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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장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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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하소설 울고 웃는 고향(25)
2015년 12월 04일 16시 43분  조회:1847  추천:0  작성자: 김장혁
           



                                  6. 개구쟁이의
        기준은 아버지 생일에 대접하려고 상순과 상길을 불러 풀 뽑기를 그만두고 태평강에 가서 물고기를 잡아오라고 하였다.
        상순과 상길은 다래끼를 들고 태평강에 고함치며 달려갔다. 조약돌이 다 들여다보이는 강물 속에서는 모래무치랑 잉어랑 버들치랑 은빛비늘을 반짝이면서 지느러미를 한들거리며 노닐었다.
        “야, 형님, 물고기 영 많소.”
상순은 물 덤벙 술 덤벙 강물에 뛰어들어 물속의 손바닥만 한 잉어를 잡자고 손을 쑥 내밀었다. 그러나 잉어가 놀라 푸닥닥 튕겨 올랐다가 깊은 물속으로 달아났다. 상순이가 손을 넣어 마구 휘저어도 물고기는 잡히지 않았다.
“아~ 씨, 못 잡겠어. 아버지랑 손을 넣으면 물고기를 훌훌 잡아내던데.”
그런데 상길은 그래도 물속에서 손잡이를 하면 간혹 모래무치랑 잡아 버들가지에 꿰었다.
이때 상순도 “어우, 나도 잡았어.” 하고 고함치며 어쩌다 잡은 버들치를 쳐들고 자랑하였다.
그런데 버들치가 매끄러워 두 손에서 쪽 미끄러져 물속에 촐랑 떨어졌다.
“아야, 고기 달아났다. 이씨!”
상순은 애나서 자갈을 쥐여 마구 물속에 뿌렸다.
상길은 “그러게 물고기를 잡아서 모래에 뿌리든지 버들가지에 꿰든지 해라.” 하고 일러주었다.
상순은 놓친 물고기 아까워 입이 뽀로통해 손으로 물속을 더듬었다.
상길은 숱한 물고기를 잡았는데 상순은 겨우 딱 잉어 한 마리를 잡고 흐뭇해하였다.
“으흐, 끝내 잡았구나.”
“또 놓치겠다. 얼른 버들가지에 꿰놔!”
“오, 옳소.”
그제야 상순은 제정신이 펄쩍 들어 강변의 가는 버들나무가지를 꿰었다.
반나절이나 고기잡이를 했는데 상순은 겨우 딱 다섯 마리를 잡고 상길은 다섯 꼬챙이나 잡았다.
“이걸 가져다 삼춘을 줘.”
상길은 어른스레 자기 고기꼬챙이 두개를 상순 앞에 내밀었다.
“형님, 고맙소.”
상순은 고기꼬챙이를 받아 쳐들고 흐뭇해하였다.
상순은 집에 돌아오면서 어쩐지 형님이 준 물고기 두 꼬챙이 보다 자기가 잡은 다섯 마리를 자꾸 쳐들고 보았다.
점심에 기준이랑 밭에서 돌아오자 상순은 물고기꼬챙이를 쳐들어 보이면서 “아버지, 이걸 보오.” 하고 자랑하였다.
기준은 물고기 뀀을 받아 쳐들고 보면서 “에이고, 우리 상순이 물고기를 다 잡아오다니. 참말 장하구나.” 하고 치하하였다.
상우도 싱글벙글 웃으면서 “너 혼자 잡았니?” 하고 물었다.
상순은 흐뭇해 쌔물쌔물 웃으며 “아니, 두 뀀은 상길형님이 준 게요. 난 딱 다섯 마리 밖에 잡지 못했소." 하고 말하면서 자기 잡은 물고기 뀀을 쳐들어보였다.
“보란 말이야. 흐흐흐.”
그러자 기준은 “이걸 네 잡은 게야? 혹시 죽은 고기는 아닌지?” 하고 농담을 하였다.
“아닙꾸마. 다 산 고긴데.”
“응, 눈 먼 고긴 아니야?”
“아닌데도. 봅소. 다 눈이 두개씩 있는데.”
기준은 일부러 “눈이 멀지 않고서야 어찌 네한테 잡혔겠니?” 하고 말하였다.
그 말에 상순은 입이 뾰로통해 앵돌아졌다.
“아닌데도.”
상순은 입을 빼쭉거리더니 엉~엉~ 울었다.
바빠 맞은 기준은 “아니야. 아니. 아빠가 일부러 농담한 거야. 우리 상순이 이젠 다 컸어. 물고기도 잡고. 울지도 않고." 하고 얼리면서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기준은 상우더러 한 꼬챙이를 장지주네 집으로 가져가게 하였다.
그러자 상순은 막 달려 나와 상우의 손에서 고기 꼬챙이를 빼앗으려고 하였다.
“우리 어떻게 잡은 거라고 장 지주한테 가져가오?”
상우는 물고기를 뒤에 치우면서 말렸다.
“얘, 제 것만 제 게라면 못 써. 장 지주가 이 숱한 황무지를 주지 않았더라면 우리 어떻게 저 숱한 밭을 일 굴 수 있었겠니? 장 지주에게 물고기도 주고 쌀도 줘야 우리도 잘 살 수 있는 게야.”
상순은 초롱초롱한 포도 눈으로 형을 쳐다보며 재차 물었다.
“우리 물고기를 자꾸 가져가면 밭을 하늘만이 주오?”
“그래.”
“그럼 가져가오.”
상순은 자기 잡은 물고기 대여섯 마리는 아까워 가져가지 못하게 하고 형이 잡은 물고기 뀀을 가져가게 하였다.
이튿날 기준이네와 창준이네는 함흥촌 웃새집에 모여 병완의 생일을 쇠어드렸다. 생일상에는 차 좁쌀떡에 물고기국도 올랐다.
병완은 생선국을 후후 불며 마시고나서 “손자들 덕분에 생선물고기국을 잘 먹었다.” 하고 상길과 상순을 치하해 주었다.
장학산 지주네도 생선국을 배불리 먹고 입이 함박만 해진 것은 두 말할 것도 없다. 그 후부터 장학산의 맏아들 장충국과 둘째아들 장리국, 딸 장미련은 상길과 상순을 따라 태평강에 가서 물고기잡이를 하였다.
애들이 잡아온 물고기가 꽤나 보탬이 되였다. 그러자 창준과 기준은 아예 버드나무가지를 베다가 통발을 만들어 태평강을 따라 내려가면서 한 1 리에 하나씩 서너 개 놓아주었다. 물론 장지주네 충국과 리국의 몫으로 통발을 하나 놓아주었다. 그리하여 애들은 모래톱에 버드나무로 막을 쳐놓고 모래에서 놀다가도 통발에 든 물고기를 걸이어 집으로 가져 오군 하였다.
장학산은 물고기를 좋아하였다. 그는 충국과 상순이랑 물고기를 걸이여가지고 돌아오는 해질녘이면 꼭꼭 마중 와서는 물고기를 받아 들고 보면서 입이 함박만 해 귀밑까지 째질 지경이었다.
밤이면 창준과 기준이 아니면 상훈이나 상우가 통발에 와서 통발의 물고기를 걸여 나무초롱에 담아 들고 돌아 오군 하였다.
장학산도 자기 통발의 물고기를 걸여 들고 가면서 항상 기준과 창준에게 엄지를 내 휘두르곤 하였다.
고향을 떠나 소서구에 온 후 병완 일가와 중국 지주 장학산은 비록 민족이 다르고 빈부차이가 있었지만 형제처럼 가깝게 보냈다.
병완은 항상 자손들을 타일렀다.
“고향에서 일본 놈들과 개다리 한길수 성화에 살지 못하게 되였는데 간도에 와서는 될 수 있는 한 새 원수를 만들지 말아야 한다. 어떤 일이 있더라도 꾹 참구 살아야 한다. 타향에서 땅주인인 장 지주와 화목하게 보내야 한다.”
