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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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의 최고봉은 무엇으로 사는가?(하) [가평요 김문학 대담]
2016년 10월 12일 08시 44분  조회:4091  추천:61  작성자: 김문학

문화대담(8)    

    문학의 최고봉은 무엇으로 사는가?(하)

 

                        가평요(贾平凹)+ 김문학

 

 

13. 《폐도》그 이후

김: 《폐도》로 원기를 상하신 선생님은 1990년대 후반기에 착실하게 충전기를 두었습니다. 그러다가 1995년,96년에 《白夜》《土门》 98년에는 《高老庄》,2000년에는 《怀念狼》으로 부터 《秦腔》 《高兴》 《古炉》 《带灯》《极花》로 장편소설의 홍수가 쏟아냈지요.
     포스트《폐도》는 의도적으로 《폐도》의 마이너스적 이미지를 만회하려는 노력이 보이는데요?
 

가: 그래요. 《폐도》그 이후로 부터 나는 의식적으로 소설을 보다 순수하게 쓰며, 소설속에 형의상학적인 요소를 많이 넣으려고 했어요. 《폐도》이후 작품이 예전보다 못하다는 사람도 있었지만 난 그런데 아랑곳 안합니다. 아무리 날 비평, 폄훼해도 난 신경 안쓰고 내 방식으로 나아가거든요. 내가 무슨 작품을 어떻게 쓰든 다 숙명적인 인소들이 있다고 생각해요. 한때 모순문학상을 못탔을때 내게 문학상에 대해 물었는데 수상을 하든 못하든 중요하지 않습니다. 글쓰기에 있어서 그런것은 별 의의가 있는지 잘 모르겠고 나는 그냥 내 평정한 심경을 보전하면서 상을 받아도 못 받아도 계속 장인같이 꾸준히 써갑니다.
 

김:  2005년에 나온 《秦腔》을 그중 제가 좋아합니다.
    이 소설에는 남자주인공 인생(引生)이라는 광인같은 소년이 짝사랑을 하다 못해 스스로 자신의 물건을 잘라내는 “거세”가 나오는데 , 제가 보기엔 이 거세는 바로 선생님의 자신의 글쓰기 정신사에 대한 절단이며《폐도》에 대한 절거라고 생각됩니다.
 

14. 순수문학 최후의 대사(大师)

가: 재미있는 지적이네요. 북경대학의 진효명교수도 유사한 말을 했어요. 확실히 나는 《폐도》와는 다른 풍격의 소설을 노렸습니다. 후기에서도 썼지만 이 작품은 내가 최초로 전면적으로 우리 가족과 마을을 쓴 소설이지요. 현재 현대화가 진척되면서 농촌고향은 내 기억속의 고향과 너무 멀어져가고 전통문화도 나날이 상실해가고 있기때문에 나는 내 필로 닳아져 가는 고향을 위해 비석을 세우고 싶었지요.

김: 북경대학의 진효명교수는 저와 친분이 두터운 평론가인데, 그의 가평요론은 언제나 독특한 데가 있습니다. 그는《폐도》가 20세기 말 90년대 중국의 도시 폐도를 썼으나 《秦腔》은 21세기 현재 중국농촌의 폐허의 풍경을 썼다고 하면서 전자는 “정신과 문화”이고 후자 역시 문화와 정신을 제시했다고 지적했어요.


    《秦腔》을 통해 가선생이 도시, 황량한 도시를 관망하지 않고 자신이 나서 자란 농촌의 고향으로 글쓰기를 회전했다고 하면서 순문학의 “최후의 대사”, 또한 향토문학의 “최후의 대사”라고 극찬 했는데, 나 역시 진교수의 관점에 찬동입니다.

가: 고맙습니다. 《秦腔》은 파노라마식으로 한무리 인물들과 전 동네이야기를 써야 했기때문에 완벽한 스토리 전개를 할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독자들이 열독시 비교적 곤란하다고 불만도 있었지요. 그뒤로 쓴 《高兴》은 그 수법을 개변하여 한,두명 주요인물만 쓰고 농촌을 떠나 시내에서 농민공으로 일하는 도시속의 농민들의 생태를 썼습니다.
    만약 중국의 향토가 만구할수 없는 분리에 빠졌다고 하면, 이것은 어쩌면 시대의 진보이지요. 현재 중국이 가장 선진적인것과 가장 후진적인것이 서로 교차되였고 가장 전통적인것과 가장 현대적인것이 서로 엉키었어요.  또 도시와 농촌이 교차되고 많은 사람들이 엉켜서 사회 전환기의 특징을 나타내고 있다고 봅니다. 이러한 복잡다양한 농촌의 상실과 도시로 진출한 농민공의 현실양상을 나의 “개인의 글쓰기”로써 내 시각에서 썼습니다.
 

