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한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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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햇살 같은 민족의 얼 댓글:  조회:3345  추천:57  2005-07-15
이른 아침 창가로 비껴드는 밝은 햇살은 언제나 상쾌하기 그지없다.햇살은 '부챗살처럼 퍼져서 내쏘는 햇빛'을 이르는 말로 사람에게는 '멜라토닌'이라는 호르몬의 분비를 촉진시켜 명랑한 마음과 신체 리듬을 유지시키는 구실을 하고, 식물에는 양분을 공급하는 광합성 작용을 일으키는 등 지구상 모든 생물체의 생존에 없어서는 안될 생명의 근원 역할을 하고 있다.이런 햇살은 물리적으로도 참 묘한 특성을 지닌다. 오늘날 과학자들은 햇살이란 파장 1㎜(밀리미터)∼1㎚(나노미터), 즉 적외선부터 가시광선을 지나 자외선까지의 전자기파이자 광자의 흐름과 활동으로 설명되는 이중성적 에너지의 한 형태라는 정의를 내린다. 하지만 19세기 초까지 과학자들은 햇살의 특성에 따른 '입자설'과 '파동설'로 200여년 동안 논쟁을 해왔다. 빛은 빠른 속도로 직진하는 알갱이 같은 입자의 흐름이라는 입자설은 물체에 빛을 비추면 그 뒤에 그림자가 생기는 사실 등을 통해 쉽게 설명된다. 빛에 관한 연구를 모은 '광학'을 출간한 뉴튼이 입자설을 주장한 대표적 과학자이다. 반면 소리가 공기 진동으로 전파되는 것처럼 빛도 진동으로 전파되는 파동이라는 파동설은 네덜란드의 물리학자 호이겐스가 주장했다. 입자로는 설명되지 않는 빛의 회절, 간섭현상 등 때문에 파동으로 본다는 것이다.이후 맥스웰은 '빛이 전자기파의 일종'이라고 밝혀 파장설을 이었고, 아인슈타인은 빛을 쬐어 전기를 생산하는 광전효과를 설명하며 '빛은 에너지 입자의 흐름'이라는 새로운 광양자설을 내세웠다. 결국 빛은 전자기파로서의 파동성과 광양자로서의 입자성을 동시에 지닌다는 결론을 내리게 됐고, 1927년 전자의 파동성이 실증됨으로써 이러한 이중성은 아무런 모순 없이 설명되고 해석될 수 있게 됐다.햇살의 오묘한 특성을 살펴보면서 한 민족의 '얼'이 그 민족의 생존을 가능하게 하는 생명의 근원이라는 점에서 햇살과 많이 닮았다는 생각을 했다.민족의 '정기', '넋', '혼'으로 말할 수 있는 '얼'은 단순한 한마디 설명으로 정의하기가 쉽지 않고, 민족의 '정신', '사상', '문화'를 포괄하는 복합성적 특성을 지니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이런 얼을 잘 살려내 제대로 분석하고 설명하고 재해석해낼 수 있을 때 그 민족 구성원은 활기차고 진취적인 삶을 펼칠 수 있게 되고, 민족의 특성을 이어가는 원동력을 지속적으로 만들 수 있게 돼 민족의 생존을 이어갈 수 있게 된다. 결국 민족의 얼은 민족의 사상과 문화를 일깨우고 꽃피우는 역할을 하는 햇살 같은 존재라고 할 수 있다.햇살 좋은 날 햇살 가득한 집에 살고 싶은 마음처럼 민족의 얼이 살아 움직이는 오늘, 민족의 얼이 차고 넘치는 한겨레 사회에서 더불어 지내고 싶다.
18    은근하고 멋진 음주 문화를 댓글:  조회:3089  추천:37  2005-07-11
프랑스 소설가 빅토르 위고는 “신은 물을 만들었고 인간은 술을 만들었다”는 표현으로 술이 인간의 삶에 얼마나 큰 비중을 차지하고 의미를 갖는지 강조했다.술은 두 얼굴의 야누스와 같다. 사람의 슬픔을 달래주거나 기쁨을 더하게도 하고, 사람 사이의 벽을 허물어 가깝게 이끄는 촉매 구실도 한다. 또 용기를 북돋워 진실을 드러내게 하며, 신체적 기능에 활력을 불어넣어 건강에 도움이 되기도 한다. 그런가 하면, 알코올을 빙자해 천연덕스럽게 가식과 거짓을 내보이기도 하고, 염치와 수치심을 쫓아내 함부로 행동하며 짐승 같은 본성을 드러내게도 한다. 또 의식 세계를 마비시켜 일상을 뒤죽박죽으로 만들고, 육체적 기능을 나쁘게 해 삶을 황폐화시킨다.로마 신화에는 ‘바쿠스’라 불리는 ‘디오니소스’ 신이 술을 처음 만들었다고 전해지고, 중국에는 하나라 때 의적(儀狄)과 두강(杜康)이 처음 술을 빚어 왕에게 올렸다고 한다. 하지만 처음 술을 빚은 것은 사람이 아니라 깊은 산골의 원숭이라는 설이 있다. 나뭇가지 사이나 바위의 움푹 팬 곳에 놓아둔 과실이 자연 발효해 먹어보니 맛이 좋아 일부러 만들게 됐다는 것이다.술엔 취하게 하는 성분 즉 에틸 알코올이 있다. 술 앞엔 장사가 없다는 말처럼 개인차는 있으나 알코올은 모든 사람을 취하게 한다. 그래서 술은 ‘마시는 문화’가 필요하다.부모와 자식, 스승과 제자, 친구와 동료 그리고 공식적이거나 사업적인 술자리 등 대상이나 상황에 맞는 주도(酒道)에 따라 형성된 ‘술 마시는 문화’는 개인의 삶이나 건강을 더욱 부드럽고 활기차게 하며, 사회적 계층 사이의 긴장이나 갈등을 해소하는 구실을 한다.지난해 연변에서의 일이다. 고위 관리인 한 중국 동포가 상급 정부로부터 능력을 인정받아 승진을 해 다른 곳으로 가게 됐다. 이를 축하하고 전송하는 술자리가 1주일 내내 이어졌다. 술을 사양하지 못하고 거의 강제적으로 마시게 하는 ‘어이없는 문화’ 때문에 앞날이 창창한 그는 결국 새 부임지로 출근하는 날 아침 승용차 안에서 숨지고 말았다. 그 자신은 말할 것도 없고 민족적인 차원에서도 정말 안타까운 인재의 손실이 아닐 수 없다. 이런 일이 한두번이 아니라는 데 사태의 심각성이 있다.술을 마시다 보면 술을 권하는 것이 친밀감의 표현을 넘어 권한 술을 마시느냐 그렇지 않으냐에 따라 자신을 인정하고 존중하느냐 아니냐로 평가하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권한 술을 다 마실 때까지 정색을 하고 상대를 똑바로 쳐다보며 계속 강요하는 바람에 ‘곤혹스러운 장면’을 연출하게 된다. 이는 문화라기보다 습관에 가까운 것으로 앞서 말한 술 마시는 문화의 장점을 모두 놓쳐버리는 어리석음을 저지르는 일이다. 뿐만 아니라 술과 함께 할 수 있는 다른 좋은 문화적인 요소도 없애버리는 결과를 가져온다. 이런 잘못된 습관을 당장 그리고 반드시 고치고 바꿔 ‘은근하고 멋진 술 마시는 문화’를 즐기고 누렸으면 한다.
17    차한필 프로필 댓글:  조회:2865  추천:46  2005-07-07
차한필(필명 차대형)---------------------------------한국 한겨레신문 기자.칼럼니스트한국 인천대 강사, 숭의여대 강사, 숭의여대 겸임교수 역임.중국 흑룡강신문사 편집고문, 논설위원, 명예 편집국장 역임.여행가=세계 15개국, 중국 각 지역 10여차례 여행 저서 '중국속에 일떠선 한민족' 출간
16    마음의 대화를 통한 믿음 키우기 댓글:  조회:2772  추천:49  2005-07-07
남을 믿지 못해 불안에 시달리는 사람을 치료하는 방법 가운데 `뒤로 넘어지기‘ 훈련이라는 게 있다. 뒷사람이 자신을 바쳐줄 것으로 믿고 눈을 감은 채 꼿꼿이 뒤로 넘어지는 행동을 반복하는 훈련이다.대부분의 사람들은 앞으로 넘어지는 것보다 보이지 않는 뒤쪽으로 넘어지는 것에 더욱 불안과 공포를 느끼게 된다. 상대에 대한 믿음이 강한 경우엔 이런 심리적인 불안이나 공포를 벗어버리고 `뒤로 넘어지기' 훈련을 쉽게 통과할 수 있다. 하지만 상대에 대한 믿음이 확실하지 않으면 넘어질 엄두가 나지 않거나 넘어지려는 순간 자신도 모르게 다리를 옮겨 버티게 된다.중국동포와 한국동포 모두들 한겨레 사회를 이뤄나가기 위해서는 신뢰 회복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1992년 중국과 한국의 수교 이후 우리 민족은 급속한 교류를 하게 됐지만 서로 다른 체제와 문화 속에서 지내온 것을 받아들이거나 이해하지 못한 탓에 보이지 않는 불신의 싹을 키우게 됐다. 결국 서로 믿음을 저버린 데 대한 책임을 전가하면서 상대에 분노하고 스스로 고통스러워하고 있다. 믿음이 깨진 사회는 다른 사람을 의심하고 배척할 뿐만 아니라 스스로를 황폐하게 한다.신뢰 회복을 위한 훈련이 요구되는 시점이다.`신뢰‘란 사전적 의미는 ’믿고 의지함’이다. 이는 경험 또는 관념을 바탕으로 한 확신을 일컫는다. 눈에 보이는 것을 믿을 수 없을 때는 느껴지는 것을 믿어야 한다. 예수의 제자 바울은 `보지 않고 믿는 것이 더 복되다‘고 말했다. 다른 사람이 나를 믿게 만들려면 나 역시 그를 믿고 있음을 스스로 느껴야 한다. 뒤로 넘어지고 있는 그 순간에도.`뒤로 넘어지기‘ 실험은 가족이나 학교, 직장 같은 한 집단 구성원 사이의 신뢰도를 확인하는 방법으로도 이용된다. 이를 통해 서로 마음의 대화를 할 수 있게 된다. 그리고 마음의 대화를 통해 믿음을 키워갈 수 있게 되는 것이다.민족의 신뢰 회복을 위해 나의 불리함과 손해를 감수할 수 있을지, 내가 믿을 수 있는 사람 아니 나를 믿고 기꺼이 뒤로 넘어지는 사람이 얼마나 될지를 생각하면서 우리 모두 눈을 감은 채 꼿꼿이 뒤로 넘어져 보자.비록 골통이 깨지는 한이 있더라도.
