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조선족 시 문학 시어 어휘특징에 대한 고찰
석화
1. 들어가는 말
시의 언어구조, 곧 통어구조와 의미구조의 분석은 비언어학적 방법으로 분석되고 논의되는 것보다는 언어학적방법으로 분석되고 논의될 때에 시 작품이 나타내는 의미와 그 시 작품에 함축되어 있는 시인의 정신과 태도가 더욱 명시적으로 드러날 수 있을 것이다.
시는 언어로 이루어져 있다. 그리고 시를 포함한 어떠한 현상에 대해서도 과학적인 접근방법은 가능하다. 시가언어로 표현되어 있고 언어를 과학적으로 연구하는 것이 언어학이므로 언어학은 시를 과학적으로 연구하는 학문이라고도 할 수 있는 것이다.
시를 언어학적 방법으로 분석하는 데에 있어서는 언어의 특질, 언어의 구성요소, 언어의 구조 그리고 언어의 여러 가지 문법적 규칙 등에 대한 지식이 필요하다. 일반적으로 시의 연구에 응용될 수 있는 언어학적 접근방법에는1) 음운론적 방법, 2) 형식론적 방법, 3) 통어론적 방법, 4) 어휘론적 방법, 5) 의미론적 방법 등이 있다.
시에 대한 상기 언어학적 분석 방법들은 시의 종류나 내용에 따라서 각기 개별적으로 적용될 수도 있고 또 두 가지 이상의 접근방법이 통합적으로 적용될 수도 있다. 예컨대 운율이 중시된 시들의 경우에는 음운론적 분석방법이나 형식론적 분석방법이 적용됨으로써 시의 의미가 보다 더 잘 파악될 수 있으며 사상이 중시된 시들에 있어서는 통어론적 분석방법, 의미론적 분석방법 등이 사용됨으로써 그 시의 의미가 보다 더 잘 이해될 수 있는 것이다.그런데 시의 가장 기본적인 언어학적 분석 대상은 어휘이다. 그러므로 시에 대한 분석에서 먼저 그 어휘들을 고찰하고 분석하여 그 특징을 밝히는 것이 시 작품을 분석하는 여러 가지 작업 가운데서의 첫 번째 작업이라고 할 수있다.
본고는 중국조선족 시 문학에 나타나고 있는 시어 어휘를 분석, 고찰하여 그 특징을 찾아보려 한다. 이 연구를위하여 《20세기 중국조선족문학선집․시선집》(권철 등 편, 연변인민출판사 1999년 9월 출간)을 텍스트로 선정하였다. 한 세기 남짓 진행되어온 중국조선족문학의 총결산이라고 볼 수 있는 이 문학선집의 제2권으로 된 《시선집》에는 20세기 초반부터 중국에서 작품 활동을 하여온 시인 97명의 시 작품 310수가 수록되어 있다. 우리문학 즉 한민족문학의 한 구성부분으로 되고 있는 중국조선족문학은 《8․15》광복과 중화인민공화국 창건 이후비로소 자체적인 특수성을 가지고 발전하게 되었다. 하여 본고는 이 《시선집》을 주요 텍스트로 선정하면서 이시선집에 실린 시 작품 중에서 1945년 광복 이후에 창작된 시 작품의 어휘들을 주요 연구대상으로 한다.
2. 시어 어휘에 대한 고찰
문학은 언어로 이루어지며 어휘는 가장 기본적인 표현수단이다. 문학의 여러 가지 속성과 특징들은 모두 문학언어―즉 시와 소설 등에 씌어지는 어휘로 구축된다.
시작품에 대한 분석에서도 먼저 시어 어휘에 대한 객관적인 분석에서부터 출발하여 그 언어구조를 연구하고 그다음 시인의 정신이나 의도에 접근하여 시 작품의 의미를 밝혀내는 데 이르러야 한다.
아래에 중국조선족 시 문학의 각 시기 대표적인 시인들의 시 작품을 분석, 고찰해 본다.
2.1 리욱 시인의 경우
중국조선족문학의 개척자이며 원로시인인 리욱 시인은 1907년 러시아 고려촌에서 출생하여 1910년 화룡현 로과향에 이주하였다. 시인은 1924년 시 《생명의 예물》을 《간도일보》에 발표하면서 문단에 나와 선후로 《인생보》, 《조선일보》 기자로 일하였다. 1941년 「간도예문협회」, 「동라문인동맹」 성원으로 있었으며 1948년 동북군정대학을 나와 1951년부터 연변대학교에서 후학을 가르치며 시를 썼다. 시집 《북두성》, 《북륜의 서정》,《고향사람들》, 《장백산아》, 《연변의 노래》, 《리욱 시선집》, 장편서사시 《풍운기》 등 많은 시집과 많은학술저술들을 펴냈다.