자식들은 고향에서 한길수와 일본 놈들의 핍박에 배기지 못해 간도로 오게 된 피의 교훈을 회상만 해도 진절머리가 났다. 하여 장학산과 형제처럼 가까이 지내려고 무등 애를 썼다. 그것이 생존을 위해 안간힘을 쓰는 병완 일가의 일방적인 노력으로 치닫고 있었다.
개구쟁이 상순은 꿈도 많았다. 그는 수레바퀴 테를 굴리다 못해 굴렁쇠로 하늘의 태양도 굴려보고 달도 굴려보지 못하는 것이 한스러웠다. 그 애는 마른 해바라기대로 달도 찔러 떨어뜨려 보려고 휘둘러댔다. 해바라기대로 별을 찔러보려고 하였으나 키가 모자란다고 큰집인 웃새집 돼지우리에 올라가 날창 질을 해보았다.
봄바람도 세찬 하늘에 연을 띄우면서 연에 매달려 하늘을 훨훨 나래치는 노란 꿈도 꾸었고 풍선에 동동 매달려 고향의 칼산에 날아오를 푸른 꿈도 꾸었다. 참말 생각만 해보면 되지도 않을 우습고도 허황한 꿈 이야기이다. 그러나 공상과 모험을 실은 꿈이 있는 상순의 개구쟁이시절은 참말 멋있었다. 모험적인 꿈이 있고 시도하는 것이 있는 어린이는 그만큼 장차 이루는 것도 많게 되는 법이였다.
그래서 병완은 상순의 늘 머리를 쓰다듬으면서 “허황한 꿈이라도 꿔야 해. 그런 꿈마저 없는 애는 불행한 아이이다. 달도 쫓고 무지개도 쫓아 봐.”라고 했다.
무더운 해볕이 쨍쨍 내리쬐는 여름의 어느 하루였다. 상순은 소서구 남쪽 천지산중턱에서 형수 지새금 앞에서 나가며 밭고랑의 풀을 뽑다가 그만 햇비를 맞게 됐다. 서쪽 하늘에는 해가 두둥실 떠 있었지만 동쪽 하늘에는 검은 구름이 뭉게뭉게 덮쳐오더니 호두알만큼 한 비방울이 후둑후둑 떨어지는 것이었다.
웬 일일까?
한참 내리던 해 비가 멎더니 동녘하늘에 아름다운 칠색무지개가 정말 멋있게 걸렸다. 신선화백이 그림을 그려놓은 듯이 칠색무지개는 북쪽뿌리를 태평강에 박고 남쪽뿌리를 저 멀리 남쪽 벌에서 동으로 흐르는 부르하통하에 박은 채 반공중에 반달처럼 걸려있었다. 그때 상순은 간도에 온 후 처음 그렇게 아름다운 칠색무지개를 보았다.
“야, 곱다!”
상순의 소리에 상길이도 함께 비를 맞을 위험도 무릅쓰고 산에서 환성을 질렀다. 그런데 그 칠색무지개가 상순과 상길이 쪽에서 점점 동쪽 계수동쪽으로 움직여갔다.
“저러다가 칠색무지개 저 멀리 동쪽으로 달아나버리면 보지 못하겠어!”
상길이 근심하자 상순은 고함쳤다.
“우리 저 무지개를 쫓아가보자!”
상길도 이구동성으로 고함쳤다.
“옳다! 무지개를 쫓아가보자!”
애들은 무지개를 하나라도 가까이에서 보려고 고함치며 산기슭 아래로 달려 내려가면서 무지개를 쫓아가기 시작하였다.
기준과 창준은 소서구 골 안으로 달아내려가는 애들을 보고 “쯧쯧.” 하고 혀를 찼다.
상순과 상길은 닫다가 진흙탕에 넘어지면 다시 일어나 계속 쫓아갔다. 그러나 아무리 쫓아가도 무지개가 점점 멀리 달아나 지척에 두고서도 붙잡을 수 없었다. 애들은 날지 못하는 것을 한탄하면서 계속 무지개를 쫓아갔다. 그 아름다운 칠색무지개가 졸지에 신기루처럼 사라져 버려서야 모두 실망한 얼굴로 물앉아들 할딱거렸다.
개구쟁이시절은 어찌하여 모든 것이 그렇게도 신비하였는지 몰라. 허황한 일이라는 것도 모르고 무지개를 쫓아가는 꿈도 많은 개구쟁이여서 그렇겠지. 차개 돌로 소서구 남쪽의 칼산도 차 넘어뜨리고 딱지로 소서구 육간 초가집도 날려 보내려는 우둔한 도깨비 시절이었다. 무지개도 쫓고 달도 쫓아가는 꿈도 많은 모험의 시절이었던 것이다.
상순은 잠을 자고나면 새록새록 새 꿈이 생겼다.
“아빠, 우리 연을 만들어 타구 저 패용천산 우에 올라가 놀기요.”
“정신 나갔니? 연을 얼마나 크게 만들면 사람이 타니?”
상순은 뒷덜미를 긁적거리었다.
며칠이 지나자 상순은 아빠랑 어머니랑 따라 밭에 가서 기음을 매는 형수의 앞에서 곡식포기속의 풀을 뽑다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무슨 생각을 골똘히 하였다.
“아빠, 이제 또 칠색무지개가 하늘에 걸리면 아빠 무지개를 붙잡아 우리 집에 숨겨뒀다가 보고 싶을 때 보면 좋겠는데요.”
기준은 너무 어이없어 상순을 피뜩 곁눈질해보며 피씩 코웃음을 쳤다.
“이 자식아, 쓸데없는 궁리 말구 풀이나 뽑아라.”
“아버진 그저 일 밖에 모르면서. 할아버진 애들은 꿈이 있어야 한다고 했는데.”
한참 풀을 뽑던 상순은 형수를 도와 풀을 뽑다가 아빠한테 달려가 이런 엉뚱한 말을 하였다.
“아빠, 난 고향에서 살던 때처럼 상길 형님이랑 서당 방에서 공부하고 싶습구마.”
기준은 상순이가 불쌍해 호미질을 멈추더니 허리를 펴고 상순에게 다가가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알만하다. 우리 집이 가난해 너를 공부를 시키지 못하는 걸 생각하면 마음이 아프다. 그러나 아침을 먹으면 저녁밥을 먹을 걱정하는 세월에 언제 공부를 시키겠니? 황차 여기 소서구에는 최구장네 서당 방도 없잖니? 너두 풀이랑 뽑아야 밥벌이를 하지?”
그러자 상순은 엉엉 섧게 울었다.
“안 돼. 난 공부를 하겠습니다.”
“입 다물지 못하겠냐? 공부를 해 밥이 생기냐? 빨리 풀이나 뽑아!”
아빠가 눈을 부라리며 꽥 소리치자 상순은 흑흑 흐느끼면서도 애고사리 손으로 옥수수 포기속의 풀을 뽁뽁 뽑았다.
또 한참 지나자 상순은 주먹을 쥐고 아빠한테 달려갔다.
“아빠, 이제 무지개 뜨면 칠색무지개를 타구 고향에 가서 최구장 선생님 서당 방에 날아가 공부를 하면 안 되겠습니까?”
그 허황한 말에 모두들 김을 매다가 호미를 놓고 허리와 배를 붙안고 “껄 껄 껄” “깔 깔 깔” 웃었다.
“상순아, 무지개를 타고 어떻게 고향에 가니?”
그러자 상순은 “무지개 우리보다 얼마나 빠르다고 그럽니까?” 하고 정색해 종알거렸다.
사련은 상순이가 기특해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무지개는 탈수 없어. 저 구름이랑 무지개랑 다 올라 탈 수 없는 거야.”
최사련은 상순이가 기죽어 입이 뾰로통해 하자 구슬리였다.
“이담 최구장 선생님이 우리 소서구에 오면 널 꼭 공부를 시킬게. 풀만 부지런히 뽑아라. 아빠하구 엄만 꼭 너를 공부시킨다.” 하고 얼렸다.
상순은 많고 많은 꿈은 아빠와 엄마가 안 될 꿈이라고 하자 다 단념해버렸지만 공부를 할 꿈만은 버리지 않았다.