15    누가 그들의 눈물을 닦아줄 것인가 댓글:  조회:2804  추천:47  2005-07-07
영화나 텔레비전 드라마를 보다보면 한 주인공이 슬픔과 비통에 잠겨 눈물을 흘리고 있을 때 어느새 다가와 그 눈물을 닦아주는 아름다운 손을 볼 수 있다. 그럴 때면 관객들은 마치 자신의 눈물을 닦아주는 듯한 느낌으로 그 감동적인 장면을 기억하곤 한다.인간의 삶 속에는 많은 눈물이 고여 있다.그것이 아름다운 사랑 때문이든, 아니면 지긋지긋한 가난이나 전쟁, 질병, 죄악 등 그 무엇 때문이든 마를 날 없는 숱한 눈물로 채워져 있는 게 현실이다.안타깝게도 오늘을 살아가는 중국동포와 한국동포의 눈 속에도 그득한 눈물이 맺혀 있다.거세게 몰아닥친 개방 영향으로 중국동포들은 정든 고향을 등지고 한국이나 미국 일본 등으로 떠나는가 하면 좀더 많은 돈을 벌기 위해 연해 남방지역으로 속속 빠져나갔다. 하지만 이들이 그곳에서 정착해 돈을 벌기까지 먼저 놓인 것은 눈물바가지였다. 외로움과 설움과 멸시와 분노의 눈물이 끊이질 않은 것이다. 아직도 그 눈물바가지를 채우지 못해 날마다 하염없는 눈물로 지새는 동포들이 적지 않은 것 같다.한국동포들도 크게 다르지 않다. 한-중 수교 직후 중국을 제대로 알지도 못하고 섣불리 뛰어든 초기 투자자들의 90% 이상이 실패하고 철수하고 말았다. 이후 한국 경제가 어려워지면서 설비 이전의 장점과 값싼 노동력 확보를 따져 수많은 중소기업들이 밀려들어왔지만 앞선 기술과 충분한 사전정보를 챙겨오지 못한 기업이나 철저한 자기관리에 실패한 기업인들 역시 뼈아픈 눈물을 흘려야 했다.대체로 이러한 눈물을 닦아주는 역할은 종교나 정치 지도자들이 해왔다.인도의 성자 간디는 “나의 소원은 모든 사람의 눈물을 닦아주는 것”이라며 스스로 진리를 위한 고행의 길을 걸었다. 더욱이 그는 영국의 지배를 받고 살아가는 자신의 동포 인도인의 눈에 맺힌 눈물을 닦아주고자 비폭력 무저항운동을 실천했다.한국도 전쟁으로 폐허가 된 상태에서 수많은 지식인과 꽃다운 처녀들이 광부와 간호사로 독일 행에 올랐다. 그들의 눈에도 눈물이 쏟아져 나왔다. 고국과는 이역만리 떨어진데다 말도 통하지 않고 유색인종이라는 보이지 않는 차별 속에서 누구하나 붙들고 이야기할 사람조차 없었으니 그들의 고독한 삶이 오죽했겠는가. 그때 비록 군사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상태였지만 박정희 대통령이 독일 정부 초청으로 방문하면서 이들과 대화의 자리를 마련했다. 대화의 자리였지만 그 자리에선 말이 없었다. 그저 눈물에 이은 통곡만이 장내를 가득 메웠고 당시 영부인 육영수 여사가 일일이 그들의 눈물을 닦아주었다고 한다. 오늘의 한국이 이들의 눈물 덕분이라는 사실을 부인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그러면 오늘 중국동포와 한국동포들의 눈물은 누가 거두어줄 것인가.우리는 서로 눈물을 닦아주어야 한다. 서로 기댈 수 있는 느티나무와 눈물을 닦아주는 손수건이 돼야 한다. 서로가 가족이 되고, 서로가 이웃이 되고, 서로가 한겨레가 되어 스스로 눈물을 거두어야 한다. 언제까지 남이 우리의 눈물을 닦아줄 때까지 기다릴 순 없는 노릇이다.맺힌 눈물방울을 떨구지 말고 이젠 훔쳐보자.
14    남을 위한 배려가 먼저다-민족의 수치심 댓글:  조회:3234  추천:65  2005-07-07
지난 1995년 1월17일 ‘고베대지진’으로 알려진 ‘한신대지진’이 일본에서 일어났다.진도 7.2의 강진으로 사망자만 5249명, 피해액이 무려 14조엔(1조4천억달러)이 넘는 엄청난 재해였으며, 지역 산업활동을 마비시켰을 뿐 아니라 주민들의 일상생활에도 큰 고통을 주었다.특히 아시아 최대 무역항이었던 고베항은 10년이 지난 지금도 제 기능을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그때 현장을 전하던 방송텔레비전의 한 장면에 서양 사람들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고 한다.텔레비전 화면에는 지진으로 무너지고 가스가 폭발해 불타고 있는 집을 배경으로 식수 공급을 위해 나온 소방차 앞에서 길게 줄을 서 기다리고 있는 주민들의 모습이 방영되고 있었다.이를 본 서양 사람들은 어떻게 저런 참사 속에서도 냉정함을 잃지 않고 질서를 유지하며 기다릴 수 있는지 경탄을 넘어 두려움마저 느낀다고 했다.이런 생각은 1977년의 미국 뉴욕 대정전 때와 비교해보면 곧바로 이해가 간다.최고 문명국이라는 미국의 최대 도시인 뉴욕에서 고작 12시간 동안 정전이 벌어졌는데도 사람들은 이성을 잃고 약탈과 방화 심지어는 강도 강간까지 저지르는 그야말로 야만의 무법천지 세계로 돌변했던 것이다.그러면 일본인들은 어떻게 그런 상황에서도 그렇게 침착할 수 있었을까.우선은 오랜 경험에 따른 습관적인 행동으로 볼 수도 있다. 즉 지진이 잦은 일본에선 이에 대한 훈련을 많이 해왔고 여러 차례의 작은 지진을 경험한 탓일 수도 있을 것 같다.2003년 8월15일 미국 뉴욕에서 다시 대정전 발어졌을 때도 77년 대정전 때와는 달리 약탈 등이 크게 줄어들고 남을 도우는 선행도 적지 않았다고 하니 말이다.하지만 일본의 경우 ‘남에게 피해를 끼쳐서는 안 된다’는 일본인 특유의 인식이 그 바탕에 깔린 행동으로 분석하는 것이 더 설득력 있어 보인다.남에게 폐 끼치는 일을 수치로 여기는 일본인들의 오랜 관습이 그런 위급하고 절박한 상황 속에서도 질서를 유지할 수 있게 한 원동력이라는 것이다.이렇게 폐를 끼치지 않으려는 자세는 곧 남을 배려하는 자세로 나타나며 이는 다른 동물과 달리 인간이 가지고 있는 수치심의 발로라고 할 수 있다.다시 말해 수치심이 있으면 남에게 폐를 끼치려 하지 않을 것이고 그것이 남을 배려하는 적극적인 태도로 나타난다는 것이다.그런데 요즘 들어 수치심을 모르는 사람이 너무 많은 것 같다.특히 중국에서 살아가는 우리 민족도 언제부터인가 점점 수치심을 잃어버리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깝기 짝이 없다. 돈을 벌기 위해서라면, 자신이 피해보지 않기 위해서라면, 자신의 체면을 위해서라면 쉽게 철면피가 되어버리는 것이다.특히 많은 사람들이 우려하다시피 최근 우리 민족도 배금주의에 물들어 현실의 최고 가치로 돈만을 꼽는 사람들로 가득차고 있다. 그 돈을 위해서라면 자신의 수치심도, 민족의 수치심도 모두 내던져버리는 것이다.최근 하얼빈에서 한국동포와 그 부인 중국동포가 피살되는 끔찍한 사태가 벌어졌다.범행을 한 사람은 같은 일터에서 함께 동고동락하던 중국동포와 조선동포들로 결국 돈과 관련한 다툼이 범행의 동기였던 것으로 밝혀지고 있다.서로 배려해야 할 사람들이 서로 배려하지 않을 때 찾아오는 것은 결국 혼란과 약탈과 강도와 살인뿐이다.같은 중국 땅에서 같은 하늘을 이고 살아가는 중국동포 한국동포 조선동포 모두 한겨레 정신으로 서로를 배려할 때 민족의 수치심이 없어질 것이다.남을 먼저 배려하는 자세가 결국 가장 편하고 안전한 길임을 모두 깨달았으면 좋겠다.
