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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장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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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하소설 울고 웃는 고향(88)
2017년 11월 06일 11시 21분  조회:1791  추천:6  작성자: 김장혁


                    5. 화선입당
      땡볕이 재글재글 내리 쪼이는 삼복염천에 곡식과 나무들이 시들어갔다. 강냉이 이파리들은 달팽이처럼 감긴 채 말라버려 사원들의 마음이 재가루가 될 지경이었다. 사람들과 가축들도 홧홧 달아오르는 무더위를 먹고 쓰러져 갔다.
      대지에는 “인민공사”, “대약진”, “반 우파투쟁”이란 세폭의 붉은 기가 새빨갛게 휘날렸다. 사원들은 허백호 서기의 명령에 따라 밭으로 일하러 나아갈 때도 세 폭의 붉은 기를 들고 나가 밭머리에 꽂아놓아야 했다. 그들은 굿이나 하듯이 바람에 펄럭이는 붉은 기를 바라보면서 일하고 쉼에는 붉은 기 아래에서 날마다 시시각각 허백호 서기의 가로사대를 들어야 했다.
항상 정치 유머로 횡설수설하던 성근은 이번에는 붉은 기 귀를 쥐어 내리쪼이는 뙤약볕을 가리었다. 그러자 사원들은 너도 나도 성근처럼 붉은 기 아래로 달려가 앉아 붉은 기 귀를 쥐어 햇볕을 가리었다. 밭머리마다 세 폭의 붉은 기는 펄럭였지만 사원들과 소들은 굶고 무더위를 먹어 하나하나 쓰러져갔다.
어느 하루, 흥수가 무더위를 먹고 까무러쳐 쓰러졌다.
상순은 두 말 없이 자기 웃옷을 벗어 흥수에게 씌워 업고 산 아래 마을로 내려갔다. 모두들 허백호 서기를 따라 입방아만 찧는 흥수가 쓰러지니 깨 고소해 했다. 지어 일부 사원들은 흥수를 업고 가는 상순을 나무랐다.
“썩어지게 놔둘 게지.”
“흥수한테 헐뜯기우면서도 구해서 뭘 한다오.”
허나 상순은 개의치 않고 흥수를 토성 안 위생원에 업고 들어가 진달래를 보고 흥수를 구급하라고 했다. 진달래는 황급히 응급조치를 대기 시작했다.
상순은 흥수가 사경에서 벗어나는 것을 보고 그날로 현 당위에 찾아갔다.
그는 곧추 이계삼 부서기를 만나 그간 허백호 서기가 함흥촌에 와서 이른바 심갱밀식농사법을 강제로 실행하면서 허영주 향장과 할아버지에게 우파 모자를 씌워 투쟁했고 사촌동생인 허영호 소장을 시켜 쇠고랑이를 채워 파출소에 연행한 정황을 반영했다.
사건경과를 죽 들은 이계삼 부서기는 책상을 꽝 치면서 벌떡 일어났다.
“말이 아니구먼. 아무에게나 우파 모자를 씌워 투쟁하다니? 무슨 죄가 있다고 훌륭한 간부들에게 쇠고랑까지 채워 감금한단 말이오? 내 당장 허 서기를 찾아봐야겠소.”
상순은 믿음에 찬 눈길로 이계삼 부서기를 바라보면서 말했다.
“이 서기, 기실 우파는 허백호 서기라고 봅니다. 안 되는 농사법으로 올해 농사를 다 망쳐 놓았습니다. 한자 깊이로 둼을 파묻고 그 위에 강냉이를 심어서야 뭘 거둘 수 있겠습니까? 밭에 가 보니 옥수수 몇 대 나지 않았습디다. 그걸 막았다가 허 사장과 할아버지가 우파 모자를 쓰고 말았습니다. 허 서기를 놔두면 온 진수해공사 농사를 몽땅 망쳐놓을 것 같습니다.”
이계삼은 사무실에서 한참이나 왔다 갔다 하며 거닐다가 우뚝 멈춰 섰다.
“이 정황은 아주 중요하오. 우리 현당위에서 언제 그런 우둔한 짓을 하라고 지시했소? 자칫하면 허백호 서기로 인해서 진수해 숱한 간부들을 해치고 농사를 다 망치겠소.”
상순은 그때라고 한 걸음 더 다가서며 말했다.
“허 서기는 함흥대대에서 먼저 심갱밀식을 실험한 후 그 경험을 전 공사에 보급하겠다고 합디다.”
“우둔한 게 범을 잡겠소. 김 서기는 꾹 참고 허 서기 하는 대로 놔두오. 가을이 되면 자연히 실험전의 산량이 나오고 시비가 갈라질 게 아니오?”
“예, 알았습니다.”
“당에서는 언제든지 억울한 허 사장이나 할아버지 우파 모자를 벗겨 줄 것이요.”
“예, 이 서기를 믿고 돌아가겠습니다.”
이계삼 부서기는 현 정부 대문 밖까지 나와 미더운 눈길로 상순을 바래였다.
한편 허백호 서기는 병완이네 집에서 나와 며칠 전에 이흥수의 집으로 옮겨갔다. 우파 모자를 씌운 병완과 결렬한다는 뜻이었다.
흥수는 허 백호를 등에 업고 입당하고 나아가서 병완을 밀어내고 대대 당지부 서기 자리를 차지하려고 허 백호를 자기 집으로 끌어들였던 것이다.
사실, 흥수는 항미원조 전쟁 때 상순의 친척 되는 남조선 유격대 총에 자기 동생이 죽은 후 상순네 일가에 원한을 품고 있었다. 게다가 춘실마저 상순과 애매한 관계가 있어 애까지 낳았다는 것을 알게 돼 속에서 복수의 불길이 이글거렸다. 그때부터 흥수는 처처에서 병완과 상순을 눈에 든 가시처럼 여기면서 암암리에 보복의 칼을 시퍼렇게 썩썩 갈았다.
그는 진수해로 달려가 돼지고기를 사온다, 술을 사온다 하면서 허백호에게 아첨하려고 괴춤이 다 벗어지는 줄도 모르고 달아 다녔다.
저녁에 춘실이 저녁 밥상을 챙겨 웃방에 올려 왔다.
흥수는 소주를 한사발이나 부어 올린 후 연신 자기 사발의 돼지고기 점을 집어 허백호의 국 사발에 놓아주었다.
“허 서기, 많이 드십시오.”
김이 몰몰 나는 돼지고기를 보자 허백호는 연신 달걀 침을 꿀꺽 삼켰다. 그는 게걸스레 큼직한 돼지고기 점을 골라 저로 집어 급급히 입안에 넣었다.
(이걸 어쩌나?)
돼지고기 점이 어찌나 따가운지 큰일 났다. 허백호 서기는 천정을 쳐다보며 혀로 돼지고기를 이 볼 저 볼로 굴리면서 물었다.
“허허, 이 집 대들보 좋긴 좋다. 음, 어데서 베 왔소?”
