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밥을 먹는가?”와 같이 나에게 있어서 이는 지극히 우문(愚問)이다. 밥 먹고 술 마시고 배설하고 자고 일어나고 걸어가고 말하고 호흡하는 것 같이 글쓰기는 나 자신의 삶의 방식이다.
살아가는 생 그 자체이다. 어떻게 생각하면 왜 글 쓰는가? 반문자체가 무의미 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글은 쓰는 것이고, 써내려가야 하므로 왜 쓰는가? 의 허들은 판터지 소설속의 무명의 요괴같이 불현듯 튀어나와 가끔 나의 사색을 유혹할 때가 있다.
나의 글쓰기의 사숙 스승 이어령 선생님은 옛날에 이미 정채로운 명언을 남겼다. “나는 호흡처럼 글을 써 간다. 그것은 생존의 의미나 방법이 아니라 생존 바로 그것이다.” (<우수의 사냥군>1969년)
그리고 이 선생님은 <지성의 오솔길>(1996)의 서문에서 글쓰기를 낙서에도 비유하기도 하면서 글쓰기를 설명한다. “조금 슬프다는 이유로, 조금 괴롭다는 이유로, 조금 심심하다는 이유로 사람들을 가끔 흰 종이 위에 낙서를 한다. 그것이 때로는 소설이 되기도 하고 시가 되기도 한다.”
“그저 하나의 통곡처럼, 분노처럼 쓰기만 했다. 들어줄 사람이 없어도 좋았다.”
이렇게 고백하면서 이 선생님은 자신은 계속 “생각하고 그리고 쓸 것이다.”라고 명언한다.
“모든 공공기물(법원, 시청, 병영등...)에 낙서하는 것이 나의 문학이다”라고 이어령 선생님은 공언한다. 그러면서 “문학을 정치이데올로기로 저울 질 하는 ”오늘의 한국에서 “비평가들은 문학자체의 그 창조적 의미를 제거해 버린다”라고 침을 놓는다.
경계를 뛰어넘고 국경을 뛰어넘어 글쓰기를 호흡처럼, 낙서처럼 해 오신 이어령 선생님은 모종의 의미에서 나 자신 글쓰기의 귀감이다. 이런 “당대동아시아의 지적거인”을 사숙한 나는 행운아라고 간주한다.
나는 가끔 홀로 있으면서 이런 사색에 빠져보곤 한다.
글쓰기를 생활 그 자체로 하고 있는 내가 만일 아무도 없는 외딴 무인도 같은데서 살게 된다면 그래도 그냥 글을 쓸 것인가? 라고
대답부터 말하면 yes다. 물론 조건이 하나 딸린다. 그것은 무인도에 생활의 식물이 있어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종이와 팬도 있어야 하고, 원시인처럼 식량획득과 야생과일 채집과정을 나는 운명으로 감수하고서 즐기면서 그 실 체험을 짬짬이 써 내려갈 것이다.
세상과 격리된 이곳은 자연의 “감옥”이거니와 “낙원”이다. “감옥으로 생각하는 의식을 나는 우선 뇌리 속에서 제거해 버린다. 그 누구의 감시도 간섭도 관심도 모든 거추장스러운 인간문명의 장치를 제거 해 버린 ”낙원“에서 나는 글쓰기생활을 즐기겠다.
나의 “낙서”같은 글을 읽어주는 사람도 없다. 나의 “배설”같은 작품을 관심하는 그 누구도 없다.
그러나 나에게는 또 하나의 “나”가 있다. 그 “나”가 나의 유일한 충실한 독자가 되어준다. 물론 이 독자가 읽어주지 아니해도 상관없다. 있어 주는 것만으로 괜찮으니까.
차라리 근대적 모던에서의 도피로 인해 나는 지고 무상의 자유와 해방감을 만끽하는 것이 좋다. 사상가, 철학자 푸코를 연상한다. 만년의 푸코는 모던의 테크놀로지의 발달, 증대와 권력관계의 강화가 진행되는 과정에서 살아가 는 것의 위험성을 자각했다. 그 대처의 처방으로 “자기의 통치”“자기에 향한 배려”를 깃발로 들었다. 자신에 향한 배려는 “진실을 추구하기 위한 언어 그것”이라고 주장한다.
“진실을 추구하는 언어”는 감옥도 없고 법원도 없고 타자도 없는 “무인도”의 지경에서 벌거벗은 자신의 알몸 같은 뇌리 속 을 바라보면서 가능할 수 있을 것이다.
결국 나는 또 이런 상념을 하기에 이른다.
“무인도” 적 절대적 “낙원”은 그 역설적 의미에서 결국은 너무 자유로워서 두려운 자유로운 “감옥”이라고.