13    속으로 들어가 더불어 지내기 댓글:  조회:3188  추천:45  2005-07-07
프랑스 파리엔 모든 사람이 한번쯤 올라가보고 싶어하는 에펠탑이 우뚝 솟아 있다.1889년 ‘프랑스 대혁명 100돌 기념 파리 만국박람회’를 맞아 귀스타브 에펠이 설계해 세운 에펠탑은 3개 층, 높이 320m의 대형 철제 탑으로 파리 시내 전경을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는데다 야간에 조명을 받은 모습이 환상적이어서 해마다 1억5천만명의 관광객을 불러들이는 세계 최고 관광지로 꼽힌다.당시 프랑스는 만국박람회를 통해 자국의 기술 수준을 세계에 보여주기 위해 에펠탑을 건설하기로 했다. 하지만 이런 계획은 당시 예술가들의 심한 반대에 부닥쳤다. 예술의 도시 파리에 오만하고 흉물스런 철제 탑을 세운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모파상, 에밀 졸라, 뒤마 등 파리의 지식인 및 예술가 300여명이 탄원서를 제출할 정도로 반대가 격렬했다.이에 따라 에펠탑은 애초 건축 20년 뒤 철거할 계획이었지만 무선통신이 생겨나 무선탑으로, 텔레비전 방송이 나오면서 텔레비전 송신탑으로 이용돼 철거 위기를 넘기고 오늘의 에펠탑으로 남을 수 있었다.하지만 시인 폴 베를렌은 에펠탑을 볼 수 없는 길 양쪽에 건물이 꽉 들어찬 거리만 다녔고, 프랑스 최고의 소설가로 꼽히는 모파상도 아예 두문불출하거나 에펠탑이 보이지 않는 곳을 찾다 결국 에펠탑 속으로 들어가 1층 식당에서 늘 사람들을 만나 식사를 하고 차를 마시며 하루를 보내곤 했다고 한다. 그러다 사람들이 물으면 ‘그 괴물 속으로 들어가야 괴물이 안보일 것 아닙니까’라고 대답했다.그러면 그는 정말 에펠탑을 싫어했을까. 핑계 없는 무덤이 없다고 그의 대답은 작가적인 티를 내는 것일 뿐 실은 그도 에펠탑의 식당을 이용하면서 단골이 될 정도로 그만큼 에펠탑을 좋아하게 된 것이라 생각한다.오늘 중국 안 한겨레 사회를 살펴보면 중국 동포. 한국 동포 모두 에펠탑 건축 당시 파리의 지식인 및 예술가 같은 태도로 서로를 바라보고 있을 때가 많은 것 같다. 같은 민족임에도 민족적인 동질성보다는 서로 다른 이념과 체제, 환경과 문화의 어울리지 않는 이질적인 요소들을 먼저 생각하는 것 같다. 그러면 우리도 모파상처럼 서로 속으로 들어가 보자. 들어가 더불어 지내보자. 마치 모파상이 에펠탑 안 식당으로 들어가 그곳에서 사람들을 만나고 함께 식사하고 차를 마시며 대화를 나눈 것처럼 더이상 밖에서 바라보며 비난하거나 헐뜯지 말고 서로의 삶 속에 뛰어들어 함께 지내면서 점차 좋아하게 되기를 바란다.사실 중국의 한겨레 사회는 에펠탑과 같은 엄청난 매력을 가진 민족공동체다. 민족의 미래를 위해 그 매력을 맘껏 발산하고 꽃피울 수 있는 날을 하루 빨리 만들어갔으면 한다.
12    일본의 좌충우돌과 미국의 속셈-일본의 영토분쟁 배경 댓글:  조회:3385  추천:46  2005-07-07
주변국과 끊임없는 영토분쟁을 일으켜온 일본이 최근 한 지방의회의 결의안을 통해 독도에 대한 영유권을 제기하며 한국과 마찰을 가져온 데 이어 조어도(센카쿠섬)에 대해서도 같은 방식으로 접근해 중국과의 분쟁을 격화시키고 있다.이에 대해 한국은 이번만은 조용하게 넘어가지 않겠다며 노무현 대통령이 직접 나서 일본과의 외교 전쟁에 나섰고, 중국 인민 또한 인터넷 상에서 일본의 유엔 상임이사국 진출 반대 서명에 들어가는 등 한국과 중국의 반일 감정이 전례 없이 커지고 있다.아울러 지속되고 있는 러시아와의 쿠릴열도(북방 4개 섬) 반환문제 등 최근 잇따라 주변국과의 영토분쟁을 촉발하고 있는 일본의 좌충우돌은 그들의 침략적 근성이 예나 지금이나 전혀 달라지지 않았음을 보여주고 있다.일본이 한국 러시아 중국 주변 3국과 벌이고 있는 영토분쟁의 역사적, 사실적 관계를 살펴보면 그들의 좌충우돌이 얼마나 자가당착적인지를 알 수 있다.먼저 애초 한국 땅이었던 독도의 경우 일본이 한국을 집어삼키기 위해 일으킨 러-일 전쟁에서 승리하면서 1905년 독도를 자신의 영토로 편입시키고 그것도 한국과 을사조약을 맺어 외교권 등을 박탈한 뒤 편입사실을 발표해 한국의 항의가 없었다며 영유권을 주장하고 있다. 독도는 2차대전과 한국전쟁이 끝난 뒤인 1954년부터 한국이 실효적으로 지배하고 있다.그런가 하면 쿠릴열도의 경우 좀 복잡하다. 애초 러시아 땅이었으나 1854년 러-일 강화조약, 1875년 사할린-쿠릴 교환조약협정 등을 통해 사할린과 나눠 일본이 점령하게 된다. 이후 러-일 전쟁에서 승리한 일본이 쿠릴열도와 함께 남부 사할린까지 점령했다가 2차대전이 끝나며 옛 소련이 1945년 얄타협정에서 사할린과 쿠릴열도 반환을 약속받은 뒤 1951년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 때 쿠릴열도 전체를 점령하면서 북방 4개 섬에 대한 영유권 분쟁이 시작됐다. 현재는 러시아 영토로 돼 있으며 1990년대 들어 2개 섬에 대한 반환협상이 있었으나 2000년이 지나며 이마저 흐지부지된 상태다.또 일본이 1855년 주인 없는 땅을 선점해 국제법상 문제가 없다고 주장하는 조어도에 대해서 중국은 역사적으로 명백한 중국 영토를 청나라가 쇠약한 틈을 타서 강탈한 것이라고 비난하며 영유권을 주장하고 있다. 조어도는 타이완에서 190㎞, 오키나와에서 420㎞ 떨어져 있고 중국 본토에서 수심이 가장 깊은 곳이 100m이지만 오키나와 방향으로 3㎞ 위치에 2000m나 되는 해구가 있어 지리적으로 중국 대륙붕의 연장으로 볼 수 있다. 하지만 일본은 등대 등을 세워 실효적인 지배를 하고 있다며 중국의 주장을 배척하고 있다.이런 사실을 따져보면 일본의 주장이 역사적 사실이나 구체적인 과학적 근거보다 그때그때마다 자신들에게 유리한 면만을 들어 영유권을 주장하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결국 양육강식의 논리에 기대 무조건 우기고 보자는 식으로, 손해볼 게 없다는 태도로 분쟁을 일으켜 자신의 이익을 챙기겠다는 술책이다. 그러면 왜 일본은 주변국과의 마찰을 무릅쓰고 독도를 포함해 쿠릴열도, 조어도 등에 대한 영유권을 주장하는가. 이는 군국주의 부활을 꿈꾸는 일본의 야욕이 그대로 반영된 것으로 해양자위대의 석유진출로이자 본토 방어선을 확보하려는 군사적 계획과 함께 풍부한 어업, 광물자원 등 해양자원을 확보하려는 경제적인 실리 때문이다.그리고 냉전 뒤 재편되고 있는 세계질서에 대비한 미-일 동맹의 이해 관계가 맞아떨어지기 때문이기도 하다. 다시 말해 냉전 뒤 세계는 유럽·미국·동아시아로 재편되고 이에 따라 미국의 세계 패권주의 정책은 위협을 받게 됐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은 일본이 미국의 동아시아 견제에 적극 동참해 유럽에서의 영국 역할을 아시아에서 하도록 요구하고 있다. 대신 미국은 일본의 유엔 안보리 가입을 지지하고 영토문제에서 일본의 편을 들어준다. 이런 미-일의 동맹 강화는 동아시아의 협력강화에 대한 반작용인 셈이다. 그러다가 영토분쟁이 격화하면 미국은 능청스럽게도 조정자로 나서 동아시아에서 잃었던 영향력을 다시 확보하며 세계 패권을 유지한다는 것이다. 역사를 통해 볼 때 한 나라의 영토는 당시의 국력에 따라 크게 달라져왔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전쟁을 통해 영토뿐 아니라 나라의 존폐가 결정되기도 했다. 오늘의 세계지도도 그리 멀지 않은 약육강식의 제국주의 시대와 1, 2차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만들어졌다. 하지만 현대에 들어서는 국제적인 비난을 받거나 공멸적인 전쟁보다는 국력을 바탕으로 한 외교적인 힘으로 영토문제를 해결하고 있다.이런 상황에서 일본은 미국을 등에 업고 동아시아의 협력 강화를 해치면서까지 자신들의 야욕을 채우려 하고 있다. 2차대전 뒤 진정한 과거 반성을 거쳐 유럽의 일원으로 인정받고 오늘의 유럽 통합을 위해 엄청난 경제적 손실을 감당하며 앞장섰던 독일과는 전혀 다른 태도를 보이고 있는 것이다. 일본은 영토문제와 관련한 최근의 좌충우돌이 주변국들의 신뢰를 얻어 그들과 함께 번영할 수 있는 기회를 놓치고 결국 고립을 자초할 뿐이란 사실을 직시해야 할 것이다. 이제라도 독일의 경우를 본받아 과거에 대한 반성을 기초로 화해의 길을 찾아야 할 것이다. iwbback@hanmail.net
