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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장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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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하소설 울고 웃는 고향(8) 원시림의 총소리 김장혁
2023년 12월 13일 09시 50분  조회:755  추천:0  작성자: 김장혁
         
     김장혁 작 대하소설 울고 웃는 고향 제1권

           2015년 04월 17일 09시 33분  조회:1567  추천:2  작성자: 김장혁
     
 
            8.원시림의 총소리
 
 
       사나운 산바람에 눈사태가 공포스럽게 원시림에서 무너져내렸다. 눈너울을 들쓴 미인송들이 소소리 하늘을 꿰지르고 흐리멍텅한 하늘을 떠받치고 서 있는데 무시무시한 원시림에서 어둠이 죽음의 노래를 부르며 휩쓸어와 여기저기 기웃거렸다.
      성칠과 검둥이가 백두산 기슭으로 한 둬 시간 내리 걸으니 눈 덮인 수림 속 저 멀리에 희미한 등불 빛이 가물거리는 것이 보였다.
인가가 있다고 생각하자 성칠은 피곤기가 오면서 배에서 꼬르륵 소리 나면서 시장기도 났다.
     그는 안간힘을 다해 간신히 그 등불이 켜진 토굴집 앞에 이르렀다.
     “왕 왕 왕!”
     갑자기 송아지 같은 얼룩개 한마리가 덮쳐 나왔다. 허나 그 놈 얼룩개는 검둥이를 보자 꼬리를 흔들면서 서로 붙어 끼깅거렸다.
    집 안에서 늙은이의 기침소리가 나면서 두런두런 말소리가 났다.
    뒤이어 문 여는 소리가 나면서 웬 개털모자가 쑥 나와 두리번거렸다.
    “주인님, 사냥을 왔다가 길을 잃었는데 하루 밤 묵으면 안 되겠습둥?”
    “들어오오.”
    집 안의 늙은이 목소리다.
    “고맙습구마.”
   성칠은 개털 모자를 따라 집 안에 들어갔다.
   집 밖에서는 검둥이와 얼룩이가 서로 좋다고 뛰놀았다.
    어두운 집안을 둘러보니 벽에는 호랑이와 멧돼지 등 산짐승가죽들이 줄줄 걸려 있었다. 곰의 가죽을 시꺼멓게 깐 구들에는 한 백발로인이 이불로 반신을 가리고 누었다가 상반신을 겨우 일으켜 반쯤 앉는 것이었다.
  “할아버지, 절을 받읍소.”
  성칠은 구척장신을 굽히더니 털썩 무릎을 꿇고 절을 올렸다.
   “절까지 무슨?”
   늙은이는 황망히 몸을 앞으로 굽히며 절을 받았다.
    개털모자는 그때까지도 경계에 찬 눈길로 성칠의 아래위를 훑어보고 있었다. 하긴 아닌 밤중에 이 무인산골에 뛰어든 낯선 사냥꾼을 누가 소홀히 믿겠는가?
    “얘, 뭘 하느냐? 저녁상이나 놓을 게지. ”
     호랑이가죽옷을 입은 개털모자는 모자도 벗지 않은 채 “예, 알았어요.”라고 대답했다.
     그 목소리는 은방울을 굴리는 듯 아녀자의 목소리었다.
    성칠은 사냥총을 벗어 벽에 걸어놓고 그물망태기를 벗어 개털모자에게 주었다.
     “사냥이 잘 되지 않아서 꿩 둬 마리밖에 잡지 못했습니다. 이걸 끓입소.”
     늙은이는 사람 좋게 히죽이 웃었다.
    “에이, 늙은 사냥꾼 집으로 왔는데 아무리 살기 막막하기로서니 그래 자네가 먹을 게 없을라고? 그만두게나. 사냥을 하노라면 사냥이 잘 안 되는 날이 있지.”
    개털모자는 솥에서 김이 문문 나는 삶은 감자와 고기를 놋그릇에 담아 구들의 밥상 우에 올려다 놓고 은저 한 쌍과 숟가락을 갖춰 놓았다. 그리고 바깥으로 개 먹이를 들고 나갔다. 이윽고 개들이 먹이를 맛있게 먹으면서 끙끙거리는 소리가 들리었다.
