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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장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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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하소설 울고 웃는 고향(39) 첫사랑
2016년 04월 20일 08시 57분  조회:2123  추천:0  작성자: 김장혁



                           8. 첫사랑

       잔설도 여기저기 지저분하게 널려 땅을 지지누르다가  자취를 감추었다.  비단결로 얼굴을 만지는듯한 부드러운 봄바람이 산들산들 불어왔다. 이젠 땅에 누기  잘 들어 농사꾼들이 밭갈이를 하고 희망의 씨앗을 뿌릴 설레는 농사철이 다가왔다.
      기준은 상우와 상순을 데리고 토성안집 동남쪽으로 가서 새 집터에 괭이로 기초돌을 놓을 구덩이를 팠다. 창준과 상훈, 상길도 괭이와 삽을 메고 왔다.
      “형님, 밭갈이나 하러 갈 게지. 다 여기 오구 밭갈이는 어쩌오?”
      기준이 반겨 맞으며 하는 말에 창준은 “괜찮아. 제꺽 기둥과 가시오나 세워 놓은 후 밭갈이를 하지 뭐.” 하고 말하면서 괭이로 기초를 풍풍 팠다.
      상길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자꾸 패랑천산 앞쪽을 흘끔흘끔 건너다 보는 것이었다.
      “앗!”
      상길은 비명소리와 함께 발을 감싸 쥐고 구덩이 안에 물앉았다.
괭이 날이 그만 발을 빗 찍었던 것이다.
기준이 다가가 상길의 손을 치우고 발을 들여다보았다. 살가죽이 찍혀 피가 질벅하였다.
“제꺽 흙을 닦아버리고 오줌을 눠라.”
기준이 하는 말에 상길은 인차 일어나 구덩이에서 나와 저쪽으로 갔다.
창준은 한숨을 후 내쉬면서 “정신이 복잡한 게 발을 찍지 않을 수 있소?” 하고 중얼거렸다.
기준은 형님을 건너다보면서 “무슨 일이 있었소?” 하고 물었다.
창준은 괭이질을 멈추고 한숨을 토해냈다.
“어제 동불사의 웬 중놈이 와서 쓸데없는 소릴 쳐놔서 그러오.”
“무슨 말을?”
기준의 물음에 모두들 괭이질을 멈추고 창준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돌도 안 된 설봉을 가지고 글쎄 굿을 하라고 하지 않겠소. 그래서 그 중 말대로 둘째며느리가 설봉을 안고 패랑천산 서쪽 멍지뫼산 앞에 갔소.”
기준은 “어떻게 굿을 한단 말이오?” 하고 황급히 물었다.
창준은 대수롭잖게 말하였다.
“설봉은 집안을 망하게 할 수도 있고 흥하게 할 수도 있는 애라오. 그래서 멍지뫼산 앞에 가서 애를 풀밭에 놓고 빙 돌아가면서 불을 싸지르라고 했소. 애가 타 죽으면 액운을 없앨 게고 죽지 않으면 이 집안의 기둥이 될 애기에 잘 키우라오.”
“그게 무슨 소리요? 조카 간지 오래오? 당장 설봉을 안아오기요.”
기준은 괭이를 버리고 패랑천산 쪽으로 막 떠나가려고 하였다. 그러자 상길이가 말리였다.
“삼촌, 이젠 설봉은 다 타 죽었을 게요.”
“아니야. 그럴 수 없어. 일루 희망이라도 있으면 가봐야 해.”
기준의 말에 상순도 맞장구를 쳤다.
“무슨 놈의 개똥미신? 형님이 그 발로 언제 가겠소.”
상길은 절뚝거리면서 상순을 앞세우고 패랑천산 쪽으로 반달음 쳐 갔다.
그들이 헐금씨금 종주먹을 쥐고 달려 칼산 앞으로 갔을 때었다. 멍지뫼산 앞 버드나무숲 속에서 삼단 같은 연기가 하늘을 찌르면서 뭉게뭉게 피어올랐다.
“설봉아~!”
상길은 손을 하늘로 쳐들고 다리를 절룩거리며 멍지뫼산 앞으로 달려갔다.
“하느님, 설봉을 살려주오!”
상순은 상길보다 더 빨리 앞으로 씽 달려 나갔다.
그런데 웬 일일까? 활활 타오르는 불길에 깜짝 놀라 우뚝 멈춰 섰다. 중의 말대로 불을 놓고 뒤도 돌아보지 말고 자리를 떠나던 상길의 처 련옥도 그 자리에 멈춰 섰다.
아니, 글쎄 괴상하게도 활활 타오르는 불길은 보에 싸서 놓은 설봉을 삼키지 않고 빙 둘러 피하면서 풀밭을 불태우고 있지 않겠는가.
활활 타오르는 불길 속에서 설봉은 “응아~” “응아~” 하고 울고 있었다.
상길은 황급히 불길 속에서도 타죽지 않은 설봉을 와락 끌어안고 달아나왔다.
“설봉아!”
련옥은 상길의 품안에서 설봉을 빼앗다시피 와락 끌어안고 볼에 볼을 대면서 뜨거운 눈물을 흘리었다.
“보오. 설봉은 액운아 아니라 우리 집안을 지킬 기둥감이오.”
상길의 말에 련옥과 상순은 머리를 끄덕였다.
련옥과 상길이 설봉을 번갈아가면서 안고 상순과 함께 패랑천산 앞에 이르렀다.
맞은편에서 창준과 기준은 상훈과 상우와 함께 마중 나왔다.
“설봉이 살아 돌아왔구나.”
창준은 기뻐 잃을번 했던 맏손자를 끌어안고 기뻐 어쩔 줄 몰라 하였다.
창준과 기준은 어느 새 함흥촌 어귀에 이르렀다. 온 집안 식구들이 소문을 듣고 몽땅 마중 나왔다.
“어디 보자, 우리 설봉을.”
후증조모는 설봉을 안고 볼을 매난졌다.
“네 놈은 불길 속에서도 살아남았으니 천명이로구나. 설봉인 하늘이 내린 애로다.”
그 덕담에 모두들 머리를 끄덕였다.
상길은 언제 얼굴에 그늘이 졌나 시피 봄기운이 넘실거렸다.
수월 할머니는 후시어머니한테서 설봉을 받아 안고 볼을 맞추더니 련옥에게 안겨주었다.
“이젠 중놈이건 신선이건 누구 말도 듣지 말고 설봉을 집안 장손으로 잘 키우게.”
“예.”
련옥은 설봉을 받아 꼭 껴안으면서 뜨거운 눈물을 줄 끊어진 구슬처럼 줄줄 흘렸다.
련옥이 설봉을 안고 시할머니와 시어머님을 모시고 집으로 들어갔다. 아녀자들은 설봉을 안고 놀다가 점심준비에 맴돌아쳤다.
창준과 기준이랑은 다시 토성 동쪽 새 집터로 돌아와 일하였다.
한참 일하는데 뒷집 지군선이 “에헴.” 하고 건 가래를 떼면서 괭이를 들고 오면서 인사하였다.
“성남집과 앞뒤 집으로 살게 됐구먼.”
기준은 인차 “양, 이웃사촌이라고 우리 화목하게 살기요.” 하고 인사를 받았다.
군선도 기초 구덩이를 파자 기준은 말리였다.
“밭갈이나 할 게지. 우리 일손만 해도 되오.”
군선은 기준의 팔을 밀면서 “야 따, 이웃사촌이라고 앞집에서 살 양반네 집을 짓는데 모르는척 해서야 되오?” 하고 계속 팠다.
기준은 더 말리지 않았다.
이때 상순이가 힐금 곁눈질해보니 뒤집 지씨네 정지 문이 살며시 열리면서 치렁치렁한 쌍태 머리채가 드러났다.
찬찬히 여겨보니 집안에서 춘실이 문을 열고 가만히 자기를 보다가 문이 삐꺽 닫기는 것이었다.
왕 왕 왕!
황둥개는 낯선 사람들을 향해 대가리를 쳐들고 자지러지게 짖어댔다. 허나 상순을 보자 꼬리를 휘저으면서 다가와 끼깅거리면서 상순의 바지를 주둥이로 마구 들췄다.
“지개!”
황둥개는 한발 물러서면서 이상한 눈길로 상순을 쳐다보는 것이었다.
