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문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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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소설】빨강머리 략전
2024년 11월 22일 13시 49분  조회:39  추천:0  작성자: 박문희
【단편소설


빨강머리 략전

박준희

 
 
세상에 어이없고 한심한 글 한편이 있다.
 
《제10번 남색노트》란 글이 바로 그것이다.
 
“‘빨강머리’라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눈과 귀가 없다. 그리고 머리카락도 없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를 가정(假定)하여 ‘빨강머리’라고 불렀다. 그는 말도 못한다, 그것은 그한테 입이 없기 때문이다. 물론 그는 코란 것도 없다.
“심지어 그는 손과 발도 없다. 배도 없고, 잔등도 없고, 등골도 없고, 내장 따위 같은 것도 없다. 그한테는 아무것도 없다!
“하기에 우리는 지금 누구를 말하고 있는지 모른다. 그러니 그에 대해서 더 말치 않는 것이 좋다."
 
이것이 글의 전문이다.
 
이 글은 《외국소설》에 먼저 번역되여 실린 후 《산문》과《기문이사 (奇闻异事)》에 서도 뒤따라 전재하였다. 이러구 보면 사불상(四不像)같은 이 글을 소설이라 해도 되고 산문시라 해도 과실이 아니고 기문이사를 다룬 뉴스라 해도 틀리지 않는다는 말이 된다. 난 처음엔 편집이나 주필선생의 일시 소홀로 글이 잘못 나간 거나 아닌가고 나름대로 생각했더랬는데 일이 정작 이렇게 되니 한동안은 정말 어리둥절해졌다.
 
저자는 다니엘 · 햄스1)란 쏘련2)작가인데 프로필을 보니 어느 한 시절엔 아주 유명했다고 한다.
 
문학사를 보면 햄스는 확실히 천재적인 작가임이 틀림없었다.
 
약간의 유감스러운 점이 있다면 일설에 그가 괴기한 작품만 쓰다나니 호된 비판이 노상 뒤따르는 통에 나중엔 괴벽스럽고 재밌던 성미마저 다 고쳐버리고 사람이 매우 유순해졌다는 것이다.
 
사실 우리나라는 건국초기에 력사적 원인으로 쏘련을 형님(老大哥라 불렀다)처럼 믿다보니 경제건설령역은 물론 문학예술계서도 모든 면에서 쏘련을 본 땄다. 쏘련작가들은 물론 차르 로씨아 시기 작가들까지도 모두가 우리들의 우상으로 되였다. 지금은 쏘련이란 나라가 해체된 지도 어언 20년여 년이 흘렀고 그 시절의 유명작가들도 진부하고 무색해졌다.
 
그러나 그렇다 해서 다니엘·햄스의 공적을 말살하고 부정한다는 건 무리겠지만 나로 말하면 아무랬던 지간에 《제10번 남색노트》의 괴기하고 엉뚱한 글 풍격만은 나를 몹시 불쾌하게 했다.
 
그 리유라면 이렇다.
 
이 글이 소설이든 산문시든, 혹은 기문에 관한 뉴스든지를 막론하고 뭔가 실물 (주인공 같은)같은 것이 있어야 글의 가치나 의의 같은 걸 운운할 수 있겠는데 여기에 는 그런 것이라곤 털끝만치도 없다. 그뿐만 아니라 마치 인간처럼 묘사하고 있는 이 물체(잠시 실물이라 치자)는 얼굴의 오관은 고사하고 몸뚱아리 전체가 없는데다 이름마저 가정한, 동물이나 초목도 아니고, 사람이라긴 커녕 요괴호적에도 오르지 못하는 텅 빈 무(無)다. 나는 원래 한심하기 짝이 없는 이 문제를 가지고 전화로 잡지사에 자문까지 하려고 했으나 그랬다가 혹시 편집선생님들의 공연한 오해를 살 것 같아 결국 그만두었지만 하여간 이 일로 기분을 잡친 것만은 부인할 수 없다.
 
그런데 전혀 상상 못했던 건 이러던 와중에 이보다 더 괴기한 일이 생겼으니……
 
내가 아직 언짢은 기분을 삭이지 못한 채 안절부절 못하고 있던 어느 날 밤, 은밀한 꿈자리에서 거리를 한가히 산책하던 나는 공교롭게도 햄스란 장본인을 만나게 되였다.
 
이때 그는 길옆 료정에 홀로 앉아 한창 양고기구이를 맛나게 먹고 있었다.
 
나는 하도 놀랍고 신기했지만 마침 잘 만났다는 생각까지 들어 반갑게 인사를 했다.
 
“아아! 다니엘·햄스! 선생님이 어떻게 되여 여기에……”
 
햄스도 역시 반가워하는 기색이였고 스스럼없이 내말을 가로챘다.
 
“하아! 박군! 이곳 양러우촬이 세상일미란 풍문을 듣고 벼르던 차에 오늘 마침 여가가 있어 오게 됐소, 과연 별미로구만! 헌데 놀라긴 왜? 나 햄스는 여기 오면 안 된다는 법이리두 있나?”
 
그가 내 성씨까지 불러가며 떠는 너스레에 나는 그만 말문이 막혔다.
 
하기야 이같이 좋은 세월에 햄스가 어데를 오가던 뉘가 마다할가! 하물며 중로사이의 정분이 도탑기가 친형제와 같은 요즘에 더욱 말이다.
 
이상한건 햄스선생이 우리 말도 잘하고 말투도 완전히 우리 식이였다. 서울 조도 아니고 평양티와도 다른, 순수한 연길표준사투리였다. 나는 물론 이것이 꿈의 조화란 걸 알고 있었기에 그다지 놀라지도, 개의치도 않았다.
 
나는 주인생색이라도 내야겠기에 맥주를 상자채로 불러다 그와 함께 양고기 구이와 곁들어 먹으면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맥주 몇잔이 서서히 들어가니 소심했던 나의 일거수일투족은 어느덧 방자해졌고 그런 김에 나는 비좁은 소견들을 여쭈고 그의 가르침을 받았다……
 
그날 둘이 속심을 터놓고 얘기를 무수히 나눈 건 말할 것도 없다.
 
다른 말은 그만두고 내가 전혀 상상 못했던 일이 하나 있었은즉……
 
그날, 밤이 퍽 이슥해졌을 때, 유관 현대문학리론에 대해 한참 도도히 열변을 토하던 햄스가 불현듯 무슨 생각이 떠올랐던지 말을 중동무이하고 나를 유심히 바라보는데 얼굴에 기묘하고 익살스러운 표정이 어리는 것이였다.
 
