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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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근대 “중국어”의 탄생(김문학)
2010년 07월 21일 14시 17분  조회:6420  추천:60  작성자: 김문학

<장편연재>근대 재발견·100년전 한중일(8)

근대 “중국어”의 탄생


김문학


  1910년 8월 16일, 상해에서 차이나호 객선이 미국으로 향하여 출항했다. 그 객선에 탄 70여명의 젊은 중국인 유학생들속에 영리해보이고 잘생긴 한샘한 청년 호적이 끼여 있었다.

도미후 호적은 코넬대학에 입학, 농학부생에서 다시 문학부로 전학, 1915년에는 컬럽비아대학 대학원에 진학하여 유명한 세계적 철학자 듀이에 사사, 1917년 귀국하여 북경대학 교수로 취임한다.

그는 노신과는 달리 한자문화권이 아닌 서양의 신생공화국 미국에서 서구문명의 바다속에서 청춘시절을 보낸다.

  노신과 호적, 중국 근대문화사에 희유의 공적을 남긴 이 두 문화거두는 성격이나 사상, 생의 노정이 각기 달랐지만 그들사이에는 동질성이 두개나 있었다.  하나는 모두 문화의 경계를 넘은 “세계인”이였다는 점이고 다른 하나는 중국 근대의 신문화운동의 리더로서 근대 중국어 탄생의 비조였다는 점이다. 미국에서 서구의 근대문학의 교양을 미국학생과 같은 레벨로 섭취한 호적은 중국 고전한문(문언문)은 있는대로의 사물 뜻을 표현할수 없다는 치명적 결함을 발견하게 된다. 한나라이래의 고전적 낱말과 문법을 토대로 하는 문언문의 전통은 형식적인 수사, 레토릭 성향이 가장 강할뿐 대중적 커뮤니케이션이라는 전달, 표달방식이나 그 능력이 미약하다는것을 의식하게 된다.

  국민국가로 변하려면 역시 미국의 근대영어체계와 같이 언문일치의 구두어문 즉 백화문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고 호적은 큰 발견을 한다. 그리하여 그는 구미의 진화론을 원용하여 중국의 전통적인 언어의식을 전변시켜 새로운 언어 즉 국어양식을 창출해야 한다는 주장에 이른다. “사대부계층=문언문, 민중계층=백화문(즉 구두어문)”이라는 전통적언어가치구조를 역전시켜 새로운 구두어 즉 새로운 국어로 진화시키는것이 젊은 호적의 파격적인 구상이었다.

  그가 1916년 집필하고 이듬해 《신청년》에 발표한것이 바로 중국을 진감한 “문학개량추의”라는 논문이였다. 그리고 그뒤 1918년 5월 노신의 근대의 첫 백화문소설인 《광인일기》의 등장으로 중국에는 본격적인 근대 “중국어”(언문일치의 백화문체계)가 탄생한다.

  물론 1913년 일본의 국어개혁 영향으로 문언문사대부언어의 전통적 상징인 과거제도의 페지를 뒤이어 교육부에서는 독음통일회의를 소집하여 북경어를 바탕으로 표준어 제정을 시도했다. 호적과 노신의 이론적 지도와 문학적 실천이 없었다면 근대“중국어”는 대폭 지연됐을것은 뻔하다.

  호적은 또한 근대문학사에서 최초의 백화문시집 《상시집》을 1920년에 출판하여 자신의 이론을 직접 실천한다. 노신의 근대 중국어(백화문)의 실천은 사실 일찍 일본어의 영향으로 시작된다.

  노신의 일본유학생활에 대해 모든 연구자들은 그와 일본과의 연관을 사상이나 문학만으로 보고자 한다.그러나 생활자로서의 노신과 일본어 내지는 그속에서 기인되는 노신의 백화문체의 상관관계에 대해서는 무시하거나 결락돼있다. 필자의 연구에 의하면 일본에서 유학하는 노신은 중국의 문언문에 비해 대중이 용이하게 이해, 접근할수 있는 근대 일본어같은 문체, 언어야말로 중국인이 택해야 할 국민언어라는것을 터득했다.

