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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장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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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하소설 울고 웃는 고향(81)
2017년 09월 19일 16시 53분  조회:1663  추천:1  작성자: 김장혁






                      4. 군복을 운송

군복공장의 식당에는 경사가 났다.식당 문으로 김이 물물 나오고 돼지고기 끓는 구수한 냄새가 식당 밖에까지 풍겨 나왔다.
허영희 주임은 전에 없이 열정이 나서 웃고 떠들며 식당에서 돌아쳤다. 그때 상순이 마른기침을 하며 들어섰다. 그녀는 웃음을 뚝 끊고 불자연스레 엄숙한 표정을 지었다.
오히려 상순은 아주 자연스럽게 영희 앞으로 가서 멈춰 섰다.
“첫 땐데 재봉공들을 돼지고기국을 배불리 먹이오.”
영희는 생글방글 웃으면서 머리를 끄덕였다.
      전사들이나 재봉공들은 식당에서 처음으로 돼지고기국에 새하얀 이밥을 배불리 먹으면서 웃고 떠들었다. 그들은 돼지고기랑 입쌀은 상순 공장장과 허영희 주임 등이 미군 전투기 폭격을 무릅쓰고 얻어온 것이라고 혀를 끌끌 찼다. 
그들은 이구동성으로 상순과 허영희 주임을 여간 칭찬하지 않았다.
     "군중들 생활을 잘 관심하는 분들이야."
    " 좋은 책임자들이야.”
어떤 재봉공들은 “우리 군복을 더 많이 만들어 그들에게 보답하자.”라고까지 했다.
허영희는 재봉공들에게 시원한 김치를 대접하려고 대야를 들고 김치 움으로 사뿐사뿐 다가갔다. 그때 상순이 식당을 돌아보다가 바깥에 나오는 것이 눈에 띄었다.
그녀는 김치 움에 들어가면서 상순에게 맑은 눈길을 보냈다.
“김치를 받아주겠어요?”
상순은 머리를 끄덕이며 영희를 따라 김치 움으로 갔다.
이윽고 영희가 김치움에 들어가더니 대야에 김치를 담아 올려 보냈다.  상순은 김치대야를 받아 움 옆에 놓고 서성거렸다.
“빨리 손을 좀 당겨주세요.”
김치움에서 영희의 목소리가 들렸다.
“에이고, 고까짓 김치 움에서 혼자 나오지 못해? 쯧쯧.”
상순은 꺼먼 김치 움 아구리에 손을 들이밀었다. 그런데 허영희는 손을 잡고 올라오는 것이 아니라 상순을 김치 움 안에 잡아 당겼다.
쿵덩!
아무런 준비도 없은 상순은 김치움에 쿵 떨어지면서 영희 몸 위에 넘어졌다.
이윽고 누군가 김치움 덮개를 닫아버렸다.
“숱한 재봉공들이 김치를 먹자고 기다리는데 이게 뭐요?”
“정인군자인 척 하지 말아요. 이후엔 김치 잡숫겠어요? 하면 이 김치 움으로 따라 들어오세요.”
“저 김치는 어쩌오? 눈보라에 흙먼지 들어가겠소.”
그러자 영희는 김치 움 덮개를 열고 머리를 바깥으로 내밀고 두리번거리더니 김치 대야를 되들여왔다.
영희는 김치 움 덮개를 살짝 덮는 것이었다.
“됐어요.”
영희는 말을 마치자 상순한테 다가와 품에 와락 안겼다. 상순은 순식간에 벌어진 일에 깜짝 놀랐다. 풍만한 영희의 가슴이 밀착해오며 압박하면 할수록 숨조차 상순은 거칠어지고 아랫배가 찡해나는 것을 금치 못했다. 
"안되오. 난 중공 당원이오."
상순은 영희를 떠밀어 버리었다.
영희는 상순을 더 꼭 끌어안으며 종알거렸다.
"또, 또,  당원은 사람이 아닌가요?"
"중공 당원은 특수강철로 만든 사람이오."
상순은 말을 마치자 영희를 밀어내고 김치 움 덮개를 열고 훌쩍 바깥으로 뛰어 나갔다.
김치 움 안에서는 영희의 울분소리가 들렸다.
“당신은 꼭 후회할 거예요. 언젠가는 제 발로 김치 움으로 올 거예요.”
상순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김치대야를 안고 식당 안으로 들어갔다.
     전사들과 재봉공들은 김상순과 허영희가 입쌀밥에 돼지고기국까지 대접한데 고마워 낮에 밤을 이어 더욱 정성들여 군복을 지었다. 그리하여 군복공장에서는 군복 짓기 임무를 앞당겨 완수했다.
상순은 식당에서 밥을 먹으면서 한숨을 후 내쉬었다.
(이젠 동복을 다 생산했으니 한 시름 놓게 됐어.)
이때 허영희가 식당아줌마와 뭐라고 말하더니 돼지고기 장국과 밥그릇을 들고 와서 상순과 마주해 앉았다. 이윽고 영희의 분부를 들은 아줌마가 돼지고기 장국 그릇을 들고 상순의 앞으로 다가와 앉았다.
그녀는 주위를 흘금흘금 곁눈질하더니 상순의 국그릇에 돼지고기를 골라 덧놓아주었다.
“감사하오.”
아줌마가 가자 상순은 영희를 빤히 들여다보며 국물을 맛나게 후룩후룩 들이켰다.
영희는 상순에게 맑은 눈길을 보내며 밥숟가락으로 자기 장국 사발에서 돼지고기 점을 떠서 상순의 그릇에 담아주었다.
상순은 남들이 보는 거 같아 그대로 받아먹으면서 영희를 곁눈질해 보았다. 보름달 같은 얼굴에 복숭아 이마, 버들잎 같이 짙은 눈썹, 이글이글 반짝이는 봉이 눈, 오똑한 코, 애교 섞인 평안도 말을 쏟아내는 조그마한 입. 인물체격이나 어디를 보아도 함흥 촌에 있는 명옥 보다, 지어 춘실 보다도 훨씬 뛰어난 여인이었다. 순간 상순은 아랫배로부터 찡 치밀어 오르는 정욕을 금할 수 없어 마른 침을 꼴깍 삼키며 숟가락을 놓았다.
