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하소설 황혼 제4권
김장혁
58. 나영의 고민
여경들은 나영을 끌고 곧추 감방에 가지 않고 지하심문실로 들어갔다.
여경은 나영을 쪽걸상에 앉혀 놓기 바쁘게 불시에 불렀다.
“박나영씨!”
“네.”
나영이 혀를 홀랑 내밀었을 땐 늦었다.
여경은 히쭉 웃으며 물었다.
“당신, 나영이 맞지?”
“아닌데요.”
여경은 표독스런 눈길로 나영을 쏘아보았다.
“금방 나영을 부르자 당신의 제1반응은 ‘네.’였어요. 누굴 속이려고? 흥!”
남경장은 코웃음쳤다.
“면회실 대화에서 당신은 나영언니 어쩌구 저쩌구 하지 않았는가요? 나중엔 내 어쩌구 저쩌구 했어. 성실하게 대답하세요. 나영 맞죠?”
나영은 머리를 툭 떨어뜨렸다.
여경은 심리공격을 들이댔다.
“당신이 나영이 아니고, 저쪽 수원 쪽에 있는 쌍둥이 자매가 나영이라고 가정합시다. 언젠가 쌍둥이자매 중에 하나는 나영의 죄로 감옥살이를 해야 할 겁니다. 그래 나영인 쌍둥이 여동생 박춘영씨를 나영으로 몰아 자기 대신 감옥살이를 시키겠는가요? 너무 자사자리하지 않는가요? 자기 살자고 여동생을 보고 자기 죄값을 치르게 하는 건 너무 하잖아요? 량심에 걸리지 않는가요? 빨리 나영이란 걸 승인하고 발편잠을 자세요.”
그 말에 나영은 쌍까풀눈이 데꾼해 머리를 번쩍 쳐들었다.
(안돼, 내 대신 춘영이 감옥에 들어가 죄값을 치르게 해선 절대 안돼.)
나영은 머리를 푹 숙였다. 그는 목구멍으로 들어가는 목소리로 천천히 진실을 토했다.
“제가 바로 인터폴 지명수배도주범 박나영입니다. 저를 귀국시켜 주십시오. 저는 성실하게 죄행을 탄백하고 죄값을 달갑게 치르겠습니다.”
두 여경은 서로 마주 보며 씨무룩이 웃었다.
“이제야 정신이 온전히 돌아왔군요.”
"진작 승인할게지. 바쁜데, 우리 시간 잡아먹으면서. 참."
뭔가 쓰르륵 쓰르륵 복사하는 소리 들렸다.
여경이 복사기에서 종이 한장을 쑥 뽑아 나영 앞에 내밀었다.
“이걸 읽어보고 사실과 맞으면 싸인하고 지장을 찍으세요.”
종이에는 인터폴 지명수배도주범 박나영이라고 밝혀져 있었다.
나영은 다 읽어보고 여경의 요구대로 싸인하고 빨간 지장까지 꾹 눌러 찍었다.
그녀는 뜻밖에도 해탈감이 나면서 홀가분해지는 감을 느꼈다.
그녀는 한시름 놓고 한숨을 땅이 꺼지게 내쉬었다.
나영은 피뜩 성림이 떠올랐다.
(내가 중국에 인도돼 가면 성림은 어쩌지? 그 앤 여기서 공부시켜야겠는데.)
모성애는 무서운 것이었다. 나영은 머리를 번쩍 쳐들고 여경들 보고 비난사정했다.
“당신들도 여자 아닌가요? 애를 키워 봐서 알겠지만 엄마는 애를 떠나기 힘든데요.”
그러자 여경들은 서로 마주보며 피씩 웃었다.
“누가 애 엄만가요?”
나영은 머리를 숙이면서 사과하였다.
“미안해요. 처녀들 보고 애 엄만가 해서요.”
나영은 뒷말을 이었다.
“한가지 요구 있는데요. 제가 중국에 인도돼 가도 내 하나 밖에 없는 아들애 성림을 한국에 남아 공부하게 도와 주십시오. 애 어머니 최후 요구입니다.”
여경은 피씩 웃었다.
“어린애는 무죄지요. 이 일은 법무부와 출입국 사무소에서 할 일인데요. 당신이 중국에 인도되면 여기 성림의 후견인은 있는가요?”
나영은 묻기 바쁘게 대답했다.
“있어요. 쌍둥이 여동생 박춘영이 수원에 있는데요. 또 카시모도, 아니, 금방 저와 면회한 리종호씨도 있어요. 지금 리종호씨가 그 애를 자기 집에 데려다가 보고 있는데요.”
