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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하소설 울고 웃는 고향(43) 전우를 구출 김장혁
2024년 05월 10일 11시 33분  조회:584  추천:0  작성자: 김장혁
                  
 
                    김장혁 작 대하소설 울고 웃는 고향


                             제6장 포수대



                            2. 전우를 구출
 
 
       
     성칠은 룡천의 말을 듣고 착잡한 생각에 빠졌다.
    한참 후 그는 무슨 마음을 먹은듯이 위방에 올라가 벽에 걸어둔 사냥총을 벗겨 마른 수건으로 쓱쓱 닦고 탄약과 시퍼런 비수를 꺼냈다.
   그는 비수를 팔소매에 대고 쓱쓱 닦아 엄지로 날을 쓱쓱 훑어보며 윽별렀다.
   (아버지를 감옥에 가둬? 일본 놈새끼들, 가만 놔두는가 봐라.)
   하옥이 들어오는 것을 보고 성칠은 한숨을 후 내쉬었다.
   (나는 싸우다가 죽어도 괜찮은데. 참, 부모형제를 연루시키면 어쩐단 말인가?)
   아내 하옥은 남편이 우시장에 갔다 온 후 행동거지가 이상한 감을 육감적으로 느꼈다. 그녀의 얼굴에는 수심의 그림자가 물결쳤다. 호랑이 같은 남편에게 후대를 낳아주지 못한 죄책감이 늘 앞서군 하였다. 하여 남편과 바깥일을 묻기도 저어했다. 그러나 요즘 시아버지가 한길수의 눈알까지 뽑아버려 감옥에 갇힌 후 면회하러 갔다 와서 남편의 거동이 심상치 않아 묻지 않고서는 견디기 어려웠다.
    그녀는 위방에 올라가 성칠한테 다가가 큰 마음 먹고 남편에게 물었다.
    “시아버님은 무사하던가요?”
   성칠은 머리도 들지 않고 대답했다.
   “승냥이 굴에 들어간 분이 무사할리 있겠소?"
  하옥은 남편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아 한숨을 호 내쉬었다.
   “혹시 돈을 좀 팔면 아버지를 모셔 내올 수 없을까요?”
   “아버지를 면회하는데도 큰아버지 산삼하구 면회 비까지 냈소. 아버진 무기징역을 받을지도 모르오. 일본 놈들의 앞잡이 눈알을 뽑아 놨으니까.”
    성칠은 사냥총을 벽에 걸어놓고 비수를 장단지 각반 속에 쓱 꽂아 넣었다.
   “이 일을  어쩌는가요?”
   성칠은 아내를 보고 무거운 어조로 말했다.
   “여보, 당신은 나한테 시집와서 고생 많았소. 난 아마 집을 떠나 큰 사냥을 하러 가야 할 것 같소. 집에서 어머니를 모시고 수고하오.”
   이전에 성칠은 사냥하러 가도 전혀 작별인사를 한 적이 없었다.
   하옥은 이상해 묻지 않을 수 없었다.
   “사냥을 한 둬달 하면 돌아오겠지요?”
  성칠은 도리머리 질을 절레절레 했다.
   “한두 달로 될 것 같지 않소. 무리승냥이들을 모조리 잡자면 몇 십 년이 걸릴 수도 있소.”
   이때 미닫이문이 스르르 열리면서 어머니가 들어왔다.
   “얘, 아까 내캉 말할 때 무심히 들었던 관데. 먼 곳에 사냥하러 가는가 베?”
   성칠은 엉거주춤 일어나 엄마께 허리를 굽혀 인사하면서 대답했다.
   “예, 엄마, 무사히 있읍소. 일이 있으면 동생들이나 조카들에게 말합소. 엄마, 동생들이 사는 운주동에 이사 가면 좋을 것 같습구마.”
   성희는 구부정한 허리를 펴고 맏아들을 바라보다가 앉으라고 손시늉 했다.
   “이사 말은 하지도 말어. 이 팔간 집을 어떻게 지은 집이라고 그래? 저 물방아는 어쩌고? 난 이집에서 죽더라도 너 아버지 올 때까지 기다릴 거야.”
   성칠은 어머니와 아내를  번갈아보면서 한숨을 땅이 꺼지게 후- 내쉬었다.
