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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지기-죽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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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가던 길 멈춰 서서  근심에 가득 차, 가던 길 멈춰 서서  잠시 주위를 바라볼 틈도 없다면 얼마나 슬픈 인생일까?  나무 아래 서 있는 양이나 젖소처럼  한가로이 오랫동안 바라볼 틈도 없다면  숲을 지날 때 다람쥐가 풀숲에  개암 감추는 것을 바라볼 틈도 없다면  햇빛 눈부신 한낮, 밤하늘처럼  별들 반짝이는 강물을 바라볼 틈도 없다면  아름다운 여인의 눈길과 발  또 그 발이 춤추는 맵시 바라볼 틈도 없다면  눈가에서 시작한 그녀의 미소가  입술로 번지는 것을 기다릴 틈도 없다면,  그런 인생은 불쌍한 인생, 근심으로 가득 차  가던 길 멈춰 서서 잠시 주위를 바라볼 틈도 없다면,  (헨리 데이비스·영국의 방랑걸인 시인, 1871-1940)     + 숨어사는 즐거움  가끔은 숨바꼭질처럼  내 삶을 숨겨두는 즐거움을 갖고 싶습니다.  전화도 티브이도 없고 신문도 오지 않는  새소리 물소리만 적막의 한 소식을 전해주는  깊은 산골로 숨어 들어가  내 소란스런 흔적들을 모두 감추어 두겠습니다.  돌이켜 보면 헛된 바람에 불리어 다녔음을  여기저기 무지개를 좇아 헤매다녔음을,  더 이상 삶의 술래가 되어 헐떡이고 싶지 않습니다.  이제는 적막 속으로 꼭꼭 숨어들어  홀로된 즐거움 속에 웅크리고 있겠습니다.  그리운 친구에게는 편지를 부치러  장날이면 가끔 읍내로 나가겠습니다.  돌아오는 길에는 갈 곳 없는 떠돌이처럼  갈대의 무리 속에 슬쩍 끼어 들었다가  산새들 뒤를 허적허적 좇다가  해질녘까지 노닥거릴 생각입니다.  내게 남은 시간들을  백지의 고요한 공간 속에 차곡차곡 쌓아 가겠습니다.  (조용우·시인)  + 인생이란     남기려고 하지 말 것  인생은  남기려 한다고 해서  남겨지는 게 아니다  남기려고 하면 오히려  그 남기려는 것 때문에  일그러진 욕망이 된다  인생이란 그저  사는 일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정말 아니다  (윤수천·시인, 1942-)  + 마음을 비우는 시      차창 밖으로 산과 하늘이  언덕과 길들이 지나가듯이  우리의 삶도 지나가는 것임을  길다란 기차는  연기를 뿜어대며 길게 말하지요  행복과 사랑  근심과 걱정  미움과 분노  다 지나가는 것이니  마음을 비우라고  큰 소리로 기적을 울립니다,,  (이해인·수녀, 1945-)  + 단순하게 사세요  당신들은 삶을  복잡하게 만들려고 해요.  아무도 이해하지 못하는  화려하고 현학적인 문구들을  써놓고 그것을 '지성'이라 부르죠.  하지만 정말 뛰어난  작가와 예술가, 교육자들은  간단하고 명쾌하며 정확한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이에요.  그냥 단순하게 사세요.  복잡함을 버리고 혼란을 제거한다면,  인생을 즐기는 일이  단순하고 간단해질 거예요.  (웨인 다이어·미국의 심리학자이며 자기 계발 작가)  + 참 오래 걸렸다  가던 길  잠시 멈추는 것  어려운 게 아닌데  잠시  발 밑을 보는 것  시간 걸리는 게 아닌데  우리 집  마당에 자라는  애기똥풀 알아보는데  아홉 해나 걸렸다.  (박희순·아동문학가)  + 곡선  빠른 길 놔두고  돌아가길래  비이잉  서두를 줄 모르길래  시간 낭비한다고  발 동동 굴렀는데  그게 아니구나  지름길 서두르다  웅덩이 빠질까 봐  돌부리 걸릴까 봐  돌아갔구나  서두르지 않았구나.  (최향·아동문학가)  + 나무처럼 살기   욕심부리지 않기  화내지 않기  혼자 가슴으로 울기  풀들에게 새들에게  칭찬해 주기  안아 주기  성난 바람에게  가만가만 속삭이고  이야기 들어주기  구름에게 기차에게  손 흔들기  하늘 자주 보기  손뼉치고 웃기  크게 감사하기  미워하지 않기  혼자 우물처럼 깊이 생각하기  눈감고 조용히 기도하기  (이경숙·아동문학가)  + 빨리  빨리 일어나고  빨리 밥 먹고  빨리 학교에 갔다.  그러나 수업은 빨리 시작하지 않았다.  빨리 놀고  빨리 배우고  빨리 싸웠다.  그러나 키는 빨리 크지 않았다.  빨리 물 주고  빨리 해 주고  빨리 꽃 피라고 빌었다.  그러나 선인장은 죽어 버렸다.  (이옥용·아동문학가)  + 너는 약해도 강하다  쉿잇, 가만히 있어봐  귀를 창문처럼 열어봐  은행나무가 자라는 소리가 들리지  땅이 막 구운 빵처럼 김 나는 것 보이지  으하하하하, 골목길에서 아이 웃는 소리 들리지  괴로우면 스타킹 벗듯 근심 벗고  잠이 오면 자는 거야  오늘 걱정은 오늘로 충분하댔잖아  불안하다고?  인생은 원래 불안의 목마 타기잖아  낭떠러지에 선 느낌이라고?  떨어져 보는 거야  그렇다고 죽진 말구  떨어지면 더 이상 나빠질 것도 없어  칡넝쿨처럼 뻗쳐오르는 거야  희망의 푸른 지평선이 보일 때가지  다시 힘내는 거야  (신현림·시인, 1961-)   
969    편복 / 리육사 댓글:  조회:2625  추천:0  2018-02-28
  (서울=연합뉴스) 문화재청이 문화재로 등록예고한 이육사(본명 이원록·1904∼1944) 친필원고 '편복'. '편복'은 일제강점기 우리 민족의 현실을 동굴에 매달려 살아가는 박쥐에 빗댄 작품으로 당시에는 사전 검열에 걸려 발표되지 못했다. 2018.2.27     편복/이육사           광명(光明)을 배반(背反)한 아득한 동굴(洞窟)에서 다 썩은 들보라 무너진 성채(城砦) 위 너 홀로 돌아다니는 가엾은 박쥐여! 어둠에 왕자(王者)여! 쥐는 너를 버리고 부자집 고(庫)간으로 도망했고 대붕(大鵬)도 북해(北海)로 날아간 지 이미 오래거늘 검은 세기(世))에 상장(喪裝)이 갈갈이 찢어질 긴 동안 비둘기같은 사랑을 한 번도 속삭여 보지도 못한 가엾은 박쥐여! 고독(孤獨)한 유령(幽靈)이여!   앵무와 함께 종알대어 보지도 못하고 딱짜구리처럼 고목(古木)을 쪼아 울리도 못 하거니 만호보다 노란 눈깔은 유전(遺傳)을 원망한들 무엇하랴 서러운 주교(呪交)일사 못 외일 고민(苦悶)의 이빨을 갈며 종족(種族)과 홰를 잃어도 갈 곳조차 없는 가엾은 박쥐여! 영원(永遠)한 「보헤미안」의 넋이여!   제 정열(情熱)에 못 이겨 타서 죽는 불사조(不死鳥)는 아닐망정 공산(空山) 잠긴 달에 울어 새는 두견(杜鵑)새 흘리는 피는 그래도 사람의 심금(心琴)을 흔들어 눈물을 짜내지 않는가! 날카로운 발톱이 암사슴의 연한 간(肝)을 노려도봤을 너의 머―ㄴ 조선(祖先)의 영화(榮華)롭던 한시절 역사(歷史)도 이제는「아이누」의 가계(家系)와도 같이 서러워라! 가엾은 박쥐여! 멸망(滅亡)하는 겨레여!   운명(運命)의 제단(祭壇)에 가늘게 타는 향(香)불마자 꺼젓거든 그많은 새즘승에 빌붓칠 애교(愛嬌)라도 가젓단말가? 상금조(相琴鳥)처럼 고흔 뺨을 채롱에 팔지도 못하는 너는 한토막 꿈조차 못꾸고 다시 동굴(洞窟)로 도라가거니 가엽슨 빡쥐여! 검은 화석(化石)의 요정(妖精)이여!         역시 반어적 현실과 당위적 가치 사이의 대조를 통해 식민지 현실에 대한 절망감을 영탄조로 노래하고 있다. 어두운 동굴, 썩은 들보, 무너진 성채 위를 홀로 돌아다니는 어둠의 왕자, 비둘기 같은 사랑을 한번도 속악여 보지 못한 고독한 유령 박쥐는 일제 식민지 통치로 국권과 터전을 상실하고 어둠 속을 헤매는 우리 민족을 의미한다는 것이 쉽게 드러난다. 첫연에서 시인은 썩은 들보, 무너진 성채 위를 홀로 돌아다니며 광명을 배반한 어둠 속에서 살아가는 박쥐에 대한 무한한 연민을 보여주고 있다. 썩은 들보, 무너진 성채는 광명을 상실하기 전에 박쥐가 가지고 있던 화려한 터전을 의미한다. 현재 이 터전은 검은 세기의 어둠에 의해 완전히 파괴되고 박쥐는 광명과 모든 권력을 상실한 채 고독한 유령처럼 무너진 옛 터전을 벗어나지 못하고 배회하고 있다. 두번째 연에서는 종족과 홰를 잃고 갈 곳조차 없는 박쥐의 모습을 통해 시인은 국권과 나라를 상실하고 갈 곳조차 없는 무력한 우리 민족의 모습을 제시하고 3연에서는 불사조, 두견새와 박쥐를 비교하여 제 정열에 못 이겨 타서 죽지도 못하고 두견새처럼 심금을 흔들어 사람의 눈물을 짜내게 하지도 못하는 박쥐의 모습을 통해 다시 한번 우리 민족의 무력함을 보여주고 있다. 불사조처럼 제 목숨을 던져 버리지도 못하고 두견새처럼 피울음 울어 남의 동정심을 유발하지도 못하는 박쥐는 당시 우리 민족의 굴욕적이고 처참한 모습을 적절하게 표현해 주는 구절이라고 할 수 있다. 4연에서는 과거의 영화롭던 시절과 현재를 대조시켜 아이누 족속처럼 멸망해가는 우리 겨레에 대한 연민을 보여주고 있다. 과거의 영화롭던 시절 박쥐는 이 땅의 왕자로서 날카로운 발톱으로 암사슴의 간을 노려도 봤음직하다. 그러나 이 검은 세기에 종족과 터전을 박탈 당하고 무너진 성채 위를 배회하는 박쥐는 광명의 세계로부터 쫓겨난 어둠의 왕자에 불과할 뿐이다. 멸망해가는 아이누 족처럼 언제 흔적 없이 사라질지 모르는 운명이 우리 민족의 운명이며 그것은 바로 퇴화한 박쥐의 운명과도 같은 것이다. 마지막 연에서 박쥐의 비극성은 극에 달한다. 이미 운명의 제단의 향불마저 다해 버린 시간에 박쥐는 더 이상 미래에 대한 꿈도 꾸지 못하고 어둠의 동굴 속으로 돌아갈 수 밖에 없는 정도로 무력하다. 광명을 상실하고 어둠 속에서 무력하게 살아갈 수 밖에 없는 우리 겨레를 어둠의 왕자인 박쥐에 비유하여 표현한 시이다. 운명이 다한 박쥐는 과거의 화석일 뿐이다. 나라를 빼앗기고 어둠 속에서 사는 우리 민족 역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역사의 유물이며 검은 화석의 요정일 뿐이다. 박쥐 역시 퇴화하기 전에는 왕자다운 모습을 지녔을 것이고 영화롭던 시절 또한 있었을 것이다. 우리 민족 역시 그처럼 영광된 역사를 가지고 있지만 모든 것을 빼앗긴 지금 박쥐의 신세나 다름없는 것이다       ​ ​ 편복(蝙蝠)    蝙蝠은 박쥐를 말한다. 박쥐는 동굴의 어둠 속에서 살아간다. 이육사의 이 의 시는 1930년대 말에 쓴 것으로 사료되지만 당시에 발표하지 않았던 작품이다. 당시에 이 작품이 발표되었다면 이육사는 아마 일제에 끌려가 모진 고통을 당했을 것이다. 이 시는 1956년에 낸 에 발표한 작품인데, 올해 3,1절을 맞아서 문화재로 지정하게 되었다. 의 육필 원고는 유족들이 보관해 오다가 에 기증했다.   ‘광명을 배반한 아득한 동굴’은 일제 시대의 암흑 속에서 갈았던 한국인의 현실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햇빛이 눈부신 세계를 두고 억압받고 살았던 민족을 박 쥐로 보았던 것이리라. 동굴 외에는 살 곳이 없는 가엾은 박쥐. 영원한 보헤미안. 두견새처럼 空山에서 울어보지도 못하는 것이 박쥐다. 옛날 영화롭던 시절. 그런 역 사의 과거를 지녔던 선조의 영화를 꿈꾸고 있을 뿐. 가엾은 박쥐는 멸망하는 겨레 라고 했다. 모든 새들이 자유의 세계에서 노래하고 푸른 하늘을 날건만 어두운 동굴 로 돌아가야 하는 검은 화석의 요정. 그게 박쥐의 삶이며 운명이다. 이육사가 아니면 쓸 수 없는 저항시를 3,1절에 읽게 되었다. 나라가 없는 민족의 울분의 시를 우리에 게 선물한 이 시를 간직해야 하리라.               이육사 선생의 시 중 가장 중량감 있는 작품으로 손꼽히는 '편복'(蝙蝠). 문화재청 제공
968    어린이의 인생을 지옥으로 연출해내면 엄마가 아니다... 댓글:  조회:2206  추천:0  2018-02-26
  에 대하여 한 10살짜리 어린이가 [학원 가기 싫은 날]을 썼고, 그것을 동시집으로 출간했다고 해서 대한민국이 며칠째 난리가 났다. 학원지옥, 입시지옥을 연출해놓고 우리의 어린 학생들을 모조리 수장시키는 우리 한국인들 자체가 더 큰 인륜적 패륜을 저지르고 있는 것이 아닐까? 개성과 창의성과는 무관한 표절의 왕국은 이제 마악 놀이터가 필요한 어린아이들을 아침 7시에서부터 밤 12시까지, 국어, 영어, 수학, 음악, 미술, 과학, 논술 등, 온갖 학원으로 몰아넣는 데에서 비롯된 것이다.  우리 어른들은 우리의 아이들이 표절왕국의 주인공이 되고, 영원히 노벨상을 탈 수 없게 하는 저승사자들에 지나지 않는다. 이 기회에 학원지옥, 입시지옥을 모조리 청산하고, 문화선진국의 교육제도를 받아들일 수는 없는 것일까? 사교육비가 하나도 안 드는 독서중심의 글쓰기 교육을 통해서, 저출산 고령화의 문제도 단번에 해결할 수 있고, 온갖 부정부패도 단번에 뿌리뽑을 수가 있는 것인데. 저승사자들이 학원지옥, 입시지옥을 연출해놓고, 그것을 싫어하는 어린이에게 패륜아라고 온갖 혐오스러운 폭언을 다 퍼부어대고 있는 것이다. 엄마는 엄마가 아니고, 어린이의 인생을 지옥으로 연출해낸 악마(패륜녀)이다. 학원 가기 싫은 날           이순영     학원에 가고 싶지 않을 땐  이렇게 엄마를 씹어 먹어 삶아 먹고 구워 먹어 눈깔을 파먹어 이빨을 다 뽑아버려 머리채를 쥐어뜯어 살코기로 만들어 떠먹어 눈물을 흘리면 핥아먹어 심장은 맨 마지막에 먹어 가장 고통스럽게      
967    詩 = 詩人 = 詩 댓글:  조회:2454  추천:0  2018-02-25
   + 시인  제 상처를 핥으며 핥으며  살아가는 사람  한번이 아니라  연거푸 여러 번  연거푸 여러 번이 아니라  생애를 두고  제 상처를 아끼며 아끼며  죽어가는 사람, 시인.  (나태주·1945-)  + 시인  배 고플 때 지던 짐 배 부르니 못 지겠네  (김용택·1948-)  + 시인  시가 직업이길 나는 원했지만  나의 직업은 허가받지 못한 철부지 공상이었다  시인이 되기엔  시보다 사람 사랑하는 법을 먼저 배워야 한다  산봉우리에 걸리는 저녁놀처럼  아름답게 사람 사랑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호반새 삭정이를 물고 둥지로 날아가듯  사람 사는 거리와 집들  세상과 골목을 사랑할 줄 알아야 한다  시인이란 아무에게도 알려서는 안 될  비밀한 이름  그때 나의 직업은 시인이 된다  잎새 뒤에 숨어서 명주실 뽑아내는 은빛 누에처럼  (이기철·1943-)  + 김삿갓   시란  시인에게 굴레를 씌우는 것이 아니라  씌워진 굴레에서 벗어나는 데 있다  떠나는 괴로움과  떠도는 외로움  시인은 출발부터가 외로움이다  불행하게도  벼랑을 맴돌며 노래함이  시인의 숙명이라면  기꺼이 그 숙명에 동참하겠다고  맹세하마  (이생진·1929-)  + 시인 K의 두꺼운 노트  그는 읽고 또 읽었다  풀잎들의 잎맥을  그는 보고 또 보았다  폭포에서 뛰어내리는 물방울들을  그는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새끼 고양이의 눈물은 왜 따스한가  그리고 썼다  자신을 뺀  온 우주에 관해  (이성미·1967-)  + 시인이 되려면   시인이 되려면  새벽하늘의 견명성(見明星)같이  밤에도 자지 않는 새같이  잘 때에도 눈뜨고 자는 물고기같이  몸 안에 얼음세포를 가진 나무같이  첫 꽃을 피우려고 25년 기다리는 사막만년청풀같이  1kg의 꿀을 위해 560만 송이의 꽃을 찾아가는 벌같이  성충이 되려고 25번 허물 벗는 하루살이같이  얼음구멍을 찾는 돌고래같이  하루에도 70만 번씩 철썩이는 파도같이  제 스스로를 부르며 울어야 한다  자신이 가장 쓸쓸하고 가난하고 높고 외로울 때  시인이 되는 것이다  (천양희·1942-)  + 마당으로 출근하는 시인  솥발산 산자락에 살면서부터  마당에 놓아둔 나무 책상에 앉아  시(詩)를 쓴다, 공책을 펼쳐놓고  몽당연필로 시를 쓴다  옛 동료들이 직장에서 일할 시간  나는 산골 마당이 새 직장이고  시가 유일한 직업이다  월급도 나오지 않고  의료보험 혜택도 없지만  나는 이 직장이 천직(天職)인 양 즐겁다  나의 새로운 직장 동료들은 꽃들과 바람과  구름, 내가 중얼거리는 시를  풀꽃이 키를 세우고 엿듣고 있다  점심시간, 내가 잠시 자리를 비우면  바람이 공책을 몰래 넘기고  구름이 내 시를 훔쳐 읽고 달아난다  내일이면 그들은 더 멋진 시 보여주며  나에게 약을 올릴 것이다  이 직장에서 꼴찌가 되지 않기 위해  나는 열심히 마당으로 출근한다  (정일근·1958-)  + 시인  시를 청탁하는 전화가 왔다.  말라비틀어진 나무에 링거병을 달아준 것같이  가슴이 마구 뛰놀았다.  시침을 떼고,  고료부터 물었다.  죽은 나무가 꽃이라도 피울 기세로!  아직 살아 있다는 듯이!  한때 시를 쓴 적이 있었지만,  곧바로 쓰는 법을 잊어버렸다.  그 후로 몇 년간  청탁을 물리치는 게  진통제가 필요할 만큼 고통스러웠다.  그나저나,  십칠 년 전이나 지금이나  시인들은 무대포로 살고 있군.  아니,  고료가 한 푼도 안 올랐다니  나는 십칠 년 전이나 마찬가지로  현역이었군.  (장정일·1962-)  + 시인                   모든 사람의 가슴속에는 시인이 살고 있었다는데  그 시인 언제 나를 떠난 것일까  제비꽃만 보아도 걸음을 멈추고 쪼그려 앉아  어쩔 줄 몰라 하며 손끝 살짝살짝 대보던  눈빛 여린 시인을 떠나보내고 나는 지금  습관처럼 어디를 바삐 가고 있는 걸까  맨발을 가만가만 적시는 여울물소리  풀잎 위로 뛰어내리는 빗방울 소리에 끌려  토란잎을 머리에 쓰고 달려가던  맑은 귀를 가진 시인 잃어버리고  오늘 하루 나는 어떤 소리에 묻혀 사는가  바알갛게 물든 감잎 하나를 못 버리고  책갈피에 소중하게 끼워두던 고운 사람  의롭지 않은 이가 내미는 손은 잡지 않고  산과 들 서리에 덮여도 향기를 잃지 않는  산국처럼 살던 곧은 시인 몰라라 하고  나는 오늘 어떤 이들과 한길을 가고 있는가  내 안에 시인이 사라진다는 건 마지막까지  남아 있던 최후의 인간이 사라지는 거라는데  지팡이로 세상을 짚어가는 눈먼 이의  언 손 위에 가만히 제 장갑을 벗어놓고 와도  손이 따뜻하던 착한 시인 외면하고  나는 어떤 이를 내 가슴속에 데려다놓은 것일까  (도종환·1954-)  + 길 위에서 16 - 무명시인에게  이 땅의 시를 채록하면서  이름 없는 시인의 혼이  더 고독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시에도 권력이 있는가,  현란한 언어의 유희에  나는 식상했다  이름 없는 시인을 사랑한다  야생화를 사랑하였듯이 꽃에  삼류가 있었던가  허공에 매달린 거미줄 같은  당신의 시 한 편을 찾아 나선다  (최병무·시인, 1950-)     
966    "연변문학은 '고립된 섬'에서 해탈해야 '지옥'에 안간다"... 댓글:  조회:2402  추천:0  2018-02-21
평론:                      순수민족문학으로 바라보는  홍용암시조집 ≪력사와 민족앞에≫                                                      (한국) 강성은                                                     들어가는 말        글을 쓴다는것은 무엇인가? 아마도 그것은 글을 쓰는 이가 자기자신을 향해 끊임없이 되묻는 이런저런 질문들에 대한 암중모색의 답변들을 기록하는것이리라.      물론 자기자신을 향해 되묻는 이런저런 질문들과 그에 관한 답변들의 기초를 이루는것은 일종의 지적(知的)호기심이라고 해야 마땅하다. 지적호기심이 없이 그리고 그것을 충족시키는 즐거움이 없이 지속적으로 글을 쓰기란 쉽지 않다.      에서 출판된 홍용암시조집 의 발문을 쓴 평론가 김룡운은 고 서술하며 즉석에서 작가의 그 장거에 바치는 즉흥시조 한편을 지어 선물하였다.              력사에 책임지니 샘구멍 틔였는가            민족을 사랑하니 방뚝이 터졌는가            용용히 굼실거리는 흰얼의 노래 거창하여라!        글을 쓴다는것이 자유의지의 산물임이 분명하다면 어떤 형태의 글을 쓰든 그것은 글을 쓰는 이의 지적호기심에서 비릇될수밖에 없다.      지적호기심은 앎에의 욕구를 가리킨다. 앎에의 욕구는 흔히 화두(話頭)의 하나로 존재하기 마련이다. 이때의 화두는 점수의 형태로 자잘한 을 낳기도 하고 돈오의 형태로 경천동지(惊天动地)할 을 낳기도 한다. 여기서 말하는 이나 은 당연히 질서있는 언어로 구체화될 때 보편을 지닐수 있고 독자일반과 공유될수 있다.      시조집 의 저자 홍용암이 16세때에 벌써 첫시집 를 출판한것을 보면 그의 지적호기심이 남달리 특출하였음을 보아낼수가 있다.      시를 쓰는 사람이라면 언젠가는 반드시 부딪치는 문제가 있다. 가 바로 그것이다. 라는 문제는 소재에 관한 문제이기도 하고 주제에 관한 문제이기도 하다. 에 관한 문제는 자료에 관한 문제이기도 하고 대상에 관한 문제이기도 하다. 이들 문제중에서도 정작 중요하게 생각해야 할것은 시를 이루는 대상에 관한 문제이다.      시에서의 대상은 외적인것으로 존재할수도 있고 내적인것으로 존재할수도 있다. 물론 그것들이 또 상호 뒤섞인채로 존재할수도 있다. 부분적으로는 외적인 대상으로, 부분적으로는 내적인 대상으로 존재할수도 있다는것이다. 이때의 외적인것은 객관적인 대상을 가리키고 내적인것은 주관적인 대상을 가리킨다. 객관적인 대상은 시나 받아들여지는 외적 사물을 가리키고, 주관적인 대상은 시에 받아들여지는 내적 심리를 가리킨다. 외적 사물은 시에 받아들여지는 자연물 등을 의미하고, 내적 심리는 시에 수용되는 의식이나 무의식 등을 의미한다.                      홍용암의 시조집 는 127수의 시조가 도합 10집으로 나뉘여 실려있다. 시조에 자리해있는 대상이 내적 심리를 표현한것이 주를 이루는데 그 굼실거리는 밑바탕에는 민족의 혼이 깊이 뿌리내리고있다는 사실이다. 현재 남과 북이 갈라져있는 현실에서 화합의 장으로써 남과 북에서 유일하게 동시에 이 작가의 시조집이 출간되였다는 사실 하나만 가지고도 아주 중요한 의의를 둘수 있다.      남반부의 저명한 로시인 고은선생은 라고 말하였다.      연변문학은 과 같은 특별한 위치를 갖고있다. 조선족이라 칭해지는 중국소수민족의 문학으로서 한자문화권인 중국문학에서 비켜나있으며 문학이나 조선문학과도 먼 거리를 구축하고있다. 민족문학을 동일민족의 동일언어로 동일지역에서 창작된것을 기준으로 삼는 소위 삼속주의립장에서 볼 때 연변문학은 는, 똑마치 사면팔방 한족문학이 성행하는 망망한 태평양바다같은 중국이라는 이 거대한 지역내에 갇혀서 얼마 안되는 조선인들이 조선문으로 작품을 쓰고있는 고독한 같은 특별한 형국을 이루고있는것이다.      나는 먼저 작가의 가계도를 살펴보았다. 홍용암은 전형적인 중국조선족이다. 여기서 전형적이라는 말은 현재 중국의 조선족사회를 구성하고있는 구성원의 보편적특성을 구유하고있다는 뜻으로 쓰인 말이다.      그는 중국 흑룡강에서 태여나 자랐지만 그의 선조는 조선땅에 뿌리를 둔 유이민들이였다. 친할아버지는 함경북도가 고향이고 외할아버지는 경기도가 고향이다. 말하자면 홍용암은 유이민 3세인것이다. 아주 빈궁한 가정에서 태여나 중국의 최하층에서 너무 일찍 비극적 삶을 살면서 시달리고 허덕여야 했던 그는 그의 성장환경이나 가계보를 보았을 때 어쩌면 그의 시에서 주조를 이루는 민족의 정체성의 혼란과 자아찾기의 몸부림은 아주 당연하고 자연적인 현상이라고 할수 있다.      중국 조선족들이라면 누구나 겪는 민족정체성의 혼란, 즉 에 대한 끊임없는 질문과 회의와 방황은 홍용암에게도 결코 례외가 아니였던것이다. 더구나 시인으로서 감수성이 누구보다 예민했던 그로서는 민족정체성의 문제가 인생의 화두(話頭), 나아가서는 시적 화제로 각인되였던것이다. 그의 작품 도처에서 정체성에 대한 질문과 뿌리찾기의 흔적이 남아있다.      홍용암의 필명은 이다. 연변의 대표적 평론가인 김룡운이 홍용암의 시문학작품세계를 로 재단할 정도로 홍용암의 시에서 은 지수(指數)적기능을 수행하고있다. 말하자면 은 홍용암의 시와 작품에서 일종의 빛을 비추이는 모티브(light mitive)인것이다. 따라서 의 의미분석은 홍용암의 자아, 한, 사랑, 순결, 민족애, 효성... 등의 다양한 주제를 표현한것임을 잘 알수 있다.      중국 조선족들과의 근 20여년간을 음으로 양으로 어울리며 생활한 필자가 바라보는 홍용암의 시작품은 거의 모든 시와 시조 심지어 동시에 이르기까지 민족애와 고국애로 관통되여있으며 강렬한 력사의식과 현실의식이 유기적으로 통합되여있다는 점이다. 이런 력사의식과 현실의식의 유기적통합이 홍용암시인의 시조작품을 통하여 나타나고있으며 연변문학의 대표적 거인으로서의 그 면모를 볼수가 있다.      홍용암이 추구하고있는 시의 핵심적 기제는 결국 궁극적으로 통일과 이어지게 된다. 력사적으로 볼 때 우리 민족에게 가장 큰 재난과 불행은 바로 남과 북의 갈라진 현실일것이다. 그 원인이 력사적으로 일제와 주변의 강대국들에 의해서 이루어졌지만 이 비극은 오늘까지도 계속 이어지고있기에 우리 민족의 최대의 바램 역시 통일인것이다.      오늘 우리 민족은 또다시 엄중한 재난과 위기에 직면하여있다. 그러나 우리는 그러한 력사를 단절의 상태에서가 아니라 현실과의 련계된 상황에서 마땅히 통합적으로 고찰, 고민하여야 한다.      우리 민족이 일제로부터 나라를 찾아 광복 70년이 되는 해에 나는 연변에서 이런 시 한편을 써서 독립협회에 이곳 연변을 소개한적이 있다.              려명의 종이 울린다            새벽별이 반짝이고 사람들이 같이 산다            닭이 운다 개가 짖는다            오는 사람이 있고 가는 사람이 있다            오는 사람은 내게로 오고            가는 사람도 내게서 간다                       아픔에 하늘이 무너졌다            깨진 하늘이 아물 때에도            가슴에 뼈가 서지 못해서            푸른 빛은 남으로            붉은 빛은 북으로            태양의 문양처럼 갈라져            넘쳐흐르는 흐린 강물우에 떠서            더러는 북간도 황야에 버려졌다                                   (중단 생략)              이곳은 태양의 문양이 한데 어울려            생활하는 통일의 거리            누가 통일이 어렵다고 했는가?            작은 물 모여 모여 강 되고 바다 이룬다...                          (하단 생략)        홍용암시인뿐만이 아니라 민족적자각이 있는 적지 않은 시인들이 한반도의 통일문제와 민족의식을 쓰고있다. 민족문학이 전 국민의 보편적정서를 아직 획득하지 못하고있어 앞으로 더욱 많이 유의해야 하는게 현실이지만, 홍용암은 그의 작품 전반적으로 민족의식을 다루고있는 유일한 작가인것은 분명한 사실인것 같다. 순수 민족문학을 론한다면 남과 북의 문학을 모두 관통하는 유일한 작가가 아닌가 하는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홍용암의 시작품을 보면 그 선명한 특징은 과 을 중심단어로 표현한 짙은 민족성과 강한 민족의식이다. 민족과 함께 울고 민족과 함께 우는 동심일체의 작품들이 주(柱)를 이루고있음을 볼수 있다.      홍용암은 흩어진 무리, 분단된 고국을 만나게 하는 그의 작품을 통하여 통일의 로서의 역할을 기대하는 독특한 특징이 끈질기게 잘 표현되고있다.                             홍용암의 시조에 대한 문학적 고찰        일반적 시조의 형식은 매장이 각기 두 음절군으로 이루어진 하나의 의미적 마디로 나타나있고 음수률은 대개 3.4조를 기본으로 하되 그 구성은 대체로 초장 첫구 3.4조, 두번째구 3.4조로, 중장 첫구 3.4조, 두번째구 4.4조로, 종장 첫구 3.5조, 두번째구 4.3조로 하면서 약간의 증감을 나타내고있다. 종장을 보면 대개 첫마디를 감탄사나 영탄사로 시작하는 경우가 매우 많다.      홍용암의 시조는 구조상 순수하게 전통적인 평시조로 되여있다. 형식면에서는 대체로 초장, 중장, 종장의 3장6구로 이루어져있으며 그 3장6구의 기본틀을 잘 지키고있다. 음수률은 일부 파괴가 있되 그래도 3.4조를 기본으로 하여 조직되여있으며 글자수도 44자 내지 45자좌우를 잘 유지하고있다.      한편 홍용암은 종장부분에 있어서는 보통 널리 사용되는 감탄사나 영탄사를 기본상 구사하지 않고있는데 이는 정형률에 얽매이기보다는 그의 남다른 시조의 특성상 신중하고도 긍정적인 시상을 담는데 적합한 파격으로 볼수 있다.      홍용암은 시조 10집을 단시조로 쭉 끌어오다가 맨 마지막 만은 련시조로 썼다. 이것은 그의 깊은 사상내함을 잘 나타낼수 있도록 하려는 저자의 고민을 엿볼수가 있게 한다. 시조력사에서 초기보다 후기에 들어와 련시조, 엇시조, 사설시조 등의 파격시조가 나타난것은 독자에게 강렬하게 전달하고저 하는 깊은 사상과 그 흐름이 점차 표현된것이므로 홍용암의 역시 이런 맥락에서 리해할수가 있다.      필자는 작품의 주제는 창작자의 세계관과 삶의 진행과정과 깊이 관련되여있다고 본다. 민족문학 혹은 최근에 많이 론의되고있는 생명사상 및 생태계운동 등 리얼리즘문학과의 차이가 있는것이 아니고 다만 그것이 작가의 사상과 존재와 직결된다고 보지를 못한거지, 그것을 우리 민족문학 혹은 리얼리즘문학의 내용으로 하는것은 당연하다고 본다. 특별히 홍용암의 시조집은 력사의식과 현실의식이 통합적으로 시종일관 청일색으로 민족의 운명을 둘러싸고 통일의지로 흐르고있다는데서이다. 나는 많은 시조집을 보았지만 이렇게 획일적으로 매수마다 몽땅 민족성으로 관통된것을 보기는 홍용암의 이 시조집이 처음인것 같다.      시든 시조든 소설이든 무엇을 쓰려면 쓸 내용이 요구되기 마련이다. 물론 이때의 은 글의 소재 혹은 주제를 가리킨다. 글을 쓰는데 소재나 주제만큼 중요한것은 없다. 소재도 중요하지만 주제는 더욱 중요하다. 창작자의 세계관이 깊이 반영되여있는것이 다름아닌 글의 주제이기때문이다.      시조의 주제도 작가의 세계관에 의해서 결정된다는것은 덧붙여 설명할 필요가 없다. 그렇다고는 하더라도 시조의 내용을 세계관과 민족의식과 관련시켜 리해하려고 하면 주제라는 말보다 의미, 가치, 의도, 의식이라는 말이 좀 더 적당할는지도 모른다. 시조가 지니고있는 의미, 가치, 의도, 의식이 실제로는 시조의 주제를 결정하기때문이다. 홍용암이 민족을 보는 관점 및 홍용암의 지나온 삶과 력사가 그의 작품의 세계를 구성하는 주된 사상이나 철학 등으로 되였기때문이다.      홍용암의 시조집 는 순수 문학적으로 봤을 때 그 가치가 매우 높은 예술적인 측면도 무시할수 없지만 더우기 그 사상내용상에서 애국심과 민족성을 고양시키는 주제들이 훨씬 더더욱 높은 가치를 가지고있다.      더우기 시조집의 첫 수부터 마지막 수(맺음시)까지 우리 민족의 진한 숨결이 배여있는 민중의 노래임을 통하여 깊은 애정을 느끼게 만든다.                  제1집: 망국노 설음 (망향시조 편)                           류랑가족                                   할아버진 부산출신 아버지는 도꾜태생                        이몸 역시 거북둥이 만주에 와 태줄 끊고                      집 잃고 나라 잃은 몸 구름처럼 떠돌았네                                       자장가              할아버지 망향가락 아버지의 장탄식            자장가로 들으면서 이 몸은 자랐나니            나라없는 망국노 설음 뼈속까지 사무쳤네.                            백발구름              저 하늘 오락가락 떠도는 백발구름            세월따라 바람따라 검은 머리 희였다네            슬프다 실향민신세 망국노설음이여!                  우의 세 시조를 읽으면서 력사의 비운을 저주하면서 떠돌이신세가 된 나라 잃은 백의동포의 수난이 가슴 먹먹하게 다가온다. 일제의 침략으로 정든 고향과 조국을 빼앗긴 우리 민족의 설음들과 애환이 깊이 느껴진다. 시인이 자자가로 들어온 아버지와 할아버지의 장탄식, 망향가락이 상기도 뇌리에 남아 그 기억을 시조로 옮긴 점이 새삼 고맙다. 시인은 , , 라고 피의 절규를 한다. 우리는 절대로 그런 비운의 력사가 재연되는 아픔을 두번 다시 겪어서는 안된다.      필자는 시인의 삶과 이곳 중국 조선족들의 삶이 표면적으로는 중국사람이지만 실질적으로는 조선인의 피가 흐르는 부정할수 없는 현실의 문제를 잘 알기에 아마도 서정적주인공인 시인이 그 공통된 심경을 상술한 망향시조 , , 등에서처럼 이렇게 표현하지 않았나 생각한다.      너무나도 가슴을 뭉클하게 하는 홍용암시인의 한맺힌 망향시조를 읽으며 노산 리은상의 시조작품 를 소개한다.      모두 10수로 되여있는 시조이다.                          가고파           내 고향 남쪽 바다 그 파란 물 눈에 보이네         꿈엔들 잊으리오 그 잔잔한 고향 바다         지금도 그 물새들 날으리 가고파라 가고파...        작품의 배경은 고향 경남 마산이 시적 배경이다. 이 시조는 작곡으로 2수를 묶어 1절 가곡으로 탄생시키면서 현대시조로 안겨준 공로는 크다. 화자는 과거를 회상하면서 그 문학적 상상력은 깊은 향수에 젖게 한다.      그러나 홍용암의 은 고향을 생각할수도 없는 깊은 비애를 주고있다. 그러므로 망국의 과거를 교훈으로 삼아 오늘날의 현실을 더더욱 정시해야 할것이다. 언제나 력사의 연장선 우에서 오늘의 험준한 현실을 관조해야 할것이다.      수구지심(首丘之心)이라고 했다. 고 했던 말은 맞는 말일것이다.               제2집: 귀향나그네 (귀향시조 편)                          옛 동무                            그리워서 찾아오니 백골만이 묻혔고나                  봄언덕에 함께 누워 피리 불던 옛 동무여                   그제날 청운의 꿈을 어이 버려 갔느냐?                                    첫 사랑           매달려서 떼여놓고 끝내 두고 왔던 녀인         못잊어서 다시 오니 가마 탄지 아득 옛날         내 하늘 뱅뱅 맴돌다 울며 간 새 한마리...        홍용암의 귀향시조는 현실적으로 많은 문제점을 던져주는바 특히 시인은 력사와 오늘을 마주 앉혀놓고 하나의 공간에서 현실의 문제와 그 원인을 파고들면서 의 화두(話頭)를 세상을 향해 던져주고있다.      현재 중국의 조선족사회는 현실적인 삶의 문제점의 관점에서 볼 때 물질만능주의로 인한 가족의 붕괴현상과 인정이 메마른 사회현상, 교육의 문제... 등 여러가지 엄중한 부작용문제가 많다.      요즘 류행되는 연변가요중에는 라는 노래가 있다. 그 가사 내용이 인데 아마 이것이 이곳 사회의 신의 현주소가 아닌가 한다.      홍용암도 찢어지게 가난한 생활로 인하여 필을 던지고 생활전선에 뛰여들었던 13년의 절필생활이 있었기에 그의 시조 에서 동무에 이라는 단어를 사용했으며 , 이란 표현을 함으로서 인연에 대한 허망함을 읊조리고있다.      인연이란 묘한 법이다. 흔히 이 있다고들 하지만, 그게 존재하는것인지 아니면 그렇지 않은것인지 나약한 인간의 판단으로서는 쉽게 단정지을수는 없다. 그런데 홍용암은 이런 인연법에 무게를 싣고 시상을 일으켰다.      그의 시조 에서 보면 그런데 홍용암의 귀향시조는 이라는 단어를 적절히 사용하므로 이미 지나간 시간들의 허무함을 의 인연법으로 나타내고있다.      인연법을 토대로 한 백승언의 시조 한수를 소개한다.                          먼 후날             나 그대 불쌍하여 차 한잔 권합니다           그댄 내가 딱해보여 그 한잔 받습니다           먼 후날 주님앞에서 그 사람을 만날가?             제3집: 리산의 슬픔 (리산가족상봉시조 편)                            상 봉                                      홍안에 헤여져서 백발되여 만나니                  흐르나니 눈물이요 나오나니 방성통곡                  이 모든 인간비극이 누구 죈가 묻노라!                           바 다              애고 이게 아들 아냐 흑흑 엄매 고생했수           사라질가 덮쳐오고 쓰러질듯 안기운다           삽시간 울음폭포라 눈물바다 출렁출렁...                           불 효             헤여지면 영 마지막 다시 못볼 얼굴인데           도로 갈걸 왜 왔노 몹쓸 이놈 불효로다           차라리 이 어미앞에 제술 붇고 가렴아...        우의 3편의 시조 , , 는 문학적으로도 높이 살만한 가치가 있다. 특히 작가의 시조 에 나타난것처럼 이란 말이 가슴을 후벼낸다. 그것은 리산이라는 슬픔을 절절히 표현하였을뿐만이 아니라 어쩌면 이것이 또 새로운 리별을 약속하는 고통의 상봉이기때문이다. 상봉의 기쁨이 그만큼 불안한 현실적고통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서로의 얼굴을 기억할수 있는 지적나이가 10세전후라고 심리학자들이나 교육학자들은 말을 한다. 하지만 우리 민족은 분단의 아픔이 시작되여 천만리산가족이 발생한지도 어언 무려 70여년의 시간이나 지났다. 서로의 얼굴을 알아볼수 있는 나이가 그만큼 훨씬 멀리 사라졌다는 말이고, 비록 인간의 수명이 더 길어졌다고는 하지만 그것은 고작 일부에만 해당되는 사실일뿐이며 보편적으로 보아서는 작가의 시조 에서 서술된 의 표현대로 이제 단박 죽을 일만 남았다.      더욱이 시조 에서 라고 하면서 헤여지기 직전 산 사람에게 를 지내는 그 차마 눈뜨고 볼수 없는 참담한 장면은 삽시간 눈물범벅이 된 우리의 가슴을 완전히 쿵- 무너지게 만든다.      우의 이 두수의 시조는 가히 의 백미라고도 할만 하다.      홍용암은 시조를 통하여 묻는다.      장강의 세조(조선7대 임금)에 대한 시조 한편을 싣는다.                            세 조           피비린 내 왕권강화 조국산하 울어대고         끝내는 조카까지 주살의 칼 씌운 대가(代價)         그 자신 벌을 받았나 참혹정벌 받으면서...        계유정난으로 왕좌에 오른 세조는 계획적이였는지 아니면 주변의 상황이 부득히 그랬었는지 잘 알수는 없지만 어쨌든 끝내 어린 조카를 극형에 처한다. 정국은 요동을 쳤고 온 장안은 쑥대밭이 되였다. 외교엔 영원한 선린도 적도 없다 했듯이 정치도 아마 그런것이 아닌지도 모르겠다.       홍용암의 시조 제3집은 리산가족의 생리별의 아픔을 민족의 아픔으로 승화시켜 표현한 문학적보고(宝库)이다.                제4집: 분단의 한 (분단시조 편)                           인간비극                                북에는 내 아버지 남에는 내 어머니                    피눈물 생리별로 반백년도 지났구나                     원통타 이 긴 비극을 언제야 끝장낼고???                          분단의 한              반백년을 타고 타서 재만 수북 이 한가슴           이제는 불도 없다 연기조차 나지 않네           하얗게 재가 된 마음 먼지만 풀썩풀썩...                           기 도             꿈에도 너를 불러 목이 메여 울고 운다           통일아 어서 오라 두손 싹싹 제발 빈다           네 와야 이 몸이 산다 칠천만이 살리라!        홍용암은 우의 3수의 시조 , , 등을 통해서 우리 민족에게 있어서 가장 절실한 문제인 분단을  아주 짧디짧은 시조의 음률을 지켜가면서 서정적으로 너무 절절하게 잘 표현하여 고도로 함축된 간결한 그 시구들속에 깊은 뜻과 풍부한 정서를 담아내고있다.      그가 그토록 비극적 현실을 마주하여 종래로 외면하지 않고 직시하면서 민족적자각이 있는 깊은 뜻의 시를 잘 표현할수 있는 그 주되는 원인과 밑바탕은 작가의 소년시절부터 지금까지 줄곧 통일에 대한 신앙적 갈망이 몸에 푹 배여있었기때문이라고 필자는 생각한다.       홍용암은 그의 시조를 통하여 을 실현함에 있어서 동족이 피를 보는 편파적인는 절대로 거부하고있음을 볼수 있다. 시조 을 보면 라고 표현하면서 그 어느 편에서 벗어나고있다.      통일문제에 있어서는 홍용암은 퍽 랭정한 견해를 갖고있다. 통일을 간절히 원하지만 결코 어떤 외세의 힘이나 또는 내부적인 전쟁으로 인한 무력통일을 원치 않으며, 남북이 현상황을 인식하고 평화적인 화합의 장으로서의 통일을 원하고있음이 바로 그의 의 전체 시조를 통해 일관적으로 관통하고있는 맥이라고 볼수 있겠다.      또한 이란 시조를 통하여 하는 충절의 간절한 바램을 잘 나타내고있다.      홍용암시인의 통일에 대한 충절과 념원을 생각하며 개성시 선죽교의 피가 흐르는 정몽주의 시조 한편을 소개한다.                          단심가           이 몸이 죽고 죽어 일백번 고쳐 죽어         백골이 진토 되여 넋이라도 있고 없고         님 향한 일편단심이야 가실줄이 있으랴?!  *.        홍용암의 은 분명히 이였을것이다.              제5집: 우리 민족끼리 (6.15선언시조 편)                         끼리끼리                                 메새는 메새끼리 사슴이면 사슴끼리                    흰옷 입은 우리도 백의동포 우리끼리                    좋구나 한데 어울려 천만년 살고지고...                                                  축배             북남간 공동선언 삼천리가 환호한다         에루화 어깨춤에 축배 철철 넘쳐난다         동해가 술동이라면 벌써 굽이 났으리!                          먼 길           서울에서 평양까지 그 얼마나 멀고먼지         반백년을 돌고 돌아 이제 겨우 닿았구나         엎디면 코가 닿을데 어이 그리 왔던고?        홍용암의 의 시조 14수는 첫 수 부터 마지막 수 까지 작가의 흥분된 모습을 곳곳에서 찾아볼수가 있다. 특히 의 자주정신에 대한 힘있는 노래가 전체적으로 아주 명쾌하고도 거창하게 흘러나오는것을 느낄수가 있었다.       앞의 4집의 평에서도 필자가 언급했듯이 홍용암은 통일은 반드시 외세의 간섭이나 작간이 없이 집안의 화해와 단합을 전제로 해결되여야 함을 설파하고있다. 시조 에서 , 시조 에서 등의 표현은 우리 민족의 운명을 돌려세우는데 있어서 과거처럼 몇몇 주변 강대국과 국제정세에 휘둘리우는 희생양이 더 이상 되여서는 안된다는 작가의 일관된 사상을 반영하였다.      민족의 존엄과 자주권은 우리 민족 스스로 찾아야 한다는 간절한 바램이 전반에 선명하게 나타나고있으며 이것을 계기로 민족의 축제를 노래한 의 종장 라는 이 시구절은 6.15공동선언이 우리 민족에게 주는 큰 기쁨을 가장 잘 표현한것이라고 할수 있겠다.      (2000.6.15)이 선포된지 벌써 17년이 흘렀다. 이때의 상황을 이렇게 환희로 표현했던 시인 홍용암은 지금은 무슨 생각을 하고있을가 새삼스레 궁금해진다.      작금의 현실은 더 암담하게 미래가 다가온다. 오늘 한반도를 둘러싼 긴장감은 휴전이후 가장 심각한 지경에 이르렀다. 그것도 외세에 의한 각종 압박으로 인하여...      어서 빨리 전운이 가시고 홍용암시인이 노래했던 시조 에서 로 표현한것처럼 변한것 하나 없는 하나로 통일된 이 강토우에서 시조 >의 중장에서 노래한 는 그런 날이 오기를 간절히 소원해본다.      의 날, 남과 북이 어깨춤을 추며 목놓아 불렀던 리은순의 시조를 소개한다.                           아리랑             하얀 옷 품속으로 아리랑 아리랑이           아득한 그날에도 눈물겹게 부른 노래           달 뜨고 락엽 지거든 그속에도 아리랑...                제6집: 백두산 산봉우리 (애국시조 편)                        백두산 산봉우리                   동에 첩첩 서에 겹겹 열여섯 산봉우리              조국을 옹위하고 우뚝 솟은 총대런가               내 나라 금수강산을 철통같이 지킬란다!                           조국기상              만수천산 낙락장송 어이 사철 푸러르며          천길 절벽 기암괴석 어이 우뚝 숭엄한고          내 조국 그 기상 서려 장엄하고 푸를시구!                      백두산봉 해돋이            천지간의 조화런가 구름바다 해가 둥실          백두일출 절승경개 천하제일 장관이다          동방에 해 솟는 나라 붉게 타는 삼천리...        홍용암의 제6집 는 백두산의 웅장한 기상을 바라보며 그 백두산을 조국의 모습으로 받아들이는 모티브를 형성하여 라는 특별한 장을 마련하였다.      백두산은 민족의 명산으로서 특별한 의미를 가지고있다. 해발이 2750m로서 한반도에서 가장 높은 산인 백두산, 그 정상부분에는 화산이 폭발할 때 분화구에서 용솟음쳐나온 용암이 잘게 부서져 생긴 흰색의 부석이 20m정도 쌓여있어서 처럼 보인다 하여 백두산이라 부르게 된것이다.      시인 홍용암은 시조 에서 라고 하며 민족의 자주권도 통일도 우리가 스스로 지켜야 한다는 숭고한 사명과 심오한 사상을 노래하였다. 또한 , 의 각 장을 통하여 조국을 이 세상에서 제일 아름다운 나라로 묘사하였다.      분명 경계로 보면 백두산도 천지를 중심으로 하여 반으로 나뉘여져 조선과 중국의 경계를 이루고있다. 그렇다면 작가가 표현하고자 하는 조국은 어디를 말하는것인가? 의 시구나 문맥은 명백히 한반도를 가리키고있는데 작가는 분명 중국 조선족동포이다. 여기에서 민족의 아픔과 통일의 열망이 더욱더 작가의 민족혼을 불러일으키지 않았을가 필자는 생각한다.      시조작품 을 보면 갈수록 더 확연히 표현되는 작가의 정체성에 대한 명확함이 드러나있다. 과연 작가의 작품에 깊게 들어갈수록 정체성의 문제에서 과연 이 작가가 중국국적을 소유한 중국국적인이 옳는가 하는 반문과 혼란을 가져오게 된다.      작가의 조국에 대한 정체성의 문제에 관해서는 더 이상 론하지 않고 여기서는 이 정도로 줄인다.      홍용암시조의 제6집 는 단지 문학적인 시조의 형태가 각 장별로 기본적인 시조의 음률을 놓치지 않고 특별한 감탄사나 영탄사도 근본 없이 명확한 어휘구사로 각 시조의 제목이 주는 내용을 함축성있게 사실적으로 도도하게 잘 표현한것은 시조작가로서 높이 평가할만 하다.       삼천리금수강산에는 북으로 백두산, 남으로 한라산, 허리가 갈라진 38도 군사분계선을 중심으로 우쪽으로는 금강산, 아래쪽으로는 지리산 등을 꼽는다. 그러나 명산중의 명산은 그래로 금강산을 제일의 반렬에 놓는다. 금강산은 또 온정각지구, 구룡각지구, 일만이천봉을 련상시키는 만물상지구를 떠올린다.      조국의 통일과 남과 북이 마음껏 왕래하는 그날을 소원하며 리군익이 쓴 이라는 시조를 소개한다.                         만물상의 기적              아버지 등에 지고 어머니 품에 안고            금강산 굽이돌아 만물상 앞에 서서            감도는 눈물 감추려 먼 하늘끝 바라보네                       제7집: 영웅전설 (영웅송가시조 편)                           남이장군                               남아이십 부평국이면 후세수칭 대장부라               영웅이 남긴 글발 오늘도 빛나는데                    동강난 내 조국땅은 뉘라 평정하리오?                            리순신              그 이름만 들어도 치를 떠는 팔도 왜적            임진전쟁 그 막장도 그 손으로 내렸도다            전하라 불멸의 업적 천추만대 빛발치리!                            안중근                  삼천만을 대신하여 그대 이룬 장한 거사            더운 피 휘뿌리며 지사는 갔어도            천추의 애국충혼은 영생불멸하리라!        홍용암은 력사에 길이 빛날 애국영웅들을 칭송하는것을 통해 그들의 영웅정신을 따라배워 조국보위와 통일위업에 적극적으로 나설것을 표방하고있다. 그가 선택한 인물은 하나같이 모두 외래침략에 맞서 싸운 애국충신들이다. , , , 을 평하는 결론이다.      최근에 우연히 발견된 리순신의 한 시를 소개한다.             대장부 세상에 태여나서           쓰이면 죽을 힘을 다하여 충성할것이요           쓰이지 못하면 농사짓고 살면 족할것이니           권세있는 자에게 아첨해 뜬 영화나 탐내는건           나의 부끄러워하는 바이라...                 제8집: 력사앞에 (력사시조 편)                           행주산성                             치마 두른 아녀자라 그런 말 다시 마소                    행주산성 혈전에서 한몫 크게 맡았거니                    아느냐 행주치마라 고쳐 부른 그 전설...                                                     3.1 봉화                하늘땅을 진감했던 독립만세 그 함성           피 끓는 가슴마다 세찬 불길 지폈나니           이 나라 이천만동포 구국에로 불렀더라                            이완용             통째로 국토 팔아 온 국민이 치를 떠니           하늘 찌른 그 악취 후세에도 풍기도다           만악중 제일로 큰 죄 매국인가 하노라!        홍용암의 제8집 를 살펴보면 저자는 력사속에서 오늘을 보고있다. 홍용암은 력사적으로 민중을 통한 항쟁의 불길이 더없이 위대함을 표현하고있다.      을 보면 초장에서 라는 표현이 매우 인상적이다. 임진왜란시기에 권률장군이 왜적들과의 싸움에서 우리 나라의 전쟁력사상 처음으로 라는 특이한 전법을 썼다. 당시 가장 치렬한 전장터의 하나였던 행주산성에서 군사가 턱없이 모자라 부득불 아낙네들까지 전부 동원되여 긴 치마를 잘라 좀 짧게 덧치마를 만들어 입고는 그 치마폭에 적을 까부시는 돌을 주어 담아 싸움을 거들었는데, 라는 이름은 바로 여기에서 유래되였다고 한다. 이 사실을 작가는 시조에서 아주 간결한 시구로 배열해냄으로서 작가의 특별한 력사를 보는 눈과 그것을 어떻게 표현해야만 독자가 바로 쉽게 알아볼수 있는가를 문학적으로 잘 표현하였다.      시조의 기본적 음률을 절대로 벗어나지 않는 아주 짧은 45자좌우로 이 뜻을 정확히 전달한것은 작가의 탁월한 시적 감각이고 어휘전달력의 수준이 놀라운 경지에 이르렀음을 볼수 있다. 아울러 민중을 통한 력사의 비장한 항쟁사가 쓰였음은 그것이 상당한 학술적 가치도 있다고 본다.      는 왜놈들에 맞서는 우리 민족 본격적인 항쟁의 민족단결정신이며 구국의 정신적지주가 되고있다. 세월이 흐르고 흐른다 해도 그 정신은 영원히 죽지 않고 살아있을것이다.      이 운동은 극소수 친일파, 친일지주, 예속자본가를 제외한 전 민족적인 항일독립운동이자 계몽운동, 의병운동, 민중의 생존권 수호투쟁 등 각계, 각층의 다양한 운동경험이 하나로 수렴된 력사상 최대규모의 민족운동이였다.      이 운동의 결과로 말미암아 일제의 무단통치가 끝나게 되여 민족해방운동이 조직적으로 전개될수 있는 여건이 만들어졌다. 이런 력사적배경을 시조 에서 당시의 이 봉화가 전국적이라는것을 로 종장의 음률을 잘 살려 작가가 전하려는 뜻을 정확히 전달한 그 표현기법은 학술적으로도 높이 평가할수 있다.      또한 과 같은 력사의 죄인을 천추의 죄인으로 단죄하면서 이 시조의 중장에서 라고 한 표현은 -- 력사상 공과 죄를 론하는데 있어서 절대로 부끄러움이 없는 깨끗한 력사를 재현하고 만들어가는것이 순수민족문학을 하는 우리 작가들의 몫이라라는것을 말해주고있다.      력사는 우리가 삶을 걸어오는 발자국의 흔적이다. 지울수도 없고 또 지울 필요도 없다.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그것을 보귀한 교훈과 경험으로 잘 섭취, 총화하며 오늘을 걸어가야 한다.      이에 성보용의 이란 현대시조 한편을 소개한다.                               삶               오늘도 걸어가며 삶의 길을 묻는다             묻고 또 물어가며 그렇게 걸어간다             그래도 이 길이 좋다 아쉬운듯 그냥 좋다                 제9집: 민족앞에 (애족시조 편)                             귀로                                       알몸으로 왔어도 소복하고 가는 인생            때가 되여 천국갈 땐 무슨 옷 입고 돌아갈가            이 몸은 어머님 주신 흰옷 입고 가리라...                            민족사랑               누에가 한오리 실밥을 다 토하듯            초불이 마지막 심지를 다 태우듯            그렇게 이 내 사랑을 우리 님께 바치리다!                             생떼              저 땅에서 태여나도 이 땅에서 살고싶소            한번 와서 심취되니 도로 가기 싫어라            정 붙어 못가는 사연 생떼라 나무람마소!        홍용암의 제9집 를 보면 작가의 필호 이 말해주듯이 영원한 화두(話頭)인 정체성의 문제인 두개의 객관적 상관물로 형상화되여있는데 그것이 바로 과 의 이미지이다.      특히 그의 전반적인 시조작품속에 중요하게 나타나는 시어가 바로 이다. 이는 작가 자신이 언제나 백의민족의 한 성원임을 망각하지 않고 그의 뇌리에 깊이 각인되여있기때문에 나올수 있는 표현이다. 작가가 철저히  백의민족의 본색을 지켜 순결한 애족과 애국을 위해 한평생 살고 죽기를 굳게 맹세한 그 강렬한 민족의식이 그의 가슴속 심장 깊이에 뿌리박혀있다고 보아야 할것이다.      동시에 작가는 고국을 멀리 떠나 흰옷 입은 어머니를 그리면서 자기도 흰옷을 입고 마지막길을 가기를 원하지만 현실적 부조화로 인하여 몹시 갈등하는것을 작품 곳곳에서 느낄수가 있다. 를 보면 하는 간절한 바램은 있지만 현실은 작가를 으로 취급하며 매정하게 밀어내고있다. 그리하여 작가는 자기의 불합리한 정체성을 에 비교하여 표현함으로서 끝없는 아픔과 슬픔과 허무를 나태내였다.      그러면서도 홍용암은 어쨌든 자신이 같은 뿌리이고 같은 민족임을 주장하면서 조국의 북과 남의 통일을 위해서라면 작가 스스로의 목숨을 바쳐서라도 가 되여 그 일을 감당하겠다고 선언하고있다.      어떻게 보면 류랑이민인 작가는 철저하게 그의 작품 에서 이미 표현했듯이 고 하지만 정녕 그 대상인 을 민족으로 본다고 하더라도 그 민족에 대한 정체성 혼란의 현실은 아무래도 작가가 평생 안고 가야 하는 숙제로 영원히 남는다.      작가가 생각하는 는 과연 누구인가? 2006년 에서 출판된 그의 시조집 는 그 앞표지 웃부분에 명시, 기록된 그대로 이다.      시조집 의 제4집인 의 첫 시조 에서 보면 를 표현했고 9번째 시조 에서도 보면 라고 하는 갈등의 요소가 작품 곳곳에 짙게 깔려있다.      또 제5집의 의 한 시조인 에서 보아도 라고 분단에 대한 북받치는 그 아픈 감정을 목청껏 노래로 불렀는데, 같은 피를 나눈 우리도 같이 눈물을 흘리지 않을수 없다.      평론의 마무리에 들어가면서 필자의 가슴에도 점점 홍용암시인의 아픔이 아렷이 다가오는것은 -- 이렇게 철저하게 우리 민족을 사랑하는 사람이 설 곳이 없다는 비극적 사실이다. 어쩌면 류랑하는 이 민족의 한결같은 설음이기도 한것이 가슴에 먹먹해져온다.      불현듯 이란 옛 노래 가사가 떠오른다.   오늘도 걷는다마는 정처없는 이 발길 지나온 자욱마다 눈물 고였소 선창가 고동소리 옛님이 그리워도 나그네 흐를 길은 한이 없어라   타관땅 밟아서 돈지 십년 넘어 반평생 사나이 가슴속에 한이 서린다 황혼이 찾아들면 고향도 그리워져 눈물로 꿈을 불러 찾아도 보네...                     제10집: 력사와 민족앞에 (맺음시)        마지막 제10집인 (맺음시)는 시조집 전편에 흐르던 내용을 개괄, 총화하면서 력사가 남겨준 비극과 현실위기를 련시조 형식으로 다시 한번 환기시키고 력사와 민족앞에 그것을 치유하는 방법을 제시하며 지난 과거와 우리 민족의 수치, 책임, 위기, 사명을 역설하고 마지막에 로 결론을 내리고있다.                                                            맺는 말        홍용암의 시조집 의 평론을 마무리하려 한다. 이번에 개인적으로 이 에 관한 평론을 쓰면서 무시로 가슴이 먹먹해짐을 느끼며 많은 생각을 하게 되였다.      무엇보다 홍용암이라는 작가의 삶이 확연히 조명됨을 보면서 해결되지 않는 이 나의 생각은 --      ① 홍용암이 시조집에서 추구하고자 하였던것은 무엇인가?      ② 홍용암의 시조집을 읽는 독자들은 구경 어떤 생각을 갖게 될가?      ③ 홍용암에게 있어서 민족이란 무엇이며 그 주체는 무엇인가? 하는것이였다.      보다싶이 홍용암의 본 시조집 는 도합 127수의 시조를 다시 10집으로 나누어 저술되였다.      그 내용은 --      ①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망향가를 통하여 망국노 설음을 표현했으며      ② 귀향을 통하여 인생의 허무함과 무(無)의 인연법을 나타냈으며      ③ 리산가족상봉을 통한 리별의 한과 비극의 아픔을 노래했으며      ④ 남과 북의 분단의 고통을 통하여 통일을 희망했으며      ⑤ 6.15공동선언을 계기로 민족의 동질성과 그 단합을 축하 및 주창했으며      ⑥ 백두산 기상을 통한 조국찬가 및 애국정신을 노래했으며      ⑦ 력사의 영웅인물들을 통한 조국보위전통과 그 의기의 배움을 강조했으며      ⑧ 력사사건속의 인물들을 통하여 그 공과 죄를 구분했으며      ⑨ 민족앞에 마땅히 다해야 할 책임과 사명을 촉구했으며      ⑩ 전체를 하나로 아우르는 맺음시로 자각과 헌신과 다짐을 표현하였다.      그 예술적 특징을 보면 --      먼저 앞에다는 자유시의 형식으로, 그다음 단시조의 형식으로, 마지막 맺음시는 련시조의 형식을 취하였다는것이다. 매 평시조마다 3장6구의 기본틀을 보편적으로 유지하였고 3.4조를 기본으로 하여 조직하였다. 글자수도 44자 내지 45자 좌우를 잘 유지하였다.      홍용암의 시조의 예술적특징은 정형률에 굳이 매이지 않고 종장 첫 구의 감탄사나 영탄사를 기본상 구사하지 않았으며 주옥같은 시어를 잘 선택하여 엄숙하고 긍정적인 사상을 담는데 노력한 흔적이 력력히 전 작품을 통해 나타나있다.      특히 홍용암시조의 구성상 형상적특성을 깊이 연구하면 우리 선조들이 물려준 평시조의 전통작법대로 초장, 중장에서 각각 3(4).4.3(4).4로 흐르던 음률조직을 종장에서 3,5,4.3으로 변하게 하면서도 그 특이한 매력이 바로 종장의 5음절로 구성한 두번째 구에 있다는것이다.      홍용암은 시조를 구성하는 초장, 중장을 현대자유시 형식으로 매 장마다 그것을 다시 각각 1개 련, 2개 행으로 뜯어서 나누고, 시조의 시작, 발전을 그렇게 이끌어오다가 고조부분인 종장만은 갑자기 2행이 아닌 3행으로 모든 작품을 엮는것으로 시조형태령역에서 획기적인 구성방법을 개척하였는데 이에 대해서 필자는 박수를 친다.       결론적으로 홍용암의 는 현대자유시와 고전적전통시를 작가 특유의 시작법으로 자유스럽게 구사하였음을 예술적으로 높게 평가할수 있다.      가장 놀라운것은 우에서도 여러번 상술하다싶이 주제에 가장 알맞는 시어를 잘 선택하여 감탄사나 영탄사가 없이도 시조작품을 훌륭히 완성해냈다는것이다. 특별히 작가는 시조의 초장, 중장, 종장의 구성상에서 적절한 시구를 배렬함으로서 기존 시조들이 보편적, 일상적으로 사용하고있는 감탄사 혹은 영탄사를 전혀 쓰지 않고서도 함축된 그 뜻을 독자들에게 더욱 효과적으로 제시한것은 놀라운 문학적기법이라고 할수 있다.      시조는 우리 나라 고려말부터 리씨조선에 이르기까지 산생, 성행, 발전되여온, 우리 민족의 정형시에서 최고로 함축되고 정제된 시가형식이다. 이것을 한달도 안되는 아주 짧고 빠른 시간내에 책 한권에 달하는 127수를, 그것도 라는 그 거창한 주제를 한줄에 쭉 꿰인 10집으로 나누어서 소화해냈다는것은 홍용암시인의 재능이 매우 출중함을 설명한다.      작품의 전체를 관통하고있는 민족애, 고국애, 통일의지로 전반 시조가 구성된것은 참으로 탄복하고 존경할만한 일이지만 작품 곳곳에서 배여나오는 외로움, 고독감, 그 슬픔은 적당히 좀 극복되였으면 하는 바램이다.                                  ( 2017년 8월 12일 연길에서, 평자는 한국에서 저명한 시인이자 문학평론가임.)    