11    세기적 사랑과 기다림의 미학 댓글:  조회:3412  추천:52  2005-07-07
“처음엔 미웠지만 두 사람의 모습을 보고 행복을 빌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영국의 왕세자 찰스와 그의 오랜 연인 커밀라의 결혼을 바라보는 한 시민의 말이다.이들의 결혼식은 지난 9일 많은 논란과 우여곡절 끝에 런던 윈저 시청에서 친지와 지인 몇몇만이 참석한 가운데 조촐하게 치러졌다. 세인트 폴 대성당에서 왕실혼으로 성대하게 거행된 다이애나와의 결혼식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다. 지난달 10일 이들의 결혼이 발표되자 왕위 계승자와 전 남편이 살아있는 이혼녀와의 결혼이 성공회 관습에 위배되지 않은지, 찰스가 왕위를 포기해야 하는지 등 각종 논란이 일고, 반대와 비난과 조롱이 잇따르자 결혼식을 왕실 방식에서 민간 방식으로 바꾼 탓이다. 지금도 영국인들은 찰스와의 결혼생활에 힘들어하다 비극적으로 삶을 마감한 다이애나 전 왕세자비에 대한 사랑이 지극하다. 이들은 찰스와 커밀라의 애매모호했던 관계가 결과적으로 다이애나의 비극을 불렀다고 생각한다.이런 평가와는 별개로 이들의 결혼 뒤안길엔 오랜 기다림의 미학이 깔려 있다.56살인 찰스와 1년 연상인 커밀라, 둘 다 이혼 경험이 있고 자녀까지 있는 이들은 1970년 처음 만나 사랑을 나눈 이후 35년 만에 다시 ‘세기적 사랑’의 결실을 이뤘다.커밀라는 예민한 다이애나와는 반대로 털털하고, 자기중심적이고 항상 애정을 요구하는 다이애나와는 달리 겸손하면서 베풀기를 좋아하는 성품을 지닌 것으로 알려졌다. 찰스와 다이애나의 결혼 생활이 순탄치 못한 방향으로 전개되면서 이들의 사이는 다시 연인으로 발전하게 된다. 찰스는 더 자주 커밀라를 찾아 결혼생활의 애로를 상의했고 이 과정에서 서로에 대한 깊은 애정을 확인하게 된다.찰스의 잘잘못을 떠나 그는 한 나라의 왕위계승자로 요구되는 엄격한 삶 때문에 그만큼 힘든 때가 많았던 것 같다. 그리고 유약한 그의 모습처럼 성장과정에서 베풀기보다 받기에 익숙해져 아내한테서조차도 보살핌 받는 것을 더 원했는지 모른다. 그런 그에겐 젊고 화려하고 멋진 다이애나보다 항상 먼저 자신을 배려하고 애정을 베푸는 커밀라가 더 편했던 것 같다.커밀라는 다이애나 죽음의 원인 제공자로 꼽혀 국민적 미움을 받았다. 전 남편과 이혼한 뒤에는 길거리에서 야유를 당해 피해 다녀야 할 정도였다. 하지만 그녀는 참고 기다리며 자신의 사랑을 지키고 키워왔다. 찰스의 그림자로 내조하며 왕실 가족의 신뢰를 쌓았고 마침내 찰스의 배우자로 대접받기 시작했다. 이들의 끈질긴 사랑에 엘리자베스 2세 여왕도 마침내 두 손을 들고 말았다.‘기다림의 화신’ 커밀라를 보며 민족 문제를 되짚어본다.한국과 조선은 분단된 지 50년이 넘었고 최근엔 조선이 핵문제로 미국과 대립하며 세계 평화를 위협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런가 하면 중국의 한겨레 사회도 중국동포 한국동포 조선동포 서로 신뢰 단계에 들어서지 못하고 분열된 모습을 보이며 주변국가나 다른 민족으로부터 비난과 질시를 받고 있는 게 현실이다.한 사람이 자신의 사랑을 지키고 결실을 맺기 위해 35년의 세월을 기다리는데, 민족이 통일하고 서로 신뢰하며 하나되는 일에 더 오랜 세월을 못 기다리겠는가.그 기다림 또한 마냥 기다림이 아니라 먼저 배려하고 베풀면서 참고 견디며 신뢰를 회복하는 노력이 뒤따라야 할 것이다.그러다 보면 우리 민족에 대해서도 “이전엔 한국과 조선이 미웠는데 이제 통일돼 잘 살았으면 좋겠다”는 주변 국가의 말이 나올 것이고, “예전엔 조선족이 미웠는데 이젠 조선족에게 배울 점이 많다”는 다른 민족의 부러움을 살 수 있을 것이다. 그런 말을 들을 때까지 우리 민족이 기다림의 미학을 제대로 실천할 수 있다면 백년인들 지겨울까. iwbback@hanmail.net
10    좋아하는 것과 사랑하는 것의 차이 댓글:  조회:3562  추천:54  2005-07-07
어느 날 저녁 딸아이가 대뜸 하는 말이 ꡒ나 이제 아빠 안 좋아해ꡓ 한다. 무슨 삐친 일이 있나 싶어 얼굴을 살피니 그 이유를 물어달란다. 그래서 물어보니 엉뚱하게도 ꡒ이제부터는 사랑하니까ꡓ라고 대답한다.사랑이 뭔지 알고나 하는 소리인지 싶으면서도 좋아하는 것과 사랑하는 것이 얼마나 다르다는 것을 알았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다.심리학에서는 사랑을 에로스라는 남녀간의 성적인 사랑, 루두스라는 부담 없고 장난스러운 사랑, 스토르지라는 따스한 정에 이끌린 사랑, 마니아라는 광기어린 격정적인 사랑, 프라그마라는 가슴보다 머리가 앞서는 현실적인 사랑, 아가페라는 이해와 양보와 희생을 통해 벼루어가는 사랑으로 나눠 설명한다.그리고 실제 사랑은 이들 가운데 한가지 사랑만이 아니라 두세가지 사랑이 순차적으로 또는 동시에 합쳐 나타난다. 친구로 만나 연인 관계로 발전하는 경우를 보면 루두스나 스토르지에서 에로스나 마니아로 변한 것으로 말할 수 있고, 처음 사귈 때 프라그마로 시작했지만 나중엔 아가페로 승화하는 경우도 있을 수 있다. 이렇게 보면 좋아하고 사랑한다는 것을 굳이 구분해 말하는 것이 불필요한 일인지도 모른다.하지만 좋아한다는 것과 사랑한다는 것의 차이는 뭘까. 여러 가지 해석이 가능하겠지만 결정적인 차이는 ꡐ조건의 유무ꡑ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좋아하는 것에는 분명한 조건이 있다. 이른바 ꡐ때문에ꡑ라는 조건을 충족시켜줄 때 비로소 좋은 관계가 유지될 수 있다. 그 조건을 충족하지 못할 경우엔 좋은 관계가 사라질 뿐만 아니라 오히려 더 나빠지기까지 한다. 하지만 사랑하는 것은 ꡐ때문에ꡑ라는 조건을 충족시켜줄 때뿐만 아니라 ꡐ그럼에도ꡑ라는 상황 즉 조건을 전혀 충족시켜주지 못하는 경우에도 좋은 관계를 유지한다. 따라서 좋아하는 것과 사랑하는 것의 차이를 필요조건과 충분조건의 차이라고 말할 수도 있을 것 같다.중국 안 한겨레 사회는 어떤 관계인지 되살펴본다.중국동포 한국동포 모두 애초엔 서로 좋아하는 관계로 출발했다. 한-중 수교 뒤 중국동포는 한국의 경제력이 매력적이었고 한국동포는 언어가 통하고 믿을 만한 상대가 필요한 상황이었다. 하지만 경제력도 없는 한국동포가 중국동포를 대상으로 허세를 부리고 사기를 치는가 하면, 중국동포 역시 전문분야 통역도 제대로 안되면서 믿을 수 없는 행동을 보여 조건에 따라 좋아하던 관계는 오히려 이전보다 못한 상황으로 악화되기도 했다. 한겨레 사회도 좋아만 하는 관계에서 사랑하는 관계로 발전했으면 좋겠다.민족을 사랑하는 일이 한사람을 사랑하는 일보다 더욱 값질 진대 이해와 양보와 희생을 통해 벼루어가는 아가페 같은 사랑을 마다해선 안 될 것이다.필요조건에 더 이상 머물지 말고 충분조건 속으로 들어가 보자.
