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견이의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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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동심에로의 회귀/ 자서(自序) 댓글:  조회:974  추천:0  2018-06-07
 그 어떤 유혹에도 쉬 흔들리지 않는다 해서 불혹이라 했을 것이지만, 불혹의 나이에 내가 겨우 동시 따위에 혹해버릴 줄은 미처 몰랐다. 따지고 보면 동시가 아닌 동심에 혹한 것이었지만. ​ 마흔두 살에 예기치 못한 '사고'를 쳐놓고 책임을 진답시고 팔자에도 없는 결혼을 서둘러 하고, 결혼 3개월 만에 떡돌 같은 아들놈까지 태어나면서 급작스레 가중해진 심신의 부담을 떨어버리려고 술에 절어 살던 무렵이었다. ​  핏덩이 같던 녀석이 옹알이하며 발발 기어 다니는가 싶더니 어느덧 걸음마 타기 시작하고, 내가 만취해 들어가면 아빠! 하고 되똥되똥 달려와 안기며 의사표현을 하느라 종알거리고, 날이 갈수록 징그럽다 할 만큼 흑백사진 속 내 몰골을 쏙 빼닮아가는 양이 하 신기해서 자꾸 들여다보게 되고, 내게 야단맞으면 서럽게 울며 지어미 품속을 파고들다가도 돌아서면 언제 그랬던가 싶게 아빠, 아빠 하며 해죽거리고, 운신이 불편한 나를 전혀 꺼리는 기색 없이 지어미 보고 “아빠가 세상에서 제일 멋져!” 하며 엄지를 내들더라는 소리를 들으면서 눈물겹도록 고맙고 미안해지고….   그러던 어느 날 문득 저토록 티 없이 맑은 동심이 내게도 분명 있었을 텐데, 언제 사라져버렸지? 하는 의문이 생겨났다. 내 안을 슬며시 들여다보았더니 보였다. 갖은 잡념과 망상들 사이로 세파에 찌들고 주눅 든 창백한 얼굴의 아이가 오도카니 앉아 있는 모습이 보였다.   “안녕, 아직… 있었구나….”   느닷없는 나의 출현에 뜨악한 표정으로 말끄러미 나를 쳐다보더니 이내 두 눈에 생기를 띄며 해맑게 웃어주는 아이… 조만간 내가 찾아올 줄 알고 있었다는 눈빛이었다.   장장 30여 년만의 해후였다. 어린 시절엔 느닷없이 찾아온 병마와의 항쟁에 시달려 미처 들여다볼 경황이 없었고, 장성해서는 생업을 영위한답시고 까맣게 잊고 살다가 그렇게 불쑥 나타난 나를 싫은 소리 한 번 않고 순순히 받아주어서 얼마나 고맙던지….   그날부터였다. 내 안의 그놈과 아들녀석이 시도 때도 없이 속살거리는 소리들에 '시달려' 나는 즐거운 고민에 쌓였고, 원망스럽고 추한 것들만 보이던 세상 구석구석에서 아름답고 활기찬 모습들이 하나, 둘 눈에 띄기 시작하더니 짓궂게 흩날리는 눈송이가 하얀 별로, 비 온 뒤 총총 돋아난 버섯들이 철모 쓴 장병들로, 백두산 천지가 냉면 한 그릇으로, 국화꽃 피어나는 차 주전자로 보이기 시작했던 것이다….   동심이란 거짓 없고 순수한 인간 태초의 참된 마음이라고 들었다. 그 말대로라면 동심을 잃는다는 것은 곧 참된 마음을 잃는다는 얘기가 되는데, 한 인간에게 동심, 즉 참된 마음을 잃는 것보다 더 큰 상실이 뭐가 있을까 싶다. 그런데 그 소중한 것을 언제 어디서 잃어버렸는지조차 모른 채 덤덤히 살아가고 있는 우리가 아니던가…. ​   인생이란 어쩌면 동심에서 출발하여 긴 여행 끝에 동심에로 회귀하는 여정이 아닐까 싶다. 그래서 “사람이 늙으면 애가 된다”는 설도 노쇠(老衰)현상이라기보다는 살면서 단맛 쓴맛 다 보고 난 뒤에 비로소 동심의 소중함을 터득하고, 남들이야 뭐라 하든 뒤늦게나마 마음 편히 살다 가려는 노회(老獪)함 또는 만사휴의(萬事休矣)의 심태에서 비롯된 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해본다. ​   현대의학에서 말하는 노인성치매질환의 경우도 그렇다. 방관자 입장에선 글쎄 안타깝고 마음 아픈 일일 수밖에 없겠지만, 환자 입장에서 보면 그야말로 하늘의 은총을 입은 게 아닐까 싶다. 사는 동안의 온갖 잡다한 기억들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노라니 좀 힘들겠는가? 그 숱한 기억들을 짊어진 채 마음이 편할 수 있겠는가 말이다. 그래서 그 기억들을 말끔히 비워내고 백지상태 - 순수한 인간 태초의 상태 - 동심으로 되돌려놓는 것, 그보다 더 큰 축복이 또 어디 있을까…. ​   동심을 빙자하여 망령이니, 치매니 하며 너무 장황해졌는지 모르겠다. 어쨌거나 뒤늦게나마 동심을 찾아서 거기에 푹 빠져 사는 나는 분명 축복 받은 인간임에 틀림없다. 세상을 좀 더 단순하게, 쉽게 살 수 있어서 너무 다행이다. ​   어른들이야 시시비비로 아웅다웅하거나 말거나 한쪽 구석에서 세상모르고 지 장난에만 몰두해있는 개구쟁이 아들놈처럼, 그러다 간혹 근사해 보이는 “작품”이다 싶으면 쫑드르르 들고 가서 어른들께 “자랑”도 하면서 그렇게 살련다. 2017.8.27 연길에서
20    초보남편과 아내들에게(견이의 횡설수설) 댓글:  조회:1769  추천:0  2014-12-09
  끔찍이 사랑하던 한쌍의 남녀가 마침내 결혼했습니다.   결혼 전에 이들 커플은 주로 남자가 이야기하고 여자가 듣는 역할이었습니다. 그런데 결혼하고 나더니 아내가 이야기하고 남편이 듣는 역할이 되었습니다. 그러다 결혼 3년이 지나자 남편과 아내 둘 다 소리를 질러대어 이웃이 듣는 역할이 되었습니다.   결혼 5년째 되던 어느 날, 참다 못한 여인이 수피를 찾아갔습니다. 더 이상 남편과 살 수 없다며 이혼을 생각한다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자녀가 벌써 셋이라, 헤어지면 아이들을 똑같이 나눌 수 없어서 난감하다고 하였습니다. 그러자 수피가 말했습니다.   “조금 더 살다가 아이가 하나 더 생기면 그때 다시 이혼을 생각해보면 어떻겠소?”   1년 반이 지난 어느 날, 수피는 길에서 그 여인을 만났습니다.    “부인, 아이를 낳으셨다고 들었는데, 지금도 이혼을 생각하십니까?”    그러자 부인이 쭈볏거리더니 말했습니다,    “아니요, 아이를 낳기는 했는데 그만 쌍둥이를 낳았네요.”    요즈음 젊은이들을 보면 사랑하는 상대에게 “넌 내꺼야.” “내 안에 너 있어.” 등의 닭살 돋는 사랑의 표현을 스스럼없이 던집니다. 사랑하기 때문에 아예 내 소유로 하겠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러한 소유도 오래도록 지속된다면 별문제 없겠지만 세상 일이란 그렇게 자기 마음먹은 대로 되는 것만은 아닌가 봅니다.    솔직히 제 주위의 친구들을 보면 결혼해서 애 낳고 깨가 쏟아지게 잘 사는 친구들보다는 몇참 못 가서 이혼하고 뿔뿔이 흩어져 사는 친구들이 더 많은 실정입니다.    "첫사랑 삼년은 개도 산다"는 속담이 생각납니다.    따지고 보면 이제 겨우 결혼 3년 차에 접어든 저로서는 "사돈 남 말할" 처지가 못되지만, 그리고 그 동안 저 역시 적지 않은 파국의 위기를 어렵사리 넘긴 초보 경력자에 불과하지만, 오늘은 주제 넘게 저의 미흡한 경험을 바탕으로 많은 신혼커플들과 결혼을 준비 중인 커플들을 위해 충언 몇마디 하려고 합니다.    먼저 신랑들에게 부탁합니다. 절대 아내를 이해하려고 노력하지 마십시오. 이해하려고 노력하면 할수록 미궁에 빠지기 쉽습니다. 왜냐고요? 지금 당신의 경력 내지 실력으로는 절대로 아내를 이해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이해하려는 노력은 일찌감치 포기하는 게 좋습니다. 이해하려고 노력하면 할수록 오히려 오해만 커질 수도 있습니다. 그럼 어떡하냐고요? 답은 있습니다. 사랑입니다. 아내를 이해하려고 애쓰는 대신 무조건 사랑하십시오. 그러면 아무리 난해한 아내더라도 이해가 됩니다.    언젠가 아내를 도무지 알 수 없다 싶으면 그저 덮어놓고 아내를 끔찍이 사랑해주십시오. 그러면 자연 아내가 이해됩니다.    “여자의 질투심은 하나의 원인 밖에 없다.”고 합니다. 그 원인은 오직 하나. 사랑 받지 못한다고 생각하면 여자들은 바로 불안해지기 때문입니다.    "여자는 사랑을 먹고 사는 동물"이라고 했습니다. 아내를 질투, 의심하게 하지 말고 깊이 사랑하십시오.    ………    다음, 아내 한 사람만 사랑하십시오. 외간여자에게 눈을 돌리지 말라는 얘기입니다.    유대 격언에 “한 남자에 대한 평판은 두 볼 사이와 두 다리 사이에서 결정된다.”는 말이 있습니다.    두 집 건너 결손가족인 우리 실정을 감안한다면, 이것을 지키는 일이 그리 쉽지만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노력하십시오. 아내 한 사람만 사랑하도록… ……    그리고 술은 마시되 정신줄 놓을 정도로는 마시진 마십시오. 부득이한 상황에서 혹여 정신줄을 놓더라도 집에 들어서면 입 뻥긋 말고 이불 속으로 직행하십시오.    “악마가 너무 바쁠 때는 술을 대리인으로 보낸다.”는 말이 있습니다. 또 “술이 들어가면 비밀이 밖으로 밀려나간다.”는 말도 있습니다.    이것도 오늘날 우리 실생활에서 지켜지기가 그리 쉽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꼭 지키도록 노력하십시오. 과음하진 맙시다. 이 세 가지만 잘 지키면 훌륭한 남편, 훌륭한 아버지, 든든한 가장이 될 수 있습니다. …………    다음, 아내들에게 부탁합니다. 무엇보다 남편의 기를 세워주십시오. 남편은 아내의 존경을 먹고 사는 동물입니다. 아내에게 무시당한다는 것은 남편에게 치명적인 일입니다.    남편을 죽이고 싶다면 남편을 팍팍 무시해버리면 됩니다. 그러나 남편이 성공하기를 바란다면 남편의 기를 팍팍 세워주십시오. 남자들은 밖에 나가면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고 힘듭니다. 왜 남자가 밖에서 허리를 굽힙니까? 왜 남자가 이를 사려물고 참습니까? 아내를 위해서이고, 자식을 위해서입니다.    집에 오면 허리 좀 펴게 해주십시오. 기를 팍팍 세워주십시오. 온 세상이 남편을 무시하더라도 아내가 존경해주면 남편은 일어섭니다. 반대로 온 세상이 다 인정하는 남편이더라도 아내가 무시하면 그 남편은 바로 아내 곁을 떠나 밖에서 헤매게 됩니다.  .“친구를 고를 때에는 한 계단 올라서고, 아내를 고를 때에는 한 계단 내려서라.”는 말이 있습니다. 왜일까요? 자기를 무시하는 아내와 사는 것이 그렇게 힘들기 때문입니다.    요즘 보면 석사, 박사, 교수, 그리고 보스 아내도 수두룩합니다. 공부도 많이 하고 아주 유능한 아내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제아무리 밖에서 잘나가는 여자더라도 집에 와선 남편보다 한 계단  내려 서십시오. 자신이 선택한 남자를 존경해주라는 얘깁니다. 아내의 존경도 받지 못하는 남자가 밖에 나가서 무슨 일을 해내겠습니까?    그리고, 따뜻한 아내가 되어주십시오. “남자의 집은 아내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차가운 아내와 사는 남자는 평생 추운 집에 사는 것과 같습니다. 밤새 집에서 너털다 나온 남자가 무슨 일을 제대로 하겠습니까? 따뜻한 밥에 뜨거운 찌개를 끓여주십시오. 절대 아침 굶긴 채 출근시키지 마십시오. 남자는 아이와 같습니다. 따뜻하게 품어주고 따뜻하게 말해주고 따뜻한 밥 해주면 행복에 겨워 어쩔 줄 모른답니다.    ………    이상 남편들에게 부탁한 세가지, 아내들에게 부탁한 두가지, 이것만 잘 지킨다면, 신랑과 신부가 화성에서 왔건 금성에서 왔건 행복한 가정을 이루고, 검은 머리 파뿌리 되도록 알콩달콩 잘 살게 될 것입니다.