상순은 황둥개와 뒤집을 흘끔흘끔 곁눈질하였다. 정지 문이 또 살며시 열렸다가 삐꺼덕 닫기는 것이었다.
상순은 전날 버드나무숲속에서 춘실과 만나 사랑을 나누던 일을 떠올리자 싱숭생숭해나 괭이질이 잘 되지 않았다.
눈치를 차렸는지 기준은 “에헴.” 하고 건 가래를 뗐다.
“어떻게 바라 다녔으면 개 꼬리를 다 흔들 지경이야?”
그는  세귀눈으로 상순을 가로보면서 중얼거렸다.
“내 종아리를 분질러놓지 않는가 봐라.”
상순은 목을 움츠렸다. 그러나 그것도 그때뿐이었다.
“종아릴 분질러 놓으면 누가 아버지를 도와 집을 짓고 농사를 짓겠습둥? 또 이담 누가 아버질 모시겠습둥?”
“이 놈 새끼, 주둥이를 다물지 못할까?”
상순은 아버지를 마땅찮은 눈길로 바라보며 입에 빗장을 질렀다.
이때 지학사가 숱한 가병들을 끌고 토성안집에 나타났다. 그는 일본 놈들의 토벌 때 반 너머 무너진 토성과 타버린 토성안집을 두루 돌아보더니 개화장을 휘두르면서 이쪽으로 다가왔다.
그 놈은 기초돌을 놓고 있는 기준이랑 둘러보더니 개화장을 휘둘러대며 고함쳤다.
“누가 함부로 여기에 집을 지으라 했어?! 집단부락 촌장인 내 허락도 없이 촌공소 옆에 집을 짓다니!”
기준은 허리를 펴면서 지학사를 쏘아보았다.
“자넨 패랑천촌에 있지 않는가. 함흥촌 땅이 자네 땅인가?”
“허 허 허. 그래 네 땅이냐?”
기준이 머뭇거리자 지학사는 우쭐거렸다.
“조선에서 굴러온 거지 같은 놈들아, 여기서 밥술이라도 얻어먹고 살겠으면 이 어른께 복종하란 말이야. 누가 여기다 함부로 집을 지으라 했어?!”
그 소리에 상순은 눈에 불이 이글거렸다. 그는 허리를 펴더니 괭이로 땅을 꽝꽝 찍었다. 당장 지학사에게 괭이라도 휘두를 것만 같았다.
일촉즉발의 순간, 기준이 상순의 괭이를 빼앗아 치우면서 눅잦히라고 눈치 했다. 상순은 억지로 참느라고 괭이를 되찾아 짚고 서서 황소숨을 씩씩 몰아쉬었다.
지학사도 눈에서 불덩이가 뚝뚝 떨어질 지경인 상순을 보고 겁을 집어먹고 가병들 쪽으로 몇 발자국 물러섰다. 가병들은 사태의 위험성을 느낀지라 사냥총이며 검을 거머쥐고 주인 옆에 바싹 붙어 서서 이쪽을 노려보았다.
지학사는 우쭐해 장황설을 늘여놓았다.
“지금 누구 세상인 걸 알고 덤벼? 대일본제국은 너희들의 조선을 통 채로 삼킨 후 동북에 만주국을 일떠세웠다. 지금 관내로 승냥이들처럼, 아니, 호랑이들처럼 쳐들어갔다. 우리 만족들은 만주국 땅을 되찾고 주인이 됐다. 난 함흥촌과 패랑천촌을 통합한 대일본제국의 집단부락 촌장이란 말이야. 내 허락 없이 집을 져? 조선 망국노 신세에 언감 이 어른과 맞서?”
“숱한 땅을 두고 여기다 집을 짓지 못한다는 건 무슨 심보인가? 이전에 송사에 진 승풀인가?”
“어, 허, 허허허. 네 놈들이 내 돈을 몇 십 원 쓰고 발편잠을 잘 것 같아? 어, 험.”
지학사는 건 가래를 뗐다.
“이 토성 안에 모범집단부락 촌공소를 재건할 예산이야. 그런데 너희들이 토성 밖에 돌아가면서 집을 지어선 안 돼. 절대 안 돼!”
그때였다.
어느새 나탔는지 장학사가 장충국이랑 데리고 나타났다.
“형님, 어떻게 돼 왔소?”
지학사가 알은체를 하였지만 장학사는 성을 발칵 냈다.
“내 기준이네 여기에 집을 지으라 했다. 동생은 왜 자꾸 여게 와 이래?"
지학사는 억이 막혀 입을 헤 벌린 채 한식경이나 아무 말도 하지 못하였다. 기준은 장학사의 손을 잡으면서 인사하였다. 상순은 한숨을 후~ 내쉬었다.
개화장을 휘두르면서 서성거리던 지학사는 한참 후에야 할 말을 겨우 찾은 듯이 지껄여댔다.
“형님은 이 놈들을 뭘 보고 집을 지으라고 땅까지 주면서 이러는 거요?”
장학사는 지학사 코에 대고 삿대질하였다.
“이 놈아, 개를 쳐도 집주인을 보고 쳐라. 이 경칠 형제가 소서구에 얼마나 많은 황무지를 개간해 내게 줬는지 아니?”
여기서 왁작거리자 숱한 마을사람들이 모여왔다. 숱한 사람들을 둘러보던 지학사도 자존심을 지키려고 뒤로 물러서지 않았다.
“형님, 황무지개간은 개간이고 개인 은정에 얽매어 대일본제국의 지시를 어겨? 대일본제국에선 토성안집자리에 촌공소를 지으라고 했소. 토성 밖에 이렇게 지저분하게 집을 지으면 되는가?"
장학산은 누그러들기는커녕 기세 등등해났다. 그는 지학사 낯에 대고 손가락질하면서 욕설을 퍼부었다.
“너 이 놈아, 쩍하면 일본 놈들을 등에 업고 우쭐거리지 말라. 일본 놈들이 촌장이나 시키니 어째 벌써 조상이 누군지도 다 잊어버렸어? 일본 놈 앞잡이. 흥! 전번에도 말했지만, 토성안집은 내가 양아들에게 지어준 집이야. 인삼이 갔으면 내 집이지. 촌공소를 세운다는 건 강도행위야. 인삼한테서 기별이 왔는데 토성안집을 경칠에게 주라고 했어. 토성안집을 줄 대신 내 경칠을 보고 여기에다 집을 지으라고 했지. 그런데 어째 아침부터 와서 지랄이야?”
지학사도 자기 외사촌 형이 노발대발하자 어찌는 수가 없어 졸개들을 데리고 자리를 뜨면서 두덜거렸다.
“형님도 너무 그러지 마오. 유격대에 쌀을 대준 양아들을 믿고 우쭐거리다가 언제 큰 코 다치지 않는가 보오. 대일본제국에서 주는 밥이나 순순히 먹고 조용히 사는게 좋을 게오.”
“자식, 그것도 말이라고 주둥이질 해?”
장학산은 꼬리 빳빳해 토성 안으로 들어가는 지학사 뒤 잔등에 대고 손가락질하면서 계속 고래고래 꾸짖었다.
“네놈이나 순순히 중국 사람으로 살아라. 일본 놈들의 코개 되지 말구. 흥!”
장학산은 기준의 어깨를 다독여주면서 호언장담했다.
“경칠이, 일없어. 여긴 몽땅 우리 조상들이 대대손손 살아온 고장이네. 누가 감히 막아. 흥! 우리 밭이나 잘 가꾸게나.”
그는 마른기침을 하며 “소작료는 몽땅 8할로 바치게나. 으흠.” 하고 마구잡이를 해댔다.
(몽땅 승냥이들구나. 생각하는 척 하면서 벼 게를 주구 살까지 도려가려는 수작이니. 원.)
기준은 속이 알알하였다. 그래도 집이라도 짓게 하니 다행으로 생각됐다.
장학산은 창준을 돌아다보며 말했다. 
“자네도 작은 아들을 세간내겠으면 저 토성안집 뒤에 짓게나. 내 허락했네.”
마을 사람들은 여기저기서 수군거렸다.
종달새 지종, 지종 우는 봄날, 천지꽃산에 뻐꾸기마저 와서 뻐꾹뻐꾹 울어댔다.