1984년 타계하였는데 그 후 후학들은 조선족 시인으로 중국 땅에 세운 첫 시비로 그가 처음 중국에 들어온 지역인 두만강기슭 호곡령 위에 그의 시비를 세웠다.
본 《시선집》에는 《생명의 예물》 등 그의 시 7편이 실려 있다. 이 시편들 속에는 시인이 어린시절 한학을 공부하였던 흔적으로 많은 한자어들이 시어 어휘로 씌어져 있다. 다른 시인의 작품에서는 많이 보이지 않는 한자 어휘들을 골라보면 다음과 같은 어휘들이 눈에 뜨인다.
한자어:
◎ 2자구: 거류(巨流), 창천(蒼天), 암심(岩心), 섬어(譫語), 안공(眼孔), 요광(遙光), 남천(南天), 만재(滿載), 운치(韻致), 북천(北天), 천문(天文), 만상(萬象),
◎ 3자구: 백공작(白孔雀), 산호림(珊瑚林), 장미원(薔薇園), 계명성(啓明星),
◎ 4자구: 부망건곤(敷網乾坤)
그리고 지금 《한국국어사전》에서 찾을 수 없는 어휘들이 씌어져 있는데 그 어휘들은 다음과 같은 것들이다.
◎ 등가슴, 까무러진, 오르라, 바꾸매로, 되나부다.
다음 중국사회변화에 따라 새롭게 만들어진 신조어들이 보인다.
◎ 야학실(夜學室)―농촌 야학교의 교실
◎ 공량차(貢糧車)―나라에 세금으로 바치는 양식을 실어 나르는 수레
◎ 염초담배―토종담배
2.2 설인 시인의 경우
설인 시인(본명 李成徽)은 1921년 연길에서 출생하여 1943년 일본조도전대학 통신학부를 졸업하고 1951년부터 퇴임할 때까지 줄곧 연변대학교에서 후학을 가르치면서 시를 써온 시인이다. 특히 최근 그의 40년대 초반의시첩이 발견되면서 광복 전 암흑기에 창작한 《寒夜에》, 《消息》 등 50여 수의 시 작품이 다시 햇빛을 보게 되어 우리 문학사에 귀중한 재부를 얹어주었다. 그는 《봄은 어디에》, 《해란강의 두견》, 《설인 소시집》, 《설인 시선집》 시집과 《문심조룡선주》 등 많은 저작을 썼다.
설인의 시 작품에 나타나는 어휘들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한자어:
◎ 2자구: 한야(寒夜), 기한(飢寒), 영롱(玲瓏), 신화(神話), 습성(習性), 운무(雲霧), 행전(行前), 웅자(雄姿), 정기(精氣), 정교(精巧), 통합(統合), 웅비(雄飛)
◎ 3자구: 순례자(巡禮者),
◎ 4자구: 엄동설한(嚴冬雪寒), 호태왕비(好太王碑)
새로운 어휘가 단어결합으로 보인다.
◎ 은실머리―흰머리
◎ 채수염―긴수염
◎ 뾰족모자―일본군전투모
방언의 사용
◎ 모대기다―《모질음을 쓰다》의 뜻을 가진 함경도 사투리이다.
2.3 김성휘 시인의 경우
김성휘 시인은 1933년 중국 길림성 용정시 백금향 방천동에서 태어나 1954년 심양외국어학원을 졸업하고 연길에 돌아와 1990년 타계할 때까지 줄곧 문학계와 출판계에 종사하면서 많은 시를 써온 중국조선족 대표 시인이다.그는 《나리꽃 피었네》, 《들국화》, 《금잔디》 등 서정시집과 장편서사시 《장백산아 이야기하라》, 《사랑은 무엇이길래》를 썼다.
김성휘 시인의 시어 어휘들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한자어:
◎ 2자구: 보모(保姆), 심방(心房), 맥박(脈搏), 처자(妻子), 선심(善心), 오류(誤謬), 음향(音響), 존엄(尊嚴), 하천(河川), 혼백(魂魄), 문패(門牌), 무성(茂盛), 풍상(風箱), 존엄(尊嚴), 기량(技倆), 잔설(殘雪),
◎ 3자구: 벽계수(碧溪水), 황무지(荒蕪地), 천리마(千里馬), 황금탑(黃金塔),
◎ 4자구: 일망무제(一望無際), 몽매무지(蒙昧無知).