그 모든 것을 다 꿰뚫어 본 듯이 영희는 상순에게 눈짓하더니 머리를 다소곳이 숙이면서 나직이 속삭였다.
“김치 생각이 나는가요?”
허나 상순은 땅이 꺼지게 한숨을 짓더니 도리머리를 흔들었다.
“아니, 돼지고기를 잘 먹어 배부르오.”
영희는 앵돌아지면서 입귀를 삐쭉했다.
“김 공장장은 입 안에 다 들어온 시원한 김치도 잡숫지 않을래요?”
상순도 능글스레 재담을 엮어댔다.
“돼지고기를 배불리 먹었는데 찬 김치를 먹고 배탈이 나면 어쩌오?”
“따로 따로 먹으면 배탈이 날 리 있어요?”
“따로 먹어도 배 안에 들어가면 한데 합쳐지지 않소?”
“그 놈의 배는 김치도 먹지 못하는 멍청이 배구먼.”
상순은 밥그릇을 들고 일어나면서 굳은 마음을 보여 주었다.
“당원은 특수재료로 만들어졌으니까.”
영희는 상순의 밥그릇과 숟가락, 저를 와락와락 걷어가지고 가면서 두덜거렸다.
“김 공장장, 당원은 먹고 싶은 김치도 못 먹는 사람인가요?”
영희는 주방으로 들어가면서 상순에게 눈을 흘기었다.
숱한 재봉공여인들이 상순과 영희를 흘금흘금 곁눈질했다.
어느 날 오후, 퇀 참모장이 성수가 모는 자동차에 앉아 군복공장 울안에 들어섰다.
상순은 급히 마중 나가 손을 내밀었다.
“참모장, 안녕하십니까?”
참모장은 상순의 손을 굳게 잡으면서 “김 공장장, 수고 많았소.”라고 하며 공장장 사무실 문 앞으로 갔다.
“어서 들어갑시다.”
“김 공장장이 먼저 들어가십시오.”
상순과 참모장은 서로 사양하다가 나중에 그 좁은 문으로 둘이 거의 동시에 비비닥거리며 들어갔다. 그런데 참모장의 배가 어찌나 다이아처럼 뚱뚱한지 숨을 헐떡거리며 겨우 비비며 들어갔다.
아줌마들이 그 모양을 보고 식당 안이 떠나가게 깔깔깔 웃어댔다.
참모장은 사무실에 들어가자마자 상순을 보고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
“김 공장장은 전선으로 군복을 실어가는 임무를 맡아야 하겠소.”
“예?!”
상순은 적이 놀라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러나 인차 굳어졌던 얼굴근육이 느슨히 풀리며 싱글벙글 웃기까지 했다.
“잘 됐습니다. 이제야 전선에 나가 양키 놈들과 통쾌하게 싸울 수 있게 됐군. 이 놈 골 안에서 아낙네들과 신경질을 쓰면서 지긋지긋해 어디 살겠습니까?”
상순은 기뻐 어쩔줄 몰라했다.
"전선에 나가 미제 양키놈들 콧대를 분질러놔야지. 흥!"
참모장은 혈기 넘치는 상순을 보고 엄숙한 표정을 지었다.
“지금 개성에서 정전담판을 하고 있소.”
“그럼 난 양키 놈들을 잡아치울 기회도 없겠구먼.”
그러나 참모장은 도리머리를 흔들었다.
“아니오. 이 전쟁은 싸우다가 담판하고 담판하다가도 싸우는 판이오. 언제까지 걸릴지 누구도 예측하기 어렵소. 우리 부대는 지금까지 후방을 지켰지만 이젠 후방의 군수물자를 싣고 직접 최전선에 나가 양키 놈들과 싸워야 하오.”
“거 잘 됐구나.”
“음, 우리 운송대는 지금까지 후근총사령부 교통운송과 조남기 과장의 3단계 운송전략전술 지시에 따라 군수물자를 운송했소. 이전 같으면 우린 군복을 자동차로 철도연선에까지 운송하면 되었소. 이전엔 기차로 조선반도 중부까지 실어가면 거기서 다시 트럭으로 전선에 운송하고 그 다음 다시 인력과 축력으로 최전선으로 운송했지. 그런데 며칠 전 미제 날강도들의 폭격에 철길이 여러 구간이 끊어져 철로운송을 잠시 할 수 없게 됐소. 겨울이 닥쳐와서 전선에선 동복이 급히 수요되오. 전선의 장병들이 어떻게 겨울에 홑옷을 입고 싸우겠소. 철로운송을 잠시 할 수 없는 정황에 근거해 김 영장은 2련장과 함께 40대 운송자동차대대를 최전선으로 직접 호송해야겠소. 요즘 미군 전투기 봉쇄가 너무 심해 도로운송도 힘든 판이오.”
상순은 권총집을 뒤로 돌려 메면서 자리에서 우쭐 일어났다.
“오늘 떠나랍니까?”
“아니, 이 사람아, 급하긴 우물에 가서 숭늉을 달라 할 지경이구먼. 저녁이나 든든히 먹고 날이 어두워져 적기 공습이 적을 때 감쪽같이 공장 울안을 벗어나가게.”
“옛! 알았습니다.”
상순은 공장을 돌아보며 근심했다.
"복장공장은 어쩝니까?"
"근심하지 마오. 3련장한테 공장을 맡길 예산이오."
"예."
상순은 머리를 끄덕이고나서 말했다.
 "조선 여성들을 잘 지도할 여성책임자가 필요하다고 봅니다."
"음. 누굴 시키면 좋겠소?"
상순은 참모장을 쳐다보며 엄숙하게 거천했다. 
"허영희를 부공장장으로 시키면 어떻습니까?"
"허영희?"
"녜. 허영희는 지금  식당 주임을 하는데 령도재능은 있는 것 같습니다."
참모장은 통쾌하게 대답했다.
"알았소."
     그들은 한참 동안 이 말 저 말 하다가 해질 무렵에 공장장 사무실을 떠나 식당으로 들어갔다.
참모장은 허영희 주임을 불러 뭐라고 한참 말하더니 상순이 쪽으로 다가왔다. 허영희 주임이 울먹한 표정으로 다가오자 밥을 먹으며 웃고 떠들던 재봉공여인들은 웃음소리를 딱 죽이며 밥을 먹었다.
