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홍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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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 [ 172 ]

112    千年松 댓글:  조회:1545  추천:0  2018-05-21
千年松     길가에 비술나무 버드나무 축 늘어져 뻘뻘 땀을 흘리고 황둥개는 처마밑에 기여들어 혀 드리우고 헐떡 대던 날 언덕위 천년송 삿갓아래 가면 제법 미풍마저 일어 왔다   김을 매다 소나기 밀려오면 동네서 놀던 병아리들은 쫑드르 암탉품에 숨어 들고 사람들은 우르르 천년송으로 몰려 갔다 얼마 못가 구름은 한무리 양떼같이 성자산넘어로 도망가기 바쁘고 해란강은 불어서 소리쳐 흐르고 우리는 짙어진 풀내음을 마셨다   어느새 새파랗게 하늘이 높아지면 봉숙이네는 천년송 오른팔에 그네줄 매여 달아 씨엉씨엉 굴러서 날으는 새를 차 떨구기도 했다   낮이면 천년송 찾는 발길이 동구밖까지 이어진다 혹은 합장을 하고 혹은 무릎을 꿇고 자식의 행복을 부모의 안녕을 자기의 용서를 빈다   서쪽하늘에 노을이 지고 마지막 사람까지 물러가면 조용히 다가가 귀를 댄다 그러면 천년의 숨결이 들린다 하늘님 말씀이 들린다   2018.5.18 연길에서
111    [나의 삶] 세상 (방홍국) 댓글:  조회:1609  추천:0  2018-05-14
세상   방홍국 쭉 그래 왔어요   세상은 나더러 누구라 해 놓고 이래라 저래라 해요 안그럼 안된다면서요   근데 뭐가 안된다는 건진 말 안해 줘요   어릴때 누나가 나를 울려 놓고서는 엄마한테 욕 먹을까봐 더 울면 범이 물어 간다 뚝! 그러면 겁 나서 커다란 울움도 꿀떡 삼키곤 했죠   때론 뒷문으로 빠져 나와 뛰여 다니기도 했지만 때로는 친구들과 술에 취하여 마구 흔들어 대기도 했지만   이제는 그만 내게로 돌아 갈래요 세상이야 뭐라든 상관 않겠어요 세상이야 싫어해도 상관 없어요   그래도 세상은 좋은 걸요     2018.5.14 연길에서
110    [신작시] 연변 최고령 백양 (방홍국) 댓글:  조회:1444  추천:0  2018-05-14
연변 최고령 백양   방홍국   룡정 구룡7대  마을 입구를 지키고 계시니 높이 솟아 한껏 펼쳐 그늘을 만들어 주시니   생신은 모르시고 친구들은 죄없이 베이고 뽑혀가고 혼자 노라 하시니   마당에 길가에 산자락에 사람들이 다시 나무 심기 시작했습니다 아뢰여 올리니   푸른 잎사귀들에서 회심의 눈물 뚝뚝 떨구시니  
109    거래 댓글:  조회:1370  추천:0  2018-05-11
거래   이번에도 재미 보셨나 자네야 제법 거래에 도가 튼 사람 아닌가   얼마전 나도 어쩌다 거래 비슷한걸 해 봤다네 밑졌다고 곁에서 난리들이지만 내심 흐뭇하기만 하이 자리를 내여 주고 평온을 챙겼 거든   거래로 사는 자네는 사는 맛이 좋겠다는 생각이 드네   내사 도통 거래란걸 모르고 살아오니 크지도 지혜롭지도 못하고 50마루에서 아직도 요모양으로 소꿉장난에 빠져 있네   참,이런것도 거래라 할수 있겠나? 30년전 노을이 유난히 곱던 언덕에서 나와 그녀는 푸르른 사랑과 연분홍 사랑을 맞 바꾸었다네   6월12일 싱가폴에서 큰 거래 있다누만 워낙에 고수들이라 판을 깨지는 않겠지만 내친김에 1972년 베이징 거래 처럼 잘 됐으면 얼마나 좋겠나! 그리 될거야 빌자구   2018.5.11 연길에서  
108    빌딩속의 그대 댓글:  조회:1369  추천:0  2018-05-10
빌딩속에 그대   빌딩속을 날으는 제비 빌딩속을 흐르는 냇물 빌딩속에 피여난 들꽃 빌딩속에 팔벌린 나무 그리고 빌딩속을 노니는 그대   빌딩속 노는 자리에 밭을 일구어 채소를 심는 이웃집 할머니 강변에서 하루 2천번 仰卧起坐하시는 사경에서 돌아 오셨다는 할아버지 운동장에서 뽈을 차는 아이들 버스에서 로인에게 자리를 내여주는 젊은이 유치원 문앞에서 빠이빠이 하는 어린 딸과 아버지 커다란 사연을 머리에 이고 가는 아줌마 총총총 이어폰 끼고 출근하는 청년 드르륵 문을 열어 제끼는 가게 사장님 그리고 새로운 만남을 위해 엑셀을 밟는 그대   날마다 옷 갈아 입는 녀자들 철마다 새물건 내여 놓는 매대 새롭게 단장한 공원 산책길 화사하게 허리띠 두른 새아파트 단지 오밀조밀 연지곤지 찍고 길량켠에 줄느런한 상가들 그리고 새로운 메뉴를 위해 앞치마를 찔끈 동이는 그대   창가 테이블에 앉아 잔을 드는 동창들 조선 처녀들의 경쾌한 음악에 춤을 추는 친구들 커피솝 큰테이블에 도란도란 독서회 회원들 고려원 큰방에서 윤동주를 노래하는 시인들 국자가에 넘쳐 날듯 흘러가는 불빛의 흐름과 그리고 밤늦도록 사이트에 래일을 올리는 그대   누구는 사람이 싫어 빌딩이 싫다지만 빌딩이 싫어서 산에 간다지만 어우러져 살다보면 부딪힐때도 버성길때도 있겠지만 함께여서 얻는 우정과 격려와 나눔의 희열에 비하면야 여름 산길에 가끔 얼굴에 씌우는 거미줄이요 겨우내 담근 된장우에 살짝 앉은 곰팡이이라며 산도 좋아하고 물도 좋아하고 유난히 사람을 좋아하는 그대   빌딩사이에 내리는 달빛 그속을 逍遥하는 그대 그리고 우리   2018년 5월8일 연길에서  