9    우리 민족에게 ꡐ나침반ꡑ은 있는가 댓글:  조회:3328  추천:48  2005-07-07
태어나 자란 곳으로 돌아오는 것을 ꡐ귀소ꡑ(歸巢) 또는 ꡐ회귀ꡑ(回歸)라고 한다.북태평양 연안에서 성장한 뒤 어머니 강으로 돌아오는 연어는 대표적인 회귀동물로 꼽히고, 먹이를 찾아다니다 둥지를 틀기 위해 돌아오는 철새의 이동도 귀소성에 따른 것으로 설명한다.술에 취해 몸을 가누지 못하면서도 집은 꼬박꼬박 찾아가는 것을 보면 사람에게도 분명 귀소본능이 있는 것 같다.북태평양을 오가는 연어의 경우 성장 시간이 3~6년 이상이 걸리고 이동경로도 수천 킬로미터가 넘는다. 연어는 어떻게 어머니 강을 기억하고 돌아오는 걸까. 학자들은 태어난 강물의 냄새를 맡고 돌아온다고 한다. 그러면 그 넓은 바다에서 자신의 위치나 돌아오는 방향을 어떻게 알고 찾아낼까. 해류를 따라 오간다는 주장도 있지만 태양의 위치나 지구 자기를 나침판 삼아 회귀한다는 가설이 신빙성 있어 보인다.철새의 이동도 신기하다. 북극해에서 오스트레일리아까지 오가는 최장거리 철새로 알려진 북극제비갈매기는 적어도 2만2500킬로미터를 넘게 이동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철새는 어떻게 그렇게 먼 거리를 오갈 수 있을까. 철새 역시 태양 위치나 별자리를 나침반으로 해서 지구 자기장을 따라 위도와 경도를 파악하며 이동한다고 한다.하지만 이들이 모두 회귀나 이동에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연어의 회귀율은 매우 낮다. 바다로 나가는 일조차 쉽지 않은 연어는 북태평양에서 떠돌며 생존을 위한 투쟁을 잠시도 멈추지 못하고, 성장해서도 어머니 강으로 돌아오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최근엔 해양 생태계의 변화 등으로 회귀율이 더욱 낮아지는 것으로 나타났다.철새의 이동 경로에도 위험은 도사리고 있다. 4일 동안 잠시도 쉴 곳 없는 바다 위를 날아가는 검은머리솔새는 중간에 힘이 떨어져 죽기도 하고, 갑작스런 날씨 변화에 떼죽음을 당하기도 한다. 그런가 하면 쉴 곳과 먹이를 찾아 수만리 해안가를 빙빙 돌아 긴 여행을 하는 붉은턱벌새는 이동 중에 병들고 잡혀 죽거나 길을 잃어 돌아가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다.이처럼 회귀란 삶과 죽음을 가르는 숙명인 셈이다. 회귀에 성공해야 다시 알을 낳고 둥지를 틀어 종족을 보전할 수 있는 것이다.인간의 귀소본능을 이르는 ꡐ수구초심ꡑ(首丘初心) 즉 여우도 죽을 때 제 살던 곳으로 머리를 둔다는 말이 있다. 개개인뿐만 아니라 민족도 마찬가지일 터이다. 민족의 전통을 지키고 문화를 발전시켜나가는 일 모두가 귀소본능에 따른 회귀 활동인 셈이다. 민족의 얼과 권익을 지켜내는 일이 이동 중에 닥치는 수많은 위험을 헤쳐나가는 생존 활동일 것이다.이런 활동에는 연어나 철새가 지침으로 삼은 태양의 위치나 별자리 같은 ꡐ나침반ꡑ이 반드시 필요하다. 그 나침반이 없거나 희미할 때 회귀의 성공률은 그만큼 줄어들고 만다.ꡐ우리 민족에게 나침반은 있는가.ꡑ모두들 이렇게 나침반을 찾고만 있다. 해답은 스스로 나침반이 돼야 한다.언론인이나 지식인, 문화인뿐만 아니라 상인 농민 학생 모두가 민족의 태양 구실을 해야 한다. 아니면 그 태양을 비추는 거울이라도 돼야 한다.
8    민족의 젖줄 ꡐ어머니 강ꡑ을 찾아 댓글:  조회:3326  추천:46  2005-07-07
여러 민족의 발원지로 알려진 흑룡강은 ꡐ어머니 강ꡑ이란 뜻으로 우리 민족의 젖줄이기도 하다.흑룡강은 시베리아 남동부에서 발원해 중국과 러시아 국경을 따라 동쪽으로 흐르다 하바로프스크 부근에서 북동쪽으로 방향을 바꿔 북태평양 오호츠크해로 흘러드는 길이 4350 킬로미터의 세계 8대 강이다. 205만2천 제곱킬로미터에 이르는 방대한 강 유역을 따라 여러 민족이 각기 다른 삶의 양식으로 생존해 오늘에 이르고 있지만 모두 같은 젖줄을 빨고 자란 동일한 문화권으로 볼 수도 있다.노동절 휴가 기간 중국 최북단 흑룡강성 막하현 막하향 북극촌으로 떠나 러시아와 맞닿아 흐르는 어머니 강을 찾았다. 고즈넉하게 흘러 평화롭기만 한 데 아직 녹지 않은 얼음덩어리들이 서로 부딪히며 이른 새벽을 깨운다. 여름철엔 북극광(오로라)을 볼 수 있는 곳이라고 하지만 날씨가 흐려 붉게 타는 저녁노을이나 건너 러시아 쪽에서 떠오르는 장엄한 일출은 볼 수 없었다. 하지만 새벽녘 막 떠오른 태양 빛이 검은 구름 사이를 뚫고 강물을 비추기 시작하자 강물은 그 색깔과 흐름에 변화를 보이기 시작한다.해뜨기 전 흰 얼음덩어리를 태운 채 검푸른 빛을 띠며 유장하게 흐르던 강물은 검은 구름 사이로 비치는 태양 빛에 맞장구쳐 짙은 물감으로 번지다 영롱한 빛을 발하며 하나가 되어 춤추며 호흡한다. 밤새 잠자던 강물이 아침 태양과 만나면서 깨어 용틀임을 시작한 것이다. 이렇게 변함 없이 활력 넘친 생명력을 과시한 강은 아래쪽으로 갈수록 마치 어머니의 치마폭처럼 넓어져 주변 마을을 감싸돌며 오롯한 생명력을 불어넣는다.어머니 강은 이렇게 살아 움직이며 품안의 생명체가 번성해 대를 이어갈 수 있게 뒷바라지하고 언제든 돌아오는 생명체의 영원한 안식처 구실을 해낸다. 마치 북태평양을 휘저으며 자라나 오호츠크해를 거쳐 태어난 강으로 돌아오는 연어를 받아주는 것처럼.민족의 젖줄 어머니 강에서 우리 민족의 살아 움직이는 모습을 본다. 그리고 우리 민족의 끊임없는 번창과 발전을 위한 회귀의 필요성을 또한 느낀다.세계는 더욱 빠르게 지구촌화하고 있다. 이에 따라 우리 민족도 어머니 강 유역인 동북아 지역에서 벗어나 세계 속으로 힘차게 뻗어가고 있다. 뿐만 아니라 중국 안에서도 대도시로 연해지역으로 남방으로 나아가 서역까지 그 영역을 넓혀가는 활력 넘친 생명력을 보여준다. 오늘 세계와 중국 속의 한겨레가 참으로 대견하다.하지만 연어가 번식과 안식을 위해 회귀할 때는 태양의 움직임을 나침반 삼아 태어난 강의 냄새와 물맛을 기억해 돌아온다고 한다. 우리 민족도 그 생명력을 끊임없이 이어가기 위해서는 태어난 강으로 돌아오는 연어처럼 민족의 젖줄인 어머니 강의 냄새와 물맛을 잃어버려는 안된다. 어머니 강의 냄새와 물맛은 곧 스스로 민족의 태양으로 자리잡은 개개인이 간직하고 있는 우리의 말과 글이요, 전해 내려오는 풍습이요, 가꾸어 가는 문화일 터이다.iwbback@hanmail.net
7    살아 있는 민족 교육을 이어가려면 댓글:  조회:3213  추천:63  2005-07-07
