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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하소설 울고 웃는 고향 (5) 김장혁
2023년 12월 09일 11시 05분  조회:917  추천:0  작성자: 김장혁
               김장혁 작 대하소설 울고 웃는 고향
                             
                              제1권     

                                   5.양반집 건달
 
 
      추석 이튿날, 하늘은 가없이 높고 맑고 파랗다. 꽃구름송이들이 듬성듬성 떠 춤추며 흘러가고 있어 더욱 낭만적이고 기분이 좋았다. 다람쥐들도 콧노래를 흥얼흥얼 부르며 볼이 뽈록하게 도토리를 입에 물어 굴에 들여가느라고 분주하다. 토끼도 겨울나이 준비에 승냥이 방어할 굴을 여러개 파느라고 뺑뺑 맴돈다.
     병완과 성칠 부자는 곰의 가죽과 고기를 수레에 싣고 명천 우시장 쪽으로 떠났다. 겨울에 먹을 쌀을 얼마간이라도 장만해야 했다.
     그들이 마을에서 벗어나 산골짜기 어구에 거의 들어설 때였다. 뒤에서 급촉한 말발굽소리가 들려왔다.
     병완이 흘끔 뒤돌아다보았다.
     한길수가 자주 빛 말을 타고 나는 듯이 달려오고 있었다.
     한길수는 말을 타고 수레와 나란히 가며 지껄여댔다.
     “병완이, 당신 배은망덕해도 한두 가지 아니구먼.”
   그의 길쭉한 낯은 바위 돌처럼 굳어져 있었다. 우멍눈은 보기에도 무섭게 음험한 독살이 차넘쳤다.
    “건 무슨 말이요? 어제 애들을 보내 데리러 가니 당신이 오지 않아가지구두. 그래 곰의 고기를 기준한테 보내지 않았소?”
    “쳇, 옛말이면 듣기나 좋지.그 걸로 어느 코에 발라?”
    한길수는 말을 탄 채 말상을 흔들면서 침까지 퉤 내뱉었다.
    병완은 원래 인품이 후했다. 그는 수레에서 엉거주춤 일어나더니 허리춤에서 시퍼런 칼을 빼내 곰의 고기를 열 근은 실히 되게 썩썩 베 한길수에게 넘겨주었다.
     그제야 한길수는 고기덩이를 받아쥐고 이리저리보더니 낯의 근육이 느슨히 풀렸다. 그는 말 잔등에 채찍을 날리면서 달려 가 버렸다.
      하늘과 금을 그어놓은 듯 한 산등성이 령길에서 병완부자가 탄 수레와 한길수가 타고 되돌아가는 말은 점점 멀어져갔다.
가을바람이 우수수 불어친다. 벌거숭이 누른 땅 위에 맥없이 서있는 옥수수 마른 이파리들이 너풀거린다. 붉게 타는 듯 한 단풍잎이 어느새 철이 지난 듯이 지기 시작하였다. 저 멀리 높은 하늘에서 기러기 떼들이 줄지어 끼룩끼룩 남으로 날아갔다. 독수리가 검은 날개를 쭉 펴고 나래 치면서 먹이를 찾는 상 싶었다. 기러기 떼들이 산산이 피해 날아 나 버린다.
    병완 네가 몇 해 전 봄에 짐짝을 메고 처음 영월동에 왔을 때 이 산골에는 한 씨 네 밖에 없었다. 그때 한씨 네는 억대우 같은 병완을 보고 밭이나 소작을 주어보려고 자기 집에 머물게 한 적이 있었다.
    목수재간이 있는 병완은 손바닥 같은 몇 뙈기 묵밭보다도 산골짜기에 들어선 아름드리나무들이 제일간 마음에 쑥 들어왔다.
    (저 아름드리나무들을 찍어서 함지를 파 팔면 쌀 근심은 할 게 없겠다.)
    동상이몽이라고 한길수는 소작농으로 병완을 쓰려고 궁리하였고 병완은 목수 질하여 살 궁리를 하였다.
    이튿날부터 병완은 산에 올라가 나무를 찍어 집을 지으려고 하였다. 그러나 한길수는 기어이 자기 집부터 먼저 지으라고 야단쳤다. 그리하여 병완은 넓은 골짜기 어구 새 집터에 한길수네 집을 지어주고 산골짜기 막치기 쪽의 더 좁은 집터에 자기네 집을 지었던 것이다.
