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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장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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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하소설 울고 웃는 고향(80)
2017년 09월 11일 16시 19분  조회:1760  추천:1  작성자: 김장혁



                               2. 압록강을 건너
어느 결에 동녘하늘이 희붐히 밝아왔다. 검푸르던 하늘이 어둠을 밀어내며 누름한 색을 띠기 시작하한다. 불그스럼한 고기비늘구름이 제법 은빛을 띠더니 먼 동산에 커다란 홍시 하나가 불쑥 떠올라 하늘가 산마루에 걸렸다. 그 빨갛게 타오르는 홍시 하나를 뜯어먹으려는 듯 빨갛게 타오르는 숱한 산마루들이 키 돋음을 하며 하늘로 치솟아 오르는 상 싶었다.
상순은 와닥닥 이부자리를 차고 일어났다.
“아야, 어느 새 날이 밝았군.”
명옥도 옆에서 금자를 안고 누워 있다가 일어나 금자를 업으면서 눈물이 글썽한 눈으로 남편을 마주 바라보았다.
“울지 마오. 여보, 아버지를 잘 모시고 애들 잘 키우오. 난 미제를 조선에서 다 몰아내면 마을에 돌아올 거요.”
“양, 천번만번 무사히 갔다가 돌아오오.”
명옥은 한 고향 동갑친구여서 남편과 항상 대등의 말투를 썼다. 상순은 그것이 허물이 없어 좋았다.
상순은 명옥이 업은 너부죽한 금자의 볼에 뽀뽀 해주었다.
“에이고, 이게 아들이면 얼마나 좋겠니?”
“다음엔 내 꼭 떡돌 같은 아들을 낳아 줄게.”
상순은 머리를 끄덕이었다.
사람의 팔자는 타고 난 것인가? 금자를 낳을 때 명옥은 이상한 태몽을 꾸었다. 한번은 명옥이 마을 회의에 갔다가 모범이 되어 고운 꽃 한 송이를 탔다. 그녀는 그 고운 꽃송이를 가슴에 안고 집으로 돌아왔는데 집에 와서 보니 이상하게도 꽃이 네모 번듯한 숫돌이 아니겠는가.
그 이상한 태몽을 꾼 후 금자가 품속에 날아들어 임신됐다. 그해 1952년 5월에 낳으라는 아들은 낳지 못하고 딸을 낳았던 것이다. 다음에는 꼭 아들을 낳으라고 상순은 넷째딸의 이름은 금자라고 지었다.
상순은 금자를 아들 대신 난 딸이라고 그리 고와하지 않았다. 그때 한 중이 지나가다가 상순이네 집에 와서 냉수 한 그릇을 얻어 마시고 상순과 명옥의 관상과 손금을 보고 이제 5년 후이면 이 집에 소가 밟아도 우글지 않고 하늘, 땅, 천재 신을 세 개나 업은 아들을 낳을 것이라고 예언했다.
기준은 그 말을 듣고 억이 막혔다.
“5년 후이면 며느리 마흔이 다 되는데 어떻게 애를 낳아? 손자를 보긴 다 틀렸구먼.”
명옥은 아들을 낳지 못한 죄책감에 가마 목에서 머리를 숙였다.
아들이 참군하는 날이 돌아오자 기준은 윗방에서 기침을 쿨룩거리면서 일어나 나왔다. 그는 생사를 기약할 수 없는 먼 길을 떠나가는 아들 앞에서 눈물을 보이지 않으려고 애썼다.
“장하다. 사내란 골기 있어야 해. 나라와 민족을 위해서라면 목숨도 버릴 수 있어야지. 이 놈의 전쟁이 언제면 끝나겠는고. 후-”
상순은 아침을 대충 먹 네하고 숟가락을 놓기 바쁘게 일어나더니 아버지에게 큰 절을 올렸다.
“예로부터 충신은 효자가 아니라고 했습니다. 허나 저는 충신은 효자로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효성도 할 줄 모르는 사람이 어찌 나라를 위해 충성하는 충신이 될 수 있겠습니까? 이 아들은 전쟁에서 승리한 후 마을에 돌아와 효성을 다해 아버지를 모시겠습니다. 편안히 계십시오.”
기준은 가슴이 아파 그저 머리만 끄덕이며 목이 꾹 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상순은 머리를 홱 돌리더니 바깥으로 나갔다.
촌공소 앞에는 벌써 마을에서 참군하는 청년들을 실을 트럭이 서 있었다. 상순은 성수, 흥수, 조개덕의 병수, 희수, 명사수 태수, 창걸, 창욱 등 청년들과 함께 트럭에 탔다.
지춘실은 트럭 위의 흥수를 쳐다보다가 마을 사람들에게 손을 흔드는 상순에게 눈길을 돌리면서 욕설을 퍼부었다.
“정말 호박 쓰고 돼지 굴로 들어간다. 야, 그 좋은 공안국장도 하지 않고 참군해 뭐 하니? 또 가겠으면 저 혼자 갈 게지. 남의 남편까지 끌고 생사를 모를 전쟁터에 갈 건 뭔가?”
"흥! 여편네라고. 원, 뭘 알아 떠들어대?"
흥수가 도리머리를 젓자 춘실은 버들잎 눈섭을 치켜올리며 눈까지 흘겼다.
"바보라구, 상순 밑에 졸개나 하나 더 보태줬지."
그러나 흥수는 춘실을 내려다보며 솟삿대질하며 고함쳤다.
"작작 두덜거려! 내 무슨 한뉘 상순이 졸개 될락꼬?"
춘실은 눈을 흘겼다. 
"별 상순보다 더 큰 벼슬 차례질 거 같소?"
흥수는 춘실이 아무리 두덜거려도 개의치 않고 딴 생각을 했다.
(쳇, 내 이제 전선에 나가 전공 세우고 상순보다 높이 승급해서 본때를 보여줄테야!)
그는 또 다른 엉뚱한 생각도 했다. 참군해 남으로 쳐나가다가 고향에 들러 헤어진 지 오랜 부모를 찾아보려고 들었던 것이다.