965    詩가 "잠꼬대 하기", "눈물코물 쥐여짜기" "자화상"되지말기 댓글:  조회:2554  추천:0  2018-02-21
평론:               력사와 민족앞에 바친 젊은 시인의 진정                     -- 시조집 를 읽고                                     (중국) 우상렬                홍용암선생은 우리에게 작가보다는 사업가로 더 많이 알려진것 같다. 그가 쓰고 있는 영예의 월계관만 보아도 크게는 , , , , 에, 작게는 , , … 등등 그 대부분이 경제사업면에서 두각을 나타낸것들이다. 그가 맡고있는 사회적 직책을 볼 때도 연변백운그룹 회장, 연변청년기업가련합회 부회장, 연변두만강지역국제합작개발추진회 부회장… 등도 거지반 경제령역과 관계됨은 더 말할것도 없다.      사실 나는 이런 사업가를 그리 좋아하지 않는다. 어쩐지 자꾸 돈냄새(銅臭)가 풍기기때문이다. 우리 사회 시장경제의 악취가 전형적으로 이들 사업가들가운데서 많이 난다는 선입견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런데 홍용암회장이 시를 쓴다는 아취(雅趣), 그것도 이미 10여권의 시집을 출간한 시인이라는것을 알게 되면서부터 사업가에 대한 나의 시각, 적어도 홍용암회장에 대한 나의 시각은 많이 교정되였다. 특히 이번에 우연한 기회에 인 를 접하게 되면서부터 그러한 나의 시각교정은 한단락을 고하게 되였다.      현재 우리 시는 너무 좁고 속되다. 남이야 알아듣든 말든 나만이 아는 , 그리고 자기만의 에 바쁘다. 한마디로 자기 혼자서 찧고 빻고 하는것이 목전 우리 중국조선족시단의 시인들의 이다. 더우기 젊은 시인들일수록 더더욱 그러하다. 내가 홍용암회장에 대한 시각교정을 근본적으로 다르게 하게 된것은 -- 그의 시조집 가 바로 그러한 (?)을 철저히 떨쳐버리게 하는 우리의 력사, 시대, 민족, 고국, 인생… 등에 대한 거창한 담론의 시적토로이기때문이다.     시조집 를 보면, 제1집 (망향시조편), 제2집 (귀향시조편), 제3집 (리산가족상봉시조편), 제4집 (분단시조편), 제5집 (6.15선언시조편)까지가 근현대사에 있어서 우리 민족이 충격적으로 받아안은 희로애락을 읊고 있다면 그 뒤부분인 제6집 (애국시조편), 제7집 (영웅송가시조편), 제8집 (력사시조편), 제9집 (애족시조편), 제10집 (맺음시) 등은 시적 자아를 통한 시인의 고백을 토로하고있다. 물론 그의 시는 민족적 희로애락과 시인 개인의 진솔한 고백이 잘 녹아들어있다.      제1집 (망향시조편), 일제 강점하에서의 우리의 망국노 신세를 읊고있다. 그것은 신세이다. 이로부터 숙명처럼 따라다니는 타향살이, . 부제인 이라는 그 이 시사하다싶이 바로 타향에서 고향을 그리는 정조(情調)를 주요한 시적 모멘트로 하고있다. 시조 은 극명하게 이것을 말해주고있다. 그래서 망향은 일종 대물림하는 민족의 정한이 되여 자장가가 되기도 한다. 쓸쓸하고 쓰라린 민족의 현실이 아닐수 없다. 났다. 인간은 상상, 환상 내지는 꿈의 동물이다. 실제로 욕구만족이 이루어지지 않을 때 상상, 환상 내지는 꿈을 통하여 욕구만족을 추구한다. 그래서 프로이드는 꿈을 욕구의 만족이라 했던가? 다른 한 시조 을 좀 보자. 그런데 꿈은 어디까지나 꿈, 깨고나면 허황한것... 그래서 결국 망향은 한으로 남는다. . 그래서 남는 소원의 하나는 이다.      일제의 36년식민지, 우리는 삶의 터전에서 뿌리채 뽑히우고 이리저리 흩어지고 말았다. 은 이것을 극명하게 말해주고 있다. 그럴진대 그것은 는 눈물투성이의 의 고향이다. 그러나 귀소본능(歸巢本能)은 우리를 자꾸 고향으로 끌어들인다.      제2집 (귀향시조편)는 우리에게 이것을 말해준다. , 른 고향을 찾은 는 외로움과 설음만 북받친다. 이 제2집에서는 이 주요 모멘트가 되고있다. 시조 , , … 등에서는 고향을 찾아왔으되 옛 고향이 아닌 그 쓰라린 서글픔을 노래하고있다. 은 잃어버린 고향에서의 아련한 첫사랑의 아픈 추억을 읊고있다. , 에서는 도, 도 없고 도, 도 없는 귀향의 허전함을 토로하고있다. 에서는 략엽귀근(落葉歸根)이런가 늙어서 돌아오는 고향이건만 고향의 을 당하는 실향민신세를 읊조리고있다. 에서는 로 비탄에 빠지고 만다.      1950년 6월 25일에 발발한 은 천만리산가족(離散家族)을 낳았다. 동서랭전이 무너지고 남북의 화해무드가 무르익음에 따라 남북의 리산가족도 상봉의 장을 가지게 되였다.      제3집 (리산가족상봉시조편)은 바로 그 상봉에 바쳐진 시편들이다. 에서는 을 고 읊조리고있다. 에서는 이라는 좀 더 구체적인 시적이미지로 천만리산가족의 슬픔을 이야기하고있다. 그래서 오매에도 그리던 상봉은 눈물바다를 이룬다. 시조 과 는 이 상봉의 한순간을 클로즈업하고있다. , 리산가족의 상봉은 감격적이다. 보고픈 한이 풀리는 순간들이다. 그런데 그것은 새로운 리별을 전제로 한 상봉이였다. 그만큼 그것은 불안하고 고통스러운 상봉이기도 하다. 보다싶이 는 로모의 절규를 통하여 그 상봉이 결국 로 이어지는 비극성을 극명하게 드러내고있다. 도 같은 시적경지를 구사하고있다. 그래도 재상봉을 기약하며 피눈물로 갈라지는 리산가족들이다. 은 이것을 잘 말해준다. 실로 주는 너무나 아픈 상봉인것이다. 에서도 라고 토로하면서 이제 얼마 남지 않은 짧디짧은 여생이나마 서로 함께 살고싶은것이 파파늙은 그 의 애절한 소원이건만 그것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며 부득불 또다시 갈라질수밖에 없는 민족의 비극을 읊조리고있다. 그런데 기약하는 그 재상봉의 불확실함에 비극성이 더 한층 고조된다. , 는 그간의 사정을 잘 말해주고있다. 그리하여 리산가족의 그 눈물은 결과적으로 는 억수의 눈물인것이다.      1945년 8월 15일에 맞이한 은 우리 민족에게 있어서 최대의 명절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그것은 또한 다른 한 비극의 시작임도 틀림없었다. 한반도가 동서의 리념분쟁과 외세개입의 장이 되면서 남북으로 나뉘기 시작했던것이다. 그러다가 의 발발은 그후 남북의 분단대립을 더욱 확실하게 고착시키고 말았다. 그래서 그 비극은 분단된지 60여년이 되는 오늘에까지 이르고 있다.      시인은 제4집 (분단시조편)에서 바로 이 분단의 비극을 읊고있다. 시인은 분단현실을 로 친부모형제가 생리별한 으로 파악하고있다. 그리고 는 , 인 으로 받아들이고있다. 에서 와 에서의 등은 자연의 유연성과 인간의 경직성을 대비시키면서 그 안타까움을 토로하고있다. 자연을 끌어들인 이런 안타까움은 새를 매개로 한 에서 나 에서 등 자유로운 새와 그렇지 못한 인간을 대조화시킨데서도 잘 나타나고있다. 에서 와 에서 는 동서랭전과 외세개입의 유산이 서서히 사라진 오늘의 세계적인 판도에서 유독 우리민족만이 아직도 그 비극에서 벗어나지 못하고있는 현실을 더없이 안타까워하고있다. 이런 안타까움은 자연히 통일에 대한 간절한 갈망과 소원으로 치닫는다.      에서 시인은 그래도 통일의 기미가 보이지 않자 이란 옛말을 기편으로 단죄하고 만다. 에서는 또 중국의 맹강녀 고사에 기탁하여 남북을 가로지른 우리 민족의 인 콩크리트장벽을 무너뜨릴 팔천만의 소원을 잘 나타내고있다. 에서는 . 그리고는 라고 부르짖으며 거창한 민족의 대의로 이어진다. 시인의 이런 간절한 념원은 통일을 위해 한몸 바칠 비장한 각오를 하게 한다. 결국 시인은 에서 로 통일의 제물이 되기를 맹세한다.      그러나 시인은 그 을 실현함에 있어서 동족이 피를 보는 편파적인 론리는 절대로 거부하고있다. 시조 에서 라고 설파하면서 그 어느 에서 벗어나고있다.      새 천년 벽두에 우리 민족의 통일의 서광은 밝아왔다. 김정일국방위원장과 김대중대통령의 북남정상회담 및 채택은 우리 민족 성원들에게 통일에 대한 새로운 기대와 희망으로 부풀게 했다. 시인도 례외가 아니다.      제5집 (6.15선언시조편)가 이것을 말해준다. 시조 의 에서는 을 이제나마 것을 아쉬워하면서도 다행으로 생각하고있다. 그리고 에서는 남북정상들간의 에서 은 기대감에 부푼다. 또에서는 라고 하면서 을 민족의 상처를 치유하고 통일로 나아가는 새로운 출발점으로 보고있다. 그러니 그것은 에 하는 의 장임에 틀림없다. 민족동질성이 그 어느때보다도 고양되는 순간이다. 에서 , 에서 , 에서 이다. 그래서 시조 에서 마침내 맹세한다. 그리고 그 는 으로 이어지며 참견하는 양키들은 몽둥이로 내쫓기 전에 어서 썩- 물러가야 하는 불청객으로 전락된다. 시조 의 에서 보다싶이 우리를 간섭하는 외세를 완전히 내쫓은것이였다. 그러니 자연히 의 우리 민족의 의 론리이다. 이제는 한다. 동시에 여기에 가 가세한다.      제6집 (애국시조편)는 그야말로 애국의 기상이 흘러넘친다. 에서는 조국의 기상을 과 에 비겨 노래하고있다. 시조 , , 이 세편은 제목에서도 알수 있다싶이 민족의 성산인 에 기탁하여 삼천리금수강산을 노래했고 조국보위의 뜻을 피력했으며 조국의 승리와 영광을 기원했다. 시조 , , , 에서는 조국을 지켜 나선 들을 노래하고 자기도 보귀한 청춘과 생명을 서슴없이 조국을 위해 바치겠다고 맹세하며 하고있다. 또 시조 에서는 일시적 난관에 봉착했을지언정 조국의 미래는 밝다는것을 굳게 확신하고있다. 그래서 에서는 견강하게 오늘을 살아가는 혁명적락관주의정신을 고창하고있다.      제7집 (영웅송가시조편)에서는 를 서장으로 하고 력사상 나라를 지키고 빛낸 영웅인물들인 을지문덕, 연개소문, 강감찬, 정몽주, 최영, 남이, 론개, 서산대사, 리순신, 안중근… 등을 노래하고 있다. 즉 그들을 련상하면서 그들을 따라배워 그들과 같은 영웅정신으로 우리도 조국보위, 조국통일 성업에 적극 떨쳐나설것을 권장하고있다.      제8집 (력사시조편)를 살펴보면, 에서 동해바다를 가 비낀 민족력사의 메타포로 하면서 로 민족의 력사를 비극적으로 파악하고있다. 시조 에서는 우리 민족이 궐기했던 을 되새기며 애국의 뜻을 장중하게 노래하고있다. 에서는 행주치마의 유래를 떠올리게 하며 애국의 항전에 떨쳐나섰던 녀성들을 노래하고있다. 에서는 삼국시기 신라군과 백제군의 대결에서 소녀, 소년 영웅들의 기개와 활약을 이야기하면서 충천한 그 애국충절을 노래하고있다. 에서는 관창을 비롯한 나어린 화랑을 곁들이면서 나라를 위해 끝까지 영용히 싸운 화랑정신을 노래하고있다. 끝없이 흘러왔고 또 계속 흘러갈 력사를 대할 때 인간은 를 느끼게 되며 (시조 )를 묻게 된다.      다음 시조 과 에서 시적 화자가 백제패망의 상징이 된 백마강과 락화암을 배회하면서 망국의 설음을 느껴보고있는것은 그 한 보기가 되겠다. 동시에 에서 매국노 리완용을 성토하며 으로 꼽은것도 다른 한 보기가 되겠다.      제9집 (애족시조편)를 보면, 시조 , , 에서 백두산을 , 으로서 이 고이 간직되고 으로 우련히 떠오르는 이미지로 각인하며 백의민족의 유구한 력사와 무궁한 발전을 기원하고있다. 시조 , , 에서는 죽으나 사나 입으려는 흰옷, 그리고 길게 드리운 어머님의 흰 옷고름에서 애국애족의 이미지를 살리면서 강렬한 민족심을 드러내고있다. 시조 에서는 민족을 상징하는 을 내세워 그 님에게 열렬히 사랑을 고백하는 식으로 조국을 위해 자기의 모든 사랑을 깡그리 바치고저 하는 시인의 민족애를 고조에로 끌어올려 표현하고있다.      제10집 는 를 전제로 하고 지난 과거와 오늘의 우리 민족의 수치, 책임, 위기, 사명을 역설하고 그 앞에 시적 자아의 맹세를 소리높이 웨치고있다.      이외에도 많은 다른 시조들, 례하면 , , , , … 등에서 해외교포로서 고국에 대한 열애를 읊고있다. 이를테면 에서 는 그 한 보기가 되겠다. 에서는 생시에 밟아보지 못할것 같던 고국산천을 끝끝내 드디여 현실로 밟아보는 인지상정(人之常情)의 순간적인 감격을 노래하고있다.      ,  등에서는 누구나 공감할수 있는 인생지조를 읊어 다른 감명을 주고있다. 이를테면 에서 , 에서는      그리고 에서는 10년이면 변하는 자연의 강산보다 더 빨리, 많이 변해버려 이젠 늙고 쇠잔해진 의 신세를 한탄하며 인생 본연의 무상 내지 허무를 읊고있어 공감을 주고있다. 인간은 력사를 대할 때도 그 헛갈리게 할 정도의 류전(流轉)때문에 우리 인간의 실존을 비춰보는 좋은 계기를 포착하게 된다. 에서는 연산군의 인생류전(人生流轉)을 통하여 인생무상을 읊고있다. 에서는 삼국시기의 계백장군과 소년장군 관창의 이야기를 하면서 결국 했으니 역시 인생무상이 묻어난다. 에서도 락화암을 시적 발상의 계기로 삼아 인생무상을 읊고있다. 에서는 로 역시 인생무상을 읊조리며 로 시적 자아의 외로운 심사도 내비치고있다. 이런 인생무상 내지 허무, 그리고 외로움 같은것은 서뿔리 가치론적으로 부정적으로 볼것이 아니라 인생 본연의 실존적 한 모습을 여실히 보여준 철학적 높이의 의미로 받아들이는것이 보다 바람직한줄로 안다. 오직 이럴 때만이(가령 이런것들을 부정적으로 본다 하더라도) 그것을 직시하는 속에 그것을 커버할수 있는 다른 한 인간 본연의 실존적 모습을 발견하게 될것이다. 례컨대 는 명제하에 되는대로 살려는 인생관과 일분일초를 아끼며 진지하게 살려는 인생관이 다 인생 본연의 실존적 모습들인데 적어도 이런것들을 직시할 때에 바람직한 후자의 인생자세가 설수 있는 도리와 같다.      예술적특징면에서 시조집 의 시조들은 같은 내용을 우에는 자유시형식으로, 아래는 단시조형식으로, 제일 마지막 는 련시조형식을 취하였다. 형식으로 나누어 구사한것이 새로운 시도의 특징이다.      시조는 고려말에 등장하여 조선조를 거쳐 현재까지 줄곧 창작되고있는 우리 민족 고유의 정형시이다. 물론 라는 말은 조선조 후기에 나왔고 그 이전에는 라고 했다. 시조의 가장 대표격으로 볼수 있는 단가형식의 평시조, 후에 조선조에 들어서서 점차 련시조, 엇시조, 사설시조 등 파격형식들이 나왔다. 시조는 대체로 초장, 중장, 종장의 3장6구로 이루어졌다. 매장은 각기 두 시구, 여기서 시구라는것은 두 음절군으로 이루어진 하나의 의미적 마디를 말한다. 그리고 음수률은 대개 3․4조를 기본으로 하되 초장 첫 구 3․4조, 두번째 구 3․4, 중장 첫 구 3․4조, 두번째 구 4․4조, 종장 첫 구 3․5조, 두번째 구 4․3조로 하되 약간의 증감을 보인다. 그리고 종장 첫 구의 시작에는 , , 등 감탄사나 영탄사로 시작하는 경우가 많다. 이로부터 글자수는 대개 44자 내지 45자좌우를 보존한다.      홍용암의 시조를 보면 3장6구의 기본틀을 잘 지키고있다. 음수률은 일부 파격이 있되 그래도 3․4조를 기본으로 하여 조직되고있다. 글자수도 44자 내지 45자좌우를 유지하고있다. 그런데 종장 첫 구의 감탄사나 영탄사는 기본상 구사하지 않고있다. 이것은 시조의 정형률에 굳이 곧이곧대로 매이기보다는 엄숙하고도 긍정적인 시상을 담는데 적합한 파격으로 볼수 있다. 워낙 그런 감탄구나 영탄구는 시조 산생초기 신흥사대부들의 유흥적 기분을 나타내기 위해 등장한것으로 볼수 있다. 그러니 민족과 조국 관련의 거창한 담론을 톺아낸 홍용암의 시조에는 애초에 적합하지 않은것으로 사료된다. 일종 내용이 형식을 결정한 바람직한 한 보기가 되겠다.      그리고 제일 마지막집의 맺음시인 는 그 표현적 수법의 수요로 말미암아 련시조형식을 취하고있다. 전반 시집의 시조들을 여태까지 쭉- 단시조로 이끌어오다가 만은 련시조로 써야만 시적 화자가 독자들에게 강렬하게 전달하고저 하는 그 깊은 사상내용을 가장 잘 나타낼수 있기때문이다. 사실 우리 민족 시조력사에서 후날 련시조, 엇시조, 사설시조 등의 파격시조가 나타난것도 바로 이런 맥락에서 리해해야 할것이다.      시조의 창작경위를 보면 애초에 대조되는 두갈래로 흘렀는데, 하나는 사대부들의 유흥적 기분을 나타내면서 즉흥창작으로 나아갔으며 시적인 이미지, 형상성보다는 주절되기가 장끼가 되면서 많이 사설화되였다. 다른 하나는 주자성리학의 리념적 가치를 지향하면서 많이 개념화되고 공식화되였다. 이런것들은 이미지와 형상성을 추구하고 가장 개성적인 면모를 띠여야 할 시로서의 시조에 있어서 결격사항이 된다. 홍용암의 시조에는 그래도 이런 결격사항들이 커버된 작품들이 적지 않아 돋보인다.      시조 , , 를 모델작품으로 삼아 좀 더 구체적으로 보도록 하자.       에서 이 시조에서는 를 고향의 메타포로 사용하면서 시적 이미지화에 성공하고있다. 바로 이 로 우리 마음속에 있는 고향의 원초적인 이미지를 잘 환기시켜주고있다. 고향, 그것은 정한(情恨)이 엇갈린 떨쳐버릴수 없는 우리의 태지(胎志)에 다름아니다는것이다. 에서는 라는 종장의 원관념을 이라는 초장과 라는 중장의 기승(起承)적 보조관념을 리용하여 잘 표출하고있다. 또 에서는 이라는 초장의 비(比)와 라는 중장의 흥(興)으로부터 라는 종장으로 자연스럽게 나아감으로써 시적인 탄탄한 내재적 론리를 가지며 성공을 가져오고있다.      주지하다싶이 시조는 우리 민족 정형시에서 가장 정제된 시가형식이다. 그만큼 짓기 어렵다는 말이 되기도 한다. 우리 연변에도 시조협회가 있는줄로 안다. 그런데 실은 시조들이 현재까지 창작되고있다고는 하나 많이 외면되고있는것도 사실이다. 시를 아예 외면하는 사람들은 더 말할것도 없고 시를 쓰거나 감상하는 사람들사이에서도 시조는 외목에 나있다. 시조를 좀 시시한 우스운것으로 보는것 같다. 똑마치 이 대명천지, 자유세계에서 그래도 현대자유시가 제격인것 같다. 시조는 구속스럽고 한물이 간 퇴물로 여기는듯 하다. 사실 따지고 보면 시조야말로 우리 민족의 정서를 잘 담아낼수 있는 고전적 형식임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그들은 분명 유럽중심의 현대자유시병독에 깊숙이 들어가있는것 같다.      이런 차원에서 놓고 볼 때 홍용암시인은 현대자유시는 자유시대로 멋지게 구사하면서도 전통적인 시조는 시조대로 잘 살리고있어 다양한 시적재능을 보여줌은 더 말할것도 없고 특히 우리들로 하여금 력사와 민족앞에 책임과 사명을 짊어지려는 신세대 젊은 지성인으로서의 시인의 그 투철한 민족적 의식과 정서에 더 깊은 감명을 받게 한다.      전반적으로 볼 때 홍용암시인의 시조집 는 현대자유시와 고전적인 전통시조장르의 자유로운 넘나듬을 꾀하면서 자기 나름대로의 예술작법을 대담히 시도하였는바 대단히 성공적인 시도와 성과로 보아야 할것이다.      문학예술적으로나 사상내용적으로 이만큼 성공적인 시조집이 나오기도 정말로 조련치 않다고 생각한다.      가치있는 시조집의 탄생에 열렬한 성원의 박수를 보낸다.          ( 2006년 9월 에서 출판된 시조집 에 실린 평론, 평자는 저명한 문학평론가이자 중국 연변대학 교수, 문학박사, 박사연구생 도사임.)              
964    시는 직선이 아니라 곡선이며 직설이 아니라 우설이다... 댓글:  조회:7690  추천:0  2018-02-21
     홍운탁월법(烘雲托月法)이라는 이 말은 수묵으로 달을 그릴 때, 달이 흰색이므로 그릴 수 없음을 감안하여 달 주변을 검게 칠함으로써 달을 드러내는 동양화 화법의 하나이다. 달리 말하면 양각화 기법 같은 것이라 할 수 있다. 이 기법은 시작법(詩作法)에 그대로 적용되어야 한다. 드러내고자 하는 내용을 직접 표현하지 않고 주변의 것을 도모하여 감춰진 본질을 포착케 하는 것이다. 예를 들면 결혼하고 싶은 대상에게 “결혼 하자” “결혼하고 싶다”는 말을 직접 하지 않고 “한 평생 해주는 밥, 먹으며 살고 싶어” 또는 “한 평생 같은 베개, 베고 자고 싶어” 따위의 말로 결혼하고 싶은 자신의  뜻을 얼굴을 붉히지 않으면서도 충분히 밝힐 수 있듯이 드러내는 간접적 수법을 말하는 것이다.   ‘시는 의미해서는 안 된다. 다만 존재할 뿐이다’라고 말한 1920년대 이미지즘 시인인 아치볼드 매클리쉬의 말도 표현만 다를 뿐 본질은 홍운탁월법과 같다고 할 수 있다. 특히 시의 형상화에 있어 동쪽에서 말하고 실제로는 서쪽을 친다는 성동격서(聲東擊西)라는 단어와도 맥이 닿아 있어 ‘시는 사실 그 자체를 말해서는 안 되고 우회적이면서도 등가적(等價的)이어야 한다’는 우설화법이 시 형상화의 근간임을 알아야 한다. 그러나 이 우설화법이 전면에 배치되기만 하면 한편의 시가 완성되었다고 정의할 수 있느냐 그렇지는 않다. 그 이유는 모든 사물이 하나의 조건을 충족시킴으로써 존재가치를 획득할 수 있느냐는 문제에 반(反)하는 원리와 같기 때문이다.  시란 언어를 전제(前提)로 빚어지는 문학이기 때문에 언제나 반응의 속도가 느리고 때론 굴절, 심지어는 왜곡, 단절되기도 하는 것이다. 시란, 전적으로 음악이나 미술처럼 1차 반응으로 충족되는 예술이 아니다. 반드시 문자로 이해해야 한다는 필요조건의 전제가 충족될 때 한하여 의미와 개념이 전달되고 정서적으로 반응을 하게 되는 2차 반응영역이며 지적 반응영역인 것이다. 따라서 시는 즉흥이나 육감과는 거리가 먼 심층심리의 내면의 울림인 것이다. 시는 감정의 흥분을 멀리하고 지적 자극의 정서를 중시한다. 시는 육신의 율동을 거부하고 정신의 율동을 선호한다. 시는 태생적으로 언어를 매개로 의사를 소통하는 대원칙에서 벗어날 수 없다. 통사구조에 어긋나는 문장을 시에만 허락되어 있는 사이비진술이라는 특성에 포함시키면 안 된다. 아울러 시란 어떤 경우에도 구문론에서 요구하는 어순의 배열을 지키면서 의미가 상충하고 낯설음의 미학으로 극적효과를 높여야 하는 것이지 반시, 실험시, 해체시, 무의미시 따위로 조롱하듯이 파괴하며 써서는 안 된다. 또한 발전을 빌미삼아 새로운 영역 개척이라는 대의명분을 거창하게 외치며, 비문학에서 사용하는 정보전달 진술은 오용 남용하는 것은 어떤 경우에도 용서할 수 없는 것이다.  시란 모름지기 희랍에서 출발한 호머의 서사시에서 인생의 궁극적 진리를 파헤치려 했다. 그 시에 저항하여 대두된 것이 과학(자연과학)이다. 이때 시는 이미 비유, 상징, 압축을 통한 우설화법으로 접근을 하기 시작했고 과학은 사실과 정보로 모든 것을 규명하여 증명하려했던 것이다. 여기서 분명히 드러나는 것은 시는 우회적이면서도 등가적이어야 한다는 명제를 벌써부터 실천하고 있음을 알 수 있음인데 과학과는 전혀 다른 양상임은 재삼 확인할 수밖에 없음이 매우 곤혹스러운 것이다.  시는 오로지 시일뿐인 것이다. 그래서 시는 직선이 아니고 곡선이며 직설이 아니고 우설이며 홍운탁월법이다.   따라서 시는 수필의 한 부분, 소설의 한 부분을 잘라놓고 시라고 고집 부리는 자들의 어리석음을 조소해야 한다. [출처] 홍운탁월법이 띄는 시|작성자 황도제
963    우리 詩가 때벗이 해야 할 리유,- "그리지 않고 그리기" 댓글:  조회:2567  추천:0  2018-02-20
전통적으로 시와 그림은 서로 깊은 연관을 맺어 왔다. 옛 말에 시는 소리 있는 그림이요, 그림은 소리 없는 시라 하였다. 특히 한시는 경물의 묘사를 통한 정의(情意)의 포착을 중시하는데, 이는 마치 화가가 화폭 위에 경물을 그리면서 그 속에 자신의 마음을 담아 표현하는 것과 같다. 경물은 객관적 물상에 지나지 않는데, 여기에 어떻게 자신의 마음을 얹을 수 있는가. 화가는 말을 할 수 없으므로 경물이 직접 말하게 해야 한다. 이를 `사의전신(寫意傳神)`이라 한다. 말 그대로 경물을 통해 `뜻을 묘사하고 정신을 전달`해야 하는 것이다. 그 구체적 방법은 `입상진의(立象盡意)`이니, 상세한 설명 대신 형상을 세워 이를 통해 뜻을 전달하는 것이다. 이제 그 몇 실례를 들어 보기로 하자.  송나라 휘종 황제는 그림을 몹시 좋아하는 임금이었다. 그는 곧잘 유명한 시 가운데 한두 구절을 골라 이를 화제(畵題)로 내놓곤 했다. 한 번은 "어지러운 산, 옛 절을 감추었네. 亂山藏古寺"란 제목이 출제되었다. 화가들은 무수한 어지러운 봉우리와 계곡, 그리고 그 구석에 자리 잡은 고색창연한 퇴락한 절의 모습을 그리는데 관심을 집중시켰다. 그런데 정작 일등으로 뽑힌 그림은 화면 어디를 둘러 보아도 절의 모습은 찾을 수가 없었다. 그 대신 숲 속에 조그만 길이 나 있고, 그 길로 중이 물을 길어 올라가는 장면을 그렸다. 중이 물을 길러 나왔으니 그 안 어디엔가 분명히 절이 있을 터이다. 그러나 어지러운 산이 이를 감추고 있어 보이지 않을 뿐이다. 절을 그리라고 했는데, 화가는 물 길러 나온 중을 그렸다. 화제에서 요구하고 있는 `장(藏)`의 의미를 이 화가는 이렇게 포착했던 것이다.  유성(兪成)의 《형설총설(螢雪叢說)》에도 이런 이야기가 보인다. 한번은 "꽃 밟으며 돌아가니 말 발굽에 향내 나네. 踏花歸去馬蹄香"라는 화제가 주어졌다. 말발굽에서 나는 꽃 향기를 그림으로 그리라는 주문이다. 모두 손대지 못하고 끙끙대고 있을 때, 한 화가가 그림을 그려 제출하였다. 달리는 말의 꽁무니를 따라 나비 떼가 뒤쫓아 가는 그림이었다. 말발굽에 향기가 나므로 나비는 꽃인 줄 오인하여 말의 꽁무니를 따라간 것이다.  "여린 초록 가지 끝에 붉은 한 점, 설레이는 봄 빛은 많다고 좋은 것 아닐세. 嫩綠枝頭紅一點, 動人春色不須多"라는 시가 출제된 적도 있었다. 화가들은 일제히 초록빛 가지 끝에 붉은 하나의 꽃잎을 그렸다. 모두 등수에는 들지 못했다. 어떤 사람은 푸른 산과 푸른 강이 화면 가득한 중에, 그 산 허리를 학 한 마리가 가르고 지나가는데, 그 학의 이마 위에 붉은 점 하나를 찍어 `홍일점`을 표현하였다. 그런데 정작 일등으로 뽑힌 그림은 화면 어디에서도 붉은 색을 쓰지 않았다. 다만 버드나무 그림자 은은한 곳에 자리잡은 아슬한 정자 위에 한 소녀가 난간에 기대어 서 있는 모습을 그렸을 뿐이었다. 중국 사람들은 흔히 여성을 `홍(紅)`으로 표현하곤 하였으므로, 결국 그 소녀로써 `홍일점`을 표현했던 것이다. 진선(陳善)의 《문슬신어( 蝨新語)》에 나오는 이야기다.  "들 물엔 건너는 사람이 없어, 외로운 배 하루 종일 가로 걸렸네. 野水無人渡, 孤舟盡日橫." 적막한 강나루엔 하루 종일 건너는 사람이 없고, 빈 배만 버려진채로 가로 놓여 강물에 흔들리고 있다. 이 제목이 주어졌을 때, 2등 이하로 뽑힌 사람 가운데 어떤 이는 물 가에 매여 있는 빈 배의 뱃전에 백로가 한 쪽 다리로 서서 잠자고 있는 장면을 그렸고, 또 어떤 이는 아예 배의 봉창 위에 까마귀가 둥지를 튼 모습을 그렸다. 그런데 1등 한 그림은 그렇지가 않았다. 사공이 뱃 머리에 누워 피리를 빗겨 불고 있었다. 시는 어디까지나 건너는 사람이 없다고 했지 사공이 없다고 하지는 않았던 것이다. 아예 사공도 없이 텅 빈 배보다는 하루 종일 기다림에 지친 사공이 드러누워 있는 배가 오히려 이 시의 무료하고 적막한 분위기를 드러내기에는 제 격일 듯 싶다. 이 화가는 의표를 찌르고 있는 것이다. 등춘(鄧椿)의 《화계(畵繼)》에 나오는 이야기다.  또 가령 "호랑나비 꿈 속에 집은 만 리 밖 胡蝶夢中家萬里"라는 화제가 제출되었다면, 화가는 꿈 속에 향수에 젖어 있는 나그네의 모습을 그려야 하는데, 그러자면 화면에는 잠든 사람이 있어야 하고, 또 그가 지금 고향 꿈을 꾸고 있음을 나타내 보여주어야 한다. 1등에 뽑힌 화가는 소무(蘇武)가 양을 치다가 선잠이 든 모습을 그렸다. 소무는 한 무제 때 흉노에 사신 갔다가 억류되어 흉노의 회유를 거부하여 사막에서 들쥐를 잡아 먹으며 짐승처럼 살다가, 무려 20년 만에야 고국으로 돌아왔던 인물이다. 황제의 사신으로 왔다가 어처구니 없이 포로로 억류되어 아무도 없는 사막 가운데 버려진 채 양을 치던 소무가 꾸는 꿈은 과연 만리 밖 고향 꿈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구한말의 유명한 화가 허소치(許小痴)가 고종 앞에 불려 갔는데, 고종은 그를 골탕 먹이려고 남녀가 사랑을 나누는 춘화도(春畵圖)를 한 장 그려 바칠 것을 명하였다. 얼마 후 소치가 그려 바친 것은, 깊은 산 속 외딴 집 섬돌 위에 남녀의 신발이 한 켤레 씩 놓여진 그림이었다. 환한 대낮, 닫혀진 방 안에서의 진진한 일은 알아서 상상하시라는 재치였다.  이상 살펴 본 여러 예화는 모두 같은 원리를 전달한다. 즉 그리려는 대상을 직접 보여주는 대신, 물 길러 나온 중, 말을 쫓아가는 나비, 난간에 기댄 소녀, 피리 부는 뱃사공, 양치는 소무의 선잠, 남녀의 신발 한 켤레로 대신 전달하고 있다는 점이 그것이다.  동양화의 화법 가운데 `홍운탁월법(烘雲托月法)`이란 것이 있다. 수묵으로 달을 그리려 할 때 달은 희므로 색칠할 수 없다. 달을 그리기 위해 화가는 달만 남겨 둔 채 그 나머지 부분을 채색한다. 이것을 드러내기 위해 저것을 감추는 방법이다. 시에서 시인이 말하는 법도 이와 같다. `성동격서(聲東擊西)`라는 말처럼 소리는 이쪽에서 지르면서 정작은 저편을 치는 수법이다. 나타내려는 본질을 감춰 두거나 비워 둠으로써 오히려 더 적극적으로 그 본질을 설명할 수 있다는 것이다.     ///     ======================덤으로 더... 그리지 않고 그리기   송나라 휘종 황제는 그림을 몹시 좋아하는 임금이었다. 그는 곧잘 유명한 시 가운데 한두 구절을 골라 이를 화제畵題로 내놓곤 했다. 한 번은 "어지러운 산, 옛 절을 감추었네. 亂山藏古寺"란 제목이 출제되었다. 화가들은 무수한 어지러운 봉우리와 계곡, 그리고 그 구석에 자리 잡은 고색창연한 퇴락한 절의 모습을 그리는데 관심을 집중시켰다. 그런데 정작 일등으로 뽑힌 그림은 화면 어디를 둘러 보아도 절의 모습은 찾을 수가 없었다. 그 대신 숲 속에 조그만 길이 나 있고, 그 길로 중이 물을 길어 올라가는 장면을 그렸다. 중이 물을 길러 나왔으니 그 안 어디엔가 분명히 절이 있을 터이다. 그러나 어지러운 산이 이를 감추고 있어 보이지 않을 뿐이다. 절을 그리라고 했는데, 화가는 물 길러 나온 중을 그렸다. 畵題에서 요구하고 있는 '藏'의 의미를 이 화가는 이렇게 포착하였다.   兪成의 《螢雪叢說》에도 이런 이야기가 보인다. 한번은 "꽃 밟으며 돌아가니 말 발굽에 향내 나네. 踏花歸去馬蹄香"라는 畵題가 주어졌다. 말발굽에서 나는 꽃 향기를 그림으로 그리라는 주문이다. 모두 손대지 못하고 끙끙대고 있을 때, 한 화가가 그림을 그려 제출하였다. 달리는 말의 꽁무니를 따라 나비 떼가 뒤쫓아 가는 그림이었다. 말발굽에 향기가 나므로 나비는 꽃인 줄 오인하여 말의 꽁무니를 따라간 것이다.     "들 물엔 건너는 사람이 없어, 외로운 배 하루 종일 가로 걸렸네. 野水無人渡, 孤舟盡日橫." 적막한 강나루엔 하루 종일 건너는 사람이 없고, 빈 배만 버려진채로 가로 놓여 강물에 흔들리고 있다. 이 제목이 주어졌을 때, 2등 이하로 뽑힌 사람 가운데 어떤 이는 물 가에 매여 있는 빈 배의 뱃전에 백로가 한 쪽 다리로 서서 잠자고 있는 장면을 그렸고, 또 어떤 이는 아예 배의 봉창 위에 까마귀가 둥지를 튼 모습을 그렸다. 그런데 1등 한 그림은 그렇지가 않았다. 사공이 뱃 머리에 누워 피리를 빗겨 불고 있었다. 시는 어디까지나 건너는 사람이 없다고 했지 사공이 없다고 하지는 않았던 것이다. 아예 사공도 없이 텅 빈 배보다는 하루 종일 기다림에 지친 사공이 드러누워 있는 배가 오히려 이 시의 무료하고 적막한 분위기를 드러내기에는 제 격일 듯 싶다. 이 화가는 의표를 찌르고 있는 것이다. 鄧椿의 《畵繼》에 나오는 이야기다. =======================덤으로 더 더... 전통적으로 시와 그림은 서로 깊은 연관을 맺어왔다. 옛말에 시는 소리있는 그림이요, 그림은 소리없는 시라 하였다. 특히 한시는 경물의 묘사를 통한 정의의 포착을 중시하는데, 이는 마치 화가가 화폭 위에 경물을 그리면서 그 속에 자신의 마음을 담아 표현하는 것과 같다.경물은 객관적 물상에 지나지 않는데, 여기에 어떻게 자신의 마음을 얹을 수 있는가. 화가는 말을 할 수 없으므로 경물이 직접 말하게 해야한다. 이를 '寫意傳神사의전신' 이라 한다. 말 그대로 경물을 통해 '뜻을 묘사하고 정신을 전달' 해야 하는 것이다. 그 구체적 방법은 '立像眞意 입상진의' 이니, 상세한 설명대신 형상을 세워 이를 통해 뜻을 전달하는 것이다.  즉 시인은 하고싶은 말을 직접 말하는 대신, 대상 속에 응축시켜 표달해야 한다. 그래서 "산은 끊어져도 봉우리는 이어진다. 山斷雲연 "는 말이 나왔다. 지금 눈앞에 보이는 것은 구름 위에 삐죽 솟은 봉우리의 끝뿐이다. 그렇다고 구름아래에 봉우리가 없는가. 다만 가려져 보이지 않을 뿐이다. 이와 같이 "말은 끊어져도 뜻은 이어진다辭斷意屬." 시속에서 시인이 말하고 있는 것은 구름 위에 솟은 봉우리의 끝뿐이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니다. 시인이 진정으로 하고자하는 말은 구름아래 감춰져있다.  1920년대 이미지즘 시인 아치볼드 매클래쉬는 「시의작법 Ars Poetica」이란 시에서 "시는 의미해서는 안 된다. 다만 존재할 뿐이다 A Poem should not mean: but be" 고 하고, 또 "시는 사실 그 자체를 말해서는 안되고 등가적이어야 한다 A Poem should be equal to: Not true" 고 하였는데, 시의 언어는 직접 의미를 지시하는 대신 이미지를 통한 간접화의 방식으로 의견을 전달해야함을 말한 것이다. 다시 말해 시인은 할말이 있어도 직접 말하지 말고 사물을 통해 말하라는 것이다. 아니 사물이 제 스스로 말하게 하라는 것이다. 시는 어떤 사실이나 사물에 대한 정보를 전달하는데 그 목적이 이 있지 않다. 시는 언어 그 자체로 살아 숨쉬는 생물체여야 한다. 시인은 외롭다는 말을 해서는 안 된다. 그러면서 독자를 외롭게 만들어야한다. 괴롭다는 말을 해서는 안 된다. 그래도 독자가 그 마음을 읽을 수 있어야한다. 만약 시인이 직접 나서서 시시콜콜한 자기감정을 주욱 늘어놓는다면 그것은 넋두리나 푸념일 뿐 시일 수는 없다.  흔히 시인이 시를 짓는 것은 무엇을 말하는 과정이 아니라, 하고 싶은 말 가운데서 불필요한 것을 덜어내는 과정이라고 한다. 시인이 이백자의 할말이 있다면, 그는 이것을 어떻게 스무 자로 줄여 말할 것 인가로 고민하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백팔십자를 걷어낼 것 인가로 고민한다는 말이다. 반대로, 독자는 시인이 하고 싶었지만 절제하고 걷어낸 말, 즉 행간에 감추어둔 뜻을 어떻게 충분히 이해하고 깨닫느냐의 문제가 주요한 관심사가 된다.  다 말하지 않고 말하기, 다 그리지 않고 그리기, 시와 그림은 이러한 공통점을 지니고 있다.  .....///정민 지음 '한시 미학산책' 중에서   
962    한시 모음 댓글:  조회:3013  추천:0  2018-02-20
        임께서는 요즈음 어찌 지내시온지요 창문에 달 비치면 새록새록 그리움이 번져요 꿈 가는 길 발자국 남기기로 하자면요 임의 집 앞 돌 길이 반은 모래 되었을 것이어요. –이옥봉 ‘夢魂’ 近來安否問如何 月到紗窓接恨多 若使夢魂行有迹 門前石路半成沙 종이 위에 붓 휘두르니 먹 색 산듯한데 매화 몇 점 그려 놓으니 참으로 즐겁구나 하늬바람 빌어 멀리멀리 날려서 집집마다 거리마다 활짝 봄 되게 하고파라. -청 이 방응 ”題畵梅’ 揮毫落紙墨痕新 幾點梅花最可人 願借天風吹得遠 家家門巷盡成春  지난 겨울에는 눈이 꽃만 같더니 이 봄에는 또 꽃이 눈만 같구나 눈이나 꽃이나 다 참이 아니거늘 어쩌자고 내 마음 찢어지려고만 하는가. – 한용운 ‘ 獄中見櫻花有感’ 昨冬雪如花 今春花如雪 雪花共非眞 如何心欲裂 세상만사 웃음으로 넘기고 사는 사람 초당에 봄비 내리는데 송판 문 지그렸네 그런데 주렴 밖 강남 갔다 돌아온 제비가 나를 보고 이러쿵저러쿵 한바탕 시비를 거네 – 이식 ‘詠新燕’  萬事悠悠一笑揮 草堂春雨埯松扉 生憎簾外新歸燕 似向閑人設是非 산길 십리 가도 가도 사람 소리 들리지 않고 텅 비인 산에 봄새 지저귀네 스님읋 만나 길을 물었는데 스님 떠나시자 길 다시 잃었네. – 강백년 ’山行’ 十里無人響 山空春鳥啼 逢僧問前路 僧去路還迷 무엇 때문에 푸른 산에서 사느냐구요 빙그레 웃고 답은 하지 않았지만 마음 절로 한가하답니다 복사 꽃 두둥실 물에 떠 저 만치 흘러가는데 여기가 바로 딴 세상 속세가 아니거든요. – 이백 ‘山中問答’ 問余何事棲碧山 笑而不答心自閑 桃花流水杳然去 別有天地非人間. 하루하루 사람은 그저 늙어 가지만 해마다 봄은 다시 돌아오네 고운 님 만나 술잔 앞에 하였으니 꽃잎 흩날린다 아쉬워 말자. – 당  왕유 ‘頌春詞’ 日日人空老 年年春更歸 相歡有樽酒 不用惜花飛 구름 떠가니 산색 푸르고 구름 머무니 산색 하이얗네 떠나고 머무름을 구름은 알지 못하는데 빈 산이 절로 색을 바꾸네. – 청 왕문청 ‘偶見’ 雲去山色靑 雲住山色白 去住雲不知 空山自成色  마음이 고요해야 생각이 멀리 다다를 수 있고 필법니 곡진해야 경계가 심오해진다네 작은 화폭 속에 만리 아득함이 펼쳐져 훨훨 하늘을 나니 절로 속세를 떠났네 – 황 빈홍 ‘題設色山水’ 意遠在能靜 境深尤貴曲 咫尺萬里遙 天遊自絶俗 큰 바다 파도는 얕고 사람 한 치 마음은 깊네 바다는 마르면 바닥을 드러내지만 사람은 죽어도 그 마음을 알 수 없네. – 당 두순학 ‘感遇’ 大海波濤淺 小人方寸深 海枯終見底 人死不知心 거문고에서 거문고 소리가 난다면 갑 속에 담아두면 어찌 소리가 나지 않을까 거문고 소리가 손가락 끝에서 나는 것이라면 어찌 그대 손가갈 끝에서 그 소리 들리지 않을까 – 송 소식 ‘琴詩’ 若言琴上有琴聲 放在匣中何不鳴 若言聲在指頭上 何不于君指上聽 닭 기르는 사람 닭에 모이 실컷 먹이는데 닭이 살지면 잡아먹을 심산 주인의 그 속셈 알뜰도 하시지만 행여 닭에게 미리 알려서는 아니 될 일 – 청 원매 ‘鷄’ 養鷄縱鷄食 鷄肥乃烹之 主人計固佳 不可使鷄知 만나고 또 만나고 수없이 만나는데 걱정은 무슨 걱정 뜬구름 같은 우리 삶에 이별 있음과는 견줄 것도 아니라네 하늘 위에서는 아침 저녁 만나는 것을 사람들은 일년에 한 번이라고 호들갑 떠네 – 이옥봉 ‘七夕’ 無窮回合豈愁思 不比浮生有別離 天上却成朝暮會 人間謾作一年期. 논밭 갈며 하루 해를 보내고 약초 캐며 청춘을 보내네 산 있고 물 있는 곳에 이 한 몸 영광도 치욕도 없네 – 고려 신숙 ‘ 棄官歸鄕’ 耕田消白日 採藥過靑春 有山有水處 無榮無辱身 신선이 사는 산들 높고 험한데 봉래산 영주산이 구름에 잠겼네 바위아래 다소곳 띠집을 엮었는데 파란 대가 포근히 처마를 에워쌌네 도인이 거문고로 곡을 연주하는데 솔바람과 어우러져 맑은 소리를 내네 태고적 가락 그 속에 아련히 장생의 법을 깨우치네. 조선 강 희안 ‘題山水畵’ 仙山鬱笤嶢 雲氣連峰瀛 茅亭隱巖下 緣竹소篬楹 高人奏緣綺 細和松風淸 彈來太古曲 超然悟長生 사람은 저마다 좋아하는 바가 있고 사물에는 애당초 꼭 그래야만 하는 법도 없어 누가 너를 일러 춤 잘 춘다 하는가 한가롭게 서 있을 때만 못한 것을 – 당 백거이 ‘鶴’ 人有各所好 物固無常宜 誰謂爾能舞 不如閑立時 꽃 있고 술 없으면 한심스럽고 술 있고 친구 없으면 또한 딱한 일 세상일 하염없으니 따질 것 무엇이랴 꽃 보고 술잔 들고 한바탕 노래나 부르세 – 조선 소의후 ‘咏麴’ 有花無酒可堪嗟 有酒無人亦奈何 世事悠悠不須問 看花對酒一長歌 글로 쓰고 읊조린 것 천 수쯤 되지만 몸과 마음 귀의하는 바는 언제나 하나의 경지 자나 깨나 머릿 속에 맴도는 생각 전생에도 나는 분명 시 쓰는 스님이었음일레라. – 당 백거이 ‘愛咏詩’ 辭章諷咏成千首 心行歸依向一乘 坐倚繩床閑自念 前生應時一時僧.  몸을 지킴에 있어서는 꺾이지 않음을 귀하게 여기고 마음을 기르는 데는 드러나지 않은 상태에 따라야 진정 고요함을 근본으로 삼지 않으면 그 움직임이 마치 수레에 궤도 없는 것과 같으리 – 이황 ‘守靜’ 修身貴無墝 養心從未發 荀非靜爲本 動若車無軌 어제는 새봄 오늘은 가을 세월은 시냇물처럼 흐르네 명리를 탐하고 좋아하여 허둥대는 자들 욕심 다 채우지 못하고 부질없이 머리만 세네 하루 종일 헐레벌떡 홍진 세상 뛰어다니느라 그 머리 다 세도록 몸 늙은 줄 어찌 알기나 하랴 명리는 재앙의 문이요 사나운 불길 고금에 몇 천 사람이나 태워 죽였던고 – 고려 석라옹 ‘經世’ 昨是新春今是秋 年年日月似溪流 貪名愛利區區者 未滿心懷空白頭 終朝役役走紅塵 頭白焉知老此身 名利禍門爲猛火 古今燒殺幾千人 옳음이 참 옳음이 아니고 옳음이 때로는 그름일 수도 있으니 물결 따라 억지로 옳고 그름 가릴 것도 없는 일 옳고 그름을 잊고 눈을 높이 두어야 비로소 옳은 것 옳다 하고 그른 것 그르다 할 수 있다네 – 조선 허후 ‘是非吟’ 是非眞是是還非 不必隨波强是非 却忘是非高着眼 方能是是又非非 하늘은 이불이요 땅은 돗자리 산은 베개로다 달은 촛불이요 구름이 병풍 바다는 술통 크게 취하여 벌떡 일어나 너울너울 춤을 추다가 문득 긴 소매 곤륜산에 걸릴까 저어된다네 – 조선 진묵대사 ‘ 大醉吟’ 天衾地席山爲枕 月燭雲屛海作樽 大醉遽然奶起舞 却慊長袖掛昆崙 만물이 바뀌어 정한 모습 없는 터 내 한 몸 한적하게 세월 따라 살아가네 근년엔 경영하는 힘도 점차 줄어 푸른 산 마주하고도 내내 시를 짓지 아니하네 – 조선 이언적 ‘無爲’ 萬物變遷無定態 一身閒適自隨時 年來漸省經營力 長對靑山不賦時 어디에서 왔고 어디로 가는가 가고 옴에 정해진 곳이 없거늘 부질없는 일 백 년 살 궁리는 왜하는가 – 김 인후 ‘題冲岩詩卷’ 來從何處來 去向何處去 去來無定蹤 悠悠百年計 날마다 연못 물 떠다가 먹을 가는데 어찌 울긋불긋 단장하여 미색을 다투었으랴 화법은 서법과 통하니 난이나 대나무도 초서나 예서 같은 것 – 청 정섭 ‘題畵蘭竹’ 日日臨池波墨硏 何曾粉黛去爭姸 要知畵法通書法 蘭竹如同草隸然. 봄물은 사방 연못에 넘치고 여름 구름은 기이한 봉우리가 많으며 가을 달은 휘영청 밝고 겨울 산마루에 소나무 우뚝 솟았네 – 진 고개지 ‘神情詩’ 春水滿四澤 夏雲多奇峰 秋月揚明輝 冬嶺秀孤松. 종일토록 노래하고 중얼거려도 보지만 괴롭기는 모래 헤쳐 금 다져내는 것만 같네 시 짓느라 얼굴 핼쑥해진 것 이상히 여기지 말게 좋은 시구 찾아내기가 그토록 어렵다네 – 정몽주 ‘吟詩’ 終朝高咏又微吟 苦似坡砂欲鍊金 莫怪作詩成太瘦 只緣佳句每難得 옛사람들 학문함에 있는 힘을 다하였으니 젊어서 공부한 것 나이 들어 비로소 완성된단다 서책에서 얻은 지식 천박함을 면키 어려우니 배운 바를 몸으로 행해야 한다는 것을 명심하거라. – 송 육유 ‘冬夜讀書示子聿’ 古人學問無遣力 少壯工夫老始成 紙上得來終覺淺 絶知此事要躬行 하루라도 시를 짓지 아니하면 마음은 마치 버려진 우물 같아 붓과 벼루는 도르래요 읊조림은 두레박 끈 아침에 그 우물물 다시 길어 올리니 변함없이 말고 시원하네 글로 써서 마음이 같은 이에게 드리노니 작품 속에 알알이 고뇌가 담겼나이다. – 당 가도 ‘戱贈友人’ 一日不作詩 心源如廢井 筆硯爲辘轤 吟詩作縻綆 朝來重汲引 依舊得淸冷 書贈同懷人 詞中多苦辛 한가하여 먹 갈아 붓에 적셔 대나무 하나 그렸네 벽에 걸어두고 이따금 바라보니 그윽한 자태 속기를 벗었구나. – 조선 정반 ‘題墨竹後’ 閑餘弄筆硯 寫作一竿竹 時於壁上看 幽姿故不俗 ========================== 림연의 문학평론집 '불과 검의 탐색' 읽으셨습니까? (ZOGLO) 2018년2월23일 중외명시를 찾아서 림연의 문학평론집 을 읽으셨습니까?  이 평론집은 2000년 5월, 연변인민출판사에 의해 출판되였다. 은 2부로 나뉜다. 제1부는 "중국현대시문학의 선구자들"이고 2부는 "시문학의 대가들"이다. 제1부에 소개하는 호적, 서지마, 주상, 리금발 등 시인들은 60년대 대학교재에서는 푸대접받던 시인들인데 지금은 공정한 평가를 받고 있다. 그리고 2부의 시인들은 림연 본인이 무척 즐기는 외국시인들이. 을 쓴 시인은 장님시인이고 위대한 시인 바이론은 태여날 때부터 절름발이다. 독일의 하이네는 평생 망명생활하던 유태인이고 쏘베트시인 마야꼽쓰기의 삶도 그리 화려하지 못했다. 더구나 괴짜시인으로 신비화된 보들레르는 에덴동산의 를 따고도 반신불수의 몸이 된다. 모두가 다재다능한 시인들이였으나 이들의 운명은 불우했다. 이런 것에 공감을 느끼고 매료되였다는 저자 림연이다. 림연평론가는 머리말에서 은 시로 쓴 자화상은 아닐지라도 내 모습의 일단이 고스란히 투영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림연의 저서로는 역저 , 편저 , 론저 등이 있다. ///조글로미디어   ============================= 중국에서의 윤동주 2018년 02월 23일 작성자: 림연 서언 윤동주는 우리 연변이 낳은 자랑스러운 시인이다.이곳 룡정의 명동촌에 태줄을 묻고 이곳에서 유년기와 소년기를 보냈고 또 이 땅에 뼈를 묻었다.따라서 우리는 충 분히 자랑스러워하고 우러러 모실 리유가 있다. 물론 이러저러한 원인으로 우리가 시인 윤동주를 안지는 불과 20년의 일이다.하 지만 그동안 룡정의 향토문인들을 비롯한 조선족문인,학자,교수님들은 크나큰 경앙과 자긍심을 가지고 시인 윤동주에 대한 사료 발굴,작품의 연구 등 방면에 있어서 괄목 할만한 성과를 올리고있다.근 60년의 윤동주연구의 력사와 전통을 가지고있는 한국 의 성과들과 비교하면 여러 방면에서 적지 않은 차이를 보이지만 향토애에서 출발한 참신한 시각과 접근방식으로 이곳의 연구는 나름대로의 우세와 특징을 갖추고있음이 분명하다. 이번 론문집의 출판 역시 우리의 윤동주 연구에서 큰 성과로 꼽힐만 하다.그동안 중국조선족학계의 윤동주 연구성과들을 집대성하여 론문집을 펼쳐내게 되어 과거 우리 연구의 경향과 장단점을 점검해볼수 있고 또한 앞으로 보완해야 할 점들을 짚어볼수 있는 좋은 계기이기때문이다. 지난 20년간 우리의 윤동주 연구가 이룩한 성과들은 크게 아래와 같은 몇가지 방면으로 귀납할수 있을것 같다. 우선,윤동주의 사료발굴이다.우리에겐 전혀 알려지지 않았던 윤동주 시인을 일본 의 오오무라교수를 통해 알게 된후 묘소의 발견과 복원,생가의 복원 및 각종 기념시 설의 건립 그리고 각종 기념행사의 개최 등 사업들은 본체론적인 연구는 아니였더라 도 충분한 가치가 있는 작업이였다. 다음으로, 윤동주에 대한 작가론, 작품론의 연구이다. 이 방면의 연구는 우리가 한국본토보다 많이 뒤져서 시작한것은 사실이나 생애연구, 작품연구 등 여러 방면에 걸쳐 진행된 연구작업은 풍만한 열매를 맺었는바 윤동주 연구에 있어서 결코 간과할 수 없는 성과들이 아닐수 없다. 사실 윤동주에 대한 우리의 연구는 한마디로 “향토시인의 발견”이란 긍지감에서 비롯된것이라고 해도 과언은 아닐것이다.하지만 윤동주뿐이 아니고 기타 광복전 중 국에서 생활했던 작가들에 대하여 요즘 학계에서는 중국조선족문학의 범주에 귀속시 킬수 있는가 없는가에 대하여 적지 않은 론쟁이 있는줄로 알고있다. 그만큼 범주의 확정은 우리의 문학전통을 확립하는데 핵심적인 문제이고 또한 많은 세밀하고 체계적 인 고찰이 필요한 론제이기도 하다.필자는 이 자리에서 그 해답을 제시하려고 하는것 이 아니다.이 문제를 제기함은 윤동주연구의 가치와 의의를 천명하기 위해서이다. 한마디로 윤동주 연구는 우리가 자신의 문학전통에 대한 리해에 있어서 깊이와 넓이를 확대할 수 있는 계기가 되였다.해방후 중국의 조선족문학은 뿌리도 연원도 없 이 허공에 형성된것이 절대 아니다.해방후 중국조선족문학은 멀리 19세기말엽부터 이루어진 민족의 이동 특히는 일제의 식민통치에서 비롯된 대규모적인 이주에서 비롯 된것이다. 광복후 반도의 분단 그리고 사회주의중국의 창건 등 이데올로기적인 분립 으로 하여 광복전과 광복후 그리고 반도와 중국조선족 사이의 관련성은 복잡한 양상 을 띠고 변화해왔지만 문학을 포함한 중국조선족문화의 뿌리는 틀림없이 광복전의 이주민문화 나아가 반도에 두고있는것이다. 따라서 윤동주를 비롯한 광복전 이땅에서 배출된 문학가들에 대한 연구는 우리 문학연구의 내,외연을 확대하는데 필요한 작업이며 나아가 우리 문화의 정체성을 확 립하는데 절대적으로 필요한 작업이 아닐수 없다.최근 몇년간 중국조선족학계에서 지속적으로 진행되여온 광복전 만주(혹은 중국)문학에 대한 연구는 바로 이러한 담 론환경에서 생성된것으로 리해할수 있다. 이제 윤동주에 대한 우리의 연구는 한단계 업그레이드될 필요가 있다.사료의 발 굴과 보전,정리도 일단락되였고 보편적인 연구도 상당한 성과를 취득하였다.이제는 연 구시각의 심화 및 새로운 연구시각,연구방법의 도입으로 한층 세분화된 작업이 필요 한 때인것 같다.이 론문집의 출간이 과거를 총화하고 미래의 비전을 제시하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한다. 끝으로 문학연구자의 일인으로 동인들의 성과에 다시한번 경의를 표하는것으로 서언을 가름하려고 한다. 연변대학교 교수 , 총장 김병민 2005년11월11일  
