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장선생님은 현대 중국의 저명한 비판적 지식인 선봉의 한 사람입니다.
제가 장선생님을 포괄한 중국 체제내의 비판적 지성을 탄복하는건 체제내부에 있으면서 과감히 체제를 비판하는 용기와 슬기이에요.
비판적 지식인이란 체제와 권리의 남용과 불공평, 부조리현상을 비판 질책하고 진리와 공정,객관,진보 등 가치를 추구하는 지식인을 말합니다. 사르트르가 간파한것과 같이 “지식인의 천직은 불공평한 현상을 비판하는것이며 그것이 어디서 생기든 상관하지 않는다”는 사명감이 특색입니다.
오늘 선생님과 함께 문화대담을 나눌수 있어 후배로서 영광으로 생각해요.
장; 정말 반갑습니다. 중국사회 과학원의 뢰의 (雷颐)씨와 우리 인민대학 문학학원의 손욱(孙郁)원장으로부터 예전부터 김문학씨의 말씀을 많이 들었어요. 동북출신의 조선족 비교문화학자, 수십권의 저작을 썼고 국제적시야를 갖춘 독특한 문화학자라는것, 나도 동북에서 살았고 조선족 벗들이 있었는데, 조선족은 “술 좋아하고 호방한 성격이지요. 그리고 여성들은 또 청결하고 부지런하고요.”
김문학씨의 출현으로 조선족인문계렬 지식인이 처음으로 국제적으로 알려졌다는 평도 있어요. 같은 비판적 지식인으로서 이렇게 “귀재”라 불린 인물과 만나게 되서 기뻐요!
김: 과찬입니다. 저는 선생님의 《辛亥-摇晃的中国》을 위시로 많은 저작을 읽고 인터넷 블로그를 접하면서 당대 중국 수일의 비판적 지성, 공공지식인으로서 역사, 정치,교육, 국민성, 국제관계, 일상생활 등 여러분야에 걸쳐 광범위하게 비판을 하고, 또 늘 정곡을 찌르는 글에 혀를 둘렀어요.
그런데 방금도 언급했지만 저야 해외 언론자유가 보장된 환경에서 비판을 전개할수 있으나 선생님은 중국인민대학이라는 국립대학중의 국립대학에 몸을 담고 있는 상황에서 용감하게 여러가지로 비판을 전개할수있다는건 일반 지식인이 다 할수있는건 아닙니다. 모두다 체제에 안주하면서 사탕발린 말이나 하면서 적당히 살아가는 세상에서 굉장히 소중한 존재이지요
장: 감사합니다. 비판적 지식인, 공공지식인이라고 했으니만큼 제 구실을 해야지요.(웃음) 이 사회에 부조리, 불공평과 죄악이 있다면 비판할수 있는건 지식인뿐이에요. 지식인은 본래부터 지식을 이용하여 불공평과 압박등에 대해서 대담하게 비판하고 정의와 평등, 인권 등 가치를 수호하는게 사명이 아니겠습니까?
신해혁명이중국근대를혼란시켰다
김: 선생님은《辛亥-摇晃的中国》에서 기존의 신해혁명연구와 많이 다른 지적을 했습니다. 신해혁명의 준비부족이라든가 특히 “만약 신해혁명이 일어나지 않고 청조가 정상대로 입헌정치를 실시 했다면 의회제도가 조만간에 실현되었다”고 지적한것은 과연 정채로운 지적이었다고 생각해요.
장: 사실 신해혁명은 교과서에서 미화한것과 다른 양상이지요. 그것은 준비가 잘 안된 상태에서 돌발적으로 일어난 변혁이었거든요.
혁명성공은 중국에 커다란 영향을준건 사실이지만, 그건 역효과였어요. 근대화를 추진할 대신 사람들에게 신제도에 대한 곤혹과 초조감을 주었습니다. 세계적으로 가장 새로운 선진적 제도를 중국에 갖다 주어야 할 혁명이 부흥과 부강의 드림을 실현시키지 못했고, 오히려 혁명후의 혼란상태를 초래했어요.
김: 그렇죠. 사실은 청말 광서신정(光绪新政)때 서양식 정치제도나 법률사상을 이미 도입했지요.
장: 맞어요. 현재 교과서적인 신해혁명의 평가가 고착되고 기호화되어서 당시의 실정이나 혁명의 많은 문제점을 호도시켰지요.
김선생의 《100년전의 중일한》에서도 밝혔듯이 신해혁명은 미완성의 혁명이었습니다. 세계적으로 볼때 신해혁명은 별 주목하지 못한 혁명의 하나에 지나지 않았어요. 서양 정부에서는 거의 아무도 정부고관을 파견하여 신해혁명을 고찰하거나 하지 않고 당시 주청 대사들만 관심이 있었을 뿐이에요.
그러나 중국인 당사자들에게 이는 굉장히 큰 혁명이었지요. 소수민족인 청나라 만주족의 제국을 뒤엎고 한족 중심의 공화국을 최초로 세웠으니까요.
그러나 공화제는 말이 쉽지 2천년동안이나 황제정치에 습관돼온 중국인에게는 지극히 곤란의 도정이었습니다. 청조 황제제도는 붕괴시켰지만, 공화제, 민주제는 설립도 되기전에 난장판인 민국이 전개됩니다.
