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춘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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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우리 아이 어느 학교에 보낼가 (장춘식) 댓글:  조회:1881  추천:121  2008-04-13
우리 아이 어느 학교에 보낼가장춘식 중국사회과학원 민족문학연구소 연구원 북경에서 살면서 여러가지 아쉬움이 있지만 무엇보다도 아쉬운 점은 자식을 조선족학교에 보내지 못하는것이다. 조선족학교에 다니지 못하니 어렷을적에는 그래도 조선말을 꽤 하더니 결국 조선말을 다 잊어버린다. 한족들과 대화하는 시간이 부모와 대화하는 시간보다 훨씬 더 많으니 그럴수밖에 없다. 답답한 일이 아닐수 없다. 이보다 답답한 일이 또 있다. 일전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요즘 연변의 조선족가정들에서는 자녀들을 한족학교에 보내는것이 류행이라 한다. 그런데 확실한것은 조선족어린이들이 한족학교에 다니는 류행과 거의 동시에 한족어린이들이 조선족학교에 다니는것이 류행된다는 사실이다. 심지어 어떤 조선족학교에는 한족어린이가 거의 반수를 차지하고 어떤 한족학교에는 조선족어린이가 거의 반수를 차지한다고 하기도 한다. 어느것이 더 현명한 선택일가? 나는 한족어린이들이 조선족학교에 다니는것이 좀 더 현명한 선택이 아닐가 생각한다. 한국업체의 중국투자 증가와 한류의 영향으로 한국어를 공부하면 취직이 잘된다는 사실을 이들은 잘 알고있기때문이다. 실제로도 조선족학교를 나와 대학교를 졸업하고나면 같은 조건에서도 취직이 더 잘되는것이 사실이다. 반대로 조선족어린이들이 한족학교를 졸업하고 한족대학을 나올 경우 한어를 주로 사용하는 직장에 서류를 제출했을 때 한족인보다 무슨 비교우세가 있을가? 조선족이라서, 조선어를 조금 안다고 해서(내가 알기로는 한족학교를 나온 조선족청년들은 대부분 조선글을 모르며 일부는 조선말도 잘하지 못한다)  한족인들보다 취직이 더 잘될가? 승진이 더 잘될가? 어림도 없는 일이다. 잘 봐줘야 한족인들과 같은 조건이 되고 다수의 경우는 여전히 렬세에 처하게 된다. 이처럼 별로 실리가 없음에도 이를 위해 잃는것은 너무 엄청나다. 먼저 실리적인 측면에서 보아도 조선족업체나 한국업체 같은 조선어가 필요한 업체에 취업을 할수 없게 되니 취업의 문이 그만큼 좁아진다. 스스로 제 앞길을 좁게 만드는것이다. 민족적인 정체성을 잃게 되는것도 생각보다 큰 손해다. 민족정체성이란 공유된 민족적특성들로 인해 어느 한 개인이 어느 특정 민족공동체에 대해 느끼는 소속감인데, 인간은 그 소속감에 토대하여 세계를 인식하고 삶을 살아가게 된다. 언어와 문자는 민족적소속감을 느끼는 가장 중요한 두가지 요인중의 하나이다. 그러니까 조선족어린이들이 한족학교를 다님으로써 조선어를 잊거나 부분적으로 잊는다는것은 조선족으로서의 정체성을 전부 혹은 일부를 상실하게 된다는 말이 되는데, 원리대로라면 상실된 부분은 새로 배운 한족의 문화적인 정체성을 획득하게 되지만 실제로는 꼭 그렇지만은 않다. 민족정체성은 “자기개념”의 일부인데 이것을 통해 개인은 자신의 민족적정체를 스스로 정의하거나 또는 타인들에 의해서 정의되여질수 있다. 한어를 잘한다고 하여 꼭 한족으로 인식되지는 않는다는 말이다. 결국 한족의 정체성과 조선족의 정체성을 동시에 지닐수 있다는 말이 되는데 좋게 보면 문화적인 다양성으로 리해할수도 있으나 실제로는 사물이나 세계를 인식하고 판단함에 있어 항상 선택의 고통을 겪게 되며 따라서 우유부단한 삶의 태도를 보이기가 십상이다. 동시에 심리적으로 항상 빈구석이 생기게 된다. 대도시, 특히 조선족이 별로 없는 대도시에서 사는 조선족들이 고향을 그리고 동족을 그리워하는것은 바로 이때문이다. 이것마저 사라진다면 그는 적어도 심리적으로는 완전히 민족적인 소속을 바꾸게 된다. 이런 현상이 계속 확대되면 조선족은 결국 민족정체성을 상실하게 될것이다. 문화학의 립장에서 보면 한 민족의 문화적유전자가 상실됨을 의미한다. 근친결혼은 유전자의 퇴화를 야기한다. 문화 역시 마찬가지이다. 그래서 외국인들은 심지어 몰래 중국의 동식물과 인간의 유전자를 채취하기까지 한다고 한다. 자원으로 활용하기 위해서다. 동식물의 유전자가 서로 영향주면서 우수성이 발휘되는것처럼 문화 또한 상호영향속에서 향상되는것이다. 이렇게 보았을 때 한 민족문화의 소실은 중화민족문화의 번영에 큰 손실이 아닐수 없다. 이제 우리 아이를 한족학교에 보낼가, 조선족학교에 보낼가? 다시 생각할 일이다.
11    력사소설을 통한 민족정체성의 확인 (장춘식) 댓글:  조회:1659  추천:127  2007-04-21
력사소설을 통한 민족정체성의 확인         ―김용식의 장편력사소설 《설랑자》를 중심으로장춘식   1. 들어가는 말 우리의 력사소설가 김용식이 타계한지도 어언 20년이 되여간다. 우리 문단에서 주로 력사소설을 쓰다가 간 작가는 아무래도 김용식이 유일한것 같다. 처녀작이라 할수 있는 《밤길》(1957)도 야사적인 성격이 짙거니와 장편소설 《산골녀성들》(1984) 등 몇작품을 제외하면 김용식의 소설은 기본적으로 력사에서 취재하고있다. 중편소설 《규중비사》(1981), 장편소설 《설랑자》(1984년), 소설집 《무영탑》(1987)에 수록된 중편소설 《고리백정의 사위》, 《무영탑》, 《보은단》 등은 모두 력사소설이다. 그밖에도 김용식은 《경박호의 유래》, 《숯구이총각》 등 수십편의 구전설화를 수집, 정리하여 발표하였다.  현재까지 김용식의 소설에 대한 연구는 기본적으로 중편소설 《규중비사》에 편중되여있다. 필자의 조사에 의하면 얼마 안되는 김용식문학에 대한 평론이나 연구론문중 김동훈의 《김용식론》을 제외한 모든 글이 《규중비사》를 다루고있다. 문룡일, 《중편소설 <규중비사>의 언어사용에 대하여》, 《문학예술연구》, 1982년 4호; 김동훈, 《김용식의 중편소설 <규중비사>에 대하여》, 《문학평론집》, 민족출판사 1982; 김동훈, 《김용식과 그의 <규중비사>(한문)》, 《중남민족학원학보》, 1984년 6호; 김도권·박경식, 《중편소설 <규중비사>의 예술성과》, 《문학과 예술》, 1985년 6호; 김창대, 《김용식과 그의 <규중비사>》, 《료녕신문》, 1987.5.12 등. 그리고 조성일·권철 주편으로 된 《중국조선족문학사》에서도 김용식의 소설은 《규중비사》 한편만을 비중있게 다루고있다. 《규중비사》는 작가가 1956년에 2만자미만의 단편소설로 썼다가 발표하지 못하고 1979년에 다시 중편소설로 확대시켜 1980년 문예월간지 《연변문예》(1-10호)에 련재하였으며 다음해인 1981년에 료녕인민출판사에서 단행본으로 간행하면서 약간의 수정을 거쳤다고 한다. 김용식, 《<규중비사> 창작후기》, 《규중비사》, 료녕인민출판사, 1981 참조.이 작품에 대한 론의는 김동훈의 《김용식의 중편소설 <규중비사>에 대하여》에서 시작되였다고 볼수 있다. 김동훈은 이 작품에 대해 《이미 붕괴기에 처한 조선봉건사회말기의 암담한 현실과 사람을 잡아먹는 썩어빠진 봉건례교의 죄악상을 적라라하게 폭로비판하고있다.》며 긍정적으로 보고있다. 그리고 인물형상창조에서, 소설적구성과 력사언어의 사용 등의 측면에서도 상당히 성공적인 작품으로 평가하고있다.  김도권·박경식의 《중편소설 <규중비사>의 예술성과》에서는 주요 작중인물들을 면밀히 분석하면서 인물형상부각의 여러가지 특징들을 밝혀내고있다. 《(리조말엽시기) 력사적생활상에 기초하여 생동하고도 풍만한 인물형상들을 창조함으로써 오늘 우리 독자들의 시대적미적요구에 만족을 주었을뿐더러 필요한 력사적지식도 주고있》다는것이 이 론문의 핵심론점이다. 주로 형식적측면에서의 평가가 되겠는데 론문에서는 작가가 소설의 소재가 된 구전설화에서 완전히 탈피하지 못함으로써 일부 한계를 드러냄을 지적하기도 한다. 그러나 대체적으로 긍정적인 평가로 볼수가 있다. 특히 다양한 인물성격의 창조에 대해서는 찬사를 아끼지 않고있다.  《중국조선족문학사》에서는 이상 두 론문의 론점들을 종합하면서 좀더 진일보한 일면도 보인다. 《이 소설은 한 봉건사대부가문의 규방에서 일어난 애정비극을 통하여 리조말엽의 암담한 사회상과 사람을 잡아먹는 썩어빠진 봉건례교의 죄악상을 적라라하게 폭로규탄하고있다.》는 주제파악은 앞의 두 론문에서 지적된 견해와 별반 차이가 없다. 그러나 《류원하와 백란당의 형상을 통하여 당시 인민대중의 개성해방의 지향을 예술적으로 일반화하였으며 봉건적인 례교도덕에 비판의 채찍을 안기였다.》는 서술에서는 좀더 진일보한 측면을 엿볼수 있다. 형식적측면에서는 《인물형상창조에서 작자는 당시의 력사상황에 대한 깊은 연구와 인간생활에 대한 다각적인 관찰에 근거하여 인물개성의 다양성을 멋지게 살렸다.》고 하여 상기 두 론문의 관점들을 수용하고있다. 구성에서의 장회체형식, 인물의 정서에 알맞는 시구의 적절한 삽입, 언어사용의 력사성과 생동성 등도 김동훈의 주장을 수용한것으로 볼수 있다. 단 《백란당을 살해한 극악한 흉수를 절당의 중으로 설정하고있기에 류원하와 백란당의 애정비극의 심각한 사회적근원을 날카롭게 폭로하는데 손색이 있》다는 결함의 지적은 어느 정도 새로운 견해로 볼수가 있다. 주제설정과 인물설정의 괴리에 의해 빚어진 한계를 지적하고있는셈인데 이는 이 작품의 가장 뚜렷한 약점이라 할수도 있다.  《규중비사》에 대한 이상 세 론문의 평가는 기본적으로 수긍이 간다. 그러나 이 작품이 20세기 80년대에 나온 소설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사실 봉건적질곡에서 벗어나려는 개성해방의 욕구 표현이라든지 봉건가부장제에 대한 반항의식 같은것이 대단한 의미를 지닌다고 보기는 어렵다. 그러한 주제는 20세기초기 신소설시대부터 줄곧 다루어져왔고 이 작품이 그러한 작품중에서 특별히 빼여난 작품도 아니기때문이다. 이 작품의 가치는 다른곳에 있다.  아래에 《설랑자》에 대한 분석에 곁들여 그 가치가 어디에 있는지를 다시 확인해보고자 한다.   2. 장편력사소설 《설랑자》의 가치와 의미   1) 작품의 줄거리와 주제  이 작품은 신문이나 잡지에 련재되지는 않고 1984년에 료녕인민출판사에 의해 단행본으로 간행되였는데 발단, 전개, 위기, 대단원의 플롯구조를 이루고있다. 발단은 당연히 리정승의 셋째아들 리진성의 혼사를 위한 미녀구혼으로 시작되며 그것이 설부용이라는 천하절색 미녀가 나타남으로써 전개되다가 리정승의 두 박색 며느리와 무신 최유염의 음모에 의해 혼사가 깨여지면서 위기를 맞게 된다. 그리고 남녀 두 주인공이 천신만고끝에 우연히 상봉하고 또 최유염과 두 박색 며느리의 음모가 밝혀지면서 두 주인공이 백년가약을 맺는 대단원을 이루게 되는것이다. 이것이 이 작품의 갈등과 해결의 양상이고 기본적인 줄거리가 되기도 한다.  줄거리만 보고도 전기적인 성격이 짙은 소설임을 금방 알수 있는 작품이다. 이 작품에서 일차적으로 관심을 끄는 부분은 주인공들의 유교적인 도덕과 학문의 수련과정이다. 리곡이라고 하는 고려시대 유명한 선비와 그 안해의 유교적인 수련과정을 전기적인 경력을 통해 보여준것이다. 특히 주인공 리진성이가 방랑중 보고 듣고 느낀 사건들, 가령 사냥군 내외의 죽음, 갓바치 로인의 비참한 삶, 그리고 청그릇쟁이 강령감의 비명횡사(자살), 이 모든것이 영양고을 원의 폭정과 관련되며 또 이 영양현감이 무신세력인 최유염일파의 심복이라는 사실을 감안하면 사회비판적인 요소가 많이 드러난다 하겠다. 따라서 이러한 주제설정은 당연히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고 볼수 있다. 작가 나름대로의 현실인식과 력사인식에 따라 력사의 진실을 파내고 해명하는것, 그것을 통하여 력사를 재해석하는것은 력사소설의 중요한 사명임에 틀림없다. 그리고 정사가 아닌 야사의 시각에서 실재한 력사인물의 실상을 재현한것은 또다른 의미를 지닌다. 한 인간의 학문적, 도덕적 수련의 과정은 그것이 아무리 먼 력사속의것이였다고 해도 오늘의 우리에게 거울이 될수가 있기때문이다. 그것이 긍정적으로든 부정적으로든 말이다. 거기에 인간평등의 립장에서 량반의 학정과 수탈행위를 비판한것 또한 의미있는 주제해명이라 할수 있다.  그런데 이 작품에서 좀더 많은 분량을 차지하는 부분은 이같은 기본플롯의 흐름에서 약간 빗나간다. 악한의 음모에 의해 헤여진 두 남녀가 방랑생활을 하면서 겪는 에피소드들이 작품의 중요내용을 이루고있기때문이다. 물론 이런 에피소드들은 주인공의 학문적, 도덕적 수련의 경력으로서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기본플롯의 흐름에서 벗어난 에피소드들이 너무 많은 분량을 차지하기때문에 작품의 긴장감은 다소 저하된다. 따라서 이것만을 본다면 서사구조로서는 잘 짜여졌다고 보기 어렵다. 그렇다면 왜 작가는 이러한 서사전략을 선택했을가?   2) 기본주제밖의 정보들이 가지는 의미  작품의 긴장감저하를 대가로 치르면서까지 이러한 에피소드식 서사전략을 선택한 리유는 상기 기본주제밖의 정보에 중요한 의미를 두었다는 말이 될것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에피소드에 담겨진 정보의 가치는 어디에 있으며 이 작품에서 그것이 가지는 의미는 무엇일가?   ① 조선의 아름다운 산천   이튿날 아침, 전주를 떠난 일행은 탄현, 은진, 공주, 천안, 미륵당, 과천을 지나고 한강을 건너 다시 한양, 신원, 고양, 파주까지 이르기에 옹근 닷새가 걸렸다.  파주에서 하루밤 자고 래일 새벽에 림진강만 건너면 송도까지 당날에 빠듯이 대여갈수 있었다. 김용식, 《설랑자》, 료녕인민출판사, 1984, 111쪽. 아래 례문에서 쪽수만 표시한것은 모두 같은 책에서 인용한것임.   인용은 신랑 리진성일행이 서남부지역의 남원에서 출발하여 전주를 거쳐 송도에 이르는동안 경과하게 될 지리적환경에 대한 설명이다. 소설에서는 진성이와 부용이의 방랑과정을 번갈아가면서 서술하는데 시점이 바뀌는 시작지점에서는 거의 번마다 이런식으로 경과한, 혹은 경과하게 될 지리적상황을 자상히 제시하고있다. 그러니까 작품에서는 주인공들의 방랑생활이 주요내용을 이루는셈인데, 상기 인용에서처럼 이들이 움직이는 경로에 따라서 조선땅 남부지역의 지리와 아름다운 산천경관들이 펼쳐진다. 심지어 《북관땅이란 함길도(함경도)를 이름인데 함흥으로부터 길주, 명천, 단천, 북청을 지나 썩 더 들어가서 삼수, 갑산까지이지요. 그리고 서관땅은 서경(평양)에서 대동강, 청천강을 건너 의주, 압록강까지 이르는 평안도 일대를 이름이지요.》 작품 300쪽.라는 식으로 주인공의 행적과는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 지역의 지리적상황마저 교묘히 삽입하고있다. 