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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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인에게 어떤 정신이 필요하나? [전리군 김문학 대담]
2016년 10월 28일 17시 14분  조회:3417  추천:40  작성자: 김문학

〔문화대담〕

중국인에게 어떤 정신이 필요하나?

 전리군(钱理群)+김문학

o. 들어가면서

   전리군선생은 당대 중국 인문학의 상징적 인물로 추앙받고 있는 거물이다.
   북경대학 중국문학계열의 권위적인 교수이며, 1980년대이래 중국에서 가장 영향력을 과시해온 인문학자의 한 사람으로서 노신, 주작인 연구의 태두로서 알려져 있다.
전교수의 20세기중국지식인의 정신사적 고찰과 20세기 중국사경험의 반성과 총화는 국내와 해외에서도 높은 평가를 받고있다.

    나는 개인적으로 전리군교수의 여러 저작을 읽으면서 그의 팬으로 되었으며, 내심에서 전교수를 존경하게 되었다.

    언젠가 기회가 닿으면 배견하고 직접 가르침을 받고 싶은 심정도 매우 간절했다.
    의외로 나의 소망은 생각보다 조속히 찾아왔다. 중국사회과학원 왕학태선생과 북경대학 중문계 주임 진효명 교수의 연줄로 쉽게 전리군선생과 연결이 되었다.

    전화에서 들려오는 전리군교수의 목소리는 약간 쉰소리에 자장(磁场)이 있는 부드러운 소리였다.

“아, 일본에 계시는 비교문화학자 김문학씨군요. 동아시아 3국비교 문화론저를 여러권 읽어서 벌써 알고 있었답니다.”

내 핸드폰에서 들려오는 전교수 말씀에는 매우 반가운 기색이 역력하였다.

“아, 근데 어쩌죠? 내가 현재 북경시내에 살지 않고 창평(昌平)의 노인아파트에서 아내와 둘이서 살고 있어요. 북경시내서 여기까지 오시려면 불편하실텐데요…”

“고까짓것 거리야 아무것도 아니죠! 전선생님을 뵈울수 있다면 바다를 건너서라도 찾아갈수 있습니다.”
내가 괜찮다고 웃으면서 대답하였다.

“나야 너무 환영하지요! 그러잖아도 김문학씨를 한번 만나뵙고 싶었던 차라, 그럼 여차여차하게 오시면 됩니다.’

전선생은 차근차근 주소와 오는 길을 가르쳐주셨다.

2016년 6월29일 오후 2시, 우리 일행이 도착한 목적지는 호화로운 5성급 호텔수준의 노인아파트였다.
키가 작달막하고 동그란 얼굴에 백발이 성성한 인자한 노인이 우리를 반겨주었다. 전교수는 흔히 길거리에서 볼수있는 온화한 할아버지의 모습, 그러나 작은 두눈은 예지의 빛을 뿌리고 있었다.

“요근년에는 기자의 인터뷰를 포괄해서 거이 사람을 안 만나요. 김선생은 일본에서 온 귀한 손님이고 또 한번 만나보고 싶던차라, 잘 오셨어요…”
싱글벙글 전리군선생은 만면에 희색을 띄우며 반겨주셨다.

“저야말로 영광이지요. 중국 인문학계의 태두이신 전선생님과 대담을 할수 있으니 말입니다.”

우리의 대담은 호흡이 잘 맞았으며 자연스럽게 전개되어 어느 사이 3시간이 흘렀다. 웅변가이신 전교수님은 종횡무진으로 구수하게 이야기를 펼쳐 나 또한 유쾌한 대담을 체험할수 있었다. 대담이 종료되자, 전교수님은 나에게 흔쾌히 제사(题词)를 써주셨다.

“两脚踏三国大地,一心评东亚文明”
이 14자야 말로 내가 하고 싶었고 또 실천하고 있는 좌우명이다. 전리군선생과의 3시간의 대담을 아래에  간추려서 정리 해본다.



1. 행동하는 지식인

김: 전선생님은 말그대로 당대 중국을 대표하는 인문학계 학자의 한분으로서 현대문학, 사상,사회연구에 많은 업적을 쌓았습니다.

    제가 전선생님을 존경하는 또 하나의 이유는 전선생님의 몸에 모든 수식어를 빼놓고도 선생님은 자신의 이념을 행동으로 실천하는 학자, 지식인의 본보기라는 점 입니다.

      2002년 북경대학 교단을 떠난뒤로 중학교육에 혼신을 다해 실천해오셨습니다. 장장 12년동안 기층 중학교육에 투신했지만 많은 고배를 마셨고 실패를 했지만 선생님의 “행동하는 지식인”의 실천에서 또 많은 소중한 체험,경험들을 통해 교훈이나 방법을 모색했으리라 믿습니다. 선생님은 왜 대학교수직에서 정년퇴직 하신 다음  중학교육에 투신하셨는지요? 서재에서 글이나 쓰면서 정년퇴직후 생활을 얼마든지 즐길수도 있는데 말입니다.

전: 사실 난 1998년부터 중학교 어문교육에 관심을 가졌어요. 관심을 가진 동기는 두가지가 있었는데, 하나는 중국의 문제에서 가장 근본적인 문제가 교육문제라고 느꼈습니다. 인간이 노년에 들어서면 모든것을 다 보아내고 절망할수 있지만 유일하게 아이들한테는 절망 할수 없지요. 애들이 있기때문에 우리는 절망에 반항할수 있거든요.

    두번째로 대학교수가 중학으로 내려가는 것은 5.4의 전통이지요. 노신, 주작인,주자청도 다 중학교원을 한적 있잖습니까?

