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편소설 황혼 제2권 김장혁
31. 불쌍한 아빠
갈수록 심산이라고 지하철은 깊고 깊은 텐넬 암흑천지로 깊숙이 달려들어가 몸부림쳤돼다. 다만 반디불 같은 지하철 조명등이 암흑을 물리치려고 아득바득 애쓴다. 그 덕분에 누가 누군지는 겨우 분간할 수 있었다.
깜빡!
갑자기 지하철 조명등마저 꺼벼버렸다.
정전사고였다.
설상가상으로 지하철도 먹칠한 듯한 텐넬 속에서 귀청을 자극하는 짜르륵 스톱 소리와 함께 천천히 멈춰섰다.
삼복지간인데다가 정전사고로 에어콘이 작동하지 않아 지하철 안은 찜통처럼 무더워났다. 정전사고로 지하철 안에서는 앞을 분간하기조차 어려웠다.
암흑 속에서 공포는 귀신의 곡성을 지르면서 스물스물 지하철에 기여들었다.
여기저기서 불만소리, 아우성소리 터지었다. 뒤이어 핸드폰 불빛이 어지럽게 지하철 안을 비춘다.
려향은 속이 터지는 것 같았다.
먹칠한듯이 새까만 지하철 안에서 려향은 손등으로 땀을 훔치고 눈물도 훔치었다.
정전사고로 인한 긴급한 상황은 그녀의 삼검불 같은 머리를 더욱 복잡하고 긴박하게 돌아가게 만들었다.
앞도 분간하기 어려운 어둠 속에서 려향의 눈 앞에는 금방 구치소에서 본 엄마의 격노한 쌍까불눈이 삼삼거렸다.
귀전에는 철창 속 엄마의 고함소리가 아프게 들리는 상 싶었다.
“넌 꼭 성을 류씨로 고쳐라! 넌 근본 종호 딸이 아니야! 류덕재 행장 친딸이야!”
“민족도 고쳐라, 위대한 한고조 후대 한족으로.”
종호가 친아빠 아니라는 말은 려향에게 너무나도 큰 타격이었다.
그 놀라운 소리에 충격을 받은 려향은 면회실에서 나와 까무러칠번 했다. 여경이 간신히 부축해줘서야 구치소에서 간신히 나왔다.
려향은 한참 구치소 밖의 나무 그늘 알에에 앉아 울면서 쉬었다.
한참 후에야 그녀는 간신히 일어나서 비틀거리면서 지하철역에 이르렀던 것이다.
려향은 깜깜한 지하철 안에서 도리머리를 절레절레 저었다.
(아빠 친딸이 아니라고? 엄마는 어쩜 그런 허튼 소릴 친단 말인가?)
그녀는 류려평의 말을 믿고 싶지 않았다.
(허튼 소리야! 아니, 엄만 미쳤어! 불길이 활활 타번지는 그 쌍까풀눈을 봐라. 아빠를 잡아먹을 상 이빨을 빡빡 가는 거 상통을 봐라. 도대체 아빠하구 무슨 원쑤를 졌다고 저럴까? 안락사시키려고 미쳐 날뛰더니 이젠 내가 아빠 친딸이 아니라고? 픽!)
려향은 덫이를 드러내며 입귀로 냉소를 흘리었다.
(창피하지도 않아? 뭘? 내가 류덕재 은행장의 친딸이라고? 그럼 엄마는 평소에 ‘오빠’, ‘오빠’ 하던 류덕재하구 불륜을 저질렀단 말인가? 난 사생아란 말인가?!)
려향은 너무 창피해 달아오른 통통한 얼굴을 두 손으로 감싸 안고 무릎 두새에 떨어뜨리고 말았다.
(그래서 엄만 자꾸 날 보고 성을 류씨로 고치라고 했는가? 뭐, 한고조 류방의 후손이라면서? 그땐 엄마 성을 타라고 그러는가 했는데. 완전히 불륜아 류덕재 성을 따르라는게 아니고 뭔가? 진짜 엄만, 어쩜 종친 오누이 사이에 불륜을 저질렀단 말인가? 불륜이라도 세상 창피한 패륜이야. 세상 사람들이 알면 뭐라겠어? 창피해서 어떻게 머리를 들고 세상에서 산단 말인가?)
려향은 생각할수록 눈앞이 캄캄해났다.
그녀는 이 참혹하고 창피한 현실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아빠가 이 진상을 알면 얼마나 정신상 큰 타격을 받겠는가? 자칫 또 자살 소동을 일으킬지도 몰라.)
순간, 려향은 아빠가 너무 불쌍한 나머지 앓음소리를 토해내기까지 했다.
그는 아파나는 가슴을 부여안고 신음소리마저 끙끙 냈다. 지하철이 시끌벅쩍 떠들어 그녀의 앓음 소리와 신음소리를 듣지 못해 다행이었다.