영희 주임은 주먹밥 한 꾸러미에 새파란 싹이 돋아난 무우 네 개를 넣어 들고 상순의 앞으로 다가왔다.
“전선에 나가면 목이 마르고 배고플 거예요.”
영희는 머리를 다소곳이 숙이며 울먹울먹해 말하는 것이었다.
상순은 주먹밥꾸러미를 받으며 허영희 주임을 바라보았다.
“이제껏 허주임 수고 많았소. 감사하오. 내 돌아올 때까지 복장공장을 잘 령도하오."
"네-"
허영희는 머리를 끄덕였다.
그는 허영희 주임에게 분부했다.
"주먹밥꾸러미 40개 더 만드오. 트럭마다 한 꾸러미씩 올려놔야겠소.”
“알았어요. 김영장.”
허영희는 두 손을 맞잡고 머리를 수깃하고 식당으로 걸어갔다.
상순은 주먹밥꾸러미를 성수가 모는 제일 앞의 트럭 운전실에 가져다 넣고 음식점으로 되돌아왔다.
허영희는 식당 아줌마들과 함께 주먹밥을 꾸러미에 한창 넣느라고 여념이 없었다. 상순은 영희를 불러 쌀독 쪽으로 다가갔다.
영희는 다소곳이 숙였던 머리를 들더니 상순을 마주 바라보며 아주 진지하면서도 나직이 물었다.
“김치 생각이 나는가요?”
“아니, 군복을 싣고 전선으로 나가야 하는데 언제 김치 생각을 다 하겠소?”
“전선에 나가면 김치가 없을 게 아닌가요?”
“…”
허나 상순은 쌀독을 손수 일일이 열어보더니 영희한테 머리를 돌렸다.
“명심하오. 숱한 재봉공들의 운명을 책임진 허 주임은 김치 생각을 하기보다도 쌀독과 물독을 꼴딱꼴딱 채워놓고 살림살이를 잘 해야 되오.”
“예. 갈라지면서도 사업 말 밖에 할줄 모르는구만요.”
영희는 나직이 대답하며 돌아서더니 어깨를 들먹였다.
이윽고 그녀는 보꾸러미를 하나 상순에게 내밀었다.
“뭐요?”
“김치예요. 자동차에 싣고 가다가 생각 날 때면 잡수세요.”
“?”
상순은 보꾸러미를 되돌려주면서 핀잔했다.
"정말, 입만 열면 김치, 김치오?” 
그때 옆에서 무슨 감투끈인지도 모르는 참모장이 영희를 보고 끼여들었다.
“가져오오. 내나 가져다 먹기오.”
"네."
영희는  머리를 끄덕이더니 상순을 힐끔 곁눈질하더니 김치보꾸러미를 들고 참모장한테로 다가갔다.
상순은 머리를 다소곳이 숙인 그녀의 어깨가 세차게 파도치는 것을 보았다.
“참, 그간 허 주임이 김영장한테 정이 폭 들었구먼.”
참모장은 영희가 옆에서 뜯어주는 김치 한 잎을 저로 집어 먹으며 중얼거렸다.
“김치가 너무나 맛있구먼. 김영장은 왜 호송 가는 길에 안 먹어?”
상순은 개의치 않고 어떻게 미군 전투기의 폭격을 피해 봉쇄선을 꿰뚫고 군복운송 임무를 완수할 것인가를 골똘히 궁리하고 있었다.
저쪽에서 흥수가 외까풀눈으로 상순한테 질투의 눈길을 보내며 남북골을 절레절레 저었다.
(쳇, 저깟 놈 뭐가 대단해? 허주임이 왜 꼬리를 쳐?)
그는 이해되지 않았다, 춘실도 그렇고 허주임도 그렇고 왜 상순을 그렇게 따르는지.
(저 놈 거기에 뭐 엿이라도 붙었나? 아님... 흥!)
얼음 쪼각 같은 겨울 해가 압록강 저쪽 산 너머로 꼴깍 넘어갔다.
부르릉 부르릉
트럭 엔징 소리가 공장 울안에서 요란하게 들리며 헤드라이트가 어지러이 여기저기 비추더니 멈춰 섰다.
상순이 참모장을 따라 울안에 나갔다.
운전수들은 트럭에서 뛰어내리자마자 세개 패로 나뉘어 자동차 앞에 줄지어섰다.
참모장은 운전수들 앞으로 나갔다.
“동무들은 김영장의 지휘아래 이번 동복운송전투임무를 훌륭히 완수하리라고 믿습니다. 아래에 김영장으로부터 몇 마디 지시하겠습니다.”
운전수과 전사들은 열렬한 박수갈채를 보냈다.
상순은 전체 운전수들과 전사들에게 우렁차게 고함쳤다.
“운전수들은 몽땅 식당에 들어가 저녁식사를 든든히 한 후 내 말을 들으라.”
“옛!”
운전수들은 먼 길을 달려와 자기들을 염려하는 김영장이 고마웠다.
그들은 질서정연하게 줄을 지어 식당에 들어가 밥상에 마주 앉았다. 허 주임은 식당의 십여 명 아줌마들을 이끌어 치마에서 비파소리 나게 맴돌며 밥상을 차려 올렸다.
그때까지 상순은 운전수들의 밥상을 둘러보며 살피다가도 허주임에게 말해 모자라는 채나 돼지고기 국을 더 올리게 했다. 옆에서 상순의 거동을 보던 참모장은 패기 있으면서도 세밀한 상순의 사업 작풍에 여간 감탄해마지 않았다.
한참 후 상순은 2련장을 한쪽 구석으로 불러 나직이 말했다.
“우린 통일지휘에 따라 군사행동을 해야겠소. 내가 총지휘를 맡고 2련장은 호위를 맡소. 운송패 운전수들은 희수 패장과 성수 패장이 맡아야겠소.”
2련장은 차렷 하고 거수경례를 올렸다.
“옛!"
"견결히 완수하겠습니다!”
희수와 성수는 한 마을에서 왔지만 전선에서는 상급이기에 특별히 존대를 써서 대답했다.
상순은 그들 둘의 손을 굳게 잡아주면서 물었다.
“좋소. 무슨 어려운 건 없소?”
그때 성수가 나직이 말했다.