게다가 이런 서술이나 묘사들은 그냥 언급이 된 정도를 넘어 그러한 산천경개와 지리적인 상황들을 주인공의 심리적인 상태와 련관시켜 최대한 아름답게, 절실하게 그려낸다.  그중에서도 금강산에 대한 묘사는 자연절경 자체뿐만아니라 금강산에 관련된 력사와 주인공의 느낌, 감회들이 동시에 제시됨으로써 조선의 아름다운 자연에 대한 호기심과 감탄과 정서적인 도야의 묘미까지를 독자들에게 선물해준다.   진성이는 만폭동, 옥류동, 구룡연, 만물상을 두루 돌아보고 비로봉에 올랐다.  별유천지비인간이란 바로 이를 두고 한 말인듯하다. 내려다보니 천봉만학인데 혹은 뾰족하고 혹은 뭉툭하고 혹은 날카롭고 혹은 무디고 혹은 울퉁불퉁하고 혹은 얼기설기하고 혹은 기치창검을 벌려세운듯 기상이 엄엄하고 눈이 아찔했다. 실로 하늘의 신선, 지옥의 귀신들이 일시에 뛰쳐나와 발밑에 엎딘것과도 같아서 스스로 전률을 느끼기도 하였다. 작품 120쪽.   작가는 이런식으로 유서깊은 경상도 안동의 락동강류역에 있는 하회마을의 기름진논벌이며 대왕포, 락화암, 평제탑, 조룡대, 정사암, 삼충사… 등 백제의 옛땅 부여의 명승고적이며 해인사에서 떠나 북상하다가 송도 가는 길과 남원 가는 길이 갈라지는 충청도 괴산까지 사이에 있는 유명한 화양구곡의 절경 등에 대해 깊은 애정을 가지고 묘사하고있다. 그렇다면 조선의 아름다운 산천에 대한 작가의 이와 같은 애정어린 묘사는 어떤 의미를 지니는것일가?  주지하는바와 같이 산수에 대한 애착은 인간공유의 감정이며 특히 동양인들은 더구나 산수에 깊은 애정을 가지고있어 고대 중세의 문학작품에는 산수에 대한 찬미의 시구들이 수없이 많이 있다. 따라서 작가가 이런 감정을 서사속에 담아놓은것은 별로 이상한것이 아니라 하겠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선의 아름다운 산수를 절찬한데는 또다른 의미가 있는것 같다. 상기 인용에서는 빠졌지만 금강산에 대한 중국 송나라때 시인 소동파의 《원컨대 고려국에 태여나서 금강산을 한번 보았으면》라는 글귀를 인용한데서 이점은 분명해진다. 그러한 산수에 뿌리를 둔 우리 민족의 자긍심을 표현한것이다. 주인공들의 방랑경로를 따라가며 지명을 렬거하고 특정지역의 풍부한 물산에 대해 넌지시 드러낸것 또한 같은 리치로 리해된다.   ② 고려시대의 력사와 전설  조선의 아름다운 산수에 대한 애정어린 묘사에 우리 민족의 뿌리가 닿아있는 조선땅에 대한 자긍심이 표현되였다면 전설과 력사적사실에 대한 제시에는 우리 민족의 문화적인 뿌리에 대한 탐구의 의미가 담겨졌다 할수 있을것이다.  《설랑자》에는 수많은 력사사실들이 군데군데 삽입되여있지만 그중에서도 몽고병의 침입과 원나라와의 강화, 그에 의한 부마국 사실과 무신란에 대해서는 너무나도 자세히 소개하고있다. 얼핏 생각하면 이 두 력사사건은 민족적인 자긍심 고양과는 무관한듯 하다. 두 사건 모두 치욕적인 력사거나 적어도 자랑스런 력사로 보기는 어렵기때문이다. 그러나 좀더 깊이 생각해보면 이 두 사건이 고려시대 가장 중대한 사건중의 두 사건임을 부인할수가 없다. 게다가 무신란에 관련된 사건은 소설에서는 현재진행형으로서 여전히 그 영향이 존재하고있으며 소설의 기본서사와 직접적인 관련을 맺고있다. 또한 두 사건과 관련된 일련의 사건들은 이 작품에서 작가가 설정한 주제, 즉 량반사회의 부패에 대한 비판에 리용되기도 하였다.  이에 비해 경상도 합천 해인사의 력사적연혁에 대한 소개는 좀더 민족의 긍지를 표현한 흔적이 보인다. 특히 8만대장경에 대한 감탄은 그러한 작가의 지향성을 잘 드러낸다.   (전략) 고종은 선왕의 유업을 계승하기 위하여 장경판 파는 일을 다시 시작하여 거국적인 역사로 옹근 16년만에야 각성을 보았던것이다. 그 수량은 실로 엄청나게도 방대하여 8만1천2백5십8판(1판은 량면임)으로서 1천5백12부, 6천7백9십1권에 달한다. 이는 세계불교사상 그 류례가 드문 거창한 업적으로서 조선민족이 력사상에서 쌓아올린 자랑스런 문화유물의 하나이다. 이 방대한 장경판은 각성된 그날부터 지금까지 줄곧 해인사에 보존되여있다. 작품 276쪽.   전설과 야사의 리용은 두 부분에서 주목된다. 하나는 사냥군부부의 불우한 죽음, 갓바치의 처참한 삶, 청그릇쟁이의 자살 등으로 대표되는 관료의 학정과 수탈에 대한것이고 다른 하나는 망부석전설, 서낭당전설과 빚을 갚기 위해 위장결혼을 했다가 도망친 동서방의 새댁에 대한 이야기로서 이는 고려조 봉건사회에서 녀성들이 겪는 각이한 운명에 대한것이다.  무신세력의 학정과 수탈에 대한 비판이 작품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있음은 전술한바와 같다. 세 녀인의 전설(그중 동서방의 새댁의 이야기는 현재진행형으로 되여있음)은 당연히 주인공 설부용의 운명과 관련된다. 봉건사회 녀성들의 기구한 운명이 이들 녀인들 각자의 개인적인 원인보다는 남존녀비라는 불평등한 사회제도에 의해 기인된것임을 우회적으로 표현하였음은 쉽게 간파할수 있다. 작품에는 이외에도 설총의 꽃임금에 대한 이야기, 자룽이와 아룽이의 전설, 마의태자의 고행전설, 《꽃흘레》전설 등 수많은 전설, 야화, 민화들이 삽입되여있다. 그리고 그러한 전설, 야화, 민화들은 작품의 주제의식에 직간접적으로 련관이 된다. 그러나 사실 이들 전설이 독자에게 남겨준 보다 궁극적인 영향은 주제의식과의 직접적인 관계에서보다는 문화현상의 하나로서 전설 자체의 매력이 아닐가 한다. 이들 전설들은 민족적동질성이라는 의미를 지니고있기때문이다.  이렇게 보면 앞의 몽고병 침입이나 부마국 사실, 무신란 등 어쩌면 별로 자랑스럽지 않은 력사사실들을 서술한것이라든지, 세 녀인의 전설을 비롯하여 수많은 전설, 야화, 민화들을 삽입한것은 결국 그러한 력사사실이나 전설, 야화, 민화에서 조선족독자들이 느끼는 민족적동질성의 문제와 직결된다고 할수 있다. 대장경 목판제조의 력사적사실이나 고려시대 대외무역에 사용된 귀한 약재나 청자기에 대해 애정있게 표현한점에서도 이점은 확인된다.   ③ 고려시대의 풍속과 문화  이 작품에는 고려시대의 풍속과 문화현상들이 대량 삽입되여있다. 세시풍속, 혼인풍속, 지역풍속, 서민생활풍속 등 고려시대 풍속의 총집합이라 하여도 대과는 없을것이다.  먼저 작품 발단부분에 나오는 삼월삼짇날의 풍속에 대해 작가는 《시골에서는 행세깨나 한다는 량가집 딸네와 며느리네도 이날 하루만은 숨막히는 규방을 벗어나 산좋고 물좋은 곳으로 삼삼오오 작반하여 화전놀이를 떠나가고있다.》고 표현한다. 그리고 화전놀이에 나선 설생원과 그의 마누라 윤씨부인의 옷차림에 대한 묘사가 특히 인상적이다. 고려시대 옷차림의 특징들을 생생하게 그려낸것이다. 이는 고려시대 민속에 어두운 사람으로서는 도저히 불가능한 일이라 하겠다. 작가의 해박한 력사지식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설부용의 결혼준비과정과 결혼식장면의 묘사는 더구나 종합적인 력사지식과 민속학지식을 필요로 한다. 작품에서는 먼저 신부쪽 결혼준비물에 대해 일일이 제시하고나서 초례청의 여러가지 민속들을 빈틈없이 그려낸다.   초례청은 안마당에 마련되였다. 멍석을 편 우에 돗자리를 깔고 초례상을 덩그렇게 차려놓았다. 한아름이나 되는 청자꽃병에다 싱싱한 청송, 록죽을 호함지게 꽂아놓았고 그 가지마다에 청실홍실을 아롱다롱 늘여놓았다. 그리고 나무로 깎아만든 기러기 한쌍이 청실홍실을 의지하여 거연히 앉아있다.  《서동부서》 하고 외는 홀기소리가 높이 울리자 관복 입고 사모 쓰고 흉배 띠고 목화 신은 신랑은 동쪽에 서고, 머리에 칠보족두리 쓰고 백수라삼으로 손을 가린 신부는 둘러리서는 녀인들의 부축을 받아 서쪽에 마주섰다.  그리고 계속 홀기소리에 따라 절차가 진행되는데 《신랑 일배, 신부 사배》로 맞절을 하고 교배잔을 나누는것으로 대례는 끝났다. 작품 53쪽.   얼마 안되는 묘사로 고려시대 혼인문화를 이처럼 생생하게 재생해놓은 작품은 그리 흔치 않다. 이어서 작품에서는 《문벌이 가당찮게 기운 혼인》때문에 딸의 장래를 걱정하는 윤씨부인의 심리에 련관시켜 고려시대의 무속신앙에 대해서도 잘 드러내고있다. 비록 다분히 비판적인 시각으로 표현하고있지만 윤씨부인의 신앙심과 《유학만을 지고무상의 거룩한 존재로 숭상》하는 남편 설생원의 서로 다른 신앙의식을 대조적으로 제시함으로써 편견을 최소화한 점은 긍정해야 할것이다. 특히 아직도 무속신앙이 절대적인 미신행위로 비난받고있던 1980년대에 씌여진 작품이라고 할 때 이점은 더욱 높이 사야 할 부분이다. 나중에 해인사에서 주인공들이 겪는 운명과 련관시키면서 불교의 허위성을 유교의 현세적삶의 추구에 대조시켜 비판한것도 같은 시각에서 리해된다.  이와 같이 상층문화에 대해서뿐만 아니라 최하층 백성의 생활문화에 대해서도 작가는 애정어린 시선으로 바라본다. 대표적인것이 설부용과 하녀 금단이가 남장을 하고 과객으로 공방울이네집에 들어섰을 때 방울이네집의 가난한 생활상에 대한 묘사가 되겠는데, 작가는 그러한 가난상을 드러낼 때에도 생활도구들, 오늘의 립장에서는 민속품이라 할수 있는것들을 일일이 제시하면서 생생한 화면으로 그려보이고있다.  고려청자의 제조기술에 대한 문화적인 제시 또한 마찬가지이다. 《… 그저 보기에는 찐득찐득한 흙을 주물러서 말랑말랑한 흙그릇을 맹글고 그 흙그릇을 또 음지에서 말려갖고 거기다가 여러가지 그림과 무늬를 그려넣어 약물에 푼 물감을 바른 다음 가마에 넣어서 불을 때면 불기운에 저절로 옥돌보다 더 곱은 빛이 나는 청그릇이 되니깐 누기나 그대로 하문 될것 같지만두 비방을 알아내지 못한 사람은 암만 그대로 하재도 안된다는기야. 그러므로 거기에 귀신이 붙었닥꼬 말하지 않갔나.》 라는식으로 갓바치로인의 입을 빌어 드러내고있는것이다. 이뿐이 아니다. 과거제도에 대해 3-4년 한번 보는 정기과거제도와 나라에 경사가 있을 때 임금께서 친히 보는 과거, 즉 알성과로 나누어 자상히 설명하고있는것도 그러한 고려의 문화에 대한 작가의 지극한 관심을 보여준것이 분명하다.  이밖에도 작품에는 고려시대 풍속과 문화에 대한 묘사가 수없이 많이 나온다. 주인공 리진성이가 동해안을 따라 관동팔경을 두루 구경하고 명주땅에 이르러 정월대보름 명절날 달구경과 다리밟기 즉 답교 놀이에 참여하면서 그의 체험을 통해 이 두 민속놀이의 의미를 해석한것, 그리고 여기에 인용된 달노래며, 진성이가 신라의 옛땅인 령남에 들어서기전 령남에 대한 소개와 태백산을 넘으면서 유명한 가사 《청산별곡》을 인용한것, 또 《꽃흘가(헌화가)》와 수로부인 전설을 인용한것, 고려가요 《동동》, 《정읍사》와 그에 관련된 전설을 인용한것 등이 모두 이에 속한다. 그러나 이런 풍속도를 펼치면서도 주인공의 심리와 운명에 련관킴으로써 서사적인 합리성을 획득하기도 한다. 령산읍에 있는 령산장에서 경험한 소경의 피리소리, 각설이들의 타령(인용) 등도 이 지역의 지방풍속에 대한 묘사에 속한다.  한편 주인공 리진성이가 방랑길에 어느 부자집 머슴방에 류숙하다가 머슴 천서방이 들려준 남원 설랑자의 억울한 사연 이야기에 충격을 받고 밖에 나와 바람을 쏘이다가 소복입은 젊은 과부의 다듬이소리를 들으며 전날 결혼준비를 위해 어머니가 하던 다듬이소리를 련상, 다시 설부용이도 그렇게 아름다운 미래를 꿈꾸며 다듬이질했을것이라 생각했다고 한것, 이 모든것은 여전히 하층사회의 민속문화와 안방 녀인네들의 민속문화의 드러내기로 판단되며 이는 민족적인 정서를 고양시키기 위한 서사적인 장치로 볼수 있다.  요컨대 작품에서는 이와 같이 고려시대 남도지역의 풍속과 문화의 제시가 대단히 많은 분량을 차지하며 또한 그것을 바라보는 시선 또한 애정이 넘치고있다. 물론 이런 풍속과 문화의 표현은 방랑중에 있는 주인공의 환경과 운명에 다다소소 련관되여있지만 그렇다고 주인공의 운명을 결정할 필수의 에피소드로 볼수는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가가 이런 서사를 시도한것은 그 지향이 뚜렷하다 하겠다. 즉 이런 에피소드들에는 민족문화의 뿌리에 대한 확인과 고양의 의미가 충분히 담겨있는것이다.   ④ 아름다운 민족어의 재현  문학이 언어의 예술이라는 명제는 영원히 유효하다. 이 명제는 《설랑자》에도 당연히 적용된다. 김용식 력사소설의 언어적인 우수성에 대해서는 다수의 평자들이 인정하는 부분이다. 그럼에도 아직 더 류추해야 할 가치들이 존재한다.  가령 다음의 례문에서 개화기 이전까지 사용되다가 이제는 거의 사멸된 《하소서》체 존칭의 사용은 어떤 의미를 지닐가?   《귀신도 모르는 일을 소녀 어찌 알겠나이까. 불초녀식이 팔자가 기박하여 하늘이 미워하고 조물이 시기하와 이런 횡액을 덮어쓴가보옵니다. 이것이 아마도 소녀의 운수땜인가 하오니 아버님께서는 노여움을 참으시고 소녀의 한가지 소원만 풀도록 허락해주시옵소서.》(설부용의 말―인용자) 작품 67쪽.   이런 《하소서》체 존칭은 작품에서 흔히 볼수 있다. 이런 존칭의 사용은 적어도 다음 두가지 의미를 지닌것으로 보여진다. 그 하나는 고대 중세사회 인간들의 언어생활을 현실그대로 재생하고자 한 작가의 시도가 반영되여있다. 즉 언어사용의 력사성 확보를 위해서 작가는 이런 존칭을 사용한것이다. 물론 과거에도 《해요》체나 《합니다》체의 존칭은 사용되였을것이다. 그러나 작품속에 이러한 《하소서》체를 사용함으로써 오늘의 언어생활과는 다른 고대 중세인들의 언어생활상을 보다 리얼하게 재현할수 있었다 하겠다. 다음으로 주인공의 간절한 마음을 표현해준다. 주인공 설부용이 부모님과의 대화에서 전부 이와 같은 《하소서》체를 사용한것은 아니다. 인용문에서와 같이 자신의 간절한 마음을 전달할 때 주로 사용된것이다. 어쨌건간에 이런 존칭을 사용함으로써 력사소설로서 작품의 사실성이 확보된 점은 누구도 부인할수 없을것이다.  남도사투리의 적절한 사용은 또다른 특징으로 주목된다. A 《우쩬사람인데 누길 찾아왔노?》  《다리 아파 좀 쉬여가자꼬 들렀당께요.》  《쉬여가자꼬?》  《예.》  《방이 누추해서 남을 들어오라기도 남새스럽당께.》  《별말씀 다 하시누먼요.》  《그럼 들어오랑께.》 작품 91-92쪽. B 《천서방, 또 이얘기주머니나 좀 풀어보라꾸.》  《이얘기주머니가 이젠 밑창이 다 나뿌랬다 막.》  《아따 이얘기를 애꼈다가 죽을 때 가져갈라노.》  《아이구 심심해라, 얼른 한커리 하이소.》 작품 140쪽.   례문 A는 전라도사투리로 된 대화이고 B는 경상도사투리로 된 대화이다. 김용식이 경상도출신이고 15세에 중국에 들어왔다니까 경상도사투리는 그나마 많이 기억하고있을수 있다고 믿지만 전라도사투리마저 이 정도로 생생하게 재현해냈다는것은 그만큼 언어에 대한 작가의 탐구가 깊다는 말이 될것이다.  사투리의 리용이 문학작품에서 어떤 역할을 한다는것은 재론의 여지가 없을줄 안다. 몇마디 대화를 통해 인물의 개성과 신분, 지역적특성을 곧바로 표출할수 있는것이 사투리가 되기때문이다. 사투리의 사용은 이러한 문학작품에서의 일반적인 기능외에도 이 작품의 경우 민족문화의 사실적재현이라는 또다른 가치와 의미를 지니기도 한다. 즉 사투리를 통하여 문화적측면에서 언어의 사실성을 획득한것이다. 