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www.zoglo.net/blog/kim631217sjz 블로그홈 | 로그인
시지기-죽림
<< 4월 2025 >>
  12345
6789101112
13141516171819
20212223242526
27282930   

방문자

조글로카테고리 : 블로그문서카테고리 -> 문학

나의카테고리 : 世界 색점선

러시아적 미국 추상 표현주의 화가 - 마크 로스코
2017년 01월 15일 19시 44분  조회:4424  추천:0  작성자: 죽림
출생일 1903년
사망일 1970년
 
마크 로스코
마크 로스코

러시아 출신의 미국 화가로 미국 추상 표현주의, 색면 추상화가를 대표하는 화가 중 한 사람이다. 본명은 마르쿠스 로스코비츠(Marcus Rothkowitz)였으나 유럽에서 나치의 영향력이 확대되면서 현재의 이름으로 바꾸었다. 일반적으로 추상 표현주의 작가로 분류되지만 정작 자신은 추상 표현주의 작가로 분류되는 것을 극도로 싫어했다. 잭슨 폴록, 윌렘 드 쿠닝 등과 함께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미국 미술을 이끌었다.

마크 로스코는 러시아 드빈스크(현재는 라트비아 영토)의 유대인 가정에서 태어났다. 1913년 미국으로 이민하여 예일 대학교에서 공부했다. 그러나 엘리트주의와 인종 차별에 실망하고 2년 만에 자퇴했다. 이후 연령, 학력의 제한 없이 누구나 등록해 그림을 배울 수 있는 뉴욕 아트 스튜던트 리그에 입학해서 미술을 배웠다. 이곳은 학교라기보다는 예술가 공동체에 더 가까운 곳으로 사실상 독학으로 그림을 배웠다.

이때 로스코는 유명 미술관과 갤러리를 돌아다니면서 미술을 공부했다. 특히 근대 유럽의 화가들인 마티스, 몬드리안 등의 영향을 받아 그들의 뛰어난 색감 표현을 자신의 작품에 녹여내고자 했다. 1928년 처음으로 전시회를 열었고 비평가들에게 좋은 평가를 받는 등 소기의 성과를 얻었지만, 그뿐이었고 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며 생계를 이어 갔다. 1930년대에는 사실주의 스타일 그림을 그리면서 동시에 형태, 공간, 색채에 대해 집중적으로 탐구하기 시작했다.

무명 화가로 살며 늘 생활고에 시달렸기에 부인과 끊임없이 다투었다. 그러다 결국 1944년에 이혼했는데 나눌 재산이 거의 없어서 부인은 로스코의 작품을 몇 점 가져갔다. 1945년 구겐하임 미술관에서 전시회를 열고 작품을 팔았는데 가장 비싸게 팔린 작품 가격이 고작 750달러에 불과했다. 로스코는 《세상에서 가장 비싼 그림 100》에도 자주 등장하는 추상화가인 바넷 뉴먼, 클리퍼드 스틸과 오랫동안 친구로 지냈다. 이들과의 교류는 로스코가 자신의 색면 회화를 발전시키는 데 큰 영향을 끼쳤다.

1948년 2미터가 넘는 세로로 길쭉한 대형 캔버스에 경계가 모호한 색으로 이루어진 그만의 스타일을 처음 선보였다. 그는 감상자와 그림 사이의 영적인 교감을 중요시했고, 감상자를 압도할 만한 대형 캔버스만이 그런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믿었다.

미국 추상 표현주의 미술의 발전에 결정적 역할을 했던 딜러 베티 파슨스의 도움으로 1946년 모티머 브랜트 갤러리에서 개인전을 열었는데 이 전시회가 성공을 거두면서 점차 이름을 알리기 시작하여 1961년 존 F. 케네디 대통령의 취임식에 초대 받을 정도로 유명 인사가 되었다. 친구였던 바넷 뉴먼과 클리퍼드 스틸은 로스코가 성공한 이후 부르주아적 생활을 동경한다는 이유로 절교를 선언했다. 그들의 관계는 평생 회복되지 않았다.

