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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장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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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하소설 울고 웃는 고향(87)
2017년 10월 27일 10시 55분  조회:1098  추천:0  작성자: 김장혁



                3. “헥타르 당 5만근 내라!”

      겨우내 꽁꽁 얼었던 밭에 아직도 여기 저기 잔설이 널려 있었다. 아직도 찬바람이 기승을 부리며 대지를 싹쓸이하고 있었다.
“인민공사, 대약진 동풍을 빌어 헥타르 당 5만근씩 양곡을 내십시오.”
토성 안 생산대대 사무실에서 열린 사원대회에서 향 당위 허백호 서기가 밤중에 홍두깨 내밀듯 내리는  지시에 무두들 입을 딱 벌렸다.
병완은 머리를 홰홰 둘렀다.
“농사 지을줄 알고 말하오? 제 정신 있는 사람들 같지도 않소. 우리 대대 밭에서 한 헥타르에 5천근씩만 내도 대단하오. 5만근씩 내라는 건 정신 있는 소리 같잖소.”
상순도 동을 달았다.
“신문에 어디선가 한 헥타르에 10만근을 거둬들였다고 하지 않았고 뭣입둥?”
“뭐라니?”]
"아하, 상급에서 5만근 내라면 낼게지. 무슨 잔소립둥?"
병완은 주름살이 산골짜기처럼 패였다.
“어떻게 농사를 지으면 한 헥타르에 10만근을 낸다오?”
상순은 코웃음 쳤다.
“신문에서 사진 봤습니다. 사람이 벼 우에 올라앉았습디다. 곡식이 어찌나 잘 됐으면 사람이 벼 우에 올라앉아도 꺼지지 않겠습니까. 흥!”
회의가 끝난 뒤에도 병완은 허백호의 지시가 잘 납득되지 않아 도리머리를 절레절레 저었다.
“정말 귀신이 곡할 노릇이야. 허 서기는 자꾸 둼을 많이 내면 한 헥타르에 5만근을 거둘 수 있다고 하지만 둼 무지 꼭대기에 강냉이를 심어 보라지. 천근이나 내는가? 모두 정신이 있는 거 같지 않다.”
상순도 할아버지와 맞장구를 치면서 볼 부은 소리를 했다.
“글쎄 말입니다. 자본주의 싹이 자란다면서 황무지를 마음대로 일구지 못하게 하면서도 무당 수확고 지표는 정신이 나가게 올리니까. 아래서 어떻게 일하겠습니까?”
병완은 이마살을 찌푸리었다.
“상순아, 세상이 돌아가는 게 심상치 않다. 그저 당에서 하라는 대로 하면서 아무 말이나 하지 말라. 봐라, 팽덕회로부터 시작해 지금 전국적으로 숱한 우파분자들을 붙잡아 내 투쟁하지 않니? 잘 못 걸리면 정치몽둥이에 맞아 죽겠다.”
허나 상순은 대수로워 하지도 않았다.
“5만근을 내지 못할 게 빤한데 못할 건 못하겠다고 해야지.”
병완은 근심스러워 한숨만 땅이 꺼지게 내쉬었다.
“허백호 서기는 기어이 5만근을 내야 한다고 하더라. 좌우간 우에서 하라면 노력은 해보자.”
상순은 인차 “예, 해봅시다.”라고 대답하더니 엉덩이를 구들에서 떼었다.
상순이 조개덕으로 내려 간 뒤 병완은 함흥 촌의 여러 생산대 사원들을 동원해 이른 봄부터 언 둼을 꺼서 밭에 내갔다.
병완이 한창 사원들을 데리고 소 수레에 실어온 둼을 밭에 고루고루 펴놓을 때다.
저 멀리 허백호 서기와 허영주 사장이 자전거를 타고 소서구 어귀로 달려올라 오더니 자전거에서 내려 밀고 올라오는 것이었다.
병완이 황급히 마중해 내려갔다.
그때 허백호 서기는 헐레벌떡거리면서 가파른 밭에 올라가 사원들이 밭에 둼을 고루고루 펴놓는 것을 둘러보았다.
그는 병완을 못 마땅한 눈길로 되돌아보며 목에 지렁이 같은 피 줄을 세우고 을러멨다.
“아니, 김 영감! 밭에 둼을 저렇게 적게 펴서야 5만근은커녕 만근도 내지 못하겠소!”
병완은 너무 한심해 도리머리를 흔들더니 옆에 서 있는 허영주 사장을 돌아보았다.
허영주 사장은 미소를 지을 뿐이었다.
숱한 사원들 앞에서 허백호 서기는 손사래를 치면서 고함쳤다.
“함흥대대는 한 헥타르에 5만근을 낸 우리 공사 모범대대로 돼야 합니다!”