병완과 창준, 기준, 그리고 상길이, 상우, 상훈이, 설봉이, 동선이 몽땅 마을 사람들 속에 끼여 상순에게 손을 흔들며 환송했다.
트럭이 상순이네를 싣고 부르릉 하더니 앞으로 서서히 움직여 나갔다. 명옥은 금자를 업고 봉자와 금숙의 손을 잡고 먼지를 일구며 달려나가는 자동차 뒤를 따라 달렸다. 그녀는 금숙의 손을 놓고 눈물을 닦으며 멈춰 서 어깨를 들먹였다.
춘실도 해월의 손을 잡고 뒤따라 달려가며 흥수에게 손을 마구 흔들었다.
상순이네는 진수해에서 며칠 동안 신병교육을 받게 됐다.
그때 이계삼 부서기와 허영주 부현장이 진수해 신병훈련소에 와서 상순을 찾았다.
상순은 한창 신병들을 훈련시키다가 그만 두고 반갑게 맞이했다.
혀영주 부현장은 상순의 손을 잡고 아쉬워했다.
"상순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르겠소. 공안국장을 그만두고 참군하다니. 참,  원."
"남조선과 대만 특무들까지 싹 다 잡았기에 여기서 제가 할 일은 없습니다. 이제 우리 사회주의 조국을 지키고 조선인민들의 항미전쟁을 지원하러 나가야죠. 전선에 나가 미제 콧대를 꺾어놓고 싶습니다. 뭐? 세계에서 젤 강한 미군? 흥! 우리 조선 사람들의 매운 본때를 보여주겠습니다.."
이계삼 부서기는 상순이 이미 마음을 먹은 이상 어쩔 수 없었다. 그는 호주머니에서 종이쪽지를 하나 꺼내 상순에게 주었다.
"이걸 가지고 가오. 부대에 가면 상부에 바치고 조직배치를 받소."
상순이 받아 펼쳐보니 소개신이었다. 항상 자기를 돕는 입당소개인들이었다.
"감사합니다. 꼭 기대에 어긋나지 않게 싸워 공훈을 세우겠습니다."
이계삼과 허영주는 대견하게 상순을 마주보며 두 손을 굳게 잡아주었다.
상순은 전선으로 떠나기 전에 아내와 순자를 데리고 순자를 데리고 큰누님 어금이네 집으로 찾아갔다. 매형 경인과 누님 일가는 그들 세 식구를 반갑게 맞았다. 
경인은 맏손자 일웅을 보고 순자를 인사시켜야 하겠는데 어떻게 인사시켰으면 좋을지 몰라 망설였다. 순자와 일웅은 다 1944년생 동갑이었다. 그러나 일웅의 할머니는 순자의 큰고모여서 할머니 쪽으로는 순자가 일웅의 고모(아재)벌이었다. 그러나 할아버지 쪽으로는 순자의 어머니는 근덕(봉순)의 사촌누나이기에 순자와 일웅은 고모육촌오누이벌이 됐다. 나중에 어금이 나서서 애들이 부르기 편리하게 오누이로 치고 인사를 나누게 했다. 그런데 순자는 해옥을 아재라고 인사해야 했는데 어금은 어처구니 없어했다.
“순자야, 우리 해옥이 아홉 살이나 이상이니까 아재라고 해도 되고 언니라고 해도 돼. 이래라. 아버지 쪽 친척들 앞에서는 언니로 인사하고 외가 친척들 앞에선 아재라고 불러라. 얘들 촌수도 원, 쯧쯧쯧.”
상순은 처녀티가 완연한 해옥을 보면서 큰누나에게 물었다.
“해옥이 올해 몇 살이오?”
“열아홉 살이다.”
“오래잖아 시집가야겠구먼.”
어금은 생글방글 웃음 짓는 해옥을 가리키며 웃었다.
“저애 어렸을 때 어쨌는지 아니?”
해옥은 어머니 팔을 잡아 흔들며 어린애처럼 응석을 부렸다.
“엄마, 또 그 말을 하겠습니까?”
그러나 어금은 오래비 앞에서 계속 말했다.
“한번은 저 애를 보고 감자를 파오라고 했더니 어쨌는지 아오? 글쎄 호미를 가지고 가서 감자를 뿌리 채로 뽑아 들고 감자를 뜯어낸 후 되 심어놓지 않았겠소? 호호호.”
“엄마, 그만 말하오.”
해옥은 손으로 어머니 입을 마구 막았다.
어금은 머리를 뒤로 물리면서 계속 말했다.
“난 감자 밭에 가보고 깜짝 놀랐소. 집에 돌아와 난 ‘어떤 놈이 우리 감자를 뿌리 채 다 파갔다고 욕했지.”
어금은 하나 밖에 없는 딸의 볼을 살짝 꼬집는 시늉을 하면서 “요 놈 계집애 소행인 것도 모르고. 호호호.”라고 하며 웃었다.
그때 경인도 한마디 했다.
“에고, 한번은 저 애가 함박으로 쌀을 이는 게 너무 많이 흘린다고 쌀을 다 돼지 굴에 쏟아 던지라고 욕했지. 그런데 정말 쌀 함박을 들고 나가서 쌀을 돼지 구유에 쏟아 던지지 않았겠소. 허허허.”
“하하하.”
상순이네 내외간도 우스워 웃고 말았다.
그러나 해옥은 홍당무로 된 얼굴을 두 손으로 싸쥐고 고방에 들어 가 숨어버렸다.
그들 오누이는 온밤 이왕지사를 얘기하면서 밤이 가는 줄도 몰랐다.
이튿날 오전에 상순은 진수해역에 나가 부대를 따라 떠나게 됐다.
큰누님 어금과 큰매형 경인은 눈물이 글썽해 상순을 전선에 내보냈다.
어금은 막내오라버니 손을 꼭 잡고 “아무튼 조심해 무사히 돌아오너라.”라고 하며 뜨거운 눈물을 주르르 흘렸다.
상순은 역에 나가 순자를 꼭 안고 뽀뽀 해주면서 “엄마 말을 잘 듣고 공부를 잘 해라.”라고 당부했다.
순자는 두 볼에 눈물을 흘리면서 머리를 끄덕였다.