“김영장, 운송 임무를 완수하는데 제일 위험한 건 그 놈 적기들 폭격과 기관총소사오. 이 많은 트럭이 한꺼번에 장사진을 치고 봉쇄선을 넘어간다는 건 정말 간단한 문제가 아닙니다. 제일 먼저 미군 전투기와 폭격기가 날아오면 어떻게 대처하겠는가 하는 것부터 준비 있어야 할 것 같습니다.”
상순은 유심히 들은 후 또 물었다.
“미제의 지상군이 운송트럭대오를 습격하는 경우는 없는가?”
“지금까지 그런 일이 없었습니다.”
상순은 머리를 끄덕이더니 머리를 숙인 채 한참이나 무슨 생각을 굴리었다.
“흥수 반장은 할 말 없소?”
흥수는 능글거리면서 중얼거렸다.
“우린 김영장 명령을 트럭 위에서 듣지 못할 가봐 걱정이지.”
상순은 머리를 끄덕였다.
“음. 또 무슨 문제는 없소?”
“이제 생각나면 다시 말하겠소.”
흥수는 입버릇처럼 상순에게 존대를 쓰지 않았다.
옆에서 그들을 지켜보던 참모장은 그들 셋을 둘러보면서 말했다.
“이젠 출발하오.”
운전수들과 호위병들이 벌써 마당에 나와 줄지어 섰다. 그새 여재봉공들은 군복을 자동차에 다 실어 놓고 마당에 몽땅 줄을 지어 서 있었다. 미군 전투기의 폭격이 두려워 전등불과 등잔불마저 몽땅 꺼놓아서 공장 울 안은 까만 나라였다. 다만 땅바닥에 깔린 허연 눈만이 발밑에서 보일 뿐이었다.
상순은 운전수들과 호위병들 그리고 여재봉공들을 둘러보며 소리 높이 말했다.
“그간 군복공장 여재봉공들은 동복생산전투임무를 훌륭히 완수했습니다. 동무들은 조선전쟁의 승리를 위해 위대한 업적을 창조했습니다. 최전선의 전사들은 동무들이 지은 동복을 든든히 입고 미제 승냥이들을 호되게 족칠 것입니다. 동무들, 수고했습니다!”
허 주임이 목멘 소리로 고함쳤다.
“김영장과 호위병 아저씨들 수고했어요.”
여재봉공들이 따라 고함쳤다.
“수고하겠어요.”  
상순은 손을 들어 군례를 척 올렸다.
“감사합니다. 그간 수고 많았습니다.”
상순이 운전수들과 호위병들한테 연설하는데 재봉공들 속 여기저기에서 훌쩍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우리는 군복운송 임무를 맡고 최전선으로 나가게 됐습니다. 미군 전투기와 폭격기의 폭격을 맞받아 봉쇄선을 꿰뚫고 군복을 제때에 최전선 장병들에게 운송해야 합니다. 우린 통일된 지휘아래 통일 지시와 신호에 따라 군사행동을 해야겠습니다. 나와 운전수들을 책임진 성수 패장은 제일 앞 트럭에 앉아 나가겠습니다. 적기가 날아오면 신호탄이거나 권총 두 방을 쏘아 적기경보신호를 보내겠습니다. 운전수들은 적기경보신호가 울리면 헤드라이트를 몽땅 끄고 달려야겠습니다. 적기가 기수를 숙여 내려오며 폭격하기 시작하면 절대 트럭에서 뛰어내려 숨지 말고 원래 달리던 속도보다 더 늦게 혹은 빨리 달리도록 해야 하겠습니다. 그래야만 적기 폭격에 명중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운전수들은 김영장의 말을 듣고 속으로 여간 감탄해마지 않았다.
“2련장과 흥수 반장은 제일 뒤 트럭에 앉으십시오. 군복을 실은 트럭 바곤마다 호위전사들이 3명씩 앉아 경기관총으로 적기를 조준 사격합시다. 헤드라이트를 끄고 달리는 트럭을 가파로운 굽인 돌이에서 인도하시오. 우린 목숨으로 우리 여재봉공들이 눈에 피발이 서게 지은 동복을 우리 장병들에게 전달해야 하겠습니다.”
상순은 군복공장 울안의 어두운 그림자들을 둘러보며 목청껏 외쳤다.
“전체 동지들, 우린 나라를 보위하기 위해 조선전선에 나왔습니다. 이번 운송임무는 우리 숱한 장병들의 생사와  관계되는 관건적인 임무입니다. 나는 동지들이 훌륭히 해내리라고 굳게 믿습니다. 동지들, 동복운송 임무를 훌륭히 완수할 신심이 있습니까?”
“있습니다!”
장내에서는 우레와 같은 함성소리가 울렸다.
“출발!”
상순은 참모장과 3련장 그리고 허영희 부공장장 등과 일일이 악수하며 석별의 정을 나누었다. 상순이 영희 앞에 다가가 손을 내밀자 영희는 손을 꼭 쥐며 눈물이 글썽해 반쯤 외면하였다.
"그간 수고 많았소. 허 주임. 아니, 이젠 부공장장이지."

"저에 대한 관심 감사해요. 무사히 갔다가 돌아오세요."
그녀는 손으로 눈을 가리더니 돌아서서  어깨를 들먹였다. 
순간 상순도 코마루가 시큼해남을 어쩔 수 없었다. 
그는 작별인사를 마치자 부랴부랴 제일 앞 트럭에 가서 운전실에 들어가 성수 옆에 앉았다.
숱한 헤드라이트가 공장 울안을 벗어나자 두텁게 뒤덮인 칠흑 같은 어둠속을 누비며 남쪽으로 쏜살같이 달렸다.

                                           5. 많은 따발령

차디찬 겨울해가 내리비추는 대낮에는 미군 전투기가 자주 덮쳐 오지 않았다. 하여 상순은 40여대 트럭대오를 거느리고 쏜살같이 남으로 달릴 수 있었다.
해가 뉘엿뉘엿 지기 시작했다.
“이제 얼마 달리지 않으면 굽인 돌이 많은 따발령에 도착하게 되오. 미군 쌕쌔기는 항상 따발령 부근에서 우리 운송차량을 폭격하군 했소.”
성수의 말을 듣고 상순은 즉시 트럭 바곤에 나가 앉았다. 