107    [신작시] 강 건너 저편에는 (방홍국) 댓글:  조회:1535  추천:0  2018-05-07
강 건너 저편에는 -두만강변 나의 고향 로과를 다녀오다 방홍국   진달래 붉게 물든 산아래 소담한 동네 집집이 벽에는 파랑과 흰색의 벽 밭사이 동서로 뻗은 길에는 옅푸른 가로수 햇빛이 부서지는 두만강가엔 빨래하는 어머니들과 물 놀이 하는 아이들   김일성 낙시터를 지나니 느닷없는 연기 냄새와 뿌연 하늘 두만강 발원지의 군인의 말씀 불과 3킬로메터 저켠에 산불이 났답니다 인력과 장비가 부족해서 손을 놓고 있답니다. 수십,수백년을 자란 나무들이 찰나에 속절없이 산불에 타버리게 생겼으니 아 아 소나기라도 한나절 쏟아졌으면   삭발을 당하고 밭으로 헐 벗은 산 산  그렇더니 저건?! 하늘로 펼친 한 뙈기에 분명 푸른 나무들이 자랐습니다! 보아하니 식수했음이 틀림 없습니다. 비록 세일수 있을 만큼 듬성듬성 하지만 내 눈엔 신기루런듯 황홀합니다!   산기슭에는 철길 철길에 군인들 제법 씩씩합니다. 보통키인 나보다 더 커들 보입니다. 짙은 색의 군복이 두툼하니 따뜻해 보입니다. 일하고 돌아 오는듯 여러명이 철길 구르마에 앉아   마을쪽으로 내려 갑니다. 반대쪽에서 오는 구르마는  량쪽에서 사람이 발로 땅을 밀어서 전진 합니다. 사람이 많이 앉은 큰 구르마는 덜그렁덜그렁 고르로운 소리로 갑니다. 동력이 장착 된듯 합니다.   산허리에 웬 불빛? 초봄에 반딧불인가 한밤에 비행기인가 길에 차 불빛이랍니다. 어느새 산모퉁이를 돌아 갑니다. 기름으로 감이 틀림 없습니다. 사정이 나아졌나?!   앞산 마루에 무겁게 드리운 밤장막  스르르 올라가고  하얀 달님이  보일까 말까 빠끔히 얼굴을 내여 보입니다. 그도 우리가 궁금했던지 산뒤에서 홀로 적적하고 답답했음인지 주저주저 맴을 돌다 익살스레 불쑥 산머리에 올라 섭니다. 둥그러니 곱기도 합니다.   잠자던 개들이 낮인줄 깨여나 좋아라 짖어 댑니다.   승용차 전조등을 끄고  달빛에 비쳐 먹으니 돌쫑개국도 삽겹살도 맥주도 빼가리도 스리살살 그만입니다.   아침 로과 맞은켠 독소리 언덕길에 차 한대가  연기를 일구며 나아 갑니다. 목탄으로 힘겹게 그러나 완강히 나아 갑니다. 아직은 아직도 하지만 나아 갑니다.     2018년 4월 29일  
106    [신작시] '4.27'에 즈음하여 (방홍국) 댓글:  조회:1571  추천:2  2018-04-26
[신작시]   "4.27"에 즈음하여   방홍국     만나시거든  력사의 흐름을  바꾸어 놓으소서 장엄하고 도도한 새 력사의 물꼬를 터놓으소서 행여라도 잠깐 생겼다 사라지는 소용돌이로는 되지 마소서   만나고 난뒤에 숨죽이던 삼천리강산에 만세소리 진동치게 하소서 만날때 온 하늘에 드리운 열망의 꽃구름이 헤여질땐 환희의 빗줄기 되여 온누리를 적시게 하소서   천년의 고비사막에 비단길 열려 동서양이 하나로 되려 하오 억년의 얼음산이 녹아내려  태평양 대서양이 하나로 되려 하오 저 원통하고 부끄럽고 시시한 삼팔선 철책선을 걷우어 내시고 어서 빨리 하늘이 묶어준 하나로 되돌아가 "홍익인간"의 락원에 매진 하소서   온갖 불신과 편견과 곡해는 하늘밖에 훌훌 날려 보내고 오로지 사랑과 믿음만이 감돌게 하소서   그리하여 우리는 이겨 냈노라 세상에 보여 주소서 우리는 해 냈노라 인류에 공헌 하소서   2018.4.26 연길에서
105    [신작시] 시를 쓴다는 건 (방홍국) 댓글:  조회:1468  추천:0  2018-04-21
시를 쓴다는 건   방홍국     시를 쓴다는 건 아내가 차린 색다른 음식에 감동하고 감사하는 일이다   시를 쓴다는 건 헬스로 살아난 아들의 턱선과 책에 집중하는 모습에 매료되고 팬이  되는 일이다   시를  쓴다는 건 힘들어도  웃으며   나아가겠다는 말이다   시를 쓴다는 건 새들이 노래하면 들어주고 꽃들이 반기면 발길을 멈추고 손을 내미는  일이다   시를 쓴다는 건 아침 장마당에 나오신 할머니의 딸기를 하나라도 더 사주는 일이며   태평양 인도양 넘어 어느곳에서 영문도 모른채 폭탄에 팔을 잃은 아이를 보며 눈물을 삼키고 울분을 토하는 일이다   시를 쓴다는 건 반목하던  두 사람이 리해하고  화해하여  손잡고 포옹하는 정경에 박수를 보내는 일이다   시를 쓴다는  건 아름다운  추억으로  오늘을 수 놓는 일이며   무엇보다 지금 누군 가를 무언 가를 열렬히 사랑하고 있다는 말이다   시를 쓴다는 건 살아  보겠다 는 말이다  
104    [신작시] 화로 (방홍국) 댓글:  조회:1887  추천:0  2017-12-13
화로 방홍국     륙남매 막내 나조차 집 떠나 보낸뒤 화로 너만이 남아 아버님 어머님을 따스히 해드렸구나   숯불에 데이고 데이여 찌그러지고 쪼그라졌어도 곱기만 하구나   아  화로  
103    고마운 비자-F4 댓글:  조회:3290  추천:0  2016-12-22