병완은 참다못해 한마디 했다.
“허 서기, 아무리 대약진 시대라고 해도 될 만한 지시를 해야 하오. 어떻게 이 싯누런 황무지 밭에서 5만근을 내오? 이 밭에서 한 헥타르에 5만근을 낼 수 있는 농사꾼이 있으면 내 앞에 데려 오오.”
허백호 서기는 성이 꼭뒤까지 치밀어 올랐다.
“김영감! 당신도 당원이오? 공사당위 서기가 5만근을 내라면 낼 거지 무슨 잔소리 그리 많소?”
허영주는 이상어른과 버릇없이 노는 허 서기가 눈꼴 사나와 한마디 했다.
“이보, 허 서기, 너무 지나치지 않소?”
허백호 서기는 홱 돌아서며 허영주 사장을 쏘아 보았다.
“또, 또, 또! 공사 사무실에서 그만 논쟁했으면 됐지. 숱한 사원들 앞에서 계속이오?”
허영주 사장은 굽어 들지 않았다.
“뭐든지 실제적이어야지. 이 묵밭에서 5만근을 못 낸다는 건 빤한데 왜 억지로 하라고 하오?”
“동무! 조직 관념이 있소?  숱한 사원들 앞에서 뭐요? 나를 까서 망신시킬 예산이오? 어째 우파 모자를 쓰고 한뉘 개고생을 해 보겠소?”
허영주와 병완은 서로 마주 보며 머리를 가로 흔들었다.
한참 납덩이같은 무거운 침묵이 흐른 후 병완은 천천히 무겁게 입을 열었다.
“허 서기, 이 밭에서 5만근을 낼 수 있는 구체방도를 가르쳐 주오.”
숱한 사원들은 모두 삽을 짚고 서서 허백호 서기의 입을 쳐다보았다.
허백호 서기는 물러 설 수 없어 사원들을 둘러보며 말했다.
“둼을 한자 두께로 낸 후 둼 우에 흙을 펴고 곡식을 심소.”
사원들은 모두 눈이 휘동그래졌다.
허백호 서기는 삽으로 밭을 팍팍 팠다.
한참 후 허백호 서기는 사원들을 돌아보며 말했다.
“정성이 지극하면 돌 우에도 꽃이 피는 법이오. 우리 공산당원들은 특수재료로 만든 강철 전사들입니다. 가열처절한 전쟁년대에 목숨 걸고 싸워 승리했습니다. 그런데 왜 한 헥타르에서 5만근을 내지 못하겠습니까?”
이때 학생들을 데리고 일하던 함흥소학교의 여 교원 오옥선이 비쭉거렸다.
“공산당원도 그거 해서 남자의 정자와 여자의 난자가 합해 만들어진 사람이겠지? 강철로 만들었겠소?”
“하하하!”
“호호호!”
사원들은 코를 싸쥐고 웃었다.
허백호 서기는 자기 말을 비꼬는 오옥선을 쏘아보며 꽥 소리쳤다.
“오 선생이 금방 뭐라 했소?”
그러자 모두들 혀를 홀랑 내밀더니 머리를 숙이었다.
허나 허백호 서기는 닭을 잡아 원숭이를 훈계하듯이 오옥선을 투쟁해 반 우파투쟁의 불길을 지펴 한 헥타르에 5만근을 내지 못한다는 사원들의 입을 틀어막으려고 했다.
쉼에 허백호 서기는 사원들을 불러 놓고 고함쳤다.
“오옥선 선생은 사원들 앞에 나와 머리를 숙이고 서오!”
오옥선 선생은 무슨 영문인지 모르고 사원들의 뒤로 슬금슬금 물러서면서 이상한 빛이 번뜩이는 허백호 서기의 외까풀 눈을 훔쳐보았다.
허백호 서기는 금방 오옥선이 공산당을 모욕한 사실을 대충 말하고 오옥선에게 우파분자 모자를 씌워 투쟁한다는 결정을 선포했다.
“반당 우파분자 오옥선은 공산당을 엄중하게 모욕 중상했습니다. 우린 이런 우파분자를 뛰여나오는 족족 잡아내서 견결히 투쟁해야 합니다.”
허백호 서기 명령에 따라 민병들은 오옥선 선생을 사원들 속에서 잡아 앞에 끌어냈다.
허백호 서기는 오옥선을 손가락질하면서 구호부터 불렀다.
“반 당 우파분자 오옥선을 타도하자!”
그러나 사원들은 서로 눈치를 보면서 구호를 부르지 않았다.
허백호 서기는 붉으락푸르락 해서 이른바 오옥선의 우파분자 죄행을 공포했다.
