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하소설 황혼 제3권
김장혁
50. 악처와 첫 상봉
종호는 대림역에서 지하철을 잡아타고 류려평을 면회하러 떠났다.
정작 리혼하자고 마음먹자 종호의 마음은 비할데 없이 홀가분하면서도 괴로웠다.
(진작 리혼해야 했는데. 이게 뭔가? 한뉘 평생 서로 사랑하지도 않으면서 30여년이나 갈라 살지 않았는가? 결과는 어떻게 됐는가? 사랑이 없는 가정, 허울 밖에 없는 삭막한 가정이란 허울 밑에서 둘 다 졸혼하고 려향 하나를 쳐다보면서 불행하게 살지 않았는가?)
순간 종호는 저도 몰래 코마루가 시큼해났다. 그는 지하철을 타고 달려가면서도 옛날 류려평과 처음 만나던 일로, 사돈보기 하던 일로, 결혼하던 일로 눈앞에 삼삼히 떠올랐다. 비록 그것은 기억하기도 싫은 쓰라린 회억이였지만 쓰라린 꿈, 허위적인 허상 같은 추억이 자꾸 떠오르는 것을 어쩌는 수 없었다.
(그때는 살기도 어려웠지. 건데 류국장은 딸을 시집 보내지 못해 그랬을까? 아님, 그의 말대로 ‘대학생 사위를 삼게 돼 기뻐 그랬을까? 사돈보기를 해서 넉달도 안돼 번개식 결혼까지 해버렸지.)
종호는 도리머리를 절레절레 저었다.
(우리 집은 가난해 한 해에 사돈보기를 하고 결혼까지 할 돈이 없었지. 그렇게 번개식결혼을 총망히 하다나니, 헛참, 류려평 말처럼 한족색시한테 한족 례법대로 제대로 해주지 못했지. 그래서 류려평은 항상 두덜거렸지. 금팔지나 금목걸이를 사주지 않은게 그렇게 속에 내려가지 않았을까? 전번에 려향이 면회하러 찾아 갔을 때까지도 우리 집 흉 봤다지 않는가. 원, 참. 가난이 죄였지.)
보통 딸을 가진 부모, 그것도 금이야 옥이야 하고 손에 쥐만 부서질가 봐 겁나고 놓으면 날아날가 봐 아까와 할 무남독녀를 시집 보내지 못해 그랬을까.
류려평의 아버지 류생남은 관광국 국장이였다. 그는 아들을 낳으려고 부모가 지어준 좋은 이름까지 버리고 생남(生男)으로 고쳤던 것이다. 그러나 그는 류려평을 낳은 후에는 더 생육하지 못했다. 일부 의사들은 그가 너무 공술을 몇십톤이나 마셔서 저액이 다 취해 생육하지 못한다고 했다고도 한다.
류생남 국장은 자기 단위에 실습으로 취재하러 온 종호를 보자 첫 눈에 마음에 들어 자기 딸의 중매를 서기까지 했다.
류국장은 종호가 취재하는 모습을 보고 첫 눈에 사내답게 잘 생겼다고 인상이 아주 좋았다.
그는 너부죽한 얼굴에 환한 웃음을 지으며 종호의 손을 잡고 이것 저것 물었다.
“정치학부 졸업생이라. 내 후배구만.”
“네- 그렇습니까?”
“고향은 어느 시내에 있소?”
“아닙니다. 저는 이 시내에서 30여리 떨어진 시골 농촌에 있습니다.”
“오- 그래? 출신이야 아무 것도 아니지. 자기 노력으로 운명을 개변해야지.”
종호는 그저 머리를 숙이고 듣기만 했다.
“취재에 흥취 있는 거 보면 혹시 기자 되는게 소원이 아니오?”
종호는 뒤더수기를 긁적거리면서 속이지 않고 말했다.
“네, 그렇습니다. 저는 고중 때부터 기자로 되는 것이 꿈입니다.”
류국장은 퉁사발눈을 내리깔고 좀 궁리하더니 물었다.
“이제 당장 대학교를 졸업하겠는데 신문사에 배치받게 되오?”
종호는 머리를 푹 숙였다.
“파악이 없습니다. 저 같은 시골 농민 아들이 언제 신문사에 다 배치받겠습니까? 어림도 없습니다. 우리 학급에는 한다하는 교수네 딸로, 공안국 과장네 아들로, 명작가네 며느리로 문벌이 높은 자녀들이 수두룩합니다. 그런 동기들이 뒤문치기 해 다 좋은 단위에 배치받고 나면 언제 내 차례 다 있겠습니까?”
그때 류국장은 됐다 싶었는지 사무상을 손바닥으로 살짝 치며 벌떡 일어섰다.
“리기자, 그게 무슨 그리 대단하오? 자, 내 말만 듣소. 그럼 신문사에 들어가게 도와줄게.”
그래도 종호는 류국장을 미덥잖은 표정으로 바라보기만 했다.
류국장은 손으로 아래로부터 하늘로 쭉 그어올리면서 큰소리를 탕 쳤다.
