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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하소설 울고 웃는 고향 김장혁(29)똥벼락을 맞은 번대머리
2024년 03월 05일 18시 15분  조회:734  추천:0  작성자: 김장혁
 

         김장혁 작 대하소설 울고 웃는 고향

           6. 똥벼락을 맞은 번대머리
 
 
 
        친일 주구 한길수의 야망을 실은 마차가  일본 경찰서를 멀리하고  황홀한 꿈의 절주에 맞춰 귀딸까닥딸까닥 귀맛좋게 달린다.
      마차가 보름달을 품에 안은 색마를 싣고 시골길로 한참 달릴 때다.
     색마 한길수가 마차 위에서 무릎을 탁 쳤다.
     “아차, 깜빡 잊었구나."
    그는 응삼을 돌아보며 물었다.
    "자네 최구장의 서당방에 가서 공부한 적이 있지 않은가?”
    “예.” 
    한길수는 응삼의 어깨를 탁 쳤다.
   “하늘이 나를 돕는구먼. 자네는 이 길로 먼저 최구장을 찾아가서 운주동 사람들을 동원해 달라고 하게나. 끼무라 국장이 다그치라고 하던데.”
    응삼은 뱁새눈이 실눈이 돼 상을 찡그리었다.
   "좀 살살 칩소. 간 다 떨어지겠습구마."
    “잔말 말구 어서 운주동하구 신흥동, 가마골에두 돌아다니면서 인부를 모집하라구. 한 백명 있어야 돼. 알겠는가?!"
   “백명이나?"
   "백명이면 백명이지. 뭐 잔말이 그렇게두 많아?"
   "예, 알았습구마.”
   응삼은 땅방울같이 을러메는 길수 앞에서 잡소리 집어삼켰다.
   마차는 둬 시간 달려서 운주동과 영월동으로 가는 길이 갈라진 갈림길에 들어섰다.
   병수가 마차를 세우자 응삼이가 마차에서 노루새끼처럼 폴짝 뛰어내렸다.
   응삼은 떠나가는 마차에 대고 실 돌피 같은 허리를 꿉썩거렸다.
   마차는 또다시 한참 제방둑길로 달렸다.
    그때 병완이 마차에서 뛰어내렸다.
    “마차를 세워. 병완이, 웬 일인가?”
   한길수가 이상해했다.
   득호가 말고삐를 채 달리는 마차를 세웠다.
   병완은 제방둑길 옆으로 내려갔다.
   “저 산등성이에 있는 감자밭에 좀 가봐야겠네. 제때에 거둬들이지 못해 멧돼지들이 파먹지나 않았는지 모르겠네.”
   “음, 알았네. 자네도 마을사람들을 많이 동원해보게나.”
   “그러지.”
   병완은 허리를 구부정하고 산등성이로 성큼성큼 올라갔다.
 
   마차는 계속 어두워져가는 강둑길로 달려갔다. 저 멀리 어슴푸레 마을이 다가왔다.
   한길수는 고을에 기생년을 가득 두고서도 영월동에도 놀이개계집을 둘 예산으로 은녀를 한사코 자기 집에 끌어다 넣었던 것이다.
  (성칠이, 그 새끼, 사냥해서 엄창렬의 빚을 문다고? 사냥하기 어디 그리 식은 죽 먹긴가? 쳇!)
   순간 길수는 눈앞에 머리채를 치렁치렁 땋아 늘인 풍만하고 생생한 은녀의 반달 같은 얼굴이 떠올랐다.
   (은녀는 정말 우리 산골 치고는 이뻐. 토스래기 감자처럼 복실복실 하구 사과처럼 사박사박한게. 고 계집 정말 통 채로 먹어도 비린내 나지 않을 거야. 으흐흐.)