상순은 송지주네 둥글 소를 빌어다가 가대기로 밭을 한창 갈아 번지고 있었다. 갓 갈아 번져 놓은 누르스름한 흙에서는 훈훈한 흙냄새가 풍겨 올랐다. 기준과 상우가 상순의 가대기를 따라가면서 괭이로 구멍을 파면 사련과 새금이, 금옥이가 따라 나가면서 옥수수 알을 떨궈 넣고 발로 파묻은 후 꽁꽁 다져놓았다.
그들은 장학산이 소작료를 한심하게 8할이나 받아가려고 했지만 새 해 봄에도 부대를 많이 일궈 부지런히 일하면 입에 풀칠이라도 할 수 있으리라는 희망으로 가슴이 부풀어 올랐다. 소작농사군들의 희망은 바로 이러하였다. 그들은 땅에 모든 희망과 목숨을 내걸고 땅에 얽매여 부지런히 일해 연명하려고 아득바득 애를 썼다.
전번 달 말에 기준 등은 기초돌에 기둥이라고 대충 세워놓고 지붕틀을 올리고 가로세로 나무대기를 대고 수수 대와 벼 짚으로 에를 얽어 흙으로 벽이라고 발랐다. 뒤이어 총망히 그 초가삼간집에 들었다. 집을 다 짓자 그들 온 집식구들은 봄 파종에 달라붙었다.
괭이질하는 기준과 상우의 가슴과 잔등에는 땀이 흥건히 배 있었다. 상순도 열세 살부터 가대기 질 해왔지만 한참 가대기 질 하더니 잔등이 땀벌창이 대버렸다. 그는 밭갈이를 하면서도 혹시 장백산 항일유격대를 찾아 소왕청쪽으로 들어간 인삼 아저씨가 찾아오지나 않았는가 하여 드문드문 천지꽃산 나무숲을 살피였다. 그러나 애나무 사이에 연분홍색진달래가 탐스럽게 피어있을 뿐 사람의 그림자도 얼씬거리지 않았다. 혹시 봄바람에 마른 나무가 우수수 흔들려도 인기척이 나나 살펴보아도 아무도 없었다.
상순은 밭갈이를 하면서 동쪽밭머리로 나와 가대기를 서쪽으로 돌려대면서도 혹시나 하여 석현지 쪽으로 하여 춘실이 네가 일하는 쪽을 흘끔흘끔 건너다보군 하였다. 춘실도 부모 뒤를 따라가면서 씨앗을 심으면서 드문드문 허리를 펴고 이쪽을 바라보았다. 상순은 아버지를 흘끔 곁눈질해보니 괭이질하자 춘실 쪽에 대고 손을 흔들어보였다. 그러다나니 그만 가대기가 빠져나와 밭이랑 밖으로 빗나갔다.
“뭐 해? 쯧쯧쯧, 가대기질이나 온전히 하지 못하고. 흥!”
어느새 눈치 챘는지 기준은 괭이질하다가 상순을 흘겨보았다.
“이 놈새끼, 다시 저 춘실을 만나봐라. 종아리를 분질러놓겠다.”
상순은 묵묵히 가대기질을 하였다.
속으로는 두덜거렸다.
(어쩜 아버진 저렇게 인정사정 돌보지 않을까? 내 춘실을 좋아하면 데리고 살게 할 게지. 내 원 어떻게 한뉘 이렇게 가대기질이나 하면서 살겠니? 큰아버지랑 있는 장백산유격대에 들어가 버릴까?)
상순은 머리를 들어 저쪽 장백산 쪽 하늘을 바라보았다.
(춘실을 데리고 산에 들어가 살면 어떨까? 산에서는 부모 허락이 없어도 마음에 드는 춘실과 살 수 있는 곳이 아니겠는가?)
“이라!”
상순은 애꿎은 소 엉덩이만 회초리로 짝 갈겼다. 그는 밭갈이를 하면서 복잡하게 생각을 굴렸다.
(그래도 어찌 부명을 거역할 수 있겠는가?)
상순은 땅이 꺼지게 한숨을 후 내쉬었다.
밭갈이를 한 쉼 하고 쉴 때에도 상순은 회초리로 밭머리의 풀을 툭툭 치면서 계속 어떻게 하면 아버지를 설득해 춘실과 살 궁리를 하였다.
(옳지, 명옥과 약혼하기 전에 손을 써야지.)
온 하루 밭갈이를 하면서 상순은 궁리를 하고 또 했다.
집으로 돌아와 모두들 저녁이라고 천정이 들여다보이는 죽물을 후루룩 들이마셨다.
상순은 고방 농짝에 미리 감춰놓은 숯 검댕이와 누런 기름종이 장을 가만히 꺼내 호주머니에 넣고 바깥으로 나왔다.
동산마루에 구리바라 같은 보름달이 두둥실 떴다.
상순은 이영 밑에 숨겨둔 마른 물고기를 한줌 꺼내 쥐고 울바자 안으로 해 뒤집 쪽으로 돌아갔다. 흘끔 들여다보니 뒤 집에는 희미한 등잔불이 켜져 있었다.
왕 왕 왕!
뒤 집 황둥개가 짖어대면서 앞으로 뛰어왔다.
집 안에서 춘실의 아버지가 “지개!” 하고 개를 말리는 소리가 났다. 상순은 마른 물고기를 황둥개한테 뿌려주었다.
황둥개는 끼깅거리면서 뒤로 몸을 탈면서 물러섰다. 황둥개는 땅바닥에 떨어진 물고기 쪽으로 달려가 코로냄새를 맡더니 끼깅거리면서 물고기를 물고 뒤 집 마당 쪽으로 가서 먹어댔다.
상순은 황둥개에게 물고기를 쥐어 보이면서 “꼬독꼬독~” 하고 나직이 불렀다.
황둥개는 끼깅 하며 꼬리를 휘저으면서 상순한테 달려왔다.
상순은 물고기를 꺼내 황둥개에게 뿌려 줬다. 황둥개는 좋아라고 먹어댔다. 상순은 숯 검댕이로 누런 기름종이에 볼 견(见)자를 써서 쪽지로 접어 제꺽 황둥개의 귀구멍에 꽂아 넣었다.
상순은 황둥개의 대가리를 슬슬 쓰다듬어주면서 물고기를 실컷 먹였다.
뒤이어 황둥개에게 “집으로 가라.” 하고 조용히 말하면서 개 배를 집 쪽으로 밀어냈다.
황둥개는 끼깅거리면서 가기 싫어하면서도 자기 집쪽으로 돌아갔다. 상순은 춘실이가 나오기를 아래 목에서 애타게 기다렸다.
황둥개는 두 앞발 사이에 주둥이를 파묻고 앞집 울안에서 떠나가지도 않고 물고기도 주지 않는 상순을 한참이나 바라보더니 갑갑하였든지 낑낑거리었다.
이때 집안에서 춘실의 아버지가 “지개! 누가 온 모양이다. 황둥개 자꾸 끼깅거린다. 나가 봐라!” 하고 말하였다.
“예.”
춘실의 대답소리가 나더니 정지 문이 살며시 열렸다.
“지개! 어째 자꾸 짓니?”
춘실은 개를 말리면서도 개가 보는 앞집 쪽을 흘끔 내다보았다. 그러나 손은 인차 개의 귀 구멍부터 더듬었다. 정말 종이쪽지가 있었다. 그녀는 글을 몰랐지만 숯검댕이로 누런 기름종이에 그어놓은 한자를 보았다.
춘실은 종이쪽지를 치마폭 밑에 잘 감추고 황둥개 대가리를 쓰다듬으면서 앞집 쪽을 눈 빗 질 했다.
이때 앞집 울안 아래쪽에서 기침소리가 났다. 기침소리 나는 쪽에 달빛 아래 훤칠한 사내가 손을 젓고 있는 것이 피뜩 보였다.
이윽고 앞집 상순은 뒤울안을 빠져 나오더니 토성 안 집 쪽으로 걸어가는 것이었다. 춘실은 집안에 가물거리는 등잔불빛을 곁눈질하더니 발끝걸음으로 살금살금 집 마당을 벗어났다. 그는 황둥개를 데리고 달빛 속에서 치마 자락을 팔락이면서 토성 밑으로 사라졌다.
보름달빛은 유난히도 휘영청 밝게 마을 서쪽 태평강 가의 버드나무숲속을 비추었다. 달빛을 가린 아름드리버드나무숲 속에서 상순은 춘실을 꼭 껴안았다.