방언:
◎ 강대―숲속에 선 채로 말라죽은 나무
부사:
◎ 찬히―> 찬찬히의 준말처럼 쓰이는 말
◎ 다문―> 다만
◎ 매, 매양―> 每, 每樣
단어결합:
◎ 눈물인연
◎ 골백번
◎ 연해연줄
품사변형:
◎ 깨끗하라―형용사의 동사화
◎ 동글해진―형용사의 동사화
2.4 김문회 시인의 경우
김문회 시인은 1939년 중국 화룡현 합신촌에서 출생하여 1961년 동북사범대학 수학학부를 중퇴하고 다년간 교사로 근무하면서 시를 썼으며 그후 화룡시문화국 창작실에서 전직창작원으로 있었다. 시인은 《해란강문학상》,《윤동주문학상》 등 다수의 국내외 문학상을 수상하였다. 이 시선집에는 《나는 매돌인가》 등 5수의 시 작품이수록되어 있다. 그의 시 작품에 씌어진 시어 어휘를 살펴본다.
한자어:
◎ 2자구: 청신(淸新), 사멸(死滅), 포괄(包括), 만년(萬年), 참신(斬新), 전설(傳說), 희롱(戱弄),
◎ 3자구: 동학반(童學班),
방언:
◎ 딩구는―> 뒹구는
◎ 죄꼬만―> 자그마한
◎ 어간(於間)―> 사이
품사변형:
◎ 청신을 낳고―형용사의 명사화
◎ 덩어리쳐―명사의 동사화
2.5 허흥식 시인의 경우
허흥식 시인은 1942년 중국 화룡시 두도진에서 출생하여 1994년 용정시문화국 창작실 창작원이 되기 전까지줄곧 농촌에서 생활하면서 시를 써온 《농민시인》이다. 1997년 불의의 사고로 사망한 후 유고 시집으로 《용두레우물》이 간행되었다.
본 시선집에는 《두만강 옛 나루터에서》, 《우리는 촌놈이다》, 《누님》 등 세 편의 시가 수록되어 있다.
그가 사용한 시어 어휘들에는 한자어휘가 거의 없고 시골농군들의 진한 흙냄새가 풍기는 토속적인 어휘들이 작품 속에 그대로 들어 있어 특이하다.
방언:
◎ 망탕―> 마구, 함부로
◎ 게죽―> 개죽, 개먹이
◎ 갑삭이다―> 가볍게 흔들리다
◎ 가쯘히―> 가지런히
2.6 남영전 시인의 경우
남영전 시인은 1948년 중국 길림성 통화지구에서 출생하여 길림성작가연수학원을 졸업하였다. 현재 계간 《장백산》의 사장 겸 주간으로 있으며 시집 《산혼》, 《뻐꾹새》, 《남영전 시선집》 등 다수 출간하였다.
남영전 시인은 중국의 일부 소수민족 시인들처럼 먼저 한문으로 시를 쓴 다음 다시 본 민족 언어로 번역하여 옮겨 적는다. 즉 남영전 시인의 경우 먼저 한문으로 시를 쓴 다음 다시 우리말로 번역하여 발표한다는 말이다. 따라서 그의 시작품의 시어 어휘가 거의 한자어 어휘 그대로 씌어지고 있는 것이 특이하다.
본 시선집에는 《달》 외 4수의 시가 수록되어 있다. 그 가운데서 일부 한자어 어휘들을 살펴보기로 한다.
한자어:
◎ 2자구: 원활(圓滑), 온유(溫柔), 향연(饗宴), 예시(豫示), 암시(暗示), 계시(啓示), 혼탁(混濁), 몽롱(朦朧), 연주(演奏), 합환(合歡), 무연(無緣), 광막(廣漠), 환기(喚起), 직포(織布), 창천(蒼天), 층암(層巖), 오연(傲然), 빙설(氷雪), 갈망(渴望), 생육(生育), 명명(明明), 생령(生靈), 독균(毒菌), 망망(茫茫), 광활(廣闊), 창성(昌盛),
◎ 4자구: 심산유곡(深山幽谷), 백의숙녀(白衣淑女), 심산밀림(深山密林), 만경창파(萬頃蒼波), 무변광대(無邊廣大).