"뒤따르는 자동차마다 전할 것! 방공사격준비!"
뒤따르는 자동차가 뒤의 자동차에 대고 상순의 명령을 전달하며 고함쳤다.
"뒤따르는 자도아마다 전할것! 방공사격준비!"
마지막 자동차에까지 전투명령이 전달됐다. 자동차마다 고사기관총을 운전실 위쪽에 걸어놓고 하늘만 살폈다.
땅!
이때 남쪽하늘에 파란 신호탄이 하늘로 날아올라갔다. 따발령 길을 닦으며 지키던 2련에서 적기 공습을 알리는 신호탄을 쏘아올렸다. 아니나 다를가.  구름 속에서 얭얭 요란한 소리와 함께 한 떼의 쌕쌔기가 날아왔다.
상순은 인차 허리춤에서 신호총을 빼 뒤쪽 공중에 쏘았다.
땅!
빨간 신호탄이 하늘에 날아올랐다가 포물선을 그리며 떨어졌다. 뒤따라오던 트럭의 전사들은 모두 고사기관총과 반자동보총으로 하늘을 겨누었다. 미군 쌕쌔기가 전투편대를 지어 뒤로 날아 지나갔다.
이윽고 기수를 돌린 미군 쌕쌔기들은 흩어지더니 뒤로 덮쳐들어 운송트럭을 향해 미친 듯이 소사하며 덮쳐들었다. 성수 등 운전수들은 사전에 상순이 포치한대로 쌕쌔기가 트럭을 조준해 소사하려는 순간 차들을 후퇴시켰다. 쌕쌔기는 트럭 앞에 헛사격을 해댔다.
상순은 경기관총으로 쌕쌔기들에게 한 배짐 맹사격을 가했다. 다른 트럭의 전사들도 공중에 대고 일제히 불을 토했다. 화력망을 헤가르며 쌕쌔기들이 겨끔내기로 덮쳐들어 후퇴하는 트럭을 조준해 기수를 숙이며 사격했다. 순간 트럭들은 상순의 지휘대로 이번에는 앞으로 쏜살같이 달렸다. 쌕쌔기는 또 트럭의 뒤꽁무니를 갈기고 말았다. 악이 날대로 난 쌕쌔기들은 트럭을 따라가며 소사했다. 그러나 해가 꼴깍 넘어갔다. 게다가 트럭들이 헤드라이트마저 꺼버리고 굽인 돌이 많은 따발령으로 달리는 바람에 조준해 소사하기 힘들었다.
이때 쌕쌔기들은 따발령 상공으로 날아지나가며 조명탄을 줄줄이 늘여놓았다. 순간 따발령이 대낮같이 환해졌다. 트럭이 아니라 개미가 기어가는 것마저 환히 볼 수 있었다.
미군 쌕쌔기는 제일 앞에서 굽인 돌이를 돌며 영마루로 달려 올라가는 성수의 트럭을 조준해 소이탄을 투하했다.
꽝! 꽈르릉!
요란한 굉음과 함께 소이탄이 폭발하면서 트럭이 달리는 굽인 돌이 길에 삼단 같은 불길이 치솟았다. 길바닥에도 폭탄구덩이가 벌집처럼 뚫려 트럭들이 앞으로 한발자국도 달려 나가기 힘들었다.
뒤에서도 폭발굉음이 울렸다. 뒤따라오던 트럭 주위에서도 불길이 활활 치솟아 올랐다. 상순과 전사들은 트럭에서 뛰어내려 쌕쌔기들을 향해 맹렬한 사격을 가했다. 그때 따발령을 지키던 2련 전사들도 고사기관총으로 미제 공중날강도들을 향해 밀집사격을 가했다. 질겁한 쌕쌔기들은 남쪽으로 도망쳤다.
상순이 살펴보니 제일 앞에서 달리던 성수의 트럭이 멈춰선 채 불이 달렸고 산기슭에 들어선 트럭 몇 대에서도 불길이 치솟고 있었다.
상순은 굽인 돌이를 꿰질러 나가 성수의 트럭에 뛰어갔다.
성수가 뛰어와 우는 소리를 했다.
“아이고, 이걸 어쩌오?”
“어째?!”
“다이아 터졌단 말이오!”
상순이 뛰어가 다이아를 보니 폭탄파편에 맞아 터져 주저앉아 있었다.
뒤의 트럭들은 벌집 같은 폭탄구덩이들과 불붙은 성수의 트럭에 막혀 따발령을 넘을 수 없었다.
2련 련장이 황급히 달려왔다.
"2련장 보고!"
상순도 거수군례를 올리며 명령했다.
"2련장,  빨리 폭탄구덩이를 메꾸라!"
"옛!"
2련장은 2련 전사들을 령솔해 폭탄구덩이를 메꾼다, 자동차에 달린 불을 끈다 하면서 맴돌아쳤다.
상순이 영마루에 올라가 두루 살펴보니 폭탄구덩이들이 파인 길을 내놓고 옆에 자그마한 호박길이 있는 것을 발견했다. 그 갈림길을 따라 올라가면 영마루를 넘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살았다, 살았어!"
그는 무릎을 탁 치더니 돌아와 소리쳤다.
“성수, 군복을 뒤 트럭에 싣소.”
“트럭은 어쩌겠소?”
“길 옆으로 모오. 적기가 덮쳐오기 전에 우린 저 작은 길로 따발령을 넘어가기요.”
“트럭을 버리겠소?”
“옆에 몰아놓고 빨리 다이아를 바꾸오!”
“알았소.”
성수는 운전실에 들어가 트럭을 겨우 길 옆으로 몰아갔다. 공기가 다 빠진 다이어 때문에 트럭은 요란한 엔진 소리를 내며 힘겹게 길옆으로 나갔다.
상순은 령마루 둔덕에 올라서서 손을 연신 휘둘러댔다.
“쌕쌔기들이 덮쳐오기 전에 빨리 따발령을 넘어야 하오!”