961    <고향> 시모음 댓글:  조회:2833  추천:0  2018-02-20
증평 좌구산 휴양림에         봄의 전령 복수초 '빼꼼' 김정수 기자 2018.02.20.  SNS 공유하기   음성 기사 듣기   인쇄하기 새창열림 글씨크기 조절하기   증평 좌구산 휴양린에 핀 복수초.(증평군청 제공)© News1 (세종ㆍ충북=뉴스1) 김정수 기자 = 20일 충북 증평군 증평읍 율리 좌구산 휴양림에 봄의 전령 복수초가 노란 꽃망울을 터트렸다. 복수초는 ‘영원한 행복’, ‘복을 많이 받고 오래 살라’는 꽃말을 지니고 있다. 봄의 전령사로 알려지고 있다. 4월초 노란색 꽃잎이 벌어지기 전에 피며 지름은 3∼4㎝다. 눈길         어둑새벽 눈길 위엔 시묘 살던 서당집 훈장 할아버지 짚신 발자국과 석유등 밝히고 새벽예배 간 천안할머니 조그만 신발 자국이 나란히 찍혀 있었다         그 겨울     겨우내 하얀 눈이 쌓이는 고향집 삼밭, 캄캄한 구덩이 속에서는 샛노란 무 싹들이 세상 소식 궁금하다고 기지개를 켜며 새록새록 고개를 밀어 올리고 있었습니다           저 하늘 아래에는       저 하늘 아래에는 운동모자 꾹 눌러쓰고 코스모스 꽃길 말없이 걸어가는 소년과     하얀 팔 내놓고 오르간 앞에 앉아 있는 갈래머리 소녀가 있었다     귀가         이제는 가리, 은하강 푸른 물결 하얀 쪽배를 타고 청보리밭 사잇길로 우마차 타고 필릴리- 필릴리- 하루 반나절을 들어가면 우물가에서 흰 닭이 울고 저녁연기 하늘로 긴 머리를 풀어 올리는 탱자꽃 달밤에 환한 그 집, 흰 무명저고리 여인이 아랫목에 더운 밥 묻어 놓고 밤마다 젖은 눈 깜빡이는 곳으로     감꽃 지는 마을         감꽃 피는 내 고향 가고 싶다 논두렁에 콩 심고 비 맞으며 깨 모종하고     장날이면 어머니랑 단둘이 등불 밝혀 들고 한내 장길 아버지 마중을 가고 싶다 개구리 울음 가만가만 밟아가며     오늘같이 비 오다 갠 날엔 앞산 뒷산 나란히 잠든 어른들 한 분, 한 분, 깨워 일으키고 싶다         비 오다가 갠 날         젊은 엄마가 옥양목 앞치마 반듯하게 매고 부엌에서 손님 맞을 준비하고 있을 것 같은,     젊은 아버지가 원추리꽃 꺾어 소 귓등에 꽂아주고 무지개 뜬 산길 넘어 소 앞세우고 돌아올 것 같은,     장마 끝나고         장마 끝나고 갈울내깔, 징검다리 하나 둘 모습 드러내면 시냇물 맑아져 송사리 피라미 떼 줄을 짓는다 아랫 내 물턱 큰물에 휩쓸려온 방개고무신 한 짝 걸려 있다 하늘이 높고 구름이 빠르게 움직인다 버들붕어 한 꿰미씩 들고 곱돌모랭이 돌아오면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났다         눈 내리는 저녁         저녁눈 설핏하게 떠도는 날은 고향마을 찾아들고 싶다 아이들 한바탕 떠들다 돌아가고 시누대밭 참새들만 춥다고 조잘대던 저녁 어스름, 그집 앞 지나다가 나풀대던 단발머리 보고 싶다 외양간에 늙은 소 거친 숨 몰아쉬던 소리 들릴 듯하다         그 여름         홍수로 깊어진 대흥내를 건너 한낮의 뙤약볕 속을 열무단 이고 늙은 노새처럼 걸어오는 할머니, 낮은 어깨엔 여치 풀무치 기름챙이도 함께 붙어왔다 소낙비에 전 베적삼에선 눅눅한 쉰내가 피어났다 보릿집 후둑이며 아궁이 불 지피면 부뚜막에 쪼그리고 앉아 할머니 수제비를 뜨셨다 해꽃은 꺾여 시드는데 쇠품팔러 간 엄마는 돌아오지 않고         옛 동산에 오르며             저-기 저 소장뜰 대흥내 건너 꿩 산비둘기 사뿐 내려앉는 채당미 해바른 곳은 붙들 아버지 묘 닭재산 자락 코불네 산은 꼽새 할머니 묘 참샘골 서낭당 산삐알은 마구셍이 체장수 묘 황골 방죽머리 뱀밭엔 머슴살이 성배 아버지 묘 앞산 모랭이 돌아가면 자식 못 둔 천안 할머니 묘 함질재 오르막에는 푸른 이끼 덮어쓴 딸그만이네 묘 부엉이골 분고개 산등성은 매방앗간 연승 할아버지 묘 때까치 새끼 치는 팽나무재 너머 애꾸눈이 순옥 엄마 묘 흐드러진 찔레꽃 멍개나무 덤풀 속엔 올망졸망 애기들 묘 수리봉 자락길 지나 시루셍이 먼발치로 중뜸 소이침쟁이 묘 주걱샘 가는 길섶 쑥대밭은 아들 못 둔 연국이 외할아버지 묘 작은매봉재 큰 바위 아래 가재골 다락논 옆은 늑대 할아버지 묘 죽은 처녀들 달밤에 나온다는 개티고개 황톳길 한복판엔 처녀들 묘 말구루마 비척대는 삼거리 주막집을 지나 갈참나무 숲은 우리 할머니 묘           그리운 홍성         꼬불간 돌아서 은행나무 말무덤 금마천 살진 메기 물살을 친다 의사총을 끼고 숯거리 들어서면 장닭이 목청 뽑아 홰를 쳐 울고 아침볕에 조양문朝陽門 젖은 머리 말릴 때 월산 진달래 붉더라, 붉더라,           독골엿장수         아침나절이면 엿가위 소리 짤깍대며 감꽃 핀 마을 찾아오던 독골엿장수, 실속은 없지만 언제나 다정한 아이들 친구였지 엿장수 궁디는 끈적끈적- 마른버짐 핀 머슴애들 데설궂어도 눈 한 번 끔벅이며 씨익, 웃어 주면 그것으로 끝이었지 어쩌다 한잔 술에 어깨춤을 출 땐 복실이도 꼬리치며 방울 흔들고 처마 끝 아슬한 낮달도 웃음 참느라 눈물 질금거렸지 허드렛 것들 모아 지게 가득 짊어지고 구렛들 저녁 안개 속으로 파묻혀가던 독골엿장수, 유난히 춥던 그 겨울 마지막으로 짤깍 소리 들리지 않았지     빨래터 풍경       구렛들 버드나무샘은 근처에서 유명한 빨래터였다 여름엔 찬물 겨울엔 더운물이 언제나 팡팡 솟아올랐다 아침나절이면 마을 아낙들 하얗게 둘러앉아 빨랫돌 하나씩 차지하고 쉴 새 없이 이야기꽃을 피워 아랫마을로 띄워 보냈다 나어린 계집애들 감꽃 꿰어 목에 걸고 입이 째지게 동요를 불렀다 먼 들녘에서 장항행 열차가 한낮의 정적을 깨면 물무당도 덩달아 신이 나 힘차게 물살 가르며 매암을 돌았다 손등이 까만 개구쟁이들 어미한테 붙잡혀 엄살을 떨고 수세미로 닦달당한 손등은 어느새 배냇손처럼 하얘지지만 하루만 지나면 도로 까마귀손이었다         나는 감이 먹고 싶었다         된서리 하얗게 내리친 가을날 죽은 처녀들 달밤에 나온다는 개티고개, 황톳길 넘어 막내고모 시집간 들길 따라 감 팔러 장에 가시는 할머니 느린 걸음 신나게 앞질러 가면서도 나는 감이 먹고 싶었다 거북당 께끼집 골목에 감 몇 덩이로 좌판을 벌여 놓고 한나절을 쪼그리고 앉아 기다려도 할머니 감은 팔리지 않았다 옷고름 끝으로 한사코 콧물만 훔치시는 할머니, 바라만 보고 있기엔 따분해 약장수 말광대 구경을 하고 한참 만에 돌아왔을 때 좌판은 비어 있었다 할머니가 꼬옥 쥐어주신 돈을 들고 장 한 바퀴를 다 돌아봐도 나는 감이 먹고 싶었다 할머니 감보다 크고 잘생긴 감을 사 한입 베어 물고 나타났을 때 눈물을 뿌리시며 혼내시던 할머니, 할머니는 빠른 걸음 나는 느린 걸음으로, 백 발짝 뒤에서 걸어왔다 삽다리 장은 퍽 먼 장이라고 생각했다         산골 할머니의 봄     깊은 산골 오두막에 할머니가 삽니다 해와 달과 별과 꽃과 새와 나비는 할머니 가족입니다 토방 위엔 온종일 햇빛이 뛰놀고 밤 되면 먼 나라 아기별들이 속삭여줍니다 궁노루 발짝 찾아가며 버들개지 피고 산벚나무 꽃망울 붉어지면 도란도란 도랑 물소리 귀를 맑게 틔우며 오두막을 안고 먼 길 흘러갑니다 섬돌 밑에 두꺼비와 아침인사 나누며 할머니 갈퀴손은 바빠집니다 울 밑에 오이 놓고 하늘 위로 박 올리고 할머니 등이 호미처럼 굽었습니다 낮은 어깨는 장닭한테 쫓기는 노랑나비 청개구리의 피신처가 됩니다 지난봄에 태어난 병아리가 오늘은 하얀 알을 낳았습니다 폭설에 다리를 다친 아기고라니가 할머니 방에서 겨울을 나고 산으로 갔습니다 도라지 밭을 매다 할머니 쪽잠을 잡니다 물끄러미 지켜보던 검둥이도 할머니 등에 기대 깜박 잠이 듭니다 지나던 해님이 내려다보고 산그늘 한 자락 끌어다 가만가만 덮어줍니다       응봉국민학교 *         팔봉산 해 높이를 재며 시작되던 응봉국민학교, 무논에서 개구리가 라랴러려- 언문으로 울면 귀밑때기 새파란 아이들 입이 째지게 책 읽는 소리 들렸지 측백나무 울타리 늦은 잠에서 깨어난 참새들 구구단 못 외워 벌 받는 아이처럼 살금살금 교실 안을 넘겨다보고 노오란 해가 눈썹 끝에 와서 걸리면 숙직실 부엌에서 강냉이 죽 끓는 냄새가 풍금 소리에 솔솔 묻어오기도 했지 운동장을 끼고 흐르는 실개천엔 각시붕어, 모래무지, 꾸구리, 미꾸라지가 지느러미 파들거리며 손 안에 들어와 잡혀주고 봄비 오다 갠 날 운동장 늙은 벚나무에서 팝콘처럼 터지던 벚꽃, 전교생이 소낙비를 가려도 넉넉하던 플라타너스, 코스모스 화안한 신작로길, 가을 운동회, 꼴찌를 놓친 적 없던 백미 달리기는 여학생들 앞에서 얼마나 나를 작게 했던가 담임선생님 등에 업혀 소풍가던 상국이, 국어책을 잘 읽던 똑똑한 윤수, 눈물이 많아 울보 별명을 붙이고 살던 착한 완수, 무릎 꿇고 벌받던 개구장이 용배, 울음 섞인 목소리로 졸업생 답사를 읽어나가던 빨간 스웨터 혜진이는, 또 얼마나 오랫동안 나를 아프게 했던가 구렛나루 거뭇하던 영묵이, 덕회, 그리고 먹석골, 솔안말, 우체국, 청심당약방도 지금 모두 잘 있는가, 잘들 있는가   *충남 예산군 응봉면에 소재한 ‘응봉초등학교’의 옛교명                 ※ 충남 예산 응봉 출생. 1993년《시와시학 》으로 등단   『아버지는 힘이 세다』『감꽃 피는 마을』   『첫눈 내리는 날에 쓰는 편지』   『비 내리는 소래포구에서』   『루루를 위한 세레나데』등의 시집이 있음   시와시학상 동인상 수상                             눈길         어둑새벽 눈길 위엔 시묘 살던 서당집 훈장 할아버지 짚신 발자국과 석유등 밝히고 새벽예배 간 천안할머니 조그만 신발 자국이 나란히 찍혀 있었다         그 겨울     겨우내 하얀 눈이 쌓이는 고향집 삼밭, 캄캄한 구덩이 속에서는 샛노란 무 싹들이 세상 소식 궁금하다고 기지개를 켜며 새록새록 고개를 밀어 올리고 있었습니다           저 하늘 아래에는       저 하늘 아래에는 운동모자 꾹 눌러쓰고 코스모스 꽃길 말없이 걸어가는 소년과     하얀 팔 내놓고 오르간 앞에 앉아 있는 갈래머리 소녀가 있었다     귀가         이제는 가리, 은하강 푸른 물결 하얀 쪽배를 타고 청보리밭 사잇길로 우마차 타고 필릴리- 필릴리- 하루 반나절을 들어가면 우물가에서 흰 닭이 울고 저녁연기 하늘로 긴 머리를 풀어 올리는 탱자꽃 달밤에 환한 그 집, 흰 무명저고리 여인이 아랫목에 더운 밥 묻어 놓고 밤마다 젖은 눈 깜빡이는 곳으로     감꽃 지는 마을         감꽃 피는 내 고향 가고 싶다 논두렁에 콩 심고 비 맞으며 깨 모종하고     장날이면 어머니랑 단둘이 등불 밝혀 들고 한내 장길 아버지 마중을 가고 싶다 개구리 울음 가만가만 밟아가며     오늘같이 비 오다 갠 날엔 앞산 뒷산 나란히 잠든 어른들 한 분, 한 분, 깨워 일으키고 싶다         비 오다가 갠 날         젊은 엄마가 옥양목 앞치마 반듯하게 매고 부엌에서 손님 맞을 준비하고 있을 것 같은,     젊은 아버지가 원추리꽃 꺾어 소 귓등에 꽂아주고 무지개 뜬 산길 넘어 소 앞세우고 돌아올 것 같은,     장마 끝나고         장마 끝나고 갈울내깔, 징검다리 하나 둘 모습 드러내면 시냇물 맑아져 송사리 피라미 떼 줄을 짓는다 아랫 내 물턱 큰물에 휩쓸려온 방개고무신 한 짝 걸려 있다 하늘이 높고 구름이 빠르게 움직인다 버들붕어 한 꿰미씩 들고 곱돌모랭이 돌아오면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났다         눈 내리는 저녁         저녁눈 설핏하게 떠도는 날은 고향마을 찾아들고 싶다 아이들 한바탕 떠들다 돌아가고 시누대밭 참새들만 춥다고 조잘대던 저녁 어스름, 그집 앞 지나다가 나풀대던 단발머리 보고 싶다 외양간에 늙은 소 거친 숨 몰아쉬던 소리 들릴 듯하다         그 여름         홍수로 깊어진 대흥내를 건너 한낮의 뙤약볕 속을 열무단 이고 늙은 노새처럼 걸어오는 할머니, 낮은 어깨엔 여치 풀무치 기름챙이도 함께 붙어왔다 소낙비에 전 베적삼에선 눅눅한 쉰내가 피어났다 보릿집 후둑이며 아궁이 불 지피면 부뚜막에 쪼그리고 앉아 할머니 수제비를 뜨셨다 해꽃은 꺾여 시드는데 쇠품팔러 간 엄마는 돌아오지 않고         옛 동산에 오르며             저-기 저 소장뜰 대흥내 건너 꿩 산비둘기 사뿐 내려앉는 채당미 해바른 곳은 붙들 아버지 묘 닭재산 자락 코불네 산은 꼽새 할머니 묘 참샘골 서낭당 산삐알은 마구셍이 체장수 묘 황골 방죽머리 뱀밭엔 머슴살이 성배 아버지 묘 앞산 모랭이 돌아가면 자식 못 둔 천안 할머니 묘 함질재 오르막에는 푸른 이끼 덮어쓴 딸그만이네 묘 부엉이골 분고개 산등성은 매방앗간 연승 할아버지 묘 때까치 새끼 치는 팽나무재 너머 애꾸눈이 순옥 엄마 묘 흐드러진 찔레꽃 멍개나무 덤풀 속엔 올망졸망 애기들 묘 수리봉 자락길 지나 시루셍이 먼발치로 중뜸 소이침쟁이 묘 주걱샘 가는 길섶 쑥대밭은 아들 못 둔 연국이 외할아버지 묘 작은매봉재 큰 바위 아래 가재골 다락논 옆은 늑대 할아버지 묘 죽은 처녀들 달밤에 나온다는 개티고개 황톳길 한복판엔 처녀들 묘 말구루마 비척대는 삼거리 주막집을 지나 갈참나무 숲은 우리 할머니 묘           그리운 홍성         꼬불간 돌아서 은행나무 말무덤 금마천 살진 메기 물살을 친다 의사총을 끼고 숯거리 들어서면 장닭이 목청 뽑아 홰를 쳐 울고 아침볕에 조양문朝陽門 젖은 머리 말릴 때 월산 진달래 붉더라, 붉더라,           독골엿장수         아침나절이면 엿가위 소리 짤깍대며 감꽃 핀 마을 찾아오던 독골엿장수, 실속은 없지만 언제나 다정한 아이들 친구였지 엿장수 궁디는 끈적끈적- 마른버짐 핀 머슴애들 데설궂어도 눈 한 번 끔벅이며 씨익, 웃어 주면 그것으로 끝이었지 어쩌다 한잔 술에 어깨춤을 출 땐 복실이도 꼬리치며 방울 흔들고 처마 끝 아슬한 낮달도 웃음 참느라 눈물 질금거렸지 허드렛 것들 모아 지게 가득 짊어지고 구렛들 저녁 안개 속으로 파묻혀가던 독골엿장수, 유난히 춥던 그 겨울 마지막으로 짤깍 소리 들리지 않았지     빨래터 풍경       구렛들 버드나무샘은 근처에서 유명한 빨래터였다 여름엔 찬물 겨울엔 더운물이 언제나 팡팡 솟아올랐다 아침나절이면 마을 아낙들 하얗게 둘러앉아 빨랫돌 하나씩 차지하고 쉴 새 없이 이야기꽃을 피워 아랫마을로 띄워 보냈다 나어린 계집애들 감꽃 꿰어 목에 걸고 입이 째지게 동요를 불렀다 먼 들녘에서 장항행 열차가 한낮의 정적을 깨면 물무당도 덩달아 신이 나 힘차게 물살 가르며 매암을 돌았다 손등이 까만 개구쟁이들 어미한테 붙잡혀 엄살을 떨고 수세미로 닦달당한 손등은 어느새 배냇손처럼 하얘지지만 하루만 지나면 도로 까마귀손이었다         나는 감이 먹고 싶었다         된서리 하얗게 내리친 가을날 죽은 처녀들 달밤에 나온다는 개티고개, 황톳길 넘어 막내고모 시집간 들길 따라 감 팔러 장에 가시는 할머니 느린 걸음 신나게 앞질러 가면서도 나는 감이 먹고 싶었다 거북당 께끼집 골목에 감 몇 덩이로 좌판을 벌여 놓고 한나절을 쪼그리고 앉아 기다려도 할머니 감은 팔리지 않았다 옷고름 끝으로 한사코 콧물만 훔치시는 할머니, 바라만 보고 있기엔 따분해 약장수 말광대 구경을 하고 한참 만에 돌아왔을 때 좌판은 비어 있었다 할머니가 꼬옥 쥐어주신 돈을 들고 장 한 바퀴를 다 돌아봐도 나는 감이 먹고 싶었다 할머니 감보다 크고 잘생긴 감을 사 한입 베어 물고 나타났을 때 눈물을 뿌리시며 혼내시던 할머니, 할머니는 빠른 걸음 나는 느린 걸음으로, 백 발짝 뒤에서 걸어왔다 삽다리 장은 퍽 먼 장이라고 생각했다         산골 할머니의 봄     깊은 산골 오두막에 할머니가 삽니다 해와 달과 별과 꽃과 새와 나비는 할머니 가족입니다 토방 위엔 온종일 햇빛이 뛰놀고 밤 되면 먼 나라 아기별들이 속삭여줍니다 궁노루 발짝 찾아가며 버들개지 피고 산벚나무 꽃망울 붉어지면 도란도란 도랑 물소리 귀를 맑게 틔우며 오두막을 안고 먼 길 흘러갑니다 섬돌 밑에 두꺼비와 아침인사 나누며 할머니 갈퀴손은 바빠집니다 울 밑에 오이 놓고 하늘 위로 박 올리고 할머니 등이 호미처럼 굽었습니다 낮은 어깨는 장닭한테 쫓기는 노랑나비 청개구리의 피신처가 됩니다 지난봄에 태어난 병아리가 오늘은 하얀 알을 낳았습니다 폭설에 다리를 다친 아기고라니가 할머니 방에서 겨울을 나고 산으로 갔습니다 도라지 밭을 매다 할머니 쪽잠을 잡니다 물끄러미 지켜보던 검둥이도 할머니 등에 기대 깜박 잠이 듭니다 지나던 해님이 내려다보고 산그늘 한 자락 끌어다 가만가만 덮어줍니다       응봉국민학교 *         팔봉산 해 높이를 재며 시작되던 응봉국민학교, 무논에서 개구리가 라랴러려- 언문으로 울면 귀밑때기 새파란 아이들 입이 째지게 책 읽는 소리 들렸지 측백나무 울타리 늦은 잠에서 깨어난 참새들 구구단 못 외워 벌 받는 아이처럼 살금살금 교실 안을 넘겨다보고 노오란 해가 눈썹 끝에 와서 걸리면 숙직실 부엌에서 강냉이 죽 끓는 냄새가 풍금 소리에 솔솔 묻어오기도 했지 운동장을 끼고 흐르는 실개천엔 각시붕어, 모래무지, 꾸구리, 미꾸라지가 지느러미 파들거리며 손 안에 들어와 잡혀주고 봄비 오다 갠 날 운동장 늙은 벚나무에서 팝콘처럼 터지던 벚꽃, 전교생이 소낙비를 가려도 넉넉하던 플라타너스, 코스모스 화안한 신작로길, 가을 운동회, 꼴찌를 놓친 적 없던 백미 달리기는 여학생들 앞에서 얼마나 나를 작게 했던가 담임선생님 등에 업혀 소풍가던 상국이, 국어책을 잘 읽던 똑똑한 윤수, 눈물이 많아 울보 별명을 붙이고 살던 착한 완수, 무릎 꿇고 벌받던 개구장이 용배, 울음 섞인 목소리로 졸업생 답사를 읽어나가던 빨간 스웨터 혜진이는, 또 얼마나 오랫동안 나를 아프게 했던가 구렛나루 거뭇하던 영묵이, 덕회, 그리고 먹석골, 솔안말, 우체국, 청심당약방도 지금 모두 잘 있는가, 잘들 있는가   *충남 예산군 응봉면에 소재한 ‘응봉초등학교’의 옛교명                 ※ 충남 예산 응봉 출생. 1993년《시와시학 》으로 등단   『아버지는 힘이 세다』『감꽃 피는 마을』   『첫눈 내리는 날에 쓰는 편지』   『비 내리는 소래포구에서』   『루루를 위한 세레나데』등의 시집이 있음   시와시학상 동인상 수상                
960    헝가리 민중시인 - 아틸라 요제프 댓글:  조회:4048  추천:0  2018-02-19
  출생 1905. 4. 11, 부다페스트 사망 1937. 12. 3, 헝가리 볼로톤사르소 국적 헝가리 요약 헝가리 시인- 아틸라 요제프   20세기의 위대한 헝가리 시인으로 17세 때 첫번째 시집을 출판했으나 죽은 뒤에야 참다운 명성을 얻었다. 그는 마르크스 사상에 마음이 끌려 당시 비합법 단체였던 공산당에 입당했다. 1932년 문학잡지 〈볼로샤크 Valóság〉를 공동창간했으나 얼마가지 않아 중단되었고 1936년에는 평론지 〈세프 소 Szép Szó〉를 공동 창간했다. 그는 자신의 시를 통해 프롤레타리아의 생활을 정감있게 그렸으며 가난한 세탁부였던 자신의 어머니를 노동계급의 상징으로 제시해 불멸하게 만들었다. 또한 부조리가 배어나는 애수적 사실주의라는 새로운 사조를 창조했고 이를 통해 현대인의 복잡한 감정을 표현하고 삶의 본질적인 아름다움과 조화를 믿는 자신의 신념을 나타냈다. =====================덤으로 더...   (서울=연합뉴스) 황윤정 기자 = 헝가리 시인 아틸라 요제프(1905~1937)의 시집 '아틸라 요제프 시선 : 일곱 번째 사람'이 한국 국내 처음(08월 13일, 2014년)으로 번역돼 나왔다. 1905년 헝가리 부다페스트에서 비누공장 노동자인 아버지와 세탁부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요제프는 20세기 헝가리를 대표하는 민중 시인으로 꼽힌다. 유네스코는 2005년을 '아틸라 요제프의 해'로 정해 그의 삶과 작품을 조명하기도 했다. 열일곱의 나이에 첫 시집 '아름다움의 구걸인'을 발표, 문단의 주목을 받았지만 그의 삶은 평탄함과는 거리가 멀었다.   신문판매원, 선박 급사, 날품 노동자, 웨이터 조수 등을 전전하며 지독한 가난과 외로움에 시달렸던 그는 서른두 살 젊은 나이에 자살로 생을 비극적으로 마감하기까지 유토피아에 대한 희망과 좌절, 노동자의 고단한 삶을 시에 오롯이 담아냈다. 이번 시집에는 표제시인 '일곱 번째 사람'을 비롯해 '노동자여' '노크하지 말고' '마지막 전투' 등 40편의 시가 실렸다. "가난한 사람들이 이기도록 도와주는 사람/몸이 부서지도록 일하는 사람/밤새도록 달을 바라보는 사람, 그러면/세상이 당신의 비석이 될 거예요-/당신 자신이 일곱 번째라면" ('일곱 번째 사람' 중) 심보선 경희사이버대 교수는 "요제프의 시에는 비참한 현실과 싸우는 시인의 자의식과 미래를 향한 유토피아적 충동이 가득하다"면서 시인이 "인간의 영혼을 위한 전쟁"에 복무했다고 평했다. 전문 번역가 공진호 씨가 영어로 번역된 그의 시를 한국어로 중역(重譯)했다. 반 고흐의 그림을 담은 세 가지 표지로 출간돼 독자가 취향에 따라 표지를 선택할 수 있다. 이번 시집은 아티초크 출판사가 기획한 시선집 '아틸라 요제프 시선'의 첫 번째 시집으로, 출판사 측은 시집 두 권을 추가로 펴낼 예정이다.       일곱 번째 사람                                                           아틸라 요제프József, Attila               세상에 나아가 인생 여행을 하며 일곱 번 다시 태어나세요― 불난 집에서 한 번, 얼음처럼 찬 물에서 한 번, 걷잡을 수 없는 정신병원에서 한 번, 바람이 몰아치는 밀밭에서 한 번, 아무도 없는데 종이 울리는 수도원에서 한 번, 비명을 지르는 돼지들 가운데서 한 번, 여섯 아이가 울지만 충분하지 않아요―   당신 자신이 그 일곱 번째가 되어야 해요!   생존을 위한 싸움을 해야 할 때 당신의 적이 일곱 사람을 보게 하세요― 일요일에 일하지 않는 사람, 월요일에 일을 시작하는 사람, 보수 없이 가르치는 사람, 물에 빠져 수영을 배우는 사람, 숲을 이룰 씨앗이 되는 사람, 야생의 선조들이 보호해주는 사람, 하지만 이들의 비결 전부로도 충분하지 않아요― 당신 자신은 일곱 번째여야 해요!     당신의 여자를 찾고자 하면 남자 일곱을 그녀에게 보내세요― 말보다 가슴을 주는 남자, 자신을 돌볼 줄 아는 남자, 꿈꾸는 사람을 자처하는 남자, 그녀의 스커트로 그녀를 느낄 수 있는 남자, 호크와 단추를 아는 남자, 단호히 행동하는 남자, 이들이 파리처럼 그녀를 맴돌게 하세요― 당신 자신은 일곱 번째여야 해요     할 수만 있다면 시인이 되세요 하지만 시인 안에는 일곱 사람이 있어야 해요― 대리석 마을을 짓는 사람, 자신의 꿈속에서 태어난 사람, 하늘의 지도를 그리며 하늘을 아는 사람, 자신의 이름이 언어에 의해 부름을 받는 사람, 자신의 영혼을 책임지는 사람, 쥐를 산 채로 해부하는 사람― 이 중 둘은 담대하고 넷은 슬기로우니 당신 자신이 일곱 번째여야 해요     이 모든 것이 그대로 이루어지면 당신은 일곱 사람을 위해 묻히리니― 한 사람은, 요람에서 젖을 빠는 사람 한 사람은, 젊은 여자의 살진 가슴을 쥐고 있는 사람 한 사람은, 빈 접시들을 내던지는 사람 한 사람은, 가난한 사람들이 이기도록 도와주는 사람 한 사람은, 몸이 부서지도록 일하는 사람 한 사람은, 밤새도록 달을 바라보는 사람, 그러면     세상이 당신의 비석(碑石)이 될 거예요― 당신 자신이 일곱 번째라면                     ※ 1905년 헝가리 부다페스트에서 비누공장 노동자인 아버지와 세탁부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요제프는 자라면서 온갖 노동을 다 했다. 그는 신문팔이, 선박 급사, 신문 배달원, 옥수수밭 경비원, 시인, 번역가, 항만 하역부, 날품팔이 등 열아홉 개 직업을 전전한다. 열일곱의 나이에 첫 시집 '아름다움의 구걸인'을 발표, 유토피아에 대한 희망과 좌절, 노동자의 고단한 삶을 시에 오롯이 담아냈다. 이 시집으로 문단의 주목을 받았지만 그의 삶은 지독한 가난과 외로움에 시달려 평탄함과는 거리가 멀었다. 가난이 집어삼킬 수 없을 만큼 꿋꿋했으나 결국 서른두 살 때 비운으로 얼룩진 생을 화물열차에 던져 마감했다. 20세기 헝가리를 대표하는 민중 시인으로 꼽힌다. 유네스코는 2005년을 '아틸라 요제프의 해'로 정해 그의 삶과 작품을 조명하기도 했다.  아틸라 요제프 ,『아틸라 요제프 시선 - 일곱 번째 사람』(아티초크, 2014)             출처 :시인 오준, `사람의 땅 시의 길` 글쓴이 : 해와 ======================================== 지친 사람                                                     아틸라 요제프 밭의 농부들이 엄숙히 흩어져 말없이 집으로 간다. 강물과 나, 우리는 나란히 누워 있다. 내 가슴 아래 여린 풀이 잠잔다.   강물에는 깊은 고요가 감돌고 시름은 이제 이슬처럼 가볍다. 나는 어른도 아이도 헝가리인도 동포도 아니다? 여기에 누운 나는 당신처럼 지친 한 사람.   저녁은 고요를 퍼 담고 나는 따뜻한 빵 한 조각인데 고즈넉한 하늘의 별, 강가에 나앉더니 내 머리를 밝히네.     아틸라 요제프(1905~1937)는 헝가리의 시인입니다. 이 시에는 하루의 노동을 끝낸 농부가 등장합니다. 농부는 종일 밭일을 했기 때문에 육체가 매우 피로한 상태에 있습니다. 한 마디의 말조차도 하기 어려운 상태에 있습니다. 그러나 농부의 곁에는 강물이라는 자연과 가족과 이웃이 있어서 농부가 몸을 눕혀 휴식을 취할 때 그 옆에 나란히 눕습니다. 이들 사이에는 생각과 감정이 서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연대감이 있습니다. 농부의 가슴에는 부드럽고 산뜻한 풀이 자랍니다. 또 깊은 강물은 고요를 통해 농부를 쉬게 하고, 이슬은 농부의 시름을 씻어냅니다. 저녁 하늘에 돋은 별은 농부의 머리 위에서 밝은 빛으로 또렷합니다. 아틸라 요제프는 “이 땅은 자선함처럼/ 나를 받으리”라고 썼는데, 그의 표현대로 모든 존재는 “환영받는 초대 손님”입니다. [불교신문3232호/2016년9월10일자] ///문태준  시인 [시가 있는 아침] =                    일곱 번째 사람 |2015-03-17  일곱 번째 사람 - 아틸라 요제프(1905~37) 이 세상에 나오면 일곱 번 다시 태어나세요- 불난 집에서 한 번, 눈보라 치는 빙원에서 한 번, 광란의 정신병원에서 한 번, 바람이 몰아치는 밀밭에서 한 번, 종이 울리는 수도원에서 한 번, 비명을 지르는 돼지들 가운데서 한 번, 여섯 아이가 울지만 충분하지 않아요- 당신 자신이 일곱 번째여야 해요! (……) 아틸라 요제프는 비누공장 노동자와 세탁부를 부모로 두고 태어난 헝가리의 민중 시인이다. 가난한 집안에서 나고 자라면서 온갖 노동을 다 했다. 그는 신문팔이, 선박 급사, 신문 배달원, 옥수수밭 경비원, 시인, 번역가, 항만 하역부, 날품팔이 등 열아홉 개 직업을 전전한다. 가난이 집어삼킬 수 없을 만큼 꿋꿋했으나 결국 서른두 살 때 비운으로 얼룩진 생을 화물열차에 던져 마감했다. 시인은 사람이 요람에서 무덤까지 가는 동안 일곱 번 태어나야 한다고 말한다. 일곱 번 태어난 사람은 삶을 일곱 겹으로 산다. 여섯 번으로는 부족하다. 기어코 한 번 더 태어나야만 한다. 일곱 겹을 산 뒤 비로소 눈보라와 광란 같은 현실의 수압(水壓)을 견디며 꿋꿋하고 숭고하게 살 수 있으니!  
959    윤동주, 헝가리의 밤하늘가에 샛별로 처음 뜨다... 댓글:  조회:2372  추천:0  2018-02-19
ㆍ한국과 헝가리 대표 시인 ‘윤동주와 아틸라’ 예술가 교류  [2018-02-05]          윤동주 (1917-1945)        요제프 아틸라 (1905-1937)    양국 시인 주제로 콘서트와 문학포럼 개최 [시사투데이 김경희 기자]  주헝가리 한국문화원은 오는 9, 10일 양일 간 20세기 초 격변의 시기를 살았던 한국과 헝가리의 대표 시인 윤동주와 요제프 아틸라를 기리는 예술가 교류 프로젝트 를 부다페스트의 페퇴피 문학 박물관(Petőfi Literary Museum)에서 개최한다. 윤동주(1917-1945)와 헝가리의 대표 민중시인 요제프 아틸라(József Attila, 1905-1937)는 20세기 초반 같은 시기를 살았고 젊은 나이에 비극적으로 생을 마감해 여전히 양국의 국민들로부터 큰 사랑을 받는 시인이라는 점에서 공통점을 지닌다. 두 시인의 시에는 당대 양국의 사회상 속에서 개인의 삶, 사유, 마음이 진정성 있게 담겨있는데 윤동주의 시에는 일제 강점기 시절 민족의 고통이, 아틸라의 시에는 노동자 계급의 고단한 삶이 묻어난다. 9일 문학 포럼에서는 윤동주 전문가이자 시인인 김응교가 '윤동주는 무엇을 사랑했나'라는 제목의 강연으로 윤동주를 헝가리 관객들에게 정식으로 처음 소개한다. 시인·사회학자 심보선은 ‘다수성을 드러내는 쓰기’라는 제목의 발제를 통해 시인 요제프 아틸라를 현대 한국 시인의 시선으로 조명하고 헝가리 시인들과 대화의 장을 연다. 이어 10일 음악을 통해 기리는 콘서트가 개최된다. 한국의 작곡가 임지선(연세대학교 작곡과 교수)은 윤동주의 시 ‘새로운 길’에서 영감을 받아 작곡한 동명의 비올라 협주곡을 헝가리 관객들에게 처음 소개한다. 헝가리의 작곡가 티하니 라즐로(리스트음악원 교수)는 요제프 아틸라의 시를 기반으로 작곡한 신곡‘백 개의 밤’을 세계 초연한다. 주헝가리 한국문화원 김재환 원장은 “시는 당대의 현실과 문화를 가장 예민하게 반영하고 있는 문학장르다. 이번 행사가 두 나라를 더 깊이 이해하고 문화적 성취와 교류를 함께 나눌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다”고 했다. ​  [2018-02-05] 행사 포스터  
958    세계문학사 유례없는 20대 천재 시인 - 윤동주 댓글:  조회:2253  추천:0  2018-02-18
윤동주 ‘쉽게 쓰여진 시’ 25세 마지막 원고, 세계문학사 유례없는 20대 천재 시인 (ZOGLO) 2018년2월15일  윤동주의 시, 한`중`일 교과서 수록과 한류의 흐름속에 세계인들의 관심...2월16일 기일 ○출연 : 김응교 교수(숙명여대) ●앵커 : 박경수 기자   윤동주 시비   [인터뷰 전문]   ▶ 박경수 앵커(이하 박경수) : 사회의 쟁점 현안과 주목받는 인물을 조명하는 이슈&피플, 오늘은 민족시인이죠. 윤동주 선생에 대한 얘기를 듣도록 하겠습니다. 숙명여대 김응교 교수, 전화연결돼있네요. 김응교 교수님, 반갑습니다!   ▷ 김응교 교수(이하 김응교) : 네, 안녕하세요.   #윤동주 ‘평화와 사랑을 배우는 아이콘’   ▶ 박경수 : 최근 윤동주 시인이 과거에 비해서 많이 대중화되고 있는 것 같구요. 국내는 물론이고 해외에서도 그렇고... 교수님이 보시기엔 그 이유가 뭐라고 보시나요?   ▷ 김응교 : 윤동주는 ‘평화의 아이콘’이 아닌가 이런 생각을 해 봤어요. 국내에 있는 외국인 터키, 방글라데시, 필리핀 등 그 언론계와 작가들 앞에서 강연한 적이 있는데요. 지난 열흘 간은 프랑스 파리하고 헝가리 부다페스트에서 강연을 했구요. 근데 부다페스트에서도 한 100여명의 관객이 모두 헝가리인들이었는데, 이 한류와 더불어서 이렇게 순서가 팝 코리아팝을 좋아하면 그 다음에 한글을 공부하고 한국 무용이나 이런 걸 하면서 윤동주 얘기를 이렇게 외국인들이 관심을 갖는 걸 봤습니다. 그래서 윤동주는 우리 국내뿐만 아니라 세계 사람들이 한국을 알고 또 평화와 사랑을 배우는 어떤 아이콘이 아닌가 생각을 했습니다.   #‘쉽게 쓰여진 시’...25살 5개월에 쓴 마지막 원고 세계문학사에 유례가 없는 천재 시인....한중일 3국 교과서에 실려있어   ▶ 박경수 : 사실 윤동주 시인의 기일이 이번 주 금요일입니다. 올해는 설날인데... 이제 해방을 앞둔 1945년 2월 16일에 일본 형무소에서 돌아가시는 거잖아요? 스물아홉에 말이죠...   ▷ 김응교 : 그렇죠. 사망에 대해서는 인체실험이었다, 뭐 여러가지 추측이나 이런 게 있지만 이제는 비극적인 얘기도 중요하고 기억해야지만... 불과 마지막 시를 쓸 때가 25년 5개월이거든요. 마지막, ‘쉽게 쓰여진 시’라는 마지막 원고 남길 때가. 근데 그 25년 5개월 동안 남긴 시 그 수준을 봤을 때 과연 25살 이전에 세계문학적인 수준을 낸 세계문학 쪽에서 작가가 누가 있을까 생각해 보면 정말 없어요. 프랑스나 유럽이나 한국을 다 통 틀어서. 한국에서 25살 이전에 이 정도 시인이 성과를 이룬 정도는 김소월 정도라고 할까요. 그런데도 어떤 중국, 일본, 한국, 북한에서 교과서 급의 시인이죠. 아사히 신문 기자가 한 달 전에 저한테 또 보여 줬는데 올해도 일본 교과서에 실립니다. 윤동주 시가... 그 다음에 조선족이 있는 중국 지역에는 교과서에 실려 있고요. 우리 교과서에도 물론 실려 있고 또 북한에서도 교과서급 대접을 받는 시인이에요. 1993년부터 평이 나오기.. 윤동주에 대한 평이 나오기 시작해서 그 다음에 일본 중국 한국의 세 나라에 공통으로 쓰여 있는 유일한 시인이고요. 그래서 이 사람의 죽음을 ‘비극적 죽음’이라고 생각하기 보다는 이 분이 어떤 평화와 사랑을 열어 놓은 ‘살리는 죽음’, 살리는 죽음을 죽었던 어떤 중요한 존재가 아닌가 이런 생각을 익히 이제 한 번 해 봅니다.     창밖에 밤비가 속살거려 육첩방은 남의 나라,   시인이란 슬픈 천명인 줄 알면서도 한줄 시를 적어볼까,   땀내와 사랑내 포근히 품긴 보내주신 학비 봉투를 받아   대학 노-트를 끼고 늙은 교수의 강의 들으러 간다.   생각해보면 어린 때 동무를 하나, 둘, 죄다 잃어버리고   나는 무얼 바라 나는 다만, 홀로 친전하는 것일까?   인생은 살기 어렵다는데 시가 이렇게 쉽게 씌어지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육첩방은 남의 나라 창밖에 밤비가 속살거리는데,   등불을 밝혀 어둠을 조금 내몰고 시대처럼 아침을 기다리는 최후의 나,   나는 나에게 작은 손을 내밀어 눈물과 위안으로 잡는 최초의 악수.     1942. 6.     해외에서 강연중인 김응교 교수   #윤동주의 축복은 나이에 따라 필요한 선생님과 친구들을 만났다는 점 연희전문을 택한 것은 최현배 선생의 우리말 영향 문익환 목사의 호 ‘늦봄’은 윤동주보다 늦게 깨달았다는 의미     ▶ 박경수 : 좀 굵직한 연혁을 따라가 보면요. 1917년, 지금으로부터 101년 됐네요. 만주 북간도에서 태어나서 이제 평양을 거쳐서 서울로 오게 되는데 시인으로서 가장 큰 영향을 받은 인물, 혹은 계기가 있었나요?   ▷ 김응교 : 이 분의 영향은 굉장히 커요. 지금 연세대 도서관 4층에 아무나 볼 수 있을지 모르겠어요. 40여권 중에 27권인가가 일본어 책이예요. 독서편력을 그대로 볼 수 있습니다. 유작(遺作)들이 있어서... 근데 윤동주에게 가장 축복은 나이에 따라서 가장 적당하고 그에게 필요한 선생님, 혹은 친구들을 만났던 점이죠. 어릴 때는 김약연 선생(외삼촌)을 통해 맹자를 배우는데 맹자 그 다음에 마지막에 주역에 이르기까지요. 산문을 보면 ‘화원에서 꽃이 핀다’는 산문은 주역보고 쓴 글이거든요. 그 산문 공부가 전역에 나타나고요. 그 다음에 고등학교 정지용과 백석에게 공부를 했죠. 대학교 때는 물론 연희전문을 선택한 계기가 최현배, 우리말 고등학교 때 읽고 영향이 컸고 그 다음에 이제 메모나 독서를 보면 폴 발레리, 키에르케고르, 도스토예프스키, 릴케 그 다음에 빈센트 반고흐까지 그의 독서편력과 그 영향이 시 전편에 나타납니다, 아주 골고루. 그래서 어느 누구라고 말하기가 뭐하고 그 밖에 친구 송몽규, 문익환 이런 사람들이 그 다음에 나중에 서울대 교수가 되는 정병욱 이런 분들이 아주 적당하게 윤동주의 성장을 도왔다고 볼 수 있습니다.   ▶ 박경수 : 그 문익환 목사님은 만주 북간도에서 같이 사셨던 거 아니에요, 옛날에.   ▷ 김응교 : 그렇죠. 문익환 목사님은 윤동주로 인해서 자기가 늦게 눈을 떴다고, 세상에. 윤동주 시에 봄이 많이 나와서 자기는 ‘늦봄’이라고 자기 호를 지었죠.     #1941년 11월20일...서시(序詩)는 윤동주의 자기성찰과 실천을 담아낸 대표적 작품   ▶ 박경수 : 역시 시인은 시로 말하는데 최고작은 역시 ‘서시’ 아닙니까?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교수님은 어떻게 평가하세요?   ▷ 김응교 : 이 시는 한편만으로 책을 낼 수 있는 작품이에요.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러움이 없기를’ 이라는 구절 자체가 맹자(孟子) 진심장(盡心章)이라고 맨 뒤에 나오는 앙불괴어천(仰不愧於天)을 그대로 번역한 거죠. 그래서 맹자의 영향도 들어가지만 사실은 본래는 제목이 없는 일종의 메모였죠. 그 다음에 시순으로 보면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의 맨 마지막에 쓴 시에요. 1941년 11월 20일이니까... 사실은 제목이 없는 메모인데 서시(序詩가 아니라 종시(終詩)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자기의 삶을 다.. 그 볼펜 색깔을 보면 제일 마지막 날 쓴 시에요, 이게. 여러 편의 시중에서. 시라기 보다는 메모인데 앞 부분은 자기 성찰이 있고 뒤에는 실천이 있죠.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것을 사랑해야지’ 근데 1941년 4학년 때부터 이 사람의 시가 대부분 이런 구절로 되어 있어요. 자기 성찰하고 실천하고 모든 죽은 것에게 검은 옷을 입히시오. 그 다음에 모든 우는 사람들에게 젖을 먹이시오. 이런 식으로 실천이 있어요, 뒤에. 그래서 윤동주는 자기 성찰만 한 시인이 절대 아니고 실천을 이렇게 늘 이렇게 시에 넣고 이런 것을 꿈꿨던 시인, 그리고 그 대표적인 작품이 서시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 박경수 : 네, 교수님 얘기 듣다 보니까요. 이 윤동주 선생의 시를 한 편 듣고 싶은데 교수님이 좋아하는 시가 있다면 시간이 다 돼갑니다만 끝으로 한 편 낭송을 해 주시죠..   ▷ 김응교 : 저는 좋아하는 시가 너무 많아 가지고요. 방송이니까 짧은 것만... ‘나무’라는 네 줄 짜리 시를 제가 하겠습니다.   나무 나무가 춤을 추면 바람이 불고 나무가 잠잠하면 바람도 자오   네 줄 짜리 시입니다. 제가 이 노래 곡을 지어서 유튜브에 올려놨는데요. 제 이름 치고 윤 동주 나무라고 치면 나오는데....   ▶ 박경수 : 어떤 배경을 갖고 있는 시인가요?   ▷ 김응교 : 그러니까 보통은 나무가 춤을 추면 바람이 불고 이거잖아요? 그런데 보통 세상은 바람이 불어야지 나무가 움직이잖아요? 그리고 또 나무가 잠잠하면 바람도 자오 이렇게 썼는데 보통 세상은 바람이 자야지 나무가 잠자잖아요?   ▶ 박경수 : 그렇죠.   ▷ 김응교 : 그러니까 자기 자신이 나무가 돼서 세상이 휘둘리지 않고 오히려 우주와 세상을 움직이겠다는 어떤 단독 정신이라고 그럴까요? 그것이 아주 가득차 있는 작품이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 박경수 : 네, 알겠습니다. 자신에 대한 성찰과 실천을 담은 시를 쓰셨죠. ‘평화의 아이콘’이라고 평가를 해주셨는데요. 숙명여대 김응교 교수께서는.... ‘처럼 시로 만나는 윤동주’를 또 쓰신 분이구요. 교수님과 함께 민족시인 윤동주 선생을 생각해 봤습니다. 오늘 시 낭송 고맙습니다.   ▷ 김응교 : 네, 감사합니다.   윤동주 문학관(창의문앞) ///BBS뉴스
957    "별 하나에 어머니, 어머니"... 댓글:  조회:2176  추천:0  2018-02-14
    우리가 지금 이 순간 전 존재를 기울여 누군가를 사랑하고 있다면 이 다음에는 더욱 많은 이웃들을 사랑할 수 있다. 다음 순간은 지금 이 순간에서 태어나기 때문이다. 지금이 바로 그때이지 시절이 달로 있는 것이 아니다.     - 봄 여름 가을 겨울 중에서       윤동주의 시에 대하여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점 부끄러움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     오늘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윤동주, [序詩] 전문 * 윤동주(1917~1945) 시인의 [序詩]는 우리 한국인들이 가장 많이 읽고 암송하고 있는 시라고 할 수가 있다.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점 부끄러움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라는 시구는 윤동주 시인의 티없이 맑은 천성天性이 사실 그대로 잘 드러나고 있는 시구라고 할 수가 있다. 도덕은 아름다움의 결정체이고, 우리는 이 도덕의 아름다움을 끊임없이 미화하고 성화시키게 된다.       산모통이를 돌아 논가 외딴 우물을 홀로 찾아가선 가만 히 들여다 봅니다.     우물 속에는 달이 밝고 구름이 흐르고 하늘이 펼치고 파아 란 바람이 불고 가을이 있습니다.     그리고 한 사나이가 있습니다. 어쩐지 그 사나이가 미워져 돌아갑니다.     돌아가다 생각하니 그 사나이가 가엾어집니다. 도로 가 들 여다 보니 사나이는 그대로 있습니다.     다시 그 사나이가 미워져 돌아갑니다. 돌아가다 생각하니 그 사나이가 그리워집니다.     우물 속에는 달이 밝고 구름이 흐르고 하늘이 펼치고 파 아란 바람이 불고 가을이 있고, 추억처럼 사나이가 있습니다. ----윤동주, [自畵像] 전문 * 나는 사랑의 대상이면서도 미움의 대상이 된다. 내가 나 자신에 대하여 긍지를 가질 때 나는 사랑의 대상이 되고, 내가 나 자신에 대하여 긍지를 갖지 못할 때 나는 미움의 대상이 된다. 사랑의 대상은 그리움의 대상이 되고, 미움의 대상은 경멸의 대상이 된다. 우리는 누구나 다같이 자기 자신을 사랑하면서도 미워하고 있는 것이다. 이 애증이 겹치는 존재가 윤동주 시인의 [自畵像]이며, 그것은 우리 인간들의 불완전함의 극적인 표상이라고 할 수가 있는 것이다. “다시 그 사나이가 미워져 돌아갑니다/ 돌아가다 생각하니 그 사나이가 그리워집니다// 우물 속에는 달이 밝고 구름이 흐르고 하늘이 펼치고 파/ 아란 바람이 불고 가을이 있고, 추억처럼 사나이가 있습니다.”     빨리 봄이 오면 죄를 짓고 눈이 밝어     이브가 해산하는 수고를 다하면     무화과 잎사귀로 부끄런 데를 가리고     나는 이마에 땀을 흘려야겠다. ----윤동주, [또 태초의 아침] 부분 *“나는 신성모독을 범한다, 고로 존재한다”는 낙천주의자로서의 나의 존재론이고, “세계는 나의 범죄의 표상이다, 고로 행복하다”는 낙천주의자로서의 나의 행복론이다. 모든 창조자는 신성모독자가 되지 않으면 안 되고, 우리는 그 신성모독자의 삶을 행복하게 살아가지 않으면 안 된다. 코페르니쿠스의 신성모독, 부처와 예수의 신성모독, 니체와 쇼펜하우어의 신성모독, 보들레르와 랭보의 신성모독 등은 이 범죄의 생산성과 그 아름다움을 가장 역동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일찍이 한국시문학사상 어느 누가 “빨리/ 봄이 오면/ 죄를 짓고/ 눈이/ 밝어// 이브가 해산하는 수고를 다하면// 무화과 잎사귀로 부끄런 데를 가리고// 나는 이마에 땀을 흘려야겠다”라고 노래한 적이 있었던가? 윤동주 시인은 한국적인 정한의 세계를 벗어나서, 대쪽같은 장인 정신과 성자의 영웅주의를 육화시킨 시인이라고 하지 않을 수가 없다.       괴로웠던 사나이, 행복한 예수 그리스도에게 처럼 십자가가 허락된다면     모가지를 드리우고 꽃처럼 피어나는 피를 어두어가는 하늘 밑에 조용히 흘리겠습니다. ----윤동주, [십자가] 부분 * 이 세상에서 가장 훌륭하고 위대한 것은 ‘사상’인데, 왜냐하면 사상은 이 세상의 삶에 대한 욕망마저도 헌신짝처럼 버리게 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상은 그것이 만인평등이든, 내세의 천국이든지간에, 그 주체자에게 분명한 목적을 제시해 주고, 그 목표를 위해서는 마치, 자살특공대처럼 순교를 하게 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훌륭한 것은 순교자의 삶이라고 할 수가 있다. 예수의 순교, 부처의 순교, 이순신의 순교, 윤동주의 순교 등----. 당신은, 당신은, 과연 당신만의 십자가를 짊어질 수 있는 용기가 있는가?       어둠 속에 곱게 풍화작용하는 백골을 들여다 보면 눈물 짓는 것이 내가 우는 것이냐 백골이 우는 것이냐 아름다운 혼이 오는 것이냐     지조 높은 개는 밤을 새워 어둠을 짖는다 어둠을 짖는 개는 나를 쫓는 것일 게다     가자 가자 쫓기우는 사람처럼 가자 백골 몰래 아름다운 또다른 고향에 가자. ----윤동주, [또다른 고향] 부분 *우리 인간들의 고향은 영원한 이상적인 천국이며, 언제, 어느 때나 되돌아가 영원히 살고 싶은 지상낙원이라고 할 수가 있다. 하지만, 그러나 고향은 마음 속의 고향일 뿐, 우리 인간들이 되돌아가 영원히 살아야 할 지상낙원이 될 수가 없다. 고향은 존재하면서도 존재하지 않고, 또한 고향은 존재하지 않으면서도 영원히 존재한다. 고향은 환영이며, 신기루이다. “가자 가자/ 쫓기우는 사람처럼 가자/ 백골 몰래/ 아름다운 또다른 고향에 가자.”     별 하나에 추억과 별 하나에 사랑과 별 하나에 쓸쓸함과 별 하나에 동경과 별 하나에 시와 별 하나에 어머니, 어머니     어머님, 나는 별 하나에 아름다운 말 한마디씩 불러봅니다. 소학교때 책상을 같이 했든 아이들의 이름과, 패佩(페이), 경鏡(찡), 옥玉(위이) 이런 이국소녀異國小女들의 이름과, 벌써 애기 어머니 된 계집애들의 이름과, 가난한 이웃 사람들의 이름과 비둘기, 강아지, 토끼, 노새, 노루, 프랑시쓰 짬, 라이넬 마리아 릴케 이런 시인의 이름을 불러 봅니다.     이네들은 너무나 멀리 있습니다. 별이 아슬히 멀듯이,     어머님, 그리고 당신은 멀리 북간도北間島에 계십니다. ---윤동주, [별 헤는 밤] 부분 *밤 하늘의 별을 바라보면 누구나 저절로 시인이 된다. 왜냐하면 밤 하늘을 바라보면서, 자기 자신을 속이고, 타인들을 속이고 싶은 사람은 없기 때문이다. 정직해진다. 솔직해진다. 이 정직함과 솔직함이 시를 쓰게 한다. 시는 언어의 아름다움이다. 그 아름다움이 밤 하늘의 별이 된다.       나는 나의 참회의 글을 한 줄에 줄이자 ----만 이십사년 일개월을 무슨 기쁨을 바라 살아왔든가     내일이나 모레나 그 어느 즐거운 날에 나는 또 한 줄의 참회록을 써야 한다. ----그때 그 젊은 나이에 왜 그런 부끄런 고백을 했든가 ----윤동주, [참회록] 부분 * 부끄러움은 떳떳하지 못함이다. 부끄러움은 남 앞에서 얼굴을 들지 못하게 하지만, 그러나 그 부끄러움을 반성할 때, 그 떳떳하지 못함은 맑고 깨끗하게 씻겨진다. 참회는 씻어냄이며, 자기 정화운동이다. 윤동주 시인의 [서시], [또 태초의 아침], [십자가], [또다른 고향], [별 헤는 밤], [간 肝] 등은 이 참회가 피워낸 명시에 해당된다.       푸로메디어쓰 불쌍한 프로메디어쓰 불 도적한 죄로 목에 맷돌을 달고 끝없이 침전하는 프로메디어쓰 ----윤동주, [간肝] 부분 * 프로메테우스는 우리 인간들을 창조한 그리스 신화 속의 신이었고, 우리 인간들에게 사유의 능력과 함께, 올림프스의 불을 가져다가 준 신이었다. 그 결과, 그는 카우카소스(코카서스)의 바위산에 묶여서 제우스의 신조神鳥인 독수리에게 하염없이 간을 쪼아먹혀야만 하는 천형의 형벌의 삶을 살지 않으면 안 되었던 것이다. 프로메테우스는 문명과 문화의 수호신이었고, 윤동주 시인은 불을 숭배하는 배화교도拜火敎徒였다.                    
