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문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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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    조선민족의 뿌리에 대한 권위적 해석 /곰 아 지 댓글:  조회:4803  추천:58  2007-09-17
조선민족의 뿌리에 대한 권위적 해석 -박문희 씨에게 답함 곰 아 지 조선민족의 뿌리에 대한 해석은 잡다하다. 그러나 학술계의 보편적인 인정을 받고 있는 그 가장 권위적인 해석은 한국정신문화연구원의 편찬으로 된 『한국민족문화백과대사전』(제24권)중의 “한민족” 조목중의 해석이라고 할 수 있다. 그 가장 중요한 부분만 초록하면 다음과 같다.   “오늘날 지구상에는 여러 인종이 살고 있으며 그들은 피부색깔, 골통의 모양, 머리칼의 색깔과 조직 등 형질적 특징에 따라 몽고종 ․ 코카서스종 ․ 니그로종 등 세 인종으로 분류된다. 이 가운데서 본래 제4빙하기, 고고학적으로는 구석기시대 후기에 시베리아의 추운 지방에서 기원하였다. 이러한 사실은 몽고종의 형질적인 특징으로서 얼굴에 광대뼈가 나온 것이나 눈꺼풀이 겹쳐진 것이 추운 기후에 적응하기 위한 것이라는 점에서 확인된다.  우리 한민족도 이러한 형질적 특징을 가지고 있음은 물론이다.그런데 시베리아의 몽고종은 옛시베리아족 또는 옛아시아족 ․ 옛몽고족과 새시베리아족 또는 새몽고족의 두 그룹으로 나뉜다. 이는 옛시베리아족이나 새시베리아족 모두 몽고종의 형질적 특성을 가지고 있지만, 뒤에 부족적 이동에 따른 형질적 ․ 문화적 차이가 생겼기 때문이다. 특히 두 그룹 사이에는 언어의 차이가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오늘날 시베리아에 살고 있는  옛아시아족은 축치족 ․ 코리약족 ․ 길리약족 ․ 캄차달족 ․ 유카기르족 등이다. 그리고 이들의 한 갈래가 베링해를 건너 아메리카로 이동하여 아메리카 인디언의 조상이 되었고, 다른 한 갈래는 사할린과 북해도로 이동하여 아이누족의 조상이 되었다. 한편, 시베리아에 살고 있는 새시베리아족에는 터키족 ․ 몽고족 ․ 퉁구스족 ․ 사모예드족 ․ 위구르족 ․ 핀족 등이 있다. 이 가운데 터키족 ․ 몽고족 ․ 퉁구스족의 언어에는 문법구조 ․ 음운법칙 ․ 공통조어 등에서 서로 깊은 관련이 있으므로 이를 알타이어족이라 한다. 반면, 사모예드족 ․ 위구르족 ․ 핀족은 다른 하나의 어족을 이루어 이를 우랄어족이라 한다. 한국어는 이가운데 알타이어족에 속한다. 알타이어족은 본래 예니세이강 상류지방고ㅘ 알타이산 기슭에서 발생하였다. 이 지역은 삼림 및 ㅊ원지대로서 주민들은 일찍부터 목축을 주로하고 농경을 부업으로 하는 생산경제 단계로 들어갔으며, 또한 알타이 산지에서는 구리와 주석이 많아 청동기문화의 발달에 유리하였으므로 안드로노보문화 ․ 카라수크문화 ․ 타가르문화 등 독특한 시베리아 청동기문화를 발달시켰다. 그런데 이러한 문화는 동유럽으로부터 전파된 것으로, 문화의 전파에 따라 유럽 인종과 원주민인 몽고족사이에 혼혈이 일어났던 것으로 보인다. 북방 아시아 몽고종계통의 민족에게서 가끔 유럽종의 형질적 요소가 발견되는 것은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제4빙하기에 시베리아 지방에서 형질적 특성이 완성된 몽고종은 제4빙하기 후기에 기온이 상승하여 빙하가 녹으면서 남쪽으로 이동하기 시작하였다. 그리하여 먼저 옛시베리아족이 시베리아의 동쪽과 남쪽으로 이동하였는데, 그  시기는 고고학적으로 후기구석기시대 및 신석기시대에 해당한다. 따라서, 이들에 의해서 후기구석기문화와 신석기문화가 전파되였다. 한반도의 경우에도 후기구석기시대의 유적이 발견되였지만, 아직 그 인종의 형질적 특성을 확인할만한 자료는 발견되지 않았다. 그리고 신석기문화는 몽고 ․ 만주 ․ 한반도를 비롯하여 동쪽으로는 사할린 ․ 북해도를 거쳐 아메리카대륙에까지 전파되였다. 따라서, 이들 지역의 신석기문화가 모두 같은 문화전통을 지니고 있다. 예를 들어 신석기시대 토기의 경우, 半卵型의 토기 표면에 직선이나 점으로 구성된 기하문 장식을 한 것이 시베리아 ․ 만주 ․ 한반도 지역과 북아메리카 및 일본열도의 북부에 분포되여 있어 그것이 모두 시베리아로부터 전파된 것임을 알 수 있다. 물론 시베리아의 신석기문화는 이들 여러 지역에서 각기 변화하여 발달하였으므로 다소의 차이가 있지만, 이들 지역의 신석기문화는 아직 수렵과 어로의 채집경제 단계에 있어서 농경문화가 시작되지 못하였다는 점이 주목된다. 그러나 만주나 한반도의 신석기 유적에서도 역시 인골이 발견된 것이 거의 없기 때문에 그 주민의 인종적 특성을 알기는 어렵다. 알타이산지와 바아칼호수의 남쪽지대에 살고 있던 알타이족이 남쪽으로 이동한 것은 옛시베리아족의 이동에 뒤이은 것으로 짐작된다. 이들은 원주지의 초원지대에 이어져 있는 초원지대로 이동하였으며, 유목 ․ 기마 민족이였으므로 이동이 용이하였을 것이다. 그리하여 초원이 펼쳐진 한계까지, 즉 서쪽으로는 카스피해, 남쪽으로는 중앙아시아와 몽고를 거쳐 중국 장성지대까지, 남동쪽으로는 흑룡강 유역에서 만주 북부까지 이동하였다. 그 결과 터키족은 중앙아시아와 중국 북쪽에, 몽고어족은 지금의 외몽고를 거쳐 중국 장성지대와 만주 북부에, 퉁구스어족은 흑룡강 유역에 각각 분포하게 되었다. 그리고 이들 알타이족과 함께 시베리아에 살던 한민족도 이동의 물결을 따라 몽고를 거쳐 중국 장성지대의 동북부와 만주 서남부에 이르러 정착하였던 것이다. 단, 오늘날 알타이족이라 하면 터키족 ․ 몽고족 ․ 퉁구스족을 가리키고 한민족은 포함시키지 않는데, 이는 한민족이 남하하는 과정에서 일찍부터 알타이족에서 갈라져 만주 서남부에 정착하였고, 여기서 하나의 민족단위를 형성하였기 때문이다. 알타이족에 의해서 중국 북부에 전파된 시베리아의 청동기문화는 오르도스 ․ 내몽고지방과 만주 서남지방, 즉 요령지방에서 각각 꽃 피였는데, 전자는 내몽고족이 발달시킨 것이고 후자는 한민족의 조상들이 발달시킨 것이다. 이 두 청동기문화는 모두 시베리아 청동기의 전통을 이은 것으로 많은 공통점을 가지고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상당히 다른 특징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차이는 요령의 청동기문화에서 특징적으로 나타나는 비파형의 단검이나 기하문경 등 고고학적 유물에 의하여 확인되며, 이로부터 한민족의 조상들이 遼寧 지방을 중심으로 하나의 문화권을 형성하고 알타이족이 다른 민족과도 구별되는 독특한 청동기문화를 발달시켰음을 알 수 있다. 중국의 문헌에 따르면 춘추시대에 장성지대 깊숙이 침입한 樓煩이나 林胡, 그리고 만주북부의 東胡 등의 이름이 보이는데 이들이 곧 알타이족 중의 몽고족을 가리키는 것이며, 장성지대 서북쪽의 흉노는 터키족 또는 몽고족을 가리킨다. 터키족이나 몽고족에 비하여 중국 동북부의 민족으로서 肅愼 ․ 朝鮮 ․ 韓 ․ 濊 ․ 貊 ․ 東夷 등이 주나라 초기부터 중국문헌에 나타나는데, 이것이 바로 우리민족을 가리키는 것이다. 이 가운데 肅愼과 朝鮮은 중국 고대음으로는 같은 것이고, “韓”은 “khan>han”에 대한 표기로서 “크다”, “높은 이 ”등의 뜻을 가진 알타이어다. “貊”의 “ ”는 중국인들이 다른 민족을 금수로 보아 붙인 것이고, “百”이 음을 나타내는데, “百”의 중국 상고음은 “pak”으로서 이는 우리의 고대어 “밝” 또는 “박”에 해당하며, 광명이나 태양을 뜻한다. 한민족에 의하여 발달한 遼寧 청동기문화는 대체로 대흥안령의 산줄기를 경계로 중원문화와 접하였다. 그런데 遼寧 지방은 북으로는 삼림 ․ 초원을 이루고, 남으로는 난하 ․ 대릉하 ․ 요하의 하류지역에 농경에 적합한 평야지대가 펼쳐져 있다. 따라서 遼寧 지방의 조선족은 본래 시베리아에서는 목축을 주로 하고 농경을 부업으로 하였지만, 遼寧 지방에 정착한 뒤로는 그 환경에 적응하여 농경을 주로 하면서 목축을 부업으로 하는 종경문화를 발전시켰다. 그리고 한반ㄷ에 이르러서는 그 자연적 환경에 따라 목축은 거의 잊어버리고 오로지 농경을 하는 민족으로 되었다. 이와 같이 앞선 청동기문화와 농경문화를 가진 조선족이 한반도에 들어와 선주민인 옛시베리아족을 정복, 동화시켰음은 고고학적 유물뿐 아니라 신화 ․ 언어 등의 연구에 의해서도 증명된다. 이와 같이 한민족은 몽고종에 속하며, 그 가운데서도 새시베리아족의 알타이족에 속한다. 그러나 한민족은 알타이족의 이동과정에서 일찍부터 갈라져 나와 滿洲의 서남부(지금 중국 동북의 서남부), 遼寧지방에 정착하여 농경과 청동기문화를 발달시켰으며, 그 가운데 한 갈래가 한반도에 이주하였다. 그리하여 이 지역에 살고 있던 선주민인 옛시베리아족을 정복, 동화시켜 오늘의 한민족이 형성되였던 것이다. 이들에 의해서 여러 읍락국가가 형성되고 나아가서 읍락국가의 연맹체가 성립되였으며, 고조선이 바로 그 연맹의 맹주국이 되었다. 그리고 이러한 과정을 거쳐 정치적 ․ 사회적 공동체를 이룩함으로써 하나의 민족단위로 성립되였다. 또한, 이러한 민족공동체가 이루어짐에 따라 여러 집단의 언어가 통일되여 한국어가 되었다. 이렇게 우리 민족이 하나의 민족단위로 성립된 것은 지방에서 농경과 청동기문화를 발달시킨 때부터이다. 그것은 단군신화에서 전하는 r조선의 건국연대와 대체로 부합되는 서기전 2000년대로 볼 수 있다.”(한국정신문화연구원『한국민족문화백과대사전』제24권 「한민족」, 204-205쪽)                                *     *     * 조선민족의 발상지는 중국 동북과 조선반도. 특히 중국 동북지구 서남부(遼西. 遼東 지역)라는 것이 한국과 조선 학술계의 일반적인 견해로서 거의 정설로 굳어졌다. 여기서 조선민족의 기원과 연계시켜서 볼 때, 특히 주목되는 것은 료동, 로서 및 연산 남북의 신석기문화로서 1970년대로부터  날로 중시를 일으키고 있다. 일찍 1935년 지금 내몽고 자치구의 적봉시 紅山에서 발굴된 신석기문화는 당시에 “적봉 제1기 문화”라고 명명되였다가 1954년에는 홍산문화라고 명명되었는데, 기원전 3500년의 문화라고 추정했다. 1970년대로부터 시라무른하, 로합하, 대릉하 류역의 적잖은 고장들에서 선후로 홍산문화의 건축유적과 묘지들을 발견하였고, 상당한 수량의 옥기(玉器)들을 발국하게 되었다. 특히는 1983년-1985년 료녕 건평, 릉원 사이의 우하량에서 홍산문화에 속하는 赤石冢과 女神廟를 발견하였는데, 중국의 사학계에서는 이를 商族의 기원과 연계시켜 고찰하게 되었다.(비효통의  『中華民族多元一體格局』, 중국민족대학출판사, 1999년, 56-57쪽을 참고하라)사실 商族과 조선민족은 상당한 혈연관계를 가졌다고 추정되며 후일 상족의 귀족인 기자가 무리를 이끌고 조선에 와서 기자조선을 세웠다는 것은 어쩌면 무근한 일이 아니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특히 주목되는 것은 우량하의 女神廟에서 당시 홍산문화를 창조한 원시인들이 암콤을 녀신으로 숭배하면서 사당에 모셨다는 것은 더욱 우리들에게 시사해주는 바가 크다. 우리는 료녕성 서부 牛河梁의 女神廟에 모셔졌던 熊女神에서 檀君神話의 현장을 보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동북 경내의 시베리아 경내의 많은 소수민족과 만족, 어른춘, 허저족, 일본의 아니누족 등의 곰토템 숭배는 단군신화에서 나오는 곰토테숭배가 만퉁구스제민족의 보편적인 토템숭배물이었음을 증명해주고 있으며 동시에 조선민족의 발상지는 중국의 서북지역이아니라 중국의 동북지역과 조선반도였음을 다시한번 여실히 증명해주는 것이다. 그 후의 遼東과 조선반도에서 발굴된 청동기들인 비파형 단검 등은 모두 동일한 류형의 것으로 판정됨으로써 고조선의 활동지역이 료동과 조선반도 지역이었음이 더욱 분명하게 증명되었다. 그리고 서주시기로부터 중국의 문헌에는 지금의  료서 ․ 로동 지역에 있는 고조선과의 교류관계가 더욱 분명하게 가록되어 있다.  이러한 고고학적 발견과  문헌적인 기록으로부터 “단군의 중국 감숙 돈황 기원설”이나 “중국 신강 천산 산맥 기원설”은 아무런 력사 ․ 문헌적인 근거가 없는 일부 호사자들의 낭설임을 해 주고 있다. 三危라는 지명이 신강천산산맥과 련관되어 있다고 단군성조의 발상지을 중국서북지역의 신강 천산산맥에 비정할 수 없다. 중국문화나 불교의  강력한 영향을 받은 후에 기록된 『삼국유사』중의 기록을 액면대로 받아들인다면 그것은 아무렇게나 해석될 여지가 있기 때문이다. 단군은 제석 환인의 아들이 하늘에서 날아 내려서 암콤과 살아서 조선 민족의 조상을 낳았다고 기록되어 있는데, 이는 불교의 강력한 영향을 받은 불교 승려 일연이 기록자라는 것과 무관하지 않다. 불교승려 일연의 기록을 따른다면 조선민족은 마땅히 히말아야산맥 너머에 있는 네팔사람이여야 한다. 불교의 창시자인 석가모니가 네팔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태백산이리는 것은  특정한 산을 가리키는 것 일수도 있고 밝은 것을 숭상하는 조선민족의 조상이 밝은 산이라는 뜻으로 상징적으로 사용한 이름일 수도 있다. 백두산의 옛 이름 不咸山도, 녀진족기원 신화에서 나오는 부쿠리산(布庫里山)도 모두 밝은 산이라는 뜻이다. 단군이 내렸다는 태백산과 그 뜻은 통하는 것이다.  신화는 일부 역사적인 요소가  개재해있기는 하지만 대부분은 원시인들의 상상의 산물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신화를 몇 천 뒤의 후세사람들이 기록해놓은 텍스트에 있는 지명을 액면대로 받아들여 해석한다는 것은 대단히 어리석은 일이다.                                  2007년 9월 16일 연길에서  [우리동네 문학동네]
41    김월성에게 화답함/박문희 댓글:  조회:4863  추천:77  2007-09-15
<박문희가 맑스의 론술을 조작한 실상>과관련하여 김월성에게 화답함                                       박문희김월성은 14일 <박문희가 맑스의 론술을 조작한 실상(實狀)>이란 글에서 처음으로 <김월성의 <토템문화론>을 평함>이란 나의 글에 반응을 보였다. 글이 아주 정채롭고 재미나서 나는 매우 즐겁게 음미하면서 보았다. 앞으로도 이런 글을 많이 써서 나의 마음을 더 즐겁게 해주기를 바라는 심정이다.김월성은 <실상>에서 “박문희는 남영전의 생명일체화의 원시적감정을 바탕으로 삼고있는 이른바 토템문화론을 비호하기 위해 맑스의 론술을 조작, 왜곡하는 방법으로 맑스의 본의까지 탈바꿈시키고있다”면서 “다른것은 모두 제쳐놓고 이 한 점("희랍예술과 사시"에 대한 맑스의 평가는 거기에 "내포된 신화"에 대한 평가로 탈바꿈)만으로도 토템문화론을 비호하는 박문희의 주장은 모래성이 무너져 내리듯 저절로 주저앉지 않을수 없게 되였다”고 결론을 내렸다. 그러면서 “맑스의 론술을 조작해내고 왜곡까지 하면서라도 생명일체화의 원시적감정에 립각한 남영전의 토템문화론을 반드시 비호해야만 했던 당위성이 도대체 무엇이였던지를  박문희에게 묻지 않을수 없다”고 한다. 기왕 물음을 물어온 이상 도의상 간단히나마 답복을 해야겠다. 그런데 별로 급한 일은 없으니까 본론에 들어가기전에 우선 재미나는 언어관람을 하기로 하자. 나의 이른바 “탈바꿈”에 대한 김월성의 다양한 언어구사력을 대강 추려보면—“엉뚱한 개념들을 허위조작”, “희랍예술에 대한 맑스의 평가를 희랍신화에 대입시키는 작법”, “맑스의 본의를 완전히 변형”, “자의대로 뜯어고치고 조작”, “박문희의 조작품”, “바꿔치기 작법”, “권위성을 띤 맑스의 높은 평가를 신화에 도용(盜用)”, “조작해낸 가짜 맑스의 론술” , “저질언어(박문희의 말을 교묘히 인용) 혹은 저질행위일뿐만 아니라 사기적 행각”(!!ㅎㅎ),  “예술과 신화를 바꿔치기를 한 자신의 작법을 기상천외한 묘법으로 간주”, “터무니없는(제멋대로) 조작해낸 거짓말”, “종이장으로는 불덩이를 쌀수 없고 사실은 언제나 사실대로 밝혀지기 마련”,  “소의 머리를 잘라다가 말의 몸체에 붙여주려는것과 같은 어처구니없는 소행”, “사실무근인 허황한 론리 혹은 자가당착의 편파”(역시 박문희의 말을 교묘히 리용하여 도로 후려치기—필자ㅎㅎ)… 그외에도 있지만 생동감이 많이 떨어져 여기에 인용하지 않는다.“박문희가 왜 이런 작법을 썼을가?”김월성은 나의 목적을 다음과 같이 설정하고있다--“남영전이 주장하고있는 원시인들의 생명일체화감정의 영속성 혹은 영원성의 근거를 마련”,  “남영전의 <토템문화론> 비호”, “인류의 원초문화의 일종이라고 할수 있는 생명일체화의 원시적감정의 영속성을 립증하려는 의도”,  “생명일체화의 원시적감정에 대한 애착심”…박문희의 “바꿔치기” 등 작법이 의도적인 “사기행각”일수밖에 없는 리유--“일반인들은 아직 구경도 하지 못했을 <후한서. 고구려전>이나 <한서. 지리지>의 내용까지 거론할수 있을 정도의 깊은 학문”(ㅎㅎ감사!!!)을 쌓은 그러한 “박문희가 자신의 론지의 근거로 삼고있는 맑스의 <정치경제학비판. 도언> 마지막 부분의 그처럼 통속적인 론술을 오독(汚瀆)했거나 제대로 해독하지 못했다고 하면 아마 믿을 사람이 없을것”. 희랍신화와 호메로스사시에 대한 김월성의 주장은 다음과 같다--맑스는 "희랍신화"는 "희랍예술"의 "무기고", "토양", "전제", "소재"로만 인정했을 뿐이다. 맑스는 "신화"를 사람들의 "환상"을 통한, 그리고 "비자각적인 예술적가공을 거친 자연과 사회형식 자체"만으로밖에 인정하지 않았다.  맑스에 따르면 "환상"과 "비자각적인 예술방식에 의해 가공된 자연과 사회 자체"로서의 "신화"인 까닭에 "신화"는 희랍예술의 토양이나 소재로만 될수 있었을뿐 "영구한 매력"을 지닌 예술의 높이에까지는 이를수 없는것이다. 맑스가 "희랍신화의 영구한 매력"을 말했다면 "영구한 매력"을 지닌 "신화"는 "소실"될수가 없는것이다. 말 그대로 "영구한 매력"을 지니고있기 때문이다. 아래 나의 “조작실상”을 “고백”하겠다—나는 맑스의 원 저작을 모조리 읽어볼수가 없어서 사이트를 통해 <맑스>와 <신화>란 두 단어를 검색했다. 거기에 <영구한 매력>이란 맑스의 말이 묻어나왔다. <영구한 매력>을 검색했더니 맑스의 신화리론에 대한 거의 모든 연구결과가 <신화>와 <영구한 매력>을 련계시키고 있었다. 맑스의 신화리론연구에서 <영구한 매력>을 <신화>에서 분리시키거나 아예 탈락시킨 연구론문은 아직 보지 못했다. 보았다면 김월성의 글에서 보았을뿐이다. 나로 놓고 말하면 전무후무한 일일것이다. 맑스의 원문을 본 뒤의 나의 리해도 <신화>와 <영구한 매력>은 분리되는것이 아니였다. 인류의 동년시대(유년기라고도 번역되는 듯)에 대한 맑스의 론설도 원시시대를 말한것이지 김월성이 말한것처럼 노예제시대를 말한것이 아니다. 엥겔스도 <가족,사유제 및 국가의 기원>에서 <...호메로스의 력사시와 모든 신화-바로 이러한것이 희랍인이 미개시대에서 문명시대에 넘겨준 주요한 유산이다>(맑스엥겔스선집 한문판 제4권 上 22페지)라고 지적한 바 있다. (여기서 미개시대는 한어에서의 야만시대를 말한다. 그리고 한어에서의 몽매시대가 조선어에서 야만시대로 번역된다.)때문에 김월성의 <"신화"는 야만시대 저급단계의 생성물이고 맑스가 "영구한 매력"을 지니고있다고 격찬한 "희랍예술"은 희랍노예제의 결과물인것이다.>라는 관점은 맞는것 같지 않다. 맑스의 신화리론에 대한 무수한 연구론문중 나는 중국사화과학원 민족문학연구소 사이트(http://iel.cass.cn/news_show.asp?newsid=1211)에 올려진 <맑스의 신화리론—겸하여 신화학연구중의 몇가지 관념을 평함>이 비교적 중요하고 정확하다고 나름대로 생각했다. 김월성이 꼬집는 이른바의 "내포된 신화"나 “성숙된 어린이”는 그 론문의 관점과 해석을 취한것(례컨대 “내포된 신화”의 원문은 이렇다—马克思高度评价了希腊神话所具有的超越历史时空的巨大魅力。马克思说:希腊艺术和史诗中所包含的神话具有“永久的魅力”,至今“仍然能够给我们以艺术享受,而且就某方面说还是一种规范和高不可及的范本”。这一评价,主要肯定了希腊神话所具有的巨大的给人以艺术享受的美学价值。)이지 내가 딴 심보를 품고 <제멋대로 조작해낸 거짓말>이 아니다. 흥취가 있다면 그 사이트에 들어가 보기 바란다. 혹시 의외의 소득이 생길수도 있으니까. 김월성의 주장과 대조해 보면서 어느것이 맞는지 판단하기 바란다. 그리고 필요하면 당연히 다른 좋은 론문들도 찾아볼수 있을것이다.9월 15일장춘에서(부록: 차후에 점검해 보니 "성숙된 어린이"에 관한 나의 리해에 차도가 생긴것 같다. 좀 더 심사숙고해볼가 한다.--필자)//[문학산맥]CC론단
40    박문희가 맑스의 론술을 조작한 실상(實狀) /김월성 댓글:  조회:4461  추천:56  2007-09-15