최근 우리 민족의 교육 위기를 말하는 사람이 많다.동포의 본 고장인 연변자치주와 동북 3성에 있는 수많은 동포 소학교들이 학생 수가 줄어들어 문닫는 사태가 계속되고 있기 때문이다. 올해 연변조선족교육과학연구원에서 조사한 통계를 보면 최근 몇해 사이 전국의 동포 소학교가 두 배 이상 줄어든 것으로 나타나 이런 위기감을 뒷받침하고 있다. 일자리를 찾아 농촌을 떠나 대도시로 향하는 동포들이 늘어나고 교육비 등의 부담 때문에 한 자녀 이상을 낳지 않으려는 경향까지 겹쳐 이런 현상은 갈수록 심화되고 있다.한편, 조사 결과 학생 수가 그만큼 크게 줄어든 것만은 아니라는 통계도 나왔다. 농촌에서는 학교가 없어져 학생 수가 줄어드는 반면 도시는 그 반대로 학생 수가 크게 늘어나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예전엔 농촌 마을이 많은 흑룡강성의 동포 소학교와 학생 수가 도시가 많은 요녕성보다 두배 이상 많은 것으로 조사됐으나 이번 조사에서는 서로 별다른 차이가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른바 도시 집중화 현상이 나타나기 시작한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는 교육도 이전의 방식과는 다른 방법을 도입하거나 개발하는 등 교육 시스템의 변화가 요구된다. 이를테면 통학 개념이 없어지고 학교 울타리 안에서 24시간 생활하며 공부하는 기숙학교 제도의 도입이 필요하고 이에 따른 시설과 설비를 갖추는 일이 요구된다. 아울러 학생들의 생활과 학업이 동시에 이뤄질 수 있도록 교수방법도 달라져야 한다. 초기 이런 변화가 따라가지 못하자 일부 동포들은 할 수 없이 자녀를 한족 학교로 보내는가 하면, 이 기회에 중국 주류 사회로 나가기 위한 발판으로 한어를 좀더 잘 구사하기 위해 스스로 한족 학교를 찾아가는 경우가 많아 민족 교육의 정체성이 흔들리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지난 16~17일 길림성 길림시 길림조선족중학교과 소학교에서 동포 교육의 방향을 제시하는 의미있는 모임이 있었다. 이날 행사에는 전국의 동포 학교 교장 및 주임선생 400여명이 함께 모여 ‘전국 조선족 중소학 창신 교육 현장회’를 열었다.대회를 위해 길림시정부는 조선족중학교와 소학교를 시범학교로 선정하고 70여만위안을 들여 각종 시설과 설비를 갖추는 등 적극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신경철 길림조선족중학교 교장은 시범학교다운 최신 시설이나 뛰어난 자질의 교사, 학생들의 자부심 등을 시디를 통해 설명했다. 다음날엔 장세일 연변조선족교육과학연구원 주임이 선생님의 잣대로만 가르치던 학교 교육을 학생들의 눈높이에 맞춰 가르치는 방안 즉 창신 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창신 교육 공개수업 발표회는 중학교와 소학교에서 각각 이뤄졌다.이들 시범학교와 같은 조건을 갖추고 학생들의 눈높이에 맞춘 교육프로그램을 지속적으로 개발해나간다면 살아있는 우리 민족 교육을 이어갈 수 있을 것이란 기대를 해보았다.민족 교육의 요체는 다른 그 무엇보다 동포들과 더불어 살아가는 민족성을 키우고 다듬어가는 일일 것이다. .이날 행사에는 한국 교육관련 기관이나 단체의 관계자도 참석하거나 관심을 보인 것으로 전해졌다. 이들의 도움 또한 일시적인 지원에 그치지 않고 지속적인 교수방법의 연구와 교육 프로그램을 공유하는 등 실질적인 지원 방안이 마련돼야 할 것이다.iwbback.hanmail.net
6    우리 민족의 ‘로고스’를 찾아서 댓글:  조회:3343  추천:47  2005-07-07
유태인이면서 오스트리아 빈 대학의 정신과 교수였던 빅터 프랭클은 독일 나치의 강제수용소 아우슈비츠에서 살아남아 그곳에서 겪었던 경험을 바탕으로 극한 상황에서 벌어지는 인간 심리현상과 삶의 의미를 성찰하며 ‘죽음의 수용소에서’라는 책을 썼다. 이 책은 지금도 심리학을 공부하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고전으로 읽히고 있다.그는 힘든 노동과 굶주림과 강압에 의한 고통으로 죽음의 문턱에 다가선 두 동료를 관찰하면서 한사람은 차가운 수용소 바닥만을 응시하고 있고, 다른 한사람은 수용소 밖 건너편 하늘을 바라보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이들의 마지막은 결국 죽음과 삶의 차이로 갈렸다. 여기서 그는 인간이 겪을 수 있는 최악의 경험 가운데서도 “살아야 하는 의미(로고스)를 찾은 사람은 어떠한 어려움도 견뎌낸다”고 믿게 됐다. 그 역시 사랑하는 아내를 위해, 자신의 경험을 세상에 알리기 위해 살아남아야 한다고 삶의 의미를 되새겼다. 그는 이런 삶의 이유를 지탱하기 위해 끊임없이 사소한 것에 의미를 부여하며 '감사'할 줄 알았고, 지옥의 생활 속에서도 '감동'할 줄 알았으며, 느끼는 것 이상으로 ‘감탄’을 표현하기 위해 노력했다. 장엄한 붉은 저녁노을, 흥얼거리는 동료의 노래, 수용소 입구에 핀 들꽃을 보며 자신이 살아야 할 이유를 키워갔다. 그리고 두려움에서 벗어나기 위해 동료들과 적어도 하루에 한가지씩 재미있는 이야기를 만들어내며 유머를 ‘자유로운 영혼의 무기’로 여겼다. 이때의 경험을 바탕으로 그는 ‘의미요법’(로고테라피)을 창시했다. '로고테라피'는 의미, 사물의 존재를 구별하는 보편적인 법칙이나 본질(그 무엇인가), 분별과 이성을 뜻하는 '로고스'와 치료하다라는 의미의 '테라피'의 합성어다. 그는 정신과 의사로 수많은 사람들을 치료를 하면서 이 요법이 커다란 효과가 있음을 입증했다.또 그는 ‘삶의 의미를 찾아서’란 책을 통해 “인간 최후의 자유는 어떤 상황에서도 자신의 삶을 선택할 수 있는 것”이라고 말한다. 운명처럼 주어지는 환경을 통제할 수는 없지만 이에 대한 반응은 스스로 자유롭게 통제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누구나 주도적인 삶을 살 것을 강조한다. 스스로 삶의 주인으로, 주체로 나서라고 말하며 그 행동과 결과에 대해 과거 현재 미래를 포함해서 모두 책임지라고 권한다. 그것이 진정 로고스를 찾아가는 삶이란 것이다.우리 민족의 로고스를 어떻게 찾을까.한겨레 구성원 개개인이 어떤 어려움과 난관 속에서도 민족의 주인으로, 주체로 나서 자신의 현재 선택뿐만 아니라 과거의 행동과 미래의 태도에까지 책임지는 자세로 살아가는 것을 로고스를 찾아가는 삶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다시 말해 200만 중국동포와 50만에 이르는 한국동포 모두 한겨레가 되어 서로를 ‘의미’(로고스)로 선택하고 받아들이고 책임지는 자세야말로 스스로 자유롭게 통제하는 즉 최후의 자유를 누리는 일로 볼 수 있다. 아울러 전통적인 민족의 얼이나 문화, 특성을 살려나가는 일뿐만 아니라 다른 민족과 구별되는 사소한 것들을 찾아내 우리 것으로 만들어 지켜나가며, 그것들에 감사하고 감동하고 감탄하며 재미있어할 줄 아는 것 또한 민족의 로고스를 찾는 일이라 할 것이다.
