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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 에뷔테른
기다란 인물상으로 유명한 화가 모딜리아니와 그녀의 아내이자 모델이었던 잔 에뷔테른. 두 사람의 사랑 이야기는 이 세상에서 가장 슬픈 연시(戀時)의 하나이다.
모딜리아니와 잔은 서로를 알게 된 지 그리 오래되지 않아 신접살림을 차렸다. 연인에서 부부가 된 것이다. 그러나 말이 부부이지 그들의 결혼은 공식적인 것이 아니었다. 잔의 부모가 워낙 심하게 결혼을 반대해 이들은 합법적인 예식을 치를 수 없었다. 어느 부모인들 소중하게 기른 딸을 술주정뱅이에다 마약 복용자, 게다가 결핵으로 몸마저 엉망진창인 열네 살 연상의 무명 화가에게 내주겠는가? 여리고 착한 잔은 그런 부모와의 관계도 냉정하게 끊을 수 없었다. 그들은 관습적, 제도적 인정을 포기하고 그저 같이 사는 것만으로 십분 만족했다. 그런 결합이었지만 잔은 두 사람의 동거를 그리스도와 교회가 하나 되는 것과 같은 영원하고도 신성한 결합으로 생각했다.
모딜리아니와 잔의 동료 전체를 통틀어 당시 잔과 같은 신앙인은 없었다. 그녀는 일탈적이고 퇴폐적인 몽파르나스(당시 파리의 예술 중심지)의 분위기에도 불구하고 전통적인 신앙관을 꿋꿋이 견지한 드문 영혼이었다. 그런 그녀로서는 모딜리아니와의 사랑을 거의 종교적인 숙명으로, 순교자의 확신으로 받아들였던 듯하다.
모딜리아니와 잔 에뷔테른
부부가 된 두 사람은 충만한 행복감으로 살았다. 모딜리아니는 변함없이 술을 마셨지만 예전처럼 그렇게 많이 마시지 않았고 대마초 수액으로 만든 마약 해시시도 끊었다. 사람들과 다투는 등 말썽도 피우지 않게 되었으며 무엇보다 뛰어난 작품들을 열정적으로 생산해 냈다. 비록 가난이 그들을 춥고 배고프게 했지만 그들은 새로운 희망과 기쁨을 만들어가고 있었다. 그런 그들을 보고 주위 사람들은 “천사 같은 잔이 모딜리아니를 구했다ㆍ”고 말할 정도였다.
결핵으로 고생하던 모딜리아니는 1920년 11월 25일 뇌막염으로 사망했다. 소식을 듣고 병원으로 달려온 잔은 침대로 뛰어들어 모딜리아니의 주검을 으스러질 듯 껴안았다. 임신 8개월의 그녀가 그렇게 이성을 잃고 주검에 들러붙자 사람들은 강제로 그녀를 떼어놓으려 했다. 그러나 어디서 그런 힘이 났는지 그녀는 먹이를 문 맹수처럼 결코 떨어지지 않았다. 그녀의 통곡 소리는 끝없는 비명으로 메아리쳤고, 사람들은 그런 그녀와 모딜리아니를 갈라놓는다는 것이 불가능함을 깨달았다. 그녀가 시체와 오래도록 격렬한 입맞춤을 할 때도 그들은 그저 묵묵히 지켜보는 수밖에 없었다. 그녀가 스스로 그에게서 떨어져 나왔을 때 사람들은 비로소 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이튿날 모딜리아니의 장례를 준비하던 그들은 또 한 번의 충격적인 소식을 들었다. 잔이 친정 부모의 5층 아파트에서 뛰어내려 뱃속에 있던 둘째아이와 함께 세상을 떠났다는 것이다. 슬픔은 배가 되었다. 그러나 그 처절한 슬픔과 고통 속에서도 사람들은 뭔가 따사로운 빛이 비추는 것을 느꼈다. 모딜리아니처럼 세상 막다른 곳에 버려지고 소외된 존재마저 끝까지 비추는 빛 말이다. 그가 설령 지옥에 떨어졌다 하더라도 그는 그 빛이 있어 외롭지 않을 것이다. 잔은 사랑하는 이를 위해 스스로 그 빛이 되었다. 모딜리아니에게 잔은 영원한 구원의 여인이었다. 죽음의 나라까지 동행하는.