“……박군은 아까 내가 무슨 심보로 <제10번 남색노트>란 괴기하고 엉뚱한 글을 썼는가고 물었지? 자넨 아마 내가 독자들을 골리려고 한 짓이 아니면 누구를 조롱이나 하려고 그랬을 거라고 생각했을 거야……”
 
나는 그가 나의 속심까지 짚어 말하는데 저으기 놀랐다.
 
“……하지만 그건 틀린 생각이야. 나는 독자들을 늘 존중해왔어. 황당한 풍격이나 유머수법 같은 걸 사용한 건 내가 그런 풍격을 원체 즐기구 쓸 만 하니까 그런 거구. 말해 두지만 나는 풍자를 하기 위해 하는 황당술이나 유머따윈 시종 반대해 왔어……”
나는 그의 말에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유머나 황당술이 풍자를 위한 것이 아니라면 뭘 하자는 건데, 이건 또 무슨 황당한 소리냐?
 
나의 머리에는 갑자기 햄스란 인간자체가 원래 황당한 존재가 아닌가 하는 괴이한 생각이 스쳐지났다.
 
햄스의 입가에 간교한 미소가 어리는 걸 보아 그는 나의 속심을 꿰뚫고 있었다.
 
“너무 놀랄 건 없네. 내가 하는 말이 무슨 새로운 발명도 아니야. 세상에 발명이란 게 어데 따로 있나. 다 현실 속에 자연존재로 있는 건데. 자네가 잘 모르는 것 같아서 하는 말이지만 그저 들어두게. 인간의 모든 것은 일장 연기에 지나지 않네. 말하자면 저마끔 알맞는 배역을 맡고 연극하는 배우와 마찬가지지. 연극자체야 물론 매우 장중하고 엄숙한 거지. 그런데 장중하고 엄숙한 그 뒤를 캐보면 연기외의 진실한 것들이 두루 있는 거지. 유머나 황당술이란 건 겉에 나타나지 않는 그걸 보여줄 뿐이야. 그러니 유머나 황당술을 그저 사람을 골려나주고 웃기기 위한 것이라고 말할 수 없는 거야. 그리고 무대에서 하는 희극은 유머가 아니라 일종 유희야. 거기선 사람을 조롱도 하고 풍자도 마음껏 하지, 그러나 그건 순수한 유희니깐 누가 그걸 나무람하겠나…….”
 
나는 그의 말을 들을수록 점점 더 어리벙벙해졌다.
 
그러나 지금 황당한 사람이 황당한 말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니 마음은 다시 홀가 분해졌다.
 
그런데 홀연 그가 나의 상상을 훨씬 초월한 생뚱같은 소리를 하여 나를 깜짝 놀래주었다.
 
“……내가 오늘 자네하고 이실직고하네만 사실 ‘제10번 남색노트’는 잡지에 잘못 나갔던 거야 ……”
 
“잘못,,,,,나가다니요? 건 또 무슨 황당한……”
 
“믿을런진 모르겠지만 나는 그때 좀 딱한 사정에 부딪쳤더랬어. 나로선 되우 억울한 사정이였지……”
 
“억울하다니요? 건 또 웬 말씀입니까?”
 
“다른 사람들허구는 절대 말하지 말게, 아주 망신스러운 일이니깐.”
 
“그런 건 걱정마세요…..대체 어떻게 된……”
 
“후--, 실은 책을 찍을 때 인쇄소의 활자공이 전날 밤에 술을 과히 마시고 취한 통에 원고의 대부분 내용을 빠뜨렸단 말이요, 아하, 사연이 그렇게 피치 못하게 됐으니 난들 어쩌겠소, 사후에 나도 이 일로 욕을 수태 봤소……”
 
세상에 이런 변이 다 있나!
 
그날, 나와 햄스는 밤을 패가며 맥주와 양고기구이를 기껏 마시고 먹다가 날이 비슷하게 밝아오자 서로 후일을 기약하고 기분 좋게 갈라졌다.
 
갈라지면서 햄스는 나의 귀전에 신비스럽게 말하는 것이였다.
 
“박군, 그 루락된 부분의 글을 자네한테 보여줄 수도 있어, 걸 보구 싶은 생각은 없나?”
 
“그게 정말입니까? 날 골리자는 건 아니겠죠.”
 
“허참 사람두, 믿지 못하겠으면 관두라니.”
 
“아아, 선생님, 그런 게 아니라……”
 
햄스는 원고가 자기 집의 서재에 있는 테블서랍속에 여적 고스란히 보관되여 있으니 한가할 때면 가서 찾아보라고 했다.
 
이튿날 꿈자리에서 깨여난 나는 속으론 햄스가 한 말이 께름직하기도 하고 더러 미심쩍었지만 근일에 바쁜 일도 없고 하니 행여나 해서 그가 가리켜준 대로 모스크바에 있다는 그의 집으로 바로 달려갔다.
 
아니나 다를가, 나는 그의 테블서랍 속에서 그 원고를 찾았다. 시일이 너무 오래 지난 연고인지 원고지는 누렇게 변색해있었다.
 
정말 귀신이 곡할 일이였다!
 
그런데 난처한 것은 원고가 로어로 씌여졌기에 외국어에 전벽인 나로서는 도무지 읽을 수가 없는 것이다. 하지만 요만한 곤난 쯤은 나에겐 아무 일도 아니였다.
 
나는 즉시로 원고를 손에 쥔 채로 테블 앞의 회전의자에 앉아 눈을 감고 곧장 꿈속으로 들어갔다. 거기서 나는 아무런 언어장애가 없이 원고를 우리말로 무난하게 번역하였다. 내가 꿈에서 깨여났을 땐 번역고가 한 페지도 분실되지 않고 손에 쥐여 있었다.
 
이렇게 되여 나는 햄스의 《제10번 남색노트》원고전문을 읽게 되였다.
 
아래에 소설전문을 고대로 옮긴다.
 
(총망하게 번역된 데다가 수준미달로 어설프게 서술된 곳도 두루 있을 것이고 문체도 우리식이라 좀 어색한 부분이 있겠지만 그런대로 의사만은 대충 전달되여 있으니 참작하여 읽어주기 바란다. 동시에 독자들에게 량해를 구한다.)
 
★      ★      ★
 
그는 태여날 때 코나 입 같은 족속들이 제각기 있어야 할 위치에 똑바로 잘 붙어 있었을 뿐만 아니라 신체의 기타 여러 부품들도 하나 빠짐없이 모조리 구전했다.
 
