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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소설 황혼(11) 나포 김장혁
2024년 07월 12일 11시 36분  조회:437  추천:0  작성자: 김장혁
  
           김장혁 작 장편소설 황혼



             11.  나포 
 

  
 
   며칠이 지난 어느날 점심, 뜻밖에도 려평이 병원에 나타났다.
   그녀는 복도에서 도적고양이 걸음을 하면서 사위를 둘러보았다.아무리 퉁사발눈을 희번뜩거려 봐도 수상한 조짐이 보이지 않았다.
  려평은 안도의 한숨을 길게 쉬더니 슬금슬금 종호의 병실로 다가가 문을 벌컥 열었다.
  "엄마!"
  려향은 놀란 눈길로 려평을 쏘아보며 마중했다.
  지영은 어두운 기색으로 려평을 흘끔 곁눈질하며 건성으로 눈인사를 하고 바깥으로 나가버리었다.
  그녀는 복도로 나가 굽인돌이를 돌자마자 핸드폰을 꺼내들었다.
  "저기요.류려평이 병원에 나타났어요. 네.리선생님 병실에 금방 들어갔어요."
  경찰서에 신고한 후 지영은 경각심 높이 종호네 병실을 주시했다.
   한편, 병실에서 류려평과 려향은 서로 눈치놀음을 했다.
     려향은 이젠 류려평을 엄마라기보다 불청객이랄까, 경계대상이랄까 환영받지 못하는 여자로 여기게 됐다. 그녀는 도적놈을 대하듯 눈을 떼지 않고 암범의 일거일동을 살피었다.
     종호와 려향은 류려평을 암범이라고 별명을 지어 불렀다. 류려평이 범띠인 것도 있겠지만 범처럼 너무 뭇섭게 독살스럽기 때문이었다.
   류려평도 이상한지 횡설수설하면서 허리 굽혀 침대 밑이랑 탁자 밑이랑 살피었다. 혹시 병 쪼각이라도 남지 않았는가 근십됐던 것이다.
  그러나 려평은 어찌 알겠는가? 지영이 진작 병 쪼각을 주어 경찰서에 가져다 바치고 신고했다는 것을.
   인터폴 법망이 점점 자기한테 옥죄여 온다는 것은 더욱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다.
  류려평이 종호를 자꾸 찾아온 것은 종호의 병문안보다도 로임카드에 관심이 갔던 것이다. 국내 같으면 탐오하고 얻어먹은 돈이 가득해서 종호의 로임 같은 건 왼눈으로도 보지 않았다. 그러나 검은 돈을 하나도 가지고 한국에 나오지 못한 려평은 종호 로임카드의 돈이 아니면 굶어 죽을 지경이었다. 핸드폰은행카드를 들여다보니 자기 모든 카드는 이미 진작 차단됐던 것이다.
  (분명 수사기관에서 내 탐오횡령죄를 수사해내고 은행에 위탁해 자금줄을 차압한 거야. 난 어떻게 살아?)
  류려평은 돈도 돈이겠지만 링겔에 주사해 놓은 사건 정체가 발각되는 날에는 한국에서도 발을 못 붙힐 건 불 보듯 뻔한 일이 아니겠는가.
  류려평은 오늘도 무슨 단서를 남긴가 근심돼 위험을 무릅쓰고 병원에 나타났던 것이다.
  그러나 그녀가 아무리 기웃거리면서 살펴 보아도 병 쪼각 하나도 발견하지 못했다.
  그녀는 안도의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뒤이어 산소호흡기를 달고 거친 숨소리를 내는 종호를 내려다보면서 두덜거리었다.
  "네 애빈 그 개도 먹지 않는 이름 석자를 세상에 날리자고 제 집을 다 팔아먹은 망할 놈이야."
  려향은 려평에게 눈을 흘기었다.
  "또, 또, 시작인가요?"
  "흥!"
  려평은 콧방귀를 뀌었다.
  "네 애빈 세상 바람둥이야."
  려향은 몸까지 마구 흔들고 발을 동동 구르기까지 하며 고함쳤다.
  "근거 없이 아빠를 마구 욕하지 말아요."
  "근거 있어."
  류려평은 뜨물에 빠진 돼지 쌍까풀눈으로 려향을 표독스레 쏘아보며 고함치었다.
  "내 눈으로 똑똑히 보았어. 어느날 급한 일 있어 신문사 사장실에 찾아갔더니. 뭐겠니? 저 놈이 글쎄 사장실에서 나영이란 년과   한창 그 짓을 하지 않겠니? 얼마나 메스껍던지. 저 짐승 같은 놈이 시퍼런 대낮에 단위 사무실에서 사무상에 나영을 엎디게 하고 치마를 들고 뒤로 달려들어 그 짓을 했어!"
  진짜 심통히도 제 눈으로 본듯이 헐뜯었다.
  려향은 누가 들을가 봐 손으로 려평의 입을 마구 막았다.