 

15. 덜레우저의 “주름”과 일상의 세부

김: 가선생의 《秦腔》에서 시작 된 《高兴》 그리고 《古炉》《带灯》등 명작들을 읽어보면 그야말로 중국 당대 장편소설의 대산맥을 형성하고 있다고 해야 합니다. 가선생은 이런 소설대작을 통하여 현저하게 괄목한 성과는 유니크한 “가씨생활세부소설양식”을 창립했다는겁니다.
    선생님은 스토리 전개의 명수인데도 불구하고 스토리 전개보다도 일상세부의 “조밀한 기술”이란 기법을 쓰고 있지요.

가: 맞어요. 내가 《秦腔》후기에서도 밝혔지만, 나는 스스로 이런 소설기법을 “밀실한 유년식서사”(密实的流年式叙事)라고 명명했어요.
     농촌시골의 “生老病离死,吃喝拉撒睡”란 일상 삶과 언제나 “시시콜콜 자질구레한 일상”을 쓰는 방법입니다.
    《홍루몽》에서의 생활의 세부를 쓰는 기법과 유사한데, 쉽게 말하면 홍루몽의 영씨과 녕씨 두집의 충돌이 완전히 두집의 생활, 귀공자 아씨들의 일상세부의 자질구레한 서술에 의해 소설의 주요 줄기로 되고 독자들도 이 세부에 말려들어가서 두집간의 충돌의 이념을 망각하고 말지요.
     내가 소설에서 노린 서사적효과도 여기에 있다고 봅니다. 이야기의 생활화, 세부화를 통해 소설의 유연성과 따스함이 가미 되였습니다.
김: 당대 프랑스 사상가, 철학가인 덜레우저(1925~1995)의 “주름”이론이 생각나네요. 그는 이 세계는 “무한의 주름”으로 구성되였는바, 때로는 늘 “유한한 주름의 흔적”으로 노정된다고 주장하면서, 주름은 물질적인것과 정신적인것  이 두가지로 분류하며, 정신의 주름은 무한한 양식으로 노정되며 거기엔 잔주름이 많이 보인다고 했습니다.
    선생님 소설의 일상은 세부작 주름살을 펼침으로써 그 안의 안보이던 일상세부의 잔잔한 것을 세밀히 보여주고 있다고 저는 생각해요.
    그리고 또 중요한건 그 정신적 주름살을 펴서 보여주는게 선생님의 작가적 영위입니다.
    제가 그중에서도 구성이나 스토리보다도 선생님의 문학적언어가 중국작가중 가장 유니크한 스타일을 자랑하고 있다고 보는데 아무리 칭찬해도 말이 모자랄것 같아요. 선생님은 언어에 대해 어떤 견해를 지니고 계신지 여쭙고 싶습니다.
 

16. 언어의 마술사

가: 언어란 무엇인가? 진정한 문학언어란 무엇일까?
    내가 생각컨대 준확하게 정서와 사유를 표달한다면 그건 훌륭한 언어입니다. 언어는 흔히 작가의 생명과 기품과도 연관이 있지요. 그래서 언어는 지나친 분식은 필요없습니다.
    일반적으로 요란하게 울긋불긋 화려하거나 미사려구는 좋은게 아니지요. 흔히 명품도 간단하면 간단할수록 품격이 높은겁니다. 심령의 외부적 표현으로 언어가 너무 수사에 치중한다면 오히려 수준이 떨어집니다.

김: 진정한 거물작가는 흔히 글이 평명하고 소박합니다. 언어와 글의 최고경계는 오히려 제일 간단하고 평명하고 자연스러움속에서 가장 표현력이 있으며 가장 고차원의 사유와 심령를 담을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의미에서 가선생님은 정말 “언어의 마술사”라 해야죠. 왜냐하면 선생님의 글은 한 줄만 읽었다면 금방 선생님의 글임을 알수 있거든요. 가평요의 독특한 서사 양식, 단어, 그리고 고문과 백화문을 절묘하게 조합한 문체, 단어단어들에서 튕겨나오는 분위기들…  선생님은 당신만의 언어로 그 마술사같은 언어로 독자들의 심금을 순식간에 끌어 당기는 매력이 있습니다.