박문희가 맑스의 론술을 조작한 실상(實狀)  김 월 성 박문희의 글은 주로 세번째 장절인 <<인류 원초의 문화에 영원한 가치원소가 없는가?( 이하 <<영원한 가치원소>>로 략칭함)에서 맑스의 론술을 인용하기도 하고 조작하기도 했다. 박문희는 "맑스, 엥겔스의 심각한 론술을 살펴본다"고 했지만 기실 원시인들의 생명일체감정을 바탕으로 삼고있는 남영전의 이른바 <<토템문화론>>을 변호하기 위해 이른바 "희랍신화의 '영구한 매력'", 이른바 "희랍신화의 '천진성'", 이른바 "희랍신화의 '거대한 매력'"이라는 엉뚱한 개념들을 허위조작해 가지고 그것으로써 "희랍예술"에 대한 맑스의 평가를 "희랍신화"에 대입시는 작법으로 희랍신화와 희랍예술에 대한 맑스의 본의를 완전히 변형시켜 버리고있다. 그 점을 살펴보기 위해 먼저 신화와 희랍예술에 대한 맑스, 엥겔스의 론술을 살펴보기로 하자. 맑스의 다음과 같은 론술에서 우리는 신화의 생성 년대를 똑똑히 확인할 수 있다. 야만시대의 저급단계에서 인류의 고급적인 속성이 발전되기 시작했다. 개인의 존엄, 웅     변, 종교적 감정, 정직, 강인, 용감성이 이 시기에 이미 품격(品格)의 일반적인 특징이     되었다. 하지만 잔혹, 간험(奸險)과 열광도 뒤따랐다. 종교령역에서의 자연숭배와 인격화에  관한 신령(神靈) 및 대지배자에 대한 모호한 개념들이 발생했다. (중략) 상상이라는 인     류의 발전에 그처럼 큰 기능을 일으키는 것이 이 시기의 신화, 전기(傳記)와 전설을 비롯    한 미기재(未記載)의 문학을 생성시키기 시작했고 또 이미 인류에게 강력한 영향을 일    으켰다.(馬克思. <<摩爾根<古代社會>一書摘要>>. 人民出版社. 1965. 54-55페지.) 맑스는 신화가 인류의 야만시대 저급단계의 생성물임을 분명하게 지적하고있다. 야만시대의 저급단계가 바로 원시사회인 것이다.(맑스와 엥겔스는 원시사회를 몽매시대, 야만시대로 나누고 시대마다 저급, 중급, 고급단계로 각각 나누었다.) 엥겔스의 <<가정, 사유제와 국가의 기원>>을 참조. 그런가하면 엥겔스는 희랍예술은 원시사회가 해체되고 성숙된 노예제사회의 상승기 즉 인간의 문명시대의 제작물임을 지적했다. 엥겔스는 노예제가 사회생산로동에 더욱 큰 규모의 분공이 있게 했음을 지적하면서 희랍예술은 희랍노예제의 생성물임을 다음과 같이 론술하고있다.   ... ... 그리하여 고대문화의 번영 즉 희랍문화를 위해 조건을 마련했다. 노예제가 없으     면 희랍국가가 없었으며 희랍의 예술과 과학이 없었을 것이다.(趙常林, 林婭. <<馬克思主義文化學>>. 中國文化書院. 1988. 387. 재인용). 맑스, 엥겔스의 상기의 론술에서 우리는 "신화"는 야만시대 저급단계의 생성물이며 "희랍예술"은 문명시대 즉 희랍의 노예사회의 더욱 큰 분공(分工)의 생성물임을 분명히 확인할수 있다. 그리고 박문희가 주요한 근거로 삼고있는 <<정치경제학비판. 도언>>에서는 "희랍신화"와 "희랍예술"간의 관계를 "희랍신화는 희랍예술의 무기고일뿐만아니라 그것의 토양이다."라고 분명하고도 통속하게 해명했다. 맑스에 따르면 "희랍신화"는 "희랍예술"의 "무기고"나 "토양"일뿐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닌것이다.    이 점을 확인한 다음 박문희가 맑스, 엥겔스의 그러한 론술들을 어떻게 자의대로 뜯어고치고 조작했는지를 살펴보기로 하자.   박문희는 <<영원한 가치원소>>의 장절의 4, 6, 7, 8 단락들에서 이른바 "희랍신화"를 무려 일곱번이나 반복하고있다. 그중 4째 단락에서 처음 인용한 "희랍신화"만이 맑스의 본의일뿐 나머지는 모두가 박희문이 조작해낸것이다. 박문희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있다.    희랍의 예술 나아가 서방예술에 가지는 희랍신화의 의의에 대해 그는(맑스를 가리킴-     필자) "희랍신화는 단지 희랍예술의 무기고이기만 한것이 아니라 희랍예술의 토양"이라     고 규정하고나서 "력사와 시공(時空)을 초월한 희랍신화의 거대한 매력"에 대해 다음과     같이 평가하고있다. 희랍예술과 사시(史詩)에 내포된 신화는 "영구한 매력"을 가지고있     는바 지금까지도 "여전히 우리에게 예술적향수를 주고있으며 모종 방면으로 놓고 말하면     그것은 일종 규범적인 그리고 초월할수 없는 보기이기도 하다."(박문희. <<김월성의 <토템문화론>을 론함>>. <<문학과 예술>>. 2007. 4호.) 바로 이 부분이다. 처음에 인용한 "희랍신화"는 맑스의 말을 인용한것이다. 그러나 련속이어지는 "력사와 시공을 초월한 희랍신화의 거대한 매력"은 박문희가 출처를 밝히지 않았기때문에 찾아볼수도 없고 확인할수도 없다. 그러나 신화에 대한 맑스의 관점을 총적으로 고찰해보면 맑스가 이른바 "력사와 시공을 초월한 희랍신화의 거대한 매력"을 이야기할수가 없다고 판단된다. 앞의 인용문에서도 볼수 있듯이 맑스는 신화를 야만시대 저급단계의 생성물로 간주했다. 그리고 박문희가 근거로 삼고있는 <<정치경제학비판. 도언>>의 론술을 보면 희랍신화를 희랍예술의 "토양", "희랍예술의 전제", "희랍예술의 소재" 혹은 "희랍예술의 토양과 모태(母胎)"의 정도로밖에 인정하지 않았다.1) <<馬克思, 恩格斯選集>> 二券. 人民出版社. 1974. 113페지. 참조. 또한 맑스는 "자연력이 실제적으로 지배를 받게 됨에 따라 신화도 역시 소실된다."(동상서. 같은 곳)고 분명히 지적했다. 그러한 립장에 있었던 맑스가 "력사와 시공간을 초월한 희랍신화의 거대한 매력"을 담론했다는 박문희의 론술에는 전혀 믿음이 가지 않는다. 맑스가 어디에서 그런 말을 했는지 박문희의 가르침을 기다린다.   잇달아 박문희는 맑스의 론술을 인용하면서 "희랍의 예술과 사시(史詩)에 내포된 신화는 '영구한 매력'을 가지고있는바 지금까지도 '여전히 우리에게 예술적향수를 주고있으며 모종 방면으로 놓고 말하면 그것은 일종 규범적인 그리고 초월할수 없는 보기이기도 하다.'"( 박문희의 글.)라고 기술하고있다. 여기에서 이른바 "희랍의 예술과 사시(史詩)에 내포된 신화"는  박문희가 자의적으로 조작해낸것임이 틀림없다.   맑스의 원문에는 "희랍예술과 사시(史詩)에 내포된 신화"가 아니라 "희랍예술과 사시"라고 분명하게 적혀 있다.(<<馬克思, 恩格斯選集>> 二卷. 114페지. 참조.) 그러나 박문희는 "희랍예술과 사시"라는 맑스의 론술에 난데없는<<... ... 에 내포된 신화>>를 억지로 덧붙여넣었다. 그러한 작법으로 박문희는 "희랍예술과 사시"에 대한 맑스의 높은 평가를 "희랍예술과 사시에 내포된 신화"에 대한 평가로 바꾸어놓았다. 그래서 "희랍예술과 사시"에 대한 맑스의 평가는 거기에 "내포된 신화"에 대한 평가로 탈바꿈되고 말았다. 박문희가 왜 이런 작법을 썼을가?   남영전의 토템문화를 비호하려는 박문희에게 대해 말할 때 "희랍예술"에 대한 맑스의 높은 평가는 별 의미가 없는것이였다. 앞에서 이미 확인했듯이 "희랍예술"은 인류의 원초문화인것이 아니라 희랍노예제의 생성물이였기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원시인들의 상상의 생성물이라고 하는 신화를 선택하지 않을수 없었다. 그런데 신화를 야만시대 저급단계의 생성물로 인정했던 맑스가 박문희의 구미에 맞도록 신화를 높이 평가할 리유가 없었다. 그래서 그는 "희랍예술과 사시"라는 맑스의 론술에 "...에 내포된 신화"를 덧붙여넣음으로써 "희랍예술"에 대한 권위성을 띤 맑스의 높은 평가를 신화에 도용(盜用)했던것이다. 그 결과 "희랍신화"와 "희랍예술"에 대한 맑스의 론술은 완전히 변형되고 말았다. 박문희는 나의 이러한 판단도 "저질언어"로 인정하는지?    박문희는 6, 7, 8단락들에서도 이른바 "희랍신화의 '영구한 매력'", 이른바 "희랍신화의 '천진성'", 이른바 "희랍신화의 '거대한 매력'"이라는것을 네 번이나 반복하고있다. 박문희는 맑스의 론술인것처럼 인용부호까지 달고있지만 희랍신화의 "영구한 매력"이나 희랍신화의 "천진성"은 원문(原文) 그 어디에서도 찾아볼수 없다. 그러므로 그것들은 말그대로 박문희의 조작품인것이다.   이와같이 박문희는 맑스가 말한 "희랍예술과 사시"에 억지로 "신화"를 덧붙여 넣음으로써 맑스의 본의를 완전히 탈바꿈시켰고 또 맑스가 지적한 야만시대 저급단계의 생성물인 "신화"와 희랍노예제의 생성물인 "희랍예술"에서의 "예술"을 바꿔치기를 하는 작법으로 "희랍예술"에 대한 맑스의 론술을 "희랍신화"에 대한 론술로 완전히 왜곡하고있다.   물론 박문희는 남영전이 주장하고있는 원시인들의 생명일체화감정의 영속성 혹은 영원성의 근거를 마련하려고 맑스의 론술까지 조작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이러한 작법이야말로 박문희 자신도 타매하고 있는 "저질언어" 혹은 저질행위일 뿐만 아니라 사기적 행각이라고 인정한다. 나는 남영전 본인도 박문희의 이러한 작법에는 부정적일것이라고 믿는다. 또한 이러한 사기적 행각은 남영전의 <<토템문화론>>을 비호할 대신 그것을 궁지에로만 몰아갈 것임을 박문희는 알아야 할 것이다.     조작과 왜곡을 통해 박문희는 신화에 대한 맑스의 론술을 완전히 "자가당착적인 편파"(박문희의 말)로 만들어 버리고말았다. 왜냐하면 박문희도 인용하고있듯이 맑스는 "신화는 소실"되는것이라고 분명히 지적했다. 그런데 박문희의 말대로 맑스가 "희랍신화의 영구한 매력"을 말했다면 "영구한 매력"을 지닌 "신화"는 "소실"될수가 없는것이다. 말 그대로 "영구한 매력"을 지니고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도리쯤은 우리가 다 알고있는 일반 상식에 지나지 않는것이다. 그러므로 "신화가 소실"된다는 맑스의 론술과 박문희가 맑스의 론술이라고 조작해낸 "희랍신화의 영구한 매력"은 서로간에 엄청난 모순을 초래하게 된다. 그래서 맑스의 론술은 박문희가 질타하고있는 진정한 의미에서의 "자가당착적인 편파"가 되어버리고 만것이다.   혹자는 "신화"와 "예술"이라는 두 글자 차이를 가지고 뭘 떠들어대느냐고 힐책할수도 있다. 하지만 이것이 어디 두 글자 차이만이 문제인가? 앞에서 맑스와 엥겔스의 론술을 통해 이미 확인했듯이 "신화"는 야만시대 저급단계의 생성물이고 맑스가 "영구한 매력"을 지니고있다고 격찬한 "희랍예술"은 희랍노예제의 결과물인것이다. 그러므로 "희랍예술"에 대한 맑스의 평가를 "희랍신화"에 대입시키려는 작법은 그 발상부터가 소의 머리를 잘라다가 말의 몸체에 붙여주려는것과 같은 어처구니없는 소행일수밖에 없다. 박문희는 어떻게 생각하는지?   물론 인간에게는 무의식적인 착각이 없을수는 없다. 그리고 전공자가 아닌 우리가 그처럼 방대한 맑스, 엥겔스의 저작들을 일일이 다 접촉할수도 없는 일이다. 그러나 박문희인 경우, 맑스의 론술에 대한 그러한 조작이나 바꿔치기는 순간적인 착각에서거나 몰리해에서 비롯된것일수가 없다고 생각한다. 박문희는 <<정치경제학비판. 도언>>의 마지막 부분을 주요한 근거로 삼고 자기의 론의를 전개했다. 두 페지 정도의 분량밖에 안되는 그 부분에서 맑스는 "희랍예술"과 "희랍신화"와의 관계를 아주 분명하고도 통속하게 론술했다. 박문희는 또 카시르의 <<인론>>도 읽었다고 한다. 카시르도 예술과 신화의 구별점을 담론했다. 특히 박문희는 일반인들은 아직 구경도 하지 못했을 <<후한서. 고구려전>>이나 <<한서. 지리지>>의 내용까지 거론할수 있을 정도의 깊은 학문을 쌓았다. 그러한 박문희가 자신의 론지의 근거로 삼고있는 맑스의 <<정치경제학비판. 도언>> 마지막 부분의 그처럼 통속적인 론술을 오독(汚瀆)했거나 제대로 해독하지 못했다고 하면 아마 믿을 사람이 없을것이다. 그러면 맑스의 그 부분의 론술을 살펴보기로 하자.    희랍신화는 희랍예술의 무기고일 뿐만아니라 그것의 토양이다.     희랍예술의 전제는 희랍신화이다. 말하자면 이미 인민들의 환상을 통한 일종 비자각적인    예술적가공을 거친 자연과 사회형식 자체이다. 그것이 희랍예술의 소재인 것이다.2) 매우 통속적인 론술이다. 첫 번째 어록은 박문희도 인용하고 있다. 인용문에서 볼 수 있듯이 맑스는 "희랍신화"는 "희랍예술"의 "무기고", "토양", "전제", "소재"로만 인정했을 뿐이다. 맑스는 "신화"를 사람들의 "환상"을 통한, 그리고 "비자각적인 예술적가공을 거친 자연과 사회형식 자체"만으로밖에 인정하지 않았다.  맑스에 따르면 "환상"과 "비자각적인 예술방식(인간의 자각적인 예술방식이 아닌 - 필자)에 의해 가공된 자연과 사회 자체"로서의 "신화"인 까닭에 "신화"는 희랍예술의 토양이나 소재로만 될수 있었을뿐 "영구한 매력"을 지닌 예술의 높이에까지는 이를수 없는 것이다. 맑스가 그러한 "비자각적인 예술적가공을 거친 자연과 사회형식 자체"에 "영구한 매력"이 있다고 말했을 리가 없다. 맑스의 상기의 론술들을 통해서도 비록 "예술"과 "신화"라는 두 글자 차이이지만 "희랍신화의 영구한 매력"이라는 박문희가 조작해낸 가짜 맑스의 론술이 얼마나 황당한것인지를 감지할수 있다.    박문희는 이른바 인류의 원초문화의 일종이라고 할 수 있는 생명일체화의 원시적감정의 영속성을 립증하려는 의도에서 신화의 가치만을 높이기에 몰두하다보니 론리적 오유까지 범하고있다. "희랍신화"가 "희랍예술의 토양"이라는 맑스의 론술은 우리에게 매우 익숙한 "생활은 문학예술의 토양"이라는 개념과 같은 론리적 구조를 가지고 있다. 생활이 문학예술의 토양이기는 하지만 생활자체가 문학예술인것은 아니다. 같은 리치로 희랍신화가 희랍예술의 토양이기는 하지만 희랍신화자체가 희랍예술인 것은 아닐 것이다. 희랍예술 속에 망라되였거나 반영되여 있는 신화를 희랍예술의 "영구한 매력"으로 풀이하려는 시도는 론리적으로도 어불성설이라는 얘기다.     그밖에 박문희는 맑스의 <<정치경제학비판. 도언>>의 마지막 단락을 인용하고나서 "그는(맑스를 가리킴- 필자 주) 인류의 '동년시대', '주체와 객체를 구분하지 못하는 영아상태'가 아니라 '성숙된 어린이'인 인류의 원초 조상들의 '천진성'에 '영구한 매력'이 있음을 극명하게 시사하고있다."라는 론의를 전개하고있다.   어법이 잘 맞지 않는데다가 "성숙된 어린이"라는 개념의 뜻을 리해할수가 없어서 이러한 론의의 확실한 취지가 무엇인지를 딱히 파악할수는 없지만 아마 박문희는 인류의 원초 조상들인 원시인들은 "영아"가 아니라 "성숙된 어린이"이며 그들이 지니고있는 "천진성"에 "영구한 매력"이 있음을 주장하고있는것 같다. 나름대로의 판단이 허용되고있는 오늘과 같은 자유로운 학술분위기속에서 자아의식이 결여된 원시인들의 사유를 "영아상태"에 비유했던 자신의 관점을 누구에게 강요해야 할 그 어떤 리유도 나에게는 없다고 생각한다. 다만 맑스가 그 점을 "극명하게 시사했다"는 론의만은 짚고 넘어가지 않을수 없다.     우선 "성숙된 어린이"가 어디에서 온것인지를 알수 없다. 맑스는 희랍예술의 "영구한 매력"을 담론하면서 "조야(粗野)한 어린이", "조숙한 어린이", "정상적인 어린이"를 말했을뿐이다. 맑스는 "희랍인을 정상적인 어린이"이라고 지적했다. 앞에서도 살펴보았듯이 "천진성", "영원한 매력" 모두가 희랍예술에 대한 평가인것이다. 박문희는 생명일체화의 원시적감정에 대한 애착심으로부터 "야만인" 혹은 "무지몽매한 미개족속"이라는 원시인들에 대한 나의 지칭에 대단히 불만스러워하는것 같다. 그러나 엥겔스의 저작 <<가정, 사유제와 국가의 기원(家庭, 私有制和國家的起源)>>에서도 볼수 있듯이 맑스와 엥겔스는 인류사회를 몽매시대, 야만시대, 문명시대로 획분했다. 그리고 앞에서 엥겔스의 론술을 통해 확인할수 있었듯이 희랍예술은 문명시대 즉 희랍노예제의 생성물이였다. 맑스의 "천진성", "영구한 매력"은 바로 희랍노예제의 생성물인 "희랍예술"에 대한 평가인것이다. 맑스의 그러한 평가를 몽매시대나 야만시대의 "원초 조상"들인 원시인들과 련계시키는 시도 역시 사실무근인 허황한 론리 혹은 "자가당착의 편파"가 아닐수 없다. 그러므로 맑스가 "원초 인류의 조상들의 '천진성'에 '영구한 매력'이 있음을 극명하게 시사하고있다."는 박문희의 론술 역시 남영전의 이른바 "토템문화론"을 비호하기 위해 제멋대로 조작해낸 거짓말이라고 하지 않을수 없다. "예술"과 "신화"를 바꿔치기를 한 자신의 작법을 기상천외한 묘법으로 간주했기에 박문희는 이러한 터무니없는 거짓말도 마음놓고 할수 있었을것으로 사료된다. 하지만 박문희의 생각과는 달리 종이장으로는 불덩이를 쌀수 없고 사실은 언제나 사실대로 밝혀지기 마련이다.    총적으로 박문희는 남영전의 생명일체화의 원시적감정을 바탕으로 삼고있는 이른바 토템문화론을 비호하기 위해 맑스의 론술을 조작, 왜곡하는 방법으로 맑스의 본의까지 탈바꿈시키고있다. 다른것은 모두 제쳐놓고 이 한 점만으로도 토템문화론을 비호하는 박문희의 주장은 모래성이 무너져 내리듯 저절로 주저앉지 않을수 없게 되였다. 그밖에 박문희는 "비판적유심론철학자로서의 카시르의" "모든 리론이 반드시 정확하다는 보장은 그 어디에도 없다."고 분명히 말했다. 그렇다면 박문희의 관점에 반론을 전개하고있는 나의 립장에서는 "정확하다는 보장이 그 어디에도 없는" "비판적유심주의철학자 카시르"가 제기한 원시인들의 생명일체화감정을 인정할뿐만 아니라 그것의 영속성까지 주장하는 의도가 도대체 무엇이였으며 맑스의 론술을 조작해내고 왜곡까지 하면서라도 생명일체화의 원시적감정에 립각한 남영전의 토템문화론을 반드시 비호해야만 했던 당위성이 도대체 무엇이였던지를  박문희에게 묻지 않을수 없다.//[문화산맥]CC론단/9월 14일
39    [창업칼럼] 공수창업자 선언 댓글:  조회:4401  추천:73  2007-09-12
공수창업자 선언   나는 성스러운 공수(空手)창업자이다. 돈은 없지만 나에겐 끓는 피가 있고 아울러 힘과 용기와 뭔가를 해내려는 드팀없는 결심이 있다. 나에겐 각별히 두려운것이 따로 없으며 이제부터 시간을 금싸락처럼 아끼면서 과감히 리상실현에 헌신할것이다. 계획서 열부보다 행동 한가지가 백배 낫다. 오늘 오후 공상국에 가서 바로 회사등록을 할것이다.   적수공권인 나에게는 부(富)로부터 오는 부담이 없다. 할리우드는 새로 찍은 영화 한부에 매표수입 수억딸라를 올리지 않으면 단연 밑질터이지만 나로 보면 한시간에 10원만 벌어도 대단한 수입이다. 내가 지금 쓰고있는 방이 바로 나의 사무실이다. 전용승용차도 필요없고 전화 한부면 회사가 아주 무난히 돌아갈수 있을터이다.   초지일관 기정의 전략목표를 바라고 뛸것이지만 그러나 그 어떤 기성책략에 결코 얽매우지는 않을것이다. 기회의 태양이 항상 머리우에서 빛나고있는만큼 적시적판단으로 내 귀뿌리를 스쳐지나려는 반짝기회를 놓지지않고 잡을것이다.   나는 총경리이자 결책자이며 실무대표이자 또한 실무원이다. 엄격한 재무관리목표를 설정해놓고 나 자신의 표현에 대한 스스로평가를 성실하게 리행할것이다.   나한테 “관료주의”나 “형식주의”같은 시시콜콜한 관념따위는 붙지 않을것이다. 나는 사랑하는 직원들과 고락을 함께 할것이며 그들을 친형 혹은 친동생으로 대할것이다. 경영에서의 중대사항(때론 중대사항이 아니더라도)은 자주 직원들과 의논할것이며 고객들과도 매일 얼굴을 마주할것이다. 나를 진심으로 도와주는 주변의 모든 사람들에게 깊이 감사할것이며 은혜를 입으면 반드시 보답할것이다.   작은것을 쉽게 포기하지 않고 큰것을 탐닉하지도 않을것이다. 작은것의 루적이 없다면 큰것의 이룸도 없음을 잘 알고있기 때문이다.   나의 회사, 이 자그마한 집단을 내 눈처럼 아끼고 사랑할것이다. 녀자 열이라도 한달 사이에 아이 하나를 생산해 낼수 없을 터이고 천재 열이 모여도 우리 둘이나 셋보다 별로 나은데가 없을것이다. 천재들만 모이면 서로 제가 잘났다고 티격태격하면서 대사를 그르치기 마련일터이다. 그러나 우리 이 자그마한 집단은 극히 사소한것처럼 보이지만 실상 매우 중요한 그런 조그마한 일들을 매일 반개 혹은 하나씩 이루어갈것이다.   일류의 봉사를 생명으로 간주할것이다. 겉치례보다는 실속있는 봉사로 고객들의 마음을 사로잡을것이다. 박경림의 노래가사에 나오듯 나의 회사를 찾는 모든 고객들은 이제 틀림없이 나와 우리 직원들의 피할수 없는 매력속으로 깊숙히 빠져버리게 될것이다. 그 매력은 다름아니라 고객을 자기 집 식구처럼 대하는 따뜻한 마음가짐일것이다.   나는 용감하고 엄숙하면서도 쾌활한 사나이다. 나는 내가 선택한 모든 일을 대담하고 즐겁게 그리고 열심히 행해나갈것이다. 물론 고생을 밥먹듯 하고 쓰리고 아픈 일들도 많을테지만 나는 그것을 오히려 즐거운 일로 간주할것이며 그런 시련을 나를 강하게 벼리는데 있어서의 불가결의 요인으로 삼을것이다. 그 어떤 역경이나 실패에도 질겁하지 않을것이요 락담하여 쓰러지는 일은 더욱 없을것이다. 그러나 그런 어려움에 대비해 나는 내가 하는 일에서만큼은 최고의 실무지식과 기능을 갈고닦을것이요 시종 공부에 게을리 하지 않을것이다.   원래 홀몸에 빈손인 나에게는 잃을만한것이란 아무것도 없다. 이제 잃을것이라면 무지와 빈궁뿐일것이요 얻는것은 내가 얻고자하는 모든것일터이다.//길림신문
38    김월성의《토템문화론》을 론함 댓글:  조회:4624  추천:84  2007-09-06
김월성의《토템문화론》을 론함   박문희     《문학과 예술》 2007년 제3기에서 남영전의 문장 《토템문화가 우리에게 주는 계시》(이하 《계시》로 략칭함, 제목을 클릭하면 원문열독이 가능함)에 대해 신랄한 비판을 가한 《생명일체화의 원시적정감과 남영전의 “토템문화론”》(이하《토템문화론》으로 략칭함, 제목 클릭하면 원문 열독 가능함)이란  비평문을 접하게 되여 전에 없던 흥미가 유발됐다. 그래서 지난 세기 서방 굴지의 비판적유심주의철학자 카시르의 명작《인론(人論)》까지 읽어보는 열성이 생기게 되여 스스로도 매우 놀랍다.   전에 없던 흥미가 유발됐다 함은 김월성이 남영전의 글 전문 18개 단락을 한단락도 빠트리지 않고 말 그대로 “철두철미”한 비판을 가했다는데 기인된다.  재미가 동한  김에 남영전의 《계시》도 두세번 더 읽어보는 시간도 가지게 되였다.  그러나 전혀 뜻밖에도 김월성의  글이 겉보기에서의 기세보다는 내용이 허하고 론리전개면에서도 자가당착적인 편파가 몇군데 보이여  전반 글의 설득력 나아가 비판의  가치가 많이 떨어진듯한 아쉬움이 남는다. 나의 글은 서론, 본론, 결론 등을 겸비한 그 무슨 론문도 아니고 수감, 말하자면 김월성의 《토템문화론》 독후감일 뿐이다. 조금은 심각하다고 생각되는 부분을 추려 솔직하게 적으면서 잘못된 부분, 경망(輕妄)한 부분에 대해서는 김월성, 남영전 두 선생으로부터 따뜻한 가르침이 있기를 기대하는 바이다.    “만약 카시르의 이같은 론술이 합리한것이라면…”의 위험성   《토템문화론》에서 김월성은 시종 독일의 비판적유심주의 철학자 카시르의 《인론》에 나오는 대량의 론술을 론거로 삼아 《계시》의 거의 모든 관점과 제기법을 비판하고있다. 그는  “만약 카시르의 이같은 론술이 합리한것이라면… 그의 주장은 ‘매우 유치한 독단론’일수밖에 없게 된다”는 식으로 남영전의 주장을 재단하고 있는데 필자의 소견으로 이런 재단법은 상당히 큰 위험성을 안고있다. 왜냐 하면 카시르의 모든 리론이 반드시 정확하다는 보장은 그 어디에도 없기때문이다. 례컨대 “신화”에 대한 비판적유심주의자로서의 카시르의 견해와 변증법적유물주의자로서의 맑스의 견해는 매우 큰 차이를 보이고있다. 신화의 산생에 대한 카시르의 견해는 매우 모호하며 부정적이다. 그는 “정감의 산물”로서의 신화는 “이상야릇”[i] 한 것이며 “신화사상은 그 기원과 원칙으로 말하면 구습답습사상”인바 그것은 “신화는 아주 먼 옛날에로 거슬러 올라가는것 외에는 인류생활의 모든 현존형식을 리해, 해석하고 천명할만한 아무런 방법도 찾아낼수 없기 때문”[ii] 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그의 견해와는 반대로 “신화”에 대한 맑스의 견해는 아주 밝으며 긍정적이다. 맑스는, 신화란 조기의 인류가 강대하고 신비한 자연력을 실제적으로 지배할수 없는 조건하에서 “상상으로, 혹은 상상을 빌어 자연력을 정복하고 자연력을 지배”하려는 욕망에서 창조해낸것이자 “인민들의 환상을 통한 일종 비자각적인 예술방식에 의해 가공된 자연과 사회형식 그 자체”이며 자연을 “인격화”하려는 원시인들의 욕망은 “인간 자신의 생산을 목적으로 한것이다”[iii] 고 하였다. 이 한가지 례만 보아도 카시르 한사람의 리론을 잣대로 다른 사람의 주장의 옳고그름을 함부로 재단한다는것이 얼마나 위험한지를 알수 있다.   “생명일체화”와 “천인합일” 사상은 본질적으로 다른 것인가?   김월성이 《토템문화론》에서 비판한 중점은 “생명일체화”사상이다. 그는 카시르가 “생명일체화”가 “인간의 자아의식(주로 륜리의식)의 생성과 함께 소실”된 력사과정을 언급한 례를 적용하면서 카시르가 “생명일체화”는 “철저히 실패할 수밖에 없는” 억측에 불과한 “매우 유치한 독단론”이라고 말한 이상 남영전의 주장도 필연코 “철저히 실패할수밖에 없다”고 못박는다. 여기서 “생명일체화”, “무아지경”, “교감에 의한 합일식” 등 몇가지 개념이 나오는데 우선 그 개념들간의 관계를 알고 넘어가야겠다. 김월성에 따르면 “무아지경(無我之境)”이란 “ ‘교감(交感)에 의한 합일’ 즉 주체와 객체를 구분하지 못하는 영아(嬰兒)상태의 토템숭배식의 합일”이며 “‘생명일체화’ 및 그것에 바탕한 ‘토템숭배관념’은 원시인들의 ‘무아지경’의 생성물” 이라고 한다. 그럼 “무아지경”과 원초의 “천인합일”사상은 련계가 없는가? 김월성은 “물론 원시인들의 생명일체화감정과 오늘 우리가 추구하는 고급적인 천인합일사상(망아지경) 사이에 상통성(相通性)이 전혀 없는것은 아니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상통성일뿐 결코 동일성인것은 아니다”라고 한다. 그렇다면 그것은 원시인들의 “생명일체화감정”과 동양원초의 “저급적”인 ‘천인합일사상”은 동일성을 가지고있다는 말로 통한다. 중국의 일부 철학가들은 동양 원초의 “천인합일”사상과 서양의 “교감에 의한 합일식(合一式)”사상을 모두 “무아지경”[iv]으로 비유하고 있다. 