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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하소설 울고 웃는 고향 김장혁 (25) 먹은 소 똥을 눠
2024년 03월 05일 11시 57분  조회:604  추천:0  작성자: 김장혁
           
            2. 먹은 소 똥을 눠
 
     한길수는 고양이에게 쫓기는 쥐처럼 부랴부랴 당나귀 차에 앉아 꼬리 빳빳해 도망갔다. 그는 당나귀차에 앉아 자꾸 뒤돌아 보았다.
    콧수염쟁이 군도를 들고 쫓아오지 않아 다행이었다. 그제야 그는 한숨을 푸 내쉬었다. 드디어 맥없이 고개를 숙이고 왼손으로 이마를 짚고 착잡한 생각에 잠기었다.
     (젠장, 우시장에서 한다하는 한길수가 이게 무슨 꼴이람? 머리에 털이 돋아나서부터 언제 오늘처럼 이렇게 개꼴망신을 당한 적이 있었는가? 참, 일본 사람들과 놀기 힘든데. 이럴줄 알았더라면 영팔과 응삼을 데리고 왔겠는 걸. 그래두 병완을 꺾자면 참아야는가? 흥! 더러워서, 원? 어떻게 해야 끼무라 국장과 친해질 수 있을까?)
     득호는 해도 중천에 걸렸는지라 주인에게 묻지도 않고 당나귀차를 몰고 영월동으로 돌아가는 길에 들어섰다.
    “에끼, 이 등신 같은 물건짝아, 일본 사람들과 친하기는커녕 개꼴망신을 당하구  어떻게 머리를 들고 집으로 돌아가느냐?”
    한길수가 꽥꽥거리자 당나귀차는 시내 쪽으로 되달렸다.
    한길수는 한 주막집에서 내린 후 득호를 보고 영월동에 가서 응삼과 영팔, 수길을 데려오라고 했다.
   득호가 황급히 당나귀차를 몰고 떠나려고 할 때다.
   한길수가 불러세웠다.
    “잠간! 응삼을 보고 금덩이도 푸짐히 가지고 빨리 오라구 해라!"
    그는 호주머니를 쳐들어보였다.
    "요걸루 될 거 같잖다."
    “예. 주인어른!”
   득호는 당나귀 잔등에 채찍을 안기면서 영월동으로 부랴부랴 떠나갔다.
   한길수는 주막집에 들어가 조용한 쪽으로 가서 빈 상에 마주앉았다.
   그는 주인 보고 개고기를 한 사발 달라고 해 막걸리를 게걸스레 쭉쭉 들이켰다.
   한참 막걸리로 답답한 마음을 지지니 그제야 조금이라도 위안이 되는 상 싶었다. 그는 막걸리를 마시면서 어떻게 하면 일본 사람들과 다리를 놓겠는가고 머리 속에서 궁리가 뱅뱅 맴돌았다.
   얼마나 시간이 갔을까. 해가 거의 중천에 걸렸다. 한길수가 답답한 막걸리를 쭉쭉 들이켜고 있을 때다.
    바깥으로부터 응삼과 영팔, 수길이 달려 들어왔다.
   응삼이 실 돌피 같은 허리를 꿉썩 굽혔다.
   “주인어른님, 오래 기다리지 않았습둥?”
   “그래, 자, 앉아라. 너희들도 막걸리 들어라.”
   한길수는 주인답게 막걸리를 권했다.
    막걸리를 한 순배 돌린 후 한길수는 통탄했다.
    “야- 이전에 이 우시장에 오면 누가 감히 나와 말대구나 했겠느냐? 그런데 지금 바깥세상은 영 딴 판이구나. 철주 말처럼 우시장도 영 일본 사람들의 세상이 돼버렸구나.”
     그는 뒤이어 울분을 이기지 못해 주먹으로 술상을 탕탕 치면서 근심했다.
    "이후에 일본 사람들이 내 밭과 삼림을 내놓으라면 어쩌지?"
      응삼은 양미간을 찌푸리고 뱁새눈이 실눈이 돼 쑹얼거렸다.
     "일본 놈들도 푹 삶아논 개다리 잘 삶아놓으면 근심할게 없습구마. 차마 웃는 낯에 침을 뱉겠습둥? 해해해."
    그는 주인에게 막걸리를 따라 올렸다.
     “주인어른, 먼저 통역이나 만나 끼무라 국장과 만나게 다리를 놔달라고 해봅시다."
