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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하소설 울고 웃는 고향(14) 치마봉 전설 김장혁
2024년 01월 11일 14시 18분  조회:897  추천:0  작성자: 김장혁
      
     
        김장혁 작 대하소설 울고 웃는 고향 제2장


                5. 치마봉 전설
 
 
 
 
     높은 가을하늘에서 보름달이 구름을 뚫고 얼굴을 내밀고 나와 조약돌을 치고 박으며 흐르는 버치 꼴 개울물에 은파를 뿌렸다. 저기 치마봉 양지쪽에도 은빛이 희끄무레 깔려있었다. 호랑이의 울부짖음 소리가 먼 수림 속에서 들려왔다.
    성칠은 은녀를 데리고 개울 물가를 걸었다.
     “은녀, 우리 여기서 좀 쉬어 갈까?”
     은녀는 별빛이 반짝이는 초롱초롱한 눈으로 성칠을 쳐다보았다.
    “오빠, 사냥을 갔다가 와서 곤하지는 않소?”
    성칠은 한숨을 후- 내쉬면서 버들잎을 주르르 훑어 버렸다. 그는 적토마를 버드나무가지에 매놓고 은녀에게 물었다.
    “일없다. 치마봉 전설을 들어 보겠니?”
    은녀는 어린애처럼 환성을 올렸다.
     “난 오빠 얘기를 듣기 좋아하오. 어서 얘기해주오.”
     그리하여 그들은 돌돌돌 흐르는 개울물을 마주하여 버드나무아래 제방 둑에 나란히 앉았다.
    성칠은 마른기침을 몇 번 하더니 제법 옛말을 할 잡도리였다. 은녀는 두 무릎 우에 턱을 고이고 손가락으로 모래에 줄을 족족 그으면서 하회를 기다렸다.
    “저 치마봉을 봐라. 얼마나 치마폭 같이 생겼냐?”
      그들은 한참이나 말없이 저 멀리 치마봉을 바라보았다. 치마봉은 정말 치마폭처럼 아래는 퍼지고 우는 짤룩하고 치마 주름처럼 내리 발로 바위돌이 들쑥날쑥 박혔다. 뭇별이 총총한 하늘에서 별찌가 치마봉 상공에 쭉 긴 꼬리를 늘이며 떨어져내려왔다. 숫처녀의 가슴에도 뜨거운 별찌가 찌르르 불티를 튕기었다. 
     은녀는 초롱초롱한 포도눈으로 치마봉을 하염없이 바라보면서 머리를 가볍게 끄덕였다.
     “치마봉은 정말 치마폭처럼 아름답소.”
     성칠은 담배쌈지를 꺼내 담배를 말기 시작했다. 은녀가 담배쌈지를 빼앗다 시피 채갔다.
     “내 말아 줄게.”
     은녀가 담배 대를 자기 입에 대고 침을 쪽 발라 종이를 말아 꼭 싼 후 성칠의 입에 쏙 밀어 넣어주었다. 성칠은 은녀의 침이 붙은 따뜻한 담배를 붙여 길게 빨아들였다. 특별히 담배 맛 있었다.
     "고맙다."
    “고맙긴? 난 오빠 은혜를 어떻게 갚아야 될지 모르겠소.”
    “에이, 그게 무슨 소리냐? 그래 오빠라는 게 여동생이 승냥이 입에 들어가는 걸 뻔히 보고만 있어서야 되니?”
     은녀는 성칠의 팔을 두 손으로 꼭 껴안았다. 그때 버들방축에서 버스럭버스럭 소리가 들렸다.
    “음. 저기 짐승이 온 모양이구나. 사냥총을 한방 놓을까?"
    은녀는 황급히 말렸다.
    “아니, 그러다가 누가 상하면 어쩔 라고 그러오?"
    더욱 요란하게 버스럭버스럭 소리가 나더니 검둥이가 뛰어가자 그 인기척이 멀리 사라지고 조용해졌다. 이상한건 그쪽으로 뛰어간 검둥이가 한 번도 짓지 않고 꼬리를 흔들흔들 흔들면서 이쪽으로 뛰어온 것이다.
     성칠은 십중팔구 누구라는 것을 짐작하고 바로 앉았다.
     그는 담배를 한 모금 길게 빨았다가 후 내 뿜으면서 이야기를 시작했다. 은녀는 세운 한쪽무릎을 두 손으로 잡고 앉아 성칠의 옛말을 귀담아 들었다.