기준은 공부를 하지 못해 항상 눈물 흘리며 징징거리는 막내아들이 불쌍해 서당 방에서 꽤나 공부를 한 조카 상길을 보고 배워주라고 하였다. 그리하여 상순은 쉼마다 상길이가 땅바닥에 꼬챙이로 한글을 쓰면서 배워주면 따라 꼬챙이로 진흙이거나 모래바닥에 글을 쓰면서 재미나게 배웠다.
어느 날, 상순은 아빠에게 “큰집에서 황소를 샀다는데 가서 구경하겠습꾸마.” 하고 떼를 썼다.
그러자 기준은 “오전에 풀을 뽑고 상길 형님과 함께 가 봐라.”라고 했다.
“어- 좋다. 난 큰집 황소를 본다.”
상순은 좋아서 깡충깡충 뛰더니 일 밭에 나가 형수의 밭고랑을 타고 조이속의 가라지를 뽑았다. 그런데 기준이가 볼나니 가라지를 뽑지 못하고 조를 뽑은 것을 발견하였다.
“이 자식아, 이게 뭐냐? 풀을 뽑는다는 게 조를 다 뽑아버리면 뭘 먹고 살아?”
기준은 애나 상순의 엉덩이를 때렸다. 상순은 너무 아파 상을 찡그리면서 이 밭고랑 저 밭고랑 뛰어넘어 달아났다.
사련은 쫓아가는 기준을 막으면서 뒤에 상순을 숨겼다.
“여보, 어느 게 조이이고 어느 게 가라진지 알려 줄 게지. 때리긴?”
그러자 상우가 다가와 조와 가라지를 뽑아 쥐고 상순에게 어떤 게 조고 가라지라는 걸 차근차근 가르쳐주었다.
점심에 상순은 상길을 따라 웃새집으로 놀러 갔다. 그들이 우사에 들어서니 달랑달랑 소 방울소리가 귀맛 좋게 들리었다.
상순은 호기심에 찬 세 귀 눈을 치뜨고 가만히 우사 문을 열고 들어가 두리번두리번 살피였다.
구유에서 먹이를 먹고 있는 황소 목에 건 노란 구리방울에서 달라당달라당 그렇게 귀맛 좋은 소리가 울리는 것이었다.
(저 구리방울을 뜯어 가져야지.)
상순은 사위를 기웃기웃 살펴보아도 누가 보이지 않자 구유에 기어 올라갔다. 그는 오동통한 손으로 소대가리를 살살 쓰다듬어주었다. 그러자 둥글 소는 대가리를 절레절레 저으면서 먹이를 계속 먹어댔다. 둥글 소가 삐죽한 뿌리로 박을 것 같지 않자 상순은 담이 커져서 소 목에 건 소 방울을 살랑 벗겨내 호주머니에 넣었다.
그는 콩, 콩 뛰는 가슴을 가까스로 눅잦히면서 구유 밑으로 앙금앙금 기어 나왔다. 그는 도적고양이처럼 살금살금 우사간 문 옆으로 다가가 빠금히 열고 바깥동정을 살펴보았다. 아무런 인기척도 나지 않는 것을 보고 상순은 문을 열고 꼬리 빳빳해 달아났다.
달랑! 달랑!
소 방울소리가 나자 웃새집 상순의 큰형님 상훈이가 집 문을 열고 소리쳤다.
“소도적이야!”
원래 둥글소 목에 건 소 방울은 소도적을 막기 위한 것이었다. 그리하여 소방울이 울리기만 하면 소도적이 들었다고 여기게 되었던 것이다.
고함소리에 상순은 더 빨리 달아났다.
달랑 !달랑! 달랑달랑! 달랑달랑!
빨리 도망칠수록 소 방울 소리도 더 빠르고 높이 울렸다.
당황해난 상순은 호주머니에 손을 넣어 방울을 꽉 움켜쥐고 달아났다. 그러나 소 방울소리는 여전히 달랑달랑 요란하게 울렸다.
뒤에서 상훈 형님이 쫓아오면서 “거 상순이 소 방울을 훔친 게 아니냐?” 하고 고함쳤다.
바빠 맞은 상순은 호주머니의 소 방울을 꺼내 강냉이 밭에 활 던졌다. 그제야 소 방울소리가 울리지 않았다.
상훈 형님은 그가 강냉이 밭에 던진 소 방울을 주어들고 집으로 돌아갔다.
후에 상훈 형님은 집에까지 찾아왔다.
때마침 기준과 상우도 집에 있었다.
“삼촌, 저놈이 글쎄 우리 소 방울을 훔치지 않았겠소?”
상순은 베개를 들어 얼굴을 가리면서 벽 구석에 숨었다.
기준이가 상순의 손에서 베개를 빼앗아내고 귀 쌈을 찰싹 갈겼다.
“이 놈 새끼, 다시 훔쳐봐라. 네놈의 손목을 작두로 베 버리겠다. 옛날부터 바늘도적이 소도적으로 된다고 버릇을 떼지 않고 되겠니? 이 놈 새끼, 다시 훔치겠니?”
상순은 아픈 얼굴을 손으로 만지면서 겁기어린 눈으로 아버지를 올려다보면서 울었다.
“다시 훔치지 않겠습구마.”
“다시 훔치면 작두로 손을 베 버리겠어. 알았니?”
상순은 흑흑 흐느껴 울면서 “다신 훔치지 않겠습니다.”라고 하였다.
상훈은 그만하면 된 것 같았다.
“상순아, 이 소 방울은 네가 훔친 거니까 주지 않겠다. 이후에 내 장마당에 가면 더 좋은 놀음 감 방울을 사다가 줄게.”
그러자 상순은 상훈 형님을 쳐다보면서 눈물범벅이 된 얼굴에 가는 미소의 그림자가 스쳐지나갔다.
후에 정말 상훈은 진수해 장마당에 갔다가 아주 고운 방울을 사다가 주었다.
상순은 입귀가 귀밑까지 째질 지경으로 함박꽃웃음을 지으며 흐뭇해하면서 방울을 가지고 애들 속으로 가서 달랑달랑 방울소리를 울리면서 즐겁게 놀았다. 그 후 상순은 정말 남의 물건이라면 손을 대지 않았다.
며칠 후 상순은 어머니 앞에서 풀을 뽑다가 아버지를 보고 “큰집에서는 황소를 샀던데 우리도 황소를 삽시다.” 하고 청을 들었다.
그러자 기준은 “큰집에는 할아버지가 목수 질해 모아두었던 돈이 있어 샀다. 허나 우리 집엔 황소를 살 돈이 어데 있니?” 하고 대답하였다.
며칠 후 병완이가 둥글 소를 몰고 기준이네 집에까지 찾아왔다.
“너네도 황무지를 개간해 밭이 마흔 짐은 되는데 황소 없이 어떻게 농사를 짓겠니? 이 둥글 소를 거둬서 써라.”
그러자 기준은 아버지에게서 둥글 소고삐를 받아 쥐고 기뻐 어쩔 줄 몰라 하였다.
“아버지, 고맙습꾸마.”
상순은 더구나 좋아서 손 벽까지 치면서 퐁퐁 뛰었다.
“야, 좋아라. 우리도 황소가 있어!”
그는 집안으로 쌩 달려 들어가더니 농궤 속에서 구리방울을 꺼내왔다.
“아버지, 이건 큰형님이 사 준 건데 둥글 소목에 겁시다. 달랑달랑 소리나 도적놈을 막게.”
기준은 소 방울을 받으면서 산이 떠나가게 웃었다.
병완은 막내손자 머리를 쓰다듬어주면서 “에이유, 요 귀여운 것아 다 컸구나.” 하고 치하해주었다.
황소에게 가대기를 메워 옥수수 밭에 가대기 질 하니 밭고랑이 깊숙이 패면서 흙이 퍽 부드러워졌다. 장 지주도 가대기질까지 하는 것을 보고 흐뭇한 표정을 지었다.
