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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소설 황혼 제2권(24) 졸혼 풍경선 김장혁
2024년 07월 25일 10시 41분  조회:557  추천:0  작성자: 김장혁

   
    김장혁 작 장편소설 황혼


     
           24.
졸혼 풍경선
 



     어둠의 장막이 깃들자 병실에는 또다시 적막강산이 고독하게 찾아와 종호를 괴롭히기 시작한다.
    종호는 피를 말리는 고독을 말리려고 핸드폰을 들여다보다가 눈이 시려서 내리어놓고 눈을 스르르 감았다. 그의 뇌리에는 또착잡한 생각이 삼겁불처럼 갈마들었다.
    아마 사람은 황혼에 이르면 회상에 잠겨 산다는 말이 맞는 것 같았다. 나이가 드니 젊은이들처럼 미래를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자꾸 살아온 옛날 일이 떠올랐다. 끝없는 회억에 푹 잠겨 있느라면 잠시나마 고독을 말릴 수 있어 좋았다.
    종호는 자기 기구한 운명과 곡절적인 졸혼을 생각하니 마음이 아팠다. 그는 류려평과 졸혼하고 우리 민족의 렬사들과 영웅인물들의 이야기를 정리해 책을 내면서 살았다.
    그러나 녀탐관 류려평은 졸혼한 후 무슨 멋에 살았는가? 그녀는 미인계 등 갖은 비렬한 수단을 다해 금은보화를 모으는 멋에 살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녀탐관 류려평은 처음에는 각방을 쓰면서 암암리에 종호 몰래 자기 침실에 금고까지 두고 류덕재한테서 얻어먹은 돈과 금은장신구,  탐오한 검은 돈까지 치워두었다. 류려평은 자기 침실에 자물쇠를 꽁꽁 채워놓고 다니면서 종호가 자기 각방 언저리에 얼씬하지도 못하게 했다.
    어느날 집이 빈 틈에, 자물쇠를 채우지 못한 침실에 들어가 보았다.
   려평의 체취가 풍기는 침대를 내려다 보면서 쓸쓸한 생각도 들었다.
   이전에 종호는 이 침대에서 열렬하게 속살도 섞으면서 산 적도 있었다. 그런데 점점 커가는 려향 때문에 부부 생활에 불편할 때도 있었다.
    려향은 열살도 다 됐는데 혼자 뒷방에 가서 할머니와 함께 자려고 하지 않고 계속 엄마 귀를 붙잡고 자려고 했다.
   종호는 하는 수 없이 려향이 잠이 들기를 기다려 뒷방에 안아다가 할머니 옆에 재워놓군 하였다. 그러고도 류려평이 옆을 주어야, 악처의 비준을 받아야 여자라고 맛을 볼 기회가 차례질 판이었다.
   그런데 어떤 때에는 려향이 깨나 엄마, 아빠 자는 앞방에 뛰어와 고래고래 고함쳤다.
    “내 어제 밤에 엄마 귀를 잡고 잤는데 어째 누가 할머니 옆에 안아 갔습니까?”
    “허허허. 아마 신선아바이 안아 갔는 모양이야?’
    려향은 눈을 흘기면서 종알거렸다.
    “거짓말, 아빠 안아갔지?”
    “이젠 크다만게 아직도 엄마하고 자겠니?”
    려향은 아빠를 쳐다보면서 종알거렸다.
   “허허허.”
   “호호호.”
    그때 일만 생각해도 허구픈 웃음이 절로 났다.
    (우리도 그런 때 있었던가?)
   종호는 이전 일을 회상하면서 침대머리 서랍을 열고 두루 이것저것 들춰보다가 깜짝 놀랐다. 서랍에 숱한 피임약과 콘돔이 있지 않겠는가.
   "이년, 나하구 한번도 살지 않는데 콘돔을 해 뭘 해? 진짜 바람 났구나."
   종호는 이번엔 벽궤 문을 활짝 열었다.
   “이게 뭔가?”
   종호는 깜짝 놀라 입을 함박만큼 쫙 벌리었다. 