“금방 오옥선은 우리 위대한 중국 공산당을 상욕으로 욕했습니다.”
그때 오옥선은 머리에 쓴 빨간 수건을 풀어 허벅다리에 묻은 먼지를 툭툭 털면서 물었다.
“그래 사실이 아닙니까? 공산당원도 그걸 해서 남자의 정자와 여자의 난자가 합해져 만들어지지 않았습니까? 아무리 특수재료로 만들어졌다 해도 납이나 강철로 만들어 졌겠습니까?”
또 폭소가 쏟아졌다.
허백호 서기는 오옥선의 콧대를 삿대질하면서 고래고래 고함쳤다.
“보십시오. 이 악질 반당 우파분자가 얼마나 더러운 상욕으로 공산당을 모욕했는가!”
허백호 서기는 목청을 돋우어 구호를 불렀다.
“반당 우파분자 오옥선을 타도하자!”
그러자 숱한 사원들 속에서 따라 부르는 구호소리가 소서구 골짜기에 울려 퍼졌다.
“반당 우파분자 오옥선을 타도하자!”
오옥선은 그날 오후부터 날마다 쉼이면 우파분자란 고깔모자를 쓰고 투쟁받고 노동개조를 했다.
그 후부터 누가 감히 공사 당위 서기 허백호의 말에 왈가불가 하겠는가!
오옥선 우파분자 사건이 발생한 뒤 허백호 서기가 함흥대대에 점을 잡고 병완이네 집에 들었다.
그가 직접 소서구 황무지 밭에서 한 헥타르에 5만근을 수확하는 농사혁명을 지휘했다.
그러나 조개덕의 상순만은 아직도 한 헥타르에 5만근을 낸다는 것을 납득돼 하지 않았다.
그는 먼저 토성 밖에서 조용히 할아버지를 만났다.
“어떻게 마른 짚과 둼을 한자 두께로 편 후 곡식을 심습니까? 생짚과 생풀이 썩으면서 피여오르는 증기에 곡식이 살아나 남겠습니까? 아까운 땅만 버리겠습니다.”
허나 병완은 주위를 둘러보면서 “쉭-” 하고 입에 식지까지 댔다.
“허 서기 앞에서 아무 말이나 하지 말라! 자칫하면 너도 오옥선처럼 우파 모자를 쓰겠다.”
할아버지가 말리는 것도 상순은 머리를 숙이지 않았다.
“사람이 빚을 지고 살아도 어찌 시비에 지고 살겠습니까?”
“얘야, 내 말대로 말 좀 주의해라! 지금 한마디만 잘못 했다간 ‘반당 우파모자’를 쓰고 한뉘 고생하겠다.”
상순은 대대 사무실에 있는 허백호 서기를 찾아갔다.
“오, 김 서기 왔구먼. 앉소.”
상순이 자리에 앉자 허 서기는 온 몸에 힘이 넘쳐나는 젊은 김 서기를 보면서 물었다.
“그래, 조개덕대대에서는 헥타르 당 5만근을 낼만 하오?”
상순이 입을 열려고 하는데 옆에 앉은 병완이 허벅다리를 툭 쳤다.
허나 상순은 마른기침을 하더니 기어이 입을 열었다.
“허 서기, 한 헥타르에 5만근을 내기 어려울 거 같습니다.”
“건 왜?”
허백호 서기는 호랑이 눈썹을 치켜 올렸다.
상순은 구김 없이 말했다.
“밭을 한자 깊이로 파고 마른 볏짚과 풀을 깔고 둼을 펴면 볏짚과 풀이 썩으면서 피어오르는 증기에 곡식이 살지 못합니다. 또 맨 둼을 한자 두께나 펴면 곡식이 자라지도 못합니다. 우리 한번 맨 쇠똥무지에 강냉이를 심어 봅시다. 잘 자라는가?”
그러자 허백호 서기는 단통 구들을 탕 치면서 버럭 고함쳤다.
“동무! 동무는 우리 공사 팽덕회요? 뭐요? 팽덕회가 전문 모주석이 뭘 하려고 하면 반대만 해서 타도된 걸 모르오? 당 조직에서 어떻게 하라면 할 게지. 무슨 잔소리 그리 많소?”
상순이 뭐라고 말하려는데 병완이 말을 빼앗아 했다.
“허 서기 말이 옳습니다. 우린 상급 당위에서 지시하는 대로 일단 해보는 게 옳습니다.”
그제야 허백호 서기는 어깨가 으쓱해 엉덩이를 움찔하더니 바로 앉았다.