병완 온 일가가 죽기내기로 황무지를 일구고 밭을 옥답으로 가꿔나갔다. 상순은 코피 터지게 곤하도록 밭의 풀을 부지런히 뽑았다. 밥벌이를 하자는 것도 있었지만 어머니가 풀을 부지런히 뽑으면 이담 최구장이 오면 공부를 시키겠다고 하였기 때문이었다.
사실 사련은 만삭이 된 몸으로 앉은걸음을 하면서도 기음을 매며 일손을 도왔다. 그녀는 누구보다도 힘들어 기음을 맬 때면 항상 뒤에 떨어졌다. 그때마다 상순이 어머니 앞에서 곡식 포기 속의 풀을 뽑아 주어 얼마나 도움이 됐는지 모른다.
사련은 걀쭉하게 생긴 맏며느리가 사리에 밝다고 속으로 혀를 끌끌 차군 하였다.
상순은 풀을 뽑으면서도 고향이 그리웠다. 고향 최구장의 서당 방에서 공부를 하고 싶었다.
“날개라도 있었으면 고향에 날아가 최구장 선생님 서당 방에서 공부하련만.”
상순은 별들이 총총한 밤이면 턱을 고이고 초롱초롱한 까만 포도 눈으로 고향이 있다는 남쪽 밤하늘을 하염없이 바라보았다.
7. 주색에 미친 경찰국장
고향 명천에는 불볕이 쨍쨍 내리쪼이는 무더운 여름 대지를 휩쓸었다. 산과 들은 불로 지지는 듯이 홧홧 달아올랐다. 경찰국의 잿빛 기와들도 녹아내릴 듯이 열기를 뿜었다. 승냥이 아가리처럼 떡 벌린 경찰국 대문 양옆에서 번뜩이는 일본 보초병 놈들의 서슬 푸른 총칼과 혀를 길게 빼들고 헐떡거리는 사냥개 아가리도 행인들에게 무시무시한 공포감을 주었다.
병권은 묶인 채 영팔과 가메다한테 끌려 우시장 옛 경찰국 사무실로 들어갔다.
(또 무슨 짓을 하자고 붙잡아 갈까?)
새 경찰국 사무청사가 무너졌지만 끼무라는 펀펀히 살아 있지 않겠는가.
병권이 들어서는 것을 보고 끼무라는 뜻밖에 의자에서 일어나 마중까지 했다. 옆에는 류강철이 기생 풀처럼 딱 붙어 따랐다.
“어서 결박을 풀어주지 못할까?”
끼무라는 영팔에게 흰 눈알까지 데굴데굴 부라리면서 호통쳤다.
영팔은 눈을 내리깔고 내키지 않는대로 병권을 결박한 바줄을 풀어 주었다.
끼무라는 병권을 부축해 일궈 세우면서 부드러운 어조로 “오느라고 수고 많았소. 존경하는 김 의사, 어서 여기 앉으십시오.” 하고 너스레를 떨었다.
류강철의 통역을 들은 병권은 속으로 무엇이 울컥 치미는 것 같았다.
(이 놈이 왜 이래? 메스꺼울 정도로.)
끼무라는 병권이가 걸상에 앉자 옆에 다가와 앉으면서 억지로 상냥한 표정을 지었다.
“김 선생, 오늘 먼저 살벌한 현장부터 구경시키지.”
끼무라는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가기요.” 하고 병완을 데리고 바깥으로 나갔다.
끼무라는 찌프차에 병완을 싣고 어디에론가 먼지를 새뽀얗게 일구면서 떠났다. 찌프차는 일각도 되지 않아 우시장 뒷산 둔덕진 곳으로 달려 올라갔다.
경찰국 새 사무청사 터는 벌거숭이기둥이 몇 대 세로 누어있었고 대들보랑 서까래랑 가로 세로 어지럽게 땅바닥에 쓰러져 있었다.
병권은 무너진 경찰국을 보니 속이 시원했다.
(이 놈도 꽉 깔려 썩어질 게지.)
끼무라는 무너진 경찰국 사무 청사에 제나 지내는 듯이 머리를 숙이고 묵념에 잠겨 있더니 한참 후에야 무겁게 입을 열었다.
“김 선생, 우리 경찰국 사무 청사는 지은 지 3년 밖에 안 됐는데 이렇게 처참하게 무너지고 말았소이다. 큰 눈이 내려 무게를 감당 못한 것도 있네. 허나 그게 제일 큰 원인이 아니야. 저걸 보게. 기둥이랑 대들보랑 서까래랑 몽땅 벌레가 먹은 나무였단 말이네. 이런 썩박나무로 지었으니까 견들 리 있겠어?!”
끼무라는 무너진 터를 손가락질하면서 병권에게 하소연했다.
“그날 찌프차를 타고 우시장시내에 간 다음 무너졌으니 다행이었지. 깔려죽지 않은 게 천명이네. 우리 대일본제국의 헌병과 경찰 십여 명이 깔려 죽었단 말이야.”
끼무라는 악몽에서 헤어나려는 듯이 말상을 홰홰 가로 흔들더니 욕지거리를 해댔다.
“당신 동생, 병완 놈은 무너지라고 고의적으로 벌레 먹은 썩박나무로 지었네. 전번에 자동차가 새로 닦은 길에 놓은 다리를 지다다가 다리가 쿵 꺼졌단 말이야. 그 바람에 자동차가 강바닥에 처박히면서 숱한 수류탄이 폭발했네. 일본군 여섯에 자동차와 군수물자가 몽땅 하늘로 날아났네.”
끼무라는 발로 발밑의 돌멩이를 탁 걷어차 버리면서 고래고래 고함쳤다.
“병완 놈은 천번만번 죽여도 원수를 못할 놈이야!”
그는 턱을 손으로 고이고 무너진 경찰국 터에서 뚜벅뚜벅 거닐면서 무슨 궁리를 한참 하다가 우뚝 멈춰 섰다.
“병완이랑 두만강을 건너 간도로 도망쳤든 현해탄을 건너 우리 일본 섬에 갔든 이젠 추궁하지 않겠소이다. 전번에 김 선생을 혹독하게 매질했는데 미안하오다.”
한참 후 끼무라는 뒷말을 이었다.
“성칠 놈도 이젠 내 추궁할 놈이 아니네. 몇 해째 우리 명천에 얼씬도 못해. 그 놈은 간도의 우리 관동군에서 척살할 놈이야.”
병권의 눈치를 흘끔 곁눈질하고 나서 끼무라는 코 수염을 쓰다듬더니 음탕한 웃음을 지었다.
“김 선생, 인생이 얼마나 길다고? 선생이나 내나 이젠 다 늙은이가 됐구려. 오늘부터 우리 경찰국 숙사에 있으면서 나와 함께 질탕하게 놀아 봅세.”
강철이 통역하자 병권은 머리를 들고 가재수염을 쓰다듬는 끼무라 국장을 쳐다보았다.
(왜 슬슬 감겨들기까지 하면서 이래?)
끼무라는 햐얀 장갑을 낀 손으로 병완을 찌프에 올라타라고 손짓했다.
찌프는 끼무라와 병권, 가메다, 류강철을 싣고 우시장 시내로 먼지를 새뽀얗게 일구면서 달려갔다.
군용 찌프가 멈춰 선 곳은 우시장에서 유명한 기생집(기실 위안소임) 사꾸라관이었다.
이층으로 된 사꾸라관은 높다란 토성 안에 파란 벽돌과 빨간 벽돌로 무늬를 놓아 지은 아담한 집이었다.
병관은 끼무라를 따라 처음 왔기에 무슨 곳인지 잘 알지 못했다. 이층으로 올라가는데 화복을 입고 요염하게 치장한 일본 기생(위안부)들이 와르르 쏟아져 나와 끼무라의 양팔을 껴안고 안으로 들어갔다.
“끼무라 교꾸쬬(끼무라 국장), 혼또니 히사시부리데스네(정말 오랜만인데요)."