“우리 아기가 발가락 하나 빠뜨림 없이 모두 완벽해!”
“내가 보자요, 호, 정말 그렇구만요!”
“하하, 아기 머리카락이 참 빨갛구만, 너무 이뻐!”
“호호, 빨강 앵두색이군요. 우리 아기이름을 <빨강앵두>라고 지읍시다!”
“난 <빨강사과>란 이름이 더 맘에 들어! “
“빨강앵두!”
“빨강사과!”
“앵두!”
“사과!”
“앵두앵두!!”
“사과사과!!”
……
 
늦은 중년에 처음으로 아들을 보게 된 두 부부는 아기에게 “빨강머리”라는 귀여운 이름을 지어주었다. 그리고 아들을 어떠한 류형의 인간으로 키울 것인가는 문제를 두고 오래오래 진지하게 상론하였다.
 
이렇게 수일의 상론을 거쳐 마침내 두 부부는 허다한 방안을 제치고 빨강머리를 세상에 둘도 없는 제1등의 완벽한 인간으로 육성한다는 더없이 지혜롭고 대담한 방안을 최종 선택하였다.
 
이 “완벽한 인간 육성방안”은 이 나라에는 물론, 전 세계 어느 곳에서도 찾아 볼 수 없는 으뜸가는 훌륭한 방안이였다. 두 부부는 웅대한 목표를 실현하고저 다시 수일을 거쳐 고심하게 연구하던 끝에 마침내 완벽한 실시기획을 세웠다.
 
이 기획은 그야말로 방대하고 섬세할 뿐만 아니라 굉장히 엄밀한 것이였다.
 
영아교육으로부터 유치원, 초, 중, 고등학교, 대학본과와 부박사, 박사학위를 따내기까지 매 단계의 육성과정과 완수해야 할 과목이 아마 수백종은 되였다.
 
수학 물리 화학 문학 력사 지리 철학 심리학 고고학 천문학 건축학 종교학 등 외에도 기타의 여러 예술에 유관한 과목이 있었으니 음악부분만 해도 성악과목의 벨칸토와 민요창법, 악기과목의 피아노 바요링 첼로 콘트라베이스 클라리넷트 플푸트 트럼벳 호른팀파니가 있나 하면 작곡과목의 화성학 대위법 곡식학 관현악법 성악곡 기악곡법 교향악 오페라 뮤지컬도 있었다. 회화과목에도 유화 판화 수채화 수분화 벽화 바로크 로크크고전주의 학원주의 랑만 주의 현실주의 사실주의사진 사실주의 인상주의 미래주의 추상주의 다다의즘과목이 있는가 하면 중국화와 일본의 우키요에도 포괄되여 있었고 무용과목에도 발레부터 로씨아 까자크 등 민족무용이 있었다.
 
그 외에도 료리학, 분장학, 의상학……..
 
빨강머리의 육성사업은 열광적인 두 부부의 감독 밑에 엄격하게 시행되였다.
 
두 부부의 웅대한 기획이 시시종종 성과적으로 진행되였음은 두말할 것도 없다.
 
류수 같은 세월은 깜쪽같이 흘러갔고 빨강머리는 두부부가 원한대로 완벽하게 성장하였다.
 
아마 독자들은 장기간의 피타는 노력을 거쳐 육성된 빨강머리가 구경 어떤 희한한 모습으로 소조(塑造)되였을가고 몹시 궁금해 할 것이다.
 
그걸 말하자면 실은 아주 간단하다. 우리가 완벽하다는 단어의 의미를 해석해보면 그 답을 곧바로 알 수 있다.
 
완벽하다는 것은 티끌만한 흠점도 없다는 말의 동의어다.
 
그러니 완벽한 인간이라 하면 티끌만한 결함도 없는 사람이란 뜻이 된다.
 
두 부부가 빨강머리를 완벽한 사람으로 만들려고 작심한데는 일시의 심혈래조 (心血来潮)로 허무맹탕한 공상이나 이루어 보려고 욕심을 부린 것은 절대 아니다. 역시 일정한 리론적 근거에 기초한 것이였다.
 
체호브는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인간은 모든 것이 아름다워야 한다. 용모도, 단장도, 심령도, 사상도……
 
뿌쉬낀도 “사람이라면 겉모부터 속맘까지 다 아름다워야 한다.”고 했단다.
 
두 부부는 위인들의 리상을 기조로 이같은 장거를 실현코저 했던 것이다. 이러고 보면 두 부부의 간절한 욕망은 십이분 합리한 것이요, 그러니 그들을 불신임하거나 조소할 리유는 하나도 없다.
 
지금 빨강머리 신상에는 이러한 지고무상한 요구가 완벽하게 체현되여 있었다.
 
빨강머리는 외모로는 신들린 고희랍의 아폴론한 조각물이나 미켈란젤로의 다비드 같이 완벽한 진선미의 집합체였다. 그리고 그의 깨끗한 심령에는 인간의 모든 유감스러운 흠집들이 일점 빠짐없이 제거되여있었다:
 
완벽한 인간육성훈련은 빨강머리의 박사졸업으로 결속되였고 두 부부도 이젠 늙은 부부로 되였다.
 
국가교육부에서는 빨강머리를 나라에 둘도 없는 제1위의 최고직장에 배치하였다.
 
이해 겨울, 함박눈이 내리는 어느 날 밤, 빨강머리의 아버지와 어머니는 동부부하여 세상을 하직하였다. 떠나면서 그들은 빨강머리한테 앞으로의 인생이 아무리 험난하더라도 깨끗한 본성을 지키고 완벽한 모습으로 살아갈 것을 천부탁 만부탁하였다. 그들의 유일한 유감이였다면 빨강머리가 장가드는 것을 보지 못하고 떠나는 것이였다.
 
늙은 부부는 사랑하는 아들을 어지러운 이 세상에 홀로 남겨두고 애틋한 마음을 안고 천당에 갔다.

이날, 빨강머리는 처음으로 울었다.
 
최고직장의 제1책임자는 빨강머리의 완벽함에 매우 흡족해한 건 두말할 것도 없다. 그는 주저 없이 제일 어렵고 무거운 과업을 선택하여 빨강머리한테 도맡겼다.
 
빨강머리는 제1책임자의 기대를 조금도 어기지 않고 맡은바 임무를 노상 제1등으로 완벽하게 완성해 나갔다.
 
빨강머리의 출중함은 이를 데 없었다.
 
그는 모든 과업을 누구보다 먼저, 또 몇배 이상으로 훌륭하게 완성하여 직장사람들을 깜짝깜짝 놀라게 하였다.
 
년말이 오자 매년마다 있듯이 나라에서는 가장 걸출한 공민들에게 국가대상을 수여하였다.
 
빨강머리에게는 전례 없던 특급 금메달과 명명장이 수여되였다.
 