    그래서 내가 우선 선택한 곳이 내가 18년동안 살았던 귀주였지요. 여기서 향토교재《귀주독본》을 편찬하여 “자신의 발밑을 알자”는 과제를 제기하고 변두리지역에서 교육을 전개시켰어요. 그전에 북경등 중앙지역에서 하다보니까 이데올로기의 장애물이 너무 컸거든요. 10여년동안 중학교육실천속에서 수많은 곤난에 봉착하고 눈물도 많이 흘렸지만 아무튼 헛수고가 아닌 실천이었다고 자부합니다.

2. 무엇이 우리의 교육을 망치는가?

김:  2002년 퇴직후부터 2014년 12년동안 전선생님의 기층교육을 위한 실천, 눈물겨운 노력은 전 교육계, 학술계가 알아주고 있습니다.

    선생님도 스스로 고백하다싶이 “누전누패 누패누전(屡战屡败,屡败屡战)”의 고난의 길어었어요. 그럼 중국의 교육 개혁에서 장애물은 무엇이라 생각하십니까?

전: 지금 교육 개혁의 장애물은 관념문제가 아니예요. 바로 이익문제입니다. 교육 전체가 이익의 연쇄로 되었는데 이 연쇄는 굉장히 큰 괴물인거예요. 교육 행정부문만 아니라 거기에 연관된 모든 분야, 심지어 과목, 교과서, 보호자까지도 다 그러하지요!

    이를테면 응시교육을 소질교육으로 전변시키겠는가? 어림도 없어요! 왜냐면 응시교육을 제거해버리면 많은 사람들이 철밥통이 떨어지고 많은 사람들의 이익이 없어집니다. 그러니 그들은 결사적으로 반대하기 마련이지요. 내가 중학교육에 개입하여 이런 교혁을 하자고 했지만 죽기살기로 날 몰아 쫓아내는 거에요. 이유야 불보듯 뻔하죠. 내가 그네들의 이익을 건드렸으니까요. 내 관점이 아니라 그들의 근본 이익을 침범했으니까 날 구축하는거죠(웃음)

김: 그러니까 중국교육은 이미 실이익이란 괴물에 완전히 점령당해버린거군요! 2014년 선생님께서는 고령이시기도 하고 중학교육에서 손을 뗀다고 하셨는데, 교육에 관심을 뗐다는 말씀은 아닌것 같습니다.

3. “대문제 • 소행동”

전: 물론 아니죠. 사실 저는 학자라기보다는 교육자로 불리기를 원하는 사람입니다. 교원은 내 기질이나 이상에 더 맞는 직업이라 생각하거든요.

김: 실지로 선생님의 제자들의 말에 따르면 선생님의 강의를 듣는게 선생님의 저작을 읽는것보다 더 심각하고 정채롭다고 했습니다.

전: 맞어요. 내 학술저작도 기실은 엄격한 학자의 연구성과라기보다는 한 교원의 강의라 하는게 낫지요. 청년에게 이야기하는 방식으로 제가 책 쓰기를 즐기거든요.(웃음)

김: 선생님은 행동하는 지식인, 사상가로서 “큰 문제를 생각하고 작은 행동을 실천한다.”고 말씀하셨는데, 선생님의 “생명존재방식”이라고 어느 책에서 고백하셨습니다.

전: 솔직히 고백하여 이 말에는 현실앞에서 무가내하와 구체적 반항의 뜻이 내포돼 있는거죠. 이런 체제, 현실중에서 자신의 권리를 지키고 되도록 독립적인 진솔한 목소리를 내고 각성자, 비판자로 되며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겁니다. 언제나 자신의 독립사고를 견지하는게 중요합니다.

    그리고 적극적으로 일을 하되, 자신이 하고 싶은, 할수 있는 일을 하며 사회에 유익한 작은 일들을 하는것으로 자신의 신념을 일상생활의 논리와 구체적 행동에 옮기는것입니다.

    제가 《평민교육인문독본》을 시리즈로 편찬한것도, 《자원봉사자문화총서》를 펴낸것도 구체적 작은 행동의 일환으로 한 사소한 일이지요.

김: 정말 선생님께서는 중국사회, 교육에 사소한 행동으로 큰 문제를 해결하는 일을 하시고 있습니다.

전: 요즘은 두문불출, 중학교육에서 손을 떼고 “교육밖에서 교육을 말하고” 있습니다. 왜냐면 진정한 교육자는 교육에만 관심할것이 아니라 교육을 초월하여 사회와 사회변혁을 관심하고 실천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내가 사상자, 교육자로서의 실천 신념은 한마디에요. 즉 “나는 존재한다. 그리고 노력한다. 우리가 서로 도우면서”

4. 지금 왜 노신인가?

김: 과연 정채로운 좌우명입니다. 전선생님은 교육가로서 정말 많은 일을 하셨습니다. 전선생님은 중국 당대 노신연구의 태두로서, 노신에 관한 고견을 듣고자 합니다. 근년래 중국 학계, 교육계에서도 노신에 대한 의논이 분분한데 선생님은 노신에 대해 요즘 어떤 사고를 하고 계십니까?

전: 내가 요즘 가장 관심을 갖는 문제는 노신이 당대 중국에 어떤 의의가 있는가? 하는 문제입니다. 대학교에서도 중학교에서도 청소년들에게 노신의 의의를 거듭 강조하면서 노신을 읽으라고 권장하고 있습니다.