흥수도 게걸스레 먹다가 입천정이 덴 허백호를 놀리려고 전라도 말로 유머를 부렸다.
“된 천덩(정)꼴(덴 입천정꼴)에서 베 왔으니께.”
백호는 입을 하 벌려 김을 빼면서 계속 천정을 쳐다보며 물었다.
“이 집은 어느 해 졌소?”
흥수도 능청을 부렸다.
“게걸 년에 지었지라.”
허백호는 자기를 게걸스럽다고 놀리는 것이 괘씸했다. 그 사이 그는 돼지고기 점을 우물우물 돌리며 식히다가 겨우 꿀꺽 삼켰다. 순간 뜨거운 돼지고기점이 목줄로부터 명치끝까지 쪽 내려갔다.
허백호는 입을 딱 벌리고 눈을 감고 있다가 돼지고기점이 똥집에까지 내려간 후에야 입김을 후 내보냈다.
“야, 거 돼지고기 맛 좋다.”
그때 흥수는 희죽이 웃으며 빈정거렸다.
“맛있으면 많이 드시랑께. 돼지고기 너무 뜨겁잖은께(디까)? 찬물을 드릴까요?”
“에끼, 이 사람아, 돼지고기를 먹고 찬물을 마시면 배탈이 날게 아닌가?”
“예~ 그럼 술을 천천히 드시랑께.”
허백호는 술 사발을 들어 쭉 마시고 돼지고기 점을 집어 연신 입에 넣었다.
“허, 거 술맛 좋고 돼지고기 맛있도다.”
그는 흥수의 귀에 대고 나직이 쑤군거렸다.
“병완 영감네 집에서는 돼지고기는커녕 이밥도 온전히 얻어먹지 못했소. 뭐, 간부들이 죽물을 먹어봐야 사원들의 쌀 고생하는 거 안다던가. 진짜 푸대접을 하지 않겠소? 흥! 진작 당신네 집으로 왔겠는 걸.”
"헤헤헤."
허백호는 흥수가 기다릴 말을 술술 쏟아냈다.
“성의 정말 대단하오. 당에 대한 충성심도 대단하구. 이런 동무를 아직까지 입당시키지 않다니. 정말 병완 영감과 상순이 무슨 심보요? 이번 반 우파 투쟁에서 동무는 표현이 아주 좋았소. 이제 흥수 동무를 화선 입당을 시킬 작정이오.”
흥수는 어깨마저 으쓱해 가마 목 쪽의 춘실을 힐끔 건너다보았다.
눈치차린 춘실은 생글방글 웃으며 술상에 다가와 술병을 두 손으로 받쳐 들었다.
“허 서기, 많이 드세요. 이 나그네를 입당시키겠다고 하니 얼마나 감사한지 모르겠습니다. 자, 한잔 받으세요. 해해해.”
춘실이 술잔에 찰찰 넘치게 부어 올리면서 아양을 떨어댔다.
그녀도 흥수한테서 시동생이 처첨하게 남조선 유격대한테 사살됐다는 말을 들은 후 상순을 곱게 보지 않았다. 더욱이 상순한테 버림받은 앙금이 세월이 흐르고 흘러도 쉽게 풀어지지 않았다. 진짜 사랑과 원한이 마구 뒤범벅이 돼 그녀를 속이 부글부글하게 괴롭혔다. 그래서 몇 해 전에도 상순을 집에 불러들여 함정에 빠뜨리려고 했던 것이다.
허백호는 술잔을 받아 쭉 굽을 내고 나서 “아, 그 술맛 좋다.”라고 하며 술잔을 술상에 내려놓았다.
그는 흥수와 춘실을 번갈아 보며 호언장담했다.
“근심하지 마오. 입당뿐이겠소? 장차 병완 영감 대신 함흥대대 당 지부 서기를 시킬 예산이오. 이 마을에서 병완과 상순의 뿌리를 찍어내야 인민군중들이 허리를 펴고 살 수 있소.”
흥수와 춘실은 너무 놀랍고도 기뻐 서로 마주 보며 연신 머리를 조아리었다.
“허 서기, 정말 은혜를 잊지 않겠습니다.”
춘실은 손으로 머리카락을 풀어헤치며 걸작아양을 떨었다.
“머리라도 잘라 신발을 지어드리겠어요.”
"아니, 아니, 그럴 필요까진 없소. 술이나 잘 마시면 됐소. 허허허. 성의 참 대단하구려."
허백호는 술이 거나하게 됐지만 아첨인지 추파인지 보내는 정에 함빡 젖은 춘실의 눈길이 너무 따가와 슬쩍 피했다.
“흥수 동무, 정치만은 나한테서 배워야 하오. 어, 거, 이제 우파분자 병완을 투쟁할 때 앞장서 구호도 부르고 투쟁하란 말이오. 그래야 화선입당하지.”
흥수는 멍해 허백호를 쳐다보다가 천천히 입을 뗐다.
“화선입당이란 건 뭐신고?”
“어, 거 전, 전쟁터에서 입, 입당한단 말이오.”
“예-농사를 짓는데 무슨 전쟁이락꼬?”
허백호는 얼근이 취해 손을 내 휘저으면서 가르치려 들었다.
“반 우파 투쟁은 총소리 나지 않는 전쟁이란 말이오. 반 우파투쟁을 잘하면 화, 화선입당을 할 수 있소.”
흥수는 머리를 끄덕이면서도 앞장서 병완을 투쟁하고 구호를 부를 일을 생각하니 저도 몰래 한숨이 나왔다.
“어째 부담스럽소? 한, 한숨부터 자꾸 쉬, 쉬면서. 입당하려면 똥담이 커야 하오. 이번 반, 반 우파 투쟁은 병완이 사느냐 흥수가 죽느냐는 생사결판을 내는 전쟁이란 말이오? 알만 하오?”
그 말에 뭔가 알리는지 흥수는 속으로 입당해 함흥대대를 쥐락펴락 하려면 양심을 어기고 그렇게 하지 않을 수 없다고 굳게 마음을 다잡아먹었다.
“구호를 어떻게 부르꼬?”
“우파분자 김병완을 타도하자! 알만하오?”
흥수는 들었던 술병을 밥상에 내 놓더니 허백호를 쳐다보았다.
“허 서기, 김 서기를 타도하다니? 그렇게 엄중한 착오입니까?”
취기가 올랐던 허백호는 정신을 차리며 눈알을 희번득거렸다.
“그렇소. 하늘에 사무치는 죄를 지었소. 그 영감은 3대 혁명 붉은 기를 반대했소. 대약진을 하려면 한 헥타르에 10만근을 내야 하오. 난 올해 함흥대대에서 한 헥타르에 5만근을 내고 명년에는 8만근, 그 다음해에는 10만근을 내게 하겠소. 이제 함흥대대에서 5만근만 내면 전 공사에 그 선진경험을 보급할 예산이오. 이 중대한 임무를 흥수 동무가 병안이 대신 맡아야 하겠소. 병완 영감을 타도하지 않고 어떻게 동무가 대대 당지부 서기로 올라가오? 올라갈 자리를 내야 올라가지. 할만하지?”