     그 후 선후하여 이 산골짜기에 덕성과 덕팔, 엄창렬, 성팔 네가 알몸신세로 처자를 데리고 이사해왔다.
    한길수는 제손으로 농사를 하기 싫은데다가 병완이네 부자는 목수재간과 사냥재간으로 살아가기에 그들의 손을 믿고 농사를 지을 수 없었다. 그리하여 소작농을 얻자고 그들을 오는 족족 받아주었다. 병완은 이 적적한 산골짜기에 친구가 생겼다고 그들을 먼저 자기 집에 들게 하였다.  봄이 오자 그들에게 새집을 지어주었고 함께 묵밭을 떠서 옥수수라도 심어 먹으면서 살아 왔던 것이다.
원래 이 마을은 한길수 네가 달이 솟아 오르는 산골이라는 뜻으로  승월동이라고 이름을 지었댔다. 그런데 병완과 엄창렬 네가 다 본이 영월이여서 아예 영월동이라고 불렀다. 그 바람에 덕성과 덕팔, 성팔이 네도 영월동이라고 따라 불러 영월동이 되고 말았던 것이다.
     한길수는 자기 딴에는 영월동에서 땅 몇 십 헥타르를 가진 부자노라고 어깨 으쓱하였다. 형님 한길주와 짜고 들어서 명천군 아전 질을 하던 자기 조부와 면장노릇을 하였던 아버지 산소가 이 산골에 묻혔다는 구실로 명천군 군수에게 금과 은냥을 먹이고 이 산골을 독차지하였던 것이다. 그런데 저 병완이 온 후 덕성과 덕팔, 성팔, 엄창렬이 네 마을의 인심을 다 가져가서 점차 자기가 뭐라고 해도 말이 통 서지를 않았다. 그는 내내 어떻게 무슨 구실로 병완이 네 일가를 이 산골마을에서 쫓아내고 다시 이 마을을 쥐락펴락 하고 싶었다.
     한길수는 고래 등 같은 기와를 얹은 팔간태청의 넓은 마루에 앉아 곰방대로 번대머리를 썩썩 긁으면서 높다란 토성 너머 먼 산을 바라보며 음흉한 속궁리를 하고 있었다.
     (병완아,어디 두고 보자. )
     그는 무슨 생각이 떠올랐던지 곰방대를 쥐고 엉거주춤 일어나더니 마름을 불렀다.
     “여보게, 응삼이!”
     “예-”
    곁방 문이 열리면서 실돌피처럼 생긴 응삼이가 괴춤을 쥔 채 맨발 바람으로 뛰어 나왔다. 그는 머리가 삼검불 같았지만 주인에게 해시시 웃어 보이면서 허리를 연신 꼽싹거리는 것만은 잊지 않고 있었다.
    “주인어르신님, 무슨 분부가 계십둥?”
    “에이, 저 함경도 말투만 들어도 정이 뚝 떨어져. 쯧쯧.”
    길수는 버릇처럼 곰방대로 번들 이마를 쓱쓱 긁더니 뒷말을 이었다.
    “거 병완이 10년전에 우리 집에 와서 살았잖아. 그 장부를 가져오게나.”
     “예, 그런데 그걸 불시에 찾아 뭘 하겠습니다”
     응삼은 입버릇처럼 또 함경말투를 쓰고 혀를 홀랑 내밀며 말투를 바꿨다.
    “장부를 가져다 뭘 하려구?”
    “앗따, 가져오라면 가져올 게지. 무슨 잔말이 그리도 많아?”
    “예, 알았습구마.”
    응삼은 뒤짐을 짚고 몸채에 홱 들어가는 번들 이마를 보고 투덜거렸다.
    “난 또 무슨 큰일이나 났다고. 괜히 식전 아침부터 설치면서 남의 재미를 깨버릴 건 뭔가? 흥.”
     누구의 명이라고 어기겠는가. 응삼은 바지 괴춤을 춰 입으면서 신을 작작 끌고 곁채로 들어갔다.
    곁채 구들에는 아직도 이불이 어지러이 나뒹굴었다. 그 이불 한 쪽이 들렸는데 음삼의 여편네의 허연 허벅다리와 흘러내린 박속 같은 젖무덤이 드러나 있었다. 문소리가 덜컥 하자 응삼의 여편네 춘실은 이불귀를 들어 젖가슴을 가리었다.