(아빠는 날 박사까지 만들자고 얼마나 고생했는가? 엄마는 날 본과를 졸업했으면 됐다면서 취직하라고 들볶았댔지. 허나 아빠는 본과만 졸업해선 지식과 경제 시대에 발도 붙이기 어렵다면서 기어이 날 데리고 한국에 나왔지. 날 문학박사를 만들려고 아빠는 앞당겨 신문사 부사장직무마저 내려놓고 내부퇴직하고 한국에 나와 7년 동안이나 토굴 같은 셋집에서 건축공지로 다니면서 얼마나 많은 고생을 다했는가.)
려향은 별의별 고생을 다 한 아빠가 너무 불쌍해 두 볼에 줄 끊어진 구슬처럼 뜨거운 눈물을 주르르 흘리었다.
(아빠는 건축공지에서 일하다가 쇠파이프오리발이 무너지면서 4층 높이에서 땅바닥에 떨어졌댔지. 그 바람에 쇠파이프에 찔려 그만 불행하게도 한쪽 신장과 그거 마저 잃었다. 그때 생명만 건진게 다행이었지. 후에는 건강상황으로 중한 일을 하지 못하게 되니 건축공지에 가서 하루 24시간 밤낮이 없이 보초당직을 섰지. 아빠는 그렇게 고생스레 번 돈으로 내 공부 뒤바라지를 했지.)
려향은 볼에 하염없이 흐르는 눈물을 두 손으로 닦으면서 흑흑 흐느끼었다.
(아빠는 그렇게 고생스레 내 공부 뒤바라지를 했지. 그런데 애나게 공부시킨 문학박사 딸이 자기 친딸이 아니라는 사실, 그 절망적인 비극을 알게 되면 어떻게 되겠는가?아빠의 유일한 희망은 이 무남독녀인데 비극적인 진상을 알면 얼마나 절망에 빠지겠는가? 이 비극을 절대 아빠한테 말할 수 없어. 설마 아빠가 친아빠 아니라도 36년 동안 길러준 양아버지도 나한텐 아버지야.)
려향은 으스러지게 쥔 주먹을 부르르 떨었다.
(엄마는 나쁜 녀자야. 세상에 둘도 없는 마녀야, 불륜녀야. 아니, 세상에 둘도 없는 패륜녀야.)
엄마가 돈이 들까봐 주산알을 튕기면서 자기를 한국에 나가지 말라던 때로부터 려향은 그랑데 같은 엄마를 곱게 보지 않았다. 설상가상으로 불륜을 저지른 걸 안 후부터 려향은 증오하기까지에 이르렀다.
(뭐? 날 보고 무슨 류씨 성을 따르라고? 퉤! 세상 더러운 류씨 오누이 성을 따르라고? 절대 안돼!)
려향은 자기 전도를 망친 엄마에 대한 격분으로 온몸을 부르르 전률했다.
(엄마는 깍쟁이야. 내 한국에 나와 공부하는 7년 동안 돈 일전한푼 보내지 않았어. 말론 아빠가 쓸가 봐 안 보낸다고 했지만. 너무 하잖아! 그랑데보다 더한 깍쟁이야. 엄만 진짜 사람을 잡아먹는 마녀야. 어쩜 아빠를 그렇게 헐뜯고 몰래 바람을 피워? 날 사생아로 만들어?)
뒤이어 그녀는 의문부호가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엄만 어째 여태까지 줄곧 종호 아빠가 친아버지 아니라는 말을 꺼내지도 않았을까? 어째 이 시점에 불쑥 꺼냈을까?)
려향은 량미간을 찌프리며 도리머리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때 지하철 안의 조명등이 환하게 켜졌다.
그녀의 눈 앞에 뭔가 환하게 안겨왔다.
(엄만 혹시 역은 꾀를 쓰는게 아닐까? 외할아버지 산소에 뭘 묻어두었길래, 면회실에서 그리 신비하게 암시하는 걸까? 이제까지 딱 한번 외할어버지 산소에 데리고 갔댔지. 그것도 내가 한국에 나오게 되니까. 언제 올지 몰라 그랬을까? 아니면 언젠가는 거기 신비한 뭘 있다는 걸 암시하려고 미리 사전 포석한 걸까?)
려향은 엄마가 하던 말을 쭉 련계해 생각해보았다.
“할아버지 산소 비석을 찾아가 봐라”
“종호는 친아빠 아니다.”
려향은 무릎을 탁 치며 벌떡 일어났다.
(혹시 엄만 할아버지 산소에 걸 내 아빠한테 말할가봐 그러는게 아닐까? 산소에 걸 아빠와 공유하지 못하게 하자는 속셈인가?…)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려향은 도리머리를 절레절레 저었다.
(이 일을 어쩐단 말인가?)
그때 텐넬에 전기 불이 환하게 켜졌다. 이윽고 지하철도 천천히 앞으로 미끄러져 나갔다.
려향의 눈 앞도 점점 환해지기 시작했다.