상순과 신병들은 벼 짚을 깐 낡은 화물차에 하나둘 올라갔다. 명옥과 순자는 눈물을 흘리며 화물차를 눈이 뚫어지게 여겨보며 손을 자꾸 흔들었다. 그러자 상순은 종이를 둘둘 말아서 훌 내뿌리더니 손을 저었다.
명옥과 순자가 그 종이를 주어 보는 사이에 화물차 문을 사정없이 쓰르륵 쿵 닫히더니 상순과 처자들의 시선을 가로막아버리었다.
“아버지!”
순자가 목 놓아 울며 손을 저었다.
화물차는 숱한 중국인민지원군 전사들을 싣고 처자들과 사정없이 갈라놓고 쿵쿵쿵 지심을 울리며 칙칙폭폭 전선으로 떠나갔다…
상순이 떠나간 후 마을에서 집 추녀 밑에 “영광스러운 군속”이란 패쪽을 걸어주었다.
허나 나그네 없는 상순이네 집은 말이 아니었다. 초겨울에 발라놓은 벽이 말이 아니었다. 기실 소똥과 흙이 벽에 얼어붙었다가 갈라 터져 하얀 서리 끼고 동기가 들어왔다. 집이 어찌나 추운지 명옥은 애들을 자기 배 위에 올려놓고 잘 지경이었다. 낮이면 기준과 명옥은 물을 끓여 흙을 이겨 집안에서 갈라터진 벽 틈을 바르고 또 발랐다. 그런데 금자가 오줌똥을 싸서 속내복도 입지 못하고 광목치마 바람인 명옥의 잔등은 오줌 똥물에 다 젖다 못해 얼음고졸이 질 지경이었다. 기준은 그 추운 겨울에 눈 덮인 소서구 골안에 올라가 쑥이랑 땔나무를 해 지고 돌아와 부엌에 내려가 불을 땠다. 그런데 구들 이곳저곳에서 연기가 어찌나 나오는지 온 집 식구들이 쿨룩쿨룩 콜록콜록 했다. 정말 추운 고생, 내군 고생까지 하면서 온 집 식구들은 언제면 추운 겨울이 지나가고 따뜻한 봄이 올까하고 고대했다.
어느 날, 너무 추워 불을 너무 많이 땠기에 그만 나무구새에 불이 달렸다. 다행히 기준이 제때에 발견하고 며느리와 함께 물독의 물을 퍼다 쳤기에 집에 불이 달리지 않았다.
한편 상순이네는 진수해에 가서 기차를 타고 심양에 가서 부대 편성을 받았다.
신병부대 수장은 상순이 바친 현당위 소개신을 받고 놀라움을 감추지 못하며 상순의 아래위를 훑어보았다.
"상순동지는 참 대단하구만, 항일전쟁 때 벌써 기관총을 잡고 일제와 싸웠고 해방전쟁 때 탱크를 몰고 토비들을 쓸어눕혔구만. 련지도원, 영장, 현공안국 국장까지 했구만. 우리 부대 영광이오."
"과분한 치하입니다. 이제 전선에 나가 꼭 새로운 공훈을 세우겠습다."
"좋소."
부대에서는 상순의 뛰여난 전투경험과 령도능력에 근거해 그에게 지원군 모부 영장으로 임명했다. 그런데 흥수는 까짓 반장을 임명했다고 입에 따발을 걸 지경이 돼 뒤에서 투덜거렸다.
"상순이 뭐 그리 내보담 대단해 영장을 시켜? 흥!"
이튿날, 상순은 신병영 장병들을 거느리고 기차를 타고 압록강 안에까지 달려갔다.
미군 비행기가 앵앵 날아와 압록강 바닥에 폭탄을 우박처럼 쏟아댔다.
꽈르릉 꽝꽝!
압록강 바닥의 얼음이 폭탄에 맞아 커다란 구멍이 벌집처럼 펑펑 뚫렸다.
흥수는 떡 서서 처음 흐릿한 하늘에서 날아다니는 미군의 쌕쌔기를 희구해 쳐다보며 구경했다.
"야, 저 무거운 쇠뭉치가 어떻게 하늘을 날아다녀?"
얭-
그때 미군 전투기 한 대가 아츠러운 소리를 내며 날아와 기관총 소사를 했다.
“엎뎌!”
상순은 달려나가며 흥수를 콱 밀치며 고함쳤다.
픽, 픽, 픽!
상순은 흥수의 몸을 덮으며 엎디었다. 그 바람에 흥수는 오른 팔에 부상당했다.
“흥수, 괜찮소?! "
"아니, 밀치긴 왜 밀쳐?! 그 바람에 몸뚱이에 구멍 날 번했잖아!”
상순은 흥수의 팔을 붙잡고 물었다.
“어디 상하지 않았소? 비행기 날아오는데 언제 비행기를 구경할 새 있소? 죽이자고 미쳐 날뛰는 적기 아니오? 에이, 참! "
그는 전투경험이 없는 흥수에게 내심하게 자세히 설명해주었다.
"이 답답한 친구야, 비행기나 포탄이 날아오면 엎뎌야 덜 상하오.”
"흥! 엎딘다고 안 상해? 죽을 놈은 죽어! 쳇!"
"아니오. 이후엔 비행기나  폭탄이 날아오면 꼭 엎디오. 폭탄은 땅에서 터지면 하늘로 올라가면서 더 넓게 퍼지오. 때문에 서 있으면 파편에 맞을 면적이 더 커지오."
상순은 흥수가 조선 땅을 밟기도 전에 오른 팔을 상한 것을 보고 도리머리를 흔들었다.
“위생원! 위생원!”
이윽고 위생원이 뛰어왔다.
“빨리 상처를 처치하오.”
“옛!”
이때 또 전투기 한 대가 미친 듯이 기관총 소사를 하면서 덮쳐들었다.
“개 같은 양키 놈 새끼 어디 덤벼라!”
상순은 옆에 엎드린 사수의 손에서 경기관총을 빼앗아 들더니 벌떡 일어나 덮쳐드는 전투기를 사격했다.
픽, 픽, 픽!