여경은 머리를 끄덕였다.
“그럼 저희들이 법무부와 출입국 사무소에 잘 말해 보겠어요. 근심말아요.”
나영은 허리를 꼽싹거리며 인사했다.
“고맙습니다. 좋긴 제가 중국에 가서 무죄로 풀려나오면 재입국을 허락해주십시오.”
여경은 코웃음쳤다.
“흥, 무죄? 무죄면 최정호씨와 함께 일본으로, 대한민국으로 도망쳐 다녔을까요?”
남경장도 조소를 입귀로 흘렸다.
“당신이 무죄면 중국 당국에서 인터폴 지며수배도주범으로 한국에 나포를 협조해달라고 요청했을까요?”
그러나 나영은 포기할 수 없었다.
“글쎄 어떤 결론이 내려질지는 모르겠습니다. 저의 죄는 경범죄라고 봅니다. 언젠가는 사랑스러운 한국에 돌아와 아들애를 공부시키면서 살 겁니다. 그때 저의 어린애를 도와준 분들을 잊지 않고 은혜를 꼭 갚아드리겠습니다.”
남경장과 여경들은 서로 마주 보며 피씩 웃었다.
남경장은 일어나 서류를 거두면서 중얼거렸다.
“그럼 그때를 기다리지요.”
여경은 나영을 데리고 독감방으로 갔다.
나영은 마치 중죄수처럼 독감방에 가두는 것을 보고 저으기 불안했다.
(아마 인차 중국에 인도되겠지.)
그녀는 독감방에 들어가 침대에 털썩 주저 앉았다.
여경이 자물쇠를 절컥 잠그는 소리가 들리었다. 뒤이어 디똥디똥 구두발소리 점점 멀어져갔다.
나영은 쓸쓸한 독감방 안에 갇힌 채 착잡한 고민에 빠졌다.
(중국에 인도돼도 두려울 건 없어. 5만원 때문에 판결받으면 몇년 판결받겠는가? 그 돈 5만원도 철석을 시켜 심계국에 바치게 하지 않았는가. 그럼 감형받겠지. 전국을 들썽한 주아무개도 몇십억 수뢰하고 숱한 애인을 두고 살아도 총살받지 않았는데. 내야 몇해 징역 받겠지. 주아무개는 아파트만 해도 몇백채 가지고 살았다고 하지 않는가. 진짜 9,999채나 쓰고 산 북경 고궁 황제 맞잡이 아니였던가! 주아무개는 아파트 어떻게 많았으면 수십명이나 되는 애인들한테 한두채씩 나눠줬다고 하지 않는가. 그런데 무기징역도 판결받지 않았다. 내야 주아무개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야. 좀도적에 불과하지. 법이야 항상 공정하지.)
여기까지 생각하자 나영은 저으기 안심되는 것이 이상했다. 그는 침대에 훌 드러누워 독감방의 어둠침침한 천정 한 곳을 뚫어지게 응시하면서 속궁리를 끝없이 굴리었다.
(또 그 5만원을 내 염채기에 혼자 넣었는가. 최국장을 줘서 류덕재와 류려평 행장을 다 주었지. 난 최국장이 하라는대로 했을 뿐이야. 난 색마 최국장한테 홀리워서 그 놈의 노리개로 놀아나면서 새파란 나이에 내 전도를 망친게 후회될뿐이야. 이젠 다 쒀놓은 죽을 어쩌는 수 있는가. 법원에서 판결하는대로 몇해 징역살이 하면 다야.)
그녀는 자포자기하면서 안도의 한숨을 땅이 꺼지게 내쉬었다. 그러나 성림을 한국에 혼자 남겨두고 귀국해야 하는 것이 마음 한쪽에 걸리었다.
(다른 건 괜찮은데 내 감옥에 갇히면 성림은 어쩌는가?)
나영은 벌떡 일어났다.
그녀는 중국에 인도돼가면서 성림을 낯선 이국타향에 두고 가는 것이 자못 고통스럽고 근심스러웠다.
“성림은 이제 일곱살 밖에 안되는 앤데. 내 감옥에 간 걸 알면 얼마나 타격이 클까? 내 감옥에 들어가면 걔는 어쩌는가? 아무리 카시모도와 춘영이, 지영이 옆에서 돌본다고 해도 그렇지. 설상가승으로 카시모도는 리혼수속하러 요즘 귀국해야 한다고 하지 않는가.)
나영은 성림의 처지를 생각할수록 바늘방석에 앉은 것처럼 안절부절하지 못했다.