     “어른신도 함께 저녁을 잡숩시다.”
    늙은이는 상반신을 일으켜 앉으면서 “우린 진작 먹었네.”라고 했다.
    성칠은 눈속을 헤매면서 배고팠기에 삶은 감자 한 사발과 멧돼지고기 한 사발을 게 눈 감추듯 다 먹어치웠다.
     그러자 음식에 취해 눈까풀이 천근 무게나 되는듯하였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그가 다리 아파 깨나 보니까. 등잔불 밑에서 아까 그 개털모자가 구들에 범의 가죽을 씌운 이불 밑에 누운 자기 다리를 자그마한 손에 눈을 쥐여 비비고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개털 모자를 벗은 것을 보니 그제야 쌍태 머리 아녀자인 것이 완연히 드러났다. 산 속에서 자란 처녀애지만 꽤나 예뻤다.
     성칠이 일어나려고 하자 늙은이가 옆에서 말리였다.
     “누워있게. 겨울 신을 신지 않아서 발이 얼었구만. 멧돼지야, 눈으로 계속 비벼 냉기를 빼라. 그러잖으면 고생할 거야.”
    늙은이는 기침을 쿨룩쿨룩 하며 뒷말을 이었다.
    “여기 장백산은 가을에 눈이 펑펑 쏟아지네. 이후부터 장백산에 들어와 사냥하겠으면 겨울복색을 든든히 갖춰 가지고 오게. 나도 며칠 전에 산에 들어갔다가 불시에 눈이 터져서 혼났네. 고뿔에 걸린지도 며칠 됐네. 얘 멧돼지가 없으면 이 산골에서 내 홀로 얼어 죽었을 게요.”
    성칠은 처녀애를 멧돼지라고 부르자 자기 귀를 의심했다.
    (참, 마음씨 착하고 고운 처녀애를 멧돼지라니?)
    한참 후 멧돼지라는 처녀애는 대야에 담았던 눈을 밖에 내다 던지고 들어왔다. 토막나무를 안고 들어와 부엌아궁이에 서리었다. 부엌아궁이에서 불길이 세차게 타 번지면서 부엌 쪽을 환히 비췄다. 그 불빛에 멧돼지라는 이름과는 달리 쌍태 머리를 가슴 앞에 늘어뜨린 처녀애의 예쁜 모습이 환히 보였다.
    호랑이가죽옷을 입은 그녀는 숲 속에 핀 진달래 같다고 할까?
     짙은 눈썹아래 이글이글 타 번지는 예리한 눈길과 우뚝 솟은 코, 두툼한 입술. 참말로 눈 속에 피어난 한 떨기 건실한 매화꽃송이와도 같이 예뻤다.
    “그래, 젊은이는 어데서 왔게?”
   늙은이 물음에 성칠은 멧돼지에게서 눈길을 뗐다.
   “예. 명천군 상우남면 쪽에서 왔습구마. 김성칠이라 부릅구마.”
   늙은이는 한숨을 후 내쉬었다.
   “글쎄. 함경북도 사투리 보니 그렇게 짐작했네. 난 최구철이라고 부르는 늙은인데 황해도 개성에서 이 산골에 온 지 한 오륙년 되네.”
    최구철은 담배를 말아 붙이었다.
    “상우남면에 우리 개성 최 씨 네 집안 형님이 있네. 그 형님이 산골에서 서당 훈장질을 한다던데.”
    “예- 바로 우리 산골 앞에 그런 분이 계십구마. 혹시 최구장, 그 분을 그러지 않습니까?”
    최구철은 “맞아. 바로 그분이야.”라고 말하고 뒤 말을 이었다.
    “큰아버지 구장형님을 데리고 우리 개성에서 떠나서 명천에 들어갔지. 구장 형님네 큰아버지는 모두 잘 있는지 모르겠소. 또 조카들은 다 잘 있는지 모르겠구먼.”
    성칠은 손가락을 꼽아가면서 일일이 소개해드렸다.