역시 내면의 진실함을 추구하는 언어를 찾은 다음 해야 할 일은, 이 “무인도”의 낙원을 탈출하여 자신이 아닌 수 많은 타자들이 있는 인간사회로 되돌아와야 한다는 절박감, 그것을 이룩하는 것이다.
인간에게 있어서 같은 환경에 오래 눌러 있으면 그 자체가 사상을 죄이는 “감옥”이 된다. 흐르지 않는 썩은 물같이 온갖 해로운 병균을 발생시키는 온상이 돼버리기 십상이다.
그래서 이 한 가지 이유만으로도 내가 무인도를 탈출하는 이유는 충분히 주어져있다. 수많은 타자들이 사는 인간의 사회에서 타자와 대화를 나누며 나를 개변시키고 또 사회에 무언가 흔적을 남긴다.
내가 글 쓰는 것은 타자와의 대화를 상정했기 때문이다. 타자와의 대화를 통해 나의 정신적 구원, 변함의 방식을 추구 하고자 한다. 따라서 화자로서의 내가 던진 글들이 타자의 반응이 있으면, 그것만으로 나는 의식했던, 또는 무의식했던 “모종의 것”이란 단어를 쓰고, “목적”이란 단어를 사용하지 않은 이유는 나는 굳이 “목적”을 필요하기 보다는 이 자체가 모종의 생활방식인 까닭에서였다.
글쓰기를 업으로 하는 나는 글쓰기를 일개인의 언설적(言說的) 발설이라 생각한다.
그 글이 타자가 읽어도 안 읽어도 상관없다. 나는 글쓰기가 어떤 나라나 민족을 위한 영웅이요, 전투요 하는 정치적 이데올로기 관념, 주의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글이 읽히고 많은 독자의 공명을 일으키거나 매료 된다면 글쓰기의 망외(望外)의 희사 일뿐이다.
그렇다고 글 쓰는 사람을 우상화 하거나 정치적 적, 반역자로 내모는 것도 다 아니다. 작가가 늘 수난 당함은 작가 자신의 일이 아니라, 타자의 모종의 욕망과 의도에서 빚어지는 비운이다.
정치적인 수요로 작가, 지식인의 글을 모독, 왜곡하고 정치의 제사상에 제삿물로 올리는 비극은 오늘도 번번히 생기고 있다. 정면이든 반면이든 제삿물로 전략되는 것은 지식인의 최대의 비극이고 치욕이기도 하다.
이런 “감옥”-- 정치기구의 인간의 자유, 인권을 말살하는-- 푸코가 언급한 정치장치가 작가, 지식인은 물론 전 대중을 불행하게 하기 때문에 나는 진실을 말하고, 진실의 지적(知的) 글쓰기로 이 정치적 감옥을 부수고 급속히 다수 대중을 계몽하는 작업은 “상미기한이 지난”것이 아니라 여전히 필요, 유효하다고 사료된다.
물론 내가 쓰는 글, 그 많은 글들은 사회를 향한 나 자신의 넋두리, 타령이고 낙서로 양산 한다. 좀 문어적 표현을 빌리자면, 지적(知的)생산의 글이 대중에게 수용되든 안 되든 그것은 내가 상관할 바가 못 된다.
나는 글쓰기만 하는 정신제품의 생산자이다. 계란을 낳는 암탉이다. 계란이 맛있으면 잡수시고 맛없으면 버리면 그만이다. 독자들의 평판은 자유이지만, 저자를 과도하게 탓하여 암탉 잡는 일은 독자의 권한을 벗어난 “광기”이다. 이 “광기”가 아이러니컬하게도 다시 정치적 탄압의 마살 행위에 가세하는 격이 되고 만다.
중국인으로서 최초로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고행건(高行建.1940년--)은 자신의 문학관, 글쓰기에 관해서 “냉문학(冷文學)이라고 이름 지었다. 그는 자신의 ”냉문학“을 이렇게 해석 했다. ”냉문학은 일종의 도망이며 그것으로 생존을 구하는 문학이다. 사회의 말살을 피한 정신적 자기구원의 문학이다.
체제의 정치적 박해를 받아온 그가 “비공리성 문학” “비정치성, 이념성문학”을 추구하는 심경은 너무나 납득이 간다. 나 역시 그의 수상작<영산(灵山)>을 읽으면서 깊은 감동을 받았다.
그러나 내가 위구하는 것은 고행건의 “냉문학”은 자칫하면 “냉소주의”에 빠져 극단적으로 네거티브한 “사소설”의 취미에 편향될 위험성이 있다는 것이다. 또 역설적으로 말하자면 “사소설”, “비공리성 문학”마저 용인되지 아니하는 사회는 절대로 정상적인 문화의 나라가 아닐 것이다.
나는 고행건의 “주의가 없는 주의”에 깊은 동감을 느끼면서도 한편 좀 더 밝은 문학, 항상 하는 포지티브의 문학관이 더 필요하다고 언급하고 싶다.