고마운 비자-F4     F4비자는 조선족에게 참으로 고마운 비자다. 참으로 소중한 비자다.   F4를 위해 조선족들은 수십년간 실로 많은 땀과 눈물을 흘렸다.   F4로 하여 조선족의 오랜 숙원 한국에 자유로이 왕래하고 임의로 체류할수 있는 길이 활짝 열렸다   F4이래로 김사장은 수시로 한국에 드나 들며 더 많은 한국 물건을 중국에 들여다 팔고 있다. 박국장 아들은 북경에서 명문대를 나오고 한국 어느 증권회사에서 취직하여 대중국 업무를 맡아 보고 있다. 최여사네는 해마다 두세번은 부부가 함께 한국에 나가 쇼핑도 하고 관광도 하고 들어 온다. 퇴직한 리주임내외는 아예 제주도에 집을 사 놓고 이년째 퇴직금으로 생활해 가고 있다. … 이와 같은 이들이 날로 늘어 나고 있다. 이들은 한국의 대중 수출에 기여하고 관광업에 기여하고 부동산 판매에 기여하고 소비에 기여한다.   이들이 한국에 바라는 것은 애오라지 F4뿐이고 일전 한푼도,기타 어떠한 지원이나 혜택도 바라지 않는다.   이들은 조선족이라면 F4를 누릴수 있는 자격이 있으며 한국이 조선족에게 F4를 주는것은 이치에도 부합하고 인정에도 부합하고 무엇보다 한국자체 이익에도 부합하는 현명한 처사라고 믿는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F4에 대해서 왈가왈부 하는 사람들이 생겨난 모양이다. 한국이 조선족의 한국 왕래와 체류에 이런저런 제약과 애로를 설치하면 자기네들이 그런 제약과 애로를 풀어줍네 하고 불쌍한 조선족들로부터 돈을 받아 배를 챙기던 사람들이 F4로하여 자기네 장사가 안 되니까 뭐라 하는 모양이다. 사흘전(19일) 한국 문화일보 박효목,윤명진 두기자가 “조선족 ‘장기체류 수단’ 전락한 F4비자”란 제목의 기사가  이를 반증한다.   기사는 “전락”이라는 단어를 씀으로써 F4를 폄하,부정하는 태도를 보였다. “조선족 장기체류 수단”으로 전락했다고 함으로써 조선족 장기체류도 싫다는 태도를 보였다.   기사는 F4의 본질이 장기체류보다는 자유왕래라는 점을 인지 못했거나 왜곡했다. 설사 이들의 말대로 F4로 하여 한국내 조선족 장기체류자가 늘어났고 늘어 난다고 하자.실제로 그럴것 같기도 하다. 하긴 나도 퇴직하면 부산에 집 하나 사 놓고 연변과 한국을 드나늘며 살 생각이니까.   그러나 늘어 나는데는 한계가 있다. 초기에 해마다 많은 수가 늘어 난다고 해서 계속하여 늘어 날수는 없다. 조선족은 다 해봐야 180만 좌우, 그중에 중국보다 한국에가 살고 싶어 하는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될까?.   기사가 인용한 수자를 보자. “2012년 22만7836명이던 F4 비자 소지자는 2013년 28만130명, 2014년 34만9137명, 2015년 40만5948명으로 늘었고 올해 10월 기준 39만8642명에 달한다. 4년 새 17만 명이 증가했다.”   4년새 17만명 증가,맞다. 기자는 아마도 4년새 17만명 늘었으니 앞으로 또 4년이면 34만이 증가된다는 말을 하여 사람들을 겁주고 싶었을 것이다. 그러나 절대 그럴 일이 없다. 어쩌면 4년새 17만 증가하고 더는 증가하는 일 없고 답보하거나 점점 줄어 들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중국이 점점 좋아 지니까. 기사에서 기자들이 애써 외면한 수자를 봐도 그렇다. “2015년 40만 5948명으로 늘었고 올해 10월 기준 39만 8642명에 달한다” 작년보다 올해는 되려 줄었음을 알수 있다. 이것이 바로 조선족 수량상의 한계이고 조선족이 들어 오면 한국에 일자리가 없어지고 집 값이 오를까봐 호들갑을 떠는 일부 한국인들이 반드시 알아야 할 조선족 관련 현실이다.   하여튼 당분간 조선족 한국내 장기체류자가 늘어 날것이다. 그런데 조선족 한국내 장기체류가 어떻다는 말인가? 혹은 퇴직금 가지고 가서 혹은 한국에서 일해서 번 돈으로 장기체류하면 한국에 득이 되면 득이 되지 해 될건 없지 않은가? 그런데 왜 싫다는 것인가? 단지 조선족이 싫어서? 왜? 조선족 살인범이 생겨서? 길을 마구 건너는 조선족을 봐서? 쓰레기를 마구 버리는 조선족을 봐서? 간혹 그런 조선족이 있을수 있다.그러나 이런 이유로 조선족이 싫다면 죄 많은 인간이 싫어서 인간을 떠나 산에 가서 뭇 짐승들과 살아야 할것이다. 이런 논리라면 한국인은 한국에만 살아야지 미국이나 일본이나 중국에와 장기체류하지 말아야 한다.   피부와 민족과 국적을 불문하고 우리는 다 같이 잘 할때도 있고 못 할때도 있는 좋은 사람 많고 나쁜 사람도 더러 있는 사람들이다. 편견과 아집을 버려야 한다.   다음 하나,기사는 F4의 취지가 “재외동포 전문가 양성”이라고 했다. “자유왕래”와 “재외동포 전문가 양성” 어쩐지 아이 옷을 어른에게 끼워 입히는 억지스러움이 있다. 가령 F4 만든 분들이 종이에는 그리 써 놓았다 해도 그들의 본심은 “재외동포들이 마음 편히 모국에 자유로이 드나들게 하자.”는 따뜻함이 였으리라 나는 믿고 싶다. 전문가 양성,또는 전문가 인입 등은 자유왕래, 장기체류가 가능하다 보면 부수적으로 차차 생기는 일이다. F4를 실시 했으니 단기간에 우후죽순 모양 재외동포 전문가들이 여기저기서 생성하기를 바라는 것은 흡사 학교 다닌 사람은 다 유식하기를 바라는 것처럼 허망하다. 기사는 여의도나 동대문시장에 가서 찾아야 할 조선족 전문인재들을 대림동 조선족 동네에 가서, 그것도 F4에 비판적인 사람들을 만나 물어서는 F4는 조선족 전문가 양성에 도움이 안되고 조선족 장기체류 수단으로 전락되었다고 단정을 내렸다. 당 기사는 F4와 조선족에 대한 충분한 요해와 조사가 없이 편협한 취재에 의하여 F4에 관한 잘못된 결론을 내리고 있다.   F4에도 아쉬움은 있다. 발급대상이 대학 졸업생,기업사장등등으로 제한되어 있다. 단순노무직에는 종사할수 없다고도 못 박았다.   바라건대 조선족이라면 누구나 F4를 누릴수 있었으면 F4로 자유왕래,자유체류에 자유취직까지 할수 있었으면   비록 아쉬움이 있지만 조선족에게 F4는 참으로 고마운 비자다. 조선족은 F4를 주는 한국에 감사해 하고 있다.   그리고 분명한 것은 F4를 실행 해서 조선족에 좋고 한국에 좋지만 F4를 실행 이전에는 여행사나 학원이 좋았었다.     2016.12.22 연길에서