956    <숟가락> 시모음 댓글:  조회:2289  추천:0  2018-02-11
   + 외할머니의 숟가락  외갓집은 찾아오는 이는 누구나  숟가락부터 우선 쥐여주고 본다  집에 사람이 있을 때도 그렇지만  사람이 없을 때도, 집을 찾아온 이는 누구나  밥부터 먼저 먹이고 봐야 한다는 게  고집 센 외할머니의 신조다  외할머니는 그래서 대문을 잠글 때 아직도 숟가락을 쓰는가  자물쇠 대신 숟가락을 꽂고 마실을 가는가  들은 바는 없지만, 그 지엄하신 신조대로라면  변변찮은 살림살이에도 집이라는 것은  누구에게나 한 그릇의 따순 공기밥이어야 한다  그것도 꾹꾹 눌러 퍼담은 고봉밥이어야 한다  빈털터리가 되어 십년 만에 찾은 외갓집  상보처럼 덮여 있는 양철대문 앞에 서니  시장기부터 먼저 몰려온다 나도  먼길 오시느라 얼마나 출출하겠는가  마실간 주인 대신 집이  쥐여주는 숟가락을 들고 문을 딴다  (손택수·시인, 1970-)  + 숟가락  숟가락을 드는데  어제는  누가 사용했을까?  누구의 입에 들어갔던 것일까?  사용한 자국도 없이  잘 씻기고  반짝반짝 닦여서  얇은 종이에 싸여 있지만,  입과 입을 연결시키며  우리들 모두  한솥밥 나눠 먹는  형제들로 만들고 싶어  식탁 위에 올려져 있는 것은 아닌가.  오늘따라  밥을 뜨는 내 숟가락에는  훈훈한 사랑이 구수하게 솟아나며  내 입맛을 돋우는 것이었다.  (박일·시인, 1969-)  + 목이 부러진 숟가락  어머니는 목이 부러진  내 알루미늄 숟가락을 버리지 않으셨다  부뚜막 작은 간장종지 아래에다 놔두셨는데  따뜻해서 갖고 놀기도 좋았다 눈두덩이에도 대보고  배꼽 뚜껑을 만들기도 했다  둥근 조각칼처럼 생겼던 손잡이는  아끼기까지 하셨다 고구마나 감자를 삶을 때  외길로 뚫고 간 벌레의 길을 파내시는 데  제격이었기 때문이었다  어머니를 찾아뵐 때마다, 내 몸은  탄저병에 걸린 사과나 굼벵이 먹은 감자가 되어  한 켜 껍질이 벗겨지는 것 같다  숫제, 내가 한 마리 벌레여서  밤고구마나 당근의 단단한 속살을 파먹고 있고  내 숟가락은 아직 생기지도 않았고  어머니는 외할머니 댁 추녀 밑에서 소꿉놀이를 하고 있는,  그런 벌레 알 같은 생각을 꼼지락거리기도 한다  숟가락 손잡이로 둥글고 깊게  나를 파고 나를 떼내다가  지금은 없는 간장종지 아래에  지금은 없는 내 목 부러진 숟가락을  모셔두고 온다  (이정록·시인, 1964-)  + 딱 한 가지  숟가락 하는 일은  딱 한 가지  하루 종일  놀다가  아침 저녁 잠깐씩  밥과 국을 떠  입에 넣는 일밖에 없다.  그런데  그 일 한 가지가  사람을 살리네  목숨을 살리네  고마운 숟가락  밥숟가락!  (엄기원·아동문학가, 1937-)  + 숟가락  너는 참 좋은 일만 한다  내 몸에 좋은 것을 넣어 주려고  매일 매일 내 입 가까이  와서는 한 발 들여놓았다가  다시 나가지  아예 쑥 들어왔다가  놀다 가는 것도 아니고  먹을 것만 쏘옥 넣어 주고  슬쩍 사라졌다가는  다시 와서 한 입 주고 가지   입맛 없을 때는 먹기 싫은데   꼭 한 입 넣어 주고야 마는 너는  참 대단한 녀석이야  식사가 끝나면 시치미 뚝 떼고  네 자리에  얌전하게 들어가   다음을 기다릴 줄도 아는 넌  역시 멋진 녀석이야  (한선자·아동문학가)  + 떡잎   씨앗의 숟가락이다  뜨겁지 않니?  햇살 한 숟갈  차갑지 않니?  봄비 한 숟갈  씨앗의 첫 숟가락이다  봄이 아끼는  연둣빛 숟가락  (조영수·아동문학가)  + 수저   아이가 두 시간째 주방에서 달그락거리고 있다  몸져누워 먼 세상일인 듯 듣는 아득히 낯선 소리  서툴게 부딪는 숟가락 소리,  살아있다는 건 누워서 듣는  달그락거리는 수저소리쯤 될까  죽은 후에도 저 하나쯤 가져가고 싶은 소리  숨이 끊어진 뒤에 마지막까지 남는 건 청각이라는데  문득, 아버진 무슨 소릴 가져갔을까 궁금하다  호흡기 떼기도 전에,  글쎄, 시트 밑에서 통장이 여섯 개나 나왔는데  우리도 모르는 통장이,  관리는 누가 하냐 첫째는 멀리 있어 안 되고  둘째는 좀 불안하고, 너는 생전에 아버지 애 먹여서 안 되고,  아버지의 일생을 가볍게 들었다 놨다,  마지막까지 통장통장 하던 소리, 육남매 덜걱대는 소리,  태어나서 시작되고  죽을 때 거두어가는 게 수저소리일 텐데  그 소리 대신,  결국 아버지는 자신의 통장을 다 가져가신 셈이다  (이규리·시인, 1955-)     
955    <삶=사람=삶> 시모음 댓글:  조회:2577  추천:0  2018-02-09
   + 사람  사람을 바라보면 눈물이 난다  사람으로 살아보니 그랬다  (신광철·시인)  + 내 작은 어깨로  우리 동네 기타 공장에서 일하는  방글라데시 아저씨가  두리번거리다가  내 옆 빈 자리에 와 앉았다.  얼마 전 기계에  손가락이 잘렸다는 그 아저씨는  자리에 앉자마자  옷자락에 손을 감추고  몹시 피곤한지  눈을 감더니  버스가 흔들릴 때마다  내 어깨에 머리를 기대었다.  뜨거운 눈물과 함께 우리 나라 땅에 묻었을  새끼손가락 마디.  아저씨는 지금  바다 건너 먼 고향집을  숨 가쁘게 달려가고 있는지도 몰라.  내 작은 어깨로  아저씨의 잠든 얼굴을  가만히 받쳐 주었다.  (전병호·아동문학가)  + 밥알  갓 지어낼 적엔  서로가 서로에게  끈적이던 사랑이더니  평등이더니  찬밥 되어 물에 말리니  서로 흩어져 끈기도 잃고  제 몸만 불리는구나  (이재무·시인, 1958-)  + 얼음  강은, 겨울 동강은 자신을 사이에 둔 마을과 마을을, 강의  이편 저편 마을로 나누기 싫었던 것이다  자신을 사이에 두고 길은 끊어지고, 사람과 사람 사이의 길  도 끊어지는 것이 안타까웠던 것이다  어린아이들도 괜히 강 건너 서로를 미워하며 돌을 던지거나  큰소리로 욕이나 해대며 짧은 겨울 한낮을 다 보내는 것이  슬펐던 것이다  하여, 강은 지난밤 가리왕산의 북풍한설北風寒雪을 불러 제  살을 꽝꽝 얼려버린 것이다  저 하나 육신공양肉身供養으로 강 이편 마을들과 강 저편 마  을을 한 마을로 만들어놓은 것이다  (정일근·시인, 1958-)  + 어깨동무하기  어깨동무하고 몰려다니는  구름들.  어깨동무하고 뻗어 있는  산들.  어깨동무하고 누워 있는  밭이랑들.  강물도, 파도도  파란 어깨동무.  어깨동무하기   사람들만 힘든가 보다.  (신새별·아동문학가)  + 상수리나무  상수리나무는 땅을 굳게 딛고  당당하게 서 있다.  뿌리를 깊게 내리고 있다.  으리으리한 궁궐에  정원수가 될 생각은 없다.  뭇 사람들이 몰려들어  칭찬해 주기를 바라지 않는다.  값비싼 귀한 몸이 되고 싶지도 않다.  나 또래와 더불어 사는 곳  남들 따라 꽃 피우며 열매 맺으며  가물면 같이 목이 마르고  너와 나, 우리가  함께 사는 곳  여기가 이 세상에서 가장 좋다.  (최춘해·아동문학가)  + 모두 함께  풀밭에는 철쭉, 장미, 목련만 있는 게 아니야.  씀바귀, 민들레도 피고  애기똥풀도 노란 얼굴을 쏘옥 내밀고.  풀밭에는 나비, 벌만 놀러 오는 게 아니야.  바람이 살그머니 지나가고  개미들도 소풍 나오고  하루살이 빙글빙글 춤을 추고.  우리 동네에는  우리 집만 있는 게 아니야.  석이네, 봄이네, 희연이네,  세탁소, 미장원, 문구점, 방앗간,  자전거 수리점도 있고.  우리 동네에는  사람 사는 집만 있는 게 아니야.  까치 집, 개미 집, 다람쥐 집.  새들이 쫑알쫑알, 고양이가 살금살금  모두 모여서 함께 사는 거야.  (김위향·아동문학가)  + 강물이 흐르며  먼저 가려고 다투지도 않고  처져 온다고 화도 안 낸다.  앞서 간다고 뽐내지도 않고  뒤에 간다고 애탈 것도 없다.  탈없이 먼길을 가자면  서둘면 안 되는 걸 안다.  낯선 물이 끼여들면  싫다 않고 받아 준다.  패랭이꽃도 만나고  밤꽃 향기도 만난다.  새들의 노래가 꾀어도  한눈 팔지 않고 간다.   (최춘해·아동문학가)  + 아름다운 만남  애들아!  지구를 살아 있게 하는 건  만남이란다.  초록별 지구를 숨쉬게 하는  참 아름다운 만남  새싹이 쏘옥, 눈뜰 수 있게  빗장문 열어 주는 흙  병아리 맨발이 시려울까  종종종 따라 다니는 아이들  참새, 토끼, 다람쥐, 고라니들의  추운 겨울을 위해  풀섶에 낟알곡 남겨두는 농부  어디 이것뿐이겠니?  작은 물결에도 놀라  두 눈이 동그래진 물고기 떼를  품어주는 바다풀  뿌리를 가지지 못한 겨우살이에게  가지 한 켠을 쓰윽 내어주는 물참나무  이런 아름다운 만남으로  지구는 푸르게 푸르게  숨쉬며 살아 있는 거야.  (곽홍란·아동문학가)  + 장작불  우리는 장작불 같은 거야  먼저 불이 붙은 토막은 불씨가 되고  빨리 붙은 장작은 밑불이 되고  늦게 붙는 놈은 마른 놈 곁에  젖은 놈은 나중에 던져져  활활 타는 장작불 같은 거야  몸을 맞대어야 세게 타오르지  마른 놈은 단단한 놈을 도와야 해  단단한 놈일수록 늦게 붙으나  옮겨 붙기만 하면 불의 중심이 되어  탈 거야 그때는 젖은 놈도 타기 시작하지  우리는 장작불 같은 거야  몇 개 장작만으로는 불꽃을 만들지 못해  장작은 장작끼리 여러 몸을 맞대지 않으면  절대 불꽃을 피우지 못해  여러 놈이 엉겨 붙지 않으면  쓸모없는 그을음만 날 뿐이야  죽어서도 잿더미만 클 뿐이야  우리는 장작불 같은 거야  (백무산·시인, 1955-)    외국인, 중국 시골서 민속 체험 [ 2018년 02월 06일 ]     2월 4일 폴란드, 우크라이나 등 여러 나라에 온 근 100명의 외국인들이 저장(浙江)성 닝보(寧波)시 펑화(奉化)구 상톈(尚田)진 밍옌(鳴雁)촌을 찾아 용춤, 춘련(春聯, 정월에 경사스런 말을 적어 문에 붙이는 대련) 쓰기, 찰떡만들기{필자 주; 찰떡치는것 우리 조선민족과 비슷한점이 있음}, 촹화(窗花, 창문 장식에 쓰이는 전지의 일종) 자르기 등 전통적인 민속을 체험하며 춘제를 맞이했다. ///신화망
954    <삶> 시모음 댓글:  조회:3266  추천:0  2018-02-07
  + 내가 미워하는 것은  나는 거짓말쟁이를 미워하나요?  그렇다면 그것은  내가 거짓말쟁이이기 때문입니다.  나는 게으름뱅이를 미워하나요?  그렇다면 그것은  내가 게으름뱅이이기 때문입니다.  나는 수다쟁이를 미워하나요?  그렇다면 그것은  내가 수다쟁이이기 때문입니다.  나는 교만한 이를 미워하나요?  그렇다면 그것은  내가 교만한 자이기 때문이지요.  나는 무지한 자를 미워하나요?  그렇다면 그것은  내가 바로 무지한 자이기 때문이지요.  나는 벼락부자를 미워하나요?  그렇다면 그것은  내가 바로 벼락부자가 되고 싶기 때문입니다.  내가 미워하는 모든 것은  바로 나의 모습입니다.  분별의 사슬에 묶여 꼼짝 못하는 것은  바로 나입니다.  용서의 열쇠로 이 사슬을 풀어주세요.  자유로운 내가  거짓말쟁이를 도울 수 있도록  자유로운 내가  게으름뱅이를 도울 수 있도록  자유로운 내가  수다쟁이를 도울 수 있도록  자유로운 내가  교만한 이를 도울 수 있도록  자유로운 내가  무지한 이를 도울 수 있도록  자유로운 내가  벼락부자를 도울 수 있도록  자유로운 내가  사랑하는 모든 이를 도울 수 있도록  다름 아닌 나를 도울 수 있도록  사랑으로 하나될 수 있도록.  (기자영·시인, 1965-2009)  + 그렇게 하겠습니다  내 걸어온 길 되돌아보며  나로 하여 슬퍼진 사람에게 사죄합니다  내 밟고 온 길  발에 밟힌 풀벌레에게 사죄합니다  내 무심코 던진 말 한마디에 상처받은 이  내 길 건너며 무표정했던  이웃들에 사죄합니다  내 작은 앎 크게 전하지 못한 교실에  내 짧은 지식 신념 없는 말로 강요한  학생들에 사죄합니다  또 내일을 맞기 위해선  초원의 소와 순한 닭을 먹어야 하고  들판의 배추와 상추를 먹어야 합니다  내 한 포기 꽃나무도 심지 않고  풀꽃의 향기로움만 탐한 일  사죄합니다  저 많은 햇빛 공으로 쏘이면서도  그 햇빛에 고마워하지 않은 일  사죄합니다  살면서 사죄하면서 사랑하겠습니다  꼭 그렇게 하겠습니다   (이기철·시인, 1943-)  + 중심  사람의 깊이를 모르겠다  어제의 얼굴이 다르고  오늘 얼굴이 다르다  저렇게 넓은 집에서 어떻게 시가 나올까  저렇게 윤기나는 밥상에서 어떻게 소말리아가 보일까  저렇게 멋진 자가용을 타고 다니면서 어떻게 실직자들이 보일까  노을의 실체를 알고부터였다  오랫동안 헤어져 지낸 친구를 만나  차를 마시고 술을 마시고 노래를 불러도  마음이 열리지가 않는다, 저 삶이 정말 정당한 것인지  오죽했으면 사람의 깊이를  패랭이꽃에게 물었으랴  오죽했으면 사람의 깊이를  날아가는 새에게 물었으랴  오늘도 나는 잔가지만 잔뜩 보고 돌아와  꽃병 가득 꽂혀 있는 장미를 들어낸 뒤  꽃병 안만 들여다본다  눈물로 꽃을 키우다니…… !  (박영희·시인, 1962-)  + 뼈아픈 후회  슬프다  내가 사랑했던 자리마다  모두 폐허다  나에게 왔던 모든 사람들,  어딘가 몇 군데는 부서진 채  모두 떠났다  내 가슴속엔 언제나 부우옇게  바람에 의해 이동하는 사막이 있고;  뿌리 들어내고 쓰러져 있는 갈퀴나무, 그리고  말라 가는 죽은 짐승 귀에 모래 서걱거리는  어떤 연애로도 어떤 광기로도  이 무시무시한 곳에까지 함께 들어오지는 못했다, 내 꿈틀거리는 사막이, 그 고열의  에고가 벌겋게 달아올라 신음했으므로  내 사랑의 자리는 모두 폐허가 되어 있다  아무도 사랑해 본 적 없다는 거;  언제 다시 올지 모를 이 세상을 지나가면서  내 뼈아픈 후회는 바로 그거다;  그 누구를 위해 그 누구를 사랑하지 않았다는 거  젊은 시절, 도덕적 경쟁심에서  내가 자청한 고난도 그 누구를 위한 헌신은 아녔다  나를 위한 헌신, 나를 위한 나의 희생, 나의 자기 부정;  그러므로 나는 아무도 사랑하지 않았다  그 누구도 걸어 들어온 적 없는 나의 폐허  다만 죽은 짐승 귀에 모래알을 넣어 주는 바람뿐  (황지우·시인, 1952-)  + 사랑의 눈병  여름의 끝에 사랑의 눈병을 얻었다  의사의 진단은 너무 쉽게 세상을 외면한 병  나는 너무 쉽게 사람을 외면하며 등 돌렸다  (안과 의원을 찾아가면서도  지하도의 맹인 악사를 외면했다!)  눈은 세상과 사람을 찾아 비추는 거울  외면하는 눈은 거울이 아니라 어둠  눈에서 멀어지면 마음까지 멀어지고  눈을 잃는 것은 마음까지 잃는 것이려니  이제 아픈 눈을 굵은 소금으로 씻어  가을 햇살에 잘 말리고 싶다  그런 사랑을 위해 오는 눈병이라면  망막 가득 9월의 따뜻한 햇살을 담아  아름다운 세상 아름다운 사람을 보는  사랑의 눈병 그대들에게 전염시키고 싶어  흐르는 바람 빛나는 별을 향해 서서  핏발 선 두 눈을 씻는다.  (정일근·시인, 1958-)  + 관객을 위하여  나는 늘 주인공이었다  아니, 주인공이고 싶었다  주인공이 아닐 때도 구경꾼이기를 거부하고  주인공이려고 노력했다  관객은 언제나 넘쳐났다  결혼을 한 뒤에는 우선 아내가 관객이었고  아이들이 관객이었다  한 번도 주인공을 바라보며 살아야 하는  관객의 외로움이나 고달픔 같은 건  생각해 보려고 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건 당연한 것이 아니냐는 생각이었다  그러나 이제 아이들 자라고 결혼도 하고  43년이나 타고 온 기나긴 교직열차에서도 하차하려고 하나  내가 결코 끝까지 주인공일 수는 없는 일이구나  그 동안 나 하나만의 일인극을 줄기차게 바라보아 준 사람들  그 누구보다도 아내의 고달픔이-외로움이  얼마나 컸을까, 짐작되어진다  관객의 외로움, 그것이 이제는 내 몫으로 떨어지다니...  이 염치없음이여! 어이없음이여!  두려움이여!  (나태주·시인, 1945-)  + 문턱  문턱이란 말일세  기하학적으로 보자면  사람과 사람 사이에 가로놓인 직선이지  성벽처럼 완고한 직선 말일세  가로놓인 직선을 구십도 돌려  세로로 놓는 거야  섬과 섬, 말과 말을 이어주는  통로가 되지  생각만 바꾸면 문턱도  소통이 되는 거라구  자, 보라구  허물어 허물어져 세상이 환해지지 않는가  정작 허물 수 없는 것 하나 있다면  내가 나의 문턱이라는 것  (금별뫼·시인)  + 오타  컴퓨터 자판기로  별을 치다 벌을 치고  사슴을 치다 가슴을 친다.  오타 투성이 글  내 수족에 딸린 손이지만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 것을  마음은 수십 번 그러지 말자 다짐하지만  남의 마음같이 느닷없이 끼어드는 오타  어찌하랴,  어찌하랴,  입으로 치는 오타는  여지없이 상대의 맘에  상처를 남기고 돌아오는 것을  한번 친 오타 바로잡는 일 이틀, 사흘  그 가슴에 흔적 지우기 위해  얼마나 긴 세월 닦아야 할지  숱한 사람들 맘에 쳐날린 오타들  더러는 지우고 더러는 여전히 비뚤어진 채  못처럼 박혀 있을 헛디딘 것들  어쩌면 생은 그 자체로 오타가 아닌가  그때 그 순간의 선택이 옳았는가  곧은 길 버리고 몇 굽이 힘겹게 돌아치진 않았는가  돌아보면  내 삶의 팔할은 오타인 것을  (전태련·시인, 경북 칠곡 출생)  + 내가 나의 감옥이다  한눈팔고 사는 줄은 진즉 알았지만  두 눈 다 팔고 살아온 줄은 까맣게 몰랐다  언제 어디에서 한눈을 팔았는지  무엇에다 두 눈 다 팔아먹었는지  나는 못 보고 타인들만 보였지  내 안은 안 보이고 내 바깥만 보였지  눈 없는 나를 바라보는 남의 눈들 피하느라  나를 내 속으로 가두곤 했지  가시 껍데기로 가두고도  떫은 속껍질에 또 갇힌 밤송이  마음이 바라면 피곤체질이 거절하고  몸이 갈망하면 바늘편견이 시큰둥해져  겹겹으로 가두어져 여기까지 왔어라.  (유안진·시인, 1941-)  + 아, 그걸 점심 값이라고   어떤 순결한 영혼은 먹지처럼 묻어난다.  가령 오늘 점심에는 사천 원 짜리 추어탕을 먹고 천 원짜리 거슬러 오다가,  횡단보도 앞에서 까박까박 조는 남루의 할머니에게  '이것 가지고 점심 사 드세요' 억지로 받게 했더니,  횡단보도 다 건너가는데 '미안시루와서 이거 안받을랩니다' 기어코 돌려 주셨다.  아, 그걸 점심값이라고 내놓은 내가 그제서야 부끄러운 줄 알았지만,  할머니는 섭섭하다거나 언짢은 기색은 아니었다.  어릴 때 먹지를 가지고 놀 때처럼, 내 손이 참 더러워 보였다.  (이성복·시인, 1952-)  + 오늘 하루  어두운 하늘을 보며 저녁 버스에 몸을 싣고 돌아오는 길  생각해보니 오늘 하루 얻은 것보다 잃은 것이 더 많았다  이것저것 짧은 지식들은 많이 접하였지만  그것으로 생각은 깊어지지 않았고  책 한 권 며칠씩 손에서 놓지 않고 깊이 묻혀  읽지 못한 나날이 너무도 오래 되었다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많은 이야기를 나누며 지냈지만  만나서 오래 기쁜 사람들보다는 실망한 사람이 많았다  ...... 나는 또 내가 만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실망시켰을 것인가  미워하는 마음은 많았으나 사랑하는 마음은 갈수록 작아지고  분노하는 말들은 많았지만 이해하는 말들은 줄어들었다  소중히 여겨야 할 가까운 사람들을 오히려 미워하며  모르게 거칠어지는 내 언어만큼 거칠어져 있는 마음이  골목을 돌아설 때마다 덜컹거렸다  단 하루를 사람답게 살지 못하면서  오늘도 혁명의 미래를 꿈꾸었다.  (김남주·시인, 1946-1994)      겨울 햇살을 받아 눈부시게 빛나는 부다라궁(布達拉宮, 포탈라궁) (1월 31일 촬영)                                                                                    [인민망 한국어판 2월 8일] 시짱(西藏, 서장) 자치구에서 개최된 ‘겨울철 시짱 관광•지구 제3극 공유’ 기자회견에서 시짱 관광산업 발전 촉진, 시짱 전역•사계절 관광 발전 전략을 실시하기 위한 2018년 2월 1일부터 4월 30일까지 실시되는 시짱 관광 특별 우대 정책을 밝혔다. 부다라궁(布達拉宮, 포탈라궁) 등 A급 관광지 무료 개방 등에 관한 내용이 언급됐다. (번역: 은진호)   겨울 햇살을 받아 눈부시게 빛나는 부다라궁(布達拉宮, 포탈라궁) (1월 31일 촬영)                                                                                        [인민망 한국어판 2월 13일] 2월 8일 베이징(北京, 북경) 바다추(八大處, 팔대처) 새해 기복 묘회에서ㅡ
953    <민들레> 시모음 댓글:  조회:2272  추천:0  2018-02-06
    + 별과 민들레  파란 하늘 그 깊은 곳  바다 속 고 작은 돌처럼  밤이 올 때까지 잠겨 있는  낮별은 보이지 않는다  보이지 않지만 있는 거야  보이지 않는 것도 있는 거야.  꽃이 지고 시들어 버린 민들레는  돌 틈새에 잠자코  봄이 올 때까지 숨어 있다  튼튼한 그 뿌리는 보이지 않는다  보이지 않지만 있는 거야  보이지 않는 것도 있는 거야.  (가네코 미스즈·27살에 요절한 일본의 여류 동요시인)  + 두 주먹 불끈 쥐고  온갖 쓰레기 더미 위에  한 송이 민들레 피었습니다.  어디서 날아왔을까?  얼마나 힘들었을까?  역겨운 냄새 풀풀 날려도  코 막으며 살아야 한다고  살아서, 저 파란 하늘 향해  크게 한번 웃어 봐야 한다고  두 주먹 불끈 쥐고  용케도 잘 자랐구나.  어디선가 나풀나풀 날아와  꽃잎에 입 맞출 나비를 기다리며  어둠 밝히는 등대처럼  꼿꼿이, 환하게 웃고 있구나.  (김소운·아동문학가)  + 봄의 길목에서  겨울 끝자락  봄의 길목  나가거라 나가거라  안 된다 안 된다  바람은  또 다른 바람과  밀고 당기기를 합니다  그러는 사이에  풀밭에 떨어진 노란 단추  민 들 레  (우남희·아동문학가)  + 민들레, 너는  돌부리 널브러진 땅  온 힘 다해 내린 뿌리,  땅바닥에 납작 엎드려  서로를 껴안으며  겹겹이 돋아  노랑 꽃대를  밀어 올렸다.  민들레, 너는  금메달에 빛나는  역도 선수다.  (장화숙·아동문학가, 1960-)  + 아기 손바닥  아까부터  담을 넘으려는  민들레 홀씨 하나  어른들 모두  그냥 가는데  엉덩이  살짝 들어  넘겨 주고 가는  아기 손바닥  (안영선·아동문학가)  + 민들레꽃  노란 신발 신고  나에게  가만가만 다가와서  봄햇살 쬐고 있는  쬐고만 여자 아이.  (오순택·아동문학가, 1942-)  + 낙하산  까만 몸  머리엔 하얀 솜깃 꽂고  나는야 한 알 민들레 꽃씨.  동네 아가들  호, 입김에  하늘에 둥실  예쁜이, 그 고운 입으로  붙여준 이름  한길가  먼지 속에 누웠어도  지금, 나는  아흔 셋  알알이 흩어진  내 형제들 생각  꽃구름 보며  별을 헤며  돌아올 봄 기다려  노란 꽃잎  노란 나비떼 꿈꾸는  나는야  낙하산을 타고 온  한 알, 민들레 꽃씨.  (윤두혁·아동문학가)  + 민들레  누가 불렀니  가난한 시인의  좁은 마당에  저절로 피어난  노오란 민들레  해질녘  골목길에 울고 섰던  조그만 애기  두 눈에  눈물 아직 매달은 채로  앞니도 한 개 빠진 채로  대문을 열고 들어섰구나  만 가지 꽃이 피는  꽃밭을 두고  가난한 시인의  좁은 마당에  환하게 불을 켠  노오란 민들레.  (허영자·시인, 1938-)  + 민들레  민들레는 왜  보도블록 틈 사이에 끼여  피어날 때가 많을까  나는 왜  아파트 뒷길  보도블록에 쭈그리고 앉아  우는 날이 많을까  (정호승·시인, 1950-)  + 민들레  날이 가물수록 민들레는 뿌리를 깊이 내린다  때가 되면 햇살 가득 넘치고 빗물 넉넉해  꽃 피고 열매 맺는 일 순탄하기만 한 삶도 많지만  사는 일 누구에게나 그리 만만치 않아  어느 해엔 늦도록 추위가 물러가지 않거나  가뭄이 깊어 튼실한 꽃은커녕  몸을 지키기 어려운 때도 있다  눈치 빠른 이들은 들판을 떠나고  남아 있는 것들도 삶의 반경 절반으로 줄이며  떨어져나가는 제 살과 이파리들  어쩌지 못하고 바라보아야 할 때도 있다  겉보기엔 많이 빈약해지고 초췌하여 지쳐 있는 듯하지만  그럴수록 민들레는 뿌리를 깊이 내린다  남들은 제 꽃이 어떤 모양 어떤 빛깔로 비칠까 걱정할 때  곁뿌리 다 데리고 원뿌리를 곧게 곧게 아래로 내린다  꽃 피기 어려운 때일수록 두 배 세 배 깊어져간다  더욱 말없이 더욱 진지하게 낮은 곳을 찾아서   (도종환·시인, 1954-)  + 민들레  민들레 풀씨처럼  높지도 않고 낮지도 않게  그렇게 세상의 강을 건널 수는 없을까  민들레가 나에게 가르쳐 주었네  슬프면 때로 슬피 울라고  그러면 민들레 풀씨처럼 가벼워진다고  슬픔은 왜  저 만치 떨어져서 바라보면  슬프지 않은 것일까  민들레 풀씨처럼  얼마만큼의 거리를 갖고  그렇게 세상 위를 떠다닐 수는 없을까  민들레가 나에게 가르쳐 주었네  슬프면 때로 슬피 울라고  그러면 민들레 풀씨처럼 가벼워진다고...  (류시화·시인, 1958-)  + 민들레꽃  까닭 없이 마음 외로울 때는  노오란 민들레꽃 한 송이도  애처롭게 그리워지는데,  아 얼마나한 위로이랴.  소리쳐 부를 수도 없는 이 아득한 거리에  그대 조용히 나를 찾아오느니  사랑한다는 말 이 한 마디는  내 이 세상 온전히 떠난 뒤에 남을 것,  잊어버린다. 못 잊어 차라리 병이 되어도  아 얼마나한 위로이랴  그대 맑은 눈을 들어 나를 보느니.  (조지훈·시인, 1920-1968)  + 민들레  가장 높은 곳에 보푸라기 깃을 단다  오직 사랑은  내 몸을 비워 그대에게 날아가는 일  외로운 정수리에 날개를 단다  먼지도  솜털도 아니게  그것이 아니면 흩어져버리려고  그것이 아니면 부서져버리려고  누군가 나를 참수한다 해도  모가지를 가져가지는 못할 것이다  (신용목·시인, 1974-)  + 민들레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작은 꽃송이들이  어깨동무를 하고 둘러앉아  둥글고 낮은 한 생애를 피워낸다  노랗게 화장한 얼굴들 뒤로  젖은 거울 한 개씩을 숨기고  원무를 추는 시간의 舞姬들  깊은 바람을 품고 사는 꽃들일수록  낮은 땅에 엎드려 고요하다  한 계절의 막이 내리고  텅 빈 무대 위에서 화장을 지울 때면  삶이란 늙은 여배우처럼 쓸쓸한 것  무거운 욕망들을 게워낸 무희들은  하얀 솜털 날개 속에  부드러운 씨앗들을 품고  허공으로 가볍게 솟아오른다  허공 속에서 바람과 몸을 섞고  바람의 아기들을 낳는다  오, 깃털처럼 가벼운  죽음에 매달려  다시 지상으로 탯줄을 묻는  삶, 무거운 꽃  (이경임·시인, 1963-)  + 민들레  민들레꽃 진 자리  환한 행성 하나가  앉아 있는 것이 보인다.  가벼운 홀씨들이  햇빛 에너지를  충전하고 있는 것이 보인다.  정거장도  아닌 곳에  머물러 있는 행성 하나  마음의 끝에는  돌아오지 않을  행성 하나 있어  뿔뿔이 흩어질  홀씨들의  여려터진 마음이 있어  민들레는 높이  안테나를 세우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이윤학·시인, 1965-)  + 민들레  영문도 모르는 눈망울들이  에미 애비도 모르는 고아들이  담벼락 밑에 쪼르르 앉아있다  애가 애를 배기 좋은 봄날  햇빛 한줌씩 먹은 계집아이들이  입덧을 하고 있다  한순간에 백발이 되어버릴  철없는 엄마들이  (정병근·시인)  + 민들레처럼  민들레꽃처럼 살아야 한다.  내 가슴에 새긴 불타는 투혼  무수한 발길에 짓밟힌대도  민들레처럼  모질고 모진 이 생존의 땅에  내가 가야할 저 투쟁의 길에  온몸 부딪히며 살아야 한다.  민들레처럼  특별하지 않을지라도  결코 빛나지 않을지라도  흔하고 너른 들풀과 어우러져  거침없이 피어나는 민들레  아­아 민들레  뜨거운 가슴 수천 수백의  꽃씨가 되어  아­아 해방의 봄을 부른다  민들레의 투혼으로  (박노해·시인, 1958-)  + 민들레  특별하지 않아도 빛나지 않아도  조금도 쓸쓸하지 않고 봄비 뿌리면 그 비를 마시고  바람 불면 맨살 부대끼며  새 눈과 흙무더기 들풀과 어우러져 모두 다 봄의 주체로  서로를 빛나게 하는  민들레의 소박함으로 살아야겠습니다.  그래요. 논두렁이건 무너진 뚝방이건  폐유에 절은 공장 화단 모퉁이  쇠창살 너무 후미진 마당까지  그 어느 험난한 생존의 땅 위에서건  끈질긴 생명력으로 당당하게 피어나는  민들레 뜨거운 가슴으로 살아야겠습니다.  가진 것도 내세울 것도 없는 우리는  보호막 하나 없어도 좋습니다.  말하는 것 깨지는 것도 피하지 않습니다.  마땅히 피어나야 할 곳에 거침없이 피어나  온몸으로 부딪치며 봄을 부르는  현장의 민들레  그 치열함으로 살아야겠습니다.  자신에게 단 한번 주어진 시절  자신이 아니면 꽃피울 수 없는 거친 그 자리에  정직하게 피어나 성심껏 피어나  기꺼이 밟히고 으깨지고 또 일어서며  피를 말리고 살을 말려 봄을 진군하다가  마침내 바람찬 허공 중에 수천 수백의 꽃씨로  장렬하게 산화하는 아 - 민들레 민들레  그 민들레의 투혼으로 살아가겠습니다.  (작자 미상)     
952    <자연> 시모음 댓글:  조회:2222  추천:0  2018-02-06
   + 목련에게 미안하다  황사먼지 뒤집어쓰고  목련이 핀다  안질이 두렵지 않은지  기관지염이 두렵지도 않은지  목련이 피어서 봄이 왔다  어디엔가 늘 대신 매 맞아 아픈 이가 있다  목련에게 미안하다  (복효근·시인, 1962-)  + 소스라치다  뱀을 볼 때마다  소스라치게 놀란다고  말하는 사람들  사람들을 볼 때마다  소스라치게 놀랐을  뱀, 바위, 나무, 하늘  지상 모든  생명들  뭇 생명들  (함민복·시인, 1962-)  + 참 오래 걸렸다  가던 길  잠시 멈추는 것  어려운 게 아닌데  잠시  발 밑을 보는 것  시간 걸리는 게 아닌데  우리 집  마당에 자라는  애기똥풀 알아보는데  아홉 해나 걸렸다.  (박희순·아동문학가)  + 전철 안에서  잠시 멈춰 선 전철 안으로  나비 한 마리 날아들었어요  길을 잃고 날아다니는 나비를  아저씨 한 분이  신문지로 내리쳤어요/나비는  은빛 가루를 흩뿌리고 떨어지고  사람들은 아무 일도 아닌 듯  신문을 보거나 이야기를 나눴어요  바닥에 떨어져  날개를 파르르 떠는 나비 위로 사람들이 지나갔어요  그때 구둣발 사이로  작고 여린 손이  나비를 가만히 들어올렸어요  살랑살랑 봄바람도 일으켰어요  (고광근·아동문학가, 1963-)  + 나무와 사람  나무들은 개들이 와서 똥을 누어도  빙그레 말없이 웃는데  나무들은 개미들이 가지 끝까지 기어올라와도  아낌없이 자기의 온몸을 내맡기는데  사람들은 개들이 와서 똥을 누면  이 개새끼야 하고 냅다 발길질을 해대고  개미들이 어쩌다가 안방을 기어다니면  보이는 족족 손끝으로 죽여버린다  (정호승·시인, 1950-)  + 산의 눈물  아버지랑 산에 가서  두릅을 따고  다래순도 따고  취도 뜯었다  비빔밥 해 먹으려고  어머니가 산나물을 데치는데  냄비 속 물빛이 푸르다  산 빛깔이 우러나왔다  산나물이 냄비 속에서  푸른 눈물을 흘렸구나!  푸른 피를 쏟아냈구나!  산에게 미안해서  슬그머니 산을 쳐다보니  산은 꿈쩍 않고 푸르다  (김은영·아동문학가)  + 나무에게 사죄하다  먹고살기 위해 출판사에서 일했어요  십 년이 넘었지요  한 권이라도 더 팔리는 책을 내려고  하이에나처럼 저자와 독자를 괴롭혔어요  아들을 데리고  약수터에 물 뜨러 갔다가  참나무들이 베어져 넘어진 것을 보았어요  나무는 베어서 뭐해  뭐 종이도 만들고........  그 동안 내가 벤 나무는 얼마나 많을까요  어쩌면 시베리아의 숲 하나가 사라진 건 아닐지  나무와 버섯과 사슴과 호랑이가  내가 만든 책 때문에 죽어간 것은 아닌지  평생 마시는 물이 수영장보다 크다길래  샘을 보면 미안한데  이제 열세 살 난 아들 뒤로  참나무들이 노려보고 있는 것 같아  나도 모르게 고개를 숙이고 말았어요  (전윤호·시인, 1964-)  + 나도 모르는 사이  술 챈 아저씨 눈엔  길 건너던 민수가  안 보였다는데,  차 사고로  하늘나라 간 민수 생각에  땅 보고 간다  내 발 밑 아슬아슬 피해 달아나는  개미들 보았습니다.  엄마 개미, 새끼 개미, 친구 개미.  멀쩡하다고 생각했던 내가  제 맘대로 달리는  버스였습니다.  (장세정·아동문학가)  + 내가 몰랐던 일  내가 기운차게  산길을 걸어가는 동안  저녁밥을 기다리던  수백 개의 거미줄이 나도 모르게 부서졌고  때마침 오솔길을 횡단해가던  작은 개미와  메뚜기 투구벌레의 어린것들은  내 구둣발 밑에서 죽어갔다  내가 기운차게  산길을 걸어가는 동안  방금 지나간 두더지의 땅속 길을 무너뜨려  새끼 두더지로 하여금  방향을 잃어버리도록 만들었고  사람이 낸 길을 초록으로 다시 쓸어 덮으려는  저 잔가지들의 애타는 손짓을  일없이 꺾어서 무자비하게 부러뜨렸다  내가 기운차게  산길을 걸어가는 동안  풀잎 대궁에 매달려 아침 햇살에 반짝이던  영롱한 이슬방울의 고고함을  발로 차서 덧없이 떨어뜨리고  산길 한복판에 온몸을 낮게 엎드려  고단한 날개를 말리우던 잠자리의 사색을 깨워서  먼 공중으로 쫓아버렸다  내가 기운차게  산길을 걸어가는 동안  이처럼 나도 모르게 저지른 불상사는  얼마나 많이도 있었나  생각해보면 한 가지의 즐거움이란  반드시 남의 고통을 디디고서 얻어내는 것  이것도 모르고 나는 산 위에 올라서  마냥 철없이 좋아하기만 했었던 것이다  (이동순·시인, 1950-)  + 도토리가 내려다보면서  파란 도토리가  사람들의 발자국 소리에  깜짝 놀란다.  겨울 양식으로 삼는  다람쥐도 잘 익을 때까지  점잖게 기다리는데.  사람들은 장대로  마구 두들긴다  참고 기다리라고  외쳐도 못 알아챈다.  어린 형제들은  아프다고 울면서  살려 달라고 야단인데.  지난해 그 사람들  또 와서 죽도록 괴롭힌다  이 산에 못 오게 할 수 없을까.  (김상문·아동문학가)  + 이 괴로움 벗어 누구에게  산을 올라가다가 이 괴로움 벗어  누구에게 줄까 하다가,  포크레인으로 파헤친 산중턱  뒤집혀 말라가는 나무들을 보았다  박명(薄明)의 해가 성긴 구름 뒤에서  떨고 있는 겨울날이었다  잘린 바위 틈서리에서 부리 긴 새들이  지렁이를 찢고 있었다  내 괴로움에는 상처가 없고, 찢겨  너덜너덜한 지렁이 몸에는  괴로움이 없었다  (이성복·시인, 1952-)  + 위대한 스승 -자연에 바치는 노래  거리에 나서면  서로 다투어 서있는 드높은 빌딩과 간판들  술집, 다방, 당구장, 호텔, 오락장, 목욕탕  약방, 병원, 성당, 교회, 학교, 경찰서  문명 사회의 통계를 보면  수천 배 수만 배 늘어난 온갖 범죄와 질병들  구석구석 병든 지구 위에  굶주림과 전쟁의 상처 낭자하다.  노는 문화가 건강을 좀먹고  약과 병원이 병을 키우고  성당과 교회가 사랑을 가두고  경찰서와 법원이 범죄를 보호하고  마침내 지구는 거대한 정신병동  온갖 문명의 쓰레기 넘치는 곳에서  반생명의 과학, 자연을 파괴하고 죽이는  살인의 지식이 생명을 모독하고 있다.  자연은 말없는 위대한 스승  한 잎 풀잎의 속삭임 앞에  가만히 무릎 꿇고 귀기울일 때  병은 절로 낫는다.  흙은 생명의 자양,  햇살과 공기와 물은 생명의 보약,  병은 낫는 게 아니라 지니고 산다.  3백 여개 뼈마디 속마다.  구절양장 오장육부 구석구석마다.  은밀한 속삭임 있어 귀기울이면  동맥을 타고 피가 흐른다  경락을 타고 우주가 속삭인다.  병은 생명의 스승  수억 개 세포와 온갖 세균의 공존공생까지도  사람을 숨쉬게 한다.  스스로 치료하는 명의가 되게 한다.  오 위대한 화타(華陀)여 자연이여  (문병란·시인, 1935-)  + 자연을 위한 기도  생명의 하느님,  다른 피조물에 대한 사랑을 깨우쳐 주소서.  그들이 숲 속에서 겪는 어려움을 기억하겠나이다.  그들이 도시에서 겪는 푸대접을 기억하겠나이다.  당신이 우리에게 보여주신 보호자, 섭리자의 역할을  우리가 그들에게 보여주게 하소서.  우리가 들짐승을 잔인하게 대하지 않도록 금지하소서.  존경심에서 나오는 부드러움을 우리에게 주소서.  나보다 약한 피조물을 경애하도록 가르쳐 주소서.  모든 생명의 물줄기는 당신의 생명에서 흘러나오는 것.  생명이란 지금도 우리에게는 신비일 뿐,  우리가 짐승과 새와 친하도록 도와주소서.  그들의 배고픔과 목마름, 피곤함과 추위,  집을 잃고 헤매는 고통에 공감하도록 도우소서.  우리의 기도 속에 그들의 어려움도 끼워 넣도록 도우소서.  (조지 마테슨)     
951    배금주의와 향락주의 작품은 실패작 댓글:  조회:2276  추천:0  2018-02-03
품위 있는 문예작품 창작해야 □ 류덕중   2018-2-2    문화는 국가와 민족의 령혼이다. 문화가 흥하면 국운이 흥하고 문화가 강하면 민족이 강하다. 높은 문화자신감이 없다면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도 없다. 19차 당대회에서는 사회주의 문예를 번영, 발전시켜야 하고 품위, 격조, 책임을 따지고 저속, 용속을 제재해야 한다고 제기했다. 현재 우리 나라 문예창작은 번영, 발전하는 새로운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와 동시에 그릇된 풍조가 만연하기도 한다. 그 영향으로 내용이 없거나 오로지 오락성과 시장성만을 추구하는 창작작품들이 쏟아져나오기도 한다. 내용이 없고 예술 표현력과 감화력이 없는 작품은 아무리 화려해도 결국은 ‘문화쓰레기’로 될 수밖에 없다. 문예는 줄곧 민족풍모를 반영해왔고 시대의 사조를 보여왔으며 민족의 문화품격과 정신면모를 구축해왔다. 습근평 총서기는 문예사업좌담회에서 우리 나라 작가, 예술가는 반드시 시대풍조의 선각자, 선행자, 선창자가 되여야 하고 인민의 위대한 실천과 시대의 진보 요구를 기록해야 한다고 했다. 중국문예의 전통은 문으로 도를 론해왔다. 배금주의, 향락주의 등 그릇된 현상이 여전히 존재하는 현재는 사회의 심미취향을 이끌 주선률과 긍정적인 에네지를 뿜어내는 작품을 더욱 원하고 있다. 배금주의 작품은 실패작으로 시장의 노예로 전락될 수밖에 없고 절대 시대의 인솔자로 될 수 없다. 문예사업일군은 문예사업의 숭고한 사명을 깊이있게 리해해야 하고 자신의 시대적 책임을 명확히 해야 한다.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을 추구하고 실현하는 것을 문예창작의 시대주제로 간주하고 인민군중들 속에서 아름다움을 발견하고 창조해야 하며 생활 속에서 령감을 얻어야 하고 인민군중의 창조력사의 분발정신으로 자신을 무장해 인민군중이 진정으로 사랑하는 문예정품을 많이 창작해야 한다. 문예사업일군은 반드시 시대풍조의 선행자가 되여 자신의 정치책임을 명심해야 한다. 습근평 총서기는 “문예사업일군은 자각적으로 예술리상을 견지해야 하고 끊임없이 지식축적, 문화소양, 예술훈련을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문예사업일군은 과감하게 현재 문예계에 존재하는 그릇된 풍조를 깨뜨려야 하고 동시에 문예의 심미리상을 견지해야 하며 시장성만을 추구하는 그릇된 취향을 버려야 한다. 문예사업일군은 더욱 많은 시대정품을 창작해야 하고 자신의 사명을 다해야 한다. 습근평 총서기는 “한 시대의 문예성과는 작품으로 가늠해야 한다. 문예사업일군은 반드시 창작은 자신의 중심이고 작품은 곧 자신의 립신근본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고 했다. 이들은 인민을 중심으로 하는 창작방향을 견지해야 하고 생활 속에 깊숙이 들어가 인민군중을 문예창작의 원천으로 삼아야 한다. 또한 중국의 이야기를 제대로 전하는 동시에 중국의 목소리를 전파함으로써 끊임없이 중국의 문예수준을 새로운 높이에로 이끌어야 한다. 현재 우리는 위대한 시대에 처해있다. 중국특색의 사회주의 사업의 위대한 실천과 시대정신은 문예 창작자에게 풍부한 창작소재와 정신적 지지를 제공해주었다. 광범한 문예사업일군들은 반드시 품위와 격조, 책임을 따지는 기치를 높이 시대에 부끄럽지 않은 위대한 작품을 더욱 많이 창작해야 한다. ///연변일보
950    <이사> 시모음 댓글:  조회:3694  추천:0  2018-02-03
   + 저 물결 하나  한강 철교를 건너는 동안  잔물결이 새삼 눈에 들어왔다  얼마 안 되는 보증금을 빼서 서울을 떠난 후  낯선 눈으로 바라보는 한강.  어제의 내가 그 강물에 뒤척이고 있었다  한 뼘쯤 솟았다 내려앉는 물결들.  서울에 사는 동안 내게 지분이 있었다면  저 물결 한쪽일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물결 하나 일으켜  열 번이 넘게 이삿짐을 쌌고  물결 하나 일으켜  물새 같은 아이 둘을 업어 길렀다  사랑도 물결 하나처럼   사소하게 일었다 스러지곤 했다  더는 걸을 수 없는 무릎을 일으켜 세운 것도  저 낮은 물결 위에서였다  숱한 목숨들이 일렁이며 흘러가는 이 도시에서  뒤척이며, 뒤척이며, 그러나  한 번도 같은 자리로 내려앉지 않는  물결 위에 쌓았다 허문 날들이 있었다  거대한 점묘화 같은 서울.  물결 하나가 반짝이며 내게 말을 건넸다  저 물결을 일으켜 또 어디로 갈 것인가  (나희덕·시인, 1966-)  + 햇볕에 드러나면 슬픈 것들  햇볕에 드러나면 짜안해지는 것들이 있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흰 쌀밥에 햇살이 닿으면 왠지 슬퍼진다  실내에 있어야 할 것들이 나와서 그렇다  트럭 실려 가는 이삿짐을 보면 그 가족사가 다 보여 민망하다  그 이삿짐에 경대라고 실려 있고, 거기에 맑은 하늘이라도 비칠라치면  세상이 죄다 언짢아 뵌다 다 상스러워 보인다  20대 초반 어느 해 2월의 일기를 햇빛 속에서 읽어보라  나는 누구에게 속은 것인지, 도무지 알 수가 없어진다  나는 평생을 2월 아니면 11월에만 살았던 것 같아지는 것이  (이문재·시인, 1959-)  + 벽지를 바르며  일요일 아침  우리 가족 벽지를 바른다.  돌돌 감긴 벽지를 펼치니  화들짝 피어나는 꽃무늬  새해에는 넓은 집으로  이사할 거라던 어머니  이사 대신  누렇게 바래 버린 벽지 위에  새하얀 꽃무늬 벽지를 바른다.  우리 가족 서투른 도배는  꽃무늬가 자꾸 어긋나고  쭈글쭈글 오그라들어도 신이 났다.  한나절 도배를 하고 돌아보니  벽마다 활짝 핀 꽃송이  우리 가족 웃음 송이  하늘도 새로 도배를 했는지  구름무늬 푸른 벽지를 두르고  창문 가득히 푸르게 비쳐 온다.  (고광근·아동문학가, 1963-)  + 이사  개미들이 줄지어 이사를 간다  저마다 뽀얀 알 하나씩 입에 물고  뽈뽈뽈뽈 새집으로 이사를 간다  한참이나 지켜봐도 이삿짐은 그뿐  냉장고, 세탁기, 텔레비전, 컴퓨터, 장롱…… 같은 건   하나도 없다  (권오삼·아동문학가, 1943-)  + 이사 간 자리  옥상의  동그라미  화분들이 살다가  이사 간 자리  큰 화분은 큰 동그라미  작은 화분은 작은 동그라미  몸에 꼭 맞게  집 지어 살다  이사 간 자리  새 집에서도  꼭 맞게  집 짓고  꽃 피우며 살겠지.  (안영선·아동문학가)  + 집게  소라 껍질이  나에게는 훌륭한  집이지요.  이사를 할 때  나는 집을  등에 지고 가지요.  이층에 함께 사는  말미잘도  그냥 옮겨줘요.  (김진광·아동문학가)  + 처음처럼  이사를 가려고 아버지가  벽에 걸린 액자를 떼어냈다  바로 그 자리에  빛이 바래지 않은 벽지가  새것 그대로  남아 있다  이 집에 이사 와서  벽지를 처음 바를 때  그 마음  그 첫 마음,  떠나더라도 잊지 말라고  액자 크기만큼 하얗게  남아 있다  (안도현·시인, 1961-)  + 이사 가는 날  이사 가는 날  헤진 동화책과  낡은 장난감이  서로 눈치를 본다.  '나는 데려갈 거야'  헌 책상과 의자도  마음이 초조하다.  '나는 영이와 함께  공부했으니까  데리고 갈 거야'  이사 가는 날  모두 모두  눈치를 보며  차에 타기를 기다린다.  (하청호·아동문학가)  + 봉숭아 이사  우리 이사는  맑은 날 하고  봉숭아 이사는  비 오는 날 한다.  우리 이사는  이삿짐 차로  봉숭아 이사는  삽으로 한다.  봉숭아 이사 쉽지?  아냐, 뿌리내린 땅과  숨쉬던 하늘까지도  퍼 와야 하거든.  어렵겠다고?  아냐, 둥글고 넓고 깊게 파  한 삽 푸-욱 떠오면  하늘과 땅도 딸려 오거든.  (박방희·아동문학가, 1946-)  + 이삿짐 차  이 골짜기  여문 열매들  톡톡  산새들이 먹고,  저 골짜기로  훨훨 날아가  씨를 끙-  응가를 흙이 껴안아 주고,  이 골짜기의 나무  저 골짜기에서 싹 틔우고  저 골짜기의 풀  이 골짜기에서 꽃 피우고  산새들은 이삿짐 차다  (조영수·아동문학가)  + 꽃의 재발견  새봄, 누군가 또 이사를 간다  재개발지구 다닥다닥 붙은 집들이야 코딱지 후비며 고층아파트로 우뚝 서겠지만  개발될 수 없는 가난을 짊어진 양지전파상 金만복 씨도 떠나고  흠흠 낡은 가죽소파 하나 버려져 있다  좀 더 평수 넓은 집을 궁리하던 궁둥이들이 깨진 화분처럼 올려져 있다  자본주의 경제의 작은 밑거름도 될 수 없는 똥 덩어리들  꽃을 먹여 살리는 건 밥이 아니라 똥이어서  공중화장실 물 내리는 소리로 머리띠 동여매고 뭉개진 발자국들이  궁둥이 두들겨 꽃을 뱉어낸 거지  언제부터일까 버리는 것보다 버림받는 것이 죄가 되는 세상  푹신푹신했던 소파가죽 찢어발기고  툭, 튀어나온 스프링  누군가 버림받은 곳에서만  꽃은 핀다  (김륭·시인, 1961-)          산시(陜西, 섬서) 시안(西安, 서안) 시안 D급 고속열차 차량기지에서ㅡ
949    {쟁명} - 단편 시가 영 詩맛 안나는데 시라 해ㅠ... 댓글:  조회:2407  추천:0  2018-02-03
  넌,   필요할 땐 내 곁에 없어,   넌, 바쁠 때만 날 괴롭히지,   - 하상욱 단편시집 '잠' 중에서 -   혹시 저 아시나요?   정말 모르세요?   - 하상욱 단편 시집 '스타병' 중에서 - 착하게  살았는데  우리가  왜 이곳에    - 하상욱 단편시집 '지옥철' 중에서 - 니가  문제일까  내가  문제일까    - 하상욱 단편시집 '신용카드' 중에서 - 끝이  어딜까  너의  잠재력    - 하상욱 단편시집 '다 쓴 치약' 중에서- 너인줄  알았는데  너라면 좋았을걸    - 하상욱 단편시집 '금요일 같은데 목요일' 중에서- 내가 다른걸까  내가 속은걸까    - 하상욱 단편시집 '맛집' 중에서 -    꼭 온다더니  또 속인거니    - 하상욱 단편시집 '지구종말' 중에서 -    두근  두근  두근  두근    - 하상욱 단편시집 '빈속에 커피' 중에서 - 나한테  니가 해준게 뭔데    - 하상욱 단편시집 '수수료' 중에서 -  알콩달콩  좋아보여  재밌게도  사는구나    - 하상욱 단편시집 '옆 사람 카톡' 중에서 - 너의 진짜 모습  나의 진짜 모습 사라졌어    - 하상욱 단편시집 '포토샵' 중에서 - 가끔씩  깨닫는 너라는  고마움    - 하상욱 단편시집 '재부팅' 중에서 - 생각의  차이일까  오해의  문제일까    - 하상욱 단편시집 '미용실' 중에서 - 걱정  접어둬  내가  있잖아    - 하상욱 단편시집 '무이자할부' 중에서 - 뭐가  뭔지    - 하상욱 단편시집 '연말정산' 중에서 - 인기는  영원히 머물지 않아요    - 하상욱 단편시집 '인기 가요' 중에서 - 어디갔어 - 하상욱 단편시집 '월급' 중에서 - 정해진  이별  새로운  시작    - 하상욱 단편시집 '2년 약정' 중에서 - 다  잊고 싶은데  더  또렷해지네    - 하상욱 단편시집 '스포일러' 중에서 - 서로가  소홀했는데  덕분에  소식듣게돼    -하상욱 단편시집 '애니팡' 중에서 - 잘못된 선택  뒤늦은 후회    - 하상욱 단편시집 '내 앞자리만 안내림' 중에서 - 고민하게 돼  우리둘사이    - 하상욱 단편시집 '축의금' 중에서 - 늘 고마운 당신인데  바보처럼 짜증내요   - 하상욱 단편시집 '알람' 중에서- 나는 했는데 너는 몰랐네 - 하상욱 단편시집 '밀당' 중에서- 안 좋은 척 안 기쁜 척 - 하상욱 단편시집 '택배 받을 때' 중에서-   바꾸려고 애쓰지마 다를거라 기대도마   - 하상욱 단편시집 '프로필 사진' 중에서 -    바빴다는건 이유였을까 핑계였을까   - 하상욱 단편시집 '헬스장' 중에서 -   이쁜 여자가 좋아 그래서 니가 좋아   - 하상욱 단편시집 '보고있나 여친' 중에서 -   너의 한마디 나는 강해져   - 하상욱 단편시집 '오빠' 중에서 -   고민 하게돼 우리 둘사이   - 하상욱 단편시집 '축의금' 중에서 -    원하는 건 가져가 꿈꾸는 건 방해마   - 하상욱 단편시집 '모기' 중에서 -   "닥쳐" "닥쳐" "닥치고 내 말 들어"   - 하상욱 단편시집 '여친님 말씀' 중에서 -    삶을 향한 너의 집념 너를 향한 나의 박수   - 하상욱 단편 시집 "죽어라 이 모기새끼야" 중에서 -   알고 보면 다들 딱히   - 하상욱 단편시집 '불금' 중에서 -   딴 세상 먼 얘기   - 하상욱 단편시집 '이벤트 당첨' 중에서 -   아무 일도없었던 듯이 언제 그랬냐는 듯이   - 하상욱 단편시집 '작심삼일' 중에서 -   짧은 순간 많은 생각   - 하상욱 단편시집 '모르는 번호' 중에서 - 니 생각에 잠 못이뤄 - 하상욱 단편시집 '출근' 중에서 -    
948    "공부벌레"는 담장을 뚫고 날아오를수가 있다... 댓글:  조회:1878  추천:0  2018-02-03
내 소망은 단순하게 사는 일이다. 그리고 평범하게 사는 일이다. 느낌과 의지대로 자연스럽게 살고 싶다. 그 누구도 내 삶을 대신해서 살아줄 수 없기 때문에 나는 나 답게 살고 싶다.   - 오두막 편지 중에서 -       박노해의 자화상 그리기       봉쇄 수도원을 아세요 한번 들어가면 다시는 문 밖 세상으로 나오지 않고 세상을 위해 기도를 바치고 노동을 하다 그 안에 조용히 묻히는 곳     봉쇄 수녀원의 이름 없는 수녀님이 저에게 우린 함께 봉쇄된 벽 속의 동지가 아니냐며 수줍고 잔잔한 편지를 보내 오셨습니다     이 흐린 세상에 그래도 한 줄기 맑은 향기가 그치지 않는 건 이름도 없이 소리도 없이 자신을 낮고 작은 곳에 가두어놓고 일생을 가슴 치며 온 몸으로 기도 바치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지요 ----박노해, [자화상 그리기]({오늘은 다르게}, 1999) 전문   나는 아직도 우리 한국인들을 ‘사상가와 예술가의 민족’, 즉, ‘고급문화인’으로 육성하겠다는 꿈을 갖고 살아간다. 첫째도 공부, 둘째도 공부, 셋째도 공부----, 나는 진정으로 공부만을 사랑하는 한 사람의 공부벌레였던 적도 있었다. 가난은 나의 천적이었고, 나는 이 천적과 싸우면서, 나의 낙천주의 사상을 정립할 수가 있었다. 가난은 나의 봉쇄수도원이었고, 나는 날이면 날마다 맑은 공기와 아침 이슬을 받아먹으면서, 마침내 천마天馬 페가수스처럼 봉쇄수도원의 담장을 뚫고 날아오를 수가 있었다. 나는 박노해 시인과 봉쇄수도원의 수녀님과는 생사의 고락을 함께 한 오랜 동지이기도 했던 것이다.                