   “에이, 그 황막한 산골에서 뭐 심으면 잘 살겠습둥? 최구장의 부친은 세상을 뜬지 몇해 되고 자녀들도 모두 잘 있습니다.”
   최구철은 한숨을 후- 내쉬였다.
    “이걸 보오. 세상은 넓으면서도 좁지. 두루두루 알아보면 면목이 있거든. 구장 형님은 자식농사를 잘했네 그려. 허허허.”
    아버지 말에 부엌아궁이 앞에 있는 멧돼지도 의심의 눈길을 완전히 풀었다.
   솥에서 쌕 김이 쌕- 하고 나기 시작하였다. 멧돼지는 솥뚜껑을 열고 나무꼬챙이를 넣어 훌훌 저었다. 그리고 물을 좀 더 붓고 솥뚜껑을 닫은 후 또 나무토막을 부엌아궁이에 더 서리어 넣었다.
    한참 후 멧돼지는 꿩고기를 걸이어 모태에 놓고 툭툭 찍어 돔박돔박 썰더니 세 사발에 담아왔다. 셋은 한집 식구들처럼 둘러 앉아 꿩 국을 후후 불면서 맛있게 먹었다.
   최구철은 성격이 아주 시원시원했다.
   “자, 이젠 밤도 깊었구먼, 곤하겠는데 한잠 푹 자기요.”
   멧돼지는 웃방에 따로 성칠의 이불을 펴드렸다.
   이튿날, 성칠이 눈을 떠보니 창살 밖이 벌써 환하였다.
   정주간에서 흘러드는 구수한 장국냄새가 코를 찔렀다.
   두런두런 부녀간이 낮게 주고받는 말소리가 들리었다.
   “어제 따뜻한 꿩국을 먹어 그런지 몸이 거뿐하구나. 열두 쑥 빠진 거 같다. 손님한테두 멧돼지장국을 푹 끓어대접해라.”
   “예. 알았어요. 그런데 멧돼지 고기 거덜 났어요.”
   “일없다. 내 오늘 사냥하러 가겠다.”
    그 말소리를 엿들은 성칠은 하루라도 더 있기 미안하였다. 그런데 일어나 앉으니 다리가 얼었는지 띠끔 띠끔 아파났다.
    이때 최구철이 미닫이문을 열고 문턱너머 들여다 보는 것이었다.
    “어, 일어났어? 간밤에 드문드문 신음소리를 내더구먼. 자네 다리 언 거 같소. 여기서 며칠 푹 쉬게나.”
    성칠은 일어나 정주간에 절룩거리면서 나갔다. 그는 억지로 다리를 절지 않으려고 했지만 절룩거리는 다리가 발각나고 말았다.
    “에이, 그 다리가 얼어도 웬간히 언 게 아니구먼.”
     성칠은 대수롭잖게 여겼다.
     “좀 지나면 나을 겁니다.”
     성칠은 방바닥에 내려가면서 대야를 쥐고 밖에 나갔다. 그는 조상의 비방을 쓰기로 작심하고 집 동쪽에 간 그는 오줌을 대야에 받았다. 그때 검둥이와 얼룩이가 껑충껑충 뛰어와 끼깅거리면서 주둥이로 성칠의 바지를 들췄다. 성칠은 꿇어 앉아 손으로 검둥이의 뒤덜미를 쓰다듬어 준 후 언 다리에 오줌을 바르고 주물렀다.
    최구철은 밖에 나와 소변을 보려다가 성칠을 보고 이상해 하였다.
    “뭘 하나?”
   “오줌으로 언 다리를 찜질합구마.”
   “오- 오줌 약?”
    최구철은 양미간을 찌푸리더니 대야의 누런 오줌을 들여다보면서 신기해하였다.
    “오줌으로 어떻게 언 다리를 치료하겠는가? 이 사람아, 추운데 집안에 들어가게나.”
     성칠은 최구철을 쳐다보면서 설명했다.
     “때간에 오줌냄새를 피울빠봐 그럽니다. 이 오줌 찜질은 궁정 어의를 지낸 우리 증조부 때부터 물려받은 비방입니다.”
   최구철은 오줌대야를 내려다보며 신기해했다.