      뒷산 수림 속에서는 뻐꾸기 "뻐꾹 뻐꾹" 애처롭게 우는 소리 귀청을 처량하게 간질렀다.
      “멀고먼 옛날에 이 버치꼴에는 소를 모는 목동이 살았단다.”
     목동은 어찌나 피리를 잘 부는지 그 구성진 피리소리를 듣고 새들마저 날아와서 너울너울 춤을 추었다. 그런데 목동은 나이가 들도록 이 심심산골에 시집오려는 처녀가 없어서 장가를 들지 못한 노총각으로 되었다.
    어느 하루 목동은 소를 몰다가 너무 더워 이 개울물에 와서 목욕이나 하려고 버드나무를 헤치면서 다가왔다. 그런데 글쎄 그때 하늘에서 칠색 단 저고리와 연분홍치마를 입은 아름다운 선녀가 둘이나 너울너울 춤추면서 내려왔다. 너무 황홀해 그 선녀들을 쳐다보는데 선녀들은 너무 더워서 주위를 대충 살펴보고서는 칠색 단 저고리와 연분홍치마를 훌훌 벗어버리더니 개울물에 뛰어들어 목욕하기 시작했다.
      처음 눈같이 하얀 선녀들의 몸을 훔쳐본 목동은 목구멍에서 쿵쿵 소리가 날 지경으로 심장이 높뛰었다. 선녀들은 옥같이 흰 살을 드러내놓고 두 손으로 물을 서로 끼얹으면서 물장난을 치고 있었다.
     이때 목동이 모는 소 무리에서 늙은 암소 한마리가 나서더니 이렇게 귀띔했다.
     “주인님, 저 선녀들 속에서 더 고운 선녀의 칠색 단 저고리와 연분홍치마를 숨겨두면 주인님의 천생배필은 문제될게 없소이다.”
     그 말에 어진 목동이었지만 장가들 생각으로 슬그머니 다가가서 칠색 단 저고리와 연분홍치마를 훔쳐 산 둔덕의 숲속에 숨겨두었다.
    하늘에서 벼락이 치는 듯 옥황상제의 심부름꾼이 선녀들을 궁전에 돌아오라는 령을 내렸다.
    다른 선녀들은 저고리와 치마를 입자 하늘로 날아올랐건만 한 선녀는 칠색 단 저고리와 연분홍치마가 없어져 하늘로 날아오를 수 없었다. 목동은 선녀를 보고 자기와 천년배필을 무을 것을 약속하면 치마를 내주겠다고 했다. 선녀는 눈물범벅이 된 얼굴을 들어 목동의 까만 얼굴을 바라보더니 마지못해 머리를 끄덕였다.
     그때로부터 선녀는 저 버치 꼴에 삼을 심어 삼베로 베천을 짜고 버들을 베 광주리와 버치를 틀면서 목동과 함께 잘 살았다고 한다.
     그들이 한창 깨알이 쏟아지게 살 때 선녀가 인간 세상에 숨어서 사는 것을 알고 옥황상제는 심부름꾼들에게 잡아오라고 명령을 내렸다. 심부름꾼은 하늘에서 내려오자마자 선녀의 머리채를 잡아 쥐고 하늘로 날아올랐다. 목동이 아무리 소리치고 선녀가 아무리 발버둥 질 쳐도 소용없었다.
     이때 늙은 암소가 목동을 보고 자기 등을 타고 풀썩 솟아오르라고 했다. 목동이 정말 그렇게 하였더니 몸이 하늘로 씽씽 날아오르기 시작했다. 그가 거의 따라 잡으려고 할 때였다. 심부름꾼은 다시는 선녀를 날지 못하게 선녀의 연분홍치마를 벗겨 내리 던졌다. 그런데 뒤따라 날던 목동의 몸이 그 연분홍치마에 감기여 더 날지 못하고 땅바닥에 떨어졌다.
      “그때 땅에 떨어진 선녀의 연분홍치마가 굳어져 저 치마 봉으로 됐단다.”
      성칠의 말에 은녀는 다가앉으면서 물었다.
     “그럼 그 목동은 저 치마봉에 깔리어있단 말이오?” 
    “그래, 그러나 목동은 행복하게 눈을 감았지. 죽어서도 사랑하는 선녀의 치마폭에 싸여 묻혔으니 말이다.”
    “호- 어쩜 저 치마봉에는 그런 눈물어린 전설도 있어요.”