  벽궤 밑바닥에 놓인 자그마한 금고 위에 금은장신구가 수두룩이 쌓여 있지 않겠는가.
   (탐욕스런 년, 금고까지 사다 놨어?)
   그때 문소리가 덜컥 났다.
   류려평이 황망히 들어섰다. 그녀는 자기 각방에 서 있는 종호를 보고 퉁사발이 데꾼해졌다.
   “아니, 당신 왜 내 침실에 들어왔어? 지금 뭘 해?!”
   “려향이 두고 간 책을 가져오라고 해서 책을 찼소.”
   려평은 쌍까풀눈이 휘둥그래진 채 옷궤를 훌 열어보았다.
   그녀는 몸을 홱 돌리더니 꽥 소리쳤다.
   “당신 다 들춰봤지?”
   “뭘 그러오?”
   류려평은 종호한테 손삿대질하며 고함쳤다.
   “당장 나갓!”
   종호는 려향의 책을 아무거나 쥐고 나가면서 한마디 때끔하게 해주고 나갔다.
   “충고할게. 절대 부정당한 돈을 벌지 마오. 쇠살창문을 단 벽돌집이 기다린다는 거 아오.’
   “주둥일 다물지 못해?! 내 감옥에 들어가면 씨원하겠구나. 내 감옥에 가면 당신도 지옥에 갈줄 알아라.”
   류려평은 그날로 일군을 고용해 금고를 본가집에 실어가 감춰 두었다.
    여기까지 생각하자 종호는 류려평과 졸혼 계약을 맺고 려향을 데리고 한국에 나온 걸 아주 잘했다고 생각했다.
    (부부 정도 없이 허울 밖에 없는 가정에서 살아서 뭘 해? 정신감옥에서 살 멋이야 없지. 한국에 나왔기에 려향은 어엿한 문학박사로 되지 않았는가. 집에 있으면야 려평의 품에 안겨 서적이나 쓰고 만족도 아니고 조선족도 아닌 짜궁배를 만들었을 거야.)
    그는 불타던 저녁노을이 사라져가고 어둑어둑해지는 병실 창문 밖을 내다보면서 한숨을 땅이 꺼지게 내쉬었다.
   (내 인생은 너무 허무해. 글농사를 내놓고는 실패한 인생이야. 졸혼한 후 가정은 허울뿐이고. 안해는…)
   그는 류려평을 다시 떠올리기도 싫었다.
   (사람이 사는게 다 그렇겠지.)
   그는 아주 자연스레 친구와 동료들의 얼굴이 삼삼히 떠올랐다. 이국타향 병실에 누워 있으니 친구들이 퍽 그리워났다. 적막강산에서 이렇게까지 친구들이 그리워 보기는 처음이었다.
   젤 먼저 떠오르는 친구는 그래도 성호가 아니겠는가.
  성호는 종호의 대학 동기이자 제일 친하는 친구라고 할 수 있었다.
   (그 놈이 그래도 사내답고 인간답지. 성호와 승호는 동기었는데 은영을 두고 사랑의 라이벌이었지. 눈 덮인 학교 뒤산 소나무숲에서 주먹치기를 하면서 결투까지 했지. 그날 은영이  말리지 않았더라면 둘 다 모질 상했을 거야. 그런데 승호가 성호 친조카일줄이야 누가 알았겠는가. ㅋㅋㅋ)
   종호는 대학 시절 성호와 승호를 생각하자 저도 몰래 혼자 웃었다.
   원래 승호한테는 배다른 형이 있었는데 유복자로 태여난 형을 시내 남의 집에 주었다. 그후 서로 련계가 끊어져서 성호는 승호 아버지와 만나본적도 없었다. 그래서 숙질간인 줄도 모르고 시장네 귀공주 은영을 두고 서로 결투까지 했던 것이다.
   (승호는 세상 바람둥이었지. 대학에 오기 전에 벌써 중학교 동기인 약혼녀와 량성관계까지 벌렸지. 대학에 입학하자 차버리고 우리 반 홍희를 재꼈지. 그러고도 모자라 은영과 엄정희를 넘써 봤지. 그 일로 홍희는 자살까지 했지. 녀대생이 자살한 일은 대학 울안을 벗어나 온 시내를 들썽했지.)