끼무라는 아양 떠는 기생년의 하얀 얼굴로부터 어깨, 허리까지 쭉 내리 매만지면서 "하나꼬, 우쯔꾸씨이데스네(아름답구나.)" 하고 말상을 끄덕였다.
병권은 오지 못할 곳에 끌려왔다고 속궁리하면서 주춤 멈춰 섰다.
그때 끼무라가 기생 년들에게 “오늘 김 선생을 잘 모셔라.” 하고 말하면서 뒤돌아보다가 말뚝처럼 서있는 병권을 손가락질 했다.
“긴쎈세이(김선생), 하이레(들어와)!”
그래도 병권 영감이 머뭇거리자 끼무라는 기생 년들을 데리고 와서 병권의 팔을 마구 끌고 기생집 안으로 들어갔다.
끼무라는 미리 모든 것을 준비시킨 것 같았다. 커다란 널 바닥을 깐 방에 큼직한 요리상이 미리 차려져 있었다. 모두 조선에서는 보지도 못한 일본 요리였다.
“김 선생, 앉게나. 오늘 이 예쁜 아가씨들을 끼고 실컷 마시고 놀아 보자고.”
강철의 통역을 듣자 병권은 일어나 가려고 했다.
끼무라는 억지로 마구 눌러 앉혔다. 뒤이어 일본 기생 년을 하나 옆에 앉혀놓고 우유 빛 얼굴을 쓰다듬으면서 말했다.
“요 아가씨 얼마나 예뻐? 아끼꼬, 김 선생을 잘 모셔.”
그러나 류강철은 왕청같이 통역했다.
“영감, 원래 예쁜 조선 위안부들이 있었는데 옥설이랑 만금이랑 이젠 나이를 먹어서 간도에 종군위안부로 보내고 없습꾸마. 젊은 일본 아가씨들의 맛이나 보란 말이네. 우리 조선 사내들이 일본 아가씨들을 깔고 뭉개고 짓밟아버리잔 말입꾸마. 이건 성 보복이 아니고 뭡니까? 일본 놈들이 우리 조선 여성들을 얼마나 무참히 짓밟았습니까?”
병권은 듣다 못 해 제지했다.
"됐네. 날 보고 일본 여성들을 유린하는 미친개로 되란 말인가?"
끼무라는 손수 술을 따라 병권에게 올렸다.
“자, 자, 뭐라고 이래? 한잔 마셔.”
병권은 눌러 앉은 것만큼 술을 마시지 않을 수도 없어 한잔 받아 굽을 냈다.
처음에는 마시는척하자고 했는데 옆에 앉은 아끼꼬란 기생 년이 입에 요리를 짚어넣는다 술을 따른다하면서 어찌나 권하는지 마시지 않을 수 없었다.
한참 술을 마시다가 한 아가씨가 축음기를 틀어놓았다. 그러자 일본 노래 “사꾸라" 곡이 유유히 흘러나왔다.
 
사꾸라 사꾸라
아오이노 소라와

 
끼무라는 옆에 앉은 하나꼬의 허벅다리를 슬슬 매만지다가 벌떡 일어나 일본 춤을 추기 시작했다. 오른 손바닥을 짝 치며 왼발을 내딛고 손을 바꿔 짝 치고 오른발을 쳐들었다. 옆에 앉았던 하나꼬와 아끼꼬도 일어나 끼무라의 앞뒤에 잔등을 대고 딱 붙어서서 함께 춤을 짝짝 춰댔다. 뒤이어 강철과 가메다도 보다가 일어나 그럴듯하게 춤판에 어울렸다.
“긴상(김군), 일어나 춤을 춰.”
류강철이 말하였으나 병권은 종잡을 수 없는 연회 판에 뒤숭숭해 구경만 했다.
끼무라는 기분이 좋아 입이 합박만 해 만면춘풍이었다.
한참 춤을 추고 나서 끼무라는 또 병권에게 술을 따랐다.
“김 의사, 내 듣기로 당신은 조의에 유명하다더구먼. 내 몹쓸 병에 걸렸는데 잘 치료해주게나. 그럼 당신 동생과 조카 죄를 묻지 않겠네.”
그제야 병권은 오늘 끼무라가 자기를 불러 깎듯 대한 원인을 알게 됐다.
“무슨 병이요?”
끼무라는 하나꼬의 허리를 껴안고 몸을 흔들거리었다.
“건 조용할 때 얘기하지. 얘들 앞에선 사내 자존심에 말하지 못할 일이네.”
끼무라가 류강철의 귀에 대고 나직이 귀속 말을 했다. 류강철의 통역을 듣자 병권은 대개 끼무라가 무슨 병에 걸렸다는 것을 짐작했다. 하나꼬나 아이꼬는 고까짓 춤을 몇 번 추고 온몸에 땀을 줄줄 흘리는 끼무라를 번갈아보면서 키드득거렸다.
끼무라는 자기를 비웃는 것 같아 눈에 거슬렸다.
“이 쌍년들, 웃긴 왜 웃어?”
기생들은 손으로 입을 딱 막고 웃음을 겨우 참았다.
“아, 난 이 숱한 고운 아가씨들을 두고 늙어 죽을 거 생각하면 아쉽고 한스럽네. 안되겠어. 내 오늘 술을 마셨다만 네 년들을 하나하나 죽여 줘야겠어.”
끼무라는 옆에 있는 하나꼬를 붙들고 일어나 옆칸으로 들어갔다. 이윽고 안방에서 사내의 “윽, 윽, 윽.” 힘겨운 소리와 아가씨의 고양이 울음소리 같은 신음소리가 뒤섞여 흘러나왔다.
기생 년들은 서로 눈치를 맞추면서 키드득거리면서 뭐라고 몇 마디 주고받았다. 가메다도 낯이 지지벌개지더니 볼에 난 털 한 모숨을 슬슬 매만지면서 기생 년의 풍만하고 야들야들한 젖가슴에 손이 스르르 들어가 주물럭거렸다. 류강철도 게 침을 흘리면서 기생 년의 앵도 같은 입술에 키스를 뻑뻑 안겼다.
안방에서 황소숨소리가 멈추더니 “어휴-” 하고 맥 빠진 끼무라의 한숨소리인지 한탄소리인지 김빠진 공에서 새나오는 김 소리처럼 흘러나왔다.
이윽고 하나꼬가 기름에 얼룩진 얼굴을 닦으면서 끼무라를 부축해 나왔다. 끼무라는 아직도 김빠진 공처럼 후줄근한 허리를 손으로 매만지며 비틀거리면서 술상에 와서 버려지는 보리주머니처럼 훌러덩 물앉았다.
“오늘 술을 그만 했소까. 김 의사, 내 병이 그저 병이 아닌 것 같네. 잘 치료해주면 당신네 일가를 다 부자로 만들어 줄게.”
기생 년들은 “그럼 얼마나 좋겠어요?” 하고 일본 말로 주고받으면서 섬섬옥수로 병권에게 술을 따라 권했다.
병권은 속으로 색마 끼무라가 기생집출입이 잦아 성기능이 쇠약해졌다는 것을 어림으로도 짐작할 수 있었다. 사실 끼무라는 성칠이나 진달래 같은 항일투사들을 잡지 못해 너무 정신압력을 받은데다 주색에까지 빠져 성기능이 엉망진창이 되었던 것이다.
술이 거나하게 된데다 하나꼬나 아끼꼬를 데리고 제대로 놀지 못한 끼무라는 신경질이 나 변태적으로 하나꼬와 아끼고의 허벅다리를 꽉 꼬집어놓았다.
하나꼬와 아끼꼬가 너무 아파 비명소리를 내자 끼무라는 재미있다고 변태적으로 "허허허" 하고 웃어댔다.
끼무라가 한창 흥에 겨워 가메다를 시켜 술상 옆에서 하나꼬를 재껴 놓고 강간하게 했다.