“춘실이, 난 춘실을 좋아하오.”
“야, 누가 몰라?”
춘실은 부끄러워 고개를 숙였다.
“저는 날 좋아하오?”
“이젠 몇 번 물었소?”
“그래도 오늘 밤엔 꼭 말하오.”
춘실은 부끄러워 한쪽으로 머리를 돌리면서 머리를 끄덕였다.
“고개만 끄덕이지 말고 말하오.”
“양. 딱 말해야 아오?”
상순은 춘실을 더 꽉 껴안으면서 재촉하였다.
 “그렇소. 꼭 대답하오.” 
“딱 어린애 같다. 우리 서로 사랑한들 무슨 소용이 있소?”
“그런 쓸데없는 맥 빠진 말을 하지 말고 얼른 대답하오.”
춘실은 고개를 숙이고 상순의 귀 간지럽게 가까이 대고 조용히 그러나 아주 명확하게 속삭였다.
“사랑하오. 친애하는 내 상순이.”
상순은 기뻐 춘실의 볼에 살짝 뽀뽀 해주었다.
“우린 서로 사랑하오. 하늘이 보고 땅이 증명하오. 오늘부터 우린 정식 부부로 되였소.”
춘실은 새된 소리를 지르면서 상순을 밀어냈다.
“무슨 소리요? 이걸 놓소.”
상순도 춘실을 놓으면서 되물었다.
“우리 둘이 서로 사랑하는데 어째 부부가 못 된단 말이오?”
춘실은 격분해 몸까지 바르르 떨었다.
“부모가 동의하지 않았는데 어떻게 부부오?”
상순은 한숨을 후 내쉬었다.
“아, 옳소. 춘실이, 우리 아버진 우리 결혼 허락했소.”
“뭐? 곧이들리지도 않소. 들으니 저네 아버진 거 명옥과 결혼하라고 했다면서?”
“누가 그래?”
“사촌언니한테서 들었소. 누굴 속여?”
“우리 아주머니? 쓸데없는 소릴.”
상순은 한숨을 푸 몰아쉬더니 둘러댔다.
“양, 이전엔 그랬소. 그런데 춘실이 명옥보다 인물체격이 낫소.  그래서 가시부모를 모시겠다구 했소. 난 근본 명옥이란 사돈 새기 마음에 들지 않소. 음식은 먹기 싫으면 뒀다가 먹어도 돼도 녀자는 마음에 들지 않으면 어떻게 한뉘 억지로 살겠소. 난 춘실이 아니면 살지 않겠다구 했소.”
춘실은 거짓말 절반 진말 절반 하는 상순의 말에 귀가 솔깃해졌다.
“그래 나중에 아버진 별수 없어 나와 당신의 결혼을 허락했던 게요. 이제 저네 부모만 동의하면 되오.”
상순은 춘실을 빼앗기기라도 할까봐 꽉 껴안으면서 물었다.
“저네 아버지와 엄만 동의하오? 우리 둘은 서로 첫사랑이란 말이야.”
춘실은 끌어안은 채 열기가 이글거리는 말을 토하는 상순이 겁났다.
“이걸 놓고 천천히 말해.”
춘실은 손으로 상순의 껴안은 팔을 풀려고 무등 애를 썼다.
“대답하기 전엔 놓지 않을테야.”
춘실은 막무가내여서 상순에게 안기운채 머리를 끄덕이면서 조용히 말하였다.
“우리 부모는 진작 허락했다니까.”
“양? 정말?”
“그럼.”
상순은 자기 귀가 믿어지지 않았다. 순간 보이지 않는 끈이 그들을 한데 꽁꽁 묶어놓는 상 싶었다.
상순은 어찌나 기뻤든지 춘실을 번쩍 들어 둘러메더니 몇 바퀴 빙빙 돌렸다.
“내려놔. 누가 듣겠소. 후엔 황둥개 귀에 쪽지를 넣지 마오. 우리 아빠한테 들키면 큰일이오.”
상순은 춘실을 내려놓았다.
“그럼 어떻게 저를 불러내겠소? 금옥을 보내도 안 되고.”
춘실은 다소곳이 숙였던 고개를 들었다.
“뻐꾸기 우는 소리를 내면 내 나갈게.”
“좋소.”
말수가 적던 상순은 오늘 따라 말이 많아졌다.
“하여간 우리 아주머니를 봐도 그렇고 저네 지씨네는 수단이 좋소.”
“이제야 알았소?”
뒤이어 상순은 춘실의 어깨에 두 손을 얹더니 아주 정중하게 말하였다.
“우리 오늘 달밤에 진짜 부부 연을 맺는 게 어떻소?”
“어떻게?”
“다 큰 처녀애가 남자, 여자 하는 거 몰라?”
“모를 소리?”
“모르면 차자 배우면 돼.”
상순은 춘실의 허리를 껴안고 아름드리버드나무사이로 비껴드는 달빛을 저벅저벅 밟으면서 어둠속으로 사라졌다.
“이걸 내려놔.”
달빛아래 버드나무 숲속에서 춘실이 두 다리를 바둑거리며 애원하는 소리가 가냘프게 들릴 뿐이었다.
어디에선가 뻐꾸기가 밤의 정적을 깨우면서 뻐꾹뻐꾹 노래하고 있었다. 버드나무들도 흥겨워 훈훈한 봄바람에 가지를 흐느적이며 설레고 있었다. 은쟁반 같은 보름달도 보기 송구스러웠던지 얇은 고기비늘구름 속으로 하얀 얼굴을 숨겨버렸다.

                                        9. 뻐꾸기 뻐꾹뻐꾹

이상한 일이였다. 둬달 동안 해가 지기만 하면 토성 밑에서 뻐꾸기 뻐꾹뻐꾹 우는 소리가 자주 들리었다. 뻐꾸기 뻐꾹뻐꾹 우는 소리가 나기만 하면 춘실은 정신없이 바깥으로 나갔다가도 한식경이 넘어서야 돌아 오군 했다.
춘실의 어머니는 대개 짐작되는데 있었지만 모르는 척 했다.
사실 춘실은 상순이 약속대로 뻐꾸기 울음소리를 내기만 하면 암호를 듣고 바깥에 나가 어둠을 타 상순과 만나 열연하곤 했던 것이다.
이날 저녁에도 춘실은 뻐꾸기 울음소리가 뻐꾹뻐꾹 울리기 바쁘게 바깥으로 나갔다. 그녀가 토성 밑 버드나무 아래로 가보니 상순은 뭔가 쥐고 있었다.
춘실은 가까이 다가가 “건 뭐요?” 하고 물었다.
상순은 “버들채발이오. 우리 집에서도 채발을 놔서 고기를 잡으러 간다면 의심하지 않을게 아니고 뭐요?”
춘실은 “참 묘수구먼요.” 하더니 버들가지를 촘촘히 엮어 만든 채발을 보고 아주 희귀해 했다.
“이걸로 물고기를 잡을만 할까?”
상순은 채발을 둘러메더니 “글쎄 나를 따라오기만 하오.” 하고 앞에서 씨엉씨엉 걸어 나갔다. 춘실은 종종 걸음 쳐 따라나섰다.
그들은 은빛달빛을 밟으면서 버드나무숲을 지나 태평강가에 이르렀다.
달빛이 강물에 쏟아져 은파가 부시고 있었다. 인기척에 놀란 새들이 여기저기 버드나무가지에서 푸르릉푸르릉 날아났다.
상순은 바지를 걷고 물에 들어가더니 강가의 진흙을 두 손으로 쑥쑥 파다가 강물 한쪽을 막았다. 춘실도 치마 자락을 걷어안고 강가에서 여기저기 돌아다니면서 자그마한 돌을 주어다가 상순을 도와 강물을 막았다. 한참 후 그들은 버들채발을 강물에 걸었다. 채발에 떨어지는 물소리가 귀맛 좋게 들리었다.
상순은 여기저기 가서 버드나무가지를 낑낑 꺾어다가 채발 가까이 강가에 제법 그럴듯한 버드나무 오두막을 지어놓았다.
상순은 어두커니 서있는 춘실을 보고 “아직 날씨가 싸늘하오. 막 안에 들어가 앉기요.” 하고 버드나무 오두막을 가리켰다.