몇몇 전사들이 성수의 트럭 바곤에 뛰어 올라가 불이 붙은 군복을 길옆에 던지고 너머지 군복을 제일 뒤에서 달려온 트럭에 옮겨 실었다. 상순은 전사들을 지휘해 폭탄구덩이에 자동차에 싣고 온 통나무를 부리워 임시다리를 놓았다. 뒤이어 그와 2련장은 굽인 돌이에 전사들을 배치해 트럭이 안전하게 갈림길 목을 벗어나 따발령을 넘게 손짓으로 지휘하게 했다. 다른 트럭의 운전수들은 환한 조명탄의 불빛을 빌어 트럭을 몰고 폭탄구덩이들과 성수의 차 옆으로 빠져나가 갈림길로 부르릉부르릉 달려 겨우 따발령을 넘어 달아났다.
성수는 숙련된 솜씨로 다이아를 바꾸고 운전실에 들어가 앉았다.
“군복을 그만 옮겨 싣소. 이젠 우리 트럭도 달릴 수 있소.”
군복을 흥수네 트럭에 옮겨 싣던 전사들은 트럭에 앉으면서 반자동보총을 잡고 하늘을 살폈다. 상순은 2련장과 전사들과 작별하고 제일 마지막에 선 성수의 트럭에 올라갔다. 그는 고사기관총을 운전실 위에 걸어놓고 밤하늘을 살폈다.
“빨리 이 자리를 피하기오!”
부르릉 소리와 함께 성수는 발동을 걸었다. 성수와 흥수는 트럭을 고속으로 몰아 따발령을 넘어 산 아래로 내려갔다.
이때 남쪽 하늘에서 또 쌕쌔기들이 덮쳐왔다.
그런데 하늘도 상순이네를 돕는지 조명탄이 하나 둘 꺼져버려 따발령은 새까만 나라로 돼버렸다. 그 틈을 타서 성수는 헤드라이트를 끈 채 트럭을 몰고 산 아래로 굽이굽이 쏜살같이 달렸다. 성수의 날랜 운전솜씨에 상순은 못내 혀를 끌끌 찼다.
쌕쌔기들은 또 하늘에 조명탄을 줄줄이 늘여놓았다. 하지만 그때는 상순이네 제일 마지막 트럭마저 따발령을 넘어 몇 킬로미터나 달아난 뒤였다.
쌕쌔기들은 따발령을 몇 바퀴 선회하더니 상순이네 트럭대오를 찾지 못하고서도 불 붙는 군복무지에 폭탄을 내리 던졌다. 2련 장병들은 고사기관총 맹사격으로 쌕쌔기 폭격에 화답했다.
꽈르릉! 꽈르릉!
따발령 쪽에서 우레와 같은 굉음이 울렸다.
“하하하! 그 놈들이 헛수고를 잘 하는구나!”
“폭탄을 아무데나 다 던져야 가볍게 돌아가지!”
“상전한테 욕도 먹지 않고!”
“허허허!”
“하하하!”
상순이네는 한바탕 통쾌하게 웃으며 어둠을 헤가르면서 달렸다.
상순은 트럭대오를 영솔해 온갖 간난신고를 거치면서 달려 어느 산기슭에 도착했다.
북에서 떠날 때와는 달리 날씨가 꽤나 풀려 기승스레 불어치던 눈보라도 멎고 산과 들에 뒤덮인 눈도 찾아 볼 수 없고 드문드문 잔설이 보일뿐이었다. 이제 맵짠 추위가 서서히 물러가면 훈훈한 봄날을 맞으려고 만물이 살금살금 태동하고 있었다.
상순은 트럭대오를 산기슭 길옆에 멈춰 세우고 2련장을 보고 전체 대원들을 집합시키라고 했다.
이윽고 상순은 전우들을 돌아보면서 엄숙하게 말했다.
“동무들, 우린 이미 최전선 남조선 땅에 도착했습니다. 이제부턴 하늘만 살펴서는 안 됩니다. 하늘과 길 주위를 몽땅 살펴야 합니다. 마을 백성이라고 해서 경각성을 늦춰선 안 됩니다. 우린 돌연습격을 방지하기 위해 여기서 잠시 쉬고 해 지면 다시 떠납시다.”
모두들 웅성거렸다.
상순은 트럭을 길에서 피해 산기슭 쪽에 세우게 한 후 전사들을 시켜 나무를 끊어다 트럭을 위장하고 군복 위에는 눈을 날라다 덮어놓았다.
“모두들 자기 트럭에 올라가 눈을 좀 붙이오. 여기 어딘지 알아보고 운송노선을 결정하겠소.”
전사들은 모두 트럭에 올라가자마자 코를 드렁드렁 구르기 시작했다.
뒤이어 상순은 보초까지 세운 후 성수와 흥수를 데리고 산마루에 올라가 주위환경을 둘러보았다.
산 넘어 그리 멀지 않은 곳에 밥을 짓는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마을 하나가 보였다. 전쟁이 포화에 맞고 그을은 마을에는 온전한 초가집이라고는 찾아 볼 수 없었다. 대충 문짝을 달고 가마니를 처맨 타다 남은 집들이 여기저기 널려 있어 한산해보이기 그지없었다.
상순은 성수를 돌아보며 “차대에 가서 쉬면서 만일을 대비하오. 난 흥수와 함께 저 마을에 가서 먹을 걸 좀 얻어 오겠소.”라고 했다.
“그럼 언제쯤 돌아오겠소?”
성수의 물음에 상순은 “순조로우면 어둡기 전에 돌아올게.”라고 대답하고는 산 너머로 성큼성큼 걸어 내려갔다.
성수는 상순을 따라 가는 흥수를 보고 “형님, 남조선이오. 매사에 주의하오.”라고 했다.
흥수는 돌아보며 “트럭을 잘 지켜라.”라고 당부하고는 산 너머로 넘어갔다.
상순과 흥수는 산기슭의 마을 어귀에 이르러 한참이나 두리번거렸다. 마을에는 괴뢰군의 그림자도 얼씬하지 않았다.
상순은 흥수를 보고 손을 앞으로 휙 휘저었다. 둘은 아무 거리낌 없이 마을 제일 서쪽 집에 다가갔다. 굴뚝에서는 연기가 사랑스럽게 무럭무럭 피어오르고 있었다.
흥수는 군침까지 꼴깍 삼키면서 문 꼬리를 쥐어 당겼다.
“주인님, 계시오? 에헴, 헴.”