5    미워도 다시 한번 댓글:  조회:3186  추천:47  2005-07-07
오래 전 한 인터넷 카페에서 심양에 있는 중국 동포와 베이징에 있는 한국 동포가 개인적인 감정싸움 차원을 넘어 서로 중국 동포와 한국 동포를 싸잡아 비난하는 글을 올리며 줄기차게 싸우는 모습을 지켜본 적이 있다. 아주 심한 욕설과 옮겨 쓰기조차 힘든 온갖 표현을 총동원해 서로의 잘못을 구체적인 경험이나 예를 들어가며 적나라하게 까발리고 상대를 자극하는 글들을 잇따라 올렸다. 수많은 사람들이 댓글을 달아 그들의 싸움을 말리기도 하고 타이르기도 하며 충고를 해도 전혀 소용이 없다. 오히려 댓글을 단 사람까지 싸움판으로 끌고 들어가 카페는 난장판이 되고 말았다. 그때 어쩌면 이렇게도 감정의 골이 깊게 패였을까라고 생각하며 안타까워했다.며칠 전 한국에서 자진 귀국한 중국 동포 한 분을 만났다. 함께 있던 사람이 나를 ‘한국사람’이라고 소개하자 점잖은 풍모의 그는 한국사람이 아니라 ‘한국분’이라고 고쳐 말한다. 이에 “한국분까지는 못되고 ‘한국놈’이라고만 안하면 다행”이라고 답을 하니 웃으면서 “한국에 가보니 한국사람들이 우리를 ‘중국놈’이라고 하더구먼”이라고 한다. 한국에서 5년 동안 단순 잡부에서 전문 기술자로 일을 하다 왔다는 그는 한국에 대한 애증이 겹쳐 있는 것 같았다. 한국을 다녀온 대부분 중국 동포들이 가지는 감정이 그와 별반 다르지 않으리라 생각한다.베이징에서 사업을 하는 한 한국 동포는 “한국 동포는 함부로 하고, 중국 동포는 제멋대로 해요. 그래서 같이 잘 할 수 있는 일들도 그르치는 경우가 적지 않아요”라고 문제점을 지적한다. 또 “중국 동포와 한국 동포가 서로 믿지를 못해 많이 싸워요. 하지만 급하면 서로 찾아요”라고 말한다. 그는 “중국에서 사업을 하다가 갑자기 어려운 일이 닥치면 중국 동포를 찾을 수밖에 없다”고 실토했다. 그런가 하면 “한국기업을 욕하면서 떠난 중국 동포들도 결국은 다시 한국기업을 찾는다”고 그 복잡 미묘한 관계를 설명했다. 그래서 중국 동포와 한국 동포 사이를 애증이 교차하는 뗄래야 뗄 수 없는 부부관계로 비길 수도 있을 것 같다.이런 상황에 대한 민족적인 정서를 잘 보여주는 영화 한편이 생각난다. 1960년대 한국 멜로드라마의 집대성이라 할 수 있는 ‘미워도 다시 한번’이 바로 그 영화다. 시골에서 서울로 올라와 성공한 중년과 유치원 선생의 사랑, 그리고 그의 아내와의 갈등과 번민을 그린 내용으로 정소영 감독은 이들의 애정심리를 착실하게 그려냈고, 중후한 신영균의 배역과 미혼모 문희의 애절한 연기, 착한 아내 전계현의 이해심 등이 당시의 시대적 공감을 불러일으켜 사상 최고의 흥행을 기록했다.중국 동포와 한국 동포가 어울리기 시작한 지도 벌써 13년이 넘었다. 그동안 서로 환상을 갖고 바라보았고 그 결과 어쩌면 실망만 남았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것으로 끝나서는 안된다. 오늘 우리 현실에서 최선의 선택을 하기 위해서는 영화 ‘미워도 다시 한번’을 다시 한번 봐야 할 것 같다. (iwbback@hanmail.net)
4    노블리스 오블리주 댓글:  조회:3299  추천:34  2005-07-07
노블리스 오블리주(nobless oblige)란 ‘사회적으로 높은 신분을 가진 인사에게 요구되는 도덕적 의무’를 뜻하는 프랑스 말이다. 로마 초기 왕과 귀족들이 보여준 투철한 도덕정신과 솔선수범 자세에서 비롯되었다. 조그만 도시국가였던 로마가 이탈리아 반도를 통일하고 지중해에 대한 영향력을 넓히면서 북아프리카의 카르타고와 충돌해 ‘포에니 전쟁’을 벌이게 된다. 기원전 264년부터 146년까지 3차에 걸친 이 전쟁에서 귀족은 평민보다 먼저 전쟁에 나서 목숨을 바치고 전쟁세를 내는 등 의무를 다하고 절제된 행동을 보였다. 그 결과 로마는 카르타고의 명장 ‘한니발’을 꺾고 마케도니아와 그리스를 정복해 세계 최강국으로 올랐다. 황제가 지배하는 제정 로마시대 이전의 초기 공화정 로마는 엄격한 도덕적 기준을 세워 스스로를 규제해나가는 귀족(nobless)이 상류층을 형성해 발전해나갔다.이런 역사적 배경에서 나온 노블리스 오블리주는 이후 인류 역사를 이끄는 중요한 덕목으로 자리잡았고, 현대에 들어서는 사회 계층간 대립을 해결할 수 있는 최고 수단으로 꼽히고 있다.전쟁 때는 국민을 결집시키는 원동력으로 실천됐다. 1, 2차 세계대전에서 영국 고위층 자제가 다니던 이튼 칼리지 출신 2천여명이 전사했고, 포클랜드전쟁 때는 여왕 둘째아들 앤드루가 전투헬기 조종사로 참전했다. 한국전쟁에서도 중국의 마오쩌둥 주석 아들이 전사했으나 시신 수습마저 포기하도록 했다. 미8군사령관 밴플리트의 아들이 야간폭격에 나섰다 전사하는 등 미군 장성 아들 142명도 참전해 35명이 목숨을 잃거나 부상을 입었다.“개 같이 벌어 정승 같이 쓰라”는 말처럼 경제 분야에서도 빈부 격차로 인한 사회적 갈등을 해소하는 기능으로 자리잡고 있다. 부를 축적하는 과정에 대한 투명성과 공공성도 중요하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쌓은 부를 사회에 환원하는 문화가 정착돼야 한다는 것이다. 미국의 철강왕 카네기, 석유재벌 록펠러, 현재 세계 최대의 갑부 빌 게이츠에 이르기까지 부자들의 자선 기부문화도 이런 맥락을 이은 것이다.최근 한국에서는 병역을 면제받기 위해 아들의 국적을 포기한 부모 명단을 공개하며 노블리스 오블리주를 망각한 행동으로 비난하고 있다. 두차례나 대통령 후보로 나선 이회창씨는 아들 병역문제 때문에 대통령이 될 절호의 기회를 놓쳐버렸고, 장관이나 주요 공직자에 대해서는 본인이나 아들의 병역문제뿐만 아니라 재산 형성 과정 등에 문제가 없는지 언론이나 시민단체 등 온 국민이 나서 감시의 눈길을 멈추지 않고 있다.중국은 인민을 위해 봉사하는 공산당이 로마 귀족과 같은 구실을 해오고 있다. 물론 개방의 여파로 부패에 빠져드는 관리나 당원이 없지는 않으나 당이 나서 가차없는 철퇴를 내림으로써 더이상의 부패를 막아내고 있다. 이제 세계 사회에서 노블리스 오블리주는 피할 수 없는 명제가 되고 있다.중국 동포사회의 ‘노블리스’는 누구인가. 먼저 연변조선족자치주 영도와 고위 관리를 꼽을 수 있다. 그리고 민족의 저명한 학자나 과학자, 문인, 예술가, 체육인과 대학 교수, 언론인, 교사를 들 수 있다. 아울러 성공한 사업가나 상공인 등 기업인을 내세울 수 있다. 이들이 자신의 명예와 이익만을 좇지 않고 대접받기만을 바라지 않고, 민족과 동포사회를 위해 ‘오블리주’를 제대로 실천할 때 민족의 앞날이 더욱 밝아질 것이다. iwbback@hanmail.net
3    ‘49년도 사람들’과 ‘도전’ 정신 댓글:  조회:3538  추천:40  2005-07-07
미국에서 가장 인기 있는 스포츠 종목을 꼽으라면 단연 미식 축구(아메리칸 풋볼)를 들 수 있다. 1869년 캐나다의 뉴브런즈윅주에서 프린스턴 대학과 러트거스 대학이 첫 경기를 벌였고, 1920년 프로팀이 만들어져 현재 내셔널리그에 32개 팀이 있다. 해마다 9월부터 11월말까지 리그전이 펼쳐지며 1월 중순께 미국인의 열광적 관심 속에 열리는 슈퍼볼에서 우승팀을 가리게 된다.이들 팀 가운데 샌프란시스코를 연고로 하는 미식 축구 팀의 이름이 좀 독특하다. ‘포티나이너스’(49ers)로 ‘49년도 사람들’이란 뜻이다. 미국 서부개척시대 샌프란시스코 지역은 금광으로 유명했다. 영국으로부터 독립한 뒤 동부지역에서 경제적 기반도 없이 살아가던 평민들은 인생 역전을 꿈꾸며 골드 러시에 뛰어든다. 최절정기인 1849년엔 1만명이 넘는 사람들이 이곳으로 몰려들었다. 서부개척에 나선 이들을 ‘49년도 사람들’이라 일컬었고, 바로 이들이 오늘의 샌프란시스코를 있게 한 사람들이다.사실 '49년도 사람들'은 그리 좋은 의미만 있는 게 아니다. 개척 정신이 강하다는 뜻도 있지만 체면이나 예절 따위는 안중에도 없고 한탕주의에 사로잡힌 사람들로 경멸하는 뜻이 더 강한 말이다. 하지만 샌프란시스코는 ‘49년도 사람들’ 즉 ‘개척자’(프런티어)의 후예임을 자랑스럽게 여기고 미식 축구 팀 이름으로 당당하게 사용하고 있다.샌프란시스코가 내세우는 프런티어(Frontier)라는 말은 ‘경계나 최첨단의 선봉’이라는 의미가 있다. ‘아메리카 대륙에서 백인과 인디언들이 치열하게 싸웠던 곳’이라는 지명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그렇게 보면 프런티어 정신도 양면성이 있다. 나쁜 의미로는 ‘자신의 이익을 위해 철저히 상대방을 응징하는 것’이고, 좋게 말하면 ‘미지의 세계를 탐구하고 개척하는 정신’이다.어쨌든 미국이라는 나라 자체가 이런 개척자 정신에 기초해 성립된 국가라고 할 수 있다. 아울러 이런 개척자 정신과 이를 계승하려는 케네디 대통령이 주창한 신개척자(뉴프런티어) 정신이 오늘의 미국을 세계 최강대국으로 올려놓은 원동력임은 틀림없다.