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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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카테고리 : 《근대 재발견·100년전 한중일》

(29) 안중근의 의거, 이토암살은 미리 예언했다
2013년 10월 13일 16시 46분  조회:6563  추천:15  작성자: 김문학
근대 재발견 100년전 한중일(29)

안중근의 의거,이토암살은 미리 예언했다

김문학
 

  1909년 8월말. 할빈역에서 안중근의사에 저격당할 때까지는 아직 두달 남았다. 6월 14일로 한국통감을 사임한 이토 히로부미는 추밀원의장으로 피선된다. 8월 1일부터 그는 한국 황태자 이은(李垠)을 데리고 일본 동북, 북해도 지방을 순회했는데 이은의 견문을 넓힘과 동시에 이은을 중히 여긴다는것을 일본국민과 한국국민에게 널리 알리기 위해서였다.

  삿포로 시찰을 마친 그날 이토는 이은을 수행에게 맡기고 삿포로의 다카시마(高島)농장을 방문한다. 북해도까지 왔다면 꼭 농장에까지 와달라는 다카시마의 청탁을 받았기때문이다.

  다카시마하면 근대 일본의 유명한 실업가로서 독자적인 역술(易術ㅡ점치는것)인 다카시마역단(高島易斷)의 창시자로서 메이지시대 정국을 역학으로 점쳐온 역학의 대가였다. 그는 일본 근대사의 대사건, 이를테면 일청갑오전쟁, 로일전쟁 등 명치일본의 국운을 결정짓는 중요한 정국, 전국(5遡?의 행방을 점치고 그것을 상세하게 기록, 공표하기도 했다. 또한 그의 역학의 “적중률은 거의 백발백중”이라는 정평이 나있을 정도였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그날 다카시마는 출타중이여서 이토는 지배인 호소노에게 농장을 안내하게 하고 농장구경만 하고 돌아왔다. 그날 이토는 칠언절구 한시를 쓴다.

  이 몸을 버려서 국난에 대하고(蹇蹇匪躬何念歸)
  만천에 싸인 안개 려장을 적신다(滿天風露濕征衣)
  석수산에서 본 가을꿈은(秋宵石狩山頭夢)
  흑룡강을 넘은 사명으로 완수하리(尙尙黑龍江上飛)

  북해도에서 돌아온 그는 10월 12일 오아미산장에 있는 다카시마를 다시 방문한다. 만주에 가기전에 꼭뵙자는 다카시마의 청을 들어준것이다. 이토를 만난 다카시마는 이번 만주행을 중지할수 없냐고 화제를 꺼냈다. 감수성이 예민한 이토는 즉석에서 자신의 만주행에 관해 다카시마의 역점결과가 상서롭지 않음을 깨달았다.

  불안감을 억누르며 이토는 그에게 역점결과를 물었다. 다카시마는 이토 히로부미와는 사돈지간이였으며(이토의 아들 박방(博邦)과 다카시마의 딸 결혼) 일생동안 절친한 지교이기도 했던터라 기탄없이 결과를 직백했다.

   “결과는 간위산(艮爲山)이란 3자였다.” 이 점괘는 “피차 각각 사상을 달리하여 서로 가까이 하지 말아야 할 시기다. 고로 이 간(艮)의 시기에는 추호도 희망을 품지 말것”이라는 의미였다. 즉 전개시키자면 이토가 제아무리 한국의 자주독립을 입에 달고 모색한다 하더라도 한국은 반발할뿐 호결과가 없다. 또한 스스로 스톱하면 좋지만 계속 나아가면 실패와 죽음을 의미한다.

   다카시마는 이 점괘에는 이토의 암살되는 뜻이 있다고 직언했다. 그뒤 이 점괘는 과연 적중했다. 그리고 “간(艮)”은 즉 안중근(安重根)의 “근(根)”을 의미했다는것이 알린다.

  그날 다카시미는 이토와 작별하면서 주위의 뭇시선도 아랑곳하지 않고 눈물을 흘리면서 이토의 손을 꼭 쥐였다고 한다. 다카시마는 이것이 금세의 최후의 리별이라는것을 확신했기때문이리라.

  이토의 사위가 된 외무성관리였던 코마츠 미도리 저서 《춘무공과 함설공》에 의하면 이토는 “점괘를 리유로 국교문제의 최고 책임자가 외교적방문을 중지할수 없다”고 하며 암살의 예언을 아랑곳않고 만주로 떠난다. 춘무(春畝)는 이토 히로부미의 호이고 함설(含雪)은 야마키다 아지토모의 호이다.  아마 이토는 죽음을 각오하고 만주행을 실행했는지도 모른다. 이토 신변에 있던 비서관 후루타니(古欲綱)는 만주를 이어 그가 수개월후 “북경에 가려고 했다”고 회상하고있다. 한국에게는 적장이였지만 일본에게는 이토는 자신의 사명을 철저하게 수행하는 정치가였다.

  코마츠의 회상기에 따르면 이토는 다카시마의 역을 백프로로 믿지는 않은듯 하며 늘 자신의 처신을 우선시킨 충실한 정치가였던것이다.

  이토 측근의 증언에 의하면 자신의 저택을 이토는 “창랑각(滄浪閣)으로 명명했는데 만경창파를 헤아리고 전진한다는 뜻이였다고 한다. 그가 창랑각에서 생활할 때 언제나 암살이 두려워 침대우에서 취침하지 않고 침대밑에서 잤다고 한다. 그런데 그렇게 암살을 두려워했던 그가 할빈에서 안의사에게 암살당하고마니 이 역시 아이러니가 아닐수 없다.

  기(奇)하게도 1909년 9월 15일자 미국동포들이 발행하던 《신한일보》에 “안중근의 의거”를 예언하는듯한 시사만화가 게재된다.

  삼천리 강토모습이 그려진 옷을 입고 태극문양의 권총을 머리에 쓴 조선인이 두손으로 천도(天道)와 공법(公法)이란 어휘가 새겨진 십자가를 쥐고있는데 맞은켠에는 태양의 얼굴을 한 일본인이 서있는데 두손에 쥔것은 법과 무력을 상징하는 지팡이와 쇠망치였다.

   일본인이 “먹을수록 맛이 좋아 나머지마저 먹겠다”고 말하자 한국인이 “옛다, 자 받아라. 하나, 둘, 셋,넷” 웨치면서 4발의 총탄을 쏘는 모습을 만화로 의인화하고있다.

  이 만화에서 한국인은 마치 안중근의사의 표상이고 태양의 얼굴을 한 일본인은 마치 이토 히로부미의 표상인듯 하다. 일본제국의 한국보호의 미명으로 행해졌던 식민지지배에 경고한 만화로서 신통히고 이토를 저격한 안중근의사의 의거를 미리 예언한 감을 준다.

   1909년 미국 쌘프란시스코에서 재미 독립운동 단체인 국민회의 기관지적 구실을 한 《신한일보》는 타향에서 자유롭게 일본비판을 전개했으며 그후 연해주와 청국의 땅에서도 읽히였다고 한다.

  사실 이 만화가 게재된지 한달 좀 지나 할빈역두에서 의병장 안중근의사에게 저격당한 이토는 그 파란만장의 생을 접는다. 안의사가 그해 실제로 《신한일보》를 읽었을 가능성은 매우 높을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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