상순의 옆에서 얼음 쪼각이 툭툭 튕겼다. 상순은 아랑곳 하지 않고 전투기에 경기관총을 퍼부었다. 그 바람에 전투기는 날개가 벌집이 돼 꼬리 빳빳해 도망쳤다.
상순이 전사들과 함께 일어나 몇 걸음 걷지 못했을 때 또 전투기 몇 대가 편대를 지어날아 왔다.
저쪽에서 고사포와 기관총이 불을 토했다.
이때 상순은 우렁찬 목소리로 명령했다.
“적기를 향해 사격!”
중국인민지원군 전사들은 얼음판에 반드시 누워 기관총과 보총까지 하늘에 대고 불을 토했다.
적기 한 대가 꽁지에서 시꺼먼 연기를 뿜으며 남쪽하늘로 도망쳤다. 쿵 요란한 소리와 함께 적기는 먼 산에 처박혔다.
다른 전투기들은 동료가 추락하는 것을 보고 남쪽으로 도망쳤다.
“어, 내 원수를 갚았다!”
흥수는 오른 팔을 쳐들고 고함치다가 상처가 아파 오만상을 찡그리며 오른팔을 내리워 붙잡았다.
“빨리 도강하라!”
상순은 대안을 향해 팔을 휘둘렀다.
전사들은 은폐할데라고는 하나도 없는 강바닥을 재빨리 건너 조선 땅을 밟았다.
강 언제에 올라서자 상순은 한숨을 후 내쉬었다.
겨울의 토끼꼬리만한 해는 서산에 매달린 채 전운이 감도는 하늘에서 마지막 차디찬 빛을 뿌리더니 꼴깍 넘어갔다.
이튿날 이른 아침에 부대 장병들이 금방 아침 식사를 마치고 출발 준지를 할 때다.
찌프 한대가 먼지를 쌔뽀얗게 흩날리며 달려오더니 주둔지 마을에서 멈춰섰다.
찌프에서 뚱뚱한 수장과 경호원들이 내렸다. 알고보니 조춘성 사장이 상순을 찾아왔던 것이다.
그는 상순을 찾아낸 후 엄숙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김영장, 새로운 임무를 주겠소.”
“무슨 임무입니까?”
헌데 조 사장은 단도직입으로 말하지 않고 자꾸 에둘러 말했다.
“김영장은 지방에서 공안국장을 했고 항일전쟁 때부터 지하당원이었으니깐, 각오가 높다고 보오.”
상순은 심상찮은 감을 느끼면서 조 사장의 입에서 무슨 임무가 떨어질지 몰라 조급하기만 했다.
“무슨 임무인지 명령만 하십시오. 꼭 완수하겠습니다.”
조 사장은 상순의 어깨를 툭툭 치면서 말했다.
“난 김영장을 믿소. 사실 겨울이 닥쳐왔는데 전선에서는 겨울군복이 많이 수요되오. 상급에서는 김영장에게 후방 군복공장 공장장을 맡기기로 했소.”
“예?!”
상순은 자기 귀를 의심할 정도였다.
“나는 미군 양키 놈들과 통쾌하게 싸우자고 몇 천리 떨어진 이곳까지 달려왔습니다. 그런데 왜 군복공장에 있으라고 합니까?”
상순은 단통 머리가 텅 빈 듯이 뗑 해났다. 허나 그는 군인으로서 명령에 복종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상순은 조사장을 보고 두덜거렸다.
“그래 군복공장에서 아낙네들이나 영도하란 말입니까? 건 아낙네들이나 할 일이지.”
조 사장의 표정은 청석처럼 굳어 있었다.
“김영장은 한개 련 전사들을 영솔해 군복공장을 보위하고 재봉침을 수리하고 군복을 지어야 하오. 그리고 두개 련으론 군복을 전선에 호송해야겠소. 군복공장의 여성들이 재봉침으로 군복을 짓는데 워낙 동복은 두터워서 마선이 자주 고장 난다오. 동복을 전선에 제때에 보내는 사업도 최전선에서 싸우는 것보다 못지 않은 전투 임무요. 전선에서 우리 지원군 전사들이 동상을 입고 얼어 죽는 것을 차마 눈뜨고 볼 수 없소. 지금 미제와 남조선 괴뢰군들은 이른바 '교살전'을 벌리면서 날마다 밤낮 숱한 비행기를 파견해 우리 후방공급선을 폭격하고 있소. 그 놈들은 우리 후방에서 전선에 량식과 군복과 무기, 탄약을 제때에 공급하지 못하게 해 우리 지원군과 조선인민군을 굶어죽고 얼어죽고 무기와 탄약도 없어 제대로 싸우지도 못하고 몰살당하게 하려고 망녕되게 시도하고 있소. 그리하여 후근사령부 교통운송과 과장 조남기동지의 지시에 따라 우리 사에서는 특별히 동무네 영에 이 간고한 전투임무를 맡겼소. 김영장은 전투지휘경험도 있기에 군복호송임무를 훌륭히 완수하리라고 믿소.”
     상순은 새로운 임무를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었다.
“조 사장, 난 정말 총을 들고 싸우는 게 소원입니다. 허나 명령에 복종하고 새 임무를 꼭 완수하겠습니다.”
상순의 말에 조 사장은 머리를 끄덕였다.
"좋소. 김영장은 전선에 나가도 훌륭한 지휘관이 될 수 있지만 후방에서도 뛰어난 공장장으로 될 수 있다고 믿소.”
상순은 한숨을 후 내쉬었다.
한참 후 그는 조 사장에게 물었다.
“그래 우리 사는 몽땅 후방에 남습니까?”
조춘성 사장은 아주 엄숙한 표정을 지었다.
“양. 우리 사는 먼저 후방에서 군복도 짓고 군수물자를 전선에 수송하고 운송선을 지켜야 되오. 강을 건너면서 보지 못했소? 미군 비행기는 군수물자수송선을 차단하려고 여기까지 날아와서 무차별폭격을 감행한단 말이오. 지금 중국인민해방군 공군 비행대가  미제 적기를 혼빵내고 있소. 우리 공군 조선족비행사 리영태(리영태동지는 후에 중국인민해방군 공군 부총사령원, 중장으로 됐음.) 동지는  미군 비행기를 세대나 격추했다오."