자신의 예술 세계에 대한 평가와 오해에 극도로 민감했던 로스코는 말년에 자신의 심사를 통과한 고객에게만 그림을 팔았다. 1969년에는 미국 예술문학인 협회의 회원이 되었으며, 젊은 시절 무력감과 모멸감으로 자퇴했던 예일 대로부터 명예박사 학위를 받았다. 1968년 대동맥류로 인해 한동안 병원 신세를 졌으며, 1970년 슬럼프와 건강 악화를 비관하여 자신의 작업실에서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세상에서 가장 비싼 그림 100위 순위권 내 작품(2014년 기준)

• 16위. 〈오렌지, 레드, 옐로〉
• 28위. 〈넘버 1(로열 레드와 블루)〉
• 29위. 〈화이트 센터〉
• 38위. 〈무제〉
• 61위. 〈넘버 15〉
• 70위. 〈넘버 11〉
=
==============================

 
제작시기 1954년
가격 $75,122,500(788억 2000만 원)1)
작가 마크 로스코(Mark Rothko, 1903~1970)
 
마크 로스코, 〈넘버 1(로열 레드와 블루)〉, 캔버스 유화 / 288.9×171.5cm
마크 로스코, 〈넘버 1(로열 레드와 블루)〉, 캔버스 유화 / 288.9×171.5cm
“나는 아주 큰 그림을 그린다. 역사적으로 큰 그림은 대개
아주 숭고하고 호화로운 주제를 다룰 때 사용되었다는 것을 알고 있다.
하지만 내가 큰 그림을 그리는 이유는
사실 아주 친근하고 인간적으로 다가서고 싶기 때문이다.
이는 내가 아는 다른 화가들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작은 그림을 그리는 것은 당신을 화가 자신의 경험 바깥에 세워 놓고,
그 경험을 환등기로 비춘 풍경이나 축소 렌즈로 본 풍경처럼 보게 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림이 크면 당신은 그림을 내려다볼 수 없다. 그림 안에 있어야만 한다.”
-마크 로스코

1954년 마크 로스코는 시카고 아트 인스티튜트의 큐레이터와 공동 기획으로 첫 미술관 개인전을 열었다. 〈넘버 1〉은 이 전시 때 로스코가 직접 고른 여덟 작품 중 하나였다. 로스코는 그렇게 고른 여덟 작품에 직접 가격을 매겼는데 이 작품이 두 번째로 비싼 작품이었다. 이 전시회에서 그는 미국 현대 미술사에서 가장 중요한 딜러이자 컬렉터인 시드니 재니스와 인연을 맺었다.

이 작품은 이듬해인 1955년에는 뉴욕의 시드니 재니스 갤러리에서 전시됐다. 시드니 재니스 갤러리는 사업가이자 미술품 컬렉터인 시드니 재니스가 1948년 세계적인 화랑들이 밀집한 뉴욕 57번가에 문을 연 갤러리다. 이곳에서는 미국 현대 미술 역사에 한 획을 그은 중요한 전시가 많이 열렸다. 폴록이 첫 개인전을 연 베티 파슨스 갤러리 못지않게 시드니 재니스 갤러리도 미국 추상 표현주의의 발전에 공을 세웠다. 이 작품은 이렇게 역사적으로 중요한 의미를 지닌 갤러리에서 추상 표현주의가 한창이던 1955년에 열린 로스코 개인전에 나온 것이기에 더욱 큰 의미가 있다.

이 밖에도 이 그림의 전시 기록은 훌륭하다. 시드니 재니스 갤러리 이후에는 워싱턴 코코란 갤러리, 워싱턴 국립 미술관, 뉴욕 휘트니 미술관 등에서 전시됐다. 특히 1998년 워싱턴 국립 미술관에서 열린 로스코 회고전 때에는 전시 작품 백열여섯 점 중 이 작품이 플래카드, 안내 책자 등 회고전의 모든 홍보물에 메인 이미지로 사용되었다. 이렇게 중요한 전시에 수시로 나온 작품이 시장에 나오면 파는 딜러들은 흥분하게 마련이다. 소더비는 이 그림의 경매를 앞두고 이런 사실을 강조했다. 워싱턴 국립 미술관 회고전 당시 〈넘버 1〉이 들어 있는 전시 배너가 미술관 앞에 설치되어 있는 모습을 찍은 현장 사진을 경매 도록에 넣기도 했다.

〈넘버 1〉은 빨강, 분홍, 파랑 띠가 포개져 있다. 로스코는 붉은 계열이나 따뜻한 색을 좋아했는데, 이 작품에는 특이하게 붉은 톤과 대비를 이루는 파란 띠가 그림 하단에 들어가 무게를 잡고 있다. 이 그림을 비롯해 로스코의 대표작들은 크기가 엄청나게 크다. 로스코는 큰 그림이 작은 그림에 비해 더 친밀하고 인간적이라고 생각했다. 작은 그림을 그릴 때는 작가가 한 발짝 떨어져서 창문으로 들여다보는 것 같지만, 큰 그림을 그릴 때는 작가가 그 그림 속으로 들어간다고 말했다. 감상하는 관객의 입장에서도 그렇다고 생각했다. 1958년 뉴욕의 미술 대학인 프랫 인스티튜트 강의에서 남긴 말은 그의 작품 세계를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준다.