   그는 본처를 맏아들 철주와 함께 서울로 보내고 월선을 들여앉힌 자기가 잘못했다는 것을 새삼스레 느꼈다. 월선은 어려서는 순수한 계집으로 써먹기는 좋았다. 그런데 마흔 고개가 가까워 가면서 우악스러워져 쩍 하면 한길수가 어데 가서 다른 계집을 데리고 노나 눈만 밝히고 심술을 부리는 것이었다.
   (에참, 월선이 눈치가 보여서 어디 은녀를 데려와도 챌 틈이 있는가? 흥! 참 재수 없어. 처녀라면 눈독을 들이는 줄 알고 눈깔이 화등잔이 돼서 살핀단 말이야.)
   순간 그의 눈앞에는 마름의 색시 춘실의 모습이 피뜩 떠올랐다.
   (그래, 은녀를 삼키지 못하면 춘실이라도 데리고 놀았으면 얼마나 좋겠느냐? 오늘 응삼이를 가마골에까지 가보라고 해놨으니 이 틈에 스리슬쩍. 으 흐, 흥.)
   춘실은 어려서 부모를 잃고 이모네 집에서 자랐다. 이모부가 세상 뜨면서 이모계부가 들어왔는데 그자는 색정광이었다. 이모가 없기만 하면 춘실에게 슬금슬금 다가들어 손을 잡고 지분거렸다. 춘실은 능구렁이 같은 이모계부의 능욕에 신물이 나서 도망쳐 나왔다. 그녀는 우시장의 거리를 헤매다가 그만 건달 놈들에게 걸려들어 혼난 적이 있다. 그 후 춘실은 건달들과 휩쓸려 다니면서 마구 굴렀다. 하여 이모네는 춘실이 열다섯 살 나던 해에 스물다섯 살이나 연상인 응삼에게 시집보냈던 것이다.
   (춘실이, 그년이 걀쭉한 게 예쁜 거야. 으흐흐, 오늘밤에 놀아 볼가? 춘실을 건사하느라고 응삼이가 야단치라지. 이 어른 앞에서는 안 될 걸. 흥! 내 욕망을 채우기 위해서라면 춘실이구, 은녀구 다 한가마에 삶아 먹을 거야. 으흐흐흐.)
   그는 눈을 지긋이 감고 걀쭉한 춘실을 끌어안고 풍만한 젖무덤을 주물렁 주물렁 주무르는 꿈도 꾸었다. 그런데 불시에 그의 눈앞에 춘실의 몸에 휘감긴 숱한 사내들이 떠올랐다. 순간 역겨운 반감이 목구멍까지 울컥 치밀었다.
   (춘실의 몸뚱이는 기생년들보다 더 더러워. 안 돼, 그년은 한물 지나간 년이야. 에- 퉤, 퉤!)
    그는 다시 머리채를 치렁치렁 땋아 늘인 은녀를 떠올렸다.
    (오, 은녀, 그 년 터질 것만 같은 하얀 젖무덤, 펑퍼짐한 엉덩이, 아이고 생각만해도 죽을 거 같애.그래, 춘실이 같은 건 열개 주고서도 못 바꾸지.)
   은녀 하얀 허벅다리와 엉덩이를 련상하자 한길수는 그게 불끈 일어서는 걸 어쩔 수 없었다. 부글부글 끓어번지는 성욕으로 온 몸이 찡 전률했다.
   "오홍!"
   그가 고양이 불알 앓는 소리로 신음소리를 뱉어냈다.
   “아이쿠!”
  마차가 제방둑길 굽인 돌에서 그만 운주하 강바닥에 쿵 굴러떨어졌다. 하도 강둑의 팔뚝만큼 한 버드나무들이 굴러 떨어지는 마차를 조금 막아주었으니 말이지. 무슨 사고가 났을지 몰랐다.
   마차가 굴러떨어지는 순간,  득호는 훌쩍 뛰어내렸다. 하지만 한길수는 마차와 함께 그만 사품 치는 차디찬 가을강물에 빠지고 말았다. 마차 밑에 깔린 길수는 강물에서 허우적거렸다. 다행히도 가을이여서 강물이 얕았으니 말이지. 여름철 같았으면 길수는 영낙없이 물에 빠져 죽었을 것이다.