흥수는 “예~ 병완 영감을 타도해야 내가 올라가지.”라고 하며 머리를 끄덕이면서도 농사는 허백호 요구를 만족시킬 자신이 없었다.
(한 헥타르에 어떻게 5만근을 낼까?)
흥수가 생각해도 한심한 생산량이었다.
허백호 서기는 흥수의 그런 속심을 알고도 남음이 있었다. 하긴 그도 한 헥타르에 5만근을 낼 자신이 없었다. 그러나 그도 상급의 지시를 어길 수 없었고 한번 기적을 창조하고 싶었다.
그는 그런 속내를 겉으로 드러내지 않고 흥수에게 힘을 실어주었다.
“근심하지 마오. 우선 입당하고 당 지부 서기는 천천히 해도 되오. 먼저 상순과 병완 두 당 지부 서기를 이용해 5만근 실험을 해 보기요. 5만근을 내지 못하면 그 놈들의 책임이 아니오? 허허허.”
그제야 흥수는 조금 시름 놓을 수 있었다.
“내일 우파투쟁대회에서 앞장서 ‘김병완을 타도자하!”고 구호를 높이 부르고 투쟁하오. 그럼 인차 입당부터 시키겠소.”
백호는 한미디 덧붙였다.
"서기 되려면 말투부터 고치라고. 함흥대대엔 대부분 함경도 분들이라고. 계속 전라도 말 쓰면 민심을 얻는데 걸릴 거 같소."
"예- 입당할락꼬, 아니, 저 말버릇 돼갖고. 무슨 조건 많은디. 고향 말씨도 못 쓰는갑디?"
흥수가 부르튼 소리하자 백호는 내심하게 타일렀다.
"글세 차차 고치라니까. 이게 정치요."
(정치 진짜 무지무지 더러운디.)
흥수는 한숨을 내쉬면서 술병을 들어 허백호에게 붓고 또 부어 올리고 개여 올렸다.
이튿날 오전, 사원들이 기음을 한 쉼 맨 후 쉴 참이었다.
허백호는 사원들을 향해 “몽땅 밭머리에 모이시오!” 하고 호통 쳤다.
“또 무슨 일이야?”
사원들은 자기 모자에 우파 모자가 씌워질까봐 겁나 목을 움츠러뜨리며 밭머리에 양떼 몰리듯이 모여왔다.
허백호는 독기어린 눈길로 파출소에서 끌어온 병완과 허영주를 쏘아보며 아주 격앙된 목소리로 을러멨다.
“우파분자 김병완과 허영주를 끌어내라!”
병완과 허영주는 쓰거운 표정을 지으면서 밭머리에 뿌리내린 듯이 까딱하지도 않았다.
“우파분자들은 듣지 못했는가?!”
허백호 서기가 고함치자 흥수가 씽 달려 가더니 병완의 뺨을 찰싹 갈겼다.
“영감, 나오지 못하겠는가?”
흥수가 재차 영주 사장의 뺨을 갈기려고 손바닥을 휘두를 때었다.
“이 놈 새끼!”
병완이 흥수의 손목을 덥썩 잡아 비틀며 허망 밭머리에 태를 쳐놓았다.
뜻밖에 벌어진 사건에 모두들 깜짝 놀랐다.
흥수는 대가리부터 흙에 처박혔다. 그는 뻘건 피와 흙이 처 발린 상을 쳐들고 신음소리를 내면서 겨우 일어났다.
“우파분자! 감히 나를 쳐?!”
뒤이어 그는 병완을 쏘아보며 주먹을 불끈 쥐고 높이 쳐들더니 목이 터지게 구호를 불렀다.
“우파분자 김병완을 타도하자!!”
병완과 허백호의 독기 어린 눈길이 공중에서 부딪치는 순간 보이지 않는 번개가 번쩍이고 우레가 천지를 진동했다.
허영주 사장도 한 치의 양보 없이 대들었다.
“허 서기, 내 무슨 잘못이 있다고 우파요, 뭐요 하고 떠드오?”
허백호는 어이없다는 듯이 도리머리를 흔들었다.
“당신, 그래 죄를 모르겠소?”
허영주는 우쭐 일어나 억울함을 호소했다.
“난 이제껏 중국 공산당에 충성해온 공사 간부요. 항일전쟁시기 당신이 영월구에서 민병 련장이나 할 때 나는 조선의용군을 따라 태항산에서 일제 놈들과 싸웠소. 당신이 민주연군에서 련장을 할 때 나는 이계삼 서기와 함께 이 함흥 촌의 첫 당 지부를 세웠소. 우리 공사 어느 골안에 내 발자국이 찍혀 있지 않는 곳이 있소?…”
“그만 지껄여? 자기 죄를 뉘우칠 대신 숱한 사원들 앞에서 아직도 자기 자랑을 잔뜩 늘여 놓겠는가?!”
허백호는 숱한 사원들 앞에서 수세에 몰릴 수 없었다. 그는 파출소 소장 허영호를 한쪽으로 불러 뭐라고 쑤군거렸다.
병완과 허영주를 노려보던 허영호 소장이 민경들에게 손을 홱 휘둘렀다.
“우파분자들에게 고깔모자를 씌워!”
민경들은 다짜고짜 덮쳐들어 병완과 허영주에게 미리 준비해온 고깔모자를 씌우고 양팔을 붙잡아 사원들의 앞에 내 세웠다.
“내 무슨 죄 있는가?”
허영주 사장이 팔을 마구 뿌리치며 반항했다.
허백호는 흥수를 돌아보며 눈짓했다.
“우파분자 투쟁대회를 시작하겠습니다.”
흥수가 앞장서 투쟁했다.
“허영주 사장은 우리 위대한 중국 공산당을 모욕한 죄가 있으니께."
그는 눈을 흘기는 백호의 눈치를 채고 제꺽 억지로 말투를 고쳤다.
"이전에 우리 생산대에서 범바위골에 갔을 때 허영주는 ‘사원들이 배불리 먹으면 사회주의고 공산주의’라고 했습니다. 또 함흥대대의 경험을 온 진수해공사에 널리 보급했습니다. 병완 영감과 상순은 허영주 사장의 반동노선을 그대로 집행한 원흉이라니께. 아니, 원흉입니다. 우리 사회주의와 공산주의는 그저 배불리 먹기만 하면 되는 것입니까? 마땅히 반 당 반 사회주의 우파분자들을 잘 투쟁해야 합니다. 저런 우파분자들이 대를 물려받으면서 우리 함흥대대를 통치해서야 됩니까? 저 병완 영감과 상순만 봐도 나는 눈에 쌍불이 난다니께. 저 놈들이 당원이노라고 얼마나 우쭐거렸는지 압니까?”
