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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드레 마송(Andre Masson, 1896.1.4 ~ 1987.10.28 ) 국적 : 프랑스 출생지 : 프랑스 우아즈현(縣) 발라니 주요작품 :《물고기의 싸움》(1927) 《약탈》(1932) 작업중인 마송 French born Balagny 1896, died Paris 1987. Surrealist painter, print-maker, illustrator and stage designer. He was a leading figure in the 20C French art scene 우아즈현(縣) 발라니 출생. 파리의 미술학교에서 프레스코를 공부했으나, 거의 독학으로 F.V.E. 들라크루아, 마티냐, 엘 그레코 등과 함께 헤라클레이토스, 니체, 랭보, 로트레아몽 등의 저작으로부터 자신의 예술형성의 원천을 얻어냈다. 큐비즘의 한 시기를 거쳐 상징적 화풍으로 바뀌고 나서, 앙드레 브르통의 주목을 받았다. 1929년까지는 쉬르리얼리즘운동에 참여, 존재의 본질적인 드라마라는 우주적인 문제를 추궁하였다. 한때 카탈루냐 지방에서도 활동하였고 내란시에는 에스파냐의 압제에 항의하였다. 1941년 미국으로 망명, 흑인과 인디언 신화에서 새로운 예술의 원천을 발견하고 미국 화단에 영향을 주었다. 작품에《물고기의 싸움》(1927) 《약탈》(1932) 등이 있다. *앙드레 마송의 회화 마송이 회화에서 의도한 것은 브르통의 자동기술과 같이 무의식 상태에서 그려지는 자동묘사 그림이다. 주로 드로잉적 회화, 물감·모래를 혼합한 모래 그림 작업을 한다. 브르통과 알게된 직후 1923-24년에 그는 재빠른 선묘에 의한 드로잉 작품을 통해 세상과 우주에 대한 자신의 감성을 격정적으로 나타내었으며 그의 드로잉은 기이한 동물, 신화적 이미지가 자주 등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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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송의 작품은 즉흥적이고 암시적이며 상징적이었다
르네 파스롱의 <간추린 초현실주의 백과사전>(1984)에 의하면 “오토마티즘적인 초현실주의 드로잉의 진정한 발명가”는 앙드레 마송Andre Masson(1896~1987)입니다.
“1923년 혹은 1924년경 마송의 드로잉들은 여기저기에 짐승이나 색의 윤곽선을 암시하는 듯한 ‘방황하는 선들’로 발전했다.”
마송은 곧 보다 정교한 오토마티즘 기법을 개발했는데 접착성 물질로 캔버스에 드로잉한 후 색 모래를 흩뿌려서 색을 입히는 방법이었습니다.
우아즈의 바라니 태생 프랑스 화가 앙드레 마송은 브뤼셀 아카데미에서 회화를 공부한 뒤 1912년 파리로 가서 에콜 데 보자르에 입학했습니다. 제1차 세계대전에 참전하여 심한 부상을 입었다. 전쟁 중의 경험은 마송에게 커다란 영향을 끼쳐 인간의 본질과 운명에 대한 심오하고 난해한 호기심, 모든 사물의 상징적 통일에 대한 모호한 신념을 갖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이런 사고를 철학적으로 진전시킬 만한 지성이 부족했던 마송은 예술 활동을 통해 그런 사고를 통찰하고 표현하는 데 전념했습니다.
그는 1950년에 쓴 <그린다는 기쁨Le Plaisir de Peindre>에 적었습니다.
“이것은 본능보다 사고가, 아니면 흔히 영감이라 불리는 것보다 지성이 우월하다는 점을 인정해야 한다는 의미인가? 결코 그렇지 않다. 화가이자 시인들이 다루는 이질적인 요소들의 결합은 매우 빠른 시간 내에 이루어진다. 무의식과 의식, 직관과 이해는 초의식 상태에서 눈부신 일치를 이루도록 변화되는 것이 분명하다.”
마송은 1919년 파리로 돌아갔고 입체주의, 특히 후안 그리스의 영향을 받았고 동시에 앙드레 드랭의 영향도 받았습니다.
1922년부터는 초현실주의 운동의 창시자들인 미로, 에른스트, 시인 미셀 레리스, 조르주 랭부르와 친교했으며, 랭부르는 마송의 전시회 카탈로그 서문을 써주었습니다. 브르통의 주목을 받아 마송은 1924년에 초현실주의 운동에 동참했습니다. 특히 오토마티즘이라는 초현실주의적 실행에 깊은 인상을 받아 이를 ‘무의식의 힘에 대한 탐구’로 여기면서1928년 브르통과의 의견 충돌 후 초현실주의 운동을 떠날 때까지 계속해서 이 기법으로 작업했습니다. 물감 대신 풀을 이용해 캔버스 위에 오토마티즘적인 그림을 그린 후 채색된 모래를 뿌려 색채를 입히는 방식으로 회화를 제작했습니다. 그의 작품은 즉흥적이고 암시적이며 상징적이었습니다.
1940년 미국으로 간 마송이 뉴욕 그룹의 피신해 온 초현실주의자들 중에서 아슐리 고르키와 함께 추상 표현주의의 초기 단계에 끼친 영향은 상당했습니다. 마송의 모래 회화에 나타난 오토마티즘과 잭슨 폴록이 실행한 미국 액션 페인팅 사이의 유사성은 여러 차례 지적되었습니다.
마송은 1946년에 프랑스로 돌아가 이듬해 엑상프로방스에 정착했습니다. 마송은 매우 뛰어난 기법과 때로 모호하기는 하지만 독자적인 내적 시각, 외형을 날카롭게 포착하는 눈을 결합시켜 독창적인 작품을 제작했습니다.
마송은 <그린다는 기쁨>에 적었다.
“상상력을 발휘하여 제작한 작품에서 놀라움의 효과가 사라진 뒤 나타나는 진정한 힘은 다음 세 가지 조건에서 나온 결과일 것이다. 첫째는 선행한 명상의 강도, 둘째는 외부 세계를 바라보는 신선한 시각, 셋째는 이 시대 미술에 걸맞는 회화적 수단을 알아내고자 하는 필요성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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