김: 노신의 당대적 의의, 매우 매력적인 테제이군요. 그렇다면 선생님께서는 이 점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전: 노신이 우리에게 특수한 의의가 있는것은 다른 작가와 달리 현재에도 현실적 의의가 있다는 거지요. 노신은 여전히 현재 진행적인 존재이며 그 존재적 가치를 크게 발산하고 있습니다. 오늘 중국에 있어서 노신의 의의는 매우 중대하고 심원합니다.

    노신은 우수한 비판성자원(批判性资源)입니다. 간단하게 실례를 들어서 근년래 중국의 민족주의가 팽창하고 있는 와중에 노신의 이 분야에 관한 적절하고 심각한 학견, 논술들은 우리에게 훌륭한 비판과 반성의 자원을 제공해주고 있지요. 왜냐하면 그것은 원창성(原创性)적이고 또한 원천성(源泉性)적이기 때문입니다.

5. 노신의 참 모습

김: 투철한 지적입니다. 장기간 중국에서는 노신이 정치적 이데올로기에 의하여 왜곡당한 부분이 많았지요. “横眉冷对千夫指,俯首甘为孺子牛”라는 투사로만 부각시키고 경외할수만 있고 접근하기 어려운 신화적인물로 만들었습니다. 사실 노신은 “투사”의 얼굴뿐이 아니지요. 부모의 아들, 아버지, 남편, 청년의 지도자, 작가 그리고 미술애호가 등 여러가지 다양한 얼굴을 갖고 있으면서, 비판성이 강하고 또한 인자한 아버지로 생생한 사람이었습니다.

전: 맞어요. 노신의 참모습, 노신에 대한 기본인식을 잘 해야 합니다. 노신이 직면한 문제는 중국의 구체적 현실문제였는데, 문제에 대한 사고,해석은 지극히 심각한바, 아무 현실문제가 그에게 있어서는 민족문화, 지어는 세계문화에 대한 추궁으로 전향되고 인간성과 국민성에 대한 해부로 승화되지요.

    그럼으로 노신의 작품은 현실과 보편성과 잘 결부되고 그 시대성을 초월하여 초시대적 의의를 갖고 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가 오늘 노신의 글을 읽으면 마치 그가 오늘 우리가운데 살아 있는것같은 느낌이지요. 내가 늘 말하군 하지만, 어떤 작가는 그 시대에 국한된 작가, 과거의 작가이지만 노신은 아닙니다. 그는 오늘 현재 진행형의 작가로서 오늘의 의의를 지니고 있는겁니다.

김: 지당한 말씁이십니다. 노신은 사실 1980년대중반까지 줄곧 “민족혁명”의 화두로만 휩싸여 온 혁명의 “성인”이었지요. 전선생님을 위시로한 노신 연구자들의 노력으로 노신이 신단(神坛)에서 서서히 내려와 참 모습을 보이게 되었습니다. 노신에 대한 극단적인 숭배와 극단적 폄훼도 다 노신의 참 모습을 흐리게 하지요. 전선생님의 노신의 당대적 의의는 너무 적절하고 의의 깊은 지적입니다.



6. 노신의 당대적 의의

전: 노신의 당대적 의의에 대해 말하자면 아까도 언급했지만, 노신은 우리에게 풍부한 사상적,비판적 자원을 제공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중국에 대한 노신의 사고는 우리가 오늘 중국을 인식하는데 어떤 의의가 있을까? 나는 이런 몇개 측면으로 보고 있어요

    어떻게 중국 국정(国情)을 이해 할것인가 하는 문제.노신은 《随感录五十四》에서 중국 사회의 상태는 몇세기를 하나로 묶은거와 같다고 지적하고 있어요. 구체적 문장은 인용하지 않지만 중국 상황에 대한 노신의 명제는 지극히 심각해요. 중국문제의 복잡성, 다종 사회형태와 문제가 하나의 시공속에 공존한다고 지적한 곳에서 당대 중국도 역시 북경 상해와 같은 후현대사회, 서부지역과 같은 현대 내지 전근대사회가 공존하는 시기라는것을 연상할수있어요. 이게 중국의 기본 국정입니다.

김: 각종 사회발전단계의 공시성(共时性)사회가 곧 중국의 현실이고 큰 문제이기도 하지요. 동아시아로 시야를 넓혀서 관찰하면 일본이 포스트모더니즘 한국, 대만이 그 뒤를 따르고 북한이 전근대사회, 중국은 포스트모더니즘과 모더니즘 그리고 전근대가 뒤섞인 사회덩어리로 구현되고 있습니다. 동아시아의 공동체가 잘 안되는 이유도 이 사회발전단계의 갭이 격심하기 때문이라고 생각이 듭니다.
    마찬가지로 중국 내부 발전단계의 갭이 큰 문제는 중국의 문제를 산생하는 온상이기도 하지요.

전: 그렇지요. 중국문제의 다양성, 복잡성은 한가지 논리,한가지 사유로 관통시키는 것을 허용하지 않습니다. 노신의 국정 해석은 우리에게 문제를 바라보는 풍부한 계시를 주고 있습니다.
    노신은 또 《文化偏至论》에서 한 말인데요. 1907년 일본유학때 쓴 글인데 중국에는 동시에 두가지 병증이 존재한다고 지적합니다. 옛것은 중국 자신에서 자생하는 병이고 오늘의 것은 교통의 발달로 생긴 병으로서 이것으로 중국이 망가지게 된다고 지적합니다. 이 글을 읽고 나는 쇼크를 받았습니다. 20세기 초에 노신의 말이 바로 오늘 중국의 현실을 적중한 말이지요. 중국의 고유의 전제주의의 폐단과 동시에 자본주의의 발전이 갖고온 서양문명의 폐단. 오늘의 중국은 바로 이 두가지 병폐에 걸린 시대이지요. 노신의 중국 실정에 대한 분석판단은 바로 오늘 중국의 현실에 대한 기본적 판단이라고 할수 있어요.