     한길수는 응삼한테 손삿대질하면서 명했다.
    "당장 일본 놈들 초소에 가보게나."
     "옛!"
    응삼은 영팔과 함께 일본 헌병이이 지키는 초소 앞에서 경찰국 2층 양옥 쪽을 들여다보면서 군관 같은 놈이나 통역 같으루 한 놈을 눈뿌리 빠지게 기다렸다. 그러나 종시 그런 놈들이 나타나지 않았다.
    (경찰국장과 강철이 혹시 아짇고 기생집에 있을 수도 있어.)
    응삼은 영팔을 데리고 기생집 쪽으로 가 기웃거렸다.
    “뭘 해? 가라, 가!”
    일본 헌병이 총박죽으로 응삼과 영팔을 떠밀면서 꽥꽥거렸다.
    이때 기생집에서 군도를 찬 콧수염쟁이놈과 통역 같으루 한 조선인이 기생 년들의 부축을 받으면서 혀 꼬부라진 소리로 뭐라고 떠들면서 나왔다.
    그런데 그 조선인은 눈에 퍽 익어보였다.
    (아니, 저게 서당방 친구 류강철이 아닌가? 살았구나. 살았어. 하느님이 류강철이를 보내주는구나.)
    응삼은 끼무라 국장에게 허리를 90도로 꿉썩해보이고 나서 강철을 보고 소리쳤다.
    “이보게, 강철이!”
   그런데 강철은 응삼을 몰라보았다. 그는 날카로운 눈길로 응삼의 아래위를 훑어보며 물었다.
    “누구던가?”
    “응삼이, 응삼이네. 우리 운주동에서 최구장의 서당 방에서 천자문을 배우지 않았는가?”
    그제야 강철은 아는 척 했다.
     “아, 이제야 알기는구먼. 여긴 무슨 일로 찾아왔소?”
    응삼은 동문서답했다.
    “일본에 유학 갔다더니 높이 솟았구먼."
    강철은 안경알을 춰올리며 건성으로 대답했다.
    "경찰국장의 통역을 해 밥벌이나 하네."
   "때마침 잘 됐네."
   응삼은 강철을 한쪽으로 데리고 가서 나직이 말했다.
   "좀 시간을 내오. 긴히 여쭐 말이 있네.”
   옆에 서 있던 끼무라 국장은 버릇처럼 깍지를 건 엄지와 식지로 콧수염을 쓸쓸 만지작거리며 물었다.
   “다레까?(누군가?)”
   강철은 일어로 “내 소굽시절의 친구지요.”라고 대답했다.
   뒤이어 그는 “점심에 다른 일이 없으면 이 친구하고 만나게 허락해 주십시오.”라고 청을 들었다.
   “요로씨(좋아.)”
   찌프차 한대가 달려와 앞에 멈춰 서자 끼무라 국장은 호위병과 함께 척 앉아 먼지를 뽀얗게 일구면서 사라졌다.
   강철은 응삼이 이끄는 대로 한길수가 기다리는 술집으로 갔다.
    그는 술집에 들어갔다가 한 시간 전에 난동을 피우던 건달의 번들이마를 보고 뒤지참하더니 되나가려고 했다.
   “어이, 통역선생. 섭섭히 대하지 않겠으니 가지 마오.”
    강철은 문 밖에 나가 뒤따라 나온 응삼에게 물었다.
    "저건 씨름판에서랑 생떼질 쓰던 그 건달 아니야?”
    응삼은 홱 뒤돌아다보더니 입가에 식지를 댔다.
    “쉬- 말조심하게나. 저 양반 이 우시장을 쥐락펴락 하는 대장부야. 내 주인어른이야.”
    그제야 강철은 주춤 멈춰섰다.
    “그래. 무슨 일이냐?.”
    응삼은 뱁새눈으로 술집 주위를 흘끔흘끔 둘러보았다. 뒤이어 호주머니에서 잔등에서 둘러멘 주머니를 끄르더니 금빛이 번쩍번쩍 하는 금덩이 하나 꺼내 스리슬쩍 강철의 손에 쥐어 주었다.
    “부탁이네. 우리 저 주인어른을 경찰국장에게 연줄을 달아주게나. 우리 주인어른은 자네 은공을 잊지 않을게요.”
    “그 일?”
   강철은 서너 냥은 될 금덩이를 놓칠 수 없었다.
    (밑져 본전이니까. 한번 나서 보자.)