집안에서 대답하기도 전에 흥수와 상순은 집안에 들어섰다. 젊은이가 부엌아궁이에 불을 때다가 와닥닥 일어서며 그들을 쏘아보았다. 가마 목에서 애를 업은 젊은 색시가 쌀 함박으로 쌀을 일어 가마에 얹다가 깜작 놀라 물앉았다. 윗방에서 웬 허리구부정한 늙은이가 기침을 쿨룩쿨룩하며 남자애를 안고 정지를 내다보다가 후들후들 떠는 것이었다.
“겁나 마십시오. 우린 중국인민지원군입니다. 절대 백성들을 해치지 않는 인민의 군대입니다.”
상순은 젊은이 쪽으로 다가가면서 흥수에게 바깥으로 머리 짓을 했다. 흥수는 머리를 끄덕이며 신을 신은 채 윗방으로 올라가 늙은이 외에 다른 수상한 자가 없는가를 살펴보고 바깥으로 나가 울바자 안에서 망을 보았다.
상순은 젊은이의 눈길이 곱지 않은 것을 보고 다가가 말을 걸었다.
“젊은이, 이 마을 어느 군에 속하오?”
젊은이는 머리를 숙이고 다시 물앉아 아궁이에 땔나무를 쑤셔 넣으면서 입 안의 소리로 대꾸했다.
“충청남도 서천군이랑께.”
“오- 우리가 밤중에 길을 잃어 이렇게 깊숙이 남조선으로 진군했군. 서천군 어느 면인가?”
“한산 면이랑께.”
“한산 면?”
“예.”
상순은 무릎을 꺾더니 젊은이 옆에 쪼그리고 앉으면서 나직이 말했다.
“아니. 한산 면은 경상남도 통영 한산 섬에 있어. 누굴 속이려고 드는가?”
“누굴 속이긴 속여?”
상순은 대수로워 하지 않는 젊은이에게 물었다.
“자넨 성이 뭐요?”
"이씨."
"본은?"
“한산 이씨.”
“한산 이씨?”
“예.”
젊은이가 옆에 쪼그리고 앉은 상순을 이상한 눈길로 힐끔 곁눈질했다. 상순은 윗방에서 정지에 나온 머리 허연 늙은이와 젊은이를 번갈아 보았다. 어쩐지 그들이 남이 돼 보이지 않았다.
“내 할머니 성씨와 같군.”
“그래요?”
늙은이가 엉거주춤 일어나며 놀라했다.
젊은이는 믿어지지 않는지 콧방귀를 뀌며 아궁이에 땔나무를 뚝뚝 끊어 쑤셔 넣었다.
상순은 늙은이를 쳐다보며 물었다.
“여기 한산 면에 한산이씨 많습니까?”
“그럼. 우리 마을은 한산 이씨 마을이라지.”
늙은이의 말에 상순은 한숨을 후 내쉬었다.
“우리 할머니 고향은 경상남도 통영 한산 면이라던가. 이 마을에 한산 이씨가 많을 줄은 몰랐습니다.”
늙은이는 두 눈을 크게 뜨고 상순의 아래위를 훑어보며 물었다.
“혹시 자넨 간도에서 나온 거 아냐?”
“그렇습니다.”
“간도 어데서 왔어? 혹시 함흥 촌이라고 알아?”
상순은 뿌리를 드러낼 수 없어 반문했다.
“그걸 물어 뭐 해요?”
“아니, 거 별 일 아니야. 우리 고모가 광복 전에 명천에서 간도 함흥 촌으로 갔댔어. 헌데 찾을 길이 없어 그래.”
“예? 그래 당신 고모가 명천 어느 마을에 있었습니까?”
상순은 적이 놀라며 늙은이를 뜯어보기 시작했다. 어디선가 본 것 같은데 기억이 나지 않았다.
“명천 상우남면 운주동이였어.”
“예? 우리 집도 명천 운주동에서 간도 함흥 촌에 이사 갔는데. 고모 명함 뭐요?”
“혹시 이성희라는 할머니 알아?”
“예?”
상순은 적이 놀랐다.
“저의 할머니가 바로 이성희입니다.”
“뭐라고?”
늙은이는 상순에게 다가섰다.
“아니, 그럼 자넨 혹시 기준형님의 아들 아닌 기여?”
“옳습니다. 난 막내입니다.”
“너 그럼 상순이던가?”
“예. 맞습니다.”
상순도 일어섰다.
늙은이는 “할머니 조카 명호인 기여.”라고 하며 일어났다.
“아니, 여기서 만나다니?”
그는 상순을 와락 끌어안고 엉엉 대성통곡을 쳤다.
“널 보면서 별로 기준 히야(형)처럼 생겼다 했지. 어쩜 부리부리한 세귀눈이 형을 신통히도 빼 닮았을까.”
“아, 삼촌! 할머니는 생전에 오빠 일가를 얼마나 그렸다고. 흑흑흑.”
상순은 명호를 그러안고 섧게 울었다. 그는 명호 일가에게 간단히 할머니가 고향과 친척을 몹시 그리다가 돌아간 일을 얘기했다.
“그랬구나. 끝내 고모는 고향에 돌아와 보지도 못하고 돌아가셨구나.”
명호는 눈물을 하염없이 흘리면서 머리를 끄덕이었다.
드디어 그는 우두커니 서 있는 젊은이 부부를 인사시켰다.
“얘, 영수야, 형이야. 내 항상 외우던 고모님 막내손자야!” 
“상순아, 이 놈은 내 둘째아들 영수야. 며느리도 시형을 인사해.”
영수는 땔나무를 놓고 일어나 어두커니 서 있었다.
“이 놈아, 어서 인사해.”
“형.”
영수는 겨우 목구멍으로 기어드는 소리로 난생처음 보는 상순을 “형”이라고 불렀다.
상순은 영수의 둥실한 어깨를 툭툭 쳤다. 뒤이어 머리 숙이며 인사하는 영수의 아내와도 인사했다.
명호는 상순의 손을 잡고 구들로 끌어당겼다.
“어서 올라오게나. 바깥에서 얼었겠는데.”
상순은 구들에 올라가 앉으면서 명호의 무릎에 앉은 애 머리를 쓰다듬어주면서 물었다.
“이 애는?”
“오, 얘는 간도로 들어간 맏아들 병수네 아들애야. 장손 말뚝이지.”
명호는 장손 말뚝의 머리를 쓰다듬으면서 중얼거렸다.