19    배려, 혼인&사회(견이의 횡설수설) 댓글:  조회:1561  추천:0  2014-12-04
    한 젊은 여자가 남편과 이혼하려고 결심했습니다. 철두철미하게 깨끗이 정리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이혼 사유는 지극히 간단했습니다.    “그 사람과 결혼한 지 5년째 되는데 밥을 먹고나면 꼭 내가 설거지를 해야 한단 말이에요. 내가 어디가 모자라서 왜 나만 그냥 설거지를 해야는지 그 이유를 알 수가 없다니까요!”   그렇게 이튿날 그들 부부는 이혼수속을 하러 법원으로 향했습니다. 도중에 도랑물을 건너게 되었는데 여자가 건너뛰지 못하는 것을 본 남자가 말했습니다.    "잠시만, 내 저기 저 바윗돌을 들어다 놓을 테니 그걸 딛고 건너도록 해.”    그렇게 남자가 안간힘을 다해 비틀비틀 바윗돌을 들어다 놓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여자가 이윽고 왈칵 눈물을 쏟으며 남자 품에 안기며 앞으로 군소리 없이 설거지를 할 테니 집으로 돌아가자고 하더랍니다.       ***************    대부분 여자들이 배우자를 선택하는 기준도, 그리고 결별을 결심하게 되는 이유도 따지고 보면 항상 세절적이고 사소한 일들 때문이지, 결코 재물이나 권세 따위를 중요시하는 것은 아닙니다. 스카프 한 장, 꽃 한 송이, 혹은 “사랑한다” 는 따뜻한 말 한 마디가 그네들로 하여금 가슴 활랑이게 하고 행복을 느끼게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여자들은 흠잡는 데 있어서 전문가이며 천성적으로 항상 남자들의 일거수, 일투족을 면밀히 살펴보는 습관이 있습니다. 말하자면 남자의 사소한 행위에서 자신이 그 사람 마음속에서 차지하는 분량을 가늠하는 것입니다.    이같은 천성은 결혼을 했다거나 애가 딸린 아줌마가 되었다 해서 사라지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거의 모든 여인들이 꽃과 옷을 사랑하는 것처럼 생명의 마지막 순간까지 몸에 배어 있는 것입니다.    여자들로부터 "연애고수"라 추앙 받는 한 남자가 여자들한테 제일 잘 써먹는 말은 “당신은 금방 빨아 넌 손수건 같단 말이야!”라는 지극히 상투적인 표현이라고 합니다. 그 말의 진정한 함의는 확실치 않지만 그 말을 듣게 되면 대부분 여인들은 자기의 우점부터 떠올리게 될 것이고, 그러면 그 우점은 자연 “금방 빨아 넌 손수건”처럼 좋아 보이게 될 것입니다. 금방 빨아 넌 손수건이 어떤 모양인지를 모르는 여자더라도 말입니다. 이상한 것은 거의 모든 여성들이 그 말을 그렇게 시적이고 감동적이라고 여긴다는 것입니다.     어느 지명잡지에서 유럽의 영향력 있는 인물 100명을 상대로 혼인설문조사를 한 결과에 따르면 현재의 배우자를 결정하게 된 동기 1위가 배려하는 마음이었다고 합니다.     혼인뿐만 아니라 전반 사회가 배려하고 배려 받는 세상이라면 무시하고 무시당하는 사회풍조, 그리고  "이혼시대"라 불릴 만큼 이혼률이 고조하지도 않겠지만 현실은 참으로 냉혹합니다.    처지가 어려운 친구로부터 한동안 전화가 없으면 안부도 묻지 않다가 자신의 처지가 어려울 때, 잘나가는 친구의 연락이 없으면 무시당하는 느낌이 듭니다. 자존심 상한 마음에 이쪽에서 연락하지 않으면 자칫 절교로까지 악화될 수도 있습니다. 사소하지만 서로 배려하는 마음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이런 일화가 떠오릅니다.    중국 방문팀 일행이 유럽을 순회방문하던 중, 영국 버킹검궁 오찬에 초대 받았습니다. 과일을 먹기 전에 손가락을 담그는 핑거볼이란 그릇에 물이 담겨 나왔는데, 영국 식사 예절을 모르는 방문팀 중 일원이 그 물을 마셔버렸습니다. 그 광경을 본 엘리자베스 여왕은 그가 무안해할까봐 자신 앞에 놓인 핑거볼을 들어 그 물을 마셔버렸다고 합니다.     배려는 이렇게 사소한 감동을 주는 것입니다. 이같은 배려는 공부와는 달라서 단기간 학습으로 되어지는 것이 아니라, 장기간 습관화하는 과정에 몸에 배어야 비로소 완숙해지는 것입니다.    거창한 배려가 없듯이, 혼인생활에서, 또는 대인관계에서 사소한 무시 또한 없어야 할 것입니다. 조금 더 있다고, 직위가 조금 더 높다고, 조금 더 잘났다고, 조금 더 배웠다고 무시하다가는 조만간 그로 인해 당하게 될 것입니다. "배려와 무시는 양날의 칼과 같다"는 말의 의미를 다시 음미해봅니다.    오늘 그 동안 일이 바쁘다는 핑계로 등한시했던 집사람에게 넌지시 "여보, 수고 많군. 사랑해~" 하고 말해줬더니 저녁 밥상메뉴부터 확 바뀌었습니다.  
18    개구리가 없어서 한스럽구나! (견이의 횡설수설) 댓글:  조회:1885  추천:3  2014-03-26
   고려의 임금이 혼자서 민정 시찰을 다니다가 길을 잃고, 깊은 산중에서 어둠을 맞게 되었습니다.    다행히 외딴 집 하나를 발견하고 하룻밤 묵자고 청을 했지만, 집주인이 조금 더 가면 주막이 있다고 거절해서 발길을 돌려야 했습니다.     그런데 돌아져 나오면서 보니 그 집 대문에 붙어 있는 글귀가 임금을 궁금하게 만들었습니다.     "나는 있는데, 개구리가 없어서 한스럽구나?"      무슨 뜻인지 여러모로 궁리를 해봤지만 도저히 해득할 수가 없었습니다. 임금은 주막에 가서 국밥을 청해 먹으며 그 외딴 집 주인에 대해 물어봤습니다. 주모의 말에 따르면 그 집 주인은 과거에 여러 번 낙방한 선비인데, 마을에도 잘 안 나오고 집 안에서 책만 읽으며 사는 사람이라는 것이었습니다.     궁금증이 발동한 임금은 다시 그 외딴 집으로 가서 사정사정한 끝에 마침내 하룻밤 묵어 가도록 허락을 받아냈습니다.      잠자리에 누워 잠을 청했지만 집 주인의 글 읽는 소리에 잠은 오지 않고, 대문에 붙은 글 뜻이 더욱 궁금해진 임금은 자리에서 일어나  선비 방으로 찾아가 그 글의 유래를 물었습니다. 선비는 저으기 귀찮은 표정이었지만, 이윽고 말문을 열었습니다.     "옛날, 노래를 아주 잘하는 꾀꼬리와 목소리가 듣기 거북한 까마귀가 있었지요. 하루는 꾀꼬리가 아름다운 목소리로 노래를 하고 있는데 까마귀가 꾀꼬리한테 시합을 청했어요. ‘사흘 뒤에 두루미를 심판으로 청해서 노래 시합을 하자’고. 꾀꼬리는 어이가 없었지만 결국 시합에 응했답니다. 그리고, 사흘 동안  열심히 노래연습을 했지요. 그런데, 까마귀는 노래 연습은 할 염도 않고  개구리를 잡으러 논두렁만  뻔질나게 돌아다니는 것이었습니다. 드디어 시합할 날이 되어 꾀꼬리와 까마귀가 노래를 한곡씩 부르고 두루미의 판정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꾀꼬리는 너무 고운 목소리로 노래를 잘 불렀으므로 승리를 확신했지만, 까마귀가 잡아다 준 개구리를 실컷 얻어먹은 두루미는 마침내 까마귀의 승리로 판정해주었답니다. 너무 화가 난 꾀꼬리는 ’아! 개구리가 없는 게 한스럽구나!’ 하고 탄식을 했더랍니다."     그 글귀는 불의와 불법으로 얼룩진 나라의 실상을 비유한 말이라고 설명하면서 선비는 자신도 실력이나 지식으로는 어디 내놔도 안 지는데, 돈이 없고 빽도 없으니 과거만 보면 번번히 낙방하여 이처럼 초야에 묻혀 살고 있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임금은 선비의 고상한 인격과 박학다식이 마음에 들어, 자기도 과거에 여러번 낙방하고 전국을 떠돌아다니는 중인데, 며칠 후에 임시과거가 있다기에 지금 개성으로 올라가는 길이라고 거짓말을 했습니다.     그리고 궁궐로 돌아와 임시과거를 열 것을 명하였습니다. 과거를 보는 날, 시험장에 도착한 선비가 시제를 바라보니 시험관이 내건 시제는 다름아닌 자기 집 대문에 붙여 두었던 '개구리가 없어서 한스럽구나'라는 글귀였습니다.     그제야 그날 자기 집에 묵고 간 길손이 다름아닌 임금이었음을 알아챈 선비는 임금이 계신 곳을 향해 큰 절을 한 뒤 답을 적어올려 마침내 장원급제를 했습니다.        ************************    옛날 고려의 대학자이며 문장가인 이규보의 이야기입니다. 옛이야기지만 실은 요즘 우리 주변에서도 얼마든지 찾아볼 수 있는 우리들 자신의 이야기입니다. 탐오, 수뢰와 매관&매직, 지어 소학교, 아니, 유치원부터 시작되는 교원들의 뒷거래, 수뢰사건에 관한 뉴스들을 접하노라면 끝없이 되풀이되는 돈과 권력의 비극적 드라마를 보는 것 같아 안타깝기 그지 없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돈과 권력은 뗄래야 뗄 수 없는 상관관계였고, 뒷거래와 뇌물과 부정부패도 인류의 역사와 함께 있어 왔습니다. 그런데 인류의 공정사라고 일컫는 교원들의 영혼까지 돈에 병들고 부패해지고 있는 요즘이고 보면, 그들을 질책하기에 앞서 이런 사회적 현실을 만든 데는 어쩌면 우리 매개인의 책임도 있지 않을까 하고 한 번 즈음 반추해볼 일이 아닐까 싶습니다.