그의 전집을 실제로 읽으면서 발견되는 표현, 단어, 문법 등은 일본어 요소가 너무나 많이 발견되며 단순히 노신은 일본어를 통해 세계를 내다보는 강유력한 수단이였을뿐만아니라 일본어는 노신의 문학과 사상의 피와 살이 돼있었다. 노신이 남긴 장서속에 일본어 서적이 큰 비중을 차지한 사실도, 죽기전까지도 상해 우치야마서점에서 일본서적을 적극 구입했다는 사실도 이를 립증하고있다.

  노신이나 노신보다 선배인 양계초 역시 일본의 신소설, 문체에서 배울것이 많다고 1920년에 요코하마에서 창간한 《청의보》 등을 통해 반복적으로 주장했던 배경에도 노신과 동일한 일본어인식에서부터였다. 문화교류란 본시 일방통행이 아니고  착작한 교차로마냥 상호적인 흐름이 그 특징이다. 근대전까지만 해도 일본에게 문화를 배워주던 “사제관계”에서 역전돼 중국은 일본에서 영향을 받게 된다.

  일본유학을 통해 대륙으로 밀물같이 역수입된 일본제 한자단어, 언어들은 지금까지 중국에서 상용되고있는 사회, 인문, 철학, 과학 등 분야의 70%이상 차지한다는 통계가 있다. 1911년에 출판된 《보통백과신사전》, 1915의 《맹인할마지신명사》나 1958년 고명개(高名凱), 유정염 공편저의 《현대한어외래어사 연구》, 《현대한어중 일본에서 착용한 어휘》에 의하면 근대중국어의 언어, 문자, 정치, 경제, 과학, 교육, 법률, 풍속, 군사나 일상용어에 이르기까지 모든 영역에서 일본어의 지대한 영향을 받았다. 력사, 민족, 국가, 종교, 신용, 자연, 침략 등 어휘들도 일본에서 수입된것이다.

  그리고 “화(化)”를 단 성경성향을 나타내는 “민주화”, “혁명화”, “근대화”, “현대화”, “기계화”, “과학화”, “세계화” 역시 일본에서 수입한것이다. “성(性)”, “식(式)”, “형(型)”, “관”, “력(力)”, “계(界)”, “적(的)”이 붙은 표현이나 단어 역시 일본어이며 중국이나 한국에서도 일본어 신명사, 신조어가 너무나 방대하기때문에 “왜색어”로 경계하는 운동까지 일어났던것이 아닌가. 청말 개화파의 지도자 장지동이 이에 대해 어느 서류에다 “신명사를 쓰지 말자”는 글귀를 썼는데 수하의 학자 고홍명이 “‘신명사를 쓰지 말자’는 글귀의 그 ‘명사’란 단어가 바로 신명사입니다. 일본서 수입한것이지요. 장대감님.”하고 말하며 박장대소했다고 한다.

손문은 반청독립봉기를 수차 일으켰는데 그는 그 봉기를 “조반(造反)”이라 했다. 어느날 일본신문을 본 부하인 진소백이 “지나혁명당 손문”이란 글귀를 손문에게 보여주니 손문은 그 표현의 신선함에 감명을 받고 “옳거니! 이제부턴 ‘조반’이라 하지 말고 ‘혁명’이라 해야지.”하면서 무릎을 쳤다는 에피소드가 있다.

  근대 한국어(조선어)의 형성에도 일본어의 신명사, 신조어들이 중국과 같이, 아니 더 이상으로 피와 살이 되였다는것은 아마 잘 알려지지 않은듯 하다. 지금도 조선족들은 아예 “벤또”, “리어카”, “앗싸리” 등 일본어를 아무런 거부감없이 우리 말로 사용하고있다. 사실 이미 우리 말로 굳어버린것이다.    
                 
  외래어 단어가 수입되여 이미 우리의 일상어로 정착, 고정됐을 때는 그것은 이미 하나의 문화와 살점으로, 피덩이로 돼버린것을 의미한다. 단어가 의사를 담은 문화의 표징물이라면 그 단어자체는 한 민족과 나라의 엄연한 문화와 함께 사고양식, 행동양식을 규정짓는 정신적재부인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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