“작은 그림은 소설과 같고 큰 그림은 드라마와 같아서 관객이 직접 그 그림을 해석하는 역할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실제로 작가가 큰 작품을 작업할 때는 작가의 마음만 캔버스에 빠지는 게 아니라 물리적으로도 캔버스에 더 빠져들 수밖에 없다. 로스코는 페인트칠을 할 때 쓰는 큰 붓을 종종 사용했기 때문에 몸 전체를 위아래로 움직이면서 그렸다고 한다.

이 작품을 위탁한 사람은 앤 매리언이라는 컬렉터로 소더비 회장이자 수석 경매사이던 존 매리언의 부인이다. 1982년에 50만 달러(5억 2460만 원)도 안 되는 값으로 구입한 작품을 7512만 2500달러(788억 2000만 원)에 팔았으니, 물가 상승률을 감안하더라도 30년 동안 값이 엄청나게 뛴 것이다.

==========================

마크 로스코, 〈오렌지, 레드, 옐로〉, 캔버스에 유화 / 236.2×206.4cm
마크 로스코, 〈오렌지, 레드, 옐로〉, 캔버스에 유화 / 236.2×206.4cm

 

“나는 추상 표현주의자가 아닙니다. 나는 색과 형태의 관계 따위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비극, 황홀경, 운명······ 이런 인간의 근본적인 감정을 표현하고 싶을 뿐입니다.
많은 사람이 내 그림을 보고 눈물을 흘리고 주저앉았다고 말합니다.
그건 아마도 내가 근본적인 감정들을 전달할 수 있었기 때문일 겁니다.
내 그림 앞에서 눈물 흘리는 사람들은 나에게 그림을 그리게 만든
영적 체험을 똑같이 경험하고 있는 겁니다. 만일 당신이 작품 색채들 간의 관계만을 보고
감동받았다고 한다면 작품을 제대로 감상한 게 아닙니다.”
-마크 로스코

 

현대 미술에서는 ‘서블라임(Sublime)’과 ‘키치(Kitsch)’라는 개념이 자주 나온다. 보통 ‘키치’는 유치하고 질 낮은 이미지를 뜻하고, ‘서블라임’은 이와 반대되는 개념이다. 즉 사람이 쉽게 알아볼 수 없는, 보이지 않는 정신세계를 재현한 듯한 예술, 한 차원 더 높은 예술을 가리킬 때 ‘서블라임’이라는 단어를 흔히 쓴다.

20세기 미국에서 가장 널리 이름을 알린 미술 평론가 클레멘트 그린버그가 1939년에 쓴 아주 유명한 에세이가 있다. 〈아방가르드와 키치〉라는 에세이인데, 여기서 클레멘트 그린버그는 ‘키치는 질이 낮고 모던 아트는 훌륭하다’라는 자신의 생각을 확실하게 밝히면서 ‘모던 아트’에 대한 개념을 정리했다. 그는 대중적정치적 소재와 멀고, 쉽게 읽히지 않으며, 순수한 예술의 본질만을 추구하는 것이 진정한 모던 아트라고 했다. 이런 주장은 지금 관점에서 보면 너무 단순하고 획일적으로 여겨지지만, 그 당시 이 에세이가 일으킨 반향은 대단했다. 지금까지도 예술가와 평론가들에게 아주 큰 영향을 끼치고 있다.

그런 점에서 마크 로스코의 추상화는 클레멘트 그린버그가 말한 모던 아트의 기준에 정확히 들어맞는 그림이 아닐까? 서블라임, 즉 숭고미를 대변하는 그림이 이런 모습이 아닐까? ‘뻔히 보이는 외부 세계’에 대한 재현을 완전히 접고 온전히 시각 예술의 본질인 ‘색’에만 의존한 그림이니 말이다. 실제로 클레멘트 그린버그는 1940년대 말부터 1950년대까지 뉴욕을 휩쓴 예술 경향이던 추상 표현주의를 아주 높이 평가했다. 추상 표현주의 중에서도 폴록과 드 쿠닝의 작품 경향은 액션 페인팅으로 분류하고, 로스코처럼 평평한 색깔의 면으로 그린 추상화는 색면 추상화로 분류한다. 미국인들에게 두 경향의 작품 모두 세계 대전 이후 미국의 위상과 정서를 반영하는 그림으로 받아들여졌다.

추상 표현주의 작가 중에서도 로스코의 대작은 경매 시장에 곧잘 나오고, 나올 때마다 경이로운 가격에 팔린다. 폴록과 함께 추상 표현주의의 양대 산맥으로 평가받는 로스코의 작품은 앞으로도 계속해서 기록을 깰 가능성이 높다.

