 한잔 쭉 들이켰다.
꽃노을을 쓰고 다소곳이 숙인 순희의 하얀 보름달 얼굴을 보는 순간 성호는 가슴이 미여지는 것만 같았다.
짙게 그린 눈썹아래 순희의 어글어글한 두눈에는 눈물이 글썽해졌다.
성호는 엉거주춤 자리에서 일어나 비틀거리며 바깥으로 나왔다.
순희는 왼손으로 얼굴을 반쯤 가리면서 반쯤 돌아섰다.
성호는 한복을 입은 고운 순희를 철주네 집에 남겨두고 차마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떼놓았다. 허나 떠나야만 했다. 그는 손으로 허공을 마구 그으면서 휘청휘청 어두운 눈보라 속으로 걸어갔다.
바깥에서는 눈보라가 윙윙- 휘몰아치면서 어둠 속에 짓눌린 고향마을을 핥으면서 산악 같은 슬픔을 몰아왔다. 모래알 같은 눈가루가 지붕에서 흩날려 목 안에 기여들어 성가시게 굴었다. 휘몰아치는 눈보라 속에 어디선가 쓸쓸한 노래 소리가 성호의 귀전을 아프게 때리는 상 싶었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를 넘어간다
나를 버리고 가시는 님은
십리도 못 가서 발병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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