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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 중국 근대 최초의 녀성류학생
2016년 09월 01일 19시 33분  조회:3691  추천:26  작성자: 김문학

근대 재발견 100년전 한중일(80)

중국 근대 최초의 녀성류학생

김문학

  1907년 원세개가 천진에서 창설한 북양녀의학당(北洋女醫學堂)의 초대 원장(당장 겸 총교습)으로 초빙된 인물이 중국 근대 최초의 녀성류학생 김아매(金雅梅, 1864~1934)이다.

  김아매는 누구일가? 그의 이름은 일면 운매(韻梅)라고도 하는데 미국이름으로는 Yamei Kin이라고도 한다. 향항 명경인터넷 자료에 따르면 그녀는 절강성 녕파의 한 예수교 장로의 가정에서 독녀로 태여났다. 어려서부터 조실부모한 김아매는 중국사상 최초의 류학생으로서 명성이 자자했다.

  미국 뉴욕의학원 녀자의과대학을 졸업한 그녀는 근대 최초의 공립간호학교인 북양녀자의학당의 창설자이며 중국 의학발전사에 큰 족적을 남긴 녀걸이였다.

  돌이켜보면 김아매의 신세는 기구했다. 그녀가 2살때 부모들이 모두 당시 류행하던 전염병에 걸려 세상을 떠났다. 동년에 조실부모하고 중년에 리혼하며 자식까지 잃어버리는 인생의 갖가지 고통을 감내해야 하는 신세였다.

  부모를 잃은 뒤 어린 김아매는 아버지의 절친한 친구였던 녕파주재 미국령사였던 맥케티(mccartee)에 의해 양녀로 받아들여진다.

  천생 령리하고 총명한 그녀를 맥케티부부는 무척 사랑했다고 한다. 그리하여 1870년 양부는 그녀를 데리고 동경으로 떠났다. 양부가 그해 동경제국대학의 외국인 교수로 초빙되였기때문이다.

  만 6살의 김아매는 나서자라던 중국 대륙을 등지고 머나먼 일본으로 떠나야만 했다. 이로부터 김아매의 기나긴 월경(越境)의 이동이 스타트를 뗀다.
  이렇게 따지고 보면 일본에서 소학, 중학 공부를 마친 김아매는 당연히 중국사상 최초의 일본류학녀학생임이 틀림없다.

  1881년 양부의 지원으로 그녀는 미국에 류학하여 의학을 전공하게 된다. 이래서 그녀는 중국 첫번째 녀자류학생으로 근대사에 이름을 새기게 된다.   

    1885년 최우수성적으로 뉴욕의학원 부속 녀자의학원을 졸업한다. 이는 또한 중국 근대 최초의 녀자대학졸업생이란 영예가 되기도 한다.

  대학졸업후에도 김아매는 미국에 남아서 계속 연구와 실습에 정진했다. 워싱톤, 뉴옥 등 병원에서 취직하여 《뉴욕의학잡지》에다 “조직학적인 현미경촬영” 등 학술론문을 발표하였다. 현미경기술을 구사하여 진행된 연구리포터였는데 당시 미국의학계의 주목을 받았다.

  류학시절 그녀는 “허심하고 학습에 노력하여 각종 의료기구를 활용한 실험을 중시하는” 녀학생으로서 주위의 칭찬을 받아오기도 했다.

  당시의 중국에서 “의학”은 근근히 한의학적인 “청진, 문진, 진맥” 등 의술에 불과했다. 김아매는 예리한 안목으로 근대 서양의학의 선진도구를 활용하는데 개안했다.

  그녀의 전기자료에 따르면 1887년 당시 그녀는 이미 미국 뉴욕의학계에서는 명성이 자자한 녀의사이기도 했다.

  그런 김아매가 갑작스레 귀국을 선택했다. 미국에서 선진서양문물을 향유하면서 질높은 생활을 하고있던 그녀가 귀국의 길을 택한 리유는 어디에 있을가?
  유년시절 부모님이 몹쓸 병으로 인해 의료기술이 렬악한 중국에서 비참하게 돌아간 뼈아픈 체험이 “늘 가슴에 아로새겨져있었다.” 그래서 그녀는 귀국하여 자신의 힘이 닿는대로 조국동포의 병환질고를 해소하는것이 인생 최대의 소원이였다.

  드디여 그녀는 1888년 중국으로 귀국했다. 우선 아모이(夏門)에서 교회소속의 의료시설에서 사업했다. 이듬해는 그녀 자신이 병환에 걸려 일본으로 도항해 치료를 해야 했다.

  1905년에 귀국하여 성도에서 살다가 1907년 원세개의 초빙으로 천진의 북양녀자의원을 창설하여 당장 겸 총교습을 맡게 됐던것이다.

  1908년 김아매가 꾸린 북양녀의학당은 천진 최초의 간호사양성학교이다. 학교 직속으로 북양녀의원이 있으며 산하에 산부인과, 간호 2개 반을 두었다.

  《호리잡지(護理雜志)》연구원 강월평씨의 연구에 의하면 이 간호학교에서는 가난한 집안의 우수한 녀학생을 모집하였는데 교재도 국외의것을 사용했다. 또한 양성방법, 간호실천 등 규범에서 간호사제복에 이르기까지 서양이나 일본의 선진적인것을 적극 모방습수하였다고 한다. 당시 중국에서는 최첨단의 간호학교였다.

  김아매는 몸소 교편을 잡기도 했으며 의학교육사업에 혼신을 다해 노력했다. 교수와 실천을 중시했으며 서양의 선진방법을 채용하였다. 또한 영국 녀의사를 초빙하여 실습교습으로 활용하였다. 그녀가 학교교장을 담임한 8년 동안, 그리고 20여년의 림상실천속에서 중국 근대 의학발전을 위해 큰 고언을 하였다.

  1934년 페염으로 인해 북경의 협화병원에서 파란만장의 생을 마감했다. 현재 북경의 오탑사(五塔寺)의 석각박물관에 가면 그녀의 묘비를 볼수 있다고 한다.

  청말과 미국에 걸쳐 이어진 그녀의 인생 자체가 기구한 중국근대를 말하고있는듯 하다. 녀성의 근대화를 잘 구현시킨 인물로서 김아매는 특기할만한 녀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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