   득호는 제방둑아래로 느릿느릿 내려가면서 물었다.
   “주인님, 괜찮습둥?”
  한길수는 물에서 허우적거리면서 상을 찡그린 채 호통쳤다.
  “야, 이 놈아, 아이고, 번마다 사고내니?! 아이고.”
  득호는 이를 쁘드득 갈았다.
  (개새끼, 항상 내 머리를 개화장으로 딱딱 치던 놈. 이번에도 썩어지지 않았구나. 내 네놈을 죽이지 못한 게 한이야.)
  “빨리 내 다리를 빼내라. 애고고, 아파 죽겠다. 사람을 살려라. 아이고, 나 죽는다, 죽어.”
  득호가 느릿느릿 내려가 안간힘을 다해 마차 한쪽을 들었다.
 그제야 길수는 마차 밑에 깔린 다리를 빼내고 몸을 일으키려고 했다.
  그런데 이게 뭐야?
  물에서 벌떡 일어난 말이 똥물을 쫙 내갈겼다. 그 통에 한길수의 번대머리는 말똥물벼락을 맞고 말았다.
   “에퉤, 퉤! 재수 없는 놈은 뒤로 넘어져도 코 등을 깬다더니, 에퉤, 퉤. 번마다 똥물 벼락이야. 이게 무슨 꼴이람?”
  한길수는 양손으로 낯에 뛴 말 똥물을 쓱쓱 닦으며 욕설을 퍼부었다.
  “개자식, 마차를 어떻게 몰았으면 이 넓은 길에서 강바닥에 처박힌단 말이냐? 에, 퉤, 퉤, 더러워라. 이전에도 딱 여기서 당나귀차를 번지더니. 이제 집에 가봐라. 네놈을 가만 놔두는가. 개 놈 새끼!”
  득호는 손바닥에 물을 담아 길수의 번대머리를 빡빡 닦어주면서 중얼거렸다.
  “죽었는가 했는데. 죽지 않았으면 다행입지.”
  길수는 아픈데 약을 올려 주는 것 같아 고래고래 고함쳤다.
  “이 개놈아, 내 죽기를 그리두 바랐느냐? 개자식! 말하는 거 보면 고의로 차를 번지지 않았어?!”
  길수는 부아가 터져 똥물이 다 씻어진 번대머리로 득호의 면상을 들이받았다.
  떵 소리와 함께 득호는 면상이 쥐가 밟아놓은 장마당이 돼서 강물 속에 썩박나무처럼 쓰러졌다.
  “아이고, 주인님도, 살려주니까. 뜨개소처럼 뜨긴?”
  길수는 강물에서 절버덕절버덕 걸어 제방둑으로 나가면서 고래고래 고함쳤다.
  “개자식, 집에서 쫓아내지 않는가 봐라.”
  길수는 제방 둑에 올라서서 발을 탕탕 구르면서 운주하강반이 다 떠나가게 고래고래 고함쳤다.
  “저 물에 빠진 마차를 어쩌느냐? 엉?”
  득호는 마차에서 말을 벗겨내면서 대구했다.
  “말이나 가져가고 마차는 내일 사람들을 데려다가 끌어 올려가지.”
  한길수는 야단쳤다.
  “마차를 잃어버리는 날엔 네놈의 목을 썩 베서 마차에 제사를 지내겠다.”
  득호는 말을 제방 둑에 끌어올려가면서 계속 맞대구를 했다.
  “무슨 장사가 있어서 마차를 강바닥에서 끌어다가 가져간다고? 해가 다 졌는데 내일 와서 끌어가지.”
  “무슨 일이오?”
 그들이 강바닥에 떨어진 마차를 내려다보면서 한참 찧고 박고 할 때다.