“리종호씨를 시골로부터 신문사에 쒹- 날아들어가게 도와줄게.”
“네?”
종호는 천천히 일어나면서 멍해 놀란 눈길로 류국장을 쳐다보았다.
이윽고 그는 도리머리를 절레절레 저었다.
“졸업배치 그리 식은 죽 먹기겠습니까? 제 같은 시골 농민의 자식이 신문사에 들어가 기자로 된다는 건 하늘의 별 따기와 같은 일입니다.”
류생남 국장은 확신에 차 말했다.
“종호는 아직 사회 단련이 없어서 잘 모르오. 인간의 관계와 권력이 얼마나 위력이 있는가 잘 모르고 있단 말이오. 내 말만 잘 듣소. 그럼 당장 신문사에 들어갈 수 있소.”
그는 종호한테 다가와 어깨를 다독였다.
“내겐 무남독녀 하나 있소. 먼저 그 애와 만나보오.”
“네?”
(류국장의 딸은 한족 여자 아닌가? 민족심이 강한 내가 어찌 한족여자한테 장가 들겠는가?)
그러나 류국장은 고집을 부렸다.
“종호가 내 사위 되면 모든게 풀리게 되오. 알만 하오?”
류국장은 아주 로련하게 고삐를 좀 느슨히 늘여주면서 뒷말을 달았다.
“글쎄 내 딸이 마음에 안 들면 그만두오. 혹시 한족이라고 나무릴지는 몰라도 우리 딸은 이 시내에 내놓으면 뒤에 숱한 총각들이 줄을 설 지경이오. 또 한족이면 어떻고 조선족이면 어떻소? 황차 우린 민족자치지역에 있는데 한족과 조선족이 결혼하면 민족단결에도 좋을 거 같소. 여기 한족이나 조선족이나 이젠 민족습관도 거의 비슷해졌잖았고 뭐요? 그저 호구부에 한족과 조선족을 갈라 썼을 뿐이지. 안 그래? 우린 장차 민족단결 모범가정이 될 수도 있잖아? 허허허.”
그러나 종호는 소홀히 결단을 내리지 못했다.
류국장은 조급해났다. 그는 류덕재가 류려평과 너무 가까이 치근거리는 것을 보고만 있을 수 없었다. 자칫 한고조 류씨 집 안 망신을 시킬가 봐 겁났던 것이다. 그래서 일찌기 류려평을 조선족이든 뭐든 대학생한테 시집 보내면 그만이라고 여겼던 것이다. 그러나 그는 지금 자기가 소를 잃고 창고 문을 고치는 격이 된 줄도 모르고 뒷북을 치고 있었다.
“종호, 자기 원대한 리상을 실현하자면 내 방조를 받아햐 실현할 수 있소. 특히 제 같은 농민의 아들은 말이오. 내 같은 가시아버지를 만나면야 커다란 날개를 단게 아니오. 등을 기댈 높은 산도 있어야 장차 정계에 진출해 큰 일을 할 수 있단 말이오. 알만 하오?”
그 말에 종호는 천천히 머리를 끄덕였다.
“그럼 내 딸을 불러 올게 만나보겠소?”
“네. 그러죠.”
“좋소. 마음에 안 들면 이 일은 없는 걸로 하면 되오.”
류국장은 말을 마치자 부랴부랴 전화를 쳤다.
“려평아, 여기 내 사무실에 당장 오라. 내 급한 일이 있다. 뭐? 빨리 오라. 좋은 일이 있다. 응? 응. 그래. 어서 오라.”
종호는 그때 성급한 류국장이 우스워 희죽이 웃었다.
반시간도 안돼 눈이 어글어글한 이쁜 한족 처녀애가 헐레벌떡 사무실에 들어섰다.
종호는 눈뿌리 빠지게 처녀애 아래위를 훑어보았다.
말똥데쌍머리채를 땋아 달랑 늘여뜨린 처녀애 얼굴색이 백지장처럼 하얗고 꽤나 이쁘게 생겼다. 체격도 물찬 제비처럼 균형이 잡혀 있지 않겠는가.
특히 우유빛 얼굴에 어글어글한 한쌍의 쌍겹눈이 퍽 매력적이었다. 시내에 내세우도 흠잡을데 없는 미녀가 틀림없었다. 진짜 80연대 인기배우 刘晓庆이나 陈冲처럼 이뻤다.
류려평은 종호을 할끔 쳐다보다가 따가운 눈길을 피해 아빠한테 다가갔다.
“아빠, 무슨 일인가요?”
류국장은 마중나가며 말했다.
“왔느냐? 내 공주님.”
“아빠,”
류려평은 낯선 종호가 사무실에 있는 것을 보고 어리광을 부리려다가 그만 두었다. 빈 사무실이면 진작 그녀는 아빠 품에 와락 안겼을 것이다.
“려평아, 서로 알고 지내라. 우리 단위에 실습취재하러 온 리종호 기자야.”
려평은 눈인사를 했다. 아무리 봐도 시골 티가 났다. 람루한 옷이랑, 허연 헝겁신이랑… 얼핏 봐도 가난한 집 자식이라는 것이 엿보였다.