7. 누가 중국의 개혁을 가로 막는가?

김: 노신은 국제주의적 시야로 중국을 바라보았다고 생각합니다. 그가 당시 중국의 현실 개혁에 관한 글들은 많은 잡문을 통해서 발설했는데, 이 면에 대해서 선생님은 어떻게 보시는지요?

전: 중국의 개혁에 대해 노신은 그의 《小杂感》이란 글에서 이런 지적을 합니다. “曾经阔气的复古,正在阔气的要革新,要改革”  이 말엔 사실 매우 심각한 의미가 포괄돼 있지요. 누가 어떻게 개혁을 하고 개혁의 에너지는 무엇인가? 누구를 위한 개혁인가? 노신의 분석은 3가지로 분류했는바, 첫번째는 “曾经阔气” 했던자들이 현재 실세하여 개혁을 하고자 하는데 개혁의 방향은 곧 “复古”입니다. 모택동시대로 회복하자는 논조가 바로 이거지요.

    두번째는 “正在阔气的”한 자들이 현상태를 유지하자고 고집하는바, 중국모델론, 中国模式论자가 바로 여기에 속합니다.

김: 이는 기득이익자들의 논조라고 생각됩니다. 현상유지를 통해 진일보 개혁을 하기 보다는 자신들의 이익을 보전하자는 심산이 아닐까 합니다.

전: 바로 이겁니다. 이건 전형적 기득이익자들의 논리로서 우리가 이미 정확한 길을 걷고 있으니 더 이상 개혁도 필요없이 현상유지로 가자는 거지요. 그런데 개혁이 대추세이니까 그네들도 개혁을 부르짖어요. 개혁의 목적은 눈앞의 그들의 기득이익을 확대하기 위한 얄팍한 타산에서입니다. 나는 이게 아마 중국 목하 주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논조라고 봅니다.

    세번째 개혁은 바로 “未曾阔气的人”인데, 권력도 세력도 없는 사람들이 당연히 현상 불만으로 개혁을 요구합니다. 민간개혁세력으로서 유권 (维权), 인터넷민주 (网络民主), 자원봉사자(自愿者组织) 등 방식으로 개혁을 원하고 있습니다. 이런 민간개혁자는 노신이 말한 “未曾阔气的人”에 속한자들이며, 내가 볼때 많은 백성, 대중의 이익을 대표하므로 이런 민간의 개혁을 지지해야 합니다. 대다수 백성의 이익을 위한 개혁이 개혁을 판단하는 기준이 되어야 되지요.

8. 중국인에게 어떤 정신이 필요하나?

김: 노신을 중국의 쉑스피어, 톨스토이로 보는 학자도 적지 않습니다. 노신이 중국뿐만 아니라 동아시아 문학사, 정신사에서 중요한 포지션을 차지하는 이유는 풍부하고 심각한 정신적 문화재부로 되고 있기때문이라고 생각됩니다. 일본에서의 노신 연구가 오히려 중국보다 앞선면이 있는데, 일본에서도 노신을 자신의 아시아의 공통문화재부로 간주하고 있기때문이지요. 선생님께서는 노신의 당대적 의의에 대하여 정채로운 말씀을 하셨는데 그렇다면 노신의 의의, 노신의 정신적 재부로 말하여 현재 중국인에게 어떤 정신이 필요하신지 말씀해주시겠습니까?

전: 예, 노신은 《中国人失掉自信力了吗?》에서 매우 심각한 말을 했어요. 어문 교과서에도 나오는 문장이니 다들 알고 있으리라 생각하지만, “우리는 예로부터 자신의 일에 몰두하여 결사적으로 일하는 사람, 민중을 위하여 목숨을 거는 사람…”이 적지 않았다고 하면서 묵묵히 견인불발하게 일하는 우리 중국인의 자신감, 정신력을 높이 칭찬했지요.

    나는 노신의 이 말이 우리에게 어떤 정신이 필요한가?라는 문제에 답장을 준 말이라고 생각합니다.
    오늘 우리 중국인에게 수요되는 정신은 바로 견인의 정신과 또 하나는 지혜의 정신이지요.

김: 그러니까 목표를 위하여 견인불발의 의지력으로 달성할때까지 끝가지 노력하는 정신이겠군요?

전: 그렇지요. 조급해 하지 말고 유장하게, 지혜를 발휘하여 부지런히 견인성있게 분발하는 정신력입니다. 노신이 제창한 정신은 중국의 현실에 딱 들어 맞습니다. 중국이란 나라에서는 노신처럼 목표를 정하고 근기있게 서서히 유장한 마음으로 부단히 애쓰는겁니다.
    왜냐하면 중국 같은 체제는 일조일석으로 변하는게 아니니까 이 체제가 허용하는 범위안에서 자신을 보전하면서 견인불발하고 또 지혜롭게 노력을 경주해야 하지요.

9. 모택동과 노신

김: 노신의 당대적 의미에 대한 말씀 잘 들었습니다. 선생님께서 젊었을 때 정신적 지도자는 노신과 모택동이라고 고백한적 있지요. 초기의 노신연구에도 모택동의 영향이 있었다고 하셨으며 대만에서 《毛泽东时代与后毛泽东时代》란 저작도 간행했습니다.