가: 어느 직업의 최고경계는 다 비슷하기 마련인바, 진지(真知)를 체험했고 관통할수 있는 사람은 다 고인(高人)입니다. 이를테면 도교에서의 신선은 살아있는 실재의 인간인바 천지를 관통하고 사리에 밝지요. 인간이 인정(人精)으로 되면 곧 신선으로 되는것입니다.
    인간이 정(精)으로 되고 위대해지면 한마디 말을 해도 인생의 철리요, 그 현금속에는 이미 고수준의 뭔가가 많이 쌓여있습니다.
    배부른 사람이 발산하는 기가 틀리고 영혼이 포만한 사람은 에네르기가 풍부한것과 같이 문자도 신선하고 독특하게 되는 법이지요.

김: 독자들이 늘 저에게 질문해요. 글 잘쓰는 비결은 어디 있냐고? 그래서 저는 이렇게 대답해요. 자주 많이 읽고 쓰면 평명하고 간결하게 쓸수 있다고, 저는 글이 간결하고 평명하고 꾸임없는게 가장 최고경계라고 믿기때문에 그것을 실천하고 있습니다.
    초학자들은 흔히 미사려구요, 기교요 하면서 머리를 짜지만 저는 그럴수록 글은 죽는다고 생각해요. 산 글은 기교나 미사려구 없이 진솔하고 평명해야 하는것입니다.
    선생님의 소설이나 산문은 진솔, 평명, 간결한 무기교의 최고 경계에 달했다고 보는데요?
 

17. 모든 문학작품에는 “경계”가 있어야

가: 나는 소설이나 모든 문학작품에는 “경계(境界)” 이 두글자가 있어야 한다고 언급하고 싶어요.
    이 경계는 의경(意境)이 아니라 또 다른 단어로 말하면 “格局”(구조와 격식)입니다. 그러나 나는 역시 “경계” 이 단어를 좋아합니다. 경계는 꼭 장대하고 광활하고 심도있어야 해요. 그렇지만 또한 세속을 강조해야 하구요.
    여기서 난 통속이라 하지 않고 세속(世俗)이라 합니다. 왜? 세속에는 인간냄새, 생활냄새가 나고 흔히 말하는 향속(乡俗)과 시속(市俗)의 냄새가 나거든요.
    이처럼 아(雅)와 속(俗)은 소설의 천성이지요. 난 상아탑같은 소설이 싫고 살아 숨쉬는 소설이 좋습니다.

김: 그러므로 선생님의 소설, 산문작품에는 언제나 살아 숨쉬는 민간의 풍속이 듬뿍 들어 있고 그것은 세속적인 먹고 마시고 싸고 누고 자고 하는 세속이란 일상의 세부를 통하여 전통문화와 현대의 갈등, 당금세계 인간들의 두터운 이야기가 전개되고 있습니다.


    이를테면《高老庄》에는 많은 더러운 습관이 묘사되고 있지만 평용한 세속의 무료함을 피하여 높은 경계에 이르고 있다고 봅니다.

가: 《高老庄》중의 일부 향속, 그 생활습관의 “더러움”을 쓴 의도는 고로장의 불행을 안타까워한겁니다. 이런 “더러움”이야 말로 그들의 고루한 문화의 죽음, 인종을 퇴화시키는 열악한 환경을 말하지요. 우리가 실생활중 가끔 이런 일에 봉착 하지요. 친구나 친척중에 어떤 사람의 바지 자크를 안 채웠거나 눈에 눈꼽이 끼었을때 나는 작은 소리로 귀뜸해주지요.
    농민들의 그런 더러운 습관을 벗겨주는게 농민의 아들로서의 양지와 책임이거든요.


 

 

18.  농민과 엘리트사이에서

김: 선생님은 늘 자신을 “농민의 아들”이라고 표현을 거듭하면서 아마도 자신을 “농민의 자식”에서 아이덴티티를 규정짓는것 같습니다.
     저 역시 심양근교의 중국의 조선족 농민의 아들로 태여났습니다만, 저는 소시적부터 이 농민의 호적을 고치고 대를 가시겠다고 다짐했어요. 그래서 저는 공부에 열심했고 지금까지 해외유학,석박사공부를 하면서 줄곧 엘리트 코스를 밟고 엘리트의식이 지극히 강열하게 뇌리에 각인돼 있습니다. 그리고 아버지 농민을 배반하여 엘리트지식인이 됐다는데서 자부심을 갖고 있어요.
    그러나 선생님께 제가 탄복하는것은 “농민”내지 “농민의 아들”로서 자신의 아이덴티티의 근원을 두고 있으며 농민 소재를 쓰시고 농민의 아들로서의 양지와 사명감을 지니고 계신겁니다.