“우리 아버지 계시면 이 놈 증손들을 보고 얼마나 반가와 했겠어? 오래 계셨더라면 저 작은며느리 잔등에 업힌 둘째 증손 쇠뚝이까지 봤겠는데 말이야.”
상순은 한숨을 후 내쉬며 물었다.
“그래 병수형님네 아주머니는 잘 계십니까?”
“에이고, 저거 남정 찾는다고 용천 연대장을 찾아갔어. 헌데 용천 연대장을 어데 가 찾아? 부대에서 용천 연대장이고 병수고 통 말 안 해 줘. 혹시 나 해 허 사단장을 찾아간다고 서해안전선에 떠난 지도 이젠 달포도 됐는데 종무소식이야. 이 난세에 여자 몸으로 총알이 빗발치는 싸움터에 찾아가 헤매는 기여. 우리도 위험하지만 혹시 여기 오면 병수를 찾을까 해서 헤매는 기여.”
명호는 한숨을 땅이 꺼지게 내쉬었다.
상순은 의아해 한마디 물었다.
“아니, 고향이 살기 좋은 통영 한산 섬에 있다던데 여긴 병수 형을 찾으러 왔다는 말입니까?”
그러자 나이와는 달리 허리마저 구부정하게 휜 명호는 간신히 허리를 펴면서 말했다.
“그래. 아들 찾으러 싸움터 근처에 온 거야. 이전에 내 아버지와 함께 명천에 갔었다. 그런데 고모가 간도로 갔더라. 후에 아버님이 항상 고모를 외우다가 오누이의 생리별의 한을 품고 돌아가셨지. 맏이는 또 국군에 나갔지. 이전에 우리 일가도 간도로 가려고 했던 기여. 헌데 이 난시가 터져서 여기서 물앉은 기여. 이 마을에 와보니 우리 한산이씨 종친들이 많은 기여. 인심도 무지무지 좋고. 글케 이 마을에 물앉아 사는 기야. 아마 다시 고향 한산 섬에 돌아가야겠어. 여긴 조선인민군이 들어왔다 국군이 들어왔다 하면서 어찌나 톱질 하는 지 살기 어려워? 봐라. 너 중공군도 들어오지 않았나? 에이, 원 참.”
명호는 도리머리를 흔들었다.
상순은 가마에서 쌕 김이 뿜기는 것을 보고 군침을 꼴깍 삼켰다.
명호는 땅이 꺼지게 한숨을 후 내쉬었다.
“병수 그 놈은 무명고지에서 싸운 후 서울에 올라갔다는 말을 듣고는 이태 째 종무소식이야. 이 난세에 자손들을 건사하기도 힘들어. 그 놈이 어디에 살아 있으면 편지 한통이라도 보낼 거지. 자식을 기다리는 부모 맘 하나도 몰라. 불효자식 같은 놈.”
상순은 마음 한 구석에 병수 형을  붙잡아 총살당하게 한 일이 결리었다. 그러나 공산당원은 특수자료로 만든 강철전사라는데서 대의멸친한 처사를 후회하지 않게 됐다. 그는 숙였던 머리를 들고 바깥에서 흥수의 마른 기침소리가 나는 것을 보고 우쭐 일어났다.
“삼촌, 내 인차 떠나야 하겠습니다. 밥이나 한보자기 싸줍소.”
“그래. 이래 갈라지면 언제 또 볼가? 봐라. 넌 중공군이 되고 우리 병수는 한국군이 되지 않았나? 총부리를 마주 대고 싸울지도 누가 알아. 한심한 세월이지. 형제간에도 피를 봐야 하는 이 놈 전쟁? 에이구, 형제간에 맞불질하다  누가 죽겠는지 어떻게 알아?”
“밥이 적어 어쩔까요? 더 지어드리지요.”
영수 아내가 행주치마에 손을 닦더니 쌀 함박을 들고 고방으로 들어가려고 했다.
“아니, 제수, 그럴 새 없소. 밥을 얼마 지으면 100여명 배를 불리겠소?”
그 말에 영수는 “많이 왔군 그려.”라고 하며 아버지를 힐금 곁눈질하는 것이었다.
명호는 며느리에게 눈짓했다.
“쌀독에서 인심이 난다고. 이 난세에 쌀독이 푼푼해야 밥도 많이 지어주지. 있는 밥을 먼저 줘 보내라.”
      영수 아내는 함지에 밥을 퍼서 상순에게 주었다.
그러자 상순은 사양하지 않고 밥을 불룩하게 담은 함지를 안고 바깥으로 나왔다.
영수는 바깥까지 따라나와 말했다.
"내 형은 국군이지만요. 난 유격대에 들어 싸우고 있어. 근심하지 말고 가요."
"그래, 병수한테서 들었어."
상순은 이렇게 말하려다가 병수 일이 속에 걸려 목까지 올라온 말을 삼켜버렸다.
그런줄도 모르고 영수는 뒤따라오면서 계속 말했다.
"이 부근에는 미군과 괴뢰군들이 득실거려요. 혹시 그 놈들캉 맞붙을 수도 있는기여. 유격대를 불러다 엄호해줄가보다."
상순은 손사래를 쳤다.
"아니야. 우리 근심하지 말라. 괜히 신분을 폭로할게 있니?"
"괜찮아요. 형을 위해서라면 까짓 신분이겠어요?"
"그만둬라. 우린 곧 북상해 지원군 부대를..."
상순은 혀끝을 얼버무렸다.
(내가 어찌 영수를 믿고 이런 말까지.)
그는 후회하면서 명호 삼촌 일가와 석별의 정을 나누고 어둑어둑해진 바깥으로 나갔다.
흥수는 못 마땅한 눈길로 상순을 가로보더니 뒤따라 나온 명호네 일가를 경계심에 찬 눈길로 매섭게 쏘아보았다. 순간 명호도 반자동보총을 든 흥수를 노려보았다.
상순은 집안에서 있은 일이 드러날가 봐 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밥함지를 안고 바삐 자리를 떴다.
“젠장 밤중에 따발령 갈림길에 잘 못 들어서서 왕청 같은 데로 달려 왔군. 빨리 되돌아가야겠어.”
산을 넘는 그들의 뒤에는 석별의 정과 어둠이 반죽해 따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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