  "생사람 작작 잡아!"
  그때 종호가 억울한듯이 기침을 쿨룩쿨룩 깇었다.
  려평은 려향의 손을 마구 쥐어 뿌리치었다.
  "걷어치워!내 생사람을 잡는다고?! 넌 왜 아빠 역성만 드니?"
  려향은 려평을 손가락질하며 질챘했다.
 "아빠를 억울하게 굴지 말어.그런 아빠하고 결혼할 건 뭐야? 이제 와 악착스레 물고 늘어져?!" 
  려평은 두덜거리었다.
  "저런 색마일줄 누가 알았겠어.내 눈깔이 멀었지.저런 것두 대학생이라고 결혼했지."
  려평은 눈물을 주르르 흘리더니 려향의 손을 잡고 당부했다.
  "넌 절대 저런 색마한테 시집가지 말라.대상자 소박치 어떤가 다 뽑아보기 전엔 절대 결혼하지 말라.가정배경도 좋은가 보고 시    집가야 해.난 저런 가난뱅이 촌빵을 만나 한뉘 개고생했어."
  려향도 뾰로통해 두덜거리었다.
  "누가 시집간다고 했어? 엄마 아빠처럼 맨날 티격태격 싸우자고 시집가? 시집 가서 좋구 나머지를 받아 키우면서 셋집에서 개고  생하라고? 모두 자식 덕이 뭐 있는가요? 애나게 키워 아글타글 번 돈으로 대학까지 보내도 부모들이 무슨 자식 덕을 보는가요? 숱한 돈을 팔아 집까지 사 줘야지.손주들까지 다 키워주고나면 자기 죽을 때 되겠는데.한뉘 개고생하자고 시집가? 안가! 절대 안가!나처럼 자식은 다 애군이고 부담거리야. 시집가 자식 낳아 키우는 돈이면 나 혼자 실컷 쓰면서 살겠다. 그 돈이면 혼자 잘 먹고 잘 입고 관광이나 다니면서 향수하면서 살겠다."
   종호는 제정신이 들었는지 또 기침을 쿨룩쿨룩 깇었다.
   그때 갑자기 병실 문이 벌컥 열렸다.
   아니, 저게 뭔가!
  여경 둘이 병실에 뛰어 들어왔다.
  "누가 류려평인가요?"
  여경은 려평과 려향을 번갈아보았다.
  려향은 머리로 려평을 가리켰다.
  눈치를 챈 여경들은 려평한테 다가왔다.
  "꼼짝 말엇!"
  여경은 쇠고랑이를 꺼내 들었다.
  "류려평 맞지요?"
   려평은 목구멍으로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승인하지 않을 수 없었다.
  "네.제가 려평인데요."
   려평은 아주 순통한 한국어로 대답하며 도리머리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런데 제가 무슨 죄 있는가요?"
  려평의 손목에 차거운 쇠고랑이 절컥 채워졌다.
  "류려평, 살인미수혐의로 체포해요."
  "억울해요.항의해요.무슨 증거가 있는가요?"
   여경은 려평을 쏘아보며 말했다.
  "당신은 종호씨의 링겔 병에 염화칼리움액을 주사해 넣었지요.국과수 화험결과도 있어요.당신은 남편을 염화칼리움으로 천천히 안락사시키려고 한 혐의가 있어요."
   려평은 도리머리를 절레절레 저었다. 제딴에는 깨진 링겔병 쪼각을 다 쓸어 담아 쓰레기통에 내다 다 던져 증거를 없앴다고 여기었는데.
  (웬 일일가? 쓰레기통에서 주어다 경찰서에 바쳤어?"
   려평은 쌍까풀눈을 가슴츠레 뜨고 미심한 눈길로 려향을 쏘아보았다.
   려향은 깨고소해하는 눈치가 아니겠는가.
  류려평은 머리를 돌려 여경을 돌아보며 시간을 끌려고 불쑥 물었다.
  "체포장이 있는가요?"
   다른 여경이 체포장을 쳐들었다.
  "투약살인혐의로 체포해요."
  쇠고랑이를 채운 여경은 려평의 잔등을 떠밀었다.
  "가자!"
  "딴 짓 부리지 말고 경찰서에 가자."
  려평은 머리를 툭 떨어뜨리더니 무겁게 끌리어 나갔다.
  갑자기 려평은 뻗디디며 멈춰서 고래고래 고함치었다.
  "가만! 난 중국 공민이란 말이야. 너희들 뭔데? 한국 경찰이 날 체포해?"
  여경이 대답했다.
  “한국에서 죄를 저질렀으면 한국 법에 의해 처벌받아야 해.”
  다른 여경이 려평의 등뒤를 탁 치며 떠밀었다.
  “걸엇!”
  그때 등뒤에서 종호의 석쉼한 목소리가 들리었다.
  “가, 가만!”
  려평은 놀란 눈길로 종호를 되돌아보았다.
  (저놈, 또 뭐라고 날 물어먹자고?)