허백호는 흥수가 개인 보복하는 듯이 투쟁하는 것 같아 눈짓했다.
(어쩜 시켜준 서방질도 못해?)
눈치챈 흥수는 말머리를 제꺽 돌렸다.
“저 허영주 사장은 부패분자입니다. 전번에 범바위골에 왔을 때 상순이 준 멧돼지고기랑 사슴고기랑 수태 가져다 처먹었습니다. 어찌 공산당 간부로서 굶어 사는 백성들에게 쌀이나 돼지고기를 가져다 줄 대신 뭔가요? 배때 터지게 막걸리에 멧돼지 고기를 수태 처먹고 수태 챙겨 간단 말입니까? 원 격분해서!”
흥수는 또 병완을 치려고 주먹을 불끈 틀어쥐고 다가섰다. 허나 병완의 불길이 이글거리는 세 귀 눈을 보자 질겁해 꼬리를 사타구니에 차고 뒤로 한걸음 물러섰다.
황급해난 허백호는 흥수를 한쪽으로 불러 나직이 말했다.
“멧돼지 고기 말은 더 하지 마오. 괜히 난장판을 만들겠소.”
격분한 흥수는 언성을 높였다.
“그래 공짜로 멧돼지 고기를 처먹은 죄를 투쟁하지 않으면 뭘 투쟁하라는기오? 아, 저 투쟁하랍니까?”
백호는 허영주의 눈치를 흘끔 보며 흥수의 팔소매를 잡아 당겼다. 그제야 흥수는 침을 퉥 뱉으며 뒤로 물러섰다.
다른 사원들은 눈치만 보면서 투쟁하려 하지 않았다. 그러자 허백호는 이번에는 오옥선 교원에게 고깔 모자를 씌워 한참 투쟁했다.
그런데 오옥선이 또 야단칠 줄이야.
"내 죄보다 허백호 서기 죄 더 큽니다."
"뭐? 어찌고 어째?"
허백호는 눈이 휘둥그래졌다.
사원들은 모두 허백호와 오옥선을 번갈아보았다.
오옥선의 입은 칼날이었다.
"삼도만토비 숙청 때 나팔수를 했던 저의 오빤 저 백호 때문에 희생됐습니다. 저 놈이 산중턱에 우리 오빠랑 세워놓지 않았어도 놈들의 총에 맞아 희생되지 않았을 겁니다. 한 개 련이나 되는 민주련군 전사들을 토비들의 탄알받이로 산중턱에 세워 놓은 죄보다 더 큰 죄가 뭡니까?"
허백호는 갑작스레 고함쳤다.
"이 년, 주둥일 닥치지 못해?"
그 말이 떨어지기 바쁘게 흥수가 씽 달려가더니 옥선의 입에 수건을 틀어막았다.
백호는 식은 땀을 쓱 닦더니 놀라운 일을 공포했다.
“나는 진수해공사 당위를 대표해 반우파 투쟁에서 이흥수 동지의 적극적인 표현에 근거해 화선입당을 비준한다는 것을 선포합니다. 동시에 이흥수 동지를 병완 영감 대신 함흥대대 당 지부 서기로 임명합니다.”
허영주는 쓴 웃음을 짓더니 허백호를 손가락질 하면서 따지고 들었다.
“당의 조직원칙이 있소? 없소! 당신 마음대로 입당시키오?”
흥수는 손바닥으로 낯빤대기의 피 묻은 흙먼지를 쓱 닦으면서 입이 당나발이 돼 헤벌쭉거렸다.
“감사합니다. 허 서기, 난 토비숙청과 해방전쟁, 항미원조 전쟁에 가서 상순을 따라 다니며 싸우면서 왼팔에 부상당해도 저 자들이 압제하면서 입당시키지 않습다니께. 헌데 오늘 입당할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정말 감사하다니께.”
흥수는 허백호 서기 앞에 무릎을 꿇고 절까지 했다.
허백호는 숱한 사원들 앞이라 너무 과분한 감이 들어 황급히 흥수를 부축해 일으켜 세웠다.
허나 흥수는 허백호의 바지가랭이를 잡고 눈물을 줄줄 흘리기까지 하는 추태를 보였다.
갑자기 허영주 사장이 고깔모자를 벗어 밟아 버리더니 버럭 고함쳤다.
“허 백호, 당신은 내 범바위산에서 가져온 멧돼지고기를 먹지 않았는가?! 당신의 논리대로면 당신도 부패분자고 우파분자요!”
사원들 속에서는 소란이 벌어졌다.
“에이, 검정개 돼지 흉을 한다더니. 쯧쯧쯧.”
“허백호 서기도 우리 생산대 멧돼지고기를 먹은 우파분자구먼.”
어떤 사원들은 뒤에서 이러쿵저러쿵 떠들어댔다.
“기실 우리 대대 농사를 망쳐 먹은 게 누구요?”
“저 허 서기야.”
지어 어떤 사원들은 나직이 허 서기를 우파 모자를 씌워 투쟁해야 한다고 했다.
바빠 맞은 허백호는 황급히 고함쳤다.
“오늘 투쟁대회는 이만 하겠습니다. 너무 오래 쉬고서야 언제 5만근 고지에 오르겠소?”
“아니오! 오늘 회의는 계속 해야겠소!”
모두들 소리 나는 쪽을 바라보니 사원들의 뒤에서 이계삼 부서기와 상순이 앞으로 걸어 나왔다.
허백호와 허영호는 이계삼의 앞으로 다가서며 굽실거렸다.
“헤헤헤, 이 서기 언제 왔습니까? 진작 온다고 알렸더라면 허영호 소장을 시켜 찌프차에 모셔 왔겠는 걸 그랬습니다. 헤헤헤.”
이계삼 부서기는 허백호를 거들떠 보지도 않고 사원들을 향해 소리 높이 말했다.
“여러분, 여러분들의 말씀이 옳습니다. 병완 서기와 영주 사장은 아무런 착오도 없습니다. 나는 현 당위를 대표해 정중히 선포합니다. 허영주 사장과 김병완 서기에게 우파 모자를 씌운 것은 좌적인 착오입니다. 이 두 분은 우리 당의 실사 구시한 원칙을 견지했고 혁명에 공헌을 아주 많이 한 훌륭한 간부입니다!”
숱한 군중들이 우레가 터질듯이 박수쳤다.
이계삼 부서기는 계속해 연설을 했다.
“올해 함흥대대 농사를 망쳐 먹은 허백호 서기야 말로 함흥생산대대 집체와 사원들의 죄인입니다. 저 옥수수 밭을 보시오. 곡식이 나게 만들어 놓았는가?”
사원들은 둼 구덩이 우에 몇 대 자라지 못한 옥수수, 말라 누렇게 된 옥수수를 바라보며 장탄식했다.
뒤이어 이계삼 부서기는 허백호를 돌아보며 훈계했다.
