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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장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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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하소설 울고 웃는 고향(54) 어미 없는 설음 김장혁
2024년 06월 28일 10시 42분  조회:450  추천:0  작성자: 김장혁
    2015년 08월 31일 16시 23분  조회:1465  추천:0  작성자: 김장혁
 
             김장혁 작 대하소설 울고 웃는 고향  제2권
                 
                   제7장 흑야
                                       
                 5. 어미 없는 설음


 
     네댓 살에 어머니를 여읜 봉인과 명옥은 날개 부러진 제비 새끼 같았다. 그들 오누이는 어려서부터 눈치밥을 먹으면서 자랐다.
그들 오누이는 밥값이라도 하느라고 베실을 뽑고 나물을 캐오고 다른 일도 시키는 대로 부지런히 했다.
어느 날 애들이 마당에서 놀고 있었다. 숱한 애들이 손을 잡고 둥그렇게 서서 돌아가면서 소리를 먹인다.
 
      여우야, 여우야!
      나와 놀자
 
      둥그런 원 안에서 두 손으로 눈을 막고 쪼그리고 앉은 오니(귀신)로 된 애가 화답한다.
 
      밥 먹는 중이다
 
     애들이 손을 잡고 오니애를 안에 넣고 둥그렇게 돌아가며  또 묻는다.
     
      반찬은 무엇이냐?
 
     원 안의 오니애가 화답한다.
 
      산 뱀이다!
 