    “그래? 그래도 추운 겨울에 바깥에서 이게 뭔가? 들어 갑세.”  들어갔다.
     성칠은 하는 수 없이 오줌대야를 들고 구철을 따라 집안으로 들어갔다.
     부엌에 가서 숯불에 오줌 대야를 놓아 좀 따끈따끈하게 덮인 후 꺼내 한참 오줌 찜질을 하니 다리가 시원한 감을 느꼈다.
     아침에 시원한 멧돼지고기장국까지 먹은 후 성칠은 사냥총을 메고 바깥에 나가는 최구철을 따라 총을 메고 나섰다.
    구철은 말렸다.
     “아니, 자넨 집에서 쉬게나. 언 다리를 가지고 어디로 간다고 그래?”
     “괜찮습구마.”
    성칠은 대수롭지 않은 표정을 지으면서 라고 하면서 기어이 따라 나섰다.
     이윽고 구철과 성칠은 적토마를 타고 산 아래 수림 속으로 뛰어갔다. 그들의 앞에서 검둥이와 얼룩이가 길잡이로 나서 눈이 뒤덮인 수림 속으로 냄새를 맡으면서 뛰어다녔다.
    그들이 말을 타고 한 20리 달렸을 때다. 백두산에 언제 눈이 있었느냐는 듯이 하얀 은세계는 사라지고 누런 옷을 입기 시작한 아름드리나무들이 하늘 높이 소소리 솟아있는 원시림이 나타났다.
     백두산 꼭대기는 눈 덮인 엄동설한이었지만 여기 원시림은 아직 가을 풍경이었다. 아름드리나무들 속에서 말을 타고 들어가 하늘을 쳐다보면 나무 가지와 나무 잎들이 뒤덮여 새파랗게 보일뿐 푸른 하늘을 찾아 볼 길이 없었다. 다만 소소리 치솟은 아름드리나무로 이루어진 밀림 속으로 부채 살처럼 비쳐드는 실실이 은실금실 해 빛을 보아야만 맑은 날과 흐린 날을 가릴 수 있을 뿐이다. 밀림 속에는 천년 묵은 나무 잎들이 썩은 검은 부식토가 깔려 있어서 푹신푹신한 푸른 주단 같았다. 어떤 곳에는 썩박나무가 넘어가 다른 나무에 기대 서 있었다. 거기에는 버섯과 이끼, 가느다랗고 파란 잔풀이 듬성듬성 돋아있었다. 이따금 산새들이 수림 속에서 지저귀면서 노래했다.
       검둥이와 얼룩이가 앞에서 달리다가 멈춰서면서 꼬리를 흔들거렸다. 한참 말을 타고 천천히 걷는데 산새들이 하늘로 풍겨오르면서  지저귐 소리 자지러지다가 멎어버렸다. 앞쪽 원시림 속에서 육중한 꺼먼 무리들이 오른쪽으로부터 왼쪽으로 지나가고 있었다. 달리던 적토마들도 겁이 나서 멈춰 섰다. 구철과 성칠은 서로 눈길을 마주치면서 히쭉 웃었다. 그들은 곰 대여섯 마리가 무리를 지어 거의 지나가기를 기다려 뒤에 떨어진 곰을 목표물로 정하고 앞으로 말고삐를 놓아 달려 나갔다.
     구철은 방아쇠를 당겼다.
     땅!
    야무진 총소리가 고요하던 장백의 림해를 깨웠다.
    총소리와 함께 곰 한마리가 쓰러져 나뒹굴었다. 한 마리는 배때를 맞고 주춤 하다가 장탄하는 그들을 발견하고 수림 속으로 죽기내기로 도망쳤다. 검둥이와 얼룩이가 뛰쳐나가 쓰러졌다가 되 일어나 도망치려는 곰을 물어재꼈다.
     그들이 말을 놓아 덮쳐나갔을 때였다. 수림 속에서 웬 나무숲을 가르는 와삭와삭 소리가 요란스레 났다. 금방 앞에서 지나갔던 곰의 무리가 되 덮쳐 왔다. 적토마들도 놀라 앞발을 쳐들면서 “오 호 홍!”하고 말머리를 돌려 내뛰기 시작하였다.