“허 백호 서기는 제 정신이 있소? 둼 구덩이 위에 옥수를 심어 5만 근을 낼 수 있소? 농사를 모르면서 눈 먼 장승이 길을 가리키듯이 농사를 지휘하다니? 정말 머리가 뜨거워져도 한심하구먼.”
허백호도 지려고 하지 않았다.
“이제 저쪽 밭에서 옥수수 묘를 떠다가 심으면 풍작을 거둘 수 있습니다.”
“5만근을 내지 못할 땐 어찌 하겠소?”
“당성으로 보장하겠습니다!”
“그렇게 장담하지 마오. 당 간부로서 뭐나 실제로부터 출발해 말해야 하오. 당장 저 둼 구덩이를 흙으로 메우고 강냉이모를 떠다 심소. 이제라도 늦지 않소.”
허나 허백호는 고집을 부렸다.
“이대로 심갱밀식농사법을 쓰면 5만근을 꼭 낼 수 있습니다.”
여기저기에서 “와-” 하고 웅성거렸다.
상순과 눈짓을 맞춘 이계삼은 돌아서 허백호를 보면서 “좋소. 저 한 헥타르 농사를 망칠 셈 치고 허백호 서기의 호언장담이 맞는가 보기요.”라고 했다.
뒤이어 이계삼 부서기는 돌아서더니 사원들을 향해 높이 외쳤다.
“지금 반 우파투쟁이 고조에 이르렀습니다. 허나 죄 없는 병완 서기와 허영주 사장에게 우파 모자를 씌운 것은 착오입니다. 함흥대대와 진수해공사의 사원들을 동원해 배불리 먹고 잘 살게 하겠다고 황무지를 개간했는데 무슨 죄가 있단 말입니까? 우리 당원들이 혁명을 왜서 합니까? 바로 우리 사원들이 잘 사는 그 날을 위해 사회주의와 공산주의를 위해 분투하는 것이 아닙니까? 때문에 나는 현 당위 반 우파투쟁 사무실을 대표해 병완 동지와 허영주 동지에게 우파모자를 씌운 것은 잘 못됐다는 것을 선포합니다. 또한 당의 조직건설원칙도 없이 아무나 입당시킬 수 없습니다. 흥수 동무의 화선입당은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을 선포합니다!”
흥수는 김이 빠진 공처럼 밭머리에 풀썩 물앉았다.
사원들은 우쭐거리던 흥수가 소낙비를 맞은 병아리 상이 된 흥수를 보고 입을 가리며 키득거렸다.
춘실은 어이없어 나그네와 허백호를 번갈아 보며 바른 총질했다.
“허 서기 말도 쓸데 없습니깐. 하루 아침에 화전(화선)입당 했다가 한 시간도 안 돼 당원에서 떨어집니까?”
허백호는 창피해 머리를 들지 못했다.
“에구, 나그네도. 내가 뭐랍데? 정치에 삐치지 말라는데도. 꼴 보기 좋게 됐구먼.”
흥수는 마른 흙덩이를 쥐어 춘실에게 뿌리면서 벌떡 일어났다.
춘실은 목을 움츠려 뜨리며 주먹을 쥐고 쫓아오는 흥수를 피해 밭고랑을 타고 달아났다.
흥수는 숱한 사람들 앞인지라 창피해 여편네를 쫓다가 말고 이계삼에게 따지고 들었다.
“조직원칙이란 게 뭐 길래? 이제 금방 입당한 나를 당에서 쫓아내는기우?”
이계삼은 답답한 표정을 지었다.
“한 사람의 입당은 결코 어느 책임자 개인이 결정하는 것이 아니요. 반드시 본인이 입당 신청서를 제기한 후 기층당지부에서 당원들이 민주토론해 비준한 후 상급 당위에서 비준해야 하오.”
흥수는 우둔한 소리를 했다.
“그래 허백호 서기는 상급 당위 서기 아닙니까? 허 서기 비준했으면 됐지. 무슨 잔소리 그리 많습니까?”
이계삼 부서기는 손으로 입을 싸쥐고 울컥 치미는 웃음을 겨우 막았다.
“허백호는 개인이지 진수해 당위를 대신할 수 없소. 함흥촌당지부에서 당원들이 토론도 하지 않았소. 황차 동문 입당신청서를 쓴적이나 있소?”
여기저기서 웅성거렸다.
“저런 걸 어떻게 입당시키오?"
"간에 가 붙고 슬 개에 붙는 자식. 흥!”
상순도 끼어들었다.
“소불알처럼 이 볼 쳤다 저 볼 쳤다 하는 놈 새끼!”
흥수는 상순의 독기 서린 상순의 세귀눈길을 피해 꼬리를 사리더니 휑하니 산 아래로 내려가 버렸다. 정말 낙태한 상 싶은 피투성이 꼴은 보기도 구차했다.
이계삼 부서기는 사원들을 보고 “회의가 끝났으니 이젠 일하러 가고 당원들만 남으십시오.”라고 했다.
이윽고 맨 당원들만 남자 이계삼 부서기는 허백호를 한 식경이나 비평했다.
“허 서기는 조직 관념이 있소? 없소? 어떻게 우파 모자를 함부로 마구 들씌우고 투쟁까지 하오? 어떻게 개인의 명의로 흥수를 입당시킬 수 있소? 동무는 정신이 있소? 동무의 그 무슨 심갱밀식농사법대로 해서 농사를 제대로 할 수 있소? 동무의 심갱밀식농사법 대로 하지 않으면 당을 반대하고 사회주의를 반대한 거요?”
이계삼은 어깨를 축 늘어뜨리고 산골 안으로 내려가는 흥수의 잔등을 가리키면서 삿대질을 했다.
“어떻게 지부에서 토론한 적도 없는 흥수를 개인의 명의로 입당시킨다고 선포하오? 정말 한심하오! 허백호 서기는 당장 현 당위에 검사 서를 써서 바치오. 재차 이런 엄중한 착오를 범한다면 당의 기율로 호되게 징벌하겠소.”
뒤이어 이계삼 부서기는 병완과 허영주를 위문했다.
“얼마나 억울했겠소.”
“괜찮습니다. 그래야 우리 당내 두 갈래 노선 투쟁이 얼마나 치열한가를 알 수 있지.”
허영주 사장은 개의치 않았다.
병완은 고개를 숙이는 허백호를 험하게 쏘아 볼뿐이었다.
맑게 개였던 하늘에 불시에 먹장구름이 뒤덮여왔다. 저 멀리 칼산과 패용천산에 불줄기가 쭉 뻗치더니 하늘땅을 진감하는 우레 소리가 터졌다. 감 때 사나운 폭풍이 불어오며 밤알만큼 한 우박이 마구 쏟아져 옥수수 이파리를 마구 두드려댔다.
사원들은 호미를 쥐고 마을로 달려 내려가면서 올해 농사를 망쳤다고 하늘을 원망했다.