    그는 대번에 환한 웃음을 지으면서 금덩이를 호주머니에 슬쩍 주어 넣더니 응삼의 어깨를 툭툭 쳤다.
    “동기친구를 봐서라도 한 영감을 한번 도와주지. ”
    “고맙네. 우리 어른께 여쭈어서 자넬 꼭 후한 대접을 하게 하겠네.”
   그런데 강철이가 상을 찡그리면서 이런 말을 할 줄이야.
    “네 주인이 주색에 너무 빠졌더라. 오늘도 대취해 개꼴망신했다. 대일본제국을 위해 일하려면  주색에 너무 빠져선 안 돼. 아까도 끼무라 국장앞에서 그게 뭐야? 쯧쯧."
    응삼은 강철한테 바짝 다가섰다.
    "꼭 잘 말해주게나. 사내가 어찌 한두번이야 주색에 빠지지 않겠는가? 꼭 잘 말해주게나. 부탁이네."
    강철은 짐짓 제빠드해보였다.
    "내 말은 해보겠네만은 끼무라 국장님이 한 영감을 받아주겠는지 잘 모르겠어.”
   응삼은 강철이 금덩이를 더 받아 먹으려고 일부러 그런다는 것을  불 보듯  꿰뚫어보아냈다. 그러면서도 겉으로는 모르는 척 하면서 바싹 달라붙었다.
   “이보, 들어가 우리 주인을 보기오. 우리 주인은 인심이 후한 분이야."
  강철은 마지못해 응삼에게 끌려들어가듯 술집으로 되들어갔다.
   한길수는 우멍눈을 활짝 뜨며 반색하였다. 그는 손으로 버릇처럼 번들이마를 쓱쓱 쓰다듬더니 자리에서 일어나 자리를 권했다.
   “면목 있는 분이구먼. 아까 추태를 보여서 미안하오.”
   한길수는 기생집에서 추태를 보인 것이 마음에 걸렸다.
   “천만에 말씀. 피차일반입구마.”
   류강철이 발라 맞추는데 한길수는 응삼에게 눈짓했다.
   응삼이 금덩이가 들어찬 주머니를 어깨에서 끈을 끌러 내려놓았다.
   한길수는 가래짝 같은 손을 주머니에 쑥 넣더니 단번에 금덩이 두개나 꺼내 류강철의 앞에 척 내놓았다.
   “자, 받게나."
   강철은 황금덩이를 보고 반색하면서도 사양하는 척 했다.
  한길수는 우멍눈으로 강철을 엄엄하게 바라보며 입을 뗐다.
  "무거운 부탁을 합세. 나는 대일본제국을 위해 일하고 싶은데. 으흠, 경찰국장님에게 알선해주게나. 이후에 내가 허리를 펴게 되면  자네를 잊지 않을게.”
   류강철은 금덩이를 스리슬쩍 받아쥐고 허리를 꿉썩거렸다.
    “우시장에서 한 어른의 성선은 귀에 못이 박히게 들어 압니다. 저는 한 어른을 위해 할 일이 있는 것만도 아주 행운으로 생각합니다. 이 금덩이 없어도 제가 어련히 알아서 해주지 않으리라고 이럽니까?”
     한길수는 금덩이를 손수 쥐여 영팔이 손에 쥔 주머니에 넣어 강철에게 건네주었다.
     “자, 이거 무거운 부탁을 하기오. 이후에 사노라면 이거겠겠소? 허허허.”
    그제야 류강철은 별 수 없다는 듯이 묵직한 금주머니를 받아 챙기었다.
    “근심하지 말고 기다립시오. 오늘 오후에 꼭 한 어른을 만나도록 끼무라 국장에게 잘 말씀드리겠습니다.”
    한길수는 자리에서 일어나 사례하면서 술집 바깥까지 바래다주었다.
    한길수는 류강철에게 부탁했다.
    “좋기는 경찰국청사에서 국장님을 만났으면 좋겠소.”
    류강철은 “그게 좋겠습니다. 기별을 기다리십쇼.”라고 한마디 말하고는 자리를 급급히 떴다.
    응삼은 밖에 나가 득호를 보고 당나귀 차에 류강철을 모셔다주라고 분부했다.
    류강철은 당나귀차에 앉아 떠나가면서 어깨가 으쓱해났다. 