     “에크!”
      뒤에서는 동료를 잃어 성난 곰들이 무리를 지어 검둥이에게 덮쳐들었다.
     “검둥아! 이쪽으로 오너라!”
    검둥이와 얼룩이는 귀를 뻘쭉 하더니 이쪽으로 도망쳤다.
    구철과 성칠은 토론이나 한 듯이 두개 방향으로 나눠 달리다가 말머리를 홱 돌리었다.
    구철은 제일 먼저 덮쳐오는 곰에게 명중탄을 안겼다.
     땅!
     저쪽에서 성칠도 명중탄을 퍼부었다.
     땅!
     곰 두 마리가 쓰러지자 뒤따르던 곰들이 끼깅거리면서 멈춰 섰다.
    이때 성칠의 잔등 쪽에서 쉭- 하고 소리 났다. 머리를 홱 돌리는 순간 멧돼지 한마리가 거리대날 같은 이발을 빼물고 덮쳐들었다. 성칠은 몸을 홱 탈아 피하면서 총 탁으로 멧돼지 주둥이를 탁 갈겼다. 멧돼지는 이발이 깨져 비명소리를 지르며 땅바닥에 나 떨어졌다.      그러나 성칠도 그 놈의 앞발에 잔등을 긁히어 가죽옷이 죽 미여졌다. 수림 속 사처에서 곰무리들과 멧돼지들이 덮쳐 나와 위기일발에 처하게 되였다.
   “성칠이! 도망칩세.”
    “예!”
    성칠이가 말머리를 돌려 도망치려 할 때다. 뒤에서 곰 한 놈이 뛰어나와 적토마 다리를 꽉 깨물었다. 놀란 말이 앞발을 쳐들었다가 내뛰는 바람에 성칠은 말 잔등에서 뒤로 퉁 떨어지고 말았다.
    곰이 성칠을 물려는 위기일발의 순간이다.
    쒹-
    난데없는 돌멩이가 날아와 그 놈 곰의 주둥이를 까부셨다. 곰이 피를 토하면서 무서운 비명소리를 질렀다. 그 놈 곰은 대가리를 돌려 껑충껑충 수림 속으로 도망쳤다.
    쒹- 쒹-
   연이어 돌멩이가 날아와 뒤따라 성칠을 덮치던 곰의 대갈통을 연신 까부셨다. 곰은 황급히 수림 속으로 도망쳤다.
    성칠이 마른 풀숲에서 일어나면서 여겨보니 뜻밖에도 호랑이가죽옷을 입은 쌍태 머리 멧돼지가 원숭이처럼 백마를 타고 달려오면서 돌멩이를 홱홱 뿌리고 있었다.
    “메돼지 왔냐?”
    “예!”
    멧돼지가 연신 멧돼지와 곰들을 돌로 까부시자 힘을 얻은 성칠과 구철은 사냥총을 쏘아 곰 무리를 쫓아버렸다.
    “오빠! 괜찮아요?”
    멧돼지는 성칠의 째진 잔등을 보고 머리에 맸던 이봉을 풀어 잔등의 상처를 닦아주었다.
    성칠은 대수럽지 않은 표정을 지었다.
    “괜찮소.”
    그는 적토마를 끌고 수림 속에 들어가 웃통을 벗더니 오줌을 누면서 손으로 오줌을 받아 자기 상처 입은 잔등에도 쓱쓱 발랐다.
     구철은 성칠이가 끌고 오는 적토마의 다리를 굽어보며 혀를 끌끌 찼다.
     “쯧쯧, 그 아픈 다릴 해가지고."
     "비방 오줌 약을 썼으니 괜찮습구마."
    "빨리 멧돼지와 함께 가서 발구를 몰고 오게나.”
   성칠은 “제가 여기서 지키겠습니다. 가서 발구를 몰고 옵소.”
   구철은 머리를 끄덕이더니 말을 타고 집 쪽으로 달려갔다.
   “아버지하구 함께 같이 가오.”
   성칠의 말에 멧돼지는 깜장 눈으로 빤히 쳐다보면서 “짐승들이 덮쳐오면 어떻게 해요?라고 했다.