이는 이민민족으로서 우리 조선족의 정체성확인에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기때문이다.  언어유희의 사용 또한 비슷한 리유에서 작품의 가치를 한층 높여준다 하겠다. C 《옛날옛적에 갓날갓적에 까막까치 말할적에 호랭이 갓쓰고 무당춤 출적에…(후략)…》 작품 141쪽. D 《저건너 영감 나무하러 가세, 등굽어 몬갈세, 등굽으면 기르마, …(중략)…대추는 다느이, 달면 엿, 엿은 붙느이, 붙으면 첩!》 작품 141쪽.   례문 C는 경상도사투리를 사용하는 사람들이 옛말을 하면서 자주 리용하는 말재주 부리기의 한 례이고 례문 D는 옛날 시골에서 흔히 들을수 있었던 말꼬리잇기 말재주로 흔히 아이들의 말배우기에 많이 리용되였었다. 모두가 서민예술의 범주에 속하는데 이러한 언어유희의 적절한 리용은 작품의 토속성을 살려주는 동시에 사투리사용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문화적사실성도 한결 강화시켜준다.  요컨대 대화에서의 《하소서》체 사용, 전라도사투리와 경상도사투리의 활용 그리고 서민예술로서 말재주의 적절한 리용 등은 우리말의 력사성과 문화적사실성을 강화시키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고있으며 궁극적으로는 민족정체성확인을 위한 문화적인 재료로서 매우 중요한 가치를 지닌다 하겠다. 언어는 문화를 탑재하는 가장 중요한 도구요 미디어이기때문이다. 언어의 기능을 최대한 리용하였을 때 우리는 거기에서 가장 전형적인 민족적인 정서를 느끼게 되는것이다.   3) 《설랑자》와 《규중비사》의 비교  주제적측면에서 《설랑자》와 《규중비사》는 비록 전자가 고려시대 부패한 무신세력에 대한 비판, 민중지향형의 유교 도덕과 학문 수련을 핵심으로 하고있는 반면 후자는 봉건적인 례교에 대한 비판을 중심으로 하고있어 얼마간의 차이를 보이고있으나 궁극적으로는 봉건제도에 대한 부정을 기본주제로 담고있어 큰 차이는 없어보인다. 그러나 이 두 작품의 중심의제는 뚜렷한 차이를 보이는게 사실이다. 《설랑자》에서는 기본주제외의 정보에 보다 많은 의미가 내포되여있기때문이다.  그 차이를 설명하기 위해 먼저 앞에서 언급했던 《규중비사》의 가치문제에 되돌아가 보자. 주제적측면외에 봉건사회의 사회적인 모순과 인간관계, 상층계급의 생활풍습들을 리얼하게 재현한 점, 특히 대화언어에서의 《하소서》체의 사용과 기타 묘사에서의 력사감 등에 대해서는 론자들이 공동으로 인정하고있다. 또한 미스테리사건의 수사 및 단안(斷案)을 통하여 긴박감과 취미성이 강한 이야기를 정교하고 재미있게 꾸몄다는 점도 덤으로 지적할만하다. 이는 어쩌면 이 소설이 발표될 당시에 문화대혁명과 관련된 억울한 사건, 가짜 사건, 잘못된 사건을 바로잡는 운동이 한창 진행중에 있어서 소설의 스토리가 모종의 현실적투영이 됨으로써 공명을 일으켰는지도 모른다. 그러니까 이 작품에서는 형식적측면에서의 긍정이 대세를 이루는셈인데 그중에서도 언어의 력사감이 많은 론자들의 주목을 받고있는것 같다. 동감이다. 그런데 이러한 당대사회 생활풍습의 재현, 언어의 력사감 등은 결국 력사소설을 통한 민족정체성 확인에 다름아니다. 그러니까 《규중비사》에서 시작된 작가의 민족정체성 확인의 지향이 《설랑자》에 이르러 보다 더 본격적으로 이루어진셈이다. 3. 김용식 력사소설의 문학사적인 의미   이상에서 김용식의 장편력사소설 《설랑자》에 대해 살펴보았다. 결국 이 작품의 가치나 의미 또한 앞의 《규중비사》 평가에서 언급된 내용과 별로 차이가 없다 하겠다. 단지 그 범위나 규모면에서 좀더 확장된 형태를 취하고있고 특히 봉건사회 륜리도덕의 페단이나 지배계급에 대한 비판이라는 기본적인 주제보다는 조선의 아름다운 산수, 고려시대의 력사문화와 풍속, 우리 아름다운 민족어의 재현에 보다 많이 주목하였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면 있을것이다.  필자는 김학철과 리근전, 김용식을 우리 조선족 현대소설의 세 원로작가로 보고 그중에서도 김용식의 문학사에 대한 기여는 우리 력사소설의 전통 확립에 있다고 지적한바 있다. 장춘식, 《삼원로와 조선족당대소설의 전통》, 《조선학연구론문집》, 동북조선민족교육출판사, 1996. 그렇다면 김용식의 력사소설은 우리 문학사에서 어떤 의미를 가지는것일가?  김동훈은 여러측면에 걸쳐 김용식 력사소설의 현실적의미를 추출하고자 노력한다. 《김용식의 력사제재의 소설들은 설화의 력사화에서 성공적시도를 보여주었을뿐만아니라 또한 설화의 주제를 우리 시대에 제기되는 절실한 문제의 해결에로 이끌어가는데서도 진지한 노력을 보여주었다. 즉 그의 력사소설들은 력사의 거울에 비춰 본 현실생활에 대한 긍정의식과 더불어 력사의 반복성, 류사성에서 암시되는 명석한 현실고발의식을 토로함으로써 심각한 인식, 교양적의의를 띠고있다.》 김동훈, 《김용식론》, 임범송·권철 주필, 《조선족문학연구》, 흑룡강조선민족출판사, 1989, 414쪽. 그 례로서 김동훈은 력사에 대한 비판을 통한 사회주의현실의 우월성 긍정, 력사속의것과 류사한 현실의 암흑에 대한 고발, 그러한 고발을 통한 사회개조 혹은 혁신의 지향성 등을 들고있다.  물론 이런 내용들은 나름대로의 의미를 지닌다. 특히 력사속의것과 류사한 현실의 암흑이나 부조리에 대한 비판이나 고발은 력사소설이 흔히 추구하는 측면이기도 하다. 그러나 사실상 김용식의 소설에서 이러한 력사적사실을 통한 현실비판은 독창적이라 보기 어려우며 따라서 이러한 주제의식적인 측면에서의 기여는 한계가 있을수밖에 없다. 이는 김용식의 개인적인 문제라기보다는 오히려 당대 우리 사회 문화환경의 한계에서 비롯된것이라 보여진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용식의 력사소설들이 발표될 당시 분명히 문단에 파문을 일으켰고 독자나 학계의 반향도 상당히 열렬했었다. 이것 또한 엄연한 사실이다. 그 원인은 어디에 있을가?  필자는 우리 력사소설의 전범 수립에서 그 리유를 찾고자 한다. 즉 김용식의 력사소설은 력사소재를 소설화할 때 우리가 반드시 습득해야 할 원리원칙들, 혹은 미학적인 원리들을 작품을 통하여 제시해준것이다. 그것이 독자들에게 무난히 수용되면서 인정되였다는 점이 중요한것이다. 이점은 다른 론자들도 지적하고있는 사실이다. 그러나 다른 론자들이 별로 주목하지 않고있는 부분이 있다. 문화적인 뿌리 찾기를 통한 정체성확인이 이에 속한다. 필자가 가장 주목했던 부분은 바로 이것이다. 문화적인 뿌리 찾기 혹은 동질성 확인은 이민자소설의 가장 핵심적인 문제에 접근했다고 보기때문이다. 이중적인 정체성을 가지고 살면서 점차 민족정체성에 대한 상실감을 느끼고있는 우리 민족의 현상황에서 우리 문화의 뿌리가 되는 력사를 재현해냄으로써 민족구성원들로 하여금 자신의 민족정체성을 형성한 모태를 체험하도록 하며 이를 통해 새롭게 자신의 정체성을 확인하도록 하는것, 어쩌면 이것이 작가 김용식이 력사소설을 통해 이루고자 했던 《목적의식》 혹은 지향이였는지도 모른다. 이는 김학철의 《격정시대》나 리근전의 《고난의 년대》가 우리 문학의 봉우리를 형성한것이나 마찬가지 리치라 하겠다. 이점은 또한 김용식의 다른 력사소설 《보은단》 《아리랑》9집, 1982.을 통하여 중세시대 조선조와 명나라의 선린관계 혹은 뉴대관계를 표현한데서도 확인할수 있다. 력사적으로 두 나라, 두 민족이 맺어온 관계를 제시함으로써 이중적정체성을 가진 우리 민족의 현실을 우회적으로 드러낸것으로 볼수 있기때문이다. 4. 나오면서   김용식의 소설에 대해서는 작품이 가지는 중요성에 비해, 혹은 작가가 문학사적으로 차지하는 위치에 비해 론의가 별로 많이 이루어지지 않고있는것 같다. 본고에서도 《규중비사》에 대한 학계의 평가를 귀납한후 주로 장편력사소설 《설랑자》를 중심으로 김용식 력사소설의 가치와 의미를 조금은 새로운 시각에서 살펴보았다. 이밖에도 이 작가의 작품은 많이 있다. 작가의 20주기를 계기로 김용식의 작품에 대해 보다 폭넓은 조명이 이루어지기를 기대한다.
10    [문학] 문학적 삶의 묘미 (장춘식11) 댓글:  조회:1508  추천:114  2007-03-11
문학적 삶의 묘미 ---오늘 우리의 문학현실을 진맥해본다 장춘식 중국사회과학원 민족문학연구소 부연구원 우리의 문학, 아니 전반 중국문학은 지금 가장 어려운 력사적인 고비에 처해있다. 독서시장의 위축, 혹은 실용화 독서의 풍기는 사회적인 병폐로 만연되고있고 기성문인계층의 동면(冬眠)과 기문종상(棄文從商) 현상은 날따라 심각해지고있다. 문학은 이런 준엄한 력사적인 환경에서 갈팡질팡하고있다. 조금만 력사적인 지각을 가진 사람이라면 이런 현상은 우리 나라 산업화 혹은 시장경제화의 본격적인 추진과 거의 동시에 시작되였고 또 심각해지고있다는것을 보아내기 어렵지 않을것이다. 그러니까 이 산업화 혹은 시장경제화와 문학과의 사이에는 분명히 무슨 관련이 있다는 말이 되겠다. 그렇다면 그 관련의 내용은 무엇이며 또 어떤 형태로 관련되고있는것인지? 그 관계의 개선방도는 없는지? 있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것인지? 인젠 이런 문제들에 대하여서도 심각히 생각해보아야 할줄 안다. 머슬로라는 학자는 사람의 욕구는 다음과 같은 5단계로 발전한다고 지적하고있다. 즉 생리적 기본 욕구, 안전에 대한 욕구, 애정에 대한 욕구, 존경에 대한 욕구, 자기실현에 대한 욕구 등. 현대 심리학에서는 이 다섯가지 욕구를 크게 1차적 욕구와 2차적 욕구로 나누고있다. 1차적 욕구는 목이 마르다든지, 배가 고프다든지, 잠이 모자란다든지, 성적인 욕구를 추구한다든지 하는 생리적 욕구다. 이런 1차적인 욕구에 의하여 먹고 마시는 쾌락, 목욕같은 육체적 쾌락, 섹스같은 성적 쾌락 등 생리적인 쾌락이 탄생하게 된다. 2차적 욕구는 호기심에 의한 탐구욕구, 남들에게 인정받고싶은 욕구(명예욕과 같은), 남들과 화친하고자 하는 욕구, 남들에게 좋은 일을 베풀고싶은 욕구 등 생리적욕구가 아닌 정신적인 욕구를 뜻한다. 프롬은 이것을 소유의 욕구와 존재의 욕구로 대별하고있다. 에리히 프롬은 그의 ꡔ산다는것ꡕ에서 사람이란 먹고 살수 있는 생리적 욕구단계에서 재산이나 지위, 권위의 소유욕구단계로 발전하고, 다시 소유는 기본적인 생명을 유지하기 위한 필요에 그치고 정신적인 흡족과 즐거움을 누리려는 존재욕구로 발전하는데 새로운 인간, 새로운 사회의 가치는 소유인간에서 존재인간으로의 승화여야 한다고 했다. 머슬로는 이것을 다시 사회발전법칙에 련관시켜 농경사회에서는 생리적욕구가, 공업화 사회에서는 소유욕구가, 탈공업화사회에서는 존재의 욕구가 발생하게 마련이라고 분석했다. (리규태: ꡔ이내 가슴엔 수심도 많네ꡕ P89,P111 참조. 삼성출판사 1993년 초판 5쇄.) 오늘 우리 사회의 경제적발전단계는 바로 소유욕구가 무한대로 팽창되여가는 공업화사회에 처해있다. 물론 원시사회후기, 즉 신석기 시대후기로부터 사회 인간의 불평등 혹은 물질 점유의 불균형이 산생되면서부터 이 각 단계마다 그 사회내의 각 성원의 욕구표준은 상당히 큰 차별을 보이고있다. 이를테면 노예사회에서 노예주계급이나, 봉건사회에서의 지주계급의 욕구는 공업화사회의 일반인들의 욕구, 즉 소유욕구가 극도로 팽창되여있었고 공업화사회에서도 마찬가지로 물질을 고도로 소유한 소수의 사회성원은 존재의 욕구가 발생하고있다. 그리고 같은 사회상황하에서도 매개인의 가치관의 차이에 따라 욕구의 차이는 같지 않게 된다. 이를테면 진정한 문화인은 그 어떤 사회에서나를 막론하고 가장 기본적인 생존욕구(우리의 전통적인 선비사회에서는 이런 가장 기본적인 욕구보다도 존재의 욕구, 즉 정신적인 흡족과 즐거움을 우위에 놓고있기도 하며 그래서 김시습이나 김삿갓같은 류랑문인들이 산생하게 된다. 그러나 이것은 비현실적인것이며, 사람은 어쨌든 생명이 유지되여야 존재의 욕구를 실현하게 된다)다음에는 존재의 욕구를 삶의 가치에서 우위에 놓게 되는것이 바로 그 실례이다. 다시 존재의 욕구란 쉬운 말로 정신적인 삶의 의미에 대한 추구욕구라고 할수 있다. 문학활동은 바로 이 존재의 욕구에 의해 진행되는 인간의 행위라고 할수 있다. 즉 창작자로 말하면 창조의 정신적 욕구(자기 실현의 욕구)를 만족시키는 행위요, 독자로 말하면 그 창조된 가치의 향유를 통해 정신적인 만족 혹은 풍요를 실현하는 행위인것이다. 문학이란 창작으로부터 시작되였다. 더 정확히 말하면 창작과 수용을 순차적으로 말하면 창작이 먼저다. 구전문학이 인류 최초의 문학이라면 민요는 부른 사람이 창작자이고 듣는 사람이 수용자일것인데 부르는 사람이 없으면 듣는다는 행위가 존재할수 없게 된다. 신화나 설화도 상황은 다를바가 없다. 그러나 수용자가 없다면 그 창작은 무의미해지기때문에 창작 자체도 없어지게 된다. 이런 창작과 수용의 상호 영향으로 문학은 발전해왔다. 수용이 창작에 주는 영향이 어느 정도 큰가는 최근 몇년간 우리 문학의 현실을 보아도 알수 있다. 문학은 아니지만 주로 가벼운 소일에 리용되는 읽을거리들이나 상식적인 읽을거리들이 독자의 인기를 끄니까 ꡔ청년생활ꡕ이나 ꡔ연변녀성ꡕ과 같은 잡지들이 잘 팔리게 되고 추리소설이나 전기문학들, 특히는 모택동이나 주덕, 주은래 등 인물들의 인물전기들이 잘 팔리니까 각 잡지들에서는 그런 류형의 글들을 앞다투어 게재하고있다. 동시에 순수문학작품들이 독자군을 잃어가니까 기성작가들, 특히 젊은 작가들은 창작의 욕망을 잃어간 나머지 기문종상의 길을 선택(물론 기문종상 현상이 생기게 된 원인은 이것 한가지가 아니다)하게 된것이다. 현대는 순수문학을 수요하지 않는다는 오해때문에. 영화관들마다 ꡔ우!아!야!ꡕ 소리가 요란한 무협이나 총격영화들이 관중의 인기를 모으는 원인도 대개는 여기에 있을것이다. 치렬한 생존경쟁에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기진맥진해있는 오늘의 관중이나 독자들은 상당한 지식과 사고와 노력을 필요로 하는 순수문학, 순수예술작품에 대해서는 취미를 덜 가진다. 그대신 별 부담감이나 수고로움이 없이 가볍게 피곤한 신경을 어루만져줄수 있는 통속문학, 통속예술들이 사회의 인기를 끄는것은 어쩌면 자연스런 일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렇다고 그것을 방임해두고 문학예술 전반이 통속화에 흐르도록 내버려둔다면 우리의 문명은 퇴보하고 인간도 무지몽매해지게 될것임은 자명한 일이다. 공업화사회, 혹은 산업사회의 문화를 나는 ꡔ콩크리트문화ꡕ라는 개념으로 표현한적이 있는데 물질적 소유욕구의 무한대적인 팽창을 거쳐, 혹은 그 욕구의 만족을 위해 진행되는 격심한 경쟁을 거쳐 형성되는 인간의 소외의식을 지칭한것이다. 그것을 인위적인 구조물인 콩크리트의 견고함과 비인간성 내지는 따가울 때마저도 차가운 느낌을 주는 속성, 그 구조물 자체의 격리(隔離)의 용도 등의 이미지로 표현하였다. 인간은 소유의 욕구를 만족시키기 위해서는 격심한 경쟁을 해야 하는데 이 경쟁의 결과는 전통적으로 내려온 인간 대 인간의 느긋하고 온후(溫厚)한 감정을 파괴시키게 된다. 