947    <신발> 시모음 댓글:  조회:2540  추천:0  2018-02-02
   + 구두에 관하여  내 신발은  어느 늙은 소의 가죽을 잘라 만든 것,  내가 걸어다닌 길들의 역사,  내 육체의 발이 오래 길들인 애인,  일몰의 시각에 저 혼자 외로운 추락의 왕자,  신발이 어느 날 갑자기 무겁다.  문 앞에 기운 없이 웅크리고 있는  헐벗은 개 한 마리,  세상을 비관하지는 않았다.  발은 불안한 바람을 딛고, 기우뚱  발은 빠르게 움직이는 구름을 딛고, 기우뚱  발은 공중변소도 다녀왔고,  길에 함부로 버려진 오물도 밟는다.  내 신발은 무겁다, 그것의 뒤축은 닳고  그것은 내 걸음걸이의 오랜 습관을 말해준다.  한밤중의 빈 구두는 말이 없다.  침묵 속에 숨은  한숨과 비명 소리를 듣는다.  이미 저를 많이 버린 구두는  비천하다, 삶도 저와 다를 바 없다.  시간은 모두 질기고 뻣뻣한 것들을 부드럽게 만든다.  굴종의 편안함이여, 헛된 욕망의 끝없음이여  그러나, 언제까지  굴종 속에 웅크리고 있을 것인가.  오래 신어 이미 발의 일부가 되어버린 구두여,  네 몸의 일부는 오래 닳고,  내 걸음걸이는 가끔 기우뚱거린다.  (장석주·시인, 1954-)  + 구두 한 켤레의 시  차례를 지내고 돌아온  구두 밑바닥에  고향의 저문 강물소리가 묻어 있다  겨울보리 파랗게 꽂힌 강둑에서  살얼음만 몇 발자국 밟고 왔는데  쑬골 상엿집 흰 눈 속을 넘을 때도  골목 앞 보세점 흐린 불빛 아래서도  찰랑찰랑 강물소리가 들린다  내 귀는 얼어  한 소절도 듣지 못한 강물소리를  구두 혼자 어떻게 듣고 왔을까  구두는 지금 황혼  뒤축의 꿈이 몇번 수습되고  지난 가을 터진 가슴의 어둠 새로  누군가의 살아있는 오늘의 부끄러운 촉수가  싸리 유채 꽃잎처럼 꿈틀댄다  고향 텃밭의 허름한 꽃과 어둠과  구두는 초면 나는 구면  건성으로 겨울을 보내고 돌아온 내게  고향은 꽃잎 하나 바람 한 점 꾸려주지 않고  영하 속을 흔들리며 떠나는 내 낡은 구두가  저문 고향의 강물소리를 들려준다.  출렁출렁 아니 덜그럭덜그럭.  (곽재구·시인, 1954-)  + 네 켤레의 신발  오늘 저 나직한 지붕 아래서  코와 눈매가 닮은 식구들이 모여 앉아 저녁을 먹는 시간은  얼마나 따뜻한가  늘 만져서 반짝이는 찻잔, 잘 닦은 마룻바닥  조금만 바람이 불어도 소리 내는 창문 안에서  이제 스무 해를 함께 산 부부가 식탁에 앉아  안나 카레리나를 이야기하는 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누가 긴 휘파람으로 불어왔는지, 커튼 안까지 달려온 별빛으로  이마까지 덮은 아들의 머리카락 수를 헬 수 있는  밤은 얼마나 아늑한가  시금치와 배추 반 단의 저녁 식사에 초대하고 싶은 사람의 전화번호를  마음으로 외는 시간이란 얼마나 넉넉한가  흙이 묻어도 정겨운, 함께 놓이면 그것이 곧 가족이고 식구인  네 켤레의 신발  (이기철·시인, 1943-)  + 구두 한 짝  비 맞고 있다  개나리 덤불 후미진 데  버려진 구두 한 짝,  발이 아닌 흙덩이를 신었다  어디서 어떻게 기막히게 알았는지  어린 채송화가 와 뿌리내렸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발의 추억과  냄새가 눈시울을 흔들어 놓기도 했지만  끈 떨어지고 뒤축 닳은 뒤에도  세상 넓어 누울 곳 남았는지  채송화 거처로서 별 불평 없다  사실, 사람이 신지 않으면  구두는 아무도 밟지 않는다  사람만이 구두를 신고 무언가 짓밟는다  그럴 때마다 구두는 허리끈 풀며  가까스로 발벗는 꿈에 젖었었다  다시 사람 꿈을 이제 꾸지 않아도 되는  오래된 구두 한 짝, 그 채송화네  집 처마 끝으로 빗방울 소리  수런수런 내리고 있다.  (이진수·시인)                 + 신발의 꿈  쓰레기통 옆에 누군가 벗어놓은 신발이 있다  벗어놓은 게 아니라 버려진 신발이  가지런히 놓여 있다  한 짝쯤 뒤집힐 수도 있었을 텐데  좌우가 바뀌거나 이쪽저쪽 외면할 수도 있었을 텐데  참 얌전히도 줄을 맞추고 있다  가지런한 침묵이야말로 침묵의 깊이라고  가지런한 슬픔이야말로 슬픔의 극점이라고  신발은 말하지 않는다  그 역시 부르트도록 끌고 온 길이 있었을 것이다  걷거나 발을 구르면서  혹은 빈 깡통이나 돌멩이를 일없이 걷어차면서  끈을 당겨 조인 결의가 있었을 것이다  낡고 해어져 저렇게 버려지기 전에  스스로를 먼저 내팽개치고 싶은 날도 있었을 것이다  이제 누군가 그를 완전히 벗어 던졌지만  신발은 가지런히 제 몸을 추슬러 버티고 있다  누가 알 것인가, 신발이 언제나  맨발을 꿈꾸었다는 것을  아 맨발, 이라는 말의 순결을 꿈꾸었다는 것을  그러나 신발은 맨발이 아니다  저 짓밟히고 버려진 신발의 슬픔은 여기서 발원한다  신발의 벌린 입에 고인 침묵도 이 때문이다  (강연호·시인)  + 신발論   2002년 8월 10일  묵은 신발을 한 보따리 내다 버렸다.  일기를 쓰다 문득, 내가 신발을 버린 것이 아니라 신발이 나를 버렸다는 생각을 한다.  학교와 병원으로 은행과 시장으로 화장실로, 신발은 맘먹은 대로 나를 끌고 다녔다.  어디 한번이라도 막막한 세상을 맨발로 건넌 적이 있는가.  어쩌면 나를 싣고 파도를 넘어 온 한 척의 배. 과적(過積)으로 선체가 기울어버린. 선주(船主)인 나는 짐이었으므로,  일기장에 다시 쓴다.  짐을 부려놓고 먼 바다로 배들이 떠나갔다.  (마경덕·시인)  + 신발 벗고 들어가는 곳  아파트 15층에서 뛰어내린 독신녀  그곳에 가보면 틀림없이 베란다에  그녀의 신이 단정하게 놓여 있다  한강에 뛰어든 사람도 마찬가지라고 한다  시멘트 바닥이든 시커먼 물이든  왜 사람들은 뛰어들기 전에  자신이 신었던 것을 가지런하게 놓고 갈까?  댓돌 위에 신발을 짝 맞게 정돈하고 방에 들어가,  임산부도 아이 낳으러 들어가기 전에  신발을 정돈하는 버릇이 있다고 한다  그러나, 그녀가 뛰어내린 곳에 있는 신발은  생은 여기서 끝난 것이 아니라고 말하는 듯하다;  그것은 영원히 어떤 방향을 가리키고 있다  다만 그 방향 이쪽에 그녀가 기른 熱帶漁들이  수족관에서 물거품을 뻐끔거리듯  한번의 삶이 있을 따름이다  돌아보라, 얼마나 많은 잘못 든 길들이 있었든가  가서는 안 되었던 곳,  가고 싶었지만 끝내 들지 못했던 곳들;  말을 듣지 않는, 혼자 사는 애인 집 앞에서 서성이다  침침한 밤길을 돌아오던 날들처럼  헛된 것만을 밟은 신발을 벗고  돌아보면, 생을 '쇼부'칠 수 있는 기회는 꼭 이번만은 아니다  (황지우·시인, 1952-)  + 상가에 모인 구두들  저녁 喪家에 구두들이 모인다  아무리 단정히 벗어놓아도  문상을 하고 나면 흐트러져 있는 신발들  젠장, 구두가 구두를  짓밟는 게 삶이다  밟히지 않는 건 亡者의 신발뿐이다  정리가 되지 않는 喪家의 구두들이여  저건 네 구두고  저건 네 슬리퍼야  돼지고기 삶는 마당가에  어울리지 않는 화환 몇 개 세워놓고  봉투 받아라 봉투,  화투짝처럼 배를 까뒤집는 구두들  밤 깊어 헐렁한 구두 하나 아무렇게나 꿰 신고  담장가에 가서 오줌을 누면, 보인다  北天에 새로 생긴 신발자리 별 몇 개  (유홍준·시인, 1962-)  + 향해일지  영안실 뒤뜰에 노아의 방주 떠 있다.  들어선다.  뒷굽 안쪽까지 젖은 구두는 벗어두고  벌써부터 구김살이 움켜쥔 넥타이는 풀어둔다.  없는 게 없다.  뻘건 국물엔 오늘 아침 잡았다는 소의 옆구리가 뜨고  붉은 화투패에선 화사한 꽃들이 피었다 진다.  환호성도 터진다.  투망한 화투패로 한 두릅 싱싱한 지폐를 낚아 올리고  푸른 새벽이 와도 충혈된 눈은 감길 줄 모른다.  기우뚱! 기울어진다.  배가 세찬 풍랑을 만날 때마다  승객들은 기우는 쪽으로 쓰러져 불편한 새우잠이 든다  이제 나서야 한다.  뒤엉킨 신발 속에서 용케 딱 맞는 구멍을 찾아내고  아직 하품이 덜 끝난 구두 속에 발을 쑤셔 넣는다.  어디로 가는가?  몸무게라도 재듯 잠시 구두 속에 서 있으면  어느새 내 몸은 긴 돛대가 되어  255미리 배 두 척 끌고  또 어디로 힘겨운 출항을 하려는가?  허공을 떠가는 고인의 배 한 척,  상주는 발인을 걱정하는데 빗줄기는 굵어진다.  다시 삶으로 회항할 수 있다면  (김종보·시인, 경기도 화성 출생)   
946    마음의 휴식이 필요한 요즘, 시를 감상하기.. 댓글:  조회:2331  추천:0  2018-02-02
    삶은 소유물이 아니라 순간순간의 있음이다. 영원한 것이 어디 있는가. 모두가 한때일 뿐, 그러나 그 한때를 최선을 다해 최대한으로 살 수 있어야 한다. 삶은 놀라운 신비요,아름다움이다 .   -버리고 떠나기 중에서 - -----------------------------------------     기형도의 삶과 문학ㆍ그로테스크   |딱딱한 태양 시인으로서의 기형도의 힘은 그가 가난과 이별을 체험을 했다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체험에서 의미 있는 하나의 미학을 이끌어냈다는 데 있다 그 의미 있는 미학에 나는 크로테스크grotesque 리얼리즘이라는 이름을 붙여주고 싶다 이것은 그로테스크한 의미지들로 시를 만드는 것을 뜻하지 않는다 물론 그것은 일상 생활에서 보기 힘든 괴이한, 부정적 이미지들을 지칭할 수도 있다 그렇지만 그것만을 지칭하지는 않는다 가령, 기형도의 시에 나오는,   "어떤 날은 두꺼운 공중의 종잇장 위에 노랗고 딱딱한 태양이 걸릴 때까지" 비유하는 이미지나,   "청년들은 톱밥같이 쓸쓸해 보인다" 서로 엉키지 못하는 젊은이들의 비연대성을 보여주는 이미지나,   "하늘은 딱딱한 널빤지처럼 떠 있다" 에서 딱딱함이라는 의미소 주변으로 모인다 하더라도, 그것 때문에 그의 시가 그로테스크한 것은 아니다 그의 시가 그로테스크한 것은, 그런 괴이한 이미지들 속에, 뒤에, 아니 밑에, 타인들과의 소통이 불가능해져, 자신 속에서 암종처럼 자라나는 죽음을 바라다보는 개별자, 갇힌 개별자의 비극적 모습이, 마치 무덤 속의 시체처럼 뚜렷하게 드러나 있다는 데에 있다 시인은 우선 그의 모든 꿈이 망가져 있음을 깨닫는다 가난과 이별은 그 망가진 꿈의 완강한 배경 그림이다 꿈의 환멸은 삶을 "하찮은 문장 위에 찍힌/방점과도 같은"것으로 느끼게 한다 하찮은 문장 위에 찍힌 방점! 책 읽기와 잘못 강조된 삶의 교묘한 삼투 그래서 시인은 자기가 이미 늙었자고 느낀다 그에게 남은 것은 죽음뿐이다 그러나 그는 열심히 살려고 한다   "오랫동안 나는 곰팡이 피어 나는 어둡고 축축한 세계에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알 수 없다 진눈깨비처럼 나는 곧 사라질 것이라는 생각에 집요하게 시달린다 "진눈깨비 쏟아진다 갑자기 눈물이 흐른다, 나는 불행하다/이런 것은 아니었다, 나는 일생 몫의 경험을 다했다, 진눈깨비" 이 도저한 자기 인식은, 젊어서 이미 지나치게 늙어버린 희귀하게 예민한 사람의 자기 인식이다   "나무들은 그리고 황폐한 내부를 숨기기 위해/크고 넓은 이파리들을 가득 피워냈다/나는 어디로 가는 것읽ㆍ, 돌아갈 수조차 없이/이제는 너무 멀리 떠새려온 이 길/나를 찾지 말라" 그러면서도 그는 계속 쓴다 글쓰기에 대한 이 미친 듯한 정열 그것이 우울한 정열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그는 쓴다   "내 희망을 감시해온 불안의 짐짝들에게 나는 쓴다/이 누추한 육체 속에 얼마든지 머물다 가시라고/모든 길들이 흘러온다, 나는 이미 늙은 것이다《정거장에서의 충고》" 이미 늙은 시인에게 남은 것은 죽음뿐이다   "나와 죽음은 서로를 지배하는 각자의 꿈이"된다 죽음만이 망가져 있지 않은 시인의 유일한 꿈이다   기형도의 시가 아주 극단적인 비극적 세게관의 표현이라고 보고 있다 그의 시가 보여주는 부정성을 그 이전에 보여준 시인은 그리 많지 않다 아무리 비극적인 세계관에 침윤되어 있더라도, 대부분의 시인들은 낙관적인 미래 전망의 흔적을 보여준다 (김현, 문학평론가/1989)   나는 미래를 차단시킨 사람이 과거에 집착하는 모습을 기형도 시와 관련시켜 보고자 한다 시에서 "이미 늙었다"는 말을 자주 하는 데, 작품 속의 화자는 분명히 청년의 얼굴을 하고 있는데, 그의 입에서는 자신이 "늙었다"라는 것이다 늙었음을 강조하는 것은 인생의 비밀을 그가 젊은 나이에 벌써 다 알아버렸다는 의미도 될 것이고, 따라서 생에 대한 의욕이 더는 없다는 의미도 될 것이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의 정신이 미래를 지향하고 있지 않다는 사실이다 미래를 생의 도표에서 차단시킨 사람에게 남는 것은 과거뿐이려니와 과거만이 누군가의 생을 지배한다는 것은 바로 지금이 이 시점이 그에게는 생이 마지막 지점과 다르지 않다는 의미가 된다 (정효구, 문학평론가/1992)   |아름다움 기형도나 벤야민이나 그들이 말하고자 했던 아름다움이란 '자신의 언어로 빚어낸 세계에서 괴로워하는 권리'같은 것(김경주)   《포도밭 묘지2》의 "이곳에서 너희가 완전히 불행해질 수 없는 이유는 신이 우리에게 괴로워할 권리를 스스로 사들이는 법을 아름다움이라 가르쳤기 때문이다"라는 구절을 기형도 시의 미학을 잘 보여주는 핵심적인 구절 (하재연)   그는 한때 시 쓰기란 말할 수 없는 것에 관해 말해야 하는 '불행한 쾌락'이라고 말했으니까(박해현)   가장 행복한 독자는 자기가 좋아하는 시인을 한 번도 만난 적이 없는 독자다 시인에 대한 이미지가 깨지는 것은 둘째 문제다 시인과 대화를 나누었거나, 시 낭송을 들었다면 그때부터 낭패다 그때부터 그 시인의 시를 자기 방식으로 읽기가 어려워진다 (이문재)     |저녁 풍경 "망자의 혀가 거리에 흘러넘치는"(《입 속의 검은 잎》) 서울이 두렵고 지겹고 힘겨운 사업살이에서 도망쳐 호수로 피난 온다 그러고는 하릴없이 물가에 앉아 이따금 불어오는 바람의 전언을 경청하고 노을에 비낀 붉은 구름 떼와 푸른 호수 물결과 무성한 나뭇잎들이 어울리는 고즈넉한 저녁 풍경에 잠기곤 한다 노을이 지면, 사치와 환락을 뽐내는 공원 앞 빌딩들의 이마엔 저마다 형형색색의 현란한 네온 불빛들이 켜지는 것인데, 그 번들데는 욕망의 빛들은 저 자신을 주체 쉼 없이 호수 속으로 무자맥질한다 인적이 뜸해진 밤이 오면, 풀벌레 소리 소소한 호숫가엔 낯선 가난한 혼령들의 허덕임 소리 조금씩 들려오고, 나는 한밤의 호숫가에서 "저 공중의 욕망은 어둠을 지치도록 내버려두지 않고 종교는 아직도 지상에서 헤매"(《포도밭 묘지2》)고 있음을 본다(임우기)    
945    "한알은 날짐승 주고, 또 한알은 들짐승 먹고 남은 한알은..." 댓글:  조회:2516  추천:0  2018-02-01
  + 내게로 달려오는 것이 있다면  내게로 웃으며 달려오는 것이 있다면  그게 낯선 강아지라도  꼭 안아 줄 거야  내게로 달려오는 것이 있다면  가랑잎이라 해도  잠시 집어들고 살펴볼 테야  혹시, 시의 모서리가 있을지 몰라  빈 과자 봉지가  내게 달려온다 해도  나는 모른 척할 수 없을 거야  내게 온 이유가 있을 테니까  내게로 마구, 달려오는 것이  찬바람이라 해도  난 두 팔 벌려 맞아 줄 거야  잠시나마 따뜻하라고  (이혜영·아동문학가)  + 키 작은 애  키 작은 애 손을 쥐면  내 손이 좇아서  조그매지려 한다.  도란도란 마주 앉아  이야기를 나누노라면  내 귀는 솔긋  키 작은 애 가까이로  기울고,  손을 잡고 걸을 때면  키를 한껏 낮추어 걷게 된다.  그 애가 보는 높이만큼서  꽃이든지  풀이든지  보고 싶다.  (이상교·아동문학가, 1949-)  + 길을 가다  길을 가다 문득  혼자 놀고 있는 아기새를 만나면  다가가 그 곁에 가만히 서 보고 싶다.  잎들이 다 지고 하늘이 하나  빈 가지 끝에 걸려 떨고 있는  그런 가을날  혼자 놀고 있는 아기새를 만나면  내 어깨와  아기새의 그 작은 어깨를 나란히 하고  어디든 걸어 보고 싶다.  (이준관·시인, 1949-)  + 내가 가장 착해질 때  이랑을 만들고  흙을 만지며  씨를 뿌릴 때  나는 저절로 착해진다.  (서정홍·시인, 1958-)  + 김밥 아줌마  김밥을 싸다 말고  자꾸만 길가를 기웃거리던  김밥아줌마  하얀 쌀밥 한 주먹  크게 쥐어 휘익 던지자  금세 비둘기 한 마리 날아와  콕콕 찍어먹다 말고  포르르 날아가  어느새 친구들을 불러 와   서로 부리를 맞대고 맛있게  콕콕, 콕콕콕  장마가 길면  작은 새들은 배곯기 일쑤라며  걱정하던 김밥아줌마  그때서야 흐뭇한 얼굴로  김밥을 돌돌 만다.  (박예분·아동문학가)  + 몰랐지?  산딸기가  흙 튀는 낮은 곳에  몰래 숨어  익는 이유가 있지.  사람들 눈을 피해  꼭꼭 숨어  익는 이유가 있지.  키 작고 힘없는  약한 개미들  느릿느릿  느림보 달팽이들  느리고, 힘없고,  여리고 약한 애들까지  다 나누고 살아야 한다는 것.  (양인숙·아동문학가)  + 아침 버스에서  추운 날 아침  아침 버스의  차가운 좌석에 앉다가  뜻밖에도  따스하게 밀려오는  그 누구인가의 체온을 느낀다.  이 자리에 앉았다가  따스한 체온만을 남겨 두고  내린 사람은 누구일까.  추운 겨울의  한 모퉁이를 녹여주는  이 좌석에 앉아  나는  다음 사람을 위해  더 따스한 자리를 남겨 주고 싶었다.  (권영상·아동문학가)  + 너도 알 거야  "왜 한 구멍에 콩을 세 알씩 심어요?"  흙을 다독거리는 할머니께 물었다.  "한 알은 날짐승 주고  또 한 알은 들짐승 먹이고  남은 한 알은 너 주려고 그런단다."  할머니는  콩밭 군데군데 수수도 심으셨지.  "수수는 왜 심어요?"  할머니는 빙그레 웃기만 하셨다.  참새는  콩밭을 한 바퀴 돌고는  ―콩은 너무 커  콩밭을 두 바퀴 돌고나서는  ―수수 알갱이는 먹기 좋은데  가을이 되어서야 알았지.  주둥이가 작은 참새까지도 생각하신  할머니 마음.  (이성자·아동문학가)  + 짐수레  짐수레가 간다.  오르막길에,  수레 끄는 아저씨 등이  땀에 흠뻑 젖었다.  가만히 다가가서  수레를 밀었다.  아저씨가 돌아보며  씨익 웃었다.  나는 더 힘껏 밀었다.  (김종상·아동문학가)  + 가로수  어깨를 건드린다 아는 체하며  돌아보니 살며시 등을 기대는 가로수.  '쉬었다 가렴.'  푸른 물소리로 말을 건넨다.  그렇구나  숱하게 이 길을 오갈 때마다  나무는 내게 눈길을 주고 있었구나.  등으로 전해지는 물소리.  하늘엔 땡볕이 타고 있는데  기다리고 있었구나 나무는  푸른 그늘을 만들며.  (김재수·아동문학가)  + 눈 오는 날  논밭들도  누가 더 넓은가  나누기를 멈추었다.  도로들도  누가 더 긴지  재보기를 그만 두었다.  예쁜 색 자랑하던  지붕들도  뽐내기를 그쳤다.  모두가  욕심을 버린  하얗게 눈이 오는 날.  (이문희·시인)  + 육교가 헐리면  옷걸이, 면봉, 파리채, 먼지떨이,  수세미, 우산꽂이, 장독덮개, 효자손 .....  버젓하게 걸어놓은 간판은 없어도  단돈 천원으로도 푸짐한  육교 위 엄마 가게  온종일  해님이 내려와 놀고  가끔씩 바람이 제 맘대로 들랑대는  가게 앞에 앉아  뜨개질도 하고 신문도 보는 엄마  이제 어쩌나  육교가 헐린다는데......  학교 가는 길  난  새로 생긴 횡단보도를 훌쩍 건너면 되는데  엄마 가게는  엄마 가게는.......  (한상순·아동문학가)  + 열어 두어  가느다란 바늘에  작은 창 하나 열려 있다  열어 둔 창으로  야윈 실 하나 들어와  바늘과 손잡고 일을 한다  길 잃은 단추  데려다 주고  양말 상처  치료해 준다.  (정갑숙·아동문학가)   
944    <새> 시모음 댓글:  조회:3710  추천:0  2018-02-01
  + 새   새는  공깃돌.  나무가  하늘 높이  던졌다 받는  예쁜 소리를 내는  공깃돌.  (정운모·아동문학가)  + 참새 가슴  참새더러  가슴이 작다고  흉을 보지요  그것은 몰라서 하는 소리  참새 가슴이 커 봐요  어떻게 하늘을  날 수 있겠어요  우리가  하늘을 날 수 없는 건  보나마나  욕심으로 커진  가슴 때문일 거예요.  (이성자·아동문학가)  + 까치집  높다란  미루나무에  까치집 세 채  학교도  우체국도 없는  아주 조그만 마을  (양재홍·아동문학가)  + 까치집  바람이 찾아와  까치집을 가만가만 흔들어 주고 있다.  ― 맛있는 먹이 물고 이제 곧 엄마가 돌아올 게다.  ― 아가야 더 자거라, 아가야 그 때까지 조금만 더 자거라.  엄마까치 올 때까지  나뭇가지를 가만가만 흔들어 주고 있다.  (이무열·아동문학가)  + 산까치에게  염소똥만한 콩알  쥐똥보다 작은 깨알  흙 속에 꼭꼭 숨어 있어도  잘도 찾아내는 산까치야,  배고프면 우리 밭에 앉으렴  대신 어떻게 하면  너처럼 밝은 눈을 가질 수 있는지  좀 가르쳐 주렴.  혼내려는 게 아니야  그냥 물어보는 거야  눈 어두운 할머니께  알려주려고.  (곽재구·시인, 1954-)  + 그래서 산새들은  내 나무  네 나무  따로따로 자기 나무를 가지지 않아서  어느 나뭇가지에나 앉아서  날개를 쉬고  내 먹이  네 먹이  따로따로 자기 곳간을 가지지 않아서  배고프면  어디에서라도  입을 다신다.  백 마리가 함께 살아도  산자락을 갈라서 담 쌓지 않고  천 마리가 함께 살아도  하늘을 조각내어 나누지 않는  산새의  산과 같은 온전함  하늘 같은 넉넉함  그래서  산새들은 늘 몸이 가볍다.  숲속에서도  하늘에서도  바람처럼  늘 몸이 가볍다.  (이무일·아동문학가)  + 소쩍새  소쩍새들이 운다.  소쩍소쩍 솥이 작다고  뒷산에서도  앞산에서도  소쩍새들이 울고 있다.  소쩍새가  저렇게 많이 나오는 해는  풍년이 든다고  어머니가 나에게 일러주시는 그 사이에도  소쩍소쩍 솥이 작다고  소쩍새들은 목이 닳도록 울어댄다.  아, 아. 마을은  소쩍새 투성이다.  (장만영·시인, 1914-1975)  + 아침 식사  아침 일찍 문을 연  과일가게 주인이  상처가 조금 난  복숭아와 사과 몇 개를  가게 앞 가로수 아래 내놨습니다.  -이게 웬 밥이야?  먹이 못 찾아 배곯던 참새도  절룩거리는 비둘기도  야윈 잿빛 직박구리도  어디선가 날아와 앉았습니다.  예쁘지 않아서  사람들이 사가지 않는  상한 과일 몇 알이  오늘의 귀한 양식입니다.  소중한 아침 식탁 앞에  새들이 모두  고개를 숙였습니다.  (오지연·아동문학가, 제주도 출생)  + 새들의 도시락  사나운 바람을 견디느라  등 굽은  팥배나무 빨간 열매  콩배나무 까만 열매  새들의 도시락이다  춥고 배고픈 새들 먹으라고  나무가 마련한  맛깔스런 도시락  새를 기다리는  빨갛고 까만 도시락을  짧은 햇살이 데우고 있다.  (조영수·아동문학가)  + 나무와 새  나무가 무슨 말로  새를 불렀길래  새 한 마리가  힘차게 날아와  나뭇가지에 앉을까?  나무가 새에게  어떻게 해 줬길래  새가 저리 기분이 좋아  날개를 파닥이다가  짹재그르 짹재그르 노래 부를까?  (이상문·아동문학가)  + 오월의 산길에서  산길을 오르다가  새알을 보면  보드라운 풀과 나뭇잎으로 엮은  내 품안에  고이 넣어두고 싶다.  녹색의 물결 굽이치는  오월의 산길에서는  누구나 날개를 활짝 펴는 법  내가 그 고운 아기들의  엄마가 되고 싶다.  졸랑졸랑 뒤따라오는  산새 소리를 듣고 싶다.  (김문기, 극작가이며 시인, 1962-)  + 조선의 참새  챠챠  중국 참새는  중국말로 울고  쥬쥬  일본 참새는  일본말로 울고  짹짹  조선의 참새는  조선의 새라서  남에 가나  북에 가나  우리말로 운다.  짹짹  하얀 얼 보듬는  조선의 참새.  (한석윤·아동문학가, 1943-)  + 깜빡 졸다가  버스를 탔어  아차!  깜빡 졸다가  내릴 곳을 놓쳤어.  누가 알까 부끄러워  태연한 척 내렸지.  얼마나 더 왔나  내려서 두리번거리는데  전깃줄 위 참새랑  눈이 마주쳤어.  참새야,  넌 그런 적 없니?  깜빡 졸다가  발을 헛디뎌  밑으로 떨어질 뻔한 적  너도 나처럼  안 그런 척, 파다닥  난 적 없었니?  (최윤정·아동문학가)  + 참새와 허수아비  안녕!  허수아비 아저씨  짹짹짹  어서 오렴  농약 때문에 못 오는 줄 알고  섭섭해했다.  안심하고  콕 콕 쪼아 많이 먹으렴  무공해 알곡만 있다.  이제  배를 채웠으니  기쁘게 해 드릴게요.  아슬아슬  외줄타기 하는 아가참새  짹짹짹 짹짹  풍년가를 완창하는 엄마참새  딸랑 딸랑  빈 깡통으로 추임새를 넣는 아빠참새  한마당 신나는 굿판에  허수아비 아저씨도  허허허 웃으며  들썩들썩  어깨춤을 춥니다.  (박영식·시인, 1952-)  + 참새의 어머니  어린애가  새끼 참새를  붙잡았다.  그 아이의  어머니  웃고 있었다.  참새의  어머니  그걸 보고 있었다.  지붕에서  울음소리 참으며  그걸 보고 있었다.  (가네코 미스즈·27살에 요절한 일본의 여류 동요시인 )  + 우포늪에서 1 - 날지 못하는 새  큰기러기가 날아갑니다.  쇠기러기가 날아갑니다.  황새가 날아갑니다.  청둥오리가 날아갑니다.  노랑부리저어새가 날아갑니다.  우포늪, 여기서는  사람만 날지 못하고  우두커니 땅에 서서  날아가는 새를 쳐다봅니다.  "바보들, 날지도 못하면서....."  새가 사람에게  똥을 찍찍 싸대며 날아갑니다.  (오인태·시인, 1962-)  + 가난한 새의 기도  꼭 필요한 만큼만 먹고  필요한 만큼만 둥지를 틀며  욕심을 부리지 않는 새처럼  당신의 하늘을 날게 해주십시오  가진 것 없어도  말과 밝은 웃음으로  기쁨의 깃을 치며  오늘을 살게 해주십시오  예측할 수 없는 위험을 무릅쓰고  먼 길을 떠나는 철새의 당당함으로  텅 빈 하늘을 나는  고독과 자유를 맛보게 해주십시오  오직 사랑 하나로  눈물 속에도 기쁨이 넘쳐날  서원의 삶에  햇살로 넘쳐오는 축복  나의 선택은  가난을 위한 가난이 아니라  사랑을 위한 가난이기에  모든 것 버리고도  넉넉할 수 있음이니  내 삶의 하늘에 떠다니는  흰 구름의 평화여  날마다 새가 되어  새로이 떠나려는 내게  더 이상  무게가 주는 슬픔은 없습니다  (이해인·수녀, 1945-)  + 독수리  품안에 애지중지  새끼를 품었다가도  이윽고 때가 되면  아득한 절벽 꼭대기에서  저 드넓은 창공으로  훨훨 새끼를 떠나보내며  칼날처럼 날카로운  눈빛 속에  근심스런 눈물 한 방울  감추었을 너.  새끼를 철석(鐵石)같이 믿는  멋진 그대  오!  자유의 스승이여  (정연복, 1957-)      1월 29일 쿤밍(昆明, 곤명), 응시생들이 시험 대기실에서 몸을 풀고 있다.                                                                                                                 윈난예술학원(雲南운남藝術學院)에서ㅡ
943    "나는 인생을 증오한다"... 댓글:  조회:2265  추천:0  2018-01-30
  산이 걸어와 가슴에 앉는다 나무는 나무대로 제 자리에 서있고 바위는 바위대로 제 자리에 앉아있다 모든 것은 각자 제 자리에 있을 뿐이다 나도 가만히 서 있을 뿐이었다 산은 내가 되고, 나는 산이 되어 간다      기형도의 시에 대하여   나는 플라톤을 읽었다, 그때마다 총성이 울렸다 목련철이 오면 친구들은 감옥과 군대로 흩어졌고 시를 쓰던 후배는 자신이 기관원이라고 털어놓았다 존경하는 교수가 있었으나 그분은 원체 말이 없었다 몇 번의 겨울이 지나자 나는 외톨이가 되었다 그리고 졸업이었다, 대학을 떠나기가 두려웠다 ----기형도, [대학 시절]({입 속의 검은 입}, 문학과지성사)에서     기형도 시인은 1960년 경기도 연평에서 태어났고, 1985년 {동아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했다. 그는 {중앙일보} 기자로 재직하던 1989년, 첫 시집인 {입 속의 검은 입}을 출간해 보지도 못한 채, 스물 아홉 살의 나이로 매우 안타깝게 이 세상을 떠나갔다. “나는 인생을 증오한다”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그는 극단적인 염세주의자였는데, 왜냐하면 한국사회는 그 어떠한 희망의 새싹도 키워갈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국민들이 절대빈곤과 기아선상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었고, 그토록 잔인하고 끔찍했던 군사독재정권은 아예 민주주의의 새싹마저도 발본색원해 나가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민주화 운동의 기수가 될 수는 없었지만, 플라톤을 읽으며, 우리 한국인들의 이상국가를 꿈꾸게 되었다. 그러나 “그때마다 총성이” 울려퍼졌고, “목련철이 오면” 대부분의 “친구들은 감옥과 군대로 흩어”져 갔다. “시를 쓰던 후배는 자신이 기관원이라고 털어놓았”고,“존경하는 교수가 있었으나 그분은 원체 말이 없었다.” “몇 번의 겨울이 지나자 나는 외톨이가” 되었고, “그리고 졸업이었다, 대학을 떠나기가 두려웠다.” 플라톤은 만인평등과 부의 공정한 분배를 외쳤던 공산주의자이었고, 그는 그의 이상국가를 이 지구상에다가 건설하려고 했었던 그리스의 대철학자였다고 하지 않을 수가 없다. 플라톤이 그의 이상국가를 건설하지 못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기형도 시인의 이상국가에 대한 꿈은 애초부터 그 출구가 막혀 있었던 것이다. 절대빈곤의 기아선상과 남북분단, 군사독재정권의 철권통치와 수많은 민주화 인사들의 구속과 감금, 동료 학생들을 밀고하던 시인 지망생과 한국의 역사적인 현실에는 일제히 침묵을 하던 교수----. 대학도 이전투구의 난장판이나 마찬가지였지만, 그러나 대학 바깥은 더욱더 피비린내 나는 지옥이나 마찬가지였던 것이다. 오오, 과연 어떻게 기형도 시인의 [대학시절]이 그의 이상국가를 설계하던 아름다운 시절일 수가 있었단 말인가?       나는 혐오한다, 그의 짧은 바지와 침이 흘러내리는 입과 그것을 눈치채지 못하는 허옇게 센 그의 정신과   내가 아직 한 번도 가본 적 없다는 이유 하나로 나는 그의 세계에 침을 뱉고 그가 이미 추방되어버린 곳이라는 이유 하나로 나는 나의 세계를 보호하며 단 한 걸음도 그의 틈입을 용서할 수 없다 ----기형도, [늙은 사람]({입 속의 검은 입}, 문학과지성사)에서     젊음은 아름답고 늙음은 추하다. 이 말은 만고불변의 진리이며, 어느 누구도 이 진리를 반박할 수는 없다. 모든 동식물들은 생식기능의 쇠퇴와 함께 그 일생을 마감하게 된다. 사자는 10년, 소와 개는 20년쯤 되고, 인간의 평균 수명은 60년쯤 된다. 오늘날 자연과학과 생명공학의 발전에 의하여 인간의 평균 수명이 상당히 늘어나기는 했지만,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인위적인 것이며, 반생물학적인 범죄에 지나지 않는다. 은행나무와 소나무와 참나무 등----, 이 나무들 중에서 오백 년이나 천 년쯤 사는 거목들이 있다고 해서, 모든 동물들이 오백 년이나 천 년쯤 살아가게 된다면 과연 어떻게 될 것인가? 그것은 자연의 법칙에 위배되는 것이며, 모든 만물의 터전인 지구의 소멸을 뜻하게 된다. 두 발로 걷지 못하고, 자기 스스로 의식주 활동을 하지 못하는 인간은 더 이상 자기 자신의 생명을 연명해 나가야 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살아 있다는 것 자체가 더럽고 추하다는 것은 수많은 타인들에게 증오와 경멸의 짐이 될 뿐인 것이며, 인간이라는 종의 열악화에 기여하게 될 뿐인 것이다. 오늘날의 자연과학과 생명공학은 너무나도 파렴치하고 뻔뻔스러운 자연에 대한 테러행위이자 범죄일 뿐인 것이다. 하루바삐 우리 인간들은 자연과학이라는 대량살상무기를 폐기처분해 버리지 않으면 안 된다. 인간을 더욱더 젊게, 더욱더 아름답게 가꾸는 것이 지상 최대의 휴머니즘일 것이다. 젊음은 아름답고 늙음은 추하다.       나를 한 번이라도 본 사람은 모두 나를 떠나갔다, 나의 영혼은 검은 페이지가 대부분이며, 그러니 누가 나를 펼쳐볼 것인가 ----기형도, [오래된 書籍]({입 속의 검은 입}, 문학과지성사)에서 책을 읽는 자는 행복하지만, 책을 읽지 않는 자는 불행하다. 책을 읽는 자는 저자로서 영원불멸의 삶을 살아갈 수가 있지만, 책을 읽지 않는 자는 그의 죽음과 함께 영원히 사라져가게 된다. 책을 읽지 않는 자는 사색하지 않는 자이며, 사색하지 않는 자는 타인에게 구속된 노예의 삶을 살아가게 된다. 마치, 오천 년 동안이나 노예생활을 하고 있는 우리 한국인들처럼----. 기형도 시인은 앎이 육화된 시인으로서 이처럼 [오래된 書籍]이라는 시를 쓸 수가 있었던 것이다. [오래된 書籍]. 아무도 읽어주지 않는 책, 더럽고 케케묵은 먼지뿐인 삶, 외롭고 쓸쓸하고 고독뿐인 삶----.           나는 인생을 증오한다 ----기형도, [장미빛 인생]({입 속의 검은 입}, 문학과지성사)에서   어느 누구도 자기 자신이 원해서 이 세상에 태어난 것은 아니다. 태어나지 않은 것이 최선일까? 곧바로 죽어버리는 것이 차선일까? 기형도 시인의 죽음은 요절일까? 천수를 다한 복된 죽음일까? “나는 인생을 증오한다”라는 이 시구에서처럼 그는 자기 자신의 인생에 대한 집착이 없는 삶을 살다가 갔던 것이다.         나는 이곳까지 열심히 걸어왔었다, 시무룩한 낯짝을 보인 적도 없다 오오, 나는 알 수 없다, 이곳 사람들은 도대체 무엇을 보고 내 정체를 눈치챘을까 그는 탄식한다, 그는 완전히 다르게 살고 싶었다, 나에게도 그만한 권리는 있지 않은가 모퉁이에서 마주친 노파, 술집에서 만난 고양이까지 나를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중얼거린다, 무엇이 그를 이곳까지 질질 끌고 왔는지, 그는 더 이상 기억도 못한다 그럴 수도 있다, 그는 낡아빠진 구두에 쑤셔박힌, 길쭉하고 가늘은 자신의 다리를 바라보고 동물처럼 울부짖는다, 그렇다면 도대체 또 어디로 간단 말인가! ----기형도, [여행자]({입 속의 검은 입}, 문학과지성사)에서 ‘여행’이란 익숙한 곳, 자기 자신이 살던 곳을 떠나서 새로운 곳, 낯선 곳을 찾아 떠나는 것을 말하고, 타인들의 삶과 그 삶의 양식을 배움으로써 자기 자신의 삶과 그 삶의 양식을 변모시킬 수 있는 방법적인 수단을 말한다. 문명과 문명, 혹은 문화와 문화는 상호 충돌하면서, 그 충돌의 효과로써 새로운 문명과 문화를 싹 틔우게 된다. 대부분의 여행자는 진보주의자이며, 그는 새로운 사건들과 타인들을 만남으로써, 자기 자신을 이상적인 미래의 인간으로 인도하려는 꿈을 갖게 된다. 하지만, 그러나 기형도 시인의 [여행자]는 시적 화자의 기사도적인 모험 정신과 성자의 영웅주의에 반하여, 그 어떠한 희망마저도 이루어지지 않게 된다. “그는 완전히 다르게 살고 싶었”지만, “모퉁이에서 마주친 노파, 술집에서 만난 고양이까지”, 어느 누구도 그를 거들떠보지도 않았던 것이다. 왜, 무엇이 시적 화자를 여행자가 아닌 떠돌이--나그네로 만들어버리고, 왜, 무엇이 그에게 영원한 이방인의 삶을 강요하고 있는 것일까? 이 세상은 인간이 인간으로부터 소외되고, 정말로 더 이상 인간다운 삶을 허락하지 않고 있는 것일까? 20세기 초의 양차 세계대전과 한국전쟁, 그리고 그토록 무자비하고 잔인했던 군사독재정권들을 생각해 보면, ‘인간이 인간에게 늑대’가 되었던 실존주의자들의 절규가 떠오른다. 인간은 없다. 다만, 늑대와 늑대들만이 있을 뿐이다. “그럴 수도 있다”. “그렇다면 도대체 또 어디로 간단 말인가!”         내 희망을 감시해온 불안의 짐짝들에게 나는 쓴다 이 누추한 육체 속에 얼마든지 머물다 가시라고 모든 길들이 흘러온다, 나는 이미 늙은 것이다 ----기형도, [정거장에서의 충고]({입 속의 검은 입}, 문학과지성사)에서 희망이 희망을 꿈꾸지만, 희망이 희망의 새싹들을 짓밟아버린다. 희망이 희망이라고 짊어진 것은 “불안의 짐짝들” 뿐이고, 불안이 불안이라고 짊어진 것은 희망의 짐짝들 뿐이다. 불안에 대한 만병통치약은 이 희망을 제거하는 것이다. “모든 길들이 흘러온다, 나는 이미 늙은 것이다.” “모든 길들이 흘러온다”는 다 살았다는 뜻이고, 나의 정신적 연령은 자연사 직전의 늙은이의 그것에 지나지 않는다.         사회자가 외쳤다 여기 일생 동안 이웃을 위해 산 분이 계시다 이웃의 슬픔은 이분의 슬픔이었고 이분의 슬픔은 이글거리는 빛이었다 사회자는 하늘을 걸고 맹세했다 이분은 자신을 위해 푸성귀 하나 심지 않았다 눈물 한 방울도 자신을 위해 흘리지 않았다 사회자는 흐느꼈다 보라, 이분은 당신들을 위해 청춘을 버렸다 당신들을 위해 죽을 수도 있다 그분은 일어서서 흐느끼는 사회자를 제지했다 군중들은 일제히 그분에게 박수를 쳤다 사내들은 울먹였고 감동한 여인들은 실신했다 그때 누군가 그분에게 물었다, 당신은 신인가 그분은 목소리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당신은 유령인가, 목소리가 물었다 저 미치광이를 끌어내, 사회자가 소리쳤다 사내들은 달려갔고 분노한 여인들은 날뛰었다 그분은 성난 사회자를 제지했다 군중들은 일제히 그분에게 박수를 쳤다 사내들은 울먹였고 감동한 여인들은 실신했다 그분의 답변은 군중들의 아우성 때문에 들리지 않았다 ----기형도, [홀린 사람]({입 속의 검은 입}, 문학과지성사) 전문 모든 사제들은 유신론과 무신론 사이에서 아슬아슬하게 줄타기를 하는 마술사가 되지 않으면 안 된다. 신은 존재하지만 그 모습을 드러내서는 안 되는데, 왜냐하면 신이 등장을 하게 되면 신의 대리인인 사제는 그 존재의 근거를 잃어버리게 되기 때문이다. 또한, 신은 존재하지 않지만, 그러나 신의 부재가 입증되어서도 안 되는데, 왜냐하면 신의 부재가 입증되면 그 어떠한 종교도 성립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모든 마술사들이 그렇듯이, 그 마술사들의 재능은 완벽한 허위와 완벽한 범죄 속에 기초해 있게 된다. 이웃의 슬픔의 나의 슬픔이고, 이웃의 불행은 나의 불행이다. 이웃의 범죄는 나의 범죄이고, 이웃의 치욕은 나의 치욕이다. 사제들의 이타적인 참회와 복음의 말씀은, 그러나 바로 그 순간에 자기 자신의 신도들을 짓밟고 자기 자신만이 하나님의 아들로 수직적인 신분상승을 하게 된다. 사제들의 말씀은 언제, 어느 때나 한 바가지의 샘물처럼 달콤하고, 그 달콤함에 의하여 만인들은 자기 자신의 이성을 마비시키고 “홀린 사람”이 되어간다. 홀린 사람은 미치광이가 되고, 그의 생명과 재산과 모든 것을 다 갖다 바치게 된다. 종교는 마약이며 아편이다. 기형도 시인의 [홀린 사람]은 사이비 종교 창시자와 그 광신도들을 고발한 시라고 할 수가 있다.       저녁 노을이 지면 神들의 商店엔 하나 둘 불이 켜지고 농부들은 작은 당나귀들과 함께 城 안으로 사라지는 것이었다 성벽은 울창한 숲으로 된 것이어서 누구나 寺院을 통과하는 구름 혹은 조용한 공기들이 되지 않으면 한 걸음도 들어갈 수 없는 아름답고 신비로운 그 城   어느 골동품 商人이 그 숲을 찾아와 몇 개 큰 나무들을 잘라내고 들어갔다 그곳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그가 본 것은 쓰러진 나무들뿐, 잠시 후 그는 그 공터를 떠났다   농부들은 아직도 그 평화로운 城에 살고 있다 물론 그 작은 당나귀들 역시 ----기형도, [숲으로 된 성벽]({입 속의 검은 입}, 문학과지성사) 전문 만일 속리산에 나무가 하나도 없고, 설악산에 나무가 하나도 없다면, 수많은 등산객들이 그 산들을 찾아갈 필요가 없을 것이다. 나무는 생명의 나무이며,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찬란한 지구의 옷이다. 나무가 있기 때문에 새들이 노래를 하고, 모든 짐승들이 뛰어놀게 된다. 나무가 있기 때문에 숲속의 궁전들이 세워지고, 수많은 신들이 다양한 모습으로 살아가게 된다. 나무 하나, 돌멩이 하나에도 신의 입김이 서려 있고, 새 한 마리와 개미 한 마리에도 신의 입김이 서려 있다. 적과 동지, 천적과 천적이 있기 때문에 종의 균형이 유지되고, 모든 만물은 조화를 이루게 되어 있는 것이다. 어느 골동품 상인은 ‘성상 파괴주의자’이며, 자기 자신을 ‘만물의 영장’이라고 부르고 있는 저 미치광이와도 같은 인간을 닮아 있다. [숲으로 된 성벽]은 기형도 시인의 자연예찬이 매우 아름답게 드러난 시라고 하지 않을 수가 없다.       김교수님이 새로운 학설을 발표했다 소리에도 뼈가 있다는 것이다 모두 그 말을 웃어넘겼다, 몇몇 학자들은 잠시 즐거운 시간을 제공한 김교수의 유머에 감사했다 학장의 강력한 경고에도 불구하고 교수님은 일 학기 강의를 개설했다 호기심 많은 학생들이 장난삼아 신청했다 한 학기 내내 그는 모든 수업 시간마다 침묵하는 무서운 고집을 보여주었다 참지 못한 학생들이, 소리의 뼈란 무엇일까 각자 일가견을 피력했다 이군은 그것이 침묵일 거라고 말했다 박군은 그것을 숨은 의미라 보았다 또 누군가는 그것의 개념은 중요하지 않다고 했다 모든 고정관념에 대한 비판에 접근하기 위하여 채택된 방법론적 비유라는 것이었다 그의 견해는 너무 난해하여 곧 묵살되었다 그러나 어쨌든 그 다음 학기부터 우리들의 귀는 모든 소리들을 훨씬 더 잘 듣게 되었다 ----기형도, [소리의 뼈]({입 속의 검은 입}, 문학과지성사) 전문   [소리의 뼈]는 대단히 현학적이고 지적인 시이며, 기형도 시인의 학문적 깊이를 짐작할 수 있는 시금석과도 같은 시라고 할 수가 있다. 모든 학문(예술)은 새로운 사건과 새로운 현상들을 발견하고, 그것을 사상과 이론으로 연구하는 것을 말한다. 사상과 이론은 최고급의 지혜의 저장소이며, 모든 학문(예술)의 궁극적인 목표가 된다. 대한민국의 학교는 사상과 이론을 가르치기는 하지만, 그 사상과 이론의 중요성과 그것을 정립하는 방법을 가르치지는 않는다. 자기 자신이 그 어떠한 사상과 이론도 정립하지 못했기 때문에, 그 사상과 이론의 중요성과 그것을 정립하는 방법을 알 수가 없는 것이다. 우리 대한민국에서 사상과 이론이란 영혼이 없고 생명이 없는 고사목枯死木과도 같은 것이다. 기형도 시인은 대한민국의 이러한 저질적이고도 야만적인 교육제도를 알고 있었던 것일까? 나는 그것을 잘 알 수가 없지만, 그러나 그는 철학을 스스로 공부하고, 사상과 이론의 중요성을 알고 있었던 것도 같다. ‘소리의 뼈’는 과연 무엇이며, 김교수는 그것을 어떻게 새로운 이론(학설)으로 정립하게 되었던 것일까? 김교수는 수많은 반대의견과 학장의 엄중한 경고에도 불구하고 그 강의를 개설했던 것이지만, 그러나 그는 그 이론을 가르치거나 입증하여 보여주지는 못했던 것이다. 소리의 뼈는 침묵일까? 소리의 뼈는 숨은 의미일까? 소리의 뼈는 고정관념에 대한 전면적인 저항과 해체작업의 신호탄이었을까? 어쨌든, 그러나 ‘소리의 뼈’에 대한 침묵으로 일관한 강의는 수많은 억측과 논란을 낳게 되었지만, 그러나 “그 다음 학기부터 우리들의 귀는/ 모든 소리들을 훨씬 더 잘 듣게 되었다”는 것이다. ‘소리의 뼈’는 소리의 핵심적인 주제와 의미를 말하고, 그것은 모든 소리들을 더 묵묵히, 더 주의깊게 경청하라는 교훈을 담고 있었던 것이다.                            
942    과연 당신만의 "십자가"를 짊어질수 있는 용기가 있는가... 댓글:  조회:2040  추천:0  2018-01-30
  추위에 움크린 양지 담장 밑에는 푸른 호흡소리 들린다. 햇살 쓸어내린 손 끝에서 잠에 취한 눈망울 기지개를 켠다. 자고 있어도 시절은 찾아오는 것. 시련이 있어도 시간은 지나가는 것 가슴은 언제나 꿈을 안고 살아가는 것. 오늘 추위는 내일의 열매를 위한 것 조금만 참자, 봄은 오나니 참아보자   -------------------------------- 윤동주의 시에 대하여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점 부끄러움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   오늘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윤동주, [序詩] 전문 * 윤동주(1917~1945) 시인의 [序詩]는 우리 한국인들이 가장 많이 읽고 암송하고 있는 시라고 할 수가 있다.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점 부끄러움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라는 시구는 윤동주 시인의 티없이 맑은 천성天性이 사실 그대로 잘 드러나고 있는 시구라고 할 수가 있다. 도덕은 아름다움의 결정체이고, 우리는 이 도덕의 아름다움을 끊임없이 미화하고 성화시키게 된다.       산모통이를 돌아 논가 외딴 우물을 홀로 찾아가선 가만 히 들여다 봅니다.   우물 속에는 달이 밝고 구름이 흐르고 하늘이 펼치고 파아 란 바람이 불고 가을이 있습니다.   그리고 한 사나이가 있습니다. 어쩐지 그 사나이가 미워져 돌아갑니다.   돌아가다 생각하니 그 사나이가 가엾어집니다. 도로 가 들 여다 보니 사나이는 그대로 있습니다.   다시 그 사나이가 미워져 돌아갑니다. 돌아가다 생각하니 그 사나이가 그리워집니다.   우물 속에는 달이 밝고 구름이 흐르고 하늘이 펼치고 파 아란 바람이 불고 가을이 있고, 추억처럼 사나이가 있습니다. ----윤동주, [自畵像] 전문 * 나는 사랑의 대상이면서도 미움의 대상이 된다. 내가 나 자신에 대하여 긍지를 가질 때 나는 사랑의 대상이 되고, 내가 나 자신에 대하여 긍지를 갖지 못할 때 나는 미움의 대상이 된다. 사랑의 대상은 그리움의 대상이 되고, 미움의 대상은 경멸의 대상이 된다. 우리는 누구나 다같이 자기 자신을 사랑하면서도 미워하고 있는 것이다. 이 애증이 겹치는 존재가 윤동주 시인의 [自畵像]이며, 그것은 우리 인간들의 불완전함의 극적인 표상이라고 할 수가 있는 것이다. “다시 그 사나이가 미워져 돌아갑니다/ 돌아가다 생각하니 그 사나이가 그리워집니다// 우물 속에는 달이 밝고 구름이 흐르고 하늘이 펼치고 파/ 아란 바람이 불고 가을이 있고, 추억처럼 사나이가 있습니다.”     빨리 봄이 오면 죄를 짓고 눈이 밝어   이브가 해산하는 수고를 다하면   무화과 잎사귀로 부끄런 데를 가리고   나는 이마에 땀을 흘려야겠다. ----윤동주, [또 태초의 아침] 부분 *“나는 신성모독을 범한다, 고로 존재한다”는 낙천주의자로서의 나의 존재론이고, “세계는 나의 범죄의 표상이다, 고로 행복하다”는 낙천주의자로서의 나의 행복론이다. 모든 창조자는 신성모독자가 되지 않으면 안 되고, 우리는 그 신성모독자의 삶을 행복하게 살아가지 않으면 안 된다. 코페르니쿠스의 신성모독, 부처와 예수의 신성모독, 니체와 쇼펜하우어의 신성모독, 보들레르와 랭보의 신성모독 등은 이 범죄의 생산성과 그 아름다움을 가장 역동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일찍이 한국시문학사상 어느 누가 “빨리/ 봄이 오면/ 죄를 짓고/ 눈이/ 밝어// 이브가 해산하는 수고를 다하면// 무화과 잎사귀로 부끄런 데를 가리고// 나는 이마에 땀을 흘려야겠다”라고 노래한 적이 있었던가? 윤동주 시인은 한국적인 정한의 세계를 벗어나서, 대쪽같은 장인 정신과 성자의 영웅주의를 육화시킨 시인이라고 하지 않을 수가 없다.       괴로웠던 사나이, 행복한 예수 그리스도에게 처럼 십자가가 허락된다면   모가지를 드리우고 꽃처럼 피어나는 피를 어두어가는 하늘 밑에 조용히 흘리겠습니다. ----윤동주, [십자가] 부분 * 이 세상에서 가장 훌륭하고 위대한 것은 ‘사상’인데, 왜냐하면 사상은 이 세상의 삶에 대한 욕망마저도 헌신짝처럼 버리게 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상은 그것이 만인평등이든, 내세의 천국이든지간에, 그 주체자에게 분명한 목적을 제시해 주고, 그 목표를 위해서는 마치, 자살특공대처럼 순교를 하게 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훌륭한 것은 순교자의 삶이라고 할 수가 있다. 예수의 순교, 부처의 순교, 이순신의 순교, 윤동주의 순교 등----. 당신은, 당신은, 과연 당신만의 십자가를 짊어질 수 있는 용기가 있는가?          