    개울물이 돌돌 흐르는 버치 꼴 개울물가에는 나그네와 처녀의 한숨소리가 간간히 들렸다.
    한참 납덩이같은 침묵이 흘렀다. 이윽고 성칠은 은녀의 따뜻한 손을 더듬어 잡고 나서 조용히 말했다.
     “은녀, 난 너를 고와한다.”
     “어마나!”
     은녀는 외마디소리를 가늘게 질렀다.
      그녀는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면서 돌아앉았다.
     “어째? 넌 나를 좋아하지 않지?”
      성칠의 물음에 은녀는 손을 성칠에게 맡긴 채 몸 둘 바를 몰라 했다. 
     그녀는 홧홧 달아오르는 얼굴을 두 무릎 사이에 숨기면서 나직이 말했다.
      "누가 좋아하지 않는다 했소? ”
     성칠은 은녀의 허리를 끌어당겨 꼭 안고 은녀의 얼굴을 두 손으로 받쳐 들고 달빛을 빌어 은녀의 얼굴을 똑바로 들여다보았다. 버드나무 그림자에 희미하게 가려진 은녀의 얼굴이 그렇게도 예쁠 줄은 몰랐다.
     “넌 처녀이구 난 아내가 있는 나그네야. 그런데 나는 아들도 딸도 없을 놈이야. 우린 저 치마봉 전설의 목동과 선녀처럼 함께 살수 없는 게지?”
     성칠의 애탄 목소리에 은녀에게서 이런 말이 불쑥 튀어나왔다.
      "나그네면 어떻고. 처녀면 어떻대? 아들딸만 많이 낳고 잘 살면 좀 좋아서.”
     성칠은 화들짝 놀랐다.
      “은녀야!”
     성칠은 은녀를 꼭 껴안았다. 은녀의 온몸이 바르르 떨렸다. 그러나 성칠은 맥없이 팔을 풀었다.
     은녀는 성칠의 품에 파묻었던 얼굴을 들어 성칠의 구레나룻수염이 짙은 성칠의 얼굴을 올려다보았다.
     “오빠, 우리 둘이 좋아하는데 또 뭣이 두렵소?”
     성칠은 몸을 돌려 바로 앉았다.
    “안 된다, 안돼. 우리는 함께 살 수 없어. 내 큰아버지는 우리 영월 김 씨 집안과 너네 영월 엄 씨네는 통혼을 하지 못한다고 했다.”
    은녀는  돌아앉아 어깨를 들먹이었다.
    "왜? 우리 두 집안이 전생에 무슨 원쑤라도 맺았다오?"
   애탄 건 성칠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주먹으로 가슴을 쾅쾅 치며 한탄했다. 
    "아니야. 우리 두 집안은 친형제하구 같단다. 그러나 통혼은 안된단다."
    "왜?"
    은녀는 종주먹으로 성칠의 가슴을 쾅쾅 치며 물었다.
    "500년 전에 우리 집안 김려생할아버지하구 너네 조상 엄흥도 할아버지가 목숨걸고 리조 단종왕을 보호했지. 그 두분 충신할아버지들이 우리 두 집안은 친형제 같다면서 그때부터 서로 통혼하지 않기로 했단다."
    "그때면 그때지. 500년 후에도 그 언약 따를 건 뭔가요?"
    "우린 대대로 조상들의 언약을 무조건 지켰단다. 지금도 절대 못 고쳐."
    성칠은 한숨을 땅이 꺼지게 쉬면서 말없이 은빛달빛이 깔린 한 많은 치마봉을 바라보았다.
    오- 사랑하면서도 사랑할 수 없는 고통, 그 고통이야 이루다 말할 수 있으랴? 가슴이 미여지는 것 같고 밸이 끊어지는 것만 같을 것이였으리라.
    달도 차마 눈 뜨고 보기 구슬펐던지 구름 속으로 외면했고 개울물이 구슬프게 돌돌돌 흐느끼면서 흐르고 있었다. 적토마는 배가 고팠던지 성칠과 은녀의 잔등에 대고 투루루 뜨거운 입김을 뿜었다. 검둥이도 뛰어와 끼깅거리면서 길을 재촉했다.
    성칠은 흐느끼는 은녀를 데리고 버치꼴 막바지로 무거운 발걸음으로 터벅터벅 올라갔다. 그 발자욱마다 애잡짤한 뜨거운 눈물이 고였다. 그 피눈물로 그들의 어울리지 않은 사랑의 애탄 가슴을 잠시나마 식여줄 수 있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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