바로 이런 까닭에 “주체”와 “객체”를 구분하지 못하는 세계철학사의 3단계(무아, 유아, 망아)중 첫단계(김월성이 말하는 “영아상태의 단계”)에 발생한 관념들이라는 의미에서 상술한 몇가지 개념, 즉 원초적 “천인합일”사상, “생명일체화”감정, “교감에 의한 합일”사상, “토템숭배사상”, 나이가 “토템신화” 사상 등의 내포는 본질적으로 일치하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필자도 이런 철학사상 구분법에는 추호의 이의도 없이 수긍하는 바이다. 기실 동서양 철학사의 궤적도 이 점을 증언하고있다. 2000여년 전, 특히 소크라테스, 플라톤(기원전 5세기) 이전의 고대희랍철학(서방의 조기철학)은 인간과 자연을 주체와 객체로 나누지 않고 량자를 동일체로 간주한다. 이는 동양조기의 철학관(천인합일사상)과 완전히 일치한것이다. 그리고 지난 세기에 카시르가 만들어낸 “생명일체화”개념은 본질상 조기 서양철학의 “주객합일설”의 현대적표현에 지나지 않는다. 물론 오랜 세월에 걸쳐 서로 모르고 지내오면서 동양과 서양이 각기 자기의 력사를 만들기에 바삐 돌아치다보니 그 내용면에 차이가 많이 나는것이 사실이며 각자 력사단계의 지속시간이 크게 다른것도 아주 분명하다. 바로 이런 까닭에 상호간 대방의 력사경험에서 유익한 부분을 배우는것은 필요할수밖에 없는것이다. 김월성의 “20세기 초엽부터 흥기하고있는 서방의 생태륜리학파는 동방의 천인합일사상을 수용할것을 주장하고있다”는 서술이 만약 이런 상황을 두고 말한것이라면 그것은 의미적으로나 시기적으로도 십분 적절한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필연적으로 다음과 같은 문제에 직면하게 된다. 말하자면 만약 김월성이 지적한 바와 같이 “생명일체화”나 원초적 “천인합일”사상이 일찌기 “소실”돼버린 “무지몽매”한 상고적 문화로서 오늘날 리용할만한 아무런 가치(“영구한 가치원소”란 더 “어처구니 없는” 말이고)도 없다고 한다면 인간이 살고있는 이 세상에 구경 어떤 결과가 빚어졌을가 하는 문제가 제기된다는 것이다.  주지하다싶이 모든 인류력사의 각 단계는 서로 끊어질수 없는 련관속에 놓이게 되며 모든 문화 역시 전승관계를 가진다. 이런 관계는 단절할래야 단절할수 없는것이다. 가장 간단한 례를 들면 오늘 우리가 사용하는 말이나 문자도 어느날 갑자기 생겨났다가 또 어느날 갑자기 사라지는것이 아니며 그것은 우리의 조상들이 오랜 시일에 거쳐 만들었고 또한 후세 사람들이 오랜 세월에 거쳐 오늘의 이 모양으로 만들었다는것이다. 세종대왕의 거룩한 공적은 오늘은 물론 후세 사람들도 영원히 기리게 될것임을 회의하는 사람은 없을줄로 안다. 이와 마찬가지로 오늘의 모든 문화성과는 반드시 그 뿌리가 있는것이며 그 뿌리는 아무리 베여버릴래야 버릴수가 없는것이다. 동양고전으로서의 “천인합일”사상은 우리에게 매우 익숙한 존재이며 우리 문화의 모든 령역에 침투되여 있는 사상이다. 철학사의 제3단계 즉 “망아지경”의 “천인합일”사상도 그 뿌리를 떠날수 없으며 단지 그 사상체계를 “새롭게 해석”(김월성 語)하여 보다 높은 차원으로 승화시킬수 있을뿐이다. 서양의 고전철학사상으로서의 “교감에 의한 합일식(合一式)”사상( “생명일체화”사상 망라)도 결국은 마찬가지다.   물론 “소실론”이 전혀 무근거하거나 도리가 없는것은 아니다. 모종 철학개념으로 말하면 “생명일체화”의 “소실”, 따라서 원초적 “천인합일”관념의 “소실”은 지어 필연적이기도 하다. 그것은 맑스가 천명했다싶이 과거에 인식하지 못했던 “자연력이 실제상 지배됨에 따라 신화도 소실”[v] 될수밖에 없는 것과 꼭같은 도리이다. 단 그것은 실재한다고 확신했던 환상이나 상상속의 실재가 아닌 허상이 인간의 자아의식의 각성으로 소실된것이지 특정 력사단계에서 원시인들의 세계관의 한부분으로 각인된 그런 관념문화 자체가 사라진것은 결코 아니며 인류가 최초에 창조한 문화유산으로서의 그 가치가 사라진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만약 그런 것들이 모두 김월성이 인정하는 것처럼 흔적도 남기지 않고 철저히 “소실”되여버렸다면 력사가 철저히 단절되여 그 후의 문화는 존재할수도 없었을것이요 따라서 그것의 발전 운운은 더구나 불가능했을것이다.     인류 원초의 문화에 영원한 가치원소가 없는가?   우리 현시대 모든 문화가 뿌리가 있는것이고 그런 뿌리를 끊어버릴수 없는것이라 할 때 새로 제기되는것은 인류의 원초적문화에 “영원한 가치원소”가 있느냐 없느냐 하는 문제이다. 김월성은 “자연과 화해하고 사람사이에 형제적관계를 도모”하는 원시인들의 “착하고 아름다운 심성”을 고양해야 한다는 남영전의 주장은 “원시인들의 생명일체화감정을 ‘영원한 가치원소’로 간주”하는 “그릇된 사유방식”에서 비롯된것이며 그러한 사유방식이야말로 “비행기는 원시사회에도 있었다는것과 같은 ‘원형선온식가설’에 다름 아닌것”이며 이는 또 “그의 사유가 아직도 원시인들의 신화와 종교의 사유 즉 생명일체화의 원시적사유에서 벗어나지 못했음을 증언하고있다”고 비판한다. 남영전의《계시》를 보면 그가 표달하고자 하는 의도는 아주 명확하다. 그는 현대의 인간이 원시 초민들의 소박하고 순진한 심성을 배워 자연을 자기의 생명으로 간주하여 사랑하고 인간지간에도 형제간처럼 화목하게 지내자는것이다. 그가 고양하고자 하는 토템문화의 “영원한 가치원소”란 바로 이점을 두고 한 말이다. 하지만 김월성은 이를 매우 “그릇된 사유방식”이라고 지적한다. 그러나 이 문제와 관련하여 우리는 맑스와 엥겔스의 심각한 론술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맑스와 엥겔스는 인류최초의 원시인과 그들이 창조한 문화에 대해 상당히 높은 평가를 하고 있다. 엥겔스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원시사회는 “미래의 모든 사회에 대해 말할 때 어쨌든 가장 흥미로운 시대이다. 왜냐하면 그 시대는 그 후 전부의 보다 높은 단계의 발전에 토대를 마련해주었기 때문이며 그 시대는 인간이 동물계로부터 분리되여나옴을 출발점으로 장래 뭉친 사람들이 영원히 다시 겪지 않을 그런 곤난을 극복하는것을 내용으로 하고있기 때문이다.” [vi]우리는 이 론술을 원시인들이 누구도 대신할수 없는 독창적인 창조적활동으로 장래 문화발전의 토대를 마련하지 않았다면 오늘의 눈부신 문화도 있을수 없다는 의미로, 그리고 우리 원초의 조상들을 “자기와 짐승도 구별못하는 깨지 못한 미개족속들” 이라고 비난할수만은 없다는 말로 리해해도 될것이다.  맑스는 인류의 조상들이 창조한 문화에 대해서도 높이 찬양하고 있다. 례컨대 고대의 희랍신화에 대해 맑스는 다음과 같은 측면들에서 높이 평가하고있다. 희랍의 예술 나아가 서방예술에 가지는 희랍신화의 의의에 대해 그는 “희랍신화는 단지 희랍예술의 무기고이기만 한것이 아니라 희랍예술의 토양”[vii]이라고 규정하고나서 “력사와 시공을 초월한 희랍신화의 거대한 매력”에 대해 다음과 같이 평가하고있다. 희랍예술과 사시(史詩)에 내포된 신화는  “영구한 매력”을 가지고 있는바 지금까지도 “여전히 우리에게 예술적향수를 주고있으며 모종 방면으로 놓고 말하면 그것은 일종 규범적인 그리고 초월할수 없는 본이기도 하다.” [viii] 필자는 맑스의 이 론술은 고조선의 건국신화인 《단군신화》에도 단연 알맞는다고 생각한다. 《단군신화》는 우리 민족 신화의 원형으로서 우리에게 민족적 정체성을 부여한다. 곰이 인간으로 화신했다는 모티브에서 우리는 원시적 토템사상의 흔적을 엿볼수 있으며 주제의식의 “홍익인간”이란 리념을 통해 신화적 보편성과 그것이 가지는 높은 가치도 확인할수 있다. 이 신화는 후대로 전승되면서 민족공동체의 결속에 기여했을 뿐만 아니라 후세의 문학에도 매우 큰 영향을 끼쳤다. 다시 맑스의 론술에로 돌아가면, 희랍신화가 이처럼 시공을 초월한 “영구한 매력”을 가질수 있는 원인에 대해 맑스는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인류의 동년시대”에 “희랍인은 정상적인 아동”이였는데 아동의 천진함은 언제나 사람들로 하여금 “유쾌감을 느끼게” 한다. 희랍신화의 가치중 하나는 바로 인류동년의 천진성을 “진실하게 재현”했다는데 있다. [ix] 맑스의 유물사관으로 이 말을 리해하면 희랍신화의 “거대한 매력”은 근본적으로 말하면 이런 “정상적인 아동”의 매력에서 온것이라 할수 있다. 맑스의 이 론술로부터 자연히 김월성의 “ ‘교감(交感)에 의한 합일’ 즉 주체와 객체를 구분하지 못하는 영아상태”란 제기법을 련상하게 되는데, 토템신화를 망라한 최초의 문화를 창조한 우리의 조상을 “주체와 객체도 구분못하는 영아”로 표현하는것이 과연 합리한가 하는 생각을 떨쳐버릴수 없다. 맑스는 희랍신화의 “영구한 매력”과 관련하여 《정치경제학비판대강(초고)》에서 다음과 같은 리론을 펴고있다. 인류의 력사는 “바로 무제한적으로 인류의 창조적 천재를 발굴하는것이며 모종 특수한 방면에서만 인간을 재생산하는것이 아니라 완전한 인간을 생산하는것이다”. 그러나 “자산계급경제학과 그에 상당한 생산시대는 인류의 내재적본질에 대한 이런 철저한 발굴이 철저히 공허해지게 하고 사물의 보편적인 변화를 극단적으로 마비시키고있으며 고정적이고 일면적인것을 타파하는 모든것을 일종 순수한 외재적목적을 위해 인류자신을 희생하는 목적으로 바꿔놓고있다”. 고대의 세계는 “인간을 생산의 목적으로 삼았”지만 “현대세계는 언제나 생산을 인간의 목적으로 삼고있으며 또한 재부를 생산의 목적으로 삼고있다”. 비교적측면에서 말할 때 고대 세계의 “이런 견해(인간을 생산의 목적으로 삼는것을 말함—필자)는 현대세계에 비해 훨씬 더 고명한것”이며 때문에 “그 유치한 고대세계는 일종 각별히 숭고한 세계처럼 보인다”. [x] 이 론술은 맑스의 다른 한 저서인《정치경제학비판》도언의 론술과도 완전히 어울린다. 《도언》중 맨 마지막 한단락에서 맑스는 다음과 같이 지적하고있다. “한 어른이 다시 어린이로  돌아갈수는 없다…그러나 어린이의 천진함은 어른에게 유쾌감을 주지 않는가? 어른이라면 보다 높은 차원에서 자기의 (소시적)진실을 재현하려는 노력을 하지 말아야 하겠는가? 하나의 시대에 있어서 그 시대의 고유한 성격은 그것의 순진성으로 다시금 어린이의 천성속에서 활약하고 있지 않은가? 무엇때문에 력사상 인류의 동년시대는 그것이 가장 완미하게 발전된 곳에서 영원히 돌아오지 않는 단계로서의 영구한 매력을 과시하지 말아야 하겠는가? 거칠고 야한 어린이가 있고 조숙한 어린이도 있다. 고대민족중 많게는 이 부류에 속한다. 그리스인은 정상적인 아동이다. 그들의 예술이 우리에게 주는 매력은 그것이 성장했던 그 미발달사회와 결코 모순되는것이 아닌것이다. ” [xi] 맑스의 이 일련의 론술은 경제의 고도성장과 더불어 인간 고유의 순박하고 아름다운 본성이 사라져가고 날로 경제의 노예가 되고있는 사회의 현실을 비판한것이다. 그는 인류의 “동년시대”, “주체와 객체를 구분하지 못하는 영아상태”가 아니라 “성숙된 어린이”인 인류의 원초 조상들의 “천진성”에 “영구한 매력”이 있음을 극명하게 시사하고있다. 여기서 남영전의 “영원한 가치원소”관점에 대한 김월성의 부정적견해가 재고돼야 할 가능성이 불가피하게 제기된다.   토템문화는 “철두철미”한 서방문화인가?   《토템문화론》에서 김월성은 “원시종교형태인 토템문화는 철두철미한 서방문화”라고 하면서 20세기 초엽부터 흥기하고있는 서방의 생태륜리학파는 동방의 천인합일사상을 수용할것을 주장하고있”는데 “서방인도 아닌 남영전이 무엇때문에 토템숭배에 그토록 집착하는지? 그 저의가 무엇인지?”하고 의혹을 제기한다. “토템문화는 철두철미한 서방문화”란 이 명제는 기실 이른바의 “토템문화”에 대한 편견을 버리고 조금만 명제풀이에 노력을 기울인다 할 때 전혀 문제시 될일이 아니다. 왜냐하면 “토템문화”가 세계 각지, 이를테면 아세아주의 아랍국가, 이스라엘, 일본과 중국을 망라한 수많은 나라와 지역에 광범위하게 존재하고있음은 전반 인류학계가 공인하는 사실이기때문이다. 문학평론가 최삼룡에 의하면 인디안인들이 쓰던 “토템”이란 단어가 제일 먼저 유럽의 학술문헌에 나타났기때문에 세계 학술계는 아주 자연스럽게 같은 개념을 나타내는 다른 단어를 밀어버리고 “토템”으로 대체하였다고 한다. 그리고 “토템”을 중국의 어원크족은 “칼부르”라고 부르고 커무인들은 “다”라고 부르며 중국에서 “totem”을 중국어로 제일 먼저 번역한 사람은 엄복(严复)이라는 사실도 제시했다. 보다싶이 단지 “토템”이란 명칭이 서방에서 들어왔다는 리유만으로 그것이 “철두철미 서방문화”라고 하는것은 도리가 없는것이며 따라서 “서방인도 아닌 남영전이 무엇때문에 토템숭배에 그토록 집착하는지?”하는 의혹도 자연히 풀릴수밖에 없게 된다. 이 문제가 확실히 풀렸으면 “우리 민족의 선민들은 토템문화를 갖고있었는가” 하는 문제가 뒤따라 나선다. 한국 학자들의 현황을 보면 이 면의 연구가 그리 활발한 편이 아닌것 같지만 그러나 지금까지의 연구결과만 봐도 토템문화단계는 분명 있었던것으로 파악된다. 례컨대 한국학자들은 “선사시대의 토템신앙은 태양이나 거석, 달, 큰나무, 큰동물, 큰바다, 큰강 등 자연에 존재하는 큰것에 대한 숭배로부터 시작”되였는데 “《삼국유사》나  《제왕우기》 등 《단군신화》에 나오는 곰 신화나 호랑이 이야기도 같은 맥락에서 볼수 있다”고 하였다. 배달국의 치우천왕이 호랑이를 숭배하는 족속을 백성으로 삼았다거나 말이 울다가 하늘로 올라간 자리에서 발견된 알에서 혁거세가 나왔다거나 닭이 우는 곳에 있던 궤에서 알지가 발견되였다거나 혁거세의 부인인 알영이 우물에서 나타난 룡의 오른쪽 갈비대에서 출생했다거나 금와왕의 모습이 개구리를 닮았다 함도 마찬가지로 토템숭배의 표현형태라고 한다. 그들은 《단군신화》에서 환인이 웅녀와 결혼했다 함은 선민사상을 지닌 부족과 곰토템을 갖고있던 부족과의 련합을 의미한다고도 한다. 《후한서-고구려전》에는 "고구려는 본래 다섯 개의 족이 있는데 소노부(消奴部), 절노부(絶奴部), 순노부(順奴部), 관노부(灌奴部), 계루부(桂婁部)가 있다"고 기술되여있다. 고구려 5부족의 전신인 5가(家, 加), 즉 우(牛)가, (馬)가, 저(猪)가, 구(狗)가, 양(羊)가도 역시 각 부족의 상징동물로 대신한 각 부족의 명칭이다. 오가의 역할은, 우가는 곡식을 주관했고 마가는 목숨을 주관했으며 저가는 병을 주관했고 구가는 형벌을 주관했고 양가는 선악을 주관 했다고 아주 구체적으로 밝히고 있다. 여기서 소, 말, 돼지, 개, 양은 실은 당시 각 부족의 토템이였던 것이다. 현대과학의 발전이 토템신화연구에 힘을 실어주고있다는 사실이 상당히 흥미롭다. 《삼국유사》에 의하면 고조선은 기원전 2333년경에 단군에 의하여 건국되였다고 한다. 그런데 《삼국유사》는 고려후기에 씌여졌을뿐만아니라 고조선에 관한 내용이 너무 간략하기 때문에 다수의 학자들은 그것을 그대로 믿기 어렵다고 여겼었다. 그러나 근래 고조선연구가 진전되면서 이 기록이 상당히 신빙성이 있는것으로 밝혀졌다. 중국의 《한서(漢書)-지리지》에는 기원전 1200년경 기자(箕子)시대 고조선에 “8조 금법(禁法)”이 있었다고 전하는데 이 시기에 법률이 있었다면 고조선이 고대 국가체제를 갖춘것은 그보다 앞선 시대로 추정된다. 또 최근 고고학연구에 의하면 우리 민족의 청동기문화가 시작된 시기가 기원전 2400년경으로 확인되였다. 이 시기는 《삼국유사》에 기록된 단군의 고조선 건국시기와 비슷하며 청동기시대에 대체로 국가사회단계에 진입하였다는 일반론을 따르면 기원전 2333년경에 고조선이 건국되였다는 기록은 타당한 근거가 있는것이다. 현대인류의 조상문제연구도 마찬가지다. 현대인류는 어디에서 왔는가 하는 문제에 대해 인류학자들은 오랜 기간에 걸쳐 일치한 견해를 가져올수 없었다. 그러나 얼마 전 과학자들은 최신기술의 DNA분석을 거쳐 상고시대 아프리카 동남부의 한 자그마한 부락에서 살았던 원주민이 현대인류의 공동한 선조임을 실증했다. 과학가들에 따르면 세계 각지에 널려있는 토착민들에 대한 DNA분석을 통해 현대인류의 공동한 조상이 어떻게 세계 각지에 퍼졌는지를 보여주는 전반 력사적 이동로선까지 멀지 않아 밝혀내게 된다고 한다. 그외 중국의 과학자들도 유전생물학연구를 거쳐 중국원인(猿人)이 중국인의 선조가 아님을 실증했다고 선포했다. 신기하고 놀라운 현대과학의 눈부신 발전을 통감하지 않을수 없는 대목이다.   김월성의 자가당착적인 사고에 대하여 몇마디   1) 장래에는 토템식 “형제관계”가 수립 가능한가? 《토템문화론》에서 김월성은 “남영전은 《오늘의 희망》이라는 제목으로 진행한 대담에서 토템식 ‘형제관계’가 수립되여야 한다는 싸르트르의 주장을 인용하면서 그것으로 자기의 토템문화론의 정당성을 립증하려고 했다”고 전제하고 “싸르트르는 인류의 요원한 미래를 념두에 두고 말한것이지 현실을 말한것이 아니다”라고 했다. 김월성의 말은 여기서 큰 모순을 자초하고 있다. 하나는, 싸르트르는 분명 “오늘 우리는 반드시 이런 정신(즉 토템식 ‘형제관계’)을 회복하여야 한다”고 말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김월성은 “아니다”라고 하며 “말 그대로 그것은 미래사회의 ‘희망’사항”일뿐이라고 한다. 그러나 그러면 더 큰 모순이 나타난다. 김월성의 주장대로라면 토템식 “형제관계”는 오늘에도 성립될수 없을뿐만아니라 인류의 요원한 미래에는 더구나 허용되지 말아야 할것이기 때문이다.   2) 새로운 참조계하에서의 낡은 전통 해석평가 문제 지난해 《문학과 예술》제6기에 실린 김월성의 비평서 《전통과 민족문화의 발전에 대한 사고》의 결론부분에는 이런 몇단락의 말이 있다.   민족문화에 대한 연구, 토론은 무엇보다도 낡은 문화전통가운데서 새로운 세계를 펼쳐보이는데 초점이 맞춰져야 할것이다. 또한 새로운 세계를 펼쳐보이려면 문화전통이 직면하고 있는 오늘의 참조계에 비추어 창조적이며 현실지향적인 새로운 해석이 진행되여야 할것이다. 맑스는, 전통은 우리의 모든 언행의 시발점인 동시에 전통의 속박에서 벗어나야 함을 강조하고 있다. 우리의 문화연구는 기정된 시발점에서 출발해야 하지만 그것을 통해 무한한 미래를 펼쳐보여야 한다. 전통이란 과거를 의미하는 것으로서 그 자체에 대해 말할 때에는 절대적으로 확정된것이며 이미 개변할수 없는 페쇄적인것이다. 하지만 그것을 어떻게 대하는가 하는 문제는 현재와 장래에 속하는 문제인것이다. 관건은 새로운 참조계하에서 낡은 전통을 평가하고 해석하는 문제이다. 그래야 전통은 굳어진 시체가 아니라 새로운 생명력을 과시하는 살아있는 실체로 될수 있을것이다.   솔직히 김월성의 이 견해에 필자는 전적으로 동감한다. 이 글의 앞에서 전개한 론증도 일정한 설득력을 가진다고 보고있다. 원래 이런 견해를 적용하여 “구체적인 문화현상”인 남영전의 “토템문화론”을 “새로운 참조계” 즉 “오늘 날 인간이 실리추구에 지나치게 집착하고 자연에 대해서는 인류중심주의를, 타인에 대해서는 자기중심주의를 행하면서 인간과 인간, 인간과 자연간의 조화로운 관계가 파괴돼가고 있는 상황”에 비추어 “새롭게 해석”했더라면 그의 글은 완전히 다른 면모로 나타날수도 있었을것이다. 유감스럽게도 김월성은 매우 훌륭한 견해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구체적인 문화현상 앞에서는 참조계에 의한 평가와 해석력을 완전히 상실하고있으며 결국 자신이 제시한 정확한 론리를 철저히 뒤집어엎는 결과를 자초하고있다.   3) “민족문화다원화”문제와 “토템문화론”배척의 모순 《토템문화론》의 마지막 부분에서 김월성은 서방경제의 강세에 힘입어 서방중심주의가 팽창세를 보이고있는 형세에 맞서서 “민족문화다원화구호”가 제기되고있음을 강조하면서 그 대안으로 “모든 민족, 모든 나라는 자기 문화의 다양성, 차이성, 특수성으로 이미 확립된 세계체계에 참여해야 함”을 제시하고있다. 그러나 그는 남영전의 “토템문화론”을 “다원적민족문화”에서 배제하고있을뿐만 아니라 오히려 “토템문화론”을 “민족문화다원화”와 대립시키고있다. 남영전이 “현단계에서 토템숭배관념으로 인류의 문화를 균질화해 보겠다”고 시도한다는것이 그가 “토템문화론”을 “민족문화다원화”와 대립시키고있는 주요 리유이다. 김월성의 이런 견해는 “나는 나의 매수의 토템시가 작디작은 호르래기로 되여 토템의 영원한 가치원소(價値元素)를 부르고 하늘과 땅과 인간의 화해를 부르고 세계의 융합을 부르기를 바란다”고 한 남영전의 말을 “60여억 인구가 자기가 부는 호르래기 소리에 한사람같이 발맞추어 전진할것을 기대한 야심찬 포부”로 착각한데서 생긴것이 분명하다. 종잡아보면 김월성의 이런 견해는 지나치게 독선적이다. 왜냐하면 남영전의 개성적인 “토템문화론”과 그의 시작품들은 분명 민족문화의 한 “분자(分子)”임이 틀림없기 때문이다. 기실 남영전에게는 토템시에 “집착”해서는 안될 그 어떤 리유도 없다. 일개 시인으로서 자기의 독자적인 표달령역을 개척하고 독자적인 정신추구를 하는것은 긍정해야 할 일이지 절대 비난할 일이 아니다. 뿐만 아니라 시인이 자기의 정신추구, 시의 가치추구가 정확한것임을 확신하고 있을 때 이 세상에 자기의 목소리를 낼수 있는 충분한 권한이 있다. 목소리를 조금 높인다 해서 그것이 바로 “인류문화를 균질화해보겠다는 야심”이라고 말할수 없다는 얘기다. 설령 시인들에게 그런 “야심”이 조금 혹은 많이 있다 해도 하늘이 당금 무너져내리는것이 아니다. 이른바 대정치가들과 대리론가들만 이 세상에서 거창한 “치세지도(治世之道)”를 담론할수 있고 보잘것 없고 자그마한 시인은 시단의 끝자락에서 풀피리나 호르래기도 불지 말고 그냥 풍월만 읊조리면서 죽은듯이 살아있어야 한다면 우리의 시단에 무슨 희망이 있겠는가? 황차 남영전은 그 무슨 전쟁, 반목, 무함, 음모, 빈궁, 사스와 황사바람을 부르려는것도 아니고 잊혀져가는 토템문화전통에 내재 가능한 “영원한 가치원소”를 살려 “하늘과 땅과 인간의 화해를 부르고 세계의 융합을 부르”려는것일 뿐인데 일개 시인의 이와 같은 참된 노력 하나도 허용할수 없다는것은 도저히 말도 안되는것이며 그것은 또한 “세계문화다양성선언”정신과  “민족문화다원화”원칙에도 배치되는것이다.   남영전이 금년도 《문학과 예술》 제1기에 발표한 《문단의 조화로운 학술토론분위기를 기대한다》(제목을 클릭하면 원문 열독 가능함)는 글은 아주 성근한 마음으로 쓴것임을 일단 읽어보면 충분히 감지할수 있다. 그러나 남영전의 이 글에 대한 김월성의 “화답”은 읽는 이들을 매우 당혹케 한다.      “18년간 토템문화를 연구했다는 남영전은 ‘단군신화’의 곰이 자기의 토템조상임을 발견했다고 한다. 그러면서 남영전은 ‘일상관념이 무너질 때 나 역시 당혹감을 느끼지 않을수 없었다’고 한다. 왜 남영전이 당혹감만 느꼈는가? 네발가진 암컷곰이 자기의 시조할머니이며 자기가 검은 곰과 ‘전적으로 동일한것’임을 알았을 때 남영전은 그야말로 경악했을것이다. 하지만 조선민족가운데 남영전처럼 네발가진 암컷곰이 자기의 시조할머니이며 곰과 자기가 ‘전적으로 동일한것’임을 인정하는 사람이 남영전 외에 또 몇이나 있는가? (물론 남영전의 토템문화론 혹은 토템시의 몇몇 지지자들에 대해서는 아직 구체적인 조사를 진행하지 못했다.)”   이 한단락의 글에서 남영전의 본의가 완전히 와전된건 차치하고 괄호안팎의 지극히 선의적이지 못한 언어(기실 다른 부분에서도 이와 비슷한 저질언어가 처처에서 로출되고있다)가 과연 학문을 연구하는 글에서 나올수 있는것인지 믿기 어려울 정도다.   남영전은 주로 한어로 창작하는 민족시인이다. 필자 개인의 생각에 시를 포함한 남영전의 일부 글은 한어 원문에 비해 손색이 있으며 오역된 부분도 없지 않다. 그러나 이 점을 가지고 남영전을 지나치게 나무랄수는 없다. 