17    인의를 사다 (견이의 횡설수설) 댓글:  조회:2957  추천:3  2012-11-13
인의를 사다      전국시기, 맹상군(孟嘗君)이 문하 식객들에게 누구 회계 일 아는 사람 있으면 설(薛)에 가서 빚 좀 받아올 수 없느냐고 물었습니다. 빙난(憑煖)이 자기가 가보겠다고 자진해 나서자 맹상군은 마차와 행장을 갖춰주고 빚문서를 주어 보냈습니다. 빙난이 길 떠날 임시에 맹상군께 물었습니다.   “빚을 받아서는 무엇을 사올까요?”    “우리 궁중에 뭐가 부족하다고 생각되는 것이 있으면 그걸로 사오시오.”    설에 간 빙난은 빚진 백성들을 불러놓고 빚문서를 확인시킨 뒤, 맹상군으로부터 그 빚 전부를 면해주라는 명이 있었노라고 말하고 나서 그 자리에서 빚문서들을 소각해버렸습니다. 그러자 백성들은 일제히 “만세”를 외쳤습니다.    빙난이 그렇게 빨리 돌아온 것을 이상하게 생각한 맹상군이 의관을 정히 하고 빙난을 맞았습니다.   “그래, 빚은 다 받아왔소?”    빙난이 다 받아왔노라고 대답하자 맹상군이 다시 물었습니다.    “그럼 어떤 물건들을 사왔는가?”    “궁중에 부족하다고 생각되는 것을 사오라 하시기에 생각해봤는데, 궁중엔 금은보화가 산더미처럼 쌓여 있고  궁 밖엔 마소가 무리 지어 다니고, 또 당하(堂下)에는 미인들이 줄지어 있으니 지금 궁중에 부족한 것은 오직 인의(仁義)뿐이라고 생각되어서 인의를 사왔습니다.”    “그럼 그 인의라는 건 어떻게 사왔다는 말인가?”   “군주께서는 지금 설이라는 그 작은 지역 밖에 갖고 있지 않으면서 백성들을 다독이고 사랑해줄 대신 금전적 이익만 따지고자 하십니다. 그래서 소인이 맹상군의 명이라 사칭하고 그곳 백성들의 모든 빚을 면감해주고 빚 문서들을 소각해버렸는데, 그에 백성들이 일제히 만세를 외쳤습니다. 그게 바로 소인이 사왔다는 인의입니다!”    맹상군이 그 말에 아주 불쾌한 표정으로 말했습니다.   “됐소, 선생. 그만 가보시오!”    일 년 후, 제(齊)나라 왕이 맹상군을 탐탁치 않게 여겨 그를 자기 봉지(封地)인 설로 돌아가라고 명하였습니다.   그런데, 맹상군 일행이 설 지방과 아직 백 여리길 떨어진 곳에 이르렀을 때, 수많은 백성들이 그곳까지 맹상군을 마중하러 나와 있는 것이었습니다. 그 정경에 감동된 맹상군이 빙난을 돌아보며 말했습니다. “선생이 나를 위해 샀다는 그 인의를 오늘 비로소 보게 되는군요.”  ****************   정치에는 문외한인 저입니다만, 언제 봐도 시끌벅적한 한국 정계. 특히 요즘 이명박 대통령 가족 비리 수사 관련 뉴스들을 접하면서, 저게 민주정치구나 하고 수긍이 가는 한편, 씁쓸하고 안타까운 마음을 떨쳐버릴 수 없습니다. 얼마나 인심을 잃었으면... 덕 좀 쌓고 살지......     사람이 원견이 없으면 코앞에 시름거리가 생긴다고 했습니다. 눈앞에 이익이나 손실에 연연하지 말고, 멀리 내다볼 줄 아는 지혜를 터득한다면, 재직 시 사욕을 채우기에 급급해 말고, 덕 좀 쌓아둔다면, 훨씬 평안하고, 충실한 노후가 보장될 터인데 말입니다.
16    부메랑(견이의 횡설수설) 댓글:  조회:2843  추천:0  2012-07-30
   부메랑  큰 배를 타고 대양을 향해하는 선장과 향해사가 있었는데 두사람의 사이가 좋지 못했습니다.     평소에 술을 잘 마시지 않던 향해사가 어쩌다 술에 취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 항해사를 미워하며 벼르고 있던 선장은 그날 항해일지에 "항해사가 술에 취했다"라고 기록을 남겼습니다. 항해사가 술에 취한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지만 선장은 그가 해고되기를 원했기 때문에 그렇게 기록한 것입니다.     선장의 그런 속셈을 알고 있는 항해사는 제발 그 기록을 지워달라고 애원했지만 선장은 "당신이 술에 취한 것을 사실대로 기록한 것뿐이다"라고 하면서 끝까지 기록을 지워주지 않았습니다.    며칠이 지나고 항해사가 항해일지를 작성하는 날이 왔습니다.    항해사는 그날 항해일지에 "오늘은 선장이 술에 취하지 않았다"라고 기록했습니다.     실제로 선장은 술을 마시지 않았으나 그 기록이 암시하는 내용은 다른 날에는 선장이 술을 마셨는데 그 날만 마시지 않았다는 뜻이 되는 것이었습니다.    곤혹스러워진 선장은 항해사에게 그 기록을 빼달라고 요청했습니다. 그러자 항해사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당신은 오늘 술을 마시지 않았고 나는 사실대로 기록했을 뿐이오.        *******************    방울뱀이 궁지에 몰리면 화가 난 나머지 가끔 자기 자신을 물어뜯는 수가 있다 합니다. 다른 사람에 대한 분노와 증오도 이와 동일합니다. 흔히 우리가 품는 앙심이나 증오가 다른 사람을 해친다고 생각하지만 실상 더 깊은 상처와 고통이 그것을 품는 자신에게 되돌아옵니다. 피를 머금었다가 뿜으면 먼저 자신의 입부터 더러워지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자신을 낮출 줄 모르는 사람은 중요한 자리에 오를 수 없고, 남의 이야기를 즐겨하는 사람은 반드시 적을 만나게 됩니다. 하늘에 침을 뱉으면 내 얼굴로 떨어지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세상사의 진리입니다.    우리 자신은 타인의 실수와 허물을 덮어주기보다는 그것을 캐내어 쾌감을 느끼며 스스로 망해가는 못난 습성을 지니지는 않았는지 날마다 자신을 돌아보고 반성해봐야 하겠습니다.    남에게 관대함과 용서와 사랑을 던지면 그것이 반드시 부메랑이 되어 다시 나에게 돌아옵니다. 삶은 심은 대로 거두는 것이요, 콩 심은 데 콩이 나고 팥 심은 데 팥이 나게 되어 있습니다.
15    “감쪽같다”는 말의 어원&그 해석에 대해(견이의 횡설수설) 댓글:  조회:5184  추천:0  2012-07-30
“감쪽같다”는 말의 어원, 그 해석에 대해/ 김견     우리말 표준사전(국립국어원 사전)  감쪽-같다 [--깓따] 〔-같아, -같으니〕「형」꾸미거나 고친 것이 전혀 알아챌 수 없을 정도로 티가 나지 아니하다. ¶가발이 감쪽같다/위장술이 감쪽같아 탄로 나지 않았다./감쪽같은 은신처를 마련했다./종이로 만든 꽃이 감쪽같아서 진짜와 구별하기가 어렵다. §   감쪽같-이 [ --까치]「부」=>감쪽같다. ¶감쪽같이 숨어 버리다/감쪽같이 속이다/상처가 감쪽같이 아물었다./깨진 유리잔을 감쪽같이 붙여 놓았다./숨겨 둔 비상금이 감쪽같이 없어졌다. §       원래 곶감의 쪽을 먹는 것과 같이 날쌔게 한다는 데서 나온 말이다.               곶감의 쪽은 달고 맛이 있기 때문에 누가 와서 빼앗아 먹거나 나누어 달라고 할까봐  빨리 먹을뿐더러 흔적도 없이 말끔히 다 먹어 치운다. 이런 뜻이 번져서 현재의 뜻처럼 일을 빨리 하거나 흔적을 남기지 않고 처리할 때 감쪽같다는 말을 쓰게 된 것이다.      꾸민 일이나 고친 물건이 재빠르고 솜씨가 좋아 남이 알아차리지 못할 만큼 흔적이 없는 것을 가리키는 말이다.           ***이 옷은 더 이상 못 입을 줄 알았는데 이렇게 수선해 놓고 보니 감쪽같은데.   감쪽-같다〔- 따〕 [형용사] (꾸민 일이나 고친 물건이) 전혀 알아차릴 수 없을 만큼, 아무 표가 없다.    ¶ 모조품을 진품같이 만들어 내는 그의 솜씨가 감쪽같다. 감쪽같-이[부사]    ¶ 감쪽같이 속아 넘어가다.   **********    이상은 우리말 표준국어대사전을 비롯 다음, 네이버, 구글, 야후 등 사이트들에서 우리가 자주 쓰는 말 "감쪽같다" 를 검색해본 결과, 그 말의 어원 과 해석들입니다.   2001년도인가? 문학공부를 한답시고 열심일 무렵, "감쪽같다"에 대한 위 해석들을 보고 '이건 아니다.' 싶은 생각이 들어 “야후 지식”인가에 저의 소견을 피력한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요즘 와서도 그 해석이 종전과 다름없이 잘못? 해석되어 있는 것이 자못 안타깝다는 생각이 들어서 주제넘지만, 저의 개인적인 주장과 견해를 피력해볼까 합니다.   위에 해석대로 감쪽같다는 말은 흔히 꾸민 일이나 고친 물건이 재빠르고 솜씨가 좋아 남이 알아차리지 못할 만큼 흔적이 없는 것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하면, "원래 곶감의 쪽을 먹는 것과 같이 날쌔게 한다는 데서 나온 말이다. 곶감의 쪽은 달고 맛이 있기 때문에 누가 와서 빼앗아 먹거나 나누어 달라고 할까봐  빨리 먹을뿐더러 흔적도 없이 말끔히 다 먹어 치운다. 이런 뜻이 번져서 현재의 뜻처럼 일을 빨리 하거나 흔적을 남기지 않고 처리할 때 감쪽같다는 말을 쓰게 된 것이다." 라고 했는데 이 해석대로 라면 곶감은 이미 먹고 없어진 것입니다. 그냥 먹어 없어진 것을 "꾸민 일이나 고친 물건이 재빠르고 솜씨가 좋아 남이 알아차리지 못할 만큼 흔적이 없는 것을 가리키는 말이다"라는 뜻으로 쓰인다고 해석하기에는 너무 억지스러운 느낌이 들 것입니다. 위에 해석대로라면 ‘감쪽같이 속아버렸다”, “감쪽같이 숨어버렸다”... 등은 실제로 없어진 것이므로 속거나, 숨어버려서 자취가 없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없어졌기에 없는 것입니다. 고로 상기 예문들처럼 어떤 교묘한 솜씨나 수단을 이르는 말이라 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저의 소견이라면 감쪽같다는 말은 곶감이 아닌 감(枾)에서 그 어원을 찾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남녀노소 누구나 즐겨 먹는 감, 감을 먹어본 사람이라면 조금만 유념하셨더라도 누구나 그 감에도 귤橘 쪽처럼 분명하게 드러나는 것은 아니지만, 그 물컹한 내용물 속에 엄연히 쪽이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감을 쪼개 보면 물처럼 물컹물컹한  果肉과 果汁만 보일 뿐 눈으로는 좀처럼 분별해내기 어려운 감쪽, 손으로 만져보거나 입에 넣고 씹어보지 않는 이상 그 속에 쪽이 있다는 것을 알아차릴 수 없으므로, 그래서 “감쪽같이 사라지다”, “감쪽같이 속아버리다”, 감쪽같이 아물다”와 같은 표현을 쓰게 된 것이 아니겠습니까?