가: 내가 《我是农民》이란 책 한권까지 쓴 적이 있습니다.
    나는 줄창 19살까지 농민의 아들로 태어나 농촌에서 살았고 사실 지금까지도 음식습관은 거의 농민의 습관입니다. 맥주는 못마시고 소주만 마시는것도 농민습성이지요.(웃음)
    어려서부터 김선생과 세대차이가 있다고 보는데, 단 일반적인 전통교육을 받은면이 많고 전통적 인소가 많지요.


 

김: 그리고 선생님은 “농민”이라는 “아이덴티티”로 규정하고 계시지만 오히려 많은 사람들은 선생님을 전통적 사대부, 즉 전통적 문인으로 보고 있습니다. 또한 선생님의 그림이나 글속에는 현대적요소가 늘 보이며 현대지식인이라고 해도 어폐는 없겠지요.


 

가: 아무래도 내겐 현대적의식도 있거니와 굳이 어느게 더 비중이 무겁냐 따진다면 전통적문인쪽이겠지요. 농민식 문인, 내가 나서 자란 향촌에는 불교와 도교의 분위기가 매우 농후했답니다. 왜냐면 그곳은 기본상 교통의 경계선에 자리잡고 있었기 때문에지요.
    하지만 현대 생활, 현대의식에 대한 선망, 학습, 흡취가 상당히 빈번했습니다. 내가 아는 우리 고향의 농민들은 겉으론 농민의 이미지였지만, 사실상 사상은 여전히 현대적이었는데 단지 표현을 잘 안했을 따름이지요.
    내가 형식을 강조하고 현대의식을 강조하지만, 나 또한 자기를 내세우는 그런 쿨한 인간은 아닙니다. 그러니 겉으론 아주 전통적사대부라는 느낌을 주게 되는데 사실은 오해입니다.
    나와 자주 접촉해 본 이들은 깜짝 놀라는거예요. 왜냐하면 내 사상, 사유가 그들보다도 훨씬 현대적이고 모더니즘이라고요!
    그래요. 내 사유, 사상방면에는 절대 농촌의 촌스러운 구석이 없거든요. 농민의 그런 협애하고 보수적이고 자사자리한 그런 버릇이 제겐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까 김선생이 말하다시피 개인 생활면에서는 매우 전통적이지요! 모순덩어리라고 할까요. 잘 모르겠어요.

 

19. 전통적 문인의 취미

김: 제가 중국의 당대 학자, 작가, 평론가 등 지식인들과 교제하면서 한가지 느낌이라면, 역시 아쉬운 부분인데요, 거의 붓글씨를 잘 쓰는 지식인을 못 봤어요. 만년필로 쓰거나 컴퓨터로 타자를 하다보니 붓을 멀리 한지도 오라지요.
    제가 상대에게 싸인을 하는 붓글씨를 보고 오히려 내 붓글씨가 더 멋있다고 칭찬받습니다. 내 수준도 다 칭찬받는 정도이니, 웃끼죠.
    근데 선생님은 특별해요. 제가 만난 문인가운데 진정하게 당대 최고의 “전통적문인”이라 할수 있는 까닭은 전통문인 답게 하나는 고완 수집가이시고 컬랙션도 이번에 와서 보니까 무진장 많습니다. 그리고 붓으로 서와 그림을 그리는 서화가라는 점에선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경지에 달하고 있습니다.
    그림이나 서를 딱 보면 금방 “가평요”품격이구나 알리지요.

가: 아, 이렇게 동양에서 온 지기가 생겨서 무척 기쁩니다!
    내가 고완수장을 하는데는 사실 문물적가치나 경제적 가치를 안 따져요. 다 내 심미가치에 부합되면 그만이지요. 질박하고 대기(大气)하고 이런 분위기의 고완이 좋습니다.
    나는 이런 기가 큰 기물에서 내 서예와 회화에 많은 요소를 섭취해요. 한 유명한 거물급 평론가가 내 글쓰기, 서법, 회화를 담론할때 그중에는 민간성, 전통성, 현대성이 내포돼있다고 평가했는데 난 이 말에 찬동합니다.
    왜냐면 난 이면으로 의도적으로 노력을 기울였기때문이지요. 물론 보잘것 없는 수준이지만.
    그러나 글쓰기야 말로 내 영구한 본업이고 서법, 회화는 과외흥취이지요.

김: 선생님의 주로 컬렉션을 보면 석(石),고토기, 도자기, 항아리가 많습니다. 이 많은 컬렉션을 보고 놀랐습니다. 저는 주로 서화나 문방사보를 수집하고 있습니다.