    제가 보건데, 노신은 사후 모택동의 몇가지 위대한 수식어에 의해 규정당한 인물이기도 합니다. 이런 의미에서 노신은 사후 최고의 문화 성인으로 신단으로 모셔진 반면 그 높은 신단의 그림자도 길었는바, 최고수령의 자의에 의해 이용당한 이데올로기의 도구로 된것은 노신의 불행 그 자체입니다. 사실 노신의 작품은 이데올로기의 해석처럼 그렇게 작고 좁고 굳어진건 아니였지요. 오히려 노신의 작품은 어떤것은 시대와 국경을 초월한 초시대, 초국경 의의가 있습니다. 선생님께서는 모택동이 노신을 좋아한 이유는 어디에 있다고 생각하시는지요? 혹은 이 두 인물의 공통점 내지 유사성은 무엇인지요?

전:  (웃음) 우선 아래 몇가지 에피소드를 듣겠어요. 노신은 공산당을 인정하면서도 또한 회의적인 태도로 관찰하였지요. 노신과 모택동사이에 이런 일화가 있었어요. 풍설봉(冯雪峰)이 모택동의 시 한 묶음을 상해에 있는 노신에게 갖다 보였는데, 《西湖•井冈山》을 읽더니 노신이 하하하 대소하면서 “모택동의 이 시에는 산대왕(山大王)의 기개가 있다”고 했어요. 풍이 모택동에게 이 말을  전하자 모택동은 나야 말로 산대왕! 혁명의 산대왕이다! 고 대소하면서 말했습니다. 모택동은 스스로 자신을 녹림대학의 호한이라고 칭했어요.

    흥미로운것은 1920년대 현대평론과 노신이 논전을 벌일때, 영미파 신사들이 노신을 학비(学匪)라고 욕했는데, 노신도 답왈 “나를 비적이라 했으니만큼 나는 비적이 옳다. 어쨌단 말인가?”고 했거든요. (웃음)

김: 노신에게는 비적도 당해내지 못할 천연적인 반항의 야성(野性)이 있었지요!

전: 그래요. 모택동이 노신을 왜 현대 중국의 성인이라 했는가? 모택동의 내심에는 그의 초기 저작에서 강열히 과시하다싶이 자신이 성인으로 될 염원이 간절했지요. 모택동이 노신을 신성화, 영웅화시킨것은 자기 자신이 바로 민족의 공전절후의 영웅이라는 의식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 뒤 모택동은 어느 노신기념회의에서 “노신학습과 자아개조”를 제기하면서 노신을 자아 개조계열에 넣었거든요. 노신에 대한 인식과 이용을 보면 “이용, 제한, 개조” 3단계 였는데, 이것이 중국공산당의 지식인에 대한 책략이었고 지식인을 노신처럼 개조하는것이었습니다.

10. 나의 정신적 낙원은 어디서 오는가?

김: 사실 해방후 노신의 불행은 정치이념의 이용물로 이용당한 것이지요. 그러므로 주작인도 “(노신)이 사후에 제멋대로 조종당하였는바, 기념이라고 하지만 기실 어떤것은 조롱이다”고 조취인(曹聚仁)에게 보낸 편지에서 쓰고 있었습니다. 괴뢰로 조롱당하고 이용당한 지식인중 노신은 가장 심각한 전형이라고 생각됩니다. 생전에 그렇게 독립, 자유의 지식인이고 작가였던 노신이 사후에 그렇게 될줄은 꿈에도 생각지 못했을거지요.

    화제를 바꿔서 선생님의 노신연구에 관한 이야기인데요, 혹시 저 같은 후학이 빈축을 살 각오를 하고 말씀드린다면 선생님은 노신에 너무 빠져들어가 “노신연구”를 객관화시키는 시야를 잃지나 않았는가 걱정되기도 합니다(웃음)

전: (웃음) 일부 무술가들이 무술에 빠져 주화입마 (走火入魔) 하는 경우도 종종 있습니다. 그러나 나는 그 정도까지는 아니지요. 나는 사실 아직도 노신에 깊이 진입하지 못했습니다. 나는 내 지식구조상 노신과 거대한 거리가 있다는것을 느끼고 있어요. 지금 많은 연구자들이 노신을 중국전통문화의 반역자라고 하지만, 기실 노신과 전통은 아주 밀접한 관계가 있으며 불교 등 전통문화에 정통해 있지요. 우리가 여기서 거대한 격차가 있기 때문에 깊이 파고들어 갈수 없습니다.

김: 전선생님의 정신적 낙원은 노신에서 많은 자원을 얻는다고 고백했네요?

전: 그렇구 말구요! 내 정신적 낙원의 중요한 자원은 노신의 정신이 원천이지요. 다른 사람들은 노신은 이미 너무 많이 얘기하여 싫증난다고들 하는데 난 그렇게 생각안해요. 노신은 아무리 얘기 해도 무진장한 정신재부라고 느끼거든요.

    그리고 내 정신적 기지(基地)는 북경대학과 귀주, 이 두개 가장 높은 곳과 낮은 곳, 중심과 변두리, 엘리트와 서민, 이런 이원구조인데 목하 학술계에서는 나같은 사람이 적지요.

    이 두가지를 다 어우르는것으로 고난을 정신낙원으로 전변시키지요(웃음).