102    박광순옹의 앨범으로 본 연변팀의 초창기 5년(1955~1960년) 댓글:  조회:5775  추천:0  2015-11-14
“중국”을 입고 뛰였던 길림축구팀 그 후방엔 2번-박광순도 있었다   1958년,국가체육운동위원회는 길림축구팀에 구쏘련 중앙아시아지역을 방문하여 친선경기를 치르도록 한다. 뿐더러 전용기를 제공하고 “중국”을 입고 중국을 대표하여 뛸수 있는 “영광”를 준다. 보너스로 운동복과 양복을 북경에서 특별제작하여 공수하여 보낸다.        1958년 구쏘련 우즈베끼스딴가맹공화국 체육장에서 경기에 앞서                         박광순-앞줄 왼쪽 두번째 1958년 구쏘련 방문시 경기를 마치고 기념 촬영 박광순-두번째 줄 첫번째   결과  “중국”은 예상외로 잘 싸웠다. 우즈베끼스딴,타지크스탄등 8개 구쏘련 가맹공화국팀들과의 경기에서 6승1패1무의 좋은 성적을 거두었다. 국가체육운동위원회는 특별히 전문을 보내 축하와 함께 모스크바 유람을 장려 한다.   1958년 모스크바 붉은 광장앞에서 리광수와 함께 1958년 중국에서 온 미남 축구선수 박광순에게 미녀들이 다투어 싸인을 요청   이어서 1959년에는 구쏘련 극동지역을 방문, 1960년에는 조선을 방문하여 친선경기를 치르도록 한다. 련속 3년 국가체육운동위원회로부터 외국 원정 경기 기회를 부여 받는 다는 것은 당시로선 파격적인 우대였다. 1959년 구쏘련 방문시 당지 신문에 실렸던 기념사진과 주전 선수들                            박광순-기념사진 맨 앞 1960년 함경북도 방문시 당지신문에 실린 길림팀 소개 박광순-아래줄 왼쪽 두번째   1959년 구쏘련 신시베리아체육장에서 경기를 앞두고 박광순-오른쪽 다선번째 1960년 조선 청진시 체육장에서 경기를 앞두고 박광순-앞줄 오른쪽 세번째 1959년 구쏘련 방문시 환영 꽃다발을 들고 팀 동료와 함께   팀설립 불과 3년, 문지기를 제외하곤 조선족이 주력을 이룬 팀을 국가체육운동위원회는 무슨 연유로 이토록 신임하였을까?   당시 12개 갑급리그팀중에 길림팀이 최강팀은 아니였다. 중국축구갑급리그가 개시된 1956년부터 1960년,팀이 장춘에서 연길로 홈장을 옮기고 연변주에서 팀을 대리관리하기전까지 5년 동안 길림팀이 우승을 한적은 없었다.하지만 1960년 갑급리그 4등을 비롯하여 번마다 5등안에 드는 강팀이였고 중국에 온 구쏘련 국가팀,조선국가팀을 비롯하여 외국팀과의 경기에 국가체육운동위원회는 곧잘 길림팀을 출전시키는 터였다. 최강팀은 아니였지만 풍격이 용맹하고 강팀에 강하고 선수들이 기률을 잘 지키고 신사답기로 자타공인하는 팀이였다. 1957년 구쏘련국가팀과 함께 광주 경기장에 입장하는 모습 박광순-흰옷 뒤로부터 여섯번째 1957년 광주경기장에서 구쏘련국가팀과 경기를 마치고 함께 박광순-앞줄 오른쪽 네번째 1956년 장춘체육장에서 조선국가팀과 경기를 앞두고 함께 박광순-뒷줄 오른쪽으로부터 여덟번째   1955년 7월,연변 각 지역 학교 학생과 교원중에서 선발된 조선족 열혈남아들로 구성된 길림축구팀(한족 2명).모이고 보니 나름 공부를 하던 사람들이였다. 말하자면 “문무”를 겸비한 사람이 다수였다. 1955년7월 연길 연변대학 기숙사 앞에서 갓 선발된 초창기 멤베들과 함께 박광순-뒷줄 오른쪽 두번째 1957년 지운봉 선수와 함께 김사종 감독을 모시고   1958년 각별했던 친구 지운봉 선수와 함께   1956년,국가체육운동위원회는 웽그리아의 축구 전문가를 모셔온다. 그리고 그를 다른팀이 아닌 길림팀을 지도하도록 한다. 이렇게 그는 중국축구갑급리그사상 첫 외국인 감독이 된다. 길림축구팀에 대한 국가체육운동위원회의 또 한번의 특별 “배려”였다.   1957년,특별 지도를 맡은 웽그리아인 보스까스(가운데 줄 왼쪽 세번째)를 모시고 박광순-뒷줄 오른쪽 네번째   이렇게 화려했던 길림축구팀 후방에는 창립멤버 2번 선수-박광순도 있었다. 길림팀 창립초기 5년간 치른 30여차례 외국팀과의 모든 경기를 주전으로 뛴 선수, 1955년 화룡현중학교 체육부 부장으로 약관의 19세에 어려운 가정 형편과 외국에 나가 보겠다는 일념으로 잘 하던 공부를 덮고 축구를 선택했던 박광순은 그 전해인 1954년 화룡현을 대표하여 길림성 중등학교 륙상,체조경기에 참가하여 허들항목 우승을 따낼 정도로 발이 빨랐던 선수다. 1957년 박광순   하지만 1960년말 간염 판정을 받아 축구장을 떠나고 1963년 팀을 떠나 주운수공사에 배치를 받고,1970년 주교통국에 전근, 연변 도로건설에 큰 키여를 하고 巡视员으로 계시다 1996년 정년퇴직 한다. 올해 우리 나이로 80세 병원 건강검진 나이로 50세인 박광순옹은 오늘도 날렵하게 모아산에 오른다.   당년의 길림축구팀 창립멤버중 지금도 건재해 계시는 분은 박광순옹외 지청룡옹,허명룡옹 세명뿐이다.     2015년11월11일 연길에서   비고: 1.1960년 조선방문시 길림팀을 소개한 조선신문에 의하면 그해 중국갑급리그에서 길림팀이 4등이었다고 함 2.자료에 의하면 1956년 중국축구갑급,을급리그 개시,12개팀 1959년,제1회전국운동회가 있어 갑급리그 치르지 않음 3.이상 글과 자료는 박광순 원로의 기억과 인터넷 검색에 의거함. 기억과 인터넷 자료에 틀린 부분이 있을수 있으니 잘 아시는 분들께서 수정하여 주시면 대단히 감사하겠습니다. 특별히 1956년,1957년,1958년 길림팀의 갑급리그 성적을 알려 주시면 소중한 사료로 남을 것입니다. 원문보기  
