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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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7) 로쿠메이칸 문명개화의 꽃
2016년 03월 07일 17시 07분  조회:4336  추천:29  작성자: 김문학
근대 재발견 100년전 한중일(77)

로쿠메이칸 문명개화의 꽃

김문학

        

  동아시아 근대사는 서양문명을 따라배운 “서양화”의 력사이기도 하다. 근대, 현대 포스트 근대 등 단어 자체가 서양의 산물인바 우리는 오늘날도 서구화의 조류속에서 살고있으며 그 또한 우리의 력사이며 우리 자신의 정신과 모습 그 자체이다.

  비서구사회에서 솔선 서구화를 이루고 근대화에 성공한 일본의 근본원인은 우선 세계적으로도 탁월한 서구화, 국제화에 대한 지대한 정열과 실천력에 있다.


일본의 서구화 정열에 대해 그냥 “원숭이 흉내”로 비난하기는 쉬우나 그 서구하습력에 대해 리해하기는 쉽지 않을것이다. 일본의 근대 서양학습력을 인식하는데 상징적인 건축물이 있다.

  그가 바로 로쿠메이칸(鹿鳴館)이다. 일본 문명개화의 심벌물로서 서구화의 상징적인 꽃으로 불렸다. 1881년에 착공하여 1883년에 완성된 서구 르네상스양식의 2층 건물로 된 영빈관ㅡ로쿠메이칸이 탄생된다.

  록명(鹿鳴)이란 중국 《시경》의 “록명의 시”에서 따온것인데 손님을 접대하는 의미를 나타내는 뜻에서 이 명칭을 채용했다. 1883년 11월 준공되여 11월 성대한 락성식을 거행한 이래 로쿠메이칸은 일세를 풍미한 국제사교클럽으로서 국제적명성을 날린다.

  로쿠메이칸을 지은 배경에는 일본의 서구화정책이 있었다. 이와쿠라사절단의 서구순방이래 1880년대 일본 메이지정부는 급격한 서구학습으로서 구화주의(歐化主義)로 불린 구화정책을 실시했다. 당시 일본인에게는 청국처럼 서구의 반식민지로 전락되는 위기를 모면하는것은 서양을 배워 서양식근대문명을 이룩하는 길이 유일무이한 선택이라는 심각한 문제의식을 안고있었다.

  그리하여 메이지정부가 일본의 문물, 제도, 풍속, 습속 등 생활양식과 정신의식에서 서구식으로 습득하여 서구제국(諸國)에게 일본의 근대화를 피알하고자 했다.

  당시의 외무대신이였던 이노우에 가오루(井上馨)가 주도하여 도쿠가와(德川) 바쿠후말기 구미렬강의 강압에 못이겨 체결했던 일련의 불평등조약을 수정시키고 동등한 위치에서 교류하는것이 급선무였다.

  그리하여 훌륭한 건축물 로쿠메이칸을 통해 일본이 구미와 변함없는 문화국가라는것을 과시하며 구미렬강의 외국요인들을 초대하여 교류하는 근대적장소를 갖기 위해서였다.

  동경의 중심부, 현재의 제국호텔근처에 세운 이 양식 로쿠메이칸은 동경제국대학 건축학과의 초빙교수로 재직중이던 영국인 콘들이 설계한것으로 유명하다. 그때로서는 지극히 이국적 정취를 물씬 풍기는 모던적 건출물이였다고 한다.

  현재 필자의 수중에 있는 당시의 무도회, 연주회 장면을 활사한 그림(유명한 화가 요슈치카노부(楊洲周延)가 그린 작품)을 보아도 그 화려한 성황을 실감할수 있다.

  1883년 11월 28일, 해내외의 1,200여명 인사를 초청하여 성대한 락성식이 열렸는바 일본의 젊은 미인과 부인들이 영, 미, 독 등 신사들의 품에 안기듯 서양원무곡 선률에 맞퉈 우아한 원무판을 벌였다.

  연미복차림의 일본신사나 파리숙녀같은 서양장으로 화려하게 단장한 숙녀... 그뒤 련일 개최된 가면무도회, 원유회, 연주회 등 서구문명개화의 드라마를 자작자연해나갔다. “양장을 입고 양담배 권연을 꼬나물고 양주를 들이마시고 댄스를 하는”것이 전형적 일본 신사숙녀의 모습이였다.

  외국인과 교제하기 위해 외국어 회화레슨도 활발히 전개되였다. 1884년 양슨이라는 외국인이 일본의 귀현숙녀의 댄스교사가 되여 댄스를 가르쳤으며 그뒤 세상을 풍미한 로쿠메이칸 가장(假裝)무도회가 빈번이 벌어졌다.

  뿐만아니라 여기서는 교육자금을 모금하는 목적으로 녀자학생들이 만든 인형이나 의복을 파는 바자(자선시)도 열렸는데 이같은 자선운동은 상류계급 부인들의 사회봉사로서 류행하기도 했다.

  로쿠메이칸의 무도회는 한편 정치가, 상류사회 부인들의 염문을 뿌린 스캔들의 장소로 되기도 했다. 이토 히로부미가 “어색가”총리로서 외교관 도다백작의 미인부인과 스캔들을 뿌린 일은 유명하다.

  그러나 일세를 풍미했던 로쿠메이칸시대 역시 일본 국민들의 반발을 사게 되여 1887년 9월 이노우에의 외상직 사직과 함께 쇠퇴의 내리막길을 걷는다. 그리고 1941년 건물 자체를 철거해 버린다.  .

  서양인들은 일본인의 서구화를 극단적인것으로 보았다. 피엘. 로치는 로쿠메이칸의 무도회를 풍자하기도 한다.

  기실 일련의 구화정책은 단순히 “외국숭배”가 아니고 당시 지극히 낮았던 일본의 국제적지위에 메이지정부가 위기감을 느끼고 그 해결책으로 서양문물학습의 급격한 구화정책을 택했던것이다. 그래서 일본 종래의 기능을 했던 가치까지도 부정하면서 서구적 신가치를 긍정하며 서양과 일본의 갭을 메우는것이 일본인이 살아남는 유일한 길이라고 간주했던것이다.

  이리하여 20년후 일본은 마침내 동아시아 최초의 근대국으로 탈바꿈하게 된다. 그때까지 조선은 여전히 “잠자는 은둔의 나라”, 청국 역시 “잠자는 사자”를 답습하고있을 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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