"참 대단합니다!"
상순은 엄지를 내밀었다.
조사장은 손을 내흔들면서 뒷말을 이었다.
"미제는 2차 세계대전 때 독일과 일본 비행기를 수태 격추한 이른바 '왕패비행사'들을 우리 조선 상공에 파견해 폭격했소. 그 놈들은 천여시간씩 전투비행한 풍부한 비행기술을 가진 왕패비행사놈들이기에 개 잡은 포수처럼 우쭐거리면서 저공비행해 우리 군 수송선을 폭격하고 심지어 초가집도 놔두지 않고 폭탄을 내리전져 재더미로 만들었지. 그런데 우리 공군이 조선전쟁에 참가한 후부터 정황은 달라졌소.  리영태 등 나젊은 비행사들은 몇십 시간 밖에 비행한 경험하지 못한 비행사들이오. 그런데 안하무인이던 미공군 왕패비행사들이 글쎄 '햇내기" 비행사 리영태동지랑한테 련이어 격추당했소. 그후부터  미 USA  적기는 청천강 이북엔 드물어졌소. 아직도 드문드문 미제 공중날강도들이 여기까지 날아와 폭격을 감행하긴 하오. 그러나 그 놈들은 이전처럼 저공비행하지 못하다나니깐 폭탄명중률이 훨씬 낮아졌소.  여긴 아직도 전선이나 다름없소.”
상순은 머리를 끄덕이더니 점차 정서가 안정돼갔다.
조 사장이 돌아간 후 상순은 흥수가 든 집으로 찾아가 팔의 상처를 오줌으로 찜질을 해주었다.
그날로 조개덕의 창걸과 병수는 1련을 따라 전선으로  길닦이를 나갔고 한 마을에서 간 희수, 태수, 성수 등은 자동차를 몰줄 알았기에 2련과 함께 전선에 군복과 쌀을 운송하러 떠나갔다.  흥수는 팔을 상했기에 3련과 함께 상순을 따라 군용복장공장에 남게 됐다.
       흥수는 원래 참군해 전선에 나가 높이 승급해 상순과 춘실한테 본때를 보이고 싶었다. 그런데 상순이  참근하자마자 영으로 돼 300여명이나 지휘하는 걸 보고 맥이 탁 풀렀다. 그는 그제야 자기아 상순은 천양지차라는 것을  느끼기 시작한 것 같았다. 질투가 나도 별 수 없었다.
    (난 근본 상순의 적수가 아닌가베. 흥!)
    흥수는 원래 기회를 봐 고향에 나가 부모형제를 찾아보려고 작심했었다. 그런데 조선 땅을 밟기 전에 팔을 상하는 바람에 생각을 바꿨다. 그는 전선에 나가지 않은 것을 다행으로 생각했다. 지어 군복공장이고 뭐고 인차 집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에라, 고향이고 뭐고 다 몰라. 후방에 남아 살아남는게 요긴해. 글케야 함흥촌에 돌아가 처자캉(와) 만나지.)
       이튿날 상순은 한개 련 전사들을 데리고 산골에 자리 잡은 군용복장공장으로 갔다.
절벽 밑에 자리 잡은 학교 자리 군복공장 둘레에는 가시철조망이 촘촘히 늘어섰고 전사들이 대문 어귀에 삼엄한 경계를 서고 있었다. 군견 두 마리가 보초병들을 따라 공장 주위를 돌아다니면서 코로 흡흡 냄새를 맡고 있었다.
상순 일행이 군복공장 안에 들어가 보니 수십 명 조선 여성들이 동복을 짓느라고 숱한 마선 앞에서 눈을 뗄 새 없이 돌아갔다.
상순은 전사들과 군복공장의 여성들을 몽땅 공장 마당에 집합시켰다. 조선 여성들은 군인들처럼 줄을 맞춰 섰다. 
상순은 높직한 둔덕 위에 올라서서 간단히 연설했다.
“난 군복공장의 공장장으로 새로 부임돼 온 중국인민지원군 영장 김 상순입니다. 조선 여성동무들은 이제까지 전선보다 못지않은 동복 짓기를 했습니다. 이제부터 동무들은 나의 통일적인 지휘아래 재빨리 동복을 지어 전선에 보내야 하겠습니다. 동복을 전선에 제때에 보내는 사업도 최전선에서 싸우는 것보다 못지않은 전투임무입니다. 동복을 전선에 제때에 보내지 못하면 우리 전사들이 동상을 입게 됩니다. 총을 들고 전선에서 적들과 싸우는 것도 전투지만 동복을 짓는 것도 역시 아주 중요한 전쟁입니다. 여러분, 제때에 완수할 수 있겠습니까?”
“있습니다!”
뒤이어 조선 여성들은 우레와 같은 박수갈채를 보냈다.
어떤 여성들은 미목이 청수한 상순을 보고 쑤군거렸다.
"새 공장장은 미남이야.”
상순은 못 들은 척 하고 목청을 돋우어 고함쳤다.
“이후에 마선이 고장나거나 무슨 어려운 일이 있으면 나에게 보고하십시오. 우린 제때에 어려운 문제를 해결해 줄 것입니다.”
그 말에 여성들은 박수를 보냈다.
동원연설이 끝난 후 상순은 먼저 전사 둘을 시켜 마선 몇 대를 공장장 사무실에 가져오게 했다. 그날부터 공장의 기술자를 불러 전사들에게 마선 수리기술과 군복짓기기술을 배워주게 했다. 상순은 후에 마선수리를 잘 지도할 목적으로 전사들과 함께 학도공이 돼 마선수리기술을 참답게 배웠다.
      대부분 전사들은 인차 마선으로 동복을 짓는 일과 마선수리에 달라붙게 되였다. 그리하여 세개 조로 나눠 한개 조에서 8시간씩, 밤낮 24시간 교대해 재봉침(로어로 마선)을 세우지 않고 동복을 지었다. 그리하여 창고에는 그들이 지은 동복이 눈에 뜨이게 산더미처럼 쌓여갔다.