                                      
                                                6. 집체식당

       하늘도 무심하지. 억수로 쏟아지는 우박이 심갱밀식을 하지 않은 밭의 옥수수를 덮쳐 이파리가 펑펑 구멍이 뚫리며 다 떨어졌다. 딱 마치 벌레가 갉아 먹고 남은 옥수수 대처럼 앙상해 볼 품 없이 돼버렸다.
       사원들은 하늘을 원망하고 허백호를 원망하면서 한숨을 땅이 꺼지게들 쉬었다.
     설상가상 좌적 바람이 세차게 불어쳐 우로부터 마을마다 생산대를 단위로 집체식당을 차리고 집체 화식을 하라는 지시가 내려왔다. 모두들 또 허백호 서기가 마을 사람들을 못살게 군다고 야단쳤다.
     허백호 서기는 회의를 연다, 집집마다 돌아다니면서 선전고동했다.
     "집집마다 따로 가마를 걸고 밥을 지어 먹으면 사심이 생기오.  그 사심이 자본주의 싹을 틔우게 되오.  때문에 집체식당을 차리고 큰 대국가마를 걸고 죽을 끓여 똑같이 나눠 먹어야 하오."
    함흥대대와 조개덕대대에서는 별 수 없어 허백호의 지시대로 마을에 집체식당을 차리고 큰 대국가마를 걸었다. 사원들은 집체식당에 모여들어 천정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멀건 죽을 한 사발씩 얻어먹고 주린 배를 달랬다.
   성근은 이발 빠진 사발을 들고 명옥이 떠주는 죽을 한 사발 받아가지고 가면서 두덜거렸다.
    “에구, 요걸 먹고 어떻게 온 하루 기음 매오?”
    그러자 저쪽에서 멀건 입쌀 죽을 후룩후룩 마시던 허 서기가 힐끔 성근을 흘겨보더니 당장 반박해버렸다.
“쓸데없는 소릴 작작 하오. 해방 전에는 그런 죽물도 없어 못 먹었소. 푸성귀로 주린 배를 달래던 세월에도 황무지를 개간했소. 당의 덕분에 흉년세월에도 죽물이라도 먹으면 감사한 줄 아오.”
허나 성근은 도리머리 질을 해댔다.
“내 소련 원동에서 살아 봐서 아오. 쓰딸린이 영도하던 소련에서는 이렇게 집체식당을 차리기까지는 하지 않았소. 허 서기는 정말 괴상한 생각을 많이 내놓는 사람이오.”
허백호는 성근을 쏘아보며 위협했다.
“말을 조심하오!”
그러나 성근은 삐죽한 턱을 흔들며 계속 두덜거렸다.
“소련의 소들도 굶어 죽을 까봐 꼴호즈라는 집체 농장으로 가기 싫어하데. 황차 사람을 소들처럼 우사 같은 집체식당에 몰아넣고 멀건 물을 먹으라고 하니. 원, 어떻게 살겠소? 사람마다 배때 크기가 다르고 식미도 다른데 말이오. 맨날 멀건 죽물만 나눠먹고 어떻게 산단 말이오? 이제 내 말이 맞지 않은가 두고 보오. 집체식당을 마스고 이전처럼 집집마다 자기 가마에 끓여먹지 않는가? 쯧쯧쯧.”
사원들은 머리를 끄덕이더니 죽물을 후룩후룩 마시면서 허백호 서기의 눈치를 살폈다.
허백호는 버럭 고함 질렀다.
“성근이! 어째 우파 모자를 쓰고 싶소?!”
그제야 성근은 혀를 홀랑 내밀더니 목을 움츠리며 흘끔거리며 죽 사발을 들고 한쪽 구석에 쫑그리고 앉아 후룩후룩 마셨다.
그는 홀쭉한 두 볼이 볼록하게 죽물을 물었다가 꿀꺽 삼키더니 또 입을 놀렸다.
      “에구, 야야, 이런 멀건 물을 먹고 어떻게 둼을 져 산꼭대기까지 나르겠니?”
그는 사발을 들고 부뚜막 앞에 가서 명옥이 앞에 사발을 내밀며 비난사정을 했다.
“한 사발 더 주오. 어디 허기 나서 살겠소?”
그러자 창욱이랑 병수랑 죽을 퍼 마시던 숟가락을 멈추고 모두 명옥을 쳐다보았다. 명옥도 어떻게 했으면 좋을지 몰라 애들에게 죽을 퍼주던 바가지를 들고 상순과 허백호를 쳐다보았다.
허백호는 성근을 쏘아보며 또 호통쳤다.
“성근이, 정말 경을 칠 예산인가? 집체식당에서 주는 대로 먹을 게지. 뭐 특수해서 게걸스레 더 먹겠다고 떠드오?”
성근은 이발 빠진 사발을 구들에 달랑 내려놓으면서 두덜거렸다.
“에구, 말밑천도 못 찾겠다. 배고파도 더 먹지 말고 입을 틀어막고 있으라오?”
창욱이랑 병수랑 성근을 흘금 곁눈질해 보며 맥없이 숟가락질을 했다.
허백호는 허기진 배를 글어 안고 후루룩후루룩 죽을 마시는 남녀노소를 향해 소리쳤다.
“여러분, 우린 일제 놈들의 철발굽 아래서 살 때 언제 이런 입쌀죽을 다 먹어 보았겠습니까? 우린 절대 해방 전의 쓰라림을 잊지 말고 오늘 공산당의 영도아래 죽이라도 먹을 수 있는 행복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허백호 서기는 피뜩 기발한 생각이 떠올라 상순을 보고 바깥에 나가자고 했다.
“내게 좋은 사상교양방법이 하나 생각나오.”
허백호는 큰 발견이나 한 듯이 상순을 돌아보며 팔을 잡아끌고 바깥으로 나갔다.
“내게 사원들의 사상교양을 할 묘안이 있소.”
“?”
“저녁에 보드라운 게가루로 떡과 죽을 만드오.”
상순은 세 귀 눈을 치떴다.
바깥에는 숱한 사원들이 허기진 배를 끌어안고 죽물을 얻어먹으려고 모여오고 있었다.
“동무는 왜 그렇게 정치 민감성이 없소?”
상순은 화났다.
“그래 사원들에게 겨죽을 먹이면서 오늘이 행복하다고 교양할 예산이오?”
쓴 표정을 짓는 상순을 보고서도 허백호는 계속 했다.
“용케 알아들었구먼. 동무는 총명하고 촉기 빠른데 욱 하면 성질을 내는게 흠이오. 왜 자꾸 내 말에 의문표를 달면서 그대로 착착 하지 않소? 그래 동무보다 내 뭐나 모르는 거 같소?”
상순은 머리를 숙이며 손사래를 쳤다.
“아닙니다. 절대 아닙니다.”
“그럼 뭐요? 진수해파출소 소장을 시키지 않았다고 그러오?”
“아닙니다.”
“그럼 뭐요?"