출처 : 화가와 모델 中 추림
이탈리아계 유태인이었던 모딜리아니는 1917년 7월에 자신의 아틀리에가 있던 쇼미에르의 콜라로시 아카데미에서 그림을 배우고 있던 잔을 만나게 된다. 백화점 회계 담당자인 잔의 아버지는 전통적인 가톨릭 신앙으로 자녀들을 길렀는데 보수적인 집안이었지만 딸인 잔에게 개방적인 미술교육을 시켰다. 잔은 자유분방한 학교 친구들 덕에 라 ‘로통드’라는 카페에 수동적으로 끌려 들어가곤 했다.
보헤미안들로 시끌벅적한 그곳에서 잔은 늘 다소곳한 웃음과 신비스러운 침묵으로 다른 이들의 말을 경청했다고 한다. 그녀는 모딜리아니와의 사랑이 부모님의 분노를 살 일이라는 것을 잘 알았지만 곧 그의 뜨거운 열정에 사로잡혀 깊은 사랑에 빠지게 된다.
책에서 언급한 것처럼 잔은 가톨릭 신앙심이 돈독한 집안에서 자란 아가씨였다. 오빠들이 미술에 재능을 보여 미술공부를 하면서 잔도 차별 없이 공부를 하게 되었는데 그녀 역시 예술적인 감수성이 있었으리라는 짐작이 든다. 딸아이를 남겨두고 이제 태어날 날을 얼마 남겨두지 않은 둘째 아이에 대한 미안함조차 생각할 겨를도 없이 죽음을 선택한 에뷔테른. 모딜리아니에 대한 그녀의 사랑이 그만큼 컸던 것일까? 어떤 이유에서든 소름이 돋는다. 감히 따라 할 수 없는 일에 대한 경외심마저 든다. 우리나라만큼 공중화장실을 잘 꾸며놓은 나라도 드물다고 한다. 한 동안 목이 긴 여인의 초상화가 꽤 잘 지어진 공중 화장실 벽면마다 많이 장식되어 있었다. 애잔함을 간직한 듯 얼굴도 목도 긴 여인이 머리를 비스듬히 기울이고 있는 그림. 그림의 주인공이 바로 잔 에뷔테른이었다.
아무리 사랑한들 여덟 달이나 된 아이와 함께 모딜리아니의 뒤를 따르다니. 그런 격렬한 죽음! 결과만 생각한다면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그러나 모딜리아니와 그녀의 주변. 삶을 대하는 그녀의 태도를 들여다보면 그녀의 죽음에는 쉽게 말할 수 없는 위엄이 느껴지는 것 같다. 모딜리아니와 잔 에뷔테른의 이야기를 알게 된 후부터 화장실에서 잔의 초상화를 보는 것이 너무 어색했다.
그녀의 초상화는 왠지 더 엄숙한 곳에 있어야할 것 같은 생각이 들어서..
teati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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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개를 갸우뚱하고 있는 목이 긴 여인의 초상화, 관능적인 자태로 누운 여인의 누드화로도 유명한 화가 아메데오 모딜리아니Amedeo Modigliani. 그가 지병으로 사망한지 이틀 후 그의 아내 잔 에뷔테른Jeanne Hebuterne은 임신 8개월의 몸으로 자살을 했다. 그의 영원한 모델이 되어주기 위해. 사랑이었고 꿈이었던 남편을 잃은 상실감에 잔이 선택한 최선의 방법이었다.
잔 에뷔테른. 열네살 연하의 그는 모딜리아니 작품의 모델이 되었고 그에게 무한한 영감을 주었다. 모딜리아니의 대표작 중에는 유난히도 목이 긴 여인의 초상화가 있다. 도도하면서도 묘한 눈빛을 풍기는 잔의 모습을 그린 것이다. 두 사람이 처음 마주친 것은 파리 몽파르나스의 카페 ‘로통드’. 잔은 학교 수업이 끝나고 자주 들르던 그곳에서 깔끔한 코듀로이 재킷에 붉은 스카프를 두른, 미술 역사상 가장 잘생겼다는 화가 모딜리아니와 마주쳤다.