명명장에는 이렇게 씌여져 있었다:
 
명명장:
빨강머리동지는 완벽한 인간성, 고도의 책임감과 걸출한 사업능력으로 우리나라에서 가장 출중한 인간임을 증명하였다. 하여 그를 정식으로 <완벽한 사람>으로 명명함과 동시에 금메달을 수여한다.
                                                                                                                                       ----인력부 부장 알렉싼드르· 이완 · 빼뜨르노위치”
 
이때로부터 빨강머리는 전국인민의 성결한 우상으로 추대되였고 나라적으로 빨강머리를 따라 배우는 고조가 일어났다.
 
젊은이들은 옷차림은 물론 걸음걸이까지도 그를 본 땄고 저마다 머리카락을 빠알갛게 물들이고 다녔다.
 
모스크바거리에는 빨강머리카락이 물결처럼 넘실댔고 빨강머리둥이들이 흐름을 이루어 거리를 붐비였다.
 
젊은 부부들은 신생아에게 이름 지을 때도 빨강머리를 모방하였다: 노랑머리, 파랑머리, 깜장머리, 회색머리……어떤 부부들은 아예 빨강머리라고 직접 불렀다.
 
그뿐만이 아니였다.
 
도처에 완벽한 인간을 배육하는 양성학원이 우후죽순처럼 일어섰다.
 
시대의 류행을 따르는 것은 녀인들의 타고난 천성이고 분복이다.
 
그러니 이 좋은 기회를 처녀들이 묵과하고 지날리 만무하였다.하다보니 최고 직장의 아치형정문앞에는 빨강머리를 보려고 찾아온 치정녀팬들로 우글거렸고 처녀들의 청혼편지는 설편처럼 날아 들었다.
 
제1책임자는 사무상에 무득이 쌓여진 청혼편지와 그속에서 뽑아낸 무수한 녀인들의 사진을 보면서 명상에 잠겼다.
 
“아아, 녀인! 그렇지. 빨강머리를 더 완벽하게 구축하려면 그한테 녀인이 있어야지! 녀인이 없는 남자는 완벽할 수 없는 거야! 그리고 그와 꼭 같이 훌륭한 후대도 낳아야지! 내가 왜 이런 생각을 일찌감치 못했을가! 하마트면 큰 실수를 할번 했군!”
명상에서 깨여난 제1책임자는 1초도 늦출세라 당장 빨강머리를 불러다 지령을 하달하였다.
 
“빨강머리동무, 동무의 완벽성을 한층 더 높은 차원에 끌어올리기 위해 완미한 녀인을 한명 선발해 사랑을 해야겠소!”
 
빨강머리는 저으기 어리둥절해졌다.
 
“녀인? 사랑?”
 
알다싶이 그의 아버지와 어머니는 빨강머리한테 녀인에 관한 지식을 전수해줄 여유와 시간이 없었다. 하여 지금 빨강머리는 녀인에 유관된 일체 지식에는 전혀 깜깜부지였다. 물론 제1책임자는 조금도 걱정하지 않았다. 그는 직장의 업무엔 그닥 익숙하지 못하지만 녀인문제에 들어가서만은 퍼그나 자신이 있었다.
 
그의 머리에는 가장 빠른 속도로 고품질의 배우자를 찾을 수 있는 완벽한 방안이 언녕 서있었다.
 
며칠 후에 빨강머리를 위한 전국적인 배우자선발경색활동이 조직되였다.
 
소식은 순식간에 전국각지에 널리 퍼졌고 전국의 처녀들은 한결같이 배우자 선발에 일떠섰다.
 
여러 신문, 라지오와 텔레비죤에서는 배우자선발의 전반과정을 전면적으로 홍보하였다.
 
수십 차례의 치렬한 경쟁을 거쳐 빨강머리의 배우자처녀가 마침내 탄생하였다.
 
최종 선발된 배우자는 모스크바 제1발레무극단의 제1무용수 베라(아름답다는 뜻)였는데 이름같이 아릿다운 녀인이였다.
 
백옥 같은 얼굴우에 완미한 비례로 달려있는 빨강 앵두입, 깜찍한 오똑코, 그리고 맑은 호수처럼 그윽한 눈은 호수가의 수림처럼 촘촘한 눈초리와 더불어 보는 사람들의 정신을 아찔하게 해주었고 수양버들마냥 하늘하늘한 금빛머리카락은 찬란한 해빛아래 눈부신 광채를 발산했다. 그녀의 몸매는 한 마리의 꽃사슴을 방불케하였다.
베라는 수많은 녀인중의 완벽한 1등품이였다.
 
빨강머리는 베라와 만나는 순간 행복이란 걸 진정 감수하였고 바야흐로 더욱 완벽해져가는 자신의 미래를 심장으로 보았다.
 
제1책임자가 배치한 다음일정은 련애단계였다. 련애과정이 없는 결혼은 완벽할 수 없다고 인정한 그였다.
 
빨강머리와 베라는 달콤한 련애생활을 본격적으로 시작하였다.
 
그들은 마치 규정된 시간에 출퇴근하듯 매일 반날시간은 련애활동에 몸 바쳤다.
 
련애활동의 주요내용은 국가도서관에 소장된 사랑에 유관된 도서를 전무 찾아 읽고 함께 열렬히 토론하고 또 책에 씌여있는 내용에 따라 일일이 실천하는 것이였다.
 
포옹이나 키스 같은 것도 제1책임자의 주최하에 엄격한 순서와 시간적 요구에 따라 절차 있게 진행했다.
 
전반 련애과정은 제1책임자의 치밀한 감독하에 진행되였기에 여러모로 불편한 점들이 있었으나 그들은 이 모든 것이 완벽함을 추구하기 위한 필수적 대책이라는 것을 미리 알고 있었기에 제1책임자에게 털끝만한 불평도 없었을 뿐더러 그러는 그의 고심에 오히려 고맙기만 하였다.
 
최고직장의 직원들은 빨강머리와 베라가 손잡고 걸어가는 모습을 흔상하면서 저마끔 자기 견해를 피력하였다.
 
“하긴 저 둘이 훌륭한 짝인 것만은 틀림없지만 엄격한 의미에서 관찰해보면 내 소견엔 그래도 빨강머리가 좀 더 훌륭한 것 같아, 그렇지 않은가?”
 
“빨강머리가 세상 멋들어진 남자인 건 사실이지만 나보겐 그래도 베라가 더 이뻐, 이쁜 데야 보나마나 미녀가 제일이지!”
 
“나는 빨강머리가 더 멋진데!”
“그래도 나는 베라쪽이 더 이뻐!”
“나는 빨강머리!”
“나는 베라!”
 
그러나 아무리 쟁론해 봐도 빨강머리와 베라가 훌륭한 짝수라는 것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었다.
 
사랑은 바치는 것이라고 했다.
 
빨강머리는 모든 것을 베라에게 바쳤고 베라도 빨강머리에게 모든 것을 헌신했다.
베라는 빨강머리를 진정으로 사랑했다.
 