민국은다채로웠다
김: 선생님은 현대중국사에서 오히려 민국시대가 사상이 자유스러웠고 더욱 개방되었다고 지적하셨습니다. 이 점에 대해 말씀해주세요.
장: 민국사가 흥미로운것은 우리 역사의 명조, 청조사보다 더 다채로운 양상을 나타내고 있지요. 복잡하고도 전연 상반되는 얼굴이 공존하니까 재미있고 매력적인거에요. 세가지 차원에서 민국을 개괄할수 있습니다.
첫째. 제도는 점점 하강선을 긋고 있지요. 북양군벌시기 1912~1926년이고 국민당시기가 1927~1937년 항전 그뒤로 내전시기로 이어집니다. 마땅히 공화제를 실시해야 되는데 원세개는 결국 대총통취임후 황제제도를 복벽했다가 실추하고 말아요. 그 뒤 시기는 약하겠지만, 국민당시기 제도적으로 민주상황이 북양시기보다 더 못하지만 국력은 회복됩니다.
장: 이시기에 많은 신생의 직업이 탄생되고 많은 문화예술이 번영하고 대학도 진보하게 되지요. 이시기 군벌들은 주로 일본에서 군사를 배운 사람들인데 오패부(吴佩孚) 손전방(孙传芳)등은 문인기질의 양호한 군인이었어요. 염석산등도 사회건설을 하려고 애썼어요. 일본과 러시아를 배운 군벌정권하에서 물질은 현대화 요소가 많아졌지만 온 사회 사상은 제도 문화면에서 전제쪽으로 흘렀습니다.
아무튼 1949년 국민당이 대륙에서 패배할때까지 진짜 전제를 세우지 못했고 그런 와중에 중국문화사상, 대학, 교육, 출판 지식계,예술계에 장족한 발전의 틈새를 주었습니다.
대학만 보더라도 매우 개방된 국면하에서 개설,운영해왔는데 북양시기에서부터 국민당시기까지 외국인에게 개방하고 외국인 교원전문가를 대량 초빙했어요.
김: 손문과 원세개, 장개석 지어 장작림 등 인물들 측근에 일본 전문고문을 두었으며 1898년 경사대학당(지금의 북경대학) 설립시 일본의 유명한 학자들이 많이 교육컬리큐람에 참여했습니다.
장: 맞어요. 당시 개방된 상태하에서 경제도 다원적이었고, 북양군벌시기에는 국유경제가 없었어요. 국민당시기에 국유경제가 생기는데 국가가 독점할 만큼 강대하진 못했습니다.
그러니 언제나 큰 영역에는 정부의 손이 못미치는 공간이 주어졌거든요. 대학도 3종 국면 즉 국립, 사립, 교회대학 3족정립(三足鼎立)의 양상을 노정했어요.
현재의 북경사대의 전신인 보인(辅仁)대학은 천주교가 창립한것이고, 북경대는 원래 연경대학에서 발전되었는데 교회에서 만든것이지요. 협화학원(协和学院)은 당시 세계일류의 의학원이었는데 교회가 설립한것입니다. 국립대 최고는 북경대였고 국민당시기 중앙대학이 있었고 , 청화대학은 반국립, 반사립이였어요. 남개대학은 사립의 표징이었고 아무튼 민국시기 대학은 정말 훌륭했어요.
군벌들도 앞다투어 대학을 세웠는데 당계요가 운남대학, 장작림이 동북대학, 조곤도 하북대학을 창설했습니다.
당시 학술은 자유롭고 교수가 학교를 다스렸고 이게 너무 좋았어요. 대학자치에 대해 존중했는데 민국시기의 대학은 멋있었어요. 대학교수도 교편을 잡는다면 4백원넘는 월급이 보장됐으니까요.
무슨얘기냐면, 당시 경찰의 월급이 8원이었으니 교수의 경제수준이 얼마나 고수준이었는가 알만하지요!
김: 제가 중국에 와서 대학에서 강의를 하면서 알았는데 보통 대학교수의 월급은 아직 생각밖에 너무 적었습니다. GDP세계제2의 경제대국에 어울리지 않지요!(웃음)
장: (웃음)그렇습니다. 그리고 민국시기 사상, 학술은 자유로왔습니다. 대학이 이처럼 자유로우니 언론자유도 보장돼 있는건 당연하지요. 잡지도 자유롭게 만들수 있었어요. 《신청년》은 개인들이 만든거고, 교과서도 다 민간에서 쓰고 출판했어.
민국사를 보면 국가가 강대했다해서 사상문화가 번영하는것도 아니고, 국가가 혼란하고 약화되었다 해도 사상문화가 같이 허약해지는건 아닙니다.
김: 그렇습니다. 민국의 역사적 경험은 우리에게 풍부한 시사를 주고 있습니다. 선생님은 공공지식인으로서 현대 중국에서도 대학, 교육, 관원의 부패에 대해 늘 무자비한 비판을 해왔어요. 지금 대학에 대해 어떻게 보고계신지요?
중국의대학구제불능인가?
