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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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 후쿠자와 유키치 “탈아입구”의 심층
2013년 10월 21일 00시 56분  조회:4771  추천:9  작성자: 김문학
근대 재발견 100년전 한중일(30)

후쿠자와 유키치 “탈아입구”의 심층

김문학
 

 일본의 만엔짜리 지페에 그 초상화가 오른 후쿠자와 유키치(福澤諭吉)(1835~1901)를 떠나서 일본 근대를 리해할수 없다. 근대 일본의 최대의 계몽사상가, 교육자, 저널리스트, 문명비평가로서 후쿠자와는 중국으로 말하면 강유위, 량계초와 엄복 이 3자를 복합시킨 인물이라 볼수 있다.

  “하늘은 인간우에 인간을 만들지 아니하고 인간아래 인간을 만들지 아니한다”는 인구(人口)에 회자(膾炙)한 명언들을 뿌리면서 《학문의 권장》, 《서양사정》, 《문명론의 개략》 등 명저들을 통해 메이지시대의 일본의 사상가, 계몽지식인의 제1인자로 부상한다. 그의 사상은 래디컬하지만 “메이지유신”의 기반을 만들었으며 일본인의 서양인식 및 아시아니식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면서 근대화를 정신적으로 리드해 나갔다.

  후쿠자와에 대한 한국이나 중국인의 인식은 지금까지도 그 “탈아론”에만 편향되여 “아시아멸시”의 장본인으로서만 보는 경향이 강하다. 그러나 사실은 후쿠자와의 사상체계와 인물상은 그 하나만으로 결정지으려 하는것은 너무나 편협하다.

   일본인으로서는 가장 빠른 시기, 26~34세에 무려 세번이나 유럽과 미국땅을 밟으면서 그 서양문화체험의 소스가 후쿠자와의 “서양문명기준”에 맞춰서 습득해야 한다는 개명적사상을 형성시킨다.

  그는 일본인으로서는 세계사적시야에서 일본과 아시아를 바라본 최초의 사상가, 문명비평가였다. 《문명론의 개략》(1875)에서 그는 유명한 “문명의 류형론”을 전개한다. 그는 유럽, 미국 문명은 “최상의 문명국”,  토이기, 중국과 일본 등 아시아나라는 “반개명의 나라”로, 아프리카 등을 “야만의 나라”로 칭한다. 그 문명정도에 따른 문명류형은 현상을 돌파하는 향상심의 유무가 원인이며 아시아, 중국 등이 개혁에 등한시하고 자기자만에 빠져 세계적 력사의 리얼리즘을 망각하여 야랑자대(夜郞自大)에 질주한 결과 현실의 정체를 자초했다고 지적한다. 즉 세계사에서 자신을 탈락시켜 스스로 자기중심에 빠진 결과 쇄퇴의 인소가 되였다고 갈파한다.

  그리고 그는 세계사에 있어서의 문명국인 자본주의적인 명암을 진보와 해외에는 침략이라는 발톱을 뻗쳤다고 랭철히 분석하기도 한다. 백인에 의한 식민지화가 류행병을 전파하여 저항력이 약한 현지 인민구를 감소시켰다고 기술한다.

  이런 의미에서 후쿠자와는 단순 “탈아론자”는 아니였다는것을 다시 발견할수 있다. 그는 중국에 대해서 서구의 식민지로 전락됨을 예언한다. “지나와 같이 국토도 광대하여 아직 그 내지에까지 침투하진 못했지만 서구인의 족적은 해안지역에만 있기는 하다. 그러나 금후의 흐름을 추찰하면 지나제국도 그야말로 서구인의 전원으로 전락될것이다. 서구인이 미치는 곳은 마치도 토지의 활력을 끊고 초목도 그 성장을 멈출것이다. 심지어는 인종이나 인구조차도 절멸될 가능성이 있다.”

 당시 후쿠자와는 그 예리한 통찰력을 구사하여 아편전쟁을 통해 국토가 영불군에 의해 점령되기 시작한 중국이 “서구인의 전원”으로 떨어지는 반식민지의 미래를 예견하고있었던것이다.

 그리고난 다음 후쿠자와는 일본이 현재 다행히도 대외관계에서 극단적피해는 받지 않았지만 역시 우리가 아시아의 일국이라는것을 망각하면 서양제국주의에게 당할 재난은 엄청 지대할것이라고 경고한다.

  예지와 서양문명에 대한 견식, 그리고 세계사적 흐름에서 아시아 및 일본을 바라본 후쿠자와의 관찰에는 많은 탁월한 사상과 지견이 들어있었다.
  후쿠자와가 지적했던 일들은 마치 그의 각본대로 연출되는 드라마같이 중국과 아시아에서 식민제국의 식민지배가 속속이 전개되지 않았던가.
  이제 그가 발안한 “탈아입구(脫亞入毆)”에 대해 다시 고찰해보자. 1885년 3월 16일자 그 자신이 창간한 《시사신보》에 유명한 “탈아론”을 발표한다.
  “오늘의 목적을 위해서는 우리 나라는 린국의 개명을 기다려 같이 아시아의 흥성을 기하는 여유는 없다. 오히려 거기서 리탈하여 서양문명과 진퇴를 같이해야 한다…악우를 친하게 사귀는것은 악명에서 자유롭지 않다. 우리는 마음으로부터 아시아동방의 악우(지나, 조선)를 사절해야 한다.”

  그러면서 후쿠자와는 문명동참을 “홍역”으로 비유하면서 중국, 조선은 “그 홍역을 대처하기 위해 외면하면서 페쇠를 고집하고있다”고 지적한다.
  당시 세계사를 아시아사와 결부시켜 넓은 시야에서 바라보고있는 후쿠자와에게 있어서 문명동참을 거절하는 량국의 “고루”,  “페쇄”는 한스러웠을것이다. 그리고 이 “탈아론”의 발표는 자신이 지지했던 조선개화파의 제자 김옥균이 비참하게 살해되고 또 그 시체까지 릉지처참 당하는 직후에 후쿠자와의 중국, 조선에 대한 철저한 실망감에서 발해진것이다. 단지 단순히 중국, 조선을 “멸시”하여 발안한 론설이 아니였다. 그리고 그의 탈아론을 단순히 아시아침략의 원초적 사상으로만 한정시키는 견해는 한계가 있다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

  후쿠자와의 일생에서 창도했던 일본의 선택은 바로 청국중심의 고루하고 페쇄된 조공체계에서 리탈하여 서구형 문명국가로 탈바꿈하는 길이였다.
  “탈아입구”의 선택은 바로 아시아의 서구화, 근대화의 대안이였던것이다. 다시 랭철히 분석해보면 후쿠자와의 령지는 일본을 근대화로 성공시켰으며 역시 그보다 20년 뒤져 중국에서 추진했던 근대 유신파 강유위, 량계초들의 모델이 되였다. 사실 중국의 근대화의 100년, 조선의 근대화의 100년 그 본질은 후쿠자와가 창도한 아시아적 “탈아입구”사상을 실현하는 프로세스였다.

  “독립자존”의 슬로건을 걸고 일본의 독립자존과 함께 조선의 독립자존을 후쿠자와는 그 자신의 정치적과제로 삼았으며 김옥균 등을 물심량면으로 지지하지만 끝내 결실을 보지 못하고 김옥균이 리드했던 조선개화파혁명의 실패와 그의 살해에 그는 격분한다.

  희유의 사상가이며 근대 일본의 정신적기수였던 후쿠자와는 일로전쟁 3년전인 1901년 2월 동경에서 뇌출혈 재발작으로 66세의 나이로 파란만장의 일생을 접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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