14    恐 燈 症(견이의 횡설수설) 댓글:  조회:3277  추천:0  2012-07-04
공등증 恐 燈 症   어떤 사물에 몹시 놀란 사람이 비슷한 사물을 보기만 해도 겁내는 것을 이르는 말로 우리말 속담에 “자라 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도 놀란다.” 는 말이 있는데 의학 용어로는 이를 공포증이라고 합니다.   웬만해서는 겁먹는 일이 없고 씀씀이도 꽤 헤프던 제가 언제부턴가 신호등만 보면 덜컥 겁이 나고 바짝 긴장되어 그 신호등을 뚫어져라 응시하며 신호등 색깔이 바뀔 때까지 속으로 하나, 둘, 셋, 넷…  셈하는 괴상한 병을 앓기 시작했습니다.  역시 공포증의 일종이겠지 하고 저 같은 증상의 공프증 病例도 있나 싶어 두루 검색해봤는데, 음식맛공포증, 동물공포증, 대인공포증,  먼지공포증........ 등등을 비롯, 수백 종류의 공포증이 있다고 하건만, 그 어디에도 신호등공포증이라는 것은 없었습니다. 그래서 나름 病名을 恐 燈 症이라 이름했습니다. 이즈음 하면 제가 말하는 恐燈症이라는 게 무슨 소린지 대충 알아차리셨을 겁니다. 그렇습니다. 油價 인상으로 인해 대기시간 3분당 2원씩 요금을 추가한다는 연길 택시요금 新제도가 나온 뒤로 생겨난 공포증입니다. 대기시간 요금 추가 때문에 2km도 채 안 되는 거리임에도 신호등 두세개만 만나면 요금미터기가 7원, 9원씩 튀는 건 다반사고, 재수에 옴 붙은 날이면 십여원까지 천방지축 튀는데야…… 게다가 대기시간 추가요금에 맛을 들인 일부 택시기사아저씨들이 기가 막히게 빨간 신호등을 잘 “준수”하는데야…… 그 깜빡이는 신호등과 요금미터기를 번갈아 지켜보면서, 지갑이나 두툼했으면 또 모를까, 쥐꼬리만한 월급에 네 식구가 매어 사는 신세에 마음을 졸이지 않는다면 오히려 이상한 일이겠지요. 연길택시를 몇번 타본 사람이라면 모두 저와 비슷한 경험을 하셨으리라 믿습니다만…… 그래서 요즘은 꼭 요긴한 일이 아니면 택시 탈 엄두를 못 내고 버스를 이용합니다. 많이 에돌아다녀야 하므로 시간이 많이 소요되고, 승객들과의 본의 아닌 충돌과 마찰로 인해 불쾌할 때도 있지만, 신호등에 예민해질 필요가 없어서 좋습니다.   어제는 병환에 계신 아버지가 손주녀석이 보고 싶다 하시기에 아직 3달이 채 안 찬 아들놈을 데리고 문병을 다녀왔습니다. 갈 때, 어린 놈을 북적이는 버스에 태울 수는 없고 하여 택시를 탔는데, 공교롭게도 목적지까지 신호등 대여섯군데를 지날 때마다 빨간 신호등에 걸리다 보니 2.6km 남짓한 거리에 요금 14원이 나왔습니다. 복창 터질 노릇이었지만 해볼 데는 없고, 벙어리 냉가슴 앓을 밖에…… 그래서 돌아올 때는 집사람을 설득하여 버스를 탔는데, 신호등에 신경 쓸 일이 없어서 지출은 줄일 수 있었지만, 대신 오는 내내 어린 것을 앞에 달고 휘청거리는 집사람 보기가 민망스럽고, 처자를 위해 마음 놓고 택시도 잡지 못하는 무능한 자신이 너무 부끄럽고 한심해서 얼굴을 쳐들 수가 없었습니다. ………. 신호등 대기시간 요금추가제도가 유가 인상으로 인한 조치라는 것을 모르는 바 아닙니다. 또 자치주창립 60돌을 위한 대규모의 도시미화, 확장공사로 인해 교통체증이 심해졌다는 것도 모르는 바 아닙니다. 하지만 유가 인상의 직접적인 피해자가 왜서 자가용 굴릴 능력도 없는 무력한 서민들이어야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도시미화 확장공사로 인한 폐단이라면 상응한 대비책과 조치가 잇따라야 하지 않을까요? “택시요금 5원이면 연길시내에서 거의 못 가는 데가 없다~” 하던 시대는 정녕 호랑이 담배 피울 적의 얘기가 되어버린 걸까요?
13    이것 역시 지나가리라~ (견이의 橫說竪說) 댓글:  조회:2945  추천:0  2012-06-22
이것 역시 지나가리라 호젓한 해변 마을을 여행하던 어떤 부자가 가던 길을 멈추고 측은하고 한심하다는 눈길로 무언가를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배를 정박해놓은 부둣가 나룻배에 드러누워 하릴없이 담배를 뻐금뻐금 빨고 있는 한 어부의 모습이 그렇게 한심스러울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이윽고 부자가 어부에게 다가가 물었습니다. “아니, 날씨도 괜찮은데 고기는 안 잡고 왜 이렇게 빈둥거리시오?” 그러자 어부는 태평스러운 어투로 이렇게 대꾸하는 것이었습니다. “오늘 잡을 몫은 충분히 잡았소이다.” “아니, 기왕이면 더 많이 잡는 게 좋은 것 아니오?” 부자의 말에 어부가 시큰둥한 표정으로 되물었습니다. “더 많이 잡아선 무엇 하게 말이오?” 어부의 그런 태도에 부자는 답답하다는 투로 장황한 설명을 늘어놓기 시작했습니다. “무엇 하다니?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지~ 당신은 그 돈으로 배에 다는 모터도 살 수 있고, 그러면 더 깊은 바다로 나가서 고기를 잡을 수 있을 것 아니오. 그러면 그 고기를 팔아 더 많은 돈을 만들고, 더 튼튼하고 큰 그물을 장만해서 훨씬 더 많은 고기를 잡을 수 있을 거잖소? 그러면 그만큼 돈도 더 벌게 될 것이고. 얼마 안 가서 어선도 한 척 더 마련할 수 있을 것이고…… 그러다 보면 나중엔 큰 어선을 가진 선주가 될 수 있는 것 아니겠는가 말이오! 그렇게 되면 당신도 나처럼 큰 부자가 되는 것이란 말이외다~” 그러나 그 설명을 다 듣고 난 어부는 여전히 시큰둥한 표정으로 부자를 멀거니 쳐다보며 묻는 것이었습니다. “그러고 나서는, 부자가 되고 나서는 뭘 하쥬?” “뭘 하긴, 그런 다음에야 편안히 앉아 쉬면서 여유로운 삶을 즐기는 거지.” 그러자 어부는 그 부자를 힐끗 쳐다보더니 빙그레 웃으며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렇다면 당신은 지금 내가 무얼 하고 있다고 생각하시우? 내가 지금 여유로워 보이지 않수?”  ************** 이미 커다란 보석을 가지고 있음에도 남의 더 큰 다이아몬드를 부러운 눈길로 쳐다보고 군침을 삼키는 우리들의 자화상을 들여다보게 하는 이야깁니다. 불가에서는 사람이 죽으면 이 생에 만났던 영혼들이 전부 한자리에 모인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 영혼들은 삶에서 자신이 겪은 일들을 돌아보며 한바탕 배꼽을 잡는다고 합니다. 자신들이 너무 탐욕스럽고 심각하게 살았구나 하는 생각에서 말입니다. 삶이 하나의 즐거운 놀이이며, 지구라는 별에 잠시 여행을 온 것에 불과하건만 가지고 갈 수도 없는 것들, 따지고 보면 아무 것도 아닌 일들에 집착하면서 영원히 살기라도 할 것처럼 너무 아둥바둥하고 심각했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어쩌면 우리는 지금 너무 허무한 것들을 위해, 아무 것도 아닌 일들 때문에 너무 심각하게 생각하고 고민하며 살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옛날, 다윗 왕이 신하들을 불러 명령을 내렸습니다. "나를 위해 반지 하나를 만들어오되 거기에 내가 매우 큰 승리를 거둬 그 기쁨을 억제하지 못할 때, 그것을 눅잦힐 수 있는 글귀를 새겨넣어라. 그리고 동시에 그 글귀는 내가 절망에 빠져 있을 때 나를 이끌어낼 수 있는 것이어야 하느니라." 신하들은 곧 왕명에 좇아 유명한 보석 세공인을 찾아 매우 아름다운 반지 하나를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거기에 새겨넣을 적당한 글귀가 생각나지 않아 걱정이었습니다. 고민하던 중 신하들은 솔로몬 왕자를 찾아가 도움을 청하기로 했습니다. "왕의 황홀한 기쁨을 절제해드림과 동시에 낙담하실 때 용기를 북돋우어 드리기 위해서는 도대체 어떤 말을 써넣으면 좋을까요?" 솔로몬이 한참 생각하다가 대답했습니다. “‘이것 역시 지나가리라!’ 라고 써넣으시오. "부왕이 승리의 순간에 그 글귀를 보면 곧 자만심이 가라앉게 될 것이고, 낙심할 때 그것을 보게 되면 이내 표정이 밝아질 것입니다." ……… 재물이든 영욕(榮辱)이든 고민이든 그것은 다 순간이요, 곧 지나가버리는 것임을 알 때, 우리는 큰 성공이나 승리의 순간에도 지나치게 흥분하거나 교만해지지 않을 것이고, 실패나 패배의 순간에도 지나치게 절망하지 않을 것이며 살아가는 동안 진짜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깨닫게 될 것입니다.    