941    윤동주 친구, 문익환 다시 알기... 댓글:  조회:3498  추천:0  2018-01-29
페이스북 트위터 공유 스크랩 프린트 작게     서울 수유동 ‘통일의 집’ 거실 벽면을 가득 채운 사진. 문익환 목사의 생애를 확인할 수 있다. “자료가 대충 2만5천 점 정도 되는데요, 정리가 쉽지 않을 것 같아요.” 고 늦봄 문익환 목사의 딸 문영금씨가 고인이 남긴 유품을 꼼꼼히 둘러보며 걱정스러워했다. 시인 윤동주의 친구이며 북한 김일성 주석과 통일의 뜻을 나눴던 늦봄 문익환 목사의 유택 ‘통일의 집’이 ‘통일박물관’으로 바뀐다. 20년 넘게 살아온 서울 강북구 수유동 통일의 집 곳곳에는 통일과 민주화운동뿐 아니라 문 목사가 참여했던 개신교·천주교 관련 자료가 가득했다. 이 유품들은 지난해 말 2주에 걸쳐 자원봉사자들의 조심스러운 손길로 정리돼 한신대학교로 옮겨졌다. 유품들은 통일의 집이 개보수를 한 뒤 통일박물관으로 개관하는 6월에 다시 공개된다. 문익환 목사는 성직자이자 신학자였지만 1976년 3·1민주구국선언으로 민주화운동에 투신한 이후, 1980년대는 재야 민주화 세력의 상징적 인물이 되었다. 1989년 북한을 방문해 김일성과 회담했다. 그때의 합의 내용은 2000년 남북공동선언에 반영되었다. 1994년 별세했다.     서울 강북구 수유동 527-30 ‘통일의 집’ 전경. 개보수를 거쳐 ‘통일박물관’으로 개관할 예정이다.     문익환 목사가 감옥살이할 때 입었던 수의.     부인 박용길 장로의 한복(1995년 방북 때 북한 주민들이 만들어주었다.     문익환 목사는 생애의 마지막 20년 중 11년을 감옥에서 보냈다. 그의 수번들을 모아놓은 액자.     고인이 생전에 사용하던 문패. 부모인 문재린 목사와 김신묵 권사, 문익환 목사와 박용길 장로의 이름이 함께 쓰여 있다.     딸 문영금씨와 자원봉사자들이 유품의 정리와 운반에 대해 상의하고 있다. ///사진·글 박승화 기자 =======================   공 ⓒ 성하훈 관련사진보기 ⓒ 성하훈 관련사진보기 ⓒ 성하훈 관련사진보기 ⓒ 성하훈 관련사진보기 ⓒ 성하훈 관련사진보기 "전태일 열사여!"로 시작해 "이한열 열사여!"로 끝나는 1987년 7월 9일 이한열 열사 장례식. 당시 문익환 목사의 절규는 영화 의 마지막 부분에서 깊은 감명으로 다가온다. 민주화 운동과 통일운동에 헌신했던 문익환 목사의 24주기 추도행사가 13일 오전 11시 마석모란공원에서 열렸다. 고 문익환 목사는 1994년 1월 18일 세상을 떠났다. 문 목사는 1989년 당시 분단의 장벽을 뚫기 위해 북한을 방문하고 귀국해 옥고를 치르기도 했다. 그런 가운데 최근 경색됐던 남북간의 대화가 재개되면서 이번 추도식에 의미를 더했다. 문재인 대통령과 북측은 함께 추도사를 보내 문 목사의 뜻을 기렸다. 이날 추도식은 1부 추도예배와 2부 추도식 순으로 진행됐다. 문익환 목사의 아들인 문성근 배우를 비롯한 유족과 이해찬·김한정 의원, 이재명 성남시장, 이한열 열사의 어머니인 배은심 여사 등과 민주화운동에 함께했던 지인 및 시민 100여 명이 눈발이 날리는 궂은 날씨에도 불구하고 참석했다.  추모예배 설교를 맡은 민주화운동 기념사업회 부이사장 정진우 목사는 설교를 통해 "'촛불혁명' 이후 첫번째 추도식이라 뜻깊다"며 "문 목사님은 분단의 철책을 넘었고, 1987년 (이한열 열사 장례식 당시) 전태일과 박종철 열사 등의 이름을 불러 우리를 하나로 묶었다"고 추모했다.  이해찬 의원은 "문 목사님이 민주화와 통일은 하나라고 하셨는데, 정권교체가 되니 남북이 만났다"며 "머지않아 평양에 갈 것 같은데, 목사님이 염원하신 길을 걷겠다"고 말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장영달 통일맞이 이사장이 대신 읽은 추모전문에서 "지난해 목사님 추모식을 끝내고 찾은 광화문에는 수천 수만의 촛불이 별처럼 빛나고 있었고, 사람들 사이에서 불쑥 나타나 '힘들지 않아? 수고 많지?'하시며 환하게 웃으실 것만 같았다"고 회상했다.  또 "지난 7일 국민과 함께 본 영화에서 목사님을 뵈었다, 이한열 열사 장례식 하루 전에 출감한 목사님이 26명 열사의 이름을 온 몸으로 외쳐 부르고 계셨는데 1987년 6월의 뜨거운 눈물이 다시 흘러내렸다"면서 "'촛불혁명'으로 6월 민주항쟁을 완성한 국민들이 열사들에게 바치는 다짐의 눈물이었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또한 "1989년 3월, 김구 선생과 윤동주, 장준하와 전태일의 마음을 안고 도착한 평양에서 '민주는 민중의 부활이고, 통일은 민족의 부활이다'라는 말씀으로 평화와 통일, 번영을 향한 이정표를 굳건히 세우셨다"고 평가했다. 문 대통령은 이어 "이 땅에 평화의 기운이 다시 싹트고 있다, 목사님이 세우신 이정표를 따라 국민의 나라, 평화와 번영의 한반도를 향해 흔들림없이 걷겠다"며 "봄이 찾아오지 않는 겨울은 없다, 목사님 그립습니다"라고 덧붙였다.  북측 역시 6.15공동선언실천 북측위원회 명의로 추도사를 보내 "늦봄 문익환 목사는 조국통일을 위한 길에 한생을 다 바친 저명한 통일애국인사"라며 "정의감 강하고 열렬한 민족애와 강인한 지조를 지녔고, 자주와 민주, 통일을 위해 한몸을 서슴없이 내댈수 있었다"고 평가했다.  이재명 성남시장은 "민주와 통일을 위해 앞으로 가셨다. 목사님 가신 길을 따라 나아가겠다"고 추도사를 전했다. 문성근 배우는 유족을 대표한 인사에서 "올해가 문익환 목사 탄생 100년인데 남북대화가 시작됐다"면서 "다양한 추모행사를 준비하려 하니 남북관계 개선에 활용될 수 있길 바란다"고 말했다. 이어 "문익환 목사님이 사셨던 집을 박물관으로 꾸미기로 했다"면서 관심을 부탁했다./성하훈  
940    <할아버지> 시모음 댓글:  조회:2497  추천:0  2018-01-27
  + 할아버지 연장통  창고를 청소하다  눈에 익은 연장통을 보았다.  어릴 때 타던 세발자전거와 나란히 놓인  할아버지 손때 묻은 연장통.  - 세상에 쓸모 없는 물건이란 없는 거란다.  할아버지께선 늘 말씀하셨지.  연필깎이로 깎이지 않는 몽당연필도  밑창이 떨어진 낡은 내 운동화도  할아버지 손길만 거치면  뭐든 제 몫을 해내었지.  그래, 세상엔  쓸모 없는 물건이란 없는 거야.  환한 얼굴로 기뻐할 사촌동생을 떠올리며  할아버지 연장으로  세발자전거를 조이고 닦는다.  창고 속 먼지 쌓인 할아버지 연장통이  새삼 더 크게 보인다.   (강지인·아동문학가)  + 할아버지와 시골집  겨울 방학 때 시골 할아버지 집에 갔지요  시골집도 할아버지를 닮아 나를 반겼어요  흰 눈 덮인 지붕은 할아버지 머리 같았고요  틈이 난 싸리문은 할아버지 이 같았지요  금이 간 흙벽은 주름진 할아버지 얼굴 같았고요  처마 끝의 고드름은 할아버지 수염 같았어요  아침에 일어나자  할아버지는 면도기로 수염을 쓱쓱 깎았고요  시골집은 햇살로 고드름을 살살 깎았지요  (김용삼·아동문학가)  + 우리 할아버지 시간  약수터 갈 시간이  노인정 갈 시간이  진지 드실 시간이  9시 뉴스 나올 시간이  기다리시는 우리 할아버지에겐  한 발 한 발 느리게 다가온다.  뭐든지 미리 준비하시는 할아버지  시간을 미리 끌어다 쌓아두셔서  꺼내는데 시간이 걸리는 거다.  오늘은 내가  할아버지랑 장기도 두고  모시고 나들이도 해야겠다  시간을 먼저 써버려야  쌓아두시지 못할 테니까.  (배정순·아동문학가)  + 돋보기  신문 속의 글자들  할아버지 눈앞에서 장난친다.  가물가물  작아지고 흐려지고  할아버지는  가늘게, 크게 눈 뜨며  겁주지만  글자들은 무서워하지 않는다.  - 영호야, 돋보기 좀 가져오렴.  그제야  꼼짝 못하고  착해진 글자들.  (정은미·아동문학가)  + 보청기  할아버지  큰 귓속에  작은 귀 하나  닫힌 문을  삐그덕 열어 줄  마음이 넓은 귀  새들 노래, 바람 노래  다 옮겨 놓는  마음이 넉넉한 귀  "오래오래 사셔야 해요."  우리들 사랑을  하나도 빼놓지 않고  또박또박 전해 주는  마음이 착한 귀.  (한상순·아동문학가)  + 발씻기 숙제  가을걷이 끝난 뒤  허리병이 도져  병원에 입원한  외할아버지  외할아버지 발을  엄마가 닦아 드립니다  콩 한 가마니 불끈 들어올릴 때  단단한 버팀목이었을 장딴지가  마른 삭정이 같습니다  바람 불면  쇄쇄 소리가 날 것 같은  마른 삭정이에서  뻗어 내린 잔가지 같은  외할아버지의 발  엄마는 조심조심  외할아버지의 발을 닦습니다  가끔 학교에서 내주는  부모님 발 씻겨 드리기 숙제,  엄마는 어렸을 때 미뤄 둔 그 숙제를  이제 하나 봅니다               (한상순·아동문학가)  + 할아버지 자전거  뒤꼍에서  녹슬고 있는  할아버지 자전거  가만히 바큇살 돌려봅니다  그르르 그르르......  가래 끓는 소리가 납니다  할아버지 몸을 닦아주시는  엄마처럼  자전거를 닦아 봅니다  손잡이 발판 의자......  할아버지 손때가 꼬질꼬질  남아있습니다  자전거를  할아버지 방문 앞에 올려놓습니다  오늘은 할아버지가  일어나실 것만 같습니다  (김애란·아동문학가)  + 그늘  감나무 그늘에  멍석을 깔고  할머니들  재미난 이야기꽃 피우고.  감나무 그늘에  자리를 깔고  할아버지들  하루 종일  장이야 멍이야.  (최동안·강원도 강릉시 옥천 초등학교, 1970년 작품)  + 조문(弔文)  뒷집 조성오 할아버지가 겨울에 돌아가셨다.  감나무 두 그루 딸린 빈집만 남겨두고 돌아가셨다  살아서 눈 어두운 동네 노인들 편지 읽어주고  먼저 떠난 이들 묏자리도 더러 봐주고  추석 가까워지면 동네 초입의 풀 환하게 베고  물꼬싸움 나면 양쪽 불러다 누가 잘했는지 잘못했는지 심판 봐주던  이 동네 길이었다, 할아버지는  슬프도록 야문 길이었다  돌아가셨을 때 문상도 못한 나는 마루 끝에 앉아,  할아버지네 고추밭으로 올라가는 비탈,  오래 보고 있다. 지게 지고 하루에도  몇 번씩 할아버지가 오르내릴  때 풀들은  옆으로 슬쩍 비켜 앉아 지그재그로 길을 터주곤 했다  비탈에 납작하게 달라붙어 있던 그 길은  여름 내내 바지 걷어붙인 할아버지 정강이에  볼록하게 돋던 핏줄같이 파르스름했다  그런데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  그 비탈길을 힘겹게 밟고 올라가던  느린 발소리와 끙, 하던 안간힘까지 돌아가시고 나자 그만  길도 돌아가시고 말았다  풀들이 우북하게 수의를 해 입힌 길,  지금은 길이라고 할 수 없는 길 위로  조의를 표하듯 산그늘이 엎드려 절하는 저녁이다.  (안도현·시인)     ==========================(자료)...   ▲ 중국 연변 왕청현에 있었던 독립군 사관 양성학교인 라자구 무관학교 인근 산 중턱 동굴 입구 바위에 그려진 태극기(40×30cm). 독립군의 피신처로 알려진 동굴 입구에는 대한독립군 4명의 이름도 쓰여 있다. ///규암김약연기념사업회 제공
939    <할머니> 시모음 댓글:  조회:2307  추천:0  2018-01-27
  + 할머니의 겨울  보일러 기름통에  석유만 가득 차면  배가 부르다는 우리 할머니  시집간 손녀가  기름통에 석유 가득 채워주고 간 날부터  다음해 겨울까지, 만나는 사람마다  우리 착한 손녀가  기름통 가득 채워주고 갔다고  동네방네 자랑을 참지 못하는  우리 할머니의 겨울은 참 따뜻하다.  일찍 부모 잃은 어린 손자 손녀들 돌보며  내가 자식 잡아먹은 직일년이라고 울면서도  살림살이 어느 한 군데도  흐트러지지 않고 야무지게 사시는  우리 할머니의 겨울은 참 따뜻하다  가득 찬  기름통 하나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서정홍·시인, 1958-)  + 할머니는 바늘구멍으로  할머니가 들여다보는  바늘구멍 저 너머의 세상  내 눈에는 아무것도 보이잖는데  할머니 눈에는 다 보이나 보다.  어둠 속에서도  실끝을 곧게 세우고는  바늘에 소리를 다는  할머니 손  밤에 보는 할머니의 손은 희다.  낮보다도 밝다.  할머니가 듣고 있는  바늘구멍 저 너머의 세상 소문  내 귀에는 아무 소리도 들리잖는데  할머니 귀에는 다 들리나 보다.  (윤수천·아동문학가, 1942-)  + 시간의 탑  할머니,  세월이 흘러  어디로  훌쩍 가버렸는지 모른다 하셨지요?  차곡차곡  쌓여서  이모도 되고  고모도 되고  작은엄마도 되고  차곡차곡  쌓여서  엄마도 되고  며느리도 되고  외할머니도 되었잖아요.  우리 곁에  주춧돌처럼 앉아 계신  할머니가 그 시간의 탑이지요.  (유미희·아동문학가)  + ㄱ자  할머니 허리가 자꾸 굽어지더니  마침내 ㄱ자가 되었습니다  할머니 귀도 허리 굽혀  손주의  웃음소리를 가까이서 봅니다.  손주의  울음소리를 가까이서 업어 줍니다.  (박두순·아동문학가)  + 할머니 입  할머니를 보면  참 우스워요  세 살배기 내 동생에게  숟가락으로 밥을  떠 넣어 주실 때마다  할머니도  아-  아-  입을 크게 벌리지요.  할머니 입에는  아무것도  넣지 않고.  할머니를 보면  참 우스워요.  세 살배기 내 동생이  밥 한 숟가락  입에 넣고  오물오물 거릴 때마다  할머니도  내 동생을 따라  입을 우물우물 하지요.  할머니 입에는  아무것도  넣지 않고.  (윤동재·아동문학가)  + 우리 할머니  자나깨나 할머니는  성경책만 읽으신다.  감자밭 감자 캐듯  책 이랑을 더듬으며  굵다란  감자알 같은  굵은 말씀 캐내신다.  가다가는 한번씩  그 이랑 되돌아가  이삭 감자 주어내듯  놓친 말씀 다시 줍고  마음의   광주리 찬 듯  눈을 지긋 감으신다.  (서재환·아동문학가, 1961-)  + 할머니와 나  우물의 깊이를 보며  살았습니다 할머니는.  수돗물의 속도를 만지며  삽니다 나는.  고무신 신고 땅의 감촉을 느끼며  산과 들을 걸었습니다 할머니는.  차창 밖으로 지나가는 들판을  건너다보며 삽니다 나는.  내가 못 보고 느낀  우물의 깊이와 땅의 감촉을  할머니와 나 사이에서  가르쳐줍니다 어머니는  (배정순·아동문학가)  + 외할머니  맛이 간 백설기를  내가 버리려 하자  할머니는 그걸  찬물에 넣고 오물락거렸다.  몇 번을 물을 바꿔가며 그렇게 하자  백설기는 풀어져  이제 떡가루가 되었다.  할머니는  점심 대신 그 떡가루를 먹었다.  아무렇지 않다고 했다.  (임길택·시인, 1952-1997)  + 폐지 줍는 할머니  등 굽은 할머니가  리어카를 끌고 간다.  리어카에 쌓인  폐지 더미  산봉우리처럼 솟았다.  산을 끌고 가는  할머니 굽은 등은  또 다른 산  끙끙, 작은 산이  큰 산을 끌고 간다.  (박방희·아동문학가, 1946-)  + 우리들의 기도  아빠의 어머니는  날마다 날마다  하느님께 기도하지요  우리들이 바위처럼 살 수 있도록  엄마의 어머니는  날마다 날마다  부처님께 기도하지요  우리들이 꽃처럼 살 수 있도록  우리들은  일주일마다  할머니 댁에 가지요  할머니는  그게 바로  우리들의 기도래요.  (서금복·아동문학가)  + 외로운 할머니      "하룻밤만 더 묵어 가거라."  "서울은 그렇게 한가하지 않아요."  할머니 눈 속에 핑 도는 눈물.  앞서가는 손자의 뒤통수가  꼭 제 아범 같다며  눈물을 꼭꼭 깨무신다.  "언제 또 오겠냐?"  "설 때나 오겠어요."  엄마가 시키는 대로  손을 흔드는  손자의 귀여운 손바닥이  할머니 눈 속에  안개를 피우고  차는 떠났다.  할머니 곁에 남은  서리 맞은 코스모스  고개만 살래살래.  (임교순·아동문학가)  + 감자     할머니가 보내셨구나  이 많은 감자를.  야, 참 알이 굵기도 하다.  아버지 주먹만이나 하구나.  올 같은 가물에  어쩌면 이런 감자가 됐을까?  할머니는 무슨 재주일까?  화롯불에 감자를 구우면  할머니 냄새가 나는 것 같다.  이 저녁 할머니는 무엇을 하고 계실까!  머리가 허연  우리 할머니.  할머니가 보내 주신 감자는,  구워도 먹고 쪄도 먹고  간장에 조려  두고두고 밥반찬으로 하기로 했다.  (장만영·시인, 1914-1975)  + 오래 살아야 할 이유  시골 할머니 집에서  딩동딩동 택배가 도착했습니다  아빠 혼자서 들 수 없을 만큼  큰 종이 상자에 가득  김치가 들어 있었습니다  아빠는 엄마에게  당장 밥을 달라고 어린아이처럼  떼를 썼습니다  우리 식구는 할머니가 보내 온  김치 하나만 가지고  이른 저녁을 맛있게 먹었습니다  그날 저녁 아빠는  따르릉따르릉 시골집으로 전화를 했습니다  아빠는 할머니에게  철부지 소년처럼 재잘재잘 말했습니다  할머니가 담근 김치 말고는 맛없어 못 먹는다고  김치 때문에라도 오래오래 살아야 한다고  말하는 아빠의 눈시울은  시골집 감나무의 홍시처럼 붉어졌습니다  한두 달이 지나면  김치 냄새가 물씬 풍기는 택배가  우리 집에 또 도착할 것입니다  (김용삼·아동문학가, 1966-)  + 종근이 할머니  여든한 살  종근이 할머니  고향에 가고 싶지 않으셔요?  왜, 가고야 싶지  그러나 이젠  혼자서 아무 데도 못 가  어지러워  아드님 따라  탄광 오신 지  열네 해  그 아드님  떨어지는 돌에 머리를 맞고  정신병원 들어간 지 이년  며느리가 대신 탄광일 나가  돈을 버는데  연탄도 갈고  개밥도 끓이시고  종근이 양말짝도 빨아주다  밤이면 끙끙 앓으시는 할머니  밭 매시던 때가  가장 그립다 하신다  (임길택·시인, 1952-1997)  + 어머니와 할머니의 실루엣  어려서 나는 램프불 밑에서 자랐다,  밤중에 눈을 뜨고 내가 보는 것은  재봉틀을 돌리는 젊은 어머니와  실을 감는 주름진 할머니뿐이었다.  나는 그것이 세상의 전부라고 믿었다.  조금 자라서는 칸델라불 밑에서 놀았다,  밖은 칠흑 같은 어둠  지익지익 소리로 새파란 불꽃을 뿜는 불은  주정하는 험상궂은 금점꾼들과  셈이 늦는다고 몰려와 생떼를 쓰는 그  아내들의 모습만 돋움새겼다.  소년 시절은 전등불 밑에서 보냈다.  가설극장의 화려한 간판과  가겟방의 휘황한 불빛을 보면서  나는 세상이 넓다고 알았다, 그리고  나는 대처로 나왔다.  이곳 저곳 떠도는 즐거움도 알았다,  바다를 건너 먼 세상으로 날아도 갔다,  많은 것을 보고 많은 것을 들었다.  하지만 멀리 다닐수록, 많이 보고 들을수록  이상하게도 내 시야는 차츰 좁아져  내 망막에는 마침내  재봉틀을 돌리는 젊은 어머니와  실을 감는 주름진 할머니의  실루엣만 남았다.  내게는 다시 이것이  세상의 전부가 되었다.  (신경림·시인, 1936-)  + 할머니와 어머니    - 나의 보수주의  김포공항을 떠날 때 나는 등 뒤에다  모든 것을 두고 떠나왔다  남편의 사진은 옷장 속에 깊이 숨겨두었고  이제는 바다처럼 넓어져서  바람소리 숭숭 들려오는 넉넉한 나이도  기꺼이 주민등록증 속에 끼워두고 왔다  그래서 나는 큰 가방을 들었지만  날을 듯이 가벼웠었다  내가 가진 거라곤 출렁이는 자유,  소금처럼 짭잘한 외로움  이거면 시인의 식사로는 풍족하다  사랑하는 데는 안성맞춤이다  그런데 웬일일까  십수 년 전에 벌써 죽은 줄로만 알았던  우리 할머니와 우리 어머니가  감쪽같이 나를 따라와  내 가슴 깊숙이 자리 잡고 앉아  사사건건 모든 일에 간섭하고 있다  두 눈 동그랗게 뜨고  "조심조심 길조심" 성가시게 한다  (문정희·시인, 1947-)  + 석노마(石老馬) 할머니  외할머니께서 83세의 일기로  내 곁을 떠나신 지  어느새 만 11년이 되었다.  시집온 지 겨우 몇 년만에  청상과부가 되셔서  달랑 외동딸 하나 키우시며  긴 세월 많이 외로우셨을 할머니  평생을 하루도 빠짐 없이  우리 위해 밥 짓고 빨래 하시느라  늘 고단하셨던 할머니  그냥은 써서 못 마시겠다며  설탕 한 숟가락 넣은  막걸리 한 사발을 놓고서도  몇 번이고 쉬엄쉬엄 나눠 드시던  나의 외할머니  1991년 1월 17일 저녁  할머니가 현관 밖 차디찬 계단에  쓰러져 계신 것을  나의 아내가 발견하였을 때도,  할머니는 마당에 넣어 두셨던  하얀 광목 한 보따리를  가녀리게 야윈 품에  보석처럼 끌어안고 계셨지  세상을 하직하시던 그 날도  우리 위해 저녁밥을 지으셨지  단 한마디의 유언도 남기시지 못한 채  싸늘한 육신으로 돌아가신 할머니  할머니가 우리 곁을 영영 떠나셨다는 게  나 도무지 느껴지지 않아  할머니가 늘 주무시던 그 자리에  나 밤마다 이부자리를 펴 드렸었네  돌(石)처럼 한평생 변함없이  우리를 기르시고 보살펴 주셨던 할머니  고단한 살림살이를 지탱하시느라  늙은 말(老馬)처럼 야위셨던  당신의 그 모습이  세월이 흐르면 흐를수록  더욱 성스럽게만 느껴지는 것은  무슨 까닭입니까  할머니라는 이름으로  내 곁에 말없이 머물다 가신  나의 하느님  나의 하느님 할머니  (정연복, 1957-)     【제주=뉴시스】우장호 기자 = 일주일째 한파가 몰아친 30일,  제주시 연동의 한 감나무 위에 동박새 한마리가 날아와 까치밥으로 남겨진 홍시를 먹고 있다. 2018.01.30.  
938    <술> 시모음 댓글:  조회:2385  추천:0  2018-01-25
    + 익는 술  착한 몸 하나로 너의  더운 허파에  가 닿을 수가 있었으면.  쓸데없는 욕심 걷어차버리고  더러운 마음도 발기발기 찢어놓고  너의 넉넉한 잠 속에 뛰어들어  내 죽음 파묻힐 수 있었으면.  죽어서 얻는 깨달음  남을 더욱 앞장서게 만드는 깨달음  익어가는 힘.  고요한 힘.  그냥 살거나 피흘리거나  너의 곁에서  오래오래 썩을 수만 있다면.  (이성부·시인, 1942-)  + 술  술 없이는 나의 생을 생각 못한다.  이제 막걸리 왕대포집에서  한 잔 하는 걸 영광으로 생각한다.  젊은 날에는 취하게 마셨지만  오십이 된 지금에는  마시는 것만으로 만족하다.  아내는 이 한 잔씩에도 불만이지만  마시는 것이 이렇게 좋을 줄을  어떻게 설명하란 말인가?  (천상병·시인, 1930-1993)  + 술타령  날씨야  네가  아무리 추워 봐라  내가  옷  사 입나  술 사먹지  (신천희·스님이며 시인, 전라도 어느 암자의 주지승)  + 내가 술을 마시는 건  내가 술을 마시는 건 꼭 취하고 싶어 마시는 술 아니다.  허무한 세상  땀 흘려 얻은 울분을  허기진 뱃가죽 공복에 씻어내려고 마시는 술만도 아니다.  남자의 고독을 술 한잔에 섞었다 말하지 말아라.  나 홀로 술잔 기울인다고 술꾼이라 말하지도 말아라.  내 빈 술잔에 아무도, 무엇 따르는 이 없는 걸 너희가 아느냐.  내가 말없이 술잔 비우는 건  윤회를 꿈꾸는 세월에 주먹을 치며 나를 달래는 일이다.  내 가슴 일부를 누구 스친 바 없는 시간에 미리 섞는 일이다.  허기진 공복에 잔을 씻고 씻으며  미지의 시간을 위로해주려는 그런 마음이란 말이다.  (강태민·시인, 1962-)  + 술 마시는 남자  다치기 쉬운 마음을 가진 사람들과  술을 마시네  술 취해 목소리는 공허하게 부풀어오르고  그들은 과장되게  누군가를 향해 분노를 터뜨리거나  욕을 하네  욕은 마음 빈곳에 고인 고름,  썩어가는 환부,  보이지 않는 상처 한 군데쯤 가졌을  그들 마음에 따뜻한 위안이었으면 좋겠네  취해서 누군가를 향해 맹렬히 욕을 하는 그대,  취해서 충분히 인간적인 그대,  그대는 날개 없는 天使인가  그들 마음의 갈피에 숨어 있던 죄의 씨앗들  밖으로 터져나와  마음 한없이 가볍네  그 마음 눈 온 날 신새벽 아직 발자국 찍히지 않은 풍경이네  술 깬 아침이면  벌써 후회하기 시작하네  그렇다 할지라도  욕할 수 있었던  간밤의 자유는 얼마나 행복했던 것이냐  (장석주·시인, 1954-)  + 로빈슨 크루소를 생각하며, 술을  취해도 쉽게 제 마음을 드러내지 못하는 우리는  오랜만이라며 서로 눈빛을 던지지만  어느새 슬그머니 비어버린 자리들을 세며  서로들 식어가는 것이 보인다  가슴 밑바닥에서 부서지는 파도  저마다 물결 속으로 떠내려가는 것을 느낀다  오갈 데 없는 사람들 사이의 한 섬,  그 속에 갇힌 한 사람을 생각한다  외로움보다 더 가파른 절벽은 없지  살다 보면 엉망으로 취해 아무 어깨나 기대  소리 내서 울고 싶은 그런 저녁이 있다  어디든 흘러가고 싶은 마음이 발치에서  물거품으로 부서져가는 것을 본다  점점 어두워오는 바다로 가는 물결  무슨 그리움이 저 허공 뒤에 숨어 있을까  (김수영·시인, 1967-)  + 나는 포도주  나는 포도주  햇볕과 바람과 비와 인간 속에서 저절로 익은 포도주  나를 마셔라  부드럽고 달콤새콤한 맛은 모두  고뇌의 흔적이 낳은 은총  눈물에든 웃음에든 맘껏 섞어 마셔라  태풍과 폭우와 욕망과 배덕의 식은 재 속에서도  살아남아 익은 포도주  와서 나를 마셔라  돼지에게는 돼지의 맛  소에게는 소의 맛  나귀에게는 나귀의 맛  개에게는 개의 맛  인간에게는 인간의 맛  원하기만 한다면 나는 어떤 맛과도 교제한다  와서 맛보라  저절로 익은 것들은 무엇보다도 풍성하고 따뜻하다  理想에 겁먹고 性에 굶주리고 향수에 시달린 이들이여,  서슴없이 와서 나를 맛보라  자연과 인간의 눈물이 죽도록 사랑해서 만들어놓은  十惡十善의 맛이 골고루 응축되어 있다  원하는 맛대로 나를 마셔라  저절로 익은 향기는 모두 에로스의 핏줄  상상할 수 없는 태고의 사랑이 내 속에 녹아 있다  마음껏 나를 마셔 나를 발견하고 나와 작별하라  나는 포도주  신이 인간에게 내린 커다란 축복  언제나 나는 그대들 속에  숙명처럼 붉게 달아올라 있다  (김상미·시인, 1957-)  + 막걸리  어머니의 젖줄 같은  그윽한 정이  투박하게 배어있는  진하고 걸쭉한 물  거머리 뜯기며  진흙 창 논바닥에서  열심히 일을 하고  허리 참 하는 그 시간  피로와 배고픔을 채워주던  마술 같은 액체  가슴은 두근두근  순이 곁에 서면  작아지던 내가  벌컥 벌컥 한잔 들이키고  "사랑한다"며  첫사랑을 고백하게 한  사랑의 미약  부질없는 삶  낙수소리 벗삼아  머리 허연 우정을 싸잡아  어우렁더우렁 잔 부딪치는  행복한 노년의 낙  (우보 임인규·시인)  + 날 부르려거든  날 부르려거든  "술이나 한 잔 하자고 하지 말고  '참소주를 한 잔 사겠소"라고 말해 주오  좋은 술집, 비싼 술집이 아니라도 좋소  시장 안, 꼭 시장 안이 아니라도 좋소  돼지국밥집이나 순대국밥집이면 더욱 좋소  술을 사겠다니 부담이 없어 좋지만  주머니엔 술값을 넣어 가지고 나가겠소  마시다 보면 술값은 내가 낼 수도 있고  아니면 2차를 내가 내더라도  그게 술 마시는 기분 아니겠소  한 잔이라고 했지만  한 병씩은 마십시다 그려, 그리고  기분이 동하면 한 병 더 시킵시다  혹시,  술값을 내가 내어도 나무라지는 마오  술 사려다 대접받으니 그대가 좋을 것이고  대접받으려다가 내가 대접을 했으니  내 기분도 좋을 것이라오  날 부르려거든  그냥,  "참소주를 한 잔 사겠소"라고만 하소  어제 과음했어도 나가리라  내일 과음할 일이 있어도  오늘 저녁엔 나가리라.  (김종환·시인, 1951-)  + 선생님과 막걸리  해가 중천에 있고 겨울은 시작되었다  네모난 창에 등을 대고 언덕 내리막길을 바라보다가  화들짝 놀랐다  앙상한 미루나무 아래로 걸어 올라오시는 선생님  필경 우리 담임 선생님이셨다  울타리도 죄다 없어진 우리 집을 묻지도 않고 찾아오신 그 날  엄마는 신작로 중앙상회까지 내려가 오징어를 사왔다  콩콩 곤두박질 치는 심장은 곤로 속 심지보다 더 뜨거웠다  양조장집에 가서 막걸리를 두 됫박 넘게 받아오고  선생님은 오징어회를 맵지도 않은지 잘도 드셨다  죽기 아니면 까무러치는 거지  나는 선생님이 떠난 후의 각오를 새롭게 했다  또 양은 주전자를 가지고 막걸리를 받아왔다  바닥에 쏟고 몇 번은 입을 대고 빨아먹었다  선생님은 두 번째 주전자마저 다 비우고서야 일어나셨다  무슨 말이 오갔을까  나는 이제 어떻게 되는 걸까  어디로든 도망쳐야 하는데  그날 밤 엄마는 아무말 없었다  그리고 한달 뒤 중학교 입학원서를 내 손에 쥐어주셨다  그날 느이 담임이 와서 가지도 않고 막걸리만 마셨는데  막걸리 잔을 비울 때마다 너는 꼭 공부시켜야 한다고 하더라  지긋지긋한 술  느 아버지도 모자라 이젠 담임까지 와서 술타령이냐  나의 은인 담임 선생님  아마 그때부터 술을 가까이 하신 것일까  슬픔의 강 너머로 나의 선생님이 손짓한다  (최나혜·시인)  + 술과의 화해  나는 요즘 고요하고 섬세하게 외롭다  나는 한때  어떤 적의가 나를 키웠다고 생각했었다.  그래서 더 크기 위해 부지런히  싸울 상대를 만들었던 시절이 있었다  그래, 그때는 애인조차 원수 삼았었다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솔직히 말해서 먹고 살만해지니까  원수 삼던 세상의 졸렬한 인간들이 우스워지고  더러 측은해지기도 하면서  나는 화해했다  너그러이 용서하기로 했다  그렇지만 아직은 더 크고 싶었으므로  대신 술이라도 원수 삼기로 했었다  요컨대 애들은 싸워야 큰다니까  내가 이를 갈면서  원수의 술을 마시고 씹고 토해내는 동안  세상은 깨어 있거나 잠들어 있었고  책들은 늘어나거나 불태워졌으며  머리는 텅 비고 시는 시시해지고  어느 볼장 다 본,  고요하고 섬세한 새벽  나는 결국 술과도 화해해야 했다  이제는 더 크고 싶지 않은 나를  나는 똑똑히 보았다  나는 득도한 것일까  화해, 나는 용서의 다른 표현이라고 강변하지만  비겁한 타협이라고 굴복이라고  개량주의라고 몰아붙여도 할 수 없다  확실히 나는 극우도 극좌도 아닌 것이다  적이 없는 생애는 쓸쓸히 시들어간다  고요하고 섬세하게 외롭다  (강연호·시인, 1962-)  + 술을 많이 마신 다음날은   나뭇잎 한 바구니나 화장품 같은 게 먹고 싶다  그리고...... 말들은 무엇 하려 했던가  유리창처럼 멈춰 서는 자책의 자객들......  한낮의 어둠 속에 웅크리고 누워 꽃나무들에게 사과한다  지난 저녁부터의 발소리와 입술을,  그 얕은 신분을  외로움에 성실하지 못했던,  미안해 그게 실은 내 본심인가봐  아무래도  책상 밑이나 신발장 속 같은  좀 더 깊은 데 들어가 자야겠다  그러한 동안 그대여 나를 버려다오 아무래도 그게  그나마 아름답겠으니  (김경미·시인, 1959-)  + 어느 날 나는 흐린 주점에 앉아 있을 거다  초경을 막 시작한 딸아이, 이젠 내가 껴안아줄 수도 없고  생이 끔찍해졌다  딸의 일기를 이젠 훔쳐볼 수도 없게 되었다  눈빛만 형형한 아프리카 기민들 사진;  "사랑의 빵을 나눕시다"라는 포스터 밑에 전 가족의 성금란을  표시해놓은 아이의 방을 나와 나는  바깥을 거닌다, 바깥;  누군가 늘 나를 보고 있다는 생각 때문에  사람들을 피해 다니는 버릇이 언제부터 생겼는지 모르겠다  옷걸이에서 떨어지는 옷처럼  그 자리에서 그만 허물어져 버리고 싶은 생;  뚱뚱한 가죽부대에 담긴 내가, 어색해서, 견딜 수 없다  글쎄, 슬픔처럼 상스러운 것이 또 있을까  그러므로, 어느 날 나는 흐린 주점에 혼자 앉아 있을 것이다  완전히 늙어서 편안해진 가죽부대를 걸치고  등뒤로 시끄러운 잡담을 담담하게 들어주면서  먼 눈으로 술잔의 수위만을 아깝게 바라볼 것이다  문제는 그런 아름다운 폐인(廢人)을 내 자신이  견딜 수 있는가, 이리라  (황지우·시인, 1952-)  + 술  어젯밤 이슥하도록  동무들과 진탕 퍼마신 술  앙금으로 남은 숙취로  온몸이 돌덩이 같다  조금만 절제하면 좋았을 것을....  늘 한발 뒤늦은 후회  술과 인연을 맺은 지도  삼십 년 세월이 훌쩍 넘었지만  아직도 나는  그 녀석의 정체를 도통 모르겠다  한순간 참 얄밉다가도  노을이 지면 살짝 그리워지는   애증(愛憎)의 신비한 벗  술이여!  (정연복, 1957-)     
937    "자본가는 돼지가 되고 시인은 공룡이 된다"... 댓글:  조회:2463  추천:0  2018-01-25
    어제 햇살의 애무에 살짝 녹은 눈 양철지붕 끝에 매달고 부끄러운 마음을 햇살에 내비추고있다 아직 마음을 모두 주고 싶지 않는지 끝이 날카롭다 조심하라고 헤픈 여자가 아니라고 눈은 실쭉거린다 햇살의 애무가 뜨거워질 수록 더 날카로워지고 번뜩이는 여자의 심불   ------     박남철의 시에 대하여   큰일났다 어제 목욕을 하다 보니 웬 낯선 돼지 한 마리가 배를 쓰윽 내밀면서   히이야, 나도 이젠 무게를 좀 잡아 볼 때가 되지 않았을까 돼지 저울에 달아보면 한 20관은 좋이......   돼지왕이라도 되려는지 배에 ‘王’字를 쓱 그리면서 아니 그제는 深山幽谷에서 만난 어느 達磨 돼지님 말씀이 南喆 돼지야 너도 이젠 어엿이 결혼을 하고 ‘豚舍的 一家’를 이루지 않았느냐 ----박남철, [새로운 돼지]({地上의 人間} 문학과 지성사}에서 *박남철(1953~) 시인은 한국시문학사 속에서 가장 개성적이고 독창적인 문체를 지니고 있다고 하지 않을 수가 없다. 그의 문체는 언제, 어느 때나 호전적이고 전투적이며, 또한 그의 문체는 언제, 어느 때나 야유, 독설, 기지, 위트, 그리고 천둥과 번개와도 같은 섬뜩함과 그 울림을 간직하고 있다. 박남철의 문체는 김수영의 문체처럼, 장중하고 울림이 큰 문체이며, 모든 천재, 바보, 기인, 미치광이, 범죄인들의 혈통이 여기에 속하게 된다. 돼지는 식탐이 강하고 그 어느 동물보다도 더욱더 강하고 튼튼한 소화기관을 지녔다. 돼지는 돈만 아는 부자이며, 이 살찐 돼지는 돈만 아는 부자의 탐욕을 지칭하게 된다. 어느덧 결혼을 하고 배가 나온 자기 자신을 “南喆 돼지야 너도 이젠 어엿이 결혼을 하고 ‘豚舍的 一家’를 이루지 않았느냐”라고, 비하를 하고 있는 시구를 읽으면, 어느 누구도 저절로 솟아나오는 웃음을 감출 수가 없게 된다. 하지만, 그러나 ‘돈사적 일가’라는 가장 날카롭고 예리한 명구 속에는 모든 사회성을 잃어버리고, 극단적인 가족주의와 이기주의에 함몰된 우리 인간들이 베어져 있는 것이다. 왜냐하면 돼지는 반윤리와 조롱의 대상이기 때문이다. 무서운 것은 칼이 아니라, 웃음인 것이다.       지금도 그녀는 자면서도 싱긋 웃으면서 난 닭이 되고 싶어...... (암탉이 울면......) 무슨 계란 같은 개꿈을 꾸고 있는 모양이다. ----박남철, [그리고 貧妻]({地上의 人間} 문학과 지성사}에서 * 우리는 모두가 다같이 그 옛날의 우화 속에서처럼 황금알을 낳는 닭을 소유하고 싶어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황금은 부와 행복의 상징이며, 만인 위에 군림할 수 있는 권력의 상징이라고 할 수가 있다. 시인은 가난하고, 가난한 시인의 아내는 ‘황금(돈)타령’을 하게 된다. 하지만 박남철 시인은 황금알을 낳는 닭이 될 수가 없는데, 왜냐하면 그의 가난은 스스로가 선택한 자발적인 가난이기 때문이다. 아내는 부자가 되고 싶어 하지만, 시인은 가난한 삶을 선호한다. 암탉이 울면 집안이 망한다는 말이 있듯이, 부유한 시인은 이미 시인이 아닌 것이다. 시는 가난한 자의 영혼과 육체를 사랑한다. 가난한 시인의 아내의 꿈은 “계란 같은 개꿈”에 지나지 않는다.     솔직히 말해서 나는 한 편의 위대한 詩와 동생의 대학과 누이동생들의 꿈과 늙으신 부모님들의 평화를 맞바꿀 자신도 없다 나는 결혼한 지 1년 만에 애를 두 번씩이나 지우고 있다 (그 애를 행복하게 키울 자신이, 능력이 없는 것이다) ----박남철, [우리 죽고 나야 이 세상에 평화가]({地上의 人間} 문학과 지성사}에서 *시인은 단어 하나, 토씨 하나에도 자기 자신의 목숨을 거는 예술가이며, 그는 자기 자신의 붉디 붉은 피로서 시를 쓰게 된다. 언어에도 죽은 언어가 있고, 살아 있는 언어가 있다. 우리 한국인들이 노벨상을 하나도 타지 못한 것은 이 살아 있는 언어로 시를 쓰지 못했기 때문이다. 한 편의 위대한 시는 “동생의 대학과 누이동생들의 꿈과 늙으신 부모님들의 평화”와도 상관이 없고, 그리고 시인의 아내와 그 가족의 평화와도 상관이 없다. 시인의 목숨은 언어에 바친 목숨이며, 그는 이미 언어의 사원으로 출가한 사제에 지나지 않는다. 하지만, 그러나 시인에게도 부모형제가 있고, 사랑하는 아내가 있다. 이 성과 속의 경계에서 시인은 천형의 형벌의 삶을 살게 되고, 그는 부모형제와 사랑하는 아내에게마저도 버림을 받게 되는 것이다. 한 편의 시는 그의 사리舍利와도 같다. 시인이 죽고 나야 이 세상의 평화가 찾아온다. 왜냐하면 그의 시와 그의 위대함은 그가 죽은 다음에야 겨우 제대로 이해되기 때문이다.     시인은 수없이 죽고, 수없이 다시 태어나지 않으면 안 된다.     학교라는 場은 개인의 교육장이며 선생님들도 배우는 곳입니다----이거 봐 깨졌잖아 그건 깨진 나는 정말 선생님을 사랑합니다 동시에 사랑하지 않습니다 (바로 이게 중요합니다) ----박남철, [卒業 또는 담배]({地上의 人間} 문학과지성사}에서 인간은 불완전한 존재이지만, 신은 완전한 존재이다. 우리 인간들이 이 불완전함을 참고 견딜 수가 있었던 것은 우리 인간들은 사유할 줄 아는 인간이며, 미래의 인간이기 때문이었다. 학교는 공부하는 장소이며, 미래의 백만 두뇌를 창출해 내는 장소이다. 훌륭한 스승 밑에 훌륭한 제자가 있고, 훌륭한 제자 위에 훌륭한 선생이 있다. 하지만 대한민국은 스승도 없고, 제자도 없다. 학교는 단지 출세를 위한 사교장일 뿐, 어느 누구도 공부(진리탐구)를 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학교라는 場은 개인의 교육장이며 선생님들도 배우는 곳입니다.” 박남철 시인의 이 말처럼 가장 절실한 말도 없지만, 그러나 이 평범한 진리는 사막 속의 신기루처럼 그 형체가 없는 것이다.     하하하, 진통 없이 태어난 너희들은 ‘무진통 분만’이란 걸 했겠구나 (좋아, 뭐, 그것도 괜찮은 방법이지----나야 뭐 돈이 없어서 그냥 어머니의 보지를 박차고 나왔지 뭐!) ----박남철, [第一聲]({地上의 人間} 문학과지성사}에서 의술醫術은 인술仁術이 되어야 하지만, 그러나 현대사회의 의술醫術은 사술詐術이 되어버린지도 오래되었다. 의술이 자본주의 사회의 황금알을 낳는 거위가 되고, 그 결과, 현대사회의 의술은 자연의 순리를 거역하는 너무나도 뻔뻔스럽고 파렴치한 만행을 자행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자연분만과 무진통 분만(제왕절개)이 돈 없는 자와 돈 있는 자로 그 계급적 차별을 낳게 되고, 어느덧 자연의 순리를 거역하는 무진통 분만이 대세를 이루게 되었던 것이다. 박남철 시인의 [第一聲]은 현대사회의 의술의 만행을 고발하는 시이며, 자본주의 사회의 황금만능사상을 전면적으로 부정하고 해체하는 시라고 하지 않을 수가 없다.         제가 이제 곧 대중 소설을 쓰게 되고 아기를 한 스무 마리쯤 나아서 시장에 내다 팔지요 ----박남철, [백의환향]({地上의 人間} 문학과 지성사}에서 소위 출세를 한 사람은 금의환향을 하고, 모든 사람들의 기립박수를 받게 된다. 하지만, 그러나 출세를 하지 못한 사람은 쥐구멍이라도 파고 들어가 숨고 싶고, 모든 사람들의 따가운 눈총과 그 경멸의 손짓을 참지 못하게 된다. 시인의 면류관은 백의환향의 면류관이자 저주의 면류관에 지나지 않는다. 어머니와 아버지는 사랑하는 아들을 교육시키기 위하여 소도 팔았고, 땅도 팔았다. 그토록 열심히 일을 하고 땀을 흘린 댓가가 백의환향이라니....., 이것은 분명히 지나가는 개도 웃을 일이라고 하지 않을 수가 없다. 시인은 최고의 예술가이지만, 판사와 검사와 의사에 비하면, 그 사회적 지위는 최하 천민의 그것에 지나지 않는다. 오죽하면, 시인은 사랑하는 아버지와 어머니에게, “제가 이제 곧 대중 소설을 쓰게 되고 아기를 한/ 스무 마리쯤 나아서 시장에 내다 팔지요”라고, 도저히 입밖으로 낼 수 없는 중얼거림을 내뱉게 되었던 것일까? 이 웃음은 자조적인 웃음이자, 그 근거가 없는 실소失笑에 지나지 않는다.         내 詩에 대하여 의아해하는 구시대의 독자 놈들에게----차렷, 열중쉬엇, 차렷,   이 좆만한 놈들이 차렷, 열중쉬엇, 차렷, 열중쉬엇, 정신차렷, 차렷, ㅇㅇ, 차렷, 헤쳐모엿, ----박남철, [독자놈들 길들이기]({地上의 人間} 문학과지성사}에서   실질이 형식(외관)을 이기면 야인野人이요, 형식이 실질을 이기면 사인史人이라는 옛말이 있다. 역사와 전통은 언제, 어느 때나 모범생을 선호하고, 그 모범생들을 중요시 하게 된다. 하지만, 그러나 역사와 전통의 모순을 파악하고, 그 금기에 도전하는 사람은, 바로 자기 자신이 금기의 대상이 되어 만인들의 배척을 받게 된다. 예수, 부처, 소크라테스, 플라톤, 데카르트, 니체, 쇼펜하우어, 보들레르, 랭보 등, 소위 이러한 미치광이들만이 새로운 역사와 전통을 창출해낸 문화적 영웅이 되어갈 수가 있다. “내 詩에 대하여 의아해하는 구시대의 독자 놈들에게”, “차렷, 열중쉬엇, 차렷”이라고 퍼부어대는 박남철 시인의 독설은 천하 제일의 검객의 솜씨와도 같다. 나는 그의 이러한 호전적이고 전투적인 정신을 너무나도 사랑한다. 소위 스타 시인들은 문화권력자이자 더없이 저질적인 모리배들에 불과하다. 그들을 스타 시인으로 만든 것은 대중 여론이며, 이 대중 여론은 대학교수와 출판업자와 언론인과 비평가들의 입맛과 손짓에 따라 조작되게 마련인 것이다. 이 어중이-- 떠중이들이 대중여론을 조작하고, 그토록 무지몽매한 대중들의 코끝을 끌고 다니게 된다. ‘독자놈들 길들이기’는 모든 천재들이 스스로 터득한 지상 최대의 교수법이다. 박남철 시인은 영원한 야인이지만, 언젠가, 어느 때는 최고의 시인으로 등극을 하게 될 것이다. 한국문학사 속의 영원한 제왕의 모습으로.....!       나는 이래선 안 되겠다 싶어, 어느 바람 세게 불던 날, 술 한 잔 마시고 入隊를 했습니다. 3년 동안 죽어라고 박수만 쳤었지요. 박수치는 훈련은 참 고되었습니다. 선착순 달리기에서 1등 했다고 한 바퀴 더 도는 나를 보고 김 병장님이 가만히 속삭여 주었습니다. ---1등 하지 마라. 꼴찌도 하지 마라. 그저 묵묵하게 박수만 쳐대거라. 아아, 그때 그의 그 충고는 毒矢처럼 내 심장을 꿰뚫었습니다. ----박남철, [박수부대]({地上의 人間} 문학과지성사}에서 박수는 무한한 경의의 표시이자, 자기가 자기 자신을 잃어버리는 최고급의 찬사의 표시이다. 최고의 권력자는 독재권력을 소유하고 싶어하고, 그 어떤 반대의견도 경청하려고 하지를 않는다. 그는 ‘예스 맨’이 필요한 사람이며, 언제, 어느 때나 박수부대의 열광적인 황홀함의 도가니 속에서 살아가고자 한다. 잘난 사람은 반역자가 되어서 능지처참을 당하고, 못난 사람은 미치광이가 되어서 정신병원에 감금된다. “1등도 하지 마라. 꼴찌도 하지 마라. 그저 묵묵하게 박수만 쳐대거라.” 우리 한국인들이 이처럼 약소국가의 삼류 민족이 된 것은 그 독재자들의 독화살을 맞고 모든 천재성을 거세당했기 때문이다.         항상 국가와 민족의 앞날을 걱정하면서, 우주 평화를 걱정하면서 尹東柱의 혈서를, 에즈라 파운드를 옆구리에 끼고 다녔었노라 어디 나도 한번 머엇있게 살아 볼려고 오른손을 번쩍 번쩍 치켜 들면서 인생이란 뭐 다 그런 거라고, 아무 때고 간에 떠나고 싶을 때 훅 떠날 수 있는 거라고 목에 힘 꽉 주어 엄격하게 단언하면서 귀족처럼 우아하게 酒店 할미집을 들락거렸었노라 ----박남철, [詩人演習]({地上의 人間} 문학과지성사}에서 소크라테스는 이 세상의 삶을 찬양했고, 그의 삶을 예술적으로 승화시키고자 했었다. 왜냐하면 그저 사는 것이 아니라, 잘 사는 것이 더욱더 중요했기 때문이다. 철학자는 시인이 되고자 하고 시인은 철학자가 되고자 한다. 예술은 이상의 세계이며, 환상의 세계이다. 이 예술의 아름다움에 반한 사람은 사회적인 부적응자가 되어서, 끝끝내는 미치광이와도 같은 삶을 살아가게 된다. “항상 국가와 민족의 앞날을/ 걱정하면서, 우주 평화를 걱정하면서/ 尹東柱의 혈서를, 에즈라 파운드를/ 옆구리에 끼고 다녔었노라”라는 시구가 그것이 아니라면 무엇이겠으며, 또한, “어디 나도 한번 머엇있게 살아 볼려고/ 오른손을 번쩍 번쩍 치켜 들면서/ 인생이란 뭐 다 그런 거라고, 아무 때고 간에/ 떠나고 싶을 때 훅 떠날 수 있는 거라고/ 목에 힘 꽉 주어 엄격하게 단언하면서/ 귀족처럼 우아하게 酒店 할미집을/ 들락거렸었노라”라는 시구가 그것이 아니라면 무엇이겠는가? 시인은 예술가로서는 귀족이지만, 그러나 현실적으로는 미치광이에 지나지 않는다. 박남철 시인은 오직 단 한 사람뿐인 진정한 예술가이다.     