(우선 친아빠인가 DNA 검사를 해 봐야지.)
려향은 여태까지 36년 동안 그렇게 따르던 아빠를, 그 아빠와 DNA검사 놀음까지 해야 되는 현실에 마음이 더 없이 쓰라려났다.
(별 수 없어.)
려향은 덫이로 입술을 옥물었다.
신도림역에서 려향은 대림으로 가는 지하철을 갈아타야 했다.
그녀는 신도림역의 높은 층계를 한 층계, 한 층게 올라가면서 문뜩 마음의 상처를 건드리는 뭔가 있었다.
(바로 신도림역 이 층계야. 아빠는 무거운 책짐을 메고 지고 이 층계를 오르다가 벨트가 툭 끊어져 괴춤마저 벗겨졌다고 하잖았던가.)
유서 깊은 신도림역 그 층계를 오르노라니 려향은 콧마루가 시큼해났다.
뒤이어 그녀는 만감이 교차했다.
(아빠는 조선민족 항일렬사와 항일영웅들의 사적을 만방에 홍보하고 우리 조선민족 력사에 남겨려고 한평생 얼마나 고생했는가? 그런아빠가 이 딸마저 잃어버린다면 얼마나 절망에 빠질까?)
려향은 민족투사 같은 아빠를 잃고 싶지 않았다.
그녀는 신도림역 층계를 다 오르자두 손을 가슴에 모아안고 속으로 푸른 하늘에 빌었다.
(하느님이여, 우리 아빠를 보우해주옵소서. 제발 DNA검사를 해도 우리 부녀간을 갈라놓지 말아 주옵소서.)
려향은 기도를 마치자 지하철을 갈아 타고 곧추 대림으로 달려갔다.
그녀는 여느 때와는 달리 돈을 남으려고 대림 몇역전 앞 역에서 내리지 않고 대림역까지 곧추 달려가 내렸다.
그녀는 보라매공원에 가서 좀 돌면서 사색을 더 더듬을까 궁리하다가 그만두고 곧추 셋집으로 향했다.
뜻밖에 반토굴 같은 셋집 문은 잠겨 있지 않았다.
(아빠, 안 나갔어?)
려향이 문을 뚝 떼고 들어서니 구수한 감자장국 냄새가 코를 찔렀다. 아빠는 려향이 젤 맛있게 먹는 감자장국을 끓여놓고 기다리고 있었다.
아빠가 우쭐 일어나 마주 나오며 반갑게 맞아주었다. 주름살이 얼기설기 간 거무스름한 얼굴에는 전에 없이 환하게 웃음까지 지었다.
“돌아왔니? 어서 올라오라.”
종호는 려향의 손에서 핸드빽까지 받아쥐고 손잡고 구들에 올라갔다.
려향은 아빠의 그 티없이 맑고 깨끗한 부애를 온 몸으로 한껏 느끼었다.
순간 려향은 콧마루가 시큼해났다. 가슴이 뭉클해났다.
려향은 입귀를 씰룩거리며 덫이를 드러내더니 더는 참지 못하고 아빠 품에 와락 안기며 울음보를 터뜨렸다.
“아빠!”
종호는 려향을 품에 받아안으며 오리무중에 빠진 채 눈을 치켜떴다. 눈섭 꼬리마저 쳐들리었다.
“왜 이래? 길에서 누구한테 괴롭힙당했니?”
려향은 아무 대답도 못하고 그저 흐느끼며 대성통곡쳤다.
종호는 핸드빽을 침대 위에 훌 쥐어뿌리고 나서 두 손으로 품 속에서 려향의 얼굴을 받들더니 물었다.
“얘, 무슨 일이냐? 울긴 왜 울어? 오늘 면접 본다더니 혹시 글렀니?”
려향은 눈물이 글썽한 채 흐릿한 두 눈으로 아빠를 쳐다보며 도리머리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럼 무슨 일이냐? 어서 말해라.”
“아빠!”
려향은 또다시 종호 품에 안겨 대성통곡쳤다.
종호는 조급해났다.
“얘, 도대체 무슨 일이냐? 아빠하고 말해라.”
종호는 려향을 품에 꼭 끌어안고 다그쳐 물었다.
“혹시 최전무를 만났댔어? 최전무 일이 틀려도 괜찮아. 세상에 최전무보다 더 좋은 총각이 쌔고 버렸어. 문학박사 뭐 시집가지 못하겠니? 내 꼭 더 좋은 신랑감을 네 앞에 데려다 주마.”
아직도 딸을 걱정하는 아빠의 말에 려향은 오리무중에 빠진 아빠가 더욱 불쌍해났다. 그녀는 아빠의 얼굴을 매만지면서 더 구슬프게 엉엉 울었다.
콧구멍만한 반토굴 셋집에서는 쓸쓸한 울음소리 아빠의 속을 에이는듯이 다 파가며 오래도록 울려 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