 

가: 그럼 유명 문인들의 서예가 있겠네요?

김: 네. 예를 들어 손문, 이홍장, 오창석, 제백석, 대원군, 김윤식, 김옥균, 후쿠자와유기치,이토히로부미등 동아시아의 문인, 지식인들의 서화가 있습니다.


 

가: 다 거물들의 희소가치가 있는 작품들이네요.

김: (웃음) 그냥 취미로 하는겁니다. 제가 명인의 서화를 무지 좋아하거든요. 제가 선생님과 공감하는 부분도 “전통적문인”상이며 선생님의 서예나 회화가 상당 프로급 수준이라는데서 더 숭앙하게 됩니다. 중국에서 선생님의 묵보(墨宝)를 얻는데 영광으로 생각한다고 들었어요.

 

20. 서화명가로서의 가평요

가: 감사해요. 아마 내 서예와 회화중에서 회화가 더 좋은것 같아요. 그러나 난 그림은 거의 안 팔아요. 아깝기 때문입니다. 내가 서안미술학원에서도 겸직교수로 있기도 했는데 보니까 소묘를 해종일 그리게 하는데 난 나쁘지 않다고 보지만 소묘를 위한 소묘는 국화창작에 별 도움이 못돼요.


    중국화에는 사의(写意)가 중요한바, 그것은 사람들에게 많은 상상의 공간을 주지요. 물론 사실(写实)은 아니고.


    중국 옛날 글쓰기는 붓으로 쓰니까 간결한 문언문(고문)밖에 쓸수 없지요. 다들 내 글씨가 멋있다고 하지만, 그냥 그 정도고, 만약 옛날 고인들을 부활시키면 그들 어느 누구의 붓글씨도 다 현대 저명한 서예가 보다 훨씬 우수해요.
    제생각에 현대 문인이 컴퓨터로만 쓰다보면 이제 100년, 수십년이 지나면 누가 붓글로 한자만 쓰기만 하면 다 서예가로 될수 있는거예요.


 

김: 재밋는 말씀이군요.
    선생님의 서화 실력은 소설보다 뒤지지 않는데요. 선생님은 서예와 글쓰기 (소설)와 어떤 연관이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가: 그건 깊이 생각한적 없습니다. 내가 서안에서 생활한지 이미 40여년이 돼오지만 여기에 이런저런 번뇌가 많아요. 그렇다고 떠날수도 없구요. 서북지역의 중심이고 난 외지사람이라 내 자신의 문학그룹을 형성시키지 못하고 기본상 단독으로 활동하지요.


    북경, 상해는 정보량이 많고 교제가 많으니까 늘 독립하기가 쉽지 않겠지만 여기는 교제가 적어서 홀로 있기, 사고하기가 좋은 공간입니다. 난 늘 단창필마(单枪匹马)로 글쓰는데 습관됬지요.


    그리고 서안에는 전통문화가 농후하게 남아 있으므로 이런 생존환경이 생존경험을 결정짓지요. 서안에 두텁고 장대한 문화적분위기가 있기에 글쓰기에 적합하다고 생각합니다. 여기에서 于右任, 柳青, 石鲁,张艺谋, 路遥등 명인 대가들이 많이 탄생한데는 다 이유가 있지요.


    서법은 문자의 형식미의 극치이고 경외인데, 그러나 우리는 여기에 홀시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전통이 철학, 의학, 서법, 회화에서 우리의 사유가 나오기 마련인데요. 문자만 보더라도 형상문자이고 가장 기본적으로 중국인의 사유방식을 체현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 컴퓨터, 글러벌화, 서양화에 따라 동방인의 사유가 상실돼가고 민족문화가 상실될 위험성도 있다고 봅니다. 우리가 우리의 것을 지키는것이 우리 자신의 사명이 아닌가 해요.

 

21. “4차원문학”이란 무엇인가?

김: 저는 현실과 역사를 쓰는 명작가로서의 가선생님은 자각적으로 고차원 파노라마의 문학을 추구하는 작가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우선 “파노라마문학”이란 무엇인가부터 말씀드리겠어요.


    평명하게 말하여 이것은 간단한 현세문학의 모델에서 이탈하여 파노라마, 전경(全景)식 시야로 이 세상을 관망하고 글쓰는 문학의 방법입니다.

    이 개념은 제가 만든 신조어 인데, 미국에 있는 저명한 문학평론가 유재복(刘再复)선생의 4차원 문학관 개념에서 힌트를 받은거지요.
    유선생은 문학의 “4차원공간”에 대하여 이런 말씀을 했어요. 즉 중국현대문학에는 오로지 “국가, 사회, 역사”, 이 1차원만 있을뿐, 그래서 단차론 문학이라는 거예요. 심미적 차원에서 또 다른 3차원이 모자라다는거죠.