11. 일본의 노신연구가 앞서가는 이유

김: 노신연구의 태두인 선생님앞에서 이런 말씀을 올리 자면 죄송합니다만, 저도 비교문화학자, 문명비평가로서 일본에서 노신에 오랫동안 주목해 오면서 나름대로 연구도 해 왔습니다. 그 과정에서 일본인의 노신연구에 관해 자연 주목하게 되면서 한가지 느낀 감상이라면 오히려 원산지 중국보다 일본의 노신연구가 앞섰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선생님은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전: 맞어요. 일본인의 노신에 대한 인식이나 연구가 오히려 중국보다 객관적으로 우수한 점이 있습니다. 우리가 노신연구에서는 다소 “신화노신”이란 보따리를 지고 있지만, 일본은 학술자유의 사회라서 이런 보따리가 없지요. 나는 일본의 노신연구자 키야마히데오(木山英雄)와 마루야마 노보루(丸山昇) 같은 학자를 너무 좋아합니다. 노신은 거리를 두고 아까 김선생 말처럼 객관화시켜서 봐야되는데 나는 상대적으로 서양의 연구보다 일본의 노신연구를 더 좋아해요. 서양의 연구는 좀 모자라지요. 노신은 동아시아에 속하니까, 내가 “동아시아의 노신”이란 개념을 제기 한적 있습니다.

김: 동경대학의 노신연구가인 후지이(藤井省三) 교수의 노신 연구나, 하나하나 이름을 거론할순 없지만 많은 노신연구자들의 연구는 실속있고 노신을 하나의 인간으로서 깊은 연구를 하며 괄목할 만한 실적을 쌓고 있습니다. 이데올로기주도의 중국식 학술의 통병이있기때문에 학문연구에서 항상 일본의 뒤전에 서서 따라가고 있는 중국이 안타깝기도 합니다. 예전에 중국인민대학의 손욱(孙郁)교수와도 이런 이야기를 하자 그도 내말에 찬동을 하더라고요.

    선생님, 한가지 여쭙고 싶은데요, 이건 제가 선생님의 여러저작을 읽으면서 느낀 바인데 선생님의 파란만장의 인생체험과 혁명-투쟁-문혁의 과정에서 형성된 학문스타일은 저 같이 인생열력이 옅고 또한 해외에서 장기간 형성된 지식구조나 학문스타일과 굉장히 이질된 양상을 보이고 있다고 생각듭니다.
    선생님세대는 자신의 열력, 체험에서 학문이 샘 솟듯 괴어오르는 느낌이에요. 풍부한 열력을 정신적 자원으로 승화시키는 그게 너무 멋있습니다.

12. 풍부한 고통은 어떻게 정신자원으로 승화하는가?

전: 참 좋은 화제를 꺼냈네요! 1936년생인 나는 말그대로 청장년시기를 혁명과 투쟁속에서 보냈습니다. 나 자신도 문화혁명시기 반혁명으로 누명을 쓰고 내 인생의 최대 착오, 혹은 죄도 문화혁명때 지은것이지요. 문혁의 최대의 죄악은 바로 인간성의 악을 유발시켜 그 악을 최대한으로 팽창시켜 인간이 금수처럼 변하고 이로부터 사회의 악을 조성한것입니다. 이런 와중에 나의 후회, 통한, 교훈등이 나로 하여금 수치를 알게 했으면 자신에 대한 반성, 해부, 비판을 하게끔 했습니다.

    우리가 고난, 고통을 통해 해야 할 일은 그것을 미화하거나 자랑거리로 삼을것이 아니라 이성적으로 성찰하여 고통을 정신적 자원으로 승화시켜야 하지요.

    나는 지식인으로서 이런 사명감을 갖고 출발했는바, 내 연구의 스타트점과 귀속이 바로 이것이었습니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나는 《心灵的探寻》,이 저작을 쓰면서 문혁의 그림자에서 탈출했고 《丰富的痛苦-“唐吉诃德”和“哈姆雷特”的东移》등 책의 연구를 통하여 정신위기를 극복했습니다.

김: 파금의 “진실을 말하는” 정신과 일맥상통한데가 있습니다. 선생님세대의 지식인의 사고방식이나 정신상태를 “풍부한 고통”으로 귀결할수 있다면 “정신적자원”으로 전변시키는것 또한 선생님세대 지식인의 지혜와 고통을 초극하는 방법론 내지 경험의 행동이라고 생각합니다.

    나 같은 젊은 지식인은 전선생님과 같은 혹독한 역사체험을 할수 없으며 영국의 문화비평가 테루이 에글레턴(Temyeagleton)이 말한 그런식의 “역사적 기억상실증”에 걸렸거나 또는 애초부터 그런 역사의 존재를 느낄수도 체감할수도 없었다고 해야지요.

    전선생님이 존경스러운것은 역사속의 자신을 그 시대환경에 돌리거나 그런 핑계로 안주함이 아니고, 자기와 자기의 자각적 담당을 짊어지고 역사를 자아적 “정신자원”으로 만들어 버리는 그런 진솔한 용감하고 사명감 있는 엘리트의 행동양식입니다.

    그리고 아까 선생님 스스로 언급한바와같이 가장 높은곳과 가장 낮은 곳 모두 다 어우러져 청년을 위해 연결하고 일을 하는 사명감은 정말 찬미해야 할 행동이라고 생각해요.

전: 김선생이 이렇게 예찬하시니 고맙군요(웃음)!

13. 민간의 파워, 민간의 길

김: “정신적자원”이 이제 화두가 되었는데 저는 중국인의 현시점의 정신적자원에서 가장 결핍한것이라면 신앙의 위기와 정신의 빈곤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전: 그렇습니다. 현재 중국이 GDP세계 제2의 대국이 되고 생활조건도 좋아졌지만, 또 더 중요한 사명이 있습니다. 제도를 재건하고 문화를 재건하고 가치를 재건하고 생활을 재건해야 하지요.

   내 생각에 이러한 재건은 아래 3가지면에서 착수해야 됩니다. 하나는 역사적 경험교훈을 총화하는것이고 또 하나는 현실에 대해서 고찰하고 조사하여 사색을 해야 하는것이며 다음 하나는 이런것을 이론적 고차원으로 제련시키는것이어야 합니다.