그래서 인간은 물질적인 부를 많이 소유할수록 따뜻한 인간의 정을 그리워할수밖에 없게 되는것이다. 다시 말하면 인간은 산업사회의 소유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한 소유중독(所有中毒)에 걸려본다음에야 다시 이미 파괴되여버린 전통적인 인정을 그리게 되고 또 어떻게 뜻있게 사느냐 하는 존재의 가치를 추구하게 된다는 말이 되겠다. 그밖에 현대 공업문명은 서방에서부터 형성되였고 그러므로 총체적으로는 서방문명이며 그것은 기독교문화와 과학문화에 기반을 두고있다. 이런 문명의 가장 기본적인 특징은 합리주의의 사고방식이다. 동방의 도덕적, 윤리적 혹은 의리(義理), 인정적인 사고방식과는 크게 구별되는 이런 문명은 산업문명의 인입과 함께 우리 동방사람에게도 이식되고 영향을 일으키게 되였다. 심지어 굴러온 돌이 박힌 돌을 뺀다는 속담도 있는것처럼 오히려 우리의 전통적인 문명을 상실케 한다. 게다가 본세기에 들어오면서 우리의 선구자들로부터 서방의 문명은 무조건 진보적이고 발전적인 문명이라 여겨지면서 그것을 우리 원래의 문명보다 훨씬 선호하여 받아들였(물론 봉건사회 전통문명의 한계를 극복하고 제도적인 질곡에서 벗어나기 위한 노력은 바람직한것이였으며, 또 그런 과정에서 생성된 부작용은 어쩌면 피면할수 없는것인지도 모른다)다. 그러면서 저도 모르게 우리 원유의 문명을 배척, 파괴하게 되였다. 그러나 사실은 어떤 문명이든 다 자기의 장점과 에너지를 가지고있기 마련이며 그러므로 그것을 상실하게 될 때, 더구나 오늘과 같이 서방문명의 한계가 분명하게 드러나게 될 때, 우리는 문명의 진공감을 느끼게 되며 동시에 인간의 가치의식에는 위기가 도래하게 된다. 이점은 동방 선진국인 일본이나 아세아 4소룡(四小龍)의 전례에서 이미 립증되고있는 사실이다. 그래서 그들은 이런 곡절적인 길을 한참 걸어보고나서야 다시 되돌아서서 자신의 문명전통을 관심하고 연구하게 된것이다. 이미 이런 전례가 있는 상황에서 우리는 다시 그들의 옛길을 걸을수는 없을것이다. 사회의 엘리트들이라 불리는 문화인들, 특히 문학인들은 이때 력사적인, 민족적인 사명감을 재확인해보아야 한다. 물질적으로뿐만 아니라 정신적으로도 보다 나은 삶을 영위하기 위해서는 이점을 명심해야 할줄 안다. 이것은 문학인 자신만의 일이 아니다. 사회의 지성으로서 이것을 민중에게 일깨워줄 의무가 있다. 이것이 곧 력사가, 사회가 지성인에게 부여한 력사적인 사명이라는것일것이다. 여러해전에 어디서인가 국제 펜클럽에서 세계 각국 저명 작가들에게 ꡔ당신은 무엇때문에 문학창작을 하는가?ꡕ라는 설문을 제기하여 그 대답의 내용을 게재한 신문을 읽은적이 있다. 시간이 많이 지나 그 전부의 내용을 여기에 적을수는 없지만 대개는 사명감때문이다, 명예를 위해서다, 원고료를 위해서다, 단순히 쓰고싶기때문이다, 그것이 직업이기때문이다, 아무런 원인도 없다, 등으로 다양하였지만 그중에서도 창조적의욕과 엘리트로서의 사회적인 책임감이 가장 일반적인 원인이 되고있는것 같다. 오늘 우리의 문학인에게 왜서 창작을 하느냐고 물으면 거개는 의욕과 사명감때문이라고 말한다. 제한되여있는 생명에 최대한의 의미를 부여해보려는 창조욕, 꼭 비난받을바는 아닌듯싶은 명예욕(범은 죽어 껍질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 이름을 남긴다는 성인들의 말을 상기해보자), 보잘것 없기는 어느 나라나 마찬가지이지만 그나마 생활에 보탬이 되고있는 경제적인 수입 즉 원고료(물론 베스트셀러 작가의 경우에는 문제가 좀 다르다), 이것을 무슨 욕구라 한다면 곧 물욕이 될것이다. 그리고 자신의 지혜와 재질, 누구나가 다 가지고있는것이 아닌 창조적인 감성과 력사적인 혜안으로써 그 재질과 지혜를 부여해준 이 땅과 민중에게 정신적인 재부를 창조해줘야 한다는 사회적, 혹은 력사적인 사명감...이것은 창작자의 창작을 키질해주는 가장 기본적인 정신적 원인 혹은 원동력일것이다. 여기에서 창조욕과 명예욕 그리고 사명감에 대해서는 거개가 시인하고있지만 물욕 즉 원고료문제에 한해서만은 얼마간의 이의가 존재할지도 모른다. 한것은 우리의 원고료가 너무나도 보잘것 없고 그래서 원고료의 창작자에 대한 매력에 대해서는 간단히 부정해버릴 소산이 전혀 없지 않기때문이다. 그러나 사실은 그렇지가 않다. 아무리 보잘것 없는 원고료라고 하여도 저마다 박봉인 문학인에 대해 말한다면 어느 정도는 생활상 보탬이 되는것이고 하다못해 담배값이라도 되는게 사실이며, 또 생활상 일정한 정도로 여유가 있는 작가라 하더라도 우리 선조들이 유전을 통해 보존해온 선비정신의 영향때문에 이 창조적인 로동이 가져다준 보수를 다른 경로를 통해 얻은 보수보다 갑절 귀중히 여길것도 사실(물론 옛날의 선비들이 돈을 초개같이 여긴것은 그 극단이라고 볼수 있다)이다. 요즘 들어 무슨 무슨 현상작품모집이요 하여 여러 신문, 잡지들에서 벌리고있는 활동들에 보이고있는 문학인들의 열정만 보더라도 이점은 금방 실증이 된다. 거기에는 물론 문학상 자체가 내포하고있는 명예면의 유혹도 있겠지만 현상금의 액수가 높을수록 투고량이 많아지고있는 현실은 이 문학행위에서 얻어지는 보수가 우리의 문인들에게 일으키고있는 영향력을 가히 짐작해볼수 있게 한다. 그리고 요즘 들어 모두들 입버릇처럼 말하고있는, 시장경제법칙이 문단에도 영향주어 오늘의 원고료문제는 전보다도 더 절실히 문학활동에 영향주고있음도 부정할수가 없다. 금전은 만능이 아니지만 없어서는 또 절대 안된다. 그러므로 시장화사회에서는 경제적인 방법이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할수는 없다손쳐도 가장 효과적인 방법인것만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 욕망과 사명감에서 많은것이 동요를 일으키기 시작했다. 우선 명예욕이 시야의 확대와 더불어 심한 타격을 받는다. 적지 않은 작가, 시인들이 좁은 독자군의 상태에서 벗어나보려고 중국문단에 힘겹게 돌진을 시도하다가 별로 시원치가 않게 되자 다음으로 한국문단에의 돌진을 시도해보았지만 그것도 썩 순탄치는 않다. 특히 문단인으로서의 자신의 왜소함을 자각하기 시작하면서 이 모든 시도들이 생기를 잃기 시작했다. 범이 없는 골의 삵의 노릇(그러나 삵의 노릇도 할 사람이 있어야 함을 명심해야 한다. 우리 민족의 력사와 인생체험과 희로애락을 우리 민족의 작가들만큼 정확히, 그리고 절실히 리해하고 기록하고 표현할수 있는 사람은 우리 민족의 작가들밖에 더 없는것이다)을 해왔다고 느끼기 시작한것이다. 문단인으로서의 명예의 한계성을 발견했다고 해도 대과는 없을것이다. 다시 말하면 명예욕의 만족이 인젠 거의 불가능해진셈이다. 거기에 너무나도 보잘것 없는 원고료수입때문에 물욕의 만족도 불가능해지자 이제 남은것은 창조욕과 사명감뿐인데 홍수와 같은 시장경제사회가 도래하자 그것은 너무나도 창백한 유혹이 되여버렸다. 우리 문학인의 기문종상(棄文從商)현상은 바로 이런 상황(이밖에 오늘 우리 문학창작의 불황현상은 상당부분 작가들의 가치의식의 혼란에서 기인된다고 보여진다. 갑작스런 가치관념의 변화에 적응되기까지는, 그리고 그것을 자신있는 관점으로 문학에 표현할수 있기까지는 시간이 필요한것이다. 작가들은 지금 그런 모색의 괴로움을 겪고있다. 그러나 본론에서는 그것이 중심론제가 아니므로 다른 기회로 미룰수밖에 없다)에서 시작된것이다. 물론 이것은 산업화사회 초기단계의 현상으로서 어쩌면 필연적인것인지도 모를것이지만 어쨌든 바람직하지 못한 현상인것만은 부정할수 없다. 문학은 크게 본격문학 혹은 순문학과 대중문학 혹은 통속문학 두가지로 나뉘여진다. 그걸 한어에서는 엄숙문학(嚴肅文學) 혹은 순문학(純文學)과 대중화문학(大衆化文學) 혹은 통속문학(通俗文學)이라고 부른다. 혹은 고아문학(高雅文學)과 속문학(俗文學)이라고도 한다. 모택동은 이것을 설중송탄(雪中送炭)과 금상첨화(錦上添花)라고 표현하였다. 고대에는 시와 희곡만을 문학이라 여겼는데 아리스토텔레스는 그러므로 문학을 시학(詩學)이라고 부르기도 하였다. 문예부흥시기 보카치오의 ꡔ데카메론ꡕ이나 쎄르반떼스의 ꡔ돈끼호테ꡕ에 와서야 소설도 본격문학의 지위를 획득하였다. 그러나 중국에서는 ꡔ수호전ꡕ이나 ꡔ삼국연의ꡕ, ꡔ서유기ꡕ 심지어 ꡔ홍루몽ꡕ마저 그것이 본격문학의 지위를 획득하기까지는 많은 세월이 흘렀다. 하기야 ꡔ수호전ꡕ이나 ꡔ삼국연의ꡕ같은 소설들은 통속소설에서 발전된것이지만 말이다. 어떤 사람들은 심지어 대중문학 혹은 통속문학을 진정한 의미에서의 문학이 아니라고 보면서 ꡔ읽을거리ꡕ라는 표현을 쓰기까지 하는데 조금은 지나친 표현이지만 어쨌든 이 두가지 문학이 상당히 뚜렷한 구별을 가지고있는것만은 사실이다. 그러나 사실상 이 두가지 문학은 각자 저마다의 존재적 가치를 가지고있으며 혹은 저급과 고급의 단계적인 차이가 있을뿐이라고 말할수도 있다. 사람들은 순수소설이 통속소설보다는 우위라고 생각하지만 그것을 기꺼이 읽으려는 사람은 그리 많치 못하다. 통속소설보다 순수소설을 더 즐겨서가 아니라 그렇게 하도록 가르침을 받아왔기때문에 순수소설을 우위로 보는것이다. 어떤 독자들은 그들이 좋다고 여기는것과 즐겨 읽는것과의 이러한 모순을 설명하기 위하여 마치 순수소설의 좋은점은 즐거움과는 아무런 관계도 없는것처럼 말한다. 그들은 순수소설이 기쁨을 주기보다는 설교처럼 우리에게 뭔가 가치있는것을 가르쳐주며, 인격적수양에 리롭기때문에 좋은것이라고 여긴다. 그러나 사실은 순수소설도 기쁨을 줄수 있고 또 주어야 한다. 혹은 통속소설보다 한급 높은 차원에서 기쁨을 준다. 독자는 소설을 반드시 읽어야 하는 의무감에서가 아니라 소설 그 자체의 재미때문에 읽는것이다. 어렵다고 하는것을 우리는 어떻게 하여 즐길수 있을가? 그점에 관한한 우리는 복잡하고 배우기 어려우며 지식과 면밀한 주의력과 분석이 요구되는 브리지(bridge, 즉 橋牌)와 간단한 카드놀이(「주패」와 같은)간의 취미적인 차별을 생각해보면 금방 알수 있다. 분명히 브리지와 같은 게임들은 복잡하다. 그러나 바로 그 복잡성이 어떤 하나의 명료한 목표와 관련되여있을 때 흥미를 유발시켜주며 의미를 띠는것이다. 순수소설의 흥미도 이것과 비슷한데가 있다. 즉 어떤 중심목표와 생각에 복잡한 구조의 세부적 사건을 엮어가고있는것이다. 그러므로 대부분의 순수소설은 정독과 재정독을 요구한다. 문학작품을 즐긴다는것과 리해한다는것은 병행하는것이며 적어도 그것을 두번이상 읽지 않고서는 좋은 스토리를 완전하게 리해하기 어렵다. 이점에서는 음악, 특히는 고전음악을 충분히 즐기기 위해서는 여러번 들어야 한다는점을 생각해볼수 있다. 어떤 곡의 처음부분을 들을 때의 즐거움은 어느 정도는 그 곡의 후반부의 전개와 그 전체의 흐름을 알고있는데에 근거하고있다. 때로는 스토리만을 다시 읽는것만으로는 충분하지 못하다. 그 스토리가 가지고있는 전체적효과를 감지하기전에 루차 생각해보고 분석해보아야 한다. 순수소설이 담고있는 복잡한 인식, 교양적 가치를 동반한 깊은 사상만을 리유로 순수소설의 어려움을 정당화시켜주지는 못한다. 그점은 소설외에서도 충분히 발견할수 있기때문이다. 순수소설의 리유나 목적을 알아야 한다. 간단히 말해서 어떤 순수소설의 주요 목적은 독자들로 하여금 인간의 경험을 상상케 하고 리해하도록 하려는데에 있다. 이러한 목적이 왜 난해성과 복잡성을 수반해야 하는가 하는점을 알기 위해서는 인간의 경험이 단지 일련의 관련된 사건들이라기보다는 그러한 사건을 겪는 사람에게 느껴지는바로서의 사건들이라는점을 우리는 명심해야 한다. 똑같은 사실에서도 사람에 따라서는 전혀 다른 경험들을 갖게 된다는것을 우리는 안다. 매개인이 그 사실들에 부여하는 감정, 기준, 통찰력이 각이함에 따라 그 사실이 개인에 대하여 갖는 의미는 같지 않기때문이다. 그러므로 어떤 인간의 경험을 적절히 묘사하려면 사실들과 그 사실들에 부여된 의미가 포함되여야 한다. 그리고 순수소설은 진실해야 한다. 인간의 력사이래 루적된 인간의 경험은 문학속에 가장 효과적으로 나타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상상력이 충만한 인간의 경험은 우리들에게 더할수 없는 통찰력을 줄것이다. 그렇기때문에 디데로는 “가장 진실한 력사는 잘못으로 충만해있는 반면에 그(리처드슨)의 소설은 진실로 가득차있다”고 말할수 있었던것이다. 물론 순수문학작품 모두가 이처럼 인간의 력사적인 경험을 진실하게, 투철하게 묘사했다고 말할수는 없다. 한해에도 수없이 쏟아져나오는 문학작품에 비하면 명작은 언제나 소수다. 그러나 순수소설은 그런 력사적인 경험의 기술을 목적으로 하기때문에 그 취득한 성과는 각이하겠지만 독자에게 진실을 밝혀주려는 노력만은 한결같다. 요컨대 순수소설을 읽는 재미는 보다 높은 차원에서의 재미이며 그러므로 그런 재미를 즐길수 있다는것은 인간의식의 진보와 성숙을 의미한다. 즉 인간경험의 깊은 의미(사회와 력사를 인식하고 인생의 깊은 사상을 깨우치는것까지 포함하여)를 재미로 즐길수 있다는것은 인간이 성숙되였다는것을 말해주는것이다. 순수소설의 목적은 인간의 경험을 묘사하는것이다. 이를 위해서 사실, 주제, 문학적장치들을 사용하며 소설을 즐기고 리해하기 위해서 독자는 때로 이런 부분들을 분석하고 서로 어떻게 관련되여있는가를 알아보아야 한다. 통속소설의 경우도 외견상으로는 역시 인간의 경험을 묘사하나 초보적인 취미신경의 발동을 위해서는 그런 목적에 적합한 인간의 행위들이나 사실들을 최대한 단순하고 명료하게 엮어놓는다(사실상 인간의 행위나 목적, 사실들은 그렇게 단순하고 명료할수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이를테면 김용(金庸)의 무협소설들에서처럼 무술을 통하여, 경요(瓊瑤)의 연정소설들에서처럼 사랑을 통하여, 김성종의 추리소설들에서처럼 서스펜스나 스릴을 통하여 사랑, 복수(의리나 보은도 포함), 재부, 질병, 죽음과 같은 인간의 가장 초보적인 관심거리들을 명료하게 펼쳐보인다. 이를 위해서는, 즉 인간의 가장 초보적인 관심거리들, 서스펜스(사실 서스펜스 자체도 인간의 초보적인 관심거리다)를 끊임없이 제조해내기 위해서는 사실들의 진실성이나 현실성마저 희생시킨다. 례를 들면 한동안 많은 관심을 모았던 ꡔ갈망(渴望)ꡕ이나 대만, 메히코의 TV련속극들에서처럼 “다음에는 어떻게 될가?”라는 서스펜스를 만들어서 풀어나가다가 그것이 다 풀릴듯싶으면 억지(교묘하게 수긍이 가도록 만들면 물론 더 좋겠지만)로라도 또 다른 서스펜스를 만들어서 관심의 끈을 이어놓는것이다. 이런 극들에서는 한결같이 사랑(애정에 대한 관심)이나 질병(건강에 대한 관심, 대체로 불치의 병이다)이나 돈(재부에 대한 관심), 죽음(생명에 대한 관심)과 같이 인간의 가장 초보적인 관심거리를 주요 라인으로 다룬다. 그리고 이런 련속극들에서는 어떤 복잡한 분석이나 면밀한 주의를 요구하는것이여서는 안된다. 그렇게 되면 통속성이 상실되기때문이다. 누구나 한두편쯤은 다 보았음직싶은 미국의 서부영화를 통하여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전형적인 서부극이 되는 사실들(배경, 인물, 플로트)은 이런 명료성을 위해서 무척 틀에 박혀있다. 