춘실은 상순과 함께 둘이 들어가 나란히 앉았다. 상순은 춘실의 허리를 꼭 껴안았다. 춘실은 몸을 상순한테 기대면서 얼굴을 상순의 얼굴에 대고 살살 비비였다.
고르로운 소리를 내며 채발로 흐르는 강물에서는 수천만 개의 금싸락이 눈부시면서 출렁이며 흐르고 있었다.
“오늘 밤 달이 밝기도 하지?”
춘실의 말에 상순도 웃기였다.
“왕자와 왕후가 태평강 가에 온 게 밝지 않을 수 있소?”
춘실은 깔깔깔 웃어댔다.
“당신은 왕자, 난 왕후? 그래? 참 듣다가 귀 맛 좋은 말이군요.”
“장차 우린 아들 다섯에 딸 열을 낳아 기르기요.”
“어마나~ 누가 그렇게 낳아 준다 했겠군요?”
“어째 낳지 않겠단 말이오? 저네 부모를 보오. 저와 여동생 딱 둘을 낳으니 어떻소? 형제도 없고 얼마나 외롭소?”
“하긴. 수태 낳았다가 어떻게 먹여 살리겠소?"
춘실은 한숨을 호 내쉬었다.
“난 돈을 많이 벌어 공부도 하고 자식들도 수태 낳아 기를 예산이오.”
춘실은 어이없어했다.
“지금 죽물도 제대로 못 먹는 신세에 언제?”
상순은 춘실을 꼭 껴안으면서 희망에 차 말했다.
“전번에 산에 들어가서 우리 큰아버지와 토성안집 인삼 삼촌이랑 만났소. 항일유격대를 만났단 말이오. 그들은 일본 놈들을 몰아내구 가난한 사람들이 땅의 주인으로 되는 나라를 세운다오. 그때면 밥 먹을 근심 없이 잘 살수 있소.”
춘실은 도리머리를 가로 저었다.
“되지도 않을 소릴. 토성안집을 보오. 어떤 인삼인데 일본 놈들의 토벌에 배겨내지 못하고 달아나지 않았소? 그런 일에 삐치지 말고 우리 세간살이나 잘 할 궁리나 하오.”
상순은 계속 흥미진진해 말했다.
“큰아버지와 인삼 삼촌 말씀이 옳소. 손바닥만 한 땅도 없이 중국 지주 놈들의 눈치를 보면서 소작농사만 지어서야 언제 허리를 펴고 살겠소? 유격대를 따라 총을 들고 일본 놈들을 몰아내야 우리가 진정 땅의 주인이 될 수 있단 말이오.”
춘실도 동감했다. 
“하긴, 우리 집에서도 올해 보리고개를 어떻게 넘겠는지.  근심이 태산 같소.”
상순은 춘실의 허리를 꽉 껴안으면서 슬쩍 시탐해보았다.
“우리 장백산에 들어가 유격대에 들까? 거기엔 몽땅 일본 놈들과 싸우는 항일투사들만 있단 말이오. 거기에서는 서로 마음이 맞고 사랑만 하면 함께 살수 있단 말이오.”
춘실은 도리머리를 가로저었다.
“딸이 산으로 들어가 총을 쥐고 달아 다니면 우리 아버지, 엄마는 어쩌오?”
춘실은 허리를 끌어안은 상순의 팔을 풀면서 세차게 몸부림쳤다.
“다신 유격대 말을 하지 마오. 계집애가 총칼을 들고 어떻게 그 독사 같은 일본 놈들과 싸운다고 그러오? 요즘 어째 몸이 불편해 근심이 태산 같은데. 어디로 간다고 그러오?”
상순은 갑갑해 춘실의 두 어깨를 쥐여 마구 흔들었다.
“우리 큰엄마와 진달래, 은녀는 모두 여자가 아니오? 그들은 백두산 밀림에서 빼앗긴 나라를 되찾으려고 일본 놈들과 싸운단 말이오. 황차 전 여동생 은실이 있지 않소? 그들은…”
춘실은 막에서 마구 발버둥질치며 땅바닥을 탕탕 굴러댔다.
“말 말라니까. 난 아녀자야. 나를 낳아준 부모를 두고 산으로 들어가지 못한다. 절대 가지 못해.”
상순은 춘실과 혁명 말을 해선 안 되겠다는 것을 느끼고 춘실을 놓고 담배를 꺼내 말아 붙여 물었다.
그는 담배연기를 길게 빨아 후 토해냈다. 속 탄 마음이 연기로 타 번지며 봄밤을 곤혹스럽게 했다.
이때 철렁 소리에 뒤이어 채발 안에서 툭, 툭툭 어지러운 소리가 났다.
“물고기 뛰어들었어.”
상순은 춘실을 안고 있다가 놓고 채발 곁으로 다가갔다. 그는 손으로 채발 안을 더듬더니 달빛에 번뜩거리는 물고기를 잡아내 미리 준비해놓은 버들가지에 꿰였다.
“허허, 손바닥만 한 게 서너 놈이 내렸구먼.”
이윽고 상순은 채발 옆에 다가온 춘실의 앞에 손바닥만 한 모래무치며 버들치며 쑥 내밀었다.
“이걸 가져다 가시아버지를 대접하오.”
 “당신은 빈손으로 어떻게 집으로 들어가겠소?”
상순은 강물에 손을 씻으면서 “좀 기다리면 물고기가 채발을 채우지 않나 보오.” 라고 했다.
춘실은 달빛에 물고기 뀀을 쳐들고 보았다.
“호호호, 희구하다야. 이 물고기로 물고기 탕을 끓여 대접하면 우리 아버지 반가워하겠다.”
“사위 덕에 잘 자시라고 하오. 나를 사위를 삼아보오. 이제 가시부모 호광을 하지 않는가? 얼마나 든든하겠소? 우리 처제도.”
“은실은 당신보다 더 센 신랑한테 시집가지 않는가 보오.”
상순은 개의치 않고 “빨리 가보오. 엄마 속이 타겠소.” 하고 재촉했다.
춘실은 기뻐 어쩔 줄 몰라 했다.
“고맙소. 내 신랑.”
상순은 춘실의 허리를 껴안고 원두막 안으로 들어갔다.
상순은 춘실의 얼굴에 뽀뽀를 하려고 서둘렀다.
춘실은 상순을 살짝 밀어냈다.
“왜 또 이래?”
상순은 달빛을 빌어 정색하는 춘실의 새까만 두 눈동자를 들여다보면서 물었다.
“안 되오? 우린 부부나 다름없잖소? 이젠 한두 번도 아닌데.”
“가만있소. 물고기 뀀을 저기 놓고 내 말 듣소.”
상순은 춘실의 따뜻한 허리를 안았던 팔을 스르르 풀면서 물었다.
“어째 후회되오?”
춘실은 흐트러진 쌍태 머리를 바로잡아놓으면서 조용히 말했다.
“결혼 전에 자꾸 이러는 게 아니오. 아직 부모의 허락도 받지 못했는데 자꾸 이러다가 망신하면 어쩌오? 부모한테 봉변당하지 못해서. 안 되오. 이젠 그러지 말기요.”
상순은 한숨을 후 내쉬더니 호언장담했다.
“근심 마오. 우리 아버지 허락했으니까. 우린 조만간에 결혼하게 될 게요. 그저 내 하자는 대로 하오. 그럼 만사대길이오.”
춘실은 그래도 상순을 밀어냈다. 그러나 어찌 힘깨나 쓰는 사내가 달려드는 것을 막겠는가.
훈훈한 봄바람에 태평강 가 채발 옆의 버드나무 오두막이 세차게 몸부림쳤다. 태평강은 사랑의 노래를 세차게 부르며 남으로, 남으로 사품 치며 흐르고 있었다. 채발에는 물고기들이 뛰어들어 푸덕, 푸덕 뛰 논다…
밭에 옥수와 조를 다 심자 기준은 상우와 상순를 데리고 소서구 남쪽 천지꽃산 산마루 쪽으로 올라가면서 괭이로 황무지를 부지런히 개간했다. 키 넘는 나무도 뿌리를 파고 어깨로 떠밀면 뿍뿍 뽑혀나갔다. 어느새 상우와 상순의 베적삼은 땀에 질벅하게 젖었고 온 몸이 땀벌창이 돼버렸다. 땀은 열어젖힌 앞가슴과 팔에서 줄줄 흘러 내렸다.
