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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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 검디검게 먹칠한 조선 지도
2013년 04월 02일 15시 29분  조회:5742  추천:13  작성자: 김문학

4. 검디검게 먹칠한 조선 지도

 

1910년 8월 29일 <한국 병합 조약>이 발표되면서 일본 관인이 환희의 광란 드라마 벌이며 그것을 찬미하고 있을 때, 단 한명의 일본인이 한국병합에 대해 비판했다. 그가 바로 그 당시 일본의 국민적 시인이었던 25세의 젊은 이시카와 타쿠보쿠(石川琢木 1885~1912년)였다.

8월 29일 직후의 시점에서 매스컴을 통해 한국병합을 비판하면서 조선민족에 지대한 동정을 보인 인물은 단 이사카와 한명이었다.

 

지도위의 조선국에 검디검은 먹으로 칠하니 쓸쓸한 추풍이 들린다

1910년 9월 9일에 읊은 이사카와의 단시(短詩)였다. 조선 지도를 흉사에 사용하는 먹으로 검게 칠하면서 가을바람의 쓸쓸하고 매서운 오한을 느끼는 심정을 남김없이 표현한다.

일본제국의 침략에 반대하고 망국의 민이 된 조선 민중에 대한 뜨거운 동정과 연민의 눈물을 타쿠보쿠는 쏟고 있었다. 일본전체가 꽃전차를 타고 초롱불을 들고 희열의 극치에 달한 그 상황에서 정면에서 이의(异意)를 표하고 과감히 제국을 비판한 그 담량과 시적 기량은 모두 최일급적이었다.

사실 1년전인 1909년 10월 할빈에서 안중근이 이토를 저격 했을 때, 타쿠보쿠는 안중근을 영웅다운 행위로 예찬하는 시구를 썼다.

“영웅답게도 죽음을 두려워 하지 않는 사람의 소문 항간에 널리 퍼지네.”

“그 누가 나를 권총으로 쏘아보라, 이토같이 달갑게 죽여 줄테니까.”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안중근을 “영웅답게도” 순국한 의사로 존경했으며, 이토를 그토록 존경한 타쿠보쿠였지만, 역시 한국의 영웅에게도 존경의 념을 표했던 것이다.

당시 타쿠보쿠는 이토의 죽음을 “위대한 정치가의 위대한 심장은 신일본의 경영과 동양의 평화를 위해 고동을 멈추었다”고 가슴아파하면서도 이토를 쏜 “한인”에 대해 “아직도 진짜로 증오해야 할 까닭을 모른다” 라고 고백한다. 패자, 약자에 대하여 응시해왔던 타쿠보쿠는 강자 일본의 강폭한 소행이 안중근과 같은 약자들의 의거를 초래했다고 휴머니즘적 입장에서 이해를 하고 있었다. 그러므로 “한인”을 증오해야 할 까닭이 그에게는 있을 수 없었다.

그래서 만약 일본인으로서의 자기가 피지배자인 그 누구가 권총으로 쏘아도 기꺼이 죽여 줄테다고 죄책감을 솔직히 고백한다.

타쿠보쿠는 메이지 시대를 한 복판에서 살아온 견증인으로서 그 당시 일본의 식민지 지배침략, 팽창한 국가주의에 인식을 가하면서 약자에 대해 강렬한 동정을 품는 인간으로 변신한다.

따라서 국가주의에 의해 팽창된 식민확장, 지배에 대해서 그는 과감히 비판하는 인물이었다.

1910년 8월 29일 관보 号外에 메이지 천황의 한국병합에 관한 조서(詔書)가 공표되는데 그것은 그 어떤 국민의 비판과 발발도 허용치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당시 절대다수의 국민과 지식인들마저도 국가주의에 팽배한 동조와 영합을 보인 상황 하에서 타쿠보쿠와 같은 일본 국가주의의 제국주의와의 서어(齟齬) 및 정면대결은 너무 쉽지 않았다.