“해 보지도 않고 된다, 안 된다는 건 진짜 나쁘오. 상순 동무는 할아버지한테서 많이 배워야 하오. 이전에도 말했지만 동무는 소처럼 올리 뜨는 괴벽한 성질이 흠이요. 세상에서 살자면 강하기만 해선 안 되오. 어떤 때에는 낮은 문턱에 머리를 숙일 줄도 알아야 하오.”
병완도 머리를 끄덕이면서 상순에게 충고했다.
“얘야, 허 서기 충고를 잘 들어라.”
허백호 서기는 도리어 도리머리를 흔들었다.
“반 우파 투쟁 때 상급에서 하라는 대로 해선 낭패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상순은 참지 못하고 또 한마디 했다.
“이제 5만근을 내자다가 농사를 망쳐 먹으면 그때 허 서기 책임지겠습니까? 되지도 않을 일을 왜 고집합니까?”
허백호 서기는 김빠진 공처럼 뒤로 물앉더니 나직이 말했다.
“나도 별 수 없소. 한 헥타르에 5만근이든 10만근이든 위에서 내라면 내야 하오. 좌우간 먼저 해보기요.”
그제야 병완과 상순은 허백호 서기도 난처한 처지라는 것을 알고 묵묵히 앉아 애꿎은 담배만 풀썩풀썩 태웠다.
풍작을 거두려면 초봄에 밭의 누기가 좋아야 했다. 허나 무정한 하늘에서는 풍작을 약속하는 보슬비 한 방울도 내리지 않았다.
(야, 한시간만이라도 비를 내려보냈으면, 하늘도 무심하지.)
사원들은 하늘을 쳐다보면서 통탄했다.
                                            
                                4. 우파분자



       가뭄이 든 황무지 밭에서는 마른 흙가루가 봄바람에 마구 흩날리었다. 말라 갈라터진 밭고랑에서는 화기가 홧홧 달아올랐다. 
      허 서기는 가물다고 사원들을 동원해 소서구 밭에 물을 길어다 치게 했다. 한 보름 역사질 했을 때다. 둼을 한자 두께로 깐 밭에서 김이 문문 났다.
병완은 도리머리를 흔들었다.
“올해 농사는 끝장났구먼. 구덩이에 파묻은 마른 볏짚과 풀이 썩으면서 김이 올라오고 있는 거요.”
허나 농사는 지을 줄도 모르는 허 서기는 자기 좋은 소리를 했다.
“이제야 제대로 둼이 되느라고 김이 나는구먼. 허허허.”
병완은 더부룩한 흰 구레나룻을 흩날리며 가까이에 가서 보더니 무릎을 탁 치더니 밭머리에 풀썩 물앉았다.
허 서기는 순 지도자의 자존심으로 나왔다.
“난 신흥무군관학교 우수졸업생이오. 총알과 대포 탄알이 어데서 날아오는 것도 다 아는데 그까짓 농사를 모를 거 같소. 아무 근심도 하지 마오. 가을에 이 밭에서 5만근을 거둘 낫이나 잘 갈아놓소.”
병완은 상급이고 뭐고 더는 참을 수 없어 허 서기가 보는데서 흙을 손으로 허비어 뜬 김에 썩어 버린 강냉이 알을 파내 쳐들었다.
“이걸 보오. 강냉이 씨가 다 썩어버렸는데도 근심하지 말라고! 허서기, 농사를 개뿔도 모르면서 눈 먼 지휘를 작작 하오!”
“이 영감이, 이게, 늙긴 늙었구먼. 로망이구만, 어째 당 지부 서기를 하지 못하자고 올리뜨오?”
병완은 대수로워 하지도 않았다.
“못하면 못했지. 당신 정신 나간 지휘대로 올해 농사를 망쳐 먹을 순 없소. 올해 함흥대대 천여명 사원들이 뭘 먹고 살겠소?”
그때 상순이 왔다가 허백호 서기 앞에 한발 나섰다.
“할아버지 말씀이 맞습구마. 농사는 농사꾼이 더 잘 알지. 허 서기 더 잘 알겠소? 허 서기는 전쟁을 하라면 우리 할아버지보다 더 잘 할지는 몰라도 농사는 우리 할아버지 말씀을 듣소.”
허영주 사장은 상순에게 더 말하지 말라고 눈짓했다.
그러나 상순은 머리를 숙이지 않고 맞섰다.
“몇 해 전까지만 해도 우리 함흥 촌에서 범바위산에 가서 강냉이와 감자를 심어 빈농들이 쌀 고생을 하지 않고 살았습니다. 그런데 황무지도 마음대로 개간하지 못하게 하던게. 또 이런 망년된 농사법을 지시하니 올해 우리 빈농들이 뭘 먹고 산단 말입니까?”
참다못해 허영주도 옆에서 한마디 끼어들었다.