사건은 개발시기 미국 서부의 목장마을(혹은 자그마한 鎭)과 그 주변에서 전개된다. 대개 등장인물들은 카우보이(牛仔)들, 보안관, 술집주인, 그리고 은행가나 신문 편집인 등이다. 한편은 악한으로서 목장, 광산, 황금수송마차나 미국 기병대가 쓸 탄약을 털려고 음모를 꾸미고있다. 그에 대항하는 인물은 주인공으로서 흔히 뚜렷한 직업이 없는 인물이다. 영화의 마지막에 가서는 여러차례의 주먹싸움, 총싸움, 중심가에서 적어도 한번의 속사결투를 치룬다음에 주인공은 악당을 물리친다. 우리 고전소설에 늘 나오는 권선징악, 고진감래식의 내용들이다. 아무리 복잡한 사건이라도 결국은 거의 언제나 관중이 바라는바대로 결말을 맺는다. 이것이 주제와 사건의 통속성이 될것이다. 그리고 보다 알기 쉽게 하기 위해서는 인물의 형상을 최대한 개념화한다. 주인공은 의리, 동정심은 물론이려니와 용모에서부터 옷차림까지 가시적인 ꡔ선인(善人)ꡕ으로, ꡔ악한(惡漢)ꡕ은 그 반대로 나타난다. 인물의 통속성이다. 서부영화는 이런 장치와 방법으로 관중이 쉽게 받아들이면서도 인간의 가장 초보적인 관심거리가 그들이 바라는바대로 발생, 발전, 결론지어지게 함으로써 부담없이 가볍게 즐길수 있게 한다. 그러나 바로 그런 리유때문에 순수소설보다 통속소설을 더 좋아한다는것은 브리지가 아니라 간단한 카드놀이(주패같은것)를 더 좋아하는것과 같은것이다. 그러면 통속소설을 더 즐기는데 무슨 잘못이 있는가고 물을 사람이 있을것이다. 사실 잘못이라곤 없다. 다만 가치있는 어떤것을 빠뜨리고있을뿐이다. 독자가 요구하는바가 각기 다르기때문에 소설은 여러 수준에서 읽을수 있다. 독자들로 하여금 여가를 유쾌하게 보내도록 해주며 낯선곳과 모험을 상상케 하고 등장인물들의 감정적 경험을 나눠갖도록 해주며 등장인물들이 어떻게 륜리적 또는 도덕적 문제들을 해결하는지를 보여주고 작가의 솜씨를 관찰하는것을 즐기도록 해주며 자기 자신의것과는 다른 원칙과 철학에 립각하여 인생을 바라보도록 해준다. 만일 어떤 독자가 이러한 요구조건들중 처음 두세가지만 요구하고 나머지의것들을 무시해버린다면 그는 자신을 통속소설에 한정시키고말것이다. 주제면에 있어서 그는 만족감을, 다시 말하면 안전, 사치, 섹스, 그리고 폭력에 대한 자신의 욕망이 어려움이나 죄책감없이 상상속에서 간접적으로 만족될수 있는 종합적 백일몽을 요구하거나 또는 확인을, 다시 말하면 그가 믿고싶어하는것이 옳다라는 느낌을 요구할것이다. 그러나 순수소설은 앞에서 렬거한 사항들을 거의 모두 요구하는 독자들을 위해 씌여진다. 마치 브리지놀이를 즐기는 취향이 간단한 카드놀이를 싱겁게 만들어버리듯이 그러한 그의 요구는 통속소설을 재미없게 느끼도록 만들어버린다. 읽기 쉽게 하기 위해 통속소설은 인생의 무한한 다양성을 반영하는것이 아니라 상대적으로 적은 수의 등장인물, 상황, 그리고 주제로 그 자체를 국한해야 하는것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야기의 한부분에서 판에 박힌 류형을 고수하기 위해 통속소설은 이야기의 다른 부분의 개연성이나 완전성을 희생시켜야만 한다. 즉 진실성을 희생해야 한다. 주제(권선징악, 고진감래 등)를 완성시키기 위해 모든 서부영화의 주인공은 반드시 서부에서 제일 빠른 총잡이가 되여야 한다(형상의 개념화). 순수문학작품을 읽으려면 상당한 문학적 지식과 수양과 노력이 수요된다. 그러므로 독자들의 이런 지식과 수양을 키우기 위해서는 문학적인 리론지식의 전수와 함께 시기마다 발표되는 작품에 대한 해설과 안내가 필요할줄로 안다. 현재 우리 문단에서 ꡔ문학과 예술ꡕ지의 평론이나 연구론문들, 그리고 각 문예지들에서 간혹 게재하는 문학평론들이 이런 역할을 하기는 하지만 보다 알기 쉽고 적시적인 작품월평이 활발히 행해져야 할 필요가 있다. 이것은 절대 지면랑비가 아니다. 이점에서는 ꡔ한국문학ꡕ이나 ꡔ현대문학ꡕ지의 형식을 참고하는것이 바람직할것이다. 작품에 대한 예리한 민감성을 갖춘 문단의 권위 작가, 평론가들을 발동하여 최근 발표된 작품중 우수작이나 문제작에 대해 해제식의 설명과 평가를 진행하는것이다. 이런 월평이나 격월평은 한편으로는 특정 작품에 대한 우리 독자들의 의문점을 풀어주거나 작품에 대한 취미를 발동시킬수 있고 동시에 작품의 내재적인 가능성을 최대한 독자들에게 전달시키는데 유익할줄 안다. 이런 끈질긴 노력이 열매를 맺을 때, 우리 독자들의 감상수준은 틀림없이 한차원 높아질것이며 그렇게 독자들의 문학적수양이 높아져서 독자량이 늘어나면 자연히 작가들의 창작적극성을 부추길수 있을것이고 창작이 왕성해지면 역으로 독자량이 늘어날것인데 이런 량성순환이 계속되면 우리 문학도 오늘과 같은 불황에서 탈출할수 있을줄 안다. 이제 본론의 론제를 해제하면서 이 글을 끝맺도록 해보자. 문학적삶의 묘미는 창작(작가)과 감상(독자)의 묘미로 나눠볼수 있는데 창작의 묘미는 앞에서 이미 분석한바와 같이 욕구와 사명감으로부터 생성된다. 인간에게 있어서 자기실현(사명감도 자기 실현의 일종이다)만큼 멋있고 절실한 욕구는 없으며 그러므로 그것을 실현할 때 느끼는것만큼 충분한 만족감도 따로 없을것이다. 이때 생명의 의미는 가장 높은 차원에서 실현되게 되는것이다. 문학작품이라는것은 결국 창작자가 자신의 미학적인 의도에 따라 설계하고 구축해놓은 하나의 소우주(小宇宙)이다. 따라서 한편의 잘 씌여진 문학작품을 읽을 때 감상자는 그 잘 구조된 우주속을 려행하게 되며 그 우주속에서 자기실현을 하게 된다. 그리하여 많은 좋은 문학작품을 읽으면서, 즉 수많은 소우주속을 려행하면서 제한되여있는 자신의 인생경험을 보충, 충실히 하게 되는것이다. 이것은 통속문학이 아니라 순수문학에서만이 가능한것이며 인간은 이렇게 순수문학작품에서 문학작품을 읽는 재미를 얻게 될 때 보다 의미깊은 삶을 영위하게 되는것이다. 1995년 8월.
9    [문학] 주변화의 덫에서 탈출하기 (장춘식10) 댓글:  조회:1585  추천:127  2007-03-11
주변화의 덫에서 탈출하기 장춘식 중국사회과학원 민족문학연구소 부연구원   주변화는 포스트콜로니알리즘(postcolonialism) 이론에서의 중요한 개념중의 하나이다. 따라서 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포스트콜로니알리즘이란 무엇인가부터 알아야 할것이다. “포스트콜로니알리즘”은 영어의 원음이고 우리말로 직역하면 “후기식민주의”가 되는데 이 어휘는 우리가 익히 알고있는 식민주의의 개념과 선후 관계에 놓여있는것처럼 인식되기가 십상이기때문에 어떤 이들은 탈식민주의라는 개념을 도입하기도 한다. 사실 포스트콜로니알리즘은 식민주의에 대한 비판을 그 기본 취지로 삼고있기때문이다. 그래서 필자는 탈식민주의라는 개념을 사용하기로 한다. 탈식민주의 이론의 정립에 가장 중요한 기여를 한 이론가로 에드워드 사이드(Edward Said), 호미 바바(Homi Bhabah)와 가야트리 스피박(Gayatri Spivak) 등을 꼽을 수 있다.   탈식민주의 이론가들은 과거 서구문명의 근간을 이룬 오리엔탈리즘(동방론)이라는 거대한 담론체계를 전격 해체함으로써 그 담론체계가 어떻게 서구 이외의 세계를 서구세계의 하위에 위치시켰는지, 즉 어떻게 주변화시켰는지를 밝혀내고있다.   탈식민주의 리론에 의하면 우리의 문화는 주변문화에 속해져왔다. 혹은 그렇게 여겨지도록 강요되였다. 즉 세계는 서구문화라고 하는 주류문화가 중심을 차지하고 그밖의 문화, 가령 동방문화, 아프리카문화, 아메리카문화 등 서구문화 이외의 문화는 모두가 주변문화로 여겨질뿐이다. 세계의 중심문화라고 자처하는 식민주의문화의 원리는 사실상 자신만이 문명인이라고 자처하면서 서구 이외의 모든 지역을 식민지로, 서구문명 발전의 원료공급지 정도로 여겼던 서구 식민주의자들의 원리와 동일하다.   탈식민주의 이론은 이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 어떻게 식민지인들이 스스로 서구문화라는 중심문화에 대한 주변성을 인정하도록 의도적으로 호도했는지를 밝혀내고있다. 그러니까 우리는 사실상 식민주의 담론의 피해자이면서 오히려 열심히 그러한 그들의 원리를 전파시키고 심지어 숭상하기까지 하면서 그 아류나마 되여보고자 안간힘을 써왔던 것이다. 즉 우리는 서구이론가들의 식민주의담론의 영향으로 저도 모르는 사이에 그에 동조하면서 스스로를 주변화시켰던 것이다. 탈식민주의 이론은 바로 이러한 사실을 일깨워준셈이다. 부끄럽고 어처구니가 없는 일이다. 그러나 이제 우리는 탈식민주의 선각자들의 일깨움을 알아들어버렸다. 문화제국주의는 총칼 든 제국주의보다 더 음흉한 수단과 론리로써 우리의 정신을 노예화시켰다는 사실, 그것도 모르고 자기 문화는 뒤떨어지고 보잘것없는 진부한 문화라고 스스로 비하해가며 이른바 선진적인 서구문화를 흉내내보겠다고 안간힘을 쏟아왔다는 사실을 우리는 인식해내게 되였다는 말이다.   탈식민주의 이론은 방대한 지식체계이다. 이 이론은 주로 서구 정통 이론을 습득한 팔레스타인, 인도 등 비서구 지식인들에 의해 구축되였다. 그래서 그 이전까지 서구에서 흘러들어온 지식체계와는 달리 우리에게는 비판과 자성의 의미가 더욱 뚜렷한 이론으로 받아들여진다. 이 이론에 의해 우리는 이제 더 이상 문화적으로 낙후된 민족 혹은 공동체가 아님을 인식하게 된 셈이다.   탈식민주의 이론이 우리에게 선물한 가장 핵심적인 깨달음은 우리는 이제 서구인들이 만들어놓은 기준에 의해 세계를 보지 않아도 된다는 자신감이 아닐까 한다. 다시 말하면 우리는 우리의 시각으로 세계를 볼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되였다는 것이다. 우리도 중심이다. 서구적 입장에서 보면 우리가 변두리가 될지 모르지만 우리의 입장에서 보면 우리도 중심이며 서구 또한 변두리일뿐이다.   그렇다고 문화패권주의적인 관점에서 자기 중심주의를 고집해야 한다는 말은 물론 아니다. 즉 우리 문화가 이 세상에서 가장 훌륭하다고 해서는 안된다는 말이다. 사실 문화란 우렬의 차이가 있을수 없다. 문화란 인간의 “생활양식”의 총칭이기때문이다. E.B.타일러는 <원시문화>(1871)에서 문화의 개념에 대해 다음과 같이 정의하고있다. “문화 또는 문명이란 지식·신앙·예술·도덕·법률·관습 및 기타 사회구성원으로서의 인간에 의해 획득된 모든 능력과 관습의 복합 총체이다.” 이런 시각에서 보았을 때 “선진문화”와 “후진문화”의 차이가 있다고 인정한다는것은 곧 인간의 삶의 선진성과 후진성을 인정하는것으로 된다. 그러나 사실 삶의 질 문제는 인간 각자 개인의 요량에 따른것이지 어떤 정해진 기준이 있는것이 아니다. 세계에서 행복지수가 가장 높은 국민이 동남아에서도 가장 가난한 나라로 알려진 방글라데시 국민이라는 통계(물론 해마다 이 통계치는 바뀌지만)가 이를 잘 말해준다. 그러니까 우리는 경제개발의 수준으로 문화의 선진성과 후진성을 말해왔다는것을 알 수가 있다.   정리하면 이런 것이다. 스스로에게는 우리 모두가 중심이며 그러한 중심들이 모여서 다양한 모습의 이 세계를 이룬다. 이것이야 말로 과거 늘 우리를 따라다닌 컴플렉스였던 주변화의 덫에서 탈출할 수 있는 문화적 원리가 아닐까 한다.   이런 시각을 문학의 경우에 결부시켜 생각해 보면 우리의 문학도 위대한 문학이 될 수 있으며 우리에게는 우리의 문학이 가장 영양가 있는 문화적 양식이고 이 세상을 살아갈 수 있는 가장 생명력 있는 에너지원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런 시각에서 보면 적어도 이론적으로는 우리의 문학도 노벨문학상 수상작을 배출할 수 있다는 결론을 유추해낼 수가 있을 것이다. 2005/02/16
8    [문학] 우리 문학은 어떤 문학이여야 하는가? (장춘식9) 댓글:  조회:1535  추천:126  2007-03-11
우리 문학은 어떤 문학이여야 하는가? 장 춘 식 중국사회과학원 민족문학연구소 부연구원   우리는 누구인가? 즉 우리의 정체성은 무엇인가? 의식이 살아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두번쯤은 생각해보았을 질문이다.   먼저 우리는 단군의 후예이다. 세계 한민족의 한 구성원이다. 우리의 조상들은 한반도에 살았었다. 여러가지 설이 있으나 우리 조상의 대량 이주는 19세기 중반부터 시작되여있다고 보여진다. 기근을 피해 살길을 찾아 두만강, 압록강을 건너 북간도, 서간도로 이주해왔고 그것이 점차 동북땅 곳곳에 퍼지게 되였으며 오늘은 중국땅 어디에든 살지 않는 곳이 거의 없을 정도가 되였다.   그러나 동시에 우리는 또 중국인이기도 하다. 56개 민족이 어울려 사는 중국땅의 한 민족이다. 중국국적을 갖고있고 중국땅에서 선거권과 피선거권을 가진 소수민족인 조선족이다. 그러니까 우리의 정체성은 이중성을 가질수밖에 없다. 혹자는 한국과 조선의 문화적 차이를 감안하여 우리의 정체성은 삼중성을 띤다고 보고있고 또 그런 견해는 상당 정도 타당성도 있으나 그렇게 세분할 필요까지는 없을것 같다. 다시 말하면 우리는 중화인민공화국의 국민이라는 국민적 정체성과 한민족이라는 민족적 정체성을 의식속에 동시에 소유한 이중적 정체성의 문화인이라는 말이 된다.   우리 문학이 어떤 문학이여야 하는가 라는 론의는 바로 이러한 이중적 정체성의 문제에서부터 시작될수밖에 없을것 같다.   과거 우리 문단에서는 항상 중국문학의 뒤꽁무니를 따라간다는 비평이 심심치 않게 제기되였었다. 문학의 새로운 주제, 새로운 기법이 중국문단에서 한참을 류행하고나서야 우리 문단에서도 비슷한 주제, 비슷한 기법들이 등장한다는것이다. 남의 뒤꽁무니를 따른다는것은 아무래도 그리 명예롭지는 않은 일이다. 시체말로 쪽팔리는 일이다. 그래서 필자는 남의 뒤꽁무니를 따를것이면 한국문학의 뒤꽁무니를 따르는것이 나을것이라고 주장한적도 있었다. 같은 민족이기에 덜 쪽팔려서가 아니라 세계적인 문학의 사조는 아무래도 한국문학이 더 먼저 받아들인다는 판단에서였다. 물론 인터넷이 발달된 오늘날에는 세계 문학의 사조에 반응하는 속도가 한국이나 중국이나 거의 비슷하다. 모두 매우 신속하게 반응한다는 말이다. 우리도 만찬가지이다. 이 말은 이제는 남의 뒤꽁무니만 따라간다는 말을 듣지 않아도 된다는 말로 리해해도 무방하다.   이 시점에서 림원춘의 단편소설 <몽당치마>가 성공할수 있은 비결이 어디에 있는가를 생각해볼수 있다. 여러가지 견해들이 존재하지만 필자는 아무래도 시대정신과 민족적인 문화의식이 유기적으로 결합되면서 생성된 문학적 가치가 그 성공의 비결이 아니였을가 생각한다. 다시 말하면 우리의 정체성을 정확히 인식했을 때 좋은 작품이 만들어질수 있다는것이다.   그렇다면 문학적으로 우리의 정체성은 어떻게 인식해야 할까?   문학의식이나 창작기법, 세계인식 등의 문제는 어디서나 정보를 얻을수 있고 각자의 기호에 따라 학습하고 수련할수 있을것이다. 그러나 소재 선택이나 언어의 사용, 작가적립장은 우리의 삶, 우리의 상황, 우리의 문화에서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소재 선택이나 언어의 사용에 대해서는 별로 이의를 제기할 사람이 없으리라 여겨진다. 우리는 당연히 우리가 살아가고있는 현실에서 취재해야 할것이고 우리의 가장 아름다운 민족어를 최대한 살려야 할것이다. 그러나 작가적립장에 대해서는 조금 더 생각할 여지가 있다 하겠다. 가령 인류의 보편적가치와 조선족적인 립장은 어떤 관계에 있을까 하는 문제가 이에 속한다. 우리는 당연히 인류 보편적인 가치에 대해서는 수용하고 추구해야 한다. 그러나 오늘날 흔히 인류의 보편적가치로 인식되는것들이 모두가 수용하고 추구해야 할 가치인가 하면 꼭 그런것만은 아닌것 같다. 미국문화와 아랍문화의 충돌이 이를 반증해준다. 중국에서 지금 추구하고있는 보편적가치나 다름없는 실용주의 또한 마찬가지다. 어떻게 보면 실용주의는 지금 금전만능주의로 변질되여가고있고 그에 따라 우리 조선족사회는 리혼률의 급등, 결손자녀문제, 농촌사회의 공동화, 공인된 가치기준의 부재 등 일련의 문제들을 파생시키고있다.   따라서 우리의 작가적립장은 우리 사회가 겪고있는 이와 같은 문제들을 아우를수 있어야 한다. 다시 말하면 우리의 작가들은 우리의 삶, 우리의 고민과 한, 우리의 리익과 소망을 어떻게 드러내고 대변할것인지를 문학의 가장 일차적인 과제로 삼아야 할것이다. 가장 민족적인것이 가장 세계적인것이라는 말이 있다. 이 말을 다시 연역하면 가장 우리적인것이 가장 세계적인것이다 라는 명제로 재해석할수 있지 않을까 한다. 2005/02/16