상순은 전사들을 데리고 수시로 공장주위를 돌면서 검사했고 전시이기에 밤이면 항상 등불관제를 강조했다. 등불이 환하게 켜지면 미군 전투기의 폭격을 당할 수도 있었다. 허나 전선에서 동복이 급히 필요 됐기에 미군 폭격기가 오지 않으면  전사들과 여성들이 낮에 이어 온 밤 석유등잔불을 밝히고  동복을 지었다.  상순은 전사들을 데리고 고장 난 재봉침을 손질했다.
밤장막은 절벽아래 공장을 두텁게 뒤덮어주었고 공장안에서는 바깥과는 달리 희미한 석유등잔불 밑에서 밤중까지 마선이 돌아가는 소리가 고르롭게 들리었다.

                                          3. 군복공장

    동녘하늘이 희붐히 밝아오자 상순은 일찍이 일어나 전사들과 함께 식전 군사훈련을 했다.
식당 아줌마들은 밥 지으러 식당으로 가면서 쑤군거리었다.
“저 김 공장장은 세귀눈에 독살이 있어.”
“너무 미남자야.”
“반했어?”
“호호호.”
그녀들은 깔깔거리며 웃다가 그만 쏘아보는 상순의 세귀눈을 보자 혀를 홀랑 내밀고 선불 맞은 노루들처럼 황급히 식당에 달아 들어갔다.
상순은 식당에 들어가 쌀독과 물독을 일일이 열어보고 누르스름한 입쌀을 한줌 쥐었다 스르르 쌀독에 쏟아 넣으면서 중얼거렸다.
“이런 묵은 쌀을 먹고 어떻게 열 몇 시간씩 일해? 흥!”
상순은 식당 주임 허영희를 불러 물었다.
“어디서 이런 쌀을 가져 왔소?”
허영희는 앞치마에 손을 싹싹 닦으면서 “그저 군부대에서 실어오는 대로 받아 두었어요.”라고 대답했다.
상순은 세 귀 눈을 부라리면서 호통쳤다.
“식당 주임이면 쌀을 잘 검사해보고 받아놔야지. 재봉공들이 위탈이 나면 어쩌오? 철 모르내기는 살아도 때 모르내기는 못 사오.”
허영희는 눈뿌리 빠지게 비평받고 몸 둘 바를 몰라 쩔쩔 맸다.
이때 밖에서 부르릉부르릉 엔진 소리가 났다. 상순이 바깥으로 나와 보니 때마침 성수가 쌀을 트럭에 싣고 왔다.
상순은 성수의 옆 좌석에 앉은 책임자에게 눈길을 돌렸다.
“쌀을 검사하고 부리겠소.”
식당에서 허 주임도 나와 동을 달았다.
“전번에 어쩜 그런 쌀을 가져 왔어요? 재봉공들이 그런 쌀을 먹고 배탈이 나면 어떻게 해요?”
“어쨌다고 오자마자 이 야단들이오?”
“우리 공장에 새로 온 김 공장장이오.”
책임자는 깐깐한 상순에게 불쾌한 눈길을 보냈다.
상순은 어느 새 트럭 바곤에 올라가서 쌀 주머니를 풀고 쌀을 쥐여 보았다. 또 어떤 마대에는 또 누런 쌀이 들어 있었다.
상순은 전사들을 시켜 쌀 마대를 일일이 풀어보면서 좋은 쌀만 부리어 식당에 들여갔다.
후근 책임자는 눈이 동그래졌다.
“아니, 절반 넘어 되돌려 보내면 우리 몇 번 더 실어 와야겠소?”
그 말에 상순은 “누가 이런 쌀을 실어 오라던가?”라고 하며 가라고 손을 바깥쪽으로 내흔들었다.
책임자는 난처해 뒷덜미를 긁적거리었다.
“전선에서는 그런 쌀은커녕 물도 제대로 마시지 못하는데 후방에서 배부른 타령을 하다니?”
“뭐라오?”
상순은 트럭에서 뛰어내려 책임자의 멱살을 틀어쥐고 흔들었다.
“너 이놈, 군부대나 집안이나 흥하려면 쌀독과 물독을 꽁꽁 좋은 걸로 채워야 해. 공장에 썩은 쌀을 보내 항미원조 전쟁을 파괴할 예산인가?”
그제야 책임자는 머리를 숙이며 연신 “알았습니다. 다음부턴 좋은 쌀을 여기에 보내겠습니다.”라고 했다.
상순은 그래도 눈알을 데굴데굴 굴렸다.
“아직도 내 말을 제대로 알아듣지 못했어? 전선에나 여기나 나쁜 쌀을 공급해선 안 돼!”
상순은 성수에게도 사정 두지 않고 독기어린 세귀눈을 흘겼다.
“자식, 다음번에 뜬 쌀을 가져와봐라. 아줌마들을 시켜 바지를 벗길 테야.”
허영희와 식당 아줌마들이 손으로 입을 가리며 키득거렸다.
운송 책임자는 트럭에 올라 성수를 보고 빨리 차를 몰아라고 했다.
성수는 가면서 차창 밖으로 손을 흔들었다.
“상순아, 너 좋겠다. 꽃밭에 들어앉아서.”
성수는 트럭을 몰고 새뽀얀 먼지를 일구며 달아났다.
그 후부터 성수와 운송책임자는 다시는 식당에 나쁜 쌀을 실어오지 못했다.
식사 때마다 상순은 병사들과 재봉공 여성들이 먼저 식사하게 하고 제일 마지막으로 해 식당에 들어서곤 했다. 진짜 고생은 앞장서 하고 향수는 제일 마지막에 하는 당원다웠다.
허나 김 공장장이 온다 하면 허영희 주임은 눈치를 흘금흘금 보다가도 그의 사발과 접시에 밥과 채를 넘치게 푹푹 퍼주었다. 상순이 세귀눈으로 피끗 곁눈질해 보면 허영희는 새하얀 이발이 다 드러나게 웃으며 맑은 눈길을 보내군 했다.
상순은 밥을 먹으면서 어쩐지 자꾸 허영희 해말쑥한 얼굴과 풍만한 가슴에 자꾸 눈길이 가게 되는 것을 어쩔 수 없었다.
(제길, 남들은 전선에서 목숨 내걸고 싸우는데 후방에 들어앉아 쓸데없는 궁리를 하다니.)