괭이로 아무리 찍어도 사발 통만 한 마른 나무뿌리가 끊어지지 않자 상순은 팔을 걷고 나서더니 괭이로 뿌리 쪽을 푹푹 찍어 파냈다. 한참 파내자 큰 뿌리가 다 드러났다. 상순은 제일 실한 뿌리를 찍어내려고 괭이로 탁 찍었다.
“앗!”
괭이로 뿌리를 빗 찍으면서 그만 상순의 발목을 빗 찍었다. 상순은 발목을 잡고 상을 찡그렸다. 발목을 잡은 손가락 사이로 뻘건 피가 흥건히 괴어 나와 누런 흙에 뚝뚝 떨어졌다.
“빨리 오줌을 찍힌 발목에 쏴라. 조상들이 물려준 지혈약이야.”
상순은 바삐 괴춤을 까고 발목에 대고 오줌을 누었다. 순간 오줌을 맞은 상처에서 피가 더 흐르지 않았다.
“오줌이 명약이로구먼.”
상우는 주의해가면서 괭이질해 마른 나무뿌리를 찍어냈다.
“물러나오.”
상순은 형님을 물려치우고 뿔뚝뿔뚝한 팔로 나무 밑 둥을 휘감아 쥐더니 허리를 쭉 펴면서 “끙” 하고 힘을 썼다. 마른 나무는 통 뿌리 채로 뿍 뽑혀 나왔다.
“에이, 이렇게 피를 흘리면서 황무지 밭을 개간해 장지주네 좋은 노릇이나 하겠다. 참, 땅도 없는 이런 소작농사꾼 질을 어느 때까지 해야 하오?”
“별수 있니? 부지런히 황무지라도 개간해야 입에 풀칠을 할 게 아니냐?”
상순은 손으로 얼굴에 흐르는 땀을 닦으면서 황소숨을 몰아쉬었다. 이윽고 그는 먼 산을 쳐다보면서 땅이 꺼지게 한숨을 내쉬었다.
봄 파종이 끝나고 황무지도 꽤 많이 개간한 후 기준은 상우를 불러 창준 형님을 모셔오게 했다.
이윽고 창준이가 위방에 들어와 위 자리에 앉았다.
“형님, 상순도 이젠 열아홉 살인데 혼사를 질질 끌 필요 없소. 오늘 택일을 해서 사돈어른께 보내기요.”
창준은 하얀 수염을 쓰다듬더니 “좋소. 좋은 날을 택일을 해야지.” 하고 대답했다.
그런데 상순은 자리에서 훌쩍 일어나가 버렸다.
“난 명옥과 결혼하지 않겠소. 어째 기어이 마음에 들지 않는 여자와 살라고 합니까?”
“또, 또! 집안혼사를 망칠 생각이냐?! 경숙 사돈어른의 딸은 고생 속에서 자랐기에 훌륭한 맏며느리 감이다.”
상순은 들었는지 마는지 뒤도 돌아보지 않고 휑하니 어디론가 나가버렸다.
기준은 개의치 않고 하얀 종이를 농궤에서 꺼내놓았다.
“형님, 내 전번에 아버지께도 말했는데 음력 10월 10일로 택일하면 좋은 거 같소.”
창준은 “사돈네 애들의 결혼을 동의했으니 그날에 결혼식을 올려 주자.” 하고 동의했다.
기준은 상우를 시켜 붓과 먹을 가져오라고 했다. 그는 손수 붓을 들어 묵사발의 먹에 찍어 하얀 창호지에 슬슬 한자로 써내려갔다.

       존경하는 최경숙 사돈어른:
저의 막내아들 김상순과 귀댁 따님 최명옥의 결혼 날을 소화 11년 음력 10월 10일로 택일을 하였사오니 허락해주옵소서. 저의 흠집이 많은 막내아들을 사위로 받아들여주어 고맙소이다. 애들의 행복을 미리 축원하옵니다.
       소화 11년 5월 2일 김기준
 
택일서를 다 쓰자 기준은 형님을 보고 “함께 사돈집에 가기요.” 하고 말했다.
창준은 “가만, 거기 한 글자 고치자.”라고 하며 택일서를 자기 앞으로 쭉 끌어왔다.
“뭘 그러오?”
기준의 물음에 창준은 택일편지를 들여다보더니 “여기 일본 놈들 달력이 마음에 거리는구나. 이 ‘소화 11년’을 고치자.” 하고 말했다.
기준은 택일편지를 자기 앞에 끌어다가 들여다보면서 “소화가 어쨌다고 그러오?” 하고 이상해 형을 쳐다보았다.
창준은 아주 정색해 “ ‘소화’라는 건 일본 놈들의 년대 아니고 뭐냐?” 하고 말했다.
기준은 그제야 머리를 끄덕이더니 붓을 들어 “소화”란 글자를 그어버리고 위쪽에 “1937년”이라고 써놓았다. 그는 또 어데 흠집이 없나 찬찬히 들여다보았다.
기준형제 부부는 아버지와 말한 후 택일서를 품에 넣고 미리 장만한 음식과 술을 가지고 사돈집으로 갔다.
경숙 일가는 매부 석은이네 고방에 임시 들어있었다.
서로 인사수작이 끝나자 기준은 석은과 경숙을 마주 보며 정중히 말을 꺼냈다.
“우리 막내아들 상순과 사돈집 딸 명옥의 결혼택일서를 가지고 왔습니다. 사돈인사도 하고 사돈보기도 하고 겸사겸사 해 왔습니다.”
경숙과 석은은 택일서를 보고 만면에 춘풍이 돼버렸다.
“택일이 좋은 날이구먼. 내 동생 경인과 제수가 한 혼사 말인데다 귀댁 아들이 영웅인물 같아 좋은 사위 감이라고 믿습니다. 애들의 결혼을 동의합니다.”
이렇게 두 사돈집에서는 신랑감 상순도 없는 자리에서 일일이 맞절을 하며 사돈인사를 하고 술상에 마주 앉아 기쁜 술을 들면서 상순과 명옥의 행복한 앞날을 축원했다.
오후에야 사돈집에서 집에 돌아온 기준과 사련이 상순을 아무리 찾아도 찾지 못했다.
“이 놈 새끼, 사돈보기에도 가지 않고 어디로 갔을까?”
이 시각 상순은 확실히 마을에서 사라졌다.
사련은 혹시 춘실과 함께 도망치지 않았는가 해 끌신을 끌고 황급히 뒷집으로 달려갔다. 그런데 뒤 집 터 밭에서 춘실이 괭이질 하는 것을 보고 주춤 멈춰 섰다.
“얘, 춘실아, 너 우리 상순이 어데 갔는지 모르니?”
춘실은 머리를 들어 사련을 보더니 생글 웃으면서 “제 어떻게 압둥?” 하고 반문했다.
사련은 춘실에게 손짓하면서 “너 여기 좀 오라.” 라고 했다.
춘실은 괭이를 살짝 놓고 사뿐사뿐 다가왔다.
사련은 울바자를 사이에 두고 춘실에게 귀속 말을 했다.
“춘실아, 우리 상순은 명옥과 돌아오는 10월 10일에 결혼하기로 오늘 택일까지하고 사돈보기까지 했다. 이후엔 작작 따라다녀라.”
“예? 지금 뭐랍니까?”
춘실은 그 말에 깜짝 놀라 어안이 벙벙해졌다.
집안에서 문을 살며시 열고 내다보던 은실도 놀라 "어마나!" 하고 소리치면서 그 자리에 폴싹 물앉았다. 춘실은 두 손으로 얼굴을 붙안고 어깨를 들먹이는 것이었다.
뒤이어 그는 흑흑 흐느끼면서 겨우 일어나더니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린 채 비칠거리면서 울바자를 나가 집안으로 들어가는 것이었다.
그 구슬픈 정경에 사련은 혀를 끌끌 찼다.
“쯧쯧, 쯧쯧.”
상순은 마음에 없는 결혼에 반발해 소서구 천지꽃산에 올라가 기음을 매면서 화를 냈다.
그는 온 하루 기음을 매면서 궁리하다가 초저녁에 눈썹달을 저벅저벅 밟으면서 마을로 내려왔다.
그는 호미를 뒤울안에 가만히 두고 춘실의 집을 들여다보았다.