7    [사회] 조선족 사회 고리혼률 현상과 그 리면 (장춘식8) 댓글:  조회:1380  추천:98  2007-03-11
조선족 사회 고리혼률 현상과 그 리면 장춘식 중국사회과학원 민족문학연구소 부연구원   요즘 우리 조선족사회 위기의식 중 중요한 한 단면으로 높은 리혼률을 꼽고있다. 그만큼 우리 사회의 리혼률이 위험수위에 올라있다는 말이 된다. 하기야 전국적으로 리혼률이 급상승하고있는 상황인데 우리 민족이라고 그러한 흐름에서 자유로우라는 도리는 없다. 그러나 그렇더라도 리혼률이 전국 평균수준을 넘는다는것은 쪽팔리기를 떠나서 어쩌면 비극이라는 표현이 더 정확할지도 모르겠다.   그렇다면 이런 상황은 왜 발생한것일까?   가장 눈에 뜨이는 원인으로 국제결혼붐을 들수가 있다. 한국 남성과 결혼하여 한국에 나가는 국제결혼이 단연 일순위다. 그 외에도 일본을 비롯하여 다른 나라들에 시집가는 녀성들이 있다고 하는데, 문제는 한국 녀성이 우리 조선족 남성과 결혼하여 중국에 들어오는 경우는 별로 없고 일방적으로 조선족녀성이 한국에 시집간다는 사실이다. 우리 조선족 결혼적령기 남녀 성비률 균형을 일거에 깨뜨리고있기때문이다.   리혼률얘기 하다가 느닷없이 웬 국제결혼얘기냐고 할 사람이 있을지 모르지만 문제는 국제결혼이 미혼 처녀의 결혼보다도 기혼녀성들이 리혼하고 한국에 시집가는 경우가 더 많다는 사실이다. 물론 이러한 소위 “한국결혼”은 위장결혼이 반은 된다고 볼수 있다. 꼭 결혼이 목적이라기보다는 그러한 합법적 출국 기회를 만들어 한국에 돈 벌러 가려는것이 진짜 목적이 되겠는데, 그러다보니 위장결혼이 태반이라 도덕불감증이라는 또다른 문제를 안고있다. 그래도 다수가 되돌아온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많다. 글쎄 당사자들이 그렇게 말하는것이 다수인데 돌아온다고 꼭 원래 결혼했던 배우자와 재결합한다는 보장이 있는것도 아니다. 그러니까 이른바 위장결혼으로 한국에 나갔던 녀성이 귀국하여 원래의 결혼생활을 회복할 가능성은 내가 보기에 반도 안될것 같다. 그 리유는 아래에 좀더 설명할것이다.   다음 두번째로 현재 리혼률 급등의 또다른 원흉은 사회의 도시화추세에 따른 시골처녀의 도시진출이라 하겠다. 시골인력이 도시에 들어가 가장 쉽게 얻을수 있는 일자리는 대체적으로 식당종업원, 가정부와 같이 녀성인력을 주로 사용하는 단순로동이 많다. 남성인력의 단순로동을 필요로 하는 취직자리는 대체로 건설업과 같이 소위 더럽고 위험하고 힘든 삼D업종인데 우리 조선족남성들은 그런 일 하기를 꺼려한다. 같은 건설장 일이라도 한국에 나가면 몇 배 많은 임금을 받을건데 하는 심리가 있어서 그런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어쨌든 대도시에 들어가 취직한 녀성들의 수입이 집에서 농사를 하거나 지방도시에 세집을 잡고 살면서 아무노릇도 하지 않는 남편간의 위치변화 혹은 역할변화때문에 가정불화가 많이 생겨나고 따라서 리혼가능성도 높아지고있다.   연길을 중심으로 하는 우리 민족 집거지역의 사회구조가 서비스업 위주로 바뀌였기때문에 그로 인한 리혼률 상승이 세번째 원인이 될것이다. 이는 두번째 원인과 비슷하다고 볼수 있지만 민족자치지역내의 경우라는 점이 다르다. 관광업 관련 서비스업 위주의 사회가 되였기때문에 1차적으로는 녀성인력 취업이 상대적으로 용이하다. 이에 따른 리혼유발 가능성은 앞의 두번째 원인과 비슷하다.   그런데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관광업과 관련된 서비스업이 위주이기 때문에 거기에는 유흥업 등 퇴폐업과 관련된 서비스업이 상당한 비중을 차지한다. 유흥업이나 퇴폐업이 남성의 외도를 유혹하게 됨은 두말할 필요가 없고 남성 외도가 녀성의 외도 혹은 리혼을 유발하리라는것도 쉽게 리해할수 있으리라 믿는다.   그리고 서비스업 위주의 경제구조에 따른 남성 일자리 부족은 남성의 전통적인 가정책임의식과 그 책임의식 포기라는 이상한 모순속에 빠지게 하고있다. 이점은 리해하기가 좀 까다로울지도 모르겠는데, 쉽게 말하면 이런것이다. 전통적으로 우리 민족은 가정내에서 남성이 밖에 나가 돈 벌고 녀성이 살림을 하는 형태였고 우리의 의식 또한 이를 가장 바람직한 삶의 형태로 인식하여왔다. 해방후 사회제도의 변화와 더불어 그러한 생활방식은 크게 변화되였지만 우리의 의식속에는 여전히 그것이 매우 견고하게 자리잡고있었다. 그래서 항상 어떻게 하면 큰돈 벌어서 가정을 먹여살릴것인가를 생각하게 되는데, 우리 사회의 경제구조가 오히려 녀성이 돈 벌 기회가 많아지게 된것이다. 이때 남성의 자존심이 구겨질것은 당연한 일이고 그것이 끊임없이 반복되다보니 결국 남성의 자존심을 버리고 가사를 맡는쪽으로 생각을 바꾼것이 아니라 오히려 가장으로서의 기존의 책임의식을 버리는쪽으로 생각을 바꾼것이다. 그런 가장이 다수는 아니겠지만 또 그리 적지도 않은것 같다. 가장의 책임을 포기한 남성을 믿고 살 녀성이 어디 있겠는가! 당연히 리혼의 원인이 될수밖에 없다.   다음 리혼률 급상승의 또다른 원인은 최근에 발표된 리혼수속 절차의 간소화를 골자로 한 혼인법 수정안이라 하지 않을수 없다. 리혼을 할까말까를 망설이는 부부에게 있어서는 이런 절차의 간소화도 리혼의 원인이 되기에 충분한것이다.   이러한 리혼률 증가의 가장 큰 피해자는 두말할것도 없이 아이들이다. 가정이 파괴되면 사회의 불안정 요인이 된다는 따위 공적인 피해에 대해서는 긴 설명을 할 생각이 없다. 그러나 자기가 낳은 아이가 불행해지고 문제아가 되여 궁극적으로 그것을 야기시킨 부모에게 고통과 불행을 가져다줄것이라는 생각쯤은 해야 되지 않을까? 더구나 리혼률 급등을 초래한 우리 민족사회의 리혼 원인이 상당 부분 부부의 감정불화가 아닌 경제적욕구와 관련된다고 할 때 반드시 한번쯤은 깊이 생각해야 할 문제라고 생각한다.   언젠가 우연한 기회에 위장결혼으로 한국에 나가고자 수속하러 북경에 온 녀성과 그의 남편(법적으로는 전남편)을 만난적이 있다. “안해 잃을까 걱정되지 않습니까?” 내가 넌지시 물어보았다. “어찌겠습둥, 나두 모르겠스꾸마.” 그는 농사를 지어 아이를 공부시키기에는 너무 힘에 부쳐서 울며 겨자먹기로 안해를 한국에 보낸다는것이였다. 만일 이들이 앞에서 언급한대로 위장리혼이 진짜 리혼이 되고 위장결혼이 진짜 결혼이 되였다고 하면 어떨까? 돈이 좋아서 위장결혼을 할수 있다면 돈을 위해서는 위장리혼도 얼마든지 진짜 리혼이 될수가 있는것이다. 그건 그렇다치고 집에 남은 남편이 아이를 제대로 공부를 시킬수 있을까? 설사 공부를 시켜 대학교까지 졸업시켰다고 가정하더라도 그런 환경에서 자라난 아이가 정상적인 사회인으로 성장할수 있을까?   돈이 좋은줄은 누구나 다 안다. 그러나 제 분수에 넘쳐나는 돈을 가지고자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을 때 그에게는 그렇게 얻은 돈만큼 뭔가를 잃게 되며 따라서 이제는 돈 생기면 좋다는 생각만 하지 말고 그 돈이 주머니에 들어오기까지 어떤 대가를 치뤄야 할지부터 생각할 때가 아닌가 한다. 언젠가 미국에서 복권 일등 당첨자의 삶을 추적한 글을 읽은적이 있는데, 단 하나의 례외도 없이 모두가 불행해졌다고 한다. 강도에게 죽은 사람, 마약중독에 걸린 사람, 사업하다가 부도가 나서 자살한 사람… 돈에 대한 인간의 집착이 얼마나 무서운 지경에 이르렀는지를 보여주는 례라 하겠다. 이는 뭐냐하면 돈은 좋은것이지만 분수에 맞게 벌고 분수에 맞게 써야 행복해질수 있다는 리치를 말하는것이다. 혹 이것이 숙명론적인 발상이라고 비판할 사람이 있을지 모르겠다. 맞다. 이런 의미에서라면 나는 숙명론자다. 그러나 소극적인 숙명론자가 아니라 적극적인 숙명론자다. 자기 힘과 능력이 미치는만큼 최선을 다했을 때 그에서 얻어지는 소득이 나를 가장 행복해지게 한다는것이 이른바 내 적극적인 숙명론이다.   이제 다시 우리 사회 높은 리혼률의 문제에 돌아가보자. 앞에서 리혼률 문제의 현상과 원인 그리고 그 리면의 문제에 대해 살펴보았다. 그렇다면 이와 같이 비극이라고 할수 있는 정도의 고리혼률의 문제를 해결할수 있는 대안은 없는가? 물론 전혀 없는것은 아니다. 가령 한국으로의 국제결혼 문제의 경우 합법적인 국제결혼은 막지 말아야지만 위장결혼과 같은 분명한 불법 국제결혼을 막을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는것이 해결의 한 방법이 될것이다. 이 문제는 특히 한국의 관련 부처에서 문제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효과적인 조치를 취해야 할것이다. 서비스업 위주의 경제구조 문제에 대해서는 남성들에게 의식의 전환을 부탁하고싶다. 조선족남성들이여 요즘 세상에는 남자 할일, 녀자 할일이 따로 없다. 심지어 가정주부(家庭主婦가 아니라 家庭主夫)가 된들 어떠랴! 가정을 살리고 행복해지려면 반드시 고정관념을 깨뜨려야 할것이다.   그러나 이보다 더 중요한것은 돈에 대한 인식, 삶의 가치에 대한 인식을 재검토해야 한다. 어떤 삶이 더 가치가 있는지, 어떻게 돈 벌고 살아야 행복해질수 있는지, 그것을 진지하게 생각해야 오늘과 같은 리혼률 급상승의 문제도 해결될수 있을것이다. 물론 이 문제는 어느 한 개인의 문제만은 아니다. 따라서 사회 구성원 모두가 진지하게 모색해야 할줄 안다. 2005/07/23
6    [민족] 조선족사회 네트워크 재구성의 필요성 (장춘식7) 댓글:  조회:1551  추천:108  2007-03-11
조선족사회 네트워크 재구성의 필요성 장춘식 중국사회과학원 민족문학연구소 부연구원   “네트워크”라는 말은 인터넷이 보급되면서 사용빈도가 뚜렷이 증가되였으나 사실 우리에게는 과거에도 민족적인 네트워크가 존재해있었다. 그중 현재에도 엄연히 존재하는 민족자치정부 네트워크는 가장 효률적이고 견고한 네트워크임에 틀림없다. 거기에 련동되는 여러 가지 류형의 시민단체와 학교 등이 얽혀 우리 민족사회의 네트워크를 이루고있었다. 신문, 잡지, 방송(텔레비죤 포함)과 도서 출판발행망 등은 문화적인 네트워크로서 현재도 우리 민족사회 정체성보전에 중요한 역할을 하고있다.   이런 네트워크의 특징은 기본적으로 정부가 주체가 되거나 정부의 지원으로 이루어졌다는 점이다. 따라서 과거의 네트워크는 우리의 민족성 보전에 도움이 되였을뿐만아니라 동시에 우리의 중화민족 대가정속으로의 융합에도 큰 역할을 하였다 하겠다.   그런데 이와 같은 네트워크는 다음과 같은 사실을 전제로 하였다. 즉 민족구성원이 연변을 중심으로 동북 삼성에 집거하여 살아왔고 그래서 연변 각지는 더 말할것도 없고 하르빈, 장춘, 길림, 심양 등 중대도시의 조선족들도 민족학교를 운영하고 군중예술관을 운영하며 민족신문과 잡지, 방송 등을 편집 발행할 여건이 마련되여있었다. 이는 농경사회 위주의 시대에 가능한것이였다. 그러나 현재의 상황은 과거보다 엄청난 변화를 보이고있다. 개혁개방이 시작돼 20여년이 지난 오늘 우리 사회는 점차 도시화의 시대에 진입하고있기때문이다. 농촌인구가 대폭 줄어들고 그대신 북경-천진, 청도-위해-연태, 상해-소주-항주 등지의 조선족 인구가 급상승하고있다. 요즘 어떤 통계에 의하면 북경의 조선족인구가 10만을 넘는다고 한다. 상기 세개 도시블럭 외에도 전국각지의 중대형 도시들에 조선족이 가지 않는 곳이 없을 정도다.   요즘 우리 조선족공동체가 위기를 맞았다고 말하는 사람이 많다. 사실이다. 농촌인구가 급감하였기때문에 전통적인 민족네트워크가 무력화되고있고 수많은 조선족인구가 대도시들에 모여들었으나 아직 새로운 네트워크를 이루지 못하여 모래알처럼 흐터져 중화민족의 대가성속에 스며들어버릴것 같기도 하다. 여기서 야기되는것은 민족성은 물론이고 민족 자체마저 소멸될것이라는 위기감이다. 정체성을 상실한 민족은 자긍심이나 자신감이 없어지게 되며 따라서 언제 소멸될지는 시간문제라 할수도 있다.   그러나 다른 측면에서 생각하면 이것이 위기인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희망이 전혀 없는것은 절대 아니다. 요는 우리가 어떻게 하느냐에 달려있는것이다. 위기의 원인이 전통적인 민족테트워크가 약화 내지는 무력화된데 있다면 새로운 네트워크를 형성하면 위기는 극복될수가 있을것이다. 그렇다면 새로운 네트워크는 어떻게 형성해야 가능할까? 혹은 어떤 네트워크가 도시화시대라고 하는 오늘의 상황에서 우리의 민족정체성보존에 가장 바람직한것일까?   가장 먼저 생각할수 있는것이 전통적인 네트워크, 즉 민족자치제를 대도시에 옮겨올수 없을까라는것이다. 가령 북경, 청도, 상해 등지에 조선족문화관을 설립 운영한다든지, 기존의 민족자치기구 사무소의 기능을 강화한다든지 하는것이 어렵지만 그래도 실현가능한 방법들이다. 그러나 이런것들은 중앙정부의 지원이나 자치정부기관의 사고방식 전환이나 결단이 꼭 필요한 대안들이다. 그것만을 바라고 기다릴수는 물론 없다.   신문, 잡지, 방송(특히 텔레비죤방송), 도서출판발행망 등 기존의 네트워크범위를 확대하는것도 하나의 좋은 방법이다. 즉 북경, 청도, 상해 등지에 출판물발행망을 형성하여 전통적인 문화전파방식이 새로 형성된 집거지역에까지 확산되게 하는것이다. 시장법칙과 성공적으로 연결시킨다면 이런 방식은 그리 실현하기 어려운것도 아니다. 또 요즘 전해지는 소식으로 연변텔레비죤방송이 위성방송으로 전국에 전파가 가능하다고 하니 크게 기대할만하다. 물론 그냥 연변텔레비죤 내용을 그대로 위성으로 전파하면 되는것은 아니다. 각지역에 특파원을 파견하여 연변텔레비죤이 명실공히 조선족텔레비죤의 구실을 하게 해야 할것이다.   그러나 내가 가장 기대하는것은 역시 인터넷의 활용이다. 현재도 조선족관련사이트가 많이 있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조선족포털사이트 오픈이 가장 요긴한 때라고 생각한다. 한 사이트에서 조선족의 정치, 경제, 문화, 예술 등 모든 자료를 검색할수 있고 멀티미디어 최신뉴스를 접할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래야만 텔레비죤과 더불어 우리 민족의 삶과 문화를 전파하고 공유할수가 있는 새로운 슈퍼네트워크의 구실을 할수 있기때문이다.   끝으로 부언하고싶은것은 이 모든 네트워크의 형성이 주로 자률성과 민간성이라는 시대의 특징에 맞는 방법으로 이루어져야 한다는것이다. 텔레비죤과 인터넷포털이라는 중심네트워크를 통해 현재 각지역에 형성되고있는 자발적 단체, 협회를 통한 네트워크를 하나로 연결시킨다면 도시화시대 우리 민족의 미래는 그렇게 어둡지만은 않을것이라 믿는다. 여기에 현재 10만명을 훨씬 넘긴, 이른바 “신조선족”이라 일컬어지는 재중한국교민들이 점차 이주민의 성격을 띠면서 기존의 조선족들과 합류하게 될 때 우리는 중국의 경제사회발전과 문화의 다양화에 적극 기여하는 자랑스러운 민족공동체로서 살아갈수 있을것이다. 2005/07/13