내 지나는 곳에는 고독만이 깔려 있고 내 지나는 곳에는 후회만이 몰아치고 씨양 지나가는 곳에는 분노만이 뒤덮인다 분노가 뒤덮이고 오기가 뻥 터지면서 끄으윽 지나는 곳에는 술이 비처럼 내린다   비야 비야 오지 마라 이 내가 젖으면 비극이 되잖아   우후 내가 지나갈 때에는 약속과 외상만 깔린다 ----박남철, [나그네]({地上의 人間} 문학과지성사}에서 박남철 시인은 산해진미의 음식보다도 악의악식에 더 익숙해져 있고, 그는 이 악의악식을 진수성찬처럼 차려 놓는다. 고독을 씹고 후회를 마신다. 분노를 씹고 오기를 마신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후식으로 술을 마시고, 약속과 외상으로 그의 생애를 저당 잡힌다. 박남철 시인은 비극의 무대의 영원한 주연 배우이지 않으면 안 된다.         민주주의----머릿수 세기에 餘念없는 저 狂氣----는 너무 늦기 전에, 싹, 根絶되어야 한다 장사꾼, 基督敎徒, 암소, 여자, 英國人, 그 밖의 민주주의자들은 모두 한패이다...... ----박남철, [自由......로운 雜念]({地上의 人間} 문학과지성사}에서 박남철 시인은 반민주주의자이기도 한데, 왜냐하면 민주주의 사회는 우중 사회이기 때문이다. 아래도 천민, 위에도 천민, 앞에도 천민, 뒤에도 천민, 왼쪽에도 천민, 오른쪽에도 천민----. 이 사회적 천민들이 모든 특전과 특권을 발밑으로 깔아뭉개버리면서, 모든 고귀하고 위대한 천재들의 새싹들을 제거해 버린다. 머릿수 세기에 여념이 없는 민주주의의 광기는 하루바삐 근절되지 않으면 안 된다. [自由......로운 雜念]은 너무나도 대담하고 너무나도 영웅적인 귀족사상의 진수에 해당된다고 하지 않을 수가 없다.         아, 그러나 나는 얻고 싶다, 제발 ‘詩’만은 얻고 싶다. 詩 詩, 詩가 아닌 詩 한 편만 얻고 싶다   ...... 아버지가 자전거 뒤에 詩 같은 아들을 태우고서 신나게 싱싱싱 신나게 달려간다---- ----아부지, 좆나게 밟아! 좆나게! 더!*   이것, 역시, 이미, 所聞에 나 버린 얘기......아닌가? *{東亞日報}, [敎壇日記] 중에서 ----박남철, [自由......로운 雜念]({地上의 人間} 문학과지성사}에서   시인의 열정은 섭씨 1,500만도의 태양의 온도와도 같고, 이 용광로 속에서 ‘시’라는 금은보화가 생성된다. 시인의 열정은 이글이글 타오르고, 또, 타오르지 않으면 안 된다.   아, 그러나 나는 얻고 싶다, 제발 ‘詩’만은 얻고 싶다. 詩 詩, 詩가 아닌 詩 한 편만 얻고 싶다   시는 시인의 아들이다. 이 아들은 새시대와 새역사의 주인공이다. 시는 소위 최고급의 격세유전이다.   “ ----아부지, 좆나게 밟아! 좆나게! 더!”           나 중학교 2학년 때 엄마를 이기고 고등학교 1학년 때 아버지를 이겼다, 그리고 나 그날부터 줄기차게 외로왔다 ----박남철, [다시 거울 앞에서]({地上의 人間} 문학과지성사}에서   시인은 살부殺父와 살모殺母의 대역죄인이며, 천하무적의 전제군주이다. 전제군주는 외롭고, 또 외롭다. 이 외롭고, 또 외롭다는 것은 이제는 그대도 전제군주의 옥좌에서 내려올 때가 되었다는 것을 뜻하게 된다. 하지만, 그러나 그대는 더없이 장렬하게 죽어감으로써 또다시 태어나게 된다. 시인은 죽어감으로서 영원불멸의 삶을 살게 된다.         내 앞발에 박힌 이 깊숙한 가시를   핥다가 나는 이따금 부릅뜬 눈을 들어, 핥 야 이 개애새끼들아아   내 머리, 오 이 구름 같은 불   내 머리 내 이 머리에 온통 뒤덮힌 이 저주받은 이 성난 갈기, 핥   야 이 개애자식들아아아 ----박남철, 「獅子-- 모교의 교정에서」({地上의 人間}, 문학과 지성사} 전문   아들이 아버지보다 못한 사회도 미래의 희망이 없는 사회이고, 제자가 스승보다 못한 사회도 미래의 희망이 없는 사회이다. 학교의 주인공은 학생들이지만, 그러나 늙은 스승이 마치 후견인처럼, 그 학생들의 권력을 가로채 간다. 나는 [전위주의: 삶과 죽음을 넘어선 선구자들]이라는 글에서 이렇게 역설한 적이 있었다.   박남철의 [사자--모교의 교정에서]라는 시는 ‘모교’라는 곳이 사자의 웅대한 기상과 그 화려한 꿈을 심어주기보다는 그 어린 사자의 앞발에 도저히 뽑아낼 수 없는 가시를 박아놓았다는 ‘분노’를 표현해보인 시라고 할 수가 있다. 학교는 백만 두뇌를 양성하는 곳도 아니고, 자유와 평등과 사랑을 가르쳐 주는 곳도 아니다. 또한 학교는 진리를 탐구하는 곳도 아니고, 전인교육을 가르쳐 주는 곳도 아니다. 학교는 오직 값비싼 등록금이 자라나는 곳이고, 또한, 스승이라는 밀렵사냥꾼들이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고 있는 곳이다. 학교는 선후배들의 一刀必殺의 劍法이 자라나는 곳이고, 또한, 자기가 자기 자신의 양심의 뒷통수를 치는 厚顔無恥의 秘法이 자라나는 곳이다. 오늘날의 학교는 학생들을 위한 학교가 아니라 밀렵사냥꾼들의 사냥의 터전이라는 것이 박남철의 가장 날카롭고 충격적인 전언이라고 하지 않을 수가 없는 것이다. “내 앞발에 박힌/ 이 깊숙한 가시를// 핥다가 나는 이따금/ 부릅뜬 눈을 들어, 핥/ 야 이 개애새끼들아아”라는 시구나, “내 머리, 오 이 구름 같은 불/ 내 머리 내 이 머리에 온통 뒤덮힌/ 이 저주받은 이 성난 갈기, 핥// 야 이 개애자식들아아아”라는 시구에서처럼, 그의 문장은 완성됨을 모르고, 그 완성되지 않은 파열음을 토해내며, 그 분노의 대명사인 그 거친 욕설들이, 마치, 활화산처럼 타오르고 있는 것이다(반경환, [전위주의: 삶과 죽음을 넘어선 선구자들], {비판, 비판, 그리고 또 비판 2}, 도서출판 지혜, 2012년).         저 저 저 저 저, 으쩌 저런 늙은 놈 좀 보게   오입이 안될 나이니까 이젠 원 별 소리도 다 하나 봐   쩌 저 쩌 쩌 쩌, 더 쳐라, 원 별 별 보지 껌 씹는 소릴 다 하네 ----박남철, 「광인일지」({반시대적 고찰}, 세계사}에서   젊음은 아름답지만 늙음은 추하다. 모든 젊은이는 미래의 이상형이지만, 모든 늙은이는 쇠퇴의 상징이다. 때로는 늙음도 아름답고 고귀할 수도 있지만, 그러나 이 늙음은 삶의 완성으로서, 마치 서산의 노을 같을 때만이 그럴 수가 있다. 모든 늙음은 빠른 죽음이지 않으면 안 된다. 그 옛날이나 지금이나 모든 늙음은 다만 경멸의 대상일뿐인지도 모른다.         한 選手의 두 손을 묶어놓고 권투시합이 벌어졌다 묶인 選手가 손이 있는 選手의 불알을 걷어찼다 레퍼리는 게임을 중단시키고 불알을 걷어찬 選手의 불알을 더 힘껏 걷어찼다   ---이런 비겁한 자식, 게임의 기본적인 룰도 몰라? ----박남철, [권투]({반시대적 고찰}, 세계사}에서   중국인과 한국인의 권투시합이 그러했고, 일본인과 한국인의 권투시합이 그러했다. 미국인과 한국인의 권투시합이 그러했고, 문화인과 야만인의 권투시합이 그러했다. 이 세상에서 ‘게임의 기본적인 룰’이 지켜진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모든 판사는 승자의 패거리이고, 따라서 모든 판사는 자기 자신과 승자의 독식구조를 위해서 그 공명정대한(?) 게임의 룰을 운용하고 있을 뿐인 것이다.         명태야...... 명태야......   아니, 병태야......   반항을 하려거든 똑바로 해라...... 왜 애꿎은 나를 보고 자꾸 그러지이......   니 친구 동태보고 그러든지, 아니면 니 작은 황태보고 그러든지...... (북어보고 그러든지)   병태야아, 병태야아,   네 이, 생떼야아...... (네 이, 대가리에 피도 채 안 마른 놈아......) ----박남철, [명태에게]({반시대적 고찰}, 세계사} 전문   명태는 그 이름이 수십 가지도 넘고, 따라서 모든 명태는 자기보호색과 자기변신술의 대가라고 하지 않을 수가 없다. 명태는 병태가 되고, 병태는 동태가 된다. 동태는 황태가 되고, 황태는 생떼를 쓰는 병태가 된다. 오늘도 대가리에 피도 안 마른 병태놈이 아래 위 턱도 없이 생떼를 쓰며, 자기 자신의 이익만을 챙겨가려고 한다. 자유--자재로운 말놀이와 함께, 해학적인 웃음의 극치를 선사하는 시가 바로 이 [명태]라고 할 수가 있다.         1988년, 까치가 날아다닌다, 온수동과 궁동을 합쳐서 만든 새로운 동네 수궁동. 나는 이곳이 서울특별시라는 사실에 늘 신기해하면서 아름다운 자연을----궁둥약수터의 약수를, 매연 없는 공기를, 내 마음 속의 水宮歌를, 깊이깊이 들여마신다. 까치가 날아다닌다. ----박남철, [수궁동의 여름]({자본에 살어리랏다} 창비)에서   까치는 길조이다. 온수동과 궁동을 합쳐서 ‘내 마음 속의 수궁가’를 부르는 시인의 행복이 나는 무척이나 부럽다. 너무나도 짧고, 너무나도 행복한 그 찰나의 시간을, 우리 인간들은 모두가 다같이 사랑하지 않을 수가 없다.         다들 어디에 숨어 있니 사랑들아 빌딩나무 뒤에 숨어서들 웃고 있니 자본과 이자꽃 뒤에 숨어 있니   못찾겠다 꾀꼬리 꾀꼬리 개꼬리 사십년 가까이 오직 술래만을 했더니 이젠 내가 술래인지를 아닌지도 ----박남철, [못 찾겠다 꾀꼬리]({자본에 살어리랏다}, 창비)에서   시인은 영원한 낙제생이자 사회적 부적응자이다. 그는 사십 년 동안 오직 술래만을 하고, “자본과 이자꽃 뒤에” 숨은 그의 동무들을 찾을 길이 없게 된다. “못찾겠다 꾀꼬리 꾀꼬리 개꼬리.”       살어리 살어리랏다 利子에 살어리랏다 남의 자기 굴조개랑 먹고 利子에 살어리랏다 얄리얄리 얄라셩 얄라리 얄라 -------박남철, [자본에 살아리랏다]({자본에 살어리랏다}, 창비)에서   시인은 내것도 네것이고, 네것도 내것이라고 말한다. 자본가는 내것도 내것이고, 네것도 내것이라고 말한다. 자본가와 시인의 싸움은 도저히 상대가 되지 않는 싸움일 뿐이다. “얄리얄리 얄라셩 얄라리 얄라.”       한번 탁 치면 실업자들이 우수수 떨어져내리는......   마천루 높이는 버티고 서서, 윙...... 울부짖는, 부르짖고 있는 저 ‘콘체른’이라는 이름의 거대한 공룡들의 허기 뒤로   모오든, 20세기말의 핏빛 일몰이 보인다. ---박남철, [자본에 살어리랏다]({자본에 살어리랏다}, 창비)에서 자본가는 돼지가 되고, 돼지는 공룡이 된다. 공룡은 다국적 자본가이며, 그는 먹어도 먹어도 배가 고픈 에리직톤의 후예가 된다. 자본가가 한번 탁 치면 실업자들이 우수수 떨어져 내리고, 그 노동자들의 시체는 영양만점의 먹이가 된다. “모오든, 20세기말의 핏빛 일몰이 보인다.”       //                         
936    <개> 시모음 댓글:  조회:2568  추천:0  2018-01-23
    + 다롱이의 꿈  산골 폐교 미술관 운동장에서  마음껏 뛰놀던 다람쥐를 보고 온 날,  한 달 동안 가둬 기른 우리 집 다롱이를  베란다에 풀어주었습니다.  베란다는 금세 다롱이 세상이 되었습니다.  아침 햇살 한 움큼씩 쥐어 주던 해님도  거실을 기웃거리며 웃었습니다.  외할머니가 오신 어느 날  산짐승은 산에서 살아야 한다는 말씀에  다롱이를 뒷산으로 돌려보내기로 했습니다.  저 들꽃처럼 바람처럼 너울너울 살라며  기도하고 풀어줬습니다.  돌아오는 길에 다람쥐꼬리 닮은 억새들이 손짓하며 달려들었지만  단숨에 뿌리치고 뛰었습니다.  다롱이가 떠난 며칠 후  베란다 화분마다 해바라기 씨앗이  소복하게 싹을 틔웠습니다.  먹이를 줄 때마다 조금씩 묻어 둔  다롱이의 겨우살이 식량이었나 봅니다.  다롱이가 떠난 그 자리에  다롱이의 꿈들이 고물고물 흙을 뚫고 나와  하나씩 음표를 세우며 노래하고 있습니다.  (이옥근·아동문학가)  + 밥그릇  개가 밥을 다 먹고  빈 밥그릇의 밑바닥을 핥고 또 핥는다  좀처럼 멈추지 않는다  몇 번 핥다가 그만둘까 싶었으나  혓바닥으로 씩씩하게 조금도 지치지 않고  수백 번은 더 핥는다  나는 언제 저토록 열심히  내 밥그릇을 핥아보았나  밥그릇의 밑바닥까지 먹어보았나  개는 내가 먹다 남긴 밥을  언제나 싫어하는 기색 없이 다 먹었으나  나는 언제 개가 먹다 남긴 밥을  맛있게 먹어보았나  개가 핥던 밥그릇을 나도 핥는다  그릇에도 맛이 있다  햇살과 바람이 깊게 스민  그릇의 밑바닥이 가장 맛있다  (정호승·시인, 1950-)  + 강아지  학교 가는 길에  비쩍 마른 풀처럼  버려져 있는 강아지  내가 밥 주고 싶다  (민다혜·초등학교 3학년)  + 젖을 향하여  빨갛게 드러난 젖들이 걸음을 옮길 적마다  산처럼, 바다처럼 출렁거린다  차라리 젖으로 길 걷고 있는 어미 개여......  열 두 목숨 건사하는 꼿꼿함이  느린 발자국마다 서려있다  열두 개쯤 되어 보이는  마음껏 불어난 탱탱한 젖통을  땅바닥에 가깝게 늘어뜨리고  집을 향해 돌아가는  늙은 개 한 마리를 본다  이때쯤이면 한낮의 햇빛들도  젖을 향하여, 제 빛을 모은다.  (정윤천·시인, 1960-)  + 흰둥이 생각  손을 내밀면 연하고 보드라운 혀로  손등이며 볼을 쓰윽, 쓱  핥아주며 간지럼을 태우던 흰둥이  보신탕 감으로 내다 팔아야겠다고  어머니가 앓아 누우신 아버지의  약봉지를 세던 밤,  나는 아무도 몰래 대문을 열고 나가  흰둥이 목에 걸린 쇠줄을 풀어주고 말았다  어서 도망가라 멀리멀리  자꾸 뒤돌아보는 녀석을 향해  돌팔매질을 하며  아버지의 약값 때문에  밤새 가슴이 무거웠다  다음날 아침 멀리멀리 달아났으리라 믿었던 흰둥이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돌아와서  그날 따라 푸짐하게 나온 밥그릇을  바닥까지 달디달게 핥고 있는 걸 보았을 때,  어린 나는 그예 꾹 참고 있던 울음보를 터뜨리고 말았는데  흰둥이는 그런 나를  다만 젖은 눈빛으로 핥아주는 것이었다  개장수의 오토바이에 끌려가면서  쓰윽, 쓱 혀보다 더 축축이 젖은 눈빛으로  핥아주고만 있는 것이었다.  (손택수·시인, 1970-)  + 반성 704  밍키가 아프다  네 마리 새끼가 하도 젖을 파먹어서 그런지  눈엔 눈물이 흐르고  까만 코가 푸석푸석 하얗게 말라붙어 있다  닭집에 가서 닭 내장을 얻어다  끓여도 주어보고  생선가게 아줌마한테 생선 대가리를 얻어다 끓여 줘 봐도  며칠째 잘 안 먹는다  부엌 바닥을 기어다니며  여기저기 똥을 싸 놓은 강아지들을 보면  낑낑낑 밍키를 보며 칭얼대는  네 마리 귀여운 강아지를 보면  나는 꼭 밍키의 남편 같다.  (김영승·시인, 1959-)  + 묶인 개가 짖을 때  묶인 개가 짖는 것은 외롭기 때문이다  그대, 은현리를 지날 때  컹! 컹! 컹! 묶인 개가 짖는다면  움찔거리지도, 두려워 물러서지도 마라  묶여서 짖는 개를 바라보아라, 개는  그대 발자국 소리가 반가워 짖는 것이다  목줄에 묶여보지 않은 사람은 모른다  세상의 작은 인기척에도  얼마나 뜨거워지는지 모른다  그 소리 구원의 손길 같아서  깜깜한 우물 끝으로 내려오는 두레박줄 같아서  온몸으로 자신의 신호 보내는 것이다  그래서 묶인 개는 짖는 것이다  젊은 한때 나도 묶여 산 적이 있다  그때 뚜벅뚜벅 찾아오는 구둣발 소리에  내가 질렀던 고함들은 적의가 아니었다  내가 살아 있다는 불빛 같은 신호였다  컹! 컹! 컹! 묶인 개가 짖는다면  쓸쓸하여 굳어버린 그 눈 바라보아라  묶인 개의 눈알에 비치는  깊고 깜깜한 사람 사는 세상 보아라  (정일근·시인, 1958-)  + 개  도로 위에 납작하게 누워 있는 개 한 마리.  터진 배를 펼쳐놓고도 개의 머리는 건너려고 했던 길의 저편을  향하고 있다. 붉게 걸린 신호등이 개의 눈동자에 담기는 평화로  운 오후. 부풀어오른 개의 동공 위로 물결나비 한 마리 날아든다.  나비를 담은 개의 눈동자는 이승의 마지막 모퉁이를 더듬고 있다.  개의 눈 속으로, 건너려고 했던 저편, 막다른 골목의 끝이 담긴다.  개는 마지막 힘을 다해 눈을 감는다. 골목의 끝이, 개의 눈 속으로  사라진다. 물결나비 한 마리  출렁이는 어둠 속으로 날아간다.  납작하게 사라지는 개의 죽음 속으로  (조동범·시인, 1970-)  + 개처럼  우리 집 애완견은 말티즈, 이름은 코코.  식구가 아무도 없을 땐 혼자 외롭게 집을 지킨다.  코코와 놀아주어 제일 좋아하는 막내가 외출할 때면 옹알댄다.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막내 침대를 오락가락한다.  출입문을 응시하며 시간을 죽이는 게 일상이다.  개는 자기가 좋아하는 주인을 기다릴 줄 안다.  집에 들어오면 환영할 줄도 안다.  만져달라고 손을 핥으며 끙끙대기도 한다.  내 귀엔 들리지 않은 발자국 소리를 먼저 듣고  작은 체구로 우주가 무너진 듯 컹컹거리며 짖어대고  온몸을 요동치고, 꼬리를 흔들고  만남의 기쁨을 감추지 못하고 날뛰듯 집안을 왔다갔다 하며  기뻐서 어찌할 줄 모르며 오줌을 질질 싸기도 한다.  그대가 사람이라면, 그 개를 개새끼라고 욕하지 말라.  그리움을 잊어버리고 목석처럼 사느니  차라리 개처럼 사는 게 낫지.  하루 종일 주인 기다림에 목을 빼는  개처럼 살고 싶지는 않지만,  개가 아닌 사람이 그리움에 목말라하며 개처럼 사는 게 어때  누군가를 향해 주체할 수 없는 그리움 가지고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싶다.  개가 아닌 사람으로.  (문일석·시인)     
935    무소유와 삶과 죽음과 그리고... 댓글:  조회:2673  추천:0  2018-01-23
  + 지금 이 순간                지금 이 순간을 놓치지 말라.  '나는 지금 이렇게 살고 있다'고  순간순간 자각하라.  한눈 팔지 말고, 딴 생각하지 말고,  남의 말에 속지 말고,  스스로 살펴라.  이와 같이 하는 내 말에도 얽매이지 말고  그대의 길을 가라.  이 순간을 헛되이 보내지 말라.  이런 순간들이 쌓여 한 생애를 이룬다.  너무 긴장하지 말라.  너무 긴장하면 탄력을 잃게 되고  한결같이 꾸준히 나아가기도 어렵다.  사는 일이 즐거워야 한다.  날마다 새롭게 시작하라.  묵은 수렁에서 거듭거듭 털고 일어서라.  + 살아 있는 것은 늘 새롭다  물에는 고정된 모습이 없다.  둥근 그릇에 담기면 둥근 모습을 하고  모난 그릇에 담기면 모난 모습을 한다.  뿐만 아니라 뜨거운 곳에서는 증기로 되고  차가운 것에서는 얼음이 된다.  이렇듯 물에는 자기 고집이 없다.  자기를 내세우지 않고 남의 뜻에 따른다.  살아 있는 물은 멈추지 않고 늘 흐른다.  강물은 항상 그곳에서 그렇게 흐른다.  같은 물이면서도 늘 새롭다.  오늘 흐르는 강물은 같은 강물이지만  어제의 강물은 아니다.  강물은 이렇듯 늘 새롭다.  오늘의 나는 어제의 나와 거죽은 비슷하지만  실제는 아니다.  오늘의 나는 새로운 나다.  살아 있는 것은 이와 같이 늘 새롭다.  + 세월이 흘러가는 소리   물소리 바람소리에 귀기울여 보라.  그것은 우주의 맥박이고  세월이 흘러가는 소리이고  우리가 살만큼 살다가  갈 곳이 어디인가를  소리 없는 소리로 깨우쳐줄 것이다.  이끼 낀 기와지붕 위로 열린  푸른 하늘도 한번쯤 쳐다봐라.  산마루에 걸린 구름,  숲속에 서린 안개에 눈을 줘보라.  그리고 시냇가에 가서 맑게 흐르는  시냇물에 발을 담가보라.  차고 부드러운 그 흐름을 통해  더덕더덕 끼여 있는  먼지와 번뇌와 망상도 함께  말끔히 씻겨질 것이다.  + 살아 있는 모든 것은  우주에 살아 있는 모든 것은 한 곳에 머물러 있지 않고  움직이고 흐르면서 변화한다.  한곳에 정지된 것은 살아 있는 것이 아니다.  해와 달이 그렇고 별자리도 늘 변한다.  우리가 기대고 있는 이 지구도 우주 공간에서  늘 살아 움직이고 있다.  무상하다는 말은 허망하다는 것이 아니라  '항상하지 않다', '영원하지 않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고정되어 있지 않고 변화한다는 뜻이다.  그것이 우주의 실상이다.  변화의 과정 속에 생명이 깃들고,  변화의 과정을 통해 우주의 신비와 삶의 묘미가 전개된다.  만일 변함이 없이 한 자리에 고정되어 있다면  그것은 곧 숨이 멎은 죽음이다.  살아 있는 것은 끝없이 변하면서  거듭거듭 형성되어 간다.  봄이 가고 여름과 가을과 겨울이 그와 같이 순환한다.  그것은 살아 있는 우주의 호흡이며 율동이다.  그러므로 지나가는 세월을 아쉬워할 게 아니라,  오는 세월을 잘 쓸 줄 아는 삶의 지혜를 터득해야 한다.  + 이 세상에서 영원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이 세상에서 영원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어떤 어려운 일도,  어떤 즐거운 일도 영원하지 않다.  모두 한때이다.  한 생애를 통해 어려움만 지속된다면  누가 감내하겠는가.  다 도중에 하차하고 말 것이다.  좋은 일도 그렇다.  좋은 일도 늘 지속되지는 않는다.  그러면 사람이 오만해진다.  어려운 때일수록 낙천적인 인생관을 가져야 한다.  덜 갖고도 더 많이 존재할 수 있어야 한다.  이전에는 무심히 관심 갖지 않던 인간관계도  더욱 살뜰히 챙겨야 한다.  더 검소하고 작은 것으로써 기쁨을 느껴야 한다.  삶에서 참으로 소중한 것은,  어떤 사회적인 지위나 신분, 소유물이 아니다.  우리들 자신이 누구인지 아는 일이다.  그 어느 때보다  힘든 시기를 당했을 때..  '도대체 나는 누구지?' 하고  자기 존재를 확인해야 한다.  자신이 지니고 있는  직위나 돈, 재능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어떤 일을 하며,  어떻게 살고 있는가에 따라  삶의 가치가 결정된다.   + 빈 마음  등잔에 기름을 가득 채웠더니  심지를 줄여도  자꾸만 불꽃이 올라와 펄럭거린다.  가득 찬 것은  덜 찬 것만 못하다는  교훈을 눈앞에서 배우고 있다.  빈 마음,  그것을 무심(無心)이라고 한다.  빈 마음이 곧  우리들의 본마음이다.  무엇인가 채워져 있으면 본마음이 아니다.  텅 비우고 있어야 거기 울림이 있다.  울림이 있어야  삶이 신선하고 활기차다.  + 삶  삶을 마치 소유물처럼 생각하기 때문에  우리는 그 소멸을 두려워한다.  삶은 소유물이 아니라 순간순간의 있음이다.  영원한 것이 이 세상에 어디 있는가. 모두가 한때일 뿐,  그러나 그 한때를 최선을 다해 최대한으로 살 수 있어야 한다.  삶은 놀라운 신비요, 아름다움이다.  내일을 걱정하고 불안해하는 것은  이미 오늘을 제대로 살고 있지 않다는 증거다.  죽음을 두려워하고 무서워하는 것은  생에 집착하고 삶을 소유로 여기기 때문이다.  生에 대한 집착과 소유의 관념에서 놓여날 수 있다면  엄연한 우주 질서 앞에 조금도 두려워할 것이 없다.  + 자기 자신답게 살라  어떤 사람이 불안과 슬픔에 빠져 있다면  그는 이미 지나가 버린 과거의 시간에  아직도 매달려 있는 것이다.  또 누가 미래를 두려워하면서 잠 못 이룬다면  그는 아직 오지도 않은 시간을  가불해서 쓰고 있는 것이다.  과거나 미래 쪽에 한눈을 팔면  현재의 삶이 소멸해 버린다.  보다 직설적으로 표현하면  과거도 없고 미래도 없다.  항상 현재일 뿐이다.  지금 이 자리에서 최선을 다해  최대한으로 살 수 있다면  여기에는 삶과 죽음의 두려움도  발붙일 수 없다.  저마다 서 있는 자리에서 자기 자신답게 살라.  + 안으로 충만해지는 일  안으로 충만해지는 일은  밖으로 부자가 되는 일에 못지않게  인생의 중요한 몫이다.  인간은 안으로 충만해질 수 있어야 한다.  아무 잡념 없이 기도를 올릴 때  자연히 마음이 넉넉해지는 것을 느낀다.  그때는 삶의 고민 같은 것이 끼여들지 않는다.  마음이 넉넉하고 충만하기 때문이다.  겉으로는 번쩍거리고 잘사는 것 같아도  정신적으로는 초라하고 궁핍하다.  크고 많은 것만을 원하기 때문에  작은 것과 적은 것에서 오는  아름다움과 살뜰함과 고마움을 잃어버렸다.  행복의 조건은 무엇인가.  아름다움과 살뜰함과 고마움에 있다.  나는 향기로운 차 한 잔을 통해  행복을 느낄 때가 있다.  내 삶의 고마움을 느낄 때가 있다.  산길을 가다가 무심히 피어 있는  한 송이 제비꽃 앞에서도  얼마든지 나는 행복할 수 있다.  그 꽃을 통해  하루의 일용할 양식을 얻을 수 있다.  또 다정한 친구로부터 들려오는 목소리  전화 한 통을 통해서도 나는 행복해진다.  행복은 이처럼 일상적이고 사소한 데 있는 것이지  크고 많은 데 있지 않다.  마음이 충만한 사람은 행복하다.  하늘나라가 그들의 것이다.  남보다 적게 갖고 있으면서도  그 단순함 속에서 아무 부족함 없이  소박한 기쁨을 잃지 않는 사람이야말로  충만의 화신이다.  또 진정으로 삶을 살 줄 아는 사람이다.  그 어떤 어려운 상황에서도  생의 소박한 기쁨을 잃지 않는 것  그것이 바로 삶을 살 줄 아는 것이다.  그것은 모자람이 아니고 가득 참이다.  + 우리가 사람답게 산다는 것은  오늘은 어제의 연속이 아닌 새날이다.  겉으로 보면 같은  달력에 박힌 비슷비슷한 날처럼 보이지만  어제는 이미 가버린 과거다.  우리가 산다는 것은 무엇인가?  지금 바로 이 자리에서 이렇게 살아 있음이다.  어제나 내일이 있는 것이 아니라  오늘 지금 이 자리에 있음이다.  우리가 사람답게 산다는 것은  순간마다 새롭게 태어남을 뜻한다.  이 새로운 탄생의 과정이 멎을 때  나태와 노쇠와 질병과 죽음이 찾아온다.  새로운 탄생을 이루려면 무엇보다 먼저  어제까지의 관념에서 벗어나야 한다.  기존에 관념에 갇히면 창조력을 잃고  일상적인 생활습관에 타성적으로 떼밀려가게 된다.  우리가 살아온 그 많은 날들이 빛을 발하지 못한 채,  있어도 그만인 그저 그런 날로 사라지고 만 것도  이 기존의 관념에 갇혀서 맹목적으로 살아왔기 때문이다.  우리가 어떻게 살 것인가를 알아차릴 때  죽음은 결코 낯설지 않다.  우리는 죽음 없이는 살 수 없다.  오늘이 어제의 연속이 아니라  새날이요 새 아침이 까닭이 바로 여기에 있다.  + 아름다운 마무리  우리들 삶에서 때로는 지녔던 것을  내던져 버릴 수 있어야 한다.  움켜쥐었던 것을 놓아 버리지 않고는  묵은 수렁에서 벗어날 기약이 없다.  우리들이 어쩌다 건강을 잃고 앓게 되면  우리 삶에서 무엇이 본질적인 것이고  비본질적인 것인지 스스로 알아차리게 된다.  무엇이 가장 소중하고  무엇이 그저 그런 것인지 저절로 판단이 선다.  그 동안 자신이 살아온 삶의 자취가 훤히 내다보인다.  값있는 삶이었는지 무가치한 삶이었는지 분명해진다.  언젠가 우리에게는 지녔던 모든 것을  놓아 버릴 때가 온다.  반드시 온다!  그때 가서 아까워 망설인다면 그는 잘못 살아온 것이다.  본래 내 것이 어디 있었던가.  한때 맡아 가지고 있었을 뿐인데.  그러니 시시로 큰마음 먹고  놓아 버리는 연습을 미리부터 익혀 두어야 한다.  그래야 지혜로운 자유인이 될 수 있다.    
934    "나는 그냥 나 자신이면 됩니다"... 댓글:  조회:2156  추천:0  2018-01-19
     + 마음의 바탕     사람 마음의 바탕은  선도 악도 아니다.  선과 악은  인연에 따라 일어날 뿐.  선한 인연을 만나면  마음이 선해지고  나쁜 인연을 만나면  마음이 악해진다.  안개 속에 있으면  자신도 모르게  옷이 젖듯이.  + 연잎의 지혜   빗방울이 연잎에 고이면  연잎은 한동안 물방울의 유동으로 일렁이다가  어느 만큼 고이면  수정처럼 투명한 물을 미련 없이 쏟아 버린다  그 물이 아래 연잎에 떨어지면  거기에서 또 일렁거리다가  도르르 연못으로 비워 버린다  이런 광경을 무심히 지켜보면서  '연잎은 자신이 감당할 만한 무게만을 싣고 있다가  그 이상이 되면 비워 버리는구나' 하고  그 지혜에 감탄했었다  그렇지 않고 욕심대로 받아 드리면  마침내 잎이 찢기거나 줄기가 꺾이고 말 것이다  세상 사는 이치도 이와 마찬가지이다  + 물처럼 흘러라  사람은 언제 어디서  어떤 형태로 살든  그 속에서  물이 흐르고  꽃이 피어날 수 있어야 한다.  물이 흘러야  막히지 않고  팍팍하지 않으며  침체되지 않는다.  물은 한곳에 고이면,  그 생기를 잃고  부패하기 마련이다.  강물처럼  어디에 갇히지 않고  영원히 흐를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 죽으면서 태어나라     우리는 날마다  죽으면서 다시 태어나야 한다.  만일 죽음이 없다면  삶 또한 무의미해질 것이다.  삶의 배후에 죽음이 받쳐 주고 있기 때문에  삶이 빛날 수 있다.  삶과 죽음은 낮과 밤처럼  서로 상관관계를 갖는다.  영원한 낮이 없듯이  영원한 밤도 없다.  낮이 기울면 밤이 오고  밤이 깊어지면 새날이 가까워진다.  이와 같이 우리는  순간순간 죽어 가면서 다시 태어난다.  그러니 살 때는  삶에 전력을 기울여 뻐근하게 살아야 하고,  일단 삶이 다하면  미련 없이 선뜻 버리고 떠나야 한다.  열매가 익으면 저절로 가지에서 떨어지듯이,  그래야 그 자리에서 새로 움이 돋는다.  순간순간 새롭게 태어남으로써  날마다 새로운 날을 이룰 때,  그 삶에는 신선한 바람과  향기로운 뜰이 마련된다.  우리는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 나그네인지  매 순간 살펴보아야 한다.  + 자신의 등뼈 외에는       내 소망은 단순하게 사는 일이다.  그리고 평범하게 사는 일이다.  느낌과 의지대로 자연스럽게 살고 싶다.  그 누구도, 내 삶을 대신해서 살아 줄 수 없기 때문에  나는 나답게 살고 싶다.  단순한 삶을 이루려면  더러는 홀로 있는 시간을 가져야 한다.  사람은 홀로 있을 때  단순해지고 순수해진다.  이때 명상의 문이 열린다.  사람은 본질적으로  홀로일 수밖에 없는 존재이다.  홀로 사는 사람들은 진흙에 더럽혀지지 않는  연꽃처럼 살려고 한다.  홀로 있다는 것은 어디에도 물들지 않고  순수하며 자유롭고,  부분이 아니라 전체로서 당당하게 있음이다.  인간은 누구나 어디에도 기대서는 안 된다.  오로지 자신의 등뼈에 의지해야 한다.  자기 자신에, 진리에 의지해야 한다.  자신의 등뼈 외에는 어느 것에도 기대지 않는  중심 잡힌 마음이야말로  본래의 자기이다.  + 자기답게 사는 길  사람은 누구에겐가 의존하려는 버릇이 있다.  부처님이라 할지라도 그는 타인,  불교는 부처님을 믿는 것이 아니라  그의 가르침에 따라 자기 자신답게 사는 길이다.  그러므로 불교란 부처님의 가르침일 뿐 아니라  나 자신이 부처가 되는 자기 실현의 길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의지할 것은 부처님이 아니라  나 자신과 진리뿐이라는 것.  불교는 이와 같이 자기 탐구의 종교다.  자기 탐구의 과정에서 끝없는 이웃(衆生)의 존재를  발견한 것이 대승 불교이다.  초기 불교가 자기 자신을 강조한 것은  자기에게서 시작하려는 뜻에서이다.  자기에게서 시작해 이웃과 세상을 도달하라는 것.  자기 자신에게만 갇혀 있다면 그건 종교일 수 없다.  인간에게 있어 진실한 지혜란  이웃의 존재를 보는 지혜다.  자기라는 표현이 때로는  만인 공통의 "마음"으로 바뀐다.     + 나는 그냥 나 자신이면 됩니다   누구보다 더 잘 나고 싶고,  누구보다 더 아름답고 싶고,  누구보다 더 잘 살고 싶고,  누구보다 더 행복하고 싶은 마음들....  우리 마음은 끊임없이 상대를 세워 놓고  상대와 비교하며 살아갑니다.     비교 우위를 마치 성공인 양, 행복인 양  비교 열등을 마치 실패인 양, 불행인 양  그러고 살아가지만,  비교 속에서 행복해지려는 마음은  그런 상대적 행복은 참된 행복이라 할 수 없어요.     무언가 내 밖에 다른 대상이 있어야만  행복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나 혼자서 행복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저 나 자신만을 가지고  충분히 평화로울 수 있어야 합니다.     나 혼자서 행복할 수 있다는 것은  상대 행복이 아닌  절대 행복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무엇이 없어도 누구보다 잘 나지 않아도  그런 내 밖의 비교 대상을 세우지 않고  내 마음의 평화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어야 합니다.     나는 그냥 나 자신이면 됩니다.     누구를 닮을 필요도 없고  누구와 같이 되려고 애쓸 것도 없으며,  누구처럼 되지 못했다고 부러워할 것도 없습니다.     우린 누구나 지금 이 모습 이대로의  나 자신이 될 수 있어야 합니다.  + 텅 비우고 무심히 지켜보는 시간     저마다 자기의 일상생활이 있다.  자기의 세계가 있다.  그 일상의 삶으로부터  거듭 거듭 떨쳐버리는 출가의 정신이 필요하다.     머리를 깎고 산이나 절로 가라는 것이 아니라  비본질적인 것들을 버리고  떠나는 정신이 필요하다.  외롭다고 다른 탈출구를 찾으려는  버릇을 버려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모처럼 영혼의 투명성이  고이다가 사라져 버린다.  마음을 텅 비우고  무심히 지켜보는 시간이 없으면  삶의 탄력을 잃게 된다.  + 허(虛)의 여유  "문으로 들어온 것은 집안의 보배라  생각지 말라"는 말이 있다.  바깥 소리에 팔리다 보면 내면의 소리를 들을 수 없다.  바깥의 지식과 정보에 의존하면  인간 그 자체가 시들어 간다.  오늘 우리들은 어디서나 과밀 속에서 과식하고 있다.  생활의 여백이 없다.  실(實)로써 가득 채우려고만 하지  허(虛)의 여유를 두려고 하지 않는다.  삶은 놀라움이요, 신비이다.  인생만이 삶이 아니라 새와 꽃들,  나무와 강물, 별과 바람, 흙과 돌, 이 모두가 삶이다.  우주 전체의 조화가 곧 삶이요, 생명의 신비이다.  삶은 참으로 기막히게 아름다운 것,  누가 이런 삶을 가로막을 수 있겠는가.  그 어떤 제도가 이 생명의 신비를 억압할 수 있단 말인가.  하루해가 자기의 할 일을 다하고 넘어가듯이  우리도 언젠가는 이 지상에서 사라질 것이다.  맑게 갠 날만이 아름다운 노을을 남기듯이  자기 몫의 삶을 다했을 때  그 자취는 선하고 곱게 비칠 것이다.  남은 날이라도 내 자신답게 살면서,  내 저녁 노을을 장엄하게 물들이고 싶다.  + 흙 가까이  서산에 해 기울어 산그늘이 내릴 무렵  훨훨 벗어부치고 맨발로 채소밭에 들어가  김 매는 일이 요즘 오두막의 해질녘 일과이다.  맨발로 밭흙을 밟는 그 감촉을 무엇에 비기랴.  흙을 가까이 하는 것은  살아 있는 우주의 기운을 받아들이는 일이다.     흙을 가까이 하라.  흙에서 생명의 싹이 움튼다.  흙을 가까이 하라.  나약하고 관념적인 도시의 사막에서 벗어날 수 있다.  흙을 가까이 해야  삶의 뿌리를 든든한 대지에 내릴 수 있다.     우리에게 대지는 영원한 모성  흙에서 음식물을 길러 내고  그 위에다 집을 짓는다.  그 위를 직립 보행하면서 살다가  마침내는 그 흙에 누워 삭아지고 마는 것이  우리들 삶의 방식이다.     흙은 우리들 생명의 젖줄일 뿐 아니라  우리에게 많은 것을 가르쳐 준다..  씨앗을 뿌리면 움이 트고  잎과 가지가 펼쳐져 거기 꽃과 열매가 맺힌다.  생명의 발아 현상을 통해  불가사적인 영역에도 눈을 뜨게 한다.     그렇기 때문에 흙을 가까이 하면  흙의 덕을 배워 순박하고 겸허해지며  믿고 기다릴 줄을 안다.  흙에는 거짓이 없고  추월과 무질서도 없다.     시멘트와 철근과 아스팔트에서는  생명이 움틀 수 없다.  비가 내리는 자연의 소리마저  도시는 거부한다.  그러나 흙은 비를 그 소리를 받아들인다.  흙에 내리는 빗소리를 듣고 있으면  인간의 마음은 고향에 돌아온 것처럼  정결해지고 평온해진다.     어디 그뿐인가  구두와 양말을 벗어버리고  일구어 놓은 밭흙을 맨발로 접촉해 보라.  그리고 흙냄새를 맡아 보라.  그것은 순수한 생의 기쁨이 될 것이다.  + 자연 앞에서  고요하고 적적한 것은 자연의 본래 모습이다  달빛이 산방에 들어와 잠든 나를 깨운 것도  소리 없는 소리에 귀 기울이며  달의 숨소리를 듣고자 하는 것도  이 모두가 무심이다  바람이 불고, 꽃이 피었다가 지고,  구름이 일고, 안개가 피어오르고,  강물이 얼었다가 풀리는 것도 또한,  자연의 무심이다.  이런 일을 누가 참견할 수 있겠는가?  우리는 다면 자연 앞에  무심히 귀를 기울일 뿐,  자연의 신비와 아름다움을 받아들이려면  입 다물고 그저  무심히 귀를 기울이면 된다.  무심히 귀를 기울이라.     자연은 우리 인간에게 영원한 어머니일 뿐 아니라  위대한 교사이다.  자연에는 그 나름의 뚜렷한 질서가 있다.     자연은 말없이 우리에게 많은 깨우침을 준다.  자연 앞에서는 우리가 알고 있는  얄팍한 지식 같은 것은 접어 두어야 한다.  그래야 침묵 속에서 우주의 언어를 들을 수 있다.  침묵이야말로  자연의 말이고  우주의 언어이다.  자연 앞에서 인간은  침묵의 의미를 배워야 한다.  그리하여 인간도 자연의 일부임을  깨달아야 한다.  + 묵묵히 기도하라  당신의 마음에 어떤 믿음이 움터나면  그것을 가슴속 깊은 곳에 은밀히 간직해 두고  하나의 씨앗이 되게 하라  그 씨앗이 당신의 가슴속 토양에서 싹트게 하여  마침내 커다란 나무로 자라도록 기도하라.  묵묵히 기도하라.  사람은 누구나 신령스런 영혼을 지니고 있다.  우리가 거칠고 험난한 세상에서 살지라도  맑고 환한 그 영성에 귀를 기울일 줄 안다면  그릇된 길에 헛눈을 팔지 않을 것이다.  아무리 소중하고 귀한 것일지라도 입벌려 쏟아버리고 나면  빈 들녘처럼 허허해 질뿐이다.  어떤 생각을 가슴 깊은 곳에 간직해 두면 그것이 씨앗이 되어  싹이 트고 잎이 펼쳐지다가 마침내는  꽃이 되고 열매를 맺게 될 것이다.  열매를 맺지 못하는 씨앗은 쭉정이로 그칠 뿐,  하나의 씨앗이 열매를 이룰 때 그 씨앗은  세월을 뛰어넘어 새로운 씨앗으로 거듭난다.  + 기도는 하루를 여는 아침의 열쇠  모든 수행자는 기도로써 영혼의 양식을 삼는다.  기도는 인간에게 주어진 마지막 자산이다.  사람의 이성과 지성을 가지고도  어떻게 할 수 없을 때 기도가 우리를 도와준다.  기도는 무엇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간절한 소망이다.  따라서 기도에는 목소리가 아니라 진실한 마음이 있어야 한다.  진실이 담기지 않은 말은 그 울림이 없기 때문이다.  누구나 자기 존재의 근원을 찾고자 하는 사람은  먼저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를 하라고 권하고 싶다.  진정한 기도는 어떤 종교적인 의식이나 형식이 필요 없다.  오로지 간절한 마음만 있으면 된다.  순간순간 간절한 소망을 담은 진지한  기도가 당신의 영혼을 다스려 줄 것이다.  그리고 기도에 필요한 것은 침묵이다.  말은 생각을 일으키고 정신을 흩트려 놓는다.  우주의 언어인 거룩한  그 침묵은 안과 밖이 하나가 되게 한다.  마하트마 간디는 그의 어록에서 이런 말을 하고 있다.  "사람의 몸에 음식이 필요하듯,  우리의 영혼에는 기도가 필요하다."  "기도는 하루를 여는 아침의 열쇠이고,  하루를 마감하는 저녁의 빗장이다."  + 나를 지켜보는 시선  어둠 속에서도 빛이 있듯이  어떤 최악의 상황이라 할지라도  우리의 삶에는 잠재적인 의미가 있다.  우리가 지금 겪고 있는 실직과 노숙에서 오는  고통의 의미를 찾아낼 수 있다면,  우리는 다시 일어서게 될 것이다,  살아야 할 이유가 있는 사람은 어떤 상황 아래서도  능히 견뎌낼 수 있다.  이 세상을 고통의 바다라고 했듯이,  산다는 것은 즐거움과 함께 고통이 있게 마련이며,  살아남는다는 것은 고통 속에서 그 의미를 찾아내는 일이다.  외람되지만 나는 살아온 길목마다 내 등뒤에서  나를 속속들이 지켜보는 "시선"이 있음을 굳게 믿는다.  그 시선은 이따금 내가 게으름을 피우거나 엉뚱한 생각을 할 때  더욱 선명하게 드러난다.  때로는 꿈속에서 그 목소리가 나를 불러 깨울 때도 있다.  그 시선은 지금 살아 계시거나 이미 돌아가신  우리들의 어머니나 아버지일 수도 있고 할머니나 할아버지일 수도 있다.  혹은 사람마다 그림자처럼 따르고 있는 수호천사일 수도 있고  하느님이나 부처님일 수도 있다.  무어라 부르든 이름에는 상관없이 그 시선은 늘 나를,  그리고 우리를 지켜보고 있다.  그 시선은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이 고통을 비극적인 모습이 아니라  자랑스럽고  꿋꿋하게 이겨나가는 모습을 보고 싶어할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 세월이 흘러가는 소리   물소리 바람소리에 귀기울여 보라.  그것은 우주의 맥박이고  세월이 흘러가는 소리이고  우리가 살만큼 살다가  갈 곳이 어디인가를  소리 없는 소리로 깨우쳐줄 것이다.  이끼 낀 기와지붕 위로 열린  푸른 하늘도 한번쯤 쳐다봐라.  산마루에 걸린 구름,  숲 속에 서린 안개에 눈을 줘보라.  그리고 시냇가에 가서 맑게 흐르는  시냇물에 발을 담가보라.  차고 부드러운 그 흐름을 통해  더덕더덕 끼여 있는  먼지와 번뇌와 망상도 함께  말끔히 씻겨질 것이다.  +  행복은  행복은 늘 단순한 데 있다.  가을날 창호지를 바르면서 아무 방해받지 않고  창에 오후에 햇살이 비쳐들 때 얼마나 아늑하고 좋은가.  이것이 행복의 조건이다.  그 행복의 조건을 도배사에게 맡겨 버리면  자기에게 즐거움을 포기하는 것이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우리가 해야 한다.  도배가 되었든 청소가 되었든 집 고치는 일이 되었든  내 손으로 할 때 행복이 체험된다.  그것을 남에게 맡겨 버리면 내게 주어진 행복의 소재가 소멸된다.  행복하려면 조촐한 삶과 드높은 영혼을 지닐 수 있어야 한다.  몸에 대해서 얼마나 애지중지하는가.  얼굴에 기미가 끼었는가 말았는가.  체중이 얼마나 불었는가 줄었는가에 최대 관심을 기울인다.  그러나 우리는 정신의 무게가,  정신의 투명도가 어떻다는 것에는 거의 무관하다.  내 정신이 깨어 있어야 한다.  깨어 있는 사람만이 자기 몫의 삶을 제대로 살 수 있다.  자기 분수를 헤아려 거듭거듭 삶의 질을 높여갈 수 있다.  + 돈이란  돈이란 우리들 마음이 평온하고 기쁨으로 차 있을 때,  우리가 하는 일이 사회적으로 떳떳하고 즐거울 때,  자연스럽게 따라오는 에너지와 같은 것이다.  따라서 돈을 수량적인 단위로만 보지 말고  좋은 생각에 따라 다니는 우주의 흐름,  즉 에너지 흐름으로 볼 수 있어야 한다.  개인이나 기업이 이런 흐름의 오묘한 도리를 이해한다면,  그 흐름을 받아들일 자세와 그것을 값있게   활용할 길을 알게 될 것이다.  흔히 하는 말로, 돈을 쫓아다니지 말고  돈이 따라오도록 하라는 것도 이 에너지의  흐름을 두고 하는 말일 것이다.  흐름이 한 곳에 고이게 되면 부패한다.  이것은 우주의 생명의 원리다.  물질만이 아니라 사람의 생각도 어느 한곳에만 얽매여  갇혀 있게 되면 그 이상이나 성장이나 발전이 없다.  그래서 늘 새롭게 살라는 것이다.  살아 있는 물은 밤낮없이 흐르면서  스스로 살고 남들도 살린다.  새벽 달빛 아래서 흐름에 귀 기울인다.  + 소욕지족(少欲知足)  이 세상에 태어날 때 빈손으로 왔으니  가난한들 무슨 손해가 있으며,  죽을 때 아무것도 가지고 갈 수 없으니  부유한들 무슨 이익이 되겠는가.  할 수 있으면 얻는 것보다 덜 써야 한다,  절약하지 않으면 가득 차 있어도 반드시 고갈되고,  절약하면 텅 비어 있어도 언젠가는 차게 된다.  덜 갖고도 우리는 얼마든지 행복하게 살 수 있다.  덜 갖고도 얼마든지 더 많이 존재할 수 있다.  소유와 소비 지향적인 삶의 방식에서  존재 지향적인 생활 태도로 바뀌어야한다.  소유 지향적인 삶과 존재 지향적인 삶은  우리들 일상에 깔려 있다.  거기에는 그 나름의 살아가는 기쁨이 있다.  그러나 어떤 상황에 이르렀을 때,  어느 쪽 삶이 우리가 기대어 살아갈 만한 삶이며,  가치를 부여할 수 있는 삶인가 뚜렷이 드러난다,  똑같은 조건을 두고  한쪽에는 삶의 기쁨으로 받아들이고,  다른 한쪽에서는 근심 걱정의 원인으로 본다.                  