    “무슨 일이기이기에 식전부터 지랄인가요?”
    “에이, 주인어른이 아마 또 병완과 맞붙을 예산인 모양이요. 장부를 가져오라고 하는걸 보니. 그 둥글 소 같은 녀석을 어쩌자고 지껄이는지 모르겠소. 어디 또 한번 혼나고 싶은 모양이지.”
    응삼은 궤짝에서 장부를 꺼내더니 들고 나가려다가 앵돌아져 눕는 여편네에게 눈길이 돌아갔다. 그는 이불을 들어 덮어주더니 춘실의 볼을 살짝 매만지면서 구슬렸다.
     “요, 귀염둥이야. 얼른 갔다 올게. 이젠 해도 한발 떴으니 일어나 밥이나 해라.”
“알았어요.”
    춘실은 이불을 잡아당겨 턱에까지 더 꼭 쓰면서 눈을 곱게 흘겼다. 아마 춘실은 작달막하고 실 돌피 같은 나그네라도 살뜰한 멋에 붙어사는 것 같았다.
    응삼은 장부책을 쑥 뽑아 들고 몸채에 들어갔다.
    한길수는 염소수염을 쓸쓸 어루만지면서 밥상에 마주 앉아있었다.
    “자, 여기 앉게. 거 장부책에 있겠지? 병완이 언제부터 언제까지 우리 집에 와 있었다는 게 말이야.”
    “예. 여기 있습구마.”
    주인의 눈치를 살피던 응삼이는 주인의 가까이에 설설 기듯이 다가가 앉더니 근시안경을 걸고 장부책을 내리 훑었다. 담배 대여섯 모금을 빠는 새 응삼은 안경알 안의 빈대떡 같은 눈알을 데굴거리더니 장부책을 내밀었다.
   “여기 있습니다. 1903년입니다. 그해 노일전쟁이 있은 해가 아니고 무엇입니까? 1903년 음력 2월 9일부터 그해 가을 9월 16일까지 있었습니다. 한 반년 푼하구먼요.”
   “고작인가? 거 2월을 12월로 고치게나.”
   응삼은 안경알을 춰올리면서 번대머리를 건너다보며 난감해했다.
   “아니, 그럼 년도가 틀립니다.”
    한길수는 곰방대로 밥상을 탕 쳤다.
    “에끼, 이 멍청아, 년도를 1902년으로 하면 될게 아닌가?”
    “그런데 더 써넣을 자리도 없는데 어떻게 글씨를 고치겠습둥?”
    “가져 오게.”
    한길수는 장부책을 당겨가더니 퉁방울눈을 뚝 부릅뜨고 들여다보았다.
    “이걸 보게나. 여기 건너금 두개 밑에 한 개를 더 그으면 한자로 3자가 되고잖는가? 여기 2자 앞에 열십자를 하나 더 써넣으면 될게 아닌가.”
     응삼은 안경테를 붙잡고 빈대떡 눈을 크게 뜨고 들여다보다가 머리를 끄덕였다.
     “아주 절묘합구마. 되겠습니다. 주인 어른신은 원래 이런걸 아주 묘하게 고치는데 이골이 텄습니다.”
     “에끼. 이 자식. 한대 딱 맞고 싶은가? 쓸데없는 소리 말고 얼른 고쳐놓게.”
    한길수가가 곰방대를 쳐들면서 으름장을 놓았다.
     "아이고!”
    응삼은 머리를 싸쥐고 비명을 지르면서 장부책을 안고 무릎걸음으로 비실비실 뒤로 물러서다가 사랑채로 나갔다.
    한길수는 염소수염을 쓰다듬으면서 바삐 끌신을 끌고 물러가는 응삼의 가는 뒤 잔등을 바라보며 뒤 근심도 없지 않아 있었다.
    “저 병완이를 건드렸다가 무슨 일이 생기지나 않을까? 어쩌다가 내 할아버지가 여기 함경도에 정배를 와서 이런 구렁텅이에 빠졌나? 저런 물귀신 같은 병완과 자웅을 또 결해야 하다니. 참 억이 막힌 일이다.”