      원 안에 앉아있던 오니(귀신)애가 손을 눈에서 떼면서 애들을 쫓아간다. 애들은 “으악!” 소리치면서 종 주먹을 쥐고 산지사방으로 흩어져 달아났다. 그러다가 오니(귀신)로 된 애가 그중의 어느 애를 잡으면 그 애가 대신 오니(귀신)로 되여 애들이 손잡고 돌아가는 원 안으로 들어가 두 손으로 눈을 막고 쪼그리고 앉는다.
봉인은 애들과 놀고 싶어 가만히 명옥을 데리고 애들 속에 가서 손을 잡았다. 그때 할아버지 최구장이 헐금씨금 와서 곰방대로 봉인과 명옥의 이마를 똑똑 때렸다.
     “이 놈 새끼들아, 일 하지 않고 누가 밥을 주니? 어서 석마간으로 가서 좁쌀알을 주워 모으지 못해?!”
봉인과 명옥은 아파서 눈물을 찔끔찔끔 쏟으면서 석마간으로 갔다.
   네댓 살 되는 오누이는 다른 집 애들처럼 놀지도 못하고 할아버지가 시키는 대로 운주동 석마 칸에 가서 겨 속의 쌀알을 주워 모으기 시작했다.
    아침부터 눈이 시리게 먼지가 새뽀얗게 이는 석마간 겨 무지에서 좁쌀알을 한 알 한 알 주었지만 한바가지를 채운다는 것은 실로 쉽지 않은 일이었다.
   온종일 주어 한바가지를 채울라 할 때다. 
   주인이 나와서  힐끔 바가지를 들여다보더니 바가지를 쥐여 마구 흔들어놓는 것이 아니겠는가. 진짜 얄밉게 놀기도 했다.
바가지 안에서 쌀알들이 훌렁 꺼져 내려가서 다시 채우자니 아름찼다.
   애나게 주어 겨우 한바가지를 채워 바치자 주인은 먼저 성냥가치만한 나무꼬챙이를 한 개를 내주었다. 그렇게 다섯 바가지를 주어 나무꼬챙이 다섯 개를 채우면 구리돈 1전을 주었다.
   온종일 둘이서 애나게 겨 무지 속에서 좁쌀알 다섯 바가지를 주어야 1전을 벌수 있었다. 3전이면 커다란 고마이 한 마리를 살 수 있었다.
   봉인과 명옥이가 서너 날 겨 무지에서 좁쌀알을 한 알 한 알 주어 구리돈 2전이나 3전을 가져오면 할머니 성단은 오누이의 머리를 두 손으로 정겹게 쓰다듬어 주군 했다.
    “에이유, 요 귀한 내 새끼들아, 얼마나 장하냐? 쯧쯧.”
   경숙도 어미 잃은 자식들이 귀하고 불쌍해 얼굴을 매만지면서 뽀뽀까지 해주군 했다.
  오누이는 어머니를 잃고도 뜻밖에 어른들의 말을 잘 듣고 일도 잘하면서 강하고도 건실하게 자랐다.
   군일이 있을 때면 봉인과 명옥은 어머니를 잃은 섧음을 가슴 아프게 느끼곤 했다.
   다른 애들은 다 어머니들이 불러내다가 떡이랑 고기국이랑 먹이는가 하면 엿사탕이랑 먹였다.
   봉인과 명옥은 언제면 자기들을 부르겠는가고 목이 빠지게 기다렸다. 위방에 누워서 머리를 들고 정지를 내려다보군 했다. 그러나 해가 지고 달이 떠도 어머니가 없다보니 부르는 사람이 하나도 없었다.
   “봉문아, 여기 나오너라.”
   봉문은 넷째 삼촌댁 성단이 벌써 두 번째 불러내다가 돼지고기 점을 입에 넣어줬다.
   봉문이 입에 돼지고기 살점을 물고 와서 고의로 봉인과 명옥이가 부럽게 하느라고 손으로 살코기 실을 쪽쪽 찢어서 입에 넣고 잘근잘근 씹으면서 짹짹거렸다.
   “양, 양, 맛있다. 오래오래 맛있다.”
   봉인과 명옥은 어린 사촌동생이 먹는 살 고기가 너무나도 먹고 싶어 목구멍에서 군침을 꼴깍 삼켰다. 어찌나 배고팠는지 배에서 꼬르륵 소리까지 자꾸 났다.
   이때 아래 방에서 위방으로 누군가 다가오는 소리가 나자 명옥은 머리를 들고 아래방 쪽을 내려다보았다.
   “봉순아, 여기 오너라.”
   이번에는 둘째삼촌댁 김어금이 위방 미닫이를 쭈르륵 열고 들어섰다. 손에는 돼지갈비뼈가 쥐여져있었다. 그는 자기 아들 봉순에게 주려다가 주춤 멈췄다.
   “아니, 너네 오누이도 여기 있구나. 아직 아무 것도 먹지 못하잖았냐?”
   “예, 삼촌댁.”
   봉인은 코마루가 시큼해 울먹울먹하면서 대답했다.
   어금은 갈비뼈를 손으로 뚝 비탈아 끊더니 명옥과 봉인을 나눠 주었다.
    그러자 봉순이 칭얼거렸다.
  “아냐, 엄마, 날  달라. 응~응~”