일본을 “시대의 폐색(閉塞)”의 나라라고 29일 그늘 비판하는 글을 쓰며, 메이지 천황의 그 <조서>에서 언급한 “조선총독을 설치하여 육해군을 통솔하여 제반 정무를 출발한다.”는 군정을 실시하려는 신언에 혐오감을 느낀다.

8월 30일 <동경 아시히 신문>에 “大日本帝國의 전 ”와 “新版圖조선”지도가 게재되었다. 일본지도와 조선지도가 한 가지 빨간색으로 되어있었다. 일본판도에 들어온 잃어버린 조선지도였다.

곤도(近藤典彦)의 논고에 따르면 실제로 타쿠보쿠가 조선지도를 펼치고 그 위에 검은 먹으로 칠하면서 시구를 썼다고 한다. 일본제국에 의해 삼켜버린 조선의 불행을 “지옥”으로 보면서 다쿠보쿠는 그 어설픈 가을바람을 들었다.

이어 다쿠보쿠는 <9월 밤의 石平>으로 제목한 단시 전제 345의 시에서 한국병합의 비참한 단시 몇 수를 또 써내려간다.

“메이지 43(1910년)의 가을 내 마음은 더없이 참말로 구슬프구나”

“어쩐지 야비해 보이는 우리나라 사람의 얼굴 위로 가을바람 스친다”

“가을바람은 우리 메이지 청년의 위기를 슬퍼하는 얼굴 애무하며 불어온다”

다쿠보쿠는 쓸쓸한 추풍과 비애를 모티브로 일본제국, 국자주의의 비애와 함께 일본제국주의 팽창으로 식민지로 전락된 조선인의 비애를 읊는다.

1906년 사회주의자 코도쿠슈스이(幸德秋水)의 영향으로 다쿠보쿠는 자유, 평등, 박애의 사상을 바탕으로 일본의 국자주의를 비탄하고 조선 경멸론을 지탄하게 된다.

1911년 6월에 남긴 “코코아의 한술”이란 시에서 다쿠보쿠는 “나는 알고 있다. 테러리스트의 슬픈 마음을”하고 읊고 있는데 여기서 “테러리스트”란 이토를 쏜 안중근을 칭한다. 그는 공개적으로 그들의 적인 안중근에게 깊은 이해와 동정을 표했다. 그것은 전 조선민족에 대한 이해이기도 했다.

일본 현대 저명한 지식인 츠루미(鶴見俊輔)는《현대 일본 사상사》에서 이렇게 타쿠보쿠를 높이 평가 하고 있다. “이 한일 병합이라는 정부의 행동이 일본인과 조선인에 대해 어떻게 심각한 결과를 가져왔는가에 대해 상상을 여러모로 구사한 역량을 갖춘 일본인은 당시 흔치 않았다. 이사카와타쿠보쿠라는 시인은 그 흔치 않은 한사람이었다.”

이런 일본 시인에 대해 한국에서도 일찍 숭모한 지식인, 시인들이 있었다. 저명한 문학자 김기진(金基鎭)(팔봉)은 1920년 일본 유학당시 타쿠보쿠의 영향을 받았다고 고백한다. 1932년 김상회(金相回)가 타쿠보쿠의 시집 <끝없는 이론의 그 이후>를 <<신동아>>에 변역하기도 한다. 1960년 한일기본조약이 체결전에 시인 김룡제(金龍濟)에 의해《타쿠보쿠 시집》이 한국에서 정식 번역 출간되며 그 뒤로도 대역형식으로 다수 소개되기도 했다.

그러나 타쿠보쿠의 사상과 인물에 대한 이해는 여전히 미개척지에 속한다. 일본의 강제병합에 대해 비판하지만, 우리는 일본인 중에서도 우리 같이 일본제국을 비판한 천재(天才)적 시인이 있었던 것에 너무 어둡다. 타쿠보쿠는 조선인과 피압박 민족이 영원히 기억해야 하고 이해해야할 일본인의 양지를 갖춘 희소적 가치의 인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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