조선족문인이 전국적문단에 두각을 내밀어 조선족문학의 영향력을 과시하는것은 환영할바라고 생각한다. 중국조선족문학이 진정 전국 여러 민족과 세계 여러 민족의 수림속에서 자기의 영향력을 과시할 때 우리 문학은 비로소 세계앞에 떳떳해질수 있기 때문이다. 김월성이 《전통과 민족문화의 발전에 대한 사고》란 글에서 주장한바와 마찬가지로 우리 중국조선족은 두 배에 다리를 올려놓은 어정쩡한 자세로서가 아니라 당당한 중국조선족으로 거듭나야 하는것이 아니겠는가!    이상에서 생각하는 바를 두서 없이 적었다. 개괄력이 약하다보니 글이 많이 길어져 우선 량해를 구하는 바이다. 그리고 일면적이거나 틀리는 곳이 있을수 있으니 허물없는 지적을 바란다.       [i] 카시르의 《인론》 제7장 《신화와 종교》 제1단. [ii] 카시르의 《인론》 제12장 《총화와 결론》 제6단. [iii]《맑스엥겔스선집》제2권 113페지. [iv] 장세영:《명징지경에로의 진입》(Into the Clearing) 참조. [v]《맑스엥겔스선집》제2권 113페지. [vi] 엥겔스:《반듀링론》 [vii]《맑스엥겔스선집》제2권 113페지. [viii]《맑스엥겔스선집》제2권 114페지. [ix] 동상. [x] 맑스: 《정치경제학비판대강》(초안 ) 제3분책 104~105페지. [xi]《맑스엥겔스선집》제2권 114페지.     2007년 제4기 [부록] 생명일체화의 원시적정감과 남영전의《토템문화론》     김월성   1. 머리말   남영전이 표방하고있는 의 부당성(不當性)을 밝히려는것이 본고의 취지이다. 남영전은 1)에서 자기의 이른바 토템문화론을 전면적으로 전개했다. 그리고 2)는 글에서 자기의 토템문화론이 국내외 학술계에서 대환영을 받고있는 사실을 렬거하면서 이른바 토템문화론을 재언명했다.   남영전의 이런 글들은 철두철미 원시인들의 정감을 바탕으로 작성된것이다. 원시적정감에서 생성된 생명일체화의 전형적인 표현형태인 원시인들의 토템숭배를 이라고 서슴없이 주장하고있는 사실이 그 점을 증언하고있다. 남영전의 그러한 주장은 억설(臆說)에 다름 아니라는것이 본고의 립장이다.   생명일체화는 독일철학가 카시르가 제7장 에서 제기한 개념이다. 카시르에 따르면 생명일체화란 인간의 생명은 공간과 시간가운데서 확정적인 계선이 없는 무한대한것으로서 자연의 전부의 령역과 인간의 전부의 력사에 신장(伸張)되여 있는것으로 간주하는 원시인들의 정감인것이다. 동방의 과 비슷한 개념이라고 할수 있다. 다만 과 이라는 개념이 서로 다를뿐이다. 생명일체화는 원시인들의 개인정감과 사회정감에 충만되여 있는것이였다. 카시르는 그것을 으로 지칭하기도 했다. 동시에 카시르는 생명일체화의 구체적표현형식과 인간의 자아의식(주로 륜리의식)의 생성과 함께 그것이 소실(消失)된 력사적과정을 언급하기도 했다.   남영전의 토템문화론은 바로 카시르의 생명일체화론을 차용한것이다. 그런데 남영전은 카시르의 체계적인 론술에서 생명일체화라는 개념만을 잘라내여 카시르의 본의와는 전혀 달리 자기의 구미에 맞게 람용하고있다. 때문에 18개 단락으로 이루어진 남영전의 는 거의 모든 단락들마다에서 자체모순 내지 어처구니없는 웃음거리를 자초하고있다.   이에 본고는 우선 카시르의 제7장 3)를 텍스트로 삼고 생명일체화 및 토템숭배에 관한 카시르의 론술을 고찰하고자 한다. 동시에 남영전이 카시르의 그러한 론술을 어떻게 왜곡하고있는지를 살펴볼것이다. 그밖에 남영전의 토템문화론이 현실적으로 제기되고있는 민족문화다원화의 구호와 어떻게 배치되고있는지에 대한 나름대로의 소견을 피력할것이다.   본고는 카시르의 론술로 남영전의 토템문화론의 부당성을 밝히려고 한다. 때문에 독자들은 지루함을 느끼겠지만 카시르의 말을 길게 인용하지 않을수 없다. 이 점을 미리 사과한다. 2. 생명일체화에 관한 카시르의 론술 론의의 편리를 위해 먼저 서방철학사의 흐름을 간략하게 살펴보기로 하자. 철학이란 세계관 즉 세계에 대한 관점 혹은 태도문제인것이다. 소크라테스, 플라톤 이전까지의 서방철학은 조기의 자연철학으로서 인간과 세계에 대한 관점은 주로 교감(交感)에 의한 합일식(合一式)이였다. 플라톤의 은 객관리념을 인식의 목표로 삼고 주체(인간)와 객체(세계)를 량분(兩分)하는 주객관계의 철학 즉 서구의 근대철학의 시작인것이다. 그러한 주체성 철학은 헤겔에 의해 고봉을 이루었다. 헤겔 이후 서방의 대다수의 현당대철학가들은 주객관계의 철학을 폄하하거나 반대하면서 인간과 세계의 합일을 주장하고있다. 물론 그러한 합일은 교감에 의한 합일 즉 남영전이 주장하는 주체와 객체를 구분하지 못하는 영아(嬰兒)상태의 토템숭배식의 합일인것이 아니라 주객관계를 망라하면서도 그것을 릉가하는 초월상태에서의 합일인것이다.   철학사흐름의 이같은 세개 단계를 중국의 일부 철학가들은 , , 으로 비유하기도 한다.4) 여기에서의 이란 인간의 자아의식이 결여된 상태를 의미한다. 생명일체화 및 그것에 바탕한 토탬숭배관념은 원시인들의 의 생성물인것이다. 은 자아의식이 각성을 의미한다. 인간은 자아의식에 의해 주체와 객체를 구별하게 된다. 일신론 종교 혹은 륜리적종교의 출현이 자아의식의 각성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카시르의 제7장 는 카시르가 의 상태에서 원시인들의 으로부터 에의 일탈과정을 부감한것이라고 할수 있다. 아래에서 의 생성물인 생명일체화에 대한 카시르의 론술을 살펴보기로 하자. 1) 혹은 으로서의 생명일체화 카시르는 5)라고 지적했다. 원시인들은 사물을 분류하지 못한다. 왜냐하면 교감에 의한 만을 지니고있기때문이다. 이 점은 원시사유와 과학적사유가 구별되는 시발점이라고 할수 있다. 카시르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6) 원시인들은 식물, 동물, 인간을 구별할줄 모르며 생명을 류와 아류로 획분할줄 모른다. 자연계의 모든 생명을 인간생명의 연장된것으로 간주할뿐이다. 카시르의 이와같은 분석은 기실 원시인들의 생명일체화감정에 대한 구체적인 해석인것이다. 계속 이어지는 카시르의 론술을 살펴보기로 하자.   7)    카시르는 생명일체화는 론리가 아니라 정감의 생성물로서 생명체 모두가 일률로 평등하다고 생각했다고한다. 분석능력이 결여된 원시인들은 들에 인간의 생명이 소통되여 있는것으로 생각했기때문이다. 그래서 세상만물 이를테면 개나 뚜꺼비, 까마귀 모두가 인간과 친족관계에 있다고 여겼다. 원시인들의 그러한 관념은 무지와 몽매에서 비롯된것일수밖에 없다. 그러나 남영전은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원시인들은 자연계중의 모든 생명형식은 모두 친척관계라는 의 관념을 믿음으로써 인류의 기     원에 대한 질문에 대답했으며 이로써 자연계와 화해에 이르렀고 사람지간의 형제관계를 도모하였고 진정한 의     미에서의 세계융합을 실현하였다. 혹여 현대인들은 원시인들의 이러한 토템관념을 무지와 몽매의 사물이라고      여길지도 모른다. 사실 현대인들의 현대병은 원시인들의 진실하고 착한 본성을 오진한데서 비롯된다.8)   이것이 남영전의 토템문화론의 핵심이라고 할수 있다. 인용문에서 볼수 있듯이 남영전은 원시인들의 무지와 몽매에서 비롯된 생명일체화를 현대인들의 현대병을 치료할수 있는 만병통치약이라고 주장한다. 카시르에 따르면 남영전의 이러한 주장은 억측에 불과한 인것이다. 왜 이러한 결론부터 내리는지를 아래에서 살펴보기로 하자.   카시르가 지적했듯이 생명일체화 및 그것의 표현형태인 토템숭배관념은 원시인들의 정감에서 비롯된 신화와 종교적감정인것이다. 론리적사유가 배제된 원시인들의 그러한 감정은 식물, 동물, 인간을 구별하지 못한다. 식물과 동물에도 유일한 인간의 생명이 소통되여 있기 때문에 모두가 친족관계에 있다고 인정할뿐이다. 이러한 경향을 카시르는 다음과 같이 분석하고있다.   9)   카시르의 이같은 론술이 합리한것이라면 생명일체화 및 모든 생명형식이 친족관계라는 원시인들의 사유에 경도된 남영전의 주장은 일수밖에 없게 된다.   그밖에 남영전은 원시인들은 고 하면서 원시인들의 생명일체화를 도덕적진리 내지 영원한 진리로 간주하고있다. 카시르는 그러한 경향을 두고 다음과 같이 말하고있다.   10)   카시르의 론술에 따르면 남영전의 토템문화론은 이다. 원시적정감을 일종 진리로 착각했기때문이다. 물론 원시인들의 생명일체화감정과 오늘 우리가 추구하는 고급적인 천일합일사상(망아지경) 사이에 상통성(相通性)이 전혀 없는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상통성일뿐 결코 동일성인것은 아니다. 생명일체화를 현대병치료의 특효약으로 간주하는 남영전의 토템문화론은 철학상에서 이미 배격당한 오늘의 비행기는 원시시대에도 있었다는것과 같은 인것이다.11) 남영전은 어떻게 생각하고있는지? 2) 생명일체화에 대한 카시르의 구체적인 론술    남영전은 원시인들의 생명일체화는 , 이기 때문에 해야 한다고 한다. 이런 주장 역시 카시르의 관점에 대한 왜곡인것이다. 카시르는 생명일체화의 구체적현상을 다음과 같이 론술하고있다.   12)   카시르의 이같은 론술이 진실한것이라면 원시사회는 결코 남영전이 생각하고있는것처럼 가 도모되였고 그러한 사회, 그러한 이 아니였을것이다. 경제와 의료보건수준이 원시사회와는 비교할수 없을 정도로 발전된 오늘의 사회에서도 해마다 많은 사람들이 어쩔수 없이 죽어가고있다. 죽음이란 누구도 피해갈수 없는 자연현상이기때문이다. 원시사회의 렬악한 환경에서 기아와 질병 그리고 야수들의 습격으로 인해 죽어간 원시인들의 수자는 엄청난 정도였을것이다. 또한 죽어간 인원수에 상당한 무고한 원시인들이 살인자로 인정받고 보응받는 참극이 벌어졌을것이다. 이런 사실은 생명일체화에 의한 원시인들의 이 는 남영전의 주장을 반증(反證)하고있을뿐이다. 원시인들은 말 그대로 야만인들인것이다. 원시인들의 그러한 야만성은 생명일체화에서 유발된것이다. 카시르의 론술을 더 살펴보기로 하자.   13)   카시르가 말하고있는 그리고 그것에 대한 이 바로 남영전이 주장하고있는 원시인들의 생명일체화인것이다. 남영전은 그것을 보배처럼 여기면서 이른바 토템시라는것까지 쓰면서 표방하고있지만 카시르는 고 주장하고있다. 남영전은 카시르의 이런 주장을 어떻게 생각하고있는지? 3) 생명일체화의 소실(消失)에 대한 카시르의 론술    남영전은 원시인들의 토템문화가 고 선포한다. 어떤 을 어떻게 일으키는지에 대해서는 별 언급이 없다. 자기의 토템문화론을 정당화하기 위한 일시적인 방편으로 한 선포이지만 역시 카시르의 론술과는 엄청난 차이를 보이고있다.   카시르는 륜리의식의 각성과 함께 생명일체화의 소실의 필연성을 거론하고있다. 카시르는 력사적관점으로 볼 때 종교와 도덕이 확보하고있는 뚜렷하고도 분명한 계선을 찾아내기가 매우 어렵다고 했다. 인류학자들도 원시사회에서의 인간의 능동성은 담론할 여지가 없는것이라고 인정했다. 카시르는 그러한 현상을 원시사회의 생활에 대한 순수한 기계론이며 자발론적인 교조라고 지적했다. 물론 야만인들은 본부락의 습관과 전통을 매우 존중했을것이다. 하지만 습관과 전통의 힘이 원시생활가운데의 유일한 력량인것은 아니였다. 카시르는 매우 낮은 인류의 문화수준이였을지라도 여타의 력량이 존재했던 분명한 흔적들이 남아있다고 했다. 이어 카시르는 개별적인간들에 의해 형성된 새로운 종교리상에 따라 종교사상이 진전되였음을 말하면서 1930년에 출간된 길버트. 뮤레이의 저작 의 내용을 소개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있다.   14)   서방인으로서의 카시르는 서방문화의 중심인 종교적차원에서 륜리적종교의 생성과 함께 원시인들의 생명일체화의 원시적감정의 소실과정을 론의하고있다. 카시르의 이같은 론의가 현세주의가 주축을 이루고있는 우리의 동방문화의 실정에 완전히 부합되는것이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원시인들의 무아지경으로부터 유아지경에로의 일탈과정에서 생명일체화의 소실은 일종 필연성을 띤 현상이라는 점은 매우 큰 의미가 있는것이다. 카시르의 론술은 다음과 같이 이어지고 있다.   15)   카시르는 원시종교의 생명일체화가 일신론 종교의 륜리적의지에 의해 정복되였음을 말하고있다. 인간들은 륜리적시각으로 자연을 관찰하게 되였고 리성적으로 자연을 탐구하게 되였다. 이상과 같은 론의에 근거하여 카시르는 16)는 결론에 이르고 있다.   하지만 남영전은 는 생명일체화의 원시적감정을 오늘도 주장하고있다. 남영전의 이러한 주장을 생태환경이라는 단순한 생물학적차원으로만 리해할수 없다. 카시르의 론술에서 보았듯이 생명일체화는 이미 력사발전과정에서 부당한 것으로 소실된 원시인들 감정이다. 또한 생태환경보호에서 성과를 보이고있는 일부 발전된 나라들의 경험은 자연법칙에 대한 심각한 파악이 선행되여야 함을 사실적으로 립증해주고있다. 때문에 원시적감정에 대한 남영전의 지나친 집착은 생명일체화 및 그것에 바탕한 토템숭배관념에 대한 몰리해에서 유발된것이라고 인정할수밖에 없다. 남영전의 가 생명일체화의 원시적감정에서 작성된것이라고 하는 주요한 리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3. 토템숭배관념에 대한 카시르의 론술       원시인들의 토템숭배관념에 대해 카시르는 다음과 같이 론술하고있다.   1)   인용문에서 볼수 있듯이 카시르는 토템숭배관념의 가장 주요한 특징으로 자신을 그 어떤 동식물의 후대로 간주하는 점을 들고있다. 그 점을 분명히 하기 위해 카시르는 인종학자, 인류학자들의 조사사실을 사례로 들기까지 했다. 또한 그 점이 바로 일반적인 자연물숭배와 토템숭배간의 구별점이기때문이다.   18년간 토템문화를 연구했다는 남영전은 의 곰이 자기의 토템조상임을 발견했다고 한다. 그러면서 남영전은 고 한다. 왜 남영전이 당혹감만 느꼈는가? 네 발 가진 암컷 곰이 자기의 시조 할머니이며 자기가 검은 곰과 임을 알았을 때 남영전은 그야말로 경악했을것이다. 하지만 조선민족가운데 남영전처럼 네 발 가진 암컷 곰이 자기의 시조 할머니이며 곰과 자기가 임을 인정하는 사람이 남영전외에 또 몇이나 있는가?(물론 남영전의 토템문화론 혹은 토템시의 몇몇 지지자들에 대해서는 아직 구체적인 조사를 진행하지 못했다.)   남영전은 42수의 토템시2)라는것을 읊었다고 한다. 42종에 달하는 우리 민족의 토템을 시화했다는것이다. 우리민족이 42종의 동식물을 자기의 조상으로 간주했다는 확실한 근거가 있는지? 서울에서 태백으로 가는 길옆에 외가닥으로 높이 솟은  바위산이 있는데 한국인들은 그 산을 라고 부른다. 불임증에 걸렸거나 결혼후 오래도록 후대를 보지 못한 많은 부부들이 음식을 차려가지고 그 바위산 밑에 가서 아들딸을 점지해 달라고 빈다. 오래전부터 이어져 내려오는 풍속이라고 한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 바위산을 토템조상으로 간주하고 찾아가는것이 아니라 자연물숭배관념에서 찾아가는것이다. 남영전은 자연물숭배와 토템숭배를 구별할줄 알아야 할것이다.   미개족속들의 토템숭배사례까지 렬거한 다음 카시르는 다음과 같이 론평하고 있다.   3)   카시르는 원시인들은 생명일체화에 의해 인간과 동물간의 구별점을 덮어감추고있지만 그것은 경험적의미에서 부정된것이 아니라 신화와 종교적의미에서 부정된것임을 말하고있다.토템관념 자체가 바로 신화와 종교의 파생물이기때문이다. 신화와 종교적시각으로 볼 때 인간, 동물, 식물 모두가 같은 차원에 놓이게 된다. 그것들 모두가 생명의 종교적존엄성을 지니고있기 때문이다. 또한 카시르는 그러한 생명일체화의 소실의 필연성을 언급했다.    그러나 남영전은 오늘도 토템은 임을 부르짖고있다. 남영전은 인간과 동물간의 들을 말아야 할 것이다. 카시르의 론술에서 알수 있듯이 남영전의 이같은 엉뚱한 주장은 그의 사유가 아직도 원시인들의 신화와 종교의 사유 즉 생명일체화의 원시적사유에서 벗어나지 못했음을 증언하고있다.     4. 남영전의 《토템문화가 우리에게 주는 계시》를 분석함        아래에서 18개 단락으로 이루어진 남영전의 를 구체적으로 살펴보면서 앞에서 말하지 못한 부분들을 보충하려고 한다.   첫 단락에서 남영전은 18년간에 걸친 토템문화연구에서 자기의 두가지 을 선포하고있다. 토템문화가 민족문화심리의 임을 했고 현대인들은 를 조성했음을 했다고 한다. 이 두가지 모두가 남영전의 이라고 할수 없다.   토템숭배관념이 일부 민족들의 원형심리임은 많은 인류학자들이 이미 천명한바이다. 새로운것이라면 원시인들의 토템관념이 는 주장인데 어떻게 침투되여 있고 또 어떤 영향과 작용을 어떻게 일으키는지에 대해 남영전은 지금까지도 함구무언이니 그 내막은 알길이 없다. 다음 엥겔스는 남영전보다 백20여년 앞서 4)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엥겔스는 그러한 보복에 대처할수 있는 방법으로 5)을 주장했다. 토템관념으로 을 치료하자는 남영전의 주장과는 판판 다르다. 또한 남영전은 그러한 이 자기의 성과가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해야 할것이다. 학문연구자세에서 남영전은 내것도 내것이요 네것도 내것이라는식으로 나오지 말아야 한다는 얘기다.   두번째 단락에서 남영전은 원시인들도 인류의 기원에 대해 하고 했다고 하는데 원시인의 정신상태를 파악하지 못하고 전개한 이러한 론의는 적어도 무리한것이다. 카시르의 말대로 만을 지니고있었던 원시인들에게는 무엇을 하고 할 사유능력이 없었다.   생명일체화를 집중적으로 론의한 세 번째 단락의 관점에 대해서는 앞에서 이미 언급했다.   네 번째 단락에서 남영전은 인간과 자연계의 관계를 말하면서 자연계를 이라고 한다. 남영전도 자연계의 공기나 물을 마시고 자연계의 고기나 쌀, 남새를 먹으면서 살아갈것이다. 그러한 자연계를 으로 간주한다면 남영전은 의 몸체를 뜯어먹으면서 살아가는 불효자라는 어처구니없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카시르는 원시종교와 륜리종교에서의 서로 다른 자연관을 다음과 같이 해석한다   6)   남영전은 또 원시인들의 을 말하고있다. 남영전은 의 내포를 파악하지 못한채 을 거론하고있다. 인성이란 인간의 속성 혹은 모든 인간들의 공통성인것이다. 인성은 두개 부분 즉 보편성과 특수성으로 나뉘여진다. 보편성이 바로 생물체로서의 인간과 여타의 동물들간의 공통성이다. 이를테면 자유로운 활동, 식욕, 성욕 등등이다. 다른 한 부분은 여타의 동물들과 구별되는 인간으로서의 특수성 즉 공구제조능력, 언어, 리성, 과학수준 등등이다. 본능에 의해 활동하는 원시인들인 경우 여타의 동물들과 구별되는 특수성만을 론하기가 어렵다. 그래서 원시인들을 야만인이라고 지칭한다. 야만인들의 이른바 을 , 이라는 남영전의 주장은 어처구니없는것이다. 하지만 남영전에 대해 말할 때 이같이 어처구니없는 주장은 일종 필연성을 띤것이다. 그의 모든 사유가 원시인들의 생명일체화감정을 바탕으로 하고있는것이기때문이다.   여섯번째 단락은 과도단락이다. 남영전은 이 단락에서도 토템씨족들의 형제적관계를 고양하고있다.   일곱번째, 여덟 번째 단락에서 남영전은 인류의 조상의 발원지가 아프리카뿐이라고 하면서 라는 터무니없는 주장을 제기하고있다. 그런데 지난해 년말에 북경에서 아프리카 여러 나라 수뇌들의 모임이 있었다. 호금도주석이 중화인민공화국을 대표하여 그 모임에서 한 연설에서는 7)라고 말했다. 남영전의 황당한 주장은 토론할 여지조차 없는것이다.   아홉번째 단락에서는 단군신화를 말하면서 곰토템을 말하고있다. 남영전은 단군신화의 환인을 라고 한다. 남영전이 과연 단군신화를 읽어보기나 하고 곰토템을 론의하는지가 의심스러운 대목이다. 단군신화에 대한 남영전의 허황한 론의에 대해서는 지면제한으로 다른 글에서 분석할것이다.   열번째 단락의 성씨분석은 토템숭배관념에 별의미가 없는것이라고 생각된다.   열한번째, 열두번째 단락에서 남영전은 세계 60억 인구 모두가 아프리카조상들의 후대라는 허황한 론의를 전개하면서 새롭게 얻었다는 또 하나의 을 선포하고있다. 그것이 바로 라는것이다. 남영전의 이런 결론 역시 대단한 도 아니고 또 다 맞는것이라고 단언하기도 어렵다. 레닌도 일찍 8)이라고 지적했다. 민족은 자산계급문화의 생성물이라는 얘기일것이다.   그런데 남영전이 말처럼 민족이란 혈통과는 전혀 무관한것인가? 물론 민족개념에는 광의적, 협의적인 방면이 있다. 중화민족이라고 하면 56개 민족이 망라된다. 그러나 한족인 경우 한족문화에 익숙한 조선족이라고 해도 한족의 구성원으로 되기는 어렵다. 반대로 조선족인 경우 한족을 망라시킬수 없다. 민족공동체뿐만아니라 그 개인도 그런 사실을 인정하려고 하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남영전을 오르죤족 혹은 장족이라고 하면 대뜸 반발할것이다. 민족이란 동포의 의미를 지니는 개념이기때문이다. 동포란 어원적으로 따지면 같은 어머니의 배속에서 태여난 형제자매를 뜻한다. 혈통과 민족을 완전히 분리시키는 남영전의 작법을 고명한것이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열세번째 단락에서 남영전은 전지구화시대에 각 민족들이 형제(토템식형제관계)와 같은 정을 가져야만 고 한다. 원시인들의 생명일체화를 보배처럼 여기고있는 남영전의 생각은 그야말로 유치원생들처럼 천진한것이다. 다음 장절에서 남영전의 이런 주장을 구체적으로 살펴보기로 하자.    열네번째 단락에서 남영전은 이라는 제목으로 진행한 대담에서 토템식 가 수립되여야 한다는 싸르트르의 주장을 인용하면서 그것으로 자기의 토템문화론의 정당성을 립증하려고 했다. 그러나 싸르트르는 인류의 요원한 미래를 념두에 두고 말한것이지 현실을 말한것이 아니다. 말 그대로 그것은 미래사회의 사항인것이다. 싸르트르는 그러한 희망을 현실로 전환시키자면 인류는 현단계에서 도덕적수양을 쌓아야 하며 과의 투쟁을 진행하는 등 를 병행시켜야 함을 주장했다. 싸르트르의 이같은 주장은 앞에서 말한 자연에 대한 엥겔스의 사상과 상통되는것이다. 남영전은 싸르트르의 말 역시 그 본의를 무시하면서 람용하고있다.    마지막 세 단락에서 남영전은 자기의 야심찬 포부를 피로하고있다. 그는 자기의 이른바 토템시라는 것을 호르래기에 비유하고 있다. 60여억 인구가 자기가 불어대는 호르래기 소리에 한 사람같이 발맞추어 전진할것을 기대해서 한 비유일것이다. 그러나 경제의 전지구적인 일체화와 민족문화다원화의 모순이 날로 비화되고있는 오늘의 실정에서 남영전의 그러한 포부는 도연명이 구상했던 도화원보다도 더 유토피아적인 공상이 아닐수 없다. 아래에서 그 점을 살펴보기로 하자.   5. 민족문화다원화와 남영전의 《토템문화론》 모든 민족, 모든 나라는 경제가 일체를 지배하는 경제시대에 들어섰고 세계체계가 이미 기성사실로 되었다. 이러한 사회적현상은 서구자본주의경제발전의 필연적인 결과로서 세계경제는 이미 자본주의경제로 일체화된 것이다. 서구자본주의강세에 힘입어 서방중심주의 즉 서방화구호가 제기되고있다. 서방경제의 그러한 강세에 힘입어 서방중심주의 즉 서방화구호가 제기되고있다. 그러한 구호에 맞서서 제기된것이 바로 민족문화다원화구호인것이다. 민족문화는 다양하게 발전해야 하며 문화의 차이성과 특수성을 발전시켜야 한다는것으로 민족문화다원화의 내포를 규정할수 있다.   서방중심주의구호는 어제나 오늘에 제기된것이 아니다. 서방제국주의궐기의 총적인 도덕적구실이 바로 사회다윈주의의 의 리론인것이다. 