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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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 근대 국기디자인에 숨겨진 력사문화
2014년 04월 07일 17시 53분  조회:4747  추천:32  작성자: 김문학
근대 재발견 100년전 한중일(52)

근대 국기디자인에 숨겨진 력사문화

김문학        

  국가를 상징하는 국기는 근대의 산물이다. 아시아의 국기는 역시 서양의 웨스턴인팩트로 자신의 나라를 상징하는 로고표징을 기발에 담았는데 타국과 이질된 자국의 아이덴티티의 표상이였다.

  근대 일본의 국기가 1870년에 일장(히로마루)로고로 탄생된데 비해 조선은 1880년까지 국기가 없었다. 근대 국제의 관례로 한 나라의 상선, 군합 등이 령해나 타국의 령해를 지날 때 반드시 국기를 게양하는것이 있으나 조선은 1875년 강화도사건때 조선의 “개국”을 목적으로 침범한 일본군함 운요(雲楊)호가 달고있던 일장기의 의미를 잘 몰랐다.

  한국의 사학자이며 성공회대학 교수 한홍구는 “태극기는 정말 민족의 상징인가”라는 글에서 “조선은 원래 국기가 없었다. 그러니 일본이 일본국기를 단 운요호에 조선이 발포한것을 문제삼는것을 리해할수 없었다. 이런 곤욕을 치르면서 조선은 문호개방을 강요받았다”고 지적한다.(《대한민국사》2003)

  조선에서 국기제정에 대해 구체적으로 론의된것은 1880년 일본에서 귀국한 수신사 김홍집(金弘集)이 주일공사 참사관 황준헌의 《조선책략》을 가져오면서부터라고 한다. 이 책에 로씨야의 침습을 막기 위한 조, 청의 련합을 강조하면서 최초로 조선 국기도안에 대해 언급, 청국의 속국이라는 점을 현현화시키고자 청국의 룡의 도안을 사용하자고 권장한다. 그뒤 리홍장은 조선정부에 청국의 황룡기를 쓰되 룡의 발톱을 하나씩 적은 4개짜리 룡을 그리라고 했다.

  1882년 4월 청의 마건충(馬建忠)과 김홍집이 회담하였는데 그 필담내용을 기록한 《청국문답》에 따르면 마씨는 조선인이 즐기는 백색과 관리복인 청색, 왕복의 적색을 고안하여 “백저청운홍룡(白底靑雲紅龍)”도안을 제안했으나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러자 마씨는 흰 바탕에 태극도안을 사용하고 주위에 8괘를 첨가하는것이 좋다고 권장했다.

  회담 7일후 임오군란(壬午軍亂)이 일어났는데 제물포조약에 의해 조선은 일본에 대관을 파견하여 사죄하게 된다.  박영효의 《사화기략(使和記略)》에 따르면 일본으로 향한 배안에서 조선주재 영국 총령사 애스턴과 선장 제임스가 박영효에게 조언을 한다. 이에 따라 8괘에서 간단명료하게 4괘는 빼고 건곤감리(乾坤坎離) 4괘만 남겼다. 이렇게 태극기가 일본행 배안에서 탄생한다.

  8월 14일 코베에 도착한 그들은 숙박지에다 태극기를 게양했으며 22일 태극기의 제정을 본국에 보고한다.  1882년 7월 미국 해군성 발행의 《해상국가의 기발》이 2004년에 발견되였는데 그속에 박영효 이전에 이미 태극기가 있었다는 가능성이 있게 된다.

  아무튼 한홍구교수의 말을 빌면 “태극기는 중국인의 기본도안에 일본에 사죄하러 가는 일본국적의 배안에서 영국인 선장을 산파로 해서 태여난 조선사람들에게 선보이기도전에 일본에 나붓기는 기구한 운명을 갖게 된것이다.”

  또한 “동아시아에서 근대국가의 상징을 만들어내는 과정에서 외세가 깊게 개입했을뿐아니라 그 내용도 우리 고유의 문화나 전통이 아닌 중국의 〈주역〉에서 빌린것으로 이루어졌다”고 한교수는 한탄한다.