(우리 둘이 좋아하는데 살지 못하게 할 건 뭔가?)
그는 아버지가 원망스러웠다.
토성안집 동쪽으로 스적스적 걸어간 그는 춘실을 불러내 답답한 마음을 풀고 싶었다.
그는 춘실과 약속한대로 아름드리버드나무 뒤에 숨어서 입에 두 손을 모아대고 뻐구기 울음소리를 냈다.
뻐꾹, 뻐꾹, 뻐꾹…
한참 기다려도 희읍스름한 눈썹달의 달빛아래 춘실의 그림자도 얼씬하지 않았다. 이전에는 밤에 뻐꾸기 울음소리를 둬 번 내면 인차 나오곤 하던 춘실은 머리를 내밀지도 않았다.
상순은 버드나무에 손을 얹고 기대어 서서 춘실의 집 쪽을 눈 뿌리 빠지게 바라보면서 춘실이 나타나 사뿐사뿐 걸어오기를 애타게 기다렸다.
(혹시 듣지 못했을까?)
상순은 또 뻐꾸기 울음소리를 높이 여러 번 냈다.
뻐꾹, 뻐꾹~ 뻐꾹~ 뻐꾹~
한참 후에 저쪽에서 춘실이가 나와 이쪽으로 다가오는 것 같았다.
상순은 한숨을 후~ 내쉬면서 그쪽으로 마주 나갔다.
그는 달빛아래에서 마주 걸어오는 여인은 춘실이 아니라 춘실의 어머니라는 것을 보고 놀라 우뚝 멈춰 섰다.
그때 해금이 다가와 뜻밖에도 상순의 손을 잡았다.
“이 사람아, 이젠 춘실을 더 찾지 마오. 앞집에서 명천 사돈새기와 사돈보기를 하고 택일까지 했다던데 춘실을 찾아 뭘 하겠소? 춘실도 이젠 나오지 않을 게요.”
상순은 성이 나서 펄쩍 뛰었다.
“누가 그 결혼을 한대? 난 춘실과 살겠는데.”
춘실의 어머니는 한숨을 호~ 내쉬었다.
“별수 있소? 혼사 말은 부모가 결정하는 거니까.”
상순은 하늘을 멍해 쳐다보면서 황소숨을 몰아쉬었다.
그는 집으로 들어가려는 춘실의 어머니 손을 두 손으로 꽉 붙잡고 애원했다.
“춘실의 엄마, 마지막으로 할 말이 있으니까 춘실을 내보내줍소.”
“안된다니까. 왜 이러우? 그 애를 끌어내다가 자꾸 버들강변에 가더니, 에이고, 이 일을 어쩜 좋소?”
“아무 근심도 하지 맙소.”
해금은 상순의 손을 홱 뿌리치면서 언성을 높였다.
“뭘? 근심 말라고? 혼사말도 하지 못하고 남의 귀한 딸의 몸에 손을 대긴 왜 대? 남은 망신스런 일이 생길까봐 근심이 태산 같은데도. 제 정신이 있소?”
그 말에 상순은 깜짝 놀라면서 춘실의 어머니 두 손을 꽉 잡아 한쪽으로 끌고 가서 나직이 물었다.
“무슨 일이 있습둥? 전번까지 아무 말도 하지 않던데?”
“아이고, 사내들이란 다 이런가. 애가 몸이 그런데… 아이고, 내 싸지르기만 하면 되오? 이 일을 어쩌오?”
“정말입둥?”
상순은 놀라기는커녕 기다리기나 한 듯이 기뻐 어쩔 줄 몰라 했다.
“이걸 봐라. 남은 속이 타 재 가루 다 됐는데도 헤벌쭉 헤벌쭉 웃긴?”
해금은 상순의 손을 홱 뿌리치면서 노발대발했다.
상순은 모든 것이 자기가 계획한대로 돼나가는 것 같아 대수롭지 않아했다.
“엎지른 물을 어쩜둥? 나와 춘실이 살면 되지. 뭐?”
해금은 잔뜩 약이 올랐다.
“그것도 말이라고 해? 그래 우리 춘실은 첩이냐? 뭐냐?”
상순은 뒷덜미를 긁적거리면서 “당연히 본댁입지. 일이 그 지경이 됐으면 사는 수밖에 있습둥?” 하고 쉬운 소리를 해댔다.
춘실의 어머니는 야단쳤다.
“이 놈아, 네 애빈 결혼택일까지 했는데. 되지도 않을 소릴 하겠니? 내 딸을 내놔라.”
“그러나 저러나 춘실을 한번 보기요. 전번까지도 몸이 그렇단 말은 하지도 않았는데.”
해금은 상순의 귀 쌈을 한대 찰싹 갈겼다.
“요 못된 놈 새끼야, 남의 딸을 못 쓰게 만들어놓고서도. 낯짝이 돼지 엉덩짝보다도 더 두터운 놈아. 아이고, 이 일을 어쩜 좋소? 동네에 소문이 나가면 우리 춘실은 어쩌니?”
상순은 춘실의 어머니가 높이 떠들수록 흥이 났다.
(좋기는 우리 아버지와 온 동네 사람들이 다 듣게 떠드오. 그래야 아버진 할 수 없이 춘실과 살라고 할 게 아니요?)
달빛아래 이집 저집에서 문을 열고 동정을 살피였다.
기준도 뒤울안에 소변을 보러 나왔다가 토성 밑에서 떠들썩하자 이쪽에 귀를 기울였다. 그는 상순과 뒤집 해금이가 주고받는 말을 듣고 깜짝 놀랐다.
“이 놈 새끼! 종아리를 분질러놓지 않는가 봐라.”
상순은 두 손으로 머리를 싸쥐고 토성 밑에서 아름드리버드나무를 안고 돌면서 몸을 숨기였다. 그러나 달아날 예산은 없었다. 그는 고의적으로 온 동네 사람들이 다 들으라고 아버지와 춘실의 어머니 약을 올려주었다.
춘실의 어머니는 기준을 보자 멱살을 틀어쥐고 늘어졌다.
“내 딸을 어쩜둥? 양? 내 그 집 막내아들놈을 놔두지 않겠소. 내 딸을 그 집엥서 데려갑소. 이젠 내 딸을 책임지오.”
“뭐라오? 듣고도 모를 소릴. 저 놈 새끼 어쨌단 말이오. 이걸 놓고 천천히 말하오.”
춘실의 어머니는 달빛아래 동네 사람들이 많이 구경나온 것을 보고 기준의 멱살을 활 놓고 “아이고, 동네 창피해 못 살겠다. 원.” 하고 넉두리를 하며 집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기준은 성이 날대로 나 상순을 쫓아다녔다.
“못된 쇠새끼 엉덩이에 뿔부터 난다더니 저놈새끼를 저거, 그저, 가만 놔두지 않겠다.”
그제야 상순은 아름드리버드나무를 안고 돌다가 다리야 날 살라고 꼬리 빳빳해 달아났다.
뒤에서 동네 사람들의 웃음소리가 들리었다.
연 며칠 상순은 그림자도 보이지 않았다.
초생 달이 동산마루에 가냘픈 처녀의 눈썹처럼 가늘게 떠올랐다.
뻐꾹, 뻐꾹, 뻑뻑 꾹.
이때 토성 밑에서 연 며칠 들리지 않던 뻐꾹새 울음소리가 들리었다.
뻐꾹새 울음소리는 점점 높아만 갔다.
뒤 집 춘실과 부모들은 그 뻐꾹새 울음소리가 바로 상순이 부르는 소리라는 것을 짐작했다. 춘실의 어머니는 춘실의 눈치를 힐끔 곁눈질해보았다. 춘실은 베개를 두 개나 구들에 내리워다놓더니 맥없이 쓰러졌다. 그는 베개를 베고 다른 베개를 안고 누워 어깨를 들먹였다.
춘실은 속으로 상순을 원망했다.
(개놈새끼, 애비가 동의하긴 개똥으로 동의했어? 날 얼려 김칫독처럼 파먹었구나.)
바깥 토성 쪽에서는 뻐꾸기 울음소리가 더 애타게 울렸다.
(안 나간다. 안 나가! 네놈새끼 사돈보기까지 했는데 어째 나가? 속힌 것만 해도 분해 죽겠는데. 두 번 다시 속을 줄 아니?)