그녀는 빨강머리의 희한한 용모와 고상하고 정직한 심령이 맘에 들었고 철저한 완벽함에 경복했다.
 
그녀는 그가 너무도 부러웠다.
 
원래 그녀는 빨강머리를 만나기전에 나라에서 누구도(남녀를 포괄하여)미치지 못할 높이에 엄연히 서있는 팔다리가 구전한 비너스같이 완미한 존재였었다. 그런데 오늘은 빨강머리가 그녀가 닿을 수 없는 높이에 산처럼 서 있는 것이다.
 
그녀는 그러한 빨강머리를 본받고 싶었고 그와 가지런히 산의 절정에 서고 싶었다. 그러나 세상의 유일존재인 빨강머리는 영원히 그녀를 굽어보고 있었다.
 
하여 그녀는 전에 없던 위기감을 느꼈다.
 
지나친 부러움은 마침내 그녀한텐 종래로 없었던 이상한 정감을 불러일으켰다.
 
위기감과 부러움 뒤에 이상야릇한 정감이 심신을 침습했다. 그녀는 처음으로 맛보는 이러한 이상야릇한 정감으로 하여 며칠씩 잠을 이룰 수 없었다.
 
그녀는 그것이 질투심이란 걸 몰랐다.
 
그녀는 원래 세상에 이 같은 무서운 정감들이 누구도 모르게 인간의 은밀한 마음심처의 어느 구석에 숨어서 잠자고 있었다는 것을 도무지 알 수 없었다.
 
돌연하게 깨여난 질투심은 그녀의 마음심처에서 작던 데로부터 점차 커져갔고 커져간 질투심은 다시 잠자는 허영심을 불러일으켰고 허영심은 또다시 탐욕이란 괴물을 불러냈다.
 
빨강머리는 베라의 이같은 변화를 시일이 감에 따라 육감으로 느꼈지만 불같이 뜨거운 사랑의 도가니에 빠져버린 그는 운명적으로 거기에 소홀했다. 이만한 흠점 따위는 태양의 흑점이요 옥의 티라고 여기고 간과해버렸던 것이다. 사랑에 빠진 남자들한테서 자주 볼 수 있는 평범한 현상이였다.
 
하물며 세상에서 유일부이(唯一不二)한 존재로서 그는 자기 외에 또 다른 완벽한 사람이 있다는 것을 믿지 않았기에 되려 조그마한 흠점이 있는 베라야말로 세상에서 제일 귀여운 녀인이라고 생각했고 자기야말로 세상에서 제일 행복한 남자라고 여겼다.
 
사랑은 빨강머리의 거대한 동력으로 되였고 그후부터 그의 사업효률은 몇십배로 증장하였다.
 
선녀같이 아릿다운 처녀와 배필을 뭇고 사업에서도 막대한 성취를 부단히 따내는 빨강머리는 뭇사람들의 존경과 흠모와 함께 이름 못할 질투심도 자아냈다. 하긴 질투심이 원한과 증오를 불러일으키는 도화선이 될 수도 있겠지만 우리는 그렇다하여 뭇사람들을 탓할 수는 없는 것이다. 그러면 공평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아직 세상에 완벽한 사람들만 잘살고 평범한 사람들은 죽어야한다는 도리가 있을 수도 없고 그런 법은 더구나 없다.
 
순수하고 완벽한 인간인 빨강머리는 지금 자기가 세계의 자연균형을 파괴하고 있다는 것을, 또 그것이 무서운 화근을 초래할 수도 있다는 것을 전혀 몰랐다……
 
어느 하루, 빨강머리가 여느 날과 다름없이 퇴근시간이 되여 아치형 정문을 나서는데 경비원이 평소와 달리 그를 괴이한 눈길로 바라보는 것이였다.
 
이상했다.
 
거리에 나서니 지나가던 행인들도 그한테 괴이한 눈길을 보내왔다.
 
그는 더욱 이상하게 느껴졌다.
 
사람들은 왜서 저런 눈길로 나를 보고 있는 걸가?
 
그는 그 원인을 알길 없어 가던 길을 계속하여 가는데 엄마손을 잡고 가던 한 어린애가 그를 보더니 손가락질을 하는 것이다.
 
“코코!”
 
그는 엉겁결에 손으로 코를 만져보니 코는 여전히 붙은 대로 있는데 조금 줄어든 것 같았다. 부랴부랴 집으로 달려가 거울을 들여다보니 코가 확실히 줄어들었고 원래 것 보다 많이 여위고 뾰죽해 보였다. 코란 것이 원체 얼굴 복판에 달린 물건인지라 그는 대번에 얼굴부서의 비례가 엄중하게 파괴된 것을 봐냈다.
 
빨강머리는 온밤 자지 않고 거울 앞에 앉아 눈금 뜨게 줄어드는 코를 어떻게나 저지시켜보려고 모든 방법을 다했지만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날이 샐 무렵에 그의 코는 줄고줄어 손톱눈 만큼밖에 남지 않았다. 더욱 빨강머리를 기겁하게 한 건 베라가 찾아왔을 때 그녀가 보는 앞에서 코가 마침내 깔끔하게 사라진 것이였다. 베라는 빨강머리의 펀 한 코구멍 두개가 정면에서 자기를 불가사의하게 바라보고 있을 때 혼비백산한 나머지 바지에 오줌까지 쌌다. 정신을 다시 차렸을 때 그녀는 빨강머리의 불행한 조우보다 오줌 싼 치욕으로 성이 치밀 대로 치밀어 당장 제1책임자 한테로 달려간다고 고함쳤지만 오줌에 젖은 치마 그대로는 갈 수가 없어 스프링쏘파에 쓰러진 채로 하염없이 울고 또 울었다.
 
당혹한 빨강머리는 비통 속에 빠져버린 베라를 위안하느라고 갖은 노력을 다 했지만 베라는 끝내 그를 철저히 외면해버렸다. 출근시간이 되자 베라는 아릿답게 단장하고 곧장 제1책임자한테로 달려갔고 빨강머리의 기괴망칙한 추태를 분노에 차 고소하였다.
 
빨강머리는 베라의 당돌한 처사에 대단히 실망하였지만 그를 더욱 당황하게 한건 눈앞에 닥쳐올 엄준한 시련을 어떻게 응부할지 모르는 것이였다.
 
아니나 다를가 영문을 모르는 제1책임자는 처음엔 베라를 위안하고 설득하느라 무진 애를 썼지만 정작 빨강머리를 소환하여 그의 얼굴을 보는 순간 그도 그만 기절초풍하고 말았다.
 
이 사건은 최고직장으로 말하면 사상 없던 사변이였다.
 