허백호는 눈썹을 치켜 올리며 상순을 뚫어지게 쏘아보았다.
상순은 정색했다. 그는 나이나 경력이나 비슷한 허백호한테 항상 존대를 썼다.
“제가 파출소 소장을 하고 싶어 하는 거 같습니까? 그럼 왜 영월구에서 국장마저 하지 않고 마을로 돌아왔겠습니까? 저는 다만 군중들을 이끌어 혁명하면서 부모에게 효성을 하려고 했을 뿐입니다. 군중들이 쌀독을 빡빡 긁고 부모에게도 제대로 효성을 하지 못해 마음이 아픕니다. 전 허 서기를 존중합니다. 자꾸 과거 못 살던 때와 비기자고 하니 납득이 잘 되지 않습니다. 생산을 틀어쥐어 알곡생산량을 올립시다. 그래야 백성들이 잘 살고 우리 사회주의 우월성을 만천하에 알릴 수 있습니다.”
“누가 틀어쥐지 않소? 나도 한 헥타르에 5만근을 올리라고 하잖소?”
허백호는 말머리를 돌리며 식당 안으로 들어갔다.
“좌우간 저녁에 겨떡과 겨죽을 쑤라고 하오. 과거를 회상해야 오늘의 행복을 알 수 있소. 군중들이란 양떼와도 같아 사상교양을 하면서 에우는대로 가기 마련이오.”
상순은 도리머리를 흔들면서 어깨 으쓱한 허 서기를 흘겨보았다.
저녁에 명옥은 아낙네들과 함께 허백호 서기의 말대로 제일 보드라운 벼 겨로 죽을 쑤었다.
밭에 나가 역사를 하고 돌아온 사원들은 저녁에 주린 배를 안고 삼삼오오 식당에 모여들었다.
허백호는 멀건 죽사발과 게 떡을 올린 밥상에 마주 앉은 사원들을 보고 연설을 시작했다.
“사원 여러분, 우리 빈농들은 해방 전에 일본 놈들의 철 발굽 밑에서 압박과 착취를 받으면서 겨떡도 변변히 먹지 못하면서 우마와도 못한 거지생활을 했습니다. 지금 많은 사원들은 해방 후 당과 정부의 영명한 영도아래 배불리 먹고 살아 왔기에 과거의 쓰라림을 잊어가고 있습니다. 우리는 절대 해방 전에 일제와 지주 놈들의 가혹한 착취와 압박 밑에서 허덕이던 고통과 계급투쟁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오늘 우리는 겨떡과 겨죽을 잡숫면서 과거의 쓰라림을 회상하면서 잊지 말고 오늘의 생활이 얼마나 행복하고 공산당이 얼마나 위대한 가를 알아야 합니다.”
여기까지 연설하고 나서 허 백호 서기는 죽 사발을 들었다.
“자, 여러분, 이제부터 과거의 쓰라린 맛을 봅시다.”
허백호와 상순이 먼저 겨죽사발을 들어 숟가락질을 했다. 목이 꺽꺽 막혀 겨죽이 목에 걸려 캑캑 거렸다. 허백호는 외까풀눈에 눈물이 글썽해지기까지 했다. 그것이 사상교육을 하기에는 안성맞춤 했다.
그는 손으로 눈물을 닦으면서 연설했다.
“여러분들도 눈물 나는 이 겨죽을 자셔 보십시오. 이건 당에서 준 정치임무입니다. 어서들 드시오!”
그는 사원들 속으로 돌아다니면서 겨죽을 먹는 것을 감독했다. 울며 겨자 먹기로 사원들은 물을 떠다 한 모금씩 마시면서 껄껄한 겨죽을 억지로 넘겼다.
성근은 겨죽그릇을 밥상에 내려놓았다.
“야, 이거 어디 먹겠소?”
그는 겨에 걸린 목을 만지더니 삐죽한 턱을 가로 흔들면서 두두 거렸다.
“내 소련에 있을 때 쓰딸린은 이렇게 한 적이 없소. 진짜 소련 꼴호즈 보다도 더 하오.”
“또 또, 쏘련 사회주의를 비방하겠소? 말 주의하라고. 박성근은 어째 빈농의 본색을 잊었는가?”
허백호가 성근을 흘겨보며 하는 말에 흥수가 호응했다.
“성근이, 이 맛있는 겨죽을 먹으라면 먹을 게지 무슨 잔말이 그렇게 많은고?”
“또, 또, 또 나선다. 에이유, 저 하루살이 당원동무 보기도 싫어서 어떻게 살겠소?”
성근은 쓴 오이 보듯 하면서 흥수를 손가락질했다.
“당신은 어째 아랫마을 윗마을 정치에 그리 삐치오? 그런다고 입당시킬 거 같아? 화선입당했다가 하루도 못돼 퇴당당하고서도 부끄럽지 않어?”
흥수가 입을 짝 벌린 채 멍해 서있었다.
그때 상순이 한마디 했다.
“오늘 겨 떡을 먹을 때 흥수가 ‘이 맛있는 겨죽을 먹으라면 먹을 게지’라고 말하지 않았소?”
“허백호 서기 먹으라는 죽을 그래 맛있게 먹지 않고 어쩔고?”
“오늘 겨죽이 맛있고서야 어찌 과거의 쓰라린 생활을 회상할 수 있소?”
“허허허.”
“호호호.”
상순의 말에 모두들 흥수를 우습다고 죽사발을 든 채 주린 배를 끌어안고 웃어댔다.
사원들은 억지로 물에 겨죽과 겨 떡을 삼켰다.
이때 흥수가 또 나섰다.
그는 주먹을 불끈 쥐고 구들 복판에 뛰어 나가더니 구호를 높이 외쳤다.
“쓰라린 과거를 잊지 말자!”
사원들은 죽을 먹다가 죽사발을 든 채 멍해 흥수를 쳐다보았다.
허백호가 일어나면서 구호를 따라 불렀다.
“쓰라린 과거를 잊지 말자!”
흥수는 흥이 나서 격앙된 목소리로 구호를 계속 불렀다.
“지주를 타도하자!”
상순이도 따라 불렀다.
“공산당 만세!”
사원들도 구호를 불렀다.
“빈농 만세!”
“빈농 만세!”
“허백호 서기 만세!”
“허백호…”
사원들은 구호를 부르려고 주먹을 쳐들다가 멈추었다. 모두들 허백호에게 눈길을 보냈다.
“그만, 그만! 내 만세를 불러선 안 되오. 모주석 만세를 부르오!”
허백호가 황급히 손사래를 치면서 막아 나섰다.
흥수는 또 목에 지렁이 같은 핏줄을 세우면서 구호를 불렀다.
“모주석 만세!”
“쓰딸린 만세!”
흥수는 지지벌겋게 상기된 얼굴에 내 돋은 땀을 훔치더니 허백호 서기의 옆에 바싹 다가앉으면서 물었다.