(1)  존재의 의미를 묻는 차원
이 차원에서 서양문학이 비교적 강세를 노정했는바, 카프카, 카뮤, 사르트르 등이 이 차원에 속하고 중국에 노신의 《야초》나 장애령의 《倾城之恋》이 있을뿐입니다.
(2) 영성과 대화하는 차원
영성 즉 신과 대화하고 우리 지성의 한계를 넘어선 체험등을 가리키는데 “어디서 왔으며 어디로 가고 있냐”의 문제의식입니다.
(3) 자연의 차원
여기에서 자연은 대자연, 내향적 자연 즉 생명적자연입니다.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 자크 런던의 작품이 이런 차원에서 다루고 있지요.
이상 3차원과 “국가, 사회, 역사”의 차원을 합하여 “4차원문학”을 이루고 있답니다.
제가 이것을 종합하여 “4차원파노라마문학”이란 개념을 재창조했어요. 이런 “4차원파노라마문학”을 다 갖춘 작가야 말로 고차의 수준에 오른 작가라고 할수있습니다.
평론가들은  贾平凹 莫言 余华 史铁生 등 당대 작가들만이 이 레벨에 달한 작가라고 평가하고 있습니다.

가:  “4차원문학”이란 파노라마문학의 신개념은 매우 의미있습니다.
    저는 이 4가지를 이론적으로 자각했다고 할수 없지만, 글쓰기에 있어서 역시 이 4차원을 의식했을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나는 이론가, 평론가가 아니니까 이론적 고차의 설명은 어렵지만 이상 4가지 차원에 대하여 무의식적으로 느끼고 글쓰기를 전개한것은 사실입니다.
    이를테면 《폐도》에서는 존재의 의미를 묻는 차원에서 이 시대 정신 추락, 신념의 붕괴와 함께 지식인의 현실적 실존경우에 대해 캐물었거든요.
    제2차원에서도 말하는 소, 돌의 그림, 불명비행물, 그리고 사망, 자연의 신비에 대해서도 많이 썼습니다. 제3차원 자연에서도 산, 물, 여우, 늑대, 소, 등 자연생태와 인문생태에 연결시키자고 애썼습니다.

김: 이처럼 선생님은 의도적 혹은 무의식적으로 이미 “문학4차원의 파노라마”의 고수준에 도달했습니다.
    제 생각에 중국작가가 앞으로 이런 수준으로 나아간다면 노벨문학상은 10년안에 또 한분 나올것입니다. 저는 틀림없이 가선생의 몫이라고 보고 있어요. 일본의 무라카미도 아시아 작가로서 가능성이 크지요.
    선생님은 막언(莫言)과 막역지교로 알고 있습니다.
 

22. 막언(莫言)과의 막역지교

가: 저는 문단에서 서안이라는 서북 변두리에 있고 원체 성격이 내향적인데다 어눌한탓이라 그리 교제를 잘 하지 못해요.
    그러나 몇몇 평론가분들과 막언씨와는 막역지교입니다. 아주 오래된 에피소드인데 어느 해 여름 북경에 있는 막언씨가 신강으로 가는 길에 서안에 들른다고 나더러 서안기차역까지 마중나오라는 연락전보가 왔습니다.


    그때까지 난 막언을 한번도 만나본적이 없기때문에 부랴부랴 종이 팻말에 “莫言” 두 글자만 써서 역전에 달려가서 기다렸지요. 아무리 기다려도 누구하나 나한테 말거는 사람이 없고 막언씨도 끝내 나타나질 않았어요.
    그때는 지금처럼 핸드폰으로 금방 위챗이나 똰씬이 되는것도 아니니까 도저히 연락할 방도도 없었습니다. 물론 지금도 나는 겨우 똰씬만 보내고 위챗은 할줄 몰라요. 사실 막언씨는 그날 급한 일로 서안에 오지를 못했습니다. 오후가 지나서 내가 한 승객에게 ××번 열차가 도착했냐고 물었어요. 그 사람은 내 손에 든 종이팻말을 꺼꾸로 돌리더니 이렇게 말했어요.
    “ 이제야 난 당신에게 말할수 있게 됐네요. 사실 난 그번 열차가 도착했는지 모르지요.”
    (웃음) 그제야 나는 아차 하면서 팻말에 쓴 “莫言”두자를 깨달았어요.
    “말하지 말라”는 이 두 글자는  참 멋있어요. 가석하게도 막언씨의 필명으로 되었습니다.