하긴 제1책임자의 엄격한 단속하에 직장내부에 큰 소동이 벌어지지 않았지만 직장의 고요는 만구할 수 없이 깨여졌다.
 
빨강머리의 코에 유관된 추문이 잠시는 외부에 알려지지 않았고 직원들도 일상을 그런대로 유지하고 있었지만 사람들은 배후에서 이미 수근거리기 시작했다.
 
직원들은 빨강머리 앞에선 별다른 기미를 보이지 않았지만 뒤에서는 이러쿵저러쿵 여론을 달았다.
 
“빨강머리의 코가 사라졌다는 것이 확실히 사실이라면 이건 정말 큰 일인데! 그 코가 어떻게 돼서 불시에 없어졌을가?”
“그걸 우리가 어떻게 알아요. 난 그보다 베라가 더 걱정 돼요. 그녀가 전혀 얼굴을 내밀지 않는 걸 봐서는 아마 크게 놀라고 상심한 거 같아.”
“놀라기만 했을가, 아주 미쳐버렸겠지!”
“그런데 저렇게 되면 둘이 결혼을 할 수 있을가?”
“글쎄, 어떻게 될런지 누가 알아?”
“만약 빨강머리가 잃어버린 코를 도로 찾지 못하면 베라가 어떻게 결혼을 동의할 수가 있겠어. 난 불가능하다고 봐!”
“베라가 정말 그렇게 무정하게 나올가? 그들 둘은 그야말로 천상배필이였는데.”
“나는 둘이 갈라질 수 없다고 봐!”
“내 보겐 그들이 꼭 갈라질 거야!”
“안 갈라질 거야!”
“꼭 갈라질 거야!”
……….
 
벅적대던 의론이 몇둘레 지나가자 사람들은 인차 무료함을 느꼈고 새로운 흥취는 빨강머리의 코가 없는 얼굴에로 전이됐다.
 
사람마다 코가 없는 빨강머리의 얼굴을 몹시 보고싶어 했다.
 
그런데 빨강머리가 직장에서는 좀체로 마스크를 벗으려고 하지 않아 사람들의 호기심은 시일이 감에 따라 더 강렬하게 유발되였다.
 
사람들은 온갖 수단을 다 써도 도무지 빨강머리의 얼굴을 볼 수 없게 되자 이젠 상상의 나래를 펼쳐 빨강머리의 불미한 형상을 제멋대로 뜯어고쳤고 또한 기발한 상상력은 빨강머리의 추태를 현물보다 더욱 흉물스럽게 소조(塑造)해갔다.
 
사람들은 제코가 제자리에 온건하게 붙어있다는 것만으로도 다행으로 생각했고 매일아침 잠자리에서 일어나면 우선 코가 제자리에 붙어있는지를 검증해보는 것이 거의 상례로 되였다.
 
빨강머리에게는 이 모든 것이 더없는 좌절이요 기막히게 상심할 일이였지만 그의 순수하고 고상한 심령만은 의연히 변함이 없었다. 그는 고도의 정열로 사업을 빈틈없이 밀어나갔고 남들이야 공론을 펴던 말던 하루도 빠짐없이 꼬박꼬박 직장에 출근했다.
 
빨강머리와 한 사무실에서 일을 보는 아무개스끼가 옆에서 보다 못해 모스크바에서 제일 유명한 의학교수한테 그를 데리고 가서 보였지만 교수도 어떤 고명한 수단으로든지 그의 코가 갑자기 사라진 원인을 밝혀낼 수 없었다.
 
후엔 제1책임자의 알선으로 모스크바에서 한다하는 명의들을 다 찾아보였지만 역시 아무런 결과가 없었다.
 
민간의나 초능력자 같은 기인들을 찾아보여도 여전히 병인은 해명되지 않았다.
 
의학이나 초능력으로 해결할 문제가 아니란 걸 빨강머리는 지각했다.
 
이젠 천상의 하느님을 믿을 수밖에 없었다.
 
빨강머리는 붉은 광장의 남쪽에 있는 와씰리승쳔교당을 찾아가 집사와 주교를 만나 뵈웠다.
 
주교는 국가급의 유명인물인 빨강머리를 각근하게 맞아주었다.
 
주교는 그의 신상에 나타난 이상변고에 깊은 동정을 표시했고 그를 위해 대형기도회를 열기로 결정지었다.……
 
빨강머리가 정신없이 이곳저곳 뛰여다니며 허둥거릴 때 두문불출하고 있던 베라는 깊은 고민에 쌓여있었다.
 
그렇게 우러르고 부러워 하던 나머지 결국 그녀의 질투심까지 초래했던 완벽한 빨강머리가 하루밤새에 장애자로 변하다니, 베라는 말 그대로 천상에서 땅우에 곤두박히는 지옥 같은 느낌이였다.
 
그러나 그녀를 원망할 일이 아니였다.
 
어느 녀인인들 이같이 괴상망칙한 변고에 부딪쳤을 때 절통한 마음을 진정할 수 있을가!
 
그것도 귀나 팔다리가 아니고 오관에서도 가장 유표한 위치인 정중앙에 있던 코가 느닷없이 사라져버린 얼굴, 누가 그걸 마주하고 감히 사랑이란 걸 운운할 수 있으랴!
하물며 세상에서 1등가는 아릿다운 미녀인데야!
 
그녀의 눈앞에는 빨강머리의 펀한 코섀시(底盘)가 사뭇 언뜰거리는 통에 마음은 더없이 지겨웠고 치욕감은 날이 갈수록 깊어만 갔다.
 
간밤 꿈속에서도 그녀는 날아다니는 빨강머리의 코한테 줄창 쫓겨다녔다.
 
한번은 환각이 오는지 방안의 물건들이 하나둘 코로 변신하는 것이였다.
 
술병, 간장병, 식초병 등 병사리로 생긴 건 다 코로 변신하여 이방저방 날아다 니는데 립스틱이란 놈도 조그만 코모양을 하고서 보란듯이 이쪽저쪽 되똑거리며 뛰여 다닌다.
 
베라는 홀연 이것이 미쳐버리기 전의 징조가 아닐가 하는 불길한 예감이 들었고 코가 없는 빨강머리와 평생을 살아갈 걸 생각하니 온 몸에 소름이 끼쳤다.
 
주교의 주지하에 교당의 기도회는 최고의 성심으로 밤낮으로 사흘동안 진행했건만 빨강머리의 코는 끝내 돌아오지 않았다.
 
락심천만한 빨강머리는 붉은 광장의 고로한 방석로(方石路)를 밟으며 종일 방황하였다.
 
그러면서 그는 사랑하는 베라를 내처 그리였고 지금 이 꼴로 그녀를 다시 만날 것을 생각하니 가슴이 터질 것만 같았다.
 