장: 예전에도 나는 중국의 대학에 대해 많이 비판해왔습니다. 대학의 추락은 여전하고 더 빠른 속도로 하강하고 있어요. 대학이 아문(衙门)같다고 내가 자주 질책했지만, 지금의 대학은 아문보다 더 한 아문입니다.
중국 축구와 중국대학 어느게 더 희망이 있냐고 기자들이 묻는말에 나는 중국축구라고 답했어요!(웃음)
김: (웃음) 오리려 축구가 더 희망성이 높다는 말이네요. 대학이 그 정도로 추락했나요?
장: 물론 이렇게 대답한데는 홧김에 던진 말이기는 해도, 그만큼 중국대학은 중국축구만큼이나 부패하다는 얘기죠. 그 원인은 어디에 있는가? 바로 관료기구가 산업화로 이끈데 있어요. 그래서 거대한 이익집단의 형성하에 대학은 실지로 교육이익집단의 이익을 획득하는 제단으로 변질돼버렸습니다.
행정화가 팽창된데는 그것만이 이익집단의 최대이익화를 보장해줄수 있으며, 독점경영만이 이렇게 행정화된 대학을 유지해 나갈수 있거든요.
김: 행정화에 대한 객관적 비판시스템이 필요하지요.
장: (웃음) 말이야 듣기 좋지요. 제아무리 외부에서 비평을 해도 그냥 마이동풍격이에요. 몇년전에 발표한 《중국에는 오로지 하나의 대학밖에 없다》라는 글에서도 지적했지만, 중국의 과도한 행정화,독점화는 모종 의미에서 중국엔 대학이 하나밖에 존재 안해요. 그것은 바로 교육부대학이에요. 기타 모든 대학은 이 대학의 분교나 분부에 불과합니다. 목전 전국의 모든 도시가 획일화된 것처럼 대학도 획일화로 쏠리고 있어요.
전세계 어느 대학도 자신이 자신의 졸업증, 학위증서를 발급하는데 중국의 대학만 교육부 증서를 발급합니다. 이런 현상 자체가 계획체제의 산물이지요.
민국시대에도 북경대, 청화대, 서남련대, 이 모두가 다 자기절로 학위증서를 발급했습니다. 그런데 현재 중국 대학의 자주, 독립성은 어디 있습니까?
대학 행정에서는 교수들의 교수안도 체크하고 연구논문은 무슨 SCI 수량을 따지고 학술자유를 한쪽으로 밀어버리고 논문수자만 중시하니 대학이 어디 대학같아요? 무슨 기관같아요!
교육의비만증과소화불량
김: 중국에서 보니까 요즘 대학을 거대화시키는게 유행입니다. 대학을 주변의 작은 대학과 병합하여 비대화시키는데, 사실 저는 이상하게 느껴져요. 인간도 체통이 크고 비대하다고 해서 능력, 자질, 역량과 정비례되는것은 아니지요. 마찬가지로 대학도 그러하다고 봅니다.
접때 어떤 변강의 대학이, 주변 몇개 대학,전문학교와 병합해 그 지역 최대의 규모를 갖춘 대학으로 변모하긴 했지만, 결과 그 방대한 규모만큼 실력과 실제 인재양성에는 별 실효과가 없다고 들었습니다. 무슨 “공정”이요, 무슨 “기요”요 하면서 분식해도 그 본질적 의미가 없지요. 대학이 무슨 잡기단, 곡마단도 아닌데 요란하게 분장할 필요가 있나요?
장: 맞는 지적입니다. 90년대후기 211공정과 985공정은 경제성장에서 부유해진 중국의 대학이 비대화해가는 표징이기도 해요. 그 방법은 주로 세가지가 있어요.
돈 뿌리기. 재력을 집중하여 소수의 수준급대학에 투자하는것
행정강화하기. 그 돈을 투자한 만큼 행정컨트롤을 강화하는것
산업화 실행. 기업관리요소를 도입해서 물량화 관리를 통한 대학교원의 대우개선
기실 이 3방면의 개혁은 결국 대학의 비대화와 함께 가장 현저한 특징이 바로 행정의 강화입니다. 그 다음은 대학의 수입비용이 10배나 증폭되고 국가도 대학생모집을 내수경제 향상 수단의 하나로 삼고, 전국에서 대학생모집에 힘을 기울였지요. 따라서 대학의 비대화에 응해 많은 도시에서 대학을 규모, 외모면에서 개선개축하고 대학도시를 건설하여 대학의 산업화는 부동산, 토지개발업과 기묘하게 손을 잡았습니다.
김: 대학교육의 대약진이군요!
장: 예. 이런 대약진은 행정 주도의 대학독점회사를 형성했어요. 대학에서는 산업화의 특징을 보였는데 고액의 학,잡비를 받고 또 사회시장과 연관있는 전공을 설치하여 기초학과의 위축을 초래했어요. 이런 관영산업은 독점이기 때문에 기본상 경쟁이 없고 대학의 행정기관, 아문화, 관료끼가 넘치지요.
행정체제에서 요구하는 정액을 채우기 위해 대학과 교원들은 가짜 조작, 베끼는 등 형식으로 때우고 학생들에게도 논문을 억지로 발표하게 하여 정액의 수자를 채우는데 나서게 합니다.