   
     한길수는 쩍 하면 할아버지를 원망하군 하였다. 그의 할아버지는 원래 황해도에서 아전노릇을 하였다. 그런데 무너져가는 조정과 매관매직의 그릇된 행위를 보고 바른 말을 하였다가 그만 도절도사에게 잡혀 곤장을 맞고 웅진에 정배를 왔던 것이다. 그런데 사람이 대바른데다가 지식이 있어서 몇 해 되지 않아 함경도 명천군청에 들어가 아전노릇을 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길수의 부자간은 할아버지와 판판 달랐다. 길수의 아버지는 서당공부는 뒷전이고 전문 도박놀이터에 가지 않으면 기생놀음을 하였던 것이다. 가산을 탕진하게 되자 그의 아버지는 두 아들을 남기고 독주를 마시고 이 세상을 떠나고 말았던 것이다. 그러자 길수의 어머니도 그날로 남편이 마시다가 만 독주를 마저 들이켜고 세상을 떴던 것이다.
      하루 사이에 부모를 잃은 한길수는 아주 절망에 빠졌다. 원래 한길수는 아버지만은 달리 할아버지의 가르침 밑에 서당공부도 잘하고 참하였다. 그러나 부모가 돌아가자 굴레 벗은 말처럼 마구 구을러 다니며 못된짓이란 짓은 다 했다.
      그는 점차 서당에는 다니지 않고 못된 짓을 하기 시작하였다. 나무장사군들의 나무단에 불을 지르지 않으면 나무꼬챙이로 어린애들의 언 귀를 짱짱 쳤다. 뒷간 옹이구멍으로 여인들의 허연 엉덩이를 훔쳐보지 않으면 똥구덩이에 돌멩이를 들이뜨려 똥 벼락을 맞게 하기도 하였다. 막내로 자란 그는 점차 돼지 심술을 꽉 묶어놓고 만든 고약한 심술쟁이로 변해갔다. 똥 누는 애를 물 앉혀 놓기도 하고 방아 호박에 똥오줌을 싸 넣기도 하였으며 되는 호박에 말뚝을 박지 않으면 칼로 호박껍질을 동그랗게 도려내고 호박 속을 파낸 후 똥을 싸 넣고 호박껍질 덮개를 살짝 덮어놓기도 하였다. 어디 그뿐인가.
      한길수는 술집을 드나들면서 술이나 처마시고 쩍 하면 걸고 들어 싸우기가 일쑤였다. 우시장거리에서 한길수 무리가 왔다하면 모두 썩 피해갔다. 심지어 애들마저 한길수 말만 하면 울음을 딱 끄칠 지경이였다.
     어디 그뿐인가?
     어려서부터 녀자들 변소간을 옹지구멍으로 엿보더니 커가면서 개버릇이 커갔다. 길거리를 다니다가도 반반한 여자만 보면 오금을 못쓰고 뒤꽁무니를 따라다니며 지껄여댔다. 이쁜 녀자를 그날 안으로 재껴치우지 않고선 시름놓지 못했다.  반반한 딸을 가진 집에선 한길수 온다면 숨이 한줌만 해서 딸을 숨겨 놓느라고 야단쳤다.
     한길수는 또 명천 우시장 거리 기생집에 오입하러 문턱이 다슬게 다니었다. 요즘엔 일본 기생년들 궁둥이 맛을 들여 집에 붙어있지 않았다. 아무리 기생출신이라도 월선은 영감이 기생행골에 이를 쁙쁙 갈았다.
      한길수는 굴레를 벗은 말이요, 우리에서 뛰쳐나간 호랑이새끼 같았다. 그는 말이 양반집 아들이지 실지는 비단에 감싼 심술쟁이요, 싸움꾼이요, 오입쟁이었다.
      한번은 길수가 씨름판에 구경을 갔다. 웬 키가 훤칠한 사내가 숱한 상대를 하나하나 이기고 황소를 타고 씨름판을 한 바퀴 도는 것을 보고 심술이 났다.
     그는 팔소매를 썩썩 걷으면서 구경꾼들 속을 비집고 나가면서 자기 앞을 지나가는 황소를 탄 사내대장부를 보고 걸고들었다.
     “어이, 당신은 일등이라지만 이 한길수와 씨름을 해보지도 않고 어찌 일등이라고 할 수 있겠소. 그 황소 잔등에서 내려오게나. 한판 겨뤄보겠나.”