12    식욕 때문에 (견이의 횡설수설) 댓글:  조회:2632  추천:0  2012-06-07
식욕 때문에 19세기 벨기에에는 '레이날드 3세'라는 귀족이 있었습니다. 그는 유산으로 많은 토지를 물려받았습니다. 이를 시기한 사람이 있었는데, 다름아닌 레이날드의 동생 에드워드였습니다. 결국 에드워드는 반란을 일으켜 형 레이날드를 이기고 그의 재산을 모두 빼앗아 버렸습니다. 형을 차마 죽일 수는 없어 노이케르크 성에 집을 하나 마련하고 그곳에 레이날드를 감금했습니다. 그리고는 레이날드가 스스로 맨몸으로 그곳을 나올 수 있다면 석방은 물론이고 작위와 재산을 모두 되찾게 해주겠다고 약속했습니다. 그 약속은 동생은 형이 감금된 방에서 나올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비대한 몸을 가진 레이날드의 약점을 이용하였던 것입니다. 동생 에드워드는 형을  문이 좁은 방에 가두어 두었습니다. 그가 감금된 방에는 서너개의 창이 있었고, 대문도 열려 있었고, 경비병도 배치되지 않았습니다. 대문은 일반인이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는 정도였지만 몸집이 커다란 레이날드는 그 대문을 통과할 수 없었습니다. 에드워드는  매일처럼 형에게 형이 좋아하는 맛있는 음식을 무한정 공급해주었습니다. 원래 형은 식성이 좋아 많이 먹었고 그 결과 몸집이 굉장히 비대했기 때문에 그의 별명은 ‘뚱뚱이’를 의미하는 라틴어로 크라수스였습니다. 그가 자유를 얻는 길은 ‘말라깽이’가 되도록 체중을 감량하는 것이었습니다. 매일 동생 에드워드가 보내주는 여러 가지 맛있는 음식을 받아 먹으면서 레이날드는 동생의 그런 배려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또 자신이 어떻게 해야 그 방을 빠져나갈 수 있는지 뻔히 알고 있었지만, 당기는 식욕 때문에 맛있는 음식을 조금도 남기지 않고 언제나 말끔히 먹어버렸습니다. 그 결과 몸은 날로 비대해졌습니다. 에드워드가 형을 감금한 일을 두고 주변 국가에서 그 잔혹성을 비난하는 목소리가 높아지자 에드워드는 주변 국가들에 사람을 보내어 그렇지 않다는 점을 해명했습니다.  "내 형은 죄수가 아닙니다. 그는 어느 때고 자신의 의지에 따라서 그곳을 떠날 수 있고, 작위도 재산도 되찾을 수 있습니다." 그 말은 사실이었습니다. 레이날드는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그 곳을 떠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에드워드가 전쟁터에서 죽음을 맞이할 때까지 그 방을 나서지 못하였고 과다비만으로 한 해가 지나기도 전에 세상을 떠나고 말았습니다. …… 파스칼은 습관이란 제2의 천성이라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식욕도 일종의 습관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자유를 되찾고 재산을 되찾을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음에도 레이날드는 식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비참한 최후를 마친 것입니다. 레이날드를 비웃을 것 없습니다. 요즘 우리 주변에도 식욕 때문에 다이어트를 위한 피나는 노력도 보람 없이 도로묵이 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육체적인 비만뿐만 아니라 우리의 탐욕 또한 우리의 영혼을 비대하게 하고 죽게 만든다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스스로를 자제하지 못하는 우리들은 레이날드의 미련함을 비웃을 자격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11    버리는 것이 얻는 것 (견이의 횡설수설) 댓글:  조회:2956  추천:0  2012-05-13
“나는 가난한 탁발승이오. 내가 가진 거라고는 물레와 교도소에서 쓰던 밥그릇과 염소젖 한 깡통, 허름한 요포(腰布) 여섯장과 수건, 그리고 대단치도 않은 평판… 이것들뿐이오." 1931년 9월, 마하트마 간디가 런던에서 열린 제2차 원탁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가던 도중 마르세유 세관원에게 소지품을 펼쳐 보이면서 한 말입니다.   ‘간디 전집’을 읽다가 이 구절에서 나는 몹시 부끄러웠습니다. 내가 지금 가지고 있는 것이 너무나 많다고 생각되었기 때문입니다. 적어도 지금의 내 분수로는…   사실, 이 세상에 처음 태어날 때 나는 아무 것도 갖고 오지 않았습니다. 살 만큼 살다가 이 지상에서 호적을 떼가야 할 때에도 빈손으로 가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살다 보니 이것저것 내 이름 앞으로 생기게 된 것입니다. 그것들은 물론 일상에 소요되는 물건들이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그것들이 과연 없어서는 안 될 정도로 꼭 요긴한 것들만일까요? 살펴볼수록 없어도 좋을 만한 것들이 적지 않습니다. 우리는 필요에 의해서 물건을 갖게 되지만, 때로는 그 가진 물건 때문에 필요 없이 신경을 쓰게 됩니다. 그러니까 무언가를 갖는다는 것은 다른 한편으로는 무언가에 얽매인다는 뜻이기도 할 것입니다. 필요에 따라 가졌던 것이 도리어 우리를 부자유스럽게 얽어맨다고 할 때, 주객(主客)이 전도되면서 우리는 그 가진 것에 의해 가짐을 당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많이 갖고 있다는 것을 흔히 자랑거리로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그만큼 많이 얽매여 있다는 얘기가 되기도 할 것입니다.   4~5년 동안 별탈 없이 쓰던 휴대폰이 언제부턴가 꺼벅거리는가 싶더니 가끔은 먹통이 되어버리곤 했습니다. 한번은 주말을 이용해 모처럼 동아리 등산팀을 따라 등산을 떠났습니다. 땀동이나 쏟으며 간신히 목적지로 정했던 산 정상에 올라 한쉼 쉬고 있을 때쯤, 동아리 중 누군가 휴대폰으로 통화하는 것을 보고 아차! 싶어 휴대폰을 꺼내보니 아니나 다를까, 내 휴대폰은 진작 먹통이 되어 있었습니다. 껐다가 다시 켜고, 배터리를 뺐다가 다시 끼우고, 다시 켜기를 반복했지만, 아무 소용없는 일이었습니다. 도착하는 대로 전화한다 했는데… 혹시 그 친구 오늘 도착한다면 이거 큰일인데…! 참! 그리고 한국에서 보냈다는 택배도 오늘 내일이면 도착할 건데… 전화가 먹통이면 어떡하지? 아! 그리고 이번 주말엔 그 형이랑 한잔 하자고 약속했는데, 연락이 안 되면 날 뭐라 욕하겠어?! 안 돼! 안 돼~~ 그 때, 일행 중 한 선배가 내가 안절부절 못하는 이유를 묻더니 자기는 주말에 별로 요긴한 전화가 없으니 먼저 쓰라면서, 자기 휴대폰을 선뜻 건네주었습니다. 염치불구하고 선배의 휴대폰에 내 카드를 갈아 끼고 나서야 안도의 한숨이 활 나갔습니다. 그런데, 점심을 먹고 하산할 때까지… 또 버스를 타고 귀가할 때까지 기다리던 전화는 한통도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그 때 나는 온몸으로, 그리고 마음속으로 절실히 느끼게 되었습니다. 내가 휴대폰에 얼마나 집착해 있는가를… 내 소유물이라고 생각했던 그 휴대폰이 실은 나를 꼼짝달싹 못하게 꽁꽁 얽어매고 있었다는 사실을…   그 집착으로부터 하루빨리 벗어나야겠다고 결심하고 한동안은 망가진 휴대폰을 수리하지도 않은 채 방치해두기도 했지만, 결국엔 얼마 못 가 새것으로 갈게 되었고, 지금도 휴대폰의 지령에 따라 이리, 저리 움직여야 하는 무가내한 일상을 살고 있습니다. 하긴 소학생들도 휴대폰을 “필수품”처럼 소지하고 다니는 요즘이고 보면, 휴대폰을 쓰지 않는 게 오히려 쓰잘데없는 객기로 보일지도 모를 일입니다. 인간의 역사는 어찌 보면 소유사(所有史)처럼 보여집니다. 그것이 진정 필요한 것이건 아니건 무조건 보다 많은 것을, 보다 새로운 것을 소유하기 위해 끊임없이 싸우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같은 소유욕에는 한정도 없고 휴일도 없습니다. 그저 하나라도 더 많이 갖고자 하는 일념으로 밤낮없이 출렁거리고 있을 뿐입니다. 소유욕은 이해(利害)와 정비례합니다. 그것은 개인뿐만 아니라 국가 간의 관계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어제의 맹방(盟邦)국가들이 오늘 와서 맞서는가 하면, 서로 으르렁대던 나라끼리 친선사절을 교환하는 사례들을 얼마든지 보고 듣는 요즘입니다. 그것은 오로지 소유에 바탕을 둔 이해 관계 때문입니다. 도저히 실현 불가능한 일이겠지만, 만약 인간의 역사가 소유사에서 무소유사로 그 틀을 바꾼다면 어떻게 될까 생각해봅니다… 아마 싸우는 일은 거의 없을 것입니다. 주지 못해 싸운다는 말은 들어보지 못했으니까요… 간디는 "내게는 소유가 범죄처럼 생각된다……."고 했습니다. 무언가를 갖는다는 것은 같은 물건을 갖고자 하는 사람들이 똑같이 나누어 가질 수 있을 때에 한한다는 것, 그러나 그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므로 자기 소유에 대해서 범죄처럼 자책하지 않을 수 없다는 얘깁니다. 우리들의 소유 관념이 때로는 우리들의 눈을 멀게 합니다. 그래서 자기의 분수까지 잊은 채 들떠있게 됩니다. 그러나 우리는 언젠가는 올 때처럼 빈손으로 돌아가게 될 것입니다. 육신마저 버리고 홀홀히 떠나가야 할  우리가 아무리 많은 것들을 소유했다 한들 무슨 소용이겠습니까. 크게 버리는 사람만이 크게 얻을 수 있다는 말이 있습니다. 물건으로 인해 마음을 상하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한번쯤 생각해볼 교훈입니다. 아무것도 갖지 않았을 때 비로소 온 세상을 차지하게 된다는 것은 무소유의 역리(逆理)이니까요. 송순(1493~1583)의 시조 한 수가 떠오릅니다.   십년을 경영하여 초가삼간 지어내니   나 한칸, 달 한칸에 청풍 한 칸 맡겨두고   강산은 들일 데 없으니 둘러두고 보리라…
10    아버지의 유품 (견이의 횡설수설) 댓글:  조회:3058  추천:1  2012-05-09
아내를 잃고 혼자 살아가는 할아버지가 있었습니다. 젊었을 때에는 마른 일, 궂은 일 못하는 일이 없었지만, 이제는 자기 몸조차 가누기가 힘든 노인이었습니다. 그런데도 장성한 두 아들은 아버지를 돌보지 않았습니다. 어느 날 할아버지는 목수를 찾아가 나무 궤짝 하나를 주문하였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집에 가져와 그 안에 유리 조각을 가득 채우고 튼실한 자물쇠를 채웠습니다. 그로부터 두 아들에게는 한 가지 의문이 생겼습니다. 아버지의 침상 밑에 못 보던 궤짝 하나가 놓여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두 아들이 그것이 무어냐고 물으면 할아버지는 별게 아니니 신경 쓰지 말라고 말할 뿐이었습니다. 궁금해진 두 아들은 아버지가 없는 틈을 타서 그것을 확인해보려고 했지만 자물쇠를 열 수가 없어서 안에 무엇이 들어 있는지 알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호기심을 불러일으킨 것은 궤짝 안에서 금속들이 부딪치는 것 같은 소리가 난다는 것이었습니다. 두 아들은 생각하였습니다. '그래! 이건 아버지가 평생 모아 놓은 금은보화일 거야.' 그로부터 두 아들은 번갈아가며 아버지를 정성껏 모시기 시작하였습니다. 얼마 뒤 할아버지는 죽었고, 두 아들은 드디어 그 궤짝을 열어 보았습니다. 깨진 유리 조각만이 가득 들어 있는 것을 발견하고, 큰아들은 화를 내었습니다. "… 당했군!"  그리고 궤짝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는 동생을 향해 소리쳤습니다. "왜? 궤짝이 탐나냐? 그럼, 네가 가져라!" 막내아들은 형의 말을 들었는지 못 들었는지 못박힌 듯 그 자리에 서 있을 뿐이었습니다. 충격을 받은 모양이었습니다. 적막한 시간이 흘렀습니다. 1분, 2분, 3분…… 이윽고 막내아들의 눈에 맺힌 이슬이 주루룩 흘러내렸습니다. 막내아들은 그 궤짝을 집으로 가져갔습니다. “나뭇가지가 조용하려 해도 바람이 쉬지 않고 자식이 효도하려 해도 어버이는 기다려주지 않는다.”…… 그 격언을 떠올리며, 아버지가 남긴 유품 하나만이라도 간직하는 것이 그나마 마지막 효도라 생각한 것입니다. 아내는 구질구질한 물건을 왜 집에 들이느냐며 짜증을 냈습니다. 그는 아내와 타협을 했습니다. 유리 조각은 버리고 궤짝만 갖고 있기로... 그런데 궤짝을 비우고 나니, 밑바닥에 편지 한 장이 들어 있었습니다. 그 편지를 읽던 막내아들은 꺼이꺼이 소리내어 울기 시작했습니다. 나이 마흔을 넘긴 사나이의 통곡 소리에 깜짝 놀란 아내가 달려왔습니다. 아들딸도 달려왔습니다. 편지에는 이렇게 씌어 있었습니다. 첫째 아들을 가졌을 때, 나는 기뻐서 울었다. 둘째 아들이 태어나던 날, 나는 좋아서 웃었다. 그 때부터 삼십여 년 동안, 수천 번, 아니, 수만 번 그들은 나를 울게 하였고, 또 웃게 하였다. 이제 나는 늙었다. 두 아들은 장성했고 달라졌다. 더 이상 나를 기뻐서 울게도, 좋아서 웃게도 하지 않는다. 내게 남은 것은 그들에 대한 기억뿐이다. 처음엔 진주 같았던 기억들, 중간엔 내 등뼈를 휘게 한 기억들, 그리고 지금은 사금파리, 유리조각 같은 기억들. 아아, 내 아들들만은... 나 같지 않기를…… 나 같은 늘그막을 맞지 않기를 아내와 아들딸도 그 편지를 읽었습니다. "아버지!" 하고 소리치며 아들딸이 그의 품으로 뛰어들었습니다. 아내도 그의 손을 꼭 잡았습니다. 그렇게 네 사람은 서로 부둥켜안고 울었습니다. 그런 일이 있은 뒤로 그들 집안에서는 즐거운 웃음소리가 떠날 줄 몰랐습니다. ********* 나는 과연 아버지를 얼마만큼이나 울고, 웃게 해드렸는지... 기억을 더듬어 봅니다.