로스코는 책을 많이 읽고 문학과 철학에 심취한 아티스트였다. 게다가 그는 전쟁 이후의 복잡한 사회를 살아가는 작가였다. 그 당시의 시대상을 표현하려면 그림이 단순해서는 안 됐다. 뭔가 더 깊이 있고 내면을 우려낸 듯한 그림이어야 했다. 그래서인지 로스코는 의미심장한 그림을 그리려고 노력했다. 마티스, 몬드리안, 보나르 등 유럽 근대 미술 대가들의 영향을 많이 받았는데, 특히 그들의 뛰어난 색감에서 큰 영감을 얻었다.

이 그림은 전체적으로 붉은색이다. 그림 제목처럼 오렌지, 레드, 옐로 등 세 가지 색깔이 다 쓰였지만, 이 그림을 마주 보고 섰을 때 받는 느낌은 주변이 훨훨 붉어지는 느낌이다. 로스코는 “관객이 그림을 등지고 섰을 때 마치 등 뒤에서 따가운 햇살을 받는 듯한 느낌이 드는 그런 그림을 그리고 싶다”고 했는데 그런 생각이 잘 구현된 그림이다.

이 그림은 미국 필라델피아의 유명 컬렉터 데이비드 핀커스와 제리 핀커스 부부가 소유하고 있었다. 남편 데이비드 핀커스는 이 그림의 경매가 있기 한 해 전인 2011년 여든다섯의 나이로 세상을 떴는데 이 그림은 ‘주인 이름값’ 덕을 톡톡히 봤다. 데이비드 핀커스는 필라델피아에서 의류 회사를 경영하며 미술품을 수집했다. 그는 뉴욕 미술계가 가장 뜨거웠던 1950년대와 1960년대에 뉴욕을 오가며 작가들과 직접 교류했다. 이 그림은 1967년에 핀커스 부부가 뉴욕의 말보로 갤러리에서 산 것이다. 핀커스 부부는 결혼 생활 50년 동안 로스코 외에도 폴록, 드 쿠닝, 뉴먼, 스틸 등 추상 표현주의의 핵심 작가들의 작품을 수집한 대표적인 미국 현대 미술 컬렉터였다. 2012년 이 그림을 포함해 폴록, 드 쿠닝, 뉴먼, 스틸 등 이들이 소장하고 있던 쟁쟁한 작품들이 크리스티를 통해 무더기로 경매 시장에 나왔다. 이 그림은 그 가운데에서도 가장 주목받는 작품이었고, 결국 2012년 크리스티에서 거래된 미술품 가운데 최고가에 팔린 작품이 되었다

 

 

 

마크 로스코, 〈넘버 1(로열 레드와 블루)〉, 캔버스 유화 / 288.9×171.5cm
마크 로스코, 〈넘버 1(로열 레드와 블루)〉, 캔버스 유화 / 288.9×171.5cm
“나는 아주 큰 그림을 그린다. 역사적으로 큰 그림은 대개
아주 숭고하고 호화로운 주제를 다룰 때 사용되었다는 것을 알고 있다.
하지만 내가 큰 그림을 그리는 이유는
사실 아주 친근하고 인간적으로 다가서고 싶기 때문이다.
이는 내가 아는 다른 화가들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작은 그림을 그리는 것은 당신을 화가 자신의 경험 바깥에 세워 놓고,
그 경험을 환등기로 비춘 풍경이나 축소 렌즈로 본 풍경처럼 보게 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림이 크면 당신은 그림을 내려다볼 수 없다. 그림 안에 있어야만 한다.”
-마크 로스코

1954년 마크 로스코는 시카고 아트 인스티튜트의 큐레이터와 공동 기획으로 첫 미술관 개인전을 열었다. 〈넘버 1〉은 이 전시 때 로스코가 직접 고른 여덟 작품 중 하나였다. 로스코는 그렇게 고른 여덟 작품에 직접 가격을 매겼는데 이 작품이 두 번째로 비싼 작품이었다. 이 전시회에서 그는 미국 현대 미술사에서 가장 중요한 딜러이자 컬렉터인 시드니 재니스와 인연을 맺었다.

이 작품은 이듬해인 1955년에는 뉴욕의 시드니 재니스 갤러리에서 전시됐다. 시드니 재니스 갤러리는 사업가이자 미술품 컬렉터인 시드니 재니스가 1948년 세계적인 화랑들이 밀집한 뉴욕 57번가에 문을 연 갤러리다. 이곳에서는 미국 현대 미술 역사에 한 획을 그은 중요한 전시가 많이 열렸다. 폴록이 첫 개인전을 연 베티 파슨스 갤러리 못지않게 시드니 재니스 갤러리도 미국 추상 표현주의의 발전에 공을 세웠다. 이 작품은 이렇게 역사적으로 중요한 의미를 지닌 갤러리에서 추상 표현주의가 한창이던 1955년에 열린 로스코 개인전에 나온 것이기에 더욱 큰 의미가 있다.