모딜리아니는 잔을 인식하지 못했지만 잔을 스쳐 간 모딜리아니는 이미 잔의 마음을 사로잡아버렸다. 그날 이후 잔은 카페에서, 공원에서 마치 그의 주변을 맴돌듯이 여러 번 모딜리아니를 볼 수 있었다. 얼마 후 둘은 한 조각가의 소개로 다시 만났다. 조숙하면서도 반항기 있는 묘한 눈빛의 18세 소녀를 만나던 순간 32세의 모딜리아니는 전율을 느끼며 매료되었다. 여성 편력이 심했던 그는 잔과 함께 지내는 동안에도 다른 여자들을 모델 삼아 작업실로 끌어들였으나 잔은 그런 모딜리아니를 이해하기 위해 노력했다. 다른 모델들과의 관계가 예술적 영감을 표현하는 데 불가피한 것이었기 때문에. 잔은 오히려 그런 과정을 거쳐서라도 모딜리아니가 더 많이 알려지기를 바랐다.
(위쪽) ‘잔 에뷔테른’, 아메데오 모딜리아니 作. 모딜리아니는 여인의 누드를 많이 그렸지만 잔의 누드는 그리지 않았다. 목욕 직후 상반신을 노출하고 있는 청순하고 수줍은 아내 잔을 향한 마음을 엿볼 수 있다.
모딜리아니, 그는 또 다른 자신이었다 모딜리아니의 뮤즈였던 잔 에뷔테른, 그 역시 화가였다. 그러나 모딜리아니의 그늘에 가려 잔의 작품들은 잘 알려지지 못했다. 15세에 이미 화가를 꿈꾸며 미술 학교를 다니기 시작했고 옷과 장신구를 직접 디자인할 만큼 예술적 재능이 뛰어났던 그에게 모딜리아니는 예술적 스승이기도 했다. 자아가 강했던 잔은 방탕한 생활에 젖어 있던 나약한 모딜리아니를 위해 모델, 아내, 정신적 후원자가 되어 그의 육체와 정신을 보살폈다. 잔에게 모딜리아니는 또 하나의 자아였기에 모딜리아니의 성공을 위해서라면 어떤 희생도 마다하지 않겠다는 강한 의지가 있었다. 따라서 모딜리아니의 죽음은 곧 자신의 죽음이었다. 만약 모딜리아니에게 잔이 없었다면 그의 천재성은 빛을 보기도 전에 방탕한 생활과 지병으로 인해 시들어버렸을 것이다.
두 사람은 1917년에 만나 몽파르나스 작업실에서 2년여간 생활하다 결핵을 앓던 모딜리아니의 병세가 악화되자 니스 해변가로 요양을 갔다. 그곳에서 본격적으로 둘만의 시간을 가지며 많은 작품을 남긴다. 그러나 행복도 잠시, 둘 사이에 아이가 태어나고 생활고에 쫓기게 되자 모딜리아니는 다시 방탕한 생활에 빠져들고 점점 괴팍한 성격으로 변해갔다. 결국 파리로 돌아왔지만 이미 모딜리아니의 건강상태는 극도로 악화되어 있었다. 모딜리아니의 불안과 분노는 잔에게도 영향을 미쳤다. 하루하루 다가오는 남편의 죽음을 준비하며 잔은 유언처럼 ‘자살Le Suicide’이란 작품을 남겼다. 그 안에는 극에 달했던 잔의 불안한 심리가 담겨 있다. 이 작품을 남기고 잔 에뷔테른은 1920년 1월 26일 5층 아파트에서 투신 자살을 한다. 모딜리아니가 눈을 감은 1월 24일로부터 이틀이 지난 후의 일이다. 그렇게 잔은 모딜리아니의 품으로 달려가 영원히 그만을 위한 모델이 되려 했다. 이들이 니스에서 함께했던 2년이 채 안 되는 시간은 화가 모딜리아니의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시기였다. 그의 대표작이라 할 수 있는 초상화 작품을 가장 많이 그린 시기이기 때문이다.
(왼쪽) ‘La Femme au colier de corail’, 아메데오 모딜리아니 作. 긴 목과 매끈한 피부, 놀란 듯한 얼굴은 모딜리아니의 초상화에서 볼 수 있는 대표적인 특징이다.