그것의 기본적리념이 바로 서방은 세계문명의 중심이며 서방인은 비서방인보다 더욱 리성적이고 더욱 높은 창조성을 지니고있다는것이다. 서방의 생존방식은 인류의 생존에 더욱 리로운것이기 때문에 전통적인 생존과 경제실체를 필연적으로 전승할수 있었다고 한다. 또한 그러한 리념에 호응하는 서방문화패권의 핵심적내용이 바로 구호인것이다.   현대화구호는 2차세계대전 이후 민족해방운동의 충격속에서 공산주의의 확산을 막기 위한 미국의 외교정책의 주요한 근거였다. 그래서 중국의 경제인류학 학자들은 으로 될수 있음을 재삼 경고하고있다.1) 우리는 한국의 미술평론가 신항섭의 다음과 같은 말을 깊이 들을 필요가 있다.      어쩌면 전통문화예술이야말로 세계화라는 거대한 물결속에서 독립적인 민족 및 국가로서의 위상을 확립할수      있는 유일한 선택일런지도 모른다.     세계화가 예정대로 성공을 거둔다면 미국이 모든 면에서 세계를 완전히 지배하는 상황이 올지도 모른다.2)    모든 민족, 모든 나라는 자기 문화의 다양성, 차이성, 특수성으로 이미 확립된 세계체계에 참여할수밖에 없다. 일체화, 국제화, 보편성만을 강조할 경우  신항섭의 말처럼 결과만을 초래하게 되기때문이다. 물론 경제일체화에 의해 인류의 문화도 그 어느 날엔가는 융합될것이다. 싸르트르가 말한 가 확립될것이다. 하지만 그러한 융합은 반드시 여러 민족문화의 다양성, 차이성, 특수성의 충분할 발전을 전제로 하는것이여야 한다. 또한 그것만을 민족 서로의 생존과 발전의 토대로 삼아야 한다. 남영전은 이 점을 인정하는지? 인정한다면 현단계에서 토템숭배관념으로 인류의 문화를 균질화해 보겠다는 남영전의 토템문화론은 허무맹랑한것일수밖에 없게 된다.   원시종교형태인 토템문화는 철두철미 서방문화인것이다. 토템개념은 18, 19세기 서방 인류학계에서 많이 론의되던 토템문화론이 20세기에 이르러 서방문화의 충격속에서 동방문화에 류입된것이다. 동아시아 유교문화권에는 그런 개념이 없었다. 그런데 서방인들이 자기들의 기득권을 확보하기 위해 서방문화중심주의를 부르짖고있는 오늘 서방인도 아닌 남영전이 무엇때문에 토템숭배에 관한 서방학자들의 본의를 무시하면서까지 그것에 그토록 집착하는지? 그 저의가 무엇인지? 몹시 궁금하다. 남영전과는 달리 20세기 초엽부터 흥기하고있는 서방의 생태륜리학파는 동방의 천일합일사상을 수용할것을 주장하고있다.   그밖에 남영전은 는 자기의 토템문화론이 모든 생명체의 가치를 일률적인 등가물로 보고있는 서구의 극단신비주의자들의 관념과 일맥상통한것임을 알아야 한다. 극단신비주의자인 독일철학가이며 신학가인 알버트. 스웨트저르는 이라고 주장하면서 합리적인 륜리학은 을 주장해야 한다고 한다. 또한 그러한 원칙에 좇아 처사하는 사람은 3)고 했다. 스웨트저르의 이같은 관점은 인간과 여타의 생명체는 모두가 신성한것으로서 가치의 높고 낮음이 있을수 없는 등가물이라는 점에서 출발한것이다. 물론 이러한 관점은 근대철학의 인류중심주의에 대한 반발이다. 그러나 이런 관점에 따르면 인간은 모든 생명체를 해치지 말아야 한다. 인간이 만일 남영전이 말하는것처럼 자연계를 으로 간주하고 모든 자연물을 혹은 으로 간주하고 희생시키지 않는다면 인간은 우선 자신의 생존을 확보할수가 없게 된다. 우리가 주장하는 고급적인 천일합일사상은 극단신비주의자들이나 남영전처럼 인간과 여타의 생명체를 일률적인 등가물로 간주하지 않는다. 자아의식과 도덕의식을 지닌 인간은 여타의 생명체와는 비교할수 없는 고급성을 지니고있다. 무엇보다도 인간의 생존의 확보되여야 한다. 인간이 없으면 세계의 모든 존재가 무의미한것으로 되고만다. 그래서 싸르트르는 의 구축에 앞서 이라고 했을것이다. 그러한 투쟁은 자연을 인식하고 개조하고 리용하는것일뿐 무자비한 정복이 아닌것이다. 그러므로 자신의 생존을 확보하기 위해 인간이 여타의 생명을 희생시키는 행위를 비도덕적인것으로 볼수가 없다. 6. 마무리      이상에서 남영전의 토템문화론의 부당성을 론의했다. 남영전의 토템문화론이 부당한것이라고 하는 가장 주된 리유는 남영전이 토템숭배관념에 대한 원작자들의 본의를 무시하면서 자기의 구미에 맞게 그것을 람용한것이라고 할수 있다. 다음 원시인들의 생명일체화감정을 로 간주하고있는 남영전의 그릇된 사유방식이다. 그러한 사유방식이야말로 비행기는 원시사회에도 있었다는것과 같은 에 다름 아닌 것이다. 그리고 남영전의 말처럼 생명일체화가 과연 혹은 집단무의식으로 되었다면 누가 떠들어서 고양할 하등의 필요도 없는것이다. 칼. 융의 신화 원형설에 따르면 원형 혹은 집단무의식은 선천적으로 유전되는것이기때문이다.4) 특히 세세대대로 현세주의적인 유가문화를 숭상해온 우리 민족에게 종교신앙형태인 토템숭배관념을 강요하는것은 력사실제를 무시한 일종 억설로서 무의미한것이다. 우리민족에 대해 말할 때 그 어떤 종교적형태도 원형심리로 전환될 여유가 없었다. 조선족공동체의 구성원으로서 곰을 자기의 조상으로 간주하거나 곰을 자기와 으로 간주하고있는 사람이 수량적으로도 전무한 상태이다. 또한 우리는 자연물숭배와 토템숭배를 엄격히 구별해야 한다. 그밖에 토템문화로 인류의 문화를 균질화하겠다는 남영전의 포부는 민족문화다원화라는 현실적구호에 배치되는것이다.   남영전은 나에게 자기의 토템문화론에 대한 반론을 중문으로 작성해서 발표할것을 제안한다. 나는 호의에서 나온 제안이였을것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나는 그럴 생각이 없다. 물론 나는 남영전만큼 중문수준이 높지 못하다. 하지만 그것은 차요한 원인일뿐이다. 나는 아직 단군신화도 제대로 완전히 해독할 수준에 이르지 못했다. 그런 수준에서 중국의 염황이나 황제시기의 토템숭배를 론하다가 웃음거리를 남기는것이 두렵다. 그리고 여기는 조선족토템문화를 론의하는 마당이다. 토템문화리론은 주로 인류학자들이 전야조사법으로 미개한 토착민들에 대한 현지답사에 대한 총화라고도 할수 있다. 그러나 조선족은 그러한 미개족속들이 아니다. 조선족의 토템숭배물이 무엇인지도 모르고있는 타민족학자들을 우리의 토템문화론의에 반드시 모셔들여야 할 당위성은 없다고 생각된다.   남영전의 토템문화론에서 단군신화가 주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단군신화에 대한 그의 그릇된 관점에 대한 분석은 지면제한으로 인해 후일을 기약한다.   2007년 5월 15일 연길에서    2007년 제3기    
37    [창업칼럼] "빠져빠져 나의 매력속으로" 댓글:  조회:3946  추천:84  2007-09-04
 (음악이 시끄러우시면 Esc를 누르시고)                    "빠져빠져 나의 매력속으로"점포를 찾으면 가끔 불쾌할 정도로 불친절한 종업원을 만날 때가 있다. 그런 종업원을 대할 때면 자연 다시는 그곳을 찾고싶은 마음이 없어지는게 통례이다. 왜 좋은 제 돈을 팔면서 불쾌감을 사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물론 대부분 손님들은 불만이 있어도 말하지 않는다. 말해봤댔자 쓸데 없겠고 정면으로 말하기도 싫고 나가면 다른 점포가 얼마든지 있으니 그곳을 훌적 떠나면 그뿐이니까. 그렇게 떠난 손님이 다시 그곳을 찾아오리라 기대하기는 어렵다. 손님을 생각하는 마음이 없는데서 자초한 필연적 결과다. 대체로 창업강좌를 많이 듣고도 실패하는 사람, 심지어 전문가로 인정받는데도 실패하는 경우는 대체로 고객에게 겸손할줄 몰랐기 때문일 가능성이 높다. 지극히 간단한것처럼 보이는 이 일이 창업자에게는 대단히 중요한 것이다. 고객은 언제나 대접받은 싶은 마음, 특별한 존재이고 싶은 심리적인 욕구를 가지고 있다. 상점을 찾는 고객들은 그집 주인이 어떤 동기에서 상점을 차렸고 경영상 어떤 애로점이 있으며 그의 창업에 어떤 고충이 있는가 하는데 대해서는 관심이 없다. 오로지 그가 자신이 비용을 지불한 대가에 대해서 얼마나 만족시켜줄 수 있는가만 따질 뿐이다.   고객들은 흔히 가장 저렴한 비용에 최상의 만족을 얻기를 바란다. 그러나 우리의 창업자들은 왕왕 이와 정반대이다. 가급적이면 적은 돈을 들이고 최대의 리익을 얻기를 원한다.   돈을 벌려는 창업자의 욕구는 지극히 정상적이다. 돈을 벌기 위해 아이템을 찾고 장소를 구하고 자본을 투자했으니 돈도 자연히 벌어져야 마땅하다. 그러나 그것이 그렇게 쉬운 일만은 아니다. 아마 벌려는 생각이 간절할수록 더 벌어지지 않는게 돈일 것이다.   돈을 벌자면 반드시 고객을 생각하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 그러자면 고객이 누구인지를 정확하게 파악해야 하며 고객이 뭘 원하는가를 알아야 한다. 상점 주인이라면 손님이 무엇을 가장 수요하는지를 알고 상품을 들여와야 하며 식당 주인이라면 고객이 어떤 메뉴를 선호하는지 어떤 맛을 좋아하는지를 끊임없이 관찰하고 뇌즙을 쥐여짜며 조리법을 연구해야 한다.   점포주인이 된 창업자에게 있어서 대관절 무슨 마음으로 경영에 림하느냐가 시종 중요한 문제로 나선다. 왕왕 “어떻게 하면 물건을 많이 빨리 팔수 있을가?”를 앞세우지 않으면 “어떻게 하면 고객에게 만족을 줄수 있을가?”를 앞세우게 된다. 고객에 대한 서비스가 첫째라는 말을 늘 입에 달고 다니면서도 “우선 팔아야 돈이 생기지”를 앞세우게 되면 결국 고객을 위한 진정한 서비스가 이루어질 수가 없다. 그러나 “어떻게 하면 고객이 만족할가”는 마음을 앞세우고 고객이 물건을 잘 고를수 있도록 편안한 분위기를 만든다든지 고객에게 차 한잔을 대접한다든지 하는 고객에 대한 세심한 배려와 신뢰의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자세를 보여준다면 고객이 저절로 모여 들게 될 것이다. 이처럼 고객을 기분좋게, 편하게 해주는 걸 철칙으로 여기고 고객이 가장 원하는 서비스를 제공하기에 혼신을 다한다면 어디다 무슨 일을 벌리든 고객만족도를 극대화할 수 있는것이다. 남들은 좋은 조건에서도 잘 안되는 일을 흔한 아이템에다 자금도 많지 않은 사람이 별로 그닥잖은 장소에서 돈만 잘 버는 사례를 심심치않게 찾을 수 있는데 이 사람들이 가진 비결인즉 특별한게 아니고 바로 고객을 생각하는 따뜻한 마음인것이다. 고객을 생각하는 따뜻한 마음, 그게 바로 매력이다.   한국의 개그우먼 박경림이 부른 노래 <착각의 늪>의 가사에 “나에게 빠져빠져 모두 빠져버려/ 피할 수 없는 나의 매력속으로”란 구절이 있다. 창업청년들에게 자신의 매력을 만들어 보라는 의미로 이 구절을 선물하고 싶다.  //길림신문
36    리명성-중국 경제발전전략연구의 나젊은 전문가 댓글:  조회:4440  추천:91  2007-08-15
17차 당대회 대표, 중앙국가기관걸출청년, 귀국류학생선진 --------------------------------------------------------- 중국의 대외개방, 경제글로벌화, 다국적산업합작 등에서 중요한 성과/ 25만자에 달하는 개혁개방의 성공경험 총화 중국경제발전의 전략적구상 및 그 전망 제시/전국민족단결진보모범, 중앙국가기관걸출청년, 귀국류학생선진개인 등 영예 안아                         ------------------------------------------------------- 중국기업련합회 부리사장 리명성(李明星)이 최근 중앙기업계통(북경주재) 당대표회 의에서 17차 당대회 대표에 선거됐다. 16차 당대회 대표인 리명성은 이번 17차 당대회 8명 조선족대표중의 한사람이다.   10여년래 리명성은 중국대외개방형경제발전, 경제글로벌화와 다국적산업합작, 다국적회사의 국제화경영 등 과제를 주로 연구하면서 중요한 성과들을 쌓아올렸다. “중국 경제체제 전환연구”, “기업집단발전의 리론 및 실천 연구” 등 국가 중대항목 연구, “WTO가입후 중국 주요공업무역분야에 가져올 영향 및 대책 연구”, “국가 산업기술 정책요강”의 기초(起草)작업 등 중요사업에 주요성원으로 참가하였으며 “중미과기 련맹년차회의”, “중일경제고급회담”, “중한산업합작위원회”, “2006중국기업고봉회의” 등 정부간 대외교류와 국제합작사업에 참가하여 중요한 역할을 하였으며 과제의 책임자로서 미국스탠퍼 드연구원, 일본가사까와평화재단, 프랑스레온증권그룹, 한국산업연구원 등 유명한 국제기구와 련합으로 “중국투자포럼”, “정부와 다국적회사 원탁회의”, “중외합작기업현황조사연구” 등 고차원의 국제합작항목을 조직하여 적극적인 사회적효익을 창출했다.   저작도 풍성하다. , , 등 전문저서를 펴내고 등 수십편 의 론문을 국내외 중요 신문간행물에 발표했다. 그중 25만자에 달하는 은 미국, 일본, 한국 등 나라에서도 출판됐는데 체계적인 론리구조와 풍부한 실증데이터로 중국이 체제전환과 경제발전에서 이룩한 성공적경험을 총화하고 21세기 중국경제발전의 전략적구상 및 그 전망을 명확히 제시하여 국내외 전문가들의 주의를 불러일으켰다.   리명성은 국무원과 중앙기관으로부터 수차례에 걸쳐 “전국민족단결진보모범”, “중앙국가기관 걸출청년”, “귀국류학생선진개인” 등 영예칭호도 수여받았다. [인물간력] 리명성, 1965년 2월 길림성 영길현 출생. 1984년 영길현조선족 제1중학교 졸업. 1990년 길림대학 졸업. 1990년부터 일본, 영국에서 경제학(석사, 박사) 전공. 1995년 귀국 후 국가경제무역위원회 처장, 국무원국유자산감독관리위원회연구쎈터 국제부 부장, 중국 기업련합회국가련락부 주임 겸 다국적회사연구소 소장 등 직을 력임. 현재 중국기업 련합회 일을 보는 외 중국민족경제대외합작촉진회 부회장, 중국인민대외우호협회 리사, 중국 사회과학원 특약연구원, 국제관계학원 겸직교수, 중앙TV 재정관찰원 등 직도 겸임하고 있음.   //길림신문    
35    비평에 대한 단상 댓글:  조회:4515  추천:105  2007-08-11
비평에 대한 단상   이 글은 이전에 우리 문단의 비평풍토에 느끼는 바가 있어 가끔 생각이 날때마다 적어 모아둔것이다. 단상이지만 한데 묶어놓으니 너무 길어졌다. 그런대로 여기 옮겨놓으니 읽는 이들의 량지를 구하는바이다. * 누구나 장점이 있는 동시에 부족점이 있기 마련이며 아름다운 일면이 있는 반면에 추악함도 동시에 가지고 있다. 이는 누구나 찬양이나 아부의 대상이 될수 있으며 동시에 비판이나 비난의 대상이 될수도 있음을 의미하며 그 누구든 일정한 목표를 상대로 찬양 혹은 비판을 실시할 자유를 가질수 있음을 의미한다. 바로 이런 리유 때문에 우리는 그 누구나 찬양이나 비평 앞에서 자유로울수 없는것이다.    * 나에게는 남에게서 상처를 받았던 불쾌한 기억도 있지만 남한테 상처를 입혔던 아픈 기억도 있다. 상처받았던 일은 기억에서 지워버리는 것이 좋고 상처를 입혔던 일은 되도록 기억에 남겨두고 다시는 그런 일이 생기지 않도록 수시로 자기에게 경종을 울려주는것이 좋다. 왕왕 우리는 이와 반대로 상처받은 일은 기억에 새겨두고 상처를 입힌 일은 흔적없이 지워버리기 일쑤다. 더욱 문제로 되는 것은 다른 사람한테 상처를 주고도 그 사실을 전혀 모르고 나에게 언제 그런 일이 있었느냐 하는 경우다. 상처받은 일을 마음속 깊이 새겨두고 영원히 잊지 않는다면 그 인생이 내내 고달플수 밖에 없을 것이다.   * 고로 어떤 필요에 의해 누군가를 비평해야 할 때 자기반성을 반드시 곁들여야 한다는게 나의 생각이다. 글도 사람에게 상처를 입힐수 있다. 비평의 글을 쓸 때도 마찬가지다. 비평의 글을 쓸때 자기 반성이 글에 드러나지 않아도 별문제지만 쓰는 이에게 있어서 그런 속마음이 안받침돼 있어야 비평의 글에 타인에 대한 리해, 사랑과 관심 혹은 동정과 같은 따뜻한 마음, 모종의 바람직한 일을 촉진하고자 하는 마음으로 비평의 대상에게 다가갈 수 있지 않겠나 생각한다.   * 인간존중, 여기에는 빈부귀천의 구별이 없다. 잘 사는 자가 못사는 자를, 가진 자가 못 가진 자를, 배운 자가 못 배운 자를, 잘생긴 자가 못생긴 자를, 자신감에 넘친 자가 움츠린 자를, 신체가 온전한 자가 신체장애자를, 용감한 자가 겁많은 자를, 권세 있는 자가 권세가 없는 자를, 고귀한 자가 비천한 자를, 힘있는 자가 힘없는 자를, 잘 나가는 자가 일마다 막히는 자를, 총명한 자가 좀 모자라는 자를, 밝은 곳에서 활개치는 자가 어두운 곳의 매춘녀를  아무런 사려도 없이 함부로 비웃거나 비하하거나 괄시하거나 박대하거나 등쳐먹거나 타매할 권리가 없음을 알아야 한다. 우리 모두에게는 제각기 어쩔 수 없이 선택해야 하는 삶의 방식이 있기 때문이다. 인간평등원칙은 어느 때나 지켜져야 한다. 모두가 힘들게 살아가는 이 세상에서 도대체 누가 누구에게 돌을 던질수 있겠는가.   * 비평, 비평의 비평과 비평의 비평에 대한 재비평. 무슨 비평이든 목적은 어디까지나 글의 생각이나 방법의 부족점을 극복하여 변화 발전 제고시키려는데 있다. 그런만큼 비평은 충분한 설득력을 가져야 한다. 예리한 비평이라고 해도 그 속에 따뜻한 감정이 내포돼 있어야 한다. 암만 말로 우리 민족을 걱정하고, 예리한 비평은 사랑에서 출발한 것이라고 “의중”을 밝힌다  해도 글속에 야유와 조롱만 있고 민족의 아픔과 진로를 걱정하는 깊고 따뜻한 속마음(때론 예리한 메스에서도 가슴이 뭉클하는 따뜻함이 묻어난다)이 없다면 그 글을 민족을 걱정하는 글이라고 볼수 없다. 사랑한다고 말한다 해서 그 글이 반드시 사랑의 글이 되는게  아니며 글에서의 사랑은 사랑한다는 낱말에서보다는 그 글줄 사이에 슴배여 있기 때문이다. 사랑한다는 말 한 번 쓰지 않는 글에서 아주 깊고 큰 사랑을 느끼게 되는 것도 바로 이런 리치에서이다.* 비평에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는 게 좋다. 고깝게 생각한 결과 복수 비슷한 감정이 글에 반영되여 대방에게는 비수가 되여 날아간다. 날아갔던 비수는 본인이 바랐던 바와는 다르게 도로 날아와 자기 가슴에 꽂히는 경우가 많다. 우리 문단에 부당한 비평으로 앙숙이 져 문단의 건전한 발전에 영향을 주는 일이 있는지 자성해 보고 만약 있다면 매듭을 푸는 작업을 해야 하지 않을가 하는 생각을 해본다.   * 흔히 글로 모종 현상에 대해 비평할 때가 있다. 그러나 비평은 타인에 대한 비평인 동시에 자신에 대한 비평 혹은 반성이기도 해야 한다. 도리를 따져서 리해가 돼야 반성이 그 의미를 갖게 되므로 주로 리치를 캐며 자기를 미루어 타인을 리해해주는 노력도 기울여야 할것이다. 비평에는 따뜻한 마음가짐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어떤 비평은 의사가 환자의 환부에 메스를 들이대듯 날카롭고 사정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비평에서는 진정 우리 사회, 우리 교육, 우리 경제, 우리 문단, 그리고 그 비평대상자를 위하는 따뜻한 마음이 그 속에서 솔솔 풍겨나온다.    * 비평의 겉과 속. “나는 민족을 사랑하기 때문에 민족의 허물에 날카로운 메스를 대는데 비평이 과하더라도 리해해 달라.”고 초고층빌딩처럼 거창한 비평문의 서언에서 이렇게 “초심”을 밝히는 비평자들이 있다. 이렇게 할수 없다는 얘기가 절대 아니고 필자가 여기서 말하고자 하는 것은 비평문에서 민족에 대한 사랑 여부는 비평 자체에서 나타나게 되는 것이지 비판동기에 대한 장황한 해석에서 표현되는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한권의 비평서에 민족사랑이란 말 한마디 없어도 민족사랑을 표현하는데 아무런 지장도 받지 않을수 있다. 사랑은 글줄 사이에서 자연적으로 솔솔 풍겨 나오는 것이지 한편의 겉바른 성명발표에 있지 않다. 날카로운 비평에서도 사랑을 감지할수 있다. 반대로 민족사랑을 표방한 이른 바의 일부 거창한 비평서에서는 사랑보다는 민족에 대한 멸시의 감정이 처처에서 로출되여 읽는 사람을 자극한다. 환자의 썩고 있는 환부에 예리한 메스를 들이 대는것과 스스로 시술에 능하다고 자처하면서 제멋대로 행하는 란도질은 성격과 개념이 하늘과 땅만큼 동이 닿지 않는다. 유효처방이 전무한 란도질은 병의 치유에 도움이 별로 안될것이라 생각한다. 혹시 부정적 측면으로부터 좋은 처방을 유발해낼수 있을런지는 모르겠다. * 원래 관심 없는 사람에게는 칭찬도 안 하지만 욕도 안 하는 법이다. 비판을 한다는 것은 애정과 관심이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비판을 받게 되면 울컥할 게 아니라 감사하다고 해야 할것이다. 설혹 오해에서 비롯된 비평일지라도.   * 비평을 받고도 고맙게 생각되고, 비평자에게 감사하게 생각하게 되는 것은 비평에 내재한 관심이 따뜻이 안겨오는 원인 외 주로 그 비평에 감복이 되고 그 비평을 통해 자신을 제고 할 수 있는 영양소를 얻게 되기 때문이다. 몰랐던 자기의 부족점을 깨치여 한 시기, 지어 평생 혜택을 볼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 비평을 두리뭉실하게 하는 일이 현재 조금 많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든다. 어떤 이는 비평에 꿀을 발라 읽는 사람은 그것이 비평인지 칭찬인지 헷갈릴 때가 있다. 문제가 곪아 터질 정도로 쌓이는 것은 이런 온정적인 사고방식 때문이 아닐가? 비판의 내용과 방향은 항상 분명해야 한다. 때로는 눈물을 펑펑 쏟을 정도로 매몰차게 비판해야 서로의 발전을 기대할 수가 있다. 비평의 필봉은 늘 문제의 변두리에서 어물거리지 말고 문제의 요해처, 급소와 핵심을 건드려야 할것이다. * 싸움끝에 정이 든다는 말이 있다. 칼날과 칼날이 마주치면 불꽃이 튕기기 마련이다. 아주 정상적이다. 칼날과 칼날이 부딪쳤는데도 불꽃이 튕기지 않으면 자연 그 칼이 진짜 칼이 맞는지 의심스러워지게 된다. 잘 단조된 칼과 그렇지 못한 칼은 암만 마주쳐도 불꽃이 튕기지 않을수 있다. 아무튼 공방전을 펼치면서 싸우다 보면 서로 대방을 알게 되고 대방의 "공격"을 통해 자기의 허점도 알게 된다. 자기 자신도 모르고 있던 허점을 알도록 해준 "적수"에 고마운 마음이 생기면, "적수"가 친구로, 그것도 절친한 친구로 되는 건 시간 문제다. 물론 그것이 고맙지 않으면 친구 운운은 비교적 어려울것이다. 그러니까 싸움끝에 반드시 정이 드는건 결코 아닐것이다.* 칼을 들자마자 아무곳에나 대고 마구 찌르고 쑤시고 하여 상처만 가득 내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으며 건설적이지 못하다. 기실 그것은 자기에게 상처를 내는 무모한 짓이나 다름없다. 겉보기엔 남을 찌른 것 같지만 기실은 자기를 찌른 것이다. * 비평의 유머. 로신선생의 비평이 사무치게 그립다.   * 지금 문단에 주문비평(혹은 주문평론)이라는것이 있다는데, 그중의 일부 평론은 작품의 내재적 가치평가를 통한 문학창작활동의 진보를 위한 것이 아니고 단순히 작가의 얼굴에 분칠, 혹은 먹칠을 하기 위한데 있다고 한다. 그것이 진정한 의미에서의 문예비평이 되는지에 대해 깊이, 적어도 두번 쯤은 생각해 볼바 아닐가 생각된다.   * 비평을 정확한 동기에서 했지만 틀리는 경우도 있다. 의사가 사람을 구하려는 동기에서 시술을 했지만 실수로 환자에게 오히려 해를 끼쳤을 때와 비슷하다. 그 비평이 잘못임이 드러났거나 지적됐을 경우 용감히 허심히 접수하고 사과하고 시정해야 함은 물론이다. 물론 사과의 글을 장황히 늘여놓을 필요는 없을 것이다. 잘못을 시인하고 고치는 방법은 얼마든지 있을테니까 그런 마음을 가지고 있고 분명히 보여주기만 하면 되겠다는 것이다. 그런 마음만 가지면 나머지는 문제가 아니고, 언제나 문단에 떳떳이 나설수 있겠다는 것이다.   * 문화혁명 전에 모택동이 팽덕회를 중대사안과 관련해서 호된 비평을 한 적이 있었다 한다(그런 비평이 실지로 있었는지는 필자로서는 고증할 바 없고, 혹은 그 비평이 옳았는지는 이 글에서 관계할 바가 아니다. 여기서는 단지 그 뜻만 취할 뿐이다). 팽덕회가 검토서를 썼는데, 32절지에 절반도 안 되는 분량으로 써 바쳤다 한다. 아마  “분명 내가 생각을 잘못한 것 같다” 정도로 자기 검사를 했을 것이다. 모택동의 비준지시는 뭔가?  “비교호(比較好, 자기검토가 비교적 잘 됐소)” 세 글자였다고 한다. 잘못을 안 게 중요하니 그럼 다 된거 아니야? 이런 뜻이 아닌가 생각한다. 팽덕회와 같은 호걸남아가 잘못 생각한 것 같다고 시인하면 인정해 줘야 하는 것이다. 네가 시인한다면 나한테 진거다, 모택동이 이처럼 졸장부나 소인배들처럼 생각했을 리는 만무하다. 우리 생각이 가까워 졌으니 앞으로 단결해서 나라 일을 잘 볼수 있겠다, 정말 잘 생각했다. 고맙다. 이렇게 생각했을 것이다. 이런 자기비평과 자기비평에 대한 평어를 오늘 다시 가설해 본다면-- --어제 밤 생각해 보니 형님의 말에 일리가 있소. --형의 말을 리해해 주니 무척 고맙네, 아우.   * 암만 비평과 반비평에서 “졌다” (기실 결과적으로 다 승자여야 마땅하다)고 해도 승복했다는 자체를 승리로 봐야 할것이다. 이것을 로신선생이 지적한 “아큐정신”, 말하자면 이른바 중국인의 “정신승리법”과 혼동시해서는 안될 것이다. 정신승리법은 승산이나 대안이 없는 어쩔수 없는 상황에서의 자아도취법 혹은 자기위안법이지만 승복은 그게 아니기 때문이다. 자기의 부족점을 극복할수 있는 열쇠를 가지게 됐는데 이것이 승리가 아닌가? 내심으로는 승복하면서도 쪽바가지만한 얼굴 때문에 이러저러한 변명으로 얼렁뚱땅 굼때려든다면 량자(비평을 하는 자와 비평을 받는 자)가 다 개운치 못하고 어정쩡한 자세가 되고 만다. 말하자면 통쾌하지 못하다는 것이다. 누구나 잘못할 때는 있게 마련이다. 잘못을 용감히 시인하고 고치려는 노력만 있다면 그 어느 때든 떳떳할수 있다고 생각한다. 믿음이 가게 되고 존중스러워지는것이다.   *  동기불명의 비평, 목표(과녁)불명의 비평같은것은 뭐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다.   * 비평을 화풀이나 공격무기로 삼는 경우가 있는데 이것은 비평이 아니라 비난이다. 비난은 미운 감정의 발산이거나 상대방을 깔아뭉개기 위해 하는 것인만큼 사실 듣는 사람의 립장에서는 얼른 감을 잡는다. 하기에 비판의 탈을 쓰고 비난을 퍼붓게 되면 설사 일리가 있는 얘기라도 서로의 사이는 더욱 벌어질 뿐이다. 설령 비평의 대상이 원쑤라 하더라도 사실을 밝히고 도리를 따지는 것이 우선이다.   * 한 작품에 대한 비평이 공개적인 간행물에서나 회의석상에서 행해질 때는 문우에 대해 당면에서, 사석에서 하는 비평과 경우에 따라서는 구별이 돼야 한다. 사석에서, 혹은 내부적으로 얼마든지 해결할수 있는 문제를 공개적으로 해결하려 들면 오히려 문제가 해결이 되기는 고사하고 문제가 더 커지는 경우가 있다.   * 영화에서 일본 사람들이 중국의 무덕을 가진 무인에 탄복하고 승복하는 장면을 여러 번 보아 왔다. 사실 여하를 떠나 덕으로 뭔가를 해내는 이런 풍토는 이뤄져야 한다. 비평에도 덕성이 있어야겠다는 생각이다. 그것을 뭐라 하는가? “평덕”이라 해야 하나 뭐라 해야 하나? 그리고 비평을 받음에도 덕을 갖춰야겠다는 생각이다. 비평을 받는것은 기실 따지고 보면 아주 감사한 일이다. 진심으로 하는 예리한 비평이 좋은 것은 말 말고 보복으로 오는, 혹은 무지막지한 비평도 받아들일수 있는 자세를 갖춰야 할것이다. 물론 영양가가 없는 비평은 침묵이 제일 좋은 답복일 것이고, “無中生有”로 없는 죄를 들씌우고 하는 비평(실은 비난, 혹음 무함)에 대해서는 적당히 사실을 규명하는 반비평도 필요할 것이다. 비난자를 일깨워 줄 책임도 있으니까. 어떤 무함은 극히 악렬한 영향을 일으킬수도 있으며 무함당한 사람에게 치명적일 수도 있다. 이런 경우에는 필요에 따라 법정놀음도 불사해야 한다는 생각이다.       -끝-  
34    [칼럼] 사랑스런 “구두쇠” 댓글:  조회:3872  추천:66  2007-08-05
“깍쟁이”, “구두쇠”라 하면 린색하고 좀스럽고 째째하고 인정도 도리도 없이 자기 돈만 아까워하는 수전노의 부정적 이미지를 떠올리기 십상이다. 그러나 생각을 바꾸어 보면 이른바의  “깍쟁이”,  “구두쇠”를 꼭 부정적으로만 해석할 일은 아닐것이다. 근검, 검소, 절약이라는 긍정적 이미지와 련계시켜 볼수도 있다. 돈을 함부로 써서 부자가 되는 사람이 있을가? 사업을 하는 사람들이 절약과 근검정신 없이 성공을 기대할수 있을가?  세계적인 갑부들을 두루 봐도 “깍쟁이”로 불릴만한 사람이 적지 않다.   스웨덴 이케아매장의 창업자 잉바르 캄프라드가 바로 “구두쇠”로 유명하다. 그는 아주 어릴 때 자전거를 타고다니며 이웃집들에 성냥을 팔다가 1943년 17세 때 작은 점포를 만들고 만년필, 가죽지갑, 손목시계, 나이론양말, 크리스마스기념카드와 같은 눅거리상품을 팔았다. 그러나  60여년의 발전을 거쳐 이케아는 30여개 나라와 지구에 200여개 체인점을 둔 세계 가구 소매업의 거두로 됐다. 그는 금년도 “포브스”지에 의해 280억 딸라의 재산을 가진  “세계의 부호”  제4위에 선정됐다.   세계적 부호임에도 그의 생활은 검소하다. 15년 된 낡은 볼보를 몰고 다니는가 하면  비행기로 출장 나갈 때에도 제일 값싼 좌석에 앉는다. 슈퍼마켓에서도 주말 특별할인 행사 때 쇼핑을 하는 모습을 종종 볼수 있다고 한다. 그 뿐이 아니다. 그는 기본적으로 양복을 입지 않으며 밖에서 식사를 해도 늘 싸구려 식당을 찾는다. 좀 비싼 목도리 하나를 사거나 비싼 료리 한가지를 먹고서는 반나절 가슴이 아파하는 정도다. 집에 놓았다는 가구도 대부분 눅거리라 한다. 회사 직원들이 용지를 써도 앞뒤쪽에 다 글을 쓰도록 요구한다.   “1원 절약하면 1원 번것이다.” 잉바르 캄프라드는 말한다. “나를 구두쇠라 하는데 그런 평판이 나는 자랑스럽다.”   그러나 그가 단지 “린색”하기만 한것은 아니다. 그는 자신이 거주하는 스위스 로잔예술 학교에 50만 스위스프랑을 기증하는 등 사회복지에도 관심을  많이 보여주었다.   미국 네브래스카주의 오마하에 있는 지주회사인 “버크셔 해서웨이”의 버핏회장도 월가에서 “투자의 귀재”로 불리는 사람으로 “포브스”지가 지난  2월 발표한 2006년도 “세계의 부호” 순위에서 2위를 기록한 부자이다. 그 역시 오래된 중고차를 직접 몰고 다닌다. 그런 생활태도가 50년 동안 그의 다른 모든 행동에 영향을 미쳤을것이고 지금의 성공을 가능하게 해주었을것임을 우리는 충분히 짐작할수 있다.“성공적인 사람들의 일곱 가지 습관”이라는 세계적 베스트셀러의 저자인 스티브 코비박사는 큰 컨설팅 회사를 갖고있는 거부이지만 아주 작은 집에서 살고있다고 알려져 있다.      상술한 이들에 반해 우리는 빚은 가득 짊어지고 회사는 망쳐먹으면서도 고급승용차를 타고  호화주택에 살면서 온갖 사치를 다 부리고 있는 알량한 양반들을 심심찮게 접하게 되는데 표면적인 호화로 허영심을 만족시키려는 속된 내속이 환히 들여다 보여 씁쓸해질 때가 있다.   근검의 정신은 어디까지나 건전한 사람들이 갖춰야 할 미덕일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필시 사업이나 인생려로의 성패에 깊은 영향을 끼칠것이라는 점도 망각하지 말아야 할 부분이다. 중요한것은 검소함이 성공을 기하는 창업자에게 있어서는 불가결의 요소라는 점이다.   창업 세대에 지나치게 검소할것을 강요하는것은 물론 아니다. 여기서 말하는 검소함이란 청교도적인 근검, 절약을 뜻하는것이 아니고 남들의 눈에 거슬릴 정도의 화려한 생활은 삼가하는것이 좋지 않겠느냐는 의미일 뿐이다. 한편 직원을 둔 창업자들이 경계해야 할것은 자신에게는 후하면서 남에게, 특히 종업원들에게는 박한 생활태도일것이다. 설사 종업원들을 자신보다 더 후하게 대우하지는 못하더라도 최소한 경영자 자신과의 형평과 격에 맞게 례우하는 자세는 갖추어야 하지 않겠는가.//길림신문
33    [창업칼럼] "시장쪼개기"와 "틈새시장찾기" 댓글:  조회:3888  추천:100  2007-08-02
창업자에게는 공략할 시장을 세분하고 "틈새시장"을 찾아내는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시장이 포화상태에 처해 있어 취업, 창업이 어렵다는 여론이 팽배할때일수록 그러하다. 대학에서 기업관리를 전공한 한 젊은이는  졸업 후 한 자문회사에 들어가 몇년간 자문봉사를 하다가 "동아리"를 몇몇 묶어가지고 새로운 창업실험을 시작했다.   그는 우선 자기의 적성에 맞는 어린이소비분야에서 창업실험을 하기로 하고 관련산업에 대한 분석을 통해 그 시장을 옷이나 신 같은 기본생활소비, 완구와 같은 향수형소비, 성장형소비 등 세가지로 세분, 그중 성장형소비를 "실험모델"로 정했다. 성장형소비에서 또 "어린이열독"을 최종 선택했다. 허나 그의 세분화작업은 이것으로 끝난게 아니였다.   전문가들의 도움을 받아가며 소비대상을 3살부터 6살까지의 어린이로 정하고 또 그들을 12개 열독급으로 나눈 다음 매 급에 읽을 책을 12권씩 배당했다. 이 서비스의 이름은 "함께 독서 즐기기"로 달았는데 부모와 선생님이 어린이와 함께 독서를 즐기면서 종당에 어린이가 가급적 빨리 독립적으로 독서할수 있게끔 한다는 의미이다. 중요한것은 그의 회사가 "계렬도서"를 파는데 그친것이 아니고 보다 과학적인 열독방법지도와 보조적서비스에 이르기까지 아주 체계적인 교육서비스를 제공했다는 점이다. 교육관련이지만 서비스를 파는 이상 상업행위이니 판로구축은 필수이다. "계렬도서"와 "열독지도방안"을 각지의 대리상을 통해 유치원, 탁아소와 관련 훈련기구에 제공하고 리윤은 합리하게 나누는 방법을 취했다.   이 서비스를 사회에 선보이자 어린이 부모들의 대환영을 받았고  아울러 "계렬도서"도 인기리에 수백만권이 팔려나갔다. 그는 한해에 투자 본전 600만원을 뽑아내고 리윤까지 올리는 기적을 창조했다. 이처럼 그는 판매상, 유치원, 탁아소와 관련 훈련소는 자기의 봉사팀으로, 어린이, 학부모와 선생님들은 대번에 저들의 소비대상으로 만들어 버린것이다. 고명하지 않은가?   기실 우리가 매일 대하고 있는 시장을 자세히 관찰해 보면 욕구가 똑같은 소비자란 찾기 힘들며 따라서 모든 소비자의 세부욕구까지 철저히 만족시킬만한 상업서비스는 이 세상에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고 볼수 있다. 다만 욕구가 류사한 그룹에 대한 서비스만이 가능할 뿐이다. 그러나 이런 류사한 욕구를 가진 그룹 역시 무한히 다양하며 기존 소비그룹 외에  새로운 소비그룹도 부단히 산생한다는 사실에 류의하지 않으면 안 된다. 시장을 세분화하여 고찰하지 않으면 안 되는 리유의 하나가 바로 여기에 있다.   시장을 세분화해야 하는 다른 하나의 리유는 라이벌(경쟁자)의 존재 때문이다. 주지하다싶이 라이벌이 없는 시장이란 존재할수 없다. 경영자가 일정한 자원으로 경영범위나 내역을 확장하려 하면 투입된 인원이나 자원의 밀도도 상대적으로 낮아지게 된다. 그러면 경영에 자연 허점이나 위험이 생기기 쉽다. 라이벌은 당연히 그의 허점을 노리다가 공략을 하여 그를 궁지에 몰아넣을수 있다. 이런 위험을 막는 중요한 방법의 하나가 바로 시장세분화전략을 구사하는 것이다. 라이벌이 전혀 상상 못했던 "곳"에다 "진"을 쳐놓고 아주 멋드러진 "전역"을 펼칠수 있는것이다.  상기 사례의 주인공이 고명하다고 말하는것도 그가 시장세분화를 통해 새로운 소비그룹을 발굴해냄으로써 사회에 새로운 서비스를 제공했다는데 있다. //길림신문
32    [칼럼] 창업과 역발상 댓글:  조회:4017  추천:70  2007-07-30
중국 춘추전국시대에 전란으로 금값이 폭등하고 곡식 값이 폭락했을 때 금이나 패물을 사들이는 사람들과는 반대로 곡식을 사들이는 이가 있었다. 전쟁이 오래 지속되면서 식량이 바닥나자 자연 량곡값이 폭등하고 금값이 떨어져 그는 손쉽게 엄청난 부를 축적할 수 있었다.오늘의 말로 하면 역발상방식을 구사해 성공한것이다. 자전거를 지키는 상해의 한 할머니가 주식거래에서 놀라운 수완을 보여 소문난 적이 있다. 어느 증권회사의 숱한 투자자들이 주식을 다투어 샀다가 어쩌구러 쫄딱 밑졌는데 오직 회사 문전에서 자전거를 보던 그 할머니만은 엄청 벌었다. 모두들 할머니한테 우르르 몰려가 주식거래비결을 가르쳐 달라고 했다. 할머니 말씀인즉 <뭐, 별거 없어유, 내가 자전거 보지 않아요?여기 세워놓은 자전거가 바루 주가지수라요. 주식세가 불황이어서 자전거를 타고 온 사람이 적으면 나는 주식을 사들이고 다투어 주식을 사느라고 자전거가 마구 몰려들 때면 난 일괄 출하했지 뭡니까.> 이거였다. 남들이 열을 올릴 때 한데 따라 휩쓸리면 밑지기 십상이고 역으로 하면 목돈을 쥘수 있다는 도리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중국의 유명한 층집 엘레베이터 문전광고업의 창시자인 강남춘에게 이런 명언이 있다. <창업의 근본은 창신이다. 창신이란 무엇인가?역발상방식으로 문제를 사고하는것이다.> 사실 그가 창의한 층집광고도 그의 역발상적 사유에서 유래한 것이다. <사람들이 TV앞에 앉으면 TV프로를 보는가 아니면 광고를 보는가? 당연히 TV프로를 보게 마련이다. 그것은 광고가 다른 프로보다 재미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광고보다 더 재미없는 시간이나 공간에 처하면 부득이 광고를 선택할 수밖에 없다. 엘레베이터 입구에서 기다리는 시간이 바로 아주 심심하고 재미없는 시공간이다. 이럴 때 사람들의 주의력은 자연 광고에 쏠릴 수밖에 없다.> 이것이 강남춘의 전부 리론이다. 이 역발상적 리론에 근거하여 2003년 강남춘은 층집 엘레베이터 문전광고란 참신한 매스미디어를 창설했다. 4년도 안돼 그는 이런 상업용 층집광고를 전국 100여개 도시, 나아가 싱가포르, 향항, 대만 등 나라와 지역에로 확장했고 광고현상스크린은 8만 여개로 늘였으며 따라서 2006년도 총 영업수입을 근 1억 달러에 이르게 한다. 역발상의 성공사례는 농촌에서도 찾아 볼수 있다.농민들이 땅을 버리고 다투어 도시로 국외에로 진출할 때 그 버린 땅을 수백무 지어 수천무씩 청부맡아 다루어 성공한 사례가 바로 그것이다. 국가농업부로부터 <전국10대량곡재배기준병>으로 표창받은 이들이 바로 그 성공자들중의 대표인물이다. 여기서 역발상 사례를 구구히 늘여놓는것은 우에 렬거한 구체 인물들의 본을 무작정 그대로 떠다 옮기자는것이 아니다. <역발상>이란 그들의 <거꾸로 사고방식>을 연구, 습득하고 자기가 처한 환경과 자기의 구체실정에 맞추어 성공의 문을 여는 키로 활용하자는 뜻에서다. <역발상>이란 개념에는 창업이나 경영에 관계되는 사물에 대해 항상 의문의 시선을 던질줄 알며 상식 혹은 고정관념을 깰줄 알아야 한다는 의미가 내포돼 있다. 그러니까 창업을 하거나 경영을 함에 있어서 늘 다양한 생각을 수용하고 계속 변화해야만 성공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럴진대 창업자나 경영자에게는 상식을 깨고 지우는 마치나 지우개가 반드시 필요할것 같다. 경쟁이 갈수록 치열해지면서 남들도 할 만큼은 다 하는 오늘이 아닌가? 그러니 이제 똑같은 방식으로 남을 이기기가 과연 쉬울수 있겠는가? 그런 고로 승리를 위한 전제조건으로 남다른 역발상기법이 보다 효과적이지 않을가 생각해 본다. //길림신문
31    기업경영과 륜리도덕은 수화상극? 댓글:  조회:4141  추천:70  2007-07-18
                             기업경영과 륜리도덕은 수화상극?기업경영과 륜리도덕은 물과 불처럼 어울리지 않는 관계인가? 얼마전 어느 장소에서 이 문제와 관련해 “론쟁”이 있었는데 경영과 륜리는 체질적으로 어울릴수 없다고 보는 견해가 의외로 많았고 그 리유도 꽤나 유력했다. 론자들은 리윤창출을 궁극목적으로 하는 기업이 리윤을 많이 내기 위해서는 수단을 가리지 말아야 함을 내세우면서 이렇게 덧붙이기도 했다 — “장사군은 제 애비도 속인다잖아? <손자병법>을 왜 경영에 적용하나? 상계란 사활이 걸린 전쟁판이라구, 전쟁판. 기업륜리요 도덕이요 하는것 역시 생사 박투에서 살아남기 위한 수단에 불과해.” 어처구니없는 망언인가? 아니, 필자는 이런 말들이 대부분 다 맞는다고 생각한다. 리윤창출은 분명 기업의 궁극목적이며 상전(商戰)의 가혹성도 주지하는 바다. 경영에서의 <손자병법>적용 역시 사활을 건 업계내의 치렬한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한 수단임에 틀림 없다. 하지만 그렇다 해도 기업경영과 륜리도덕이 수화상극인것은 아니다. 륜리경영의 원조로 불리는 기업이 있다. 바로 중국의 서안, 상해 등지에다도 합자 회사를 세운 미국의 존슨앤존슨(Johnson & Johnson,强生公司)이다. 1887년 미국 뉴저지주 뉴브런스왁에서 설립된 이 회사는 백년 전부터 고객신뢰란 핵심가치관을 신봉, 실천해 왔는데 현재 전 세계 57개 국에 약 230여개의 제조공장을 갖고 있다. 1982년 존슨앤존슨의 히트상품인 타이레놀에 누군가가 독극물을 투입해 8명이 사망한 사건이 터졌다. 비상이 걸린 존슨앤존슨의 최고 경영인들이 5분 만에 끝낸 회의에서 내린 결론은 미국 50개주 전역에 배포해놓은 모든 타이레놀을 수거해 페기처분하는 것이였다. 경영진의 결정을 두고 반대의견이 팽배했다. 기업의 최고 목표는 리윤창출이 아니냐? 몇 사람이 죽었다고 그런 무모한 조치를 대느냐? 회사를 망칠 잡도리냐? 시카고에서만 일어난 사고인데 미국 전체의 약은 왜 수거하냐? 내부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경영진은 수천명의 직원들을 전부 동원시킨 경보캠페인을 벌여 원인이 규명될 때까지 타이레놀을 복용치 말도록 소비자들을 권고했고 2억 4000만 딸라의 비용을 들여가며 타이레놀 3100만병을 수거 페기했다. 사후 경찰 수사결과 독극물이 제조과정에 생긴것이 아니라 누군가 고의로 캡슐을 뜯어 투입했다는 사실이 밝혀짐과 함께 비상사태 때 고객들에게 보여준 이 회사의 고도의 책임성이 소비자들의 믿음을 크게 사 이 회사는 재빨리 시장점유률을 높일수 있었다. 옳다. 륜리경영의 궁극적인 목표가 기업의 리윤추구라 할 때 고객의 신뢰를 얻기 위한 정략도 당연히 궁극목표달성에 초점이 맞춰져야 한다. 리윤추구는 상계의 기본 생리다. 그러나 기업이 고객에게 수요되는 제품과 훌륭한 서비스를 제공할 때 얻는 리윤은 피타는 노력의 결과에 대한 보상이지 결코 고객에 대한 수탈이 아니다. 기업이 상술(商術)과 상덕(商德)으로 시장을 확장하는것은 무사가 무술(武術)과 무덕(武德)으로 천하를 얻는 것과 다를 바 없는것이다. 기업륜리, 상업도덕이 갈수록 강조되는 오늘이다. 투자자와 소비자의 신뢰를 얻는 기업들이 우뚝 서는 반면 사기 등 도덕성론란에 휩싸인 기업들은 일조에 망해버리는 경우가 늘고있다. 기업이 륜리경영을 하지 않으면 살아남을수 없는 시대가 온것이다. 물론 기업이 리윤창출을 떠나 자선사업을 하듯 막연히 도덕적이 되여야 한다는게 아니다. 리윤창출이 없는 기업은 생존자체가 불가능해짐에 따라 전반 사회에 대한 기여를 운운 할수 없다. 진정한 의미의 륜리경영이란 기업의 윤리적책임을 다함으로써 고객, 주주, 종업원, 경쟁자, 공급자, 정부, 지역사회 등 관계자들의 신뢰를 쌓을 수 있도록 기업경영을 하는것이다. 고객을 우롱하는 잘못된 관행을 사회륜리적인 기준에 맞도록 바로잡아 기업의 경쟁력을 향상시키고 경제적 부가가치를 극대화해야 한다는 것이다.//길림신문
30    [칼럼] 여러 가지 덕성의 조화로운 형성과 발달 댓글:  조회:3945  추천:79  2007-07-15
여러 가지 덕성의 조화로운 형성과 발달박문희 수년전 료녕성당뇨병치료쎈터의 원장이며 거부인 풍세량(馮世良)교수가 안해와 자녀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수천만원에 달하는 전부의 재산을 기꺼이 나라에 바친 사례와 역시 수년전 북경보인외국어대학의 김신덕(金新德)교수가100만원에 달하는 전부의 개인저금과 매년 받아야 할10~20만원 보수를 몽땅 중국과학원 연구생원에 우수교사와 연구생 장려금으로 쓰라고 내놓은 사례를 많은 사람들은 아직 기억하고 있을것이다. 아마 누구든 그같은 일을 한 두 분을 도덕적이고 인격적인 분이라고 부르는 데 주저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면 우리는 왜 그들을 도덕적이다, 인격적이다라고 부르는 것일가?  그 두분은 어떤 바람직한 특성을 지니고 있을 것일가? 우리는 그 두분에게서 평생 동안 남과 자신에게 거짓됨 없이 재산을 모아 온 정직함을 볼 수 있고 평생 게으름 없이 자신의 정력을 깡그리 사업에 바쳐온 근면함을 볼 수 있으며 사치와 랑비, 허례허식을 멀리하고 절약하며 검소하게 살아 온 절제의 특성을 볼수 있다. 또한 우리는 그들에게서 어렵게 공부하는 학생들의 립장을 헤아려 돕고자 하는 친절과 타인배려, 리타적인 삶의 자세를 찾아볼 수 있으며 재산을 사적으로 소유하고 쓰기보다는 다른 사람의 복지에 쓰고자 하는 봉사정신과 공익추구의 특성을 지니고 있음을 알게 된다. 나아가 우리는 여러 가지 유혹 속에서도 이 모든 일들을 어렵게 결정하여 실행에 옮긴 용기있는 자세도 보게 된다. 이렇게 볼 때 우리가 그 두분을 도덕적인 분, 인격적인 분이라고 부르게 되는 데에는 바로 우에서 보는 바와 같은 인간으로서의 어떤 바람직한 자질들, 즉 정직, 근면, 절제, 친절, 타인배려, 리타심, 봉사, 공익추구, 용기 등등과 같은 특성들을 지니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하다면 그들에게서 나타난 인간으로서의 바람직한 자질들은 과연 무엇일가? 그것은 다른 그 무엇이 아니라 바로 "덕(德)"이다. 훌륭한 인성 내지 인격이 필요한 덕들, 이를 테면 지혜, 용기, 절제, 관후, 우애, 성실, 겸양, 믿음, 소망, 사랑이라든가 "유교"에서 말하는 "인, 의, 례, 지, 신"을 지님으로써 이루어진다는 관점은 동서양의 륜리학적 전통과 현대 도덕교육론에 의해서도 지지된다. 도덕교육 학자들 역시 인격은 고결함, 정직, 용기, 성실, 진실성 등과 같은 도덕적 자질들이 일관성 있게 실행되여 어떤 덕성들로 이루어질 때 형성된다고 보고 있다. 우리는 어떤 사람의 인성 내지 인격에 대해 말할 때 그 사람이 현명하다거나 리해력이 높다고 말하지 않고 오히려 성품이 온화하다거나 관후하다거나 절제적이라고 말한다. 이때 온화, 관후, 절제 등과 같은 것들이 바로 덕이며 이런 덕성들을 통해 우리는 한 사람의 인성 내지 인격을 말하게 된다. 결국 인성은 덕성을 토대로 해서 성립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인성교육은 바람직한 도덕성 내지 인격을 기르고자 하는 것이요 그러한 도덕성 내지 인격은 다시 도덕적 덕들로 구성되는 것이니 결국 인성교육은 자라나는 학생들로 하여금 바람직한 덕들을 잘 갖추게 하고자 진력하는 교육적 노력에 다름 아닌 것이다. 그러나 덕이 인성 내지 인격의 토대가 된다고 해서 한가지 덕만으로 바람직한 인성이 성립되는 것은 아니다. 근면하지만 인색하거나 정직하지만 무모하거나 겸손하지만 비굴할 경우 우리는 그런 사람을 건전한 인성을 지닌 사람이라거나 인격자라고 부르지 않는다. 그러므로 바람직한 인성의 형성에는 여러 가지 덕성의 조화로운 발달이 반드시 필요하다. 길림신문