 생각지도 않은 병완이 돌아왔다.
  “저걸 어쩌느냐? 이 놈 새끼, 마차를 어떻게 몰았으면 강바닥에 처박혔다니까. 난 마차에 깔려 하마터면 죽을 번했네.”
  병완은 강바닥에 절벅절벅 내려가 마차를 들여다보더니 소리쳤다.
  “득호, 마차에 말을 메우게나. 내 뒤에서 밀게.”
  득호는 제방 둑에 떡 서서 두덜거렸다.
   “아무리 힘이 세도 말도 못 끌어올리는 마차를 어떻게 건지겠소? 내일 마을 사람들을 데려다가 끌어올리기오.”
   길수가 발을 탕 구르면서 득호의 뺨을 찰싹 갈겼다.
  “냉큼 말을 메우지 못할까?”
   득호는 병완이 마차를 바로 잡아 세워놓기를 기다려 말을 마차에 메웠다. 말이 앞에서 끌고 병완이 뒤에서 끙끙거리면서 힘써 떠밀자 마차는 힘겹게 한발자국한발자국 제방 둑으로 올라왔다. 그런데 원래 경사도가 급하여 말이 그만 무릎을 꿇었다.
   “말을 채찍으로 치게!”
   병완의 고함소리에 득호는 말 잔등을 채찍으로 짱 내리쳤다. 놀란 말이 벌떡 뛰어 일어나면서 우로 껑충 뛰어올라갔다.
   그때 병완은 마차 뒤끝을 번쩍 들어 둔덕 우로 떠밀었다. 마차는 제방 둑으로 올라갔다.
   병완은 손에 묻은 모래먼지를 툭툭 털었다.
  길수는 병완의 소 같은 힘에 혀를 끌끌 찼다.
  “아직도 힘이 무짐작이군.”
  길수는 분질러진 개화장을 들어 득호의 어깨를 탕 치면서 욕지거리를 퍼부었다.
  “개놈새끼, 네놈은 한뉘 머슴질이나 하다가 썩어질 놈이야. 죽을 번 한걸 생각하면 네 각을 다 뜯어 버려도 원수를 다 하지 못하겠다.”
  “아이고, 주인님, 왜 이렇게 모질게 치오? 내일부터 내 마차를 몰지 못하면 누구 마차를 타고 명천에 갑둥?”
  득호가 익살을 부리자 길수는 뺨을 찰싹 갈겼다.
  “다시 마차를 몰 거 같아? 병수를 몰게 하면 했지. 네놈한테 마차를 맡겼다간 언제 깔려 죽겠는지 몰라. 흥, 가서 마구간이나 쳐내라.”
 
  마차는 다시 어둠을 밟으면서 느릿느릿 달려 끝내 영월동에 이르렀다.
  높다란 토성 앞에서 한길수는 개화장을 짚고 쩔뚝거리면서 오만상을 찡그리었다.
  한길수는 집대문 안에 들어서기 바쁘게 엄살을 부렸다.
   “여보, 아이고, 나 죽소.”
  월선이 버선 바람으로 황급히 마루 아래로 뛰어내려 암범처럼 달려 나오면서 호들갑을 떨었다.
  “영감, 어찌된 일이예요? 어데 아파요?”
  월선은 한길수의 팔을 부축하다가 상을 찡그렸다.
   “으, 차가와! 아니, 옷도 폭 젖었구먼요. 어떻게 된 거요? 또 허리 뚝 부러지게 기생년들하구 놀았는가요? 풍류를 즐기구 아픈 건 괜찮지요?”
   한길수는 월선의 살진 팔에 몸을 기대면서 오만상을 다 찌푸렸다.
  “마차 번졌어. 아이고, 허리, 다리 다 아파 죽겠소. 아니, 팔만 부축해 되오?”
   그러자 월선은 팔마저 활 놓아버리면서 발까지 동동 굴렀다.
   “어데 가서 오입을 하다가 혼나고 집에 돌아와 여편네하구 생 지랄이야!”