이 밖에도 이 그림의 전시 기록은 훌륭하다. 시드니 재니스 갤러리 이후에는 워싱턴 코코란 갤러리, 워싱턴 국립 미술관, 뉴욕 휘트니 미술관 등에서 전시됐다. 특히 1998년 워싱턴 국립 미술관에서 열린 로스코 회고전 때에는 전시 작품 백열여섯 점 중 이 작품이 플래카드, 안내 책자 등 회고전의 모든 홍보물에 메인 이미지로 사용되었다. 이렇게 중요한 전시에 수시로 나온 작품이 시장에 나오면 파는 딜러들은 흥분하게 마련이다. 소더비는 이 그림의 경매를 앞두고 이런 사실을 강조했다. 워싱턴 국립 미술관 회고전 당시 〈넘버 1〉이 들어 있는 전시 배너가 미술관 앞에 설치되어 있는 모습을 찍은 현장 사진을 경매 도록에 넣기도 했다.

〈넘버 1〉은 빨강, 분홍, 파랑 띠가 포개져 있다. 로스코는 붉은 계열이나 따뜻한 색을 좋아했는데, 이 작품에는 특이하게 붉은 톤과 대비를 이루는 파란 띠가 그림 하단에 들어가 무게를 잡고 있다. 이 그림을 비롯해 로스코의 대표작들은 크기가 엄청나게 크다. 로스코는 큰 그림이 작은 그림에 비해 더 친밀하고 인간적이라고 생각했다. 작은 그림을 그릴 때는 작가가 한 발짝 떨어져서 창문으로 들여다보는 것 같지만, 큰 그림을 그릴 때는 작가가 그 그림 속으로 들어간다고 말했다. 감상하는 관객의 입장에서도 그렇다고 생각했다. 1958년 뉴욕의 미술 대학인 프랫 인스티튜트 강의에서 남긴 말은 그의 작품 세계를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준다.

“작은 그림은 소설과 같고 큰 그림은 드라마와 같아서 관객이 직접 그 그림을 해석하는 역할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실제로 작가가 큰 작품을 작업할 때는 작가의 마음만 캔버스에 빠지는 게 아니라 물리적으로도 캔버스에 더 빠져들 수밖에 없다. 로스코는 페인트칠을 할 때 쓰는 큰 붓을 종종 사용했기 때문에 몸 전체를 위아래로 움직이면서 그렸다고 한다.

이 작품을 위탁한 사람은 앤 매리언이라는 컬렉터로 소더비 회장이자 수석 경매사이던 존 매리언의 부인이다. 1982년에 50만 달러(5억 2460만 원)도 안 되는 값으로 구입한 작품을 7512만 2500달러(788억 2000만 원)에 팔았으니, 물가 상승률을 감안하더라도 30년 동안 값이 엄청나게 뛴 것이다.

  마크 로스코(Mark Rothko, 1903~1970)

 

 

 

마크 로스코, 〈무제〉, 캔버스에 유화 / 261.6×158.7cm
마크 로스코, 〈무제〉, 캔버스에 유화 / 261.6×158.7cm
“큰 그림은 관객을 그 그림 속으로 이끈다. 스케일은 내게 아주 중요하다.
큰 그림은 드라마와 같아서 그림을 보는 사람이 직접적으로 그림에 참여하게 된다.”
-마크 로스코

마크 로스코의 색면 추상화는 《세상에서 가장 비싼 그림 100》에 여섯 점이나 들어 있다. 그런 만큼 그의 작품은 가격도 비싸고 소장한 사람도 많다.

이 그림은 로스코의 유명한 색면 추상 스타일이 시작된 첫해의 작품이다. 이 그림이 그려진 1952년에 로스코는 뉴욕 맨해튼에서 공간이 넓고 천장도 높은 첫 작업실을 얻고, 색이 은은하게 번지는 그의 완전한 추상화 스타일을 처음 시도했다. 작업실이 널찍했기 때문에 그는 높이 2미터가 넘는 큰 사이즈의 그림을 그릴 수 있었고, 이런 큰 사이즈의 색면 추상은 로스코의 이후 예술 작품 세계를 지배하게 되었다.

로스코가 맨해튼에 마련한 첫 스튜디오는 뉴욕 현대 미술관이 위치한 53번가에 있었다고 한다. 따라서 그는 뉴욕 현대 미술관을 자주 방문했을 것이고, 실제로 그곳에서 유럽 근대 미술 작가들의 작품을 감상하며 영향을 받았다고 한다.