     그 거동은 거만하기로 짝이 없었다. 일등을 한 사내대장부는 흥이 다 깨지고 기분이 잡쳐서 소잔등에서 훌쩍 뛰어내렸다. 그는 소고삐를 자기 친구에게 넘겨주고 나섰다.
      “장사는 누구신지 통성명이나 하기요.”
      한길수는 어깨를 으쓱하면서 빈정거렸다.
      “아니, 그래 당신은 이 명천에서 이름이 짜한 싸움꾼 한길수도 모르고 황소를 탔소?”
    그 사내대장부는 넉가래 같은 손을 척 내밀었다.
    “오, 그렇구먼. 나 상우남면 운주동의 김병완이오.”
    “그래? 당신 키는 구척이요. 힘 깨나 쓰는 모양인데. 나와 한판 붙어 보겠는가?”
     한길수가 걸고 들었지만 병완은 점잖게 받아 넘겼다.
     “이보시오. 씨름판은 끝났으니 명년에 다시 씨름판에 나와 겨뤄 보는 게 어떻소?”
      그러자 한길수는 우쭐해났다.
     “아니, 일등을한 양반이 무슨 겁이 그렇게 많아? 어째 황소를 이 어른께 빼앗길 까봐 그래? 잔말 말고 한판 붙어보자.”
     병완은 황소 잔등에서 훌쩍 뛰여내렸다.
     그는 팔소매를 걷더니 씨름판 복판으로 들어갔다.
     한길수는 병완의 뒤를 따라 들어가면서 모래바닥에서 돌멩이를 슬쩍 오른 손에 감춰 쥐었다.
    심판이 그들 둘의 잔등을 치면서 “시작!” 하고 소리치기 바쁘게 길수는 오른손에 쥐였던 돌멩이로 병완의 무릎을 딱 치면서 뒤로 꺼꾸러뜨렸다.
    구척장신이요, 힘장사인 병완은 무릎이 너무 아파서 힘도 못써보고 상을 찡그리면서 맥없이 뒤로 넘어졌다.
     한길수는 손에 쥐였던 돌을 모래바닥에 떨군 후 발로 모래를 차서 푹 덮어 버리었다. 뒤이어 그는 어깨가 으쓱해서 씨름판을 한 바퀴 돌면서 빈정거렸다.
    “보라고, 황소를 탄 일등이 내아래 무릎을 꿇었어. 흥! 일등도 그저 그래! 퉤퉤!”
    이때 병완이 아픈 무릎에 묻은 모래를 툭툭 털더니 일어났다.
    심판이 다가와 한길수에게 말했다.
   “삼판양승이니 아직 두 판을 더 해야 결판나오.”
    한길수는 손에 쥔 돌이 없어 당황해났지만 성난 사자처럼 황소숨을 거칠게 몰아 쉬면서 으르릉 거렸다.
    “이 자식, 어디 죽고 싶으면 덤벼 봐라!”
    그러나 병완은 쓰거운 듯이 피씩 웃으면서 길수에게 다가섰다. 그러자 한길수는 자신이 없으면서도 어찔 수 없어 마주 붙었다.
    “시작!”
     심판이  두 손으로 씨름군들의 잔등을 탁 치며 고함쳤다.
    한길수는 왝왝 고함치면서 억대우 같은 병완을 이리저리 떠밀기도 하고 옆으로 밀어 붙이었다.
    한길수도 한다하는 싸움꾼이였기에 병완도 소홀히 할 수 없었다. 그는 처음에는 한길수가 떠밀고 밀어 붙혀도 당하는 척 하였다. 그러나 한길수가가 숨을 돌리느라고 동작을 멈춘 순간 다리를 끌어당기다가 왼손으로 오른팔을 어깨 위에 둘러메고 오른손으로 왼다리를 당기다가 사타구니 밑에 오른팔을 쑥 넣고 건뜻 쳐들었다. 한길수는 숱한 구경꾼들의 머리 위로 두 다리를 뻐둑거리면서 두 손을 허우적거렸다.
    “물러가라!”
     병완은 길수를 머리 위로 강아지 휘두르듯 빙글빙글 휘두르다가 구경꾼들의 머리 위로 테 밖에 내동댕이쳤다. 어지간한 사람이면 면상이 모래에 박혀 잘못됐을 것이다. 그러나  날랜 길수는 허공 날아 떨어지는 순간,  원숭이처럼 살짝 모래불에 곤두박질하면서 다시 벌떡 일어났다.