가메다는 처음에는 머슥머슥해 있다가 하나꼬의 치마를 걷어 올리고 자기 괴춤을 내리깠다. 하나꼬는 모로 얼굴을 살짝 돌리더니 이를 악물고 열이 후끈 가메다를 자기 몸 속으로 받아들였다. 가메다는 눈을 지그시 감고 하나꼬의 몸 위에서 온 몸을 부들부들 떨면서 미친듯이 요동쳤다.
“핫, 하, 하!”
끼무라는 구경하면서 야욕이 발작해 좋다고 손 벽을 쳤다.
그때 미닫이문이 쫘르륵 열렸다.
뜻밖에 전신무장한 일본 헌병들이 눈알을 뚝 부릅뜨고 쏘아보며 서있었다.
“누구야? 네놈들이 언감 끼무라 국장의 연회석에 뛰어들고도 살기를 바라겠느냐?!”
가메다가 황급히 바지를 춰 입으며 일어나 꽥꽥거렸다.
허나 헌병들은 물러서기는 고사하고 총신으로 가메다의 면상을 탁 쳤다.
"아이쿠!"
군관인 듯한 자가 꽥꽥 을러메기까지 했다.
“업동 경찰총국에서 내려왔어. 누가 끼무란가?”
그제야 정신이 펄쩍 든 끼무라는 “하이!” 하고 일어나 차렷 군례를 딱 붙였다. 그런데 술에 취해 비틀거리며 옆의 하나꼬 엉덩이를 걷어차더니 몸을 가누지 못하고 쿵 넘어졌다.
가메다와 류강철이 양옆에서 끼무라를 부축해 일으켰다. 기생 년들은 화복을 바로잡으면서 자기 칸으로 우르를 달아나갔다.
“빠까야로, 이른 아침부터 주색에 빠졌으니 정사를 그렇게 돌보지 못하지. 경찰국으로 끌고 가.”
이제껏 명천과 우시장에서 내노라고 우쭐거리던 끼무라는 안하무인격이던 경찰국장의 기가 어디로 사라졌을까. 다행히 기생 년들이 나갔기에 덜 창피스러웠다.
끼무라를 탄 찌프차를 압송하듯이 업동 경찰총국의 깜장승용차와 오토바이들이 앞뒤 양옆으로 에워싸고 옛 경찰국 사무청사로 먼지를 새뽀얗게 일구면서 달려갔다.
옛 경찰국 사무 청사로 들어가자 헌병연대의 한 군관은 끼무라 국장의 사무 상에 가 척 들어앉았다.
옆에서 문서관이 끼무라에게 소개했다.
“이분은 신임 업동 경찰총국 부국장이며 헌병연대 스즈끼 부연대장이시오.”
“하이!”
끼무라는 의자에 앉으려다가 엉거주춤 일어나 차렷 자세로 경례를 붙였다. 아까보다는 그래도 제정신이 펄쩍 들었는지 덜 비틀거렸다.
스즈끼는 끼무라가 창피해 할 것 같아 류강철과 가메다를 나가라고 손짓했다.
국장 사무실에는 스즈끼 부연대장이 데리고 온 전신무장한 헌병 십여 명과 술에 녹초가 된 끼무라만 남았다.
스즈끼는 사무상을 꽝 치며 벌떡 일어났다.
“경찰 국장이란 자가 뭔가? 이른 아침부터 위안소에서 위안부들을 끼고 술을 퍼 마시다니? 엉?!”
끼무라는 머리를 조아리면서 “하이! 잘못했습니다.” 하고 중얼거렸다.
“경찰국 사무청사 다 무너지고 군용트럭이 다리에서 떨어져 폭발했다. 그런데도 네놈은 여기서 술을 처먹고 X이나 하고 있어? 경찰국과 다리가 무너지게 한 원흉도 다 놓쳤다면서? 지금 어떤 땐가? 백두산을 중심으로 조선반도 북부 개마고원과 간도에는 항일유격대가 욱실거리고 있어. 그놈들은 중국대륙으로 진군하려는 우리 관동군을 위협하면서 뒷다리를 잡아당기고 있어. 자넨 명천과 우시장에서 조선 사람들을 참 잘도 다스렸다. 성칠은 유격대 한개 소대를 만들어 가직 도망했어.”
끼무라는 차렷 자세로 머리를 숙이면서 “잘못했습니다. 제발 목숨만 살려주십시오. 일본제국을 위해 목숨을 다 바치겠습니다.” 하고 말했다.
스즈끼는 끼무라의 귀쌈을 찰싹찰싹 갈겼다.
“하이!”
끼무라는 차렷 자세로 군례를 척 붙였다.
스즈끼는 사무 상에 돌아가 앉더니 안경알 밑으로 끼무라를 쏘아보았다.
“네놈도 대일본제국 군법을 알겠지? 네가 범한 죄과는 군법에 의해 총살해도 시원찮아.”
끼무라는 썩박나무 넘어가듯 풀썩 물앉으면서 엉덩방아를 찧었다. 그는 스즈끼의 입에서 무슨 말이 튀어나올지 몰라 감히 쳐다보지도 못했다.
“일어나!”
“하이!”
끼무라는 일어나 군례를 척 붙이고 머리를 숙이면서 말했다.
“죽을 죄를 졌습니다. 스즈끼 연대장, 난 군인입니다. 대일본제국을 위해 나절로 군도로 배를 가르게 해주십시오.”
스즈끼는 안경 알 밑의 눈알을 떼굴 굴리더니 사무 상에서 일어나면서 코 방귀를 뀌었다.
“흥! 그렇게 쉽게 죽게 할 수 없어! 한번 기회를 더 주지. 너의 경찰국장을 철직하고 내가 잠시 대신하겠다. 너의 헌병대대 대대장직무만 보류한다. 하루빨리 경찰국 사무 청사와 다리 공정 총 도감 김병완의 행적을 찾아내 성칠이랑 유격대 꼬리를 밟아라!”
“하이! 목숨 바쳐 임무를 완수하겠습니다.”
끼무라는 목숨을 겨우 부지하고 잔등에 식은땀이 쭉 끼쳤다.
“이제 다시 실직하면 그땐 군법에 따라 처형할 것이다!”
“하이!”
끼무라는 군례를 올리고 나서 그제야 머리를 들어 스즈끼의 안경알을 마주 바라보았다.
스즈끼는 사무 상에서 내려와 끼무라의 어깨를 다독이면서 조금 부드러운 어조로 바꿔 물었다.
“아까 기생집에 있던 수염이 시허연 조선 영감은 누군가?”
끼무라는 기생집 말이 나오니 몸둘 바를 몰라 했다. 끼무라는 코 수염을 매만지더니 자기 좋게 돌려댔다.
“그자는 총 도감 병완의 형입니다. 미인계를 써서 그 놈을 구슬려 병완의 꼬리를 밟으려고 그랬습니다.”
“음, 미인계? 그런 촌구석 조선 놈들에게 무슨 미인계인가? 우리 일본 기생이 아깝다, 아까와!”
스즈끼는 안경을 춰올리면서 속으로 중얼거렸다.
(나도 놀아보지 못한 예쁜 일본 기생을 죽일 놈들에게 놀라고 줘?)
스즈끼는 이것저것 묻기 시작했다.
“자위대 한길수 대대장은 어떤가?”
스즈끼의 물음에 끼무라는 어떻게 대답했으면 좋겠는지 몰라 한참 궁리하다가 모든 책임을 한길수에게 떠밀어버렸다.
“한길수 대대장은 그닥지 않습니다. 한대대장이 이 지방 조선 사람들을 어떻게 못살게 굴었는지 모두 불만을 품고 고향을 버리고 유격대를 찾아갔습니다.”
“한 대대장의 핍박에 숱한 유격대가 생겼다는 말이지?”
스즈끼의 물음에 끼무라는 머리를 조아렸다.
“하이. 다 한 대대장 탓입니다.”
스즈끼는 끼무라를 흘겨보았다.
“아직도 자기 잘못이 뭔지 모르는구먼. 그런 한 대대장을 쓴 건 자네 아닌가?”
“하이!”
“한 대대장을 불러와!”
끼무라는 사무 상으로 돌아가서 전화를 걸었다.