933    인류의 가장 위대한 노래 - 아리랑 댓글:  조회:3948  추천:0  2018-01-10
  인류 최초의 찬송가인 아리랑 노랫말 속에 숨겨진 비밀 온 인류의 가장 위대한 아리랑 찬송가를 찬양하고 승화발전     처음 창조된 남자에게 하나님이 팔을 펼쳐 손가락 끝을 대며 생명의 기를 불어넣는 ‘아담의 창조’    온 인류는 은혜를 기리어 찬양한다. 이러한 찬양(讚揚)의 의미는 본래 특정 대상을 칭찬하거나 기리어 드러낸다는 뜻이 담겨져 있을 것이다. 특히 대부분의 종교에서는 그들이 믿는 종교에서 추앙하는 어떤 신이나 절대자를 한없이 높이는 존경의 의미를 담아 낼 것이다. 그리고 또한 그들은 여기에 경건한 신앙심의 기도를 담아내는 노래를 불렀을 것이다. 우리들을 이를 일러 하나님을 찬양하는 찬송가라 부른다. 그런데 우리들은 여기에서 하나의 궁금증을 자아낸다. 도대체 그 궁금증은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인류최초의 찬송가가 언제, 어디서, 어떤 사람들에 의해서 만들어지고 불리어 졌느냐하는 문제일 것이다. 뿐만 아니라 이들이 부른 찬송가의 내용은 과연 어떤 내용을 담고 있으며, 또한 어떤 소리음으로 노래를 불렀을까? 하는 문제이다. 우리들은 이러한 궁금증을 풀어내기 위해서 하나의 가설을 세울 수 있다.   만약 수만 년 전에 고대인들이 하나님을 찬양하는 찬송가를 불렀다면, 그들은 바로 어떤 지적인 지혜를 가지고 있었을 것이라는 하나의 가정이다. 우리들은 이러한 지적인 지혜를 가지고 있었던 인류를 들어 고고학적으로 현생인류라고 부른다. 그리고 이러한 현생인류를 현시대의 학명(學名)으로 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Homo sapiens sapiens)라고 부른다.     ▲ 인류최초의 현생인류인 호모 사피엔스의 생활모습   우리들은 이 호모 사피엔스라는 현생인류가 6만 8천 년 전에 아프리카를 떠나 전 세계로 확산된 것으로 본다. 이들은 아프리카를 떠나 아라비아 반도를 걸쳐 약 3만 년 전에 유럽으로 들어가 네안데르탈인을 멸종시킨다. 그리고 아라비아반도에 진출한 현생인류 가운데 또 하나의 집단은 해안가를 따라 인도, 동남아시아, 중국 남부, 만주, 시베리아, 한반도, 일본, 오세아니아 등지로 폭넓게 퍼져 나갔을 것이라고 추정한다. 또한 이들 중 일부는 역시 베링 해를 거쳐 아메리카 대륙으로 들어갔을 것이라고 역시 추정한다. 더욱이 4만 내지 5만 년 전에 중앙아시아에 이들 현생인류가 도착한다. 그리고 이들은 바이칼호수 근처와 레나 강 유역 등지에서 신석기문화를 형성한다. 뿐만 아니라 이들은 1만 년 전 이러한 신석기문화를 가지고 유라시아를 거쳐 동아시아로 진출하여 만주 지역에서 요하문명을 일으킨다. 그리고 마침내 이들은 한반도를 들어와 한반도에 본래 있었던 선주민(先住民)들과 혼혈을 이루며, 우리의 위대한 한민족의 원형을 만들어낸다. 그런데 우리들은 인류의 이러한 전 이동과정에서 반드시 고찰해보아야만 할 것이 있다. 그것은 바로 이들이 6만 8천 년 전에 아프리카를 떠나 동아시아의 만주벌판에서 요하문명을 만들어내기까지, 아니 현시대에 이르기까지 그 기나긴 세월동안 절대 잊지 않고 이들은 지켜준 간절한 정신적인 힘이 무엇이었느냐의 문제이다. 그리고 이렇게 간절한 소망의 노래를 그들은 어떻게 불렀느냐는 문제이다. 우리들은 올바른 인류문명의 시원을 제대로 찾기 위해서라도 이 문제를 다시 한 번 생각해보아야만 한다. 과연 인류가 최초로 부른 간절한 소망의 노래는 무엇이었을까? 그것은 누가 뭐래도 바로 찬송가가 될 것이다.     ▲ 인류의 이동과정   우리들이 모두 잘 알고 있듯이 찬송가는 온 우주를 창조한 하나님의 은혜를 기리며 부르는 노래이다. 그런데 과연 하나님의 은혜를 기리며 부른 인류최초의 찬송가는 무엇이었을까? 그것은 바로 아리랑이라고 단언할 수 있다. 우리들은 이제부터 왜 아리랑이 인류최초의 찬송가에 되는지를 다른 학문이 아닌 언어학으로 고찰해보아야만 한다. 왜냐하면 우리들이 언어학으로 인류최초의 찬송가인 아리랑을 검증하는 절차는, 바로 하나님께서 말씀으로 이 우주를 창조하셨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들은 언어학으로 인류최초의 찬송가인 이 아리랑을 검증하는 절차는 몇 가지 단계를 걸쳐야만 한다. 그것은 우선 아리랑에 대한 순수 한글정음문자로 아리랑의 의미를 풀어보고, 그리고 한국어의 고대문자라 할 수 있는 르완다어와 산스크리어로 풀어보는 것일 것이다. 그리고 최종적으로 이들의 종합적인 뜻을 풀어 하나의 결집된 언어로 결론을 내는 것일 것이다. 이제 아리랑에 대한 노랫말을 풀어보기로 하자.   ■ 아리랑 찬송가의 노랫말       (현) 아리랑의 노랫말   아리랑 정음문자의 노랫말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로 넘어간다. 나를 버리고 가시는 임은 십리도 못 가서 발병난다 아리아리랑 쓰리쓰리랑 아라리가 났네 아리랑 고개로 나를 넘겨주소   알이랑 알이랑 알알리요. 알이랑 고개로 넘어간다. 나얼 버리고 가시는 임은 십리도 못가서 발병난다. 알이알이랑 쓸이쓸이랑 알알이가 났네. 알이랑 고개로 나 얼 넘겨주소.        우선 아리랑에 대한 정음문자를 풀어보기 위해서는 아리랑을 정음문자의 순수발음으로 전환한 다음, 이를 다시 정음어휘문자로 파자하는 것이 될 것이다. 이제 아리랑 정음문자의 노랫말을 파자해보기로 하자. 우선 아리랑을 파자해보기 전에 우리말의 발음에는 “연음법칙” 이라는 음절의 연결규칙이 있다는 사실을 인지할 필요성이 있다. 연음법칙은 자음으로 끝나는 음절에 모음으로 시작되는 음절이 이어질 때 앞 음절의 끝소리가 뒤 음절 첫소리가 되는 음운 규칙을 말한다, 예를 들면 아래와 같다고 볼 수 있다.   예, “깊이→기피” “옷을→오슬” “책이→채기” “낮에→나제” “벗이랑→버시랑” “가물어”→“가무러” “하늘이→하느리”   따라서 “알이랑”이 “아리랑” 이 되며, “알알이요”는 “아라리요”로 연음법칙의 발음으로 전환될 것이다.     ▲ 하나님의 말씀인 훈민정음을 창제한 세종대왕       한글 정음문자로 풀어낸 아리랑노랫말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알이랑 알이랑 알아리요   ■ “알이랑” 의 정음문자해석   알(알)이랑의 “알”자는 이응(ㅇ), 아(ㅏ), 리을(ㄹ)자의 합자이다. 이때 이응(ㅇ)자는 둘레∙ 울타리∙ 집단∙ 순환을 나타내고, 아(ㅏ)자는 이응(ㅇ)자의 확장성을 나타내는 문자로, 이는 인간이 낼 수 있는 모든 소리 중에서 가장 입을 크게 벌리고 내는 소리로 양(陽)적인 성격이 들어나는 소리음이 될 것이다. 또한 리을(ㄹ)자는 음과 양을 함께 가르며 회전하는 활동성을 나타낼 것이다. 따라서 “알이랑”의 “알”자는 대우주의 양적인 회전성을 나타내는 문자라고 볼 수 있다. 아울러 “알이랑”의 이(ㅣ)자는 상하의 연결이 막히는 종결적인 의미로 지시어의 발음을 나타낸다. 즉 이(ㅣ)자는 이것, 이분, 이놈과 같은 지시어의 발음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알이랑”의 “알이”는 대우주의 회전력을 가진 활동성이 종결되고 새로운 우주가 탄생되었음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알이랑”의 “랑”자는 이(ㅣ)자와 합쳐 “~와 함께” 라는 문자가 될 것이다. 즉 “이랑”은 “~와 함께”라는 토씨로서(언어학자들은 ‘토씨’는 6천년 이상 간다고 한다) 서로 다정한 소리를 나타내는 문자라는 것이다. 즉 “이랑”은 너랑, 나랑 서로 함께 사랑을 나누자는 이야기이라고 볼 수 있다. 따라서 “알이랑”은 천지창조를 이룩한 ‘하느님과 함께(With God)’모든 일을 한다는 기쁨마음을 표현한 문자라고 볼 수 있다.   ■ “알아리요” 정음문자의 뜻   “ 알아리요” 는 “알이랑”의 대우주가 탄생되었음을 깨닫고 서로 함께 큰 기쁨을 나누며 열창하는 소리이다. 이때 “알아리요”에서 큰 기쁨이 나오는 이유는 바로 리을(ㄹ)자에서 나온다. 우리들이 대부분의 리을(ㄹ)자를 살펴보면, 리을(ㄹ)자가 들어가는 모든 종결음은 대부분이 큰 기쁨을 나타낸다. 즉 리을(ㄹ)자의 “락, 노래, 즐겁다, 오락, 쾌락, 놀다” 에서와 같이 기쁨을 잘 나타내는 글자라고 볼 수 있다. 따라서 “알이랑 알이랑 알아리요”는 “ 천지창조가 이루어졌네, 천지창조가 이루어졌네, 이제 완전한 천지창조가 이루어졌네.” 라고 기쁨 마음으로 외치는 소리라고 해석할 수 있다.   아리랑 고개로 넘어간다. 알이랑 고개로 넘어간다.   ■ “ 알이랑 고개로 넘어간다.” 의 정음문자 해석   “ 알이랑 고개로 넘어간다.” 는 뜻은 “알이랑 알이랑 알아리요”의 천지창조가 이루어졌네, 천지창조가 이루어졌네, 이제는 완전한 천지창조가 이루어졌네. 라는 문장의 확장성을 받아넘기는 문장이다. 즉 천지창조의 새로운 우주가 전 우주로 펼쳐지는 현상이라고 보면 된다. 따라서 “알이랑 고개로 넘어간다.” 는 의미는 완전한 천지창조의 힘이 힘든 고갯길을 넘어 끝없이 펼쳐지고 펼쳐진다는 의미이다.   나를 버리고 가시는 임은 나얼 버리고 가시는 임은   ■ “나” 자의 정음문자해석   “나얼”에서 “나” 자는 니은(ㄴ)자와 아(ㅏ)자의 합자이다. 이때 니은(ㄴ)자는 하늘의 기운이 내려와서 온 누리의 지상세계에 펼쳐짐을 나타내는 소리이다. 이와 같은 말은 “누리, 나눔, 나라, 눈(雪), 눈(目), 내(川), 누에(蠶)”와 같은 니은(ㄴ)자의 유사발음에서 금방 알 수 있다. 이때 우리는 “나”자를 “라”자와 연상해서 살펴볼 수 있다. 이집트에서는 태양을 [라]로, 중국에서는 태양을 [리]라 부른다. 그리고 신라에서도 역시 태양을 [라]라고 부른다. 즉 “나”자는 천지창조의 힘이 태양빛처럼 온 누리에 펼쳐짐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 나얼 버리고 가시는 임” 이라는 문장은 이러한 천지창조의 이치를 모르고 살아가시는 임이라는 뜻이다. 즉 대우주의 천지창조가 이루어지고 진화하는 이치를 깨닫지 못하고 살아가시는 사람들이라는 뜻이다. 따라서 위 문장을 맞추어 연결하면, 천지창조가 이루어졌네, 천지창조가 이루어졌네, 이제는 완전한 천지창조가 이루어졌네. 그리고 그 완전한 천지창조가 끝없이 펼져지네. 그러나 이러한 천지창조의 바른 이치를 깨닫지 못한 가련한 사람들이여. 라는 문장으로 서로 연결 지어 해석할 수 있다.   십리도 못가서 발병난다 십리도 못가서 발병난다.   ■ “십리”의 정음문자 해석   “십리”의 “십”자에서 시읏(ㅅ)자는 근원으로부터 갈라져 나오는 모든 만물을 의미하고, 이(ㅣ)자는 그 만물의 주관자를 의미한다, 그리고 비읍(ㅂ)자는 모든 생명활동이 사방으로 표출하는 현상이라고 볼 수 있다. 따라서 십(10)자는 근원으로부터 갈라져 나온 모든 만물의 주관자가 느끼는 마지막 희열의 기쁨이라고 볼 수 있다. 또한 “십리”의 “리” 자는 리을(ㄹ)자와 이(l)자의 합자로서, 역시 모든 움직임의 종결성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이는 그대로 숫자 십(10)에 나타났듯이, 숫자 십(10)은 일(1)과 제로(0)의 합자라는 사실에서 잘 알 수 있다. 즉 숫자 십(10)자는 유(1)와 무(0)의 완성에 대한 종결적인 기쁨을 표현하는 숫자라는 사실이다. 따라서 위에서의 전 문장을 서로 연결하면, 천지창조가 이루어졌네, 천지창조가 이루어졌네, 완전한 천지창조가 이루어졌네. 이 완전한 천지창조가 끝없이 펼쳐지네. 그러나 이 완전한 천지창조의 이치를 깨닫지 못한 가련한 사람들이여. 그대들이 이 완벽한 천지창조의 주관자라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면, 모두 발병이 날 것이네. 라고 문장은 이어져 나간다.   아리아리랑 쓰리쓰리랑 알이알이랑 쓸이쓸이랑   ■ “쓸이랑” 정음문자해석   우리들이 이미 검토해 보았듯이 “ 알이” 는 대우주의 회전력을 가진 모든 움직임이 종결되고 최초의 우주가 탄생되었음을 나타내는 문자이다. 그런데 “쓸이랑”은 무슨 뜻이 담겨져 있는 것일까? “쓸이랑”은 ㅆ(솟다), ㅡ(땅), 그리고 리랑(~함께)의 합자로 이루어져 있다. 이때 “쓸이랑”은 새로운 경계선(ㅡ)에서 무엇인가가 새롭게 모두 솟아오른다는 의미가 될 것이다. 물론 “쓰”자는 인간이 낼 수 있는 모든 소리음 중에서 가장 입을 작게 벌리고 내는 소리음[陰]이 될 것이다. 따라서 “쓸이랑”은 재탄생을 의미하는 소리라고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이제 우리들은 “알이알이랑 쓸이쓸이랑””이라는 문장을 다시 분석해보아야만 한다. 즉 “알이알이랑 쓸이쓸이랑”의 문장구조를 보면, 소리음이 연속적인 반복구조를 가지고 만들어짐을 알 수 있다. 이러한 반복구조라는 것은 끝없는 창조행위가 지속적으로 일어남을 의미할 것이다. 즉 “알이알이랑”은 수많은 태초과거의 창조행위가 함께 일어났음을 말하고, “ 쓸이쓸이랑”은 역시 수많은 창조행위가 과거가 아닌, 현재 다시 재 반복하여 지속적으로 발생함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전 문장을 다시 연결하면, 천지창조가 이루어졌네, 천지창조가 이루어졌네, 완전한 천지창조가 이루어졌네. 완전한 천지창조가 끝없이 펼쳐지네. 그러나 이 완전한 천지창조의 이치를 깨닫지 못한 가련한 사람들이여. 그대들이 이 완벽한 천지창조의 주관자라는 사실을 깨닫지 못한다면, 모두 발병이 날 것이네. 그러니 내 이제 그대들의 병든 몸을 위하여 태초의 수많은 천지창조에서, 이제 다시 새로운 천지창조를 이루려고 하네. 라는 문장으로 이어진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아라리가 났네 알알이가 났네   ■ “ 알알이”의 정음문자해석   “ 알알이” 란 문자를 보면 “알”이란 문자가 역시 반복됨을 알 수 있다. 이는 양적인 대우주가 거듭 재탄생함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즉 병든 우주에서 새로운 부활을 의미하는 우주가 끈임 없이 재탄생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전 문장을 다시 한 번 연결하면, 천지창조가 이루어졌네, 천지창조가 이루어졌네, 완전한 천지창조가 이루어졌네. 완전한 천지창조가 끝없이 펼쳐지네. 그러나 이 완전한 천지창조의 이치를 깨닫지 못한 가련한 사람들이여. 그대들이 이 완벽한 천지창조의 주관자라는 사실을 깨닫지 못한다면, 모두 발병이 날 것이네. 이제 그대들의 병든 몸을 위하여 태초과거의 수많은 천지창조에서 새로운 천지창조의 다시 이루려고 하네. 끈임 없이 새로운 우주창조가 이루어지네. 라고 문장을 만들 수 있을 것이다.   아리랑 고개로 나를 넘겨주소 알이랑 고개로 나얼 넘겨주소.   ■ “ 나얼” 정음문자해석   “ 나얼”자에서 “나” 자는 천지창조의 힘이 온 누리에 펼쳐짐을 의미하며, 또한 이때 “얼”자는 그 펼쳐진 천지창조의 모든 힘이 내 몸 속으로 모두 흘러들어와 넘친다는 것을 의미할 것이다. 뿐만 아니라 “얼” 자는 내 몸속으로 흘러들어온 하나님의 영혼을 말한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 알이랑 고개로 나얼 넘겨주소.” 란 새로운 삶의 길을 개척할 수 있도록 하나님의 영혼을 나에게 넘겨달라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이와 같이 아리랑의 노랫말을 해석하면, 아래와 같은 정음문자 해석문장으로 요약할 수 있을 것이다.     ▲ 하나님께서 창조한 우주와 인류가 살아나가는 지구         아리랑 정음문자 노랫말   아리랑 정음문자 해석문장   알이랑 알이랑 알알리요. 알이랑 고개로 넘어간다.   나얼 버리고 가시는 임은   십리도 못가서 발병난다.   알이알이랑 쓸이쓸이랑   알알이가 났네.   알이랑 고개로 나 얼 넘겨주소.   천지창조가 이루어졌네, 천지창조가 이루어졌네, 완전한 천지창조가 이뤄지고 끝없이 펼쳐졌네. 그러나 이 완전한 천지창조의 이치를 깨닫지 못한 가련한 이들이여 그대들이 이 완벽한 천지창조의 주관자라는 사실을 깨닫지 못한다면, 모두 발병이 날 것이네. 이제 네 그대들의 병든 세상을 위하여, 다시 새로운 천지창조를 이루려고 하네. 끈임 없이 새로운 천지창조의 길이 열리고 또한 열리네. 그러니 이 새로운 길을 잘 살아갈 수 있도록 하나님의 영혼이 우리와 함께 하시길       르완다어로 풀어낸 아리랑노랫말   우리들은 지금까지 한글로 된 아리랑 정음문자를 파자한 결과 아리랑은 바로 천지창조의 이야기를 아름다운 소망가로 부른 노래임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소망의 대상은, 바로 하나님과 함께 하심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이제 다시 고대 한글의 모국어라 할 수 있는 르완다어로 아리랑의 노랫말을 해석해보기로 하자.   ■ 아리랑(ari ranga), 아리리요(arariye)의 어원 해석   르완다어로 아리(ari)는 처녀, 정혼녀 (virgin, fiancée)를 의미하고, 랑(ranga)은 명사로는 중매장이 (matchmaker), 동사로는 선포하다 (to announce publicly)는 뜻을 나타낸다. 따라서 아리랑은 중매로 맺어진 약혼녀가 되었음을 모든 사람들에게 선포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즉 아리랑은 결혼식의 축가라는 것이다. 또한 “아라리요”는 르완다어 로 해석하면, 말 그대로 고개를 넘어간다는 의미가 될 것이다. 따라서 아리랑 아리랑 아리리요(Ariranga ariranga arariye)는 결혼한 여인이 삶의 힘든 고갯길을 넘어가며 살아간다는 의미가 된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아리랑의 노랫말을 아래와 같이 전체적인 노랫말로 해석하여 쓸 수도 있을 것이다.     ▲ 아리랑의 사랑에 빠진 아담과 이브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로 넘어간다. 나를 버리고 가시는 임은 십리도 못 가서 발병난다 아리아리랑 쓰리쓰리랑 아라리가 났네 아리랑 고개로 나를 넘겨주소.   사랑하는 연인아, 사랑하는 연인아, 서로 함께 힘든 삶의 길을 극복하세 사랑하는 연인아, 우리 모두 그 힘든 삶의 고갯길을 넘어가세 나를 버리고 가시는 사랑하는 연인이여 그 아무리 사랑하는 연인의 가슴이 아리고, 쓰릴지라도 되돌아오세요. 사랑하는 연인들의 힘이 절로 절로 솟아나네. 사랑하는 연인들의 힘든 고갯길을 넘을 수 있는 힘을 우리 모두에게 주소서   르완다는 현생인류인 발생지이다. 이 현생인류가 6만 8천 년 전에 아프리카를 떠나 동아시아의 끝단에 놓인 이 한반도에 이르기까지, 6만 8천 년이라는 그 기나긴 세월동안 한시도 잊지 않고 온 인류가 다 함께 부른 노래가 바로 우리의 아리랑인 것이다. 지금 아리랑의 이 위대한 노랫말이 고스란히 우리의 한반도에 남아있다. 우리민족은 6만 8천 년 동안 인류의 가장 오래된 아리랑이라는 이 노랫말을 이처럼 지켜낸 것이다. 그리고 그 지켜냄은 종족보존이라는 결혼문화로 남아 지금까지 이렇게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우리민족의 선조라 할 수 있는 고대 호모 사피엔스라는 현생인류는 종족보존을 위하여 사랑하는 연인을 만들며, 또한 그 사랑하는 연인들과 함께 힘든 삶의 여정을 극복해가며, 지금의 한반도에 이렇게 삶의 동아리를 뜬 것이다. 아리랑은 이별가가 아닌 천지창조에 대한 하나님에 대한 깊은 소망가인 동시에, 종족보존이라는 기도가 들어가 있는 간절한 결혼축가였던 것이다.   싯담어인 산스크리어로 풀어낸 아리랑노랫말   산스크리어는 6만 8천 년 전 현생인류의 시조라 할 수 있는 호모사피엔스가 아프리카를 떠나 아라비아 반도의 오만을 거쳐 지구촌의 남부해안가를 따라 인도, 동남아시아, 중국 남부, 한반도, 일본, 오세아니아 등지로 폭넓게 퍼져 나가며 만들어진 언어이다. 이 산스크리어의 상당수 발음의 그대로 우리의 전라도와 경상도의 토속사투리로 남아 있다. 이제 이 싯담어로 아리랑의 노랫말을 풀어보자.     ■ “ 아리랑” 의 싯담어 어원문자해석   산스크리어로 아리랑을 분석해보기로 하자. 산스크리어로 아리랑(ariang or arilangh)의 “아리(ari)” 는 임금, 연인, 애인, 성실한, 신실한, 존경, 숭앙, 현성. 연인. 님 등을 나타낸다. 영어로는 the beloved sweet heart, respectable, faithful, and honest man/lady 등으로 쓸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아리랑의 “랑(langh)” 은 서둘러 떠나다. 이별하다 등의 뜻이 될 것이다. 또한 영어로는 hasten to move quickly, leave, set off, depart, run away, get across, farewell, say good by등으로 표현할 수 있을 것이다. 이 “랑(langh)”에 대한 원음은 그대로 우리의 전라도 토속 사투리에 그대로 남아있다. 한국의 전라도 토속 사투리에는 “먹으랑게, 그래랑게, 오시랑게”와 같은 토속사투리가 수도 없이 많이 남아 있다. 이때 이들 사투리의 “~랑게” 는 바로 아리랑의 랑(langh)과 같은 의미로, 모두 서둘러 이별하든지, 빨리 떠나라는 의미가 담겨져 있다. 또한 “아리리요”의 “아라”는 속이 아리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뿐만 아니라 쓰리랑의 “쓰리”는 “슬슬 녹는다, 가슴이 쓰리다, 가슴이 무너지다“의 뜻을 담고 있다. 따라서 아리랑(ari-langh)은 본뜻은 사랑하는 사람이 서둘러 떠났다는 이별의 뜻이 담겨져 있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뜻을 풀어 아리랑 노랫말을 싯담어로 풀어내면, 아래와 같은 아름다운 노랫말이 만들어진다.     ▲ 아포리아의 혼돈으로 상처받은 인간의 몸은 아리랑으로 회복되어야만 한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로 넘어간다. 나를 버리고 가시는 임은 십리도 못 가서 발병난다 아리아리랑 쓰리쓰리랑 아라리가 났네 아리랑 고개로 나를 넘겨주소.   존경하는 님이 시여 어디로 떠나시려 하시나이까? 사모하는 님이 시여 어디로 떠나시려 하시나이까? 그토록 빨리 떠나가시려 하니 님께서 벌써 고갯길을 넘어 멀리 가시는 구려! 우리를 버리고 가시는 님은 십리도 못가서 발병나리. 우리네 마음은 불꽃을 뿌리듯 지글 지글 쓰리나이다. 눈물을 머금고 가시는 님의 그 길 위에 찬란한 빛을 뿌리 오리다.   싯담어로 아리랑을 분석하여 살펴보면 절절이 ‘사랑하는 님과 함께 하고자 함이 잘 들어난다’고 볼 수 있다. 이때 사랑하는 님은 궁극적으로 하나님임을 알 수 있다. 즉 아리랑은 가장 아름다운 찬송가의 노랫말이라는 것이다. 이제 우리들은 한글정음, 르완다어, 싯담어로 풀어낸 아리랑 노랫말을 하나로 뭉쳐 재해석해 보기로 하자.       한글정음   천지창조가 이루어졌네, 천지창조가 이루어졌네, 완전한 천지창조가 이뤄지고 끝없이 펼쳐졌네. 그러나 이 완전한 천지창조의 이치를 깨닫지 못한 가련한 이들이여 그대들이 이 완벽한 천지창조의 주관자라는 사실을 깨닫지 못한다면, 모두 발병이 날 것이네. 이제 네 그대들의 병든 세상을 위하여, 다시 새로운 천지창조를 이루려고 하네. 끈임 없이 새로운 천지창조의 길이 열리고 또한 열리네. 그러니 이 새로운 길을 잘 살아갈 수 있도록 하나님의 영혼이 우리와 함께 하시길   르완다어   사랑하는 연인아, 사랑하는 연인아, 서로 함께 힘든 삶의 길을 극복하세 사랑하는 연인아, 우리 모두 그 힘든 삶의 고갯길을 넘어가세 나를 버리고 가시는 사랑하는 연인이여 그 아무리 사랑하는 연인의 가슴이 아리고, 쓰릴지라도 되돌아오세요. 사랑하는 연인들의 힘이 절로 절로 솟아나네. 사랑하는 연인들의 힘든 고갯길을 넘을 수 있는 힘을 우리 모두에게 주소서   싯 담 어   존경하는 님이 시여 어디로 떠나시려 하시나이까? 사모하는 님이 시여 어디로 떠나시려 하시나이까? 그토록 빨리 떠나가시려 하니, 님께서 벌써 고갯길을 넘어 멀리 가시는 구려! 우리를 버리고 가시는 님은 십리도 못가서 발병이 나리. 우리네 마음은 불꽃을 뿌리듯 지글 지글 쓰리나이다. 눈물을 머금고 가시는 님의 그 길 위에 찬란한 빛을 뿌리 오리다.   찬 송 가   하나님과 함께 하나님과 함께 삼위일체 되신 하나님과 함께 하나님과 함께 고개를 넘어간다. 나의 하나님을 버리고 가시는 님은 반드시 하나님의 곁으로 되돌아오세요. 하나님 하나님이랑 함께, 가슴 속 깊이 하나님과 함께 하나님 하나님의 영혼이 절로 솟네 하나님과 함께 넘어갈 삶의 참된 영혼을 나에게 주소서      우리들은 지금까지 아리랑을 놓고 한글정음, 르완다어, 싯담어로 풀어 보았었다. 분석결과 한글정음에서는 그대로 아리랑이 하나님의 위대한 천지창조를 나타내며, 르완다어와 싯담어에서는 사랑하는 하나님과의 슬픈 이별과 만남을 사람들에 비유하여 사용하였음을 알 수 있다. 우리들이 모두 잘 알고 있듯이 “아리랑” 의 “아리” 는 “밝음” 또는 “광명”의 뜻으로 쓰이기도 한다. 6만 8천 년 전 현생인류의 시조라 할 수 있는 호모사피엔스가 아프리카를 떠나 향한 곳은, 바로 밝은 광명의 땅 동아시아였던 것이다. 그리고 바로 그 동사시아의 끝단에 한반도가 놓여 있었던 것이다.     ▲ 중앙아시아의 중심에 자리잡은 아랄 해   우리들이 모두 잘 알고 있듯이 Asia(아시아)라는 말은, 바로 “와서 쉬야, 와 쉬시오” 준말로 안식의 땅을 가리키는 말이기도 하다. 그들은 이 편안한 안식의 땅에서 쉬기 위해 중간 기착점인 중앙아시아의 아랄해(Aral Sea)부근에서 수메르문명을 만들어낸다. 바로 이 아랄 해 일대를 뜻하는 ‘알(Ar)’ 은 ‘생명의 기원’ 을 의미하는 “알(卵)”로 시작, 첫째, 위대한 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또한 이때 “알(卵)”은 “엘(El)”로 불리 우며, 하나님의 상징성으로 나타난다. 하나님은 바로 “알님“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알이랑“의 ”알“은 바로 이 ”알님“을 지칭하는 말이기도 하다. 그리고 여기에 크고 위대하다는 ”한“을 붙여 ”한알님“ 이 만들어진다. ”한알님“은 바로 하나님으로 ”알이랑“의 ”알님“이었던 것이다. 우리들은 이와 같은 어원의 역사를 아브라함의 역사를 통해서 얼마든지 찾아낼 수 있다. 바로 아브라함의 자손 중 이스마엘 족속들은 하나님을 ‘알’ 또는 ‘알라(‘알아’로 하나님을 부르는 소리)’ 라고 불렀고, 아라랏은 ‘알아랏’ 으로 ‘하나님의 산’ 이며, 또한 ‘알타이’ 는 ‘하나님의 산’ 이라는 뜻이기도 하다. 뿐만 아니라 ‘메아리’ 는 ‘뫼알이’ 로 산에 있는 하나님을 가리키며, ‘하늘’ 은 ‘한 알’ 로 ‘큰 신’ 을 가리키는 말이기도 하다. 바로 아리랑은 고대 인류가 만들어냈었던 가장 위대한 찬송가였던 것이다. 이 찬송가의 노랫말을 아래와 같이 풀어쓸 수 있다.   알이랑 알이랑 알알리요. 알이랑 고개로 넘어간다. 나얼 버리고 가시는 임은 십리도 못가서 발병난다. 알이알이랑 쓸이쓸이랑 알알이가 났네. 알이랑 고개로 나 얼 넘겨주소   하나님과 함께 하나님과 함께 삼위일체 되신 하나님과 함께 하나님과 함께 고개를 넘어간다. 나의 하나님을 버리고 가시는 님은 반드시 하나님의 곁으로 되돌아오세요. 하나님 하나님이랑 함께, 가슴 속 깊이 하나님과 함께 하나님 하나님의 영혼이 절로 솟네 하나님과 함께 넘어갈 삶의 참된 영혼을 나에게 주소서   위의 노랫말은 곧 우리의 한민족이 하나님과 함께 한반도로 이동하면서 부른 가장 위대한 찬양의 노래라는 사실이 그대로 들어난다. 이는 다시 말해 하나님께서 우리 조상들에게 참 신앙을 버리지 않도록 주신 가장 위대한 노래라는 것이다. 우리들은 우리들의 선대 조상들이 아리랑을 죽음으로 지켜냈듯이, 이제 죽음으로 아리랑을 지켜내야만 한다. 그러면 아리랑의 노랫말은 아래와 같이 만들어질 것이다   죽음의 이치를 깨닫고 무덤 속에 들어가지 마세요 죽음의 이치를 깨닫고 무덤 속에 들어가지 마세요 죽음 그물의 이치를 깨달으세요. 죽음의 이치를 깨닫고 무덤 속에 들어가지 말고 잘 살아가세요. 나를 버리고 저승가는 님은 십리도 못가서 발병이 나네.   우리들은 온 인류의 가장 위대한 찬송가를 지켜내야만 한다. 그리고 그 지켜냄에 반드시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신다” 는 사실을 아리랑을 통해서 배워야만 하고, 이를 인류문명사의 가장 위대한 찬송가로 만들어야만 할 것이다.            출처 :한민족역사정책연구소 원문보기▶   글쓴이 : 德光人 [출처] 인류최초의 찬송가인 아리랑노랫말 속에 숨겨진 비밀|작성자 좀지나가자 ===============================  
932    노래 "아리랑"속에 말못할 "비밀"이 없다?... 있다!... 댓글:  조회:2520  추천:0  2018-01-10
    아리랑의 비밀화원, 아리랑의 비밀이 풀리다.     아리랑은 너무나 단순해 보이는 노랫말 속에 고도한 메시지를 숨기고 있는 특수한 문장이었다. 그래서 아무도 다른 뜻이 숨겨져 있다는 생각 자체를 못한 것이었고, 아리랑이라는 뜻조차도 알 수 없었다.  정보통신(IT)과 암호 분야에 종사하면서 오랜 기간 아리랑과 민요, 고려가요 등에 나타나는 뜻 모르는 후렴구를 연구해 온 조용호(趙容晧) 저자는 아리랑을 600년 전의 한문과 고려어로 복원함으로써 그 속에 숨겨져 있던 비밀을 풀어내게 되었다.   그렇다면 어떠한 이유로 노랫말 속에 특수한 문장으로 된 또 다른 아리랑이 숨겨져 있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노랫말을 잘 생각해 보면 알 수 있지만, 아리랑은 논리적으로 이해하기 쉽지 않은 내용으로 되어 있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를 넘어간다  나를 버리고 가시는 님은 십 리도 못 가서 발병난다   우선, 아리랑과 아라리요는 뜻 모르는 후렴구이므로 첫 행 전체가 의미가 없다. 둘째 행, 아리랑 고개는 땅 위에 없는 허구의 장소인데, 그곳을 넘어가므로 또한 의미가 없다. 셋째 행, 나를 버리고 ‘가시는’으로 말을 올리면서 동시에 2행에서는 넘어간다, 4행에서는 발병난다 등으로 말을 내리고 있어 가시는 님에 대한 존칭이 일치하지 않는다. 또한, 발병이 나는 것은 개인의 신체적 특성과 관련된 것이지, 십 리라는 거리와는 큰 상관이 없다. 꼭, 발병이 나야 한다면, 한 발자국도 못 가서 발병난다 정도의 표현이 되어야 한다. 더구나, 나를 버리고 간다고 해서 반드시 발병이 나는 것도 아닌 것이다. 그런데 ‘십 리도’라는 표현을 보면 문제는 상당히 심각해진다. 동양문학이나 한국인의 관념상 ‘십 리(4km)’라는 거리는 명사십리 해당화 등과 같이 거리가 상당히 멀다는 어감을 갖고 있는데, 아리랑에서는 짧거나 모자라는 경우에만 사용되는 조사 ‘도’와 같이 쓰이고 있어서, ‘십 리도’라는 표현 자체가 틀린 용법이 된다. 이렇게 되면, 아리랑이라는 겨우 네 줄밖에 안 되는 노래는 어느 한 곳도 제대로 된 곳이 없는 온통 의미 없는 후렴구 상태에 빠지게 된다.    노랫말에 이러한 문제점들이 생기게 된 이유는 미래를 예언하는 노래인 '참요 아리랑'이 금지곡이 되었고, 민간에서 구전되며 민요화되는 과정 속에서 영화 속의 유행가로 편집되었고, 이때, 가사의 일부분이 당시의 상황에 맞게 변형되었기 때문이다. 참요나 고려가요 등에 나오는 문장 형태로 된 뜻을 모르는 후렴구들은 특수한 문장으로, 현재의 암호문에 해당한다.      암호문을 여는 비밀의 열쇠는 아리랑 쓰리랑(啊女郞 是女郞)으로 아리랑은 신비한 ‘아가씨(女郞)’라는 뜻이다. 이것을 노랫말에 대입하여 600년 전의 언어로 바꾸면 한문과 고려어로 된 두 개의 아리랑이 만들어진다. 한문 아리랑은 충신은 한 임금만을 섬긴다는 불사이군을 나타내고, 고려 아리랑은 젊은 아가씨가 스님에게 대화를 하는 장면이 된다. 아리랑은 비교 문학상 원곡(元曲)으로 실제로 있었던 이야기를 연극으로 상연하였던 것이다. 남녀간 대화의 내용을 변형하면 연극 속의 주제가가 되며, 바로, 우리가 부르는 '아리랑의 원형'인 고려어로 된 아리랑이 된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곡애를 나마간다  나아랄 바리고 가시니문  시니이 마까서 발화병난다      아리랑은 1392년 7월 28일, 고려가 망하고 조선이 성립되던 왕조 교체기에 개경의 만수산 두문동에서 만들어졌다. 아리랑의 원형을 통해, 노래가 만들어진 당시에는 ‘넘어간다’를 ‘나마간다’, ‘가시는 님’은 ‘가시 님’, 아리랑 고개는 ‘아리이랑 곡애(谷涯)’의 발음기호로 ‘푸른 물결’을 뜻하며, 땅 위가 아니라 물 위에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한 이유로 아리랑 고개는 땅 위에 존재할 수 없었다. 아리랑에는 ‘푸른 물결’을 뜻하는 ‘아리 이랑’과 신비한 ‘아가씨’를 뜻하는 ‘아아 리랑’이라는 두 가지 형태가 있는 것이다. 아리랑 노래를 불러보면 ‘아아리랑 아아리랑 아아라리요’로 발음되는데 이것은 ‘아아 리랑’이며, 아리랑 보다 더 오래된 구(舊)아리랑을 주의 깊게 잘 들어보면 ‘아리이랑 아리이랑 아라리로구료오’로 발음되는데 이것은 ‘아리 이랑’이다. 또한, ‘십 리도 못 가서’가 아니라 ‘신이 막가서’ 발병나는 것이며, 이것을 참요의 내용으로 풀이하면, ‘신이(臣李) 막가서’ 즉, 역적 신(臣)하 이(李)가 막가서 고려가 망할 것이라는 뜻으로 새로운 왕조를 부정하고, 고려를 부활시키자는 내용이 된다. 고려유신들은 참요 아리랑을 만들어 전국에 있는 동지들과 2년여에 걸쳐 비밀거사를 준비하고 있었다. 개경 만수산 두문동에서 아리랑 아라리요라는 노래가 울려 퍼지기 시작하자, 전국적으로 온갖 형태의 참요들이 이에 화답하여 창화(唱和)하며 자신들만이 이해하는 암호문 통신 체계로 비밀스러운 대화를 시작하였다.      강강수월래과(나를 따라왔단다, 왔단다, 왔단다. 剛剛隨我來過), 늴리리야(넌 어느 편이야?), 애루하(어떤가? 唉, 如何?), 지화자(계획하자), 어기여차(내가 돌아간다), 어강됴리(금방 도착한다. 我剛要到了), 애 야노 야노 야(노를 저어라), 마득사리(괜찮아요? 아무렇지도 않아요? 니사득마? 你舍得嗎?), 쾌지나칭칭나네(감빵 갔다 나왔네), 아리 아리랑 스리 스리랑(아니 아니랑께 역적 이는 임금이 아니고 신하랑께), 얄리 얄리 얄랑셩 얄라리 얄라(밤이 되니 더욱더 쓸쓸해진다, 눈물이 자꾸만 흘러내린다), 두어렁셩(냉정한 이 세상이여! 對我冷淸!)      그러나 1394년 11월 17일, 노랫말에 숨겨진 내용의 일부가 조선군 암호해독부대에 의해 풀이되어 두문동은 불태워져 말살되고 노래는 금지곡이 된다.      금지곡 상태에서 구전되던 아리랑은 한양 천도로 인해 개경에서 한양으로 지역이 바뀌고, 시대의 흐름에 따른 언어적인 변화도 일어나게 된다. 물결을 뜻하던 ‘곡애를’은 땅 위에 있는 ‘고개를’로 오해되기 시작하고, ‘나마간다’는 ‘넘어간다’, ‘바리고’는 ‘버리고’, ‘가시 님’은 ‘가시는 님’, ‘발화병난다’는 ‘발병난다’로 바뀌게 된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를 넘어간다      나아를 버리고 가시는 님은  시니이 마까서 발병난다     오랜 세월의 흐름 속에서 민간에서만 조심스럽게 불리던 고려의 아리랑은 19세기 말에 이르러 궁궐에서도 아리랑을 공연하게 됨으로써 조선의 노래로 공인되었고, 이를 통해 민족의 노래로 성장하게 된다.      1926년 10월 1일, 민간에서 불리던 아리랑이 영화 속의 유행가로 편집되면서 노랫말에 변형이 일어난다. ‘고개를’은 ‘고개로’, ‘나아를’은 ‘나를’로 바뀐다. 영화 가사를 편집한 사람들이 원래의 가사를 가능한 한 조금이라도 바꾸려고 노력한 것이다. 또한, 영화가 나오기 5개월 전에 나온 한용운의 시집 『님의 침묵』의 영향으로 평등의 개념이 확산되면서 ‘가시는 님’은 ‘가는 님’, 짚신 대신에 고무신이 보급되면서 신이 막가서 발병나는 일이 없어졌으므로 ‘시니이 마까서’는 ‘십 리도 못 가서’, 구어체 가사가 보편화되면서 ‘발병난다’는 ‘발병이 나네’로 바뀌게 된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로 넘어간다  나를 버리고 가는 님은  십 리도 못 가서 발병이 나네      이렇게 되면 ‘십 리’라는 거리는 명사십리 해당화 등과 같이 먼 거리를 뜻하게 되고, 이것과 결합되는 조사는 짧거나 모자라는 경우에만 쓰이는 ‘도’가 되어 ‘십 리도’ 자체가 잘못된 표현이 된다. 그렇지만 노랫말을 편집한 사람들도 이런 생각까지는 못했고, 노래를 부르는 우리 자신도 지금까지 몰랐다.      영화 가사로 편집되면서 가사의 일부분이 바뀌기는 하였지만, 노래라는 것은 일정 부분 원형으로 돌아가는 성질이 있다. 즉, 가시는 님, 발병난다 등은 바뀌지 않는다. 그러나 ‘시니이 막가서’ 라는 부분만은 시대적 상황과 맞지 않았기 때문에 영화 가사에서 바뀐 대로 ‘십 리도 못 가서’라는 형태로 대중들의 뇌리에 깊이 박히게 되어 지금과 같은 모습이 되었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를 넘어간다   나를 버리고 가시는 님은    십 리도 못 가서 발병난다     아리랑은 단순한 민요나 유행가가 아니라 망해가는 나라를 지키기 위해 목숨을 걸고 싸우던 충신들의 삶과 죽음의 대서사시인 것이다. 그러한 이유로 아리랑은 한민족의 혼이고 민요의 정수가 되었다.      이제 아리랑의 비밀은 풀이되었다. 앞으로 남은 일은 아리랑을 풀이하는 과정에서 실제로 나타나는 600년 전 환상의 세계를 한민족을 대표하는 다양한 형태의 '문화콘텐츠(CT)'로 만들어 우리들 자신은 물론 세계인들에게 널리 알리는 것이다.      영화 제작, 월트 디즈니에서 제작한 뮬란(Mulan, 花木蘭)과 같은 애니메이션, 유아용 그림동화, 어린이 동화, 만화, 연극, 드라마, 시나리오, 게임, 캐릭터, 음반, 모바일, 인형극, 뮤직 비디오, 팬시용품, 테마 공원, 대하소설, 문화관광상품, 방송영상, 인터넷, 오페라, 후렴구의 뜻을 알고 부르면 더욱 재미있는 민요와 고려가요, 아리랑 속의 고려어 이야기, 아리랑 세계화 학술서, 전자책 등 다양한 형태의 제작이 가능할 것이다. 이러한 점들이 아리랑이 갖고 있는 또 다른 위대함이다.     지금부터의 아리랑은 뜻을 모르는 후렴구의 노래가 아니다. 아리랑에 숨겨져 있던 애국애족의 정신과 조상의 위대한 정신문화 유산을 전 세계에 알려 나가야 한다. 세계 속의 아리랑으로 부활시켜야 한다. 이를 통해, 우리의 자랑스러운 민족혼을 세계인과 공유하며, 더불어 조화롭게 잘 살아가는 사회를 만들어 나갈 수 있을 것이다. [끝] ///아리랑의 비밀話원 ============================덤으로 더...   당신이 아리랑을 알리오 우리민족의 애국심을 연구하는 아리랑학   [1032호] 2011년 03월 21일 (월) 안두희 기자        처음으로 보는 외국인이 내 앞에서 우리나라의 노래를 부르고 있다. 그것도 한류 열풍을 탄 대중가요가 아닌 우리 민족의 노래 ‘아리랑’을 흥얼거리고 있다. 상상만 해도 신기하고 흥미로운 광경이다. 그런데 그 외국인이 노래를 마친 후 나에게 아리랑이 무슨 뜻이냐고 물어온다. 나는 과연 대답을 쉽게 해 줄 수 있을까?    아리랑학이란 우리민족의 고유의 노래인 아리랑을 연구하는 학문이다. 지난해 11월에는 아리랑학의 확립을 위한 학술대회도 열렸을 정도로 학계의 관심이 뜨겁다. 이제 아리랑의 뜻이 무엇이냐고 물어온 외국인에게 당당해 지고 싶다면 아리랑학의 문을 두드려 보자.   아리랑의 본질을 찾아서    일제 강점기에는 아리랑이 일본에 의해 조선인에 대한 왜곡된 시각을 제공하는 자료로 변형되기도 했다. 그러던 중 이광수가 “아리랑은 오래전부터 전해져 오는 민요이기 때문에 후렴에는 뜻이 남아 있을 것이나 알 수는 없는 것”이란 논의 제기로 ‘아리랑’이나 ‘아라리요’ 등과 같은 뜻 모르는 어구의 의미를 밝히려는 연구가 시작돼 오늘에 이르게 된 것이다.   지금까지 연구는 아리랑 뜻이 무엇인가를 찾는 단계, 아리랑을 아리랑 고개와 연결하여 관련성에 대해 고찰하는 단계, 후렴구에서 아리랑과 쓰리랑이 두 개의 분리된 요소가 아니라 하나의 문장이라는 개념을 풀이하는 시도를 보여준 단계를 거친다. 그러나 이러한 연구들은 심도 깊지 않고 연구 방법 또한 잘못됐다는 지적이 있다. 숭실대학교 한국문예연구소 조용호 아리랑 연구 기획위원장은 “초기의 아리랑 연구는 그것의 성격과 기록을 심층적으로 고찰하지 않았다.”라며 “대부분의 연구들은 공통적으로 기록을 무시한 채 연구자의 기호에 따라 왜곡된 연구를 도출한 경우도 적지 않다.”고 말한다.   아리랑에 대해서는 지금까지 오랜 세월에 걸쳐 80년간 다양한 연구와 논의가 있었다. 그러나 지금까지 학자들은 비과학적인 연구방법으로 아리랑을 다뤄 왔기 때문에 그것이 한민족을 상징하는 노래라 하더라도 아직 우리는 그 뜻은 물론 노래가 의미하는 내용도 정확히 모르는 것이 사실이다. 숭실대학교 한국문예연구소 조규익 소장은 “아리랑은 길게는 수백 년 넘게 지속돼온 노래로 간단한 노래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그간 연구자들은 각지에 흩어져 불리고 있는 아리랑의 곡조나 노랫말들을 수집·정리·비교·분석하는 일에만 몰두해 왔다.”라며 “물론 이런 작업들도 의미있는 일이지만 아리랑의 본질을 파악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말했다.   아리랑은 사실 암호문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를 넘어 간다   나를 버리고 가시는 님은   십 리도 못 가서 발병난다   아리랑은 단순한 민요나 영화에서 처음 만들어진 유행가가 아니다. 너무나 단순해 보이는 노랫말 속에 고도한 메시지를 숨기고 있는 특수 문장이다. 조용호 연구원장은 “아리랑은 원래 암호문이고 그것의 원형을 찾아가 보면 정치적 징후를 암시하는 참요의 성격을 발견할 수 있다.”고 말한다.   아리랑은 고려가 망하고 조선이 성립되던 여말선초의 왕조 교체기에 개경의 두문동 사리골에서 만들어졌다. 아리랑이 만들어진 시기와 관련하여 노랫말을 풀이하면 “이씨 성을 가진 자가 새로운 왕조를 성립하는 것을 부정하고 고려를 이어나가자”는 비밀결사의 노래로 해석된다.   아리랑에는 두 가지 형태의 뜻이 존재한다. 원래의 아리랑은 아리 이랑으로 ‘푸른 물결’을 뜻하는데 당시 시대적 상황을 고려하여 ‘신성한 아가씨’를 뜻하는 아아 리랑으로 암호화했다. 고려인들은 참요의 노랫말을 그대로 사용하면 암호문이 해독될 수 있다고 생각해 숨겨진 뜻을 알 수 없도록 원래 형태인 아리 이랑을 아리랑으로 변형한 것이다. 고려 개경 사람들은 암호문 형태로 만든 아리랑을 노래로 불러 당시의 한 맺힌 상황을 표현함으로써 광범위하게 전파하고자 하였다.   조용호 연구원장은 “아리랑 연구를 통해 암호라는 용어 자체가 없었던 시절에 고도의 암호를 만들어 사용했던 고려인들의 위대성을 발견한다.”며 “그들이 암호를 사용한 이유가 조국을 위한 충성이었다는 점에 의의가 있다.”고 말했다.   다함께 아리랑 사랑    아리랑은 단순한 노래가 아니라 특정한 역사적 상황에서 나타난 시대정신의 총화합체이다. 따라서 당대의 역사, 문화, 언어, 사회 등은 물론 인접했던 국가들의 언어까지 모두 알아야만 진정으로 아리랑을 이해할 수 있다. 조용호 연구원장은 “지금까지 적지 않은 연구를 해 왔으나 아리랑의 세계에 들어갈수록 거대한 세계로 빠지기 때문에 앞으로 더 많은 연구가 필요하다.”라며 “연구를 함으로써 우리 조상의 위대함과 나라사랑의 정신을 밝히는 것이 목표다.”라고 말했다.   조규익 소장은 “제대로 된 아리랑을 세계 시장에 내놓아야 한다.”고 말한다. 그는 “북한이 아리랑 축전을 열고 있는데, 그 내용을 살펴보면 자신들의 체제를 선전하기 위한 변질된 아리랑이다.”라며 “우리는 아리랑을 철저히 연구하여 진정한 민족의 아리랑을 세계화 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안두희 기자  =========================덤으로 더 더... [한민족비결]  아리랑에 숨겨진 비밀(秘密)     아리랑은 현재 약 50여종 300여수가 확인되고 있다. 흔히 아리랑이라고 하면, 다음의 (경기)아리랑을 가장 먼저 떠올릴 것이므로 이 경기아리랑을 대표적으로 하여 아리랑에 담긴 비의秘意를 풀어본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10자)  아리랑 고개를 넘어간다 (10자)  나를 버리고 가시는 임은 (10자)  십리도 못 가서 발병난다 (10자)      우리 민족이라면 아리랑을 못 부르는 사람은 없건만 그 뜻을 물으면 아무도 모른다. 그러나 의 전파성이 강한 이유는 노랫말에 어떤 깊은 뜻이 숨겨져있기 때문이 아닐까. 언제 어떤 경로로 누가 지었는지도 모르면서 우리의 애국가처럼 불리니 말이다. 그리고 이제 남북한과 전세계에 아리랑이 메아리치는 것을 보면, 이제 아리랑 노래에 숨겨진 참뜻이 무엇인지 제대로 평가받을 때가 온 것이 아닌가 생각해본다.    ① 아리랑 : '아리'는 원래 크거나 신성한 것을 가리키는 말로서(몽골말로는 깨끗하다, 성스럽다는 뜻), 고대 하천을 이르는 말이며(아리라는 낱말은 삼국사기를 비롯하여 고사에서 흔히 볼 수가 있다) ‘한’과도 같은 뜻이다. 한강의 원래 이름은 아리수이다(아리수 한강이 漢江으로 표기된 것은 삼국시대 후반에 중국문화가 한반도에 본격 도입된 이후의 일이다). 한편, ‘한’은 한국, 한민족, 한반도, 한글, 한복, 한식, 한옥 등 한국과 한국민을 상징하는 말이다. 이 한(韓)은 환(桓)에서 왔다. ‘한’이라는 말은 우리 문명의 출발(환국)에서부터 우리와 운명을 같이해 온 9천년 이상된 단어다. 이러한 ‘한’이 가지고 있는 뜻은 크게 1)하늘(天:밝음=빛), 2)하나(一), 3)크다(大)로 나눌 수 있다. 그 중에서도 ‘한’은 ‘하늘’의 준말이며, 하늘이 가장 본래의 뜻이다. 실제로 한민족의 9천년 역사는 하느님을 찾아 나선, 하느님을 만나기 위한 이동의 역사였다. 더 정확히 이야기하면 상제님(하느님,미륵부처님)의 뜻을 찾아서 이루기 위한 역사였다.    한편, ‘랑(郞)’은 환웅천황께서 동방문명 개척을 위해 태백산으로 오실 때 거느리고 온 핵랑군(核郞軍)을 의미하거나 삼국통일의 원동력이 된 관창랑(官昌郞), 원술랑(元述郞), 거진랑(擧眞郞), 일래랑(一來郞) 등과 같은 낭도(郎徒) 또는 낭군(郎軍)을 의미한다고 해석할 수 있다. 따라서, 아리랑의 ‘랑(郞)’은 9천년이상 내려온 우리민족 고유의 풍류신도인 낭가(郎家) 사상을 이어받은 일꾼을 뜻하므로, 아리랑은 ‘하느님의 핵랑군’ 즉 도군(道軍) 또는 육임군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아리랑을 한문으로 쓰면 亞里郞이니, ‘하느님의 마을에 있는 군대’가 된다. 격암유록에서는 ‘아리’(亞里)를 다른 말로 십승촌(十勝村) 또는 弓乙村(궁을촌)으로 표현했다. 아리(亞里)에서 아(亞) 자(字)는 弓자(字)가 서로 마주보고 있다. 이것은 동국참서에서 궁을가, 격암유록 ,태전가사,춘산채지가 등에서 도인과 철인들이 전했던 궁궁(弓弓)의 도(道)를 펴는것을 말하고 지구촌문명이  동서로 뻗어 오래된 사원 박물관 성당 사찰 등에는 고대로부터 전승해 내려오는 아(亞) 자(字)문양은 인류공통의 도형문화였다.     또한 글자 ‘아(亞)’ 가운데에서는 십(十)자가 나온다. 십(十)의 세계는 완성  결실의 개벽세계다. 10이라는 숫자는 분열의 종지부를 찍고 새로운 통일의 첫 시발점이 된다. 십(十)은 새 생명이 열린다는 뜻에서 ‘열’이라고 하며, 완전수로서 10무극 하느님을 뜻한다. 열매는 가을에 맺는다. 여름에 열리고 가을에 맺는 열매는 열려서 맺는것을 의미하지 않는가? 완전히 열리는 자리가 10(十)무극이고 성숙되어 맺는 자리, 알캥이가 1(一)태극이다. 11성도로 통일하는 우주의 정신이 담겨있다. 그것을 궁궁(弓弓)이라고 한다. 건(乾) 감(坎)이다. 이 자리은 하느님(상제님)과 하느님의 대행자(대두목)자리이다.   10수의 참 뜻은 무엇인가?  우주의 여름철에서 가을철로 넘어갈 때는 10미토(未土) 기운을 가진 우주절대자가 지상에 강세하는 것이다. 아리랑의 네 구절이 모두 10자씩으로 구성되어 있다. 극이 없는 십(十)의 세계를 불교에서는 극락용화세계, 기독교에서는 지상천국, 유교에서는 대동세계, 도교에서는 무극이라는 용어로 불러왔다.    그리고 아(亞)자는 궁(弓)자 두 개가 누워 서로 마주 보고 있는 양산(兩山) 모양을 하고 있으니, 인류사의 새 문명을 여는 새 통치자 두 분이 출현한다는 의미도 함축하고 있다. 어린아이에게  어릴때 깍꿍(覺弓: 궁의 이치를 깨달으라)!하는 것도 궁의 이치를 알아라는 뜻이다.     ② 아라리요 : 크게 두 가지 뜻으로 해석할 수 있다고 본다. 첫째는 ‘아라리요’를 순수 한글로 보아 위에서 해석한 아리랑 즉 하느님의 마을에 있는 군대를 ‘알라’는 뜻으로 볼 수 있고, 두번째는 ‘아라리요’를 한문 아라리(亞羅里)로 보아 십(亞)즉 상제님(하느님)의 진리가  전세계에 펼쳐질 것이라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다.    ③ 아리랑 고개 : 한문으로 아리령(亞里嶺)으로 푼다. 이별의 고개, 설움의 고개로 인식되어 온 이 아리랑 고개가 어디에 있는 지는 아무도 모르고 사실 지도상에 있지도 않다. 그렇다면 이 아리랑 고개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이것은 모든 사람들이 옛부터 그렇게 고대하던 후천 10天세계(지상천국,용화세계,대동세계)로 넘어가기 위해 넘어야만 하는 고개(위험한 고비) 하추교역기(夏秋交易其)를 의미한다.    ④ 나 : 여기서 ‘나’는 위의 내용과 앞으로 해석할 아리랑의 문맥으로 살펴볼 때 ‘상제님’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는 것이 맞다. 최수운 대신사(大神師)가 새로운 세상구원의 대도(大道)를 찾아 10년 이상의 구도생활 후 천상문답에서 듣게 되는 한울님의 소리와 같다(동경대전).  상제님께서 최제우 대신사에게 신교를 내리고 동학을 펴게했다. 아리랑은 하늘에서 가을개벽의 때를 대비해서 우리 한민족에게 준 생명의 노래이며 진리의 노래이다.    나의 마음이 곧 너의 마음이다. 사람이 어찌 알리오. 천지는 알고 귀신은 모르니 귀신이라는 것도 나다. (논학문) 두려워 말고 겁내지 말라. 세상 사람들이 나를 상제(上帝)라고부르는데, 너는 어찌 상제(上帝)를 모르느냐! (포덕문)   최수운 대신사 이후 8년뒤 이 땅에 오신 증산상제님은 "천하가 병이 들어있느니라."  증산도 도전 道典(2:259)   "내가 삼계대권을 주재하여 조화로써 천지를 개벽하고  불로장생(不老長生)의  선경(仙境)을 건설하려 하노라." 증산도 도전道典(2:16)   이라고 전하신다. ⑤ 십리(十里) : 후천 10무극 세계를 의미한다.   ⑥ 발병(發病)난다 : 10무극 상제님(하느님, 미륵부처님,옥황상제님)을 모르고  진리의 길을 만나지 못하면 결국 후천세상에 못 가고 약이 없는 괴질병(병겁)에 걸려 죽는다는 얘기다. 왜 못만나는가?  병들었기 때문이다. 이 세상은 어떤 측면에선 물질적으로 가장 살기 좋은 세상이나 도덕 윤리적으로 인륜의 도리(道理)로 부터 탈선하고 정의(正義)가 실종되어버린지 오래된 세상이다. 하늘과 땅이 병들었다. 천하가 병들었다.    가시는 님이 발병난다니?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구절과 관련하여 아리랑을 한국의 한(恨)이나 사랑의 이별가 쯤으로 생각해왔지만  그것만이 아니다. 보다 본질적인 뜻은 이 세상에 인간으로 태어난 인생의 의미를 모르고 살다가 생명의 근원과 진리의 뿌리를 모른채 살고 있는 지구촌의 철부지 인생들에 대한 안타까움이 들어있다. 다시 말해  우주의 가을철이 오는것을 모르고 살다가는 억조의 인생의 운명을 말한다 조상을  부정하고 진리의 뿌리를  배반하고 역사의 뿌리를 부정해서 병든 인생들의 운명을 말한다.   이와같이 아리랑 노래에는 한민족이 지나온 역사혼속에서 지금까지 전해진 이면에는  도적道的 차원에서 우리 선조들이 다가오는 후천 대개벽기에 대비하여 오늘날의 후손들을 깨우쳐주기 위한 깊은 비의秘意가 숨어 있었던 것이다. ///이승철 홀로아리랑 ///[증산도와 한민족의 사명] ============================덤으로 더... ♣아리랑의 의미를 아시나요?♣ "아라랑"은 한민족의 상징적 대표적인 민요로서 아득한 엣날부터 한국 민족의 사랑을 받으며 널리 불려진 노래일 뿐 아니라, 오늘날 처럼 남북이 분단 되어 올림픽 단일팀이 하나의 국가를 부르기 어려울 때에는 "아리랑"을 국가처럼 합창하여 한민족임을 확인한다.   그러면서도 우리국민 거의다가 "아리랑"이 무슨 뜻인가? 를 모르고 있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아리랑 고개를 넘어간다" ;   경기도 아리랑 "아리아리랑 쓰리쓰리랑(또는 사투리로 서리서리랑) 아라리가 났네/아리랑고개로 날 넘겨주 소" ;   밀양 아리랑, 진도 아리랑, 정선 아리랑 등에서 나오는 "아리랑", "쓰리랑", "아라리", "아리랑고개"의 뜻을 알아본다.   첫째 "아리랑"의 뜻 "아리"가 고대 한국에서의 "고운", "곱다"로 쓰인 흔적을 현대 한국어("아리다운"=아리+다운)에서 찾아 볼 수 있고, 몽골에서 "아리"는 아직도 "고운" "곱다"의 뜻으로 사용되고 있으므로 첫째 "아리"의 뜻은 "고운"을 뜻한다.   둘째 "아리"의 뜻 현대 한국에서 "아리다"(마음이)의 동사는 사랑에 빠져 상사병에 걸렸을 때나 마음의 상처를 받았을 때의 표현이다. 이것이 형용사가 되면 "아리"는 "사무치게 그리움"을 표현하는 뜻이 되어 이때의 "아리"는  "(사무치게)그리운"의 뜻이 된다.   "랑"의 뜻 "랑"은 한자로 삼국시대에는 "랑(郞)"자를 써서 젊은 남녀를 모두 표현 했다. 통일 신라시대 이후 조선시 대에는 남녀를 구분하여 남자는 주로 "郞"자, 여자는 ! "--"자로 표시했다. 발음은 모두 "랑" 이며, 뜻은 "임"이다. 이는 신라향가(鄕歌)의 죽지랑(竹旨郞), 기파랑 (耆婆郞), 등이 좋은 예이다.    "아라리"의 뜻 "아라리"는 근 현대에 뜻을 몰라 잃어버린 말인데, 이는 '상사병'의 고대 한국어 라고 판단된다. 현대 한국에서는 상사병을 나타내는 '가슴아리' (가슴앓이)에서 그 흔적이 어렴풋이 보인다. '쓰리다'를 강조할 때 '쓰라리다' 라고 강조사를 넣는 것처럼 '가슴아리'는 '가슴아라리' '아라리'와 같다.  '삼국유사' 등에는 상사병에 걸린 사랑 이야기가 몇 개 나오는데, 상사병에 해당하는 순수 고대 한국어를 한자가 수입된 뒤 언젠가 그만 잃어버린 것이다. 민요 '아리랑'에 들어있는 '아라리'가 바로 '상사병'의 순수 한국어 인 것이다.   "쓰리랑'의 뜻 "쓰리랑"은 "아리랑' 둘째의 뜻과 동의어 또는 유사어 이다. 마음이 "쓰리다"는 마음이 "아리다"와 유사어 이다. 즉 "쓰리랑"은 마음이 아리고 "쓰리도록 그리운 임" 을 뜻한다.   "아리랑"의 가사를 현대 한국어로 리듬을 접어두고 번역하면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 곱고 그리운 임/ 사무치게 그리워 상사병이 났네! 의 뜻이된다.   "아리랑 고개로 넘어간다" : '아리랑(이) 고개를 넘어간다'라는 표현을 운율에 맞추고자 "아리랑" 다음의 토씨 '이'를 생략한 것으로서, 번역하면 '곱고 그리운 임이 고개를 넘어간다'는 뜻이다.   한국 전통사회에서 마을 공동체의 활동범위를 차단 하는 것은 "고개" 였다. 고개를 넘어가는 것은 다시 만나기 어려운 공간으로서 '이별"을 의미하는 것이다. 따라서 "아리랑이 고개를 넘어간다"는 "곱고 그리운 임과 이별"을 뜻하는 것이다.   위에서의 의미를 유추해 볼때 "아리랑"의 뜻도 모른 채(알았더라도) 일천수백 년을 내려온 것은 이 고대어 속에 현대어로는 치환할 수 없는 절묘한 뜻과 멋이 담겨 있기 때문이 아닌가? 한다.   ///-신용하 교수의 '새로쓰는 한국문화'에서-
931    보르헤스 시학 / 한편의 시가 여려편의 번역 시 비교 댓글:  조회:2779  추천:0  2018-01-10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의「시학」감상 / 이원 시학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시간과 물결의 강을 주시하며 시간이 또 다른 강임을 상기하는 것, 우리들도 강처럼 스러지리라는 것과 얼굴들이 물결처럼 스쳐감을 깨닫는 것. 불면은 꿈꾸지 않기를 꿈꾸는 또다른 꿈임을 우리네 육신이 저어하는 죽음은 꿈이라 칭하는 매일 밤의 죽음임을 체득하는 것. 중생의 나날과 세월의 표상을 모년 혹은 모일에서 통찰해 내는 것, 세월의 전횡을 음악, 속삭임, 상징으로 바꾸는 것. 죽음에서 꿈을 보는 것, 낙조에서 서글픈 황금을 보는 것, 가련한 불멸의 시는 그러한 것, 시는 회귀하느니, 여명과 일몰처럼. 이따금 오후에 한 얼굴이 거울 깊숙이 우리를 응시하네. 예술은 우리 얼굴을 비추는 거울이어야 하네. 경이에 지친 율리시즈는 멀리 겸허한 초록의 이타케가 보였을 때 애정으로 눈물을 흘렸다고 하지. 예술은 경이가 아니라 초록의 영원인 그 이타케. 예술은 또한, 나고 드는 끊임없는 강물과도 같은 것. 끊임없는 강물처럼, 본인이자 타인인 유전(流轉)하는 헤라클라이토스 자신의 거울과도 같은 것. ................................................................................................................................................................................................................................ 드라마를 보고 있었어요. 사랑의 간절함이 939살 불멸을 중지하게 한다는 판타지는 익숙한 것이지만, “나도 사랑한다 그것까지 이미 하였다”, “비로 올게 첫눈으로 올게”, 이 말을 하는 얼굴은 응시하게 되지요. 모든 생을 기억하는 눈에는 심연의 슬픔과 당장의 햇빛이 동시에 담기지요. 그래서 비스듬히 보고 있다가도 시적인 순간을 경험하게 되지요. 남미 문학의 거장 보르헤스는 소설로 더 많이 회자되지만 시로 출발하였어요. “우주(다른 사람들은 ‘도서관’이라고 부르는)는 부정수 혹은 무한수로 된 육각형 진열실들로 구성되어 있다”는 그의 문장. 수수께끼를 내는 자라고 불렸다는, 그리스의 시적인 철학자 헤라클레이토스의 “같은 강물에 두 번 발을 담글 수 없다”는 말. 거울과 강물. 회귀와 유전(流轉). 흐르는 물은 늘 다르지요. 동시에 같은 물이기도 하지요. 어디에 찍느냐, 문제는 방점이지요. 응시하는 얼굴은 비추는 얼굴이에요. 여명과 일몰은 대립적 시간이며 대립적 시간이 아니지요. 경이와 초록 중 시는 초록에 방점이 있지요. 전면적 포용이거나 초월이 된다면 거울은 텅 비게 되지요. 꿈과 죽음의 대면이 매일매일이 키우는, 초록이지요. 이원 (시인)   ==========================2 시학 보르헤스 / 현중문 옮김     보르헤스 후기 시에서는 누구나 쉽게 알 수 있는 보편적인 이미지가 두드러진다. 이 시에서도 물, 세월, 강물, 거울 같은 평범한 이미지를 중첩하여 헤라클레이토스의 유리((琉璃))라는  미학적 응결물을 창출해내고 있다. 원제는 Arte poetica       물과 시간으로 이루어진 강을 보고 시간이란 또 다른 강임을 기억하라. 우리들은 강처럼 사라지고 우리 얼굴은 물처럼 흘러감을 알라. 깨어 있다는 것은 또 다른 꿈, 꿈을 꾸고 있지 않다는 꿈이며 우리 육신이 두려워하는 죽음이란 밤마다 찾아오는 죽음, 꿈이라 생각하라. 나날의 일상에서 인간이 살아온 유구한 세월의 상징을 보고, 세월의 전횡을 음악과 속삭임과 상징으로 바꾸어라. 죽음에서 찾아낸 꿈, 석양에서 찾아낸 서글픈 황금, 이것이 시일지니, 가난하고도 불멸하는 시일지니, 여명과 석양처럼 번갈아드는 시일지니. 오후가 되면 종종 거울 깊은 곳에서 우리를 쳐다보는 얼굴 하나 있으니 예술은 그 같은 거울이 되어 우리 얼굴을 보여주어야 한다. 불가사의한 일에 신물이 난 율리시즈는 눈물이 났단다, 먼발치로 보이는 이타카 푸르고 소박한 고향, 예술은 그런 이타카 영원히 푸르지만 불가사의는 없는 이타카. 예술은 또한 흐르면서도 제자리에 머무르는 끝임없는 강물이며, 그 끝임없는 강물처럼 자신이면서 다른 사람으로 유전하는 헤라클레이토스라는 유리(琉璃)이다.     『제작자』(1960)중에서   ======================3 시학  보르헤스(Jorge Luis Borges)  세월과 물로 된 강을 바라보는 것  그리고 시간은 또다른 강이라는 것을 기억하며,  우리는 강물처럼 사라져갈 것을 알며  얼굴들 또한 강물처럼 떠내려가는 것을 보며  눈을 뜨고 본다는 것도 또 하나의 꿈임을 느끼며  꿈을 꾸고 있지 않다고 꿈꾸는 꿈, 그래서 우리의  육체가 두려워하는 죽음 또한 밤마다 꿈이라고 부르는  그런 죽음밖에 아무것도 아님을 알며  하루의 한 해 속에 사람의 나이와 세월들의  상징을 읽으며, 세월이 앗아간 인생의 아픔을  음악으로, 소음으로, 상징으로 바꾸어가는 일.  죽음 속에 꿈을 보고, 석양에 하나의  슬픈 황금을 보는 일. 이것이 시  영원한 가난의 되풀이: 시는 여명처럼  석양처럼 늘 되돌아온다.  이따금 하오가 되면 거울 한가운데서  한 얼굴이 우리를 빤히 쳐다본다;  예술은 바로 그런 거울 같은 거,  우리 스스로의 얼굴을 밝혀주는.  이야기를 들으면, 율리시스는 그 위대한 업적에도  지치고 지쳐, 고향 이타카에 돌아와 마을을 바라보며  너무 사랑스러워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그 초라하고 파란  마을을 보며...... 예술은 위대하지 않다: 이타카 마을, 그 파란 영원.  또한 그것은 끝없는 강물 같다  흘러가고 남고...... 만물은 흘러간다는  헤라클레이토스의 수정거울; 모든 것은 다 똑같다  그리고 다르다, 끝없는 강물처럼.      ======================4   시학 / 보르헤스 시간과 물로 이루어진 강을 보며 시간은 또 하나의 강이라는 것을 기억하는 것. 우리 또한 강처럼 흘러간다는 것과 얼굴들도 물처럼 흐른다는 사실을 아는 것. 깨어 있음은 꿈꾸지 않음을 꿈꾸는 또 하나의 꿈이라는 것을 느끼는 것. 우리들의 삶이 두려워하는 죽음은, 꿈이라고 부르는, 매일 밤 찾아오는 그 죽음임을 느끼는 것. 하루와 일 년에서 인간의 나날과 해들의 상징을 보며 그 해들의 모욕을 음악 한 소절, 작은 중얼거림, 혹은 하나의 상징으로 바꾸는 것. 죽음 속에 꿈을 보는 것, 황혼 속에서 슬픈 황금을 보는 것, 그것이 가련하지만불멸하는 詩. 시는 여명과 황혼처럼 돌아온다. 때때로 오후에는 어느 얼굴 하나가 거울 저쪽에서 우리를 보고 있다. 예술응 진짜 자기 얼굴이 비춰지는 그 거울 같은 것. 경이에 지친 오디세우스는 멀리서 푸르고 소박한 고향 아티카를 보고 울었다고 한다. 예술은 영원의 푸른 이타카이지, 경이의 이타카가 아니다. 또한 예술은 끝없는 강물 같은 것. 흐르고, 머물고, 무상한 헤라클레이토스의 수정이 된다. 끝없는 강물, 그처럼 동일자이며 타자이다. ============================   시간과 물로 이루어진 강을 보며 시간은 또 하나의 강이라는 것을 기억하는 것. 우리 또한 강처럼 흘러간다는 것과 얼굴들도 물처럼 흐른다는 사실을 아는 것.   깨어 있음은 꿈꾸지 않음을 꿈꾸는  또 하나의 꿈이라는 것을 느끼는 것. 우리들의 삶이 두려워하는 죽음은, 꿈이라고 부르는, 매일 밤 찾아오는 그 죽음임을 느끼는 것.     하루와 일 년에서 인간의 나날과 해(年)들의 상징을 보며 그 해들의 모욕을 음악 한 소절, 작은 중얼거림, 혹은 하나의 상징으로 바꾸는 것.   죽음 속에 꿈을 보는 것, 황혼 속에서 슬픈 황금을 보는 것, 그것이 가련하지만 불멸하는 시詩. 시는 여명과 황혼처럼 돌아온다.   때때로 오후에는 어느 얼굴 하나가 거울 저쪽에서 우리를 보고 있다. 예술은 진짜 자기 얼굴이 비춰지는 그 거울 같은 것.   경이驚異에 지친 오디세우스는 멀리서 푸르고 소박한 고향 아티카를 보고 울었다고 한다. 예술은 영원의 푸른 이타카이지, 경이의 이타카가 아니다.   또한 예술은 끝없는 강물 같은 것. 흐르고, 머물고, 무상無常한 헤라클레이토스의 수정水晶이 된다. 끝없는 강물, 그처럼 동일자同一者이며 타자他者이다.   @@=보르헤스가 눈 먼 후에 산문에서 운문으로, 그것도 '구술'에 의해서 씌어진 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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