로스코는 특히 뉴욕 현대 미술관이 소장하고 있는 마티스의 그림 〈붉은 스튜디오〉에 대해 이야기하곤 했다. 〈붉은 스튜디오〉는 스튜디오의 바닥과 천장 등 사방이 모두 새빨간 색으로 하나가 되어 그림을 보고 나면 ‘붉다’는 느낌이 강하게 잔상으로 남는 그림이다. 로스코의 붉은 톤 색면 추상화들이 그런 그림의 영향을 받았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더욱이 로스코의 그림은 구체적으로 재현한 형상이 없기 때문에 관객의 눈과 기억에 남는 것은 오로지 강인한 색깔과 그 느낌뿐이다.

마티스나 피카소 등 20세기 초반 유럽의 근대 미술 대가들 그림도 19세기 미술에 비하면 많이 추상화로 진전되었지만, 로스코나 뉴먼 같은 추상 표현주의 화가들에 비할 바 아니다. 유럽 근대 미술 작가들이 그림의 변화에 물꼬를 텄다면, 추상 표현주의 작가들은 이를 미국식 완전한 추상화로 발전시켜 미국식 스타일로 정착시켰다고 할 수 있다.

로스코의 〈무제〉는 사람 키보다 훨씬 큰 커다란 캔버스 안에서 자주색, 주황색, 진한 청색의 사각형들이 밀고 당기는 긴장감을 만들고 있다. 이런 ‘연출’은 작가가 색과 공간에 대해 엄청나게 숙고한 끝에 만들어진 결과일 것이다.

마크 로스코, 〈화이트 센터〉, 캔버스에 유화 / 205.8×141cm
마크 로스코, 〈화이트 센터〉, 캔버스에 유화 / 205.8×141cm

 

“성스러운 체험을 원하는 사람들은 이 그림에서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세속적인 체험을 원하는 사람들 역시 이 그림에서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어느 쪽에도 치우치지 않는다.”
-마크 로스코

 

이 그림이 거래된 2007년 5월은 세계적으로 미술 시장 경기가 좋을 때였다. 그것을 감안하더라도 이 그림이 7284만 달러(764억 2000만 원)에 팔려 당시 현대 미술품 가운데 최고가 기록을 찍은 것은 큰 뉴스였다. 현대 미술 작가의 작품이 이렇게 비싸게 팔릴 수 있다는 것도 놀라웠지만, 마크 로스코 작품의 이전 최고 기록이 2241만 달러(235억 원)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갑자기 세 배나 높은 금액으로 작가의 기록을 깨면서 동시에 현대 미술 전체 신기록을 세웠다. 그런데 이는 이후 벌어질 신기록 행진의 시작에 불과했다. 이 그림 경매 이후 로스코의 그림 경매 기록은 계속해서 깨지고 있다. 2000년대 중반 이후 로스코에 대한 수요는 끝이 없어 보인다.

정사각형 모양의 색면 추상을 쌓아 올린 추상화는 로스코의 대표적인 스타일이다. 이전까지는 여러 스타일의 추상화를 시도하다가 1950년에 이런 스타일을 완성했다. 그래서 이 그림이 그려진 1950년은 로스코에게 중요한 시기다.

이 그림을 산 사람은 중동의 부국이자 새로 떠오른 미술 시장 중심국인 카타르의 당시 국왕이었던 하마드 빈 할리파 알사니인 것으로 알려졌다. 작품을 위탁한 사람은 데이비드 록펠러다. 록펠러 집안은 미국의 석유 갑부 집안이면서 미국 현대 미술 시장을 만든 주인공이다. 데이비드 록펠러는 이 그룹 창업자인 석유 왕 존 록펠러 손자이자 뉴욕 현대 미술관을 세우는 데 중심 역할을 한 애비 록펠러의 아들이다. 현재 뉴욕 현대 미술관의 명예 회장인 그는 자신이 죽으면 1억 달러(1050억 원)를 뉴욕 현대 미술관에 기증하겠다는 서약도 했다.

뉴욕 현대 미술관은 록펠러 집안 덕에 세워졌다. 그 집 며느리인 애비 록펠러가 어마어마한 가치를 지닌 소장품과 돈을 기부한 것이다. 그래서 이 미술관 한가운데에 있는 조각 공원 이름도 애비 록펠러 이름을 따서 지었다.