    멧돼지는 성칠의 이글거리는 눈길을 피해 몸을 외로 틀며 쌍태 머리를 만지작거렸다.
    “올해 열 몇 살이오?”
    멧돼지는 고개를 숙이면서 “열일여덟은 돼 보이는구먼.”라고 하는데 눈덮인 숲속에 피여난 매화처럼 이뻤다.
   멧돼지는 나리꽃 한 송이를 뜯어 꽃향기를 맡으면서 “참말로 향기로운데. 난 올해 열아홉이예요.”라고 대답하고 나서 고개를 숙이고 쌔물쌔물 웃었다.
   성칠은 후- 한숨을 쉬었다.
    “한창 꽃피는 나이구먼. 그런데 아주 고운 처녀애에게 멧돼지라는 이름이 어울리지 않는구먼.”
    그는 아쉬운 표정을 지었다.
    “진달래라고 부르면 어떻소?”
    멧돼지는 그 말에 반색했다.
    “진달래? 최진달래? 호호호. 그 이름이 참말로 내 성미에 맞아요. 아버지는 멧돼지처럼 닥치는 대로 마구 뒤져 먹고 강하게 자라라고 멧돼지란 이름을 지었다고 해요.”
     성칠은 감탄을 금치 못하였다. "방 난 내 눈을 의심하였소.어쩌면 처녀애가 말 타고 달리면서 돌을 백발 백중할 수 있단 말이오?”
    멧돼지는 나무숲을 살피면서 종알거렸다.
    “우리 집은 개성에서 한다하는 사냥꾼이었지요. 난 어려서부터 나무에 바라 오르기 좋아했죠. 또 그네를 뛰기 좋아했는데 이 나뭇가지 위에서 저 나뭇가지 위를 뛰어 다니기를 연습하였지요.”
     성칠은 “돌멩이는 언제부터 뿌렸기에 그렇게 백발백중을 할수 있단 말이요?”라고 하였다.
     그러자 멧돼지는 말고삐로 백마의 잔등을 살짝살짝 건드리면서 이렇게 대답했다.
      “어려서 나도 아버지나 오빠처럼 사냥꾼이 되려고 사격을 배우려고 하였지요. 그런데 아버지와 어머니는 계집애가 무슨 사냥을 한다고 그러는가 총을 주지 않았어요. 그래서 산골 강바닥에 나가 돌을 뿌리는 연습을 했지요.”
     그녀는 옆구리의 돌 주머니에서 돌을 꺼내 보라는 듯이 날아가는 새를 겨누고 씽 날렸다.
날아가던 새가 돌에 맞아 푹신푹신한 주단 같은 땅바닥에 뚝 떨어졌다. 그러자 얼룩이가 달려가 입에 물고 꼬리를 휘휘 저었다.
     “얼룩아, 검둥이와 함께 나눠 먹어라.”
     “오빠는 올해 춘추가 어떻게 돼요?”
    성칠은 나이를 속이지 않았다.
    “올해 이젠 서른하고도 두 살이나 되오.”
     “어머! 그럼 우리 큰 오빠와 동갑이네요.”
    “오빠 있소? 오빠를 두고 처녀애가 무슨 사냥이오?”
   순간 멧돼지의 철색 얼굴에는 어두운 그림자가 흘러갔다.
    그녀는 수림 속을 쓸어보며 머리를 숙였다.
    “오빠는 일본 놈들에게 어디로 잡혀갔는지 알 길이 없어요.”
     멧돼지는 팔소매로 눈물을 닦으면서 돌아섰다.