“한 대대장, 내 사무실로 잠간 오게나.”
이윽고 번들 이마 한길수가 개화장을 짚고 거들먹거리면서 들어섰다.
뜻밖에 사무 상에 젊은 일본 헌병군관이 앉아 있는 것을 보고 끼무라에게 눈길을 돌렸다.
“업동 헌병연대 스즈끼 부연대장이네.”
한길수는 허리를 꿉썩 굽히면서 "곤니찌와!(안녕하십니까?)" 하고 제법 일본말로 인사했다.
스즈끼는 거만하게 앉은자리에 앉아서 손을 들어 군례를 붙이고는 한길수의 아래우를 훑어보았다.
번들 이마아래 외눈박이였다. 흉측하게 생긴 말상이 보기만 해도 위엄스러웠다.
스즈끼는 천천히 일어나 뚜벅뚜벅 다가오더니 한길수에게 손을 내밀었다.
“한 대대장, 그간 대일본제국을 위해 수고 많았네. 우린 한대대장 같은 사무라이가 필요하네.”
한길수는 연신 꿉석거리며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다 끼무라 국장님이 잘 지도한 덕분입니다.” 하고 치하에 감개무량해 하면서도 당 상전을 추는 것을 잊지 않았다.
“끼무라 대대장!"
스즈끼는 불시에 의자에 앉아있는 끼무라 쪽으로 몸을 홱 돌렸다.
“하이!”
끼무라는 의자에서 벌떡 일어나 군례를 붙이면서도 어린 놈이 너무 거들먹거리는 것이 눈꼴 사나와 속으로는 욕지거리를 퍼부었다.
스즈끼는 한길수 앞에서 고래고래 고함쳤다.
“한 대대장 참 잘했어. 자네처럼 조선 사람들을 어루만져서는 안 돼! 그놈들은 무자비하게 진압해야 돼! 그래야 겁을 집어먹고 유격대를 따라 가지 못한단 말이야!”
“하이! 하지메데 와까리마시다(처음 알았습니다.)”
스즈끼는 명령을 내렸다.
“당장 오늘부터 명천과 우시장 일대 반일불온분자들을 몽땅 숙청하게! 그 염소수염영감부터 고문해 병완 놈의 행방을 알아내도록 하라!”
“하이!”
스즈끼는 “잘 했네.” 하고 머리를 끄덕이더니 뒷말을 이었다.
“오늘부터 끼무라 헌병대대장은 경찰국 옆에 있는 헌병대대 사무실로 옮겨가게나.”
“하이!”
“한 대대장도 끼무라 대대장을 협조해.”
끼무라는 군례를 붙이고 경찰국사무실에서 나왔다. 그는 군모를 벗어들고 이마에 송골송골 내돋은 진땀을 손으로 쓱쓱 닦았다.
그는 목을 만지면서 백여 미터 뒤떨어진 경찰국 사무실을 되돌아보면서 두덜거렸다.
“머리가 목우에 붙어있는 것만 해도 다행이야. 죄꼬만 놈 새끼 상사노라고 오자마자 떽떽거리긴? 쳇, 제 놈이 여기 명천이나 우시장이 어떤 곳인지 알기나 하면서 그래? 흥!”
성이 꼭뒤까지 치민 끼무라는 낯이 지지벌개 헌병대 사무실로 맥없이 뚜벅뚜벅 걸어갔다.
8. 조의의 비방
헌병대대 사무실로 옮겨간 끼무라는 스즈끼 부연대장이 원망스러웠다.
“제기랄, 우리가 십여년 고생해 명천과 우시장 일대에서 반일불온분자들을 깡그리 몰아냈는데 어데 가서 불온분자들을 붙잡아오란 말인가? 얼리고 닥치고 해도 병완 놈과 성칠 놈의 행방을 알아낼 수 없어."
그래도 전투임무는 완수해야 했다.
"어떻게 하면 좋을까?”
끼무라가 이마를 짚고 상을 찡그릴 때었다.
옆에 있던 한길수가 외눈깔을 굴리면서 계책을 올렸다.
“포수대에 들어간 가족들을 몽땅 붙잡아들입시다.”
끼무라는 콧수염을 매만지면서 “병완의 사돈에 팔촌까지 다 잡아들여야 고작 몇이 되겠는가?” 하고 도리머리 질 했다.
“운주동, 영월동, 신흥동, 신설동, 가마골루 두루 포수대에 간 놈들이 적잖습니다. 그 가족들을 몽땅 잡아들입시다.”
끼무라는 의연히 불만족해했다.
“그래도 만족하겠는가? 뭔가 무자비하게 진압하구 처형한 걸 보여 줘야겠는데.”
“일본 사람을 욕했거나 눈을 흘긴 놈들, 조선말을 한 놈들까지 수태 붙잡아다가 감옥에 처넣읍시다. 그런 놈들은 모두 반일불온분자들이죠. 스즈끼 부연대장이 꼭 만족해 할 걸요.”
그제야 끼무라는 사무 상에서 천천히 일어났다.
“좋소까. 몽땅 잡아들여라.”
한길수가 우쭐거리며 나가려 할 때다.
“잠간!”
한길수가 머리를 돌려 끼무라의 피발이 선 눈길을 쳐다보았다.
끼무라는 이를 뻑뻑 갈았다.
“병권을 고문해! 병완 놈의 행방을 꼭 알아내!”
“하이!”
한길수는 우레 같은 명령이 떨어지자 어깨가 으쓱해 나가며 속으로 끼무라를 욕했다.
(제길할, 병권에게 잘 보이려고 기생집에까지 끌고 가서 질탕하게 놀더니 나보고 고문하라고?)
시어미 역정에 개 배때를 찬다고 끼무라와 한길수는 스즈끼에게 훈계를 받은 후 변태적으로 나왔다.
한길수는 병권을 자위대대 고문실에 붙잡아다 형틀에 달아맸다.
그는 졸개들을 시켜 가죽채찍으로 매질하고 고추 가루를 타서 고구멍에 쏟아 넣고 참대가시로 손톱눈을 찔렀다. 피못이 된 병권은 너무 아파 깨문 입술이 파랗게 질렸다.
“말해! 병완 놈 어데 갔어?”
한길수가 직접 고문했다.
“난 모르오.”
병완은 피가 낭자한 얼굴을 겨우 들고 맥없이 한길수를 쳐다보며 대답했다.
“형제간인데 몰라? 우린 다 안다. 간도로 갔지?”
“알면서 나한테 물을게 뭐요?”
한길수는 엉거주춤 일어나 졸개한테 다가가 가죽채찍을 빼앗아들고 병권을 쨩, 쨩 내리쳤다.
그때 고문실 쇠문이 쩔커덩 열리더니 콧수염 끼무라가 들어섰다.
“잠간!”
끼무라는 한길수 손에서 채찍을 빼앗더니 한길수를 흘겨보았다.
“김 선생을 매질하다니? 자넨 앓지 않겠는가? 쯧쯧.”
류강철이 통역하자 한길수는 저도 모르게 두덜거렸다.
“금방 호되게 매질하면서 고문하라고 해놓고. 해뜩 번져 누우면서 인심을 내니 어느 도시 질에 맞추겠는가?”
끼무라는 한길수의 게두덜거리는 표정을 보고 대개 뭐라는 것을 짐작했다. 그러나 류강철은 그대로 통역하지 않았다.
“아무리 채찍으로 때려도 탄백하지 않으니 참말 답답하답니다.”
끼무라는 한길수를 한쪽구석에 불러다가 귀속 말로 쑤군거렸다.
“매로 쳐 말하겠나? 죽어도 동생을 불지 않을 거네. 내 얼리고 닥치고 할 테니 기다리게. 자넨 덕팔과 칠백의 가족이랑 몽땅 잡아다 고문하게.”
“하이!”
한길수는 군례를 붙였다. 그러나 속으로는 욕지거리를 해댔다.
(매는 내가 대구 인심은 네가 내구. 병권에게 잘 보이면 네놈의 XX 꿋꿋하게 살아나게 좋은 약을 줄 것 같으냐? 만성독약을 주지 않는가 봐라. 퉤, 더러운 자식.)