  길수는 절뚝거리면서 겨우 다리를 옮겨 디뎠다.
  “그런 일 없어!”
  그때 응삼의 집 방문이 배시시 열리였다.
  응삼의 처 춘실이 걀쭉한 낯을 반쯤 드러내며 바깥동정을 살폈다. 은녀도 물동이를 이고 대문 안에 들어섰다.
   한길수는 여자들을 보자 더 죽는 소리를 냈다.
   “이 쌍년들아, 제 집 주인이 아파 죽어도 대갈도 내밀지 않느냐? 저런 못된 계집들이라고야. 아이고, 나 죽는다, 나 죽어.”
  그제야 춘실은 끌신을 작작 끌며 달려 나와 한길수의 한쪽 팔을 부축했다.
  “아니, 주인어른, 어쩌다가 이렇게 모질게 다쳤어요?”
   길수는 침방울을 튕기면서 고양이 불알을 앓는 소리를 쳤다.
   “아이고, 저 득호란 녀석이 마차를 운주하에 처박았댔어. 아이고.”
    “저런! 우둔한 놈. 그래 마차는 마사지지 않았어요?”
   월선이 마차를 벗기는 득호를 흘겨보면서 묻는 말에 길수는 월선을 활 밀치면서 버럭 화를 냈다.
   “저리 비켜! 내 상한 게 중요하냐? 그따위 마차가 중요해?”
   그제야 월선은 혀를 홀랑 내밀었다.
   “당연히 우리 주인님이 중요하지요. 해해해.”
   월선은 부엌 문선을 잡고 서있는 은녀가 눈에 뜨이자 호통 쳤다.
   “이년아, 멀쩡히 서서 뭘 해?! 주인어른을 부축하지 못하고.”
   월선은 참말 시어미 역정에 개 배때를 차는 격이라고나 할까.
   은녀는 머리를 숙이고 바삐 춘실과 함께 한길수를 거들어 마루에 올랐다.
  한길수는 겨우 걷네 마네 하면서 호통 쳤다.
   “저리, 피하란 데도! 보기도 싫다.”
   월선은 눈을 흘리기면서 영감의 팔을 활 놓아 버렸다.
   (에구, 어째, 어떤 땐 내 궁둥이를 졸졸 묻어다니다가, 흥! 이젠 다 파먹은 김치 독이라고 헌신짝 버리듯 하려고? 흥, 바람둥이 개 버릇을 개를 떼 주겠어? 양태머리 체네 보니 또 싱숭생숭해나나 보지.)
    방안에 들어가자마자 한길수는 앓음 소리를 내며 쿵 쓰러졌다.
   “아이고, 나 죽는다. 아이고, 내 다리야, 허리야! 여보, 젖은 옷을 벗기고 새 걸로 바꿔 입혀주오. 허리에 요도 깔아주오. 아이고, 저기 냉수도 한 사발 떠오오.”
    월선은 밀창을 활 열고 들어와 두덜거렸다.
   “어떤 땐 ‘저리 피켜!’라고 호통질치더니, 흥! 어떤 땐 시중이 끝이 없어? 쳇!”
   월선은 영감의 젖은 옷을 와락와락 벗겼다.
   한길수는 황급히 사타구니를 두 손으로 붙잡았다.
  월선은 춘실과 은녀를 올려다보면서 호령햇다.
   “잠간만 나갔다가 들어오너라.”
   춘실과 은녀가 나가면서 미닫이를 닫아버렸다.
   월선은 사타구니에 걸친 젖은 것마저 벗기고 고리궤짝 안에서 새것으로 꺼내 바꿔 입혔다. 그리고 고리궤짝 우에 얹어놓은 요를 와락와락 내리워 길수의 허리 밑에 펴주면서 두덜거렸다.
   “에구, 한 둬달은 편안히 자게 됐구먼.”