101    워이씬? 댓글:  조회:5359  추천:1  2015-11-06
워이씬 ?   차를 사서 고기비늘 같이 차로 뒤덮힌 시가지만 비집고 다니나   명품옷 사서 밖에 나가는 일 없이 허구한날 남편 또는 아내에게만 보이나   핸드폰 사서 워이씬조차 할줄 모르나   답답하기는 마찬가지 다가가서 눈구멍 코구멍 귀구멍을 두손으로 쫙쫙 벌려 놓고 싶을 것이다.   알면서 왜?   학생때 새만년필로 쓰면 그렇잖아도 말 아니 듣는 글발들이 천방지축 뛰여 다녀서 쓰던 필을 그대로 썼다. 쓰던 필을 잃어버리거나 쓸수 없이 되지 않는한은 그러다보면 필도 어느새 필통에서 이사를 해서 내 손가락 사이에 집을 잡아 갔다.   보고 싶을 때는 전화로 짤막하게 알리고 싶을때는 메시지로 진지하게 대화하고 싶을때는 메일로 하면 되지 왜 하필 워이씬? 지금까지 그러면서 거부해 왔다.   그러나 이는 구실에 불과하고 진짜 리유는 따로 있다.   고수가 칼 다루듯이 스타가 공 다루듯이 스스로 자기 몸을 다룰수 있는 경지라면야 언녕 했을 것이다.   솔직이 워이씬이 너무 좋아서 너무 재밌어서 너무 유용해서 두렵다. 손에서 핸드폰을 쥐고 살까봐 두렵다. 옆에 진정 소중한 사람 두고 먼 사람과 놀까봐 두렵다.   다음은… 어떻게 말해야 하나 세상사 별로 알고 싶지 않다고 하면 그렇고, 알고는 싶은데 굳이 당장,꼭,꼬치꼬치 알고 싶지는 않다고나 할까 내가 알아야 될 일이면 알아 지겠거니 말가는데 소 간다는 식으로 느긋해 졌다고나 할까   아예 되려 무소식이 희소식이려니 소식 없으면 잘 있겠거니,잘 살겠거니 그쪽 세상도 잘 돌아 가겠거니 좋은 생각만 하다가 좋은 모습만 그리다가 어쩌다,참으로 어쩌다 오랜만에 만나면 그 희열이 두배,세배로 커지는 맛이 있어서   그담에 요,요 나이라는 녀석이 지난 50년 세월 졸졸졸 잘 따라 오기만 하더니 갑자기 무슨 심술이 생겼는지 내가 무슨 잘못 대해준것이라도 있는지 아니면 자기도 나이 먹어서 무슨 영양분이 필요한지 빌려달라,가져간다 인사치례 한번 없이 내 말똥말똥하던 두 눈에서 야금야금 시력을 가져 가서는 나로 하여금 컴퓨터나 핸드폰 화면만 대하면 이맛살이 쪼그라들게 만든다. 그러느니 차라리 시간만 나면 가슴 펴고 머리 들고 눈을 크게 뜨고 하늘을 보고 강을 보고 산을 보고 한번이라도 더 사랑하는 사람 얼굴 쳐다 보리라.     2015.11.6 연길에서
100    빨간 고추 댓글:  조회:4126  추천:2  2015-09-08
빨간 고추     어느새 아침공기가 차 옵니다.   이른 아침 여기에도 저기에도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마당에 나 앉았습니다.   할아버지는 빨간 고추산을 마주 앉아 깨끗한 천으로 하나 하나 곱게 닦아서 옆에 앉은 할머니께 건넵니다.   할머니는 하나 하나 칼도마에 올려 놓고 잘게 잘게 곱게 썹니다.   마당에 빨간 고추가 펼치여 나갑니다.   땅우에 연변이 그리여 집니다.   파란 하늘 하얀 구름 눈부신 태양을 향해 연변의 마음이 펼치여 집니다.     2015.9.8 연길에서
99    풍경 댓글:  조회:4074  추천:1  2015-07-08
풍경   두 장정이 전봇대에 기대여 있다. 차에 물건을 실어 보내고 잠깐 쉬는가 보다. 관내에서 여기 와 돈버는 사람 많다더니 저 사람들도 그런가?   할머니가 어린 아이 손을 잡고 간다. 친손주 아니면 외손주를 유치원에서  데려 오나 보다. 저 아이의 엄마아빠도 한국에 일하러 간 게다.   젊은 아낙이 손에 종이빽을 들고 간다. 퇴근하는 모양이다. 종이백이 홀쭉하다. 물가가 많이 올랐다. 슈퍼마켓에 들러 먹을 걸  좀 샀나 보다. 공부하느라 아이들이 참 고생이다. 언젠부턴가 거리에서 노는 아이들 보기가 어려워 졌다.   인부는 삼륜차에 장식재료를 가득 싣고 힘겹게 나아 간다. 저렇게 한번 나르면 얼마를 벌까? 힘든 일 하는 사람 없었으면… 맑스님 말씀대로 누구나 하고 싶은 일 하며 필요한 만큼 가져가는 세상은 대체…..   누구는  택시 타고  가고 누구는  자가용 몰고 간다. 좁고 복잡한 길에서 빵빵 대며 기어 간다. 걸어 가는 사람보다 늦다. 길을 잘 못 들어 서면 저렇다! 요즘은 차를 무슨 농사꾼 소수레 갖추듯 한다. 출퇴근 때면 그야말로 차나 소수레나 … 자전거를 살래도 차들이 겁이 나서 못 사겠다. 자전거 길을 만들어 주었으면…   길 양켠에 장식재료 사러 온 차들이 꽉 박아 섰다. 저 아재는 새집을 장식하고 저 아즈바이는 낡은 집을 손 보려나 보다. 툭 하면 10만원,쩍 하면 20만원! 외국선 대개 인테리어 된 집을 팔고 산다. 그러고 보니 워낙에도 집값이 비싸다고 생각은  했지만 전혀 인데리어 안된 상태서 이 값이면 이건 정말 너무 비싼거 아니야?! 조금만 돈 보태면 한국은 물론,일본이나 유럽 가서도 작은 도시 빌라 한채는 살성 싶다. 노임은 그들보다 훨씬 낮지만 서도… 참 다들 잘 버시고 부지런들 하시다.   