춘실은 베개를 활 뿌려 치며 돌아누우면서 손으로 눈물을 닦았다.
지군선은 그 모양을 보다가 아래쪽 정지로 내려왔다.
“여보, 아무래도 저 애 혼처를 구해 시집보내야 할 거 같소.”
밤중에 홍두깨 내밀듯이 하는 그 말에 해금은 놀랐다.
“불시에 무슨 소리요?”
해금은 도리머리를 흔들었다.
군선은 말소리를 낮췄다.
“쟤가 몸이 점점 부어오르면 정말 어쩌오? 동네 망신을 하기 전에 시집보내면 누구 앤지 누가 아오?”
해금도 그 말에 귀가 솔깃해졌다.
“글쎄 말이오.”
춘실이 화닥닥 일어나면서 성을 발칵 냈다.
“시집 말을 하지도 마오. 난 시집가지 않겠소.”
그 말에 춘실의 아버지와 어머니는 뒤로 훌렁 물앉았다.
“이제 다시 시집 말을 하면 난 자살할테야.”
해금은 춘실의 손을 붙잡아 앉히면서 차근차근 일깨워주었다.
“얘야, 부모는 널 생각해 그런다. 엎지른 물을 어찌겠니? 상순이보다 더 좋은 혼처를 구해서 널 시집보내면 우린 시름 놓겠다. 우린 자식이라곤 네 밖에 없지 않고 뭐니? 절대 짧은 생각을 하지 말라.”
그 말에 춘실은 서럽게 울었다.
쓸쓸한 달빛이 구들을 희읍스름하게 비추는데 바깥 토성밑 쪽에서는 뻐꾸기 울음소리가 애타게 울고 있었다.
한참 후 뻐꾸기 울음소리가 뚝 그쳤다.
집안과 바깥은 희읍스름한 달빛이 출렁일 뿐 숨 막히게 고요가 설레고 있었다.
"문을 열엇!"
이때 바깥에서 귀에 익은 중국말로 지르는 고함소리가 들리었다. 뒤이어 어지러운 발자욱소리가 들리더니 문을 마구 잡아 두드렸다.
"문을 열지 못해!"
춘실과 은실은 이불밑으로 기어들어가 바들바들 떨었다.
"좀 기다리오."
지군선이 일어나 문께로 가기도전에 문을 박차고 웬 놈들이 뛰어들었다.
손전지불이 어지러이 구들을 비춘다.
"어느 년이냐?"
일본 놈의 말소리가 어지러이 공포에 찬 어둠속에 울려 퍼졌다.
지학사란 놈이 구두 발로 구들에 뛰어올라왔다. 그놈이 이불을 활 걷어치우자 이불속에서 몸을 옹송그리고 와들와들 떠는 두 처녀애들이 드러났다.
"오~ 우쯔꾸씨이 무스메, 이께!"
몇몇 일본 놈들이 징글스레 웃으면서 두 처녀애들한테 덮쳐들었다.
"엄마!"
춘실과 은실이 몸부림치며 애처롭게 소리쳤다.
"왜 이러는가?!"
"우리 딸을 못 다친다!"
군선과 해금은 필사적으로 달려들어 두 딸을 막아나섰다.
"빠가요로!"
일본놈이 총박죽으로 군선의 턱주가리를 걷어쳐올렸다.
"악!"
군선은 외마디 비명소리와 함께 구들에 썩박나무 넘어가듯 넘어갔다.
일본놈들과 자위단 졸개들이 춘실과 은실을 끌고 나갔다.
"춘실아!"
"은실아!"
해금이 두팔을 벌리고 소리치면서 따라나갔다.
어둠속에서 지학사가 능청을 부렸다.
"네 딸이 어찌나 예쁜지 이 동네 상순이 빼앗아가기전에 좋은 곳에 보내주지."
"걔들이 무슨 죄가 있다고 그러오?"
지학사는 개화장을 휘두르면서 으시댔다.
"너무 이쁜게 죄지. 대일본제국의 높은 담장안에 있는 기와집에 보내주는데 얼마나 좋아? 돈도 많이 벌고."
'지촌장, 좀 일본군과 말해 우리 딸을 살려주오.""
"흥! 안 돼!"
지군선이 사정해도 안되자 버럭 고함쳤다.
"내 딸을 일본군에 팔아먹어자고?  안 돼!"
그러나 지학사는 계속 지껄여댔다.
"먼데 가지 않아. 진수해 어귀 일본군위안소에 보낼 거야. 으흐흐흐흐. 고운 얼굴을 팔아서 돈이나 많이 벌어서 좀 좋아서 그래?"
"엄마!"
두 딸은 울고 불며 끌려가지 않으려고 몸부림쳤다. 엄마는 두 딸을 한날 한시에 빼앗기지 않으려고 악을 딱딱 쓰며 손목을 잡고 놓지 않았다.
"빠까!"
일본놈이 총깨묵으로 해금의 머리를 탁 내리쳤다.
순간 해금은 "앗!" 외마디 비명소리 지르며 쓰러졌다.
"엄마!"
춘실과 은실은 일본놈들에게 끌리어 진수해 쪽으로 내려가고있었다.
마을 사람들은 그 광경을 차마 볼수 없어 모두 눈물을 흘리었다.
상순은 도끼를 쥐고 달려나가다가 기준한테 붙잡혔다.
"정신 나갔니? 총을 든 일본놈을 당할수 있니?"
"춘실이랑 잡혀가는데 눈깔을 펀히 뜨고 놔두람둥?"
기준은 펄펄 날뛰는 상순을 말릴수 없었다.
상순은 도끼를 들고 씽 달려 동산으로 뛰어올라갔다. 그는 산마루를 타고 춘실을 붙잡고 가는 일본 놈들을 노려보면서 뒤따라갔다. 딱 네 놈이었다.
그러다가 그는 앞질러 산기슭으로 달려 내려갔다. 뒤이어 그는 일본놈들이 지나갈 길 목에 머리를 숙이고 있는 늙은 비술나무에 기여올라갔다. 드디어 일본 놈 넷이 춘실과 은실을 끌고 올 때였다.
그는 나무위에서 뛰어내리려고 했다.
쒹- 딱!
"아야!"
"이다이(아파라)!"
어디서 날아왔는지 돌멩이에 맞아 두 놈이 꺼꾸러졌다.
그때 상순이 늙은 비술나무에서 뛰어내렸다.
"이 놈들아!"
도끼가 번쩍 했다. 한 놈이 총창으로 날아드는 도끼를 막았다.
쟁강!
쇠가 부딪치는 소리와 함께 불찌가 튕겼다.
땅! 땅!
어둠속에서 쓰러졌던 일본 놈이 기어일어나다가 총을 맞고 쓰러졌다.
"달아나라!"
춘실과 은실은 상순이 두 놈을 대적해 싸우는 틈을 타서 선불맞은 노루처럼 황급히 달아났다.
한놈은 상순을 버리고 처녀들을 쫓아가면서 고함쳤다.
"쓰빠라시이 무스메(예쁜 처녀)!"
또 다른 놈도 쫓아갔다.
둘 다 잡힐 거 같았다.
"갈라져 달아나라!"
상순이 고함치자 둘은 남북으로 갈라져 도망쳤다.
쫓던 놈은 춘실을 놓아주고 은실을 쫓아가 붙잡고 버두나무 숲속으로 사라졌다.
상순은 몸을 날려 찔러 들어오는 총창을 피하면서 도끼로 그 놈의 대갈통을 내리 찍었다.
그 놈은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쓰러졌다.
땅! 땅!
총알이 죽음의 노래를 부르며 날아와 상순의 발부리에 꽂혔다.
상순은 급히 몸을 날려 어둠속으로 사라졌다.
사실 진달래 중대장은 쌀을 구하러 함흥촌에 오다가 우연히 일본 놈들이 함흥촌에서 처녀애들을 끌고 내려오는 것을 발견했던 것이다. 그리하여 돌팔매를 날려 두 놈을 까눕히고 유격대원들을 지휘해 후미의 일본 놈들 십여 명을 대적해 싸웠던 것이다.
        유격대원들은 길바닥에 쓰러진 일본 놈들의 시체를 뒤져 보총 세 자루를 걷어가지고 원시림 속으로 잠적해버렸다.
 
 

                             
                               저자 김장혁 련계방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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