   지식인의 최대 임무는 정신자원에 결핍한 신 가치관, 신 이념을 제공하는것입니다. 그러나 난 역부족이지요. 내게 이론적 실력이 결핍하니까요. 그렇지만 종당에 신 일대들이 해 내리라 믿고싶어요.
김: 중국은 공자,맹자,노장의 윤리사상 말고도 세계에서 지식체계, 오리지널 독자작인 사상을 창립해야 하며 그런 면에서 공헌해야 합니다. 그러자면 관방, 민간이 함께 공동체가 되어야 할텐데요.

전: 난 관방에 대해 거의 기대를 안 걸어요! 관방이 뭘 해준다고 그럽니까? 그냥 지식인들더러 찬동하고 해석하기만을 요구할뿐인데 무슨 창조력이 있겠습니까!

    나는 오히려 민간의 파워, 민간의 입장을 강조하고 싶어요. 아래서부터 위로 올라가는 민간의 길이 믿음직하지요. 물론 최후에는 아래서부터 위로, 그리고 위로부터 아래로의 방법을 결합해야지만, 민간의 힘은 거대한겁니다.

14. 민족주의, 여기가 위험하다

김: 근년래 경제적 부유로 인해 중국의 민족주의, 문화적내셔낼리즘이 팽창하고 있는게 현저합니다. “수백년래, 중국이 이런 성세에 도달한적은 없다””돌연 세계 대국이 된 우리자신을 발견했다”등 민족주의의 자신감이 생기면서 전례없는 애국주의, 국가주의가 고양하고 있습니다. 선생님은 이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전: 민족주의, 애국주의, 국가주의 이러루한 것들은 극단적으로 나아가면 군국주의로 변질되기 쉬워요. 아시다싶이 세계 근대사,현대사가 이미 이 점을 입증해주고 있지 않았습니까? 아시아에서도 현대 일본이 민족주의, 국가주의가 팽창된 결과 군국주의로 변질되어 아시아 전역을 괴롭힌 과거가 바로 눈 앞에 있지요.
    요즘 일본도 그렇고 한국도, 북조선도 그리고 중국도 민족주의, 국가주의로 서로 대항하고 있는데, 정말 역사를 거울로 삼고 교과서로 삼는다면 상호자제하고 지난날 처참한 군국주의가 발호하지 않케끔 경계를 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김: 기실 제가 보건데 중국에서 애국주의, 민족애를 대거 제창하고 있는 뒷면에는 되려 애국심, 민족애라는 팩터들이 결여하기 때문이라고 생각됩니다. 애국, 문명, 평등, 자유… 등 이런 낱말들은 서양선진국, 특히 일본에서는 별로 잘 쓰이지 않는 사어(死语)로 될 정도지요. 중국의 화장실 소변기위에 까지도 “애국”,”문명”이란 글빨이 보이니 참 가관입니다.(웃음).  중국이 근대국가로 성장했지만, 성숙된 근대국가와는 아직 거리가 멀다고 봅니다. 성숙된 국민, 이를테면 중국에서 강조하는 공민(公民)이 아직 사회적으로 결핍하기 때문에 국민국가는 아직 미완성이지요.

15. “국민성개조”의 과제

전: 옳은 지적입니다. 중국이 경제, 물질적 생활면에서는 대폭 향상하고 부유하게 되었지만, 문제는 우리 국민의 내실 즉 소질은 큰  문제꺼리입니다.

    노신이 필생을 다하여 중국 국민성개조에 정력을 기울였는데, 중국국민성의 약점이 문제였기 때문이지요. 1905년 노신은 중국이 입국(立国)하자면 관건은 우선 입인(立人)이라고 강조했습니다. 입인이란 주로 개체적 개인의 정신자유, 독립인격을 말하거든요. 노신의 눈에서 물질이 풍부해지고 과학이 발달해도 중국인이 만약 개체적 자유, 독립인격이 없다면 중국은 현대문명국가가 아니기때문에 개체적 정신자유를 그가 추구하는 기본 목표였습니다.

김: 그러니까 아까도 선생님께서 누누이 언급하신것과 같이 노신의 당대적  의의는 여전히 유효하다는 말씀이십니다.

전: 그래요. 노신이 중국국민성비판에 많은 것을 제기했는데 3가지만 요약해보면, 첫째로 국민성중의 노예근성문제, 두번째로 중국역사 및  근대사에 대한 노신의 판단은 일치일난(一治一乱)의 역사성과 그중에서의 노예성문제 셋째로는 중국사회에 대해 두가지 매우 준엄한 판단을 했는데, 하나는 중국민족은 식인(食人)의 민족, 사람을 잡아먹는 민족이라는거지요.

김: 사실 노신의 “식인”은 두가지 차원이 포괄됩니다. 하나는 정신적 비유이고 또 하나는 실제로 중국인은 역사적으로 진짜 식인을 한 역사현상이지요. 《광인일기》소설을 쓰기전에 노신은 북경의 신문에서 진짜 사람고기를 먹은 신문기사를 여러번 보고 감촉이 깊었던것입니다.

전: 그렇지요! 그리고 또 하나는 노신은 중국을 “문자유희의 나라”라고 지적하면서 연극을 놀고 간객에 능한 민족이라고 갈파했습니다. 결과 중국은 기만과 허위가 발호하는 나라로 되었다는겁니다.