미술 시장 전문 잡지인 《아트 앤 옥션(Art+Auction)》은 1999년 12월호 특집 기사에 ‘현대 미술 시장을 만든 사람들’ 리스트를 실었다. 여기에 록펠러 가문이 유명 평론가, 딜러들과 함께 당당하게 올라가 있다. 이 기사에서 뉴욕 현대 미술관의 명예 대표인 아그네스 군트는 “록펠러 집안이 없었다면 우리가 지금 누리는 (미술 감상의) 혜택의 절반도 누리지 못했을 것이다. 록펠러 집안은 미술 수집 문화, 상류층의 기부 문화에 모범 사례를 만들었다. 이후 많은 컬렉터가 록펠러 집안을 따르고 있다”고 말했다.

미국의 부의 상징이자 예술가 집안의 상징인 록펠러 집안의 소장품이었기에 카타르 왕족은 이 그림이 더 탐이 났을지 모른다. 데이비드 록펠러는 이 그림을 1960년에 엘리자 블리스 파커슨에게서 1만 달러(1050만 원)에 샀다고 한다. 엘리자 블리스 파커슨은 애비 록펠러와 함께 뉴욕 현대 미술관을 세운 3명의 여성 컬렉터 중 한 사람인 릴리 블리스의 조카딸이다. 그러니 〈화이트 센터〉는 미국 현대 미술사에서 중요한 미술 컬렉터 집안을 두 집안이나 거친 것이다.

이렇게 소장 기록이 좋은 작품은 대개 전시 기록도 좋다. 이 그림도 그렇다. 1998년 워싱턴 국립 미술관에서 시작해 뉴욕 휘트니 미술관을 거쳐 파리 시립 현대 미술관까지 순회 전시한 로스코의 회고전에 나온 그림이다.

마크 로스코, 〈넘버 11〉, 캔버스에 유화 / 201.9×177.2cm
마크 로스코, 〈넘버 11〉, 캔버스에 유화 / 201.9×177.2cm

 

“내 그림이 쉽게 알아볼 수 있는 종류의 그림은 아니다.
나는 낯익은 대상들을 잘 사용하지 않는다.
그것들의 외관을 훼손하면서까지 본래 용도가 아닌 데 사용하고 싶지 않다.
나는 마치 부모와 맞서기라도 하듯이 초현실주의, 추상 미술과 싸웠다.
내 뿌리가 거기에 있다는 것을 잊지는 않았지만 그럼에도 나는 반대의 목소리를 높였다.
그들이 그렇듯이 나 역시도 그들로부터 독립된 완결한 존재다.”
-마크 로스코

 

노란빛이 감도는 오렌지색 바탕의 한가운데에 흰 띠가 있는 이 그림은 16위에 오른 〈오렌지, 레드, 옐로〉나 61위에 오른 〈넘버 15〉와 비슷한 톤의 작품이다. 아주 조용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에너지를 많이 담고 있는 색이다.

마크 로스코는 국적을 가리지 않고 여러 사람이 좋아하는 작가로 세계 현대 미술 시장에서 보증 수표처럼 자리 잡았다. 특히 삼성미술관 리움의 홍라희 관장이 로스코를 좋아한다는 소문이 돌면서 해외에는 로스코가 우리나라 사람들이 좋아하는 작가라고 알려져 있기도 하다. 홍콩 미술계의 큰손 딜러인 펄 램이 한국 언론과 한 인터뷰에서 “로스코의 가격은 한국 컬렉터들이 좌지우지한다”고 말해 화제가 된 적도 있다.

2013년 〈넘버 11〉을 내놓은 위탁자는 이 그림을 1992년에 크리스티에서 110만 달러(11억 5000만 원)에 낙찰 받았다. 20년 동안 소장하고 있었는데, 그새 값이 마흔 배 넘게 올랐다. 1990년대 초만 해도 인상파와 유럽 근대 미술이 세계 미술 경매 시장의 꽃이었고 이런 현대 미술은 주인공이 아니었다. 하지만 1990년대 말과 2000년대 초를 거치면서 현대 미술, 특히 로스코와 같은 추상 표현주의, 워홀과 같은 팝 아트 등 미국 현대 미술의 가격이 치솟았다. 1992년에 이 그림을 산 소장자는 제대로 된 투자를 한 셈이다. 이 그림은 소장자 손이 자주 바뀌지 않고 한 소장자 손에 계속 있었기에 가치가 더 높다. 그 소장자가 오랫동안 팔지 않고 쥐고 있던 것은 그가 ‘최고의 작품’이라고 인정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이 작품은 그가 갖고 있는 20년 동안 뉴욕 구겐하임 미술관, 휴스턴 현대 미술관, 뒤셀도르프 국립 미술관 등에서 전시되었다. 훌륭한 전시 기록까지 붙어 금상첨화가 되었다

 


 

 


[필수입력]  닉네임

[필수입력]  인증코드  왼쪽 박스안에 표시된 수자를 정확히 입력하세요.