    (어떤 금덩이야? 이런 거간이야 말로 백번이라도 설 수 있지. 한길수 영감에게 면목을 내고 금덩이도 챙기니 . 헛참, 이거야 말로 꿩 잡고 알도 먹고 둥치를 털어 불을 때는 격이 아니겠는가. 흐흐흐.)
     그는 당나귀차를 타고 부랴부랴 집에 가서 금덩이 세 덩이를 아내에게 맡기였다. 그는 점심도 먹지 못하고  당나귀차를 타고 단숨에 우시장경찰국으로 달려갔다.
    우시장에서 2층 양옥집은 일본 경찰국 청사 밖에 없었다. 경찰국을 둘러싼 벌건 토성 네 귀의 초소에는 총칼을 비껴든 일본 헌병들이 왔다 갔다 하면서 보초를 서고 있었다. 자못 경계가 삼엄했다.
     강철이 통행증을 내보이자 대문보초병은 들여보냈다. 그는 곧추 끼무라 사무실 앞 복도 걸상에 앉아서 경호원과 함께 이 말 저 말 하면서 끼무라 국장이 오기를 기다렸다.
    한참 후 끼무라 국장은 경호원과 함께 뚜벅뚜벅 2층 복도로 올라왔다. 류강철은 기립하여 서 있다가 끼무라 국장이 다가오자 허리를 구십 도로 꿉썩 굽히며 인사했다.
    끼무라 국장은 사무실에 들어가 틀스럽게 군도를 벗어 검 틀에 걸어놓고 의자에 앉았다.
    강철은 인차 끼무라 국장의 옆에 다가가 무거운 입을 떼였다.
    “국장님, 긴히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끼무라 국장은 이전과는 달리 너무나도 굳어진 류강철의 표정을 보고 “무슨 중대사가 있는가?”라고 물으면서 왼쪽앞자리를 권했다.
    류강철은 아주 그럴듯하게 말했다.
    “이 우시장을 다스리자면 순수한 일본헌병들로만은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도 일본제국을 도와 일할 당지 조선인들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끼무라는 류강철의 말에 동감을 표시했다.
    “소우데스네(그렇습니다). 나도 그 일 때문에 요즘 류 군과 말하려던 참이요. 좋기는 우시장에서 아니, 온 명천에서 영향력이 있는 자들이면 더욱 좋소. 그런 자들을 우리 옆에 사냥개처럼 길러두면 우리 안보에 좋지.”
    끼무라가 의기투합해 하자 류강철은 말이 술술 흘러나왔다.
    “국장님, 그 적임자가 나졌습니다.”
   끼무라는 코 수염을 쓰다듬으면서 “어떤 사람이요?”라고 물었다.
    “그 어른은 이전부터 이 우시장이고 온 명천까지 쥐고 흔들던 깡패두목입니다.”
    류강철의 말에 흥미가 갔던지 끼무라는 벌떡 일어났다.
   “빨리 그 자를 내앞에 불러오오. 바로 그거네. 나는 우시장의 한다하는 깡패, 건달들을 묶어세워 우리 대일본제국의 충실한 제2의 헌병대나 다름없는 조선인경찰대를 묶어세우겠네. 지방관리도 몽땅 우리에게 충성하는 자들로 시킬 예산이네. 그게 누군지 구체적으로 말할 수 없는가?”
    그런데 류강철은 그 다음 말을 인차 하지 않고 차물을 마셨다. 그러자 끼무라 국장은 아주 조급해 류강철의 입에서 눈을 떼지 않고 초조한 표정을 지었다.
    류강철은 차잔을 놓으면서 천천히 입을 떼였다.
    “끼무라 국장님은 그분을 진작 오늘 오전부터 알고 있습니다.”
    끼무라는 안경알 안으로 사기 눈을 희번뜩거리더니 책상을 탕 쳤다.
   “혹시. 오전에 옥방에서 기생 년을 셋이나 데리구 놀던 그자 말인가?”
   류강철은 우쭐 일어나서 끼무라 국장의 옆으로 다가갔다.
   “맞습니다. 이전에 이 우시장에서 그분의 이름만 들어도 어린애들도 울음을 다 그칠 정도였습니다. 지금 영월동에 숨어서 살지만 그분의 수하에는 이 우시장이고 명천에고 숱한 주먹치기친구들이 있습니다.”
    끼무라 국장은 의자에 되 주저 앉으면서 머리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래. 그자는 내 검도를 대여섯 번이나 피했소. 사람이 주먹치기군은 틀림없소. 아주 날랜 사람이지.”