이렇게 정처 없이 돌다가 가로등 불빛이 갑자기 환하게 켜져 머리를 들고 보니 와씰리승천교당 앞에 와 서있다.
 
빨강머리는 교당첨단의 십자가를 처량하게 우러러보며 중얼거렸다.
 
“지고무상한 주여, 주님은 언제는 완벽함을 저한테 하사하시고 오늘은 또 어찌하여 그걸 도로 저한테서 빼앗아가나이까?”
 
그가 깊이 머리를 숙이면서 경건하게 기도를 드리려는데 발밑에 놓여있는 불룩한 돈지갑이 하나 보였다. 비죽히 내민 뭉치돈이 그한테 유혹의 눈길을 던져왔다.
 
“주여, 저는 금전을 탐하는 인간이 아니옵니다. 그러니 제발 이 돈은 도로 가져가시고 저를 가엾게 여기신다면 나의 코만 돌려주시옵소서.”
 
지나가던 사내가 땅바닥에서 돈가방을 주어들고 보더니 뭉치돈에서 절반을 갈라 빨강머리에게 내밀며 이죽거린다.
 
“당신이 먼저 돈을 봤으니 한몫 차려야지. 우리 공평하게 나눕시다.”
 
빨강머리는 와뜰 놀랐고 더러운 똥이라도 본듯 사내를 역겹게 봤다.
 
사내는 그의 괴이한 꼴을 보더니 침을 땅에 찍 뱉고 돌따섰다.
 
“세상에 둘도 없는 천치로군!”
 
빨강머리가 허둥지둥 집에 돌아왔을 때는 베라가 이미 집을 떠나간 후였다. 아주 환장해버리기 전에 도망간 것이 틀림없었다.
 
이때 빨강머리는 무척 상심했다기보다 오히려 랭정해진 심정이였다.
 
그의 머리 속에 불현듯 오성(悟性)같은 것이 기웃거렸다.
 
그러나 그는 그에 대해 더 깊이 파고들지 않았다. 자기의 불행한 조우로 누구를 탓하기 싫었고 이젠 누구한테서 무언가를 바라고싶지도 않았다.
 
빨강머리는 오직 자기만이 자신을 궁지에서 건질 수 있는 구세주라고 믿었다.
 
빨강머리는 이대로 있어서는 안된다는 생각이 들었고 스스로라도 출로를 찾아야겠다는 일념이 떠올랐다.
 
아직 코를 제외한 신체의 대부분 부품들이 살아있으니 희망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만약 이들의 완벽한 능력을 발휘한다면 잃어버린 코를 되찾을 수도 있지 않을가?! 하다면 방법은 오로지 하나다. 그것은 바로 제1책임자가 맡겨준 중대한 과업들을 더욱 완벽하게 완수하는 것이다.
 
여지껏 골머리를 앓던 난제의 고리를 풀었다고 생각히니 빨강머리의 마음은 삽시에 암운이 걷히운 듯 개운해졌다.
 
빨강머리는 병인을 찾아 치료하려는 생각은 일절 단념하고 사업에만 전력투구하기로 하였다.
 
그사이에 아무개스끼가 외국의 저명한 오관과전문가가 요즘에 모스크바에 와 있으니 찾아가 병을 보이라고 입이 닳도록 권도했지만 그는 좋다궂다 말없이 지긋이 사업에만 몰두하였다.
 
그런데 불행한 것은 이즈음에 귀와 입 등 얼굴의 기타 부품들도 점차 줄어드는 기미가 보여진 것이였다.
 
매일 할 일 없이 뒤구석에서 빨강머리의 동정만 훔쳐보고 있던 사람들은 어느새 이러한 미세한 변화를 발견하였고 사람들의 뒤공론은 점차 공개적인 공론으로, 거기서 다시 매도로 넘어갔다.
 
제1책임자는 점점 추락해가는 빨강머리를 가엾이 여겨 홀로 일할 수 있는 조용한 사무실에 옮겨주려고도 생각하였지만 차마 그럴 수 없었다. 그마저 빨강머리에게 기시하는 눈치를 보인다면 그가 어떻게 될지 몰랐다.
 
빨강머리의 갖은 노력은 기대했던 바와는 거리가 너무 멀었다, 전과 달리 사업진전은 도처에서 저애를 받았고 성과는 너무도 미미했다.
 
원인은 불보듯 했다.
 
완벽성을 잃은 그는 예전의 빨강머리가 아니였다.
 
여론은 해일마냥 참혹한 조소와 공격으로 비등하였고 종내에는 그의 “완벽한 사람”이란 명명장과 금메달을 나라에서 반드시 회수해야한다는 한결같은 의견으로 몰아갔다.
 
빨강머리는 막다른 곤경에 빠졌다.
 
그는 절아단벽에 서있는 자기를 보았다.
 
그리고 무수한 관객들이 둘러서서 빨리 뛰여내리라고 흥분하여 웨치는 소리도 들었다.
 
빨강머리는 불현듯 자기를 괴롭히고 있는 무수한 관객들을 향해 크게 고함을 지르고 싶었다. 그런데 뭐라고 고함쳐야할지 몰랐다.
 
이때 그는 동년시절에 아버지와 어머니가 금물이라고 범접 못하게 했던 그 추악한 단어들이 귀신으로 변신하여 검열받듯 눈앞에서 줄쳐지나가는 것을 똑똑히 보았다:
살인, 탐욕, 타락, 질투, 라태, 기만, 위언, 오만, 사기, 허영, 비리, 악념, 모함, 사치, 리기, 배금. 호색, 절도, 강탈, 과식, 랑비, 나약, 맹종……
 
빨강머리의 병증은 날이 감에 따라 나아지기는 커녕 점점 더 악화되여갔다.
 
그의 손과 발이며 잔등과 등골이 련이어 없어졌고 내장 따위도 하나둘 사라지기 시작했다.
 
또 얼마 안 지나니 옹군 몸뚱아리에서 빨강머리카락과 왼쪽 눈 한알만 상징적으로 댕그러니 남고는 나머지 부품들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져버렸다.
 
아아!슬프도다!
 
이 지경에 이르니 빨강머리가 출근할 때면 그야말로 가관이였다.
 
빨강머리의 헐렁한 양복차림의 속은 텅텅 비여 있었고 투명한 얼굴에는 한짝 눈알만 괴상하게 판들거렸고 그위의 빨강머리카락은 마치 기발처럼 바람에 펄펄 나붓기고있었다.
 
그러나 빨강머리는 의연히 악지스레 지탱해나갔고 하루도 빠짐없이 직장에 출근하였다.
 