  "아빠!끝내 깨났어요?"
  려향은 환호하며 아빠를 부축해 일으키었다.
  종호는 산소호흡기까지 떼고 기침을 쿨룩쿨룩 깇었다.려향이 옆에서 잔등을 다독이어 주었다.
  종호의 얼굴은 백지장처럼 창백했다.
  그는 가쁜 숨을 몰아쉬며 여경들에게 손을 가로 저으며 띠염띠염 뜻밖의 말을 했다.
  "내 안,안해는 아무 죄,죄도 없소."
  "네?"
  여경들은 놀란 눈길로 종호를 돌아보며 발걸음을 멈추었다.
  "려평은 링겔병에 아무 것도 주사해 넣은 적이 없소.내 자살하려고 한 짓이오. 난 이 어두운 세상에서 살기 싫어 안락사 약을 넣 었댔소.주사바늘도 빼놨소."
  "뭐? 뭐?"
  여경은 려평과 려향을 돌아보았다.
  려평도 종호를 물끄러미 돌아보면서 놀랐다.
  려평은 종호의 뜻밖의 위증에 눈물까지 주르르 흘리었다.
  (저 놈은 절대 날 동정하는게 아니야.자기 딸이 엄마까지 잃게 하기 싫어 그래.누가 자기를 잡아먹자는 악처를 변호하자겠는가! 쳇.)
   종호는 려향을 마주보면서 말했다.
  "난 몇번이고 자살하려고 했소. 려향아, 그렇지?"
  려향은 머리를 끄덕이었다.
  사건의 복잡성을 느낀 여경들은 서로 눈길을 마주치었다.
  “좋아요.”
  여경은 종호한테 다가와 허리를 굽히며 위엄있게  나직이 물었다.
  “당신은 링겔병에 뭘 주사해 넣었는가요?”
  종호는 아무 말도 못하고 목석처럼 눈을 꾹 감고 묵묵히 누워 있었다.
  여경은 허리를 펴더니 엄숙한 표정을 지었다.
  "몽땅 경찰서에 연행해 심문해야겠어요."
  려향은 여경의 두 손을 잡고 통사정했다.
  "저의 아빠는 생사선에서 헤매는 구급환자인데요. 당장 경찰서에 가지 못해요.시간을 좀 주세요."
  여경은 결단성 있게 말했다.
  "좋아요. 병세가 호전되면 알리세요. 그때 경찰서에 오세요."
  다른 여경이 경고투로 말했다.
  "거짓말로 위증을 서면 위증죄를 범한다는 걸 똑똑히 알아두세요."
  여경들은 려평을 풀어주지 않고 뒤잔등을 떠밀었다.
  "억울한게 있으면 경찰서에 가서 말하세요."
  려평은 몸을 마구 흔들면서 떼질 썼다.
  "내 남편이 다 자기 한 짓이라고 증명 섰는데요.왜 억울한 사람 마구 잡아가요?"
  "억울하다고?"
  여경은 픽 코웃음치었다.
  다른 여경이 핸드폰을 꺼내 들었다.
  "똑똑히 봐! 인터폴 지명수배령이야.”
   “엉?”
  류려평은 퉁사발눈이 희번뜩 번지어질 지경이었다.
  여경은 목소리를 높이었다.
  “류려평, 당신은 중국에서 한국에 도주해온 인터폴 지명적색수배자야.국가 돈을 횡령한 부패분자, 어디로 도망쳐?!"
  "걸엇!"
  여경들은 려평을 마구 끌고 갔다.
  려평은 그제야 머리를 툭 떨어뜨리었다.
  그녀는 병실 문께로 끌리어 나가면서 머리를 돌려 종호와 려향을 번갈아보며 구원을 요청하는듯한 눈길을 보냈다.
  그러나 종호와 려향도 속수무책이었다.
  려향은 끌려나가는 엄마를 보고 속으로 은근히 놀랐다.
  (엄마가 무슨 죽을 죄를 졌기에 인터폴 지명적색수배자로 됐어?)
  류려평이 끌리어 복도로 나갈 때다.
   맞은 켠에서 지영이 주사기 판대기를 두 손으로 받쳐들고 사뿐사뿐 다가왔다.
  지영은 쇠고랑이를 찬 려평을 째려 보면서 담담한 표정을 지었다.
  류려평의 뒤를 려향이 부랴부랴 따라나왔다.
  지영은 속으로 잘코사니를 부르면서도 겉으로는 그녀들 모녀간을 보는 척 마는 척하면서 스쳐지 나갔다.
  려평의 등뒤에서 여경은 마주 지나쳐가는 지영이한테 살짝 눈웃음 지어 보이었다.
  지영은 머리를 폭 숙이며 눈길을 발끝에 떨어뜨리었다.그녀는 총총 걸음쳐 종호의 병실로 들어가 문을 꼭 닫아 버리었다.
  복도에는 적막과 함께 평온이 스물스물 찾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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