“종호, 내 딸 류려평이오. 알고 지내오.”
종호는 쑥스러워 손을 내밀 엄두도 못하고 그저 눈인사를 했다.
류국장은 종호한테 다가와 말했다.
“내 딸 어떻소? 이쁘지?”
종호는 머리를 끄덕였다.
“정말 이쁩니다. 영화배우 류효경이나 진충처럼 이쁩니다.”
“됐어. 류려평과 자주 만나 사이좋게 보내오. 모든 건 저네 둘한테 달렸소. 기자로 되는 꿈도 그렇고, 휘황찬란한 앞날…모든게 단꺼번에 해결될 수 있소. 내만 믿소.”
종호는 그제야 류국장의 속심을 알게 됐다.
“아빠!”
류려평은 아빠한테 눈을 곱게 흘겼다. 그녀는 시골의 꼬리빵즈 총각이 싫었던 것이다.
그러나 류국장은 우물에 가서 숭늉을 먹을 상으로 다그쳤다.
“우리 딸이 어떠오? 우리 딸은 시집 보내겠다고 내놓으면 중매군이 문턱이 다슬 지경이오.”
종호는 너무나도 당황해 자리를 뜨려고 했다.
“후에 천천히 봅시다.”
류국장은 머리를 끄덕였다.
“그래. 오늘 대답할 필요없소. 잘 고려해 보오. 신문사 김사장은 내 대학 동기오. 난 종호 기자 꿈을 얼마든지 성사시켜줄 수 있단 말이오.”
류국장은 자리를 뜨면서 종호 어깨를 다독여주며 힘을 실어주었다.
류려평이 아니꼬운 눈길로 쏘아보자 류국장은 류려평한테 눈을 찔끔해 보이며 엄지를 척 내둘렀다.
그는 어떻게 하나 류려평과 류덕재를 시급히 갈라놓아야 했다. 그는 그들 둘이 죽마고우여서 어려서부터 친오누이처럼 찰떡처럼 붙어다니는 걸 아는 것을 알았다. 그러나 성인이 된 다음에는 종친 남녀 자식들이 한데 붙어다니다가 일이라도 칠가 봐 저으기 근심됐다. 그러던 차 종호가 백마왕자처럼 딸 앞에 나타날 줄이야 누가 알았겠는가.
류국장은 딸과 종호 일이 될 거 같아 흐뭇해 사무실에서 나가며 딸과 종호한테 자리를 비워줬다.
종호는 눈길이 그리 곱지 않은 류려평을 흘끔 훔쳐보고나서 몇마디 말도 나누지 않고 자리를 떴다.
그러나 후에 종호는 신문사에 배치받으려고 끝내 류국장의 뜻대로 류려평과 사귀기로 했다. 종호와 류려평의 혼사말은 진짜 신문사 기자를 내걸고 흥정하고 거래하기 위한 혼사말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것은 그들의 악연의 시작이었다.
그러나 류려평은 집에 돌아가 종호와의 혼사말을 반대해나섰다. 종호가 사내답게는 생겼지만 시골 “농포 아들”인데다가 꼬리빵즈이고. 맏이여서 시부모를 모시고 살아야 하는 처지여서 썩 마음에 들지 않았던 것이다. 설상가상으로 숱한 시누이, 시동생이 있어 생각만 해도 진절머리 날 지경이었다.
“얘, 신랑감이 좋으면 됐지. 시어머니나 시동생들과 산다고 그래? 위생학교 졸업생이 어데 가서 저렇게 츨한 대학생을 얻는다고 그래?”
류려평은 두툼한 입술에 따발 서너개를 걸 지경으로 뽀도통해서 몸까지 탈면서 떼를 썼다.
“시골 꼬리빵즈지. 생활습관이고 뭐고 맞지 않는데 어떻게 산다고 그래요? 애를 낳아도 조선족으로 올려야 하는데. 종호한테 시집 안 가겠습니다.”
한편 류려평은 류덕재와 그래서 임신한 일이 탄로나면 아빠한테 혼나는 건 둘째고 정조관념이 센 그때 시집가지 못할 수도 있다는 것도 근심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녀는 날이 갈수록 점점 부어오르는 배를 내려다보면서 불안하기만 했다.
류생남 국장은 비록 딸이 종친네 아들한테 유린당해 임신한 일을 몰랐지만 종호가 딱 마음에 든데다가 대학생 사위를 삼으려고 무남독녀 류려평을 얼리고 닥쳐서 끝내 종호와 억지로 약혼시켰던 것이다.
종호는 신문사 기자로 되려고 눈을 질끈 감고 류려평과 약혼했던 것이다.
그때 류려평은 류덕재 애까지 밴 처지이기에 하는 수 없이 싫은대로 눈을 찔끈 종호와 약혼했던 것이다. 지난 세기 80년대만 해도 전통적인 정조관념이 센 때여서 정조를 잃은 걸 아는 날엔 류려평은 시집가기도 어렵다는 것을 그녀도 잘 알고도 남음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