29    마음이 마주 닿는 순간 / 박창해 (미국) 댓글:  조회:4578  추천:97  2007-07-09
마음이 마주 닿는 순간  박창해 (미국)      사람은 마음으로 사오 마음과 마음이 마주 닿는 순간순간 서로는 말이 없어도 대화는 이어만 가오 그 대화에서 정은 우러나는 거   백두천지에서 우러나는 샘처럼 억겁을 두고서 흘러내렸어도 상기도 압록 두만 가람을 이루듯 우리의 정성 어린 정은 흘러내리오 파란 천지같은 맑은 마음에서 말이오   천지에 고인 물은 화산속 밑바닥에서 끓어오른거 그러하기에 티 하나 없는 그냥 맑디 맑은 거라서 겨레가 좋아 나누어 마시는 거라오   겨레의 얼은 천지물 같은 거 화산같은 마음속에서 부글부글 끓다 못해 겉으로 말이 되어 가람처럼 흘러내리오 억겁을 두고서 흘러내리면서 얼은 가람으로 바다가 되여 우릴 지키오   -(1986년)정초 연변조선족자치주에 있는 동지들에게 보내는 마음의 노래     싣는이 주: 여기 싣는 이 시는 1986년 2월 25일자 에 아래에 언급되는 편지와 함께 실린것으로, 박창해선생 (1986년 당시 69세)이 옛날 학생이였던 박두희(싣는이의 형님이며 당시 연변1중 교장으로 있었음, 1995년 1월 28일 별세)에게 보낸 시이다.    박창해 선생은 미국적 한국인으로 당시 미국한국어학원 원장이자 철학박사였다. 선생은 1939년도에 한국 서울 연희전문학교를 마친 뒤 연길현(지금의 룡정시)에 들어 와 은진중학교 (지금의 룡정 1중)교원으로 사업했으며 그 후 미국에 가서 콜롬비아대학을 다녔었다.   왼쪽으로 세번째 분이 박창해선생이고 네번재 분이 싣는 이의 형님 박두희임. 1985년 여름 박창해선생은 연변에 다녀와 옛추억을 남겼던 룡정과 연길 등지에서 여러 동문과 제자들을 만나 회포도 풀고 함께 백두산 천지에 올라 민족의 정기를 혼신으로 느끼기도 했다.   박창해선생이 시를 담아 보낸 편지에서 그때 선생의 심경을 여실히 체감할수 있다.  아래는 편지의 주요 내용이다----   ......   몸은 늙어가고 있지만 마음과 정신은 젊어있는 모습들은 발전의 기상을 띤것으로 확신합니다. 여기 시 한수를 보냅니다. 천지에 올라서 입안으로 중얼거려 보던 것을 형식을 갖추어서 을 노래로 하였습니다. 룡정에 발을 내려 디디기 전 카나다 전사장에게 한 이야기에서 나는 박교장의 정을 마음껏 느꼈고 동창회 모임과 여러 동문들 틈에서 사제의 깊은 정을 다시 보면서 읊은 것이지요. 또 겨레의 동일성도 포함하였지요. 한번 읽어보아 주시기 바랍니다. 기회 있으면 다른 분에게 공개하여주셔도 좋을 것입니다. 우리 내외는 다시 룡정으로 가고 싶다고 하였습니다. 교사와 교회 건물은 헐었어도 동문들의 두터운 정은 생생히 더하여 있음을 호흡하고 돌아 왔습니다. 이달 17일에는 카나다 토론토에 있는 동문들을 만나러 갑니다. 아마 두어 밤을 새우면서 룡정과 연변자치주의 발전상을 이야기 할것입니다... 감사합니다. 동무들에게 문안하여 주십시오. 자주 연락이 있기를 바랍니다. 박창해 뉴욕에서   온 몸을 초불마냥 불태운 교육가의 일생 -- 박두희 교장을 회억하여   최승묵    박두희교장은 우리 민족의 우수한 교육가이며 오랜 스승이다. 그느 1978년 1월에 상급의 파견을 받고 연변제1중학교에 와 교장 겸 당서기 직무를 맡게 되였다.   박교장이 처음 연변제1중학교에 왔을 때는 학교의 그 어디나 문화대혁명의 파괴를 받은 흔적이 력력한 때였다. 그리하여 박교장은 부임하자부터 문화대혁명의 상처를 가시고 학교를 정돈하는 무거운 과업을 떠메고 불철주야로 일하지 않으면 안 되였다. 모든것을 새롭게 시작해야만 하였다. 연변제1중학교는 진흥의 새출발을 해야 하였다.   박교장은 웅대한 설계도를 무르익혀 나갔다. 1류의 지도부, 1류의 교원집단, 1류의 학생, 1류의 설비와 교수수단을 구비한 학교로 일떠세울 웅대한 목표아래 학교를 정돈하기 시작했다. 우선 지도부를 조절하고 충실히 하였다. 조건이 부합되지 않은 교원들을 적당한 자리에 배치하고 전 주 각지에서 20명에 달하는 우수한 교원들을 뽑아다가 교원집단을 충실히 하였다. 오래동안 침체상태에 있던 실험실, 도서실은 다시 활기를 띠게 되였으며 연변에서 처음으로 되는 언어실험실을 세우고 시청각 교수수단(電敎)을 도입하였다. 박교장은 또 전 주 범위에서 우수한 학생들을 모집할 방안을 내놓았다. 그리하여 1978년 8월부터 상급의 비준을 거쳐 전 주적으로 우수한 학생들을 모집하게 되였다. 몇년간의 정돈을 거쳐 학교는 원기를 회복하고 교육개혁의 새 기상이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나는 박두희교장의 신변에서 사업하면서 박교장은 개척형의 교장으로서 원견성이 있고 담력이 있는 분이라는 것을 심심히 느끼게 되였다. 이것은 박교장이 80년대 초에 제기한 구호로서 우리의 졸업생들이 우선 전국 각지의 대학들에 진학하며 나아가서 외국류학까지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구호는 시대의 발전에 맞으며 현실적이며 원견성 있는 구호로서 지금 실현되여 가고 있다. 우리의 졸업생들은 지금 전국 100여개 소의 대학들에 널려 있으며 세계에로도 진출하고 있다.   박교장은 민족교육이 직면하게 될 여러가지 문제들을 통찰하고 고 명확히 제기하였다. 이로부터 박교장은 개혁을 돌파구로 하고 점차적으로 총체적 개혁을 할 구상을 내놓았다. 박교장은 우리 민족의 현재와 미래를 생각하고 고 말하였다.   이렇게 우리 학교에서는 박교장의 령도아래 교육개혁이 활발하게 진행되였는 바 한어과의 실험, 조선어문과의 , 초중에서 일어를 배운 학생들이 , 한어로 수업하는 학급설치 등이 그 구체적 실례로 된다. 박교장은 또 초중 4년제 실험반을 꾸리고 영어과를 설치하였으며 을 친히 틀어 쥐였다. 그때 적지 않은 교원들은 영어교원의 자질과 기타 원인으로 영어를 배우면 진학에 불리할가봐 근심하였다. 그러나 박교장은 과학기술이 급속히 발전하고 있는 시대를 따르자면 영어를 배우지 않으면 안된다고 주장하였다. 실로 박교장은 원견성 있는 교육가였다.   박두희교장은 끈기 있게 학문을 탐구하는 학식이 연박한 분이다. 지난 4월에 내가 박교장댁을 찾아갔던 일이 있었다. 그때 박교장은 한창 영문본 5권을 탐독하고 있었다. 옆에는 또 일어본 5권도 놓여 있었다. 중풍을 맞아 불구로 된 몸으로 한시도 책을 놓지 않고 있는 선생님을 보는 순간 나는 눈굽이 뜨거워지며 그제날의 일들이 새삼스럽게 떠올랐다. 박교장은 독서가였다. 밤이고 낮이고 명절이고 일요일이고 따로없이 틈만 있으면 책을 들었다. 박교장의 독서범위도 넓었다. 교육, 철학, 경제, 문학, 인물지 등 여러 방면이였다. 따라서 장악한 지식도 그만큼 범위가 넓었고 깊었다. 박교장은 영어, 일어, 로어, 독일어, 중어 등 몇가지 언어를 장악하였으며 영어, 수학, 물리, 한어 등 여러가지 과목을 교수하였다. 제일 즐기는 일이 무엇인가고 내가 물었을 때 박교장은 라고 대답하였으며 금후 타산을 물으니 역시 라고 하였다.   박두희교장은 자신에 대한 요구가 높고 생활이 매우 소박하였다. 1978년도에 연변제1중학교에 온 후 선후로 일곱번이나 이사를 하게 되였다. 식당 창고에도 들어 있었고 학생숙사에도 들어 있었지만 언제 한번 집때문에 불평을 말한적이 없었다. 이사할 적마다 언제나 웃으면서 이라고 통쾌하게 말하군 하였다.   박교장은 후배들의 성장에 깊은 관심을 돌리였다. 특히 나는 그의 신변에서 사업하면서 직접적인 가르침을 많이 받았다. 내가 이런저런 일로 머리를 앓을 때 그는 나를 자기 집에까지 데리고 가 식사를 같이 하면서 따뜻이 일깨워 주었다. 실로 박교장은 나의 교육사업에서의 스승이였고 힘의 원천이였다. 나는 지금 부교장 사업을 하면서 늘 그의 숭고한 형상을 떠올리며 그로부터 고무를 받군 한다.   박두희교장은 한생을 고스란희 교육사업에 바치였다. 그는 1927년 3월 28일에 룡정시 월청향의 한 빈한한 농민의 가정에서 태여났다. 1947년 2월에 조직의 수요로 화룡현에 가 첫 교편을 잡게 되였다. 그때로부터 1989년 5월에 퇴직휴양 하기까지 장장 47년 남짓한 기간에 선후로 룡정고급중학교, 연변제1고급중학교, 조양천 제1중학교, 룡정시교육국, 룡정1중 등에서 사업하였다. 그 기간 그는 수학교연조 조장, 공청단서기, 부교무주임, 교무주임, 부교장, 교장, 당서기, 교육국장 등 직무를 맡고 자신의 심혈을 깡그리 바치였다.   박두희교장의 40여성상 교육생애는 초불마냥 자기 몸을 불태워 그 빛과 열을 인민교육사업에 깡그리 바친 생애이다. 우리 모두 박두희교장을 따라배워 당의 교육사업에서 초불로 되여 빛과 열을 다 하자.   1992.4.25                                          출처: https://gmdqn.tistory.com/entry/박두희-교장을-회억하여-최승묵 [거부기통신:티스토리]  
28    《물장난》은 아이들의 천당 댓글:  조회:3916  추천:96  2007-06-30
               《물장난》은 아이들의 천당한 녀자애가 외할머니네 집에 놀러 갔다. 집 정원의 꽃밭에 물주는 분사꼭지가 있는것을 보자 본능적으로 물장난을 치고 싶었지만 감히 꼭지를 틀지 못하고 주춤거리고 있었다. 외할머니가 눈치를 채고 "겁낼것 없어. 꼭지를 틀어갖고 놀아라."고 했다. 하나 녀자애는 갑자기 정신이 든듯 "아니 안돼요. 보모가 물장난을 해선 안된다고  했거든요."라고 했다. "보모가 여기 안계시지 않니? 외할머니가 지금 물장난을 해도 된다잖어?" 그랬더니 녀자애는 "그래도 안돼요."라고 하면서 끝끝내 꼭지 틀기를 거부했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이딸리아의 녀류교육자 마리아 몬테소리(Maria Montessori )가 한 얘기다.  이 이야기에서 우리는 그 녀자애의 마음이 실상 그애 자신의 가슴속에 있는것이 아니라 보모의 그 무엇에 빼앗겨 있음을 알수 있다. 그애는 이미 심령의 자유를 잃은 것이며 보모마음의 노예가 됐다고 봐도 틀리지 않는다. 이 아이가 장차 커서 어떻게 될가? 장기적으로 억압된 상태에 처한 심령이 자유로운 넓은 공간에서 마음껏 상상의 나래를 펼칠수 있을가? 초롱에 갇힌 새처럼 마음의 자유를 잃는다면 과연 일생을 동반할 독립적인격을 가질수 있을가?   국제적 명망이 있는 교육전문가들은 어린이가 건전하게 성장함에 있어서는 반드시 그 어린이에게 심령의 자유, 과외독서의 자유, 시간을 스스로 지배할수 있는 자유, 자기로 소비돈을 관리할수 있는 자유, 창조정신과 잠재에너지 발굴에 기폭제로 되는 취미를 가질수 있는 자유가 주어짐이 필요하다고 루루히 강조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아이들에게 장난치며 놀 기회와 자유를 주자고 대성질호하고 있다.  우리 상당수의 학부모들은 아이들에게 의뢰심이 너무 많고 독립성이 너무 차하고 많은 일들은 부모가 대신해 줘야 함을 한스러워 하지만, 기실 이것은 아이들에게 상술한 자유를 너무 적게 준데서 자초한 필연적 결과임을 알아야 할것이다.   "물장난"을 포함한 놀음과 장난은 아이들의 천성이며 어른들이 함부로 침범해서는 안되는 당당한 권리다. 그런만큼 아이들에게는 대자연속에 들어가 동년배들과 어울려 마음을 활짝 열어젖히고 장난칠 기회와 시간이 주어져야 하는데 지금 아이들은 그 권리를 점차적으로 잃어가고 있다. 성스러운 그 권리를 구경 누가 빼앗아 가는가? 불행하게도 아이들을 지극히 사랑하고 있는 가정, 학교와 사회이다.  자식이 잘되기를 소망하고 있는 우리 학부모들은 다투어 아이들에게 과외를 시키고 그들을 각종 재능반에 보내여 재능을 키우기에 급급하며 학교에서는 아이들에게 점수경쟁을 시키고 보충수업을 하고 숙제를 많이 내는것으로 아이들의 놀 시간을 박탈하는가 하면 사회여론도 이런 무한경쟁에 가세하고 부채질해 학부모와 아이들에게 유형무형의 압력을 가하고 있다. 결과 아이들은 공부에 재미를 느낄 대신 역반심리가 생겨 강박관념과 억지공부의 악몽에 시달리는 고초를 겪는다.  생활수준이 높아졌지만 아이들은 압력에 고달프고 동년의 환락이 없다. 왜 성격이 괴벽해지고 우울해지거나 지어 자페증이 생기는가? 잘 생각해 봐야 할 문제가 아닌가?  아이들에게는 천성적으로 긍정적욕구(아름다운 꿈)와 향상심리가 내재해 있다. 아이들 자아관리권한 범위내에 속하는 일은 관계하지 않고 애들 자체에 맡겨도 그들이 스스로 알아서 처사할수 있음을 믿어주어야 할것이다. 모종 의미에서 말하면 "관계하지 않는 것"이 바로 "관계하는 것"이다. 그것도 퍽 고명한 관계방법이다.   아이를 교육함에 있어서 일의 크고 작은 구분을 아주 무시한 "간곡한 타이름"만이 능사인것은 아니다. 아이들에게 심령의 자유를 주어야 함이 마땅하다면 "물장난을 하지 말라"식의 "간곡한 타이름"은 제발 마음 먹고 접어 두자. 동년은 칠색 무지개라 했거늘 황차  "물장난"은 아이들의 천당임에랴. /길림신문
27    [창업칼럼]겸허함, 침착성, 그리고 강한 정신력 댓글:  조회:3938  추천:78  2007-06-30
직업을 찾는 일부 대학졸업생들은 맨 처음 마음먹고 찾아간 소망회사에서 퇴짜를 맞으면 지레 한풀 꺾여 어쩔바를 몰라하며 전도에 대한 불안감으로 그지없이 황황해한다. 무한경쟁시대에 소망회사를 찾기가 대야에 든 고기 건지기처럼 쉬운 일만은 아니다. 물론 업종이 갈수록 세분화되여 가는 현실에서 생존필수의 기능을 갈고 닦기에 게을리 하지만 않는다면 기회는 얼마든지 있다. 하지만 운명의 시련은 어느때든 각오해야 할것이다. 대학 영문학부를 졸업한 한 청년은 자기의 영어수준이 퍽 괜찮다고 자신하고 있었다. 그래서 영문으로 쓴 리력서를 가지고 일부 무역회사에 가 초빙에 응했다. 그러나 받은 답복이란 다 당신과 같은 졸업생은 수요하지 않소이다였다. 그중 한 회사에서는 지어 이런 편지를 보내왔다. "우리 회사에는 사람이 부족되지 않습니다. 설사 사람이 수요된다 하더라도 당신을 쓰지 않을 것입니다. 당신은 자신이 영어를 잘하는것으로 착각하고 있지만 보내온 편지만 봐도 문장수준이 너무 낮고 문법도 틀리는데가 넘 많아요."편지를 받은 청년은 화가 치밀었다. 하여 분풀이편지로 대방에 한바탕 기를 채워주려 했다. 그러나 마음을 가라앉힌 뒤 다시 한번 곰곰히 생각해 본 그는 분풀이편지를 접고 대신 감사의 편지를 썼다. "저에게 문제를 지적해주셔서 정말 고맙습니다. 꼭 배가의 노력으로 영어수준을 높일거예요."며칠후 그는 이 회사의 출근비준통지서를 받았다.겸손하면 믿음을 살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인데,  이 사례에서 우리는 청년의 겸허함과 아울러 마음과 행동의 침착성도 보아낼수 있다. 겸손과 침착은 또 밑바탕에 깔려있는 자신감에서 오는 것이리라. 구직청년은 이 점을 꼭 알아두는것이 좋다.하지만 한두차례의 시련만 이겨나갈 준비에 그쳐서는 안된다. 장기적으로 심신을 괴롭히는 시련을 받아당하고 이겨낼 준비를 하는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미국의 저명한 방송국 녀아나운서 라파엘로는 30년 직업생애에서 일찍 180번 해고당한 경력을 가지고 있다. 그녀는 굴하지 않는 오또기마냥 거듭되는 실패앞에서 내내 새로운 운명에 과감히 도전해 나서군 했다. 180번째로 해고당했을 때 그녀는 그야말로 미칠 지경이였다. 철야 고민한 끝에 그녀는 또 새로운 결심을 내렸다. 이틑날 행낭을 짊어지고 181번째로 직업을 찾아나섰다. 드디여 성공한 그녀는 미국력사상 가장 매력이 있는 아나운서로 되였다.181번째의 성공! 아주 전형적인 례다. 여기서 우리가 터득해야 할바는 그녀의 강한 정신력이다. 말하자면 백번 넘어져도 다시 일어날줄 아는 그의  "오또기정신"이다.누군가 "어려운 구직에 성공을 하는데는 비결이 없으며 기가 막힌 해법도 없다. 꾸준히 노력하고 참고 견디는것뿐이다"라고 말한적이 있다. 지극히 옳은 말이다. 181번째의 성공뒤에 얼마마한 고민과 갈등이 숨어있었을지는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그런 고민과 갈등 없이 얻고자 하는것을 쉽게만 얻으려 한다면 이는 더 큰 실망을 낳게 될 소지가 있다. 멀리 보고 높이 뛰려면 현재의 고통을 연습으로 생각하는 마음가짐이 필요하다. 적성에 맞지 않는다고, 원했던 일이 아니라고, 함께 일하고 싶은 사람들이 아니라고 하여 모두를 외면하는것도 취할바가 못된다. 그러면 무언가 배울 기회도 오지 않는다. 누구랄것 없이 자신의 부족점은 다들 알고 있다. 돈이 없고 실력이 없고 자신이 없고 용기가 없을 수도 있다. 그러나 한탄할 필요는 없다. 한탄만 하는건 아무런 도움이 안되니까. 뛰여 다니며 땀을 흘려야만 하며 실패를 해도 강한 정신력으로 오또기처럼 그냥 튀여 일어나야 한다. 사회에서 능력 있는 사람으로 인정 받으려면 스스로 많이 배워 알고 경험을 쌓지 않고서는 불가능하다. 움직이는게 귀찮아서 고민만 하며 잠만 잔다면 결과는 아무것도 없다. 자신만의 경력을 열심히 쌓아가는게 가장 요긴하다는 얘기다.겸허하고 침착하며 거기다 "오또기정신"까지 가지면 성공은 틀림없이 당신을 찾게 될것이다.//길림신문
26    밝은 앞날을 함께 만들자 댓글:  조회:3714  추천:96  2007-06-09
                                 --중한수교 5주년에   1992년 8월 24일, 중국조선족들에게는 88올림픽도 큰 명절이었지만 그 날이 더 큰 명절이였다. 수만 이산가족은 물론 중국의 200만 조선민족 전체가 전쟁과 국계, 제도와 이념 차이로 장장 50여 년을 바다건너 벽 쌓고 지낸 과거를 씻고 동족간의 상봉이 가능해졌다는데서 가슴이 뭉클해 했고 격동의 눈물까지 흘렸었다. 그것은 쓰라렸던 과거를 뒤로 밀어버리고 양국간, 양국 국민간, 양국의 동족간 관계의 새장을 여는, 그리고 아시아의 궐기에 활력을 주입하는 획기적인 사건이었다. 그날이 어제 같은데 어느새 만 5년이 흘렀다.   돌이켜 보면 중한수교 후의 5년은 중국 조선족들이 긍지와 자랑을 느낄만큼 양국관계가 밝게 발전해온 5년이었다. 이 기간 양국은 정치, 경제, 문화 등 모든 분야에서 관계 정상화의 단계를 넘어 교류, 협력의 실질적 제휴단계로 달려왔는데 양국간 선린우호협력관계의 심화확대 추세하에 경제협력은 단순한 양적확대를 초월, 질적으로 차원높은 제휴의 기틀을 다져왔고 특히 중한 7개 로선 정기항공로와 중국 8대 항구—한국 4개 항구간의 정기해상로 개설로 인적교류와 물적교류가 급신장을 보였다. 조선족이 집중된 길림성의 경우를 보아도 근년들어 해마다 조선족 4~5만명이 한국을 방문, 한국인의 길림성 방문은 20만을 육박하는 실정이다. 인적교류와 동반, 경제협력교류도 상당히 활발하다. 6월 말 현재로 대길림성 한국투자기업은 873개 소로 외상투자기업의 제 1위를 기록했고 계약투자액은 4억 4675만 불, 미국 버금으로 제 2위를 차지하고 있다. 한편 중국의 조선족들은 한국의 3D 업종에서 값싼 인건비로 한국건설을 도와주고 있다.   중한 동족간 관계가 전체적으로 밝게 발전해온 것은 부인할수 없는 사실이다. 그러나 그 가운데 불협화음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따지고 보면 불협화음이  없을리 만무하다. 제도와 이념의 차이로 우리의 노세대들은 한때 극통의 경난을 치렀었고 그 상처는 오랜 시일 아물지 않고 여러 세대를 괴롭혔었다. 그 상처는 세월의 흐름에 거의 씻기고 치유됐다고 확신하지만, 시대의 흐름에 동반하여 나타나고 있는 새로운 문제점도 정시하지 않을 수 없다. 서로 담을 쌓고 수십년 제나름대로 뛰는 마당에 양국은 엄청난 문화차이를 빚어냈으며 그 차이는 담을 터쳤다 해서 하루 아침에 해소될순 없는 일이다. 그만큼 서로 간에 대방을 너무도 모르고 있었으며 문을 열고 접촉하면서부터 그것은 우리 앞에 만질듯이 다가왔다. 한쪽은 “온 세상이 변해 있는데 넌 엽때 무얼하고 있었느냐?” 대방의식의 “진부함”을 실감하고 놀라는 한편 “만만한 놈들 갖고 놀자”는 “범죄의식” 비슷한 것이 싹터나기 시작, 가난한 동족을 사기치는 일까지 서슴치 않고 하였고 한쪽은 대방의 경제문화의 발전에 놀라고 부러워하는 한편 일부 사람들의 못된 소행(졸부근성의 산물)에 반발, “너 좀 잘 산다고 뻐기고 으시대냐? 너 못살 때 외국놈들한테 당하던 일을 까맣게 잊고 잘 산다는 주제에 못 사는 이국 동족을 사기쳐 혹사시키고 있지?” 하고 개별적 사람들을 미워하던 데로부터 위험하게도 나라와 국민 전체를 미워하는 데까지 감정이 비뚤어진다. “못 살면 동족간에도 얻어맞아 터지고 당하기 십상인가?” 중국의 일부 조선족 농민들은 이런 심리까지 갖고 있다. 이와 같은 감정 대립이 물론 보편적인 것은 아니지만 그 영향은 심각하리만큼 큰 것이다. 양국간 문화 차이로 생긴 이러한 문제들은 양국, 한국과 중국 조선족 지성인들이 공동히 노력해서 풀어야 할 과제이다.   그렇다 해서 중국 조선족 지성인들은 한국의 개별적 사람들의 소행을 한국이나 한국 국민 전체에 들씌우지는 않는다. 실상 중국 조선족 일반은 한국 국민들에 의해 창조된 한국의 엄청난 현대문명에 긍지와 자랑을 느끼고있다. 그리고 중국의 조선족을 진심으로 돕고 있는 한국 정부와 민간 단체, 민간인들에게 진정 고맙게 생각하고 있다. 지금 한국의 많은 민간 단체들이 중국 조선족의 경제 부흥을 위해 조선족과 한국업체간에 가교역할을 하고 있으며 조선족 교육문화부흥을 위해 물심양면으로 많은 찬조지원사업을 펼치고 있다. 감사한 일이 아닐수 없다.   중국 조선족들도 자아반성을 할 때가 됐다. 조선족들 중의 개별적 사람들은 문화소질의 결여로 눈앞의 이익챙기기에만 급급하고 중국에 와 사업을 벌리려 하는 한국의 기업인들을 돕는다는 미명하에 돈주머니만 탐내면서 그들에게 불이익을 조성하는 현상이 드러나고 있으며 외국에 가 뼈빠지게 일해 번 돈도 어떻게 유용하게 쓸지를 몰라 흥청망청 먹고노는데 쏟아붓는 현상이 비일비재이며 불법체류현상은 한국에 사회문제까지 조성시키고 있는 상황이다. 조선족의 자아반성문제는 이미 조선족사회유지인사들과 언론계의 여론으로 떠올랐으며 자아반성을 통한 조선족사회의 의식성 제고 문제가 급선무로 대두했다. 물론 전반 조선족의 자질제고는 교육과 문화의 진일보의 보급, 제고를 통해 비로소 가능한만큼 경제발전을 그 토대로 해야 하는 마당에 그것의 성취가 상당 시일 걸릴것만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것이 조만간 실현될것이라는데는 다음과 같은 기본적인 사실이 잘 설명해주고 있다. 주지하건대 중국의 조선족들은 바깥과 막혔던 세월에도, 그 어려운 환경과 여건속에서도 종래로 자기고유의 교육문화를 포기한적이 없었다. 특수한 지리환경에서 자기의 문화를 지켜내고 또한 자기의 삶을 억척스레 개척하면서 자기만의 특유의 문화를 창출하였다. 그것은 역시 찬란한 우리 문화의 한부분으로 민족문화사에 한자리 떳떳이 차지할 것이다. 오늘 세상은 이미 열려 있거나 한창 열리고 있는 세상이다. 부동한 지역의 우리 조선민족문화가 합류되어 불신의 장벽을 허물고 불협화음을 해소하고 거대한 협화음을 동창하게 될날이 이제 멀지 않아 올것임은 틀림없다.   5천년 중한 관계사에서 5년이란 실상 극히 짧은 일순간에 지나지 않는다. 이 짧은 5년에 중한 양국은 상호이해, 협력과 발전의 탄탄대로를 걸어왔으며 민간관계도 그 이전에는 상상조차 할수 없었던 놀라운 변화를 가져왔다. 연계와 접촉을 통해 서로간 모르던 데로부터 점차 알게 됐고 서로 관심을 기울이게 됐으며 동시에 서로간의 차이도 보아내게 됐다. 이는 큰 진보로서 서로간의 관계가 간단없이 깊어지고 있음을 의미한다. 우리는 이한 관계를 보다 성숙시키는 촉진파가 되어야 할것이다.                                                     1997. 7. 14. 중국 장춘에서한국 <열린교육신문> 창간호(1997, 7, 28)