  근대 중국의 국기는 어떠한가? 근대 중국사의 변천을 대변하는 상징물로서 국기만큼 대표적인것이 있을가? 청나라의 국기는 주지하는바 황색바탕에 5개 발톱의 천자를 상징하는 청룡이 붉은 해를 삼키는 모양이 디자인되여있다.

  그러다가 1906년 국민당의 전신인 손문의 중국혁명동맹회가 그 전해(1905) 동경에서 탄생하여 “청천백일”도안을 장차 설립될 중화민국의 국기로 정하기로 하였다. 그때 황홍은 일본의 일장기와 류사한데다 너무 단조롭다는 리유로 반대했다. 그리하여 류영복(劉永福)의 안해가 고안한 국기원안의 하나를 참고하여 손문이 붉은 바탕을 첨가하여 “청천백일만지홍(靑天白日滿地紅)”을 완성시켰다. 최초로 청천백일을 고안해낸 창안자는 손문의 동료인 륙호동(陸皓東)이였다. 그는 혁명봉기초기 광주에서 희생하였다.

  1919년 성립된 중국국민당 당기로 제정되면서 청천백일은 1925년 최초의 국민혁명군의 군기로 사용되기도 한다. 1912년 중화민국건국후 림시 대총통으로 된 손문은 “청천백일만지홍”을 국기로 채용하려 했으나 림시참의원에서 불통과시키고 대신 예전 청나라 해군기를 기본으로 5색기(적황청백흑)를 국기로서 통과시켰다. 결국 “청천백일만지홍”은 민국 해군기로 채용되였다. 그리고 5색기는 1931년 만주국설립시 만주국기로 채용되면서 중국 국기는 복잡한 경유를 겪게 된다. 1928년 장개석남경정부때 다시 청천백일만지홍기가 국기로 된다.

  1949년 10월 1일 중화인민공화국이 성립되면서 전통적국기를 일소시키고 5성붉은기를 중국 정통의 국기로 한다. 한편 대만에서는 여전히 장개석 전래의 청천백일만지홍기가 “국기”로 되고있다.     

   중국은 조대교체가 근대에도 빈번했으며 번마다 전조대를 철저히 부정하는 “역성(央姓)혁명”의 양식으로 나타났다. 그리하여 국기 역시 빈번히 바뀌고 갱신되는 양상을 루정한것은 그 력사의 변천을 그대로 상징하였다.

  일본의 히노마루, 일장기는 세계에서 제일 심플하고 명료한 로고로 알려져있다. 흰바탕에 붉은 해.  근대 이후 아시아침략시 식민지와 전쟁터에서 나붓긴 네거티브한 기억으로 아시아인에게 인상은 역시 좋지 않다. 하지만 일본인에게 있어서 일장기는 자신들의 국가적상징이며 아이덴티티이기도 하다.

  수나라 황제에게 보낸 사신에서 당시의 성덕태자가 “해뜨는 곳의 천자”라고 밝혔듯이 “일본”이란 “태양이 뜨는 나라”였으며 태양에 대한 일본인의 신앙은 지대했다. 645년에 이미 일장기가 등장하며 1635년대에 히노마루기발이 사용되였다. 1854년 일미화친규약체결시 일본의 표식으로 선박에 달기도 했다. 이것이 국기의 탄생인데 서양인들은 당시 편지봉투를 밀봉하는 빨간 밀랍 같이 보인다고 비웃기도 했다. 1870년 2월 27일 국기로 제정되며 2월 27일이 “국기의 날”이다.

  근대 한중일 국기의 배경에는 그 력사문화가 숨겨져있다. 일본의 죽 전승해온 문화력사의 일직선양상이 그대로 고대의 심벌마크가 수백년을 내려오면서 국기로 되였고 한국은 외세에 끼인 력사체험과 같이 외세에 의해 국기가 제정된다. 중국은 전란과 정부의 교체가 빈번했듯이 국기의 변동도 빈번했다.

  국기가 상징하는것은 그 나라의 걸어온 력사와 문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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