9    진정한 나의 재산 (견이의 횡설수설) 댓글:  조회:3183  추천:0  2012-04-30
어떤 농군이 밭에서 일하고 있었는데, 그는 밭에서 골라낸 돌들을 밭 옆의 길에 내다버렸습니다. 마을의 한 할아버지가 지나가다 그 광경을 목격하고 책망조로 말했습니다. “어리석은 사람아, 왜 자넨 자네 소유가 아닌 밭에 있는 돌들을 영원히 자네 소유인 공공도로에 내다버리는 건가?” 농군은 그 말이 무슨 뜻인지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그 밭은 분명 자기 소유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는 늙은이가 노망 났나부다 하고 투덜거리며 계속 돌들을 밭 옆 길에 내다버렸습니다.   몇 년 후 농군은 외국에 돈벌이를 가느라고 그 밭을 처분했습니다. 그리고 몇해 후 고향에 돌아온 그는 이제 더 이상 자신의 소유가 아닌 그 밭 옆을 지나가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길을 가던 그는 예전에 자신이 길에 내다버렸던 돌에 걸려 넘어져 크게 다쳤습니다. 그 때서야 그는 전에 그 할아버지가 한 말이 무슨 의미인지 깨달았습니다.   우리는 흔히 지금 자신이 소유하고 있는 것들을 사유재산이라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하지만 위 이야기에서는 사유재산은 소유권이 이전될 수 있기 때문에 영원히 내것이라 할 수 없지만, 공공재산은 어느 한 개인에게 소유권이 이전되지 않으므로 그야말로 진정한 내 재산이라는 것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사실 우리가 소유하고 있는 책, 가방, 시계, 컴퓨터, 자동차, 집 등은 우리의 영원한 소유물이 아닙니다. 언젠가는 폐기처분될 것이 대부분이요, 누군가에게 팔리는 순간 더 이상 우리 소유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도로, 공원, 학교, 하천, 철도, 문화재, 사적지, 명승지, 도서관, 극장 등등은 영원한 우리의 재산입니다. 공유 재산이라 아무도 팔 수 없기 때문입니다. 몇 년 전부터인가… 연길공원이 담장을 헐어버리고 문표도 취소했습니다. 한차원 승격된 공공성이 확보된 것입니다. 출퇴근 길에 산책 삼아 공원을 가로질러 다니는데, 이렇게 아름답고 큰 공원을 개인이 소유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 때가 있습니다. 웬만한 사람의 경제력으로는 어림없는 일일 것입니다. 그러나 나는 지금 이 어마어마한 크기의 아름다운 공원을 소유하고 있습니다. 이 정도 정원을 소유하고 누린다니 얼마나 뿌듯한지 정말이지 옛날 임금님 부럽지 않습니다. 저 말고도 공원에서 산책하고 운동하는 많은 시민들이임금님 부럽지 않은 이런 행복을 향유할 수 있는 것은 공원이 공유 재산이기 때문에 가능한 일일 것입니다.   자치주 성립 60주년을 맞으면서 정부에서 많은 인력, 재력을 들여 공원에 유보도를 새로 깔고, 조각상 마을을 만드는 등 일련의 보수공사와 미화작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호젓한 풍경 속을 거닐다가도 참으로 흉물스러운 풍경들에 쓴 입맛을 다실 때가 많습니다. 입구에는 분명히 “일체차량 출입금지”라는 패쪽을 세워놓았건만, 오토바이로부터 고급승용차, 화물트럭, 봉고차에 이르기까지 활개치고 다니는 무단출입차량들 성화에 새로 깐지 1년도 채 안 되는 유보도가 울퉁불퉁 변형되고, 바닥벽돌이 금이 가고 깨져서 볼품없이 되었는가 하면, 동물원우리와 유보도 사이에 산뜻하게 세워놓은 흰색 바자가 몇달 못 가서 군데군데 이가 빠지고 부러져 있고, “동시마을”에 가면 유리가 깨지고 시문(詩文)마저 찢겨 나간 헐망한 전시판들이 가을 끝난 논밭의 허수아비처럼 쓸쓸히 서있는 풍경이라니…   무단출입차량 차주(車主)든, 파괴를 일삼는 얼간이들이든 그것을 “내 재산”, “내 소유”라고 생각했더라면 이 같은 파괴행각은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누군가 “내 집 정원”, “내 집 바자”를 파괴하면 정말이지, 한사하고 덤벼들 것입니다. 아름답고 문명한 도시가 되려면 공중시설이 많아야 하겠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시민소질 내지 의식이라고 생각합니다. 아무리 꾸준히 돈을 들여 새로운 시설을 만들어도 한쪽에선 파괴행각이 그치지 않는데야 무슨 소용이겠습니까. 아까 이야기 중에서 “어리석은 사람아, 왜 자넨 자기 소유가 아닌 밭에 있는 돌들을 영원히 자네 소유인 공공도로에 내다버리는 건가?” 하고 책망하던 할아버지의 질문은 지금의 우리에게도 유효한 것입니다. 우물에 침을 뱉는 자는 언젠가 반드시 그 물을 마시게 되는 법입니다.
8    명연설가 (견이의 횡설수설) 댓글:  조회:2294  추천:0  2012-04-23
연설을 잘하기로 소문난 전도사가 있었습니다. 그가 강단에 서면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었고 그의 설교를 듣는 사람들은 감동하여 눈물을 흘리고, 기뻐서 환호하기도 했습니다. 전도사의 말 한마디 한마디에, 그의 손짓과 몸짓 하나하나에 청중들은 환호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하루, 전도사는 어느 섬마을 교회의 초청을 받고 설교를 하러 가게 되었습니다. 교회 강당에는 소문을 듣고 온 사람들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전도사가 흐뭇한 표정으로 좌중을 둘러보며 막 입을 열어 연설을 시작하려는 순간, 어린아이 하나가 시끄럽게 울어댔습니다. 어린애의 엄마는 겨우 젖을 물려 어린애를 울지 못하게 달랬습니다. 전도사는 찌프린 눈살로 그 어머니와 아이를 이윽고 내려다보다 말고 다시 설교를 시작하려 했습니다. 그러자 이번에는 다른 아이가 울음을 터뜨렸고, 이어서 다른 아이들도 덩달아 울기 시작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강당 안은 삽시에 아이들의 울음소리로 온통 아수라장이 되고 말았습니다. 당황한 몇 명의 엄마들은 우는 아이를 데리고 급히 밖으로 나가기도 했습니다. 화가 꼭뒤까지 치민 전도사는 일그러진 얼굴로고함을 질렀습니다. “아이를 데리고 온 엄마들은 아이들을 모두 강당 밖으로 내보내시오!” 그 말에 엄마들은 아이들을 데리고 허둥지둥 강당 밖으로 나갔습니다. 아이들을 밖에 내보낸 몇 명의 엄마들이 다시 강당으로 들어와 조용히 자리에 앉았고, 강당 내는 비로소 조용해졌습니다. 그제야 강단에 서 있던 전도사는 목청을 가다듬고 연설을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전도사가 한창 연설에 열을 올리고 있을라니, 이번에는 창밖으로부터 방금 나간 아이들이 뭐가 그리 즐거운지 마당에서 뛰노느라 히히낙락하는 소리가 강당 안까지 들려오는 것이었습니다. 전도사는 열변을 토하며 설교에 열기를 더해갔습니다. 그런데 아무래도 창문 밖에서 들려오는 아이들의 웃고 떠드는 소리에 자꾸 신경이 쓰여서 연설을 계속할 수가 없었습니다. 다시 화가 머리끝까지 치민 전도사가 강단에서 내려오며 단호하게 말했습니다. "아이들과 노닥거리는 자가 누군지 내 오늘 혼쭐을 내줘야지!" 씩씩거리며 창문을 열고 마당을 내려다보던 전도사는 그만 얼굴이 홍당무가 되어 굳어지고 말았습니다. 전도사의 명에 따라 강당 밖으로 내쫓긴 아이들, 그 아이들과 함께 소리치면서 어울려 놀고 있는 그 사람은 다름 아닌 그 교회의 목사였기 때문이었습니다. ********** 설교 이야기가 아닙니다.  종교 이야기는 더더욱 아닙니다. 진정 훌륭한 연설가나 예술가, 문인이란 자신의 달변이나 학식을 과시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사람들을 동등하게, 차별 없이 대할 줄 아는 마음이 근본이 되어야지 않을까 싶어서 하는 얘깁니다. 아이들의 울음소리 하나 용인하지 못하는 사람의 연설, 그것은 저 창밖에서 들려오는 고물장수의 꽹과리 소리에 불과한 잡소리일 것입니다.  
