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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 애국지사 황현의 비장한 죽음
2017년 04월 12일 18시 20분  조회:3254  추천:28  작성자: 김문학
근대 재발견 100년전 한중일(90)

김문학
 

애국지사 황현의 비장한 죽음

 

  1910년 8월 29일, 《한국병합에 관한 조약》이 공포, 경술국치에 이기지 못해 자결한 우국지사 선비가 있었다.
 
  그가 바로 이 글에서 말하려는 희대의 천재적지식인 매천 황현(黃玹 1855~1910)이다.
 
  당시의 여러 자료를 섭렵해보아도 경술국치에 비분하여 스스로 자살을 택한 우국지사는 그리 수적으로 많지 않았다.
 
  하나의 왕조로서 조선왕조(500년 지속)는 하루 아침에 일본제국주의에 의해 망했다. 더구나 이는 왕조의 멸망과 함께 수많은 조선동포들에게는 나라의 멸망ㅡ망국과 고유한 언어, 문화를 가진 천수백만 인구의 겨레가 이민족지배의 굴욕적인 변화였다.
 
  매천 황현의 죽음은 많은 겨레들의 굴욕적 심경을 대변하는 사건이기도 할것이다. 필자가 20년전 일본에 류학생으로 와서 춘원 이광수와 함께 대단히 숭경하는 민족의 문인이 황현이였다. 처음 황현의 저작 《매천야록》을 접하게 된것은 1990년 일본 국서간행회에서 출간한(박상득 역) 책이였다.
 
  한문 원문을 일본어로 역술한 이 책을 읽으면서 저자 황현의 고매한 선비적인 기풍과 유머스럽고 평명한 문체로 엮어나가는 조선 근대사의 뒤면을 읽을수가 있었다.
 
  이광수의 장편소설을 읽은 감동만큼 필자는 매천의 텍스트에 깊숙이 빠져들어갔던 기억은 오늘도 뇌리속에 새롭다.
 
  당시만 해도 우국지사의 수준을 초월하여 민족의 렬사적의미의 인물 매천에 대한 한국내에서의 조명은 그리 많지 않았다. 그리하여 필자는 이곳저곳에서 나름대로 그에 관한 글이나 자료를 간신히 얻을수 있을뿐이였다.
 
  갑오농민전쟁의 최고 지도자인 전봉준과 동년인 1855년 출생인 황현은 호가 매천(梅泉)이며 전라도 구례사람이였다.
 
  유년시절때부터 린근에 신동으로 소문이 자자했는바 시와 글에 능하였다고 전해진다. 청년시절에는 서울에 상경하여 문명(文名)을 자랑하던 이건창(怏建昌)이나 김택영(金澤榮) 등 문인들과 친분을 쌓았다.
 
  1887년과 1888년에 두번씩이나 과거에 응시하여 두번 다 최우수 성적을 따낸다. 그러나 임오군란과 갑신경장을 겪은 국운이 기울어져가는데도 불구하고 민씨정권에 붙어서 사리사욕을 채우는데 정신없는 관료들의 극도의 부패타락상을 보고 그는 관직을 멀리하게 된다.
 
  그후 곧 시골고향으로 하향하여 은둔생활을 보낸다. 벗들의 재삼 출세권고를 뿌리치고 독서와 글짓기에 전념했다.
 
  그러다가 1905년 을사보호조약이 체결된 소식을 접하자 황현은 비분강개한 나머지 청나라로 망명을 시도했으나 려비부족으로 단념해버렸다.
                                              
    1910년 8월 일본제국의 한국합병에 56세의 황현은 이렇게 절명시를 남긴다. “나라를 위해 그 어느 누구도 순사(殉死)하는 자가 없으니 이 얼마나 슬픈 일이냐!” 이 절명시는 장지연의 《진주경남일보》에 게재되기도 한다. 그는 고향에서 대량의 아편을 복용하여 죽음을 택한다. 그의 생애야말로 “조선 최후의 기개높은 선비”였다.
 
  그가 남긴 유저로는 《매천집》, 《매천야록》이 있으나 전자는 친구 김택영에 의해 상해에서 간행되여 중국에서 그의 문명(文名)을 날렸다.
 
  그리고 《매천야록》에 대하여 생전에 황현은 바깥사람에게 보이지 말라고 자손에게 일렀다고 한다. 일제강점하에 용납될수 없는 기록임을 알았기때문일것이다. 1939년 일제총독부의 조선사편수회가 이 기록을 발견하지만 비밀에 붙여버린다. 광복후에 이 책은 해빛을 보게 되여 1955년 출판된 이래 줄곧 조선말기 력사, 인물연구의 기초자료로 지목되여왔다.
 
  황현이 이 책을 집필하기 시작한것은 그가 39세인 1894년이라 추정한다. 비록 제목에 야사라는 뜻의 “야록”이란 단어가 붙었으나 그 시대의 력사사건과 인물일화 등이 아주 정확하게 기록되여있어 사학계에서는 야가사 아닌 실록으로 보는 경향이 강하다.
 
  그리고 일본사학계에서도 이 책은 당시 조선 인물, 력사를 인식하는 중요한 자료로 거듭 인용, 고찰하기도 한다.
 
  이 짧은 글에서 《매천야록》의 전부를 다 소개하기는 지난(至難)한 일이지만 간단하게 말하여 조선말기의 력사사건 이를테면 임오군란, 청일전쟁, 로일전쟁이나 중요한 력사사건, 일본인에 의한 지극히 야만적인 민비(명성황후)의 암살사건, 대원군 집권기에 대원군의 인물상과 그 주변의 인물들에 관한 일화, 조선조내부의 당쟁이나 권력투쟁, 을사오적, 고종일화 등이 수록되여있다. 이 책에는 조선말기와 일제의 침략력사가 엇갈리면서 속속 이어지는 격동의 근대사드라마를 보는듯 하다.
 
  외국인이 근대 조선을 바라본 명저로는 비숍의 《조선과 그 이웃 나라들》, 새비지.랜도어의 《고요한 아침의 나라 조선》, 할버트의 《대한제국 멸망기》 그리고 메켄지의 《조선의 비극》 등이 있다면 같은 맥락에서 조선인 자체가 쓴 당시의 조선지, 인물사적 가치로 《매천야록》은 두말할 나위없이 명저의 반렬에 올라야 한다.
 

 

  우국지사 매천 황현은 죽으면서도 우리에게 위대한 로작을 남기고 갔다. 그런 그를 한국정부에서는 1962년 건국훈장 국민장을 추서하였다. 구례의 황현 집터에는 유품과 같이 그의 영정과 위패가 모셔져있다고 한다. 한번 꼭 찾아가 참배하고싶은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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