편견없이 말해서 현재 중국의 대학은 역사상 최저 수준으로 추락됐어요. 개별적 학원, 교수외에 대학 전체가 줄곧 내리막길을 걷고 있으며, 공중에서 떨어지는것과 같아요. 솔직히 말하여 현재의 대학은 옛날의 중학교육과 유사하며, 상당히 많은 지방대학은 이름만 걸었을뿐이지요. 지금의 중국대학은 이미 대학이라 칭 할수 없어요.
김: 대학의 위기를 탈출 또는 극복하는 길은 있습니까?
장: 한마디로 개방과 개혁하는 길밖에 없습니다.
김: 그래도 말이 쉽지 만만치 않을텐데요?
장: 아, 쉽지 않아요! 개방은 가능성이 있지만 중앙정부와 교육기득권자 사이의 결투에 달렸다고 생각합니다. 이 결투에서 성과가 있다면 진일보 개방이 가능합니다. 그러나, 중국엔 “그러나”가 너무 많아요. 개방하여 교회에 학교운영권을 준다면 문제는 더 해결하기 쉬워집니다. 민국때처럼 교회에서 대학을 꾸린 경험을 적응하면 위기 극복의 기회가 더 많아지게 됩니다.
노벌상수상은토치카를격파하는게아니다
김: 한국과 마찬가지로 중국의 “노벨상 욕망”은 보통이 아닙니다. 이미, 문학상과 자연과학(의학생리학)에서 중국인이 염원의 노벨상을 수상했지만, 여전히 중국의 대학,인구에 비해 너무 정비례가 되지 않는다고 중국내 지식인들도 의견이 분분합니다. 일본은 GPD세계제2의 기간에 10여명의 노벨수상자가 나왔는데 중국은 같은 시기 비례적으로 너무 말이 아니다는 겁니다. 선생님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장: 중국인의 노벨상 칭제(情结)는 거국체제입니다. 근년래 정부유관부문에서 만인계획을 내왔는데, 과기인재 만명을 중점적으로 선발장려하여 그중에서 또 최우수 100명을 선발하여 집중적으로 노벨상을 공격한답니다.이런 기세당당한 방대한 공정은 실로 고무적이에요.
그러나 곰곰히 생각하면 이런 유사한 과기인재 양성공정은 예전에도 있었어요. 다 기백이 있고 거금을 소모했지만 노벨상 그림자도 보이지 않았지요.(웃음)
김: 과연 전제제도의 중국다운 얘기군요.
장: 거국체제의 우세는 스프츠항목의 난관을 공략하는데는 효과가 있어요. 그러나 기초과학을 이런 식으로 돌격한다는건 소련도 그랬거니와 중국에도 지금까지 효과가 없습니다
과학연구영역은 기실 한 국가의 교육과 연구체계와 연결되있는 법이지요.노벨상수상이 어디 등산과 같은 일인가요? 오른다고 해서 동반하게 되나요? 만일 전쟁에서 적진을 진공한다면 이런 집중공격은 적의 토치까를 부술수있습니다. 그러나 과학연구, 노벨상수상은 한나라의 전체과학기술실력,사회학술환경의 뒷받침 해줘야 하지요. 노벨상 각 상에서 자연과학영역에서 수상자가 가장 많은 나라는 죄다 교육과학연구실력이 최강의 국가입니다.
현재 GDP세계제2의 대국이지만 우리의 과학,교육수준은 아직 수준미달이지요. 일본에 비해서도 많이 후진국입니다. 과학기술실력이 교육과 밀접히 관계된다만, 우리의 교육은 여전히 표준답안식이죠. 중국의 중학생이 올림픽학력경기에서 수상한는데는 문제없지만 과학연구영역, 노벨상과는 인연이 없지요. 과학연구체제도 그냥 연구항목이요,연구비요 하면서 결국 행정화 체계이니 문제입니다
노벨상 수상을 바란다면 우선 해야하는일은 그런 공정이 아니라, 교육과 과학연구체제를 개혁하고 행정주도,학벌주도를 버려야 합니다. 이게 급선무에요. 딴것은 다 쓸데 없어요. 화려한 공정(工程)은 결국 슬로건과 비슷하니까요!
“당신은 행복합니까?”
김: 과연 독설가 장선생님다운 날카로운 정곡을 찌른 말씀이십니다.
이번에는 중국인의 일상 삶의 질에 관한 화제를 여쭈고자 해요. 개혁개방 30여년이 지난 오늘 중국이 물질적으로 부를 획득했지만, 저의 관찰에는 삶의 질이 물질적 차원에서는 향상되었어요. 그러나 요긴한 정신적, 문화적 차원에서는 별 진보를 보아내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상해, 북경 등 대 도시 사람들의 표정이 그리 밝지가 않아요. 목소리만 컷지 미소가 지극히 적어요. 한 나라의 종합적 소프트파워를 가늠하는데는 그 나라 국민의 만족도, 행복감 문제가 하나의 바러미터로 되는데. 중국인의 이점에 대해 선생님의 고견을 듣고싶습니다.
장: 제가 몇년전에 글에도 썼는데요, 인민논단잡지의 임의조사에 따르면 자신을 “약세군체”(弱势群体)로 보는 사람중 지식인이 55% 당정간부가 45% 샐러리맨이 58%에 달해요. 그리고 인터넷 조사에 따르면 자신을 “약세군체”라 여기는 사람은 7할이라고 합니다.