7    아름다운 지도자(견이의 횡설수설) 댓글:  조회:2779  추천:0  2012-04-14
 1982년, 한국의 어느 건설회사에서 말레이시아 페낭대교 공사를 맡아 완성했는데, 당시 건설회사에서는 준공식 무대를 거창하게 준비했습니다. 건설회사 측에서는 한국 국내에서 대통령이 참석하는 행사장과 똑같은 무대를 연출하기 위해 한국에서 전문가를 불러 단상을 꾸몄습니다. 높은 위치에 수상 부부가 앉을 커다란 의자를 배치하고, 그 양 옆으로 정부요인 및 귀빈들이 앉을 의자를 놓았습니다. 수상 의자 앞에는 버튼을 누르면 폭죽과 연기가 치솟는 장치도 준비했고, 햇빛이 강해서 차양도 넉넉하게 치고 카펫도 깔았습니다. 준공식 하루 전, 말레이시아 수상의 비서실장이 현장을 둘러보러 왔는데 무척 놀라운 표정을 짓는 것이었습니다. 건설회사 관계자들은 비서실장이 한국 건설회사 측의 준공식 준비에 감탄하는 것으로 생각하고 흡족한 기분이었습니다. 그런데 비서실장이 회사 관계자에게 다가오더니 예상 밖의 질문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수상이 앉는 데는 그늘이 있는데, 일반인 5천 명이 앉는 이 앞은 어떻게 할 겁니까?” 비서실장이 단상 앞쪽의 공터를 가리켰습니다. 어떻게 하다니? 한국 건설회사 관계자는 그게 무슨 말이냐는 듯 비서실장의 얼굴만 쳐다보고 있었습니다. 한국에서는 보통 대통령이나 관리들이 앉을 자리에만 신경을 써왔을 뿐, 일반 참석자들은 땡볕에 서 있는 게 관례였기 때문입니다. “오천 명 참석자들을 위해서도 차양을 치든지, 아니면 수상 자리의 차양을 없애든지 하세요. 수상만 그늘에 있을 수는 없습니다.” 비서실장의 단호한 지시였습니다. 단상을 둘러보던 그가 다시 물었습니다. “그런데 이 의자 두 개는 왜 이렇게 큽니까?” “수상 각하 내외께서 앉으실 의자입니다만….” 건설회사 책임자가 대답했습니다. “수상은 왜 다른 사람들보다 엉덩이가 크답니까?” 그러면서 비서실장은 수상이 앉을 자리에도 보통 의자를 가져다 놓도록 부탁했습니다. 다음날 수상이 와서 기념연설을 했습니다. 말레이시아어로 열변을 토하는 중간 중간, 사람들로부터 폭소가 터져나왔습니다. 그 말을 알아듣지 못하는 한국 건설회사 관계자들은 그냥 좋은 얘기겠거니 생각하고 따라 웃기만 했습니다. 그런데 말레이시아 관료 한 사람이 한국 건설회사 대표자의 옆구리를 툭 치며 영어로 말했습니다. “지금 수상이 무슨 얘기를 하는지 알고나 웃는 겁니까?” “글쎄요… 뭐라고 했기에......?” 한국 회사 대표자가 머쓱한 표정을 지으며 되물었습니다. “한국 회사는 알리바바 같은 도둑놈이라고 수상이 말하고 있습니다. 한국 회사가 도둑놈이니까 말레이시아 국민들이 빨리 선진 토목기술을 배워서 이 한국 도둑놈들을 쫓아내야 한다는 겁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한국 건설회사의 현지 책임자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고 합니다. 지도자는 정말 겸손하고 소박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입니다. 물은 아래로 흐르고 사람은 겸허한 인품 쪽으로 몰리기 때문입니다. 스위스에서는 대통령이 전철을 타고 다녀도 아무 탈이 없고 대통령 부인도 제네바 거리로 꽃을 사러 나온다고 합니다. 전반 사회의 발전과 더불어 국민의식도 발전하면서 최고권위 자리가 많이 낮아졌습니다. 그러나 아직 많은 국가의 대통령이나 지도자들이 친근한 이웃이 아닌 왕을 대하는 듯한 거리감을 주고 있습니다. 지도자는 다른 사람을 지배하려 하지 말고 가장 좋은 모범이 되라고 했습니다. 또 훌륭한 지도자는 모든 사람의 심부름꾼이 되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
6    두개와 세개의 문제 (견이의 횡설수설) 댓글:  조회:3043  추천:2  2012-04-08
두개와 세개의 문제 할아버지가 결혼잔치에 다녀왔습니다. 문을 열고 들어서기 바쁘게 세살 터울의, 귀여운 두 손자 녀석이 쫑드르 달려나오며 반갑게 맞아주었습니다. “할아버지, 무슨 맛있는 거 가져왔슴다?” “오호, 그래… 내 늬들 주자구 맛있는 사탕 가져왔지… 자… 재영이랑 둘이 나눠 먹거라이.” 할아버지가 호주머니에서 사탕 다섯알을 꺼내 작은 손자 재훈이 손에 쥐어주며 말했습니다. “고맙슴다, 할아버지! ” “잘 먹겠슴다, 할아버지!” “오냐, 그래, 그래…” 두 손자가 깍듯이 인사를 하고 물러갔습니다. 그런데… "얌마, 내가 형인데 왜 두개만 주고, 넌 동생인데 왜 세개나 가지니?!" 사탕을 받아든 동생 재훈이가 형 재영이에게 두알을 주고 자기는 세알을 가지려 했던 모양입니다. “흥, 내가 할아버지에게서 직접 받았으니까 두개 나눠준 것만으로도 형은 고맙게 생각해야 해!” 할아버지는 두 형제가 실랑이하는 모습을 그저 물끄러미 지켜보고만 있었습니다. 그 때, 안방에서 나온 할머니가 할아버지에게 두 아이가 다투는 영문을 물었습니다. "쟤들은 왜 또 저렇게 도툰담둥?" 그에 빙그레 웃으며 대답하는 할아버지의 말씀이 걸작이었습니다. "흐음… 세 개 문제로 싸우고 있다네." "아니, 세 개 문제라니? 그게 무슨 말씀이람둥?" "왜~ 온 세상 사람들이 그 세 개 문제로 다투고 싸움질하고들 있지 않는가?  '나는 세개! 너는 두개' 하고 말이야… 모두들 공평하게 가지면 되는데 무슨 조건을 붙여서라도 세개가 자기 몫이라 주장하니까 세상이 어지러울 수밖에…" 그제야 할아버지의 말뜻을 짐작한 듯 할머니도 수긍조로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 참으로 그런 것 같습니다. 인간의 본능 자체가 아마 공평을 싫어하는 것 같습니다. 모두들 자기가 세개를 차지하려고 양보할 줄 모르는 데서 분쟁이 일어나고, 불화가 생겨나고, 싸움이 일어나는 것 같습니다. 모두 다 너무나 똑똑하기 때문에, 서로가 세 개를 차지하려 하기 때문에 해답이 나오지 않는 것입니다. 어린 시절, 아버지가 가훈처럼 들려주시던 얘기가 있습니다. “너희 할아버지가 생전에 그러셨다. ‘좋은 사람이 된다는 거 별거 아니다. 내가 좀 밑진다 생각하고 처사하면 좋은 사람’이라고…” 그런데 정작 그 “내가 좀 밑진다 생각하고 처사”한다는 게 말처럼 그리 쉬운 일은 아니었습니다. 똑같이 일하고 누가 나보다 더 받아도 “밑지”는 것 같아 싫었고, 나는 하느라 무진 애썼는데, 누군가의 인정을 받지 못하는 것 같아서 불평이었습니다. 결국 저 역시 어쩔 수 없는, 그렇고 그런 속물임을 고백합니다. 옛날 어떤 선비가 맹자에게 “선비는 어떤 일을 해야 합니까?” 하고 물었습니다. 맹자는, “뜻을 높이는 일을 해야 한다.”고 답했습니다. 그러자 그 선비는, “뜻을 높인다는 게 무슨 말입니까?”하고 다시 물었습니다. 그 질문에 맹자는, “(居仁由義)어진 마음으로 옳은 일을 하는 것이다.” 라고 대답했습니다. 맹자는 또 어진 마음은 ‘측은지심’(惻隱之心)에서 비롯되고 옳음은 ‘수오지심’(羞惡之心)으로부터 시작된다고 했습니다. 측은지심은 남을 불쌍하게 여기는 마음이요, 수오지심이란 스스로 부끄럽게 여기는 마음을 말합니다. 우리가 두개에 만족하지 못하고 세개를 차지하려는 마음은 결국 이 측은지심과 수오지심이 결여되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너무들 똑똑하여, 어질고 스스로 부끄럽게 여기는 마음을  찾아볼 수 없는 게 아닐까 하고 말입니다. 소위 경제시대라고 하는 요즘, 적지 않은 사람들이 어짊을 어리석음이라고들 폄하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다름아닌 그 어리석음이야말로 탐욕과 시기로 병든 요즘 세상을 평화롭게 만든다고 생각해본 적은 없는지요? 우리 모두가 지금 지나치게 똑똑해서, 그래서 사는 게 피곤하다고 생각하지는 않는지요?
5    클라라의 치마 이야기 (견이의 횡설수설) 댓글:  조회:3020  추천:0  2012-03-31
클라라의 치마 이야기 ……… “무솔리니는 최후에 애인인 클라라와 함께 총살을 당하고, 시체는 광장에 공개되었던 모양이야.” “어머나!” “군중이 그 시체를 향해 침을 뱉고 매질을 하기도 하고, 그러다가 시체를 거꾸로 매달았는데 그 바람에 클라라의 치마가 뒤집혔지.” “어머나!” “군중들은 굉장히 즐거워했대. 죽여준다. 속옷이 훤히 다 보인다, 하며 흥분했겠지. 어느 시대건 그러게 마련이지~ 남자들이란… 아니, 여자들도 그랬겠지. 그런데 그때 한 사람이 손가락질을 받아가며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서 클라라의 치마를 올려주고 자신의 허리띠로 묶어서 치마가 뒤집히지 않도록 해줬대.” “어머나!” “대단하지?” 미츠요씨는 소중한 물건에 숨을 불어넣는 투로 말했다. “사실, 나는 늘, 최소한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해.” ……… “치마를 올려주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뜻이에요?” “응… 사람들이 날뛰고 소란을 피우는 것까지는 막을 수 없겠지.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움직이기 시작하면 무섭기도 할 거고… 하지만 최소한 있지… 뒤집힌 치마 정도는 바로잡아줄 줄 아는… 그게 무리라면 뭐 치마를 바로잡아줄 수 있다고 생각이라도 할 줄 아는 사람은 되어야지 않겠나 싶어…” *********** 이사카 코타로의 저서 -《마왕》에서 나오는 대목입니다. 여러분은 이런 상황에 놓인다면, 어떤 생각과 행동을 하시겠습니까? 아니, 지금 이 대목에서 어떤 느낌을 받으셨는지요?   저는 이 구절을 읽으면서 요즘 우리 사회와 일맥상통한 모습에 얼굴이 화끈거렸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저 또한 그 수많은 사람들 가운데 한 사람이라는 사실 때문에 몸에 꽉 끼는 옷을 입은 것처럼 마음이 갑갑해졌습니다.   사실, 저도 늘 '미츠요'씨처럼 최소한 그런 사람은 되어야지 하는 생각을 해왔습니다. 최소한 뒤집힌 치마 정도는 바로잡아줄 수 있는 그런 사람 말입니다. 하지만 어디로 튈지 모르는 무시무시한 군중심리가 발동하기 시작하면, 이리저리 휩쓸리다가 끝내는 행동으로 옮기지 못하곤 하죠.   그러던 중 이 글을 읽고는 다시 한 번 깨달았습니다. '이건 정말 아니다!' 라고 생각되는 상황과 맞닥뜨린다면, 아주 작은 행동이라도 실천해야겠다고…   우리는 누구나 잡다한 일상 속에서 “클라라의 치마”를 만나게 되는 경우가 정말 많습니다. 그때마다 다른 사람들을 의식하지 말고,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걸 행동으로 옮겨봅시다!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의 작은 날개짓이 모여 아주 가벼운 바람이라도 일으킬 수 있다면, 그럴 수만 있다면 참 좋겠습니다.  
