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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하는 것과 사랑하는 것의 차이
2005년 07월 07일 00시 00분  조회:3564  추천:54  작성자: 차대형

어느 날 저녁 딸아이가 대뜸 하는 말이 ꡒ나 이제 아빠 안 좋아해ꡓ 한다. 무슨 삐친 일이 있나 싶어 얼굴을 살피니 그 이유를 물어달란다. 그래서 물어보니 엉뚱하게도 ꡒ이제부터는 사랑하니까ꡓ라고 대답한다.
사랑이 뭔지 알고나 하는 소리인지 싶으면서도 좋아하는 것과 사랑하는 것이 얼마나 다르다는 것을 알았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다.
심리학에서는 사랑을 에로스라는 남녀간의 성적인 사랑, 루두스라는 부담 없고 장난스러운 사랑, 스토르지라는 따스한 정에 이끌린 사랑, 마니아라는 광기어린 격정적인 사랑, 프라그마라는 가슴보다 머리가 앞서는 현실적인 사랑, 아가페라는 이해와 양보와 희생을 통해 벼루어가는 사랑으로 나눠 설명한다.
그리고 실제 사랑은 이들 가운데 한가지 사랑만이 아니라 두세가지 사랑이 순차적으로 또는 동시에 합쳐 나타난다. 친구로 만나 연인 관계로 발전하는 경우를 보면 루두스나 스토르지에서 에로스나 마니아로 변한 것으로 말할 수 있고, 처음 사귈 때 프라그마로 시작했지만 나중엔 아가페로 승화하는 경우도 있을 수 있다. 이렇게 보면 좋아하고 사랑한다는 것을 굳이 구분해 말하는 것이 불필요한 일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좋아한다는 것과 사랑한다는 것의 차이는 뭘까. 여러 가지 해석이 가능하겠지만 결정적인 차이는 ꡐ조건의 유무ꡑ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좋아하는 것에는 분명한 조건이 있다. 이른바 ꡐ때문에ꡑ라는 조건을 충족시켜줄 때 비로소 좋은 관계가 유지될 수 있다. 그 조건을 충족하지 못할 경우엔 좋은 관계가 사라질 뿐만 아니라 오히려 더 나빠지기까지 한다. 하지만 사랑하는 것은 ꡐ때문에ꡑ라는 조건을 충족시켜줄 때뿐만 아니라 ꡐ그럼에도ꡑ라는 상황 즉 조건을 전혀 충족시켜주지 못하는 경우에도 좋은 관계를 유지한다. 따라서 좋아하는 것과 사랑하는 것의 차이를 필요조건과 충분조건의 차이라고 말할 수도 있을 것 같다.
중국 안 한겨레 사회는 어떤 관계인지 되살펴본다.
중국동포 한국동포 모두 애초엔 서로 좋아하는 관계로 출발했다. 한-중 수교 뒤 중국동포는 한국의 경제력이 매력적이었고 한국동포는 언어가 통하고 믿을 만한 상대가 필요한 상황이었다. 하지만 경제력도 없는 한국동포가 중국동포를 대상으로 허세를 부리고 사기를 치는가 하면, 중국동포 역시 전문분야 통역도 제대로 안되면서 믿을 수 없는 행동을 보여 조건에 따라 좋아하던 관계는 오히려 이전보다 못한 상황으로 악화되기도 했다. 한겨레 사회도 좋아만 하는 관계에서 사랑하는 관계로 발전했으면 좋겠다.
민족을 사랑하는 일이 한사람을 사랑하는 일보다 더욱 값질 진대 이해와 양보와 희생을 통해 벼루어가는 아가페 같은 사랑을 마다해선 안 될 것이다.
필요조건에 더 이상 머물지 말고 충분조건 속으로 들어가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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