    한길수는 신음소리를 연신 내면서 요를 깔고 들어 누우면서 욕설을 퍼부었다.
   “아이고, 남은 아파 죽겠는데 계속 악다구니질이야.”
   월선은 젖은 옷을 훌 안아 미당이를 열고 활 내던졌다.
   “은녀야, 그걸 씻어 말리어라. 이 바쁜 양반이 래일 입고 가야지.”
   은녀가 젖은 옷을 들어 부엌 쪽으로 내려갈 때였다.
   “아이고, 나 죽는다. 춘실아, 들어오너라. 은녀도. 얼른!”
   한길수는 미닫이를 열고 들어오는 춘실을 보더니 우멍 눈에서 한 가닥의 이상한 빛이 번쩍였다.
   “춘실아, 여기 다리를 좀 주물러라. 아파 죽겠다.”
  춘실은 감히 손을 척 대지 못하고 월선의 눈치를 올려다보았다.
  월선은 또 빈정거렸다.
   “주물러 줘라. 젊은 년의 손길이 더 좋은 모양이야.”
   월선은 아예 안방에서 훌 나가더니만 미닫이를 쾅 닫아버렸다.
   (허리와 다리를 상한 놈이 설마 일을 치겠어? 흥!)
  월선은 안방에 대고 소리쳤다.
   “은녀야, 넌 부엌에 내려와서 저녁상이나 차려라.”
   “예.”
   은녀는 위방에서 나와 부엌에 내려가 젖은 옷을 함지에 불러놓고 저녁밥상을 차리기 시작했다. 그는 어느 것부터 먼저 했으면 좋을지 몰랐다.
   위방에서 색정광 한길수가 수작을 피우는 소리가 역겹게 들리었다.
   “아이고, 좀 우로 올라가면서 꽝꽝 주물러라. 오, 오호, 그래, 어 시원하다.”
   춘실의 간드러진 목소리가 들리었다.
   “주인어른, 우리 집 사람은 함께 오지 않았어요? 아니면 우시장 공지에 있어요? 좀 우리 집사람을 많이 봐주세요.”
   “그래, 근심하지 말라. 오늘 신흥동에 인부들을 모집하라고 보냈다. 에구, 아픈 데를 그렇게 주무르면 어찌나? 살살 만져라. 응, 응, 오호, 그래, 그렇게 살살. 그래. 아, 참 좋아.”
   월선은 아래 방에서 위방에 대고 입귀를 비쭉거렸다.
   (에구, 연놈들이 한창 논다. 음특한 놈, 허리 분질러져 가지고도 또 거기 근질거리는 모양이지.)
   이때 안방에서 길수의 소리가 울렸다.
   “거게 은녀 있냐? 춘실이 힘들어하니까. 이젠 네가 올라와 문질러라.”
   월선은 듣다못해 위방을 향해 소리쳤다.
   “아니, 저녁밥상을 차리는 애를 불러 가면 저녁은 언제 들겠어요?”
    “안 먹어도 돼. 아파죽겠는데 저녁은 무슨 놈의 저녁. 아픈 데부터 만져야지. 으 흐, 시원하다.”
    월선은 두덜거리면서도 은녀를 올라가라고 눈짓했다.
   은녀는 행주에 손을 닦고 나서 위방 미닫이를 주르륵 열고 들어갔다. 이윽고 위방에서 한길수의 만족한 말소리가 들렸다.
    “어, 시원하다, 시원해. 에구, 젊은 년의 손이 다르긴 달라. 보들보들한 게, 어, 시원하다. 시원해.”
   “퉤!” 
   아랫방에서 월선은 위 방에 대고 하고 침을 뱉더니 입귀를 비쭉거리었다.
   유흥을 즐기는 색마의 걸걸한 콧노래와 질투에 찬 아낙네 눈길이 반공중에서 부딪힌다. 보이지 않는 번개가 번쩍이더니 무수한 별찌가 마룻바닥에 쏟아져 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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