“허 서기, 이분들 충고를 듣소. 온 함흥대대에서 뭘 먹고 살겠소? 지금 집집마다 쌀독을 빡빡 긁는 소리를 듣지 못했소? 숱한 사람들이 먹을 거 없어 밤이면 산에 가서 비술나무껍질을 가만히 발라다가 구워 먹는다오. 당신 모르오? 이러고서야 어찌 사회주의 우월성을 과시할 수 있겠소?”
갑자기 허 백호 서기가 고함을 버럭 질렀다.
“좋소! 우리 공사에 우파를 잡아 내지 못해 그러는데 잘 됐소. 금방 허 사장이 말한 말은 우파로 되고도 남음이 있소. 허영주는 우파요. 내일부터 우파 모자를 쓰고 투쟁을 받아 보오.”
허나 허영주의 얼굴에서 겁기를 털끝만치도 찾아 볼 수 없었다.
“난 총탄이 빗발치던 항일전쟁터에서 싸워온 조선의용군 군관이오. 내 우파 모자를 쓸지언정 온 진수해공사 한해 농사를 망칠 순 없소. 한자 깊이로 땅을 파고 짚과 둼을 파묻어선 낟알을 제대로 거두지 못하오.”
허백호 서기는 붉으락푸르락 해서 목에 지렁이 같은 핏줄을 세우며 온 산골짜기가 다 떠나가게 고래고래 고함쳤다.
“당신 정말 계속 인민공사와 대약진을 반대하면 우파 모자를 씌워 총살해 버릴 수도 있어!”
그래도 허영주 사장은 기가 꺾이지 않았다.
“내 목이 날아나도 전 공사 인민들의 목숨과 같은 한해 농사를 망칠 수 없소. 보오. 숱한 사원들이 지금 죽물마저 먹지 못하고 보릿고개도 넘기기 힘든 형편이오. 그런데 어찌 이런 무지막지한 농사법으로 한해 농사를 망치자고 든단 말이오?!”
그 말에 모여 왔던 사원들은 웅성거리며 머리를 끄덕였다. 지어 어떤 사원들은 허영주 사장의 말이 옳다고 떠들어댔다.
허백호 서기는 뒤로 물러 설 수 없었다. 그는 허영주에게 마구 악담을 퍼부었다.
“당신은 지금 무슨 죄를 짓고 있는지 알기나 하는가? 당이 영도하는 사회주의 우월성을 무시했지? 사회주의 사회에서 보릿고개를 넘기 어렵다고? 죽물도 변변히 먹지 못한다고? 풀과 나무껍질로 연명한다고? 이는 사회주의에 대한 모욕이야!”
뒤이어 그는 사원들을 돌아보면서 을러멨다.
“여러분, 모두 들었지? 금방 이 놈이 뭐라고 반당 반사회주의 언론을 퍼뜨렸는지. 이 놈은 반당, 반사회주의 우파분자입니다.”
허나 허영주는 머리를 숙이지 않고 맞서 싸웠다.
“허백호 서기! 개도 먹지 않는 자존심을 버리오! 이 밭 심갱밀식을 해서야 되오? 아무리 둼을 한 미터 깔고 빽빽이 밀식한들 될 거 같소? 한 헥타르에 어떻게 5만근을 낼 수 있는가?! 천근이 어떻겠소?”
허백호는 높은 둔덕에 올라서서 고함쳤다.
“누구든지 심갱밀식을 반대하면 그는 반당, 반사회주의 우파분자 모자를 쓰고 투쟁 받을 것입니다.”
뒤이어 그는 병완을 보고 명령했다.
“김 서기, 반당 반사회주의 우파분자 허영주를 끌어내시오!”
허나 병완은 팔쩡을 끼고 들은 척도 하지 않고 하늘을 쳐다보면서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이윽고 병완은 허영주 사장의 앞에 다가가 그의 왼손을 쥐어 높이 쳐들었다.
“허영주 사장의 말이 옳습니다. 이렇게 심갱밀식해선 낟알 한 알도 거두지 못합니다. 원래대로 둼이나 많이 내고 흙에 곡식을 심읍시다. 농사는 그래도 우리 농사꾼들이 더 잘 압니다. 삐뚠 정치 밖에 모르는 사람들의 정신 나간 말을 듣지 맙시다!”
뜻밖의 말에 허영주나 허백호나 모두 경악했다.
여기저기서 웅성거렸다.
 “김 서기 말이 옳소.”
“쯧쯧, 저 영감이 오망을 하지 않소?”
"투쟁맞지 못해 저러오?"
허백호는 병완을 손가락질하면서 위협공갈했다.
“어째 영감도 우파 모자를 쓰고 투쟁 받고 싶소?”