김: 아, 당정간부, 지식인이라면 다 사회의 엘리트계층인데 그럴수가 있나요?
장: 글쎄 말입니다. 더욱 아연해지는것은 평시 위풍이 름름한 경찰도 기자의 인터뷰에서 자신도 약세군체이니 보호를 받아야 한다고 하소연한대요. 웃끼는 얘기죠. 만약 이러한 사람들중에 어느 한사람이 농민공신분과 서로 바꾸라하면 그럴 사람이 있겠어요?(웃음)
그러나 이들의 하소연도 절대 꾸민건 아니라고 생각해요. 지식인도, 관원도, 샐러리맨도 경찰도 다 고가 집가격, 고가교육비,고물가 등에 눌려 허리가 굽혀지는건 사실이거든요.
상급행정의 압력, 하급과의 처리 등 이로 최대 수익자인 관원도 빛좋은 개살구에요. 반부패의 환경하에서 “탐불가 불탐역불가”(贪不可,不贪亦不可)의 궁지에서 허덕이게 되지요.
김: “당신은 행복합니까?”의 물음에 예스라고 대답할 계층의 사람이 의외로 적다는건 삶의 질이 떨어진다는 얘기가 되겠군요.
장: 사실 다 현실의 삶에 만족감, 쾌락이 없다는것이지요. 소수면 몰라도 70%나 되는 국민이, 그것도 상층엘리트층이 만족감이 없다는 사실은 큰 문제이지요.
중국 개혁개방 30여년에 경제총량은 비약적 발전을 이루었지만, 부의 증가는 행복감의 증가를 가져다 주지 못했습니다. 뿐만아니라 더 많은 국민들이 행복감이 줄어들고 안전감도 없다고 불만입니다.
그래서 그 대안이 바로 출국입니다. 안전감이 없고 살 장래성이 없다고 느낀 많은 사람들이 개방과 함께 국외로 나가 유학하고 이민하고 정착합니다.
김: 지어 그렇게 미국에 민주, 자유가 없다고 비판하던 이른바 젊은 애국자들도 미국 남자와 결혼하는가 하면 아예 미국국적을 취득하고 마는 케이스들이 어디 한 둘입니까?
장: 그래요. 그러므로 제생각에는 아직 개혁을 해야 해요. 국민들의 불만의 목소리는 결국 더욱 큰 변혁을 부르는것이지요.
횡단보도는 문명수준의 눈금
김: 일상 세부의 화제인데요. 저는 일본서 오래 살다가 중국에 한번씩 오면 제일 무서운 두가지 사항이 있습니다.
하나는 화장실에 들어가서 용변 보는일이고 또 하나는 길거리의 횡단보도를 건너는 일입니다. 대학청사의 안에 있는 공중화장실안에도 토이렛페퍼가 비치돼 있지 않아서 늘 봉변을 당했던 일이 한두번이 아닙니다.
그리고 횡단보도를 건널때 또 두가지 겁나는 일이 있는데요. 하나는 행인들이 적신호를 무시하고 건너는게 많이 보이고 외려 청신호를 기다렸다가 건너는 사람이 소수인 경우도 늘 있습니다.
자동차역시 횡단보도를 청신호때 건너는 행인을 무시하고 스피드를 내서 질주하는 현상이 많아요. 좌우로 잡아먹을듯이 달려오는 맹수같아서 늘 마음이 조마조마 합니다.(웃음)
공중화장실이 “2.5㎡의 문명관”이란 말이 있고, 횡단보도 역시 그 나라 국민의 문명레벌의 눈금이지요.
장: 재미있는 지적입니다. 화장실에 화장지를 두지 않는건 하나는 재정문제라는 말이 있고 또 하나는 화장지를 도둑 맞치는 일이 비일비재라고 합니다.
김: GDP세계제2의 경제대국이 그 화장지도 살돈이 없다는 말은 좀 이해가 안 가는군요. 복단대학 갈검웅선생님은 중국보다 문명수준이 낮고 경제력이 가난한 아프리카주의 대학 화장실에도 대부분 화장지가 비치돼있다고 한적이 있습니다.
장: 황차 화장지까지 훔쳐가는 국민의 문명수준은 바닥이 다 드러난거죠!
횡단보도를 건너는 행인은 결국 청색을 통행 적색을 스톱이란 법의 룰을 안중에 없는거죠. 그냥 촌에서 논두렁 건너는 의식으로 나만 건너가면 된다는 그런 농경문화의 습관이 남아있다고나 할까요.
김: 그러니까 해외에서는 중국인처럼 용감한 국민은 없다고 하지요. 자신의 목숨을 걸고 적신호를 무시하니까요. 제가 늘 관찰해보면 적신호때도 부랴부랴 건너는 행인들은 무슨 급무가 있어어가 아니에요. 건너가자 저쪽에서 금방 핸드폰을 보면서 유유자적 우보로 천천히 걸어가거든요.(웃음)
장: (웃음) 그게 바로 습관이지요. 별 바쁜 일로 그런것도 아니고 옛날부터 건너는 습관이 되어서 무의식의 행동이라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한편 자동차시대라고 불릴만큼 중국거리엔 자동차의 홍수입니다. 중국인에게 있어서 자동차는 보행대용일뿐아니라 돈 있는 자들의 자랑꺼리로 작용을 하고 있습니다.