   종호는 동기생 은영을 떠올리면서 도리머리를 절레절레 저었다.
   (은영은 처음에는 승호가 홍희를 자살하게 한 주범인줄도 모르고 반장이라고 승호를 따랐지. 건데 밤중에 승호와 소나무숲에서 그 짓을 하다가 강도들한테 붙잡혔지. 은영은 강도들한테 륜간당해 죽다 살아났지. 그번 여대생 륜간사건은 또다시 온 시내를 뒤흔들었지. 우리 반은 그런 일로 대학교와  공안국의 중시를 받게 댔지. 비록 륜간범들은 몽땅 총살당했지만 은영은 심한 심신상처를 받은 충격에 몇번이고 자살하려고 했지. 그래도 후에 지인들의 보살핌을 받아 대학을 졸업하고 최혜영으로 변성명 하고 타현 검찰원에 졸업배치를 받아 검사로 됐지. 후에 은영은 상급검찰원에 전근됐고 나중에 반탐오회뢰국 국장이 돼 탐관 정호랑 붙잡아내 여검사 본때를 보여주었지. 혜영은 후에 승호의 몰골을 다 알고 평생 결혼하지 않고 독신으로 살아왔지. 승호는 그 후에도 계속 바람 피우다가 에이즈에 걸려 새파란 사십대 초반에 죽고 말았지.)
    허연 병실 적막강산에 그래도 지영이 때마침 찾아와서 옆에서 살뜰히 보살피어 고독은 저도 몰래 사라져갔다.
   노크소리 조용히 울리더니 려향이 사뿐 들어섰다. 병실 분위기는 대번에 확 바뀌어 친혈육의 정이 부녀 사이에서 훈훈하게 감돌았다. 딸이 자주 찾아와 종호의 우울증 저울추를  얼마간이라도 내려놓아 주어 다행이었다.
   려향은 활짝 웃는 얼굴로 아빠를 바라보면서 과일구럭을 들고 다가왔다.
   “아빠, 저 박사론문이 통과됐어요.”
   “그래?”
   종호는 침대에서 벌떡 일어났다.
   “축하한다. 우리 집 문학박사님.”
   종호는 지영이 옆에 있는 것도 다 잊고 려향을 덥썩 끌어안아 주었다.
   “다 아빠 고생하면서 뒤시중을 잘해 준 덕분이예요.”
   려향은 머리를 들더니 물었다.
   “아빠, 바람 쏘이러 나갈가요?”
   “아니, 금방 지영이하구 나갔댔다.”
   종호는 침대에 앉으면서 속으로 중얼거리었다.
   (이젠 려향을 보고 사는게지. 홀애비로 살아도 아직 다하지 못한 일을 계속 하면서.)
종호는 노처녀로 숙성해가는 려향을 보고 궁금해 물었다.
   “졸혼에 대해 생각해보았니?”
   려향은 의아한 눈길을 보내면서 심드렁한 표정을 지었다.
   “졸혼?”
  그녀는 “결혼문제를 묻지 않아 다행이군요.” 하고 말하려다가 옆에 걸상에 앉아 그들 부녀를 바라보는 지영을 보고 그만두었다.
   종호는 지영을 돌아보면서 물었다.
   “지영인 졸혼을 어떻게 생각하오?”
   지영은 려향을 돌아보며 희죽이 웃어 보이었다.
   “글쎄요. 지금 한국과 일본에서 졸혼이 류행된다는데요. 졸혼은 리혼을 하지 않고 갈라서 사는 혼인풍속이라던데요. 서로 상대방 생활을 간섭하지 않고 자기 삶을 살 수 있어 좋아도 보이는데요. 졸혼은 새로운 혼인풍속인 거 같은데요. 제가 뭘 알아서 사장님과 박사님 앞에서 왈가불가 하겠는가요?”
   지영은 종호와 려향의 눈치를 번갈아보았다.