문학에 한정된 이야기가 아니라, 나는 지식인의 폭넓은 글쓰기에 대해서 담론 할 때, 왜 글 쓰는가? 하면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진실을 말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아무리 화려한 언어로 금수문장(錦수文章)을 써 내려간다 하더라도, 그것이 거짓이고, 모종 체제에 발라맞추기 위한 장치로서 작용했다면 그것은 죽은 글이다. 아니 살아서 독해를 뿌리는 최고의 악문이 된다.
지식인의 사명이 있다하면 나는 진실을 쓰고 진실을 밝히고 진실을 알리는 것이 지식인으로서의 참된 사명의 제1위라고 생각한다.
다음으로 그 진실을 밝히기 위해서, 진실을 포장한 모든 허위의 포장지를 째버리거나 불살라 버리는 글쓰기를 한다.
나는 늘 자신을 엷은 포장지에 쌓인 검으로 생각한다. 언제라도 기필코 포장지를 뚫고 나올 것 이라고 믿어 왔고 또 믿고 있다. 이 검에 대해 “귀재”라는 높은 평가를 내린 이들도 있고 반대로 “매국노”로 매도한 이도 있다.
이런 찬반 양면의 평가를 동시에 받는다는 것은 내가 일을 했기 때문이다. 글을 써 왔기 때문이다.
솔직히 고백하여 나는 그런 평가들에 대해 신경 쓸 틈이 없다. 왜냐면 나는 오로지 독서하고 사색하고 글쓰기로 꽉 찬 생활을 하기 때문이다.
그 다음으로 세상이 많은 거짓으로 포위된 사회라면 나는 사회의 모든 티브에 도전을 걸 수밖에 없다. “팬을 검으로 삼는다” 라는 말이 이때같이 유용한 일은 없다. 역사의 허위성, 민족, 국가에 관한 거짓, 티브 이런 것들이 내 글쓰기의 반경(半徑)안으로 많이 들어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이것으로 끝날 내가 아니다.
왜 글을 쓰는가? 의 물음에 준비된 답은 “월경하는 글쓰기”이다. 나는 이 7글자의 말이 왜 그렇게 좋은지 모르겠다. 나의 주의는 어쩌면 “월경하는 글쓰기 主義” 9자로 표현하는 것이 가장 정확할 것이다.
비좁은 조선족만이 아닌, 동아시아 (한, 중, 일) 3국 문화의 경계를 뛰어넘어 비교문화론의 깃발을 내걸고 행해지는 “김문학주의”라는 글쓰기. 이는 나의 숙명이다. 한중일 3국어, 3국 문화 그리고 3국을 통 털어 바라 볼 수 있는 시야, 누구도 할 생각은 있으나 하지 못한 글쓰기를 나는 하고 있다는 자부심으로 마냥 바쁘다.
내가 하지 않았더라도 누군가 꼭 조선족이 했을 것이다. 조선족만 가능한 동아시아적 시야의 월경하는 글쓰기. 그 글쓰기에 나는 생의 가장 큰 보람을 느끼며, 또 비장한 “사명감”같은 느낌마저 들어서 좋다.
거창하게 들릴지 모르나 내가 하는 일은 한중일을 통 털어 첫 번째 일일뿐만 아니라, 조선족의 척박한 문화 풍토 속에서 항상 거의 첫 보습을 들이대는 작업이 된다. 나는 이 “자부심” 하나만으로도 글을 쓰고 또 쓰게 지탱해 준다. 그래서 욕도 많이 먹는다. 욕먹는 일도 이제는 즐겁기만 하다. 농담이지만 오히려 욕하는 사람이 없어질 까봐 우려 할 때도 있다.
욕도 일종의 타자와의 대화이다. 좋든 나쁘든 그 욕이 내 심성에 퇴적비료같이 지성과 품성을 키우는 에너지가 되기도 하기 때문이다.
또 하나 내가 배짱 있게 주장할 수 있는 이유가 있다.
내게 있어서 글쓰기는 세계지도에 색채를 칠하는 것과 같다. 이질 된 他者의 인식과 세계관과의 대화로써, 나 자신의 세계관 주의주장을 24色, 또는 48색, 또는 그 이상의 색깔도 하나 또 하나씩 색칠해가는 手工業적인 작업이다. 나는 지구위에 페인트 도배공이다.
세계의 지도에는 나의 색 연필이 기다리고 있는 구석구석이 존재하고 있다. 그러므로 나의 펜은 쉬지 않는다. 이 문화, 타자와의 대화의 방법으로서의 나의 글쓰기, 그것은 오색영롱한 색깔로 도배돼 있는 그림이고 싶다.
밥 먹는 것과 같은, 숨 쉬는 것과 같은, 심장이 박동하는 것과 같은, 그리고 배설하는 것과도 같은 것이 나의 글쓰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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