허나 병완은 대수로워 하지 않았다.
“난 당과 사회주의를 반대한 적도 없소. 올해 농사를 망쳐 우리 대대 사원들을 굶게 하는 허 서기야 말로 진짜 우파요!”
병완은 허백호 서기 턱밑에 삿대질 하면서 우렁찬 목소리로 고함쳤다.
“당신이 어찌 위대하고 정확하고 영광스러운 중국 공산당을 대표할 수 있소? 당신 말이 어찌 우리 당을 대표하는 지시라고 할 수 있소?!”
사원들이 마구 구호를 불러댔다.
“우파분자 허백호를 타도하자!”
지어 삼합에서 갓 이사해온 종연이랑 어떤 청년들은 허백호를 마구 붙잡아 때리려고 들었다.
“아까운 밭농사를 이렇게 망쳐놔 우린 어떻게 살아!”
“가물에 둼무지 우에 강냉이를 심어 뭘 거둬들이겠는가!”
허백호는 꼬리 빳빳해 산골짜기 아래로 도망쳐 내려갔다.
“이 놈들, 어디 두고 보자, 가만 놔두는가!?”
병완은 허영주와 토론하고 둬짐 되는 밭을 딱 절반씩 나눠 실험하기로 했다.
절반에는 허백호 서기 지시대로 한자 두께로 둼을 편 위에 강냉이 씨를 반 뼘씩 간격을 두고 빽빽이 밀식하기로 했다. 나머지 절반에는 둼을 얼마간 섞어 펴놓은 흙에 강냉이 씨를 한 뼘 간격을 두고 심기로 했다.
병완은 빙 둘러선 사원들을 둘러보면서 가슴을 쭉 펴고 목청을 돋우어 말했다.
“이 밭에서 두 짐을 딱 절반씩 나눠 두 가지 농사법으로 강냉이를 심어 실험해 봅시다! 실천은 진리를 검증할 것입니다.”
허영주도 앞에 나서 말했다.
“지금 소련 수정주의자들이 우리 나라에서 3년 재해를 입은 기회에 우리 나라에 보냈던 소련 기술자들을 철수해가고 이전에 지원한 걸 빚으로 받아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린 아주 어려운 형편에 처하게 됐소. 그런데 한해 농사를 망쳐서야 됩니까?”
“안 됩니다!”
사원들은 허백호 서기를 욕하며 벌건 저녁노을을 밟으면서 마을로 내려갔다. 벌건 낙조는 김이 문문 나는 밭과 사원들을 다 데워 죽일 듯 무시무시하게 빨갛게 타올랐다.
하늘도 무심하지 가물에 단비를 내려 보내지 않고 불비만 퍼부었다.
가물을 이기려고 사원들은 소 수레로 물독을 실어 강냉이 밭에 퍼 쳤다.
그런데 무더위에 물독을 싣고 다니던 비녀뿔이랑 숱한 소들이 더위를 먹고 척척 쓰러졌다. 소들은 들누워 일어나지 못하고 퉁방울 눈알들이 뒤집혔다.
“이걸 어쩌는가?”
사원들이 한창 쓰러진 소잔등 위에 나뭇가지를 꺾어 덮어줄 때었다.
“저 놈들을 체포해라!”
허백호 서기가 허영호 소장과 함께 숱한 민경들을 데리고 덮쳐들었다.
민경들은 허 서기의 지시대로 허영주와 병완을 체포했다.
병완은 민경들의 손에서 팔을 빼며 야단쳤다.
“무슨 죄 있다고 이래?”
“아직도 몰라?”
허백호 서기가 어깨가 으쓱해 우쭐거리면서 외까풀 눈을 부릅뜨고 고래고래 고함쳤다.
“우리 공사 당위에서는 네놈 둘을 우파분자로 결정 내리고 날마다 투쟁하기로 했다!”
“우파라니? 정말 한심한 세상이구먼!”
“뭐라고?”
허영호가 병완을 흘겨보며 욕했다.
“손을 떼라!”
언제 왔던지 상순이 밭머리에 나타났다.
“길러준 개 발뒤축을 문다더니.”
상순의 앞에서 허영호 소장은 머리를 숙이면서 뒤로 물러섰다.
“김 국장, 공사 당위 지시인지라 그만, 양해하십시오.”
허백호 서기는 영호에게 외까풀 눈을 흘기더니 상순의 멱살을 틀어쥐고 을러멨다.
“이 놈아, 네 놈도 어째 우파 모자를 쓰고 싶은 거야?! 썩 꺼지지 못해?!”
허나 상순은 가슴으로 허백호를 떠밀며 물러서지 않았다.
성이 꼭뒤까지 치민 허백호는 허영호 소장을 돌아보며 고래고래 호통을 쳤다.