“허 서기는 우리 진수해의 모 주석과 같은 분인데 만세를 부르면 안 됩니까?”
상순은 아첨을 일삼는 흥수의 꼴이 보기도 싫어 픽 쓴웃음을 지었다.
숱한 사원들도 흥수가 조개덕에까지 내려 와서 삐치는 것이 눈에 거슬려 흘겨보았다.
그때 학수가 동생 흥수를 바깥으로 나가자고 했다.
이윽고 흥수는 두두 거리면서 식당에 들어와 벗어 놓았던 두루마기를 껴입더니 훌쩍 나가버리는 것이었다.
그날 식당에서 희극이 일어난 것은 아무 일도 아니었다.
사달은 이튿날 아침에 식당에서 일어났다.
박성근은 새하얀 입쌀 죽 그릇을 보더니 환한 웃음을 지었다.
“에구, 오늘 정말 행복하구나. 내 오늘 기적을 쌓았다니까.”
학수랑 창걸이랑 모두 성근을 쳐다보며 이구동성으로 “무슨 기적을 쌓았단 말이오?”라고 물었다.
성근은 흥이 도도해 긴 목을 빼들고 횡설수설 늘여 놓았다.
“글쎄 어제 저녁에 겨 떡을 먹으면서 과거의 쓰라린 우마와 같은 생활을 잊지 말고 오늘의 행복을 좋을씨고 하는 사상교육을 받았지 않았고 뭐요?”
허백호와 상순은 성근에게 눈길을 모았다.
성근은 뒷말을 이었다.
“내 사상교육을 어찌나 잘 받았던지 오늘 아침에 변소에 가서 똥을 싼 게 똥마저 새빨갛지 않겠소?”
“허허허.”
“호호호!”
숱한 사원들이 우스워 배를 글어 안고 웃었다.
성근은 더 흥이 나서 우쭐거리며 턱을 쳐들고 또 너덜거렸다.
“소련의 소마저 집체 우사간에 들어가려고 하지 않소. 우리 여기서는 사람을 소처럼 집체식당에 몰아넣다니 말이나 되오? 배고파 어떻게 살겠소? 사람마다 식성이 다르고 입맛이 다른데 똑같이 먹고 똑 같이 일하라고 하니. 그게 싫어서 소련 꼴호즈를 떠나 중국에 왔더니 여기서도 이러는구먼. 이럴 줄 알았더라면 소련에 있었을 거 그랬소. 소련 마우재(러시아 사람)들은 이다지 사람을 들볶진 않았소. 마우재들은 우리 중국 사람들보다 성질이 시원시원하고 통이 크단 말이오.”
상순은 “쯧쯧쯧.” 하고 성근에게 눈짓하며 허백호의 눈치를 살폈다.
허백호는 숟가락을 놓더니 “됐소. 잘 됐소.” 라고 하며 성근을 쏘아보았다.
상순은 제꺽 일이 상서롭지 못함을 직감했다.
허백호는 밥상에 죽사발까지 털컹 내려놓더니 구들에서 엉덩이를 뗐다.
“이 마을에서 우파분자 한 놈을 붙잡아냈소.”
허 백호는 흥수를 보고 소리쳤다.
“우파분자 박성근을 붙잡아 내오.”
“옛!”
사원들 속에서 뛰어나와 날치는 흥수를 보고 학수는 “또, 또, 또!” 라고 하면서 눈을 흘겼다.
허나 흥수는 사원들 속을 비집고 씽 달려 나가 성근의 멱살을 틀어쥐어 끌어냈다.
“이 우파분자야! 어디 인민정권의 독재 맛을 봐라!”
“우파라니?”
성근은 끌려나오면서 눈이 떼꾼해 “무슨 죄를 졌다고 이러오?” 하고 물었다.
허백호는 성근의 귀 쌈을 찰싹 갈겼다.
“금방 뭐라고 했는가? 뭐 ‘어제 사상교육을 어찌나 잘 받았는지 오늘 아침에 똥을 누니 똥마저 빨갛더라.’?! 이건 우리 당의 사상교육에 대한 모욕이 아니고 뭔가?!”
흥수는 손가락으로 성근의 배를 쿡쿡 찌르면서 을러멨다.
“탄백해! 이 배때기에 우리 위대한 중국 공산당에 대한 불만 꼴똑하지?”
흥수는 성근의 손에서 죽사발을 빼앗아 성근의 꼭뒤에 팍 엎어놓았다. 성근의 얼굴은 죽으로 얼룩져 쥐마당이 돼 버렸다.
여기저기에서 너무 한다고 흥수를 욕하는 소리가 들렸다.
성근은 한손으로 얼굴의 죽을 닦으면서 계속 중얼거렸다.
“똥을 눈 게 빨갛다 했는데 무슨 우파란 말이요? 씹할, 별 빨간 똥 우파 다 있다. 퉤!”
흥수는 개 잡은 포수처럼 우쭐해 고아댔다.
“이 빨간 똥 우파야, 탄백해! 허백호 서기가 뭐 하려고 하면 네 놈은 뒤에서 항상 헐뜯으면서 빈정거렸지! 그래도 우파 아냐?!”
허백호는 오른 손으로 주먹을 불끈 틀어쥐더니 구호를 불렀다.
“우파분자 박성근을 타도하자!”
“박성근을 타도하자!”
처음에는 모두 허백호를 따라 흥수만 구호를 불렀다. 그러자 허백호는 상순과 학수를 쏘아보았다.
상순은 납득되지 않아 주먹만 쳐들고 구호는 나지막이 입안소리로 불렀다. 학수도 상순을 본 따 구호를 부르네 했다.
“나를 따라 구호를 부르지 않는 자도 우파분자야!”
막대기를 세우자 그림자가 생기듯이 그 말은 즉시 효과를 보았다. 모두들 허백호를 따라 구호를 불렀다. 구호소리는 점점 높아졌다.
이 화영은 도리머리를 슬슬 흔들었다.
“원, 쓸데없는 소리를 해서 하루아침에 타도대상이 됐구먼!”
상순은 옆에서 화영의 허벅다리를 슬쩍 쳤다.
화영이 상순과 눈길을 맞추더니 눈을 내리깔며 입에 빗장을 지르고 묵묵히 앉아 있었다.
상순은 남몰래 가만히 조개덕 제일 앞에 있는 성근이네 집 변소로 가 보았다.
“이게 뭐냐?”
확실히 변소 밑바닥에는 뻘건 피똥이 무드기 쌓여 있지 않았겠는가!
그날 저녁 집체식당에서는 함흥소학교의 로우파 오옥선과 새 우파 성근을 투쟁했다. 허백호 서기와 흥수가 땀을 뻘뻘 흘리면서 투쟁하고 나니 밤중이 다 됐다.
사원들은 오옥선과 성근이 세치 혓바닥을 잘 못 놀려 우파로 몰리어 투쟁 받는 것을 본 후부터 입에 빗장을 지르고 혀를 건사하느라고 무등 신경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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