(옆에 엄마 없으면 성림은 한쪽 날개 끊어진 새 같은데. 모성애 없는 성림이 얼마나 고독할까? 얼마나 쓸쓸하고 고통스러울까? 모자간이 생이별해야 하는 이 비극을 어쩐단 말인가?”
나영은 중얼거리며 일어나 서성거리다가 독감방의 쇠살창을 부여잡고 창 밖을 내다보았다.
삼복염천이라 쇠살창 창문으로 뜨거운 열기가 풍기어 들어왔다. 그 무더운 날에도 창 밖의 하늘은 의연히 그렇게도 파랗고 아름다웠다. 감방 울안의 파란 나무가지에 이름모를 알룩달룩한 새 한마리 짹짹거리다가 어디론가 포로롱 날아갔다.
(아, 나도 저 새처럼 날개가 돋혔으면 얼마나 좋겠는가? 쇠살창을 빠져나가 자유롭게성림이 옆에 훨훨 날아가겠는데.)
나영은 쇠살창을 탕탕 치며 울분을 토해냈다. 그는 정호한테 속은 것이 분했고 정호한테 배신당한 것이 격분했고 자기 심신을 유린할대로 다 한 정호가 가증스러웠다.
그녀는 전람관의 공금에 손을 댄 것을 뒤늦게나마 못내 후회했다. 그녀는 당의 기률과 국가의 법을 지키지 않은 것이 제일 후회됐다.
나영은 쇠살창을 부여잡고 뒤늦게 통탄했다.
(법을 지키고 사는게 젤 행복해. 제게 차례진 돈을 쓰면서 있는만큼 사는게 젤 즐거운 향수야!)
2013년 11월 20일 12시 16분 조회:1894 추천:27 작성자: 김장혁
김장혁 프로필
필명: 민성, 애명: 조왕돌
1958년 중국 길림성 연길현 조양공사 근로대대 제8생산대에서 조왕돌로 태여났음. 스님의 말을 듣고 부모는 앓지 말고 건실하게 자라라고 갓난애기 나를 보에 싸서 시퍼런 칼과 함께 함지에 넣어 조왕간 덕대에 올려놓았음. 그래서 어릴 때 애명도 "조왕돌"이었음. 그러나 미신과는 달리 시시콜콜 앓기만 해 약골이었음.
1974년, 교하시 모 한족초중 졸업, 1976년 고향의 산골 5.7고중을 졸업하고 귀향해 1년 반 동안 소 궁둥이를 쳤음.심심산골 목동출신.
1981년 12월 중국 연변대학 조문학부 졸업.
1982년 1월- 1987년 중국 길림성 룡정시 룡정중학교 교원.
1988년-1996년 중국 길림성 연변인민방송국 기자.
1997년- 2016년 연변인민출판사 "청년생활"잡지사 부주필, "소년아동"잡지와 "별나라"잡지 련합편집부 부주필, "농가"잡지와 "로년세계"잡지 련합편집부 주필 력임, 연변인민출판사 편심(교수급편집).
2018년 5월 정년퇴직.
료녕성조선족로인협회 부회장, 명예회장 력임.
현재 연변주아동문학연구회 사단법인대표, 회장, 당지부 서기.. 편집부 주필.
주요저서:
대하소설 "울고 웃는 고향"(총 7권, 350여만자)
대하소설 "진달래 소야곡"(총 4권, 120여만자)
대하소설 "졸혼"(총 6권, 150여만자)
대하과학환상소설 “야망의 바다”,"욕망의 천지", "황천의 유령"(총 3부작, 90여만자)
대하소설 "황혼"(총 4권)
장편실화소설 "부르하통하강반 살인악마의 유령"
장편실화소설 "38선에서 싸우던 나날에"(공저) 등
장편소설 26권.
그외.
장편실화 "인민의 훌륭한 법관 록도유"(한문)
중단편소설집 "사랑환상곡"
동화소설집 "멋쟁이 매옹이와 찍찍의 겨룸"
동화소설선집 "괴물 클론바우 모험기"
아동문학작품집 "호랑이와 사냥군"
문학작품집 "사랑은 요술쟁이야"
수필집 "리별"
실화작품집 "빨간 장미꽃 함정"등
저서 총 34권, 문학작품 총 1,000여만자.
수상:
백두컵문학상, 아리랑문학상, 전국소수민족아동문학작품우수상 (수차), 한중옹달샘아동문학상, 한중동심컵아동문학상, 웰빙아동문학상, 한국 KBS방송 수기우수상, 한국 대전매일수필문학상, 두만강수필문학상 , 동북3성우수도서상 (2차), 2010년 연변작가협회 선진작가상 등 30여개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