젊은이들도 집사는 돈을 부모가 내주고 은행대여를 해서라도 외제 고급자동차를 사지요. 벤츠, BMW 부귀와 돈자랑의 상징물이기도 합니다. 자랑하기 위해서 초스피드로 운전하는데 차안에 있는 자는 차밖에 있는자를 무시하고 얕잡아 보지요.
그러니 김선생같이 해외 선진국에서 온 사람들은 횡단보도 건너기가 전쟁터로 나가는것과 같지요. 본래는 청신호는 행인의 통행권리인데 그런 차들이 좌우양쪽에서 맹속력으로 질주해오니 인간이 차를 피하는 곤경에 빠지게 돼요.
김: 자동차가 문명의 상징물이기도 하며, 인간의 교통도구에 지나지 않지요. 자동차를 운전하는 인간의 소질이 아직 자동차라는 껍떼기에 갇혀서 그 껍떼기보다 더 중요한 인간, 내지 인간의 생명을 모르는거예요.
장: 그러니까 중국은 자동차시대만 있었지 자동차시대의 문명은 아직 없습니다.
“관강민약”의 중국문제
김: 프랑스의 정치사상가 아레시스.토크빌러의 《구제도와 대혁명》를 읽으면서 나는 18세기 후반의 프랑스가 마치 21세기 현재의 중국을 실사(实写)한 느낌을 강렬히 받았어요. 부패, 추악하고 책임감이 없는 관리와 불만에 차 있으면서도 또 무기력한 보통대중이 서로 대치하고 있었으며, 사람들은 초조와 불안하여 어디로 갈지 갈피를 못잡고 있어요.
이런 상황이 중국 현재의 관민의 관계 및 실존양상 그 자체라 생각되었습니다. 선생님은 중국 관민에 대해 어떻게 보고 계신지요?
장: 참 좋은 화제를 꺼냈군요. 중국이란 이 역사중에서 진한통일이래 수천년동안 관료형 제국국가가 유지되면서 사회의 가장 기본적이고 가장 핵심적인 관계가 바로 관과 민이었습니다.
사회모순의 굶은 주선도 여전히 관민모순이었고 관은 사회운행의 주체였으니 어느곳에서 민의 원성이 관의 통제로 삭일수 있었지요. 한편 사회의 엘리트, 지식인도 민과 이탈돼있었고 관원과 관계가 더 밀착돼있었습니다.
특히 현대사회에서 관의 권력이 너무크고 강한 까닭에 민은 거이 무슨 권력도 없이 약소한 존재였어요. 약한 민이 관의 저항으로 상급에 반영하고 매스컴이 폭로시킨다해도 결국 관의 상급도 관이기에 관의 악행을 억제시키는 길은 좁아요.
그러므로 관이 가장 두려워하는것은 매체에 폭로되는것이지만, 많은 상황하에서 일을 컨트럴 할수 있고 그것을 억누르면 민의 반항도 결국 우야무야 흐지부지해지고 말지요. 그러면 관원들은 계속하여 대담하게 권리를 확대, 남용할 길이 넓어집니다.
김: 관을 감독하는 법적 메키니즘이 정상으로 존재하지 않고 또 작동이 되지 않는 인치사회 중국에서 관의 권력에 자동적으로 굴복하는게 민의 하나의 국민성으로 고착되었습니다.
민 자체가 자신의 인권,민권과 자유를 향유하고 지킬줄 모르니 이것도 큰 사회문제이지요.
장: 체제내의 부동의견자들, 이성(理性)의 목소리를 압제하다보면 체제밖의 서민엘리트들이 궐기하며 민중을 위해 일을 할려고 애씁니다, 그러나 각급 관원들은 공공적 사건처리에서 도리를 따지지 않고 강제로 압제하며 부분적 서민엘리트들이 비이성,폭력적으로 저항하게끔 만들어버려요.
그러니 이성의 목소리는 관방의 강폭속에서 민간에서는 제대로 성장할수 없게됩니다. 현재 관장(官场)에서 전례없는 권대독존(权大独尊)의 풍기가 생기고 여러 분야의 관장에 만연되고 있는데 대학도 포괄돼있어요.
자기말을 잘 안 듣는 사람은 예외없이 관의 타격 배척을 당하고, 반대로 모든 관장에는 관화(官话),거짓말, 빈말과 아첨이 성행하게 됩니다.
민중의 뜻은 표달할수 없고 누가 민중을 위해 말을 하면 관의 공적(公敌)으로 되기 십상이지요.
김: 역시 무서운 관민의 관계역학입니다. 그렇다면 이 관계문제 해결의 방책이 있는지요?
장: 이런 “관강민약”의 사회환경과 토양속에서 그 관계를 해결하는 묘안은 아직 없는줄로 알고 있습니다. 국가가 능동적으로 이 대문제를 해결하는 방책을 찾을수 있냐 없냐에 달렸다고 봅니다. 여전히 대환경의 개혁이 필요하지요.