(오른쪽) ‘Chaim soutine’, 잔 에뷔테른 作. 풍경화, 정물화를 주로 그리던 잔은 모딜리아니를 만난 이후 초상화에 관심을 갖게 된다. 모딜리아니의 초상화가 제한된 색채 안에서 독특한 형태미를 표현했던 것에 반해 잔의 초상화는 색채 면에서는 강렬했다.
미술계가 주목할 수 밖에 없었던 사랑 이들의 이야기에는 제1차 세계대전 이후, 미술사에서 가장 격동적인 시기였던 1914~1920년의 현장이 담겨 있다. 이는 미술계에서 모딜리아니와 잔 에뷔테른에게 관심을 갖는 또 다른 이유다. 당시 몽파르나스에는 이방인 예술가 집단 ‘에콜 드 파리’를 중심으로 전 세계의 갈 곳 없는 아티스트들이 모여들었다. 그 대표적인 화가들이 섕 수틴, 줄스 파스킨, 모이세 키슬링, 마르크 샤갈 등이다. 몽파르나스에 모인 예술가들은 큐비즘, 다다이즘, 추상예술, 구상예술 등의 이름으로 그룹을 이뤄 경쟁했는데 그것이 오늘날 미술사의 큰 줄기를 이루게 된 것이다. 잔이 모딜리아니와 처음 마주친 카페 ‘로통드’는 당대의 철학가, 예술가들이 모여드는 에콜 드 파리의 요지였다.
(왼쪽) ‘자살’, 잔 에뷔테른 作. 잔은 모딜리아니의 병상을 지키며 모딜리아니에게 드리운 죽음의 그림자를 보았다. 천국에서도 자신의 모델이 되어달라는 모딜리아니의 말을 들어주기라도 하는 듯, 모딜리아니가 떠나기 며칠 전 이 그림을 그리며 함께 떠날 준비를 했다.
(오른쪽) ‘Modigliani alite Ⅲ’, 잔 에뷔테른 作. 임종을 앞둔 병상의 모딜리아니를 바라보는 잔의 애절함이 드러난다.
모딜리아니가 창조의 에너지로 자신만의 독자적인 세계를 완성할 수 있게 잔이 도왔다면, 모딜리아니는 잔이 여성적이고 현실적인 화풍에서 벗어나 한층 더 발전할 수 있게 도왔다. 때로는 둘이 함께 그림을 그렸는데, 구체적인 현실의 어떤 것도 반영해내지 못하고 시대 밖에서 맴돌던 모딜리아니의 화풍이 잔의 매우 여성적이고 일상적인 화풍과 결합하여 또 다른 화풍을 빚어내기도 했다. 둘이 함께 그린 드로잉 ‘모딜리아니와 잔 에뷔테른’에는 임신한 잔의 손을 꼭 잡고 있는 모딜리아니의 행복한 한때가 담겨 있다. 이들이 니스에서 보냈던 짧지만 행복했던 시간, 바로 그 시간이 오늘날의 모딜리아니를 만들었다.
1 ‘자화상’, 잔 에뷔테른 作.
모딜리아니의 영향을 받은 듯한 긴 목과 둥근 어깨, 긴 코가 드러난다. 그러나 모딜리아니의 드로잉이 대상의 인상을 순간적으로 포착하여 특징을 명쾌하게 풀어낸 것에 반해, 잔의 드로잉은 명암을 넣어 모딜리아니의 드로잉보다 무거운 느낌이다. 2 ‘푸른색의 자화상’, 아메데오 모딜리아니 作. 모딜리아니의 몇 안 되는 자화상 드로잉 중 하나. 병상에서 그렸던 것으로 추정되며 푸른색이 잔을 두고 떠나는 모딜리아니의 우울함을 표현한 듯하다. 3 ‘모딜리아니와 잔 에뷔테른’, 아메데오 모딜리아니· 잔 에뷔테른 作. 둘이 함께 그린 그림으로 가벼운 드로잉이지만 임산부 잔과 손을 꼭 잡은 모딜리아니의 모습을 볼 수 있다. |
![]() 기자/에디터 : 김명연 자료 제공 고양 아람미술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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