Total : 533
번호 제목 날자 추천 조회
293 "인상주의의 아버지" 프랑스 화가 - 에두아르 마네 2017-01-25 0 2429
292 부조리한 세상의 일그러진 요지경을 햇빛색으로 그리다... 2017-01-25 0 2277
291 "위대한 그림작품이 해외에 팔려 나가지 않도록 박물관에..." 2017-01-25 0 3129
290 미국 추상표현주의 화가 - 잭슨 폴록 2017-01-22 0 4738
289 미국 락서추상화가 - 사이 트웜블리 2017-01-22 0 4782
288 2백萬 달라 상당한 미술작품에 키스하다... 2017-01-16 0 2154
287 미국 락서화가 - 키스헤링 2017-01-16 0 4000
286 "락서 같은 그림이 수백억원?..."=락서화가 장 미셸 바스키아 2017-01-15 0 7323
285 그림과 법, 그림과 음식, 그리고 명화의 세계 2017-01-15 0 2551
284 폐물로 그림을 그린 미술계 선구자 - 장 뒤뷔페 2017-01-15 0 4400
283 러시아적 미국 추상 표현주의 화가 - 마크 로스코 2017-01-15 0 4424
282 자화상은 고독과 고독이 부딪친 정물화이다... 2017-01-15 0 4515
281 저승에서라도 피카소를 보살펴야겠다고 목을 맨 녀인 2017-01-15 0 3398
280 천재 화가 피카소와 금발머리, 귀족 녀인들 2017-01-15 0 4459
279 그림아, 그림아, 억, 억, 어~억 억 "흙수저"들과는 못논다... 2017-01-15 0 3083
278 부부 화가 = 화가 부부 2017-01-15 0 1851
277 [쉼터] - 디자인이 변해가는 형형색색의 횡단보도 모음 2017-01-15 0 2015
276 [쉼터] - 커피로 그림을 그릴수 없다?... 있다!... 2017-01-07 0 1612
275 독일 "절망의 화가" - 뭉크 2017-01-07 0 2368
274 선입견으로 인하여 하고싶은것을 하기가 두렵습니다... 2017-01-07 0 1899
273 표현주의미술의 상륙을 재음미해보기... 2017-01-07 0 1937
272 천재의 화가 고흐의 자연을 다시 보다... 2017-01-07 0 1476
271 력사, 대도시, 벽촌 그리고 등호의 세계 2017-01-04 0 2103
270 천재화가와 "그 총은 누구의 것, 그 총은 어디로 사라졌을까" 2017-01-02 0 3976
269 아시아 미술 수집계 "큰손"으로 미술시장 눈 뜨다... 2017-01-01 0 2107
268 이탈리아 누드 초상 화가 - 모딜리아니 2017-01-01 0 6277
267 프랑스 초현실주의 화가 - 앙드레 마송 2017-01-01 0 6153
266 "멋이 죽었구나, 멋쟁이가 갔구나"... 2016-12-31 1 2175
265 [쉼터] - 유명한 시상식과 "격식있는 차림새" 2016-12-30 0 1304
264 전 세계, 전 미술계, 전 시대적, "위작문제" 2016-12-29 0 1890
263 천재적 화가 남편과 "사랑헌신주의" 화가 안해 2016-12-29 0 4176
262 세계에서 제일 비싼 그림 1~20 2016-12-29 0 2037
261 세계에서 가장 비싼 그림 1~10 2016-12-29 0 2421
260 세계 가장 유명한 그림 7매 2016-12-29 0 1685
259 미국 추상표현주의 운동 기수 - 잭슨 폴락 2016-12-29 0 3045
258 [그것이 알고싶다] - 별천지 하늘을 사진으로 어떻게 찍을까? 2016-12-27 0 1868
257 글쓰고 책만들기는 힘들지만 근드리로 책페물하기는 쉽다... 2016-12-26 0 1446
256 [문학예술계소사전] - "팝 아트"란? "팝 아티스트"란? "아트테이너"란? "고스트라이터"란? 2016-12-23 0 2461
255 미국 젊은 사진작가 - 벤 장크 2016-12-19 0 3970
254 희귀한 사진, 신비한 자연, 그리고 록색보호평화주의者 2016-12-19 0 1384
‹처음  이전 2 3 4 5 6 7 8 9 10 11 12 다음  맨뒤›
조글로홈 | 미디어 | 포럼 | CEO비즈 | 쉼터 | 문학 | 사이버박물관 | 광고문의
[조글로•潮歌网]조선족네트워크교류협회•조선족사이버박물관• 深圳潮歌网信息技术有限公司
网站:www.zoglo.net 电子邮件:zoglo718@sohu.com 公众号: zoglo_net
[粤ICP备2023080415号]
Copyright C 2005-2023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