한길수는 게두덜거리면서도 말을 타고 영팔과 졸개들을 데리고 영월동쪽으로 덮쳐갔다.
끼무라는 손수 형틀에서 병권을 풀어주고나서 부축해 고문실에서 나왔다. 그는 헌병대대 의무실로 가서 간호사를 보고 병완의 상처를 처치해주라고 했다.
뒤이어 끼무라는 가메다를 보고 병권을 부축해 단칸방에 데려다 식사를 잘 대접한 후 푹 쉬게 했다.
한참 후에 끼무라는 단칸방에 찾아왔다.
“한길수는 무정한 놈이오. 당신들을 못살게 핍박하면 할수록 반항하고 항일의병에 달아난다고 했는데도. 참, 내 말을 통 듣지 않는다니까. 암암리에 병완을 못살게 굴어 끝내 달아나게 만들었고. 성칠은 사냥마저 하지 못하게 하는 바람에 사냥꾼들을 데리고 포수대를 뭇고 의병을 따라다니더니 이젠 유격대를 찾아갔단 말이오. 한길수는 아이 때 공부를 못한 무지막지한 놈이란 말이오."
병권은 자기 앞에서 개다리를 물어뜯는 끼무라의 속심이 뭔지 알 수 없었다.
(네 놈이 나한테 알락방귀를 먹여? 뭣 때문에?)
병권의 눈치는 모르고 끼무라는 고양이가 쥐를 생각하듯이 계속 지껄여댔다.
“이게 뭐요? 온통 상처투성이구만.”
한참 알락방귀를 뀌던 끼무라는 본심을 드러냈다.
“사실 난 요즘 그게 잘 되지 않아 애나네. 긴쎈세이는(김선생은) 유명한 조의라는 거 아네. 당신의 아버지는 궁정어의. 맥이 빠진 내 양기를 살려주게나. 이게 말을 듣지 않아 예쁜 위안부들을 두고서고 하지 못해 애나서 죽을 거 같단 말일세. 이전에도 말했지만 병완과 성칠의 죄를 추궁하지 않겠어. 내 관할구역에서 얼씬거리지 않으면 눈을 감아주겠네.”
병권은 가타부타 한마디 말도 없었다.
끼무라는 낯 색이 확 변했다.
“잘 생각해보게. 지금 자네 일가에 사돈에 팔촌까지 몽땅 한 대장 고문실에 갇혔네.”
끼무라가 문을 쾅 닫고 나가버렸다.
류강철이 뒤에서 생각하는 척 했다.
“영감, 의술이 뛰어난 덕에 이런 거래라도 할 수 있는 줄 아오. 지금 스즈끼라는 새 경찰국장이 와서 욕 한마디 해도 안 되오. 지어 조선말을 해도 반일불온분자로 잡아 죽일 잡도리요.”
류강철까지 나간 후 병권은 구들에 훌렁 드러누워 천정을 쳐다보면서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미운 놈을 떡을 더 준다고 가족 때문에 별 수 없구나.)
오후에 끼무라가 류강철만 데리고 다시 병권을 찾아왔다.
“병을 봐주겠는가?”
끼무라가 무뚝뚝하게 묻는 말에 병권은 “봐주겠소.” 하고 대답했다.
그러자 까무라는 콧수염이 콧구멍에 들어갈 지경으로 헤벌쭉 웃었다.
“글깨나 읽은 사람이 명지한 선택을 하리라 믿었네. 에헴.”
병권은 류강철을 보고 끼무라를 앉아 밥상 위에 팔을 빼들라 하라고 한 후 손가락으로 맥을 짚어보았다.
한참 후 병권은 끼무라에게서 눈길을 떼면서 류강철에게 돌리더니 “에이, 음위가 심하구먼. 이게 시래기처럼 싹 시들어서 성교를 하기 어렵게 됐네.” 하고 진단을 내렸다.
끼무라는 류강철의 통역을 듣고 병권의 손을 잡고 애원했다.
“내 양물을 살려주게나. 사꾸라관에 숱한 미녀들을 두고 놀지 못하면 살아 뭘 하겠는가? 제발 살려주게. 돈이 필요하면 돈 내놓고 병완이랑 놔달라면 놔 줄게.”
병권은 끼무라의 손아귀에서 손을 뺐다.
“이 감옥 같은 숙사에서 어떻게 병을 떼겠소? 약재도 없고, 약을 닳일 풍로나 약탕관도 없지. 날 집에 보내주오.”
류강철이 통역하자 끼무라는 단도직입적으로 뚝 잘라버렸다.
“건 안 돼. 김 선생이 달아나면 어데 가 찾겠소? 처방만 떼 주게. 우리 헌병대 간호사나 의사 보고 약방에 가서 약을 져오라면 될게 아닌가?”
그 말에 병권은 더는 할 말이 없게 됐다.
(이 놈이 나를 믿지 못하는구나.)
병권은 의심을 사지 않으려고 별수 없이 “그렇게 합세.”라고 했다.
그는 끼무라의 눈치를 슬슬 살피면서 뒷말을 이었다.
“원래 음위가 온데다가 임질이란 더러운 성병까지 걸렸소. 약이 더러운 게라고 나무라지 않으면 써보지.”
끼무라는 듣고 나서 상을 찡그리면서 “병만 떨어지면 뭐라나.”라고 했다.
병권은 붓과 종이를 가져오라고 하여 신장을 보하는 약 처방을 줄줄 내리썼다.
뒤이어 그는 류강철을 보고 “끼무라 국장에게 물어보오.”라고 하면서 끼무라의 눈치를 힐끔 곁눈질 했다.
병권은 얻어맞아 피딱지 붙은 하얀 염소수염을 슬슬 내리쓸더니 뒤 말을 이었다.
“양기를 살리려면 두 가지 민간요법을 써보는 게 좋소. 하나는 양기가 성한 사내대장부의 오줌에 인삼과 송이버섯, 물개 좆을 불거 먹는 게고 다른 하나는 자기가 제일 좋아하는 여자의 질에 대추와 인삼을 한 보름씩 넣어 퍼지었다가 먹는 게오.”
류강철이 통역해주자 끼무라는 오만상을 찡그렸다.
“에헤헤. 별 약을 다 본다. 사내 오줌이야 어떻게 먹겠는가?”
류강철은 끼무라를 보고 “이 염소수염영감의 애비는 이씨 왕조 궁정어의였습니다. 병을 떼겠으면 더러운 대로 비방 약을 써보십시오.” 하고 권고했다.
한참 후 끼무라는 찡그렸던 상을 거두었다.
“처방 약을 닳여 먹으면 안 되는가?”
병권은 고의로 자기 견해를 고집했다.
“나도 별수 없소. 양기를 돋우자면 이 두 가지 처방가운데 한 가지 약을 꼭 써야 하네.”
끼무라는 눈깔을 질끈 감고 낯을 천정으로 향하더니 한숨을 후 내 쉬었다.
“먹지. 하나꼬의 XX에 대추를 넣었다가 먹지.”
병권은 속으로 웃음보가 터져 나오는 것을 겨우 참아냈다.
그날로 끼무라와 류강철은 약 처방을 가지고 헌병대대 의원에 가서 의사들과 간호사들을 모여 놓고 약 효과를 알아보았다.
의사들이 모두 머리를 끄덕였다.
“조선의 인삼과 송이는 신장을 돕고 기를 보하는 좋은 약재지요. 인삼과 송이, 대추를 질에 퍼지어 먹는다는 건 처음 듣는 처방입니다만.”
끼무라는 병권이가 약 처방대로 약을 달여 먼저 류강철에게 실험해본 후 먹기로 했다.
그날로 실험이 시작됐다. 헌병대대 약제사들은 병권의 약 처방대로 약방에 가서 약을 지어다가 먼저 류강철에게 먹여보았다.
     며칠후 놀랍고도 우스운 일이 벌어질줄이야 누가 알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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