25    [창업칼럼]“이 기업은 누구의 것인가?” 댓글:  조회:3914  추천:92  2007-06-08
“뭐 저 개인의 회사지요.” 기업인들을 취재할 때 심심찮게 듣는 말이다. “전부 저 개인 투잡니다.” 그 개인의 회사임을 확인시키고자 부연설명도 잊지 않는다. 이럴 때면 이상하게도 꼭 10여년 전 어느 회사 사장 취재시 들은 말 몇마디가 떠오른다--    “로임을 누가 주냐고 물으면 저는 사원의 로임은 사장이 주는게 아니라 고객이 준다고 말합니다. 사장의 로임은 누가 주냐면 사원이 준다고 합니다. 로임을 고객이 준다고 생각하면 사원이 고객을 함부로 대할수 없고 로임을 사원이 준다는 생각을 가지고 일한다면 사장이 사원 한 사람을 대해도 무책임할수가 없습니다. 회사는 저 개인의 것만이 아니죠.”   법률적 각도에서 볼때 그 사장 개인이름으로 등록된 회사가 그의 개인소유임은 두말할것 없다. 하지만 그의 마음속에 “이건 내거야”란 생각만 깊이 각인되여 있다면 회사내 기타 임직원들의 존재는 지워지고 회장은 고립적인 존재로만 남게 된다. 그런 사장은 회사와 함께 직원들도 개인재산으로 혼동시하는 경우가 많다. 이런 상황이라면 직원들은 어려운 일이 있을 때마다 “내가 왜 당신을 위해 목숨을 걸어야 하지?” 하는 생각을 떨쳐버릴수 없을것이다.   聯想그룹의 회장 柳傳志는 련상의 핵심가치관에 언급할 때 개인의 추구를 기업의 장원한 발전에 융합시켜야 한다면서 “련상그룹에 있어 바로 이 가치관이 지속적발전의 강대한 동력이다”라고 말한바 있다. 창업시기 기업이 급신장하면서 기업과 직원의 관계처리 문제가 나섰는데 그때 반드시 풀어야 할 기본 명제는 “이 기업은 누구의 것인가?”였다.   “회사는 주주에게 속할뿐 아니라 직원 전체에 속한다.” 심사숙고를 거친 류전지의 대답은 명료했다. “우리 전체 임직원들은 자신의 추구를 회사의 장원한 발전에 융합시킴으로써 회사의 빠른 발전을 통해 매개인의 가치를 실현해야 한다.”   옳은 말이다. 이것은 단순한 구호가 아니라 실재의 메커니즘이다. 련상의 골간직원들은 모두 주식지분을 가지고 있으며 그룹내 상장회사는 모두 자체의 주권교역계획을 가지고 있다. 직원과 주주의 리익일치는 회장과 직원들을 하나로 단단히 묶어놓았으며 창업의 전반 행정에 시종 격정이 분출되도록 그들 모두를 분발시키고 있다. 그러나 “이건 나 개인의 회사야”로 표현되는 자사자리는 그 회사 전체적 격정의 상실을 초래하기 십상이며 격정을 상실한 집단은 전투력이 있을 수 없는것이다.   회사를 순 개인의 것으로 여기는 회장은 책임심이 결여된 회장일수밖에 없다. 어느 억만장자는 한때 시운이 따르지 않아 경영이 엉망이 되였는데 층집꼭대기에서 뛰여내리지 않으면 안될 정도였다. 그때 그의 머리를 치는것이 있었으니 내가 죽는건 쉽다치고 회사가 망하면 수천명 로동자는 어떻게 할거냐? 천여명 판매원은? 내가 죽으면 숱한 채권자들이 내 마누라를 찾아와 행악질 할것 아니냐? 이것이였다. 결국 그는 죽기를 포기하고 이를 악물고 회사를 이끌어 나갔다 한다. 회사가 어느 정도 크고 보면 그 순간부터 회사는 개인에게만 속하는게 아닌것이다.  //길림신문/박문희
24    [창업칼럼]고객 칭찬과 판매실적의 관계 댓글:  조회:4139  추천:86  2007-05-24
상점 점원이 고객의 장점을 발견하고 상황과 분위기에 맞게 칭찬해주면 고객의 몸에 엔도르핀(腦內啡―뇌분비물에서 진통작용을 하는 아미노산)이  솟는데 그것이 구매욕을 불러일으킨다는 연구결과가 있다.  외국의 한 음식점에서 부동한 고객에 따라 다양한 칭찬의 말을 사용하도록 점원들을 지도한 결과 매출액을 50% 이상 올렸다는 영업실기가 이 연구결과를 뒤받침해준다. 어느날 경영자와 직원들이 주부고객이 좋아할만한 칭찬의 말을 써내게 하고 그중에서 선택된 말을 마음을 담아 전달하는 연습을 시작했는데 주부고객에게 그런 칭찬의 말을 빈번히 사용한 결과 고객의 래점(來店)빈도가 높아져 매출이 크게 늘었다는것이다. 왜 영업장소에서 칭찬법을 사용하면 좋은 효과를 볼수 있을가? 역설적으로 말하면 우리의 삶에는 칭찬의 말이 대량 수요되는데 반해 실생활에서는 칭찬의 분위기가 너무 희박하다는데 있다. 칭찬은 칭찬의 대상에게 자신감을 갖도록 하고 삶의 의욕을 불러일으키는 마력이 있으며 칭찬자에게도 긍정적 가치관을 갖게 하고 마음이 여유로워지게 하며 좋은 인간관계를 유지하게 하는 등 효과가 있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우리는 칭찬의 말은 듣기 좋아하나 타인 칭찬에는 그지없이 린색하다. 가정이 있는 직업녀성을 례로 들면 출근을 하랴 남편과 자식들을 거두랴 심신이 고달픈데 남편으로부터 《거 당신 오늘 료리 별미야》 정도의 칭찬 한마디 듣고싶어도 정작 칭찬해 줘야 할 사람은 내내 덤덤하기만 하다. 회사에 나가도 과장이나 부과장의 칭찬의 소리 듣기는 하늘의 별따기보다도 어렵다. 반대로 고달프고 짜증나는 일은 싫어도 자꾸 생긴다. 이럴 때 상점 점원들이 칭찬법을 능란하게 구사한다면 무슨 일이 일어날가? 아, 그옷 손님 체격에 너무 잘 어울리네요, (두번째로 만난 손님이면)   또 찾아주시니 정말 반갑고 고맙습니다, (또 여타 상황에 따라) 손님 머리모양을 바꾸시니 너무 젊어보이시네요. 뭐 이렇게 가정이나 직장에서 받지 못한 칭찬을 매장에서 받으면 물건을 사는 재미에 칭찬받은 즐거움까지 배가(倍加)되여 구매욕이 자연 일게 되는것이다. 칭찬도 연습해야 하는가?  결론은 긍정적이다. 우리는 칭찬의 말에 익숙되여 있지 않기 때문에 칭찬에 자못 서투르며 지어 칭찬을 어떻게 하는지 모를 때가 많다. 지어 칭찬을 한다는것이 듣는 사람에게는 비아냥으로 들려 오히려 고객의 기분을 잡치게 할 때도 있다. 고객은 천차만별이라 똑같은 칭찬의 말을 쓸수 없고 같은 고객이라 해도 경우에 따라 칭찬의 말이 달라야 한다. 칭찬은 구체적이여야 효과만점이지 텅 비여서는 아무 쓸모도 없다. 그러니 고객이 좋아할만한 칭찬의 말을 생각해서 상황에 맞게 사용하는 연습을 해야 하는것이다. 칭찬에는 맹목적인 칭찬과 진실하고 따뜻한 칭찬의 구별이 있다. 아첨이나 비위맞춰주기는 칭찬과 거리가 멀다. 칭찬은 손님존중이 전제되여야 하며 분수에 맞고 사리에 닿아야 제격이다. 고객의 실제에 맞지 않게 아무렇게나 하는 칭찬, 아첨이나 비위맞춰주기에 가까운 저질칭찬의 람용은 긍정적 효과보다는 역작용이 크다. 칭찬의 람용을 막기 위해서는 고객의 몸에서 아름다움을 발견하는 혜안을 갖추는 노력이 필수적이다. 그 어떤 고객이나를 막론하고 아름다운 면은 언제나 있기 마련, 그 아름다움을 찾아내려는 마음가짐만 있다면 그것의 발견은 실상 어려운 일이 아니다. 아름다움을 찾아낸 즉시 칭찬법을 잘 응용하면 손님이 즐거워할건 물론 자신도 아름다워지게 될것이며 따라서 경영실적도 올릴수 있을것이다.//길림신문
23    심수는 오역 댓글:  조회:4474  추천:86  2007-05-19
심수는 오역 요즘 "연변" 지명을 가지고 논란이 일고 있는 가운데 생각나는 바가 있어 그전부터 관심을 가져왔던  深圳문제를 올려 봅니다. 이 지명이 지금 심천, 썬쩐, 심수 등으로 쓰이고 있는데, 조선어문에서는 "심수" 로 규범해쓰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심수" 는 완전히 오역입니다. 張三植 著 漢韓大辭典에는 圳를 chou(한어)로 발음하고 음독법으로 "수" 를 제시하고 있으나, 한편 이 字가 甽,畎으로 통하며 한어발음은 quan으로, 한글음독법은 "견" 으로 밝혔습니다. "천" 이란 독법은 이전에 없었던듯(?) 하나, 深圳이 유명해지면서 로창하, 문숙동이 주편한 "최신옥편"(2000년 판본)에는 圳(zhen)을 광동성의 도시이름 深圳이란 단독조항 밑에 "심천" 으로 규정했습니다. 출처와 근거는 알수 없지만 인터넷 새 한글 문서 한자바꾸기에도 圳이 "수", "견", "천" 으로 되어있습니다. 釧, 玔, 氚, 夼 등도 다 "천" 으로 된 상황에서 chou의 음독인 "수" 만을 따다다 "심수"라고 규정함은 어느 모로 보아도 가당치가 않지요. 틀리는 것은 가령 그것이 력사적으로 기성사실화 되었다고 해도 바로잡는게 바람직할 것입니다. 시정됐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조선어의 능률적학습과 漢字교육 중국 경내조선족의 조선어서사생활에서 한자를 페지한지 50 년도 넘는 오늘 한자혼용문제가 의연히 거듭 거론되는 까닭은 조선어에서의 한자페지가 조선어의 학습과 활용에 시종 불리한 요소로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다.한국에서 자주 벌어지는 론쟁과 사회적으로 시종 이뤄내지 못한 한글전용의 현실도 같은 차원의 문제에 다름아니다. 실질적으로 볼때 한자혼용문제는 한자교육문제와 직결된다.좀 더 분명히 말하면 조선어를 능률적으로 배움에 있어서 조선어한자교육이 필요한가 아니면 필요하지 않은가 하는것이 한자혼용문제의 본질이며 요해처인것이다. 나의 소견으로는 조선어를 효률적으로 배우기 위해서는 조선어한자교육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한자교육을 거세해 버린 조선글전용정책은 조선어언어발전법칙을 어긴 것으로 우리 말의 발전제고에 걸림돌로 작용하므로 반드시 페지해야 한다는게 나의 주장이다. 이 문제를 규명하고자 우선 조선글의 한계와 조선어한자의 효용을 밝혀보고자 한다. 1. 조선글의 한계 조선글은 글획이 적고 표기법이 간단하여 문자를 익히기가 쉬운 반면에 표음문자로서 개개의 글이 독립적의미를 갖고있지 않기에 새로 접하는 신출한자어의 경우에 그 단어의 뜻이 일목료연히 안겨오지 않는 페단이 있다. 원인은 우리의 말과 글이 청각성 어휘와 시각성 어휘로 나뉘여진다는데 있다. 과 같은 청각성어휘는 귀로 듣는 즉시 뜻이 리해되는데 그것은 어려서부터 말로 배워익혀 이미 몸에 배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 이라 하면 고등교육을 받은 사람이라 할지라도 듣는 것만으로는 그 뜻을 분명히 알기 어렵다.왜냐하면 에 등 여러가지 의미가,엔 등 각종 의미가 있어 뜻을 도저히 종잡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어휘들을 한자로 표기해 놓으면 그 뜻들이 보는 즉시 명료해진다(물론 배우지 않으면 봐도 모른다). 이러한 시각적 언어를 조선글로만 표기해도 개념을 리해할수 있다고 하는것이 이 안고있는 모순이다. 필경 읽을 줄 안다는것과 그 뜻을 안다는것은 별개의 문제인것이다. 전문분야용어의 경우 조선글의 한계는 더욱 뚜렷이 드러난다. 례: 이 문장에서 한자를 모두 조선글로 바꾸어 넣는다고 하자. 한자어의 뜻들이 확연히 안겨올 것인가 ? 이란 두 동음어는 또 어떻게 리해하겠는가? 순 조선글로 표기된 이런 단어들을 한두개만 정확히 리해하자 해도 피곤할텐데 이런 전문 용어들로 꽉 차 있는 두툼한 기술서적을 읽어 내려 가자면 그 고초가 얼마나 막심할것인가 ? 어려운 한자어를 쉬운 말로 풀어 쓰면 해결이 된다는 론리에도 무리가 있다. 례: 가령 이런 구절이 있다고 하자. 이란 말은 에서 그 뜻을 바로 리해하기 어렵다. 그렇다면 이런 말을 로 치부해서 따위 로 바꿔 쓸 것인가? 답안은 매우 간단하다. 로 바꿀 것 없이 그것을 이라고 한자로 표기해 놓으면 된다. 보는 사람은 보는 즉시 그 뜻을 알고 또 쉽사리 잊지도 않을 것이다. 그 다음번엔 을 한자로 표기하지 않아도 금방 알아 볼수가 있는 것이다. 력사적으로 형성되고 전통적으로 계승되여 온 생명력 있는 말들을 필요 이상으로 이른바 새로운 고유어합성이나 새로운 한자어로 다면 오히려 력사와 전통을 단절시키고 언어의 천박성만 증대시키는 언어혼란을 빚어낼수 있다. 조선말한자가 완전히 당한 오늘 현실에서 우리 조상들이 오랜 시일에 걸쳐 신고스레 다듬고 벼려온 맛갈지고 아름답고 짜임새 좋은 한자어들이 무참히 배격당할 위험은 항상 우리곁에 도사리고 있다.우리는 우리 조상들에게 죄짓는 일은 절대 하지 말아야 할것이다. 우리 글이 배우기가 쉽다는 말은 이미 正說로 굳어진듯하다.그러나 이 說이 자칫 우리 글을 해치는 陷穽이 될수 있다는데 류의할 필요가 있다.조선글이 선진적이고 한자가 락후한 문자임을 부각시키기 위해 일부 론자들은 는 極言도 서슴치 않고 한다.이와 같은 誤導로 하여 많은 학생들이 조선글을 읽을 줄만 알면 다 배운 것으로 착각하고 있으며 심지어 조선어는 배울게 없다고 여기는 학생도 결코 소수가 아니다. 기실 세계상의 모든 언어와 마찬가지로 조선어 역시 한 평생 배워도 다 배워낼수 없다. 1996년에 출판된 엣센스국어사전에는 우리 글 어휘가 15만어가 수록되여 있다.근 50년간 조선글을 읽어왔고 20여년간 신문사 편집으로 일해온 필자의 소견으로는 우리 글이 결코 쉬운 글만은 아니라는것이다.내심 두려운 일이 한가지 있다.한자교육을 계속 지금처럼 배격해 나간다면 우리 글이 세상에서 배우기가 가장 힘든 글로 전락되지 않을가 걱정이다.아니,이미 전락된지가 오래되여 이미 엄청난 피해를 입었으면서도 그것을 전혀 느끼지 못하고 있는,심각한 불감증을 앓고 있는 그 과정일지도 모를 일이다. 조선글이 안고 있는 한계를 의도적으로 인정치 않고 조선어를 세계적으로 가장 뛰여난 글이라고 극찬만 하는 것은 설사 그 동기가 뜨거운 민족애와 민족적 긍지감으로부터 출발한 것일지라도 실질상 리론적으로나 학술적으로 미흡한 점이 많으며 실천적으로도 해로울뿐이라고 생각한다.우리말 공부가 조선글 전용으로 인해 비능률적으로 진행된다 할 때 그것은 우리의 전반 교육수준향상에 계속 악영향을 끼칠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2 . 조선어한자의 효용 표음문자인 조선글에 대비해 표의문자인 한자의 가장 큰 우점은 바로 그것의 에 있다. 글자마다 뜻을 가짐으로써 글자와 글자를 련결해서 새말을 지어내는 강력한 造語力을 지니고 있다는것이 바로 한자의 妙所다. 新出 한자어의 경우, 각 한자의 訓과 音을 익히고 그 훈들의 결합인즉 그 한자어의 뜻이란 점을 발견하면 그 단어의 뜻을 똑바로 리해할 수 있다. 그리고 새로 배운 한자와 이미 배운 한자들의 결합으로 이루어진 한자어의 일차적인 뜻은 자동적으로 리해되여 어휘확장이 아주 능률적으로 이루어진다. 리해에 토대한 학습능률의 제고로 어휘습득량이 확장됨에 따라 일부 한자의 파생적의미도 어렵잖게 파악하게 되여 어휘의 2차적 뜻 리해도 가능해진다. 따라서 한자어 해득효과는 幾何級數로 늘어나게 된다. 례를 들어 訓에서 제시한 자의 뜻은 로 되여 있다. 여기에 새로 익힌 한자를 결합시키면서 , 등으로 어휘를 확장해 나가다 보면 字가 이란 뜻 외에도 등 파생적 의미도 지니며 또 그것을 토대로 다른 추상적의미도 이끌어 낼 수 있음을 별로 힘들이지 않고도 알게 된다. 하여 의 뜻을 쉽게 파악하고 기억할 수 있으며 나아 가 가 가지는 추상적 의미까지 類推해내는 推理力과 創意力도 스스로 키우게 된다. 그러다 보면 자연 文理가 확 트이게 되여 學力은 급속도로 제고될수 밖에 없다. 그러나 한자교육을 완전히 배격해 버린 상태에서의 조선말 한자어는 무의미철자의 집합체와 다름이 없어서 상기한 바의 효과를 거두기 어렵다. 을 이라고만 해석해 놓으면 학생은자의 뜻이 뭔지 자의 뜻이 뭔지도 모르고 그저 기계적으로 그 뜻을 암기해야 한다. 그러나 자와 자를 각각 가르치면 선생이 해석할 필요 없이 학생은 자동적으로 의 뜻을 알고 기억하게 된다. 리해된 것이라야 빨리 기억할수 있다는것은 정한 리치다. 반대로 리해되지 않은 것은 왕왕 여러차례의 반복을 거쳐야 비로소 기억이 가능하다. 바로 우리의 학생들은 조선글로 표기된 한자어에서 뜻감을 잡을만한 아무런 표식도 없는 무수한 무의미철자묶음을 기계적으로 암기하느라 기막힌 고역들을 치르고 있는 것이다.근본적으로 한자어의 리해를 돕는것은 한자교육일뿐이다. 한편 한자는 글획이 많고 복잡하며 글자수가 너무 많아 평생을 배워도 그 일부분을 겨우 배워내나마나 한 기막힌 약점도 가지고 있다. 그러나 그 많은 한자를 다 배워야 하는 것도 아니다. 필요한 글자만 2 ~ 3천자 정도 골라 배워도 조선어학습에 충분하다. 북경대 언어학과 연구팀은 漢字 3000자만 알면 나머지 한자는 저절로 리해할 수 있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한국의 比峰출판사에서 동양고전을 번역하면서 분석해 보니 에 등장하는 漢字는 1500여자,에는 1800여자 정도였다. 그 출판사 朴琪鳳사장은 고 말했다. 3 . 한자교육의 당위성 우에서 언급한 리유로부터 한자교육이 필요하다는 결론을 얻어냈다. 조선글에 한계가 있고 그 한계를 메울수 있는것이 漢字일진대 굳이 그것을 배우지 말아야 할 리유가 무엇이겠는가? 조선어의 효률적인 학습과 활용에 크게 리롭다면 그것을 거부할 하등의 리유도 없다. 況且 한자어에서 쓰는 한자는 재래로 우리 글의 일부분으로 취급되여 온 것이 력사사실인데 그것을 기어이 남의 것으로 밀어 붙이고 원쑤인양 타매하고 축출해야 시름을 놓겠는가? 한자교육은 외 다음과 같은 리유에서도 당위성을 가진다. * 한자교육은 민족전통교양에도 유리하다.례컨대 우수한 우리 민족전통으로서의 륜리도덕이 허물어져 가고 있는 마당에 한자교육을 전통교양에 효과적으로 활용할수 있다. 한자안에 인성교육의 모든 요소, 충과 효의 도리, 옳바른 국가관, 보편적인 인류애가 들어 있기 때문이다. * 한자교육은 모든 사회분야의 진보에 유리하다. 한자교육을 받은 학생들이 사회에 진출하면 한자교육을 통해 얻은 지식과 능력으로 사회에 보다 훌륭히 봉사할 수 있다.언어학 연구분야를 보자. 한자교육을 받지 못한 사람이 어학연구에서 과연 어느 정도의 성과를 올릴 수 있을 것인가? * 부대적으로 언급할 말이 있다.필자의 짧은 관찰(일면적일수도 있으니 연구의 참고로만 삼아주기를 바란다)에 따르면 조선글전용주장은 대체로 두가지 부류에서 온다.한 부류는 조선어를 쉽게 배우려는 이들이다.리해가 된다.그러나 이에 대해서 필자는 조선어를 쉽게 배우려는 생각을 가지고서는 결코 조선어를 제대로 배워낼수 없다고 귀띔하고 싶다.다음 한 부류는 한자교육을 받은 일부 학자들이다.이미 漢字교육을 받은 이들이 아직 한자교육을 받지 못한 이들에게 조선말漢字를 가르쳐줄 대신 가르칠 필요가 없다고 강력히 주장하고 있는데,그 底意를 도저히 알수 없고 리해가 되지 않는다. 4 . 한자교육의 방법론 * 모든 언어간에 차이가 없을수 없듯이 조선어한자와 한어한자 사이의 差異의 존재도 필연적이다. 이를테면 같은 한자어는 한어에서 으로 표시되는데 그것은 필경 두가지 부동한 언어체계인만큼 차이의 존재는 확실하다.한편 대량 엄존하고 있는 이런 현상은 기실 조선어가 오랜 세월 자체의 언어발전법칙에 의해 발전해왔다는 유력한 근거로 되기에 충분하다.그러나 그것이 한자교육에 제동을 걸어야 하는 리유로 될수는 없다.이 올수 있다는 리유로 한자교육을 포기하는것은 조선어를 보다 높은 수준에서 가르치고 배우는 것을 포기하는것과 같기 때문이다. 한어한자와 조선어한자의 차이의 존재를 인정하고 비교를 통해 언어를 습득하는것은 언어공부의 좋은 방법이다. 옅은곳으로부터 깊은곳으로 점차 배워 나가다 보면 학생들은 자연히 두가지 언어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인지하게 될것이며 언어의 비교를 통해 새로운 지식을 습득하게 될것이다. 이른바의 혼란이란 배우지 않아 모르는데서 생기는것이다. 한자의 뜻, 훈과 음독법을 가르치면 배운 학생이 평생 활용할수 있다. 가르치지 않으면 학생이 평생 혜택을 볼 수 있는 엄청 큰 기회를 놓치게 되는 것이다. * 한어과와 조선어과의 상호보완 원칙을 적용하여 한어학습과 조선어학습을 능률화하면 학습속도가 갈수록 빨라져 결과적으로 부담이 늘어나는 것이 아니라 줄어들게 될것이다. * 중국 조선족의 실정에서는 간체자로 배워도 무방하다고 본다. 우리가 한자를 배우는 것은 선차적으로 한자어에 대한 리해를 도움으로써 조선어를 능률적으로 배우자는것이기 때문에 어려운 번체자를 꼭 배워야 할 리유가 없다. 간체자를 배움으로 해서 생기는 일부 구체 문제는 전문가들이 공동연구를 해서 결정을 짓던지 하는 특수방법을 대서 해결하면 그만이다. 번체자는 필요에 따라 천천히 여유 있게 배워도 별 문제가 없다. * 조선어과에서 해야 한다고 본다. 한어과의 교수목적은 학생들의 한어 열독 * 서사 * 회화 능력을 키워 주는데 있지만 조선어과의 한자교수목적은 우리 말 한자어에 대한 학생들의 인지 * 식별 능력과 서사능력을 높여 조선어 학습효률을 극대화하기 위한데 두고 있다. 그리고 한어과에서는 한어병음으로 한자를 가르치고 조선어문에서는 訓과 조선말 音讀法으로 한자를 가르친다. 그러나 량자의 교수를 유기적으로 결합시킨다면 상호보완의 효과를 볼 수 있을것이다. 이는 조선어 한자교수의 유리한 조건이다. *한자교육은 가급적 어릴때부터 시작하는것이 좋다.이것은 중국과 한국의 경험있는 전문가들의 공통한 주장이다.이 점을 리해하기는 어렵지 않을것이다. * 근본적으로 말하면 학교에서의 한자교육이 선차적이고 사회에서의 한자혼용은 후차적이다. 그러나 한어가 보급된 중국의 실정에서 한자의 訓 * 音 교육에 앞서 사회의 신문 * 출판물에 한자혼용을 부분적으로 , 실험적으로 추진하는것은 가능하다고 본다.물론 현재 신문간행물에서 시험적으로나마 을 실시한다면을 한어발음으로 읽거나 인명 을 등으로 잘못 발음하는 현상이 필연적으로 대량 나타나게 될것이다.이런 현상의 출현은 결코 선생이 둔재이거나 학생이 저능아여서가 아니라 50여년간 한자교육을 페지하고 조선글전용 정책을 실시한 필연적악과이다.訓과 音을 제대로 가르친다면 이런 일은 거의 없을 것이다.그래 을 가르치지도 않고 한자를 대로 읽으라고 요구할수 있단 말인가? 아무튼 한자혼용실험에서 일부 문제들이 나타날수는 있지만 정확히 인도하기만 한다면 한자교육개혁에 필요한 경험을 더듬어내는데 크게 유조할것이다. *한자교육정책은 정부차원에서 상당시일을 두고 계획적으로 , 그리고 점진적으로 펴내여 실행하는것이 바람직하다. 교재의 편찬, 학교 교사와 보도출판 분야 편집일군 양성, 사회에로의 조선어한자 보급, 여러 경로를 통한 한자혼용실험 , 한자혼용실정에서의 언어규범화 후속조치 제정 등 代案들을 가급적 적극 따라세우는것이 시급하다. *당면 가장 긴급하고 중요한 일은 한자교육의 필요성에 대한 관련 연구부처나 사회 여론 기관,단체의 의견을 통일하고 정부에 한자교육실시안을 다시 한번 제시하는것이라고 생각한다.예상컨대 의견통일은 어려울 것이다.의견이 통일되지 않으면 부동한 의견을 동시에,혹은 각기 정부에 제시하는 안도 마련할수 있을것이다.과거 정부에서 수차 한자교육문제와 관련된 조사작업을 벌리고 한자교육추진을 시도했지만 의 반발로 번번이 무산되고 말았다.가급적 조속히 문제해결이 됐으면 하는 소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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