“뭘 하니?! 이 놈들을 몽땅 체포해라! 내 진수해에 오자마자 함흥 촌의 김씨 3대부터 눈에 거슬리더라! 너네 김씨 3대가 없으면 함흥대대를 영도할 사람이 없을 거 같은가?”
어떨 꿍 하는 욕심이 사람을 죽인다고 흥수가 삽을 짚고 서 있다가 썩 나섰다.
“허 서기, 저 병완 영감이랑 상순이랑 대대로 우리 함흥대대를 쥐락펴락 해습니다. 우리 사원들도 저 김씨 조손3대를 모두 눈꼴 사나와 합니다.”
“좋소. 이런 동무들이 전도 있단 말이오. 동무는 이름이 뭐요?”
“이흥수라고 부릅니다. 전 항미원조 때 소대장을 한 적이 있습니다.”
그때 병수가 코웃음쳤다.
"흥! 겨우 반장이나 한 주지에 자기절로 한급 올려 붙여 소대장이라고 말하는구만."
        그러자 흥수는 우먹눈을 부릅뜨고 병수를 쏘아보며 목에 지렁이 같은 핏줄을 세우고 고래고래 고함쳤다.
"병수야, 넌 반장이랄도 해봤어? 난 항미원조전쟁에서 팔을 부상당한 영예군인이란 말인기여."
태수가 저쪽에서 삽을 짚고 서서 빈정거렸다.
"참, 대단하오. 압록강을 건너면서 비행기구경 하다가 적기 소사 받지 않았고."
병수도 맞장구를 쳤다.
"육박전을 할 때 상순을 찌른 적이 없지. 뭐."
"허허허."
허백호는 병수와 태수한테 손사래를 치더니 흥수한테 몸을 돌렸다.
"그래? 흥수동문 전도 있소."
허백호는 바다에서 지푸라기라도 잡은듯이 흥수 손을 잡았다.
“동무는 당원이오?”
“아닌기오.”
“이런 동무들을 진작 입당시키지 않고. 당지부 서기 뭘 했는가? 쯧쯧쯧. 근심하지 마오.”
허백호의 말에 흥수는 합박만한 입이 귀밑까지 째졌다.
“저 사람들, 내캉 남대치라고 입당시키지 않았시우. 허서기, 무슨 일 있으면 내게 시키라우.”
흥수는 미소를 짓는 허백호 서기 얼굴을 보자 가슴을 내밀고 마구 물어먹었다.
“저 병완 영감과 상순은 저네 자리를 빼앗길까봐 나를 입당시키지 않았시우. 저 김씨네 조손 3대가 세습하면서 우리 마을을 영영 쥐락펴락하자는 게 아니고 뭡니까? 저런 지껌은.”
허백호 서기는 머리를 끄덕였다.
“확실히 함흥대대에 문제 있소.”
“나를 빨리 입당시켜 지부 서기로 제발시키라우. 내 꼭 허 서기 말대로 한 헥타르에 5만근을 내겠는지라우.”
그러자 사원들은 모두 흥수를 아니꼬운 눈길로 쏘아보았다.
저 쪽에서 지주 장학산은 공산당 간부들끼리 싸우는 것을 보고 깨고소해 했다.
(옳다, 잘 싸운다! 네 놈들 끼리 서로 싸우다나면 우린 투쟁을 덜 받겠구나.)
충국도 속으로 너털웃음을 웃었다.
(허허허. 병완과 상순을 투쟁하는 걸 구경하면 좀 좋아서.)
“허소장, 뭘 하오? 저 놈들을 체포하지 않고.”
허영호 소장은 허백호를 한쪽으로 데리고 가서 조용히 말렸다.
“형님, 좀 냉정하오. 그저 농사문제구만. 어찌 우파 모자를 씌워 체포할 수 있소?”
“에이, 정치 불문이라고. 어서 내 말대로 체포해.”
허영호 소장이 발에 뿌리 내린 듯이 서 있자 허 백호는 펄펄 뛰면서 민경들에게 하늘땅이 맞붙을 듯이 고래고래 고함쳤다.
“저 병완 영감과 허영주에게 수갑을 채우고 고깔모자를 씌워!”
민경들은 우르르 달려들어 병완과 허영주에게 수갑을 채우고 미리 준비해 가지고 온 고깔모자를 머리에 씌웠다. 어찌나 높은 고깔모자를 썼는지 병완과 허영주를 동화속의 인형 같아 보기도 우스웠다.
“이게 무슨 짓인가?!”
상순은 다짜고짜 병완과 영주의 머리에서 고깔모자를 벗겨 땅바닥에 내동댕이쳐 발로 마구 짓밟아 놓았다.