   이때 바깥에서 검둥이가 짓는 소리가 컹 컹 컹 들리고 문을 탕 탕 탕 두드리는 소리가 요란히 들렸다.
   “문 열엇!”
성칠이 위방 문을 열자 허연 한기와 함께 영팔과 응삼, 수길 등이 집안으로 우르르 쓸어 들어왔다. 뒤에 털 한 모숨과 가메다 등 일본 헌병들도 따라 들어왔다.
   영팔이 우쭐해서 성칠을 보고 지껄였다.
   “사냥총을 내놓게.”
    성칠은 벽 밑에 걸어놓은 사냥총을 벗겨 으스러지게 틀어쥐었다.
    “사냥총을 내놓고 뭘 먹고 살라는 거요?”
    “이 놈이, 사냥총을 내놓지 못할까?”
    “안 된다. 벌목 삯전도 주지 않으면서 사냥총까지 내놓으라고? 사냥총은 우리 사냥군들의 목숨이야.”
    “이젠 산짐승도 몽땅 일본 거야. 사냥은 무슨 놈의 사냥? 흥!”
  가메다가 으르렁거리자 앞잡이들이 팔을 걷으며 다가섰다.
  “얘들아, 사냥총을 빼앗아라!”
  영팔의 호령소리에 수길과 응삼이 등 졸개들이 와르르 달려들었다. 그들은 성칠의 손에서 사냥총을 빼앗으려고 몸싸움을 벌렸다.
  이때 가메다는 군도를 빼들고 꽥 고함쳤다.
   “빠까요로(멍청아), 이 놈을 묶어!”
   일본 헌병 놈들이 아예 성칠과 사냥총을 한데 바 줄로 꿍꿍 묶어 문밖으로 떠밀었다.
   “여보, 여보!”
  하옥이가 따라 나오면서 소리쳤다.
   “성칠아! 이 놈들아, 내 맏아들 무슨 죄 있다고 마구 잡아가는 거냐?”
   본가집에 놀러왔던 곰순도 정주간에서 뛰어나오면서 소리쳤다.
   “오빠!”
   성칠은 묶인 채 내리막길로 내려가면서 머리를 돌려 어머니와 여동생 곰순을 돌아보면서 소리쳤다.
   “내가 돌아올 때까지 엄마를 잘 모셔라.”
   검둥이도 어데 갔다가 주인이 묶여 가는 것을 보고 일본 놈들에게 달려들면서 왕왕 짖어댔다.
   땅! 땅! 땅!
   일본 놈들이 검둥이에게 사격했다. 검둥이는 날쌔게 피하면서 도망쳤다.
   땅! 땅! 땅!
   갑자기 물레방아 쪽에서 야무진 총소리가 울렸다.
    일본 헌병 두 놈이 눈 바닥에 푹푹 꺼꾸러졌다. 방앗간 뒤에서 몇 사람의 그림자가 얼른거렸다.
   땅! 땅! 땅!
   가메다도 권총을 꺼내 맞불질을 했다. 총알이 물레방아 바퀴에 픽픽 박혀 눈꽃을 튕겼다.
   영팔과 수길은 성칠을 활 놓고 다리야 날 살리라고 내리막으로 선불 맞은 노루처럼 도망쳤다.
   “성칠이, 빨리 산속으로 뛰게나!”
  물레방아 바퀴 뒤에서 분명 룡천의 웅글진 목소리가 울렸다.
   그제야 제 정신이 펄쩍 든 성칠은 묶인 채 눈 덮인 산기슭 수림 속으로 뛰어 들어갔다. 검둥이도 끼깅거리면서 성칠을 따라 뛰어갔다.
   땅! 땅! 땅!
   자지러진 총소리와 함께 성칠의 앞과 뒤에서 눈꽃이 튕기었다. 귀 뻘쭉해 달리는 검둥이 옆의 적송에 총알이 픽픽 박혀 나무껍질이 튕겼다.
   성칠은 이리 저리 적송 사이로 몸을 빼면서 팔자 형으로 달려갔다.
   헌병놈들은 가메다가 군도를 휘두르자 룡천과 성칠을 추격했다.
  갑자기 일본 헌병 한 놈이 “억!” 비명소리와 함께 어데서 날아온 돌멩이에 맞아 이마를 감싸 쥐고 눈 위에 푹 꺼꾸러졌다.
  쒹-
   쒹-
   연속 날아오는 돌멩이에 일본 헌병 몇 놈이 무릎을 안거나 대가리를 붙안고 꺼꾸러졌다.
   그 사이 성칠은 수림 속으로 멀리 달아나면서 뒤를 돌아보았다. 웬 사람이 원숭이처럼 나무 가지를 쥐고 구르면서 이쪽저쪽 나무로 건너뛰면서 날아왔다.
   “오빠!”
   성칠은 자기 앞에 귀신처럼 나타난 사람이 진달래일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진달래야!”
   진달래는 재빨리 허리춤에서 단도를 뽑아 성칠을 묶은 바 줄을 끊었다.
   성칠은 손목을 만지면서 진달래를 보고 적이 놀랐다.
   “어떻게 여기까지 왔느냐?”