   “괜찮소. 스스럼 없이 이야기를 나누기오.”
  종호는 려향을 돌아보았다.
  “려향아, 너도 말해보렴.”
  려향은 단도직입해 말했다.
  “아빠와 엄마처럼 졸혼하고 살라면 좋지 않은 거 같아요. 부부라면 한 가정에서 살아야지요. 안 그럴러면 씨원히 리혼하고 살고.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니고 뭔가요?”
   지영도 자기 비극적인 혼인을 떠올리면서 동감했다.
  “맞아요. 서로 마음이 맞지 않으면 씨원히 리혼해야지요.”
  종호는 도리머리를 절레절레 저었다.
   “리혼이 어디 그리 간단하오? 애들 전도에 영향주게 되는데…”
   종호는 지영이 리혼녀라는 걸 모르고 있었다.
  지영은 개의치 않고 용기를 내서 내심의 생각을 솔직하게 말했다.
   “부모가 리혼하면 잠신 어린 애들한텐 영향을 주겠지요. 그러나 애들이 다 크면 괜찮을 거 같아요. 자식들도 장성하면 자기 삶을 살테니까요.”
   종호는 뭐가 찔리는데 있는지 한숨을 땅이 꺼지게 내쉬었다.
   “성호란 대학 때 동기친구 있지. 성호는 우리 반 엄정희란 여동기하구 결혼했지. 엄정희는 대학교 교수네 귀공주오. 농촌 태생인 성호와 총망히 결혼 후에 살기 어려우니 엄정희는 다단계판매에 휘말려들었댔소. 정희는 숱한 사람들의 돈을 한국 사기군한테 떼워서 감옥살이를 다 했소. 출옥하자 정희는 시내 사람들 앞에서 얼굴을 들고 살기 어려웠지. 그래서 정희는 성호와 졸혼하고 미국에 가서 때밀이하면서 돈을 아글타글 벌었지. 성호는 졸혼한 후 정희와 20여년 동안이나 혼자 광고업을 하면서 살았지.”
   지영은 호기심에 차 물었다.
   “그래 지금도 리혼하지 않고 사는가요?”
   종호는 아주 친구 일을 자랑삼아 이얘기했다.
   “그래, 둘 다 이날 이때까지 다른 짝을 찾지 않았지. 그들 부부간은 대학교 시절에 자유련애해 사랑을 맺았소. 그들의 사랑은 그들 둘의 마음 속에 얼기설기 아주 깊게 뿌리를 내렸지. 그들은 몇십년 동안 갈라 살았지만 갈라지지 않았소. 그들은 아글타글 경제건설을 잘 해놓 후 지금 졸혼 계약을 거두고 둘 다 한국에 나와 아파트까지 사놓고 아주 깨알이 쏟아지게 살고 있어. 하나라던가, 딸애도 미국 하버드대를 석사학위를 타고 남방 한국 반도체기회사에서 한자리 하는데 잘 나가는 모양입데. 이젠 성호와 정희는 시름 싹 놓고 살고 있어.”
    종호는 지영과 려향을 둘러보면서 뒷말을 이었다.
    “결혼과 졸혼, 이 사이에서 명지한 선택을 하려면 좀 여지를 두는게 좋은 것 같애. 인생은 언제나 여지를 두면서 살아야 해.”
려향은 허구픈 웃음이 나왔다.
   (아빠는 바로 그렇게 여지를 두고 살아왔지요. 그래서 인생을 비극에로 이끌어가지 않았는가요? 륙십이 넘도록 질질 끌면서 리혼도 하지 않고 졸혼하고 살았지요. 그래서 아빠나 엄마나 불행하게 살게 된 거죠.)
   그녀는 이렇게 툭 까놓고 말하고 싶었다. 그러나 아빠한테 너무 큰  심리타격을 줄가 봐 목구멍까지 올라온 말을 그만 꼴깍 삼키고 말았다.
    뒤이어 병실에는 납덩이 같은 침묵이 졸혼 여운을 핥으면서 지지리 답답한 가슴들을 노크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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