왜 인간의 존엄, 유린당할까?
김: 장선생님, 저는 비교문화 학자와 문명비평가로서 항상 동아시아3국인과 함께 특히 중국인의 “인간문제”에 대하여 지대한 관심을 품고 관찰분석해왔습니다.
“국민성”이란 테제를 떠나 중국인을 세계 각국인과 비교할때 지금까지도 인간의 조건중에서도 존엄, 자유를 경시하는가에 대해 고민하고 있어요.
한나 아렌트(현대 독일의 탁월한 사상가)의 《인간의 조건》《전체주의의 기원》등 명작을 읽으면서 더 많은 사고를 하게 됬었습니다. 인간은 독립사고, 적극적으로 생활하는것이 아렌트적 의미의 인간조건의 하나인데 사고와 행동이 인간의 중요한 조건이며, 인간의 행동은 인간의 존엄,자유 내지 자신의 계몽,이성를 기본으로 하고 있어요. 그러나 중국에서는 인간의 존엄이 여지없이 유린당하고 인간을 경시하는 경향이 너무 강해요. 경찰이 농민공에 대한 형편없는 태도나 최근에 일어난 뢰양(雷洋)사건에서도 이점을 잘 나타내고 있습니다. 선생님은 이점에 대해서 어떻게 보시는지요?
장: 중국에서는 권력이 인간의 존엄을 유린하는 패턴이 많습니다. 권력이 좀 있다면 권력이 사유영역까지 침범하여 상대의 존엄을 꾸겨야 권력의 맛을 보는듯하지요. 어렸을때 선생은 일을 저지른 학생에게 벌 주기 위해 전 반급앞에서 그 학생의 프라이버시나 약점을 공개해서 프라이드를 여지없니 꺾어놓군했잖습니까.
현재 상급과 하급관계도 흔히 주노(主奴)관계로 작용하며, 마음에 안드는 부하를 여러가지 수단으로 존엄을 꺾는 일이 비일비재지요.
권력의 산생은 폭력, 정복과 갈라놓을수 없는데 이른바 정복이란 육체의 콘트럴뿐만 아니라 피정복자에 대한 정신적 유린을 의미합니다. 모종의 의미에서 피정복자의 정신, 육체적 복종은 권력실시의 실효를 의미하기도 하지요.
우리 중국사회에는 여전히 권력자의 권력의식이 DNA로서 전해왔어요. 권력자만 아니라 많은 권력자가 아닌 대중들에도 그런 권력의식, 심리가 있어서 자신들의 자식,또는 약자에게 같은 굴욕을 안기지요.
흔히 도시인들이 농민공에 대한 태도, 언어, 눈길하나에도 부지중 그런 우월자의 의식중에 존엄을 무시하는 건 일상에도 늘 있지요
김: 존엄이란 인간의 인권보다 더 중요한 덕목으로서 인간이 인간이게끔 보증하는 기본조건이기 마련이지요. 대체로 중국에서도 여전히 존엄의식이 희박하고 사람들도 존엄을 지키면서 생존하는 태도가 결여합니다
장: 부존빈비(富尊贫卑), 관존민비(官尊民卑)의 사상의식이 중국인의 인간관에 자리잡고 있는 하나의 고질이지요. 인간이 존엄이 짓밟히고 또 사람마다 존엄을 무시한다면 이 세계는 인간의 세계가 아니지요. 인간의 존엄이 존중받는 사회만이 정상적이고 인간다운 사회이지요.
돈키호테의 경종
김: 중국에서 비판적 지성인으로 명성이 자자한 장교수님께서는 래디컬한 비판으로 유명합니다. 그런데 오늘 대담같은 무자비한 비판을 해도 괜찮습니까?(웃음)
장: 아무렴 괜찮구 말구요. 오늘 말한 내용은 다 내가 공개발표한 글에서 쓴 내용입니다. 지금 중국도 언론자유도가 넓어져서 문화대혁명시기처럼 지식인을 공권력으로 맘대로 잡는 그런 시대는 아니니까요.
김: 선생님은 중국지식계의 “돈키호테”라 불립니다. 2007년 인민대학에서 학원원장의 교수에 대한 직함평가에서 부조리가 있다고 과감히 질책하고 결국 전국 지식계에 “장명사건”으로 파급되었지요. 당시 장선생의 지지자가 많았으며 장선생님이 정치계주임직을 박탈당했지만 지식인의 독립자유정신을 수호했다는 점에서 선생님은 더 학계의 존중을 받게되었습니다.
장: 내가 좀 과격한 비판을 하여도 내 명성때문인지 누가 감히 어쩌질 못해요. 전국적으로 파장되면 뒤수습이 두려우니까!(웃음)
김: 미술가 진단청(陈丹青)선생의 사건이 있었지요. 미국 유학하고 미국대학에서 교수를 하던 진선생이 청화대학 미술학원에 교수로 취직했다가 교육의 고루한 방식이 싫어서 청화대 교직을 물러난 일이 사회적 사건으로 되었습니다. 중국학계에서는 더 많은 장명,진단청이 나타남으로써 현실 체제의 폐단을 적극적으로 개변할수 있는 개혁의 역량이 된다고 호응하였습니다.