   “오빠를 마중하러 왔댔어요. 일본 놈들이 쫓아오기 전에 이 고개를 넘어야 해요. 자, 어서 뛰자요.”
   성칠은 바줄과 함께 눈 우에 떨어진 사냥총을 쥐고 진달래를 따라 산중턱을 따라 수림 속으로 뛰었다.
   “그래 물레방아 간에서 일본 놈들에게 총을 쏜 룡천이랑 아는 사이냐?”
    “그래요. 우린 장백산항일독립군 전우지요.”
    “장백산 항일독립군?”
   “예, 그래요.”
   성칠은 듣기만 해도 신기하기만 했다.
   그들이 한 골짜기에 들어섰을 때였다.
   골짜기에는 진작 몇몇 독립군 대원들이 백마들의 고삐를 잡고 경계하고 있었다. 이윽고 룡천 등도 일본 헌병들을 따돌리고 달려왔다.
    성칠은 룡천 등을 보자 굳게 악수를 나누었다.
    “고맙네! 자네들이 구원하지 않았더라면 난 아버지처럼 한평생 우시장감옥에 갇힐 번 했소.”
   “그 놈들은 진작 당신 부자간을 마음 놓지 못했어. 우린 당신을 만나러 가다가 때마침 당신을 결박해가는 일본 놈들과 마주 띄우게 됐네.”
    성칠은 룡천과 진달래를 둘러보면서 무거운 어조로 말했다.
   “나도 장백산 항일독립군에 들겠소. 꼭 아버지와 우리 고향 사람들의 원수를 갚겠네. 나를 받아주오.”
   룡천은 성칠의 쩍 벌어진 어깨를 믿음에 찬 손으로 툭툭 쳤다.
  “좋네. 당신은 진작 우리와 마음을 같이 했다이. 우리 조선 땅에서 우리 부모형제들이 일본 놈들의 철발굽 아래에서 해탈돼 행복하게 살게 하려면 총칼을 들고 일본 놈들을 우리 고향 땅에서, 아니, 우리 조선 땅에서 몽땅 몰아내야 하네.”
   성칠은 룡천의 두 손을 굳게 잡았다.
   “고맙소. 나를 구해줘서. 나는 독립군에서 솜씨를 보이겠소.”
   룡천은 신임에 찬 눈길로 성칠을 바라보다가 독립군 대원들에게 몸을 돌렸다.
   “우린 우시장 일대 사냥꾼들을 묶어세워야네.  일본 놈들이 우리 목재를 실어다가 경찰국 사무 청사를 짓는 걸 막아야지.”
   성칠은 가슴을 쑥 내밀고 대답했다.
   “근심하지 마오. 내 나서서 꼭 젊은이들을 묶어세우겠네.”
   진달래는 성칠에게 다가와 백마 고삐를 넘겨주었다.
   룡천은 백마에 올라타면서 손을 홱 저었다.
   “빨리 이곳을 빠져 나갑세. 적들이 꼭 추격해올 거야.”
  독립군 대원들은 모두 백마에 올라탔다.
  성칠도 백마에 올라탔다. 검둥이도 주인을 따라 달려갔다.
  한창 독립군 대원들을 따라 달리다가 성칠이 말고삐를 잡아당겼다.
   “룡천이, 이 곳에서 할 일이 있네.”
   룡천도 멈춰 섰다.
  성칠은 입에서 김을 훅훅 풍기면서 말했다.
  “한길수를 가만 놔두고 떠날 수 없어.” 
   “잠시 철퇴하는 거야! 일단 일본 놈들의 추격을 피해야 하이. 전술적인 철퇴를 했다가 다시 기회를 엿봐야 돼.”
   룡천이가 전술적인 철퇴라고 했는데도 성칠은 고집을 썼다.
   “아니야, 이대로 달아나면 눈에 난 발자국을 따라 인차 추격해올 거야.”
  그 말에도 도리 있었다.
  “인마를 갈라서 철퇴하자. 기회가 되면 매복습격도 하자.”
   룡천은 머리를 끄덕였다.
   그러자 진달래가 룡천에게 말했다.
   “김 소대장, 내가 바우돌과 억복을 데리고 성칠 오빠와 함께 남으면 어때요?”
   “좋아. 1분대는 진달래 소대장을 따르고 2분대는 날 따르라. 우린 놈들을 각자 따돌리고 사흘 후 치마봉 밑에서 만난다.”
   “옛!”
   독립군은 두 패로 나뉘어 백마를 타고 수림 속으로 달려 들어갔다.
  윙윙 휘몰아치는 눈보라가 수림 속으로 사라지는 독립군 용사들의 종적을 지워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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