4    개똥과의 전쟁 (견이의 횡설수설) 댓글:  조회:2847  추천:0  2012-03-24
개똥과의 전쟁   얼마 전, 어느 해묵은 잡지를 뒤적이다가 재미있는 신문기사를 보았습니다. 2002년, 프랑스 파리에서 개똥과의 전쟁을 선포했다는 기사였습니다. 당시 프랑스시 시장 베르트랑 들라노에(Bertrand Delanoe)가 시내 곳곳에 널려 있는 개똥의 추방을 중점 사업으로 정하고, 2002년부터 개의 배설물을 개 주인이 현장에서 직접 수거하도록 강제규정을 만들었다고 합니다.   개똥을 즉각 처리하지 않는 개 주인에게는 1㎏당 인민폐 8천4백원에 해당하는 벌금 - 1200 프랑을 안기고 두 차례 위반한 주인에게는 3000프랑까지 벌금을 안긴다고 규정했습니다. 개똥이 금값이라는 우스개 소리가 나올 만한 일이었습니다.   이를 시행하기 위해 개를 끌고 나온 시민들에게 비닐봉지를 나눠주면서 “나는 내 동네를 사랑한다,”, “나는 치운다!” 라는 구호로 시민 계몽 운동도 진행했다고 합니다.   사실, "런던이 안개가 명물이라면, 파리는 개똥이 명물이다」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파리에서는 과거 개가 아무 곳에서나 ‘실례’를 해도 용서를 받아왔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게 되었습니다. 20만 마리에 이르는 개들이 배설해내는 배설물이 하루 16톤에 달했으며, 개똥을 밟고 미끄러지는 인명사고가 매년 600건에 이르게 되었던 것입니다.   프랑스 파리의 “개똥 운동”은 멀리 떨어져 사는 우리들에게는 어쩌면 하나의 재미있는 이야기꺼리에 지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요즘도 우리 주변에서는 개똥보다 더 심각한 냄새들이 코를 찌르고 있다는 사실을 상기할 때, 그것은 우리와는 무관한 재미있는 이야기만은 아닐 것입니다.   전에는 좀 점잖은 동네에서 살았던 탓인지 별로 대수롭잖게 여겼지만, 새살림 차린답시고 셋방살이를 하고 있는 요즘, 출퇴근길에 아파트단지를 드나들면서 거의 날마다 목격하게 되는 방뇨의 흔적들, 지어 계단 한구석에서 “큰일” 본 흔적까지 눈에 띄었을 때… 말 그대로 눈이 뒤집혀지는 충격에 아찔해났습니다. 개똥이라면 차라리 웃고나 말지!   전국문명도시 건설을 위해 온 시민이 동원된 요즘입니다. 사실 하루가 다르게 변모해가는 연길의 모습과 공중시설들을 보면서, 그리고 공용버스에서 노약자들에게 자리를 양보하느라 빈자리가 있어도 앉을 염을 않고 꿋꿋이 서서 가는 젊은이들의 모습을 보면서 연길의 희망과 밝은 미래를 보는 것 같아 적이 흐뭇한 마음이었습니다.   그런데, 신변에서 이런 불가사의한 추행을 목격했을 때는 정말이지 …… 그러나 다시 곰곰이 생각해보면, 다시 우리의 후각을 동원하여 구체적으로 어디서 이 같은 고약한 냄새가 나는가를 찾는다면, 우리는 어쩌면 그 냄새가 “나”에게서 나고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될지도 모릅니다. ********* 진리의 거울에 나 자신을 비춰볼 때 우리의 모습은 부끄러움 밖에 없을 것입니다. 만물이 태동하는 이 희망의 계절에 우리는 지금 개똥과의 전쟁이 아닌, 나와의 전쟁을 시작할 때가 아닌가 회의하게 됩니다.
3    소원성취나무 (견이의 횡설수설) 댓글:  조회:3297  추천:0  2012-03-17
소원성취나무   한 나그네가 우연히 낙원으로 들어갔습니다. 이 낙원에는 소원성취나들이 있어서 나무 밑에 앉아 무언가를 원하면 즉각 성취되었습니다. 그러니까 여기선 뭐든지 원하기만 하면 성취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나그네는 매우 지친 터라 나무 밑에서 스르르 잠들어버렸습니다. 얼마 후 잠에서 깨어나자 그는 무척 배가 고팠고, 그래서 중얼거렸습니다. “배가 고픈데, 어디 뭐 좀 먹을 게 없을까?...” 그러자 머리 위에서 뭐가 뚝 떨어졌는데, 보니까 글쎄 잘 구워진 소갈비와 빵덩어리였습니다. 무척 배가 고팠던 차, 그는 그게 어디서 어떻게 생겨난 건지는 신경 쓸 여유도 없이 얼른 집어서 실컷 배불리 먹은 후에야 주위를 둘러보았습니다. 하지만 주위엔 아무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아~ 배가 불렀다… ” 그러자 다른 생각이 퍼뜩 떠올랐습니다. “와인 한잔 있었으면 좋겠는데…”   낙원에는 금지하는 게 없었습니다. 그가 중얼거리기가 무섭게 어디선가 아주 고급스러워 보이는 술병이 뚝 하니 떨어졌습니다. 그는 나무그늘 아래에서 살랑이는 바람을 즐기며 유유자적 술병을 기울이기 시작했습니다. …… 그러다 문득 이상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 이게 어찌 된 일이지? 뭘까? …… 내가 지금 꿈꾸고 있는 건가, 아니면 도깨비장난에 놀아나는 건가?!” …… 그러자 난데없이 도깨비가 세명이나 나타났는데, 저마다 소름 끼치도록 험상궂은 꼴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화들짝 놀라 부르르 몸을 떨었습니다. 질겁을 하며 생각하길 ‘아이고, 이젠 꼼짝없이 죽었구나!’ 그러자 그는 그 자리에서 죽어버렸습니다. ******************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우주가 낙원이고, 당신의 마음이 곧 소원성취나무입니다. 무언가를 원하면 조만간 이루어지는데, 우리는 종종 자신이 원하는 것을 까맣게 잊어버리고, 근원과 통할 수 없을 때 마음이 흔들리고 결국엔 포기하기에 이릅니다. 좀 더 차분히, 깊이 들여다 보았더라면 자신의 생각 하나, 하나가 바로 자신과 자신의 삶을 형성하고 있었음을 발견할 수 있었을 텐데 말입니다. 한번 즈음 곰곰이 생각해봅시다. 지금 나는 어떤 자리에 와있는가를… 그리고 돌이켜봅시다. 그 자리가 바로 내가 오래 전부터 원했던 자리가 아닌가를…… 참 신통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습니까? 그렇습니다. 당신의 생각 하나, 하나가 천국과 지옥을 낳고, 슬픔과 기쁨을 낳고, 부정과 긍정을 낳습니다.
2    소가 더 중하지요 (견이의 횡설수설) 댓글:  조회:2917  추천:0  2012-03-13
소가 더 중하지요 어떤 시골 아낙네가 아들아이를 업고 헐레벌떡 병원으로 들어와서는 아이를 침대에 내려놓고 살려달라고 애걸복걸했습니다. 의사가 아픈 아이를 진찰한 결과 자기 병원에서는 치료하기 힘들 정도로 병세가 위급했습니다. 그래서 빨리 큰 병원으로 옮겨 수술을 받아야 한다며, 늦으면 아이의 생명이 위태로울 수 있으니 속히 도시에 있는 큰 병원으로 옮겨 치료받으라고 단단히 일러주었습니다. 그런데, 그 말을 듣고 있던 그 시골 여인이 "그럼 우리 집 소는 어떻게 하고 아이를 도시로 데려갑니까?" 하고 되묻는 것이었습니다. 의사 선생이 너무 한심하고 어이없어서 여인을 책망했습니다. "아니, 지금 아이가 죽느냐 사느냐 하는 판에 소가 뭐 그리 중하다고 소 걱정입니까? 소가 중합니까? 아이가 중합니까?" 그런데 그 어머니 대답이 너무나 뜻밖이었습니다. "그야 물론… 소가 더 중하지요… 아이는 2-3년이면 또 낳을 수도 있지만, 소는 한평생 일해서 돈을 모아도 한 마리 사기도 어려우니까요." ************ 인도에서 있은 이야기입니다. 지금 당신도 아마 이야기에 나오는 시골 여인의 어리석음에 허구픈 웃음을 물씬 떠올리고 있겠지요? 하지만 그 인도 여인을 나무라고, 힐난하기 전에 한번 즈음 우리들 자신을 돌이켜봅시다. 권력과 재부를 영위하기 위한 피비린내 나는 전쟁과, 총탄, 포화보다도 파괴력이 강한 모해와 암투, 동족상잔의 비극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짓밟히고 무참히 죽어갔다는 사실을 상기해봅시다. 또 재물을 얻기 위해 사람을 속이고, 마음 상하게 하고, 살인도 서슴치 않는 일들이 당신 주위에서도 자주 일어나고 있음을 부인할 수 없을 것입니다. 무엇보다 사람이 귀하다고, 말은 그렇게들 하고 있지만, 실제로 우리는 "소가 더 중하지요" 로 행동하고 있지는 않은지 한번즈음 반성해봅시다. 만물의 영장이라 일컫는 사람, 그것은 다른 어떤 것보다 가치가 높고, 우선시되어야 하는 귀한 존재라는 것을 입으로가 아닌 행동으로 받아들여야 할 것입니다.  오직 "사람의 목숨이 온 천하보다 귀한 존재"로 여겨지고 높이 평가 받을 때야만 우리도 진정 평화를 담론할 수 있을 것입니다… 입으로만 부르짖는 평화가 아닌 진정한 평화가  이 땅에 깃들기를~ 영화 나레이션 한 구절이 생각납니다. “그 곳은 애초에 ‘평화’라는 낱말조차 없는 평화로운 곳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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