최근 수많은 한국 동포들이 중국 열풍을 따라 사업이나 상업, 유학 등의 명목으로 속속 중국으로 들어오고 있다. 이들의 모습을 바라보면 마치 미국 서부개척시대 골드 러시에 뛰어든 ‘49년도 사람들’과 크게 다를 바 없어 보인다. 뿐만 아니라 돈을 벌기 위해 어떻게든 한국 등 외국으로, 중국 안 대도시로 빠져나가는 중국 동포들의 모습 또한 이들과 마찬가지다. 이들에게는 새로운 미래를 꿈꾸는 개척자 정신도 있지만 이와 함께 각종 불법과 인생역전을 바라는 한탕주의도 뒤섞여 있다고 할 수 있다.‘49년도 사람들’이 개척자 정신을 바탕으로 오늘의 미국과 샌프란시스코를 만든 것처럼 ‘떠나온 한국 동포, 중국 동포들’이 내일의 ‘한겨레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개척자 정신을 뛰어넘는 ‘도전 정신’을 가져야 한다. 개척자 정신의 부정적인 면을 버리고 긍정적인 뜻을 살려낸 ‘도전 정신’이야말로 오늘을 살아가는 한국 동포와 중국 동포의 버팀목일 뿐만 아니라 내일의 한겨레 사회를 담보해낼 수 있는 추진력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 후손들이 ‘떠나온 한국 동포와 중국 동포’가 만들어놓은 한겨레 사회를 자랑스럽게 당당하게 말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iwbback@hanmail.net
2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댓글:  조회:3563  추천:43  2005-07-07
"슬플 때 부르면 슬픔이 되고, 기쁠 때 부르면 기쁨이 된다”는 ‘아리랑’은 우리 민족의 전통민요이다.아리랑의 ‘아리’는 고운이라는 뜻의 옛말이고 ‘랑’은 님을 가리킨다 해서 아리랑을 ‘님을 그리는 사랑 노래’라고 하지만 ‘민족의 애환을 노래한 것’이라고도 한다. 아리랑이 옛날 억울한 죽음을 당한 밀양 사또의 딸 아랑을 애도한 데서나 신라 시조 박혁거세의 아내 알영을 기리는 데서 또는 흥선 대원군이 경복궁을 중수할 때 백성들이 세금 독촉을 듣기 싫어했다는 뜻의 ‘아이롱(我耳聾)'이나 부역 온 인부들이 부모처자가 있는 고향을 생각하며 부른 ‘아리랑(我離娘)'에서 유래했다는 각종 설을 듣고 보면 두가지 의미를 모두 담고 있다고 할 수 있다.일반적으로 민요는 민속성을 가지면서 공동체의 시대성과 사회성을 내포하게 된다. 따라서 아리랑은 애원이나 한탄의 소리이기도 하지만 항거나 비판의 소리이기도 하다. 남녀간의 이별이나 그리움, 서민들의 삶의 애환을 담아내는가 하면 구한말 위기에 처한 나라의 비분을 읊으며 민족의 동질성을 지탱해왔고, 일제 강점에 저항해 민족의 독자성을 곧추세우는 외침으로 노래했다. 1926년 나운규가 연출하고 주연한 무성영화 ‘아리랑’은 한국 영화를 최초로 예술적 경지에 끌어올렸다는 평가와 함께 일제에 억눌린 민족의 가슴에 아리랑의 불꽃을 활화산처럼 타오르게 했다. 님 웨일즈는 일제 때 중국 공산당원으로 가입해 무정부주의자로 활동한 실존인물 김산(본명 장지학)의 삶을 ‘아리랑’이라는 소설로 묘사해냈고, 1995년 조정래는 일제시대 민족의 역사적 굴곡을 대하소설 ‘아리랑’으로 써내려갔다.이후 아리랑은 체념과 한의 노래에서 민족의 미래를 꿈꾸는 울림으로 거듭나고 있다. 88서울올림픽 때 지구촌 곳곳에 울려 퍼졌고 1990년 베이징 아시아경기대회에서는 남북 단일팀 단가로 남과 북이 함께 불렀다. 이어 91년 4월 일본 지바에서 열린 세계탁구선수권대회에서부터 2001년 시드니올림픽에 이르기까지 ‘아리랑’은 두터운 체제와 이념의 벽을 훌쩍 뛰어 넘는 통일의 상징이 되기도 했다. 2002년 한일월드컵 전야제에서 조용필이 부른 ‘꿈의 아리랑’과 개막식에 울려퍼진 ‘상암 아리랑’은 희망의 노래로 온 세상을 수놓았다. ‘생의 한 가운데’를 쓴 독일의 대표적 여류 소설가 루이제 린저는 1980년과 81년 두차례 북한을 방문한 뒤 ‘루이제 린저의 북한이야기, 또 하나의 조국’을 펴냈다. 그는 이 책에서 남과 북이 통일된다면 아리랑을 국가로 사용해도 좋을 만큼 아리랑이 한민족의 동질성을 가장 잘 표출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한국 최고 대중가수로 꼽히는 나훈아(57)는 미국의 팝, 프랑스의 샹송, 이탈리아의 칸소네, 일본의 엔카처럼 ‘뽕짝'이나 ‘트로트'로 불리는 한국 전통가요를 가장 친숙한 단어인 ‘아리랑'으로 부르자고 제안했다. 이제 아리랑은 남북뿐만 아니라 중국 동북3성, 러시아 연해주 사할린 중앙아시아, 일본, 하와이, 미주, 멕시코, 쿠바 등지에 이르기까지 한겨레를 상징하는 대표적 언어가 되었다.이렇게 아리랑은 시대적 상황에 따라 그리움으로, 한으로, 풍자로, 항거로 그 모습을 달리하며 민족의 혼으로 자리잡아 우리와 함께 하고 있다. 이런 아리랑 속에 함축된 의미와 멋을 제대로 읽어내고 찾아내고 활용하는 것이야말로 지금 중국 속의 한겨레가 마땅히 해야 할 일이다. iwbback@hanmail.net
1    지행합일-말보다 행동을 댓글:  조회:3439  추천:38  2005-07-07
# 이야기 1당나라 때 백락천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어릴 적부터 학식과 총명이 뛰어난 그가 항주의 자사로 부임했을 때다. 하루는 멀지 않은 사찰에 ‘도림선사’라는 유명한 고승이 있다는 말을 듣고 찾아갔다. 선사는 오래된 소나무 위에 올라 좌선을 하곤 했는데 마침 이날도 좌선 중이었다. 백락천이 나무 아래서 “선사의 모습이 너무 위태롭습니다”고 하니 선사가 내려다보며 “자네가 더욱 위험하네”라고 말을 받았다. 의아해하는 그에게 “티끌 같은 세상지식으로 교만한 마음만 늘어 번뇌가 끝이 없고 탐욕의 불길이 쉬지 않으니 어찌 위험하지 않은가”라고 그의 학문과 벼슬에 대한 교만한 마음을 지적했다. 이에 백낙천은 “평생 좌우명을 삼을 만한 법문 한구절”을 요청했다. 선사는 ‘제악막작(諸惡莫作 나쁜 짓을 하지 말고) 중선봉행(衆善奉行 착한 일을 받들어 행하라)’이라고 일렀다. 대단한 가르침을 기대했던 그는 ‘삼척동자도 다 아는 것 아니냐’고 반문하니 선사는 “삼척동자도 다 알지만 팔십 노인도 행하기는 어려운 일”이라고 말했다. 비로소 깨달은 바가 있는 그는 선사에게 귀의해 불법을 수행하며 당대의 유명한 시인이자 경륜있는 정치가로 ‘백거이’란 이름을 남겼다.# 이야기 215년 전 미국에서 출간돼 화제가 된 ‘내가 정말 알아야 할 모든 것은 유치원에서 배웠다’라는 책이 있다. 이 책의 저자 로버트 풀검은 우리가 어떻게 살고, 무엇을 하고,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하는지, 더불어 살아가기 위해 알아야 하는 모든 것들은 유치원에서 배웠다고 말한다. 그는 아이비엠 판매교육 수강생, 카우보이, 아마추어 로데오 선수, 상담원, 바텐더, 화가, 조각가, 음악가, 목사, 선불교 수도사 등 아주 다채롭고 이색적인 경력의 소유자다. 오늘의 자신을 만든 가장 중요한 경력은 1961년부터 1985년까지 워싱턴의 한 교회에서 파트타임 목사로 봉사한 일이다. 이때 얻은 지혜와 깨달음 즉 일상 생활에서 만나는 사람들, 경험한 일, 깨달음, 신념, 사랑 등 그 모든 것을 모아 쉽고도 간결하게 담아내 많은 이들의 공감을 얻어냈다. 남을 때리지 마라, 손을 씻어라, 어질러놓은 것은 스스로 치워라 등 어쩌면 잔소리 같은 사소한 이야기 속에 철학적 가치가 숨겨져 있는 것이다.위의 두 이야기는 ‘아는 것만큼 실천하는 것’ 즉 ‘지행합일’(知行合一)을 강조하는 말이다. 지행합일은 주자 등이 주장한 ‘선지후행’(先知後行)에 반해 명나라 유학자 왕양명이 제창한 명제로 사람의 마음에 사욕만 없으면 지행합일이 가능하다고 했다. 그런데 중국에서 지내다보면 말이 앞서는 중국 동포나 한국 동포를 너무 많이 볼 수 있다. 어떤 경우엔 과시로, 어떤 경우엔 허세로 드러나는 이들의 말에 서로가 상처받고 불신하게 된다. 그렇게 말을 잘할 수가 없다. 그리고 말도 많다. 하지만 행동이 뒷받침되지 않은 말에 결국 실망하거나 배반감을 느낀다. 아는 것이 많고 앞서나가는 사람일수록 말을 더 많이 하게 되고 책임지지 못할 말을 쏟아놓게 된다. 더욱이 지도자(노블리스)로 불리는 관리와 교수, 문인, 언론인 등 지식인들은 그럴듯한 말만 앞세우고 그 울타리 안에서 만족해하고 안주하려는 모습을 보인다. 민족의 미래를 강조하는 자리에서도 말과 함께 행동을 실천하는 사람이 없는 것 같다. 지금 우리에게 요구되는 것이 바로 ‘지행합일’ 곧 ‘말보다 행동을’ 실천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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