2.7 리임원 시인의 경우
리임원 시인은 1958년 중국 연길에서 출생하여 연변대학교 사범학원을 졸업하고 1981년 《연변일보》사에 입사한 후 농촌부 취재기자, 문화부 편집, 정치부 주임을 거쳐 현재 편집판공실주임(편집국장)으로 일하면서 시를쓴 중견 시인이다. 《바보들의 사랑이야기》 등 여러 권의 시집을 간행하였으며 《두만강여울소리시인상》, 《지용시문학상》 등 다수의 국내외 문학상을 수상하였다.
본 시선집에는 《풀잎․1》 등 5수의 시 작품이 수록되어 있다. 그런데 그의 시 작품의 시어 어휘들을 살펴보면방언과 생경한 한자어 어휘들이 거의 보이지 않는다. 굳이 찾아본다면 아래와 같은 정도이다.
한자어:
◎ 1. 석양(夕陽)―《풀잎․1》
2. 언어(言語), 신선(新鮮), 모습(模襲), 대답(對答), 백일홍(百日紅), 수정(水晶), 순수(純粹), 교수(敎授),국장(局長), 직함(職銜), 계선(界線), 위로(慰勞), ―《꽃의 언어》
3. 동해(東海), 비취색(翡翠色), 청청(淸淸), 식솔(食率) ―《동해바다》
4. 정확(正確), 장소(場所), 흔적(痕迹), 십자가(十字架), 인생(人生), 파종(播種), 천정(天頂) ―《새벽을위하여》
5. 오열(嗚咽), 시작(始作), 농부(農夫), 타령(打令), 연습(練習), 인생(人生), 자진(自盡), 석양(夕陽), 섭리(攝理) ―《바람에 길을 물어…》
3. 나가는 말
중국조선족 시 문학의 각 시기별의 대표시인들의 작품에 대한 상기 분석과 고찰에서 나타나듯이 중국조선족 시문학의 어휘구조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은 특수성들이 보인다.
첫째, 시어 어휘에서 한자어 어휘가 대량으로 사용되었다. 그리고 대부분의 한자어휘는 2자구, 3자구의 명사이며 일부 4자구의 단어결합형태와 4자성어 형태로 나타난다. 이런 한자어휘들은 현대 한국 시 문학작품에서는 거의 찾아 볼 수 없는 고어 또는 현재 중국 사회상황의 변화에 따라서 시기별로 산생되는 새 어휘들이 단어결합을이루어 시어 어휘로 사용된 것이다. 이와 같은 새롭게 생겨나는 신조어들은 작품 속에서 시어 어휘의 음운, 의미,색채 등에 미묘한 특색을 보여주기도 한다.
둘째, 함경도와 평안도 등 북부지역의 방언들이 시어 어휘로 사용되어 시 작품에 지역적인 독특한 어감을 가미하여 준다. 연변지역에서 함경도 등 북부지역의 일부 사투리가 《조선말사전》의 편찬과 함께 표준어로 구분되어들어오고 북한 즉 조선의 문화어가 보급되면서 시어 어휘에도 자연스럽게 나타나게 된 것이다.
셋째, 일부분 작품에서 보이는 것이지만 부사의 사용 중에 생활한어에서 그대로 차용하는 것, 지방방언에서 습관화 되는 것 등이 시어 어휘에 그대로 나타나고 있다.
넷째, 시어 어휘에서 독특한 품사변형이 보이고 있다. 그것은 명사의 동사화, 형용사의 동사화, 동사의 명사화,형용사의 명사화, 명사의 형용사화, 동사의 형용사화, 부사의 형용사화 등 다양한 형태로 나타나는데 대부분이한어 어휘 사용의 영향을 받아 비롯된 것들이다.
이런 몇 가지 어휘특성들은 중국조선족 시 문학의 독특한 상황에서 생겨난 특수현상이다. 그것은 중국조선족 시문학이 40년대 말부터 지역적으로 한국과 조선의 한반도와 단절된 상황 속에서 형성되었으며 중국이라는 사회,생활환경의 제약에서 벗어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것은 또한 중국조선족이 중국어 즉 한어생활권 안에서 우리말을 사용하는 이중 언어생활을 해야 하는 상황에서 빚어지는 결과이다. 그러나 90년대 이후 한국문학의 수용과함께 한국 시 문학에 대한 접촉이 점차 증가되면서 중국조선족 시 문학의 시어 어휘들에도 많은 변화가 나타나고있다. 그것은 바로 이질적인 면이 점차 축소되고 동질적인 면이 나날이 증대되는 현상으로 보인다. 이러한 경향은 특히 나젊은 신진시인들의 작품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이것은 우리의 문학의 희망적 사항으로 되는 것이다.
2002년 가을
한국 배재대학교 인터나쇼날하우스 105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