5    [사회] 실용주의,선인가 악인가? (장춘식6) 댓글:  조회:1525  추천:126  2007-03-11
실용주의, 선인가 악인가? 장춘식 중국사회과학원 민족문학연구소 부연구원   지난 글에서 나는 실용주의는 파탄의 변두리에 이르렀던 우리 경제를 오늘과 같이 먹고살만큼의 수준으로 끌어올린 중요한 리념이기는 하지만 동시에 여러가지 사회적문제들을 유발하기도 했다고 했다. 그렇다면 실용주의는 선일까, 악일까?   철학적으로 실용주의는 관념이나 사상을 행위와의 관련에서 파악하는 립장이다. 즉 어떤 관념에서도 그것이 유용한 결과를 가져오면 곧 진리라고 보는 견해가 실용주의가 되는셈이다. 그것이 중국에서는 등소평의 흑묘백묘(黑猫白猫)리론 즉, 검은 고양이든 흰 고양이든 쥐를 잡는 고양이면 다 좋은 고양이라는 사상으로 정리되여 널리 알려졌다. 다시 말하면 결과적으로 중국의 경제를 발전시켜 백성들이 소강(小康)생활을 향유할수 있고 행복할수만 있다면 어떤 관념이라도 진리가 될수 있다는것이다.   등소평의 흑묘백묘리론을 관찰함으로써 우리는 교조적 사회주의를 극복하고 사회주의시장경제정책을 펼쳤고 결과적으로 비약적인 경제성장을 이루어 좀더 윤택한 삶을 영위할수 있게 되였다. 그러나 부작용도 만만치 않다. 마약, 도박, 매매춘 같은것은 보편적인 현상이라고 보기 어렵다 하더라도 배금주의 혹은 물신주의는 이제 간과할수 없는 정도에 이르고있다.   혹자는 그래도 좋다고 말한다. 잘 먹고 잘 입고 잘 노는것이 삶의 목적이 아니냐는것이다. 이런 글을 쓰는 나 자신도 가끔 그런 말에 슬그머니 동감하는듯한 느낌이 들 때가 있다. 그런데 뭔가 허전함을 느끼는것은 나 한사람의 생각만은 아니리라. 왜? 뭔가 모자라기때문이다. 뭐가 모자라는가? 가치기준이다. 인간은 뭔가 생각하고 행동할 때 항상 옳고 그름을 따지게 되는데, 현재 우리 사회에는 그 옳고 그름의 기준이 너무 불분명한것이다. 하기야 선과 악은 원래 칼로 벤듯이 기준이 분명히 갈라지는것은 아니다. 심지어 때로는 선과 악이 혼재하는 현상도 가끔 있다. 그러나 그것이 일정한 한계를 넘어서 선악을 도무지 구분할수 없게 되였을 때 인간은 혼란에 빠지며 심지어 삶의 의미마저 상실하게 된다.   이것은 중국에 보편적으로 존재하는 문제들이다. 조금 다른 차원에서 실용주의는 우리 조선족공동체의 근간을 흔드는 악을 낳기도 했다. 리혼률의 급등과 가정해체가 대표적인 례가 되겠다.   언젠가 이런 말을 전해들은바가 있다. 연길의 어느 한 소학교에서 아빠 엄마 중 한쪽이 없는 학생들 손 들라고 하니 반수 이상이 손을 들더란다. 물론 일부는 리혼때문에 부모가 따로 사는 경우가 되겠고 또 일부는 부모가 외지나 외국에 돈 벌러 나갔을수도 있다. 그러나 원인이야 무엇이든 결손가정의 자식들의 성장이 정상적으로 이루어질수 없다는것은 엄연한 사실이다. 실례 하나 더 들어보자. 요즘 아빠가 집에서 애들 시중들고 엄마가 한국에 나가서 돈벌이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가장 손쉽게 한국에 나가는 길이 위장결혼이 되였기때문이다. 위장결혼도 당연히 불법이며 도덕적으로 그른 행위이다. 그러나 그것을 “실용주의적”으로 눈감아준다고 해도 그에서 야기된 엄청난 폐단은 그냥 두고볼수 있는 수준이 아니다. 젊은 남자가 혼자 집에서 아이 데리고 살자니 오죽하겠는가. 마누라 벌어 부쳐보낸 딸라를 빼내여 가끔 술 한잔 마시는것도 인지상정이라 하겠다. 그러나 그것이 여러번 반복되면 그것 자체가 유혹이 되고 습관이 되여버린다. 어느날 아내가 만신창이가 된 몸을 끌고 집에 돌아와보니 남편이 술집 아가씨나 끼고 다니며 돈을 다 써버렸다고 하자. 그 뒤의 사연은 상상만 해도 뻔하다.   반대의 경우도 있다. 한국에 가서 사장이나 감독에게 갖은 목욕을 당하며 어려운 막로동을 하다보면 술생각이 날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렇게 술을 마시고나면 무슨 돈 모아 고향에 부쳐보내겠는가. 그래서 생각해낸것이 “림시동거”라는 것이다. 그러나 림시동거도 동거이다. 위장리혼이 가짜가 아니듯 림시동거도 꼭 림시로 끝나는것은 아닐것이다.   이래저래 우리 조선족사회의 리혼률은 매우 높은편이다. 그리고 그 내용도 매우 우려스러운것들이다. 리혼으로 가장 큰 피해를 입는것은 물론 아이들이다. 그러나 리혼 당사자들이 입는 정신적인 피해 또한 간과할수 없다. 그리고 결과적으로 그 피해는 우리 사회 전반에 미치게 된다. 가장 심각한 문제가 바로 앞에서 지적한 가치관의 혼란이다. 가짜와 진짜, 옳음과 그름, 선과 악이 너무 뒤죽박죽 혼재하여 판단의 기준을 찾기 어렵게 된것이다.   실용주의는 리혼률만 상승시킨것이 아니다. 우리 사회에 속속들이 침투되여있다고 보아야 옳다. 마약, 도박, 매매춘은 앞에서도 언급했거니와 그밖에도 투기와 사기, 지도층의 부정부패, 범죄률의 상승, 지방보호주의, 환경파괴와 오염…이 모든것들이 다다소소 모두 실용주의와 연관된다.   그렇다면 실용주의는 선인가 악인가? 한마디로 선이기도 하고 악이기도 하다. 그러나 분명한건 이제 그 악을 그대로 방치해서는 안되겠다는 사실이다. 우리의 삶의 의미가 흔들리기때문이다. 2005/06/16
4    [언어] 우리말 우리글,이것이 문제로다 (장춘식5) 댓글:  조회:1457  추천:117  2007-03-11
우리말 우리글, 이것이 문제로다 장춘식 중국사회과학원 민족문학연구소 부연구원   일전에 나는 우리말 우리글을 공부하는 유수의 조문과 학도들의 우리말 우리글 수준이 과거보다 너무 저하되었다는 말을 은사님한테서 들었다. 충격적인 소식이 아닐수 없다. 말과 글이 사라지면 민족은 죽는다. 물론 유태인과 같이 종교신앙 하나만으로 아직까지 살아남은 민족도 있다. 그런데 우리 민족과 같이 확고한 종교적신앙을 갖지 못하고 있는 민족으로서는 생존의 기반이 전적으로 말과 글에 의존할수밖에 없는데 우리말 우리글 교육에 이상이 생겼다니 이건 그냥 걱정 정도가 아니다. 위기라고 말하면 기우일까?   왜 이런 일이 생기게 된것일까? 적어도 다음의 두가지는 반드시 지적해야 할것 같다. 첫째는 입시위주의 초중등교육체제때문에 우리의 학생들이 과외도서 읽을 시간과 여력, 그리고 관심이 별로 없다는 점. 둘째는 배금주의, 물신주의가 만연되여있는 우리 사회의식의 영향.   입시위주의 교육이라는점에 있어서는 정도의 차이는 있겠으나 한국도 마찬가지다(내가 안다는것이 중국 외에는 한국뿐이니…). 그나마 한국에서는 작품분석이나 작문(론술)이 대학입시에 상당정도 반영이 되기때문에 “문고판” 공부는 꽤 하는것으로 알고있다. 한국보다 말과 글 환경이 훨씬 렬악한 우리의 경우 조선어문교육이 “문고판” 문학도서 읽을 수준도 안되니 더구나 문제다.   필자가 중고등학교 다니던 70년대에도 우리의 조선어문교과서 문학수준은 형편없었다. 그러나 그나마 여유시간이 많았기때문에 많지 않은 과외도서나마 읽지 않고는 시간을 때울 방법이 없었다. 놀이라는것도 지금같지 않았으니 말이다.   다음 물신주의의 만연과 우리 말과 글의 교육은 어쩌면 반비례가 될지도 모르겠다. 돈이 최우선이라는데 돈 안되는 말과 글에 신경 써보았자 별 리익이 없지 않은가 말이다. 그래서 조선어문교육은 그냥 대학입시때 점수 받을 정도로만 가르치고 배우면 그만이 된것은 아닌가하는 생각이다. 이런 의식은 조문과 학생 절대다수가 녀학생이라는 사실에서도 알수가 있다. 조문과 나오면 큰돈 벌지는 못하더라도 중고등학교 선생이나 기타 안정적인 직업을 가질수가 있으니 녀성 직장인으로서는 안성맞춤이라고 생각하고있는지도 모르는것이다.   그런 의식은 우리 문단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문학인이 줄고 문학지가 줄고 독자가 줄고있는 상황은 그러한 우리 사회의 의식이 반영된것이다. 우리말 우리글이 사회적으로 찬밥신세가 되니 작가지망생들이 줄어들것 또한 당연한 일이고 그것이 결국 우리 학생들의 우리말 우리글에 대한 관심의 저하로 나타난것이리라.   이 모든것은 사실상 실용주의라는 우리 사회의 기본적인 리념에 의해 야기된것이 아닌가하는게 나의 판단이다. 실용주의의 문제점들에 대해서는 다음글에서 자세히 론의하겠거니와 이 실용주의는 파탄의 변두리에 이르렀던 우리 경제를 오늘의 수준으로 끌어올린 중요한 리념이기는 했으나 그것으로 하여 또다른 여러가지 사회문제들이 파생한것은 아쉬움이 아닐수 없다.   어쨌든 한심한 일이다. 그리고 우리말 우리글 가지고 사명의식이요 책임감이요를 넋두리처럼 웨쳐대며 일하고 밥 벌어먹고사는 나같은 사람의 립장에서는 너무나도 슬픈 일이다. 그러나 그것으로 그치면 오히려 나는 행복하겠다. 보다 근본적인 비극은 이러한 상황이 지속되고 악화될 경우 우리의 정체성이 상실되고 민족의 생존마저 위협을 받게 된다는 사실이다.(민족 정체성이 우리에게 무엇을 의미하며 왜 중요한것인지에 대해서는 지난 글에서 론의한바 있다.)   그렇다면 대안은 없는가? 온 사회가 그 모양인데 나라고 특별히 뾰족한 수가 있을것 같지는 않다. 그러나 그렇다고 전혀 대안이 없는것도 아니다.   먼저 우리 조선어문의 교과과정에 대해 살펴보자. 입시위주의 교육제도에서는 시험문제 출제에 중요한 의미가 있을수밖에 없다. 우리말 우리글의 보존과 발전에 유익한 방향에서 출제하면 효과가 금방 나타날것이다. 문제는 교과과정을 우리가 직접 정하지 못하거나 정할수 있는 범위가 한정되여있다는것인데, 허용되는 범위내에서 최선을 다하는것 외에도 교과과정외의 참고서를 활용하는 방안을 모색할수도 있을것이다. 대학입시에는 반영하지 못하더라도 중고등학교 승학시험에는 반영할수 있지 않을까한다. 교육자의 립장이 아니니 세부적인 방안은 내놓을수 없지만 우리말 우리글의 생존과 발전을 위해 뭔가를 해야 한다는 의식만 갖추고있다면 관련자들이 생각할수 있는것들이 상당정도 있을것이라 믿는다.   백일장같은것을 활용하는것도 한 대안이 될것이다. 조선족문화발전추진회에서 주도하여 해마다 개최하는 대규모 백일장외에도 각 학교별, 향별, 현시별 등 가능한한 자주, 그리고 많이 중소규모의 백일장을 개최하면 우리말 우리글의 수준 향상에 큰 도움이 될것으로 믿는다.   백일장 얘기를 하면서 문뜩 떠오르는 기억이 있다. 여러해 전에 룡정에 갔다가 내가 아는 모 원로 문화인이 경영하는 서점에 들린적이 있다. 아래층에서는 일반 서점과 마찬가지로 책을 팔고 우층에는 도서열람실을 만들어 경영하고있었다. 본인의 장서를 내다가 비치해놓은것은 물론 한국에 나가서 아는 사람들에게 부탁하여 재고도서들을 얻어다가 비치해놓기도 했었다. 그것을 중소학교 학생들에게 개방해준다고 했다. 그리고 재주가 있는 학생들에게는 직접 작문지도도 해준다고 했다. 지도해준 학생들이 작품공모나 백일장에 많이 입선된다고 자랑하기도 했다. 그 원로 문화인에게 깊은 감동을 받았었고 또 이것이야말로 우리같은 문화인들이 할수 있고 직접 효과를 낼수 있는 일이 아닐까하는 생각을 했었다.   결국 대안은 여기에 있는것이 아닐까? 아쉬움이나 위기를 알면서도 어쩔수 없다는 생각으로 한숨만 쉴것이 아니라 뭔가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수 있는 일을 하는것이 우리의 바른 자세일것이다. 지성이면 감천이라지만 뭐든 해야 지성이 들어가는것이고 지성이 들어가야 하늘을 감동시킬수 있을것이 아니냐 말이다. 2005/05/12
3    [사회] 저 아름다운 내 마음의 고향 (장춘식4) 댓글:  조회:1513  추천:113  2007-03-11