그는 자기도 모르게 쓴 웃음을 지으며 도리머리를 흔들었다.
여성들은 모두 하얀 이밥을 먹게 된 후부터 상순을 존경하게 됐다.
“이전에 뜬 쌀밥이 얼마나 맛이 없었니?”
“야. 지금 밥은 정말 풀이 있는 게 맛있어.”
“다 저 미남자 덕분이야.”
여성들은 상순을 칭찬하다 못해 나중에 인물 평가까지 해댔다.
“우리 김 공장장 진짜 미남이야.”
“얼마나 사내답게 생겼냐.”
“저런 신랑 만난 색시도 꼭 예쁠 거야.”
“두 말 하면 잔소리죠.”
그때 흥수가 “에헴!” 마른기침을 하며 뒷짐을 지고 다가갔다.
여성들은 힐끔힐끔 곁눈질 해보더니 말을 뚝 끊었다.
“사담 작작 하고 부지런히 동복을 지어.”
흥수가 지나간 후 여성들은 턱을 쳐들고 혀를 한발씩이나 내둘러댔다. 그녀들은 작달막한 흥수는 상순과는 달리 별로였다. 힐끔거리는 외까풀 눈만 봐도 싫어했다. 물을 뿌린 듯이 조용하던 직장이 또 여기저기서 보글보글 끓기 시작했다.
“저 이 반장 색시 꼭 미울 거야.”
이때다.
“일하지 않고 뭘 하오?”
어데서 날아 내려온 듯이 상순이 나타났다.
“범이 자기 흉을 하면 온다고.”
처녀애들은 혀를 홀랑 내밀더니 머리를 폭폭 숙이었다.
공장안이 다시 조용해지고 대신 마선을 돌리는 소리가 절주 있게 들렸다.
공장장 사무실에 돌아온 상순은 턱을 고이고 양미간을 찌푸리더니 번개같이 속궁리를 돌렸다.
(감독만 해선 안 되겠어. 재봉공들의 사상교양을 해야지.)
쉼 시간에 상순은 200여명 재봉공여성들을 10개 반으로 나누고 10명의 반장을 선출했다.
상순은 반장들과 하나하나 개별담화를 한 후 반장회의를 열고 엄숙하게 말했다.
“반장 동지들, 동지들은 모두 우리 복장공장의 골간들이오. 우리 군복공장의 여중호걸들입니다. 동지들, 자기 반의 학습과 노동, 기율을 책임지고 잘 관리할 것을 명령합니다. 잘 관리할 수 있겠습니까?”
“옛!”
“좋습니다. 난 여기 있는 10명 반장 동지들을 믿습니다. 이제 우린 달마다 생산총화를 짓고 우수한 자는 표창하고 후진들에게는 사상공작을 해야 하겠습니다. 어떻습니까? 신심이 있습니까?”
“있습니다.”
“좋습니다. 전체 회의를 합시다. 몽땅 마당에 집합하십시오.”
“옛!”
여성노동자들은 10개 반으로 나뉘어 군인들처럼 줄을 지어 섰다.
공장장 상순은 그녀들 앞에 나서더니 다음과 같이 사상동원을 했다.
“군복공장 전체 동무들, 정말 수고 많습니다. 전선에서 우리 장병들은 목숨 걸고 미제 양키 놈들과 싸우고 있습니다. 전선에서 우리 전우들은 소대가리도 얼어서 탁탁 틸 추운 겨울에 동복을 급히 입어야 됩니다. 우리가 하루 빨리 동복을 보내면 우리 전우들이 하루 덜 얼고 미제를 더 호되게 족칠 수 있습니다. 우린 총포성이 들리지 않는 전선에서 싸우고 있습니다. 언제 뉘네 남자가 어떻고 색시가 어떻고 잡담을 할 새 있습니까?”
이때 여성들 속에서 키득키득 하는 소리가 들렸다. 그때 반장들이 매서운 눈길로 그녀들을 쏘아보자 손으로 입을 가리고 머리를 숙였다.
상순은 계속 연설했다.
“동무들은 나라와 인민군대가 부여한 사명감을 안고 분초를 다퉈 동복 한 벌이라도 더 빨리, 많이 지어야 합니다. 상급 후근부문에서는 동무들의 수고를 알고 새하얀 햇입쌀과 맛 나는 채소도 보내왔습니다. 우린 대소한이 돌아오기 전에 동복생산전투임무를 완수해야겠습니다. 완수할 수 있습니까?!”
“있습니다!”
그녀들의 대답소리는 우레와 같이 우렁차게 울려 퍼졌다.
“나는 동무들이 꼭 완수하리라고 굳게 믿습니다.”
우렁찬 박수소리가 울려 퍼졌다.
대회가 있은 후 복장공장은 눈뜨이게 기율이 짜이고 생산열정이 하늘을 찌를 듯이 올라갔다.
상순은 재봉공들의 생활을 개선해 줘야겠다고 생각하고 허영희와 흥수를 불렀다.
영희는 상순의 세 귀 눈과 마주 칠까봐 머리를 다소곳이 숙이고 공장장 사무실에 들어섰다.
“모두 거기 앉소.”
흥수와 허영희가 맞은편에 자리를 정하고 앉자 상순은 세귀눈으로 그들을 마주보며 말을 꺼냈다.
“재봉공들이 하루에도 열대여섯 시간씩이나 일하는데 좀 영양보충을 시켜야겠소. 재봉공들이 쓰러지면 이제 일주일 안에 군복생산임무를 어떻게 완수하겠소?”
“예? 거 참 아량 있는 생각인데요.”
상순은 마른기침을 “에헴.” 했다.
그러자 영희는 상전 앞에서 실례한 것 같아 혀를 홀랑 내밀었다.
“강 건너에 가서 식량과 고기붙이라도 얻어 와야겠소.”
“예?”
상순은 대답 대신 머리를 끄덕이었다.
상순은 자리에서 일어나며 “이 일은 우리만 알아야 하오.”라고 했다.
“예. 알았습니다.”
이윽고 흥수와 허영희가 전사 넷을 데리고 들어왔다.