나는 10년째 집에 손을 안대고 있다. 아내가 회칠이라도 하자는 것을 사랑의 흔적들을 왜 지우려 하나? 절대 안된다! 일언지하에 막아 버렸더니 재작년 내가 없는 사이 아들을 데리고 화딱  해 버렷더라.   참외 장수가 밀차 한가득 싣고 와서 판다. 아주머니 한분이 다가와 산다. 이시절 참외는 남쪽 어느곳에서 나는지 모르겠다. 우리 여기는 아닐테고 중원일대에서 온실 재배해서 보내 오는 건가? 제철이 아니라서 비쌀게다. 좀 기다렸다 싼값에 제맛 나는 것을 많이 사 먹지 뭐! 뭐니뭐니 해도 먹거리는 역시 안전이다. 몹쓸 농약타령  하도 들려서 뭘 먹자해도 주저하게 된다. 다 집어 치고 제손으로 농사 지어서 내 식구들과 가까운 사람들 만이라도 시름놓고 먹게 하고 싶은 마음 불뚝 불뚝!!   머리 들어 해를 보니 아직은 동네 빌딩우에서 웃고 있다. 저러다가 빌딩뒤로 가 버리면 그때면 내 아내가 퇴근해서 길 입구에 나타 난다.   2014.5.9  연길에서
98    모아산 송(颂) 댓글:  조회:4193  추천:1  2015-07-02
모아산 송(頌)   하늘에서 내려다 본 모아산은 한껏 나래를 펴고 바야흐로 땅을 차고 비상하려는 한마리 붕새입니다.   멀리서 바라보면 흡사 연길과 룡정사이에 누운 미인의 젖가슴 입니다.   봄이면 푸른 가슴이 터질듯 부풀어 오릅니다. 비오는 날이면 높은 가슴이 하늘에 맞 닿기도 합니다.   곱게 단풍으로 갈아 입고 련인을 기다리는 소녀 같이 조바심에 불타는가 싶다가 어느새 소복단장을 하고 길 떠난 랑군의 귀가를 기도하는 녀인 같이 숙연합니다.   서남으로 뻗어내린 자락에 만무 과원이 펼쳐 있어 꽃피는 계절 모아산은 허리엔 푸른 솔밭띠를 두르고 치맛자락엔 하얀 사과배꽃이 물결치고 머리엔 울긋불긋 오색꽃이 만발한 나름 멋부린 봄처녀입니다.   추색(秋色)이 깃든 모아산 솔밭은 천하절색입니다. 적송,흑송이 쭉쭉 촘촘하지도 헐헐하지도 않고 울창합니다. 푸른 솔밭에 간간이 노랗고 빨간 참나무,단풍나무와 키작은 싸리나무들 올리다 보면 파란 하늘은 나뭇가지에 가려져 쪼각 쪼각 떨어져 있고 햇빛은 빗발처럼 쏟아지다 혹은 잎새에 혹은 가지에 부딪혀 부셔져 내립니다. 사각사각 락옆 밟는 소리와 멀지 않은 곳에서 들려 오는 산새들의 지저귐 소리… 속세를 훌쩍 떠나 원시림을 걷는 기분입니다.   시내 버스로 도심에서 불과 반시간 거리에 바람이 불면 파도소리를 내는 드넓은 소나무숲이라니! 세상천지에 여기 말고 또 있을까? 복 받은 연길시민들입니다.   60여년전 수많은 사람들이 주덕해 초대주장을 따라 민둥산에 나무를 심으며 흘린 땀이 마르지 않는 샘으로 솟아 나는 아- 모아산!   산아래 연변호텔에서 산봉까지 한시간 반 산허리 민속촌에서 산봉까지 한시간 산어깨 버스종점에서 산봉까지 반시간 높지도 낮지도 가파르지도 밋밋하지도 않아 년령에 따라 몸상태에 따라 편히 등산하기에 안성 맞춤입니다. 산정상에 오르면 사방 수십리가 한눈에 안겨 옵니다. 뭇산들을 멀찍이 둘러 앉혀 놓고 혼자만 넉살 좋게 사람들 곁으로 턱 하니 다가와 앉았습니다.   따뜻한 계절 모아산에 가면 행복에 겨운 이들로 가득합니다. 삼삼오오 얼굴이 상기되여 등산하는 사람들 북치고 장구치고 노래하고 춤추는 할머니 할아버지들 도시락을 펼쳐 놓고 오손도손 이야기꽃을 피우는 가족들 엇싸! 였사!두편으로 나뉘여 신나게 제기를 차는 사람들 깔깔 거리며 유희를 노는 련인들   그리고 여기 저기 날아 다니는 새들과 나무타기를 하는 다람이들과 그물을 거두다 말고 잠깐 해빛을 쪼이는 거미들과 몸보다 무거운 짐을 거뜬히 들어 로동을 희열로 승화시키는 개미들과 ….   지금은 모아산에 봄눈이 내립니다. 송이송이 소복이도 내립니다.   나무가지마다에 하얀 살이 돋아 납니다.   산이 봄을 잉태합니다. 2015년 2월21일 눈내리는 연길에서
97    “避暑,去延边!” 댓글:  조회:5143  추천:1  2015-05-04
“避暑,去延边!”   “避暑,去延边!” 让它传遍全国吧! 只要,全州上下抱着这一梦想,热切地期盼,不懈地奋斗,梦想终将成真! 只要,每一个延边人奔着这一梦想,先我做起,待人友善、文明、谦让;从小事做起,打扫家园,不随地吐痰,梦想一定成真!   然而,切不可急于求成。“弄巧成拙”、“欲速则不达”,教训多多,付出大大;没有春耕夏耘,哪有秋收。不要一人独断,一锤定音;要官员、专家、学者、市民促膝切磋,反复推敲,谋划好百年大计,而后同心同德,锲而不舍,一步一个脚印地去践行。   “避暑,去延边!” 需要几届政府、几代人矢志不渝的追求和汗水。正因为它远在高处,不能急功近利,一些短视的人们,容易不予理睬,半途而废。而我们,那些心中有后代,宁可创建自己美好家园,不愿坐享其成,安于现状的人们,要时刻提防短视的人们成气候,倒行逆施。   “避暑,去延边!” 绝非天方夜谭。 去年,中国旅游研究院和中国气象局评出全国十五大避暑城市,其中,就有延边! 多少年来,延边“养在深闺人未识”,而今终于“千呼万唤始出来”! 尽管这只是专业机关的评出,还未被广而告之,但足以让我们受鼓舞,踌躇满志。   其实,延边何止仅仅十五避暑城市之一,应是十五避暑城市之首。 试看,十五城市中气温最适中的有延边,她位于北纬40多度;十五城市中空气湿度最宜人的是延边,她离海不靠不远;十五城市中空气里最富氧的是延边,她被绿山环抱,还有大片的松树林在身边。 还有,那周边的中国十大名山之一长白山、中俄朝三国跨境旅游、中朝七百里边界河两岸风光,让人一见钟情,流连忘返。 延边,是上天赐福于人类的避暑胜地!   我们再不能歪曲天意,糟蹋自然,玷污美景。 延边,要的,是“美”,不是“强”。 延边,做美,能美出全国最美;做强,却强不到哪儿去。 延边,要的,是“风光美,人更美!”   有一天,经我们努力,“人”流市区的布尔哈通河、烟集河被治理得“鱼翔浅底”,大人们钓鱼、游泳,孩子们在水里嬉戏;路路有自行车道,多一些骑车和走路的人,少一些开车的人;星罗棋布的教育、医疗、体育、娱乐设施向人们提供亲切、高端、经济、舒适的服务,到那时,延边,必将成为中国首屈一指的避暑胜地! 只有到那时,才能梦想成真!人人喊: “避暑,去延边!”   好了,去工作吧! 发微信吧! 种花栽树吧! 笑脸相见吧!     2015.2.6 于延吉