저 아름다운 내 마음의 고향 장춘식 중국사회과학원 민족문학연구소 부연구원   요즘 조선족 농촌의 공동화 현상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점차 높아지고있다. 농촌인구의 절대수가 줄어든것도 큰 문제이지만 더 우려스러운것은 남아있는 사람들마저 평균년령이 상당히 높다는데 있다. 아이들의 웃음소리, 울음소리, 글읽는 소리 듣기 어려워진건 그중에서도 마음 허전한 일이다. 현재뿐만 아니라 미래마저 밝지 못하다는 의미가 여기에 깃들어있기때문이다.   그러나 이제 그냥 우려만 하고있을 때가 아닌것 같다. 물론 우리 농촌을 살리기 위한 대안들을 내놓는분들도 더러 있다. 연길, 하르빈, 장춘, 길림, 심양 등 전통적인 우리 민족 집거지역의 중대도시 근처에 조선족집거마을을 건설하자는 주장, 우리 민족 네트워크를 편성하자는 주장, 농업의 산업화를 통해 농촌을 살리자는 주장…다 일리있는 주장들이며 모두가 필요한 대안들이다. 문제는 실천이다.   오늘은 나도 한 대안을 제시하고자 한다. 우리 농업의 산업화를 통한 농촌살리기가 그것이다. 다른분들도 이런 대안을 제시하고있지만 나는 여기서 좀더 구체적인 얘기를 해보고자 한다.   농업의 산업화란 개혁개방후 가정을 단위로 했던 소규모 농업생산을 대규모 생산으로 바꿔감을 뜻한다. 농업의 생산성을 높여 농민의 수입을 늘리고 농촌생활의 질을 향상시킬수 있다는데 산업화농업의 장점이 있다. 선진국에서는 벌써 실현하였고 중국내 일부 지역에서도 현재 추진하고있는 농업생산의 산업화는 토지 적고 인구 많던 과거 우리 농촌의 경우에는 도무지 불가능한 일이였다.   농업의 산업화는 적어도 다음의 두가지 여건이 필수불가결이다. 첫째는 적은 농민인구와 대량의 토지이고 둘째는 상당 규모의 자본이다. 그런데 지금 이 두가지 여건이 다 마련되여가고있다. 첫째, 우리 농촌의 공동화현상은 농촌인구의 감소와 인구당 토지의 증가로 이어진다. 둘째, 농촌인구의 상당수가 외국으로, 도시로 진출하면서 일정 규모의 자금을 마련한 농민들이 늘어나고있다.   이렇게 가장 기본적인 여건들이 마련되였음에도 불구하고 왜 농업생산의 산업화는 우리 조선족농촌에서 아직도 거의 이루어지지 않고있는것일까? 나는 우리의 의식과 정부의 지원 부재때문이라고 본다.   일년에 한두번 연길에 다녀오는 사람이면 아마도 깜짝 놀라지 않을수 없을것이다. 인구도 많이 늘어났거니와 도시의 모습 역시 인젠 중형도시의 모습을 갖춰가고있다. 무슨 돈으로? 백두산 관광이 한몫을 한다는것쯤은 쉽게 알수 있다. 그러나 나는 그보다는 우리의 로무자들이 한국에서, 러시아에서, 국내 대도시들에서 돈을 벌어 연길에 와서 쓰기때문으로 보는게 정답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지금은 돈이 좀 있어도 어디 투자할데가 마땅치가 않다. 연길이라는 도시의 기능에 수요되는 소규모 투자는 이제 많이 필요하지 않다는 얘기가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소규모 자금은 계속 류입되고있다. 이것을 농업산업화에 인도하면 당분간 필요한 자금은 충분할것이다. 문제는 인도이다.   우선은 농민으로서 외국이나 국내에서 돈을 벌어 소규모 자본을 가지고는 연길에서 아빠트 사고 식당이나 다방, 꼬치집 따위에 투자할까싶어 여기 기웃 저기 기웃하는 사람들을 농업산업화에 투자하도록 인도해야 한다는것이다. 사실 여기에 투자하는것이 연길에서 뭐 하나 자영업 정도 하기보다는 위험부담이 훨씬 적다. 그럼에도 그렇게 하지 못하는것은 의식의 부재때문이다. 그리고 정부의 정책 부재때문이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끊임없이 꾸준히 홍보해야 한다. 미디어들을 이용할뿐만아니라 이들을 모아 학습시키고 성공사례들을 견학시키고 가능성들을 제시해야 한다. 다음은 정책적으로, 금융적으로, 기술적으로 적극 지원해야 한다. 그리고 또 중요한것이 있다. 기숙학교 설립 등 여러가지 방법으로 이들 자녀들의 연길 취학을 적극 지원해주어야 한다. 우리 농민들이 도시에 진출하는 목적은 도시 생활이 좀더 편하다는데도 있겠으나 더 중요한것은 자녀들 교육때문이다. 자녀교육문제만 해결되면 그외의 도시생활의 리점들은 현재의 교통 상황에서 뻐스로 한시간 정도밖에 안되는 연길생활은 시골에서도 얼마든지 향유할수 있다.   이러한 작업은 정부의 몫이다. 지난해부터 중앙정부의 농업정책이 농민에게 리로운 방향으로 선회하고있다. 좋은 기회라 하지 않을수 없다. 당분간은 성과가 미미하다 해도 멈추지 말아야 한다. 꾸준히 하다보면 반드시 뚜렷한 성과가 나올것이다.   그리고 손에 돈 10만원, 혹은 몇십만원 들고 연길에 들어가 무슨 사업 해볼까고 기웃거리는 농민들, 심지어 도시인들에게마저도 한마디 권하고싶다. 그 돈 농촌에 투자하라고. 규모화농사도 좋고 유기농사도 좋고 과수원도 좋고 가축농장도 좋고 양어장도 좋다. 연길에 가서 식당이나 다방 차리기보다는 훨씬 안전하고 리득이 남는 장사다. 땡볕에서 하는 사업이라 좀 힘은 들겠지만 그대신 산수좋고 공기맑은 전원에서 사는 즐거움이 그만한 고생은 얼마든지 보상해줄것이다.   농업의 산업화는 전반 중국 농촌의 향후 추세라는 리유에서만 이런 얘기 하는것이 아니다. 보다 근원적인 리유가 있다. 농촌이 살아야 조선족의 정체성이 살수 있다고 보기때문이다.   우리의 농촌은 살아야 한다. 뿐만아니라 더 건실하게 더 아름답게 더 행복하게 살아야 한다. 농촌은 우리 민족의 뿌리가 묻힌 고향이기때문이다. 그리고 우리 마음속의 고향이기때문이다. 그 아름다운 내 마음의 고향이 그립다. 2005/04/07
2    [민족] 우리에게 민족정체성이 의미하는것 (장춘식3) 댓글:  조회:1470  추천:87  2007-03-11
우리에게 민족정체성이 의미하는것 장춘식 중국사회과학원 민족문학연구소 부연구원   지난 글에서 필자는 민족동화가 두려울게 뭐냐고 생각할 사람이 있을지도 모른다고 했다. 즉 오늘과 같은 세계화의 시대에 민족정체성이 왜 중요하냐고 할지도 모른다는것이다. 그렇다면 여기서 민족정체성이 무엇인지를 잠간 짚고 넘어가야 할 것 같다.   민족정체성이 무엇인지를 알기 위해서는 먼저 정체성이란 무엇인지를 알아야 한다. 정체성(正體性)이라는 개념은 영어의 identity를 옮겨온것이다. 자기 동일성, 일체감 등으로 번역되기도 하며 한어(漢語)에서는 신분인동(身分認同)으로 통한다. 우리말에서는 정체성으로 많이 사용되기때문에 여기서도 이 용어를 사용하기로 한다.   정체성은 사회과학적 의미에서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속에서 대답되여지는 사람들의 자신에 대한 자기다움의 사상을 뜻한다. 우리가 흔히 리력서에 써넣는 이름, 국적, 성별, 출생년월일, 민족, 출생지(본적), 출신학교 등은 사실상 한 사람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자료들이다.   여기서 중요한것은 그런 소속때문에 그 소속집단과 여러가지 면에서 공동의 경험이나 문화를 가지게 된다는 점이다. 가령, 필자의 출생년월일이 1959년 모월모일인데 이 년령대는 우리의 부모 세대들이 흔히 입버릇처럼 이야기하는 대약진시기, 대식품시기에 유아시절을 겪어온 사람들이다. 먹지 못해 키가 자라지 못하고 소아마비후유증환자가 많다는 말을 흔히 들을 정도로 대식품시대의 영향은 이 년령대에서 매우 중요하다. 그리고 같은 년령대의 사람들은 소학교부터 쭉 동창생들끼리 대체로 비슷한 경력을 많이 공유하게 된다. 이때문에 동류의식, 유대감 같은것을 느끼게 되는것이다. 출생지의 경우를 생각해보면 이점은 더욱 분명해진다. 같은 마을에서 출생하여 같은 마을에서 성장했다면 그 마을의 지형지모는 물론, 거기서 발생했던 중요한 사건들, 그곳의 생활관습들, 즉 그곳의 문화들을 서로가 공유하게 되는데, 민족정체성은 이것을 확대해놓은것이라 보면 맞을것이다. 민족정체성은 인간이 갖는 정체성의 한부분이다. 민족정체성은 광범위하게 정의한다면 공유된 민족적특성들로 인해 어느 한 개인이 어느 특정 민족집단에 대해 느끼는 소속감이라고 볼수 있다. 이것은 한 개인의 자아개념의 일부분인데 이것을 통해 개인은 자신의 민족적정체를 스스로 정의하거나 또는 타인들에 의해서 정의되여질수 있다.   우리는 우리가 조선족이라고 다른 민족 구성원들에게 소개한다. 그리고 다른 민족구성원들에 의하여 조선족이라 불려진다. 중국의 법에서 우리는 56개 민족중의 하나로 인정을 받는다. 이때 근거가 되는것이 소위 민족정체성이다. 말과 글, 음식, 복식, 관혼상제 등 생활관습은 민족정체성을 형성하는 중요한 내용들이다.   그런데 혹 한국에 가보았더니 우리를 한국사람 취급 하지 않더라고 생각할 사람들이 있을지 모르겠다. 사실이다. 우리는 한국인들과 조상이 동일하지만 한국인들은 우리 조선족을 한국인들과는 차별화하여 대한다. 이는 무엇때문인가?   국민적정체성때문이다. 우리는 장기간 중국에 살면서 다수의 중국인들과 정치사회적으로, 심지어 생활관습적으로 비슷한 경험을 공유하게 된것이다. 이는 우리가 중국의 다른 민족들과 상당정도 동화되였음을 의미하기도 한다. 일부는 우리말, 우리글을 모르고 심지어 생활관습도 상당정도 다른 중국인들과 비슷해지기도 했다. 중국과 한국이 스포츠경기를 할 때 어느쪽을 응원해야 하나 항상 모순된 느낌이 드는것은 바로 이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민족소속감을 상실하였을 때 우리는 줄 끊어진 연의 신세처럼 정처없이 떠다니다가 결국 추락하고말것이라는 사실을 명심할 필요가 있다. 우리는 중국인이면서 또한 조선족이기때문이다. 한국인들이 우리를 한국인들과 차별화하여 대하는 동시에 또 다른 중국인들과도 차별화하여 대하는 것은 이때문이다. 자기와 다른 다수의 민족구성원속에 처해있을 때 우리는 고독감을 느낀다. 문화유전자의 상실감때문이다. 문화유전자의 상실은 한 민족구성원에게 고독과 상실감을 느끼게 하고 심지어 삶의 의욕마저 떨어뜨리거나 상실하게 한다. 바로 이것이 문제다. 민족이란 일종의 문화유전자인것이다. 일방적인 민족동화는 이와 같이 문화유전자를 상실하는 과정이 된다. 이는 생물학적으로 하나의 물종(物種)이 다른 물종에 의해 일방적으로 흡수 또는 소멸되는 상황과 다를바 없다. 이러한 생태균형의 파괴가 어떤 문제를 야기하는가 하는것은 현재 갈수록 많은 사람들에게 인식되고있는 사항이다. 이런 상황을 피면하기 위해서는 문화유전자의 의식적인 보호보존과 각 문화유전자간의 상호교류, 상호경쟁, 상호영향을 지향해야 한다. 우리 중국이 강력한 에너지를 분출할수 있는것은 바로 이러한 다양한 문화유전자의 상호경쟁과 상호영향을 통한 윈윈효과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민족문화의 보존과 고양은 이처럼 개인에 대해서뿐만 아니라 국가와 민족에 모두 유익하다는 말이 된다. 2005/02/16
1    [민족] 도시화시대 민족공동체의 재편성을 위하여 (장춘식2) 댓글:  조회:1623  추천:111  2007-03-11
도시화시대 민족공동체의 재편성을 위하여 장춘식 중국사회과학원 민족문학연구소 부연구원    우리 민족공동체의 기반을 이루고있던 농촌사회가 공동화(空洞化)되여감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다. 처녀들은 외국으로, 도시로 시집을 가고 돈 벌러 가서 시골에는 로총각들이 수두룩하다고 하고 젊은이들이 아이를 데리고 도시에 진출하다보니 학생이 없어 학교들이 페쇄되거나 통합하여 아해들의 천진란만한 웃음소리, 울음소리, 글 읽는 소리를 듣기 어렵다고 한다. 우리 사회가 도시화시대에 진입하고있음을 시사해주는 대목이다.   그러나 비록 우리 시골이 공동화되여가고있는것은 엄연한 사실이지만 민족 구성원의 절대적 인구가 우려할 정도로 줄어든것은 아닌것 같다. 외국에 돈벌러 간 사람들은 대부분 돌아올것이고 국제결혼을 한 경우에도 위장결혼이 많아서 때가 되면 돌아올 사람이 적지 않기때문이다.   그렇다면 시골을 떠난 우리 민족 구성원들은 어데로 갔는가? 도시에 갔다. 현재 북경을 비롯하여 천진, 청도, 상해 등지에는 조선족의 인구가 눈에 뜨이게 늘어났다고 한다. 주로 한국 투자기업이 많은 도시를 중심으로 급속히 증가하고있는 추세인데, 거기에 신생이민이라 할수 있는 한국인들까지 포함하면 이런 대도시의 우리 겨레 인구수가 상당한 규모에 이르렀다고 할수 있다.(북경과 청도의 조선족 인구가 각각 10만을 넘는다고 보는 견해들이 신빙성을 얻고있다) 게다가 최근에는 각 대학교들에 한국어과가 신설되면서 엘리트계층도 상당한 규모를 이루고있다.   우리 민족의 지도층에서는 시골의 공동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여러모로 노력하고있다고 들었다. 그 한 사례로 중-대형도시 주변에 조선족 집성촌을 조성하는 작업을 들수 있다. 일반적인 농경이 아닌, 반(半)도시적 패턴의 사회를 지향한 작업이라 하겠다. 도시의 제조업에 기대여 로동집약형의 공장을 설립하거나 도시에 여러가지 서비스를 제공함으로써 수입을 늘리고 그렇게 함으로써 민족인구의 집성을 노린것이다. 시골총각들도 수입이 늘어나 잘살게 되면 도시에 갔던 처녀들이 시집을 올수 있을것이라는게 이들의 판단이다.   그러나 이런 노력들이 전혀 무의미한것은 아니라고 하더라도 그것만으로는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기는 어려울것으로 보인다. 중국사회의 형태가 농경사회에서 도시화사회에로 바뀌여가는 상황에서 이런 발상은 여전히 농경사회적인것에서 별로 전진하지 못하고있기때문이다. 그러니까 도시화시대에는 도시화시대에 걸맞는 발상이 필요하다는 말이 된다. 민족구성원이 대도시에 진출한후 문제가 되는것은 민족동화현상이다. 우리의 아이들이 한족학교에 다니니 자기 민족어나 문화를 잃어가게 되고 도시에 흩어져 살다보니 민족신문이나 잡지, 도서를 접하기가 어려워지고 텔레비죤, 예술공연 등 문화생활도 민족적인것과는 멀어져갈수밖에 없게 된다. 그리고 이처럼 민족공동체의 연대성이 약화된 관계로 타민족과의 통혼비률이 증가되는것 또한 커다란 우려거리다.   물론 이러한 문제들을 해결하려는 노력은 지속적으로 이어져왔다. 조선어학교의 운영이 대표적인 례가 되겠다. 처음에는 주말학교 형태로 운영하다가 요즘에는 한족학교에 조선어문 과목을 설치하여 운영하는 형태를 취하고있다고 한다. 기숙사까지 있어 상당히 많은 조선족 아이들에게 조선어문을 가르치고있는것으로 안다. 민족문화 교육의 한 대안으로 적극 권장할만한 방법이라 생각된다. 조선족운동회나 조선족예술단의 초청공연 등도 전에부터 있어온것이지만 여전히 유익한것이라 할수 있다. 또한 각 조선문 신문사의 지국 창설이나 광고용 무가지들의 발행 또한 공동체의 네트워크를 형성하는데 일익을 담당하고있다. 아쉬운 점은 아직 조선문 신문, 잡지, 도서의 발행을 위한 정규적인 네트워크가 형성되지 못하여 민족정체성 보존을 위한 문화보급활동이 큰 어려움을 겪고있다는 점이다. 그밖에도 여러가지 모임이나 협회를 설립 활성화함으로써 공동체의식을 향상시키는 일 등 할만한 일들은 많다.   그러나 이와 같이 이미 하고있거나 할만한 일들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대도시에서 조선족으로서의 공동체가 형성되였다는것을 느끼지 못하고있다. 무엇이 문제인가?   구슬이 서말이라도 꿰여야 보배라는 말이 있다. 민족정체성 보존을 위한 상기의 노력들은 모두가 매우 중요한 작업이지만 결국 빛나는 하나하나의 구슬에 불과하다고 볼수 있는것이다. 이것을 한줄에 꿰여야 민족공동체라고 하는 보배가 만들어질터인데 그것을 꿰는 네트워크, 즉 조직체가 미비하다는 말이다. 이는 결국 정부의 몫이다. 민간행위로서는 도무지 권위성을 가진 네트워크를 형성할수 없기때문이다. 각 지역의 조선족자치정부에서는 이제 눈길을 대도시에서의 민족공동체 재편성쪽으로 돌리지 않으면 안된다는 얘기다.   혹자는 민족동화가 두려울게 뭐냐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즉 오늘과 같은 세계화의 시대에 민족정체성이 왜 중요하냐고 할지도 모른다. 민족정체성의 문제에 대해서는 다음 기회에 좀더 전개해보겠거니와 민족소속감을 상실하였을 때 우리는 줄 끊어진 연의 신세처럼 정처없이 떠다니다가 결국 추락하고말것이라는 사실을 명심할 필요가 있다.   이제는 도시화시대다. 우리 민족의 지도층에서는 이 점을 절실히 느끼고 대도시에서의 민족공동체사회의 형성에 올인해야 할것이다. 이는 조선족이 중화민족이라는 대가정속에서 영구히 존속할수 있느냐의 여부를 가리는 중차대한 문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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