      "개자식, 어디 죽어봐라! 퉤!"
      길수는 종아리 각반에서 시퍼런 비수를 뽑아들고 음흉한 우멍눈으로 병완을 쏘아보았다.
      그래도 병완은 겁기가 하나도 없었다.
      구경꾼들은 비명소리를 지르면서 와야 하고 흩어졌다. 길수가 비수를 휘두르면서 달려들어 배를 겨누고 푹 찌르자 병완은 옆으로 몸을 탈면서 오른발을 날려 비수를 차 떨어뜨렸다. 길수가 비수를 쥐는 순간 병완은 왼발을 날려 아래 배를 콱 걷어찼다.
      “억!”
      길수는  아래 배를 끌어안고 쓰러졌다.
     구경꾼들이 박수갈채를 보냈다.
     길수는 다시 덮쳐들고 싶었으나 숨이 꺽 막혀 맥을 쓸 수 없었다. 한길수는 아래배를 붙안고 창피한대로 삼십육계 줄행랑을 놓았다.
      그 후 앙갚음을 하려고 길수는 싸움꾼 친구들을 불러가지고 병완이네 집까지 쫓아가 걸고 들었다.
    "야, 이놈아, 오늘 씨름 결판내자." 
     병완은 길수가 덤벼드는 족족 멨다가 처박어주었다.
     그는 길수를 꽉 안아 바자 밖으로 훌 내던졌다. 길수는 기신기신 기여 일어나 엉덩이의 먼지를 툭툭 털며 또 덤벼들었다. 이번에는 병완은 배잡이로 멋지게 길수를 짱 넘어뜨리었다.  
     "3판 양승이니 내 이겼소. 결판 났으니 어서 돌아가오."
     길수는 손으로 턱에 묻은 진흙을 쓱 문대며 랭소했다.
     "흥! 모레 또 해보자!"
      따라왔던 싸움군 친구들도 길수가 병완의 적수가 아니라는 것을 보아냈다.
      "형님, 그만하오. 상대가 아닌 것 같소."
    "개소릴 작작 쳐! 내 그놈 허리를 뚝 분질러놓지 않는가 봐라! 퉤!"
      길수는 날마다 지면서도 사흘이 멀다하게 찾아와 계속 병완과 걸고 들었다.
     하루도 아니고 연 보름동안 길수는 병완과 씨름을 걸었지만 날마다 엉덩방아를 찧었다. 나중에 그는 시퍼런 작두를 들고 와서 죽기내기로 싸움을 걸었다.
     미운 놈을 떡을 더 준다고 병완은 길수와 같은 자는 꺾어 놓는 것이 상수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 다음번에 한길수가 찾아왔을 때었다.
      병완은 미리 준비해 놓은 집안의 술상에 길수의 손을 잡고 들어갔다.
      “그럼 그렇겠지. 이 길수가가 누구라고 언감 이긴단 말인가! 허허, 으흠.”
      길수는 병완이 주는“항복술”을 받아 마시고 개 잡은 포수처럼 어깨 으쓱해서 싸움군 친구들을 데리고 돌아갔다.
      그 후에는 우시장에서 싸움을 걸고들 때마다 먼저 상대방에게 이렇게 묻군 하였다.
     “너 운주동 일등씨름군 병완을 아느냐?”
      상대방이 눈이 휘 동그래졌다.
    “병완 힘장사 어떻게 아오?”
      길수는 어깨를 으쓱하며 우쭐렁거리며 흰소리를 쳐댔다.
      “병완도 다 내 앞에 무릎을 꿇었다. 그 놈이 술상 차려놓구 무플을 꿇고 두손이 발이 되게 싹싹 비니 가만놔뒀지.”
      병완의 결의형제라는 말만 들어도 대부분 싸움꾼들은 무릎을 푹푹 꿇었다.
     "형님, 눈이 있어도 태산을 알아보지 못했소. 용서하오.”
    "그럼 술 한잔 내야지. 으흐흐."
     한길수는 이렇게 낯선 싸움군들한테서 항복술 한잔 얻어마시고 개 잡은 포수처럼 어깨를 살구고 우쭐렁거리며 길거리를 싸다녔다.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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