96    스위스 대통령궁 댓글:  조회:4871  추천:3  2015-04-03
스위스 대통령궁   “평범한 저택이였다.할머니 한분이 자기집을 정부에 기증한것을 스위스련방주석 거소(대통령궁)로 사용하고 있었다.작은 방들이 1,2층에 분포되여 있었다.제일 큰 방은 주방이였다.20명 용납할수 있는 공간이였다.식탁은 원형이였다.왜 그런가 물었더니 왈:스위스는 원형탁자를 애용한다.그러면 누구도 자기가 우월하다고 생각지 않는다.가구도 집주인할머니가 쓰던 그 가구라 한다.응접실에는 아무 장식도 없었다.”   전 이란정보총괄이 국왕을 따라 스위스 방문길에 스위스대통령궁에 초대받았을때 보았던 바를 적은 기록이다.   인구 800여만의 스위스는 7인 위원들로 구성된 국가최고행정기관-련방위원회가 나라를 관리한다. 해마다 년말이면 련방의회에서 7인중 한명을 련방주석으로 선발한다.임기는 1년이며 련임을 못한다.관례상 7명이 돌아가며 한다.일인령도의 대통령제가 아니라 7인이 함께 령도하는 련합령도제를 실시하고 있다.   전에 스위스에서 외교관으로 근무한적 있는 한국의 한 회장님은 회고록에 쓰기를 “한번은 7인 련방위원중 한명과 식사하는데 ‘다음달 부터 대통령 해야 된다’며 투덜 거려서 축하할 일이 아니냐고 하니까 ‘일만 많아 진다’”하더라.   스위스는 정치를 해봐야 돈은 생기지 않고 일만 많아 진단다. 그러니까 애초에 깊은 산속에서 밭이 없어 자식들을 다른 나라에 의용군으로 팔아 근근득식하던 나라가 지금은 세계에서 네번째로 잘사는(2014년 국민소득 8만여딸러) 나라로 된게 아닌가 싶다.   돈이 불어나기는 고사하고 정치하면 돈은 줄어들고 일만 많아지는 나라도 있다.노르웨이다.세계에서 두번째로 잘 사는 나라다. 여기서는 돈 없는 사람은 의회의원을 시키지 않는다. 자기 돈 없이 국가에서 주는 돈만으로는 의원역할을 제대로 할수 없기때문이다. 하다못해 식당이라도 해서 나라와 지역을 위해 자기돈을 쓸수 있는 여력이 있는 사람이라야 의원될 자격을 준다. 기자가 왜 돈 들여서 고생 사서 하냐 물으니까 내 사는 동네를 더 좋게 하려고 한다 더란다.   정치에 리득이 따르면 정치가가 아니라 정객,정치꾼들이 득실댈수밖에 없다. 부패가 없을수 없다. 정치에 돈을 가득 달아 놓고 정객,정치꾼들더러 물러 나라 하는것은 퇴마루에 고기를 달아 놓고 쉬팔이들을 쫓는거나 같다.   리극강총리의  “权力寻租空间”을 없애겠다는 말이 바로 정치에서 리득을 없애겠다는 것이다. 습근평 주석의 따끔한 일침을 명기해야 한다. “돈 벌려면 공무원 하지 마라”   일각에서 그러다 능력 있는 사람들이 공무원 안할까봐 걱정이다.   그러다 어느 소위 “능력 있는”부장,국장이 집으로 가버리면 다시 능력 있는 사람 찾지 못할가봐 호들갑이다.   중국에 제일 많은게 사람이다. 진짜 도덕적이고 능력 있는 사람 얼마든지 있다.   스위스나 노르웨이에서 처럼 돈을 벌려고가 아니라 자기가 번 돈으로 혹은 국가에서 주는 적은 노임으로 오로지 세상을 더 밝게 따뜻하게 편리하게 하기 위해서 정치할 사람 얼마든지 있다.   어느 못난 정치꾼이 “참 인재가 없어 걱정이요.”하니까 현자께서 “인재란 인재의 눈에만 보이는 법입니다.”     2015.4.3 연길에서
95    석인골을 생태골로 만들자 댓글:  조회:5023  추천:2  2015-03-28
석인골을 생태골(生态谷)로 만들자   차도 있고 토,일마다 쉬는데 갈곳이 맞같지 않다. 너도 나도 그저 모아산, 모아산이 몸살이 날 지경이다.   사람들 오게 하려면 첫째는 도심과의 거리다. 아무리 좋아도 멀면 잘 안간다. 대도시는 차로 편도 한시간이내 거리가 좋다고 한다. 연길은 반시간좌우가 좋다. 석인골이 연길 도심에서 불과 30키로 반시간좌우다.   다음은 산도 있고 물도 있고 산에 나무가 우거지고 물에는 고기가 헤염치고 산에가서 나물 캐고 열매 따는 재미도 있고 물에서 반디하고 낙시하고 하는 재미도 있고 물가에 녹음 진 나무들이 있어 빙 둘러 앉아 놀 자리도 있는 그런 곳이여야 한다. 석인골이 물가에 나무 없는것 빼고는 그렇다.   셋째는 동네가 깨끗해야 한다. 지금 연변의 농촌 마을위생이 말이 아니다. 돼지,소,개변과 쓰레기가 넘쳐나 다시 가고픈 생각이 살아진다. 옛날 우리의 고향들은 얼마나 깨끗했던가!   넷째,시민들이 올망졸망 재벨로 남새 심고 곡식 심어 먹을수 있는 주말농장 같은 것을 할수 있는 밭까지 있으면 금상첨화다.   다섯째,돈 받지 말아야 한다. 유람,하면 큰 투자를 해서 온갖 시답잖은 시설을 만들어 놓고 입장료를 받아야 하는 줄 안다. 정부가 세금 거두어서 그 세금으로 뭘 만들어서 또 시민들 돈지갑이나 털던 시대는 지났다. 정부란 세금으로 돈 벌라고 있는 것이 아니라 시민들을 위해 돈 쓰라고 있는 것이다. 중앙에서 입이 다슬도록 말하는 복무형정부로 바뀌라는 말이 바로 그말이다. 그런데 아직도 어떤 정부는 세금가지고 돈 벌려고만 한다. 석인골을 생태골로 만든다고 뭘 거창하게 생각할 필요는 없다.  그저 촌민들이 자기 집과 마을을 깨끗이 하고 마을과 강가에 나무를 심도록 장려 하고 사람들이 제멋대로 나무를 베고 물을 오염 시키지 않도록 감독하고 이미 있는 연집하 저수지까지 되여 있는 포장도로를 더 넓히고 아직 포장되여 있지 않은 저수지부터 석인골 마을들까지 흙길까지도 포장하고… 그래 주었으면 시민들도 촌민들도 정부에 대단히 고마워 할것이다.   나라에서 환경보존,향촌관광을 크게 장려하고 있다. 연변 석인골을 중국에서 가장 자연친화적인 생태골로 만들테니 돈 좀 줍시사 청을 들면 나라에서 돈 줄것이다.   2015.3.28 연길에서  