장: 내가 비판적 지식인으로서 돈키호테의 방망이(펜)를 들고 경종을 울리는것은 우리 나라의 관료체제, 우리 사회안에 존재하는 모든 부조리,불평등 또는 결함,폐단을 지적, 개혁하기 위해서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김선생도 동아시아 문화권에서 비판적지성으로 이미 명성을 떨치고 있지 않습니까? 3국에서 이렇게 하는 건 대단한 일이지요.
김: 비판적, 자유주의 지식인으로서 앎을 통해 진실을 밝히는것이, 사회에 대한 언설적 총탄의 발화행위라 믿고 있습니다. 사르트르의 말을 빌어서 말하면 말입니다.
장: 그래요! 내가 갖고있는 하나의 신조는 서재속의 학자처럼 학술을 상아탑의 정교로운 조각으로 만드는게 아닙니다.
내는 사회 비평을 하는 일은 계속 견지할겁니다. 이 사회에 선량을 억느루고 흑백을 전도시키고, 양녀를 창녀로 핍박하고, 언론 탄압을 하는 여러가지 악행이 존재하는 한 나는 내 손의 펜을 놓지 않습니다.
사람들에게 진실을 알리고 실정을 알리는것은 매 하나 지식인의 거부할수 없는 책임이기때문이지요. 대학 교원으로서 더욱 그러하지요.
나는 내가 얼마나 고상하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만약 이렇게 하지 않으면 내 양심이 불안한 까닭입니다.
내가 일을 한 뒤 그 어떤 트러블이 생겨도 령도들이 그 얼마나 노여워해도 나는 다만 양심의 지령에만 복종합니다. 이게 나의 생존방식입니다.
대담자소개
장명(张鸣)
중국 현대 저명한 비판적 지식인
정치학자, 역사연구자, 평론가
1957년출생 , 동북의 북대황에서 자람
청소년시기 농업기계공, 수의를 지냄
중국인민대학 대학원 졸업
현재 중국인민대학 정치학계 교수
주요 저작으로는 《辛亥-摇晃的中国》《乡村社会权力和文化结构的变迁》
《历史的会脾气》 《历史的底稿》《北洋裂变》 등 다수가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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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 [ 30 ]
30 작성자 : 경희
날자:2016-08-29 17:53:16
이미 오랜 시일이 지낫는데도 새로운 대담이 아직 안 오르네요.
김선생님,좀 빨리 올려 주시면 좋겠어요 .좋은글 다음은 어떤 대담일가 기다려 집니다용.
29 작성자 : 장백의 아들
날자:2016-08-29 15:25:39
우민님 말씀 옳은. 지적입니다 .
지금까지도 이런 고루한 인간이 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습니다.
이 사람은 조글로에서 전문 김문학 선생을 헐뜯는 자로서
많은 익명을 바꿔가면서 댓글을 달지만 사실 한사람이지요.
논조나 내용을 보면 금방 알립니다 .
본인이 더이상 그런 비열한 짓을 반성하고 자제했으면 좋겠네요.
28 작성자 : 우민
날자:2016-08-29 10:18:18
아래 14번 신맇하님.
<민족의 최대 반역자 무나기를 타도하자!!> 이 구호는 문화대혁명 구호입니다.
우선.
최대의 반역자라면 어느 면이 최대반역자 표연인가 설명하세요.
무엇이 반역이라는 개념을 명확이 밝히시고 김문학 선생의 어느것이 반역행위하는 논단이 나와야 합니다.비판이면 반역인가요.이것은 완전히 다른 개념입니다. 비판과 반역을 해석해 보세요.
그리고 타도란 무슨 의미인가요? 너무도 반시대적이고 탈시대적이고 구시대적입니다.
타도란 말이 어디서 나온 말인지 한번 곰곰히 생각해 보세요.
내가 어느 수준에 있다는 성찰도 해 보시고....
그리고 그냥 그러 하시련다면 남을 타도하시고 나는 배터지게 잘 잡수시고 잘 입으시며 잘 살아보세요.
27 작성자 : 향촌교사
날자:2016-08-28 22:51:35
김교수님 대담을 언제나 주목하여 읽고 잘 배우고 잇어요.
다음 대담 아직 안 올랐네요.
그럼 기다릴 게요.신대담을.ㅎㅎㅎ
26 작성자 : 단군후예
날자:2016-08-24 23:01:29
내용도 좋고 사유도 넓고 비판도 심각한 대담을 하시고 계시는 김교수님께 감사드리며
조글로가 조선족에서 앞장 서서 이런 무게 있는 글을 내보이는 지혜와 담식에 경의를. 표한다.
김선생님께 좋은 글들 부탁 드리며 몇글자 적어보았다.
25 작성자 : 압록강
날자:2016-08-18 13:30:29
수준 높은 문화 대담이다.
精辟到位啊!
24 작성자 : 진리
날자:2016-08-18 09:40:31
지금까지도 14.16번같은 인간이 있다니!
하긴 인간 쓰레기는 어느때나 있는법.
이런 인간이 있기에 볼 재미는 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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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생님,좀 빨리 올려 주시면 좋겠어요 .좋은글 다음은 어떤 대담일가 기다려 집니다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