김: 근년래 학계에서 “국민성”, 이 개념을 부정하는 학자도 있는데, 저는 비교문화, 문화인류학을 전공한 학자로서 “국민성”은 성립된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민족성원중 개개인의 세부차이는 어느 민족내부나 다 존재하지만, 그 민족이 오랜 역사체험과 지리기후환경의 동일한 조건에서 배육된 국민적 성향, 민족적 성향은 유사성, 고도의 동질성을 보이고 있지요.

전: 맞어요. 어떤 과일이나 실물이 기후, 지리조건이 다른 곳으로 이식하면 같은 종이라도 전혀 이질된 양상으로 변하는 자체가 각기 부동한 지리, 환경내지 인물환경속에서 배육된 민족성이 다르다는것을 인식하게금 하지요.



16. 정치(精致)한 이기주의자들의 천국

김: 아무튼 중국인의 소질향상은 자타의 의향을 불문하고 중국인자체의 최대의 급무라고 생각이 들어요.
    선생님은 근년에 중국의 보통 국민보다도 오히려 지식인, 대학교육의 병폐속에서 육성된 엘리트들을 “정치(精致)한 이기주의자”라고 질타했습니다.

전: 제가 몇년전 무한대학 전 학장 유도옥(刘道玉)이 소집한 대학교육에 관한 모임에서 한 말입니다.(웃음)
    내가 이렇게 말했어요. “우리의 일부 대학, 북경대학도 포괄하여 지금 바야흐로 “정치한 이기주의자”를 배양하고 있다. 그들은 고지력상수이고 세속적이고 노회하며 연기를 잘 하고 잘 발라맞추면서 체제를 이용하여 자신의 목적 달성에 능하다. 이런 사람이 일단 권력을 장악하면 일반 탐관오리보다 더 위행성이 크다.” 이런 의미에서 중국의 교육은 인간성교육에서 실패했다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김: 정말 정채로운 지적입니다. 제가 지금 대학생들과 자주 접촉하면서 느낀 점 역시 그네들은 나이에 어울리지 않게 세속에 물젖어 있고 실이익만 따지고 세상물정에 노련해있음이 보이고 급공근리(急功近利)적이지요. 이 나라의 인문환경, 교육이 바로 이런 사람을 육성하는 거대한 훈련장이지요. 갈검웅(葛剑雄)교수님이 중국의 교육문제는 교육의 중국문제라 하셨는데 바로 이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화제를 바꾸겠습니다만, 요즘 중국에서는 자신감이 팽창하여 “21세기는 중국의 세기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선생님의 고견을 듣고 싶습니다.

17. 21세기는 중국의 세기인가?

전: 어림도 없는 소리입니다! 환상이고 노신이 갈파한것처럼 일종 자대(自大), 애국의 자대이지요.
    일부 애국자들의 소원이기도 하지만, 세계 어느 하나의 문화가 세계의 중심으로 된다는건 불가능한 일입니다. 근년래 경제성장의 힘을 입어서 중국문화의 영향이 커지고 세인의 주목을 받는 가능성은 있어요. 그러나 “21세기는 중국의 세기”라 하고 중국문화가 세계를 통치한다는건 도저히 불가능합니다.

김: 그렇지요. 중국이 세계를 리드할 만한 지식체계와 가치체계를 창발하지 못하는 한 세계를 통치하기는 그냥 허언(虚言) 망언(妄言)에 지나지 않습니다.

전: 내가 보건대 21세기는 다원문화의 세기입니다. 보세요. 세계적범위에서도 어느 문화, 이념이 전세계를 통채로 지배하는건 무리이지요. 영국이 그럴 생각이었는데 제대로 됐어요? 미국도 마찬가지로 제생각대로 잘 안되지 않습니까?(웃음)

    중국이 이런 생각을 품는다는것도 백일몽에 지나지 않아요! 중국문화가 어떻게 어떻게 될거라고 희언을 떠벌이지만 다 황당한 소리에요.

    공자님이 중국을 구할순 있어도 세계를 구할순 없습니다. 그건 그냥 하나의 중요한 정신적자원에 불과합니다. 노신을 보더라도 내가 노신을 평생 연구해왔지만, 노신의 사상이 일체를 대체한다고는 종래로 생각한적 없어요. 난 그저 노신의 사상이 일종 홀시할수 없는 정신적자원이라 생각할뿐인데, 이것도 하나의 견해이지요.

    그저 이렇다는 거지요. 더 이상 무슨 큰 역활을 할수 있겠습니까?

김: 그럼 선생님은 21세기 중국이 나아가야 할 길은 어떤 방향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전: 내 생각에는 동양문화와 서양문화의 우수한 부분을 섭취하는 방향이 좋다고 봅니다. 그리고 동양문화중에서도 일본의 경험, 인도, 한국의 경험도 우리가 중요시 해야 합니다
    그래서 중국이 가야할 길은 이런것들을 다 어우르는 초월성적인 방향을 택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대담자 소개

전리군(钱理群)

당대중국을 대표하는 인문학자의 한사람으로서 중국에서 큰 영향력을 과시하고있는 학자.

1939년생,북경대학 중국어문학부 베테랑교수,2002년 정년퇴직.20세기 중국사상,문학과 사회에 대한 연구,특히 20세기 중국인사와 정신사적 고찰,20세기 중국경험의 총화적성찰은 해내외의 큰 중시를 받음.

북경대학 재직시 “가장 환영받는 10명 최우수교수”의 수석으로 꼽힘.

주요저작으로는 《心灵的探寻》《周作人论》《周作人传》《丰富的痛苦》《1948:天地玄黄》《与鲁迅相遇》《钱理群讲学录》《新语文读本》《我的精神自传》《一路走来—钱理群自述》등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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