“이 놈, 너도 어째 우파 모자를 쓰고 싶니?”
허나 상순은 뒤로 한걸음도 물러서지 않고 허백호 서기에게 대들었다.
“억울한 모자를 작작 씌우오. 뭘 잘 못했다고 이럽니까?”
병완은 막내손자를 말렸다.
“얘, 삐치지 말라. 괜히 연루되겠다.”
병완은 민경들에게 잡혀 파출소로 가면서도 가슴을 뻗치고 마을 사람들을 향해 목청을 돋우어 소리쳤다.
“나는 우리 마을 빈농들에게 미안한 일을 한 게 없소. 여러 분, 근심하지 마오.”
상순과 사원들은 죄수처럼 수갑을 차고 떠나가는 병완과 허영주를 묵묵히 목송했다.
하늘의 진붉은 태양은 지상의 만물을 불태울듯이 불비를 마구 내리퍼부었다. 갓 머리를 내민 야들야들한 옥수수 이파리들이 무정한 불볕에 데여 맥없이 축 늘어졌다. 온 대지를 진붉게 물들이는 낙조마저 굶주린 사람들이 발라 먹어 껍질이 벗겨진 비술나무마저 불태울듯 했다.
사원들은 무더위를 피해 쉼 시간이면 말라 죽어버린 앙상한 비술나무 밑으로 들어가 들어누워 팔로 얼굴을 가리고 쉬었다. 목 안에서 겨뿔 내가 확확 풍길 지경이었다.
일할 때 사원들은 모두 현훈증이 나 수건으로 머리를 질끈 싸매고 일하는 척 했다.
저쪽에서 모진 소리가 나서 모두들 그리로 눈길을 돌렸다.
학수가 물을 실어 나르던 곤두뿔의 잔등을 고삐로 치며 “이랴!” “이랴!” 하고 고함쳐도 곤두뿔은 대가리를 땅바닥에 댄 채 일어나지 못했다.
모두들 우르르 그리로 달려갔다.
“이 놈의 쇠새끼, 일어나지 못하겠니?”
그러나 곤두뿔은 눈알을 흡뜨며 바쁜 숨을 몰아쉬는 것이었다. 저쪽에서 소수레에 물통을 실어 나르던 소들이 이쪽으로 대가리를 돌리고 곤두뿔을 근심어린 눈길로 바라보았다.
상순이 달려 가보니 곤두뿔은 마지막 숨을 몰아쉬는 것 같았다.
“안 되겠소. 아마 무더위를 먹은 거 같소.”
말을 마치자 상순은 곤두뿔의 목에서 수레 멍예를 벗겨주었다.
곤두뿔은 자기 임자 상순을 알아보았는지 “음메-” 하고 외마디 비명을 지르며 뻐둑거렸다.
상순이 황급히 달려가 곤두뿔을 춰 세우려고 무등 애썼다. 허나 아무리 애써도 곤두뿔은 끝내 일어나지 못하고 대가리를 털썩 모로 떨어뜨리더니 네다리를 쭉 뻗었다.
“나와 함께 숱한 황무지를 일궈 놓고 이렇게 털썩 쓰러지니? 곤두뿔아, 쓰러지면 안 된다! 안 돼!”
상순은 곤두뿔의 목을 끌어안고 엎뎌 대성통곡쳤다.
“범바위골에서 네가 아니었더라면 우린 범과 곰에게 죽었을 게다. 네가 이렇게 물을 긷다가 죽으면 어쩌니? 죽는 날까지 일하다가 불쌍하게 죽었구나. 곤두뿔아!”
허백호 서기는 뒤에서 “원, 사람이 무슨 제 아비나 죽었다고 저러오?” 하고 코웃음 쳤다.
상순은 곤두뿔의 목을 글어 안고 흐느끼면서 울고 또 울었다.
어찌 슬프지 않으랴! 소서구와 범바위골의 어느 밭고랑에 곤두뿔의 발자국이 찍혀있지 않았겠는가!
허백호가 어찌 농사군과 밭갈이소의 깊은 정을 다 알 수 있었겠는가!
오후에 흥수랑 허백호랑 달려들어 곤두뿔을 잡았다.
집체식당에서 곤두뿔의 뼈를 우린 소탕에 곤두뿔의 살코기를 담아왔다. 허백호와 흥수는 밥상에 마주 앉아 야수들처럼 곤두뿔의 고기를 게걸스레 먹어댔다. 허나 상순은 숟가락을 들어 고기를 저어보다가 달랑 내려놓고 바깥으로 나가버렸다.
그가 어찌 자기와 함께 뼈 빠지게 황무지를 개간하고 농사를 지어온 곤두뿔의 고기를 먹을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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