    “몇 해 전에 일본파출소의 마쯔무라 소장 놈이 개성에서 몇십리 떨어진 우리 산골에까지 들어 사냥을 하지 못한다고 윽박지르지 않겠어요. 우리 여섯 식구는 손바닥만 한 땅도 없어 농사를 짓지 못하고 사냥을 해서 사는데 이건 입을 닫아 매고 죽으라는 게 아니고 뭐예요? 우리 집에서 계속 사냥을 하자 하루는 마쯔무라 소장놈이 개다리들을 앞세워가지고 와서 사냥총을 빼앗아가겠다고 야단치지 않겠어요. 성이 꼭뒤까지 치민 경호 큰오빠는 사냥총 탁으로 일본 놈을 한대 갈겼죠. 그러자 마쯔무라 소장놈은 ‘이 놈을 강제징용에 끌어가야겠다.’고 을러메더니 사냥총을 빼앗고 경호 오빠를 마구 끌고 가지 않겠어요. 경호오빠는 강박군대에 끌려가 간도에 들어갔다고 해요. 경호오빠가 끌려간 후 며칠이 지나서 마쯔야마 놈이 또 경환 둘째오빠마저 끌고 가려고 했어요. 그러자 아버지는 분이 치밀어 김치 움에 치워놓았던 사냥총으로 그 놈을 쏴 눕혔지요. 일본 놈들은 뜻밖의 습격을 받자 다리를 맞고 쓰러진 마쯔무라 놈을 업고 꼬리 빳빳해 달아났지요. 그런데 누가 알았겠어요. 우리가 도망치려고 보 짐을 싸가지고 집에서 나올 때 도망쳤나 했던 일본 놈들이 우르르 들이닥쳐 앞길을 가로 막았어요. 일본 놈들의 총질에 경환 오빠와 어머니가 가슴을 맞아 피를 흘리면서 당장에서 쓰러져 숨을 거두었어요. 악에 받친 아버지는 사냥총으로 맞불질해 일본 놈 두 놈을 쓰러뜨리었어요. 혼 줄이 난 놈들은 혼비백산해 사처로 달아났어요. 그러자 나와 아버지는 마구 간에서 말고삐를 풀어 말을 타고 도망쳐 인적이 없는 여기 장백산 원시림 속까지 들어 왔던 거예요.”
     성칠은 멧돼지의 하소연을 듣고 땅이 꺼지게 한숨을 쉬었다.
     “오-  참 안 됐구만. 명천 우시장에도 쪽발이들이 들어왔다오. 허나 아직 우리 마을에까지는 들어오지 않았소. 큰 경을 칠 놈들이오.”
     그제야 성칠은 자기가 집에 들어갔을 때 멧돼지가 경계의 눈길을 보낸 까닭을 알 것 같았다.
     이때 검둥이와 얼룩이가 “왕 왕!”, “왕 왕!”하고 요란하게 짖어댔다.
    동시에 사처에서 나무숲을 와삭와삭 헤치는 소리가 났다.
     성칠이와 메돼지가 여겨보니 숲속에서 굶주린 호랑이무리와 이리무리가 곰의 고기 냄새를 맡았는지 아니면 사람과 말을 보고 잡아 먹자고 왔는지 몰려오고있었다.
     성칠과 멧돼지는 토론이나 한 듯이 말 잔등에 뛰어올랐다. 성칠이가 먼저 호랑이무리에 대고 총을 쏘았다. 숱한 철 알이 우박 치듯 호랑이무리에 날아갔다.
     호랑이들이 겁을 집어먹고 달아났다. 그러나 교활한 이리무리들은 적토마와 백마를 전후좌우로 슬슬 돌면서 포위하더니 불시에 우르르 덮쳐들었다. 백마가 다리를 깨물려 “오 호 홍!”하고 비명을 지르면서 앞발을 쳐들었다가 이리를 내리 짓밟고 뒤발로 차기도 하였다. 이때 멧돼지가 백마잔등에서 나무 가지에 뛰어 올라가 허리에 찬 가죽주머니에서 닭 알만 한 돌을 꺼내 연신 승냥이의 대가리를 겨누고 날렸다.
   앞장서 덮쳐들던 승냥이 몇 마리가 비명을 지르면서 쓰러졌다. 검둥이와 얼룩이도 승냥이들에게 덮쳐들어 깨물었다.
   땅!
   이때 또 원시림에서 야무진 총소리가 났다.
    피뜩 보니 수림 속에서 구철이 발구를 몰고 달려와 합세해 총탄을 퍼 부었다.
    그들 셋이 총질과 돌팔매질을 하자 이리무리도 몇 마리 주검을 남기고 수림 속으로 꼬리 빳빳해 도망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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