   봉인은 서너 살 지하인 동생이 불쌍하다고 자기에게 차려진 갈비를 주었다. 그래서 명옥은 자기에게 차려진 갈비를 오빠와 엇바꿔가면서 나눠 먹었다.
    어금이 나가 할머니 성단에게 뭐라고 중얼거렸다.
   한참 후 할머니 성단이가 떡과 국물을 들고 와서 봉인과 명옥도 저녁을 먹었다.
    할머니는 어미 없는 그들 오누이가 불쌍해 머리를 쓰다듬으면서 뜨거운 눈물을 주르르 흘렸다. 뒤이어 할머니는 며느리들을 시켜 애들에게 몽땅 저녁을 먹이게 했다.
   그후부터 할머니 성단은 연년생들인 자기 막내딸 계순과 똑같이 봉인, 명옥 오누이를  보살폈다.
   물은 에우기에 가고 애들은 거둬 주는 데를 따라 간다고 어머니를 일찍이 여읜 봉인과 명옥은 자기들을 어머니처럼 아끼고 고와하고 보살펴주는 할머니를 어머니처럼 따르면서 할머니 말씀이라면 아주 잘 들었다.
    가을이 오자 할머니는 애들을 데리고 산속에 가서 다 파간 감자밭을 돌아다니면서 파가지 못한 감자를 팠다.
    삽자루만큼도 안 되는 봉인은 사내애노라고 삽을 둘러메고 달아 다니면서 감자가 있을 만한 데는 폭폭 팠다.
   “할머니, 감자!”
   “오, 그래, 에이고, 우리 봉인이 용하다. 제 얼굴만 한 감자를 다 파내고.”
   성단은 봉인이가 파낸 큼직한 감자를 쥐여 흙을 싹싹 닦아 광주리에 담고 나서 봉인의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봉인은 할머니의 칭찬을 받고 좋아서 외까풀 눈이 실눈으로 되고 입이 귀밑까지 쭉 째질 지경이었다.
   그 모양을 보고 봉인보다 한살 이상인 계순이 시샘이 나 도도거렸다.
    “어머니는 그저 봉인 밖에 모르면서. 나와 명옥은 칭찬 한마디 하지 않으면서. 원, 분해 죽겠다.”
    성단은 허리를 펴고 일어나 수건으로 땀을 닦고 나서 초롱초롱한 쌍까풀눈을 흘기는 계순의 얼굴을 만져주었다.
   “에이구. 내 딸아, 우리 막내딸을 누가 미워하겠냐? 응? 난 우리 딸이 영 곱다.”
    성단이가 쪼그리고 앉으면서 이마에 이마를 대고 “도글도글” 하면서 얼렸다. 그제야 계순은 배시시 웃었다.
   계순과 명옥은 할머니를 따라다니다가 “여기 감자가 있는 것 같다.” 하고 말하면서 할머니가 호미로 파려고 하면 “할머니, 놔 둡소.       우리 파 보게.” 하고 바삐 소리치고는 손으로 파보군 했다.
   닭 알만한 감자알이 흙속에서 드러나자 애들은 환성을 올렸다.
   “할머니, 감자 나왔습니다.”
   성단은 계순과 명옥이 고사리 손으로 파는 흙속에 드러난 감자알을 보고 대견해했다.
   “오, 그래? 계집애들도 장하다.”
   계순과 명옥이 손으로 파는데 저쪽에 갔던 봉인이가 뛰어왔다.
   “물러나라. 삽으로 파자.”
   “안 돼, 이건 우리 파낸 거야.”
   그러나 봉인은 계순을 활 밀어내고 삽으로 푹 팠다. 그런데 바삐 삽질하다나니 감자가 한쪽이 쓱 잘리어나갔다.
    “봐라, 감자알이 찍혔어. 어머니, 얘를 보시요.”
    성단은 눈을 흘기는 계순을 말리였다.
    “응, 알았다. 이미 그렇게 된 걸 어찌 하겠니? 싸우지 말라.”
    그래도 계순은 도도도 거렸다.
     “항상 자기 더 잘 하는 척 하긴.”
    봉인도 지지 않으려고 했다.
     “그래, 어떻게 너네 계집애들과 비하겠니? 할아버지 말씀하던데. 난 이 집안의 14대 장손이란다. 넌 뭐냐?”
     성단은 우쭐해서 삽자루를 왼손에 쥐고 허리에 오른손을 찌르고 선 봉인을 보면서 우스워 코를 싸쥐고 웃었다.
    계순은 눈이 동그래 어머니에게 물었다.
    “어머니, 14대 장손이란 건 뭣입둥?”
    “그래, 우리 봉인은 우리 개성 최씨네 집안 열네 번째로 대를 이은 기둥손자란 말이다. 집으로 말하면 기둥과 같지. 기둥이 없으면 집이 무너지고 말지.”
    명옥은 두 손의 흙을 털면서 봉인을 쳐다보면서 “와~ 오빠 정말 대단하구나. 우리 집의 기둥이라고 하지 않니?” 하고 감탄했다.