그날 오전 아홉시쯤 되자 성수가 트럭을 몰고 와서 입쌀과 생 배추를 부리었다.
상순은 흥수와 전사들을 데리고 계획대로 성수가 모는 트럭에 앉아 강 건너로 달려갔다.
상순은 비위장판이었다. 강 건너 마을 집집마다 돌아다니면서 쌀을 동냥 하듯이 얻어냈다. 다른 마을에 가서는 금방 건립한 초급합작사 돼지우리에 돼지가 우글거리는 것을 보고 200근은 실히 될 돼지까지 얻어 트럭에 실었다.
점심때 그들은 웃음주머니가 흔들흔들해 성수가 모는 트럭에 앉아 귀로에 올랐다.
그들이 깎아지른 절벽 밑의 산굽이를 에돌아 금방 강바닥에 들어섰을 때다. 갑자기 하늘에서 얭- 요란한 소리와 함께 미 전투기가 네 대나 날아왔다.
“적기다! 빨리 트럭에서 내려 피신하라!”
상순은 고함치며 옆에 앉은 허영희의 손을 쥐고 트럭에서 뛰어 내렸다. 한참 달리다가 언제의 커다란 콘크리트도관 안에 들어가 납작 엎드렸다.
폭탄이 강바닥에 떨어져 작렬하며 폭음이 귀청을 째지게 때렸다. 파편이 쌩쌩 날아와 도관 벽을 쳤다. 상순은 허영희를 품속에 꽉 끌어안고 위에 엎드렸다.
꽈르릉! 꽝! 꽝!
요란한 굉음과 함께 언 흙덩이들이 도관 앞뒤 구멍을 꽉 막아 버렸다.
순간 도관 속은 칠흑처럼 온통 새까맣게 돼버렸다. 상순은 몸을 벌떡 일으키며 손 더듬을 해보았다. 그런데 뜻밖에 그만 영희의 뭉글뭉글한 젖가슴이 손에 닿았다. 상순이 덴겁한 듯 황급히 손을 빼려는 순간 영희가 상순의 손을 꼭 잡았다. 상순은 전기에라도 붙은 듯이 황급히 손을 빼갔다. 그런데 이번에는 영희가 상순을 꼭 껴안고 놓지 않았다.
“허 주임, 허 주임!”
“예.”
“상한데 없소?”
“예. 김 공장장이 몸으로 뒤덮어준 덕분에. 김 공장장은 저의 구명은인이죠.”
“우린 여기서 빨리 나가야 하오. 오래 있으면 공기가 희박해 위험하오.”
“예.”
상순은 어둠 속에서 몸을 돌려 영희를 뒤로 물리고 들어오던 쪽을 손으로 흙덩이들을 파헤치기 시작했다. 한참 단말마적으로 파고 또 파니 시원한 냉기가 도관 속으로 불어 들어왔다.
“이젠 살았소. 이제 한참 파노라면 바깥이 나지겠지.”
그런데 영희는 뒤에서 상순을 꼭 껴안으면서 “좀 쉬십시오.”라고 했다.
“뭐 하는 거요?”
“누가 보는가요?”
“보지 못해도 그렇지. 난 처자가 있는 나그네란 말이오.”
“누군 처녀구먼요.”
상순은 영희의 팔을 뿌리쳤다.
“그럼 더욱 근신해야지. 우린 당원이 아니오?”
“당원은 사랑도 모르는가요? 전 첫눈에 사내다운 당신한테 반했는데요.”
상순은 흙을 파헤치면서 두덜거렸다.
“나를 어떻게 보고 이러는 거요?”
“우린 여기서 죽을 수도 있어요? 난세에 언제 죽을지 어떻게 알아요? 후회 없이 살지요. 전 당신과 함께라면 여기서 죽어도 괜찮을 거 같아요.”
“허 주임, 정말 천만뜻밖이오. 남편 보기 미안하지 않소?”
“저의 남편은 전선에서 희생됐어요. 자기 수하의 생활을 좀 관심해주면 안 돼요?”
“…”
“영웅도 미인관을 넘지 못한대요. 음충한 눈길로 노리다가도 정인군자인 척 하긴. 호호호.”
"입 다물지 못해?”
"픽!"
"이 흙덩이나 받아 뒤에 쌓으라고."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상순은 갈구리 같은 손으로 흙덩이와 돌덩이를 억척스레 파서 뒤로 넘겼다. 뒤에서 영희는 그 흙덩이들을 또 자기 뒤에 쌓아올렸다.
또 한참 지났다. 도관 밖에서 부르짖는 소리가 들렸다.
“김영장! "
"허 주임!”
“살았소. 허 주임, 우린 살았단 말이오.”
상순은 중얼거리다가 높이 고함쳤다.
“우리 여기 갇혔소!”
“아, 여기 있구만. 김영장, 허주임도 그 안에 있소?”
“양, 흥수, 빨리 우릴 파내오.”
“양, 빨리 파 낼게!”
바깥에서 왁작거리며 흙덩이를 치우는 소리가 들렸다.
한참 후 바가지만한 구멍이 펑 뚫렸다. 눈보라 치는 압록강 바닥이 내다보였다.
"살았구나!"
상순과 허영희는 끝내 도관 속에서 기여 나왔다.
“야, 우린 당신들이 잘 못 됐는가 했소.”
흥수와 성수는 상순을 끌어안고 어린애들처럼 풍풍 뛰었다.
상순은 사위를 두리번거리더니 트럭이 없는 것을 보고 황급히 물었다.
“트럭은? 쌀과 돼지는 어쨌소? 상한 동무들은 없소?”
성수는 강 건너를 손가락질 했다.
“누구도 상하지 않았소. 트럭은 내 저 강 건너 안전한 곳에까지 몰아다 피신시켰소.”
상순은 손을 홱 저었다.
“빨리 강을 건너기오. 또 적기가 날아오겠소.”
그들은 재빨리 뛰어 눈 덮인 강바닥을 건너가 쌀과 돼지를 실은 트럭을 몰고 쏜살같이 군복공장으로 질주했다.
돼지가 트럭 위에서 겁기 띤 껌정눈깔로 전사들을 쳐다보며 꿀꿀 울어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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