김: (웃음) 아. 그래서 끝내 못 만나셨군요. 그러고보니까 저번 선생님이 저에게 제 스마트폰으로 발신한것도 똰씬뿐이었네요.
    그 뒤 막언선생과 관계는 막역지교로 된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가: 약간 상호간 오해가 있었지만 서로 북경에서 만나고 서로 오해를 풀고 말마따나 “막역지교”로 되었습니다.

김: 사실 문학계에서는 우선 가선생님이 노벨문학상을 수상했어야 할 수준인데 선생님이 교제나 자기 선전을 못하여 그렇게 됐다고들 하고 있습니다.

가: 노벨상 수상도 제가 바라는것이기도 하지만, 그게 역시 운명과도 관계 된다고 봅니다. 막언씨야 중국 당대문학의 거목이지요. 누가 받아도 다 우리 중국 문학의 영광이 아닙니까.

김: 천재가  천재를 알아본다는 말마따나 막언씨는 가선생님을 깍듯이 존경하고 문학의 거물로 모신다고 들었습니다. 이렇게 우리 당대 중국문학의 두 거봉이 사이 좋게 막역지교로 지내니 참 존경스럽습니다. 보기도 좋구요.
    저는 지식인들끼리 “문인상경”의 도를 넘어선 인신공격엔 신물이 납니다. 서로 돕고 존중하면 다 자신께 되돌아오는데도 말입니다. 가장 똑똑해보이면서 어리석은게 지식인인가 해요. (웃음)

가: 그러게요.(웃음)

 

23.  누가 나를 영향주었나?

김: 이번에는 화제를 바꾸겠는데요. 선생님은 문학의 길에서 어떤 작가를 좋아하시며 어떤 작가의 영향을 받으셨는지 가르쳐주시겠습니까?

가: 사실 내 문학의 스타트점은 굉장히 낮았습니다.
    초기 습작에는 글쓰기를 좋아하다 보니 늘 타인의 책을 읽고 계발을 받아서 모방하여 긁적거리기도 하고 시간이 가면서 대가들의 작품을 통해 열독과 열력이 넓어지면서 소설에 대한 인식이 깊게 됐습니다.
    중국작가로는 손리, 심종문, 장애령,폐명을 좋아하며 또 그들의 영향을 많이 받았습니다.
    고대작가로는 庄子 陶潜 苏东坡 司马迁 蒲松龄 曹雪芹등 이 있구요.
    외국 작가로서는 라틴아메리카 문학을 좋아하며 《백년의 고독》을 쓴 마르크스의 영향을 받았고 일본의 川端康成(카와바다 야스나리)를 무척 좋아합니다. 처음 카와바다의 작품을 접하고 그에 심취한 나머지 서점에 갈때마다 그의 작품을 찾군 했어요. 그의 한 단편하나를 읽자고 그 두터운 책을 사왔어요. 그리고 일본어번역가에게 편지를 써서 그더러 카와바다의 작품을 될수록 많이 번역해 달라고 했다니까요(웃음)

김: 카와바다는 저도 좋아합니다. 선생님은 그의 어떤 면을 좋아하하시는지요?

가: 그 작품의 맛, 그 감각이 너무나 좋아요! 그 분위기는 완전 가와바다의 독특한 것이에요.
    그러나 그의 작품은 늘 나를 골치 아프게 했습니다. 왜냐하면 그의 글 쓰기의 궤적을 찾을수 없으니까요.
    난 거듭 감개무량했어요. 세계의 작가는 두가지로 분류할수 있는데 하나는 인간이고 또 하나는 신이라고 생각 돼요. 어떤 작가는 그 작품을 읽으면서 서서히 그 규률성을 장악할수 있지만 신같은 작가는 그게 거의 불가능해요. 그냥 선망할뿐이지요. 중국의 庄子 苏东坡나 외국의 마르크스. 타골.헤밍웨이가 그렇고 카와바다야스나리가 그런 작가입니다.

김: 카와바다는 가장 일본적인 미를 일본적인 필치로 표현하며, 그런 미의 서술양식이나 문체는 일류이지요. 제가 또 그를 좋아하는 이유의 하나는 역시 전통적 문인취미의 문사로서 미술괴집가로서 명성이 자자합니다. 그가 괴집한 컬력션에는 중국 송나라의 비취색 청자나 고려 청자도 일급품입니다. 서예가로서 또한 특색을 나타냈는데 “深奥幽玄” 이란 4자는 그의 서예에 대한 깊은 조예를 표현했어요.