   계순은 앵두입술을 옥물더니 뾰로통해 했다.
    “쟤가 우리 집 기둥이라고? 쟤가 없는 날엔 우리 집안이 무너지겠구나. 흥! 누가 그 말을 곧이듣는다더니? 픽!”
    그래도 봉인은 옆구리에 손을 찌르고 턱을 바짝 쳐들고 외까풀 눈으로 계순과 명옥을 한참이나 내려다보았다.
    반나절을 헤매 성단은 애들을 데리고 감자를 반 광주리나 파서 이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는 덕대 위에서 감자갈이를 내려다가 감자를 갈기 시작했다.
   계순이 “어머니, 내 갈아 보깁소.” 하고 응석을 부렸다.
    “그래라.”
    성단은 함지 안에 놓은 감자갈이를 훌 넘겨주면서 주의를 주었다.
    “이 양철 판 뾰족뾰족한데 손이 맞히면 베져. 주의해.”
    “양.”
    성단은 밖에 나가 땔나무를 안아 들여다 놓고 저녁준비를 했다.
   계순은 어머니가 그렇게 주의를 주었건만 끝내 감자갈이 판에 애고사리 손을 스치고 말았다.
    “아, 아파라.”
    “어디 보자.”
   성단이 부엌에서 솥을 부시다가 솔을 놓고 와서 손을 쥐고 보니 무명지등에 빨간 피가 돋아 나오고 있었다. 성단은 입으로 피를 뽁 빨고는 헝겊을 주어다가 싸매주었다. 대신 명옥이가 나머지 감자 몇 알을 싹싹 갈았다.
   해가 질 무렵이 되자 솥에서 구수한 감자떡 냄새가 났다. 둘째, 셋째, 넷째까지 세간나고 다섯째마저 갑산으로 감자농사 하러 가다나니 집에는 최구장 내외에 경숙과 계순, 봉인이네 오누이만 남았다.
   반나절 역사 질 해 발간 장물 콩을 딱딱 박아놓고 시루 가마에 얹어 쪄낸 감자떡은 여섯 식구가 먹고도 남을 것 같았다. 그래서 성단은 감자떡을 그릇에 담아 운주동 한마을에 있는 셋째아들과 넷째아들네 집으로 가져갔다.
   서걱서걱 해도 감자떡은 별 맛이었다.
   계순과 봉인은 감자떡을 먹으면서 너무 맛이 있어 노래 부르듯 종알거리었다.
   "양, 양, 맛있다. 오래 오래 맛있다.” 하고  했다.
   봉인은 쩍 하면 한살 이상인 작은 고모와 말다툼을 하다가도 손찌검 질을 하면서 싸우기도 했다.
  오늘 저녁에는 떡을 먹으면서 봉인이가 먼저 말썽을 일으켰다.
   “내 계순보다 감자를 더 많이 팠어!”
  계순은 봉인을 손가락질하면서 피씩 웃었다.
   “우스워라. 삽으로 푹 판 게 감자가 잘리어나가지 않았니?”
   “너희들이 파지 못한 걸 내 삽으로 팠지?”
   “아까운 감자를 네가 찍어 버렸기에 절반이나 잃어버렸다.”
   “아니야!”
   “옳아!”
   “아니야!”
   “옳다!”
   봉인과 계순이 마주서서 입씨름을 하자 최구장은 저로 밥상을 탕 치면서 고함쳤다.
   “그만하지 못해?!”
   그래도 봉인은 입이 뾰족해 중얼거렸다.
  “이 놈새끼들이! 어디 맞겠냐?”
  최구장이 곰방대를 뽑아 치려고 하자 봉인은 달아났다. 그러나 명옥과 계순은 달아나지 않고 앉아 있다나니 최구장이 치는 곰방대에 머리를 딱딱 맞았다.
  계순은 성단의 품에 안기면서 울고 명옥은 머리를 싸쥐고 울었다.
   “엄마~ 엄마~”
  성단은 명옥이 불쌍해 계순과 함께 품에 껴안고 영감을 흘겨보았다.
  “어미 없는 애를 왜 쳐요?”
  성단이 애들을 껴안고 눈물을 흘렸다.
  최구장은 안 되였던지 쳐들었던 곰방대를 내리워 담배를 채워 부시를 쳐 물고 빨며 “에헴, 에헴.” 하고 마른기침을 하며 훌 일어나 바깥으로 나가버렸다.
   그도 어미 없는 오누이의 설음을 느꼈으리라.
   쓸쓸한 팔간집 마당에는 벌거스름한 낙조가 삐겨들어 오누이의 설음을 더 짙게 만들었다. 오누이의 쓰라린 설음이 지가난 자리에 피눈물이 휘뿌려지어 한이 맺혀 뾰족뾰족 고개를 쳐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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