94    연을 날리자 댓글:  조회:4510  추천:1  2015-03-27
연을 날리자!   연길 주정부청사앞 아리랑 광장은 그 크기가 세계에 내놔도 손꼽힐 정도다.   서울에 여의도 광장이 있었다. 조순선생이 서울시장 되고 나서 나무 심고 놀이장 만들고 하여 여의도 공원으로 만들었다.   그때도 서울에 광장이 없어서야 되겠냐며 반대가 심했다고 한다. 일년에 둬서너번 집회 할라고 광장으로 놔 두느니 사람들이 녹음속에서 산책하고 유희할수 있는 공간 만드는 것이 시민에게 득되는 것이라고 우겨서 만들었단다.   아리랑광장도 여의도 공원처럼 되기를 나는 내심 바라고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아니다 광장에서 연을 날렸으면 좋겠다.   넓다란 잔디밭에 나무 한그루 없어 연날리기에 제격이다. 이때까지는 잔디를 사람들이 못 디디게 하는것 같았다. 잔디를 사람들이 디디게 해서 아예 커다란 연날리기 장으로 가꾸어 갔으면 좋겠다. 정부에서 아리랑광장을 조만간 손 본다고 한다. 손 보더라도 연날리기를 념두에 두고 손 보았으면 하는 바램이다.   “아리랑 연날리기 대회” 같은 것을 만들어서 잘 운영하여 전국적 내지는 세계적인 행사로 만들어 볼 웅심도 가져 볼만하다. 넓은 광장과 푸른 하늘과 청신한 바람이 있는 연길이다.   중국에도,미국,일본,한국 기타 나라들에도 연날리기 대회는 많다. 이미 많다고 하지 않을 리유는 없다. 오히려 그만큼 연날리기 애호가가 많다는 반증이다. 미국에서만 일년에 1.5억개의 연이 팔린다고 한다.   한회 한회 대회를 잘 조직하고 키워 나가면 전국적인 대회,세계적인 대회로 키울수 있다. 그러면 시민들의 문화생활을 다채롭게 하고 도시 품위를 드높이고 관광업을 비롯한 지역경제에도 크게 이바지 할것이다.   대회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것은 광장을 자주 개방하고 여러가지 연날리기 격려행사와 격려정책을 펴서 연날리기를 지역문화로 키워나가는 일이다. 연날리기 만큼 아이들 성장에 좋은 놀이문화도 드물다. 부모와 아이가 같이 하고 야외에서 함께 즐기고 푸른 하늘을 바라보며 꿈을 펼치고 부모와 함께 이모양 저모양 상상력을 키울수 있는 놀이다.   만들줄 모르면 온라인에서 하나 사서 아이와 같이 광장에 나가 날려 보자. 다음에는 아이와 같이 만들어서 연을 날리자.   2015.3.27 연길에서
93    개에게 옷 입히면 좋아할까? 댓글:  조회:5193  추천:4  2015-03-12
개에게 옷을 입히면 좋아할까?   인간의 위대함은 인간의 보잘것 없음을 아는데 있다. 어느 철학가가 그랬다.   개들에게 옷을 입힌다. 개가 미워서가 아니라 너무너무 사랑해서   개가 고마워 할까 싫어 할까 아주 추운날에는 좋아 하겠다. 온 겨울 내내는? 날씨에 따라 두껍고 덜 두껍고 얇은 옷 더운 날에는 옷 벗기고 그러면 좋아 할것 같기도 하다. 그런데 어떤 날이 개에게 맵짜고 춥고 그저 그렇고 안 춥고 더운지? 그리고 개들도 기왕 옷 입는거 요모양 조모양 옷 모양 타발을 하지는 않을런지?   분명한것은 개에게 옷 입히면 옷 입힌 사람은 좋아 한다는 것이다. 내가 좋으니 너도 입어라,좋다! 이거다.   엄마와 아들이 제일 많이 싸우는 소재다. 아들은 싫다고 하고 엄마는 춥다,입어라. 여기서 가상한것은 입는 아들이 싫으면 싫다고 감히 뿌리친다는 것이다.   양반들은 못 그랬다. 임금이 긴소매 옷을 입으라면 찍 소리 못하고 입어야 했다. 상놈들이야 말할것도 없다. 너덜너덜한 옷을 입어야지 양반행세 했다간 큰코 다쳤다.   비단 옷 뿐이랴?! 조정에서 머리를 기르라고 하면 길러야 했다. 청조 수백년 남자들이 머리를 길러 머리에 두르고 다녔으니   엄마든,왕이든,황제든 말은 다 니들을 사랑해서 좋은것을 시킨다고 했다.   옷 입히고 총 쏴서 사람 죽이라면 죽여야 한다. 군대니까,전쟁이니까. 옷 입히고 지식분자를 끌어내라면 끌어내야 했다. 홍위병이니까,고린내 나는 지식분자니까 옷 입히고 노래하라면 노래해야 한다. 단위활동이까,령도가 해라니까   옷 입고서 애완견 해야하는 개나 옷 입고 무슨 “장” 무슨 “님”행색 하는 사람이나   어느때든 옷 입는 자의 느낌은 중요하지가 않았다. 입히는 자의 멋대로다.   앞에 철학자의 말보다 이말이 어떨까 “인간의 위대함은 옷 입고 안 입어야 되는 때를 아는데 있다.”     2015.3.12  연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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