    그 말에 강철은 일이 돼 단다고 속으로 쾌자를 불렀다.
    그런데 끼무라의 그 다음 말은 아주 실망스러웠다.
    “류군은 사람을 잘못 보았네. 그렇게 아침부터 주색에 빠진 자가 어떻게 우리 대일본제국 경찰국장의 한 팔이 되겠는가?”
  (쳇, 자기는?)
   먹은 소 똥을 싼다고 강철은 거기에서 물러설 인간이 아니었다.
   “주색에 빠진다고 다 국장님의 한 팔이 되지 못한다는 법이야 없잖습니까? 문제는 일본제국을 위해 일을 하려는가 하지 않으려는가 하는 마음이, 아니, 충성심이 관건이라고 봅니다. 그는 능력도 있고 주먹도 세고 친구나 부하가 많습니다. 장차 국장님을 위해 큰일을 할 사람이니 한번 기회를 주어 보십시오. 낭패는 없을 겁니다. 또 장차 목숨을 걸고 사람 잡이를 해야 할 사람들이 한가할 때에는 주색에 조금 빠진들 무슨 큰 일입니까?”
    끼무라는 한숨을 후 내쉬더니 손가락으로 사무 상을 똑똑 치면서 한참 궁리를 굴리었다.
    드디어 그는 버릇처럼 코 수염을 쓸면서 자기 충실한 통역 류강철을 유심히 보더니 천천히 입을 열었다.
   “좋아,  먼저 만나봅세.”
   “하잇(옛)! 와까리마시다(알았습니다)! 지금 당장 불러오겠습니다.”
    류강철은 차렷 자세로 군례를 올린 후 사무실에서 나갔다.
    그는 사무 청사 마당에 나가 일본 헌병이 모는 삼륜오토바이에 앉아 인차 약속한 술집으로 달려갔다.
   그는 헐레벌떡거리면서 술집에 뛰어 들어가자마자 한길수에게 구십도 경례를 올렸다.
    “한 어르신님, 끼무라 국장께서 지금 당장 한 어른을 만나겠답니다.”
   한길수는 번들 이마의 땀을 닦으면서 응삼에게 눈짓했다.
   응삼이 제꺽 눈치채고 또 금덩이 하나를 꺼내 류강철에게 내밀었다. 그러자 강철이는 감히 받을 엄두를 내지 못했다.
   “이러지 맙소. 내가 어디 금덩이를 받자고 나섰습니까? 한 어른은 우리 이 우시장의 영웅호걸인데요. 금더이를 보고 나선게 아닙니다.”
    한길수는 더는 굳이 주지 않았다. 그는 속으로 강철이가 아주 역은 놈이라고 생각했다.
   (네놈이 언감 금덩이에 눈이 어두워 너무 욕심을 쓰면 이담 가만놔들 거 같애? 흥, 이 어른이 장차 칼자루를 쥐면 네놈에게 준 금덩이의 두 배도 더 받아낼지 모르니까.)
   “으흠, 가보세.”
   한길수는 일어나 떠나려다가 되앉으면서 머뭇거렸다.
   “그런데 오전에 일을 쳐놓아서 망신스러워 어떻게 국장님을 만나겠소. 인상이 영 좋지 않겠는데 가서 되겠소?”
   류강철은 허리를 굽히면서 여쭈었다.
   “근심하지 마십시오. 제가 국장님께 오전의 오해를 풀리게 잘 해석해드렸으니까 끼무라 국장은 양해하였습구마.”
   “그래? 으흐흐. 참 수고 많았네.”
   한길수는 용기를 얻고 강철을 따라 술집 밖으로 나갔다. 마당에 오토바이가 있었지만 한길수는 앉을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자기 당나귀 차에 오르려고 했다.
    강철은 바삐 말리면서 한길수가를 자기 오토바이 쪽으로 부축해갔다.  
   한길수는 응삼을 보고 금덩이보자기를 달라고 하여 어깨에 둘러멨다.
   “자네들은 저 술집에서 술이나 마시면서 기다리게나.”
    분부를 마치자 강철한테 손을 홱 휘둘렀다.
    응삼과 영팔, 수길은 오토바이를 타고 쏜살같이 멀어져가는 한길수 잔등에 대고 구십도로 경례를 꿉썩 했다. 발바닥을 핥으라고 해도 핥을 졸개들의 비굴한 상통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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