가: 카와바다의 감각은 내가 배울수 없는 경지입니다. 그는 동양의 작가로서 서양 모더니즘과 일본전통의것을 잘 조합시켜 독특한 경계를 창조했다는 이점에 나는 너무 감격했어요.
    그의 작품에 일본적인것과 세계적인 현대의식이 잘 믹스되어 내게 큰 계시를 주었는데 그로 인해서 나는 서양의 현대파 철학, 미학, 문학의 책을 읽고 그 영양가를 섭취한다음 또 다시 의식적으로 중국고전문학예술의 학습에 돌아오고 라틴아메리카 문학에 도취했다가 내 고향에 시선을 돌리게 되어 이제 마침내 내 독자적 작품스타일을 양성했다고 할수 있습니다.

 

24. 영원히 육필로 글쓰기를 고집한다

김: 제가 아는 유명문인, 작가는 거의다 육필로 글쓰기를 고집 또는 견지하고 있습니다. 왕몽, 무라카미 하루키, 용응대(龙应台), 이오 (李敖), 막언(莫言), 그리고 선생님도 육필로 원고를 쓰시는 걸로 알고 있어요.
    저 자신도 수십권의 책을 다 몽블랑펜이나 수성볼펜으로 써서 원고지만 해도 제 키의 수백배나 넘습니다. 그래서 저는 같은 육필로 글쓰는 작가로서 육필로 글쓰기를 하는 작가분들께 더 동감과 존경심이 가거든요.

가: 수십년 동안 나는 만년필로 글쓰기를 고집해왔습니다.
    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기 보다는 컴퓨터에 흥취가 없고 그걸 다룰수 없으니까 그런거지요.
    한때는 내가 쓴 원고를 아내가 타이핑을 해주었는데, 그녀는 문학하는 것도 아니고 문학에 관심 없는 여성인데 내 소설원고를 보고 잘 모르겠대요. 그래서 아예 딴 사람에게 타이핑을 시키지요.

김: 저는 늘 이런 말을 잘해요. 컴퓨터 건판을 때리는 사람은 작가가 아니고 타가(打家)다. 진짜 작가는 필로 글을 써내는 사람이야만 (作家),작가와 타가의 차이는 바로 필에 있다고 (웃음)

가: (웃음) 정말 재밋는 말씀이네요! 듣고 보니 맞는 말씀이군요.

김: 선생님의 글쓰기 스타일, 매일 어떤 스케줄로 글쓰기를 하십니까?

가: 매일 아침8시에 서재에 가서 점심 11시까지 글을 쓰고나서 11시부터 12시까지 찾아오는 손님을 접대하고 한잠 잡니다. 이게 내 오랜 습관이지요. 낮잠을 잠간 잔 뒤 오후 5시까지 글쓰기를 하고 5~6시에 또 손님을 만나죠. 내 생활규률은 기본상 이 일과로 움직이고 있습니다.
 

25. “문여기인(文如其人)”은 정말 그런가?

김: 대체로 하루 얼마만한 분량을 쓰시는지요?

가: 잘 되면 5천자, 특별히 순조로운 날엔 8천자 문제없습니다.

김: 글쓰기는 먼저 구성안을 짜고 초고를 쓰십니까?

가: 젊었을 때 산문, 중편소설을 쓸때는 초벌원고 한번 쓰고 나서 또 한번 정리합니다.
    그러나 지금은 아니에요. 대강 맥락을 잡아놓고 노트에다 초고를 적은 다음 또 한번 수정하고 그리고 원고지 뒤면에다 베낍니다.
    《古炉》를 쓸때만 해도 전후로 200만자가 되는데 무려 300개 싸인펜으로 썼어요.
    “문여기인”(文如其人)이란 말이 있잖습니까. 기실 어느 정도 작품을 써내야 문여기인에 달할수 있다고 봅니다. 또 “득심응수”(得心应手)란 말도 있는데 맘속으로 생각했다해도 손이 척척 말이 들어 주는건 아닙니다.

김: 저도 그런 느낌이 있습니다. 사실 글은 많이 읽고 써야 일정한 수준에 이르러야 글쓰기가 쉬워집니다. 모드 기교를 떠날 때 가장 득심응수의 경계에 달했다고 할수 있지요.

가: 옛사람들의 말이 멋있어요.
    “  看山是山,看水是水; 看山不是山,看水不是水;看山还是山,看水还是水”
    이게 작품이나 모든 사물의 최고 경계인데 이런 경계에 이르는건 어려운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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