제1책임자는 하루가 멀게 참담해가는 빨강머리를 보면서 그를 집에 돌아가 휴식하라고 권고하든지, 하다면 료양소에라도 보낼 생각이 간절했지만 주위의 공론엔 아랑곳하지 않고 완강한 의지로 버텨나가는 그의 앞에서 차마 입을 뗄 수 없었다. 그는 자기의 제한된 권력범위내에서 되도록 그를 뒤받침해주기에 남모르게 애를 쓸 뿐이였다.
 
빨강머리는 출근시에는 사람들이 다니지 않는 골목길을 찾아 조심스레 다녔기에 괜찮았지만 직장사람들의 눈만은 피할 수 없었다. 하여 그가 직장에 출근할 때면 역시 굉장하였다.
 
직원들은 마치 시찰 나온 큰 인물을 영접이라도 하듯 직장중심로 량켠에 줄줄이 늘어서서 빨강머리의 기상초월한 모습을 마음껏 흔상하면서 무등들 기뻐하였다.
 
그들은 조물주의 귀불신공에 못내 경탄하였고 생활의 이채로움을 노래하지 않을 수 없었다.
 
얼마안가 소문은 인차 기문으로 번저졌고 이어 바람같이 온 모스크바에 파다하게 퍼졌다.
 
일장 란리는 끝내 터지고야말았다.
 
빨강머리가 사는 주택으로부터 제1직장으로 가는 길은 구경군으로 인산인해를 이루었고 그의 뒤에는 사람들이 줄쳐 장사진을 이루었다. 모스크바의 교통은 하루아침에 혼란속에서 마비상태로 들어갔다.
 
이렇게 되니 화가 꼭두밑까지 치달아 오른 시교통국국장은 즉시로 최고직장 제1책임자한테 엄정한 항의를 보내왔다.
 
제1책임자는 골머리를 앓다 못해 빨강머리한테 전용으로 지스표승용차를 배비할 수밖에 없었다.
 
빨강머리가 매일 승용차로 출근하게 되자 모스크바의 혼란하던 교통질서는 점차 유지되였다.
 
그러나 빨강머리의 내심고통은 조금도 사라지지 않았고 더욱 극심해져만 갔다. 이대로 나가다간 그의 왼쪽 눈알과 빨강머리카락의 수명도 얼마안가 끝장날 것이란 건 자명한 일이였다.
 
추문은 빠르게 전국에 퍼졌고 빨강머리의 거룩한 형상은 순식간에 하락되여 그를 숭배하고 본받던 사람들의 심상에 막대한 타격을 주었다.
 
그러나 생명학을 전문으로 연구하는 과학가들만은 흥분에 들떴다. 그들은 밤새로 빨강머리에 관한 연구과제보고서를 작성하여 가장 빠른 속도로 과학원에 제기하였다.
빨강머리가 깊은 고뇌속에 빠져 어쩔 바를 모르고 있을 때 제1책임자가 그를 찾았다.
 
“빨강머리동무, 동물래서 지금 전국에 란리가 났소. 난 사태가 이렇게까지 엄중해질 줄은 전혀 생각 못했소.”
 
“제1책임자동지를 걱정시켜서 죄송합니다.”
“그건 그렇다 치구. 자기 병에 대해 짐작되는 점은 없소?”
“이제 병인을 알았대야 무슨 도움이 되겠습니까, 이미 늦었죠.”
“앞으로의 타산은 생각해보았소?”
“저와 같은 상황에 무슨 타산이 있겠습니가? “
 
“그럴 줄 알았소. 금방 과학원에서 전화가 왔는데 과학가들은 동무의 병인에 상당한 흥미를 가지고 있는 것 같소. 아마 큰 연구가치가 있다고 생각들 한 모양이요. 래일 과학가들이 동무를 찾을 것이요. 그들한텐 꼭 좋은 방도가 있을 테니 너무 걱정을 마오. 오늘은 시름을 푹 놓고 이만 돌아가서 쉬시오.”
 
그 말을 듣는 빨강머리는 제1책임자의 지극한 배려에 목이 꺽- 메였고 하나밖에 남지 않은 왼쪽 눈에서는 감격의 눈물이 흘러내렸다.
 
그런데 애석하게도 이튿날 저명한 과학가들이 빨강머리를 찾아갔을 때 그의 주택방에는 속이 텅 빈 양복 한벌만 방바닥에 댕그라니 누워있었을 뿐 빨강머리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져버렸다.
 
세월은 덧없이 흘러갔고 빨강머리에 대한 기문은 종당엔 몇 글자의 전설로만 남고 말았다.
 
《과학환상》잡지에 이런 글이 실렸다:
 
“빨강머리라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눈과 귀가 없다. 그리고 머리카락도 없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를 가정하여 빨강머리라고 불렀다. 그는 말도 못한다, 그것은 그한테 입이 없기 때문이다. 물론 그는 코란 것도 없다.
 
“심지어 그는 손과 발도 없다. 배도 없고, 잔등도 없고, 등골도 없고, 내장 따위 같은 것도 없다. 그한테는 아무것도 없다!
 
“하기에 우리는 지금 누구를 말하고 있는지 모른다. 그러니 그에 대해서 더 말치 않는 것이 좋다.”
 
세상에 유일한 존재였던 완벽한 빨강머리는 이렇게 이 땅에서 영영 사라졌고 후세사람들은 그가 살아 있었던 존재마저 믿지 않았으니 빨강머리의 기이한 일생은 결국 령으로 되여 버렸다.
 
★      ★      ★
 
햄스가 남긴 원고의 글은 여기서 전부 끝났다.
그 후 나는 꿈을 꾸게 될 때마다 거리를 헤매가며 햄스를 한사코 찾으려했지만 다시 그를 만나보지 못했다.
나는 지금도 시시로 빨강머리가 사라지게 된 원인을 해명해보려고 모든 노력을 다해오지만 오늘까지 정답을 찾지 못하고 있다.
혹여 누군가가 나처럼 꿈속에서 햄스를 만나게 된다면 수수께끼 같은 이 문제를 꼭 그이한테 물어 알아주기 바란다.
만약 그럴 수만 있다면 우리 모두에겐 크나큰 행운으로 되리라는 것을 나는 믿어 의심치 않는다.
_______________
주해 1) 다니엘· 이완노위치·햄스(1906-1942):쏘련의 저명한 전위파(前卫派)작가. 괴기한 풍격의 소설, 산문과 아동이야기를 썼다. 전위파예술가들 중에서 명망이 높았다.
주해 2) 해체되기 전의 쏘련을 말한다. 일전에 전(前)쏘련, 원(原)쏘련 혹은 구(旧)쏘련이라고도 호칭했지만 오류이다. 마치 “중화민국”을 “전(前)중화민국”이라고 부를 수 없듯이 객관사실로 존재한 쏘련은 여전히 원래의 명칭을 보유해야 한다는 것이 정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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